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ing A

[카무오키] Jacob's ladder 26

burts : 버츠 2017. 11. 5. 21:48

*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924님()이 그려주신 그림입니다^^ 감사합니다!



26.












불안함을 느꼈을 때는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물론, 그런 예민함 때문에 사고가 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렇게 치면 모든 사고는 운명적이며 피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불안해해야 하나? 그럴 바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주시지... 하지만 이상하게 그렇다. 불안은 작은 사고를, 침묵함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일이 일어난다. 꼭 그렇다.




히지카타에게 혼자서 내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보통 때라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을 나와 전에 있었던 말다툼이 신경 쓰여서인지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곧바로 허락해주었다. 그러면서 얌전히 있어.. 하고 짧은 잔소리까지 잊지 않았다. 나도 이렇게 큰 둔영에 혼자 있어 본 적은 없다. 방에 혼자 있던 적은 많았지만.. 모두 나가고 혼자서 둔영을 찬찬히 돌아다니며 훑었다. 이렇게 조용했었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얌전한 아침햇살이 더불어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히지카타의 빈자리를 한번 본다. 앉아서 서류를 보던 잔상이 살짝 남아있다. 희미한 체온이 남은 히지카타의 의자에 앉아서 히지카타의 자리에선 내가 어떻게 보일지 한번 보았다. 허구한 날 어떻게하면 열받게 할까 고민하는 내가 곱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당연하겠지만.


시간으로는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 카무이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가도 괜찮아? 하고 묻는 카무이의 말투는 평소처럼 장난이 가득하진 않았다. 조금 무뚝뚝한 느낌이었다. 아침의 태도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덤덤한 말투에 조금은 안심했다.


카무이는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왔다. 대문을 자신감 있게 벌컥 열어젖히며 제 집에 오듯이 저벅저벅 들어온 것이다. 들어오는 이 녀석의 넘치는 뻔뻔함 때문에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말을 건넸다. 


"어서 와, 옷차림만 보면 구속될 범죄자 같네"

"그럼 네 제복이라도 뺏어 입고 왔어야 했나?"


눈을 웃고 있었지만 말투는 냉랭했다. 태도 역시 아침에 자리를 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상하게 내가 눈치를 살살 살피게 되는 입장이 되었다. 카무이는 들어와서 내가 있는 방을 한번 돌아보고 둔영의 구석구석의 모든 곳의 문을 거칠게 열어 젖히면서 안을 탐색했다. 그 모습이 마치 경찰이 숨어있는 범죄자를 찾는 것 같기도 해서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뭐하냐 너? 범죄자라도 찾아?"

"아니, 정말 아무도 없나 해서"

"... 없어 정말로"

"그런 것 같네"


카무이는 나를 다시 보더니 다시 아까 있던 장소로 들어가서는 히지카타 토시로 라는 명패가 놓여있는 책상의 앞으로 걸어갔다. 명패를 한번 들었다가 불만이 있는 듯이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의자에 보라는 듯이 털썩 앉아서는 회전되는 의자를 휙 돌리며 여유를 부린다. 나는 그 모습을 불쾌하게 쳐다보다가 황당함에 말했다.


"뭐 하는 거야 너? 그 자리..."

"이 자리? 알아. 누나의 남자친구 히지카타 토시로 님의 자리잖아? 여기 사진도 있네"


카무이는 히지카타의 책상에 놓인 작은 액자를 들어 보이며 이죽거렸다.


"이건 너고.. 나이 좀 있어 보이는 이쪽은 국장인가?"

"... 내려놔"

"이야, 여전히 잘생겼네. 맞아 어렸을 때 봤을때도 엄청 잘생겼다고 생각했었어. 왜 부인 사진은 없어? 부인 얼굴 너무 궁금한데"


카무이는 책상을 살피며 말했다. 없는 것을 나는 안다. 히지카타의 책상엔 절대로 그 여자의 사진은 없다. 나는 언제나 그의 책상을 눈으로 살피고, 없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아, 여기에 있네? 안쪽에 넣어뒀구나"


카무이는 다시 작은 액자를 하나 들어 보였다. 그 사진은 히지카타와 쿠리코의 결혼사진이었다. 카무이가 그 사진을 들어보일 때 나는 나도 히지카타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히지카타에게 저 여자는 나와 곤도씨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을까? 책상에 놓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전 여자친구의 동생이었던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 뿐이었구나.


