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꼬리표 完

[히지오키긴] 꼬리표 14

burts : 버츠 2015. 8. 19. 13:50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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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씨 오늘은 어디로 가요?”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히지카타가 방에서 나오자마자 웃으면서 그를 맞이했다. 나를 보고 흠칫 놀라는 그를 보고 난 여전히 생글생글 웃었다.

  

“어... 너 오늘.. 야마자키랑....”

 

“싫어. 히지카타씨랑 갈래요”

 

히지카타는 나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못 이기는 척 당번을 바꾸어주었다. 나는 차에 타서 이동하면서 오늘 점심은 연어덮밥이 먹고 싶다며 자주 가는데 말고 다른 데에 가보자고 졸랐다. 히지카타는 그날따라 굉장히 나를 어색하게 여기는 듯한 눈치였는데, 그것은 어제 저녁 나에게 했던 말에 대한 죄책감에 의한 것일 것이다.

  

“나. 오늘 점심에 약속이..”

 

“누구랑?”

 

“....아... 아니다, 너랑 먹지 뭐”

 

그의 대답에 만족한 나는 밝게 웃어보였다. 나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장난도 치고, 히지카타를 속이기도 하고, 대놓고 일하기 싫다고 투정도 잔뜩 부렸는데 다른 날 같으면 화를 내고 혼내야할 녀석이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나의 어설픈 농담과 장난에 약간은 어색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저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와 같이 히지카타씨 곧 죽는거 아닙니까? 하고 말하며 웃었는데 그 말에도 별 말없이 그냥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을 때, 히지카타는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길래 내가 입맛이 없어? 하고 상냥하게 물었다. 그는 그런 건 아니라고 대답하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나의 말에 억지로 먹듯이 몇 술 뜨던 그가 잠깐 망설이더니 말했다.

  

“....소고,... 어제...”

 

“응”

 

“...어제 했던 말.. 기억나지..?”

 

“그럼, 술 먹은 것도 아니고 멀쩡한 상태였는데”

 

나는 그의 말에 웃어보였다. 전날 저녁 진실로 힘들게 어느 때보다 긴긴 밤을 보냈지만, 이 녀석 역시 나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알기에 네가 마음에 없는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 행동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내 말을 들은 그는 그냥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죄책감에 의한 복잡한 표정의 그를 보고 나는 말했다.

  

“뭐야. 왜 그래? 난 히지카타씨에게 그 정도를 가지고 실망하지 않는다니까요?”

 

다시 떠올려도 전날의 대화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지만 애써 잊으려 했다. 그런 대화 따위 의미 없었다. 이 녀석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진실하나. 그것만 있으면 무엇이 어떻게 되던 상관없었다. 히지카타가 형씨와 사랑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뱉었지만 그의 진심은 나를 향하고 있으니까. 나에게는 보인다. 그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있는 운명의 실이. 그렇기에 나는 조급할 필요도 없고, 서두를 필요도 없다. 내가 이 녀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듯, 이 녀석도 내가 없으면 히지카타가 아니다. 봐. 그 증거로 히지카타 네 얼굴이 괴롭다는 듯이 힘겨워 하고 있잖아. 나에게 나 좀 구해줘. 라고 말하듯이 애처로운 빛깔로 빛나고 있잖아.

  

  

  

  

  

“나. 가봐야해”

 

순찰이 끝날 무렵 그가 나에게 말했다.

  

“어딜?”

 

“...알잖아”

 

“몰라. 어디 가는데?”

 

나는 그가 어딜 가려는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긴토키...에게 가야해”

 

“긴토키?”

 

순간 그 이름이 누굴 가리키는지 잠시 생각했다. 형씨였다. 네 녀석이 언제부터 형씨를 이름으로 불렀어?

  

“왜? 왜 가는데?”

 

“어제 다 얘기했잖아”

 

“근데?”

