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꼬리표 完

[히지오키긴] 꼬리표 04

burts : 버츠 2015. 8. 1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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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은 급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뭐, 나쁘지 않게 곧 잘 먹었는데, 급식을 나눠주시는 아주머니들이 나를 엄청나게 예뻐했다.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오면 나한테 더 먹으라고 더 많이 주기도 하고 맨날 고생이 많다는 둥, 형(...)들이 괴롭히진 않냐고 묻곤 했다. 그런 관심이 나쁘진 않았지만 왜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지 조금 의아했었는데 나중에 히지카타가 듣고 와선 알려준 이야기로는 그 아주머니들은 내가 대장급인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뻔히 옷이 다른데 왜 몰랐을까 싶은데 나이가 어려서 아예 상상 자체를 못한 듯하다. 그리곤 히지카타에게 형이 옆에서 잘 챙겨줘, 어린애가 대장이면 얼마나 힘들겠어.. 라고 하셨다고...그래서 ‘형’들이 괴롭히진 않냐고 물어본거였다. 형은 무슨, 괴롭힘을 당하긴 무슨. 내가 괴롭히고 다니는데. 그 얘기를 해주면서 히지카타는 한참을 웃더니 그 이후에 한동안 ‘소고, 형이랑 맛있는거 먹으러 갈래?’ 라거나, 내가 대들면 ‘소고, 형한테 그러면 못 쓴다’ 라고 말하곤 했다. 존나 재수 없었다. 나이 많은 게 자랑인줄 아나..

  

급식을 먹기 싫다고 하면 나가서 라면을 사먹곤 했는데, 그 날은 그것조차 먹기가 싫었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그런가.. 히지카타가 내 어깨에 손을 턱 얹으면서 밥 먹으러 가자며 잡아 끌었다. 나는 먹기 싫다며 도리질을 하면서도 그에게 끌려가다시피 식당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나는 고집을 부리면서 밥을 받지 않고 그냥 이 녀석 옆에 앉아 있다가 이 녀석 먹는 것 중에 한 개씩만 먹고 싶은걸 손가락을 가리켰다. 내가 가리키면 이 녀석은 먹고 싶으면 받아서 먹어!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젓가락으로 내가 가리킨 것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 모습을 앞에서 보던 야마자키가 그거 안하면 안됩니까? 누가 보면 애인인줄 알겠네요. 라고 한소리 하길래 내 앞에 있던 물컵의 물을 그 녀석 머리에 다 부어줬다.

  

  

사실 자꾸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을 해서 그런지, 자꾸 이 새끼가 더 의식되는 것 같다. 혼자 고민을 하다가 내 고민을 가장 잘 들어주는 형씨를 밖으로 따로 불러냈다. 형씨네 집엔 차이나도, 안경도 있어서 일적인 이야기 외에 다른 이야기를 털어 놓을만한 공간은 아니였다. 형씨는 평소처럼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나왔다. 겉모습과 지금 현재 그의 행동만 본다면 절대로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형씨를 제법 믿고 있고, 나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니까.

  

“왜 밖에서 보재? 나 돈 없다? 파르페 니가 사는거다?”

  

언제는 형씨가 산 적 있나.. 나는 알겠다고 말하곤 주문을 하고, 이 말을 어떻게 꺼내야 좋을지 몰라서 의도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형씨,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렛 좀 받으셨어요? 차이나가 형씨 것도 사는 것 같던데”

  

“아아- 줬지. 근데 줬다가 갑자기 자기가 먹겠다며 빼앗아 가더라. 넌?”

  

“저야, 뭐... 아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점프 신작 보셨어요?”

  

나는 발렌타인 데이에 그 녀석에게 받은 과자가 생각나서 후다닥 말을 돌렸다.

  

“응, 봤지. 근데 거기 여주인공이 별로 안 예뻐서 좀 별로야, 근데 뭐 여주인공 말고 다른 예쁜애가 등장하지 않을까?”

