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융해점 完

[카무오키] 융해점 11 完

burts : 버츠 2015. 11. 21. 18:15
 

모노님께서 그려주셨어요ㅠㅠ 너무 예쁘지 않아요?ㅠㅠ

너무 좋아서ㅠ행복사ㅠㅠㅠ!!

 

 
 
 
 

 
 
 

 


비릿하다. 피맛은. 쇠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한 것이 핥으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러진다. 맛이 없다. 냄새 역시 비릿하다. 피 냄새를 계속 맡고 있노라면 속이 머슥머슥해서 역겹기 그지없다. 지금이야 익숙해졌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지만 어릴 적 어린아이의 눈으로 처음 시체와 그 옆에 흥건한 피를 봤을 때는 역겨움에 안색이 파리해져선 시선을 피했었다. 그냥 무서웠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그리고 죽음과 동반한 핏빛 액체가 스멀스멀 바닥을 적시며 기어 나오는 것도. 그날 밤엔 흥건하게 고여있던 새빨간 피웅덩이의 잔상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한없이 뒤척였던 기억이 난다. 맞아. 그런 시절도 있었지. 그리고 조금 나이를 먹고서 에도로 와선 내 손으로 손수 베어서 피가 흥건해진 것을 봤을 때는 칼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면서 흥분할 정도로 좋아했다. 사람 몸에서 곧 바로 나올 때 발하는 매력적인 붉은빛!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검붉게 바래져 메말라 붙어버리는 것 역시 참 예쁘다. 핏빛은 항상 사람을 흥분하게 만든다니까. 
 
이 악당도 그렇다. 처음엔 공포로 다가와서 나를 짓눌러놓았고, 나도 모르게 이 녀석에게 기대면서 무뎌진 나는 서서히 난 그 공포에 익숙해졌다. 그 이후엔 남들이 흉하게 볼지 언정, 그 악한 기운을 가득 띄고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 녀석과 나는 어디서부터 인지 언제부터인지, 왜 인지 모르게 서로 사랑에 빠진다. 악당, 너는 이렇게 사악하고 순수해서 좋아.

피로 물들어버린 그 밀실 아닌 밀실에서 우리는 그 고작 며칠 못 본 것에 대한 회포를 풀 듯이 뒤엉켜 한참을 키스했다. 나도 이 녀석도 목마른 사람처럼 허겁지겁 서로의 입안의 촉촉함을 느끼는데 급급했다. 엘리베이터 벽으로 쿵 하고 거칠게 부딪치면서도 싫지 않았고 나 역시 그 녀석을 절대로 나에게서 떼어놓지 않을 것처럼 껴안고서 이 녀석을 느낀다. 거칠다 못해 포악한 그의 키스는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었어도 흥미로웠을 것이다.
 
잠깐 얼굴을 때고 눈을 맞추었을 때, 악당의 새파란 눈동자 안의 나는 액체처럼 투명했다.
 
 
 

* * *
 
 
 
 
여름은 싫다. 하지만 겨울도 싫다. 그래도 겨울이 아주 미세한 차이로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소한 이유를 말하자면 여름은 차가움을 찾게 되지만 겨울은 따스함을 찾게 된다는 점이 좋다. 따끈따끈하잖아. 겨울엔 곤도씨가 커다란 봉지로 귤을 한 아름 사 오곤 했는데 귤을 까먹으면서 코타츠에 앉아서 히지카타랑 나, 곤도씨랑 셋이서 쓸데없는 잡담을 하는 것은 꽤나 즐거웠다.   

"부모란 정말 힘든 거야"
 
곤도씨가 신문을 보다가 한 말이었다. 코타츠에 쏙 들어가서 나는 귤껍질을 까면서 또 안경네 누나랑 결혼해서 애새끼까지 낳는 망상까지 하고 있느냐면서 한마디 했다. 히지카타는 냉정하게 세상에 안 힘든 게 어디 있느냐며 투덜거렸다.
 
"자식들 때문에 아무리 싫은 일도 해야 하고 그렇잖아. 그런 거 보면 불쌍하지"
 
"부모만 그렇겠어요?"
 