 

“그래서 가봐야 해”

 

조급해하지마. 조급해하지마 하고 속으로 아무리 주문을 외워도 나의 소유욕과 독점욕은 좀처럼 다스려지지 않았다. 약자처럼 말이야. 싸움에서 지는 약한 녀석들의 몇 가지 공통점 중 하나는 조급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강한 사람들, 항상 이기는 나 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침착하고 숨을 끊어 놓기 직전까지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그것이 이기는 사람이다. 히지카타는 나에게 그런 말을 몇 번 해줬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넌 싸움을 앞에 두곤 항상 침착해서 가끔 나는 너를 보고 그런 것을 배우려해. 라고 말했었다. 그런 내가 패배자처럼 조급하려 하다니. 꼴사납게 말이야.

  

“...안가면 안돼?”

 

“안돼..”

 

그가 오늘 처음으로 약간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 머리를 살짝 헝클어 놓으며 이어서 말했다.

  

“다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그래도 이렇게나 이해하려고 노력해줘서 너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몰라. 나는 네가 나를 피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그의 말에 천천히 시선을 그의 눈동자로 옮겼다. 따스했다. 다녀올게, 둔영에서 얌전히 있어. 사고치지 말고. 그는 웃으면서 그렇게 홀연히 나에게서 서서히 멀어졌다. 왜 더 강하게 잡지 못했을까. 나는 둔영에 텅 비어버린채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서는 시트자락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그를 기다렸다. 내 눈앞에서 사랑하는 나의 연인과 그를 나에게서 빼앗으려는 형씨가 골목에서 봤던 그 장면을 재현하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선명하게 재생되고 있다. 퇴폐스러운 새빨간 혓바닥으로 그의 목덜미를 낼름거리면서, 더러운 긴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하나하나 벌레가 기어 오르듯이 쓸어내리면서, 마치 뱀처럼 그의 몸을 감싸안아서 금방이라도 죄어 죽여 버릴 수 있을 만큼 소름끼치고 위협적으로 그를 감아 올리는 그 모습. 씨발 그 더러운 손 치워! 나의 연인에게서. 멋대로 내 것에 손대지마!

  

내가, 이 내가, 양보할 줄도 모르고 고집 쎈 내가, 나의 것을 남과 공유한다고? 난 한번도 나의 것을 누군가와 공유해본적도 없고, 남의 것을 빼앗았으면 빼앗았지, 빼앗겨 본 적은 없다. 처음으로 겪는 이런 분노에 나는 진심으로 한 때는 친구였던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죽인다면 결코 편하게 죽이지 않을 거야. 내 것에 손을 댄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도록. 손가락 발가락 마디마디를 무딘 가위로 천천히 자르면서. 무뎌서 잘라지지 않는다며 거칠게 가위질을 해대면서, 혹시나 기절하면 찬물을 끼얹으면서 잠들지 못하도록 정신을 깨우면서, 혹시나 혀를 물면 안 되니까 입에 제갈도 물려놓고, 피를 많이 흘려서 죽으면 곤란하니 가끔은 붕대로 자른 손가락 마디마디, 발가락 마디마디를 백의 천사처럼 상냥하고 자상하게 치료도 해주면서, 그 공간에서 역겹게 진동하는 피 비릿내가 익숙해질 정도로. 가끔 더 극한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 형씨, 사람의 눈이 두개골의 반절이라는데 궁금하지 않아요? 하고 물으면서 그의 눈에 경계에 집게를 서서히 눌러 넣으면서. 덜덜 떠는 그의 공포가 정점에 다다른때면 에이- 장난이예요- 라고 웃으면서 왜 쫄아요? 하고 상냥하게 말해주고 싶다. 죽이는 건 최대한 늦추면서 왜 이러냐고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은 채 스스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때까지.

  

누나, 어떻게 하지 나? 누나도 잘 알고 있는 나의 절친한 친구였던 형씨가 나의 히지카타를 자꾸 나에게서 빼앗으려고 해.. 물론 히지카타는 나를 떠나지 않겠지만.. 근데.. 나 약간은 불안한가봐.. 내가 채워줄 수 없는 걸 형씨가 채워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아니 이미 미쳐버렸는지도...

