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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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는지 그 녀석은 빠르게 다시 제 위치를 찾았다. 주인이 없는 그 방은 아직도 정리하지 못했고 누나는 그저 문을 닫아두었다. 정리하다가 멈춘 그 황량한 내부가 부모님의 죽음을 더 실감 나도록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의 문이 닫혀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는 평소처럼 돌아왔다. 사실은 평소처럼 돌아온 것이 아니라 돌아온 척했다.


누나의 앞에서만 활달하고 밝은 그 녀석은 가끔 혼자서 있을 때에 본인의 침대의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어둠 속에서 흐리멍텅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은 전에 없었던 불운한 음울한 기운이 스며들어 있어서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마냥 슬퍼하는 눈도 아니고, 마냥 우울한 눈도 아니다. 무엇이든지 원망하고 있는 듯한 맺힘이 가득 있어서 보이지 않는 눈물과 함께 살기가 옅게 시려 있었다. 막 살인을 마치고 나와 피비린내를 감추지도 않고 당당하게 시체의 옆에 앉아 있을 법한 살인자의 눈동자. 


흉악한 것과 온순한 것이 함께 있을 때 내가 지나치게 흥분하나 보다. 거칠고 위험한 것들이 조금은 순해 보이는 듯한 것과 있을 때 발산하는 그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이 그 녀석이었다. 그 녀석을 보면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 싶다'라는 표현이 참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핥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다 집어삼켜버리고 싶은 기분. 당연히 온순하지 않겠지만 평소보다 더 고분고분하지 않고 거칠게 발버둥 쳐줬으면 더 좋겠다. 평소보다 더 거칠게 쏘아봤으면,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드문드문 나올 때까지 소리를 질렀으면.. 그런 상상을 하면 곧바로 앞이 부풀어 오르는 야릇한 기운이 든다.


나로서는 딱히 힘들다거나 불편한 사항은 없었다. 그 녀석도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보다는 나에게 잘했고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학교에서 만나서 올 때 가끔 마주쳐도 전처럼 나를 벌레보듯이 혐오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밥 먹으러 가자고 이야기를 할 때도 있을 정도로 우리의 사이가 조금은 순화되었다.

 

좋아, 다 좋지만 조금 짜증 나는 부분은 누나의 애인이라는 그 사람과 종종 연락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전에 나에게 질투라는 감정을 가지게 한 유일한 사람이어서 더욱 신경이 거슬렸다. 그 사람은 이 녀석에게 종종 전화를 걸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신경질에 가깝게 칭얼칭얼 댔다. 입으로는 죽어,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연락하지 마 등등 부정적인 단어를 남발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마음을 담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았다. 그래서 나는 누나의 애인이라는 반듯하고 날카로운 그 사람이 더욱 싫어졌다. 그 녀석이 옆에 있는 나보다도 그를 친근하게 대하는 것도 싫고, 누나와 그와 내가 셋이서 있을 때 나는 공감하지 못하는 그의 이야기를 할 때는 더욱이 싫다. 하지만 그는 누나의 얌전한 입술은 훔쳐보았을지언정, 이 녀석의 달콤한 입술까지는 탐해보지 않았을 것이니 그것에 대한 우월감으로 나 혼자서 마냥 위로하고 있었다.


내 성격을 말하자면 꽤나 제멋대로에 숨기거나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실제로 학교에서도 선생이던 옆에 사람이던 눈치 따윈 하나도 보지 않고(왜인지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수업시간에 그냥 나가버릴 때도 있고 시험시간에 옆에 앉은 아부토에게 대놓고 답을 물어보기도 했다. 황당해하는 선생님의 표정이 생각난다. 아부토는 나와 선생님을 번갈아 보고는 눈치를 살폈다. 너무 당당해서 그랬는지 선생은 그저 나에게 약간의 주의를 주는 것을 끝냈다. 끝난 후에 아부토는 부럽다고 비꼬아서 말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네 생각만 하냐면서 골치 아파했다. 그런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하고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 녀석에게 입을 맞춰 올 때는 숨는 걸까? 왜 이렇게 비겁하고 소심한 것일까? 왜 이 녀석이 알아차리지 못할 때에만 애정표현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동안 고민을 했고, 그 고민에 대한 내 멋대로의 결론은 이 녀석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서 나를 버릴까 봐, 누나와 그가 정말로 나에게서 멀어질까 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더욱이 그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없다고 단정 지었다. 지금의 이 균형을 절대로 유지시켜서 나에게 멀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알게 모르게 나를 감싸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개 같은 습성은 고아원에서 자라온 환경 탓이겠지. 어쩔 수 없이 그 구더기 더미에서 함께 자라왔기 때문에 그 생태를 몸에 익혀버린 것을 깨닫고 그날은 뭔가 더러운 오물이라도 뒤집어쓴 것 마냥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샤워를 했다. 타올로 몇번이고 불결한 몸을 문질러 닦아도 자꾸만 남은 찝찝함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하긴.. 고작 이런 방식으론 이미 몸속 깊숙히 스며들어버린 것이 닦아질 리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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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랑 결혼할 거야?"