  

아. 그랬었나? 사실 제목 말고는 기억이 안난다.

빙빙 돌려서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할 때. 형씨가 말했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이런 이야기 하자고 여기까지 부른 건 아닐 거 아냐?”

  

음... 분명 아니긴 한데..... 역시 형씨는 눈치가 빠르다니까

  

“아.. 그렇죠..? 분명히 그건 아니긴 한데..”

  

내가 어디부터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 거리자 형씨가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 있구나?”

  

“...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가 정답 비슷한 말을 꺼내어 나는 말하기가 한결 쉬웠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건 아니고.. 그냥 좀 신경.. 쓰인다고 해야 하나, 좀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고 해야 하나....오해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서요”

  

뭔가 말해놓고도 내 자신이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형씨가 웃기다는 듯이 킥킥 웃더니 말했다.

  

“니가 그런 걸로 고민 할때도 있냐? 이러니까 진짜 꼬맹이 같다야”

  

꼬맹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잘난 어른이면 꼬맹이한테 얻어먹는 짓은 작작하시던가.

내가 형씨를 흘겨보자 형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 정도 되는 애가 다른 사람 때문에 고민까지 하고 있는 거면, 너도 마음이 있는거 아냐?”

  

...?응? 아, 그런가,,, 나는 형씨의 말에 대답은 하지 못하고 애꿎은 주스의 빨대를 만지작 거렸다.

  

“그치? 생각해봐, 사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라고 느꼈을 때 그것에 대한 반응은 두가지야, 하나, 나도 같이 그 사람이 좋아진다. 둘, 그 사람이 미친 듯이 싫어진다. 아아- 하나더 추가해야겠다. 신경은 쓰이나 받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아예 끊고 싶지도 않다. 이정도?”

  

설렁설렁 귀찮은 듯이 대답해주면서도 형씨는 말을 잘해서인지 뭔가 신뢰가 갔다. 내가 대답 대신 살짝 웃어보이자 형씨가 장난스레, 웃지마 이 녀석아. 하고는 파르페를 마저 먹었다. 원래라면 누구냐고 물었을 형씨인데 그 날은 이상하게 묻지 않았다. 보통 이런 이야기를 해온다면 누구라도 예뻐? 어때? 정도의 질문이라던가, 어디서 만났어? 어떻게 알게 됐어? 등등의 질문은 필수로 하게 되는 법인데.. 뭐, 나로써는 그가 묻지 않아 준 점이 고마웠다. 만약 물었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한참 고민했어야 했을 테니까.

  

나는 형씨에게 고민을 털어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땐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생각을 마저 정리하고 싶어서, 사실 그 새끼가 나에게 입 밖으로 말을 꺼낸 건 아니라서 아직도 조금 햇갈리긴 했지만 형씨가 마지막 쯤에 해준 말이 나를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무슨 생각인지 그런 걸 100% 장담한다며 대답해 줄 위인이 어딨어? 독심술사도 아니고. 니가 느끼기에 어? 조금 이상한데? 하면 그건 진짜 이상한거야, 예를 들어서 그냥 밤에 뭐해? 라고 연락이 왔다고 치자, 정말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얘가 심심해서 연락을 했나보다 라고 느낄거야 근데 뭔가가 있으면 감이 딱 온다니까? 으이그 니가 어려서 모르는거야. 남이 봤을 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니가 이상하다고 느끼면 그게 맞을 확률이 거의 90%야. 남의 조언보다, 너의 감을 믿으라고>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그의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했다. 왜, 바람 폈을 때 걸리는 경우도 다 그런거 아냐. 그날따라 나의 감이 좀 이상해서 쫓아가봤더니 다른 여자 혹은 남자를 만나고 있더라 이런거.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걸 느끼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 부대의 자기여자 놔두고 잘만 바람 피는 애들 있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면 ‘감’이라는 것도 하늘이 선택해 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인연이니까 그런 걸 알려 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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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름의 90%의 확신을 가지고 히지카타를 관찰했다. 그 전처럼 혹시나 이 녀석이 연애를 하나? 해서 쫓아다니면서 이 녀석을 지켜보는 건 그만두었고, 그냥 같이 있을 때의 행동만 관찰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확신했다.

