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09

2015. 8. 19. 00:16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어디 가려는지 말도 안해주고, 어디야? 가고 싶다는 데가?”

 

 

무작정 나를 끌고 안내하는 그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지 종잡을수가 없어서 물었다. 내 말에 대답 없이 혼자 자꾸만 여기였나? 이쪽이었나? 하고 중얼거리며 길을 찾는데 어느 정도 끌려가서 나는 이 녀석이 나를 데려가려는 곳을 알았다. 미츠바와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이 장소를 찾아내서 굉장히 좋았다고 말하면서 소고도 데리고 와야겠다며 활짝 웃었다. 사실 나는 그런 풍경을 본다는 것은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게 좋았고, 그녀와 함께 본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그녀가 나를 데려와 줬다는 게 좋았다.

  

그녀와 있으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나였어서 그 광경을 보는 그녀를 쳐다보다가, 그녀가 나를 보면 시선을 피했다가를 반복했는데 옆에서 본 그녀의 옆 얼굴이 너무 예뻐서 그 자리에서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길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지 이정표를 보고 고민하는 이 녀석을 보곤 말했다.

  

“이쪽 아냐?”

  

“여기 알아?”

  

“아니, 그냥 이쪽 일 것 같아서”

  

제 누나와 와 봤다고 하면 그 때처럼 나를 싫어할 것 같아서 모르는 체 했다.

어째서 이 녀석이 이 장소를 나와 오고 싶어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카구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나를 데리고 왔을까? 아니면 그냥 편히 떠날 친구가 필요했을까? 그 와중에 긴토키가 아닌 나를 데리고 와줘서 좋았다.

  

“히지카타 어때? 좋지?”

  

이 녀석 답지 않게 한껏 들떠서 말했는데, 그 모습이 미츠바가 나에게 처음 이 장소를 알려주었을 때와 겹쳐 기분이 묘했다.

  

“응, 근데 이거 보자고 오자고 한거야? 요즘 너 답지 않게 꽤나 감성적이다?”

  

“나이를 먹어서”

  

나이 같은 소리, 애새끼가.. 그때 전화가 와서 보니 긴토키였다. 옆에 있는 이 녀석의 눈치를 잠깐 살피다가 받아들었다.

  

[이 새끼야 장난하냐? 뭐야? 문자해도 말도 없고. 왜 못오는데?]

  

“....”

  

[아 씨발 내가 신파치랑 카구라랑 비는 시간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아..”

  

[왜 말이 없어? 뭐야 어디야?]

  

“...”

  

나는 이 녀석의 물음에 하나도 답하지 못했고, 옆에 있는 소고 녀석의 눈치만 살피다가 좀 있다가 연락할게- 라고 말하곤 연락을 끊었다.

  

“누구?”

  

“곤도씨, 어디냐길래”

  

딱히 댈 사람이 없어서 곤도씨를 이야기했다. 긴토키의 목소리가 약간 화가 나 있기도 했고, 내가 멋대로 전화를 끊어버려서 더 화가 났을거라고 생각해서 어서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을 느꼈다.

  

“이만 돌아가자 기차 끊기겠다”

  

시계를 한번 들여다보았다.

  

 

“히지카타..”

  

그는 나의 돌아가자는 말은 듣지 않은 듯 여전히 눈 앞에 펼쳐진 야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음에 오징어잡이 배.. 보러갈래?”

  

 

...

이 녀석의 말에 나는 몹시 머뭇거렸다. 세번째로 이 장소에 데려와서, 이 장소에서 똑같이 미츠바가 나에게도 이 말을 했었다. 나는 에도로 가기로 되어 있었고, 그녀의 옆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마음을 정해두었던 터라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녀는 역시 그런 것에는 관심 없으시구나- 하고 웃었는데 그 미소가 너무 슬퍼서 돌아오는 내내 나의 처지를 원망했다. 그녀가 에도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건 그 이후의 일이었다.

  

에도에 올라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혼자 그녀가 말한 오징어잡이 배를 보러갔다. 새벽의 공기가 차갑고 공기 중에 촉촉한 이슬이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그녀가 나와 함께 보고 싶어한 그 풍경이 궁금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둠을 환히 비추는 동그란 집어등들이 배에 줄줄이 매달려 바다를 찬란히 비추고 있었다. 까만 하늘과 까만 바다의 경계가 어딘지 알 수 없어 하늘이 바다인지, 바다가 하늘인지 구분되지 않아 그 광경이 흡사 하늘에 떠있는 별 자리 같았다. 이런 풍경을 보고 싶어 했구나..나와 함께.

