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Jacob's ladder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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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시작되었다. 많지 않은 친척 몇 명이 왔다 갔다 했고, 나머지는 크게 부르지 않았다. 부를 생각도 못 했다. 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이 흘러내려 앉아있었고 누나는 그 와중에 냉정했다. 처음에 흘렸던 눈물을 소매로 쓰윽 닦고서 그 이후로는 울지 않았다. 누나는 남자인 나보다도 훨씬 강했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되었던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누나에게 있어서 다행인 면이라면 히지카타가 제 일처럼 찾아와서 누나를 돌보아주고, 챙겨주었다는 점이다.
영정사진 같은 것을 찍어두었을 리 없는 엄마와 아빠의 사진은 누나의 지갑 안에 있었던 가족사진을 확대해서 썼다. 우리 거실에 항상 걸려있는 사진. 엄마와 아빠의 옆엔 내가, 그리고 누나가 있었던 그 사진이었다. 사진 주위에 가지런히 장식된 꽃더미를 보면서도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이 종종 찾아오기도 했다. 억지로 확대를 해서 화질이 좋지 않은 그 사진을 보면서도... 검은색 상복을 입고서 친척들의 위로를 받을 때에도... 그런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한번 깨닫고서 넋이 나가있었다.
짙은 향냄새와 후덕지근한 공기가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가자, 안에 들어오지 않고 장례식장 밖 화단에 앉아있는 그 녀석을 발견했다. 이 녀석도 충분히 슬픔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그에게서 평소에 내가 느끼고 있었던 이상하고 옅은 살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짙은 향냄새에 질식할 정도로 중독이 되어서 느끼지 못 했을 수도 있지만, 여튼.. 그냥.. 그렇게 느꼈다.
"왜 밖에 있어?"
"... 들어가기 싫어서"
몇 없는 친척들은 그의 존재를 몰랐다. 한 명 정도에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친척은 나와 비슷하게 이 녀석의 입양에 대해 거세게 반대를 했었던 사람이어서 엄마도 아빠도 그의 입양에 대해서 친척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친척들에게 그를 보이는 것이 그렇게 좋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에게 하마터면 엄마와 아빠는 언제 오신데? 하고 물어볼 뻔도 하였다. 하지만 말이 밖으로 나가기 전에 아, 지금 그 엄마와 아빠의 장례식이 진행 중이지.. 하고 깨달았다.
정신없는 장례식이 끝났고 그 녀석은 그저 먼 발치에서만 지켜보다가 발인 날에는 따라오지도 않고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렇다고 그를 비난하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녀석 역시 근처로 다가올 수 없는 괴로움을 안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를 이해하려는 나를 보고 내가 놀랐다. 진한 향냄새에 의해서 미쳐버린 게 틀림없어.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누나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를 학교에 가야 한다면서 깨우고, 아침밥을 차려주고 오늘도 열심히 하라면서 밝게 웃어 보였다. 너무 밝아서 정말로 이상한 웃음이었다. 본래 엄마의 역할을 누나가 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본래 5명이 있어야 할 이 집이 갑작스럽게 너무나 넓어져버려서 마음이 자꾸만 아프다.
그 녀석이 오기 전, 엄마와 아빠가 외출을 해서 없을 때에 나는 종종 엄마와 아빠의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넓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침대가 한결 더 따뜻하고 포근해서 꽤 좋아했다. 그 침대에서 엄마의 베개를 베고서 잠이 들면 한결 더 편하게 잠이 들었었다. 그 습관이 남아버렸는지, 돌아와서 엄마와 아빠가 쓰던 방의 침대에 누워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장례식 전의 우리 가족이 아무렇지 않게 이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우스갯소리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꿈을 현실이라고 착각을 하고서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겨서 평소에 보이지 않던 울음을 터트리면서, 이상해! 진짜 이상해요 엄마랑 아빠가 죽었다고 그러잖아. 아니죠? 하고 묻자 엄마와 아빠는 웃으면서 '우리가 장난 좀 쳐봤어' 하고는 걱정하지 말라면서 나를 평소처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나는 안도감에 꼬옥 끌어안고서 너무하다고, 어떻게 그런 장난을 칠 수가 있느냐면서 투정을 부리면서 계속 흐느껴 울었다. 그럼 다시 오는 거야? 빨리 와! 다 기다리잖아! 하고 꿈 안에서 목이 메일 정도로 울어서 그 흐느낌에 의해 숨이 막혀 꿈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면 그제야 엄마와 아빠의 침대에 누워있는 나, 그리고 이제 주인 없는 그 방의 공간을 다시 돌아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것이었다.
