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17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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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랑 놀아주러 왔다 해. 고맙지? 너 친구 없잖아”
차이나는 뒤에 배낭 같은 것을 매고 와서는 젖은 우산을 신발장 옆에 세워두고, 배낭을 내려놓더니 침대에 누워있는 내 앞에 바짝 다가왔다. 누워있는 침대 앞 바닥에 앉아선 나와 시선을 맞추곤 이어서 말했다.
“왜 대답 안하냐 해”
“.. 너 같은 친구는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
“거짓말! 지금 완전 감동해서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거 다 안다해, 이 자식아! 나처럼 예쁘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왔는데 안 기쁠 남자가 어딨냐 해!”
“두고 간 가방은 저기 구석에 있어. 가지고 꺼져”
“..나 긴짱한테 3일 동안 여행간다고 하고 왔다 해”
“좋겠네”
“너랑 놀꺼다 해”
피곤해. 뻔뻔스럽게도 내 앞에서 절대 나갈 생각이 없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선 특유의 고집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이러는거 형씨가 알아?”
“.....당연히 모른다 해. 알면 네 녀석 긴짱한테 죽을꺼다 해”
“내가 왜 죽어?”
“이렇게 예쁜 여자애랑 그냥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 긴짱은”
미친.
“그.. 그러는 넌 이러는거 마요라 녀석이 알고 있냐 해?”
“내가 뭘 어쩌고 있는데?”
“나랑 이렇게 은밀하게 만나는 거”
“말은 바로 해라. 은밀하게 만나는 게 아니라 니가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거잖아”
내 말에 이 꼬맹이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우다가 자기도 누워서 자고 싶다면서 내 옆에 털썩 누웠다. 아무렇게나 팔을 뻗어서 내 얼굴을 툭 치고는 아이고- 미안 하고 말하며 옆으로 누워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는 말.
“뽀뽀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해”
...
나는 내 옆에 있는 만화책으로 이 꼬맹이의 얼굴을 툭 내려치며 말했다.
“완전 암퇘지네 이거”
내 행동에 차이나는 나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네 녀석은 나한테 고마워 해야된다해! 긴짱이 하는 말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워 해야 한다고 했다해!”
“아- 그렇구나”
“그래 이 녀석아! 내가 얼마나.. 너.. 조... 좋아하는데..”
꼬맹이가 당당하게 말할 땐 언제고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홱 몸을 돌렸다. 뭐냐 새삼스럽게.
-
꼬맹이는 자는지 쌕쌕 소리를 내면서 이불을 뒤집어 쓴 그대로 얌전히 있었고, 나는 계획대로 누워서 쌓아놓은 만화책을 봤다. 옆에 누워있는 꼬맹이가 조용히 있어서 그런지 나도 순간 이 꼬맹이의 존재를 잊고 한참 만화책을 보다가 티비를 보다가 하면서 아무 의미 없는 휴일의 시간을 때우고 있다가 시간을 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여전히 비는 시원하면서도 새차게 내리붓고 있었다.
“야. 일어나”
나는 이불을 확 걷어내면서 꼬맹이를 깨웠다.
“으음... 뭐냐 해..”
“집에 가. 늦었어”
눈을 비비고 그 자리에 앉아서 나를 한참 보더니 다시 말했다.
“여행 간다고 말하고 나왔다 해, 지금 가면 긴짱이 놀랄꺼다 해”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나랑 관계없잖아. 나가”
나는 구석에 있는 이 꼬맹이가 놓고 간 가방을 들고 와서 그녀에게 그대로 던졌다. 그 가방을 받아든 그녀는 잠시 들고 있더니 다시 그대로 나에게 던졌다.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 하냐 해?”
“그럼 뭐라고 해?”
“좀 좋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않냐 해!”
“...그렇게 이야기 하는 법 몰라. 나가”
나의 말에 그녀는 더 화가 치밀었는지 침대에서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와서는 멱살을 잡곤 재수 없다고 했다. 그걸 이제 안 것 마냥 이야기 하는 이 꼬맹이가 이상했다. 내 성격 뻔히 알면서 새삼스럽게. 화가 났는지 배낭을 매고 우산을 들곤 문을 부서질 듯이 세게 닫고 나갔는데 또 전에 그 가방을 두고 간 것을 보고 이번엔 가져가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가방을 들고 바로 그녀의 뒤를 쫓으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이 꼬맹이는 그저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나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인지는 나로써는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이 꼬맹이에게 그 가방을 내밀었다.
