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08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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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고 긴토키에게 말해버렸다.
그 녀석이 나랑 둘이 있는데 널 데리고 가니까 조금... 서운하더라- 라고. 아주 엄청 취해서 헛소리를 한건 아니고, 적당히 술을 마시고 그냥 속 이야기를 했다.
“너랑 나랑 둘이 있으면 그 녀석은 항상 너만 챙기잖아.”
“아 예예-”
긴토키는 내 말을 들으면서 술 한잔을 들이켰다.
“그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하나..”
말을 하다가 순간 오해하려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 녀석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 녀석의 표정은 하나도 변함이 없었다. 표정으론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물었다.
“혹시 내가 이런 이야기 해서 기분 나빠?”
“응? 내가 왜?”
긴토키는 아무렇지 않게 앞에 있는 오뎅을 하나 꺼내서 호호 불고는 한입 먹음직스럽게 물었다.
“아니, 전에 그런 식으로 얘기하길래”
“뭐야, 설마 질투하냐고 물어보고 싶은거야?”
오뎅을 한입 물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고는 대답했다.
“미쳤냐? 그런 애새끼한테 질투를 하게?”
“아니 뭐..”
“그 녀석 누나였으면 모를까”
“....”
가끔 이 녀석은 미츠바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나는 이 녀석이 미츠바 이야기를 꺼낼 때 마다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말도 못했다. 사실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그 말 조차 꺼내지 못했다.
“장난이야, 왜 또 당황하냐?”
긴토키는 내가 미츠바 이야기에 대답하지 못하면 꼭 이렇게 왜 당황하냐며 웃었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니까 더 그런 것 같다.
“아, 그리고 니 아들새끼에 대해선 너무 앞서나간다야, 난 오히려 오키타군 좋아. 가끔 좀 개념 없는 소릴 하긴 하지만 그런 점이 나와 잘 맞거든. 그때 너한테 했던 이야기는 좀 달라. 생각해봐라, 아무리 시누이가 제 친오빠한테 애인행세 한다고 여자로 보고 질투하냐? 아니잖아. 똑같아. 니 아들인데 왜 질투를 하냐? 그때 너한테 그런 식으로 말한 건 그냥 그때 잠깐 니 행동이 짜증나서야”
그는 술을 한잔 가득 따르고는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니 심정도 모르는 건 아니야. 봐. 역시 넌 그 새끼한테 부모라니까? 저기요 학부형님- 그 새끼 나이 또래 애들은요 당신처럼 잔소리하는 꼰대 부모님한테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법입니다요. 지금은 가족보다 나 같은 못된 친구를 더 좋아할 시기예요. 알겠습니까?”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유식한 척이야”
“긴파치 센세잖아”
이 녀석이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모를 실태 안경을 쓰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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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히지카타씨. 이거.. 받아주세요”
뭔가 했더니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라고 했다. 왠 처음보는 여자가 나에게 주고 도망가길래 뭔가 쳐다 보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대원들 말로는 매번 오는 여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한다면서 어떻게 매번 갖다 바치는 여자 얼굴 기억도 못하냐며 성화였다. 내가 난 먹을 생각이 없으니 먹으라고 내밀었더니 갑자기 대원들이 화를 내면서 저희도 자존심이 있지, 부장님이 주는 건 안 먹습니다! 라고 말하며 가버렸다. 주는데도 싫데 이 자식들이. 그러고 보니 발렌타인데이라.. 우리는 사소한 이벤트 같은 건 챙기지 않지만 초콜렛을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이런 날 정도는 가볍게 챙겨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지나가다가 맛있는 과자점이 있다며 한번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그 과자점으로 들어갔다. 딸기우유를 좋아했으니까 딸기가 곁들어진 초콜렛 케이크를 고르고는 이 녀석이 좋아할 생각을 하니 나도 기뻤다. 그리고 포장까지 해달라고 말했는데 받고 보니까 아까 받은 그 여자에게 받은 것과 같은 포장이었다. 이 여자에게 받은 것은 평범한 쿠키였고, 내가 산 것은 케이크라서 타입만 다를 뿐, 똑같았다. 긴토키를 살짝 불러내서 건내줬더니 이 녀석이 내가 이런 것을 챙겨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받아들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잘 먹겠다고 했다. 본인은 챙길 생각을 못했다는 게 미안했나보다. 나는 그의 그런 마음이 너무 좋았다.
