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융해점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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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3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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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22015.09.08
[카무오키] 융해점 3
이 악당은 나를 구속하지는 않았다. 나도 더 이상 이 녀석이 무섭지는 않았다. 분명히 도망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쫓아온다면 다시 잡혔겠지만) 하지만 이 녀석도 자신이 나를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내가 떠날거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상처까지 치료해 준 것을 보면.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내가 봤을 때 이 녀석도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이질 않았다. 그런 이 녀석을 자극, 혹은 떠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내가 말했다.
"칼이 있었으면 좋겠어"
"칼?"
"응"
"어떤 게 좋은데?"
조금 의외인 답이었다.
"저런 거?"
어떤 사람이 차고 지나가는 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별로. 저런 거"
내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돌아다니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하나를 가리켰다.
"저거면 된다 이거지?"
나는 그의 웃음을 보고 순간 말한 것을 잠깐은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그 칼을 쥐고 있던 주인에게 다짜고짜 찾아가서는 그 칼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순순히 줄 리가 없는 그 사무라이인지 양이지사인지 하는 사람은 그에게 반항의 뜻을 보이다가 칼집에서 칼을 뽑아내기도 전에 팔이 뜯겨나갔다. 피가 콸콸 쏟아지는 팔을 보고선 잠시 쳐다보다가, 뒤늦게 비명을 지르는 그 사람이 떨어트린 칼을 집어 들고, 뒤에서 팔짱을 낀채 구경을 하고 있던 나에게 여유있게 걸어와선 건네주었다.
손수 빼앗아서 나에게 가져다 줄지는 몰랐다. 나와 다시 한번 싸우고 싶은 생각이겠지?
"자, 너에게 더 어울려"
당연하지. 나는 기분 좋게 그 칼을 받아들었다. 역시 칼이 없으면 허전하다니까?
나는 경찰이고, 그는 악당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경찰을 죽여왔지만(물론 내가 아닌 이 악당이), 여기가 다른 지역이라서 그런지 눈에 익은 우리 집단이라던가, 우리의 라이벌인 미마와리구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이 나를 조금은 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나는 장난스럽게 그가 건네준 칼을 칼집에서 슬쩍 빼서 칼날을 확인하면서 물었다.
"이렇게 무기까지 손수 구해다줘도 괜찮아? 내가 너를 죽여버릴수도 있잖아"
"죽일거야?"
"기회가 오면"
"됐어 그럼"
그는 내 어깨를 살짝 툭 치면서 말했다. 순순히 죽어주지도 않을거면서.
훔친 차를 타고 달려가면서 창문에서 부는 바람을 얼굴로 잔뜩 받아내다가 문뜩 생각나서 물었다.
"어디로 가는거야? 어디에서 자야겠다 하는 정도의 생각은 하고 있어?"
"넌 왜 이렇게 걱정이 많아?"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히지카타는 항상 나에게 '생각을 좀 해' 라거나, '걱정이라는 것을 좀 하면 안되겠어?' 라고 다그쳤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이 많은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없는 거야"
내 말에 그 녀석은 그냥 웃었다.
녀석이 차를 세운 곳은 몇 개의 집만이 드문드문 불을 키고서 황량하게 있는 시골이었다.
"어? 왜 이런 시골로 와버렸지?"
하곤 투덜거렸다. 이 녀석은 운전을 해서 어디로 갈 계획도 없고, 그냥 길이 있는 데로 운전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실수로 이 곳에 와버렸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기가 정겨워서 꽤 좋았기 때문이다. 이 곳은 내가 어릴 적에 있었던 부슈를 연상시키게 하는 짙은 파랑에서 먹색으로 부드럽게 연결된 하늘이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흩뿌려진 별들이 쏟아질듯 펼쳐져 있어서 잠시나마 나를 어릴 적으로 돌려 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록소록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들도, 특유의 풀냄새를 가득 품은 공기까지도.
"저기서 잘까?"
그가 왠 가정집을 하나 가리키면서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알 것 같아서 그의 뒷덜미를 잡고, 다른 곳으로 가자면서 잡아끌었다. 그는 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끌려오면서 왜 그래? 하고 물었다. 나는 그 말엔 대답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왠 창고 같아 보이는 곳을 찾아서 그 곳에서 오늘은 보내자고 말했다. 그 녀석은 불만 인 듯 투덜거리면서 마지못해 따라왔다. 꾸준히 관리를 하는 곳인듯 상당히 깨끗했지만, 워낙 사람이 없는 시골이라 그런지 문도 잠겨 있지 않았다. 도시와는 다르게 시골은 이런 것이 좋다.
"또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잖아"
투덜거리면서 들어오는 녀석에게 내가 말했다.
"넌 참 이상해"
그 녀석이 아무대나 털썩 앉아서는 말했다.
"네가 이상하지"
"너도 좋아하잖아? 싸우는 것도. 사람 죽이는 것도 좋아하잖아"
분명히 그 점은 사실이다.
"근데 왜.."
"그러면 안 되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네가 악당인거야"
내가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왜?"
"왜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말리지 않았잖아"
맞다. 나는 이 녀석을 강하게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녀석이 다른 사람의 칼을 잔인하게 빼앗아서 쥐어주었을때는 좋아하기 까지 했으니까. 이 녀석 생각엔 내가 모순되게 비추어질만 하다고 생각했다.