“이거 놓고 갔어”
나의 그런 말과 태도에 더 화가 났는지 그녀는 그 가방을 받고는 신경질스럽게 바닥으로 내던졌다.
“너.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새끼다 해”
응 맞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그럼 웃으면서 다정한 행동이라도 해줘야 한단 말이야?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지. 난 히지카타가 말한 것 같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 칠 정도로 내 마음을 속이면서 치사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간사한 사람은 아니니까.
바닥에 내던진 그 가방을 그대로 두고 가려길래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거 오빠한테 받았다면서. 그럼 귀중한 거 아니야? 가져가 그리고 다시 오지마”
그렇게 말하곤 바로 그 가방을 주워들었는데, 가방이 열려 그 안의 내용물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딱히 별 것은 아니었다. 사진 같아 보이는 것들이 뭉치에서 여러 장 떨어져 하얀 뒷 면을 보이며 떨어졌다. 별 생각 없이 다시 담으려 그 떨어진 것들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녀도 이 가방 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기 때문에 떨어진 것들을 보고 약간 움찔 하면서 같이 줍기 위해 내 앞에 바짝 다가왔다. 보지도 않고 주워서 넣다가 나도 모르게 뒤집어진 사진 한 장을 뒤집어 본 순간. 그 자리에서 돌이 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그 사진이 담고 있는 내용은 내 눈 앞에 있는 이 꼬맹이의 사진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뽀얀 몸을 보이며 거칠게 폭력을 당했는지 상처도 여러 곳 있었고, 얼굴엔 눈물까지 흘리면서 발가벗겨진 채 손 발이 묶여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이 찍힌 곳은 평범한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다다미방이었고. 주변 배경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바닥만 보이는 구도였다. 충격적인 내용의 사진이 나의 시선을 못 박아 고정시켜 놓은 듯 나는 멍하니 그 사진을 바라보았고 이 꼬맹이도 그 사진의 내용을 보았는지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보......보지마!”
그녀는 내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거칠게 빼앗아 들고는 나를 거칠게 밀었다. 나는 충격에 그저 멍하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녀가 밀어낸 체로 넘어져 멍했다.
“..씨....씨발.. 이런 씨발 미친새끼... 이런 개새끼..”
이 꼬맹이도 당황하고 이성을 잃어보였고 욕을 중얼거리면서 거칠게 가방안에서 흘러나온 것들을 떨리는 손으로 아무렇게나 집어서 담았다. 진정되지 않아서 가방에 담은 것들이 삐져 나왔다가 다시 그것들을 거칠게 주워서 넣었다가 하는 행동이 무언가에 홀려 몹시 불안정해보였다.
“너......봤어?!”
나에게 말하는 이 꼬맹이의 눈이 제 정상이 아니어서 섬뜩했다. 다시 나에게 봤냐며 거칠게 물어왔고 나는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씨... 씨발...죽여 버릴 거야! 이런... 이런 미친 새끼”
그 말을 남기고 멍하니 있는 나를 뒤로 하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한참 나는 무슨 상황인지 생각할 수도 없이 사고가 멈추어 있다가 이내 이 꼬맹이가 무슨 사고라도 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그녀를 뒤 쫓았다.
비는 여전히 거칠고 흉악하게 쏟아졌고 내가 이 꼬맹이를 찾은 곳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사람이 없는 도로에서였다. 한 가운데에 쓰러져 빗물과 함께 붉은 피가 튀어 오르며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엔 문제의 가방이 함께 비를 맞으면서 놓여있었다. 자동차 사고가 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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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들쳐 업고 근처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야토족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흥건하게 젖어 있는 피를 보니 이런 나도 지레 겁을 먹었는지 무서웠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유대가 있는 사람의 죽음 앞에선 당연히 무서운 법이다. 무서웠다. 병원에 데려다 놓고 로비에 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어 멍하니 있다가 형씨에게 연락을 취해햐 하나 하고 한참 고민했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화면에 띄워놓은 형씨의 번호를 보고 통화 버튼을 계속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연락을 취하진 못했다. 우선 형씨와 나의 사이가 현재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의도와 다르게 혹시나 내가 이 꼬맹이를 이렇게 만들어 놨다고 의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선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앉아있다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깜빡 잠이 들고 말았는데 간호사가 의자에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고는 말했다.