"아, 물론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관계보다 가족은 아무래도 더 애틋하잖냐"
 
애틋. 나는 그 말을 듣고서 내 옆에 없는 누나를 떠올렸다. 머릿속에 마지막 남았던 가족을 떠올려봤자, 나에겐 가족이라는 애틋한 관계의 사람이 지금은 없었다.
 
"내가 있는 이 자리를 지킨다는 게 보통이 아니야, 그걸 위해서 정말 버릴 수 없지만 버리는 것들도 많잖어.. 선택의 기로가 올 때가 있다고 하더라, 간혹. 예를 들어서 결혼을 했는데 다시 한번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버렸다거나.. 그러면 어떻게 하겠냐? 그렇다고 끝낼 수도 없고 지 자식들이 있는데 어떻게 가정을 버리냔 말이지. 뭐, 불륜을 좋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만 진짜 사람일 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니까. 어쨌든 보통 정상적인 부모의 경우엔 가족이라는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악물고 포기하는 거지.. 근데 뭐, 그러다 보면 잊혀지고, 나중엔 내가 미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야. 만약 그 잠시의 감정에 끌려서 다 내팽개치고 그 하나를 선택한다면 분명히 평생 후회해. 그니까 지켜야되는거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뭐, 사랑 하나 가지고만 이야기 했지만 다른 것도 많지, 너무 하고 싶은 꿈이 있지만 가족 때문에 못한다거나... 그러니까 너희도 그 중심을 잘 잡으라는 거야! 하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 말에 나는 관심없이 세상 다 살은 할배같네요. 하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가족이라는 관계의 사람이 없는 나로써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되려 약간의 질투도 있었던 것 같다. 엄마라던지, 아빠라던지, 누나라던지 여튼 가족이라는 것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약간의 열등감이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절대로 표정엔 드러나지 않았을 거다. 난 표정으로 내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 나의 무표정을 지켜보다가 옆의 히지카타가 조용히 귤을 까서 내밀면서 먹어 하고 말했다. 재수없는 히지카타는 그때에도 역시나 나의 내면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내민 벗겨진 귤을 보곤, 안 먹어. 하고 짧은 답을 하곤 고개를 홱 돌렸다. 그땐 전혀 생각 못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도 히지카타는 날 사랑했다. 
 
내 자리.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 곤도씨의 옆, 둔영의 가운데, 다른 대원들이 무서워서 한마디도 못하는 히지카타에게 유일하게 대드는 문제아, 내가 정한 이 길을 똑바로 걸어나가길 바라는 누나의 남동생.  

물론 나에게만 이런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악당 녀석도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 분명 그를 찾는 녀석도 있다고 했고, 하루사메 단장이라면 분명 돌아가서 제 자리를 찾는 것 역시 중요할 텐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그는 나의 손을 이끌면서 가자, 하고 말했다.
 
"어딜?"
 
"나가야할거아냐?"
 
옆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피해서 엘리베이터를 나와 서는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내가 어떤 놈 죽이기 전에 나가는 길을 물어봐놨어"
 
머뭇거리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망설임이 있는 내 걸음을 보고 그가 뒤를 둘어보며 물었다.
 
"왜?"
 
"아니.."
 
일단 이곳에서 나가야 하는 것은 맞다. 문제는 그 이후라는 것이다. 이 새끼는 내가 이 곳에 다시 왔다는 것에서, 그리고 키스에 순순히, 아니 겪하게 응했다는 점에서 내가 저를 선택했다고 조금의 의심없이 믿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녀석이 걱정되어서 온 것은 맞다. 이런 상황이 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가둬져 있었다면 내가 꺼내주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상황은 내 손으로 직접 내 동료들에게 칼을 들이밀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내 손을 잡아 끌고 달리는 악당이 조금은 신난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했다. 이 길은 처음 와보는 길이지만 이 길의 끝은 결국 우리 둔영 근처라는 것을 안다. 아무리 멀리 돌아서 온다 한들, 내 옆엔 히지카타가, 그리고 곤도씨가, 그리고 우리 대원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이 녀석만 모른다. 꽤나 깊숙했던 침침한 지하를 빠져나와 시원한 바깥 공기를 한숨 들이쉬고 나서 그가 다시 내 손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잡아끄는 힘에 저항하듯이 끌려가지 않고 멈춰섰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돌아보는 이 악당.

