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05
-
다음날 나는 정말이지 최악중의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아침부터 히지카타는 나를 깨우곤 도데체 몇시에 들어왔냐, 부터 시작해서 핸드폰은 왜 안 받냐, 핸드폰은 부서졌다고 대답하니까 도데체 뭘 하고 다니면 핸드폰을 부숴 먹냐며 이해가 안 간다며 화를 냈다. 그리고 제복을 입었을 때 겉옷이 없다고 말하자 겉옷은 또 어디에 팔아 먹었냐며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나 어제 일 열심히 했는데”
한참 잔소리를 듣다가 내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뭐래?”
“진짜야. 그니까 다른 일은 좀 넘어가면 안됩니까?”
“조용히 해 너, 잘한 거 하나도 없어. 근처라고 바로 온다고 해놓곤 연락도 끊기고 말이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무슨 일이라니?”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내가 기집애도 아니고, 뭘 또 찾아다니기까지.
“왜요? 어디가서 죽기라도 했을까봐?”
“그래 이 새끼야”
“내가 당신 죽이기 전에 죽을 것 같습니까?”
내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하자 히지카타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러게, 나도 깜빡했다 이 자식아”
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삐졌나보네 저 새끼. 나는 그런 그의 태도가 매번 너무 재밌었다. 쫓아가서 그러게 내가 같이 가자고 했잖아- 하고 말하자 조용히 하라며 투덜 투덜거리는 이 녀석이 너무 웃겨서 계속 따라가면서 놀려댔다.
그 날은 순찰이 오후여서 집무실에서 피곤함에 찌들어 낮잠을 자는데 원래는 조용해야 할 둔영이 갑자기 급 시끄러워지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이 사디스트! 어딨냐 해!”
...?뭐야 이 목소리 설마...? 내가 안대를 벗고 밖을 쳐다보자마자 놀랐다. 그 꼬맹이가 난리를 치고 있고, 몇몇 대원들이 그 꼬맹이를 말리고 있었다. 둔영 안에 들어오는 거야 뭐, 형씨와 함께 종종 우리 일을 도와줬으니까 얼굴도 알고 하니 그냥 통과 시켜준 모양이긴 한데 도데체 여기서 무얼 하는지.
“저.. 저기요.. 진정하시고 혹시 오키타 대장을 찾으시는 겁니까?”
“그 새끼 말고 사디스트가 또 어딨어? 빨리 끌고 오라 해!”
옷차림이나 상태를 보아하니 집에는 갔다 온 모양인데 나한테 무슨 볼 일이 더 남았는지. 저 꼬맹이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둔영의 대원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 꼬맹이 앞에 나갔다.
“뭐야. 너 여기서 뭐해?”
“이 자식!”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내 멱살을 잡아 쥐는데 이런 일은 익숙해서 화가 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 자식아! 어떻게 아침에 그냥 갈 수가 있냐 해!”
“뭐라는거야? 니가 잠들 때 까지 있어 달라고 했잖아?”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같이 있던 사람이 없는 게 얼마나 서로운 줄 아냐 해?”
“그런 걸 내가 왜 알아야 되는데?”
“이 나쁜 자식아!”
그녀는 나에게 평소와 같이 때리려 들고 나도 평소처럼 피하곤 했는데 문득 주위의 이상함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니 전에 그녀를 말리던 대원들과 둔영에 있던 다른 모든 대원들이 나와 이 꼬맹이를 완전 놀란 표정으로 지켜 보는거다.
“대.. 대장..? 해결사 형씨네 꼬마랑 그런 ... 사이..? 였습니까..?”
옆에서 야마자키가 완전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고 모든 대원들이 어쩐지... 맨날 티격태격하는 것부터 알아봤다며 수근거렸다. 나는 이 들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몰라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대원들을 쳐다봤고, 내 멱살을 잡고 있던 그 꼬맹이도 약간은 당황했는지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는 곧 우리의 대화 내용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말했다.
“미친, 그런 거 아니야”
이미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대원들은 하나 둘 씩 자리를 떴다. 아. 망했다. 이건 소문을 좋아하는 대원들의 입장에선 사실이건 아니건 신나게 다 얘기하고 다닐거고, (사실 나도 이런 걸 하나 물면 앞장서서 퍼트리는 사람 중 한명이긴 하다.) 다 괜찮다 치더라도 혹여나 히지카타의 귀에 들어갈까봐, 그리고 그 녀석이 믿을까봐 조금은 조마조마 했다.
