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융해점 10
허니멜팅님 께서 그려주셨어요>_<
갑작스럽게 그를 마주 볼 일이 생겼다.
우리 부대의 대원들은 내가 인질로 잡혔고, 같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한패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하는 듯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를 배신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살기 위해 그 악당 녀석을 모른 척한 것은 맞지만, 아무것도 모른다고 히지카타의 앞에서 말했을지 언정, 한패가 아니라고 한 적은 없다.
"그 범인은 어땠어?"
6번대였나... 전에 맡고 있던 대장이 잠깐 입원을 해서 예비 배치된 사람이었다. 별로 관심도 없고 나와 친하지도 않았다.
"... 뭐가?"
"네가 당한다는 건 생각지 못 해서. 강해?"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친한 척이야? 하는 생각에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뭔가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표정.
"좀 있다가 그 범인 녀석을 보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갈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순간 바로 대답하려고 그 녀석을 홱 돌아보았다가, 바로 수긍을 하는 것은 조금 수상해 보일 것 같아 그냥 잠자코 그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왜 눈치를 살펴? 그냥 보러 가는 거잖아 가서 한번 살피고..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고 그럴 거야. 감시 차원이지만."
사실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해 하고 말하면서 그는 그냥 웃었다. 이 녀석은 내가 그를 무서워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 녀석은 그 범인은 나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고, 그래서 그를 마주 보면 내가 발작이라도 일으키면서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은 거겠지. 그래 가자 하고 말을 하기도 전에 그 녀석은 내 팔목을 꽉 잡고는 웃으면서, 따라와 지금 갈 거야 하고는 거칠게 끌어당겼다. 지금 내가 근신 중인 데다가, 히지카타가 옆에 없어서 이렇게 막 대하는구나 싶어서 이 건방진 태도의 이 녀석이 잡은 손을 확 뿌리치면서 말했다.
"잡지 마 기분 나빠"
나는 그를 앞서서 걸으면서 다시 말했다.
"앞장서, 가자면서"
그는 당황한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이내 다시 내 어깨에 손을 확 올리면서 말했다.
"센 척 하긴, 무섭지?"
아.. 오늘따라 재수 없게 왜 이래? 어깨에 얹은 손을 확 뒤집어서 부러트려놓으려다가, 한 번 참았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전에 자료에서도 본 것과 흡사하게 지하에 통로가 있었고(자료실에서 본 자료는 공개적인 자료인만큼 많은 정보가 있지는 않았다.), 지키는 사람들은 우리의 얼굴과 직급을 확인하고는 비교적 쉽게 들여보내줬다. 밖에서 봤을때는 좁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안은 굉장히 깊었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조차 인증이 필요했다. 이 녀석이 누른 층은 지하 14층이었다.
"인증할 땐 뭐가 필요한 거야?"
내가 묻자 그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왜? 내가 두고 갈까 봐 무서워? 하고 묻는다. 저렇게 재수 없는 캐릭터였나? 죽여버리고 싶다.
"사실 오늘부터 내가 담당자로 지정되어서 나만 출입이 가능해. 지문인식이나 홍체 인식 뭐 그런 거 있잖아"
애매하게 답을 한 후 자신도 여기에 처음 와본다면서 웃었다. 이 새끼 무서워서 나한테 같이 가자고 한거 아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어두운 공간이 열렸다. 드문드문 있는 횃불만이 있었고, 습한 냄새가 가득 매워져 있었다. 지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어차피 곧 실험실로 옮길 것이기에 일부러 많은 사람들을 배치하진 않은 것 같다. 간수들은 나와 그를 보고는 인사했다. 엄청난 것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그런 것은 없었다. 그냥 보통 상상하는 지하 감옥처럼 단순했고, 빛이 없고 칙칙했으며, 막연한 느낌의 답답함이 나를 짓누르는 그런 곳이었다. 어디에서 떨어지는지 모를 물 소리가 똑, 똑, 똑 하고 울리는 것은 살짝 으스스했다.
"아, 저기다"
그가 가리킨 곳은 문이라기보다는 무슨 봉인을 해놓은 사막 한가운데의 컨테이너 박스 밀실 같은 느낌으로 엄청난 양의 사슬이 칭칭 감겨있었다. 아예 그냥 커다란 검은색 네모난 상자 같아 보이는 그곳. 내 옆에 이 새끼가 없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이 새끼가 어떤 꼴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여전히 웃고 있으려나? 개새끼.
가까이 다가가자 옆에 있는 이 녀석이 어떤 버튼을 누르자 앞에 있는 철문이 위로 올라가면서 열렸다. 그리고는 그 안에 있는 커다란 철창이 드러나면서 서서히 내가 기다리고,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그 악당 녀석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열리는 쪽을 바라보면서 손엔 쇠사슬이 묶여져서는 서 있는 나를 보고 놀란 듯이 눈을 치켜떴다. 나 역시 며칠 동안 그의 부재 때문이었는지, 오랜만에 본 그가 너무 반가워서 옆의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도 그런 나를 보고는 그냥 피식 웃었다.