둔영으로 돌아와서 방으로 돌아가려 지나가던 중 그 녀석 방에서 티비 소리가 들리기에 벌써 들어왔나 싶어서 문을 살짝 열고 보니, 이 녀석이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다. 베게를 안고 누워 있는 모습이 새삼 더 앳되어 보여 어린이 동화책에 나오는 삽화 같아서 나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이 녀석이 나를 보고 몸을 일으켰는데,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과자가 생각나서 말했다.
“오늘 발렌타인 데이라고 다들 난리치던데, 넌 생각보다 조용하다?”
“녀석들이야 원래 그런 거에 쉽게 난리치는 녀석들이니까. 그러는 히지카타씨는 좀 받았습니까?”
나를 흘겨보며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이 녀석에게 그 과자를 휙 던졌다. 뭔지 모르고 받아든 그 녀석이 받아든 포장된 과자를 보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 너 먹어. 어차피 오늘 아무것도 못 받았을 거잖아”
포장된 과자와 나를 번갈아 보는 그 녀석에게 다시 말했다.
“너 단거 안 좋아하는 거 아는데 이런 날은 이런 거 먹으라고 있는 날이니까”
베게를 안고 앉아선 내가 준 하얀 포장의 과자를 들고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이 녀석을 보니 새삼스레 미츠바와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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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문제가 끊이지 않는 둔영이라 그런지. 그 날도 문제가 터졌다. 소고 녀석이 찾아와서 1번 대에 있는 어떤 녀석을 다른 곳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이 녀석이 또 제 멋대로 굴기 시작했구나 싶어서 이유를 추긍했는데, 왠일로 이 녀석의 잘못이 아닌 정말 또라이 같은 새끼였다.
“아.. 뭐, 별건 아닌데, 그 새끼 게이인가봐. 일단 그게 젤 큰 이유고.. 아, 게이인건 아무래도 좋다 그래, 근데 그 새끼 섹파가 나랑 닮았다잖아. 존나 소름끼치게. 그런 새끼를 어떻게 우리 부대에...”
“뭐? 그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어? 니 승질에?”
“아니.. 뭐.. 당연히 그 자리에서 죽도록 패줬지”
“그 새끼 어딨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일개 대원새끼가 감히 대장한테 뭐라고?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그렇지. 사실 이 녀석이 아닌 다른 대장이 이런 말을 전해왔다면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 녀석이 어려서인지 나는 무심코 과민반응을 보였다. 그런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그의 표정이 왜인지 그 날은 조금 달랐다.
긴토키에게 이 일을 이야기 했더니 긴토키는 박장대소를 터트리면서 말했다.
“정말 그 섹파랑 닮았을까? 음. 하긴 그러고 보면 그 새끼 표정만 좀 풀고 있으면 가끔 귀엽긴 해. 궁금하다 그 섹파 어떻게 생겼을지”
내가 화난 초점과 다른 곳에 반응하는 그를 나는 노려봤고, 긴토키는 농담이라면서 다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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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 히지카타 내가 재밌는거 알려줄까?”
긴토키가 나에게 와서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뭔데?”
“아.. 사실 재밌는 건 아니고...”
긴토키가 팔짱을 끼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가, 이내 어이없게 웃었다가를 반복했다.
“카구라랑 니 아들새끼가 좀 이상해”
“카구라랑 소고? 뭐가 이상한데?”
“둘이 서로 좋아하는 것 같아..”
“에이 설마”
“아냐 진짜야! 얼마 전 발렌타인 데이때 세상에 카구라가 초콜렛을 만드는거야! 그 카구라가! 난 당연히 날 주는 줄 알았는데 너 잠깐 만나고 잠깐 산책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멀리서 봤어. 카구라가 오키타군한데 그 초콜렛 주는거. 확실해! 나 진짜 그 자리에서 턱 빠질 뻔했다니까?”
“정말?”
“어! 확실해 이거 진짜야! 심지어 둘이 티격태격하면서 장난까지 치더라. 확실해 확실해”
“... 음 좀 이상하긴 한데, 카구라가 일방적으로 혼자 그런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 말에 긴토키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래.
“니 아들 녀석이 나한테 고민상담을 해왔단 말이야. 신경쓰이는 애가 있다면서”
긴토키가 잔뜩 흥분해선 말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의 행동이 의아하기도하고, 그 녀석이 내가 아닌 이 녀석에게만 고민상담을 했다는 게 거슬려서 나는 약간 투덜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니가 말하는 데로라면 걔네가 둘이 서로 좋다는데 네 녀석이 왜 한숨이야?”