"넌 참 이상하단 말이야"
그는 중얼거리면서 털썩 누웠다.이 녀석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이런 악당 녀석. 그 날밤 나는 그날따라 얌전히 잠든 이 악당의 옆에 나란히 누워선 잠에 들었다.
* * *
떠나면서 나는 그를 설득했다.
"여기는 돈이 있어야 당당해질 수 있는 거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짓은 범죄야."
"돈?"
"그래. 그러니까 마냥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이야기야. 사람들은 그냥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잖아. 그 곳에서 우연히, 불행하게 널 만났다는 이유로 죽이는 짓은 그만둬"
"그래. 잘 알았어. 그니까 돈이 필요하다는 거지?"
'돈이 필요해'라고 들렸나? 사실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순순해서 당황했다.
"...뭐.. 그런거지."
"알았어. 그럼 은행에 가자"
"...돈 있어?"
"당연하지"
그는 나에게 완전하게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에서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근데, 넌 왜 도망가지 않아?"
"니가 잡으러 온다며"
"아 그건 그렇지, 근데 별 의지도 없어보여서"
"그러는 너는 그렇게 날 죽이고 싶어하면서 왜 데리고 다녀?"
"몰라. 이상하게 죽이고 싶은데 죽이기 싫어"
뭐야?
"나도 뭔지 모르겠어. 그냥 재밌어"
그가 다시 웃는 얼굴로, 하지만 약간은 진심이 섞인 듯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이 악당의 머릿속에도, 내가 이 녀석을 상대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처럼, 그런 비슷한 단어를 떠올렸다고 생각했다.
"그니까 가지마"
이 악당이 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그를 슬쩍 보고는 약간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글쎄, 생각 좀 해보고"
이 악당은 내 말에 생각 같은 소리.. 하고 작게 중얼거리고는 시동을 켰다.
시골이여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전과 같은 사고(사람을 치고 지나가는)는 없었다. 이 악당도 재미가 없었는지 속도를 잔뜩 줄여선 천천히 운전을 했다. 이 녀석도 나도 처음 오는 곳이라서 작은 은행 하나를 찾는데도 한참 걸렸다. 겨우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은행의 위치를 물어 겨우겨우 찾았다. 시골의 은행은 사람도 거의 없고, 있어도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아줌마 몇 명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도 드문드문 몇 명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곳에 들어선 순간 촌스럽고 어색했다. 악당 녀석이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면서 나를 앞질러 걸었다.
“은행에선 번호표를 받아야지”
내가 번호표를 뽑아서 그에게 내밀었다.
“여기 숫자가 저기에 뜨면 가는 거야”
“흐음...”
그는 내가 내민 번호표를 한참 쳐다보다가 내 옆에 앉았다.
“너 되게 꽉 막혔구나?”
막혔다고? 내가?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이게 여기서 모두가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이라고 새끼야”
내 말에 그는 참 이상한 것을 지킨다면서 중얼거렸다. 차례가 되서 카운터로 가는 그를 보곤 잠시 잡지나 볼까 하고 잡지를 들고 몇 장 펼치는 순간, 타앙- 하고 큰 소리와 더불어 화약 냄새가 잔뜩 풍겼다. 놀라서 바라본 그 악당은 카운터의 직원을 겁을 주려고 했는지 다행히 그 사람 바로 옆에다가 총을 쏘았다.
“저 가방에 들어갈 만큼 돈 넣어”
창백하게 얼어붙은 직원들과, 자리에 앉아있는 나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뻥진 채로 읽으려던 잡지를 들고 있는 나.
“거기 너, 문 닫아”
그가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우산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은행에 돈이 있다는 말은 이런 걸 말한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딱 봐도 총 같은 것은 쏴본 적도 없고, 지금 이 상황이 무서워 죽겠다는 표정을 한 나이든 무장경찰이 책임감 있게 나타나서는, 죽이지도 못할 총을 들고는 악당 녀석에게 총을 겨누면서 외쳤다.
“가.. 가만히 있어!.. 우...움직이면 쏠거야!”
듣기만 해도 만만했다. 저런 표정, 말투에 쫄아 있을 악당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악당은 별 관심없이 있다가 웃으면서 그 나이든 무장경찰에게 다가갔다. 덜덜 떠는 그 무장경찰을 보고 나는 이 악당이 다음에 행할 행동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 그리고는 먼저 그 경찰에게 다가가선 기절시켰다. 쓰러지는 무장경찰과 나를 보고는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짓고서 잠깐 나를 노려보았다. 나 역시 지지않고 그를 노려봤다. 그리고 이 악당은 돈을 챙겨서 넘기는 직원에게 가방을 낚아채듯이 받아들곤 말했다.
“가자”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밖에 나오자 신고를 받은 시골의 경찰들이 오는 듯 싸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즐거워하는 표정을 짓으면서 요란한 소리의 방향을 바라보는 그를 잡으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냥 가. 충분히 도망칠 수 있잖아”
내가 진짜 화가 난 것처럼 보여서인지,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차에 올라탔다. 경찰은 쉽게 따돌릴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보면서 속으로 아, 저래서 우리 신센구미가 욕을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저렇진 않았을거다. 우리라면 이렇게 쉽게 놓치진 않았을거야. 아마도.