“카구라씨 보호자 되시죠? 수술 성공적으로 끝났고. 마취 때문에 잠들어 있어요. 여기에서 이렇게 자지 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세요”
그 말에 완전히 안심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병원을 나왔다. 다행이다. 나의 공간에 돌아왔을 때 문 앞에 떨어져 있는 흰 봉투를 발견하고 무엇 인지 모르지만 주워 들곤 들어왔다. 그 꼬맹이의 문제의 가방은 다시 내가 가지고 돌아와 한 쪽 구석에 던져놓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이제야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는지 이것저것 생각이 들었다. 그 꼬맹이의 오빠라는 사람은 도데체 어떤 사람이길래 동생의 그런 사진을 찍어두고 직접 전해주기까지 했을까. 야토족이 폭력적인 종족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런 식의 방법을 쓴다는 것이 이상했다. 나에게는 누나라는 존재가 너무 소중했었는데 그 녀석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가족이라는 것에 대한 애정은 없는 것일까?
아까 문 앞에 떨어져 있던 봉투를 보고 무엇인지 앞 뒷 면을 살폈다. 뒷 면에 [카구라에게]라고 써 있는 것을 보니 문제의 그 가방에서 떨어진 편지인 듯 했다. 꽤나 많은 것이 들어 있는 듯 두툼해서 앞 뒷 면을 계속 살피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봉투안에 들어 있는 종이를 꺼내들었다. 원래 이런 것을 궁금해 하지도 않고 관심 가지지도 않지만, 이 꼬맹이가 말한 오빠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남의 편지를 함부로 읽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 종이를 펼쳤다. 얼핏 훑어본 그 종이엔 글씨가 여러 장으로 빼곡 하게 쓰여 있었다. 정성스럽게 썼는지 글씨를 못 쓰는 사람이 글씨를 잘 쓰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여 첫 장부터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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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카구라에게
안녕 카구라. 오빠야.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말로는 나의 생각을 얌전히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항상 찾아가도 나를 보는 너의 표정이 좋지 않고 나의 무슨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서.. 난 항상 슬펐어. 그러다 보니 이성을 잃고 너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 같아. 사과할게. 나의 본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도 항상 후회했어. 너를 만나고 이런 식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내가 싫어서 나의 피를 원망한 적도 있어. 이런 말 어울리지 않지? 하지만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어렸을 때의 네가 생각나. 어려서 항상 나의 손을 꼭 붙잡고 다녔었는데.. 어머니가 살아 계실때만 해도 나도 이렇지 않았어. 그립다. 그 때의 순간이 말이야. 그땐 너도 나에게 환하게 웃어줬었는데 말이야. 오빠- 오빠 하고 나를 부르는 네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난 어렸을 때부터 네가 너무 좋았어. 다시마초절임을 오물오물 씹어 먹는 그 입술, 나를 쳐다보는 파란 눈동자 그리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좋았거든. 평생을 너와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와 싸웠던 나도 홧김에 집을 나가고 나서 한참 바깥을 겉돌면서 주로 사람들과 싸우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어. 시비를 걸어오는 깡패들. 조금 강해보이는 사람이라면 내가 시비를 걸기도 하면서 내 안의 화를 표출하면서.. 사람도 많이 죽였어. 웃고 있는 내가 만만히 보이는지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도 많았거든. 주로 덩치 큰 남자들. 나에게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사람들이 그렇게 시비를 걸어오면 웃기기도 했어. 아마 너도 옆에서 봤다면 웃었을 거야. 그 때 너를 데리고 갔다면 좋았을 걸.. 그렇게 무의미하게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가 몇 달이 지나고야 문득 정신이 들었어. 네가 너무 보고 싶었거든. 걱정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그렇게 강력하게 보고 싶다 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어. 너는 항상 옆에 있었기에 더 그랬겠지? 누군가와 싸워서 이기고 싶다. 어서 싸우고 싶다 라는 마음보다 더 강력하게, 이유 없이 니가 보고 싶어서 의아했지만 나는 곧 바로 집으로 돌아갔어. 근데 그때 이미 너는 없더라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좌절했는지 몰라. 너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찾아다녔는데 어디에도 없더라. 찾아다니다가 또 사람들과 싸우고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화가 나기도 했어 도데체 어딜 갔길래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만난다면 먼저 화부터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내 눈앞에 나타나 달라고 기도했다가를 반복하면서 처음엔 보고싶다라는 감정에 이기지 못해서 힘들었어. 그러다가 시간이 점차 지남에 따라서 나도 무뎌지더라고. 가끔 생각나면 어디에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있다면 보고 싶다. 하고 생각하면서 먹먹해지기도 했지. 그땐 그것도 그냥 잠깐 생각났을 때의 아련함이었지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어. 거의 난 포기하고 있었거든.