내가 후다닥 그 꼬맹이를 붙잡고 둔영 밖으로 끌고 나오자 차이나는 조금은 머쓱해 하면서 말했다.
“... 근데 나 진짜 좀 무섭기도 하고 좀 허전하기도 하고.. 그래서 좀 슬펐다 해”
“다 알겠으니까 얼른 가”
“아.. 그리고 니 녀석 옷... 우리 집에 있는데..”
“돌려줄 필요 없어. 버리던지 가지던지 맘 대로해”
나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나의 그런 말의 의도를 잘못 알았는지 이 꼬맹이는 환히 웃으면서 정말 그래도 되냐며 물었다. 좋아할 일인가? 설마 그거 입고 다니려고?
-
그날 저녁에 히지카타는 술을 먹고 왔다. 소문을 들었나? 나에겐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별 말도 안했다. 사실 오늘 아침에 마주친 거 외에 저녁엔 잠깐 마주친 게 다였으니 물어볼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오히려 이 새끼가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나도 그냥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차라리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이 새끼가 물어보지도 않으니까 왠지 내가 초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 태도에 나도 느꼈다. 아.. 나 역시 이 녀석에게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그래도, 그래도! 소문을 들어서 혹시나 믿을까봐 나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주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그 녀석에게 가서 이야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참 혼자 고민하다가, 서성이다가 그 녀석 방으로 찾아갔다.
“야. 자냐?”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는데 이 녀석은 이미 자고 있었다. 술을 꽤나 마셨는지 내가 온 지도 모르고 곤히 자고 있었다. 혹시.. 나 때문에 술 마신건가? 그렇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역시 계속 내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나는 자고 있는 그 녀석 옆에 바짝 다가가서 그냥 빤히 지켜보았다. 새삼스레 잘생기긴 잘생겼다. 한 때는 이 새끼가 남자답게 생긴 걸 약간은 부러워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부러워한다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는 이 녀석이 싫은 것도 있고, 내 것을 빼앗아 간다는 약간의 열등감이 주를 이루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한참 그를 쳐다보다가 조심스레 그의 입술에 살짝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혹시나 깰까봐 무섭기도 하고 두근거려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는데 마치 다른 사람 눈을 피해 무언 갈 몰래 훔치는 것처럼 떨렸다.
살짝 닿은 입술이 좋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가벼운 입맞춤에 의해서 느껴지는 그 감정은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돌아가려고 일어서려는데 자고 있던 그가 내 뒷덜미를 잡아채서는 제 쪽으로 확 끌어 당겼다. 나는 중심을 잃고 그가 끌어당기는 쪽으로 넘어졌는데 그가 나를 뒤쪽에서 꼬옥 껴안아서 그의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따듯했다.
“... 어디가”
...깨어있었나..? 귀에 대고 작게 말하는 걸 듣고 그에게 입을 맞춘 것을 알고 있나 하는 생각에 당황함과 내 마음을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지금 내 꼴을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분명히 추하게 얼굴이 빨개져 있을 거야.
사실 뿌리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조금은 더 있고 싶어서 잠자코 있었다. 그때 이 녀석이 내 귓불을 살며시 깨물었다. 도톰한 입술의 형태와 온기가 한번에 느껴지는게 이상하기도하고 약간.. 좋... 좋기도 하지만 하지 말라는 식으로 확 처내려는 찰나, 내 유카타의 벌어진 틈으로 손을 쓰윽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내 맨살에 닿은 이 녀석의 손이 스르르 지나서 가슴에.. 아니 유두를 살짝 손가락 끝으로 지분대는데 순간 움찔하고 소름끼치게 놀라서 이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쳤다. 그게 아주 싫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단순히 놀랐다. 이 녀석이 이런 행동을 취할 줄은 전혀 예상 못했으니까. 내가 몸부림치자 그가 다시 나를 꽈악 껴안더니 귀에 대고 말했다.
