은혼/ing A

[카무오키] Jacobs ladder 17

burts : 버츠 2016. 7. 23. 12:43



*히지오키/아부카무아부 요소 주의*



17.











-

"단장,요즘 이상하게 조용하네"


"내가 뭘"


"이상해 너 요즘"


"너도 이상해"


요즘 아부토와 나의 관계가 별로다. 집단 안에서도 집안에서도 우리의 대화는 길지 않았다. 나는 아부토가 카다에게 했던 행동 때문에 약간은 화가 나 있었다. 아부토도 나에게 뭔가 불만이 있는지, 전이라면 내 말투가 조금은 이상해 보인다면 다가와서 풀어주려 이것저것 병신 같은 이야기라도 했을 텐데 나의 성의 없는 짧은 대답을 듣고서는 소파에 풀썩 누워서는 나를 옆으로 슬쩍 보다가 뜸을 들인 후에 내키지 않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요즘, 고민 있냐?"


"고민이라니? 고민도 생각이라는 걸 하는 새끼가 하는 거라면서?"


"그렇지 그래도"


"너야말로 고민 있는 거 아냐?"


".. 없어"


우리 둘의 대화에는 보이지 않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이런 아부토는 약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대답 후, 아부토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카다와 술을 마셨던 이후로 아부토는 분명 이상해졌다. 그 여우년에게 홀딱 빨아먹힌 게 틀림없다. 이 멍청한 새끼. 나한테 말하면 분명 내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을 것을 알고 나한테 말도 못한 채 끙끙대는 것이겠지.


항상 아부토가 나에게 다가왔으니 이번엔 내가 조금 풀어줄까 하는 너그러운 생각을 가지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부토의 곁에 다가가 침대 옆에 앉아 시선을 맞추고 아부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건들었다.


"뭐, 이 망할 녀석아."


"못생겼어"


"뭐래"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아부토는 내가 씨익 웃자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홱 돌렸다. 











-

히지카타의 결혼 소식은 내가 안 이후 일주일도 안되어 순식간에 퍼졌다. 그 깐깐한 마츠다이라 선생도 흔쾌히 허락했다는 걸 보면 쿠리코가 엄청나게 졸라대기도 했겠지만 히지카타 정도의 남자라면 능력도 능력이고, 생긴 것도 흠잡을 것 없이 생긴 괜찮은 새끼니까 딱히 싫어하지 만은 않았을 법도 하다.


"소고"


낮잠을 자려 기대어 앉아 있는 나를 그가 찾아왔다. 나를 '소고'라고 부르는 사람이 몇 없기도 할뿐더러 중저음의 반듯한 말투에 쓸데없이 좋은,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목소리와 말투 만으로도 히지카타라는 것을 알았지만 안대를 벗지는 않았다. 


"응"


"안 자고 있었네. 나랑 이야기 좀 할까?"


"아니, 또 잔소리할 거잖아"


"안 할게"


"그래도 싫어"


대답하자마자 갑자기 눈앞에 확 밝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을 잔뜩 찌푸렸다. 히지카타가 나의 안대를 위로 벗기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잘생기기도 했네. 아무리 내가 저 새끼를 싫어한다지만 저 잘생긴 얼굴만은 인정하고 있다. 씨발새끼. 짜증 나게 잘 생겼단 말이야. 남 주기 아깝게.


"따라와"


히지카타는 먼저 등을 보이며 휙 돌아서서는 제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한참 보다가 조금 늦게 그를 뒤따라갔다. 히지카타는 따라온 나를 보고는 얼마 전 합숙실이 아닌 나의 본가에서 잤던 일에 대해서 추궁했다.


"어디 갔었어? 너 갈 데도 없으면서"


"..."


"... 너 혹시.. 아 아니다"


히지카타는 분명 나에게 집에 갔었니? 하고 물으려 했을 것을 나는 알았다. 하지만 아닐 것이라는 것도 알 것이고, 괜히 그런 말로 날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에 말을 피했다는 것도.


"연락 없이 외박하고 그러지 마. 합숙에는 다 규칙이 있는 거잖아.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지만 어엿한 대장이잖냐"


"봐. 잔소리하잖아"


".. 그래 알았어. 잔소리는 그만할게"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담배 하나를 꺼내들고서 깊이 들이마셨다. 평소라면 나에게 가보라거나 알았다고 하거나 해서 말을 매듭지어야 할 그 녀석은 할 말이 더 남은 듯이 어물쩡댔다.