"아, 귀엽게 생겼네. 누나랑 이미지가 좀 닮았나?"

"..그 자리에 다시 넣어놔"

"왜? 너 이 사람 그렇게 무서워해? 그러진 않을 거 아니야. 네가 어디 누굴 무서워하는 성격이야? 히지카타 토시로님께서 이런 결혼사진이나 되는 이런 걸 이렇게 깊숙이 숨겨놓은 것도 다 너 때문 아니야?"

"... 갑자기 그게 왜 나 때문이라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나저나 기분 좋게 선뜻 온다고 해놓고서 이 까칠한 태도는 뭔데?"

"나 기분 좋아. 네가 나쁜가 보지. 왜 나쁜데?"

"...."


분명히 카무이의 지금 태도는 조금 이상하다. 잠시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섹스 후 가볍게 투정을 부린 것 정도로 이 녀석이 이렇게 화가 났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작정하고 나를 떠보는 듯한 이런 태도에 나 역시도 슬슬 화가 나고 있었다.


".. 그래. 내가 예민한가 봐. 그만하자"

"뭘 그만해? 뭘 그만하는데? 히지카타 토시로님의 이야기? 아니면 그 부인 이야기?"


나는 뒤돌아서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 이 이상 너랑 의미 없는 말하기 싫다고. 이런 식으로 시비나 걸으려고 왔으면 그냥 꺼지던가"


그리고 말을 다 마치지 못했을 때, 퍼억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갑자기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의 충격, 그리고 눈앞의 시야가 급격히 아래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머리에선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 어?"


내가 이런 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뒤가 집히지는 않을 텐데. 허무하게 바닥에 힘이 휘청거리며 겨우 중심을 잡았다. 곧바로 머릿 쪽의 통증과, 이마에 흐른 액체가 검붉은 피라는 것을 흐릿한 시선으로 확인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오키타. 잘 봐.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물렁한 사이였어? 응?"


내가 손바닥의 피를 보고, 위를 올려다보자마자 카무이는 내 머리카락을 손에 잡히는 대로 움켜잡고서는 휘청거리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봐, 야, 나 보라고"


카무이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카무이가 어째서 웃는지 모른다.


"그래.. 나는 잠시 잊고 있었어.. 그리고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근데 너는.. 나랑 하면서도..."

".. 무.. 무슨 소리..."

"너는 히지카타 이 새끼만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치?"

"..아.. 아니.."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정말? 카무이는 대답을 할 시간도 주지 않고서 뺨을 주먹으로 때렸다. 또다시 차가운 바닥에 꼴사납게 드러누워선 변명이라도 하려 하자 내 대답 따위는 이미 중요하지 않는 듯, 쓰러진 내 앞에 다시 와서는 사정없이 발로 짓밟고 차 댔다. 경찰이 되고 나서 나서 누구에게도 이렇게 맞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저항을 하려 손을 뻗어도 닿지 않고 허공에 우스운 꼴로 주먹질만 하다가 부딪친 책상에서 떨어진 총을 쥐고선 총구를 겨누었다. 형편없다. 나는 정말 형편없다.


"쏘게? 나를? 쏴봐 이 새끼야"


내가 쏘지 못할 거라고 믿는 건지, 배포가 큰 건지 내 손에 쥔 이 작은 총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이 상황에 나는 쏘지 못할 거고, 지금 맞아서 떨리는 손으로 쏘아도 이 새끼가 맞을 확률은 없다는 걸 안다. 


"그러면서도, 꼴에 나를 믿었어? 어? 말해봐. 그러니까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나한테 이렇게 처맞는 거 아니야. 그렇지? 왜? 나는 평생 너한테만 물렁하게 대할 줄 알았어? 항상 너는 내 위 쪽에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아..아니...야.." 