“... 알았어. 장난이야. 나 내일 일찍 일어나야 돼”
나는 일찍 안 일어나냐 이 새끼야. 그 말을 한 이후 그는 잠들었는지 쌕쌕 숨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토할 것 같이 심장이 너무 뛰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한참을 뜬 눈으로 이 녀석에게 안겨 있다가 이 녀석이 날 안은 손이 느슨해졌을 때 무렵, 조심히 빠져나와서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고 방에 들어와서 나는 그제야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잠도 안 오고 속이 울렁 울렁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 때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 녀석의 마음을 확신했다.
나를 미치게 피곤하게 만드는 일 투성이라서 나는 지칠대로 지쳤다. 그 날도 한숨도 못잤고, 나를 깨우러 온 히지카타를 보고 아침부터 나는 죄라도 지은 마냥 그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이 새끼는 기억을 못하는 건지, 다 기억을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나와는 다르게 그냥 덤덤했는데 나는 그런 그 새끼를 보는 것 자체로 속이 바짝바짝 탔다. 그래서 인지 나는 더욱더 이 새끼의 관심을 갈구 했다. 나의 그런 마음을 이 녀석이 알고 있는지 내가 한 발짝 다가가면, 나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는 듯 했다. 이 새끼가 지금 나를 상대로 감히 밀땅 같은 걸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건방지다고 생각해서 괜히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지랄을 떨고, 괜시리 찾아가서 괴롭히는 등 평소보다 더 심하게 이 새끼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혔다. 그랬더니 이 새끼가 너 요즘 왜 이렇게 더 심해졌냐? 하고 한마디 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챙겨주고, 내가 무얼 사오라고 하거나, 무얼 해달라고 장난스레 명령하면 화내면서도 다 들어주었다.
아- 역시 아무리 감추려 해도 너에게 나는 첫 번째였다.
그리고 나는 나답지 않게 그 녀석을 이해하려했다. 둔영에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미 나에게 다른 사람 보다 큰 관심을 쏟아주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만 대놓고 관심을 쏟긴 힘들 수도 있겠다. 하고. 나는 그래서 나답지 않게 일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 그러자 히지카타가 왠일이냐며 칭찬을 해주고, 기분이 좋았는지 맛있는 것도 사준다고 했다. 근데 뭐.. 이건 내가 사달라고 해도 사주는 거라서 큰 의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나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게 기뻤다. 그런데, 이게 또 몇 번이 반복되자 또 그런 관심이 확 식어가는게 보여서 화가 났다. 그리고 그날은 오랜만에 사고를 쳤다. 당연히 히지카타에게 불려갔고, 그가 나를 앉혀 놓고 몇 일 좀 잠잠하더니 오늘은 왜 또 이러냐며 화를 냈다. 좋았다. 그리고 나는 이 녀석의 마음을 다시 알았다. 이 녀석도 나의 이런, 관심 받길 바라는 행동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구나. 그가 나에게 화를 낼 때, 내가 그 말을 들으면서 생글생글 웃자 그가 나를 멈칫 보더니 말했다.
“미쳤냐? 지금 너 혼나고 있는거야”
“응 알아요”
“근데 웃어?”
“웃으면 안돼?”
내 말에 히지카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난다.”
이 녀석은 벌써 화가 다 풀렸다. 역시 너는 나에게 꼼짝 못하는 사람이었다.
“잘못했어. 이제 안 그럴게.”
“말은..”
나를 보곤 휙 나가려고 하길래 나는 뒤쫓아 가면서 말했다.
“히지카타씨, 나 가고 싶은데 있어요”
“근데”
“같이가자”
“...어딘데?”
“있어. 오늘 가자, 밤에 가야된 단 말이야”
“오늘? 안돼 나 오늘은 좀..”
“싫어 난 오늘 가고 싶어”
사실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이 새끼도 오늘 밤엔 일도 없으면서 괜히 안 된데. 나는 이 녀석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싫고, 오늘 마음먹은 건 오늘 하고 싶은 나라서 고집을 부렸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고집을 꺾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이 녀석은 나에게 결국 져 준다는 것을. 결국 알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역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부슈였다. 그 곳에서 전에 어릴 때 누나랑 같이 야경을 봤던 곳이 있었는데 누나는 나에게 이렇게 예쁜 장소는 가장 소중한 사람과 보고 싶어진다고 말했었다. 어릴 때 나는 누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 와서는 그 말이 이해되었다. 그런 말이 있잖아. ‘혼자보기 아깝다.’ 그런 혼자 보기 아까운 장소에, 그 시간 같은 것을 본다는 것은 뭐라고 해야 하나.. 같은 기억을 함께 공유 한다는 것에 의한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부슈는 운전하고 가기에 꽤나 멀어서 기차를 타고 가자고 했고, 둘이 기차를 타는 건 처음이었다. 항상 곤도씨나, 다른 대원들이 항상 있었으니까.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갈 때 그가 나에게 물었다.