"할 말 끝났으면 나갈게"


문 손잡이를 잡자마자 그가 뒤에 대고 말했다.


"소고"


그가 약간 나를 잡는 듯이 나를 불렀다.


"뭐"


"2주 후에...."


".. 결혼?"


".. 응"


"그래"


나는 건조한 대답을 건네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나 빨리 서두르다니. 쿠리코가 혹시 저 자식 애라도 가진 게 아닐까 하고 잠시나마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히지카타가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히지카타는 아닐 거야. 히지카타가 아니라면 겉모습은 순진해 빠졌지만 속은 어떨지 모르는 저 여자가 다른 놈 애를 배고서 히지카타에게 무작정 '당신 아이에요! 결혼해주세요!' 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둘 다 유쾌하지 않은 일임은 사실이지만... 하지만 임신을 하려면, 당신의 아이라고 우기기라도 하려면 임신을 할 만한 행위가 있었다는 건데.... 저 새끼와 그년이 한 침대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의 입술을 핥고, 서로의 몸을 보고, 서로를 만지고, 비밀을 하나씩 공유해가는... 그런 개 같은 경우는 별로 생각하기 싫었다. 그냥 쿠리코와 마츠다이라 선생의 등쌀에 못 이겨 빠른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나의 마음이 편해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만... 이미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데 사실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결혼 전인가, 결혼 후인가 하는 하찮은 문제일 뿐인데. 이렇든 저렇든 배배 꼬여버린 나의 성격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속이 편하지 못 했다. 계속해서 쿠리코나 히지카타의 이야기만 나와도 급격하게 예민해지고, 기분이 다운되는 것을 막을 수도, 감출 수도 없었다. 남 잘 되는 꼴 보기 싫은 나의 이기적인 심보다. 누나가 항상 꾸짖던 나의 못된 심보.



그날은 대원들이 식당에 간만에 맛있는 게 나온다면서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배가 고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걸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 그들의 말을 따랐다. 맛있는 것이라고 해봤자 딱히 별거 없는 식단이었지만 후식으로 나온 당고는 맛있어 보여서 두 개 집어왔다. 조금 늦게 우리의 무리를 뒤따라왔는지 함께 오지 않았던 히지카타가 내 앞에 와서는 앉았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고 식사를 하는 것도 꽤 오랜만이다. 히지카타 딴에는 저를 미세하게 피하는 나를 직감하고서 일부러 나와 부딪히려 나에게 온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나는 이 자식만 봐도 결혼이라는 글자가 자꾸만 떠올라서 입맛이 뚝뚝 떨어진다. 게다가 가십거리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뚜벅뚜벅 걸어와준다면 입 놀리기 좋아하는 대원들은 얼씨구나 좋다, 하고 선 덥석 물어대겠지. 아니나 다를까 이 녀석을 보자마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끄러운 질문거리... 짜증나. 그들은 축제라도 시작된 듯 히지카타에게 질문 세례를 시작했다.


"와아, 곧 결혼하시는 부장님!"


"부장님 왜 이렇게 결혼을 빨리하세요? 아 이거 아쉬워서 어째, 총각파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거하게 놀아보지도 않으셨을 텐데"


"다 안다고요 부장님 생각보다 순정파인 거 으하하하하"


"쿠리코씨는 역시 귀엽죠? 부장님 엄청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셨어!"


"시끄러, 밥이나 처먹어"


히지카타는 그들이 멋대로 떠드는 것에 한마디 하고는 잠깐 나와 눈을 맞추었다. 짜증나. 쳐다보지 마. 나를 쳐다보는 히지카타의 눈빛에 나도 지지 않는 듯이 노려보다가 한마디 했다.


"하하, 다들 진짜 묻고 싶은 건 물어보지도 못하는구나? 히지카타씨, 혹시 사고 친 거 아닙니까?"


내 말에 잠시 싸한 분위기가 되었지만 히지카타는 평소의 나 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피식 웃고는 대꾸했다.


"미쳤냐"


"아하, 네네~ 아니라고 하겠죠. 원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잖아. 히지카타씨도 남자는 남자였구나. 섹스하면 어때요? 좋아요? 그 여자 완전 히지카타씨한테 껌뻑 죽던데, 혹시 먼저 막 덮쳐온 거 아니에요?"


"저.. 대장.."