 

안 돼. 친구를 죽인다거나 하는 그런 못된 말, 하는 거 아니야.

  

응.. 죄송해요 나도 모르게 이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너의 그런 모습을 토시로씨가 알면 좋아할까? 사랑하는 니가 너 자신의 친구였던 사람에게 칼을 들이대고 괴로워할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진 않을거야.

  

내가 괴로워 할 거라고?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누구나 상처를 주면, 준 만큼 괴로워하게 되어있어.

  

누나가 내 옆에 나란히 누워서 마지막 날처럼 나의 뺨을 가만히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 순간은 조급해하고, 불안해 하고 있던 나 자신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반성했다.

  

왜.. 내 옆에 없어요 계속 있어주지.. 그럼 나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내 자신이 무서울 정도로 불안하고 조급해하지 않았을 텐데..

  

  

  

  

  

  

  

  

  

-

불현 듯 나는 벌떡 일어났다. 연보랏빛으로 빛나고 있는 새벽이다. 밖에선 조용히 울고 있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이슬이 내렸는지 촉촉하게 젖은 습기 냄새가 새벽이라는 시간을 알려주었다. 방금 전까지 누나가 옆에 있는 듯 했는데 꿈이었던 모양이다. 다시 한번 누나가 내 옆에서 나를 조용하게 다그쳐주었으면, 내 옆에서 전처럼 내 뺨을 가만히, 따스하게 쓸어내리면서 그러면 안 돼 하고 따스하게 말해주었으면. 새삼스럽게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이, 내가 세상에 혼자 있다는 것 같은 느낌이 다시 한번 사무쳐서 뒤척거려도 잠이 오지 않았다. 히지카타.. 들어 왔으려나. 그가 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내 그걸 참아낼 수 없었다. 불안정한 상태의 나는 지금 당장 너에게 달려가야 했다. 조용히 밖을 나와서 그의 방 쪽으로 천천히 걷는데 삐걱 거리는 마루의 나무마찰 소리가 새삼 크게 들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 삐걱- 하고 조용한 새벽을 흠집내고 있다. 그의 방앞에 다다라서 문을 살짝 열었을 때 이미 돌아와서 곤히 잠든 그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잠들어 있는 그의 품 속으로 와락 파고 들었다. 나 때문에 잠에서 깬 그가 눈을 비비며 나를 보고는 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왜 그래? 하고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팔로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가슴에 파고 들고 싶어 얼굴을 부벼댔다. 잠시 동안의 그의 부재 탓인지, 그의 존재가 텅 비어버린 내 안에 다시 꽉 차 올랐다는 그 기쁨과 안정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형씨를 만나고 왔다는 것에 대한 질투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다. 이 녀석 앞에서 죽어도 눈물 같은 건 다시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 날은 내가 누나의 장례식장에서 울었던 것 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품에서 조용히 흐느껴 울었다. 그는 왜 그러느냐고 묻지 않고 그냥 가만히 가만히 떨리는 내 어깨와 등을 가만히 다독여주었다.

  

“히지카타..”

 

“응”

 

“히지카타...히지카타...”

 

“응..”

 

“히지카타...”

 

“응..”

 

“...나.. 혼자 두지마..”

 

“..”

 

“...흐윽..나 너무 불안하단 말이야... 미칠 것 같단 말이야... 흑..”

 

나의 울음에 묻혀서 발음이 너무 흐려서 그가 나의 말 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울먹거리고 있어서 제대로 듣지 못했을지도. 그는 말 없이 나를 자상하게 다독여 주고는 늦었으니 자자고 말했다. 꽉 붙들은 나의 팔을 떼려고 나의 팔을 잡았으나 나는 그런 그의 행동에 반항하듯이 더욱 꽉 그를 껴안았다.

  

“침구 꺼내야 되잖아”

 

나는 그의 말에 싫다는 의사표현으로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안아줘.. 히지카타”

 

오늘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그에게, 나를 사랑하는 그에게 나를 다 내어주고 싶었다. 나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겨주는 너라면, 나와 평생을 함께할 너라면 상관없어. 마음대로 해도 좋아. 그의 가슴팍에 파붇고 있던 얼굴을 들어 그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보자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내 눈에 고인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내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하고 말했다.