"왜?"

"어디로 가는데?"

"어디로 라니?"

이 녀석은 아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어디든지 상관없잖아, 그게 중요해?"

내가 갈등하고 있음을 모르는 그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몰라서 나에게 바짝 다가와서는 왜? 뭐 때문에 그래? 응? 왜 내가 네 동료들을 다치게 할 것 같아서 그래? 안 그럴게. 됐어? 응? 하고 고개를 숙인 나에게 다가와서 바짝대고 말했다. 차라리 그런 걸로 고민을 했다면 차라리 편했을텐데. 히지카타가 도망갈까? 하고 물어왔을 때 딱 잘라서 거절했던 것과는 달랐다. 물론 히지카타는 진짜 갈 생각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던것도 있었지만 난 히지카타와는 둘이서 떠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악당녀석과는 내심 떠나고 싶다. 이 녀석과 하는 외줄타기라면 분명 재밌을 것 같아. 이 녀석과 함께 있는 한 우린 그때처럼 최강일거야. 그 누구도 우릴 건드리지도 못할거야.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 녀석을 따라 떠나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몰려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히지카타와 곤도씨가 바다 한가운데의 암초처럼 그 앞을 우뚝 가로막고서서, 내 마음을 하얗게 산산조각내고 가로막는다...
 
이 녀석과 함께 어디론가 향해도 전에 있었던 모든 일 들이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시 그와 나는 방황할 것이고, 다시 내 동료였던 사람들을 피해 도망다녀야 하는 피곤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 안정감이라곤 없는 나날에서 아슬아슬한 스릴을 느껴 재미야 있을 수는 있지만, 곤도씨가 말 한데로 그것은 잠깐이고, 다시 나는 이 동료들과 내 자리를 기억하면서 회한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싫었느냐고 물어온다면 좋았다 라고 대답할테지만 다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선뜻 돌아간다고 대답할 수 없다. 아니, 그런 대답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약간의 망설이는 행동을 보고 왜 그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의 이 악당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와락 껴안았다. 좋다. 내가 끌어안자 살짝 놀라하던 그가 내 등을 가만히 쓸어내리면서 왜 그래?하고 작게 웃는다. 그의 그다지 크지 않은 어깨와, 뒷목까지 길게 땋아 늘어트린 선주홍빛 머릿칼, 차갑지만 따스한 너. 그리고 내 품안에서 쉬고 있다가 나온 따듯한 단도, 그리고 너와 어울리는 피냄새, 그리고 내 손에 흐르는 뜨거운 액체. 아, 내가 너를 찔렀구나.

나에게서 서서히 멀어지면서, 찔렸다고 할지언정 당황도 하지 않고 동요도 하지 않는 그 표정이 여전히 너는 나에게 최고의 악당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가 무어라고 말 하기 전에 내가 말했다.

"..이미 다 알려졌을거야"

"응?"

"대원들이 곧 이쪽으로 와"

"근데?"

"...그러니까 가. 대원들이 오면 난 에도를 지키는 경찰으로써 널 잡을거야"

"잡아? 누가?"

"내가 너를. 그니까 가. 너도 너의 자리로 가"

내 말에 조금은 놀라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동요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찌른 제 등을 흘깃 한번 돌아보고나서 나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같이 가는거 아니야?"

"어딜? 난 안가. 너랑 장난치면서 좋았던 것도 여기까지야. 너도 역할이 있듯이 나도 여기서의 역할이 있어. 그러니까 꺼져"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는 표정이 더 나를 열받게 만든다.

"안들려? 꺼지라고 하잖아!" 