내 옆으로 어디 가 찢어졌는지 검붉은 피가 스멀스멀 바닥에서 기어 오는 것을 보면서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껴올 때, 이 새끼는 그제야 나에게 가하던 거친 폭력을 멈추었다. 이미 이 공간의 내 책상이며, 히지카타의 책상이며 모든 곳에 내 피가 조금씩 튀고, 물건이 부서져 있었다. 나는 차가운 바닥에서 경련하고, 이 새끼 발밑에서 온몸을 미세하게 떨면서 작은 신음을 힘겹게 내뱉을 뿐이다. 카무이는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다가 내 멱살을 움켜쥐며 나를 강제로 반쯤 앉혔다. 옷에서는 단추가 떨어졌는지 툭 하고 옷이 헐거워짐을 느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 아니야.... 아니... 야.."

"아무것도 모르고... 네가 좋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였는데.."

"... 갑자기 왜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데..."


물론 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저 자식이 하는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럼 아니야? 뭐가 아닌데? 그럼 저 새끼 침실 도청하고 있던 건 뭐야?"


.....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 외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

"..."... 침실 도청이라....."

"....."


카무이는 무엇이 우스운지 피식 웃었다. 할 말이 없다. 분명히 나는 쓰레기다. 카무이 이 새끼가 말하는 그 이유까지 맞다. 처음의 시작은 그저 장난이었고, 히지카타가 당연히 그 여자와 그런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렇기에 설치했다. 하지만 이 새끼도 나와 다를 것 없이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그의 신음소리와 상상 속의 히지카타의 표정에 발기해 버린 것이다.


"오키타, 자, 날 봐. 내 얼굴.. 잘 봐"


카무이는 내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며 나를 쳐다보았다. 내 손에 닿는 카무이의 피부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내 손에 묻은 피가 이 녀석의 하얀 얼굴에 붉게 물들며 촉촉해진다.


"네가 나에게 한 짓도 생각해줘. 알지? 나 역시 쓰레기 같은 너의 범죄의 희생양이었잖아"


카무이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댄 후 귀에 속삭였다. 그 말에 다시 나는 울컥한다. 그리고 머리에서 아직도 흘러내리는 뜨거운 피와, 나를 탓하는 이 녀석의 폭력과.. 또 히지카타가 숨겨두었던 부인과의 결혼사진의 잔상이 계속해서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카무이는 잡고 있던 내 셔츠 자락을 거칠게 놓고, 나는 또다시 차가운 바닥으로 짧게 신음하며 바닥에 널브러진다. 그리곤 나를 내려다보며 다시 말했다. 집에서 봐. 밖으로 나가는 이 녀석의 뒷모습이 서서히 흐릿해지고, 어두워지며 이상한 익숙함을 남기며 사라진다. 



나는 카무이 항상 이런 관계였다.

하지만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새끼가 처음으로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내가 얼굴에 염산을 뿌렸을 때부터, 가족과 누나가 사라진 곳에서 사라졌을 때, 다시 내 앞에 왔을 때..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런 사실을 이 녀석과의 섹스에 취해서 잊고 있었나? 


이번에 터무니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처맞은 이유 역시 그런 방심 때문이었다. 최근 이 새끼가 나에게 뿌려대는 호감이라는 비에 맞아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그 비가 내가 뿌린 염산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우리는 이렇게 언제든지 서로에게 등을 돌릴 수 있고 서로를 찔러버릴 수 있는 기묘한 관계였을 텐데.. 





희미한 웅성거림에 눈을 떴을 때는 야마자키의 긴급한 통화 목소리가 들리었다. 네 부장님 지금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타격이 심한데 의식이 없어서 무얼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칼에 찔렸다던가 하는 그런 상처는 없는 것 같고요.. 총으로 맞은 것 같지도 않고.. 총이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요. 아닐 것 같지만 왠지 일방적으로 맞은 듯한....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부장님 일단 진정... 하시고.. 아직 저도 몰라요... 뒷자리에서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히지카타의 흥분한 듯한 목소리에 다시 한번 안심했다. 다행이다. 너 아직도 나 걱정하고 있구나. 다행이야.. 다행이야.....











