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Jacob's ladder 25
*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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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밝은 성격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정말 밝은 성격인가? 카구라는 조금 특이하다. 나와 좋은 사이도 아니고 나쁜 사이도 아닌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왜인지 모르게 느껴지는 괴리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곤도씨의 요청으로 해결사 사무실에 간 나는 밥을 입안에 잔뜩 욱여넣고 있던 카구라를 한참 쳐다보다가 물었다.
"전에 요시와라에 갔었잖아"
"응? 응응"
"그때 찾고 있던 사람, 찾았어?"
내 말에 카구라를 밥을 먹던 손을 탁 놓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음.."
"내 질문이 고민을 하게 만드는 그런 질문인 건가?"
"너한텐 말하기 싫어서 그런 거 다 해!"
"... 아"
"흥!"
카구라는 내 말에 고개를 홱 돌려서는 다시 먹던 밥을 우적우적 먹었다. 원래 이렇게 티격태격 대는 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 행동이 크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전에 요시와라에 갔을 때 카구라가 소리 없이 눈을 움직이는 모습은 지금의 이런 장난기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에 조금 이상하게 느껴서 물은 것뿐이었다.
놀이공원에 다녀온 이후로 나는 카무이에게 전보다 더 큰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친밀감이라기보다는 약간의 동질감이라고 표현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내 옆에 한 명 더 있구나'하고 나도 모르게 안심해버리는 그런 동질감. 그래서 싫다고 싫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생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카무이도 전보다 더 친밀한 스킨십을 시도해왔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당장 멈출 수는 없었다. 수많은 생각보다는 따뜻한 체온이 좋았다는 것 밖에는 이유를 댈 수가 없다. 뒤에서 나를 안을 때, 내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 올 때, 내 옷 속으로 간지럽게 손가락을 집어넣을 때.. 그때 조그만 거부 의사를 표하는 나의 생각마저 정지할 정도로 기분 좋게 따뜻했기 때문이다. 뭐... 그런 이유와 더불어 나를 잘 도와줄... 아니 돕는다기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카무이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카무이는 내 전화를 받자마자 한참을 웃으면서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지만.
해결사에서의 일을 끝내고 나서 돌아오자 히지카타가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저 새끼의 얼굴을 보자마자 귀에서 히지카타와 쿠리코의 끈적한 신음소리가 귀에서 웅웅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저 자리에서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네가 어떻게 뒤에서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었을까? 그런 이상한 사실이 나에게는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보고 있던 서류에서 눈을 떼고는 나를 보고서 물었다.
"누군가 했더니, 너였구나. 자리에 없어서 어디 갔나 했어, 해결사에 다녀왔다며?"
"응.. 뭐.."
눈을 마주치기가 껄끄러워서 괜히 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발로 굴려대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1번대에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 어떤 사람이야?"
"... 전에 하루사메의 그 여자를 잡을 때 도움을 받았던 사람. 뭐.. 실력도 좋고.."
"믿을 만한 사람이야?"
"내가 봤을 때는. 근데 네 눈엔 어떨지 모르겠네"
"... 의외네"
"뭐가 의외인데?"
그제야 바닥에서 눈을 떼고 히지카타를 바라보았다. 히지카타는 뭔가 서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 표정이 나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네 입에서 '내가 봤을 때는 믿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조금 신기해서. 꽤 친한 사람인가 보다"
"아냐, 친한 거 아니야"
"친하지도 않은 사인데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하네"
히지카타는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모르는 나의 인간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는 줄 곳 내 인간관계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밖엔 없다는 것에 자신하고 있었는데..
"...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제 너도 많이 컸구나 싶어서.. 전엔 네 옆에 내가 없으면 네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고민이 정말 많았거든.. 다행이야"
"...."
"결혼을 하고도 줄 곳 너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계속했어."
"..."
"정말 다행이다"
히지카타의 안심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로 히지카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 나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했으면서도 결혼을 한 거구나 너"
나는 히지카타의 결혼에 당연하게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는 지금도 히지카타의 결혼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뒤에서 음란물에나 나올 법한 그런 행위를 하고 있는, 남들과는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저 개새끼는 지금 나를 위하는 척, 착한 척, 세상에서 혼자만이 가장 깔끔하고 깨끗한 척을 하고 있다는 것에 구역질이 나올 것처럼 더럽게만 느껴진다. 내 말에 히지카타는 잠시 자신이 무언가 실수했나? 하는 의문을 담은 표정과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나를 위하는 척을 하고 싶은 거야 지금."
