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11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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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나 깨우고가”
잠들기 전에 내가 말했다.
“왜. 이제 병원에 있으니까 좀 살만하냐? 둔영에서 깨우면 지랄 지랄 하더니”
“원래 그런 거잖아”
“둔영에서나 잘해 둔영에서나. 병원 같은 데에서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지 말고”
“어쨌든!”
내가 다시 말하자 그가 알겠으니까 얼른 자. 나 내일 일찍 일어날거니까- 하고 지친 듯이 말하곤 잠들었다.
자다가 왜인지 모르게 잠에서 깼다. 눈 앞에 보이는 약간 떨어져 있는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는 그 녀석의 모습이 보여 내심 안심했다. 이 녀석이 여기에 와준 것 만으로도 나는 안정감을 찾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얼마 지나지도 않았네. 달빛에 비춰 짙은 녹색으로 빛나는 그의 머리칼이 좋았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이 공간에 그와 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잠이 오지 않아서 한참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잠들어 있는 침대 옆에 놓여있는 낮에 형씨가 사온 싸구려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조차 해보지 않았다. 저 값싼 비닐만큼이나 싸구려 인간이다. 그와 내 사이를 방해 하듯이 우리의 사이에 놓인 그 싸구려 비닐봉지가 괜시리 너무 화가 나서 그것을 신경질적으로 집어들곤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바스락거리며 작게 내는 마찰음이 나를 비웃는 듯해서 욱한 마음에 쓰레기통 채로 밖으로 던져버렸다.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바닥에 닿아 부서지는 작은 마찰음과 봉지 안에 들어 있었는지 유리병 깨지는 소리가 이어서 함께 들렸다. 내가 주스를 즐겨먹는걸 생각하고 주스를 사온 모양인데, 그딴 거 필요 없다고.
다시 자려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히지카타가 감아준 붕대에서 아직도 그의 손길이 자꾸 묻어나 붕대를 감은 손목을 자꾸만 만지작 거렸다. ‘그럼 평생 나랑 살래?’ 그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돌아서 잠이 오질 않았다.
“나 간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화들짝 놀라 안대를 위로 쓱 올렸다. 내가 일어날 줄 몰랐는지 그는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뭐야, 내가 깨운거야? 하고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약간 미안해 할 때 짓는 머쓱한 표정이 너무 좋다.
“할일도 없는데 뭐 하러 일찍 일어나? 그냥 좀 더 자. 퇴원은 좀 있다 오후쯤에 하자. 이따 보자”
나는 그의 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서 깨우라고 한 것이었기에 그가 나가는 것을 보곤 다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괜시리 들떠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이 녀석이 이따 보자 라고 말해줘서 좋았다.
어릴 때 누나가 책을 읽으라고 줘서 억지로 한 두장 읽은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있었던 구절이 하나 떠오른다.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오후 세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나는 그 부분을 읽고 이해가 가지 않아서 누나에게 왜 네시에 오는데 세시부터 행복하냐고 물었다. 누나는 나의 말에 잠깐 고민하더니 그 사람이 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으니까. 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릴 때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 왜 기대해? 뭘 가져 오기라도 거야? 하고 자꾸 물었는데 누나는 그런 나의 질문에 당황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 그 사람이 오면 기쁘니까! 하고 대답했는데 나는 왜 그 사람이 온다는 것으로 한 시간이나 전부터 기뻐하고 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누나의 말에 이 주인공은 세상 참 피곤하게 사네- 라고 중얼거렸다. 결국 그 부분을 읽다가 나는 잠들어 버렸다. 역시 나와 책은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황해 하던 누나가 생각나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시간이 꽤나 많이 지난 지금. 나는 그걸 이해했다. 이런 느낌이었던 거다. 그냥 그가 막연히 던진 ‘오후’라는 단어에 나는 이른 아침인 지금부터 언제인지 모르는 막연한 오후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고 이유없이 즐거웠다. 일어나 햇살이 좋아 밖을 내다 보니 어제 홧김에 밖에 던져버린 쓰레기통의 잔해를 청소부가 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홧김에 저지른 행각이 조금은 미안해졌다. 그렇게 까지 할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욱해서..
두 시쯤인가 병실 문이 열렸다. 나는 그가 왔음을 기대하고 화들짝 문 쪽을 바라보았는데 야마자키였다. 그리곤 이내 약간은 실망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 왔어? 나 오늘 퇴원할건데”
“네 알고 왔어요. 부장님께서 저한테 시키셔서..”
“응?”
“저한테 시키셔서..”