-

눈을 떴을 때는 간호사가 나를 체크하러 왔다가 아, 이제 깨졌네요? 기분은 좀 어떠세요 하고 덤덤하게 물었다. 기분이요? 그냥.. 별생각 없네요. 하고 답하자 쉬세요, 하는 짧은 인사와 함께 문을 닫고 나갔다. 시간은 새벽이었고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황금빛 달빛과 시퍼런 하늘, 텅 빈 병실, 나, 히지카타, 누나, 히지카타, 누나, 히지카타, 쿠리코.... 그리고 혼자 있는 나.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병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확 돌려보니 곤도씨가 음료수를 들고 바보처럼 헤헤하고 웃으면서 들어온다. 히지카타가 아니라는 것에 마음속으로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곤도씨를 따라 애써 웃어 보였다. 아까 맞아서 다 터진 입안에 비린 피맛이 씁쓸하다. 


"어쩌다 너 정도 되는 애가 이렇게..."

"...."

"아, 아니다 이런 말은 다음에 하자. 어쨌든 괜찮아? 다들 걱정 많이 했어"

"네. 뭐.."

"토시도 아까 왔다가 갔는데 그 자식은 엄청 흥분된 상태로 처음에 너 발견한 야마자키에게 막 취조하듯이 상태는 어땠냐, 그때 뭐 본 사람 없냐, 등등 엄청 꼬치꼬치 캐묻고 난리도 아니었다 정말, 하하 그 녀석도 네가 어지간히 걱정됐나 봐"


근데, 안 왔잖아요. 지금 내가 일어났을 때 내 옆에 없잖아. 그럼 이게 지금 걱정한 사람의 태도예요? 히지카타 그 새끼는 항상 그런 식이지.


"아... 네"

"아까 내내 있다가 부인이 언제 오냐고 전화 와서 일단 들어갔어. 아침 일찍 온다더라. 토시는 왜 없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

"네? 아니요 무슨. 그런 새끼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인데"


갈비뼈 골절, 팔, 다리 모두 부상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은 입원해야 한다는 말을 곤도씨에게 들으면서 다시 생각했다. 일주일? 그럼 히지카타는 몇 일이나 오려나? 오늘 아침에 온다면 도대체 몇 시쯤이나 오려나. 혹시 내가 자고 있을 때 오면 어쩌나.


온몸이 아팠지만 필사적으로 히지카타가 올 때까지는 잠이 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다시 드는 생각. 아침에 온다면서 바빠서 못 왔다면서 또 안 오면 어쩌나. 내가 기대하는 히지카타가 결혼을 한 이후 나의 기대에 한 번이라도 부응한 적이 있는가.. 내가 기대해도 되는 걸까.. 


다행히도 6시 즈음이 되자 히지카타는 차가운 아침 공기와 함께 병실을 찾아왔다. 몇 번이나 간호가 들어와서 히지카타인줄 알고 쳐다보기를 반복하다가, 포기했을 때 즈음에 약간은 거친 발걸음을 하고 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서늘했고, 히지카타의 청회색 눈빛과 그 새벽하늘의 색이 꽤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정도 없고, 그렇다고 잡을 수도 없는 이런 애매함조차 닮았다고 생각했다.


".... 괜찮냐"

".... 응"

"어떤 놈이냐? 어떤 새끼길래 네가 이 정도로 당해?"

"...."

"말해. 죽여버리게"

".... 됐어. 내가 방심한 거야"

".... 방심? 네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

"..말 안 할 거냐?"

"어. 내가 쪽팔려서 그래. 게다가 얼굴도 잘 못 봤고.."