“뭐야, 불만이야?”
그가 말없이 창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네가 돈이 있어야 당당하다며? 돈이 필요하대서 돈을 가지고 왔어. 근데 뭐가 불만이야?”
“... 그 돈이 네 돈은 아니잖아”
“내 손에 있으니까 내꺼지”
“당당하게 얻은게 아닌데 어떻게 그걸 그렇게 생각해?”
“당당하게 가서 달라고 한 거잖아”
“빼앗은 거지”
“빼앗긴 쪽이 잘못인거잖아?”
말이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안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녀석은 이것이 그의 방식인 것이다. 이 녀석 입장에선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번엔 아무도 죽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제 돈이 있으니 범죄는 저지르지 않고 조용히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그래. 알겠어. 어쨌든 돈이 있으니 더 이상의 살인은 하지마”
그는 그냥 웃었다.
* * *
돈이 있는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어서, 정말 평화롭게 지냈다. 그도 더 이상 살인은 하지 않았고, 나 역시 금세 이 녀석에게 화가 났던 일은 모두 잊고서 마냥 즐겁게 지냈다. 여행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흔할지도 모르는 긴 여행 한번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이 이상한 악당 녀석과 함께라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이 악당은 나를 정말 좋아했다. 내가 그것을 느낄 정도로. 가끔 부딪치는 일이야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웬만하면 내말을 들어주려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경고한 다음부턴 정말로 살인을 하지 않았고, 사실 그럴 일도 별로 없었다. 같이 있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돼서 알고 싶지 않아도 서로를 약간은 알 수 있었는데, 이 녀석은 여행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많이 싸돌아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일 없이 지구를 이렇게 오래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너, 동료에게 연락 오는 거 기다리고 있지 않았어?”
“아부토 말하는 건가? 괜찮아. 그 새끼 나 잘 찾아.”
그가 킥킥 웃었다. 그리곤 다시 말했다.
“근데 네 동료들은 너 찾으러 안와?”
“...인질로 잡고 있던 새끼가 참 좋은 거 물어보네”
“그치?”
그가 내 말에 소리내어서 웃었다. 히지카타도 나를 참 잘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선 찾기가 힘들다는 거 알아. 그리고 나도 딱히 그를 기다리고 있진 않았다. 나에게 지금이 달콤한 휴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금 이상한 점이 많지만... 지구에서 놀아본 적이 없다면서 나에게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하냐고 물었다.
“그러는 넌 보통 뭘 하는데? 나는 보통 쉴 때... 그냥 게임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
“난 맨날 싸우기만 해서 뭐”
너 답다.
“격투기 보러 갈래?”
“격투기? 가면 싸우는 거야?”
“아니 싸우는 걸 구경하는 거지 스포츠 같은 거야”
“보는 건 싫은데? 내가 싸우고 싶은데”
“그럼 너 선수할래? 너한테 다 걸어야겠다”
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결국 다 해보고 싶다고 해서 게임을 하러 피씨방에 갔다. 안 해봐서 그런지 게임은 존나 못해서 이 새끼는 나를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 새끼는 계속 지는 상황이 열 받아 하면서 나에게 정말 경찰이 맞긴 하냐면서 밥 먹고 게임만 하는게 아니냐면서 열을 올렸다. 일을 열심히 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맞다고 약간 기고만장하게 이야기 하고는 졌으니 컵라면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이러고 있으니 곤도씨랑 몇 번 피씨방에서 밤을 새다가 히지카타에게 들켜서 둔영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한참을 기다렸던게 생각난다. 곤도씨는 계속 밖에서 토시~ 잘못했어 나도 시간을 못 봤다니까? 이러면서 싹싹 빌고, 그러면 히지카타는 소고 녀석이야 그렇다 치겠는데 어떻게 당신까지 동참해서 그런 짓을 해? 하면서 화를 냈다. 그러면 난 옆에서 그러게요 곤도씨 왜 그러셨어요 이러면서 히지카타 편을 들면 히지카타는 열받아 하면서도 나는 조금은 너그럽게 봐주곤 했었다. 히지카타는 항상 나를 많이 봐주는 녀석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귀신부장이니 어쩌고 하면서 히지카타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이라면서 수근거리는데, 내가 봤을땐 글쎄?
격투기를 보러가서는 같이 구경을 하는 이 녀석이 어떻게 저걸 못 피하냐, 왜 저걸 맞고 있는거냐, 왜 저렇게 못 때리냐면서 한참을 투덜투덜 거리다가 자신이 나가서 대신 싸워주고 싶다면서 뛰어 나가려는걸 몇 번이나 말렸는지 모른다. 다시는 안와야지. 그래도 이런 걸 구경하고 있는 것을 알면 히지카타는 항상 잔소리를 했었는데, 나보다 더 격하게 반응을 해주는 녀석이 옆에 있다는 것이 약간은 신선하긴 했다.
둘 다 칠칠치 못한 사람일 경우, 조금이라도 나은 한명이 다른 한쪽을 챙기게 된다는 말이 사실인 듯 했다. 나 역시 계획도 없고, 제 멋대로 구는 사람인데, 나보다 더한 이 녀석이 옆에 있으니 나도 모르게 이 녀석을 챙기게 되고 있었다. 누구라도 이랬을 거야. 눈을 떼는 순간 벌어질 일들이 어마어마 했으니까. 난 거의 이 녀석의 감시자라는 위치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은 해보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영화도 본 적이 없다, 놀이동산에 가본 적도 없다, 등등 정말 싸움밖에 모르는 녀석이었다.