사실 내가 오랫동안 봐 왔던, 심지어 남자인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이상하게 전에 둔영에서 쫓겨났던 히키코모리(사실 그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여도 정신병자새끼였지만)와는 정 반대의 감정이었다. 형씨가 일러줬던 첫 번째의 경우처럼 나도 점점 그 녀석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혹여나, 그 감정을 괜시리 들킬까봐 심하게 지랄도 하고 여전히 죽여버리겠다고 장난도 치곤 했지만 여전히 그는 나를 받아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 누나 같기도 하고, 곤도씨 같기도 하고... 역시 이 새끼가 내 소중한 걸 모드 빼앗아 가버렸지만 나는 그런 이 녀석이 나의 소중한 것들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그래도 조금은 그의 행동 하나에 확신했다가, 또 그의 행동 하나에 저 새끼는 역시 개새끼야. 하고 생각했다가 오락가락했다.

  

  

  

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물론 열 받을때도 있었지만.

그날은 내가 히지카타에게 순찰을 같이 가자고 했더니 그가 약간 기겁을 하면서 짜여진 사람이랑 가! 왜 자꾸 나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려고 그래? 하고 말했다.

  

새끼. 속으론 같이 가고 싶으면서. 나는 그런 그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알겠다고 하곤 짜여진 대원과 함께 순찰을 갔다.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가 담배를 피우면서 뒤를 돌아본 나를 보고 손을 살짝 흔들었다. 내가 더 조르길 기대했냐 새끼야, 나는 너 따위에 절대 휘둘리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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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유난히 좋아서 꽤 일을 성실하게 했다. 낮잠도 안 잤고, 보통 누군가가 나에게 길 따위를 물어보면 정색을 하고 내가 너한테 길 따위 알려주는 사람인 줄 알아? 하고 말하기가 일쑤였는데, 그날은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같이 간 대원은 그런 나를 보고 덜덜 떨면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전-혀 없다고 하는데도 나에게 대장.. 곧 죽는거예요? 그럼 1번대 대장은 제가.. 따위의 개소리를 해서 폭력을 휘두른건 넘어가도록 하자.

  

해가 얼굴을 감추어 거리가 어둑어둑 해졌을 때, 마지막으로 거리 순찰을 하고 들어 가려고 사람들이 잘 지나지 않는 골목을 지나가는데 어두운 골목안에서 부시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인가? 나는 어둠안에 있는 것을 살짝 보았는데 검은색 쓰레기더미만 있을 뿐이었다. 그냥 지나가려는 찰나, 그 검은 쓰레기 봉투 사이에서 어떤 그림자가 서서히 일어나더니, 사람의 형태가 되었다. 나는 그 그림자에게 다가가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어두워서 잘 안보였다가 어둠에 적응이 된 눈에 그 그림자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그림자를 보곤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도..도와... 주..”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 꼬맹이는 울고 있었다. 옷도 엉망이었고, 맞았는지 뺨이나 다른 곳도 상처가 많았고, 이 꼬맹이는 눈 앞의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듯 했다.

  

“어이, 차이나..”

  

내가 나도 모르게 이 꼬맹이를 작게 불렀다. 나는 그녀를 인정.. 이라고 말하긴 싫다만, 인정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당해서 울고 있는 것 자체가 생소한 광경이라서 멍하니 서 있었다. 오늘 이 순간은 이 꼬맹이가 내 앞에서 힘없는 에도의 시민이었다.

나는 조금 놀란 것 뿐이었고, 어쨌든 내가 도와줘야할 시민이었으니까 게다가 오늘 일은 꼭 기억해두고 나중에 두고두고 괴롭혀야겠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꼬맹이에게 다시 다가가서 물었다.