"... 퇴원하고 이야기하자"

"이 이야기 안 할 거야 이제"


내가 꽤나 완강하게 이야기하자 히지카타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하려 했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래. 알았어. 푹 쉬어라"


막상 옆에 앉았을 때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가, 갈 것 같은 그 말에 히지카타는 홱 돌아보며 말했다.


"벌써 가?"

"... 그럼?"

"... 아니, 뭐... 그니까... 그러지 말고.. 조금 더 있다가 가라고.."


내 말에 히지카타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의외의 반응에 나는 놀라서 히지카타를 바라본다. 최근 본 히지카타의 모습 중 제일 좋았....다. 피식 웃으면서, 아직 애는 애네? 하고 말하며 나를 보며 웃어준 것이다. 간만에 느끼는 히지카타의 따스함. 누나와 내 곁에 있을 때의 히지카타가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그 친근함에 나도 모르게 눈이 뜨거워진다. 얼굴도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 같아서 얼굴을 홱 돌렸다. 히지카타는 내 옆에 보조 침대를 꺼내더니, 그래. 한 시간 정도는 나도 좀 누워 있다가 출근하지 뭐. 하고는 누웠다. 히지카타 특유의 희미한 담배 향. 나를 안심시키는 이 향기가 나는 미치게 좋았다. 나의 몸 상태가 이렇게 아파서 불편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가서 푹 안겨버렸을지도 모른다. 


"... 히지카타"

"왜"

"... 히지카타씨"

"응"

"... 히지카타..."

"왜 임마"

"그냥. 이렇게 불러보고 싶었어"

"...."

"하아..."

"소고"

"응?"

"나도 그냥 불러보고 싶었어"


우리는 작게 웃는다.


새벽의 향기와, 희미해진 달빛과, 히지카타의 담배 향과 따스한 숨소리에 나도 모르게 바로 잠들었다. 이 시간이 너무 달콤해서 이 상황이 꿈이 아니길, 꿈이라면 이대로 멈추길.. 내가 인생을 언제 마치더라도 이렇게 행복한 상태에서 끝이 나길...  이런 상황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마저 공존하며 지금 이 행복과 함께.. 히지카타와 함께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히지카타는 작게 쓴 쪽지를 남기고 사라져 있었다.


[출근할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병원에서 주는 밥이랑 약 잘 먹고]


그냥 사라질 줄 알았던 히지카타가 반듯한 글씨로 남긴 이 쪽지는 나에게 새벽의 감흥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베시시 웃으며 이불에 다시 풀썩 눕는다. 온몸이 아프고 불편하지만 꽤나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

카무이가 왔다. 내가 병원에 있은 지 이틀 정도가 지난 후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검은색 모자를 눌러 쓰고서.. 히지카타가 온 줄 알고 엄청난 화색을 띠며 병실 문을 돌아보고 난 후 점점 차갑게 굳어가는 내 표정 변화를 충분히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새끼는 친절하게도 커다란 과일 바구니까지 사들고 왔다. 그 뻔뻔함에 황당해서 코웃음을 쳤다.


"병 주고 약줘?"

"...."

"가"

"... 왜? 너도 왔었잖아"

"...."


반발할 수 없는 사실이라서 상종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창문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카무이는 내 침대 옆에 걸터앉아서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이 미친 새끼가...!"


내가 팔을 뿌리치자 카무이는 다시 웃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내가 지나쳤어. 많이 아프지?"

"... 그딴 표정으로 미안하다는 말하지 마. 진심으로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돌아가"

"왜?"

"빨리 꺼지지 않으면 네가 범인이라고 신고하겠어. 빨리 꺼져"

"그럼 어떻게 되는데?"