“우리 카구라가 걱정이라서 말이야. 니 아들자식이 보통 날라리여야지”
사실 나도 이 녀석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의아하긴 했다. 이 녀석이 연애..? 라니 그런 감정에 대해 인식도 못하고 있을 녀석이 틀림없고, 사람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라서 그런지 카구라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녀석을 상대할 여자애라면 카구라 정도 밖엔 없긴 하겠네- 하고 생각한 것도 맞다. 소고가 날라리에 문제아라는 건 아는데, 그 이야기를 내가 아닌 이 녀석이 집어서 이야기 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 소고가 뭐 어때서. 누가 들으면 카구라는 아주 조용하고 참한 여자앤 줄 알겠다?”
“참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 녀석처럼 문제아는 아니거든?”
“소고가 아무리 문제아라지만 나름 공무원이야. 카구라 상대로 그런 소리 들을 이유 없어”
“아버님 또 나오셨네”
턱을 괴곤 내 말에 또 시작이라는 듯이 말하는 그 녀석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니 아들새끼 욕했다고 지금 화난거야? 알겠어,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긴토키가 내 표정을 보고는 한참 웃었다.
카구라라.. 잘 어울린다고 해야하나.. 그 녀석이 긴토키를 잘 따르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별로였는데, 만약 그 녀석에게 그런 나보다 우선순위가 더 높은 사람이 생긴다면..
나는 상상하고는 이내 아쉬웠다. 이제 그 녀석은 내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뭐랄까. 오랫동안 내 옆에 있어서 소중한 줄도 모르고,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거대한 서랍장을 나의 허락 없이 누군가가 버린 기분이었다. 골머리 앓고 있으며 항상 자리만 차지하는 머리 아픈 존재지만 막상 사라지니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그 존재의 커다란 멍 자국이 남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그 녀석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같이 나갔던 대원을 불러서 왜이렇게 안 오냐고 묻자 마지막 순찰을 하고 연락을 취했는데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제 멋대로인 녀석이니 이 녀석을 탓할 수도 없어 나는 연락을 취했다.
짧게 연결음이 울리고, 이 녀석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왜 안와”
[이제 가려고요]
“.. 그래 어딘데?”
[근처예요 암튼 이제 가...]
그 상태로 전화가 끊겼다. 이 새끼 지금 또 장난치나? 가끔 내가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면 일부러 전화가 끊겼다는 핑계를 대며 끊어버리기도 했는데, 혹시나 또 나에게 장난을 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어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그렇게 끊긴 이후로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또 장난이겠지? 설마 이 녀석 정도 되는 애가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기라도 하겠어? 원한이야 많이 사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 지금 또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려고 누웠다가 걱정인지 뭔지 전혀 잠이 오지 않아서 그 녀석이 순찰 갔었던 그 근처를 한번 둘러보고, 혹시나 해서 이 녀석의 순찰지역이 아닌 옆 쪽도 한번 둘러 보고, 혹시나 다른 곳으로 갔나 해서 계속 돌아보는데 내가 이 녀석을 찾으러 나간 것을 알았는지 야마자키에게 전화가 왔다. 왜 이렇게 과민 반응이냐며 와서 주무세요- 라고 말했다. 그리곤 덧붙여서 오키타 대장도 밤에 놀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유별난 나의 모습을 이 새끼도 알고 있으니 내가 이 녀석의 장난에 100번이면 100번 놀아나는 거다 라고 수없이 되뇌이면서, 동시에 욕을 지껄이면서 애써 잠을 청했다.
아침에 혹시나 혹시나 해서 일어나자마자 그 녀석의 방문을 벌컥 열었는데, 다행이도 익숙한 안대를 쓰고 잠들어 있는 이 녀석이 침대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심하면서도 나를 걱정시켰다는 것에 화가 나서 엄청나게 잔소리를 해댔다.
“이 자식아 안 일어나? 너 어제 몇시에 들어왔어? 전화는 왜 안받아?”
“핸드폰 부서졌어요”
그가 하품을 하면서 피곤한지 살짝 쥔 손으로 눈을 부벼댔는데 그 모습이 그의 모랫빛 머리칼과 더불어서 아기 사자같았다.
“그래도, 나 어제 일 열심히 했는데”
잠에서 덜 깼는지 잠자코 내 잔소리를 듣다가 그가 말했다.
“누가 뭐래?”
“진짜야. 그니까 다른 일은 좀 넘어가면 안됩니까?”
“조용히 해 너, 잘한 거 하나도 없어. 근처라고 바로 온다고 해놓곤 연락도 끊기고 말이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무슨 일이라니?”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왜요? 어디가서 죽기라도 했을까봐?”
“그래 이 새끼야”
“내가 당신 죽이기 전에 죽을 것 같습니까?”