옆에선 어떤 대원이 굳어지는 히지카타의 표정을 보고서 나에게 살짝 눈치를 주었다. 나도 알아. 저 새끼 지금 슬슬 열받으려고 하는 거.


"가슴 커요? 젖꼭지는 무슨 색이에요? 처음 할 때 속옷 색은 무슨 색이었어요? 아, 그 여자 엄청 순해 보이던데 의외로 속옷은 새빨간 망사나 호피무늬 같은 거 입는 거 아냐? 침대 위에선 적당히 내숭 떨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듯하지만 엄청 적극적일지도 몰라. 펠라도 해줘요? 펠라 할 때 정액도 먹어줘요? 섹스할 때 막 더 해달라고 애원하진 않아요? 신음은 참는 편? 아니면 막 오버해서 더 내지르는 편? 아니면 딱 꼴릴 정도? 흠.. 엄청 오버할 것 같은.."


"그만해"


"아니면 막 바지 벗은 히지카타씨의 그곳을 보고 어느 싸구려 라노벨 주인공처럼 꺄앗 너무 커! 말도 안 돼! 그런 게 들어갈 리가 없잖앗! 이러면서 내숭떨고 있는 게 아닌가 몰라.. 아! 죄송 히지카타씨는 그렇게 크진 않았던 거 같네요"


다른 대원들은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눈알 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어때? 너희들도 궁금하지 않아? 사실 이런 거 묻고 싶었던 거 아냐?"


내가 이 말을 하자마자 내 주위에 있던 모든 대원들은 벌떡 일어나서는 식당에서 소스랏치게 뛰어나갔다. 내가 의도한 대로 지금 내 앞에 이 새끼는 나도 약간은 무섭다고 느낄 정도로 화가 난 게 보였다. 그래, 나한테 화 내봐 어디. 이 새끼야.


"왜, 기분 나빠?"


나는 일부러 더 천연덕스럽게 당고를 들고서 한 개씩 빼먹으면서 물었다.


"지나치다 너 오늘"


"나 원래 이러잖아요. 히지카타씨가 참아요. 나를 잘 알잖아?."


히지카타는 내 껄렁한 말투에 한숨을 크게 한번 쉬고는 그래, 하고는 또 참는 듯했다.


"와아, 잘 참는다. 곧 부인될 여자가지고 이렇게 섹드립을 쳐도 히지카타씨는 잘 참으시네요? 엄청 화낼 줄 알았는데. 진짜 존경스러워. 나도 꼭 히지카타씨 같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너 일부러 이러는 거 다 알아. 그만해"


화를 삭이는 모습도 짜증나게 잘생겼어.. 앞에 놓인 물 한 잔을 침착하게 들이키자 울렁이는 목울대가 섹시해서 한 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내가 미쳤나..

일부러는 무슨, 중얼거리듯이 말하고 벌떡 일어서자 히지카타가 말했다. 


".. 미안해"


웬 병신 같은 소리. 뭐가 미안하냐 너?


나는 그대로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어젖히고 나갔다. 뒤늦게 콰앙 하고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

비가 오려는지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다. 햇살이 없어서 우산 없이 지붕 위로 올라가서 바람이나 쐴 겸 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쏟아져 내릴 듯 구름이 묵직하고 어두웠지만 이상하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곧 비 올 거 같은데 이런 데에서 뭐 해? 하고 껄렁한 목소리가 들려서 옆을 보니 5번대였던가... 2번대였던가 암튼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나와 이야기도 몇 번 한 적이 있는 다른 사단의 단장이었다. 이 녀석은 아부토 정도 되는 덩치에 여자 앞에만 가면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리는 나와 다른 타입이었지만 나를 꽤 인정하고 있는지 나에게 항상 '난 너같이 뛰어난 재능이 있는 놈을 본 적이 없어'라고 칭찬을 하면서 나와 함께 임무하는 것을 좋아했다. 


"전에 카다랑 같이 술 먹던데 재밌었어? 쳇, 나도 같이 먹고 싶었는데"


"음 난 오래 없어서 모르겠어. 너야말로 유녀 끼고 시시덕 대느라 정신없던데 뭐"


"그 여자랑 카다는 비교가 안돼. 카다가 훨씬 예쁘잖아"


내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 녀석은 나를 보고 되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의 말로는 카다는 하루사메에 오기 전에 유명한 사기꾼이었다고 했다. 도둑질이면 도둑질, 도박이면 도박, 거기에 지금이야 단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랐으니 그럴 일이 많지 않겠지만 어릴 적에는 남자를 살살 꼬셔대는 것에는 당해낼 자가 없을 정도로 섹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지금도 섹시하게 생기긴 했잖아?" 