이제야 파악이 되었는지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웃고 있지만 이 녀석의 주위 분위기가 확 변한다. 내 뺨에 닿아오는 바람조차 소름끼치게 느껴질 정도로 그의 분노는 나에게 절실하게 느껴져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전에 이 녀석에게 당했던 심장 윗쪽의 어깨부근의 흉터가 갑자기 욱씬욱씬 쑤셔오는것 같았다. 아프다. 다 나았을 텐데.. 아프다.
악마의 모습이 있다면 순수한 아이의 형상일 것이라고 했던가? 내 눈앞에 있는 이 악당도 너무나 순수했다. 그래서 무섭다.

"다시 말해봐"

"...난 안가. 혼자 가" 
 
"다시 말해"

"안간다고"

"다시"

"..."

"다시 이야기해"

"...."

"다시 말해보라니까?"

"...미쳤어?"

"그니까 다시 말해보라고 엉? 난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으니까"

"...."

그는 처음에 나를 죽이고 싶어 했던 그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다가와 내 목을 서서히 죄여오면서 다시 물었다. 이런 건 이 녀석의 방식이 아니었다. 나를 후려쳤으면 모를까.

"다시 똑바로 말하라고. 내가 반 병신된 널 데려가길 원해?"

나는 안다. 내가 이 녀석의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을 했고, 생각 못한 그 충격에 괴롭다는 것을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새끼라는 것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함께 갈 수도 없고 함께해서도 안된다. 목이 졸려지면서도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녀석의 파란 눈만을 응시했다. 저항이라고 하기엔 작았지만 그 녀석의 팔목을 가늘게 잡고서. 그 이상으로 저항하지 않은 것은 이 녀석이 이런식으로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에게 기대를 심어줬다가 꺾어버렸다는 약간의 죄책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이 점점 흐릿하게 보이면서 내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잠시 어둠 안에 약간의 희열이 찾아올 때 쯔음, 그는 내 목을 죄여오던 손을 신경질적으로 놓고는 쓰러져 켁켁대는 나에게 다가와서 눈 높이를 맞추곤 말했다. 
 
"오랜만에 우리, 싸울까?"
 
아니. 나는 너와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도망치라고 한 것이었고... 니가 나보다 강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그래서 무서워서? 다시 싸우면 이번엔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 그런 시덥잖은 이유가 아니라 그냥.. 몰라.. 서로 죽이고 싶어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니가 그냥 가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사형수가 도망쳤다는 것을 알고 이 곳으로 온 대원 무리들이 내 뒤편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요란한 발소리에 악당은 나에게서 눈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저 대원들 숫자가 많다고 한들, 이 녀석 한 명에겐 상대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켁켁대는 나는 우리 대원들에게 동공풀린 눈으로 다가가는 악당녀석을 보고 하지마, 하지마 하고 외치려 했지만 야속하게도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신난 악당 녀석. 그리고 우리 대원들이 거의 다 쓰러졌을때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대원 중 누군가가 떨어트린 칼을 주워들고서 그 악당에게 비틀비틀 다가가 목에 겨누었다. 칼끝의 차가운 기운을 느꼈는지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하아.. 그만.. 그만...해"
 
한 손에는 이 녀석 등을 찔렀을 때의 피가 한손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어서 끈적끈적했다. 망설임이 있으면 죽는다고 했었나. 지금 내가 든 칼엔 망설임이 너무나 많이 담겨있어서 휘두를수도 없을 만큼 무겁다. 그는 내가 겨눈 그 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내 앞에 아무렇지 않게 걸어온다. 나는 그저 숨을 몰아쉬면서 그에게로 향했던 칼을 그대로 들고 있을뿐, 살의를 가지고 그에게로 향하진 못했다.
 
"겨누지만 말고 죽일 각오로 덤벼, 응? 날 잡으시겠다면서."
 
그렇게 말해도 지금의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처음 나를 만났던 그 순간처럼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 때처럼 무섭게 나를 몰아붙였고, 나는 겨우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 칼이 그의 근처에 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녀석을 베기에 자꾸만 망설임이라는 틈새가 생겨, 그 앞에서 자꾸만 고민하는 것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당해본 적은 지금을 포함해서 두번인데 처음도 이 녀석, 그리고 두 번째도 이 녀석이다. 나와 다르게 이 새끼는 나를 죽이려 드는 몸짓에 전혀 망설임이 없다. 너와 나의 차이점이었다. 나는 어느새 생겨버린 소소한 감정 때문에 내 앞의 악당을 쉽게 베지 못했고, 너는 악당답게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괴물이었다.  
"뭐야, 왜 이래?"