“어떻게 태어나서 영화를 본 적이 없어?”
“멍하니 앉아서 그거 쳐다보고 있는 건 생각만 해도 지루하잖아”
“재미없는 건 확실히 졸려”
“놀이동산은 뭐하는 곳이야?”
“놀이기구 타는 곳이지 뭐”
“재밌어?”
“한 번씩 가면 뭐.. 나도 많이 가보진 않았어. 보통 일 때문에 갔던 적이 대부분이니까. 보통 어릴 때 부모님하고 많이 가지 않아? 넌 동생도 있고, 부모님도 있잖아”
전에 에일리언이 나타났을 때 차이나의 아빠라는 대머리의 남자를 떠올리고는 말했다.
“아, 뭐”
내 말에 그는 대답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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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2
나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혹시나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타인 앞에서 강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자존심은 강했지만, 막상 내 자신이 나를 봤을 때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본 나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항상 약했고, 항상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을 감출 수 있었던 것은 곤도씨라는 버팀목이 있었다는 것과, 신센구미 안에서 나에게 쏠리는 관심, 그리고 다행히도 나에게 있었던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히지카타를 항상 싫어했던 이유도 이 것에 비롯 된 것이었다. 그는 나의 낮은 자존감을 약간은 알고 있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감추려 하는 나는 그가 그런 나를 들여다보려 다가올수록 나를 방어하는 자존심으로 튕겨내는 것이다.
나는 그 악당의 방안에서 우두커니 정신을 놓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좋던 싫던 수동적으로 변해 버려서 그 녀석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 녀석을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악당 녀석이 지금은 나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은 알았다. 지금 이런 상태의 나는 죽여도 재미없다고 생각한 것 일까?한 쪽발이 묶여서 이 녀석이 어딜 나가면 주인이 오길 기다리는 것 마냥 하릴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나는 이 녀석에게 사육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 수치스러움에 치를 떨면서도 이 감정 또한 그 녀석이 눈치채버린다면 스스로 죽어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째서 나를 제 옆에 두려 하는 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붕대를 감아줬던 그 순간 빼고는 딱히 아무 일도 없었고, 아예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발목에 닿은 쇠사슬의 감촉이 얼음창 마냥 차갑다.
근처로 오는 발소리만 들려도 나는 왠지 모를 기대감을 품으면서 소리가 나는 쪽을 홱 돌아보았다. 그냥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존재의 유무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무서우면서도, 이 녀석이 와주길 기다렸다. 돌이켜보면 난 항상 내 주위에 누군가가 있었다. 어릴 땐 누나가, 그 이후엔 곤도씨와 히지카타가, 아니면 대원들이 항상 옆에 있었다. 그러고 보면 히지카타는 날 혼자 두지 않으려 꽤나 많은 노력을 해준 것 같다. 그것 또한, 나의 낮은 자존감을 알아보고 한 행동이라는 것이 재수 없어. 돌아가면 죽여버릴 거야.
그리고 왠지 모를 그 기다림에 지쳐 벽에 기대어 잠깐 잠이 들었을 때, 나의 머리카락을 쓰윽 쓸어내리는 느낌에 살며시 눈을 떴다. 그 악당 녀석이 내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씨발 왜 자는 사람 옆에서 이러고 있어?
“뭐야?
“자고 있길래”
뭐야...
이 악당은 가끔 이상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하루는 잠을 자다가 악몽이라도 꾼 것인지 벌떡 일어나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충분히 잠에서 깼을 정도로 요란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허겁지겁 일어나서는 다른 손으로 제 팔에 직접 상처를 내는 것이다. 헉헉대는 숨소리와 더불어 단도를 휘두르는 소리, 그리고 바닥에 가볍게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가 한동안 조용한 새벽을 울렸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숨을 죽이고 잠에 든 척을 했다. 이 악당은 그렇게 자해를 끝내고 나서는 비틀거리면서 다시 침대에 쓰러져 털썩 누워선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한참을 뒤척였다. 저렇게 자해를 하고 있을 때 저 녀석의 표정은 어떨까? 저 때도 웃는 얼굴을 하고 있을까?
* * *
“생각보다 얌전하네”
이 녀석이 밥을 가져다 주면서 말했다.
“...조용히 기회를 엿보는 거지”
그 틈에 그의 팔뚝에 매어있는 붕대를 힐끗 쳐다보고는 물었다.
“거긴 왜 그런거야?”
그가 내 물음에 붕대감은 부분을 다른 손으로 만지작 거리다가, 묻는 말엔 대답하지 않고 내게 물었다.
“사람을 언제 처음으로 죽여봤어?”
음... 그걸 어떻게 기억해
“기억안나”
“그럼 처음에 죽이고 어땠어?”
“...시시했어. 기왕 죽일거면 너같이 몹쓸 악당을 잡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닮았네 나랑. 너 같은 애를 만나서 난 정말로 기뻐”
여전히 웃고 있는 그의 눈, 그리고 지난 밤의 자해에 의해 감겨 있는 붕대. 헉헉대던 숨소리. 그리고 웃으면서 나간 그는 무엇이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밖에선 요란한 소리와 질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또 다시 사람을 죽인 것이다. 살인 장면을 보는 것도 아니고, 소리만 듣는 것은 무엇보다도 싫었다.