이 일에 의해서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이 사건 이후로 몽유병이 사라졌다. 그래도 깊은 잠에 들지는 못 했다. 계속해서 이렇게 꿈에서 흐느끼다가 그 흐느낌에 의한 목메임에 새벽에 몇 번이고 깼다. 하지만 잠든 와중에 일어나는 기억 없는 방황은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학교에서 항상 피곤해하면서 졸게 되는 일은 더 심각해졌다.
".... 미츠바가 많이 부담이 되는 것 같아"
히지카타가 나에게 저녁을 사주겠다면서 불러서 한 말이었다. 물론, 알고 있어. 요즘 너무 웃고 있잖아. 그렇게 밝을 수 없는 상황인데.
"그래도 미츠바가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너와 네 형 때문이야.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서 네 형은 보지도 못했네"
".... 그 녀석은 친척들도 그렇고 해서.. 그냥 밖에 있었어"
"그랬구나"
"응"
"너도 생각보다는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야.. 사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누나도 있고, 형도 있으니 힘내야지.. 그래야 누나도 힘낼거야. 언제든지 힘든 일이 있다면 연락해"
".... 그 녀석 나랑 동갑이야. 형 아니라니까? 그리고 힘든 일 같은 거 없어. 그니까 네놈에게 부탁할 일도 없고"
내 말에 히지카타는 잠시 나를 쳐다보니,
"그런 건방진 말을 하는 거 보니 내가 조금은 안심이 되네.."
하고는 다행이다, 하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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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먼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어이없음, 그리고 황당함이었다. 전에도 엄마와 아빠가 죽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장례식은 처음 와본 것은 아니었다. 참나, 하늘도 너무하셔. 어떻게 이렇게 딱 맞는 가족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렇게 저에게서 데리고 가시는 거예요? 내가 운다거나, 하지 않아서? 아니면 나의 이기적인 모습 때문에 내가 행복해지면 불공평해서?
장례식에는 향냄새도, 그리고 그 특유의 음식 냄새도 맡고 싶지 않아서 밖으로 나와 화단에 앉아 있었다. 귀신소리처럼 들리는 울음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슬픔은 사람을 쉽게 물들이고, 꽤나 범위 넓게 장악하는 힘이 커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감정이다. 특히나 장례식장의 슬픔은 손아귀가 너무 거세고 눅눅해서 끔찍하다. 눈물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슬펐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완벽했던 부모님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는 생각,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다는 생각이 함께 든다. 그리고 나서,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누나와 오키타 녀석은? 부모님이라는 고리가 사라진 것, 결국 나는 마지막까지도 가족이 될 수 없었다는것, 그리고 슬퍼하는 그들.. 나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이 둘이 만약 나에게 그만 여기에서 각자 갈 길을 가자고 말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걱정. 혼자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은 헤어지고 싶지 않아.
발인 날에는 홀로 집으로 돌아와서 벽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에서 엄마와 아빠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왜인지 자꾸만 들어서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그 동시에 생각나는 사람이 아부토밖에 없어서 뒤돌아서 바로 아부토를 찾아갔다. 불쑥 찾아온 나를 보고 아부토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서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학교에 오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나는 웃으면서 꼭 가야 하나? 가기 싫으면 안 갈 수도 있잖아 하고 웃어 보였다. 아부토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아부토, 너는 혼자 살아?"
"집에 와봤잖아. 혼자 살지"
"아 그렇구나"
"왜?"
"혼자 살면 어때?"
"아, 좋지.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고. 네 나이 또래들이 가장 많이 부러워하더라. 왜 너 혼자 살고 싶어서? 사춘기냐? 엉?"