....뭐야.. 내가 별 말없이 그대로 있자 야마자키가 내 눈치를 슬슬 보더니 지금 싫으시면 좀 있다가 가시겠어요? 하고 다시 물었다.
“아냐 지금 가”
나는 그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얼마 없는 짐을 대충 챙겼다. 아침부터 기다리고, 기대했던 시간을 모조리 무시당하고 부정당한 기분이라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씨발새끼. 약간 내 눈치를 보는 야마자키를 뒤로 하고 차에 신경질적으로 올라탔다. 기운 없이 차의 창문을 열고 밖을 한참 주시하고 있자 그런 나를 보고 야마자키가 물었다.
“둔영에 들어가기 싫으시면 더 있다가 오시지 그러세요?”
“그런거 아냐 가자. 가”
나는 여전히 힘없이, 시큰둥하게 말했고 야마자키는 이런 나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였기에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자꾸 말을 걸어오길래 그냥 닥쳐 달라고 말했다. 야마자키는 그냥 내가 피곤하거나, 돌아가기 싫어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가는 길에 뭐 먹고 갈래요? 하고 물었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전환도 할겸 그렇게 하자고 답했다.
“근데.. 히지카타는?”
내가 한참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물었다.
“부장님은 항상 바쁘시잖아요”
아- 알지 그 새끼 바쁜거. 그래도 와야지. 온다고 했잖아. 날 기대하게 만들었잖아. 이 녀석을 어떻게 괴롭힐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나였는데 지금은 이 녀석이 나에게 전과 같은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 녀석이 나에게 전보다는 나를 덜 사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도 정도가 있다고, 둘 다 좋아하는 마음이야 같지만 그 마음에도 약간 정도가 있다고 하듯이 그 마음의 우열에서 나는 이 녀석에게 패배한 거다. 전에는 이 녀석이 날 더 좋아했다면 지금은 내가 조금, 아니 조금 더 많이, 생각 이상으로 이 녀석을 더 좋아하고 있는지도.
“야마자키, 너는 어떤 사람이 좋냐”
“여자요? 뭐. 남자들은 다 똑같지 않아요? 예쁜 여자가 좋죠”
“이런 스타일은 어때? 존나 멍청하게 생긴데다, 파마머리에 실없는 소리도 자주하고, 나이값도 못해. 또...”
“그렇게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데,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해요”
내 말에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나 하고 야마자키에게 물었는데 그가 이렇게 부정적으로 대답해줘서 안심했다.
“근데 또 모르죠, 콩깍지 씌인 미친 인간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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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곤도씨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 이 녀석을 내가 이렇게 깊게 생각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누나가 세상을 뜨기 전엔 진심으로 얼굴도 쳐다보기 싫은, 나를 방해하며 나의 소중한 것을 다 빼앗아가는 재수 없는 새끼였다. 나를 아침에 깨우는 것도 싫고, 상관이라서 내가 이 녀석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도 싫고, 곤도씨가 이 새끼를 챙기는 것도 싫고... 그래도 함께 지낸 세월이 있는지라 미운 정이었는지 함께 있었을 때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누나를 버렸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은 응어리로 남아 항상 그를 싫어했다. 보통 자신을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 쪽 역시 나를 같이 싫어하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그런 것 없이 항상 내 괴롭힘에 당해주고, 필요할 때 그에게 가서 친절하게 웃으면서 졸라대면서 말하면 그는 그런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그를 괴롭혔던 것 같다. 나를 싫어하지 않아서. 왜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나는 니가 이렇게 싫은데, 왜 착한척이야? 라는 부정적인 생각과 이래도 니가 나를 싫어하지 않아? 라는 시험적인 시선도 있었으나, 그는 그런 나의 시선을 무시하듯이 조금 툴툴 거리긴 해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의외였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처음 봤다.
그리고 누나가 세상을 뜨고 나서부터 그를 대하는 나의 감정이 나도 모르게 미세하게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다. 히지카타의 마음이 내게도 깊게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슬비처럼 내가 젖는지도 모르게 아주 조금씩 나에게 스며들어 결국 나는 그에게 흠뻑 젖어버렸다. 다시 돌이킬 수도 없이.
그렇게 그를 괴롭히는 것에 즐거워하면서 지내기를 몇 년, 이 새끼 잘 되는 꼴 보기 싫어서 방해하며 지내기를 몇 년, 이런 것에 익숙하던 내가 이 녀석 없이는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적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었을지 이 녀석은 모를 것이다.
둔영으로 돌아왔을 때 히지카타는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새끼에게 무엇 하나 지고 있지 않은 내가 그 녀석에게 졌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그 녀석을 무심히 지나쳐 가는데 나를 발견한 히지카타가 나를 보고 말했다.