다른 사람들과 싸우면서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서 우연히 지구라는 별에 가게 됐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것은 너와 내가 다시 만날 운명이 나를 이끌었다고 생각해. 사실 난 그때 지구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사무라이 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그 곳에 가면 더 강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니 가자면서 날 설득해 대길래 마지못해 수긍했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날 설득해준 그 사람들이 참 고마워. 뭐.. 지금은 이미 내가 다 죽여버렸지만.
지구에서 널 우연히 만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했어. 생각치도 못했거든. 어릴 때와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은 너의 모습을 보고 정말 맞나. 카구라가 맞나 계속 쳐다봤어.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어. 너에게 말을 걸으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려는데 네가 어떤 사람을 향해서 이름을 부르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달려가는 모습을 봤어. 은색 곱슬머리의 동태눈깔을 한 사람이었어. 옆에서 안경을 쓴 이상한 녀석과 셋이서 웃으면서 무언가를 사서 돌아가는 너의 모습을 보고 그 순간은 이상하게 너에게 다가가지 못했지만 너의 소재지를 파악해 놓고 니가 혼자 있는 순간을 계속 기다렸어. 그 순간이 많지 않았고 혼자 서성이는 날이 많아서 지켜보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네가 혼자 나왔을 때 나는 너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어. 벅찬 가슴을 누르지 못하고 다가갔을 때 너는 이상하게 나를 보고 놀라하면서 약간은 무서운 표정을 드러냈지. 나는 네가 왜 나에게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어. 나에게 왜 찾아왔냐고 물었을 때 나의 심정이 어땠는지 알겠니? 너는 나에게 자신을 두고 간 가족이라며 냉랭하게 말했어. 나도 나의 잘못을 알기에 별 다른 말을 하진 못했어. 얼마나 혼자 힘들었는지 생각은 해 봤냐며 화를 내는데 난 화를 내는 너도 좋았어. 함께 돌아가자고 말을 하면 네가 굉장히 행복해 할 줄 알았어. 근데 그 말을 했을 때 너의 반응이 난 지금이 행복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를 방치하고 내버려 둔 사람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해서 놀랐어. 하지만 나는 너도 나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그래서 그 기다림과 보고싶다는 감정의 끝에 화를 내는구나 하고 생각해서 그런 투정을 받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 난 어쨌든 너의 오빠니까.
그 이후로 나는 너를 몇 번 더 찾았어. 그런 투정쯤은 받아 줄 수 있었기에 상관 없었어. 싫다는 너를 달래고 다음에 또 찾아오겠다. 이런 식의 대화를 하고 돌아가는데 나에게는 미소조차 보이지 않고, 그저 냉랭하게 말하는 네가 같이 사는 은발의 사무라이에게는 웃으면서 안기고, 이름을 부르면서 말하고, 귀찮아 하는 그에게 산책을 하러 가자는 둥, 뭐 갈비를 먹으러 가자는 둥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워 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그 날 질투심에 가슴이 너무 답답했어. 그 화를 풀기 위해서 그 날은 이유 없이 닥치는 대로, 강하건 약하건 사람을 다 죽여버렸던 것 같아. 그런 대량학살 후. 그래도 그 화가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기분만 더러웠어. 내가 죽인 사람들은 의미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겠지. 근본적인 문제인 그 녀석을 죽여야했어. 그 은발의 사무라이 말이야. 강한 사람의 냄새를 맡는 나는 그에게도 강한 사람의 냄새를 느꼈어.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감에 행복하기까지 했지. 강한 사람과 싸운다는 흥분감과 그에게서 빼앗긴 너를 되찾는 다는 것까지. 행복했어.