사춘기라.
"그런가봐"
내가 웃어 보이자 아부토가 말했다.
"너희 나이 또래들은 혼자 사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한다니까? 어디에 있을 건데? 아무것도 없는 새끼들이 말이야"
아부토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자기가 나이가 많다는 것에 우쭐한 듯이 이야기한다.
"게다가 특히 너는 왠지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혹시나 집을 나올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우리 집으로 와. 며칠 가출할 생각이면 받아줄게. 너 같은 놈은 내가 받아줘야지"
가출? 그 말에 나는 소리 내서 웃었다. 가출도 집이 있는 사람이 나왔을 때가 가출이지. 아부토는 뭐가 웃긴 거야 너? 하고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나의 사람을 보는 눈은 정확했다. 누나는 정말 무섭게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전보다 더 엄격해졌다. 눈을 위로 치켜뜨고서, 도도하게 쳐다보는 모습이 마치 고아원의 원장을 연상시켜서 전의 어릴적 있었던 구더기 소굴 같은 고아원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다. 이런 일을 겪고서 이렇게 멀쩡하게 있을 수 있는 부분은 특히나 나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되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 하지만 오히려 강하다고 생각했던 그 녀석은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한 동요를 보였다.
누나는 우리를 혼내는 일이 잦아졌다. 조금만 늦어도 왜 이 시간에 오냐, 어째서 연락은 하지 않았냐 등등 조금은 피곤하게 굴었지만 (이 모습조차 어쩜 이렇게 원장과 똑 닮았는지) 그렇게 우리를 신경 쓰는 행동을 보고 누나는 나와 헤어질 생각이 없다는 것을 느껴서 약간은 안심했다.
"누나는.. 너희들에게까지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정말로 못 살 것 같아. 그니까 너희는 다치지도 말고.. 무슨 일이 있어서도 안돼. 알겠니?"
나와 그 녀석의 손을 잡고서 한 말이었다. 그 녀석은 울 것 같았는지 고개를 푹 숙였고 나는 걱정 마세요. 하고 웃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누나는 그 녀석보다는 나를 조금은 의지하는 듯했다. 한 번은 그 녀석이 나갔을 때 나에게 말했었다.
"카무이는 소고보다는 어른이구나"
누나는 무섭고 강했지만 눈치가 빠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어른이라기보다는 어린애보다 더 어린 상태인데.
"그럴리가요"
"이렇게 말하는 것부터가 그렇지"
누나는 웃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장례식에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눈물을 내 앞에서 뚝뚝 흘렸다. 그 모습이 원장과는 달라서 나는 누나가 다시 좋아졌다. 그리고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면서 말했다.
".. 힘들다.. 나도.. 하지만 소고 앞에서는 울 수가 없어. 남자친구 앞에서 울 수도 없고..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걱정할 거잖아. 네가 있어서 나도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
미세하게 떨리는 가녀린 어깨가 그날따라 더욱 약해 보여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누구라도 이런 천사 같은 여자가 내 앞에서 흐느껴 울고 있다면 할 말을,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녀석이 이렇게 우는 것을 한번 보고 싶기도 하였다. 그 녀석은 천사 같은 녀석은 아닌지라 이런 성스러움에 가까운 신성함 따위는 없겠지만 그래서 그것대로 매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있어서 누나는 정말 다행이야"
누나는 정말로, 정말로 이상하게도 나를 의지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나의 행동을 보고 내가 슬픔을 견딜 줄 아는 강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이 둘보다는 이겨내는 것이 거셀지는 모르나, 그것은 이 둘이 너무나 안일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겨우 입을 열고 그렇게 말했다. 누나는 나의 말을 듣고 눈물을 닦으면서 마지못해 웃어 보였다. 그것 역시, 내가 본인을 걱정할까 봐 짓는 미소였다. 그녀가 조금은 가엽다고 느껴지면서 오키타는 이렇게 자신을 보호해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누나를 그 녀석처럼 사랑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지금 이대로의 나, 그리고 나와 다른 환경의, 하지만 나와 닮은 그 녀석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내가 잠깐 내 앞의 그녀가 흘리는 성스러운 분위기라는 마약에 잠깐 홀렸을 뿐이었다. 정말이지 누나는 원장의 사악함과 천사의 성스러움을 동시에 가진 무서운 사람이네요. 이렇게 나를 쥐락펴락하는 걸 보면.