같이 동행한 그 녀석 뒤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그를 쳐다보고 있자, 그가 나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왜 그렇게 서 있어? 가까이 와"
제 팔로 내 목을 확 휘어잡으면서 그가 나를 그 녀석이 있는 그 창살로 가까이 잡아끌면서 기분 나쁘게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봐, 너, 이 녀석에게 끌려다녔잖아"
뭐야, 생각보다 키도 작고 별로 위협적인 것 같지는 않네? 이 새끼가 악당을 보고 한 말이었다. 내 옆에 있는 이 새끼의 말은 신경 쓰고 있지 않았으나,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있는 저 악당, 사실 당장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 녀석이 옆에 있었으니 하지 못했지만. 약간 옆의 이 녀석이 거슬린다는 식의 표정을 무의식중에 짓고 있었는지 악당이 날 보고는 전에 마주쳤을 때와 같은 웃는 낯짝으로 말했다.
"얼른 없애. 거슬리잖아"
"저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내 옆의 녀석은 못 알아듣겠다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나에게 물었고 신센구미의 제복을 입고 있는 나는 이 녀석을 없앨 수는 없었고, 나에겐 한없이 방심하고 있는 이 녀석의 뒷 목을 내리쳐 기절시켰다. 나로서는 자비를 베푼 것이다.
힘 없이 쓰러지는 그 녀석을 보고는 나는 악당이 있는 철장에 다가가선 반가움이 주체되지 않았지만 애써 퉁명스럽게 말했다.
"존나 짜증난다 너"
나를 보고 웃는 그 녀석, 저 새끼가 죽는다면 그 죽이는 사람이 나였으면 했다. 그것이 이 악당과 나의 사랑이었다. 처음에 만난 순간부터, 같이 다니면서 약간 관계에 변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사람이 되길 원하는 것은 변함없었으니까.
"너 역시"
"내가 오길 기다렸지?"
"... 사진보다 실제로 보는 게 낫네. 제복 입은 모습은. 전에 신문에서 봤을 때는 너무 착실해 보였어"
"왜 순순히 이곳에 왔어?"
"... 몰라 나도"
그가 잠깐 생각하는듯하더니 빙긋 웃으면서 다시 나에게 말했다.
"너, 생각보다 늦게 왔어. 바로 달려올 줄 알았는데"
기대하긴.
"바로 달려오기엔.. 나도 이것저것 생각해야 했으니까"
나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는 주위를 둘러보곤 이어서 말했다.
"나가. 넌 나갈 수 있잖아"
"너는?"
"나?..."
"왜? 네가 항상 말하는 그 새끼랑 있으니까 안심되나 봐? 응?"
"... 뭐라는 거야?"
"네가 맨날 말하는 그 녀석 있잖아. 다른 사람에겐 피도 눈물도 없는 네가 꼼짝 못하는 그 녀석"
비아냥 대는 말투. 내가 저와 함께 범죄를 저질러 왔다는 것 역시 부정했다는 것은 대강 알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내가 대원들의 달라진 태도에 싫증을 느꼈다고는 하나, 그래도 이 자리가 내 자리라는 확신은 있었다. 이런 혼란과 싫증은 잠깐이고, 조금만 견디면 되는 이런 소소한 감정 때문에 송두리째 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래, 이 악당의 말대로 안심했다. 이 악당이 나와 맞대는 창이었다면 히지카타는 나에게 있어 방패였다. 혼란스러운 내가 지금 찾고 있는 것은 방패였는지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가 그 말을 하고는 소리 내어서 잠시 웃고는 다시 말했다.
"너도 보통은 아니네. 역시, 하긴 그 정도는 돼야 나랑 같은 족속 아니겠어?"
한참을 이 악당과 서로를 쳐다보다가, 나는 그저 희미하게 살짝 웃으면서, 다음에 봐. 하고 말했다. 시간이 초과되어 내려오는 철문 사이로 보이는 그 녀석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화가 나 있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닫힌 철문 앞에서 알 수 없는 허전함에 멍하니 서 있다가 기절시킨 이 재수 없는 새끼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끌고 와서는 잔뜩 패서 깨운 뒤에 나는 그곳을 나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 * *
"그 범인 만나고 왔다면서?"
히지카타가 돌아와서 그 말을 들었는지 나에게 물었다. 날 그곳으로 데리고 갔던 그 6번대 대장은 히지카타에게 엄청 깨졌다고 들었다. 히지카타는 내가 그곳에 간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응"
"6번대 녀석은 갑자기 기절해서 기억이 없다는데, 그곳에서 뭘 했어?"
