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Jacob's ladder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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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의 아부토는 본의 아니게 약간의 거리를 둔 나를 조금씩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전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카구라와의 만남 후 만난 아부토의 표정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기에 그 표정을 보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아부토는 나에게 누구를 만났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되려 물었다. 찾았다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부토는 작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아까 긴급회의가 있어서 모였었어. 회의 내용은 조금 있다가 알려줄게. 별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평소에도 잘 알아서 하던 일이었으니 그리 걱정은 하지 않는다. 등을 돌리자 잠깐 머뭇거리고 있었던 아부토가 급하게 말했다.
"..... 요즘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도대체 어디서 뭘 하면서 돌아다니는 거야"
말투만 들어도 안다. 아부토는 지금 뱉은 그 말을 꺼낼지 말지 한참이나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오키타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경찰이라고 하면 분명히 난리를 치며 소란을 떨 것이고, 카구라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알아도 좋을 일이었으면 내가 알아서 말했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말에 아부토는 그렇지.. 하고 작은 대답 후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회의 내용 알려준다며, 말해봐"
하루사메 안의 내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커다란 소파에 털썰 앉아서 물었다. 아부토는 계속 무슨 생각이라도 하는 듯이 조금 멍한 상태로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경찰 쪽의 소란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응. 들었어."
"형식상의 교류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들이나 경찰들이나 서로 굉장히 껄끄러운 존재들이지. 이번 기회에 조금 더 힘을 빼앗자는 의견이 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우리가 관계에서 확실히 큰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가장 유력한 그들의 위기 타파 방법은 대가리 두 명 중 한 명이 사퇴하는 것일 거야. 현재 돌아가는 상황으로는 곤도 이사오의 사퇴가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어."
"흠.. 그렇구나"
"이번에 곤도 이사오의 사퇴가 결정된다면 우리 쪽에서 경찰 쪽에게 더 이상의 교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로 했어. 아무래도 혼란스러운 상태에 우리까지 그렇게 나온다면 상당히 당황할 거야. 그러면서 우리에게 협상을 제안할 거라는 거지. 그럼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허용 범위를 넓히자는 거야"
"좋네"
"... 회의 내용은 요약은 여기까지야. 혹시 더 궁금한 거 있어?"
"... 아니 없어..... 아, 잠깐.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와 교류하는 경찰 집단은 어떻게 되는 거야?"
오키타의 걱정하는 얼굴이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숨을 쉬던 모습이 자꾸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음... 곤도 이사오의 아래에 있는 히지카타라는 부국장이 꽤 활동력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해체를 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힘을 잃으니 모든 행동에 제안이 많겠지?"
"...."
"경찰의 생각보다는 이제 우리 사단에 대한 걱정이나 하시지? 경찰의 직위가 낮아지면 이제 사단들끼리의 영역 다툼이 시작될 텐데 말이야"
아부토는 그 말 한마디를 하고는 문을 닫고서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사단들끼리의 싸움이라니. 나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부토가 짓는 그 씁쓸한 웃음에도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부토가 말한 것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다음 날 회의에서였다. 3사단 단장인 카다는 7사단 단장인 나를 지목하며 단장의 역할을 모두 부단장인 아부토가 하고 있다며 나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나에게서 아부토를 떨어트려 놓을 것을 건의했다고 했다. 단장의 역할을 아부토가 하고 있는 것은 아부토가 능력이 좋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나에게는 그 역할을 미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그녀의 의견이었다. 그 말에 다른 사단의 단장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농담 식의 어조로, 3번대 단장님은 어째서 아부토에게 관심이 그렇게 많으신가? 하고 키득키득 거릴 뿐이었다.
"떨어트려 놓는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정확히 말했으면 좋겠어. 게다가 그런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아부토 본인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다른 사단의 단장이 다른 사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조금 오지랖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오지랖?"
"쓸데없는 참견이잖아"
카다는 내 말에 열받은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주위의 단장들을 한번 둘러 본 뒤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이 말했다.
"쓸데없는 참견? 그럼 공식으로 요청하지. 7사단 부단장 아부토와 3사단 부단장의 위치를 바꾸어 줄 것을 요청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쪽이야말로 이제부턴 쓸데없는 참견이야. 나의 요구에 대답할 사람은 본인이잖아?"