하고 말하고는 웃었다. 이 단장의 말로는 푸른빛을 겉도는 긴 머리카락이나 조금 특이한 뾰족한 모양의 귀(다른 남자들도 이 귀를 보고는 엘프 같다며 찬양했었다)라던가, 암갈색 눈동자는 때로는 아주 값싸게 보이다가도 또 어느 때에는 뿌리칠 수 없는 고급스러움을 가지지 않았냐면서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넌 어려서 아직 여자를 모르는 거야, 하고 말했다.


"아부토와는 친하잖아?"


하고 말하고는 부러움이 담긴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나에게 자신이 아부토보다 외모가 낫지 않냐는 둥, 그 새끼는 아직도 카다 앞에만 가면 말을 더듬는 얼간이라는 둥 욕을 해대며 이렇게 말했다.


"맞다, 그러고 보니 그 새끼 이상형이 자신이 감당 못할 정도로 버거운 여자라던데.. 카다 앞에서 병신 짓 하는 거 보면 그 새끼도 참 뱉은 말이랑 딱딱 맞는다니까" 

 

"아 그래?"


"딱 봐, 완전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까 절대로 아니라던데 너한테도 말 안 한 거야? 와 너무한다야, 너한테까지 비밀?"


"비밀이랄 거까지야, 내가 애초에 물어보질 않는데 뭐"


"에이. 재미없어. 이런 거 하나씩 터지는 게 참 재밌는데 말이야. 뭐하냐 넌, 가장 가까이 있는 새끼가 그런 거 하나 모르고."


하고 나에게 한참 구시렁대더니,


"하긴.. 그러면 뭐 하나, 카다 눈에 아부토 같은 녀석이 찰 리도 없지만.. 빨리 아부토 녀석 차이고 우울해하는 거 놀리고 싶은데.. 다음에 혹시 급속도로 우울해 보인다면 100퍼센트 차인 거니까 나한테도 말 좀 해줘"


하고는 일이나 하러 가야겠다면서 자리를 떴다.


저 녀석의 말을 들어보니 아부토가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저 녀석의 말대로 카다가 아부토를 좋아할 리도 없다. 실제로 아부토처럼 투박하고 나이에 비해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인상에 덜 깎은 수염, 부시시한 머리카락, 퀭한 눈, 까칠한 피부를 가진 데다가 말투조차 자상하지 않은 말투로 툭툭 내뱉는 저런 새끼를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 여자들의 눈이라면 전에 왔던 누나의 남자친구 정도는 되어야 아, 정말 멋있다 하고 반하겠지. 하지만 제 나름대로 배려해준다며 옆에 착 달라붙어 앉아선 혹여나 취할까 술잔을 반 잔씩 채워주는 그 꼴사나운 모습은 누가 봐도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런 모습의 아부토가 싫은 거야.


전에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던 아부토는 다음날엔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린 서로 잡다한 모든 것을 걸고넘어지고 세세하게 확인하려 드는 타입은 아닌지라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일을 할 때에 나와 아부토는 항상 함께 움직이곤 했는데, 이번에는 따로 움직이게 되었다. 보통은 내가 편하게 쉬어야 했을 텐데 이번엔 이상하게 아부토가 먼저 끝이 나고 나는 밤늦게까지 이 짜증나는 일을 처리해야 하는 일에 처해버렸다. 아부토는 나를 보곤 장난 식으로 놀려대면서 편하게 지금까지 잘 지냈으니까 하루 정돈 고생하라고 단장~ 하고는 웃었다. 아부토는 다른 대원들이 저질러서 커져버린 일들, 그러니까 시체 처리 같은 자잘한 일을 하러 간 것이고 나는 조직의 도망자를 잡고 처단하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이었으니 분명 내가 더 재미있는 일은 분명하지만, 그 도망친 새끼를 찾아서 혹여나 자살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살살 다뤄야 한다는 점은 꽤나 짜증 난다. 조직의 도망자는 죽이는 것은 금지. 반 병신으로 만들더라도 분명히 목숨이 붙어 있는 채로 데리고 와야 하는 것이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나라도 내가 품고 있던 사람이 나에게서 등을 돌렸을 적에는 순순하게 편히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상만큼은 나와 나의 조직이 잘 맞는 부분이었다.