그래서 그 날은 웃으면서 네가 그 녀석과 살고 있는 해결사 사무실로 당당히 찾아갔어. 문을 열어준 것은 너였는데 문을 열어주는 모습이 어릴 적에 내가 돌아오면 오빠 왔어? 하고 웃으면서 문을 열어주던 네가 생각나서 씁쓸하더라.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나의 팔을 붙잡고 따라오라면서 나를 끌고 골목으로 데려갔어. 손을 잡아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나에게 따지듯이 왜 찾아 왔냐 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냈지. 그 날 사무실엔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며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을 했는데 그 표정도 예뻐서 좋았어. 다시 한번 같이 가자고 말했는데 너는 조금의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단호하게 싫어! 하고 말했어. 나에게는 상냥하지 않은 너의 모습에 순간 나는 화가 나서 너에게 그 은발의 사무라이를 죽여버리겠다고 거칠게 말했어. 그러자 네가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긴짱을 죽이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거다! 죽일 수 있다면 죽여봐라! 그 사람이 죽는다면 나도 같이 죽을거다! 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진심으로 들려서 할 말이 없더라. 그딴 녀석이 뭐라고 죽인다면 같이 죽겠다고까지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한참 너를 쳐다봤어. 그날 너와 헤어져서 한참 생각했지. 니가 그렇게 날 협박해오니까 난 그를 죽일 순 없었어. 카구라, 너는 왜 가족인 내가 아닌 그를 선택한거야? 태어날 때부터 함께해온 내가 아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를 더 생각하는 거야? 어째서? 나의 이런 마음을 짓밟으면서까지 그를 택한 거야? 우린 진한 피로 이어져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할 가족이야. 그 어떤 인연도 우리보다 진하지 않을 거야. 가족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있어? 누구보다 친근하고 사랑해야 할 사이야. 너를 버리고 간 나에 대한 분노에 나에게 조금 심하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땐.
돌이켜보면 그러면서 너에게 이상한 집착이 생겼던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여 버리는 나인데,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은발의 사무라이를 죽일 수도 없는 상황이 닥치니 나는 그 갈증을 어떻게 해소해야할지 몰랐어. 그 이후로도 항상 너를 찾아갔고 끈덕지게 너에게 같이 가자고 말한 것 같아. 다정하게 말해보기도 하고, 화를 내면서 말해보기도 하고, 약간의 협박어조로 말해보기도 하고... 어떤 것도 너의 강경한 태도를 풀지 못했고 나는 나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너에게 말했지. 기억하지?
카구라 제발.. 나랑 같이 가자. 내가 잘할게. 미안해 앞으로는 너를 절대로 혼자 두지 않을게. 제발.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말했어. 그런 나를 보고 너도 놀랐는지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면서 전처럼 곧 바로 단호하게 싫다고 말은 하지 않고 대답이 없이 나를 쳐다보았던 것이 생각나. 이때.. 나는 드디어 니가 나의 마음을, 나의 진심을 알아줬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한참의 침묵 후에 너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어. 미안해 오빠. 난 오빠와 가지 않아. 지금이 행복해. 라고.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너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에게 거절의 말을 들었다는 것이 나에겐 커다란 상처가 되었어. 그리고 그 날 너에게 처음으로 폭력을 행사한 것 같아. 아팠지? 미안해. 근데.. 나도 너만큼 아팠어.
저항 하지 않는 너를 한참 때리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버렸나 해서 너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는데 상처투성이인 네가 나에게 힘없이 이제 화가 풀렸으면 다시는 나에게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해서 순간 더 화가 치밀었어. 내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은 그런 말이 아니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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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카구 다이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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