단원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많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 일 잘하는 단원들이 있다면 한 번씩 다른 사단의 단장이나 부단장이 스카웃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절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본인이다. 제안을 받은 순간부터 설득은 허용되지만 압박을 할 경우는 규칙 위반으로 조직 안의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기한은 일주일이었다. 물론 아부토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카다의 어이없는 요청에 피식하고 웃기만 했다. 카다는 왜인지 아주 당당하게, 그럼 일주일 후에 봐. 꼬맹이. 하고는 부채로 얼굴 반절을 가린 채로 괴상한 눈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다른 사단의 단장들은 다들 나에게 와서는, 봐. 카무이! 카다가 아부토를 좋아하고 있다니까? 저거 완전 고백 아니야? 아부토 흔들리는 거 같은데? 사실 아부토 같은 타입이 부려먹기도 좋고 여러 가지로 활용도가 높잖아. 역시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간다니까? 키득거리는 그들의 사이에서 조금 기분이 좋지 않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부토를 찾으려 복도를 돌아다니던 도중 카다와 아부토의 대화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 고민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고민? 왜 고민을 해? 우리 사단 부단장은 7사단에 가보고 싶다고 하던데.. 너만 좋다고 하면 되는 건데.."
"아니 저도..."
"혹시.... 다른 문제가 있어?"
"아뇨 그런 게 아니라..."
"흠... 나는.. 꼬맹이랑 달리.. 재밌게 놀아줄 수도 있는데..."
"저.. 그럼 이만.."
카다는 자리를 뜨려는 아부토의 멱살을 겁 없이 잡아당겨서 제 얼굴 앞에 서게 하고는 다시 말했다.
"내 말이 안 끝났잖아. 어딜 가?"
"..... 아.."
"밤에 뭐 해? 내 방에서 한잔하자. 기다릴게?"
카다는 그제야 아부토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반대 방향으로 코웃음을 치며 사라졌다. 아부토는 살짝 붉어진 얼굴을 하고서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오다가 의도치 않게 숨어서 대화를 엿듣고 있던 나를 마주쳤다. 차갑게 쳐다보는 나를 보고서 아부토는 고개를 푹 숙일 뿐이다. 나는 아부토의 얼굴을 보자마자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고민을 왜 하지? 왜 단칼에 가지 않겠다고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고민? 고민하고 있다고?"
"....아니, 뭐.."
"가고 싶으면 가"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커다란 덩치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고 지나가면서도 화가 주체되지 않아서 씩씩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가서, 책상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던져버렸다. 그러다가도 문득, 내가 왜 화가 났지? 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게... 나 왜 이렇게 화가 났어? 한참 후, 내 방에 들어온 아부토는 온통 난리를 쳐놓은 내 공간을 보고서 한숨을 쉬며 던져서 부서진 물건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탁 소리 나게 물건들을 커다란 책상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야 단장,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뭘"
"넌 정말 이기적이다"
.....
아부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를 따라 들어와서 내가 난리 쳐놓은 물건을 주워들고 치워주면서, 고민 같은 거 안 해. 3사단 단장이고 하니까.. 예의상 그렇게 말을 한 거지. 다음에 정중하게 거절하려고 그랬어. 미안해.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아부토의 정석이 아니었던가?
"너무 피곤해.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너의 옆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뭐?"
"왜 인지는 너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해"
"....."
"오늘 집에 안 들어갈 거야. 뭐 너도 안 오겠지만"
그 말을 하고서 문을 닫고 사라지는 아부토를 보면서 왜 아부토가 나를 떠나고 싶어 하는지, 어째서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하는지 잠시 생각했다. 아, 내가 너무 부려먹었나?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대로 나간 아부토를 뒤쫓아서는 어깨를 잡아채고서 말했다.
"그 말투. 지금 뭐야?"
"왜. 내가 해서는 안되는 말이라도 했어? 이 정도의 말도 못해?"
무어라 변명하려는 나의 말을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나를 제치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처음이었다.
그날 나는 아부토와 사는 집으로 갔다. 아부토가 집에 오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흘인가? 꽤 오래 비운 집안에서는 아부토의 냄새가 났다. 예전에 혼자 살던 때의 아부토는 정돈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이 집안을 엉망으로 썼었는데, 지금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꽤나 의식하고 있어서인지 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내가 혼자 쓰는 침대는 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아부토가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단정하게 깔아놓은 이불이며 베개가 깔끔한 반면, 아래에 깔아놓은 아부토의 침구는 오늘 막 나간 그대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늦게라도 올 거라고 믿은 모양이다. 아부토는 항상 이렇게 나를 기다렸을까? 그렇다면 더더욱 나에게 그런 말은 농담으로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오키타는 문자로 오늘 늦냐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 문자에 오늘은 일이 늦게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물어봐 주는 것은 정말 좋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부토가 어째서 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계는 1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내가 알기로 오늘 이 늦은 시간까지 처리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있다면 낮에라도 말해주었을 것이다.
