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15

2015. 8. 19. 13:50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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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씨는 히지카타가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게 너무 많다고 했다. 내가 부리는 고집, 응석을 모두 받아 주기만 해서 자신의 일이 아니면 관심도 없고, 남을 이해할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쨌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나와 그의 관계를 감히 제 3자인 형씨가 평가 한다는 것이 나는 기분좋지 않았다.

  

‘모두다 네 뜻대로 되는 게 아니야. 강요해서 되지 않는 것도 있다고’

 

왜 ‘강요’라는 말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강요라니. 내가 언제 강요를 했다고. 형씨야 말로 나에게서 그 녀석을 억지로 잡아 뜯으려 하면서 그 녀석에게 사랑을 강요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나에게서 소중한 그 녀석을 빼앗아 가려하잖아요.

  

  

돌아온 나는 형씨와의 대화를 잊으려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TV에서 방영하는 예능프로그램 따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TV안에선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하하호호 깔깔대면서 웃어대기도 하고, 채널을 돌리면 서로가 사랑을 고백하면서 울고 불고 난리를 치기도 하고 범죄자가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것을 고발하기도 하고.. 뉴스에선 우리 신센구미에 대한 내용. 자세히 들어 보니 얼마 전에 내가 사고 친 이야기가 나온다. 어투를 보니(당연히) 좋은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아- 히지카타 녀석 또 머리 아프겠네.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 히지카타가 내 방 문을 벌컥 열고는 나를 불렀다. 집무실로 따라오라고 말하곤 먼저 나갔다.

  

그 녀석을 뒤따라간 나는 그가 나를 불러주었다는 자체가 좋으면서도, 형씨의 말에 그에게도 약간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 내가, 니가 사랑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네가 자신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둥, 소중한 사람이라는 둥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나는 약간 입을 삐쭉 거리면서 그의 앞에 다가갔다.

  

“왜요?”

 

“왜라니 이 녀석아. 거기 좀 앉아봐.”

 

나는 그의 말에 착실하게 그가 가리킨 곳에 얌전히 앉았다. 그는 나에게 어느 때와 같이 잔소리를 잔뜩 늘어 놓았는데, 원래 그의 잔소리를 무서워하지 않는 나여서 그냥 눈을 깜빡 거리면서 한참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평소라면 틱틱대면서 말대꾸라도 해야 할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김이 빠졌는지 잔소리를 멈추곤 물었다.

  

“왜 아무 말도 안하냐 오늘은?”

 

“...그냥 히지카타씨가 무슨 말을 하나 듣고 있어요”

 

“다행이네 듣고는 있어서”

 

“응”

 

“뭐.. 너도 여러 가지 일이 있겠지만, 혼날 건 혼나야 되니까. 이 자식아”

 

음. 알고 있구나. 응 나 지금 화났어. 풀어줘.

  

내가 나를 풀어달라는 식으로 입을 다시 한번 삐죽 내밀자 그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는 이내 웃으면서 뭘 잘했다고 입을 삐죽거려? 하고는 이마를 툭 하고 쳤다. 내가 잘 한건 없지만, 너도 잘한 거 없는데 뭐.. 나는 이마를 한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그를 지그시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이내 참을 수 없어서 내 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참지 못한 것부터가 이미 내가 히지카타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넘치게 내가 그를 좋아했음을 인정하며 히지카타에게 명백히 졌고, 형씨에게 참을 수 없는 불안함과 나도 모르게 열등감을 느끼면서 형씨에게도 졌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형씨를 만났어”

 

“..그래?”

 

“응”

 

“...”

 

“형씨가 이상한 이야기를 해”

 

“무슨?”

 

“너와 사랑하는 사이라잖아. 니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하잖아.”

 

“....소고”

 

“응. 그리고 자신이 너의 뭐라도 된다는 듯이 이야기 하잖아. 너에 대해서 잘 안다는 듯이 으스대잖아.”

 

“...소고”

 

“응”

 

“내가.. 말.. 했잖아”

 

“무슨 말”

 

히지카타는 별로 놀라지 않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긴토키와 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했잖아”

 

“그거, 거짓말이잖아. 내가 그딴 말을 믿을 것 같아?”