도망치던 그 녀석은 검은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녀석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우리 팀엔 사람을 찾는 것만으로 가히 최고라고 할만한 몇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망친 그 녀석은 우리가 본인을 잡으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서 끈질기게 도망쳤다. 처음에는 본인이 아님을 강조하려 했는지 아무렇지 않은 척 미세하게 떨면서 조용히 있다가, 바로 뒤에 다가온 나를 보고는 쓰러져서는 바닥을 기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가 곧 꺼낸 총을 꺼내들고서 심각하게 떠는 손으로 나를 향해 겨누었는데 그렇게 심각하게 손을 떨어대며 쏘는 총에는 그 어떤 얼간이도 총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우리에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 녀석은 제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쏠 용기를 가다듬으며 심호흡을 하는 순간에 우리에게 붙잡혔다. 이번 녀석은 겁쟁이 녀석이라서 시시하게 끝나버려 조금 싱거웠지만 돌아가야 할 집의 방향에서 꽤 멀리 와버려서 돌아가는 길이 참 피곤하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는 길엔 일부러 사람을 잘 찾는, 나와도 꽤나 친분이 있는 한 명을 골라잡아서 같이 차에 타도 되냐고 물었다. 안경을 쓴 그 녀석은 흔쾌히 타세요 단장, 하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이 녀석은 참 신기하게도 사람을 잘 찾기에 조언 같은 것을 조금 구해볼 생각이었다.


차 시동이 걸리는 가벼운 소음과 함께 그는 운전대를 잡았다. 보통 다른 녀석들의 차는 커피향의 방향제, 혹은 싸구려 과일향의 방향제 냄새 등등이 코를 찔러오는데 이 녀석의 차는 별다른 냄새가 없었다. 게다가 장식이라던가, 작은 소품 따위도 없는 점이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우리 조직의 사람들 중에 얌전한 운전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그는 거칠면서도 꽤나 부드러운 운전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도.


"운전 엄청 잘하나 봐. 큰 소음도 없고"


"하하 사람을 찾으려면 조용한 운전은 기본이죠"


"하긴 그렇네"


"단장은 너무 요란해요. 집요하게 달라붙는 타입은 아니라서 스토킹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요"


"스토킹은 당하는 것도, 하는 것도 별로야. 차라리 직접 데려와서 내 옆에 두는 게 낫지"


"옆에 데려다 두는 것도 좋겠지만.. 스토킹도 은근히 재밌다고요. 상대가 모르는 상태에서 지켜보는 스릴이 얼마나 좋은데"


"변태 같아 너"


"단장도 마찬가진데요 뭐"


그 말에 그 녀석과 나는 서로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나는 물었다.


"신기해. 너 사람 찾는 거. 비법 같은 거라도 있는 거야?"


"하하, 와 진짜 신기하다"


"...?뭐가?"


나의 질문에 뜬금없이 그 녀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부단장이 아마 단장이 나에게 사람 찾는 것을 물어볼 것 같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는 그 말을 하고는 다시 작게 웃다가 말했다.


"그냥 말씀하세요 제가 찾아드릴게요"


"아부토가?"


"네. 요즘 사람을 찾는 거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누군진 모르겠지만 자신에게도 말을 안 하는 거 같다고.. 단장, 누구예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바로 찾아드릴게요"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진짜 그냥 궁금한 거였어"


"누굴까? 애인? 은 아니겠고.. 뭐 돈이라도 떼이셨어요? 말해봐요. 제가 특별히 서비스로 찾아드릴게요. 단장은 무서우니까. "


"무서우니까는 뭐야?"


"농담이에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나와 그 녀석은 가벼운 농담만을 주고받았다. 더 이상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화제가 돌아가서 인지 이 녀석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아부토는 언제부터 내가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기분 나빠.


계산보다 두어 시간을 빨리 도착했다. 이 녀석은 길에도 아주 밝아서 막히지 않는 지름길이나 골목길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와 아부토가 살고 있는 집 근처임에도 나로서는 생소한 길 투성이를 지나 집에서 내렸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집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처음으로 본 것은 아부토였다. 


제 그곳을 다 드러내놓은 채로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부토. 옆에 널브러져 있는 휴지 더미와 풍기는 찝찝한 정액 냄새와 함께.


"어..어..어어.. 와.. 왔....어....? 이.일찍 왔...."