  

“차이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어깨를 붙잡고 정신차리라는 듯이 강하게 말하자 그녀가 그제야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한번 더욱 소리내어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당황해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이 꼬맹이의 옷이 많이 찢겨져 필사적으로 제 옷을 잡고 있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고 내가 약간은 민망한 감도 있어서 나는 겉옷을 벗어서 내밀었다. 우느라 정신이 없는 그녀를 보고 내가 인심 쓰듯 옷을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그녀는 울던 얼굴로 조금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내 팔을 잡곤 말했다.

  

“저.. 나.. 나좀 도와줘라 해”

  

잡은 손이 다쳐서인지 약간 떨리는 걸 보고 말하라고 했다.

  

“어.. 어떤 놈들이 내.. 내 가방을 빼앗아갔다 해.. 그.. 그거 꼭 .. 꼭 찾아야 된다 해..”

  

가방? 거기에 뭐가 들었다고 이 지경으로 울어? 사실 의아했지만 대충 인상착의나 몇 명인지를 침착하게 묻고 가려다가. 그런 으슥한데 있지 말고 나와 있어 차이나. 하고 외치곤 그 놈들을 찾기 위해 달려갔다.

  

  

이 새끼들이 멍청한 건지.. 내가 차이나가 말한 그 무리를 찾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엄청 튀는 옷차림의 녀석이 있었고, 보통 그런 무리들이 자주 출몰하는 장소에 떡하니 있었기 때문이다. 이 꼬맹이가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당할 정도의 녀석들이라 나도 조금은 작정하고 들어갔는데, 그 녀석들은 완전 형편없는 실력으로 픽픽 쓰러져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여러 가지 물건들 가운데서 그 꼬맹이의 것으로 보이는 갈색 작은 가방을 발견했고, 그것을 들고 다시 돌아와 앉아서 울고 있는 그 꼬맹이의 앞에 툭 던져놓았다. 차이나는 그 가방을 확인하곤 소중한 것인 양 그것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곤 한참 있다가 고... 고마워.. 하고 작게 말했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어색하기도하고.. 사실 나는 울고 있는 사람을 위로할 줄도 몰라서 이내 머쓱해져선 그 꼬맹이에게 말했다.

  

“형씨한테 데리러 오라고 연락할게”

  

“시.. 싫어! 긴짱한테 연락하지마라 해”

  

....?

  

“그럼 데려다줄게 일어나”

  

오늘 나는 정말 친절한 경찰이었다.

  

“싫어.. 안갈래...”

  

이 꼬맹이가 너무 서롭게 울어서 나는 갈 생각도 못하고 그냥 옆에 서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옆에 털썩 앉아서 그칠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꼬맹이들은 울 때 더 극성 맞아진다니까?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거의 20분 가까이가 지났다. 지치지도 않냐 넌?

  

“야, 차이나 이제 그만 울고 가자. 너 지치지도 않냐?”

  

내가 약간 지겹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고,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슬슬 들어가봐야 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나는 일어서서 다시 한번 데려다 줄테니까 가자고 말했다. 이 꼬맹이는 또 대답이 없다. 나도 조금 짜증이 나서 몰라, 너 맘대로 해 나 간다. 하고 뒤돌아 서자 그녀가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래, 일어나 데려다줄게”

  

이 말만 세 번째다.

  

“아.. 안갈래..”

  

“어쩌라고 그럼, 난 간다?”

  

“나도 같이가”

  

“어딜?”

  

“오.. 오늘은 집 들어가기 싫다 해..”

  

“그래서 우리 둔영에 따라 오겠다고?”

  

어이가 없어서 내가 묻자 여전히 훌쩍거리던 이 꼬맹이가 계속 울어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아니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뭔가 내가 울린 상황인 것 같이 보여지고 있어서 나는 다시 약간은 다그치듯이 물었다.

