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ing A

[카무오키] Jacob's ladder 19

burts : 버츠 2016. 8. 23. 23:5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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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 저....."


얼간이처럼 말을 더듬었다. 내 눈앞에 이 녀석은 나를 보더니 뜬금없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뭐해, 들어와 하고 말하고는 반쯤 열고 있던 물을 더 활짝 열었다. 나는 혹여나 문이 닫힐까 무서워 문을 붙잡고는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마지막에 비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건조한 공기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오키타는 보고 있던 중인 것으로 보이는 TV 음량을 높이고서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며 나에게 너도 마실래? 하고 물었다. 나는 어... 하고 또다시 병신같이 대답을 했다.


오키타는 맥주 한 캔을 내 앞에 놔주고서 소파에 앉아서는 맥주 한 캔을 따서 홀짝홀짝 마셨다. 분명히 내가 전에 봤던 사람이 이 녀석임은 틀림없었다. 나는 앉아서 맥주 캔 조차 뜯지 않은 채로 홀린 듯이 멍청하게 이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는 나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이 아무 말을 걸지 않고 한참 TV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원래도 좀 모자라긴 했지만 더 얼간이가 돼버린 거야?"


TV를 향하고 있던 적갈색 눈동자가 스르륵 나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진다.


"... 응?"


"왜 그렇게 쳐다봐?"


"아, 아니..."


"안 먹을 거면 다시 넣어놓던가"


"아냐, 마실 거야"


그제야 나는 캔맥주를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너무 급하게 마셔서인지 얼굴이 한 번에 확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자고 갈 거야?"


뜬금없이 왜 저런 걸 묻나 해서 시간을 보자 시곗바늘은 어느덧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오키타는 거실에 침구를 깔다가 나를 한번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난 지금 잘 건데"


사실 아무런 계획 없이 훌쩍 왔다가 이 녀석을 만나버렸고, 이 집에 들어와서 같이 이렇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곧바로 응! 자고 갈래! 하고 대답했다.

내 말에 그는 하나를 더 가지고 와서는 저가 자려고 생각한 곳 옆에 하나를 더 깔아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를 보더니 침대에서 잘 거면 그렇게 하던가, 하고 말했다. 나 역시 거실에서 잘 거라고 말하고는 베개를 꼭 껴안았다. 


불을 끄자 TV 화면만이 알록달록하게 방을 비추었다. 오키타는 TV소리를 줄이고서 깔아놓은 침구에 누웠다. 나도 옆에 깔아놓은 침구에 앉아서 끄지 않는 티비를 얼핏 보다가 물었다.


"끌까?"


"아니, 놔둬"


내가 들고 있던 리모콘을 내려놓자 갑자기 이 녀석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너 진짜 이상해졌구나? 왜 이렇게 고분고분 해졌어?"


"... 그런 거 아닌데"


"낯가리는 거야? 네가 이러니까 내가 다 어색하다"


그리고는 내가 웃겼는지 조용히 웃었다. 여전히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전에 이 녀석을 떠나던 당시에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떠났을까? 어떻게 잊었다고 감히 단정 지을 수 있었을까? 어둑어둑한 거실에는 소리 낮춘 TV의 알록달록한 불빛만이 형형색색으로 우리를 비추고 있다. 


"저... 오키타"


"왜"


"안 궁금해?"


"뭐가?"


"보통은 어떻게 지냈냐, 어딜 갔었냐 이런 거 물어보지 않아?"


"넌 궁금해?"


"응"


"이렇게 다시 본 거면 어쨌든 잘 지내고 있었던 거잖아?"


"뭐, 그건 그렇네"


"너는 경찰이 된 거야?"


"어쩌다 보니... 어떻게 알았어?"


"아, 저기에 옷 걸려있길래.. 근데, 너 공부 못하지 않았어?"


"새끼야 너보다 잘했거든?"


내 말에 약간 발끈했는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예전엔 더 발끈해서 화냈던 거 같은데. 이젠 좀 덜하네?"


"닥쳐. 넌 여전하네, 웃으면서 사람 승질 슬슬 긁는 거"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었다. 화면을 마주 보고 누워있는 그의 눈동자에 화면의 빛이 비춰서 노랑색 분홍색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으로 계속 바뀌며 느리게, 혹은 빠르게 빛을 바꾸는 홀로그램처럼 빛을 발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너무 예뻐서 이상하기까지 하고 심지어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해서 다시금 네가 내 눈에 있는 게 맞을까? 단순한 환각, 혹은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눈앞의 이 녀석의 뺨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만졌다. 손끝이 부드러웠다.