보통 사람들이라면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엔 싫어도 돌아가는 게 맞을 텐데.. 카무이는 너무 눈치가 없는지 너무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 제발 부탁이니까 꺼져, 내 눈앞에서"


내가 카무이에게서 등을 보이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을 하자, 카무이는 잠시 옆에 서 있다가 짧은 숨을 내쉬고는 병원을 나갔다. 그 뒷모습이 이상하게 당당해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전에 카무이의 문병을 왔을 때의 나도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며칠 후,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부터가 또 문제였다. 나는 어디로 가지? 다시 집으로? 집은 아니다. 그곳엔 소름 끼치는 그 새끼가 날 기다리고 있으니 갈 수 없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둔영이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야 했다. 사실 나는 히지카타의 집에 머물며 히지카타의 부인을 더 엿 먹이면서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내가 그 여자를 싫어하는 감정에 너무 먹혀버려서 그 부인보다 내가 먼저 화병으로 뒤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평범하게 둔영으로 향했다. 


돌아간 둔영은 처음에 내가 들어갔을 때와 같았다. 이제 히지카타가 상주하는 날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전보다는 자유로웠지만 나에게 그것은 너무 허전했다. 자유롭게 만화책도 보고 만취하지 않는 선에서는 몰래 나가서 술도 한 잔씩 걸쳤지만 그런 일탈에 히지카타가 내 손을 잡아주며 잔소리를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대원들 모두가 잠이 든 틈에 또다시 몰래 도청장치를 귀에 꽂고서 히지카타와 쿠리코가 어떤 대화를 하는지, 섹스 시작을 알리는 대화는 어떻게 하는지, 섹스를 하며 뱉는 말은 어떤 말이 있는지 어떤 신음을 뱉는지 듣고 있었다. 사실은 죽을 만큼 듣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에 중독이 되어간다는 게 이런 것일까?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답답하게 화가 나지만 그만큼 이것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달빛 드는 병실에서의 히지카타와의 나를 생각하며 자위했다. 아, 아, 아.. 히지카타씨.. 히지카타씨.. 꼭 안아주세요.. 너무 좋아요.. 하고 쿠리코의 아련한 말투를 나 역시 히지카타에게 뱉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정 후에 느껴지는 이상한 허탈감은 나를 너무도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런 짓을 반복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새끼가 보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단지, 내가 있을 곳이 그곳이라는 생각.. 수많은 과거의 흔적들.. 그래.. 과거의 흔적들.. 추억의 잔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와 그 추억을 함께 나눈 그 새끼에게 가야만 내 존재가 인식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곳에 가야 그래도 내가 이런 자위를 혼자 하며 비참해하는 감정을 조금은 덜 느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저녁에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전혀 망설여지지 않았다. 돌아간 집의 문을 열자 카무이는 불을 꺼 놓은 채, 소파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묘하게 파란 눈은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 뭐 하냐?"

".... 무서웠어"

"웃기고 있네. 너 같이 멍청한 새끼가 무서운 것도 있어?"

"네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팰 때는 죽일 것처럼 인정사정 안 보고 패더니? 너, 아예 그럴 작정으로 온 거였지?"

"...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었어. 미안해"

"미안?"

"응 미안"

".... 나도 내가 왜 여기 다시 왔는지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어"

"...."

"그래.. 내가 너 탓만을 하는 게 이상한 거 알아. 어떻게 보면 내가 먼저 시작한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쓰레기여서 그런가? 너 같은 쓰레기 새끼가 내 옆에 있어야 내가 안심하는지도 몰라. 하.. 너도 그랬겠지.. 그 당시 병실에서 날 얼마나 죽여버리고 싶었어? 나 역시... 너무 열받고 진짜 죽여버리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 옆에 아무도 없더라고. 그나마.. 쓰레기 새끼 같은 너에게라도 내가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안정감이... 하 씨발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 "


카무이는 나를 쳐다보다가 더듬더듬 말하는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욱신 거렸다.


"놔. 아직 다 안 아물었어"

"응, 미안 미안, 아팠지?"

"아.. 씨발새끼 진짜"


카무이는 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서, 내 어깨를 끌어안고 가만히 입을 맞춘다. 이상하게 나는 그 행위가 또 싫지 않다. 그래서 나 역시 입술을 부빈다. 그날의 키스는 너무 부드러웠다. 나는 병실에서 히지카타와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키스는 너무 달콤하고.. 황홀하고.. 그 어떤 때보다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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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히지카타가 실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