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Jacob's ladder 4
4.
하느님, 혹시나 살아계시다면 제발 내 아래층에서 자는 저 새끼 좀 우리 집에서 치워주세요. 저 미친 새끼에게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들은 모두 속고 있다고요. 기괴하게 웃는 저 낯짝 뒷면으로는 나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칼자루를 쥐고서 나에게 슬금슬금 들이대고 있어요.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분이잖아요? 그렇다면 내 기도를 꼭 들어줄 거라고 믿어요. 나보다 저 새끼의 실체를 더 낱낱이 파악하고 계실 거 아녜요?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저 정말로 말 잘 듣는 착실한 학생으로서 착하게 살겠습니다요. 교회까지 가는 것은 끔찍이 싫지만 이뤄주신다면 한번 생각은 해볼게요. 아아,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는 들어주지 않죠? 노력이 있을 때 기도를 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준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럼 저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제발 이 새끼 좀 꺼지게 해주시라고요. 네? 나 꽤나 착하잖아요. 엄마 아빠 누나 말도 엄청 잘 듣고 걱정할까 봐 항상 마음 졸이면서 살고 있어요. 게다가 저, 착한 아이들은 괴롭히지도 않는다구요. 그렇죠? 네? 저 착하잖아요.
부산하게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 아침이라는 걸 깨달은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매일 아침 깼을 때 보이는 풍경이 달라서 순간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집에서 침대에 올라가서 잤었는데? 분명히 천장에 빛나는 야광 별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들었던 것까지 똑똑히 기억이 난다. 눈을 비벼대면서 이부자리에서 슬금슬금 일어나 앉자, 마침 샤워를 끝낸 그 녀석이 목에 하얀 수건을 걸친 채로 이제 일어났어? 하고 묻는다. 아아, 기분 나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거다. 기분 나쁘게.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린 나는 그 녀석의 침대에서 덫에 걸린 사냥감 마냥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 녀석을 지나치려 하자 그가 말했다.
"자는데 남의 침대에 불쑥 들어오는 건 뭐야? 정말 놀랐다고"
"... 내가?"
"응. 기억 못하는 거야?"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이 녀석에게 이런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대꾸하지 않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재수 없어. 왜 이렇게 피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도 잔 것 같지 않은 나른함에 샤워실로 향한 후 따뜻한 물을 틀고서 그 아래에 우두커니 서서 그 물을 맞았다.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기분이 좋다.
나는 그 녀석보다는 당연히 우등하다고 믿고 있었고, 절대로 그 녀석은 나와 비교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내가 이 녀석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녀석이 나와 '비교'의 대상이 되었고, 다른 모든 조건과 변명의 여지를 더하더라도 일단은 그의 학급 안에서의 등수가 나보다 높게 나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그게 싫다. 나는 20등, 그 녀석은 16등. 하지만 우리 학교는 공부를 더 잘해요. 뭐 이런 부가 설명 같은 거 붙이는 거 싫어. 내가 왜 비교 대상조차 안 되는 저 녀석을 상대로 이런 세세한 설명을 해야 되냔 말이지.
학교가 끝나고 그날은 내가 먼저 히지카타를 찾았다. 교무실 문을 열자 퇴근을 하려고 준비를 하던 히지카타는 가방을 메다가 찾아온 나를 보고는 약간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태워다 줘? 하고는 머리를 쓱 쓰다듬었다. 머리 만지지 마! 키 작은 사람들은 머리 만지는 거 싫어한다고! 뭐, 그렇다고 내가 키에 콤플렉스가 있다는 건 아니지만..
"나, 공부 가르쳐줘"
"드디어 미친거냐?"
히지카타는 그런 말을 하는 나를 보고는 한참을, 정말로 한참을 웃었다. 선생이라는 새끼가 학생이 공부 좀 하겠다는데 이렇게 비웃어도 되는 거야? 나는 한참 웃는 그 녀석을 노려보기만 했고 그 녀석은 한참을 웃다가 다 웃었는지 멈추고는 새삼 놀란다는 듯이,
"진심이야?"