"뭐야"


오키타는 내 손을 어이없다는 듯이 툭 쳐냈다. 그래서 나도 순간 아차 하는 심정으로 쳐내진 손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 아니 그냥"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눈빛을 보고 나는 곧바로 이 녀석에게 등을 보이며 몸을 홱 돌렸다. 잠시의 정적 후에 그가 말했다.


"나 아침에 되게 못 일어나"


".. 알아"


아침에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그 모습이 뜬금없이 생각 날 때가 있었는데 어떻게 잊겠어?


"... 그니까 아침에 갈 거면 문 잘 닫고 가. 이불이랑 저 안쪽에 넣고"


그 말을 하고서는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뒤돌아보자 이 녀석도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는 누워 있었다. 머리카락이 살짝 덮고 있는 목덜미, 그리고 이어지는 어깨와 등을 보자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꼭 껴안고 싶었다. 그러나 아까 누워서 마주 보고 웃었던 것이 너무 좋아서, 혹여 이 녀석이 나의 이런 돌발행동에 잔뜩 경계 태세를 취하고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본다면 나 자신이 너무 싫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시도를 할 용기는 없었다.


조용히 천장을 봤다.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 녀석의 체취에 대한 기억이 내 살갗 안쪽에 깊숙이 남아 있었는지 희미하게 도는 이 향이 그립다 못해 평온했다. 드디어 내 자리에 다시 온 것 같다는 안정감 마저 들었다.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문득 시간이 궁금해져 핸드폰을 꺼내어 봤다. 아부토에게 전화가 3통, 그리고 문자가 몇 통 와있었다.


[편의점 간 거야? 그럼 나 음료수 좀 사다 줘]

[이 녀석아 어디 갔어]

[사고 친 거야? 평소엔 사고 쳐도 당당하게 연락도 잘하는 새끼가 왜 이번엔 잠수야?]

[?너 오늘 안 오는 거야? 엉?]

[새끼야 안 올 거면 말이라도 하라고]


그 문자가 마지막 문자였는데 시간을 보자 3분 전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답장을 했다.


[응 안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진동이 요란하게 울리며 전화가 왔다. 고요한 우리 틈의 진동이 너무 시끄럽게 들려서 바로 진동을 차단하고서 혹시나 오키타 녀석이 깨지는 않았을까 한번 돌아봤다. 그러나 쌔액쌔액 하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곤히 자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고 전화를 받아 들었다.


"응"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하게 받아?]


"시간이 늦었잖아"


[뭔 개소리, 늦은 거랑 뭔 상관이야? 너 어디야? 어딘데 이렇게 목소리를 작게 하고 받아?]


"할 말만 해. 잔소리는 그만하고"


[아니, 너 어디에서 뭘 하나 해서..]


"음.. 별일없어. 내가 내일 연락할게"


아부토는 무어라고 더 이야기를 하려 하는 듯했지만 나는 그대로 끊어버렸다.


아부토와의 전화를 끊고나자 갑자기 내가 전에 있었던 집에 지금 와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옆에 그렇게 찾아다니던 이 녀석이 다시 누워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이 녀석 옆에 누워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왜 이 녀석은 나를 보고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도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내가 저에게 했던 행동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알고 있다면 나를 이렇게 집에 들이지도, 이렇게 옆에서 재우지도 않았을 텐데. 기억하고 있었다면 내 얼굴을 보자마자 목을 조르려 달려들어도 모자랄 녀석이기도 하고.. 아니면 혹시 나의 방심하는 틈을 노리는 걸까 생각을 해봤지만... 옆에서 곤히 자는 이 녀석을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뭐, 이렇게 나를 방심시키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런 생각을 깊이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이 녀석이 옛날에 비해 비교적 따뜻하고, 생각보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녀석이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그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내 눈에 띄었을 뿐이다. 높이 떠 있는 푸른 달은 우리 둘의 얼굴 위에 하얀 빛을 비추며 우리를 내려다본다. 투명한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의 가벼운 마찰 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오늘의 달빛은 너무나 눈이 부셔서 내 눈을 멀게 만들고 방금 마셨던 맥주 한 모금은 내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어서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동굴의 미로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이 아득했다....