부 활동을 마친 후에 음료수를 사달라고 졸라 들어간 어느 카페에 앉아 물었다. 뜬금없는 내 말에 히지카타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 표정이 왜 그래?" 내가 다시 물었다.


".. 아니...."


내가 이런 말을 꺼낼 것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랬겠지만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띠꺼운 표정으로 다시 말을 했다.


"음... 너랑 누나랑 결혼하면 난 혼자 있는 건가?"


내 말에 히지카타는 또다시 한참 말없이 있다가 말했다.


"..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히지카타는 내 눈을 잠시 피했다가 신경 쓰였는지 다시 말했다.


"... 걱정하지 마. 혹시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너를 혼자 두는 일은 없을 거야"


"혹시라도? 뭐야, 너 결혼 안 할 거야? 헤어질 생각하는 거야 너? 엉?"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니야 새끼야. 난 하고 싶지 근데.."


"근데 뭐"


까칠한 내 표정을 보고 히지카타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대답을 피했다. 누나가 히지카타와 결혼을 한다는 것.. 은 물론 싫다. 지금 내가 히지카타에게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낸 것은 현 상황에 누구보다 힘든 누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히지카타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가 짊어진 우리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가장 적절한 사람은 히지카타가 아니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 그가 확실하게 덜어준다면, 나는 괜찮다. 그가 누나와 하루빨리 결혼을 해서 누나가 조금이라도 편해진다면.... 나는 누나가 짓는 행복한 웃음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누나가 결혼을 하면 난 혼자가 될 터이지만...


카무이 녀석이 떠날 의사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내 옆에 계속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혹시나, 정말로 만약에 있어준다고 하더라도 내 쪽에서 거절을 할지도. 잠시 이런저런 일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그 녀석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면의 시간에 내 몸에 장난을 치는 변태 새끼였고, 나는 그 새끼의 그런 변태적 행위와 그에 대한 악감정을 참지 못하고서 그 녀석에게 염산테러를 가한 범죄자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직도 싱글거리면서 내 주위에 있다는 것. 나 때문에 햇빛도 보지 못하고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면 나를 원망해야 할 텐데. 그래서 나는 그가 무섭다. 우리는 절대로 사이가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찝찝함. 그 녀석에게 갚을 수 없는 커다란 빚을 진 것 같은 답답한 죄책감을 가져서 편하진 않다. 요즘 들어서는 사과를 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닐뿐더러, 내 자존심에 그 말은 목구멍 아래서 항상 맴돌기만 할 뿐, 음성으로 나오지는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했다.


어느 날 저녁, 누나는 맛있는 것을 먹자면서 우리를 밖으로 불렀다. 전에 부모님과 함께 갔었던 식당은 아니었다. 저 멀리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이었는데 고급스러운 분위기라기보다는 약간 캐주얼한 분위기로 장식되어있는 그런 식당이었다. 벽에는 목각인형이 아무렇게나 장식되어있었다. 그 꼴이 꽤나 우스웠다. 누나는 자신이 맛있는 메뉴를 안다면서 혼자 콧노래를 부르면서 메뉴를 주문했다,


"토시로씨와 함께 왔었는데 맛있더라고. 오자마자 너희들과 함께 와보고 싶었어"


"그 새끼..."


나는 습관적으로 그 녀석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누나는 히지카타의 이야기가 나오자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소고, 너는 토시로씨 이야기만 나오면 싫어하더라? 토시로씨는 네 이야기하면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건 그 녀석이고, 나는 그 녀석이 싫어요! 맨날 잘난 척만 하고 말이야. 그래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어딨니? 어딨긴? 어느 곳에 나 있고말고요. 그 정도 녀석은 말이야.


".... 누나의 애인은 어떤 사람이에요?"


나와 누나가 장난식의 말다툼을 할 때 잠자코 물을 마시던 그 녀석이 물었다.


"아, 토시로씨?"


"네, 얼굴은 몇 번 본 것 같지만 전 잘 모르잖아요"


그 녀석이 웃으면서 말했다.