 

“...소고”

 

“응. 히지카타. 나에게 자꾸 거짓말 하지마. 진짜로 화나려고 해”

 

나는 그에게 바짝 다가가서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는 그런 나의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여전히 매력적인 청회색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히지카타. 나를 사랑하잖아”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그의 대답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를 와락 껴안았다. 나를.. 나를 사랑하잖아요. 형씨 같은 사람과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나를 사랑하잖아요. 빨리 그렇다고,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 히지카타.

  

“.....뭐?”

 

그가 자신의 품에 파묻힌 나를 밀쳐내면서 놀란 듯이 말했다. 아- 들켰다고 생각 하는거야? 귀엽긴. 그렇게 다 보이게 행동하는데 어떻게 몰라.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가 이상하게 당황한 듯이 시선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기고는 다시 말했다.

  

“....내가.. 너를... 착각하게 만든 거야?”

 

착각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가 내 어깨를 잡고는 나와 시선을 맞추곤 말했다.

  

“계속 말하고 있잖아. 나 긴토키를 사랑한다니까?”

 

그가 약간은 어이없다는 듯이, 내 말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봐? 자꾸 형씨를 두고 사랑이라고 말하지 말라니까?

  

“... 형씨를 사랑한다고 한번만 더 말하면... 나 정말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히지카타.. 너.. 진짜로 미쳐버렸구나. 그가 안쓰럽게 느껴짐과 동시에 화가 났다. 왜 형씨 같은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너의 연인인 내가 바로 눈 앞에 있는데 이런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미쳤어 지금. 내가 어떻게 하면 그를 다시 돌려 놓을 수 있을까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그가 다시 말했다.

  

“긴토키 말이 맞았네.. 안 믿었는데.. 너 혹시.. 나.. 정말로 좋아하는거야?”

 

“좋아한다니, 그런 가벼운 말로 표현 될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너를 사랑...”

 

“그만.”

 

그가 단호하게 내 말을 잘라내면서 말했다.

  

“나는 너를 단 한번도 그런 눈으로 본 적 없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어.”

 

또, 또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 단 한번도..? 앞으로도..?

  

“....”

 

“못 들은 걸로 할게. 쉬어”

 

그가 나를 그대로 지나쳐서 집무실을 나가려 하자 나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를 돌아보는 그를 보고 내가 말했다.

  

“히지카타. 뭐야. 너 왜 그래?”

 

“너는 왜 그러는데? 너 지금 이상해”

 

“이상한건 내가 아니라 너야!”

 

목소리를 높였다. 너야! 이상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너라고!

  

“너는 내 가족이잖아. 니가 나를 그 이상으로 볼 거라고 생각해 본 적 단 한번도 없어. 나 역시 널 그렇게 본 적도, 볼 생각도 없고”

 

그는 나에게 그 말을 남기고 내가 붙잡은 손을 가볍게 내치고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래. 나는 그의 말대로 그의 가족이다. 그도 나의 가족이다. 그래서 평생 나의 곁에서 내 편이 되어 준다고 했으면서.

  

히지카타.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기억력이 좋아.

  

  

  

  

  

  

  

  

  

-

그래봤자 히지카타는 나를 뿌리칠 수 없다는 걸 안다. 저렇게 말하면서 나를 밀어내려 해봤자 나를 사랑하니까. 늘 나의 편에 서주겠다고 말했으니까. 분명 늘 그랬듯이 내가 화내면서 투정하면, 약간 나 답지 않게 졸라대면 다시 나에게 예전처럼. 내 모든 것을 들어주는 히지카타로써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를 사랑한다고 말 해줄 거야.

  

다음날 회의가 끝나고 나는 히지카타에게 화난 척 행동을 했다. 내가 그에게 화가 났다는 건 진실이지만, 약간은 오버해서 행동 했다고 표현 하는게 맞겠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다가가서 화난 표정으로 히지카타. 죽어버려 라고 말하자 그가 약간은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평소와 다름없이 네 녀석보다 1분 1초라도 오래살거야 라고 말했다. 평소와 같아서 조금은 안심했다.

  

명단을 확인하니 나와 이름 모르는 다른 대원이 연결이 되어있어, 그에게 찾아가 말했다.

  

“오늘 같이 순찰가는 대원이 맘에 안 들어”

 

“왜”

 

“너랑 갈래”

 

“그런 투정 부리러 왔으면 돌아가”

 

투정..? 돌아가...?