-

강하게 쏟아지는 오렌지빛 햇살 때문에 아침 일찍 잠에서 깨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버리고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카무이 녀석은 아직도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뭐.. 당연히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역시나 히지카타는 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켜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는, 부재중 전화 0통, 부재중 문자 0통, 00시 00분이라고 떠 있는 꽤나 열받는 화면을 마주 보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냥 던져두었다. 무단결근이라니... 지각은 밥 먹듯이 했지만 아무런 말없이 모습을 비추지 않은 적은 없었다. 뭐 히지카타와 같이 살고 있었으니 그런 일은 마음을 먹어도 가능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 처음으로 반항을 했다.


잠이 더 이상 오지는 않았지만 일어나기가 귀찮아서 누워 뒤척이고 있을 때, 그 녀석도 일어났는지 눈을 비비면서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시계를 보고 나를 한번 보더니 물었다. 


".. 안가?"


".. 응"


"와, 정말?"


"... 너는 안가?"


"응!"


하고 대답하더니 갑자기 나를 와락 껴안았다.


"뭐 하는 거야! 떨어져"


품 한가운데에 한가득 들어온 이 새끼 머리를 떨어트리려고 밀쳐내자 나를 안고 있던 손을 얌전히 놓고서는 웃으면서 말했다.


"여전히 나 싫어하나 보네?"


"뜬금없이 와락 안기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어? "


"왜? 난 네가 나한테 안겼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


"...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넌 예전이나 지금이나 또라이야"


"맞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잖아"


"그래.. 그래서 나 역시 한번 싫어한 건 쉽게 좋아하지 않아"


"나도 그래. 한 번 좋아한 건 다시 봐도 좋거든"


"... 개소리 좀 그만할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혼자 있었다면 시체처럼 하루 종일 누워서 시계와 꺼져 있는 핸드폰을 번갈아 쳐다보며 시곗바늘 소리만 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좋든 싫든 이 녀석이 있어서 이상한 말장난이라도 하면서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내가 히지카타를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 이 녀석이 여기에 찾아와 준 것이 우연이든 뭐든 나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떠날 거라고 생각했던 이 녀석은 뭘 좀 먹자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라면이나 먹을까? 하고 말하자 알았다고 말하고서 사러 갔다 오겠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저 새끼가 나가자마자 문득, 나 지금 저 새끼랑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은 그다지 사이가 좋은 사이도 아닌 데다가 내가 전에 행한 일 때문에 저 녀석도 나에게 그렇게 좋은 감정 따윈 하나도 없을 텐데... 잠시 후, 다녀왔다며 문을 열어달라는 그 녀석의 말에 문을 열어주면서, 아까는 이 녀석이 여기에 와준 게 그래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이 상황이 너무나 어색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 녀석은 뻔뻔하다고 느낄 정도로 자연스럽게, 마치 계속 우리 둘이 이곳에 있었던 것 마냥 들어오면서,


"비밀번호 알려줘. 불편하잖아"


하고 투덜거렸다. 설거지는 아무래도 귀찮아서 컵라면을 샀다면서 장 봐온 봉투를 내려놓는 그 녀석을 넋빠진 사람처럼 쳐다보다가 물었다.


"너... 안가?"


"어딜?"


"... 아니, 저기... 너 여기에 계속 있을 생각이야?"


내 말에 이 녀석이 되려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 아니, 나가라는 뜻이 아니라... 아니다, 우선...."


나는 이 녀석이 들고 온 컵라면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물을 끓였다. 끓은 물을 붓고서, 식탁에 앉아 라면이 익기를 가만히 기다리다가 물었다.


"너 어디에 누구랑 있어?"


"어젠 궁금하지 않다더니."


내 물음에 이 녀석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 지금 궁금해졌어. 대답 안 할 거야?"


"다 익은 거 같은데 너도 어서 먹어"


말 돌리는 건가?

컵라면 뚜껑을 열고 이 녀석을 수상하게 쳐다보다가 젓가락으로 라면을 뒤적거렸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배가 부를 정도로 맛있게 처먹었다. 


"나, 친구랑 같이 지내고 있어"


한참 얼굴을 컵라면 그릇에 박고서 한참 먹다가 그가 말했다.


"친구?"


"응"


"흠.. 그래? 난 또다시 돌아간 줄 알았어"


"어디로?"


고아원.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아냐, 헛 나왔어. 뭐하고 지내고 있는지 물어봐도 돼?"