...또 저 소리 진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어제 저녁에 내가 찾아다닌 것이 너무 한심하고 화가 나서 나도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게, 나도 깜빡했다 이 자식아”
내가 짜증났다는 것을 감추지 않고 몸을 홱 돌려서 나가자 이 녀석이 쫓아와서는 그러게 내가 같이 순찰 가자고 했잖아요- 라고 우습다는 듯이 킥킥대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같이 가자고 했었지. 긴토키와 만나려고 일부러 이 녀석과 같이 가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내심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화낼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약간은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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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토시, 그거 들었냐”
순찰을 하고 있던 중, 곤도씨가 뜬금없이 나를 다급하게 찾고는 말했다.
“뭘? 그러고 보니 무슨 일 있는 거야? 왜 이렇게 급하게 왔어?”
내 물음에 한참을 헉헉 거리면서 숨을 몰아쉬고는 말했다.
“소고 녀석 어제 늦게 왔잖아?”
“응? 응”
“해결사네 꼬맹이랑 있었다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긴토키가 말했던 사실이 생각났고, 그가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는 걸 다시한 번 깨달았다. 난 한번 들었던 사실이라 덤덤했고, 곤도씨는 내 반응을 보고 왜 안 놀라? 난 완전 기절할 뻔 했는데 하고 중얼 거리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무슨 대화내용이.. 아침까지 왜 있어주지 않았냐고 그랬다던데? 걔네 몇 살이냐?”
곤도씨는 약간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고, 나는 그런 곤도씨에게 어린애들 가지고 무슨 생각을 하냐며 화를 냈다. 저 어린 애새끼들이 뭘 안다고.. 어른들이니까 이런 상상을 하는 거지. 곤도씨, 저 대화를 듣고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린 나이 먹었다는 증거라고.
나는 소고 녀석이 나에게 직접 말을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긴토키에게는 상담까지 했다면서 나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서운했다. 괜히 술이 땡겨서 술이나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술집에 갔는데 긴토키를 부를까 생각했다가 그냥 그 날은 혼자 마시고 싶었다. 긴토키와 같이 마시면 얼마 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더불어 지금 그 녀석에게 약간의 질투 비스므레 한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긴토키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이 둘에 대한 나의 감정이 가리키는 방향의 지표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늘 그 녀석과 둘이서 오던 작은 술집이라 그런지 주인이 날 보자마자 흰 곱슬머리 형씨는 같이 안 오셨네요? 하고 정겹게 물었다. 나는 그냥 오늘은 혼자 마시고 싶어서요- 라고 말했다.
“두 분은 오래된 친구세요? 항상 정겨워 보이세요”
“뭐.. 그냥..”
“얼마전엔 흰 곱슬머리 형씨께서 혼자 오셔서 술 드셨었는데, 애인이 있나봐요? 술 먹고 한참 이야기 하더라고요”
나..?
“뭐라고 하더라.. 재수 없지만 때론 자상한 면도 있다고, 얼마전엔 초콜렛 받았다고 자랑하시던데요?”
“그래요?”
주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자 나는 갑자기 그가 급 보고 싶어졌다.
“네, 술 먹곤 갑자기 애인자랑만 주구장창 하던데 아는 사이예요?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듣는데,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그 녀석이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걸 새삼 다시 느껴서 고민하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잊을 정도로 기뻤다. 나는 술 한잔을 들이켰다.
“글세, 나도 잘은 모르지만 재수 없는 건 맞는 것 같네요. 근데, 내 애인이 그 놈 애인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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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오랜만에 거하게 술에 취했다. 계속 술집 주인과 기분 좋게 긴토키 이야기를 해서인지 자꾸 그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긴토키.. 긴토키..
방금전까지 나는 소고녀석의 태도에 대해 분명히 약간의 질투를 느끼고 있었을지 언정, 이 녀석의 행동에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이 녀석에게 은근히 의지하고 있는 존재였다. 소고 녀석도 내가 긴토키에게 받는 따스한 느낌을 카구라에게서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심 안심했다. 그래도 나한테 말은 해주지 이 망할 녀석아.
술을 마시고 둔영에 들어간 부분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그가 많이 보고 싶었는지 꿈에 그가 나왔던 것은 기억이 난다. 어느 때와 똑같이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나는 그런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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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는게 있어서인지, 그는 아침부터 내 눈을 피했다. 답지 않게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았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눈을 피하는 행동이 이 녀석 답지 않았다.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약간은 걱정했는데, 역시나 이 녀석은 나를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 난 녀석이라 그런지 하루하루 이 녀석의 지랄을 받아 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 새끼가 스트레스를 나한테 푸는 것 같다는 생각이야 늘 해왔긴 했지만 어느 날은 유난히 지랄이 심해서 한마디 했다.