또 한번의 살인이 일어나면서 나는 공포의 한가운데에 다시 놓이면서 그 공포를 이기려했는지 아니면 나도 그와 내가 미세하게 닮았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서히, 아니 갑작스럽게 그를 사랑해버렸다.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 머릿속에 우연히 떠오른 단어가 그것이었다. 그렇다고 애가 닳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이 녀석을 사랑해야 내가 살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참 말이 없다가, 그가 말했다.
“나랑 나갈래?”
“어딜 나가?”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인질이 나가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거고, 저도 여기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그가 이상해서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랐다.
“여기. 곧 폭팔할거야”
그의 말에 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뭐?”
“그니까 나랑 나가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참 쳐다보자 그가 담요를 가져와서 덮어주었다.
“춥지?”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근데 이 녀석이 준 담요가 따뜻하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지금 이 녀석은 이상하게 마치 얼굴도 모르는 나의 부모 같은 존재와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완전히 믿진 않았지만, 현 상황에 이런 친절이 조금은 나를 녹였다. 나는 어느새 나를 다치게 한 것도, 나를 구속해놓은 것도 눈앞의 이 몹쓸 악당의 짓이라는 것을 다 잊은 것이다. 몇 일이라는 시간과 더불어 난 이미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버렸는지도. 그리고 이 녀석이 이렇게 친절한 면도 있구나..하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 * *
그가 나를 풀어주었다.
나는 놀라서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가자”
“어딜?”
“나가자고 했었잖아”
“..내가 이대로 도망가면 어쩌려고?”
“뭘 어쩌긴? 쫓아야지”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나는 도망가야겠다고 마음속으론 희미하게 생각했다.
“뛰어. 진짜 폭팔할거야”
그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뛰어가는 이 악당에게 손목이 잡혀서 같이 달려가면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누구?”
“같이 잡아둔 인질이라던가, 너 같이 있었던 부하들도 있었잖..”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가 막 빠져나온 그 공간에 대형 폭팔과 함께 나에게도 뜨거운 공기가 훅 불어왔다. 밖엔 전에 있다고 들은 부대들도 없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그 큰 대형 건물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새빨간 혀를 가진 그 불꽃이 커다란 형태로 미친듯이 춤을추는 형태로 삼키고 있었다.
“몰라. 너랑 나밖에 없었어”
이 녀석은 역시나 최고의 악당이었다. 이 녀석에게 인질극은 처음부터 그냥 재미삼아 벌인것이 틀림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딘지 모를 이곳에서 나는 그와 둘이 그 거대한 불꽃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가 저가 하고 있던 잿빛 망토를 나에게 머리까지 뒤집어서 둘러주었다.
“이렇게 큰 불꽃 본 적있어?”
“...”
“난 몇 번 봤어. 가끔 이렇게 큰 게 보고 싶어. 작은 거 재미없잖아. 난 이렇게 화끈한게 좋아”
그리곤 발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고, 나는 걸음을 한 걸음씩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거야?”
“...응? 아. 걷기 귀찮으니까 차를 타자”
“차가 있어?”
“응 저기에 가면”
그는 도로변 쪽을 가리켰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곳은 아니여서 나는 이 곳이 어딘지 몰랐다. 도로변에 차가 있다니. 그런곳에 주차를 하나 하고 생각을 잠시 했을 때 그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하나 붙잡고는 그 운전자에게 말했다. 태워달라고 하려나보다 하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 운전자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타”
그는 그 운전자의 시체를 끌어내리고 나에게 타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어서 한참 쳐다보던 나는 그의 말대로 얌전히 그 차에 탔다.
“병원갈까?”
그가 거칠게 운전을 하면서 말했다.
“병원은 왜?”
“너 아프잖아”
“...됐어 그나저나 앞에 사람.....”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와 더불어 유리창 위로 사람의 형체가 훅 하고 굴러갔다.
“응? 뭐가?”
그는 별 감정 없는 얼굴로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정말이지 개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거친 운전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목적지까지 가기까지 치고 지나간 사람과 공공물은 너무 많았다. 지나간 뒤를 보면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이 꿈틀거리고 있어서 마치 좀비같다는 생각을 했다. 뒤에서 경찰차가 뒤쫓으면 의기양양하게 잠시 차를 세우고 마치 축제에 온 사람 마냥 그 무리에 뛰어 들어가 모두 정리하고 돌아왔다. 나는 그런 그를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그 녀석은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에 너무도 당당해서) 다시 한번 그가 무서웠지만 한편으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참 저렇게 생각 없이 살아서 좋겠다, 저렇게 아무도 말리지 못할 힘과 더불어 아무렇지 않은 양심을 가져서 참 좋겠네.
그는 정말로 병원에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의 강압에 의해서 병원에 들어갔다. 주문을 받는 접수원에게 접수를 하려 하자 그가 툭 끼어들어서 말했다.
“바빠 우리, 제일 먼저 해줘”
“아 지금 기다리고 계시는 손님이..”