벽에 부딪친 채로 주저 앉아있는 내 앞에 다가와서 말했다.
 
"전과 같지 않잖아. 재미없게"
 
결국 끝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도 알았으면서. 처음 이 녀석과 싸웠던 그 때 한번 죽었다고 생각했으니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저 앉은 내 앞에 다가오는 악당은 서서 한참 동안 나를 내려다보면서 뜸을 들이다가 제 등에 내가 꽂았던 단도를 뽑아선 내 앞에 던져놓았다.
 
"재미없어"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을 힘도 없어서 벽에 기댄 채로 내 앞에 서 있는 그 악당 녀석을 흐릿한 눈으로 멍하니 본다.
 
"나랑 같이 가"
 
머리칼을 휘어잡고는 억지로 고개를 들게 한 후 나에게 말했다.
 
"....못..가.."
 
"왜"
 
"...너랑 나, 다르니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내 머리칼을 잡은 손을 가볍게 스르르 놓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그는 그저 그렇게 생각보다 너무나도 순순히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내가 가지 않겠다고, 갈 수 없다고, 떠나라고 말해놓고서 우습게도 가지 말라고 잡고 싶었다. 왜 나는 경찰이었을까? 왜 너는 내가 잡아야할 대상이었을까? 왜 너는 나의 앞에 내려왔을까? 왜 너는 그때 나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나를 데리고 갔을까?.... 점점 멀어지는 악당, 그리고 시야를 점점 가려오는 어둠의 혓바닥이 서서히 나를 집어삼킨다.
 
 
 
 
* * *
 
 
 
 
 
눈을 떴을때 내 옆엔 히지카타가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이었고 링겔이 여러 줄기로 주렁주렁 달려있는 걸 보니 입원한 모양이다. 눈을 깜빡거리는 나를 보고 히지카타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괜찮아? 이제 정신이 들어? 하고 물었다. 그리고는 늦어서 미안.. 하고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날짜를 확인하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멍한 상태로 있다가, 무슨 일이 있었나 잠깐 생각하다가 기억해냈다. 그리고 히지카타의 반응을 보고 알았다. 내가 말 한대로 악당은 가버렸고 우리는 사형수를 놓쳤다.
 
악당. 진짜 가버렸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갑자기 복받치는 감정에 그만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내가 선택한 답이였지만 나는 그런 답을 내린 내가 원망스러워서 그냥 뚝뚝 흘리는것도 아니고 어린 아이처럼 목을 놓아 소리까지 내면서 미친 듯이 울었다. 히지카타는 그런 나를 보고 당황스러워 했지만 그냥 말없이 내 옆을 지켜주었다.
 
겨우 히스테릭한 울음을 멈추고나서 멍하니 있자 히지카타가 내 얼굴에 범벅된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렇게 그 놈을 놓친게 억울하냐고 물었다. 놓친게 슬프긴 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잘못 짚었다. 그 말엔 대답하지 않았다. 내심 나는 눈을 떴을 때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악당이었으면 하고 바랐는지도..
​어찌되었든, 그 결과적으로 나는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그 전의 의심하던 눈빛이나 수근거림도 없고 모두가 날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로 봤다. 내가 악당을 필사적으로 잡으려 한 것처럼 봤고, 그 동안의 의심들은 전부다 자취를 감추었다.
 
그 악당 녀석은 잘 돌아갔으려나.. 아직 지구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미련을 가지고서 우리 둘의 흔적이 있던 우중충한 판자촌, 매춘굴 등등 범죄를 저질렀었던 곳을 한 번씩 가보기도 했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역시 없다. 떠났다. 하기사, 그 악당 녀석이 감성적으로 이런 곳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습긴하다. 그 녀석은 나에게 등을 보이며 걸어가면서 날 잊었을 거야. 내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거야. 아니 어쩌면 반대로 그 녀석은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는지도.
 