“왔어? 피곤할 텐데.. 쉬어”
그 말을 하나 툭 던지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서 바쁘게 일을 하는데 난 그가 나에게 무심하게 말을 걸어주는 것도 좋고, 그 답게 집중해서 일하는 모습도 좋아서 방금 전까지 나의 기대를 져 버려 이 녀석에게 잔뜩 화가 나있던 마음이 아이스크림 녹듯이 사르르 사라졌다. 방에 돌아와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 녀석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흘러 넘쳐서 그가 일하고 있는 집무실으로 천천히 걸었다. 다른 대원들은 없고 이 녀석 혼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들어가자 내 발소리를 들은 그가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왠일이냐며 묻고 다시 잡고 있던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히지카타씨 괴롭히러 왔죠”
“지금 바쁘니까 좀 있다가 괴롭혀라”
나는 그의 책상 맞은편에 앉아서 턱을 괴고 그를 한참 쳐다봤다. 무언가에 열중하는 이 녀석은 꽤나 멋있다. V자의 머리카락이라며 놀려 댔던 머리카락도 좋고, 청회색 눈동자의 색이 가끔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겨서 좋고, 하지만 나를 볼 땐 한없이 따뜻해서 좋다. 날렵한 콧날도 좋고, 담배를 물고 있는 입도 섹시해서 좋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가끔 복잡한 듯한 표정을 짓는 그 표정도 좋다.
“뭐야. 왜 그렇게 빤히 봐?”
“참 뭣같이 생겼네- 라고 생각하던 참이예요”
“참나”
그가 짧게 말하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는데, 나는 그가 나를 조금 더 봐줬으면 해서 장난으로 서류를 가리기도 하고 열중하는 그의 앞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도 하면서 옆에서 그에게 장난을 걸었다.
“좀 가만히 있을래? 나 지금 진짜 바쁘거든?”
“좀 가만히 있을래? 나 지금 진자 바쁘거든?”
내가 그의 말투를 흉내내서 말하곤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심심해? 좀 있어봐. 나 이거 좀 끝내게”
나는 그의 말에 하던 장난을 멈추고 다시 그를 빤히 쳐다봤다.
“기분 나쁘게 왜 이렇게 실실쪼개냐?”
응?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나보다. 새끼 부끄러우니까 말하는 꼴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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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졌다는 걸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인정한 나는 그 날부터 태도를 바꾸었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 당연히 이런 나의 마음을 알 것이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이런 나의 마음을 인정했는지.
“순찰 같이 가자”
“...뭐... 그래”
운전석에 앉으려고 문을 열자 그가 오늘은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며 나를 말렸다. 그리곤 장난스럽게 환자 대우라는거다- 하고 살짝 웃어보였는데 옛날이라면 그런 이 녀석의 태도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욱해서 화를 냈을지도 모르는 그의 행동이 지금은 그저 좋았다.
나를 걱정해줘서 좋아. 네가 나를 생각해줘서 좋아. 네가 나를 위해줘서 좋아.
다른 대원들에겐 그렇지 않은 니가 내 앞에선 물러지는 것도 좋아. 좋아. 좋아. 히지카타 니가 너무 좋아.
한참 순찰 중 그가 핸드폰을 슬쩍 확인하더니 잠깐 어디 좀 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순간 형씨가 떠올랐다.
“어디?”
“아니.. 아는 사람이랑 약속 있어서”
“누구??”
“있어. 넌 말해도 몰라”
“그니까 누구”
“...”
그가 약간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말했다.
“왜이래?”
“나도 같이가”
내가 두 눈을 똑바로 치켜뜨고 그를 쳐다보면서 말하자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 아냐 다음에 보자고 하지 뭐”
히지카타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연락을 취하는 듯했다. 뭐? 다음? 다음에 본다고? 나는 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삐뚤어져 있었다. 그리곤 한참 생각하다가 히지카타의 낚아채어 최근 연락한 명단을 열어보았다. 나의 그런 돌발행동에 놀랐는지 아니면 반응하지 못했는진 모르겠지만 히지카타는 다시 빼앗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아까 연락을 취했는데 그 시간 주고 받은 연락 기록이 말끔하게 없었다. 받은 것도, 보낸 것도 나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히지카타는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조금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나를 보았다. 히지카타가 형씨와 연락을 하고 있었다는게 더 확실해졌다.
“내놔 임마”
그는 내 손에서 제 핸드폰을 쓱 빼갔고, 나는 그런 그를 한참 쳐다봤다.