"완전 개새끼"


내가 옆에서 내 편이 되어달라는 듯이 삐죽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그가 평소의 표정처럼 웃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나서 나를 홱 돌아보면서 한 그 녀석의 말은,


"넌 누나의 애인을 참 좋아하나 봐"


이건 또 뭔 개소리래. 그 말을 할 때 그는 평소에 웃고 있는 얼굴을 잊어버린 것인지 웃고 있다거나 하지 않아서 내가 흠칫 놀랐다. 그래서 나는 순간적으로 다음에 할 말을 잊어버렸다. 잠깐 굳은 나와는 달리 누나는 그의 말에 강한 긍정을 하면서 꺄르르 웃었다.


"카무이도 그렇게 생각하지? 쟤가 너무 툴툴거리긴 해도 그나마 가까운 사람은 토시로씨 밖엔 없다니까? 이제 카무이가 옆에 있어주면 되겠다"


누나는 환히 웃었고, 그 녀석도 곧 누나를 따라 하듯이 웃어 보였다. 그 둘의 사이에서 나는 혼자서 웃지 못하고 내 앞에 놓인 물컵을 들고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뭐야 아까 그 표정, 괜히 신경 쓰이게.


누나는 나보다 카무이를 더 가까이 두고, 더 챙겨주는 듯했다. 전처럼 그 녀석을 미워해야 했지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녀석이 누나의 옆에서 나보다 더 잘 따랐다는 것이 사실이라서... 최근 들어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그냥 조용히 방황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나의 앞에선 밝은 척하는 것도 지겨웠고, 그냥 다 귀찮아. 우리 집은 텅 비어 있어서 돌아가기도 전에 내 안이 깊이 파여있었다. 약간의 투정이었다. 어차피 돌아가 봤자 나를 반기는 사람은 누나밖에 없잖아.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우리로 돌아갈 수 없잖아! 하고 허공에 잔뜩 화를 내고 있다. 


아직도 가끔 나는 엄마와 아빠가 없다는 걸 잠깐이나마 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그것이 그저 잠깐 자각하지 못한 현실이라는 것이 뼈 시리게 닿아와서 나는 집이 싫다.


"이사 가자"


누나는 우리에게 말했다. 자꾸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오르기에 이사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무슨 마음인지 나는 그렇게 집에 오는 것을 싫어했으면서 막상 집을 팔아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려 생각을 하니 혹시나 내가 정말로 엄마와 아빠를 잊으면 어떡하지.. 내가 나이를 먹고 나서, 몇 년이 지나고 몇 십 년이 지났다고 그런 한낱 시간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 가족의 빛나던 생활을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나는 딱 잘라서 싫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일로 누나와 또 다투었다. 누나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나의 말투나 까칠한 행동이 문제였다는 것은 나도 안다. 누나가 어떤 말을 해도 싫다고 했다. 나를 설득하려 '소고, 잠깐만 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 하고 나를 달래어도 들을 의향도 없이 강력하게 부정했다. 이사는 절대로 싫다고  끝끝내 고집을 부리자 누나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내가.. 너무 힘들어"


그 말엔 내가 고집을 꺾었어야 했는데.. 그 말에도 딱히 나의 생각을 꺾을 생각을 하지 못했고 정말이지 말 그대로 생각 없이 말했다.


"누나, 나도 힘들어. 누나 혼자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마. 그만해. 지겨워 나도. 부모 행세도 그만해. 누나가 어떻게 말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사는 안 갈 거야"


부모 행세. 누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앞에서 바로 울었다. 아차 하고 정신을 차렸어도 이미 나는 또다시 누나를 울렸고 누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서럽게 울면서도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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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재미가 없어서 아부토와 종종 학교를 빠졌다. 빠졌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어디를 갔다가 왔냐고 물으면 아팠다고 한마디만 하면 그냥 넘어가 주었다. 특히나 우리 반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기에 사실 큰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아부토는 제 집에 나를 곧잘 초대해서 먹을 것을 주곤 했다. 그날은 어제 라면을 많이 샀다면서 라면을 끓여주었다.


"전에 가출 이야기 하지 않았어? 조금 잠잠해졌나 봐?"


"가출?"


나는 그런 말을 한 것도 잊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기억해내고는 다시 말했다.


"아, 잊고 있었네. 생각 없어 이제"


"네 집은 어디야?"


"알아서 뭐 하게"


"너 맨날 우리 집 와서 거덜 내고 가잖아. 네가 나 좀 초대해봐"


"안돼"


"왜?"


"음.. 누나랑 동생이 있어"


"누나? 그리고 동생도 있어? 말한 적이 있었었나? 어쨌든 의외네"


"왜 의외야?"