"... 그런 게 아니라.."
"게다가,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고민을 했다니.. 진짜 재수 없다 너. 네가 나에게 뭐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착각 그만해. 너 같은 거 없어도 나는 똑같이 이렇게 살았을 거고, 오히려..."
"...."
나를 바라보는 히지카타의 표정이 그저 괜히 너무 재수가 없고, 어떻게 하면 더더욱 저 새끼를 열받게 하는 말을 뱉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토하듯이 말을 던졌다.
"네가..! 네가 내 옆에 없었으면 이렇게 계속 우리 누나가 생각나는 일도 없었을 거야"
히지카타는 내 마지막 말에 놀란 듯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소고.. 너......"
"그런데, 계속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나잖아, 그 여자랑 같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나는...."
"......"
"나는.. 너.. 새끼 때문에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누나가 계속 생각나는데.."
히지카타는 나에게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푹 내쉰다. 나는 히지카타가 나에게 더더욱 미안해 하길 바란다.
"... 네 말을 들어보니 내가 이기적이구나.. 미안하다..."
"손 치워. 봐, 지금도 그렇잖아. 미안한 척하고 있잖아"
"네가 나 없다고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을 한 것은 실수야... 그런 의미는 아니고.."
"...."
"..... 나를 볼 때마다 네 누나가 생각난다고 해서 나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지?"
진심이야.
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대답을 할 타이밍도 잡지 못했고, 되려 히지카타의 말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래.."
"...."
"네가 수많은 욕을 해도 상관없지만 욕 하나 없는 이런 말들은 진심 같아서 무서워."
"...."
"이런 말은.. 하지마.."
히지카타는 나에게 정말로 미안한 듯이 말했다. 나는 어째서 히지카타의 이런 말에 자꾸만 약해지는가?
"그리고 하나 변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말을 하나 더 하자면, 나 편하자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를 지금까지 생각하고 챙겨온 것은 아니야. 나는 진심으로 너를..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건 내 의무라고 생각해. 진심이야."
"...."
"그리고.. 나도 너랑 똑같아. 나도 널 보면 미츠바가 생각나."
히지카타는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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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생각했다. 자존심 때문에 히지카타에게 나를 보면 누나가 생각난다는 뜻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다그치듯 묻고 싶지만, 이미 끝난 상황의 그 말을 이제 와서 다시 꺼내기도 우습고, 혹시나 내가 뱉은 그 말의 의도와 같은 뜻일까 봐.. 나는 그게 미치도록 무섭다. 그렇다. 히지카타와 나의 관계는 처음부터 누나라는 중심으로 이어져온 관계였을 뿐, 다른 것은 없다. 어정쩡한 관계가 이상하게 너무 깊어져왔고, 너무 길어져버린 것이다. 이런 우리의 관계가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나는 히지카타가 어느 드라마나 소설 속에 나오는 어느 남자 주인공처럼, 죽은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 평생을 혼자 살기를 바라고 있었나?
.. 그렇다. 바라고 있다. 평생 혼자, 아니.. 내 옆에서.. 그냥.. 나와 함께.. 그냥 그렇게 함께 늙어갈 것이라고, 지금처럼 이렇게 살 것이라고 나는 굳게, 아주 많이,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온 것이다.. 사실 결혼을 한 지금도 히지카타가 부인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내 한마디면 그 여자의 어떤 말도 다 뿌리치고 내 앞에 달려오길.. 바란다.
집 앞에서 카무이를 우연히 만났다. 아, 우연이 아니다. 카무이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전봇대에 기대어 서 있던 카무이는 바로 달려와서는, 어깨에 손을 확 얹으면서 왜 이렇게 늦어? 하고는 특유의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피곤하다.
"감히 나를 스카웃을 할 생각을 하다니. 너도 참 대책 없다"
"응 맞아 내가 생각해도 그래"
"근데, 그거 정말 진심이었어?"
"응 지금도 진심이야"
"나, 가서 난리칠수도 있는데? 내가 정말 경찰에 적성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아니라고 생각해"
"하하, 하긴. 그건 너도 마찬가지긴 해"
"...."
"뭐야, 갑자기 말이 없어?"
"야, 나 물어볼 거 있는데"
내 머릿속은 아직도 계속 히지카타가 뱉은 '나도 널 보면 미츠바가 생각나'라는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뭔데? 물어봐"
카무이는 내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답했다.
"그.. 너를 보면 주.. 죽은 사람이 생각나"
"응?"
"이거 무슨 뜻일까?"
"아! 그거 죽이고 싶다는 거 아닐까?"