내가 사랑하는 그 녀석은 아쉽게도 이제 더 이상 나와 2층 침대에서 잠들지 않고 부모님의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전의 그 병도 사라져서 조금은 아쉬웠다. 지금의 나는 더더욱 그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그가 나를 조금은 유순하게 쳐다보던 눈빛, 그 눈빛을 한번 더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이제 나에게 전과 같은 큰 악의를 드러내지 않는 면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얼굴에 염산을 들이붓던 녀석이 지금은 나름 나를 가족으로 인식하고서 가끔은 나를 챙기는 그 이중성이 미치게 사랑스럽다. 그와 살갗을 한번 맞대어 보고 싶다는 생각, 그의 목덜미를 다시 한 번만 내 입술로 지그시 눌러보고 싶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많았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기에 더 그랬다.
주인이 없는 방에 다가가서 잠든 그를 멍하니 쳐다본 적도 있다. 틈새의 바람 때문에 반투명한 커튼이 간지럽게 휘날리는 날. 달빛에 이 녀석이 하얗게 빛나고 있어서 곤히 잠든 그의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슬며시 잡아보다가 그냥 돌아왔다. 그에게 이 이상으로 손을 대면 안될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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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엄마와 아빠가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는 것을 바로 인식하기는 힘들었다. 누나와 그 녀석이 있었고, 엄마가 여행을 간다면서 나갔기 때문일까? 그냥 평소처럼 나는 거의 잊고 지냈다. 문득 생각날 때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지만.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누나와 그 녀석은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냥 청소를 하고 있었다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엄마와 아빠가 있었던 그곳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우두커니 서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옷장의 옷을 모조리 꺼내는 누나의 팔을 홱 잡아챘다.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청소하잖아"
"청소라니? 이것들.. 어디에 둘 거야?"
"어디에 두긴, 버려야지."
누나도 가슴이 아프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나는 내 감정이 앞섰고 누나의 감정 따위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누나에게 다시 한번 대들었다.
"버려?"
"침대는 사람을 불렀어 조금 있다가 와서 가져갈 거야"
"... 제정신이야?"
"제정신이야"
누나는 여전히 냉정한 표정을 짓고 씩씩대는 나를 보고 표정 없이 말했다. 누나 역시 슬프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지만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하면 나는 누나가 슬픈지 어떤지 알 수가 없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난다.
"... 누나는 엄마와 아빠의 흔적조차 전부다 지워버릴 셈이야?"
"지워야지"
"...."
"너는 언제까지 살아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거니?"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수가 있어. 누나가 나에게, 지워버린다는 말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할 수가 있어.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말해야지. 게다가 언제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거냐고 묻는 건 뭐야?
말다툼이 신경이 쓰였는지 그 녀석도 하던 행동을 멈추고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누나에게 크게 화를 낼 수 없는 나는 그 녀석을 보자마자 괜시리 폭팔해서 소리쳤다.
"넌 또 뭐야 이 새끼야! 넌 뭘 하는 거야?"
다가가서 다짜고짜 멱살을 잡아채고서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사실 나는 그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누나에게 화가 난 것을 풀고 있었다. 그 녀석은 제 멱살을 잡은 나를 한번 보고는 약간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웃겨? 너는 정말로 네가 형인 것처럼 구는구나"
침착한 모습의 이 녀석, 그리고 누나.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고, 그만하렴."
누나가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누나의 그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나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실린 듯하다. 누나의 말이면 나는 이 이상으로 그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를 붙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 녀석을 잡았던 손을 신경질적으로 놓고서 밖으로 나갔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저곳을 그대로 계속 놔두어봤자, 저것들을 계속 끌어안고 있어봤자 더 힘들어지는 것은 우리라는 것을. 그리고 아마 누나가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도. 그리고.. 정말로 마음을 먹은 이유는 내가 자꾸만 엄마와 아빠의 침대에서 잔다는 것 때문이라는 것도.