“곤도씨도 같이 가자고 하지 그랬어?”
떠보는 건가?
“곤도씨는 안경네 누나 쫓아다니고 있을 거 아냐”
“하긴, 뭐.”
서로 말 없이 창밖만 쳐다보고 있을 때 그가 다시 물었다.
“근데 갑자기 부슈는 왜?”
“가보면 알아”
내가 작게 킥킥 웃었다. 그러자 히지카타는 왜 자꾸 웃냐고 물으면서 내 머리를 큰 손으로 헝클어 놓았다. 늘상 있던 일인데 나는 새삼 그의 이런 행동 하나가 설레서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어디 가려는지 말도 안해주고, 어디야? 가고 싶다는 데가?”
전에 살던 쪽은 아닌지라 내가 이쪽이라며 기억을 더듬으면서 안내했다. 부슈 한 구석에는 판자촌 비스므레 한 것이 있었는데 사이사이로 비치는 가로등과 집안 등, 그리고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까지 한 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누나는 그때 나를 데리고 와서는 웃으며 말했다.
‘소중한 사람과 꼭 보고 싶었어. 소고 어때? 예쁘지?’
사실, 너무 어릴 때 봐서 그때 봤던 풍경이 어떤 광경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누나가 굉장히 좋아했다는 기억 밖엔.
너무 오랜만이라 어느쪽인지 햇갈려서 이정표 앞에서 잠깐 고민하고 있자 히지카타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이 쪽 아냐?”
아. 그랬던 것 같다. 와 봤나? 어느새 내가 이 녀석의 뒤를 따라가고 있어서 내가 의아한 듯 물었다.
“여기 알아?”
“아니, 그냥 이쪽일 것 같아서”
도착하니 세월 때문에 약간은 변했지만 그래도 여전했다. 맞아,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히지카타 어때? 좋지?”
내가 약간은 상기되어서 말했다.
“응. 근데 이거 보자고 오자고 한거야? 요즘 너 답지 않게 꽤나 감성적이다?”
“나이를 먹어서”
내가 장난스레 말했다.
갑자기 히지카타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잠깐 핸드폰을 주시하더니 받아 들었다. 간단하게 뭐 들을 것도 없는 간단한 통화를 하고 끊었다.
“누구?”
“곤도씨, 어디냐길래”
같이 오자고 할 걸 그랬나. 괜히 미안해지네
“여기 와 있다고 말 했어?”
“아니 안했어”
그가 짧게 대답했다. 나는 다행이다고 생각하곤 마저 눈 앞의 야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여기에 있으니까 기분이.. 뭐라고 해야하나, 마냥 신나지는 않았다. 누나랑 어렸을 때 왔던 곳이라 그런가. 그때 누나가 이걸 보고 돌아가는 길에 말했었다. ‘다음에는 밤에 오징어잡이 배를 보러 가자. 사람들 말로 집어등불빛이 정말 예쁘데’ 그러고 보니 결국은 보지 못했지만, 누나는 정말로 보고 싶어 했었다. 맨날 지도나, 책자를 놓고 찾곤 했는데, 그때 어디 지명을 이야기 했었는데,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만 돌아가자, 기차 끊기겠다.”
녀석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한참 눈 앞의 야경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말했다.
“히지카타, 다음에 오징어잡이배.. 보러갈래?”
한참 뜸을 들이다가 그가 대답했다.
“....그래, 가자”
돌아오는 기차에서 한참 자다가 비몽사몽이 돼서, 기차에서 비틀비틀 내렸다. 역시 갈 때는 좋은데 기차에서 자다 깨서 내리는 건 질색이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밤의 찬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둔영에 다다라서, 각자의 방에 들어가려 할 때, 히지카타가 방에 들어가려는 나의 한쪽 어깨를 잡고는 물었다.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
나는 그 순간 비몽사몽 했던 정신이 확 날아가곤 맨 정신으로 돌아왔다. 무슨 말을 하라는거야? 그리고 나는 곧 얼마 전에 이 녀석 방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그의 시선을 피하곤 말했다.