나는 내 자리를 지켰고, 내 선택을 존중해준 악당도 자신이 있던 자리로 무사히 돌아갔음을 직감으로 알았다. 그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이 어디에선가 죽었다거나 했을 리는 없을테니.. 내 마음이 허전한 것은 그저 다시 그 녀석을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그런 막연한 마음의 먹먹함이었다.
 
히지카타와 나는 가끔 섹스 정도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히지카타는 나를 연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히지카타는 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나는 다시 만나서도 안되고 만나기도 힘든 우주의 악당과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가끔 그 악당이 막연하게 생각나서 미칠 지경이 됐을 때, 악당을 대신해 옆에서 나를 품어주는 사람이 히지카타일 뿐인 관계였다. 히지카타의 깊은 진심은 알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찾는건 히지카타가 아니라는게 죄스럽긴 하다. 
 
​후회는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이 자리를 지킨게 맞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은 힘들다. 돌이켜보면 그 악당 역시 지켜야 할 자리를 놔두고 날 선택해준 것인데 나는 그런 그를 버리고 이 자리를 선택한 것이다. 그가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한들, 그 악당 역시도 약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텐데.. 그 철없는 악당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나 혼자 단정지어 버린채로. 뒤늦게야 깨닫고 나서 결국 난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 밖엔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어찌되었던 되돌릴 수 없는 내 선택의 결과물인 검은 제복을 주섬주섬 주워 입는다. 
 
악당과 나,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뜨거운 온도여서 서로의 주위를 그늘보다 더 싸늘하게 만들어버릴 것임을 나는 알았다. 그 악당도 알았을 것이고.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각오가 되어있었지만 나는 그런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무서웠던거야. 결국. 니가 나를 믿는 만큼 나는 너를 믿지 못했고.
네가 나를 순순히 떠났던 이유는 내가 이 둔영안에 내 자신을 가두었고, 생각보다 더 심하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강박에 병적으로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지.
 
추적추적 비가 올 때 우산을 쓰고 괜시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즐긴다. 햇빛을 싫어하는 그 바보는 잿빛의 어두운 하늘과, 톡톡 떨어지는 비와 우산을 좋아했으니까. 
  
 

 
 * * *
 
 
 
1년 하도고 몇 개월 정도가 지났다.
 
비가 왔다가 막 개어서 햇빛도 없이 우중충하고 바람이 시원하게 일렁인다. 젖은 땅의 흙냄새가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습습하면서도 촉촉한 날이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투명한 물방울이 나무의 잎사귀 끝에 한 알씩 맺혔다가 떨어지는 그 형상에 시선을 맞추고는 멍하니 쳐다본다. 톡 톡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기분 좋다. 
 
-경찰
 
나를 경찰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기에 뭔가 하고 창문 주위를 둘러봤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환영인지 실체인지 모를 나의 악당이 내 앞에 전처럼 우산을 쓰고서 여전한 웃는 낯짝을 하고서 나를 찾아왔으니까. 아-, 기다렸어 나의 악당... 이제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냥 나를 녹여줘

 

환영인지 실체인지 모를 그 녀석은 대답이 없다. 그래서 나는 슬프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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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축자축! 완결!!

완결기념으로 그냥 혼자 카무오키를 쓰게된 계기를 풀어보자면ㅋㅋㅋㅋㅋ

쓰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끌려서 교회(...)를 갔는데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와중

갑자기 스톡홀름 콤플렉스 이야기를 하는거예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는지는 하나도 모르겠고

스톡홀름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갑자기 아! 이거다! 하고 갑자기 가방에서 펜이랑 종이 꺼내서

망상 메모 해놓고 쓴겁니다ㅋㅋㅋㅋ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가볍게 상중하 세편만 쓸까 하다가 다섯편정도는 될 것같아서 그냥 숫자 붙였는데

이렇게 길어질줄이야ㅋㅋㅋㅋ

여튼 이거 쓰면서 제 망상에 제가 치여서 카무오키에 빠졌습니다

다 표현하지 못하는 곶손이라는게 죄송하지만ㅋㅋㅋ....

여튼 지금까지 봐주셔서 완전완전 감사합니다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