핸드폰을 들어서 전화를 했다. 긴 수화음이 지루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내 뚝 하고 강제로 끊는 신호가 들리었다. 그와 동시에, 낮에 카다가 아부토에게 오늘 저녁에 함께 술을 마시자며 제안한 일이 떠올랐다. 정말 그곳에 간 걸까? 술을 마시고 있을까? 왜 갔을까? 정말 3사단에 가려고 하는 걸까? 왜?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서 아부토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수백 번도 넘게 울린다. 아부토는 마지막 신호음이 울릴 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는 그 여자가, 그러니까 그.. 미친 여자가 전화를 받아들고는 나에게, 그만 전화해. 지금 중요한 이야기하는 중이야. 안 받으면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야지 않아? 꼬맹이라서 눈치도 없어?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미친 여자를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버려야겠다.
씩씩대며 신발을 신지도 않고서 문고리를 탁하고 잡는 순간, 신발장 틈에 보이는 아부토의 비밀 서랍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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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끝나서 들어오지 못하겠다고 답을 해왔던 카무이는 해도 뜨지 않은 파란 새벽에 찬 바람과 함께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무엇이 기쁜지는 몰라도 자는 내 옆에 바짝 다가와서는 나를 꼬옥 끌어안고서 본인도 잠이 들었다.
히지카타와 곤도씨는 정말로 둘 다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둘 다 마츠다이라 선생님께 가서 입장을 밝혔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의 사위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나온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는지 우선 둘에게 잠시만 추이를 지켜보자며 시간을 끌었다. 히지카타를 따로 불러서 설득을 하고 쿠리코도 히지카타에게 설득하려 했지만, 히지카타의 말이면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난다고 해도 믿을 그 여자는 금세 히지카타의 논리에(사실 논리가 아니라 그냥 그 잘난 얼굴에 설득당했는지도 모른다) 설득당해서는 뜻대로 하세요, 저는 히지카타씨의 말이면 다 믿을게요~ 하고는 설득을 포기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했다. 그저... 자면서 꿈에 나온 히지카타에게 원 없이 욕만 퍼부어댔다.
아침에 카무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오키타! 선물이 있어! 하고는 급하게 말했다.
"... 웬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선물?"
"진짜야 이거 엄청난 거야. 너, 분명히 엄청나게 좋아할 거야"
"... 너무 그렇게 말하니까 수상하잖아. 뭔데"
"하루사메라고 알아?"
"하루사메?"
분명히 알고 있다. 그곳은 우리가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는 커다란 범죄 조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조직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거대한 범죄조직을 모르는 사람도 있어?"
"거기에 단장 중 1명을 잡을 수 있는 증거와 방법을 가지고 왔어. 자 이거 봐"
카무이는 잘 정리되어 있는 파일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안을 펼치자 3사단 단장인 카다의 사진과 더불어 그간의 두리뭉실한 정황 때문에 찾지 못했던 사건의 정리 파일, 그리고 찾아도 나오지 않던 그녀 신분을 입증할 지문이라던가, 과거에 사기를 치던 이름 등등이 모두 나와 있었다.
"어때?"
카무이는 그 파일을 지켜보며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나를 보며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아.. 좋은데.. 너무.. 좋은데.... 우선 이건 정말로 고마워 찾아서 잡아넣을 때 좋은 증거가 될 거 같아. 꼭 참고할게..."
"어디서 찾을지도 고민하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요시와라에 있어"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하지만 번번이 잡을 수 없었고..."
"그 여자가 쓰는 비밀 통로가 있어. 내가 도와줄게. 내가 지표를 찍어줄 테니. 내일 새벽 5시에 그곳으로 나와. 혼자 와"
카무이는 나에게 거침없이 이야기를 하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자신감.. 이 너무 넘쳐서인지 조금 섬뜩하기까지 했다.
"네가 너무 적극적이라서 불안해"
"뭐야? 도와준다는데"
"믿어도 되는 거야 너?"
"왜 의심하는 건데?"
카무이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겠지만 이 녀석의 하얀 피부를 볼 때마다 어릴 적 내가 행했던 범죄 때문에 같이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그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 새끼에게 조금은 고분고분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음.. 아니야 갈게"
"성공하면 나에게 뭘 해줄 거야?"
"응? 아... 뭘 해줬으면 하는데?"
내 말에 카무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같이 놀이공원에 가줘"
뭐야 싱겁게.
"그래"
4시 3분이다. 아침잠이 아무리 많은 나라지만 카무이의 이상한 제안이 현재 나에게는 커다란 희망 고문이 되었다. 실망하면 너무 화가 날 것 같아서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하고 속으로 다짐을 해도 꼭 잡았으면 좋겠다... 하고 나도 모르게 기대하게 되는 것이었다. 혹시.. 전에 내가 했던 것처럼 함정을 파놓고 나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면 어쩌지? 되려 3사단 단장에게 날 팔아넘기면 어쩌지? 아니면.. 나와 이 새끼가 그 3사단 단장을 잡으려 덤볐지만 이 여자의 많은 부하들이 근처에 있었으면 어쩌지? 그래서 되려 우리가 잡히면 어쩌지? 내가 만약 이 시점에 이대로 잡혀버린다면 정말로 우리 조직의 무능함을 만천하에 재 입증하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나답지 않았다. 평소라면 무모할 정도로 생각 없이 행동하는 내가 이렇게 많은 생각이라니.