“바쁘다고 말하고 있잖아”
그가 그 간호사에게 우산 총구를 겨누면서 말했다. 덜덜 떠는 간호사가 안내해준 의사에게도 총을 겨누면서
“얼른 치료해”
라고 말하면서 덜덜 떠는 의사 옆에서 씨익 웃고 있었다.
“신고 할거야”
내가 윗옷을 벗고, 상처를 살피는 의사를 힐끗 보면서 그에게 말했다.
“뭘?”
“이렇게 총을 가지고 일반인을 협박하면 당연히 신고를 하겠지 경찰에”
“근데?”
의사가 덜덜 떨면서 나에게 이미 상처가 있던지 꽤나 지나서 흉터가 질 거라고 말했다. 나는 상관없다고 말하곤, 완치는 바라지 않으니 우선 응급처치라도 해달라고 말했다.
“근데 라는 말이 나와? 우린 지금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읏.. 많은... 짓을 했는지 생각을 해보라고 멍청아”
의사가 소독약을 상처에 가져다 대서 느껴지는 통증에 나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나한테 멍청아 라고 불러주기도 하는구나. 맨날 악당이라고만 부르는줄 알았더니”
그는 내가 앞전에 한 말엔 절대로 관심없어 보였다.
“그러고보니 우리 공범이네?”
그는 여전히 눈웃음을 지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리곤 그는 밖으로 훌쩍 나가더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몇몇 여자들의 짧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까 우리의 접수를 받으면서 우릴 안내해주었던 간호사를 죽인 모양이었다. 그리곤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를 죽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신고해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귀찮으니까 그러지마"
저딴 소리가 통할리가 있어? 하고 생각했지만, 나의 치료가 끝나고 나서도 안전하게, 유유히 우리는 그 곳을 탈출했다. 걸어 나오는 우리를 바라보는 병원 사람들의 공포 어린 시선들이 생각난다. 경찰으로써 사람들을 구해줬을때 받는 눈빛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시선은 사람을 조금은 우쭐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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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1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몸이 묶인 것인지, 아니면 다친 상처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몸에 끈적하게 흐르는 피에 옷이 달라붙는 느낌 또한 불쾌하다. 기억이 나는 부분은 그 녀석과 싸우고 나서 널부러져 있는 나를 그 녀석이 다시 찾아온 것. 쓰러져있는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서 저와 눈을 마주치게 하고는 말했다.
"찾았다. 레어몹"
레어몹이라니.
동등하게 싸웠고, 이 녀석 역시 나와 비슷한 중상을 입었을 터인데 역시 전투민족인 야토족은 인간과 다르다 이건가? 다치긴 했지만 멀쩡하게, 심지어 처음 만났을 때처럼 특유의 오싹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날 휘어잡고 있었다.나는 이미 상처를 크게 입어서 그런 이 녀석에게 그 어떤 움직임도 취하지 못하고 눈앞에 이 몹쓸 악당 녀석의 비열한 눈웃음을 마지막으로 기억을 잃었다.
입에 뭐가 물려있는지 입 주위가 얼얼했는데, 다른 곳이 너무 아프고 답답해서 그런 사소한 것들은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로 온몸이 젓은 솜 마냥 무거웠다.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훅 들어오는 강력한 빛 때문에 나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따가운 눈을 잔뜩 찡그렸다. 내 얼굴 바짝 앞에 다가와 있는 건 다름 아닌 내가 정신을 잃기 전 가장 마지막에 봤던 그 괴물 녀석.
"..."
"어때? 좀 낫지?"
너무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켰는데 그 전에 다쳤던 상처들이 온몸을 찌르르 울려서 다시 중심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내가 쓰러진 건 상처 때문만은 아니다. 온 몸이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옆엔 몇몇 사람들이 나와 함께 묶여 있었다.
"넌 레어몹 이니까 상처도 치료해준거야."
뭐지.
"너 인질이야"
인질?
그 안은 이 녀석들의 기지인 듯한 공간이였고, 내 옆에 몇몇의 다른 인질들은 덜덜 떨고 있었다. 그야 이 녀석들 야토족이라서 꽤나 험악하게 생겼고, 생김새를 둘째치더라도 야토족의 특성인 우산만 봐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하긴 저 녀석 빼고 그 옆에 있는 녀석들은 죄다 그 힘을 과시하는 듯 험악하게 생긴데다 눈빛까지 사납다.
나는 말을 할 여력도 없어서 깨어난 이후로 하루정도 벙어리 마냥 입을 다문채로 있었다. 우선 나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추욱 늘어진 채 한쪽 벽에 찌그러져 있는 것 외엔 아무런 움직임도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악당 녀석이 치료를 해줬다고는 하나, 전문적인 치료도 아니었으니.
다음날 그가 웃으며 우리 무리에 앞에서 말했다.