하고 다시 물었다. 아 열받아. 괜히 이 새끼한테 왔어. 그나마 가장 내가 막 대할 수 있는 선생이라서 찾아온 것이긴 하다만.. 아냐 됐어. 하고 뒤돌아서 가려고 하자 다행히도 이 새끼가 그냥 돌아가려는 날 붙잡고는 공부하자며? 가자, 하고 말하고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다시금 웃었다. 이 새끼는 가끔 선생이라는 위치를 이용해서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 때가 있다. 그럴 땐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자신의 집에서 공부를 하자 길래 순순히 그 녀석을 따랐다. 혼자 산다는 녀석 집이 생각보다 크다. 게다가 남자 혼자 사는 집 치고는 성격답게 정리도 깔끔히 잘 되어 있어서 그의 성격을 바로 보여주는 듯하다. 곳곳에 놓인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여성스러운 소품들은 딱 봐도 누나가 선물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히 저기에 있는 하얀색 탁상시계는 누나가 나에게 여러 번 물어봤던 시계였다. 뭐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에게 선물을 줄 건데 어떤지 좀 말해달라면서 나에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었다. 동료는 무슨, 저렇게 신중하게 고르는 거면 히지카타에게 주는 거지 뭐. 귀찮아서 대충 누나가 물어 본, 저기에 놓인 저 시계를 사라고 한마디 했는데 내 말을 듣고 정말로 그걸 사서 줬는지 히지카타의 방에 놓여 있는 걸 보면 기가 차서 웃음이 다 나온다.
"뭐 먹을래?"
"아니"
"근데, 왜 갑자기 공부야? 너 정말로 안 어울리는 거 알어?"
"일단은 나 학생이잖아"
내 말에 그 녀석이 다시금 한참을 웃는다. 아니 내가 뭐 웃긴 말 했어? 그 녀석이 펼쳐 놓은 좌식 탁자에 앉아서 책을 펴자, 그 녀석이 음료수 한잔을 내 옆에 내려놓고는 갑자기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얼굴 맞았어? 좀 부은 것 같은데?"
아이고. 귀신이시네 귀신.
"계단에서 굴렀어"
"계단에서 구른다고 얼굴이 다쳐? 이거 맞은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야"
내 턱을 손으로 콱 쥐어 잡고서는 자세히 보는 그 잿빛 눈동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있는 힘껏 이 녀석을 뿌리쳤다. 힘의 반동 때문에 뒤로 넘어진 나와 너무 거센 몸부림이 어이없었는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 녀석.
"공부나 가르쳐 달라고! 이런 거 걱정해 달랬어?"
".. 딱히 걱정한 건 아닌데?"
아, 그러셨구나? 이 새끼... 그는 조금은 어이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똑바로 앉아. 하고는 장난스럽게 선생님의 얼굴로 말했다. 이럴 때 보면 정말이지 당장 누나에게 달려가서 헤어지라고 말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약간 민망함에 씩씩대다가 한참 문제를 푸는데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히지카타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진짜 말해봐. 무슨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다 가르쳐달래?"
"학생이 공부를 잘하고 싶은 게 이상한 거냐고요. 선생님"
"너는 이상하지. 너 이번에 그나마도 시험 잘 본거 아니었어? 오늘 웬일로 찾아왔길래 성적올랐으니까 맛있는거 사달라고 하려나 했는데 공부를 하자고 하다니.. 너 죽을 때 된 거 아냐?"
저 말을 부정하고 싶지만 분명 사실이었다. 원래 난 더 후반이었다고.. 23, 24등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20등 까지 올라온 건데, 그 녀석이 16등까지 할 줄은 정말로 생각도 못했지. 물론, 엄마도 나에게 잘했다고 했고 성적이 올랐다고 좋아하긴 했지만 나의 성적을 보기 앞서 카무이 녀석의 성적을 보고는 엄마가 그렇게 격렬하게 좋아할 줄은.. 앞자리에 1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기뻤던 걸까? 아니면 전혀 기대도 못 했던 그 자식이 예상외로 잘해서?
"그... 우리 집에 온... 음.. 집에 같이 있는 그..."
"네 형?"
"형 아니고 그 녀석"
"그래, 그 녀석이 왜?"
내가 형이라는 말을 콕 집어서 고치자 우스운지 피식 웃으면서 묻는다.