결국 누나 역시 침대 외에는 버리지 못 했다. 내가 돌아왔을 때 침대는 가져갔는지 없었지만 다른 물건들은 내가 나가기 전의 상태에서 그대로 내려놓아져 있었다. 나에게 그렇게 단호하게 말했으면서도 누나 역시 힘들었다는 것, 그리고 누나도 울었을 거라는 것을 알고서 닫혀있는 방 문을 두드렸다. 대답은 없었지만 잠들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안다. 닫혀있는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누나, 죄송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아무 말이 없었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지금도 울고 있나 보다. 그 앞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참 멍청하게 서 있다가 걸음을 돌렸다. 사실 무슨 말이라도 누나는 말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평소의 누나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무슨 대답이라도 해줄 것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누나는 정말 심하게 울고 있는지 끝끝내 말이 없었다. 나는 정말 나쁜 동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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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나에게 눈물을 보인만큼 내 편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침대를 버리겠다니. 이제 그 녀석은 다시 나의 곁으로 오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다. 누나는 그 녀석이 나에게 화를 내고 나가버리자 한참 멍하니 서 있었다. 잠시 후에 침대를 해체하러 온 인부 두어 명이 들이닥쳤고 누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들이닥쳐 급하게 조임을 푸는 드라이버 소리가 진동했고 곧 침대는 샅샅이 분리되어서 판자 여러 개와 매트리스 하나가 되어서 집을 나갔다. 버리려고 상자에 쌓아둔 엄마와 아빠의 옷들을 한번 보고서 누나는 말했다.
"오늘은.. 조금 피곤하네. 그냥 다음에 정리하자. 카무이 너도 들어가서 얼른 자렴"
잘 시간이 아니었는데.. 누나도 이 녀석의 말에 굳은 결심이 흔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뒤돌아서 걸어가는 그 걸음이 무거웠고, 뒷모습에 얼핏 보이는 날개가 추욱 처진 것이 보이는 걸 보니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갔던 그 녀석은 한참 후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다시 우리의 공간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말했다.
"내가 이제 1층 쓸래. 네 녀석이 올라가"
"왜?"
"... 그냥 싫어"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깔면서 말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그의 생각을 읽었다. 2층의 침대에서 생활해왔던 부모님이 생각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선 내 베개를 가지고 올라갔다. 위에 올라가서 잠시 누워 있다가 침대 아래를 홱 내려다보고는 물었다.
"무섭지 않아?"
"뭐가"
"전에 네가 그랬잖아. 만일 침대가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살기 위해서 2층을 쓰겠다고"
내 말에 웃기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내 말에 웃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렇게 쾌활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것대로 좋았다.
"내가 죽겠어? 그러기 전에 내가 널 죽일 거야"
"아하, 너라면 그럴 것 같기도 하네"
그 녀석 다운 대답에 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 말에 그는 잠시 무언가 생각난다는 듯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떠날 생각, 하고 있어?"
응? 예상 못한 말에 나는 조금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잠깐의 침묵. 나에게 지금 떠나라는 이야기를 돌려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조금은 놀라 하는 게 보였는지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떻게 보면 네가 이 곳에 있을 이유는 더 이상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나가라는 거야?"
"오해하지 마. 네 생각을 묻는 것뿐이야"
"그럼 함께 있자는 건가?"
"... 생각을 묻는 것뿐이라고 하잖아. 어떤 의미도 없어"
"나도 네 의사를 묻고 있는 거야. 넌 내가 떠나길 바라니, 아니면 남아있길 바라니?"
당황한 듯이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는 말했다.
"그 어떤 의미도 없다니까 새끼가.. 심심하면 잠이나 처 자던가"
거친 입버릇은 여전하다. 전이라면 당연히 꺼져버리라고 대꾸했을 텐데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게 기뻐. 너도 나와 함께 하고 싶구나?
내가 위층으로 올라온 것은 좋았다. 언제라도 이 위에서 그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과, 언제라도 내려가서 그에게 입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이 특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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