"우린 너흴 해칠 생각은 없어. 그냥 단지 우리는 저쪽이 우리가 가는 걸 방해하니까 잠시 붙들어 놓는 것 뿐이야. 죽이지 않을게"
하지만 인질에게 납치범 혹은 가해자가 나는 널 죽이지 않아. 라는 말을 실실 쪼개면서 말한다고 상상해보라. 어떤 바보라고 하더라도 그 말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할 정신이 아니어서 아무 생각을 못했지만, 다른 이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타인에게 들릴 정도로 떨었다. 나는 그런 인질들 사이에서 그때는 다른 고통에 의해서 두려움을 크게 깨닫지 못해서 덤덤하게 그런 그 녀석을 쳐다보다가 다시금 몰려오는 피로감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직후, 어떤 몹쓸 용기를 가지고 있는 왠 사람이 일어나 모두를 놓아주라면서 소리쳤다. 저런 경우는 곧 죽을거야 하고 생각하자마자 그 괜한 용기를 가진 그 남자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웃는 얼굴을 한 그 악당의 손에 머리통이 찢겨 죽었다. 사방으로 튄 피, 그리고 바닥을 굴러다니는 두 눈알, 널 부러진 사지.. 그는 손에 묻은 피를 보고 다시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아, 죽여버렸네. 죽이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다른 인질들과 나는 그 광경에 찍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을 죽였다. 나도 저 녀석과 나름 호각으로 싸웠다지만 조금 더 싸웠다면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지금 몸도 온전치 못한 상태의 나는 그 녀석의 식탁 위에 하얀 배를 드러낸 채 차가운 접시에 올려져 있는 연한 생선과도 같아서 그저 조용히 닥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 무섭지는 않다고 항상 말해왔지만 막상 다가온 공포에 나도 모르게 생존의 본능이 조용히 눈을 뜨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존심 상하지만 난 지금 저 녀석에게 잔뜩 움츠러들었다. 답지 않게 구차한 변명을 붙이자면, 저 녀석은 야토족이고, 나는 그냥 조금 뛰어난 인간에 불과하다는 열등한 조건을 붙여볼 수도 있다.
고열에 시달려 벽에 기대어 있는 나를 어떤 야토족 두 명이 험악하게 다가와서는 나를 억지로 잡아 일으켰다. 갑자기 일어서서인지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몰려오는 현기증에 휘청하고 넘어질 뻔했다. 다소 신경질 적인 힘으로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이 야토족 두 명이 무서워졌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그 녀석에게 데려가는 걸까? 그렇게 날 죽이고 싶어 하는 녀석인데 가면 분명히 나를 죽이겠지? 응. 나를 죽일 꺼야. 고열과 공포에 의해서 다행히 그렇게 많이 두렵진 않았다. 적어도 마지막에 건방진 표정 한번 정도는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또 다시 잠깐 정신을 잃었는지 눈을 떴을 땐 나는 왠 침대에 있었다. 위로 보이는 하얀 천장과 나로부터 연결되어 있는 투명한 줄들이 얼핏 보여서 인질로 잡힌 것은 꿈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어서 잠깐은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곧바로 들어온 그 녀석에 의해서 허무하게 깨져버렸다.
“오! 정신이 들어?”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는 내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완벽하진 않아서 완치는 못하겠지만 이 정도로 감사하라고. 근데 인간들은 되게 약하다”
나는 이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그냥 이 녀석의 웃는 얼굴을 쳐다보는 것 자체가 나는 너무 소름 돋는 일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무기력한 나를 느끼는 것이 처음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다.
* * *
모든 움직임을 제한 받았다. 밥은 줬는데, 그 녀석이 내 앞에 앉거나. 나에게 직접 밥을 가져다주면 한 술도 뜨지 않았다.
“왜 안먹어?”
“....뭘 넣었는지 알 수 없잖아. 그런 건 먹지 않아”
“하하 사무라이는 역시 대단하네”
그 녀석은 다시 웃는 얼굴로 말하고는 나에게 준 밥을 기세 좋게 한 숟갈 먹고는 말했다.
“자. 봐 괜찮잖아”
“....”
“먹어. 레어몹이 죽으면 나도 슬프다고”
그냥 괜시리 그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아서 먹지 않았다.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내 얼굴 가까이 바짝 다가와서는 말했다.
“죽고 싶어? 먹어”
이 녀석의 반 협박에 나는 두려움에 손을 미세하게 떨면서. 그리고 그것을 감추려고 애써 노력하면서, 자존심이 상해서 속으로는 욕을 지껄이면서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어때? 맛있지?”
다시금 웃음을 지으면서 그가 물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오는 게 싫다. 필요 이상으로 경계를 해야 했으니까. 이 녀석이 갑자기 돌변해서 내 목숨을 쥐어 뜯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었으니까.
다른 인질들은 어느샌가 저희들끼리 적응을 해서 꽤나 잘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 무리들엔 끼지 못하고 (그 악당녀석이 자꾸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기 때문에) 항상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아 다친 쇄골 쪽에 자극이 가지 않게 가만히 숨을 몰아쉬면서 사색에 잠겼다. 히지카타와 곤도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형씨는? 나를 찾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왜 이렇게 질질 끌어 히지카타. 얼른 내 앞에 나타나란 말이야.
“카무이”
“응?”
“내 이름 카무이라고”
“아, 그래”
“넌?”
나는 대답하길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오키타”
의아했다. 죽일 놈에게 이름까지 알려주는 친절함이라니.
“바보 동생이랑 알고 있지?”
차이나를 떠올리고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뭐가?”
“그 녀석 어떻게 지내?”
“...잘은 몰라도 그 쪽이랑은 반대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
“맞아. 걔랑 나 안 닮긴 했어”
그는 다시 웃어보였다.
인질극 같은 건 이 녀석과 어울리지 않아서 물었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냐고.