  

“바꿔줘”

 

그가 나의 단호한 말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너를 다른 대원들에 비해서 확실히 무르게 대한 건 사실이야. 그래서 오해가 있었다면 이제부터 똑같이 대할 거야. 돌아가”

 

히지카타가 나에게 이렇게 냉정하게 말 한 적은 처음이었다. 내 부탁을 거절할 때도 간혹 있었지만 이런 식의 단호한 어투는 쓴 적이 없다. 약간 나를 달래는 식으로 말하면서 나를 위로하면 나는 한참을 싫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결국 그의 말에 인심 쓴다는 듯이 내 고집을 약간 꺾곤 했는데 지금 이런 그의 행동은 나에게 하는 행동으로써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내가 그의 말에 당황해서 한참 아무 말 못하고 멍하니 서있자 그가 집무실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그대로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니가 지금 감히 나를 지나쳐? 나를 놔두고 그냥 나가?

나는 그를 쫓아서 그의 앞을 가로 막고 말했다.

  

“어디가?”

 

“...일하잖아 안보여?”

 

“나랑 말하고 있잖아!”

 

“할 말 더 있었어? 몰랐네. 그럼 해”

 

내가 올려다 본 그의 표정이 너무나 차가워서 슬펐다. 아닌데.. 니가 나에게 이런 표정을 지으면서 그런 차가운 말을 뱉는 사람이 아닌데...

  

“히지카타. 나는... 너랑...”

 

“히지카타가 아니지. 부장님이라고 불러. 건방지게 반말하지마. 존댓말 써”

 

........

  

“할 말 정리 안됐으면 정리하고 찾아와서 말해 지금 바쁘니까”

 

또 다시 나를 지나쳐서 지나가는 그가 낯설어서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의 그는 내가 아는 히지카타가 아니다. 진심으로 그는 미쳐버렸다.

그 날은 그의 행동에 나도 화가 나서, 이전이라면 일을 하는 척을 하면서 농땡이를 쳤다면 그 날은 그냥 아예 일을 하러 가지 않았다. 그럼 나를 찾아와 줄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그가 나를 찾을 수 있을 법한 곳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내 핸드폰엔 같이 가기로 한 이름 모를 대원만 몇 번 전화가 왔을 뿐, 내가 기다리는 히지카타에게는 연락 한번 오지 않았다. 내가 땡땡이 치고 있을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하게 나를 찾아내는 녀석인데 이렇게 나에게 무관심하다고? 나는 불안하다 못해 그 불안에 공포심을 느낄 정도로 섬뜩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있는 둔영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그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맸다. 문이 열리지 않는 곳은 신경질적으로 문을 부숴버렸고,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 급하게, 그를 찾아내지 못하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서 미친 듯이 찾았다. 난리를 치는 원인이 저라는 걸 알았는지 히지카타가 집무실에서 나와 팔짱을 끼곤 한 쪽 입꼬리엔 여전히 매력적으로 담배를 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뭐하냐 너. 일도 안하고”

 

담배 연기를 한번 길게 내 뿜으면서 그가 말했다.

  

“...너를 찾고 있잖아”

 

그는 여전히 나를 감정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서 힘없이 그를 올려다 보았다. 나에게는 자존심이라는게 어쩌면 현재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 만큼 히지카타가 나를 떠나는 것도 무서웠나보다. 그래. 히지카타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알고, 네가 미친것도 알지만 미쳐버린 너도 내가 사랑하는 히지카타의 일부라서 나는 그런 너도 사랑하기에, 나를 떠나려는 실수를 범하려는 너를 나는 무조건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존심 같은 거. 어떻게 지키는지 왜 자존심이 나에게 중요한지 그 순간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히지카타.. 나.. 이제..말 잘 들을게”

 

“...”

 

“이제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일도 열심히 하고.. 너한테 이상한 억지도 안 쓸게. 투정도 안 부릴게. 회의도 지각 안하고 착실하게 참석할게. 늦잠도 안자고.. 아, 그렇지. 반말도 안 쓸게요. 히지카타씨. 아니, 부장님. 이제 예의 갖춰서...행동할게요”

 

“...뭐야”

 

“그러니까.. 나를.... 계속 사랑해주세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런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나를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 그런 말.. 하지 말아주세요..”

 

거의 영혼이 빠진 듯, 더 이상 말을 꺼내면 다시 한번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듯이 아슬아슬한 상태로 그의 앞에서 말했다. 나는 나의 진심을 그에게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에게 갈구했다. 거의 땅바닥에 엎드려 비는 것과 다름없는 나의 행동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내 앞에 다가와서 가늘게 떠는 내 어깨에 제 손을 얹고는 말했다.