도움이 안 되네.
"아.. 참 적절한 대답 고맙다"
딱 이 새끼 다운 대답에 맥이 풀린다. 그럼 그렇지 내가 이 새끼에게 뭘 더 기대했을까?
"왜? 그거 말고 다른 뜻이 있어"
"몰라 꺼져! 도움 안 되는 새끼"
이건 내 잘못이다.. 누나와 히지카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히지카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설명을 하면.. 누나와 히지카타의 관계를 아는 이 새끼는 내가 히지카타의 말 한마디 때문에 고민하는 나를 왠지 알아차릴 것 같아서.. 차마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다.
집에 들어와서 소파에 다이빙하듯이 누워서는 과자를 우걱우걱 먹으며 티비를 켜는 이 녀석.. 관찰하듯 쳐다보다가 옆에 앉았다. 분명히 히지카타는 이런 이상한 새끼를 1번대로 데려간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할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처음에 제안을 한 것은 분명히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또 바뀌었다. 히지카타가 이 새끼를 보고 저런 비정상적인 놈을 여기로 데려올 생각을 했냐면서 눈 뒤집혀서 난리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히지카타가 전에 이 새끼를 참 열심히 찾고자 했는데.. 내가 데려가도 찾던 놈이라고는 생각 못하겠지만. 어쨌든 히지카타가 싫어할 것이 분명한 이 새끼를 우겨서 1번대로 활동하게 만들어야지. 그것이 맘에 안 드는 히지카타는 계속 1번대를 감시해줬으면 좋겠다, 계속 나에게 연락해서 걱정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누나가 생각나는 나를 계속, 자주 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거지. 그래. 히지카타는 그래서 결혼을 한거다. 나와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서..
"야, 한번 올래?"
"어딜?"
"면접 봐야 될 거 아냐, 내가 일방적으로 널 데려갈 순 없으니까"
".. 아 그거 진짜 진심이었구나"
"응"
"벌써 위에도 다 말해놓은 거야?"
"아니 아직"
"그럼 내일 그냥 구경하러 갈래! 아무도 없는 시간에"
"구경은 무슨. 애기냐?"
"나를 스카웃까지 했으면서 구경도 못해? 결정도 내가 하는 거잖아?"
이 씨발놈이 진짜.
"아니 이 개새끼가 진짜. 야, 너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경찰이면 진짜 존나 좋은 직업이거든? 누가 봐도 지금 네가 나한테 감사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내가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돼? 어쨌든 나한테 먼저 제의한 건 너잖아"
"아, 그럼 됐어. 그냥 너 오지 마. 왠지 계속 이렇게 맨날 싸울 것 같아"
"내일 너 내부에서 근무한다고 해! 그럼 내가 밖에서 지켜보다가 갈게!"
"오지 마"
"모자 쓰고 가도 괜찮겠지?"
"오지 말라고 했어"
"나 가면 맛있는 거 줘?"
"오지 말라고!"
"아! 가면 나도 제복 입어볼래!"
"아 제발. 스카웃 취소한다고. 오지 마 제발"
계속 옆에서 질문해대는 이 새끼가 너무 꼴 보기 싫어서 발로 머리를 퍽 하고 차버리자 웃는 얼굴로 순순히 한대 맞더니, 그대로 발목을 잡고서 나를 자신 쪽으로 휙 끌어당긴다.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눕혀져서는 스르르 끌려간다.
"뭐"
"좀 말이 많은 거 보니 뭔가 고민이 있나?"
"없어"
"그냥 느낌이 그런데.. 나 꽤나 감 좋거든"
"참나, 눈치도 없는 새끼가 그런 소리를 하네"
이 새끼는 잡은 내 발목을 만지작 만지작 하더니 종아리로, 허벅지로 손을 슬슬 내리며 다시 씩 웃어 보인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런 상황에 또다시 히지카타의 숨소리가 떠오르는 것이다.
"야. 잠깐만. 놔"
"왜?"
"부탁이 있어"
"하기 싫다는 부탁하면 새벽 내내 건들면서 잠 못 자게 할 거야"
그 반대였다. 나는 오늘 이 새끼가 내 발목을 잡을 때부터 하고 싶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고"
나는 내 주머니에 있던 안대를 꺼내서 카무이에게 내밀었다. 이상한 표정으로 안대를 바라보는 카무이에게 말했다.