  

“어째 점점 더 어린애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아니지, 넌 어릴 때도 이런 모습은 보인 적 없었는데..”

 

나의 앞 머리카락을 옆으로 살짝 쓸어넘기면서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살짝 닿은 그의 손끝이 따스해서 좋다.

  

“자자. 늦었어”

 

그가 다시 말했다. 나는 꽉 끌어안고 있던 팔을 그제야 서서히 풀었다. 마주 보고 앉은 그가 너무 좋아서 그의 입술에 당장이라도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가 침구에 눕자 나는 그의 옆에 누워서 다시 그의 품속에 기어들어가 그의 어깨 쯔음에 머리를 기대고 다시 얼굴을 부벼댔다.

  

“... 힘들구나..너”

 

“....”

 

“..나 때문이지?..”

 

나는 말없이 이 녀석의 어깨를 작게 깨물었다. 나를 안아달라니까..

  

“..미안해”

 

뭐가, 뭐가 미안한데. 나도 네가 나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하지만 조금은 거칠게 사랑해줘도 상관없어 너라면.

  

혼자 있을 땐 시계바늘이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던 이 밤이, 너와 함께라면 너무 빨리 가버려서 아쉬워. 내가 괜찮다는데도 이 녀석이 나 자신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더 소중히 여겨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좋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런 네 행동 얄미워. 답답해. 내 손에 닿은 이 녀석의 심장소리가 두근- 두근-하고 작게 뛰는 것이 기분 좋았다. 이런 소리였구나. 네가 나와 있을 때.

  

“너, 자꾸 이렇게 이상하게 행동하면 내가 너를 어린애라고 생각 하지 않을 수 없어.”

 

  

칫, 그래서 안아주지 못하겠다 이거야? 보통은 어릴수록 좋아하던데. 하여간 꼰대새끼. 하지만, 그래서 내가 너를 더 사랑하는 거야. 사랑해 히지카타 너의 이런 모습까지 전부 다 포함해서. 나는 다시금 그의 품 안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싶어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의 살 냄새가, 그의 숨소리가 안정제 마냥 나를 따스하게 잠들게 만들었다.

  

  

  

  

  

  

  

  

  

-

나는 꿈속에서 누나가 내게 했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내가 형씨를 완벽하게 이길 확률도 반반이거니와, 내가 그런 행동을 취한다면 분명 히지카타도 곤란하게 생각 할 것이다. 그는 내가 착하고 정의로운 경찰이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적을 사랑하라, 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을 싫어한다면 그를 너의 편으로 만들어라. 물론 나에겐 절대적으로 불가한 이야기지만 이번 만큼은 약간은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유명한(히지카타가 나에게 쿠키를 사다주었던) 제과점에 들어가서 형씨가 좋아할 만한 딸기 케이크를 골랐다.

  

“신센구미에서는 이 케이크가 유행인가보네요?”

 

주인이 나에게 살갑게 말했다.

  

“글쎄요”

 

“전에 히지카타씨도 이 케익을 사가시던데. 그 때가 발렌타인데이여서 우리 직원 중 짝사랑하고 있던 점원 한명이 히지카타씨에게 애인이 생긴 것 같다며 엄청 힘들어 했었거든요”

 

착각하긴, 히지카타가 여기서 산건 이 케익이 아니고 쿠키였어요 아줌마.

  

“어때요? 친하니까 아시죠? 혹시나 히지카타씨가 애인하고 헤어진다면...”

 

“헤어질 일 없어요”

 

나는 주인이 포장해준 과자 포장지를 웃으며 받아들곤 말했다.

  

“히지카타가 미치게 사랑하고 있거든요”

 

자신의 애인인 나를.

