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아부카무아부 요소 주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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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

아부토가 나에게 예전에 여자친구라며 소개했던 여자로 지금은 4번대의 단장이라서 가끔 마주치는 사이가 되었다. 아부토는 이 추잡한 여자를 여러 가지 의미로 좋아하는 듯했다. 물론 이 여자는 관심 없어 보였지만.


"아부토, 너 저 여자랑 하고 싶어?"


"그런 거 아냐" 


"쟤가 말 걸면 어쩔 줄 몰라 하던데?"


"여자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래. 나 은근히 여자랑 말 잘 못하거든"


아부토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알레르기 같은 소리.



회의랍시고 요시와라에서 임원들이 모여 술을 마시게 되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내가 단장이 된 이후로 두 번째 있는 모임이다. 이들은 모두 천천히 즐기자며 저녁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바깥이 훤히 내다보이는 고층 빌딩. 화려한 비단천으로 잔뜩 장식되어 있는 술집은 우리가 온다고 하면 손님을 안 받는 것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우리가 가면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나름 임원들이라고 비싼 요리와 고급술을 마신다는 것은 좋다. 맘껏 먹을 수 있는 것은 좋지만 다른 임원 놈들이 술을 두어 시간 마시다가 잔뜩 취해서 정신줄을 높은 상태가 되어, 요시와라의 유녀들을 하나씩 끼고 구석으로 가서는 바지 벨트를 푸르는 장면은 언제 봐도 더럽다. 아부토는 내 옆에서 눈치를 보는 것인지 꼼짝하지 않았는데 내 눈치가 아니라 카다의 눈치였던 것 같다. 아부토는 은근히 이 여자를 챙겨주려 옆에서 빈 술잔을 반절씩 채워주며 실없는 소리를 하고, 카다는 도도하게 깃털 장식이 달린 고급 부채를 들고서 입을 가리고 웃으며 아부토를 하대했지만 그런 것조차 아부토는 즐거워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아부토의 옆에서 밥을 먹는 나를 보고 카다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같은 단장이지만 우리 둘은 거의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전에 만났을 땐 설마 다시 만날 거라곤 생각 못했지 뭐야? 만나도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 후후"


"뭐, 나도"


"그 싸가지가 이런 곳에서 단장까지 되다니."


"나도 그쪽 같은 여우가 단장일 줄은 몰랐어"


"후후, 아부토는 네가 마음에 많이 드나 봐. 싸가지없는 데다가 나이도 어린 널 데리고도 철저하게 방패 쳐주잖아? 네가 없었으면 아부토가 단장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 그건 그쪽이 상관할 바는 아니지 어쨌든 지금은 내 쪽 사람이니까"


"후훗 건방진 단장님이시네? 뭐 이 정도는 되어야지"


말투가 끈적끈적하게 눌어붙는 게 마치 뱀같이 스멀스멀 거리는 기분 나쁜 여자다. 첫인상부터 지금까지 이 여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야, 둘이 싸우는 거야? 오늘은 그러지 말고 좋게 좋게 있다가 헤어지자고 단장님들"


아부토는 나와 카다의 사이에서 웃으며 말하고는 뒤로 내 어깨에 손을 툭 얹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걸 조금은 눈치챘나보다. 아부토는 조금 언짢은 상황일때 나의 기분이 좋지 않은게 느껴지면 내 어깨에 커다란 손을 툭 얹곤 했다. 그런 행동이 나를 진정시키는데에 성공한 적은 별로 없지만 오히려 내가 이 녀석이 지금 나를 말리려고 하는구나, 하고 알아채곤 했다. 


꺄르르 웃는 카다의 웃음소리와 저 정신나간듯한 여자에게 사소한 관심사를 묻는 아부토도 이해가 되지도 않고, 구석 틈틈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살갗의 마찰 소리와 미세한 신음소리가 나를 그 안에 도저히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부토는 나를 보고는 어디 가냐며 물었다. 잠깐 바람 좀 쐴 거야, 하고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말하자 아부토는 정말로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내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밖은 어느덧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며 타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 본 나는 다시금 몸이 바짝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다시금 나를 이끄는 자성과도 같은 운명의 부름으로 우연히 그를 발견한 것이다. 전과 마찬가지로 제복을 입고서, 옆의 어떤 여자아이와 함께 군것질을 하러 왔는지 무언갈 먹고서는 함께 자리를 뜨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빛이 비치면 레몬빛으로 화사하게 빛나는 저런 매력적인 머리카락은 흔하지 않았고, 특유의 묘한 분위기가 나에게 다시금 확신을 주었다. 잡아야 해, 내가 저 녀석에게 지금 당장 달려가서 찾고 있었다고 말해야 해.! 나는 그를 보자마자 정신없이 출구를 찾아서 뛰어갔다. 달려오는 나를 보고 아부토는 어딜 가냐며 잡으려 했지만 그대로 그를 뿌리치고 허겁지겁 달려갔다. 숨이 턱 끝까지 가득 차고 심장이 터질 듯이, 심장박동이 내 가슴팍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하지만 내가 도착한 시점에서 그는 이미 내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있었던 그 자리엔 이름 모를 벌레 같은 사람들이 그의 흔적을 지우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순간 기분이 땅 끝까지 가라앉았다. 이로써 그가 내 눈에 띈 것이 두 번째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녀석에 대한 원망이 밀려왔지만 세 번째에 너는 반드시 나와 마주할 것이라는 알 수없는 막연한 확신이 나의 화를 조금은 달래주었다.