"그 녀석의 반 등수가 나보다 높아서 짜증나"
"비교 대상이 생겼구나? 좋지 뭐. 라이벌 의식도 있고. 아 너 지금 푸는 그거 틀렸다"
아 씨발 못해먹겠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펜을 신경질적으로 책에 내던졌다. 책에 떨어지는 마찰음과 함께 튕겨져 떨어지는 펜, 사실 열받음을 표시한 것인데 그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잽싸게 주워선 내 손에 꼭 쥐어주고는 다시 말했다.
"너, 이러니까 못하는 거야. 빨리 다시 봐봐"
이렇게 승질내는 수법 너무 많이 써먹었나.. 이제 안통하네. 전엔 이러면 왜 또 이러냐면서 약간은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척이라도 했었는데. 내 승질 긁는 건 이 새끼도 마찬가지다. 아, 하느님 한 개 더 추가. 이 재수 없는 녀석이 누나와 빨리 헤어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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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토는 묻지도 않은 제 이야기를 곧잘 했다. 듣기 싫었다면 듣지 않았겠지만 나도 흥미가 있어서 주의 깊게 들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그가 속한 그 조직의 이야기로 다양한 범죄와 연관이 되어 있는 이야기였다. 마약거래라던가, 유흥업소(예를 들자면 창녀를 팔아넘기는 일과 여러 가지 성에 관한 범죄 일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살인청부 등등. 범죄의 이야기를 듣고서 정의를 외치는 타입은 아닌지라 항상 그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고, 가끔 아부토는 이야기를 해주다가 답지 않게 이런 이야기해도 되나? 하고 중간중간에 망설임을 표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뭐야? 다 말해놓고"
그럴 때 보면 10살이나 많다는 게 확 느껴진다. 평소에 나를 애 취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보면 애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 얼핏 보인다고. 살인 이야기를 할 때 해봤어? 너도 직접 죽여봤어? 어땠어? 하고 물어보면서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냥 단순하게 궁금해서. 내 질문에 아부토는 크게 웃으면서, 이런 걸 뭐 하러 자세히 알려고 들어? 하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엔 대답 없이 그냥 웃음만 보이자 뜬금없이, 나에게 넌 나중에 뭘 하고 싶어? 하고 고아원에서 자주 만났었던 진부하고 따분한 어른처럼 물었다.
"? 글쎄"
"글쎄가 뭐야? 대통령이라도 되고 싶다고 하던가, 아니면 초등학생처럼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던가 뭐 자라나는 새싹다운 파릇파릇한 꿈 말이야. 없어?"
"흠... 자라나는 새싹다운 꿈이라.. 살인 청부 업자 같은 거 재밌겠네"
내가 장난으로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하고는 총 쏘는 시늉을 보였다. 사실 총이라는 무기가 들고 있으면 멋있긴 하지만 썩 좋아하는 무기는 아니다.
"너 그런 말 어디 가서 함부로 했다간 잡혀간다? 내가 했던 말 들도 다 비밀이야"
본인이 나를 물들였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뜨끔하면서 아부토는 말했다. 어째서?
"날 세 살배기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정도는 된다고 아저씨"
그러자 그는 그냥 우습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던 것이었고 갑자기 오키타 녀석은 무엇이 되고 싶어 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뭘 하던지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같이 일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그래도 지금과 다르지 않게 그 녀석은 나를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말이야, 살인 청부업자 같은 거 쉬운 일 아니야. 이렇게 밝은 곳에 나올 수나 있을 것 같아? 항상 컴컴한 곳에서 그 죽일 대상만 노려보고 있어야 하고, 또 들키지 않게 숨겨야 하고..."
아부토는 이런 식의 훈계를 꽤나 좋아하는 듯했다.
항상 7시에는 집에 들어오던 녀석이 집에 오지 않는다. 어디 갔을까? 마침 들어온 누나에게 살짝 그의 행방을 물어보니 누나는 내 말에 웃으면서,
"소고 말이야, 공부하고 있다는데? 아, 이거 비밀이야"
안 어울리게..공부?
"내 남자친구가 지금 가르쳐주고 있나 봐. 그 학교 선생님이거든. 공부하는 거,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엄청 난리 쳤다니까 너도 모르는척해야 해 알았지?"