“어.. 없는데”
“....그래?”
“..응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아냐, 그럼 됐어. 자라”
.........이 새끼 지금 내가 말하길 기다리는 거야? 아닌가, 이 새끼도 지금 나 떠보는건가? 나는 너무 뻥져서 이 녀석이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말을.. 했어야 했나.. 아니, 야 이 새끼야 니가 말해야지. 왜 내가 말하길 기다려.
알잖아, 내 자존심에 이런 걸 먼저 말 할 사람으로 보여?
-
“가방.. 놓고 왔다 해”
또 다시 둔영에 찾아와서 하는 소리가 이거다.
“다 좋은데 둔영엔 작작와라?”
그 이후로 이 꼬맹이와 나의 대화 때문에 대원들의 오해를 사고 있었다.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걸 보고는 지나가던 대원들이 다 한번 씩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런 눈빛들이 신경쓰이다 못해 부담스러워서 나는 차이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가져다줄게. 그거 바로 필요한거야?”
“그건 아닌데..”
“그럼 담에 받아. 나도 거기 자주 가진 않아서”
“뭐.. 알겠다 해”
이 꼬맹이를 뒤로하고 다시 돌아가려는데 이 꼬맹이가 외쳤다.
“너.. 너! 왜 요즘 안오냐 해?”
...어딜 안오냐고 물어보는거야. 내가 뒤를 쳐다보자 차이나가 다시 외쳤다.
“왜 놀러 안오냐 해, 우리 사귀는거 아니냐 해?”
.....
“긴짱이 그러는데 같이 자면 사귀는 게 틀림없다고 했다 해”
“... 형씨한테 그렇게 말했어?”
아 혈압 올라. 이 꼬맹이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말했다.
“드라마 보는데 긴짱이 그랬다 해. 우리도 그런거 아니야?”
“어 아니야”
내가 정색하면서 말하자 차이나가 머리를 두어 번 긁적이더니,
“..음.. 이미 긴짱한테 사귀는 사이라고 말했다 해”
“너 나 좋아하냐?”
이 꼬맹이 말을 듣다 듣다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니가 날 좋아하는 거 아니냐 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짜증나게 하냐.
“너, 심심하구나 가서 잠이나 자라”
그 전엔 다른 일 때문에, 이 이후엔 이 꼬맹이가 자꾸 귀찮게 하길래 형씨의 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랬는데 이 꼬맹이는 허구한 날 둔영을 찾아오거나 순찰중인 나를 찾아내서 쫓아와서는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한번은 또 다시 가방을 핑계로 둔영에 찾아온 꼬맹이와 티격 태격 하고 있을 때 히지카타가 나와 꼬맹이를 곁눈질로 한번 쳐다보고는 말없이 지나갔다. 나는 그런 그가 여전히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소리 없이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꼬맹이에게 다시는 둔영엔 오지 말라고 다시 한번 강하게 말했고, 이 꼬맹이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내가 이 꼬맹이를 도와주고, 이 꼬맹이를 나의 공간으로 데려간 것은 크나큰 실수라고 생각되었다.
-
순찰을 하는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야마자키와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고, 가기전에 히지카타가 어디에 있나 찾았는데 어딜 나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눈으로 찾고 있을 때 야마자키가 가자고 이끌어서 순찰을 떠났다.
“대장, 해결사 형씨네 꼬마랑은 잘 되갑니까?”
하도 놀려대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이젠 화도 안난다.
“아니라고 그런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뭐 다 연애도 하고 그런거죠 전 오히려 대장이 부럽...”
야마자키가 소리내어 웃는게 나는 순간 욱해서 한마디만 더 하면 죽이겠다고 말했다. 야마자키는 은근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물어보지도 못하나..”
내가 야마자키를 쳐다보자 그가 내 시선을 보고는 고개를 확 돌리더니 죄송합니다! 하고는 운전을 시작했다.