그가 형씨와 몸을 섞고 있는걸 알았을 때 형씨에게 화가 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반대로 히지카타를 약간은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도 맞지만, 내가 그 둘의 관계를 알아버린 이상 히지카타는 그 섹스파트너를 정리하는게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과거의 일이라면 눈 감아줄 수 있다. 나는 이 정도로 너에게 실망을 한다거나, 이런 일로 인해서 너를 싫어하거나 하지 않아. 이미 녀석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데에 많은 세월을 썼고, 나에게 더 이상 이 녀석을 싫어할 기력도, 이유도 별로 없었다. 그렇기도 하지만 가장 큰 건 이 고집스러운 내가, 이 내가 아프더라도 이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를, 니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크게, 더 많이 좋아해버린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 괜찮아. 나를 건드리지 못해서, 나를 안고 싶은 마음을 참기 위해서 형씨를 애써 나로 생각하면서 안았을 거니까.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
말을 할까 고민을 했지만 내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 반듯한 이 녀석이 얼마나 수치스러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이 녀석을 위해서 이런 생각까지 한 다는 것에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말을 하는 것은 조금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매일 그에게 순찰을 같이 가자고 졸랐다. 그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만드냐며 투덜댔고, 안된다고 한 적도 있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나는 내 순찰 구역을 무시하고 그의 구역에 찾아갔다. 왜 여기에 있냐며 화를 내는 녀석의 말엔 그저 웃으면서 그니까 순찰 같이 하자고 했잖아요- 라며 말하면 지긋지긋하다면서 고개를 저었고, 나는 그런 그의 행동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옆에서 한참 웃었다.
하루는 같이 순찰을 하다가 목이 말라서 큰 카페로 들어갔다.
“넌 주스 먹을거지?”
그는 당연하게 확인 차 나에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엇을 먹을지 잘 알아서 나에게 확인 차 묻는 그 태도가 너무 좋다. 음료를 받아 자리에 앉아서 그가 나에게 물었다.
“요즘 왜 이렇게 나만 따라다녀?”
“히지카타씨 괴롭히는게 재밌으니까요”
“그거 참 성공적이네”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새끼. 다 알면서 확인 차 물어보긴.
히지카타와 둘이서 소소하게 둔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나. 곤도씨 이야기. 대원들 이야기를 하는데 히지카타의 폰이 울렸다. 히지카타는 울리는 핸드폰을 급하게 받더니, 내 앞에서 당당히 받아들지 않고, 핸드폰을 들곤 밖으로 나갔다. 내 앞에서 못 받는 전화는 유일하다. 형씨의 전화다.
왜 전화 했을까? 왜 연락을 주고 받는 걸까? 전화해서 무슨 소릴하고 있을까?
히지카타가 전화를 끊고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왔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표정이 어두웠다. 히지카타는 나에게 왜 표정이 안 좋냐고 물어올 거야.
“표정이 왜그래?”
봐. 나는 그가 내 생각대로 말해줘서 좋았다.
“아무것도 아냐”
“소고, 나 잠깐 가봐야 할 것 같다. 너 천천히 마시고 와”
급한 듯 말하면서 겉옷을 챙기는 그의 태도가 싫어서 내가 물었다.
“어디 가는데?”
“아니. 잠깐... 암튼 좀 있다 보자”
황급히 나가려는 그를 보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그의 팔을 잡았다.
“가지마”
나의 말에 히지카타는 약간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잠깐이면 돼. 조금만 기다..”
“싫어! 내가 왜 기다려? 너 지금 나랑 있잖아. 내가 먼저잖아.”
“...왜 이렇게 어리광이야? 잠깐이라니까?”
그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가”
내 말에 히지카타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금방 올게 하고 나를 달래듯이 나직히 말했다.
“너, 이 가게 나가면 나 이 건물 부숴버릴 거야”
그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닥치는대로 다 죽여버릴 거야”
나도 모르게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는지 그를 붙잡으려 떠오르는 말을 아무렇게나 뱉었다. 하지만 말투는 침착하게 했다. 그리고 그럴 리 없지만 만약 그가 간다면 진심으로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여버려야겠다는 지극히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가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사랑하는 내가 자신을 잡았으니까.
내 말에 그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다가와서는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아야....왜 때려..”
“말이라도 그딴 소리 하지마 이 녀석아. 니가 그런 소리하면 진짜로 실행할 것 같아서 무서워”
그는 다시 내 앞에 앉았다. 나는 그런 그의 행동에 만족해서 싱긋 웃어보였다.
히지카타. 다시는 나랑 있을 때 그런 섹스파트너 따위 잠깐이라도 볼 생각 하지마. 아니지. 이제 다시는 볼 생각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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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소고가 읽었다는 책 구절은 <어린왕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