  

“소고.. 너 정말 왜 그러냐..”

 

...당연히 너를 사랑하니까. 내 전부를 다 내려놓아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너를 사랑하니까. 히지카타는 내 어깨에 괴로운 듯이 머리를 기대곤 왜 그래 진짜.. 너 왜 그래...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

행동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그의 말에 복종했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것이라서 그의 말을 무조건 따랐다. 회의에도 일찍 참석했고,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하고 그가 짜준 스케쥴 대로 행동했다. 가끔 불만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에게 나는 패배를 인정했기 때문에 그런 그의 앞에서 나는 아무런 힘도 없이 그가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그렇게 했다. 그가 강압적으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 혼자서 그의 말에 잘 따르는 것이다. 가끔 히지카타는 그런 내가 어색했는지 너 이러는거 어색하니까 그냥 평소대로 해 라고 건조하게 말하곤 했는데, 나는 그냥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니에요- 라고 말했다.

 

틈틈이 그의 뒤를 밟기도 했다. 그는 그런 나의 행동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쫓아갔을 때 그는 형씨를 만나서 요즘은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 그 미소를 지으면서 화기애애 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그런 미소는 본래 나의 것이었다. 형씨의 위치는 본래 나의 위치였다. 그런 그 둘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내 세상에 있어야 할 그가 다른 세상으로 빼앗겨버린, 떠나버린 느낌이었다. 참을 수 없는 화를 간신히 참아가면서 너무 아파 심장을 쥐어 뜯어버리고 싶어서 가슴을 움켜쥐고 소리 없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부장님하고 무슨 일 있습니까?”

 

야마자키가 하루는 나에게 물었다.

  

“응? 아니 뭐..”

 

“근데 왜 이렇게 요즘 고분고분하세요? 게다가 부장님도 요즘 대장한테 엄격한 것 같고. 좀 이상하네요”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야마자키가 그렇게 물어서 놀랐다.

  

“뭘 몰라요? 요즘 대장 진짜 어색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원래 부장님한테 대들고 맨날 괴롭히는 캐릭터 아니예요? 그런거 보면서 사실 우리도 좀 재밌었는데 요즘 너무 고분고분해서 이상하단 말이예요”

 

“내가 니들 재밌게 해줘야 된다 이거야? 이 새끼가”

 

“그런 건.. 아니고요”

 

야마자키가 내 표정을 살피면서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모두들 알 정도로 내가 그에게 복종하고 있구나. 하지만 나는 이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가 잠시의 방황을 하고 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올 거니까. 그리고 자신의 만행을 뒤돌아보면서, 나에게 사죄하면서 다시 평생의 사랑을 맹세할 거야. 형씨와 다르게 나와 히지카타에겐 주어진 시간이 많기에 나는 다시 한번 조급해 지려는 나를 달래면서 괜찮아. 괜찮아 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그 날 허전함이 너무나 사무쳐서 야마자키에게 술을 마시자고 했다. 야마자키는 그런 나를 수상하게 쳐다보면서 대장 많이 먹으면 나도 많이 마실거니까 적당히 마셔요! 라고 말했다.

  

그 날은 나는 적당히 취했는데 야마자키는 혼자 기분이 좋았는지 어쨌는지 들이 붓더니 혼자 쓰러져버렸다. 귀찮은 자식. 이 새끼를 데려다 던져 놓고 내 방으로 향하는 길에 불이 켜져 있는 히지카타의 방을 보곤 약간의 술김에 그의 방 문을 열고 안을 빼꼼히 쳐다보았다. 책을 보던 그가 나를 보더니 한숨을 한번 쉬곤 아무 말 없이 다시 시선을 책으로 옮겼다. 들어오라고도 안하냐 나쁜 새끼야. 나는 막무가내로 들어가서 책을 읽는 그의 앞에 털썩 앉았다.

  

“술 마셨냐? 술 마셨으면 가서 자”

 

“많이 안마셨어. 취하지도 않았고”

 

“술 먹었다고 다시 반말이냐?”

 

웃음기 없이 나에게 건조하게, 심지어 시선도 주지 않고 말하는 그가 얄미워서 대답 없이 한참 그의 앞에 앉아있었다.