수많은 생각과 함께 찾아간 으슥한 장소는 정말 복잡하고 정말 이곳이 맞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곳이었다. 골목골목을 지나고 카무이가 알려 주었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던 비밀문을 지나자 조금 황폐한 공터 같은 곳이 나왔다. 그곳에서 카무이는 피투성이가 된 그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조금은 놀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 뭐... 뭐야? 네가 잡은 거야?"
"그럴 리가! 친구가 도와줬어!"
카무이는 나를 보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활짝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은 언제 봐도 별로 유쾌해 보이지 않는다. 얼굴에 튄 피라던가, 머리채를 잡고 있는 손과 신발에 묻은 혈흔..
".... 친구는 어디에 있는데?"
"집에 갔어. 그런 게 중요해? 자. 데려가. 얼른 전화해. 잡았다고"
"어? 아.. 어어... 그래"
"죽었을까 봐 걱정하는 거면 그럴 필요 없어. 죽진 않았으니까"
3사단의 단장을 이렇게 쉽게 잡아버리다니.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서 나는 너무 좋아서인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피를 뒤집어쓴 이 녀석에게 느끼는 희미한 공포 때문인지 손을 덜덜 떨면서 핸드폰을 들어서 1번대 몇 명을 불렀다.
"잡아넣을 증거는 내가 어제 준 파일을 주면 되는 거 알고 있지?"
"... 응 아는데...."
"그럼 난 갈게! 저녁에 집에서 봐!"
카무이는 웃으면서 내 입술에 가볍게 쪽 하고 입을 맞춘 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말로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우선 현실을 바로 보자면 히지카타도 곤도씨도 이것으로 조직을 나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카무이가 떠나고 난 뒤 도착한 대원들은 내 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3사단 단장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하며, 대장.. 대장이 혼자 잡으신 겁니까? 하고는 입을 떡 벌리며 놀라워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렇다고 했다.
잡아서 조사한 결과 이 여자는 머리를 세게 맞아서인지 거의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드문드문 말을 하기도 했는데 미쳐버렸는지 자꾸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그래서 이 조직에 대한 다른 정보도 캐고 싶었지만 그것까지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소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히지카타는 전 날도 새벽까지 일을 하고 들어갔으면서, 대원들에게 이 사건의 보고를 받고서 한 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는 조사 중이라서 묶여있는 3사단 단장의 얼굴을 보고 그 옆에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보고는 내 얼굴을 덥석 잡으며 괜찮아? 하고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다친 곳은 없어?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혼자 한 거야..."
"뭐래.. 나 그래도 일단 1번대 대장인데..."
그러게. 나 1번대 대장까지 하면서 아무것도 한 일 없이 거물 급을 잡아버렸네.
히지카타는 한참이나 나를 놓아주지 않고서 놀라움과 걱정을 나에게 다 쏟아내며 나를 한참 품에 안았다. 카무이의 돌발적인 행동의 의미를 찾으려 한참이나 고민하느라 불안했던 나를 괜찮다, 괜찮다 하고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쿠리코는.. 정말 부러운 여자였다.
매스컴에서 나는 완전히 주인공이 되었다.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 하루사메의 3사단 단장을 잡아넣었다! 그동안 우리들을 비판하던 모든 여론들은 바로 사그라 들었다. 방송사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저희들의 무능함에 대해서 많이들 이야기하셨는지도 모르겠지만.. 결코 저희는 하루도 마음 편히 쉰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 악질 범죄자를 잡게 된 것은 국장님과 부국장님의 조언과 분석을 비롯해 모두의 노력의 결실입니다. 이 범죄자를 조사하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저희에 대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주셨으면. 이상입니다"
이렇게 건방지게 인터뷰를 해도 돌아오는 비난의 화살은 없었다. 오히려 패기가 있다는 둥,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말을 하겠냐 비판은 하되 비난은 삼가자 등등 긍정적인 반응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평소 나의 언행에 대해서 항상 주의를 주던 히지카타, 곤도씨, 마츠다이라 선생님도 오늘은 웃으면서 수고했다면서 나를 칭찬해주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니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했지만 우선 우리 조직을 위기에서 한번 꺼냈다는 것으로 약간의 뿌듯함을 조금 느끼며, 카무이가 함께 놀이공원에 가자고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으나 가면 이번엔 꼭 나 답지 않게 조금은 상냥하게 대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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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주시는 댓글을 보고 그만쓰려다가도 아.. 빨리 완결을 내자!
하고 다시 열심히 썼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