  

“어쩔거야? 난 가야 돼. 형씨한테 가”

  

이 꼬맹이는 아직도 내 옷자락을 꽉 잡은 채 놓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혹시 옷이 저렇게 망가져서 들어가기가 싫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도 그렇고.. 사실 이해는 안갔지만 걱정을 끼칠까봐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얼마전에 히지카타가 나에게 준 작은 집을 떠올리곤 말했다.

  

“옷이랑 상처 때문에 그러면.. 잠깐.. 들렸다 가던가”

  

차이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눈물을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나는 이 꼬맹이를 데리고 가면서도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맞는 행동인지 수도 없이 고민했다. 이 꼬맹이는 계속 내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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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와 함께 와서 청소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이후에 이 곳에 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내가 들어오라고 말하자 차이나가 우물쭈물 하다가 들어왔다. 자꾸 신경이 쓰이는지 내 겉옷을 걸치고도 제 옷의 찢어진 쪽을 한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짐이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간략하게 걸칠 옷 정도는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녀석의 짐을 뒤지면서 꼬맹이한테 한쪽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보통 때라면 온갖 난리를 치며 소란을 떨어야할 꼬맹이가 얌전히 있으니 다른 사람처럼 생소했다. 짐을 뒤지다가 우선 상처라도 치료하라고 해야겠다 싶어 구급상자를 꼬맹이 앞에 놓았다.

  

“자, 많진 않은데 간단한 약은 여기에 있어. 너 입을 만한 거 있나 볼테니까 기다려”

  

“... 여긴 뭐냐 해?”

  

“뭐긴 뭐야, 집이잖아”

  

“좋다..”

  

드디어 울음을 멈춘 그 꼬맹이가 주위를 쓰윽 둘러보더니 말했다. 한참 뒤지다가 그냥 흰색 T셔츠를 발견했는데, 히지카타의 것인지 꽤 컸다.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차이나에게 툭 던지면서 입으라고 했다. 조금은 정신을 차렸는지 약간은 평소 때처럼 돌아와서 나에게 보면 죽는다! 같은 소리까지 했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저기 화장실 가서 갈아입으라고 말했다.

볼 것도 없는 게 어디서..

  

  

  

차이나가 입고 나왔을 때 그 옷의 주인이 히지카타여서 인지 거의 옷에 감싸져 있는 것 마냥 컸다. 반팔인데도 거의 팔뚝까지 내려올 정도였다. 쭈뼛쭈뼛 나오는 그 꼬맹이를 보고 가까이 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상처를 치료하라고 구급상자를 줬는데도 상자에 손도 안댄 것 때문에 나는 빨리 치료하고 보낼 생각이었다. 시간도 늦었고, 나도 들어가 봐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내 손짓에 차이나가 순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는데 옷이 커서 나는 장난스레 말했다.

  

“유령같다. 너”

  

“이.. 이렇게 예쁜 유령 봤냐 해”

  

... 장난하나

  

“이렇게 다친 유령은 확실히 못 봤지. 빨리와 대충 치료하고 가”

  

구급상자에도 최소한의 약품밖엔 없어서 그냥 소독하고 거즈정도 붙여주는 것 외엔 없었다. 다리도 다쳤는지 살짝 절뚝거리는게 보이고 손도 다쳤는지 약간 불편해 했는데 그런 건 내가 뭘 할 수도 없으니 가장 크게 보이는 얼굴 쪽 상처 쪽이라도 치료해주려고 했다. 차이나는 내 앞에 앉더니 내가 소독 솜을 상처에 대려고 가까이 가자 시선을 아래로 확 내리 깔면서 약간은 긴장하는 듯 했다. 상처 치료 한 두번 하나.

  

  

대충 치료를 마치고 돌아가자고 말했다. 차이나는 가만히 앉아서 잠시 생각하더니 하는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안갈래”

  

“응?”

  

“나 여기서 자고 갈거다 해”

  

“.....”

  

나는 이런 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여서 당황했다. 둔영에서 나는 일단 제일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다들 내 고집, 내 승질을 받아주는 사람만 있기에 내 앞에서 나에게 이런 식의 투정과 제 멋대로 하려는 사람은 차이나가 처음이었다.