하고 수줍은 듯이 미소 지어 보였다. 누나의 미소는 언제나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웃어 보였다. 공부라.. 저번의 보였던 그 자존심이 상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 나한테 이기려고 하나 보네. 그런 걸로 나를 이겨서 뭐 하려고. 그러고 보니 그때 차에 같이 탔었던 그 선생이 누나의 남자친구였구나. 누나가 예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남자친구도 꽤 잘 생겼다. 생각보다 날카롭게 생겼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나저나 이 녀석은 왜 안 오는 거야.
누나나 엄마와 아빠는 집에 오지 않는 그 녀석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왜 인지 모르게 나는 그 녀석을 한참을 기다렸다. 자꾸만 보게 되는 시계는 쉽사리게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다림은 참 힘든 것이었다. 별로 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만나봤자 그 녀석은 나를 싫어하는 그 특유의 표정만 지어 보일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지만 나는 그런 네가 좋았으니까. 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암흑에 잠기었다.
삐걱, 삐걱, 삐걱, 하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 내 귀를 찌르듯이 자극했다. 사람의 뼈가 어긋나 마찰이 나는 듯한 듣기 싫은 그런 소리, 내 뼈마디가 욱신욱신 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름이 일어난다. 다시 삐걱, 삐걱, 삐걱, 하고 들린다. 잠귀가 예민하지 않은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미세한 작은 소리가 기분이 나빠, 작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잠이 깬 것이 틀림없다. 짙은 먹색이 안개처럼 뿌려진 듯한 방 안에서 동그란 실루엣이 천천히 위에서 내려온다. 저 녀석이 내려오면서 미세하게 자극받은 교묘한 틈새의 신음이었나 보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는, 내가 기다렸던 저 녀석. 저 녀석도 깬 건가? 하는 생각에 내려온 그 녀석을 쳐다보고는 말을 걸었다.
"깼어?"
내 말이 들리지는 않는지 그저 방에서 나가려 손잡이를 맥없이 잡고 비틀으려는 그 녀석의 뒷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평소와는 달리 힘이 하나도 없어서 툭 치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내딛는 발걸음도 자연스럽지 않게 투박했고, 비틀비틀 대고 있었다. 딱히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한 호기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그 녀석의 어깨를 잡고서 물었다.
"어디가?"
힘없이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그 녀석의 눈은 초점이 정확하지 않고 흐릿해서 잠이 덜깬 것인가? 하고 생각할 무렵, 그는 갑자기 나를 저돌적으로 와락 껴안고 내 품에서 중얼거렸다.
"..어.. 엄마.. 나.. 너무 싫...싫어요...나.. 나만 봐주세요..."
"응?"
"...말.. 잘 들을...게요.. 웃으라고 하면.. 우..웃을게요...나로서는 만..족이 안됐...던 거예요..? 그냥.. 우리 넷이면 되는건데....왜 있지도 않...은 다른 사람..을 데려와요.. 왜..."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손을 들어 그 녀석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고아원에 있었을 적에 동생이 가끔 이렇게 매달려온 적이 있다. 왜 그러는지 몰라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으면 나를 본 고아원 원장은 자상한 척 웃어 보이면서, 그렇게 안겨오면 등을 토닥토닥해주는 거야. 하고는 알려주었다. 왜요? 하고 묻자 당황하면서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했지만, 내가 등을 살짝 토닥여주자 동생은 꽤나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진정시키려는 의도도 아니고 달래주려는 의도도 아니고, 그저 학습에 의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던 이 녀석이 안겨왔던 내 품에서 스르르 빠져나와 내 얼굴을 보더니 다시 말했다.
"너....."
그리고는 다시금 내 목을 간지럽게 휘감아오는 그의 손가락과 부드러운 손바닥. 그의 그런 행동은 나를 유혹하는 것인지, 나에게 살기가 있는 것인지 조차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설레어서 눈 앞이 아득하기까지 하였다. 유혹이었다. 내가 이렇게 설레이고 있으니까. 그러더니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듯, 나를 보고는 누나라고 했다가, 히지카타라고 했다가, 엄마라고 했다가, 아빠라고 했다가를 반복하면서 잠꼬대 하듯이 드문 드문 말을 이었다.