-

나는 히지카타와 나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자리에 불만은 전혀 없다. 아무런 저항 없이 우리의 관계가 이대로 평행선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옆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만족했다. 지금은 모두가 사라진 내 기억 안의 사람들. 그래서 나의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분간되지 않을 때에 그것은 사실이라고 말해주는 기억 안의 네가 아직도 내 옆에 있어주기에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히지카타는 자신에게 다소 의존적인 내 모습이나, 아니면 심하다면 심하다고 할 수 있는 정신질환적인 나의 모습을 고쳐주려 했는지 나를 불러 놓고 상의할 게 있다며 조금은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대원들 합숙하고 있는 거 알지?"


실제로 우리는 비상시의 인원들 때문에 합숙을 하고 있었다. 현재 낮은 직급은 거의 의무였고 우리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직위였다. 


"응 근데?"


"우리도 같이 합숙하자"


"상관은 없지만 왜?"


"음.. 그니까...."


"뭐, 물어보나 마나 일 때문이겠지 뭐, 네 녀석 머릿속엔 일 밖에 없잖아"


실제로 이 녀석은 합숙소의 녀석들을 계속 걱정하기도 했고 실제로 자주 들러서 다른 대원들을 잘 돌봐주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기에.


"난 뭐, 딱히 상관없어."


나의 대답에 히지카타는 다행이라면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지내는 게 너에게도 좋을 거야 하고 꼰대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우리는 빠르게 합숙을 했다. 다른 대원들과의 합숙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만화책 따위를 잔뜩 빌려서 돌려보기도 하고 히지카타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야식을 시켜 먹는다던지 (야식을 시켜 먹는 행위는 금지였다.) 몰래 뛰어나가서 술 따위를 사 와서 숨어서 먹는다거나 하는 것은 재밌었다. 들켜서 히지카타에게 엄청나게 혼나는 것조차도 즐거웠다. 식당에서 나오는 밥이 맛이 별로 없어서 편의점에 가서 라면을 먹는 것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안의 시끌시끌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그런 생활이 2주 즈음 지나고 나서 히지카타는 나를 따로 불러서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별생각 없이 그를 찾아가자 그는 나를 차에 태우고서 어느 한적한 카페로 데려갔다. 평소에 자주 가던 카페가 아닌 조금은 멀고 생소한 곳이었다. 인적이 많지도 않았고 안에 사람이 적게 드문드문 있는. 새하얀 벽과 검정색의 포인트가 차분하고 깔끔한 카페였다. 이런 곳도 알고 있었나?


"여기 되게 좋다. 남자 둘이서 올 곳은 아닌 것 같네 엄청 고급스럽고"


푹신한 의자와 창밖 풍경이 눈이 부시는 그 자리에서 나는 조금은 어리둥절한 채로 히지카타를 바라보았다.


"뭐 먹을래? 너 단건 별로 안 좋아하지? 여기 아이스크림도 맛있다던데"


히지카타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 난 주스"


"애기냐 아직도 주스 마시고"


"남 이사 뭘 먹던 무슨 상관이야"


내가 투덜거리자 피식 웃어 보이고는 커피 한 잔과 주스 한 잔을 주문했다. 히지카타는 말없이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히지카타를 한번 봤다가 주변을 둘러봤다가 했다. 이상한 적막이 어색한 순간이었다. 잠시 후 주문한 커피와 주스가 나오고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 없었던 알 수 없는 이상한 어색함을 깨보려 아무 말이나 했다. 비가 올 것 같아. 우산 없는데. 여기 생긴지 얼마 안 됐어? 페인트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에 아무 대꾸 없이 있던 히지카타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우산 차에 있어. 그리고 이 카페 꽤 전에 생겼고."


"그래? 커피 마시러 이렇게 멀리도 다 오고 부장님 요즘 한가하시나 봐? 나한테만 땡땡이친다고 뭐라고 할게 아니네"


비꼬는 내 말에 히지카타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정적. 뭐야 이 새끼.