"몰라 그냥 없을 것 같아"


"뭐, 없을 수도? 하하"

아부토가 내 앞에 막 끓여서 내려놓은 라면을 먹음직스럽게 내 앞에 덜어 놓으면서 말했다. 아부토는 한 입도 손대지 않고 앞에 앉아선 내가 먹는 모습을 턱을 괴고는 쳐다본다. 항상 이렇다. 다 먹고 나서 내가 한 개 더 먹고 싶다고 말하자 아부토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어떻게 한입이라도 먹어보라는 말도 안 하냐?"


"네가 먹고 싶다고 안 했잖아"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하고는 내 말에 한 개를 더 끓이려 일어섰다. 아부토는 가끔 멍청하고, 가끔 아둔하고, 가끔 나를 너무나 생각해준다는 느낌으로만 본다면 엄마 같다. 아부토에게 억지로 뜯어내서 라면과 다른 먹을 것들도 잔뜩 뜯어 먹고서 돌아가겠다면서 나왔다. 아부토는 뒤에서 너, 내가 다시는 우리 집 데려오나 봐라! 이 자식아! 하고 소리쳤다. 저렇게 말하고서도 학교에서 나와 갈 곳이 없을 때에 제 집으로 가자고 말하는 쪽은 본인이면서.


혹시나 누나가 왜 일찍 왔냐고 물어보면 무어라도 답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몇 개 다른 신발들 속에 그 녀석의 신발이 신발장에 놓여있었다. 학교를 가지 않았는지, 아니면 이 녀석도 나와 같이 학교 중간에 빠져나왔는지 방으로 들어가자 그 녀석이 침대에 똑바로 눕지도 않고 가로로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가가서 내려보다가 옆에 걸터앉아 그를 조금 흔들었다. 그러나 미동도 없는 것을 보니 깊이 잠들었나 보다. 옆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그 녀석을 한참 쳐다보다가 속삭였다.


"..... 왜 내 앞에서 이렇게 허술하게 있어"


그러면 내가 집어삼켜버리고 싶어지잖아. 오키타와 누나의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나는 또 다시 그 녀석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시간이 찾아오자 숨겨두던 본능이 다시 눈을 슬그머니 떴고 바짝 다가가서 입고 있는 셔츠 안 쪽으로 손을 넣어 옆구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따뜻한 살결.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손이 그 녀석의 심장 쪽으로 올라가고 톡톡 뛰는 생명을 손 바닥으로 느낄 때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가벼운 샴푸 냄새, 몸에서 은은하게 품어지는 체취에 부드러운 귓불을 한번 물었다가 목을 한번 혀로 핥아보기도 하고 쇄골의 파인 부분에 혀를 담가보고 싶기도 했다. 바스락거리는 침대 시트 소리에 괜스레 겁을 먹어가면서 그 녀석을 조금씩 맛보는 것은 꽤나 즐거웠다. 순간적으로 옷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다고 생각을 하며 입술을 가까이 마주했을 때, 뜬금없이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카무이, 잠깐만 와볼래?"


몸이 흠칫하도록 놀랐다. 누나가 있었나? 조심스럽게 그 녀석의 옷자락을 잡고 있던 손을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로 놓으면서 나는 조금은, 아니 사실은 조금 많이 화가 났다. 왜 이 시간에 누나까지 집에 있었던 거야, 왜 나를 방해하는 거야. 


소리가 들렸던 부엌 쪽으로 가니 누나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누나가 나를 부른 이유는 고작 접시를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는 정도의 가벼운 것이었다. 


"누나가 있는 줄 몰랐어요"


내가 약간은 불만 있는 말투로 말했다.


"나도 네가 있는지 몰랐어. 학교에서 왜 이렇게 빨리 왔니?"


"아파서요"


"소고도 아파서 왔다던데, 저렇게 곤히 자는 걸 보면 정말 몸이 안 좋은가 봐" 


"그런가 보네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한참 옆에 서 있다가 어제 둘이 다투었던 것을 생각하고는 말했다.


"오키타 녀석, 요즘 엄청 예민한가 봐요"


"... 카무이는 참 이상하다"


내 말에 누나는 본인이 들고 있던 그릇을 살짝 내려놓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내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공격적으로 경직된 듯한 모습이었다.


"제가요? 뭐가요?"


"우린 가족인데 왜 소고를 부를 때 남처럼 오키타라고 부르니?"


...

왜긴, 우린 사실 가족이 아니니까요. 특히 그 녀석에 대해선 별로 가족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옆에 빌붙어 그와 함께 있으면서 언제쯤 그를 집어삼킬 수 있을까 노리고 있으니까요. 


"... 아, 그 녀석이랑 저, 조금은 어색하잖아요. 딱히 친하지도 않고.. 요즘은 좀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 녀석이 저를 엄청 싫어하기도 하고.."


"그렇구나"


그렇게 말하고는 누나는 평소처럼 웃어주었다. 그래서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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