"... 이야기"
"무슨 이야기?"
"... 그냥 이야기"
내 말에 히지카타는 내 앞에서 그냥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는 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죽고 싶어?"
"아니"
"... 그래. 알고 있으면 됐어"
우리 둘 사이엔 적막이, 그리고 바깥에는 비가 오려는지 모르겠지만 차가운 기운이 돈다. 우리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밖에 있는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그의 얼굴에 반쯤 비스듬히 걸쳐져 그의 얼굴의 반절이 어둡고, 반절이 밝게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새끼 얼굴이야 여전히 재수 없게 잘생겼지만.
히지카타는 그날 내 앞에서 한참 담배를 피우다가, 말없이 나가선 술을 진탕 먹고 들어왔다. 이전 같으면 나에게 같이 마시자면서 간단한 말이라도 했을 텐데 그런 말은 없었다. 사실 그렇게 물어왔어도 나는 동행하지 않았을 테지만. 돌아와서는 아직 잠들지 않은 나를 보고 비틀비틀 다가와서는 나를 와락 끌어안으면서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말했다.
"... 미치겠다.."
술 냄새.
".. 아... 나.. 너무 힘들다.."
나를 다시금 꼬옥 끌어안는 이 녀석을 보면서 힘들어하는 원인이 나 때문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으나, 내 머릿속에는 마지막에 봤던 화난 듯 한 그 악당 녀석의 눈 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서 절망적이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날 끌어안고서 있던 히지카타는 나를 들여다보고는 내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서 제 입술을 내 이마에, 눈에, 그리고 뺨, 그리고 귓볼에, 그리고 목덜미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그가 나를 원했고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거부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열기를 띈 그의 손길, 어깨에 걸쳐진 옷자락을 애무하던 입술로 조심스럽게 끌어내리는 행위에도 나는 입에 대지 않은 술에 취한 듯 몽롱해서 이 새끼가 하는 행동에 순순히 응했다. 이 따스한 느낌은 히지카타가 나를 원하고 있었던 시간만큼, 기다렸던 기간만큼 눌려있었던 거칠지 않은 욕망이라는 것을 느꼈다.. 바스락거리는 흰 시트를 꽉 붙잡은 내 작은 손을 제 큰 손으로 감싸 주는 것도, 허리와 가슴을 쓸어내리는 부드러운 손길도, 동그랗게 솟아 있는 유두를 혀끝으로 조심스럽게 핥는 것도... 그가 내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을 때도 내 작은 신음 한 번에 아파? 하고 물으면서 끊임없이 내 쇄골과 가슴에 애무를 해댔다.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하겠다고 몇 번이나 내 귀에 대고 속삭였지만 되려 나는 히지카타의 뒷목을 한껏 끌어안으면서 계속하라고 말했다.
"소고.. 내가.... 내가..."
"하아....으읏.."
"...좋아...해.. 사랑해.. 하아..."
"하..아..아앗..."
".....사랑..해..."
새삼 히지카타는 어깨가 굉장히 크다. 끌어안은 나를 잔뜩 품어줄 만큼. 뜨거운 숨이 맞닿을 때마다 도톰한 입술이 살며시 포개졌다.
정신과 육체의 결합이 모두 이루어졌을 때 사랑이 완벽한 것이라고 했지만, 나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사랑이라고 느끼지 못 했다. 하지만 자상하다 못해 너무 부드러워서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나를 안는 방식은. 저 감옥에 있는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
히지카타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 벅찰 만큼.
관계가 끝나고서 그는 나를 꼬옥 끌어안고서 잠에 들었다. 더워, 답답해하고 빠져나가려고 해도 절대 놔주지 않았다. 방금 전 방안을 가득 메웠던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 들면서 나는 몽롱했던 정신을 다잡으며 제정신을 차렸고, 이내 홀가분해졌다. 뚜렷한 윤곽을 잡은 기분이 들었다. 고민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답답한 이 녀석의 더운 품을 빠져나가야겠다 하는 생각만이 들었다.
히지카타는 그 열기 가득한 정사 후 아침에는 저가 술을 먹고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실수를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나 역시 동의한 부분이기에 그냥 피식 웃으면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네 녀석이 그런 실수를 저지를 리 없잖아. 나 역시 거부하지 않았고. 그는 나에게 뒤늦게서야 관계할 때 속삭였었던 제 마음을 정식으로 털어놓았고, 나는 무미건조하게 '나도' 하고 대답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히지카타가 나가고 나서 그가 우연히 두고 간 단도 하나를 몰래 품 안에 넣었다.