“너 요즘 왜 이렇게 심해졌냐?”
내 말에 이 녀석은 그저 내가 마냥 재밌었는지 소리내어 웃었다. 그래. 내가 이런 말을 한다 한들 귓등으로 듣지도 않을 녀석에게 말해서 뭐하냐..
그렇게 지랄을 하다가 갑자기 급 일을 열심히 하는 그가 의심스러웠다. 갑자기 왜 이러지? 수상하긴 했지만 여튼 일은 열심히 하니까 나는 그 태도가 예뻐서 불러서 잔뜩 칭찬해줬다.
“소고 왠일이야? 니 녀석이, 오늘 잘했으니까 맛있는 거 사줄게”
“음.. 그럼 타코야키”
더 비싼 걸 사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타코야키를 얘기하는 이 녀석의 태도가 의아하기도하고, 갑자기 카구라와 있으면서 좀 변했나? 하고 생각한지 이틀 후.. 그럼 그렇지 이 새끼가. 또 다시 사고를 치고 신문 1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웃으면서 브이자를 그리고 찍은 사진이 날 약올리 듯 보여 얄미웠다. 이 자식이 진짜..
불러다가 화를 냈는데, 이 녀석은 그런 날 보고 생글생글 웃었다. 이 녀석이 가끔 이렇게 웃으면서 날 보면 나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웃는 모습이 미츠바와 닮았고, 그래서 나는 이 녀석에게 화가 약간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이 녀석은 그걸 알고 있는 듯 했다.
“잘못했어. 이제 안 그럴게”
“말은”
그 날은 긴토키와 약속이 있었다. 신파치도 없고, 카구라는 저녁에 동네 친구들과 깡통차기를 하러간다고 했다며 나를 집에 초대했다.
‘카구라는 기본으로 깡통차기 하러가면 3-4시간은 안 들어와, 심지어 얼마 전엔 아침에 들어왔다니까? 엉망이 되어서는’
내 짐작으로는 아침에 들어왔다고 한 날은 소고 녀석과 있었다고 곤도씨가 말해 준 날 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굳이 그 둘의 확실치도 않은 이야기를 내 입으로 전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그의 초대에 긍정적인 대답만 했다.
“히지카타씨, 나 가고 싶은데 있어요”
“근데”
“같이가자”
“...어딘데?”
“있어. 오늘 가자, 밤에 가야된 단 말이야”
“오늘? 안돼 나 오늘은 좀..”
“싫어 난 오늘 가고 싶어”
이 화법, 또 시작이다.
그가 무언가를 사달라고 데려가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나와 꼭 가고 싶다 라고 말한 적은 처음이었어서 나는 약간 궁금하기도 하고, 이 녀석의 이런 화법엔 처음에 꼭 태클을 걸었어도 마지막은 항상 그래, 그래 라는 대답만 해왔던 습관이 베어 있어서 인지 나는 긴토키와의 약속보다 이 녀석의 약속에 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긴토키와의 시간이야 앞으로 이 녀석과 보낼 시간보다 많을테니까.
쭉 소고녀석과 같이 있어서 긴토키에겐 문자로 가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 녀석은 기차를 타야 된다며 내 팔을 잡아 당겼는데, 나는 이 녀석이 나를 빨리 오라며 당기는게 내심 좋았다. 기차여행이라- 길게 가는 건 아니였지만 이 녀석과 둘이 가는 건 처음이라 괜시리 뻘줌했다. 이 녀석도 그런지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 밖에서 빠르게 휙휙 넘어가는 풍경의 다양한 빛깔이 이 녀석 눈동자에 여러 가지 빛으로 빛나는게 예뻤다. 빨간 눈. 긴토키와 같은 색이다. 긴토키와도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
“곤도씨도 같이 가자고 하지 그랬어?”
부슈에 간다고 생각나니 곤도씨가 급 생각나서 물었다.
“곤도씨는 안경네 누나 쫓아다니고 있을 거 아냐”
“하긴, 뭐.”
“근데 갑자기 부슈는 왜?”
“가보면 알아”
그가 나를 보고 웃는 모습이 다른 때와는 달리 순진해보여서 좋았다. 그 녀석의 머리칼을 잔뜩 헝클었는데 내 손에 닿은 이 녀석의 머리칼이 복슬복슬한 긴토키와는 달리 굉장히 부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