  

  

  

그 날은 특별히 타바스코 토핑도 추가하지 않은 채로 그것을 들고 형씨의 집을 찾았다. 초인종도 누르지 못하고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는데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면서 여전히 동태 눈 깔을 한 형씨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말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셔”

 

나는 그런 형씨를 보고 그냥 웃으면서 케익 상자를 들어보였다.

  

“오늘은 타바스코 안 넣은 거예요”

 

“음.. 그게 더 무서운데?”

 

형씨는 출출해서 편의점에 가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다며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신파치는 오늘 오지 않는 날이고, 카구라는 깡통차기 하러 갔다고 말하며 쇼파에 앉았다.

  

“저한테 화나셨죠? 죄송해요 그땐”

 

나는 다시 웃어보였다.

  

“대신 이거 사왔으니까 풀어요”

 

진심이 아니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의 난 너무 가증스러웠다. 내 눈앞에 있는 형씨 만큼이나.

  

“오- 나 이거 제일 좋아하는데. 어떻게 알았어?”

 

“그냥 형씨가 딸기우유 먹는 거 몇 번보고 산거예요”

 

“난 또”

 

형씨가 케익을 한입 떠서 입에 넣고는 말을 이었다.

  

“히지카타가 말한 줄 알았어”

 

“착각도 가지가지하시네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내가 우스워?

  

“진짜 사과하려고 이런 거 까지 사서 일부러 왔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야”

 

너도 먹어, 하고 포크를 내 앞에 내미는 형씨. 아아- 정말이지 가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단 말이야. 형씨도 내가 싫죠? 지금 내가 가증스럽죠? 케익을 한 입 입에 떠 넣었다. 우웩, 토할 것 같아.

  

“뭐. 크게 다른 건 없고. 정말 사과 하러 온 거예요”

 

나는 포크를 옆에 얌전히 내려놓고 여전히 웃는 얼굴을 보였다.

  

“카구라 가지고 그딴 소리 한 건 재수 없지만, 생각해보니 넌 원래 그런 녀석이었어. 히지카타도 니가 큰 뜻은 없었을 거라고 하더라 뭐.. 어쨌든, 나도 미안했어”

 

히지카타 이야기 자꾸 하지마.

  

“.. 그리고 히지카타에게 들었는데. 우리 사이 알았다며?”

 

그의 말에 나는 웃음기를 거두고 그를 쳐다보았다.

  

“니가 무슨 심정으로 나를 볼지도 대충 알 것 같아. 네 누나에게 소개까지 시켰던 내가 히지카타와 그런 사이라는게 좋은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거.. 나도 알아. 나도 갑작스럽게.. 그 녀석을 사랑하게 됐어.. 내가 먼저 널 찾았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그딴 소리 들으려고 여기 온 거, 아닌데요”

 

형씨는 나의 말에 작게 미안. 하고 말하고는 별 말 없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진심인지 연기인지 모르게 나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면서 약간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거 진짜 가증스럽다니까... 어울리지도 않게 미안한 척, 나를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 하지 말란 말이야.

  

“형씨.”

 

“응”

 

“히지카타에 대해서 잘 알아요?”

 

내가 나의 증오심을 간신히 누르고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나의 질문에 형씨는 그냥 별 표정없이 날 쳐다보았다.

  

“나는 히지카타를 오랜시간 옆에서 봤잖아요 그래서 이 녀석이랑 나는 서로 모르는 게 없어요”

 

“그래”

 

“그 녀석이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알아요?”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음.. 그 녀석이 좋아하는 색도 있었나?”

 

“응. 있어요. 술은 몇 살 때 처음 마셨는 줄 알아요? 술버릇이 몇 개인지, 또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요?

  

“...”

 

“가장 아꼈던 물건이 무엇이었는 줄은 알아요? 그걸 언제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어땠는지, 가족은 몇 명이었는지, 글씨체는 어떤지 알아요? 급하게 쓸 때와 또박또박 쓸 때 어떻게 다른지 알아요? 언제부터 책을 읽고 공부했는지 알아요? 처음 읽은 책이 무엇 이었는지 알아요? 그걸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요? 담배는 언제부터 폈는지 알아요? 왜 피우게 되었는지 알아요? 원래 커피 같은 거 굉장히 싫어했던 건 알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아요?”