누나, 누나는 그래도 내가 더 좋지? 누나는 내 편이었으면 좋겠어요... 히지카타, 빨리 누나랑 헤어져. 내가 딱히 널 인정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엄마.. 나로는 부족해요? 내가 더 노력할게요. 그 녀석 좀 이상하단 말이에요.. 진짜로.. 이상해요 진짜로... 누나.. 그 녀석 진짜로.. 이상해.. 누나는 내 말을 믿어줘야 해! 히지카타 너 그때 봤었잖아. 그 녀석 어때? 조금.. 이상하지 않아? 그 새끼 가끔 또라이 같다고. 엄마, 엄마! 엄마! 그 새끼 말이에요. 가끔 나 쳐다보는 눈빛이 끔찍해요... 응... 끔찍해요... 진짜 이상해요....
으응 그래?
이상해서..나 무서워..
그랬어?
그 새끼.. 죽었으면 좋겠어.. 아.. 죄송해요.. 난 착한 아이인데... 말이 잘못...나왔.어요
이 녀석의 초점은 여전히 흐릿하고 날 보고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게 허공의 한 점을 향해 있었다. 부드러운 뺨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대어도 반응도 없고, 여전히 초점이 없는 적갈색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내 나에게 홱 등을 돌리고는 다시 터덜터덜 걷더니 내 침대에 걸터앉고서 말을 걸 틈도 없이, 기절한 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쓰러져 잠든 그의 옆에 앉아서 그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헝클었다.
고아원에서 본 적이 있다. 몽유병. 그때는 선생님들의 철저한 억압과 관리 속에 있었기에 그런 증상을 보이는, 일명 '환자'들에겐 관심도 없었던 터라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만, 그때의 교육으로 알았던 것은 몽유병 환자들은 그 병의 증상이 시작되어 나돌아 다닐 때의 기억이 전혀 없고, 질문을 해도 대답은 하지 않으며 잠꼬대하듯 말을 할 뿐이라고 했던 것 같다. 더 심한 경우엔 여러 가지 과한 경우도 많다면서, 몽유병의 증상이 시작되었을 때 그 행동을 억지로 하지 못하게 말린다면 발작이 일어나므로 조용히 잠자리에 들 때까지 놔두어야 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려는 경우엔 꼭 말려야 한다고 단단히 당부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귀찮은 발작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고아원의 '환자'가 몽유병 증상이 시작되고서 밖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도 모르는 척했고 내가 모르는 척했던 그 아이는 두 번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오지 못 했다. 나는 무언가에 적극적이고 싶어 하지 않아 했고, 도망 아닌 도망을 즐겨 했으며 보고도 못 본 척, 하고도 하지 않은 척하는 것에 능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실종된 그 아이에 의해서 고아원의 모두가 슬픔에 잠겼을 때도 나는 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에 그 아이가 나가던 그 뒷모습이 잠깐은 생각나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 아이를 잡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그 아이는 나의 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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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자주 꾸는 꿈에서 그 녀석의 목을 졸라 죽이려는 시도를 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쓰려고 해도 그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지 않고, 그 녀석 위에 올라타 있는 나는 그 녀석 특유의 소름 끼치는 미소를 보면서 이내 소스라치게 손을 떼었다. 그러면 그 녀석은 그런 나에게 다가와서는 뺨과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키득키득 웃는 것이었다. 아무 위협이 되는 행동은 없었지만 그저 나를 만지는 그 손길이 차가운 시체, 혹은 나의 혼을 쓱 빨아갈 것 같은 사자(死者) 같아서 나는 그 녀석의 몸에서 똑바로 서지도 못할 정도로 다리가 풀려 우스운 꼴로 뒤로 물러난다. 그러면 그 녀석은 반대로 내 목을 한 손으로 쥐고는 어디 가? 하고 언뜻 들으면 정겹게 느껴질 말투로 물어왔다. 숨이 켁켁 막혀서 눈이 돌아갈 것 같은 그런 개 같은 상황, 그 녀석의 거센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그 녀석의 손목을 필사적으로 양손으로 쥐는 순간 나는 전기 쇼크를 받은 듯 다급하게,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그렇게 일어나면 또 다시 그 녀석의 침대 위였다.
기억을 못한다는 것은 꽤나 끔찍한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는 이도 없고, 항상 끔찍이 소름 끼치는 그 녀석의 침대에서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은 더더욱. 그러면 그 녀석은 또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어났어? 하고 웃는 낯짝으로 묻는다. 그것은 진심으로 죽이고 싶은 공포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