  

“장난하냐? 빨리 가”

  

“싫어”

  

차이나가 자신의 의지를 꺾을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줄 요량이었는지 침대에 털썩 누웠다.

  

“너 진짜 죽을래? 빨리 나가”

  

“.. 너무한다 해. 나 환자인데 그리고 밖에도 어둡구..”

  

환자... 라..

  

“그래 니 맘대로 해. 난 가야되니까 나갈 때 문 잠그고 밖에 화분 아래에 열쇠 놓고가”

  

열쇠를 탁자에 놓으면서 말했다. 내가 나가려고 뒤돌자 차이나가 다시 내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나.. 혼자 있으면 잠을 못잔다 해.. 나 잘 때 까지만 있어주면 안되냐 해?”

  

하다하다 못해서 이제 잘 때 까지 기다리라고?

  

“미쳤냐 내가”

  

 

-Rrrr

  

뒤에 더 말을 하려 하는 순간 히지카타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왜 안와]

  

“이제 가려고요”

  

[.. 그래 어딘데?]

  

“근처예요 암튼 이제 가...”

  

전화를 마저 하기도 전에 차이나가 내 핸드폰을 빼앗아서는 반절로 쪼개버렸다. 다쳤어도 핸드폰 하나 박살내는 것 쯤은 간단한 모양이다.

  

“...뭐야?”

  

“가지마라 해. 나 무섭단 말이야”

  

나는 니가 더 무서워. 핸드폰이 부서진 것에 대해서 화를 내기도 전에 이 꼬맹이가 계속 조르는 것도 그렇고, 이 꼬맹이의 칭얼거리는 걸 들어주는 것도 지쳐서 나는 그냥 일단 알겠다고 했다. 알겠으니까 빨리 자라고 반쯤 포기한 듯이 말했다.

  

“손”

  

“응?”

  

“손!”

  

꼬맹이가 나에게 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뭐 어쩌라고”

  

“손 잡아달라는 거잖아”

  

내가 그 손을 한참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자 차이나가 억지로 내 손을 과격하게 잡더니 작게 뭐라고 중얼거리고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침대에서 차이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채 누워 있고, 나는 그 꼬맹이에 의해서 손이 잡혀 침대 아래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손을 빼내려 하자 이불안에 있는 꼬맹이가 '아직 안잔다!' 하고 중얼거려서 깜짝 놀랐다. 대체 언제 잘건데.

  

아. 그러고 보니 히지카타한텐 곧 간다고 하곤 이러고 있네. 폰도 부서졌고, 그 새끼 걱정 할 텐데.. 아. 아니지 걱정 좀 시켜도 되지 뭐. 그 새끼가 내 생각을 계속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재미있으면서 이내 약간은 들떴다.

  

오늘 피곤한지 자꾸 졸려서 나도 침대에 머리를 잠깐만 기대고 있어야지 하고는 그대로 곤히 잠들어 버렸다. 눈을 떴을 때 밖은 새파랗게 빛다는 새벽이었고, 시간은 세시 가량이였다. 아직도 이 꼬맹이가 잡고 있는 손을 깨지 않게 조심스레 뺐는데, 스르르 빠지는걸 보니 자고 있는 듯 했다. 속으론 안심하면서 문을 최대한 조용히 닫고 나왔는데, 깨면 또 다시 난리를 칠 것 같아서 무서웠다.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그 날따라 뭔가 이상이 있는지 행동이 이상했다. 아니 근데, 내 집인데 내가 왜 이렇게 도망치듯 나와야 되는거야? 약간 쌀쌀한 새벽 공기를 받으니 피곤 한 것도 두배 세배로 늘어나는 듯 해서 짜증스러웠다. 게다가 핸드폰도 망가졌고.. 춥다 했더니 아까 그 꼬맹이한테 준 겉옷도 깜빡하고 놓고 왔다. 또 받으려면 어디서 잃어버렸냐며 잔소리 듣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