"뭐 좋으라고 이런 곳까지 데리고 왔어? 말해봐"


"그냥 왔어. 잠시 머리도 식힐 겸 해서"


싱거운 새끼.


히지카타는 그 말을 하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멈춘 듯이 조용한 시간을 잠시 보내고 히지카타는 뭔가 망설이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합숙은 어때?"


"누구 때문에 조금 짜증 나지만 나름 재미있어"


"누구...라는 거 나 말하는 거야?"


"당연하잖아. 잘 알고 있네 뭐"


히지카타는 내 말에 다시 웃고는 작게 다행이다 하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왜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을까?


".... 소고. 나.."


"응"


"... 결혼해"


결혼? 나는 그 말에 놀라서 마주 본 그 녀석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히지카타는 나의 눈을 바라보지 못 했다. 약간 시선을 아래로 깔은 그는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 당장은 아니지만.."


장난이라고 믿고 싶지만 이 분위기는 절대로 장난 따위가 아니다. 내 자존심은 이 녀석의 입에서 나온 결혼이라는 단어에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것이 나 답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 너에게는 제일 먼저 말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어"


"하하, 왜? 나한테 말하면 뭐가 달라져?"


"달라지는 게 아니라..."


"아니면, 나한테 듣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그런 거 없어, 나는 그저.."


"축하해."


티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감춰지지 않는, 조절되지 않는 가시 돋친 축하에 히지카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어? 축하한다잖아. 그래서 결혼 상대는 누군데?"


내 물음에 답하지 않는 이 녀석의 개 같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얼마 전에 대원들이 말하던 쿠리코가 떠올랐다.


"...쿠리코?"


아마 정답이다. 히지카타의 미묘한 표정 변화가 나에게 답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이 지겨운 상황과 내 눈앞의 이 녀석과 더 이상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 돌아가자고 말했다. 멀리 오지 않았다면 가자는 말 따위 없이 그냥 나갔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행동했다면 난 틀림없이 후회를 했을 것이다.


히지카타는 담배를 물었다. 왜 인지 모를 허전함에 이를 꽉 물었다. 눈가가 조금 시었다.




차 안에서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수다스러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정직하게 침묵을 지킨 적도 많지 않다. 나와 함께 간 이 카페도 아마 그 여자와 함께 왔던 곳이겠지.


돌아와서 누웠다. 몸이 무거워서 꼼짝도 하지 못할 정도로 어질어질했다. 야마자키가 밖에서 노크를 하면서 밥을 먹을 시간이라며 불렀지만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는 보냈다. 히지카타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결혼을 말하다니. 그의 결혼을 상상한 적이야 있지만 설마 그게 이렇게 빨리,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렇게 혼란스럽게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다.


합숙을 제안한 것도 나를 혼자 둘 수 없기에 합숙을 제안했었구나. 언제부터 였을까? 이렇게 나를 감쪽같이 속이고 그 여자를 만났던 건.


이미 마음을 먹은 너에게 이제 와서 내가 결혼하지마! 라고 말해도 될까? 그렇게 평소처럼 고집부려도 괜찮아? 아니, 이미 나에게 말을 꺼낸 이상 나에게 말릴 자격은 없고,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뭐.. 사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누나와의 의리를 지켜달라는 이상한 말을 할 수 없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너에게 내 곁에 있어달라고 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른 여자에게 떠나는 그를 조금 야속하게 여기고, 조금 원망하고... 히지카타는 이제 새로 생길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 가는 거다. 그 새끼는 바람 같은 것도 안 필 거야. 설령 결혼하고 나서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게 되어버렸다고 하더라도 가정이라는 이름 안에 있는 한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랑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다시 사랑할 거야. 너는 그렇게 바른 새끼니까. 미치게 얄밉게 말이야.











-

내 얄팍한 자존심은 히지카타의 앞에서 내가 평소처럼 행동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카페에서 이야기할 때는 욱한 성질을 참지 못하고 조금은 쏘아대듯이 말을 했지만 그 이후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히지카타에게 행동했다. 둘이 이야기를 하는 일은 약간 피했지만. 쿠리코는 부쩍 우리 둔영을 자주 드나들었다. 잠깐 마주치면 여전히 화사하게 웃으면서 오키타씨 안녕하세요!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했는데, 그 표정은 누가 봐도 사랑에 푹 빠진 여자의 표정이었다. 히지카타와 연애할 때에 누나 같은 그런 화사한 표정. 그 표정에 누나가 겹쳐 보여서 나는 그 여자를 미워하면서도 마음 놓고 나답게 제대로 미워하지는 못 했다. 그래서 더욱이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대원들의 가십거리엔 항상 그 여자와 히지카타가 있었는데, 들어보면 쿠리코가 결혼을 빠르게 하고 싶다며 조르고 있으며, 그래서 벌써부터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언제부터 만났데? 둘이"