"응. 근데 뭐 특별한 건 없어. 친구의 일을 도와주고 있어"


"친구의 일?"


"응"


"너 친구도 있었구나. 놀랍네. 근데 안 가도 괜찮아?"


"응 오늘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 너는?"


"아.. 나는...."


하고 우물쭈물거리자 그것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 없는지 별 신경 쓰지 않고 제 눈앞에 있는 라면을 마저 먹었다.


"이거, 네 핸드폰이지? 왜 꺼놨어?"


그는 내 핸드폰을 들고는 내가 무어라고 할 틈도 없이 전원 버튼을 꾸욱 눌렀다. 아, 하지 마! 하고 말하려 손을 뻗었지만 이미 핸드폰은 말간 빛을 발하며 화면을 드러냈다. 그 녀석이 볼 틈도 없이 빼앗아든 핸드폰 화면에는 정말로 부재중 전화 0통, 부재중 문자 0통 하고 고요하게 현재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연락 따윈 안 왔을 거야, 안 왔을 거야, 하고 생각했던 것은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나만의 자기 위로 법이었다. 그래도, 설마 연락 한 통이 없겠어? 당연히 히지카타 그 새끼가 난리를 쳤겠지, 하고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고 있었나 보다. 어이없음과 동시에 화가 나서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왜?"


내 행동에 놀랐는지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 나한테 일일이 신경 쓰지 말고 먹던 거나 마저 처먹어"


하고 말하는 찰나, 핸드폰의 문자 도착음이 울렸다. 허겁지겁 내려놓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 확인해보자,


[ㅇㅇ마트에서 현재 00일까지 20% 대박 세일! 놓치지 마세요!]


아, 씨발


두 젓가락 정도 집어먹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나는 급속하게 히지카타에게 모든 신경을 빼앗겼다. 지금이 12시 반, 12시 반이면 다들 모여서 식당에서 식사를 할 시간이다. 식당 밥이 맛이 없으면 나가서 다른 걸 사 먹자고 대원들이 이야기하고 있을 거고....  아니 근데, 히지카타도 히지카타지만 1번대 이 새끼들도 어느 한 명 연락하는 새끼가 없어? 아니.. 아니지 이 녀석들 입장에선 더 좋으려나..


젓가락만 쪽쪽 빨고 있자 이 녀석이 나를 보더니 물었다.


"왜 안 먹어?"


"다 먹었어"


"아예 그대로인데?"


"먹기 싫어"


"그럼 나 먹어도 돼?"


"그러든가"


내 말에 이 녀석은 내가 먹다만 컵라면을 가져가서 다시 맛있게 먹어댔다. 나는 지금쯤 히지카타와 다른 둔영의 새끼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했다. 답이 나오지 않는 나 혼자만의 공상을 하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한숨을 푹 쉬고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 나를 옆에서 한참 말없이 쳐다보던 카무이는 뜬금없이 막대사탕을 하나 내밀었다.


"뭐야?"


"나 먹으려고 샀는데 특별히 너 줄게"


".... 놀리는 거야?"


"아냐, 기분이 계속 안 좋아 보여서"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왜 이렇게 착한 척이야? 나는 한참 이 녀석을 노려보다가 막대사탕을 낚아채서는 비닐을 거칠게 잡아 뜯고서 입에 넣었다.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단 맛의 바닐라 맛 사탕이었다.


그렇게 둔영이 끝날 시간이 됐다. 연락을 해온다면 지금 쯤이면 할 때도 됐는데.. 아니 설마 아예 날 잊은 거야? 다른 번대 누구라도 말없이 결석을 한다면 바로바로 알아채고 찾아 나서는 새끼가 어떻게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둘 수가 있어? 너 진짜 미친 거냐?


결국 어떻게 그날 하루가 지났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나는 늘 내가 출근하는 시간(보통 9시 출근이지만 나는 항상 10시 반 정도 출근을 했다.) 에 맞추어 나가기 위해 샤워를 했다. 준비를 하는 나를 보고 카무이는 뭐야, 휴가는 벌써 끝인 거야? 하고 물었다.


"뭐, 사실 휴가가 아니었거든."


"흠.. 그럼 가기 전에 집 비밀번호 알려줘"


"0505. 근데, 나 진짜 별생각 없이 물어보는 건데. 다시 이 집에 살기 위해서 온 거야?"