"오늘 내 눈 가리고 할래. 눈을 가리고 하면 더 잘 느낀다던데"
"오늘 이상할 정도로 적극적이네"
"빨리"
"나는 네가 보고 싶은데"
"좋다길래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 그럼 앞으로 안대만 봐도 너랑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카무이가 조금 눈치가 빨랐다거나 조금 더 똑똑했다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카무이는 내 눈에 안대를 씌우고 입을 맞춘다. 안대를 씌울 때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이 꽤 부드럽게 느껴졌다는 것이 원인이었을까? 만들어진 어둠 속에서 나를 만지는 그 허상의 실체는 행위의 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던 히지카타가 되었다. 히지카타는 평소 모습보다 거칠다. 내 어깨에 손을 얹을 때는 부드럽고 조심스럽지만 지금의 히지카타는 항상 집무실에서 앉아서 책을 보며 펜을 굴리던 히지카타가 아닌, 나를 보며 누나를 떠올리고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금기에 손을 뻗어버렸지만 멈출 수 없는 흥분에 중독되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모습이 조금 흘러나와 버린 것이다. 오키타, 오키타.. 하고 부른다. 역시나.. 결혼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히지카타는 나를 오키타 라고 부르지 않는데. 항상 소고 라고 불러주는데.. 꽤나 낮은 목소리로..
"어때?... 하아... 정말로... 더 잘 느껴져?"
봐, 너 그 여자랑 할 때는 이런 거 안 물어보잖아. 짓굳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건.. 그 상대가 나 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하.. 오늘따라 정말 반응 엄청 빠른데"
"읏... 하아... 시.. 싫어.. 나...나느...싫.. .하앗..."
싫다.... 나는 네가 싫다... 네가 나를 통해 누나를 보면서 이런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이 어떻게 좋겠어.
우리가 몸을 흔드는 소파에서는 삐걱삐걱하는 엄청난 마찰음이 들리었다. 히지카타가 이렇게 난폭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 부인이 아닌 나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난폭해질 수 있는 거야, 하고 안심하던 찰나에 눈을 억지로 가려주던 검은 천이 스르르 내려가고, 내 허리를 잡고 접합해오는 선홍빛 머리카락을 보는 순간, 아.. 그렇네.. 나 지금 이 새끼랑 하는 거였어. 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카무이는 이미 발기되어 있는 내 앞을 손으로 잡고선 거칠게 문지른다. 아.... 아앗.. 엉킨 신음과 함께 내 배 위로 나와 이 녀석의 뜨거운 정액이 방울져 툭 툭 떨어진다. 긴 꿈에서 깨어난 듯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 너무 좋았어. 하고 내 목과 어깨 사이에 가볍게 입술을 부비는 이 녀석에게 이상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어.. 나도 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눈을 가린 순간에 보인 히지카타의 허상과 그때 느꼈던 내 이상한 감정, 그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운 감정이.. 섹스가 끝난 후의 허무함과 함께 파도처럼 밀려온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히지카타만 보면 누나 생각이 난다고 외쳤던 내가.
누나의 남자친구였던 남자와의 섹스를 상상하며 발기하는 나는. 히지카타가 나를 보며 누나를 떠올린다는 사실에 조금은 기뻐하고 있었을까? 혹시나 나에게 다른 감정을 느끼며 자위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부풀어서?
나는 드디어 내가 미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샤워 후에 같이 밥을 먹었다. 이상하게 얌전한 나를 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카무이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물었다.
"아까는 이상하게 말이 많더니 이제는 이상하게 말이 없네"
"관찰하지 마"
"관찰한 거 아니야"
"지금 이렇게 내 상태에 대해서 아깐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관찰이잖아. 멍청한 새끼야"
"물어보지도 못해?"
"물어보지 마."
"갑자기 까칠하네"
"나 오늘은 일찍 잘래"
깨작깨작 먹다가 도저히 먹을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되어서 젓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카무이는 또 시작이다 하는 표정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갑작스러운 나의 변덕에 저 새끼도 지금 약간 짜증이 난 상태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 나는 저 새끼와의 행위 후에 일어난 이상한 감정들 때문에 미칠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잘 들어가지도 않던 내 방에 들어가서 한번 쭉 훑어보았다. 머리 위 천장에 붙어 있던 야광별 들도 한 번씩 바라보고.. 저 새끼랑 같이 썼었던 이층 침대도 한번 쳐다보고... 책상에 앉았다. 서랍도 괜히 한번 열어본다. 서랍엔 예전에 왔었던 뜯어보지도 않은 이상한 편지가 처박혀 있다. 수신자는 오키타라고 쓰여있지만 발신자가 고아원인 것을 보아하니, 카무이에게 온 편지인가 보다. 내일 전해줘야지. 시계는 10시 16분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습관적으로 도청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사실 죽을 만큼 듣고 싶지 않지만, 듣지 않으면 히지카타가 그 여자가 무엇을 하는지 불안함과 동시에 궁금해서 하루 종일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 뜯게 된다.