"와, 오키타 대장 진심으로 모르셨습니까?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데요. 부장님은 죽어도 말 안 해주고 쿠리코씨가 살짝 말하길 4개월 정도 됐다고 하더라고요"


4개월? 뭐, 사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깊어지는 데에 기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지만 누나와 오래 사귀어왔던 저 녀석이라서 그런지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연애를 하고서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은 짜증이 치민다. 하지만 뭐.... 내가 모르게 긴 연애를 할 수는 없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저 여자와의 결혼을 대비해서 나에게 합숙을 제안한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 내가 너의 미래를 막는 장애물이었구나. 이제 네 주위엔 가족이 형성되겠네. 나는 그대로인데.



히지카타 덕분에 오랜만에 집에 갔다. 하얗게 남겨놓은 사고의 흔적은 사람들의 발길과 세월의 입김에 의해 많이 지워져있었다. 아직도 이 근처만 오면 식은땀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어 몸이 미세하게 떨리지만 시간이 흘러서인지 사고 직후보다는 조금 나아진 상황이 되었다. 


추억을 가지고 있는 집 문을 힘겹게 열었다. 문틈에 끼워져있던 편지 한 통이 툭 떨어졌다. 이곳으로 올 리없는 편지이기에 뭐 청구서 정도 되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는 대충 집어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히지카타가 왔다가 간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온 적 없는 집이 이상하게 깔끔했다. 전에 히지카타는 나에게 집을 팔 것이 아니라면 청소라도 해놓자고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하여튼 그 새끼는 이런 쓸데없는 짓을 너무 친절하게 나에게 베푼다. 이런 짓이 나에겐 더 비참하다고. 이 새끼야.



대충 둘러보다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밖에선 조용한 바람이 불어와 내 뺨을 스치었다. 


"왔니?"


문이 열리며 누나가 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누나?"


몸을 일으키자 누나는 장을 보고 왔는지 잔뜩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무거웠을 텐데, 나 부르지 그랬어? 나는 투정 섞인 말을 했다.


"하하 얼마 안 되는데 뭐, 그나저나 왜 이렇게 늦게 왔니?"


아니 그게 아니고.. 그냥... 좀 바빴어요.. 합숙을 막 시작하기도 했고..


"그래? 어때? 사람들은 잘해주니?"


사람들이야 똑같죠 뭐, 히지카타는 맨날 내가 문제라고 화내던데요 뭐..


"히지카타씨는 여전하구나?"


누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전에도 말했죠? 그 새끼는 진짜 나쁜 새끼예요.


"좋은 사람이야. 네가 너무 삐뚤 어진 시선으로 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삐뚤어진 시선? 내가요? 무슨 소리예요? 누나 그 새끼 말이에요 요즘 어떤 줄 알아? 그 새끼 곧....


"곧?"


아, 아니에요..


결혼을 한데요 그 새끼가...! 결혼을...!! 하고 입 밖으로 뱉으려던 그 말을 차마 하지 못 했다.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누나는 울어버릴 것 같았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누나는 다행히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카무이는?"


누구? 누구요?


"카무이~ 기억 안나? 네 형이었잖아"


아...... 카무이...


"그 애는 어디 갔니? 밥 먹을 시간인데"


...모르겠어요


너무 생소하고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히지카타도 전에 그 녀석의 행방을 물었었는데.


맞다 누나 히지카타 그 새끼가 얼마나 웃긴 줄 알아요? 갑자기 나에게 네 형이 어디에 있냐면서 다그치듯이 물어봤던 적도 있어요. 그래서 내가 찾지 말라고 했어요... 그 녀석은 어디엔가 갔어요. 집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어때요? 상관없잖아요. 누나랑 나 둘만 있으도 괜찮잖아요!


"... 응, 누나도 좋아.. 근데, 둘이 아니라.. 넌 혼자 있어도 괜찮니?"


제가요? 제가 왜 혼자예요?


"누나는 곧 가야 되는데"


어딜? 어딜 가요?


"어디긴? 이제 가야 할 곳으로 가야지"


누나는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보자마자 나는 그제야 누나가 돌아오지 않을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어두운 거실의 소파에 웅크리고 잠깐 잠들어버린 나의 위치를 보고 아무도 없는 이 현실에 흐느끼며 울었다. 누나는 마지막까지 환하게 웃었고, 다행히 나도 누나를 보며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 내심 안심이 되었다. 넌 혼자 있어도 괜찮니? 당연히 괜찮죠! 라는 말을 깜빡했지만 누나는 분명히 이 집에 내가 다시 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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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ㅠ_ㅠ

카무오키가 세ㄱ스해야된다는건 아직도 잊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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