"음.... 실은 아무 생각 없이 왔어. 그리고 당연히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네가 있잖아. 그래서 살고 싶어졌어"


"아, 그래? 좋을 대로 해"


"너도 다시 오는 거지?"


"음, 아마? 여튼 난 간다"


나는 옷을 급하게 입고 서둘러 밖을 나섰다. 저 녀석이 여기에 있든지 말든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사실 내가 다시 여기로 와야겠다 라던가 아니면 오지 않아야겠다 라든가.. 뭐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가면서 끊임없이, 히지카타는 나를 마주 보고 도대체 뭐라고 할까, 나는 무어라고 해야 할까에 대해서만 한참 고민했다. 


둔영에 도착하자마자 운 없게도 히지카타를 바로 만나버렸다. 멈칫 한 나와 다르게 히지카타는 나를 보곤 웃으면서, 땡땡이는 재밌었냐? 하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니까 네가 없더라, 다들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고. 그 말을 듣는데 왠지 다음날 네가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머리 식히러 어디라도 간 것 같다고 일부러 1번대에게도 내일 네가 오지 않아도 연락은 하지 말아두라고 했거든."


"아.."


화가 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나는 히지카타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녀석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 풀려버렸다. 게다가 조금은 나를 생각해주고 이해해주는 듯한 이 모습에 바보같이 화가 전부다 풀렸다. 


"쉬고 싶을 때 자꾸 연락하면 짜증 나잖아. 너 특히 내 잔소리 듣는 거 죽기보다 싫어하고"


"... 그럼 문자라도 보내지.."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히지카타는 못 들었는지 되물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는 먼저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방금 전까지 초조하고 불안했던 일 따윈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안정을 찾았다. 


히지카타는 나를 불러서는 순찰을 같이 가자고 말했고, 웬일인지 순찰 도중에 간식거리라도 사주고 먼저 쉬었다 가자고 말도 하고.. 시답지 않은 농담도 건넸다. 평소의 나였다면 괜한 신경질을 낼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오늘은 나도 웃으면서 다 받아주었다. 일단 나는 이 녀석의 옆이 무엇보다 익숙하고 즐거웠다. 그래서 이 녀석이 결혼을 했고, 그래서 혹시 다른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여자를 절대로 사랑하진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거 봐.. 내 옆에서 이렇게 자상하고 친절하잖아.



히지카타는 곧바로 집에 가진 않았다.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늦게까지 서류에 쌓여서 야근을 했다. 히지카타는 할 일이 없는데도 집무실에서 얼쩡거리는 나를 보곤 들어가서 쉬어, 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까지는 같이 살던 때와 마찬가지로 다름이 없었다. 그 안정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항상 이럴 때에 무언가가 나에게 현실을 보라는 듯 경고를 준다. 그 신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핸드폰 벨 소리였다. 


히지카타의 핸드폰이 울렸다. 히지카타는 전화를 확인하더니 밖으로 나가서는 전화를 받았다. 보통 다른 전화라면 스스럼없이 내 앞에서 받았을 녀석이기에 쿠리코가 전화를 걸었다는 것쯤은 바로 알았다. 그래서 문 앞에서 통화를 하는 것을 다가가 몰래 엿들었다.


"미안, 일이 많아서 조금 늦을 것 같아. 항상 이렇지 뭐. 내일은 조금 일찍 들어가도록 노력해볼게. 먼저 자. 그래. 나도 사랑해"


사랑해? 결혼을 하더니 거짓말에도 능숙해졌구나 너. 


전화를 끊고 나온 히지카타는 아직도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이만 들어가서 쉬라고 다시 말했다. 합숙소로 들어가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합숙소에 가더라도 히지카타는 옆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이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기 전에 내가 먼저 등을 돌려서 가야만 한다.


"나... 나 오늘은 친구네 집에..."


분명 친구? 네가 친구도 있어? 친구 누구? 뭐 하는 녀석인데? 그리고 너 합숙하기로 했는데 왜 자꾸 외박이야? 하고 물고 늘어져야 할 히지카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래. 알았어. 내일은 일찍와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변명할 거리가 없어져서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히지카타를 두고 뒤돌아 나오면서 숨통에 커다란 돌이 들어선 것처럼 답답했다... 왜일까.. 

그 답답하고 이상한 감각이 너무 싫어서 집에 가는 길에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는 길에 오랜만에 외롭다,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