 

내 수 많은 질문. 사실 더 물어볼 수도 있었으나 바로 떠오르는 게 없어 이만큼만 물었다. 나의 일방적인 질문 공격이 끝나고 나를 쳐다보는 형씨의 눈빛이 약간은 바뀌어 있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모르죠? 아무것도. 그 녀석의 모든 걸 알고 있는 내가 부럽죠?

  

“아..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형씨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아들인줄 알았더니 아들이 아니었네”

 

“아들?”

 

“본처인 줄 아는 시누이정도 되려나..”

 

이내 우습다는 듯이 소리내서 웃었다. 웃겨? 그의 여유있는 웃음에 나는 다시 확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오키타군, 당연히 니가 나보다 잘 알겠지. 오랜 세월 함께 했으니까. 그래, 사실이야. 니가 방금 질문한 것에 대해서 난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나는 그의 답은 예상했으나. 형씨가 그에 대해서 나보다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딱히 화가 난다거나 하지 않고, 쉽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네 말대로 하나도 몰라. 근데? 그래서?”

 

“...”

 

“반대로 말해볼까?”

 

“...?”

 

“아- 이런 이야기 하면 히지카타에게 잔소리 들을 텐데”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어서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꼬맹아. 너 그 녀석 성감대가 어디인 줄 알아?”

 

........... 씨발. 다시 형씨는 내가 가장 증오하는 그 때, 그 골목길에서 봤던 외설스러운 형태의 인간으로 내 앞에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무슨 말을 했을 때 가장 흥분하는 줄 알아? 격정에 다다랐을 때 어떤 소리를 내는 줄 알아? 참나- 표정봐봐. 섹드립은 잘치면서 이런 이야기엔 왜이렇게 질색해? 아이고- 미안 너무 어른들의 이야기지? 그만 할게”

 

형씨는 내 표정을 살피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웃음을 보고 나는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표정에 그대로 드러낸 내 자신이 수치스러워 난도질 하고 싶었다.

  

“오키타. 너와 내가 알고 있는 히지카타가 다르듯이, 너와 나를 향한 이 녀석의 감정도 달라. 누나에게서 내가 그를 빼앗았다고 생각해서 내가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그냥 조금은 이해해주라. 우리 서로 진짜 많이 사랑하고 있어”

 

사랑..? 우리..? 너랑 히지카타..? 미친. 히지카타와 엮어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나 하나야!

  

나는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내 눈앞에 있는 은빛 포크를 집어 들고 나도 모르게 그를 찌르려 달라 들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공격은 그가 내 손목을 가볍게 저지해서 끝났다. 형씨의 여유로운 표정을 본 순간 나는.. 알았다. 졌다. 난 이미 조급하고, 너무나 불안해 하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그 녀석의 모습이라니.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오키타. 포크는 음식을 먹는데 쓰는 물건이지 이렇게 사람을 공격하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야.”

 

형씨는 내 손에서 포크를 빼앗아서 내가 사온 딸기 케익의 윗부분에 있는 딸기를 보란 듯이 콕 찍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내 눈앞에 있는 딸기케익을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그걸로도 화를 삭히지 못해서 씩씩 대고 있다가 말했다.

  

“형씨.. 히지카타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예요”

 

“알아”

 

“알면서 왜..”

 

“너에게만 소중한 게 아니야”

 

“...뭐라고요?”

 

“나에게도 소중하다고.”

 

역겨워. 그런 더러운 관계를 두고 ‘소중’이라는 단어를 남발하지 마.

  

“네 누나 때문에 그런 것 만은 아닌가보네.”

 

형씨는 여전히 나와는 반대로 여유있게, 어째서 인지 승자의 여유를 부리면서 심지어 약간 우습다는 듯이, 그리고 나를 비웃는 듯이 말했다.

  

“에휴 히지카타 녀석, 역시 잘못 가르쳤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