* * *
이틀. 이틀 후였다. 악당 녀석을 병원으로 옮기는 것으로 확정 지어진 날은. 자꾸 정세를 살펴도 혼란스럽지 않고 다른 때와 비슷했다. 어느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고 그 녀석 역시 조용히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는 조급했다. 내가 그렇게 찾아가고 뒤돌아서 왔을 때 악당 녀석의 화가 난 눈을 보고 나는 그가 어떻게 해서든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와 함께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살짝이나마 비췄기 때문에 열이 받아서라도, 그래서 저 혼자라도 도망쳤길 바랐다. 아, 근데 그 새끼가 혼자 조용히 나갈 새끼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점이긴 하다.
내가 발 걸음을 옮겨 찾아간 사람은 그 6번대 대장이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나를 보고 그도 의아했는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선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오늘은 안가?"
"어딜?"
"사형수 수용소"
"어제 다녀왔는데"
"별일 없었어?"
"거기에서 별일이 있었으면 이렇게 조용하겠어? 왜 뭔 일인데?"
"나, 거기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
"뭔데? 다음에 가면 가져다줄게"
"아, 아냐 오늘 가야 해, 그리고 나도 가야되서.. 같이 좀 가줘"
"오늘은 바빠"
"그럼 언제 갈 건데?"
"음... 내일모레? 그때 옮기는 날이거든, 그때나 갈 것 같아"
그를 병원으로 옮기는 날이었다.
"뭔데? 그렇게 중요한 거야?"
내가 그 말을 듣고 잠잠히 있자 그가 다시 내게 물었다.
"응"
"어쨌든 좀만 기다려. 아, 그리고 너 데리고 가서 나, 부장한테 엄청 깨졌었거든? 널 데려가는 건 너 하는 것 좀 보고 생각해볼게"
그가 날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저 새끼가...
"닥치고 안내해"
슬슬 약 올리는 이 새끼의 행동이 재수 없어서 까칠하게 말했다. 내가 열받았다는 것을 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날 돌아보곤 말했다.
"그래, 가자. 그렇게 가야 한다면야. 근데 나 너 데려간거 알면 부장한테 엄청 깨져. 다 네 탓으로 돌릴거다"
나는 좋을대로 하라고 말했다. 히지카타야 뭐 ... 물론 내가 그 곳에 다녀왔을때, 죽고 싶냐고 물었던 것이 생각났고(협박이 아니라 사형당하고 싶냐는 의미였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대던 모습이 생각났지만 지금은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전과 똑같은 절차를 밟은 후 들어가서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선 그가 말했다.
"난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릴게 가서 가지고 와"
"그러던가"
"사실 나 거기 가기싫어. 기분이 별로야. 엘리베이터에서 조용히 기다릴게"
"그래"
엘리베이터의 숫자 표지판이 한 글자 한 글자 모습을 바뀌면서 변한다.
..
12
13
14
"자, 다녀와"
엘리베이터가 도착 안내를 하려 잠시 정적이 흘렀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6번대 녀석이 내 앞에 서서 말을 했고 열리자마자 왠 간수 하나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힘 없이 쓰러졌다. 그 탓에 크게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와 그 안에서 놀란 나와 그 6번대 녀석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고는 동시에 열린 곳을 보았다. 그 앞에 서 있는 것은 익숙하게 피를 뒤집어 쓴 악당 녀석. 손가락 끝에 흥건히 묻은 피를 핥는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정신차렸구나, 너. 그런 감탄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내 옆에 있는 6번대 대장 녀석의 따스한 피 세례를 받았다. 그 역시 허무하게 내 옆에서 차갑게 식는 시체가 되어, 엘리베이터에서 조용히 기다리겠다고 했던 말이 유언이라도 되어버린 듯 엘리베이터 안에 요란하게 쓰러졌다.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불과 얼마 전에 이 악당녀석과 내가 저지르고 다녔던 일들은 항상 이런 일들이었으니까. 밖에 있는 그 녀석과, 안에 있는 나 사이에 쓰러진 이름 모를 간수의 시체가 엘리베이터문을 막는 역할을 도맡아 나와 그 사이의 경계에서 문이 닫히지 않게 막아주었다. 엘리베이터의 전등은 요란한 충격 때문인지 자꾸만 깜빡 거렸고 닫히지 못하는 엘리베이터 문이 자꾸만 숨을 격하게 쉬듯이 껄덕거렸다. 피를 뒤집어 쓴 나, 그리고 그 녀석은 그냥 서로 마주보고 씨익 웃었다.
"멋있네. 첫 번째 탈출자야 너. 축하해. 아, 아직 완벽히 나간건 아니니까 축하는 좀 이른 건가?"
"할 말은 그 뿐이야?'
"글쎄.."
그는 내가 있는 엘리베이터로 앞에 쓰러진 시체를 짓밟고 다가와서는 말했다.
"축하만 하지말고 선물도 주지 그래?"
그는 웃는 얼굴로 내 앞에 다가와서는 입술을 맞대었다. 피 냄새. 그와 내 사이에 딱 어울리는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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