대충 일을 마치고, 그 꼬맹이가 놓고 왔다며 가져다달라는 가방이 생각나서 야마자키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말했다. 빨리 줘 버리는게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 해결사네 꼬마 만나려고 그러십니까?”
저 새끼가 끝까지..
“장난입니다.”
야마자키는 차를 타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저 새끼 둔영 돌아가면 죽여버릴까.
마침 내 공간은 여기서 그렇게 멀진 않았는데, 골목길로 가면 더 가까웠다. 더럽고 파이프가 여기저기 설치 되어있어서 복잡하고, 좁고, 가끔 덩치만 큰 조폭들이 담배 따위를 피우고 있어서 기분 나쁘고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으슥한 느낌이 싫어서 골목길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가끔 멀리 돌아가기 싫을 땐 이용했다. 특히나 이 곳은 유난히 골목이 미로처럼 뒤엉켜 있고, 많았다. 그래서 왠 만큼 길을 잘 알지 않는 이상은 햇갈리기가 일수였다.
히지카타는 우리에게 항상 혼자 어두운 골목 같은 어두운 곳은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다. 원한을 품고 있는 양이지사들이 출몰하기 쉬운 그런 곳에 괜히 혼자 돌아다니다가 당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강하니까- 그 말을 무시하곤 종종 혼자 돌아다녔다.
그 날도 그렇게 그 녀석 말을 무시한 채 좁은 골목을 타고 걷는데 멀리 몇 갈래 갈라진 골목에서 흰 옷자락이 쓰윽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뭐지? 나는 약간의 호기심에 무심코 그 쪽을 빼꼼 들여다 보았다. 형씨였다. 특유의 문양이 그려진 옷과 하얀 털 뭉치 같은 머리카락이 그가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해서 보니 그의 앞엔 히지카타가 있었다. 둘이 또 싸우나?
그 둘에게 다가가려 한 발짝 내딛으려는 순간 형씨가 히지카타에게 입술을 들이밀고 키스를 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더 이상 다가가진 못하고 약간 숨은 형태로 그 둘을 쳐다보았는데 그런 형씨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거겠지? 형씨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거지. 혹시 히지카타를 열받게 하려고 저러나? 그러나 히지카타 역시 저항하지 않고, 둘이서 부드럽게 껴안은 채로 서로의 입술을 입술로, 혀로 할짝이는 것까지 확인했다. 한참 멍하니 그 둘을 지켜보는데 히지카타가 형씨의 윗옷을 반쯤 벗겨 내는 것을 보고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까 나는 그래도 그 둘의 행각을 계속 지켜보았는데, 형씨가 웃으면서 이 새끼의 옷 단추를 하나하나 푸르는 것을 보고, 히지카타가 형씨의 목에 얼굴을 묻고 형씨의 바짓단에 손을 대는 것을 보고 나는 그대로 뒷걸음 쳤다. 또박또박 걷는 것도 아니고, 나답지 않게 발이 바닥에서 다 떨어지지도 않은 채.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겨우겨우 몇 걸음 움직여 벽에 기대었을 때, 기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르륵 주저앉아버렸다.
아니야! 내가 잘못 본거야.
“히지... 카타.. 하아... 흐읏”
형씨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긴토키...”
히지카타의 목소리도 들린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멀리 있어서 미세하게 들리는 이들의 신음 섞인 목소리와, 살이 쳐대는 소리에 몸서리치게 괴로워서 귀를 틀어막았다가, 애써 몸을 일으켜 무언가에 쫓기듯이 허겁지겁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행위가 극도의 혐오감을 넘어서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오싹하고 역겨웠다. 눈 앞이 캄캄한게 하나도 보이지 않고, 역겨움에 벽에 기대선 한참 헛구역질을 해댔다.
아니야, 내가 지금 이상한 환영을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생생하게 역겨움과 헛구역질에 의한 괴로움이 느껴지는게, 왜 이런거야.
'은혼 > 꼬리표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지오키긴] 꼬리표 07 (0) | 2015.08.18 |
---|---|
[히지오키긴] 꼬리표 06 (0) | 2015.08.18 |
[히지오키긴] 꼬리표 04 (0) | 2015.08.18 |
[히지오키긴] 꼬리표 03 (0) | 2015.08.17 |
[히지오키긴] 꼬리표 02 (0) | 2015.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