"그냥"
그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미친놈
"장난이고, 보다시피 우리 몇 명 없잖아. 안전히 돌아가고 싶어서 한 수 접는 거지 나도 너랑 싸워서 꽤나 다쳤다고 경찰."
웃으면서 오른손에 감은 붕대를 장난스럽게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아, 어깨 쪽도 다쳤었지? 하곤 웃는다. 너 새낀 웃으면서 다쳤다고 말할 정도지만 난 죽기 직전이라고 이 괴물 새끼야.
"사실 너와 같이 잡아 놓은 인질들 다 필요없어. 경찰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것이 더 자극적일테니까. 그러니까 안심해. 넌 절대로 내가 죽게 하지 않아. 지금은"
그러더니 아무렇게나 털썩 앉아서는 아아 아부토는 연락도 안 되고 진짜 뭐하자는 거야 라고 중얼거리면서 투덜거렸다. 말은 저렇게 죽게 하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어쨌든 날 이용하는 거고, 이용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난 이 녀석에 의해서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아서 감동한다거나, 안심하진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어떻게 여길 나가야하나 정도를 고민하고 있었고 이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잔뜩 경계태새를 취했다.
같이 생활하던 인질 두 명이 또 죽었다. 난 별로 말을 섞지 않았으니까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밖에서 대치하고 있는 군인인지 경찰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집단이 조금 더 강압적으로 나오려고 하자 제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 죽였다고 했다. 그 결과, 인질을 죽여버린 그 잔혹함 앞에서 대치하던 그 집단도 우선은 조용히 물러섰다. 그들도 잡은 인질을 정말로 죽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 결과 함께 있는 이 안의 분위기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이 공포감에 잔뜩 얼어붙어버렸고, 다들 새하얗게 질렸다.
그 두 사람의 피를 뒤집어 쓴 채로 나에게 다가와서는 아- 또 죽여 버렸어 하고 중얼거리고 말없이 내 옆에 한참 앉아 있었다. 묶여진 데다 지금 상태로는 이 녀석에게 이길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나를 감싸고, 더불어 이 녀석에게 풍기는 비릿한 피냄새가 새삼 역겨웠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무서웠다. 이 녀석이 무섭고, 자꾸 이 녀석들을 자극해서 우리를 공포감으로 괴롭히는 저 집단들도 짜증났다. 히지카타 뭐하냐, 얼른 오지 않고.. 너 나 이렇게 죽일거야?
"너, 나한테 허락받고 움직여"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그 녀석이 나를 홱 돌아보면서 말했다.
"..움직인 적 없는데?"
"그니까 앞으로 무얼 하던 나에게 다 허락받으라고."
이미 움직이지도 못하게 묶어놨고, 난 상처 때문에라도 혼자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에게 이러는 이유를 나는 찾지 못했다. 이 녀석도 내가 두려운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 녀석은 그럴 리가 없다. 이미 충분히 강하고, 이런 상처투성이의 무기력한 나에게 괜히 이러는 이유가 뭐야?
"나랑 같이 있자"
내 의사 따위는 소용없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고, 그냥 이 녀석이 같이 있자 라고 말하면 같이 있어야 하는 그런 입장이었다. 물론 난 끔찍하게 싫었다.
다른 인질들은 저희끼리 한 공간에서 있다면, 난 따로 분리되어 이 녀석의 공간에서 던져졌다. 끌려갈 때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런 나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끌려가는 대상이 자신이 아님에 감사하는 안도가 함께 보였다.
데려다 놓은 새끼가 어찌나 거칠게 나를 쓰러트려 놨는지 상처가 벌어져 짧은 신음만을 뱉어냈다. 내동댕이쳐진 나를 보고 그 녀석은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와서는 상처가 벌어져 하얀 붕대 위로 붉은 피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쇄골 쭉 보더니 말했다.
"피..."
그리고는 묶었던 나를 풀어주고는 붕대를 갈아주겠다고 했다. 그의 그 말이 의아하고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한참 그에게 불신의 시선만을 보냈다.
"왜? 붕대 다시 감아준다니까?"
계속해서 쳐다보는 나의 웃옷을 잡고는 천천히 벗기려해서 나는 뭐하는 짓이냐면서 다른 한 손으로 급하게 잡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이상한 친절은 나에게 두려움과 더불어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아니 이것은 오히려 친절이 아니라 더욱 나를 협박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가 내 상처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식은땀이 흘렀다. 내 쓸데없는 자존심은 이 녀석이 내가 저를 두려워 한다는 것을 알까봐 마른침을 삼켰다.
"뭐 이렇게 쑥쓰러워하고 그래?"
그 말에 약간 머쓱한 나는 다시 다가와서 내 옷에 손을 대는 그 녀석을 내버려 두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계속 조마조마 했던 것은 사실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이 녀석은 정말 순순히 붕대만 감아주었다. 의외의 행동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이 녀석을 쳐다보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다시 웃는 얼굴로 쳐다보는 이 녀석.
우리 둘은 한참 서로를 응시했다. 나는 의심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리고 이 녀석은.. 뭐랄까. 전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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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한번 꼭 써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57권인가 58권에서
카무이가 오키타 찾으면서 레어몹 드립치면서 찾는거 보고 거하게 치여서ㅠㅠ
오키른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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