[.... 그래서 고민이 많아]
익숙한 히지카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여자와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왜인지 안심이 된다.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잖아요]
[.. 뭐. 그거야 그렇지만... 괜찮아. 사실 그냥 말해본 거야 그렇게 큰 고민인 것은 아니고..]
[...]
[아냐, 소고가 표현에 서툴러서 그렇게 내뱉는 거 나도 알아. 소고도 후회하고 있을 거야]
그 다음엔 어딜 갔는지 조용했는데, 나는 히지카타가 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준다는 게 기뻤다. 화가 나야 할 텐데, 이상하게 기뻤다.
이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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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타는 급격하게 기분이 다운되어서는 잘 들어가지도 않던 본인의 방에 들어가서, 책상에 엎드려서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엎드려서 잠들어 있다. 이어폰. 뭘 듣고 있을까? 이상한 호기심은 분명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판도라의 상자가 단적인 예가 아닌가? 그 상자를 열고 급하게 닫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희망과 소망은 인간이 가진 가장 잔인한 고문으로, 친절하게 목을 죄여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평소엔 뭘 듣고 있나 궁금하지도 않았던 게 오늘은 이상하게 궁금해져온다. 손을 조심히 뻗어서는 쉽게 빠질 것 같은 한쪽을 빼서는 내 귀에 꽂았다.
삐걱- 삐걱-
[히지카타씨, 히지카타씨..!]
[하아.. 쿠리코.. 하아...]
[사랑해요.. 읏.. 히지카타..씨..!]
[나도.. 사랑해....]
스치는 이불의 바스락대는 소리며, 질척이는 소리까지 이 소리는.... 게다가 여기에서 불리는 히지카타씨 하는 건 건 뭐지? 내가 지금 도대체 뭘 듣고 있는 거지? 옆에 놓인 이어폰 끝의 본체를 확인해보자 빨간 불이 보란 듯이 깜빡인다. 그 불빛을 보고 현재 진행 중인 실시간 도청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새끼 뭐야? 경찰이라더니 하는 짓은 범죄자네. 역시나 이 새끼도 평범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고 나가려다가, 문득 든 생각. 히지카타라면 누나의 남자친구였잖아? 결혼했다는 그 새끼 방을 왜 도청까지 하고 있을까? 왜 엿듣고 있지? 뭐가 궁금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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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엎드려서 잠들어 버려서 새벽에 잠이 깼다가 침대로 가서는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이어폰을 듣다가 잠들어서인지 귀도 얼얼한 것 같고..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다 쑤시는 데다가, 왜인지 머리까지 아프다. 머리를 잡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자 아직도 기분이 좋지 않은지 표정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카무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어제 내가 까칠하게 굴어서 화났냐?"
"그런 거 아니야"
"오늘 정말 올 거야? 올 거면 진짜 내근하고 있을게"
"그래 연락할게"
평소라면 나보다 늦게 나가던 카무이는 일찍부터 어딜 간다면서 이미 밖으로 나갈 준비도 마쳐있었다.
"어딜 이렇게 빨리 가?"
"나도 직업이 있잖아. 가서 오늘 외출한다는 것에 대해서 미리 말은 해야 할 거 아냐"
카무이는 덤덤하게 말했다. 맨날 웃는 얼굴로 나에게 말하던 놈이 저렇게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내가 어제 너무 까칠했나? 하는 생각에 이것저것 대화 거리를 찾았다.
"그.. 어제 모자 쓰고 와도 되냐고 물었잖아. 상관없을 것 같아. 아마 아무도 없을 거고..."
"응"
시큰둥한 반응이 이상하게 신경이 쓰여, 어제 찾았던 편지를 내밀었다.
"야, 이거"
"뭔데?"
내가 내민 편지를 보고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언제 왔는지는 모르는데 너한테 온 거야. 받는 사람이 오키타라고 되어있지만.. "
"아.."
카무이는 받아들고는 고아원 이름을 확인하고서는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 조금 있다가 보자"
카무이는 그날따라 말도 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유난히 소리가 크게 들렸고,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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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달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D!
오랜만에 와서 보고 너무 감동했어요ㅠㅜ!!
진짜 열심히.. 쓸..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