아직 끝내지 못한 행위 때문에 아부토의 것은 아주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같이 살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까지 공유한 적은 없었기에 나도, 아부토도 완전히 당황했다.


"...."


할 말을 잃어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아부토는 허겁지겁 옷을 입으려 허둥대고 주위의 휴지 따위를 치우려 허둥대는 바람에 옷을 입지도 못하고 옆에 쓰레기를 치우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황한 아부토의 앞에 찬찬히 걸어가서는 물었다.


"누구 생각하면서 한거야? 많이도 했네"


"...그.. 그런거 아냐.."


"누구야? 누구 상상하면서 한거야?"


내 말에 아부토는 얼굴이 확 붉어지다가 말을 더듬으면서 그런 거 아니라며 말하고는 다시 옷을 입으려 했다. 앞에 주저앉아 있는 아부토의 손을 거칠게 밟고서 다시 말했다.


"계속해, 왜?"


아부토는 행동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부토는 나를 잘 알고 있으니 내가 하는 말이 진심인 줄도 잘 알 거다.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부토의 시선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 아부토와 눈을 맞추자 아부토는 나의 시선을 심하게 피했다. 아부토의 꼿꼿하게 선 그곳을 보니 암여우 년의 실실거리는 눈꼬리가 자꾸만 떠올라서 이상하게 화가 치밀었다.


"... 됐다, 난 잘래. 마저 끝내"


"저기.. 다.. 단장...!"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더듬는 저 꼴좀 봐. 그 당황하는 꼴도 너무 보고 싶지 않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홱 뒤돌아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워서 밖에 저 새끼가 어떤 행동을 할지 얌전히 귀를 기울였다. 아부토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는지 아무런 소리가 없다가 얼마 후엔 주변을 정리하는지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왜인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더럽다고 느껴서 아부토에게 그렇게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누군가와 하고 싶다'라는 감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내가 오키타 녀석을 상대로 수없이 상상했던 일인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머릿속에서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아부토도 그 암여우 년을 상대로 수없이 머릿속에 그 여자랑 이런 저런 야한 짓을 하는 상상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사실 적당히 놀리면서 끝내도 되는 문제를 내가 긁고 후벼 파버린것 같다. 아부토의 조금 당황한 눈빛이 자꾸 생각이 났다.



하얀 침대 시트는 내가 작은 움직임만 취해도 바스락 거린다. 사락사락해서 간지럽기까지 하다. 


이 침대를 처음 살 때 나는 굉장히 귀찮아했다. 침대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이딴 걸 사러 지금 이런 사람 많고 귀찮은 곳까지 나와야 하냐며 하루 종일 투덜거렸다. 잘 때만큼은 편하게 자야 한다면서 1인용 침대 두 개를 사자는 아부토의 말에 나는 2인용을 사자고 했다. 내 말에 아부토는 2인용..? 불편하지 않겠어? 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그렇게 하자면서 2인용을 주문했다. 조금 짙은 나무 색깔의 심플한 침대였다. 집에 설치를 마친 후에 나는 가운데에 털썩 누워서는 나 혼자 쓰겠다고 우겼다. 


"이 망할 새끼, 그러니까 내가 1인용으로 두 개 사자고 했잖아"


"그건 작잖아. 난 이렇게 큰 침대에서 혼자 자고 싶어. 넌 아래에서 자"


"하아... 넌 정말이지...."


아부토는 혼자 작게 투덜투덜 거리고는 침대 아래에 이불을 깔았다. 그 이상으로는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건 너무나 당연했다. 나의 억지스러운 고집이나 이상한 부탁도 아부토는 모두 다 군말 없이 들어주었다. 화를 내는 건 아부토 쪽이 많지만 진심으로 나에게 화를 낸 적은 없다. 항상 똑같이 이 망할 녀석이, 이 새끼가, 이 정도의 말을 한번 뱉고는 말없이 처리해주는 녀석이고 나는 이상한 억지를 계속 우기면서 당연한 듯이 아부토를 쳐다보면 된다.



오늘 아부토는 항상 와서 자던 내 침대의 아래로 돌아오지 않았다. 침대 아래엔 그 녀석이 아침에 빠져나간 흔적 그대로 이불과 베개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그 상태 그대로 껍질을 벗은 허물처럼 숨을 죽인 채 놓여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오늘의 밤은 너무나 길어서 도무지 지나갈 것 같지 않다.


아부토, 오늘 너는 어떤 꿈을 꾸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