  

“가서 자”

 

말 없이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그가 꺼낸 말이었다.

  

“히지카타..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근데.. 힘들어”

 

내 말에 그제야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왜..... 왜 요즘은 날 피해? 난 니가 시키는데로 모든 걸 다 하려고 노력하는데. 날 쳐다보지도 않잖아 너”

 

그는 계속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원래는 나를 보고 웃어 주는게 너잖아. 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나에게 주던 관심을 줘..? 싫어. 너의 관심은 애초에 나에게만 향하고 있던 거잖아. 나를 사랑하고 있었잖아”

 

“..”

 

“나를.. 사랑해줘.. 지금 당장이 아니여도 좋아. 우리에겐 시간이 많으니까. 근데 나를 안심시켜주기라도 하면 안될까?.. 네가 시키는데로 다 하고 있잖아. 앞으로도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소고..”

 

그가 다시 나를 쳐다보곤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 한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 이렇게 날 힘들게 만들어..”

 

내가 널 힘들게 만든다고? 네 녀석이 날 힘들게 만들잖아.

  

“계속 말해도 못 알아듣겠어? 너, 내 말을 듣고는 있어? 내가 한 말을 도데체 뭘로 듣는거야?”

 

그가 약간은 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몇 번을 말해야 돼? 아니라고 하잖아! 제발... 그만 좀 하자. 니가 자꾸 이상하게 너 혼자만의 착각으로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니라고 하잖아! 응? 아니라고 하잖아!”

 

....

  

“다시 말할게. 나는 너를 그런 상대로 본 적 죽어도 없어. 단 한번도 없어. 앞으로도 그럴 일 없어. 넌 나에게 가족이지, 그 이상으로 다른 감정으로 널 바라본 적 없어. 오히려 당황스럽다. 네가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

  

“알아 들었어? 이제? 그럼 나가”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말도 안돼. 나의 착각이었다고?

  

“왜 멍하니 앉아있어?”

 

히지카타가 나의 팔을 잡고는 억지로 일으키더니 방 밖으로 나를 거칠게 끌어냈다. 충격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 휘청거리는 나를 보고도 그는 별로 상관없다는 듯이 방에서 나를 끌어내어 내치고는 말했다.

  

“내일 회의 늦지마”

 

  

그의 방 문 앞에 주저 앉은 나를 보고 그가 내뱉은 한마디.

너무 차가워서 그 순간 충격에 비틀거리는 나를 다시 한번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런 나를 무관심하게 내려다보고는 그대로 문을 세차게 닫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다시 누나의 장례식날 마지막에서 느낀 그 처참함과 참담함, 그리고 이 세상에 나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이 엄습해 몸을 떨었다. 내가 현재 있는 이 곳은 다시 미지의 밀실이 되어 소리를 쳐도 아무도 듣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악마나 괴물 같이 무서운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아무것도 없이 혼자 존재 한다는 사실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방으로 돌아 왔을 때 내 눈에 띈 것은 전에 히지카타가 줬던 고급스러운 포장의 쿠키. 포장채로 놔두고 먹지도 않았던 것이어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포장을 조심스럽게 뜯어서 포장되어 있는 상자를 열고 안에 재포장되어있는 쿠키 봉지를 꺼냈을 때 내 앞에 종이 쪼가리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쪽지? 나는 그 종이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히지카타씨. 항상 지켜보고있어요. 매번 찾아가는데도 절 기억 못하시는 것 같아요. 저 진심으로 히지카타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서 쓴 듯한 여자 글씨. 게다가 히지카타에게 고백하는 내용.

  

뭐야... 이거..

  

  

  

  

  

  

  

  

  

-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꿈에서도 나는 미지의 밀실에서 쓰러져서 홀로 멍하니 주저 앉아있다. 그 고요한 공허함이 스며드는 것이 너무 끔찍해 몸서리 쳤다. 그리고 꿈에서 인지 현실에서 인지 모르는 곳에서 힘겹게 눈을 가늘게 떴을 때 환영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히지카타가 내 옆에 앉아있었다. 내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내 식은땀을 제 손으로 닦아주면서 조용히 말했다.

  

“...나도 너에게 이렇게 심하게 하고 싶지 않아.. 이러지 말자..”

 

눈을 똑바로 뜨면 도망가 버릴 것 같아 무서워 그대로 눈을 감았다. 히지카타.. 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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