  

아침이 밝아 오면서 나도 그 풍경의 환상에서 서서히 벗어났고, 그와 함께 밀려오는 씁쓸함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래, 보러가자”

  

이 녀석이 이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그가 여기에 나와 함께 오자고 한 이유를 그때 알았다. 그녀를 함께 떠올릴 사람이 필요 했구나.

  

  

  

 

 

돌아오는 기차에서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조는 이 녀석이 불편해보여 기대게 해주려 그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대었다. 감은 속눈썹과 살결이 그 날 따라 유난히 부드러워 보였다. 이 녀석을 조금 편하게 기대게 해주고, 긴토키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곤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시냐, 깡패경찰 부장나리 아니십니까?]

  

“미안, 아까 일이 좀..”

  

[뭐하는데 너?]

  

“소고 녀석이 어디 좀 가자고 해서”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건데. 말해놓고는 순간 아차 싶었다.

  

[또 그 녀석이냐]

  

“아니..이 녀석이 워낙 졸라대기도 하고.... ”

  

[아냐 미안할 건 없어, 낼 이야기해 나 잘거니까]

  

그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화가 났다면 더 쏘아댔을 녀석인데 이 정도로 그치는걸 보니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음을 알고 안심했다.

  

  

  

기차에서 내려 둔영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잠이 덜 깼는지 계속 하품을 했다. 그러게 왜 이렇게 멀리 가재.. 하고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사실 나도 이 녀석이 나를 부슈에 데려가줘서 고마웠다. 그녀와 함께 봤던 그 야경을 다시 보는 그 아련함이 좋았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말 해줄 때도 되지 않았나. 나는 방으로 들어가는 이 녀석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약간 당황까지 하면서 없다고 말했다. 끝까지 말 안하는거봐 이 새끼.

  

그 이후로 둔영에 종종 카구라가 찾아왔고,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 내가 한번 쳐다보면 그는 숨기려는 듯이 카구라를 끌고 나갔는데 나는 그런 행동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긴토키가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그가 나를 부른 곳은 그날 소고 녀석이 담당하고 있는 구역이었다. 만나는 것 정도야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간 것이었는데 그가 자꾸 나에게 장난식으로 키스할까? 라며 장난을 쳤다.

  

“하지마, 여기 오늘 그 녀석 구역이라고”

  

“응 나 아까 그 녀석 봤어. 차타고 가는 거 이미 끝난 시간 아니야?”

  

끝난 시간은 맞는데... 나는 자꾸 꺼림칙해서 그냥 돌아가려 했다.

  

“음.. 그럼..”

  

긴토키가 나의 손을 잡고는 골목으로 날 잡아끌었다.

  

“뭐야?”

  

“오늘은 밖에서 어때?”

  

“미친 소리 하지마”

  

나는 그가 잡은 손을 뿌리쳣다.

  

“왜?”

  

“왜라니! 일단 여기 그 녀석 구역이고..”

  

“가는거 봤다잖아”

  

“그래도 그냥 뭔가 불안해”

  

“음.. 나도 지금 여기가 아니면 싫어”

  

그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 녀석이 맨날 이런 식으로 고집 부린다고 했었지?”

  

별걸 다 따라하시네, 그렇게 고집부리는 새끼가 그 녀석 한명이 아니고 둘씩이나 된다면 난 아마 말라 죽을지도.

  

“그때 니가 내 약속깬 거 진짜 짜증났거든? 나 완전 기대하고 있었다고. 그니까 오늘은 그냥 내 뜻대로 해”

  

머뭇거리는 나를 그가 껴안고 평소처럼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키스했다. 이 녀석의 입술이 뜨거웠다. 가만히 쓸어내리는 손길도 부드러웠다. 그의 이런 행동에 나는 이 곳이 어디인지, 쭉 신경 쓰고 있었던 소고 녀석의 존재도 잊고 이 녀석에게 집중했다.

  

  

  

  

  

  

 

  

  

 

 

 

 

 

 

 

 

-

정신이 번쩍 들었을 때 나는 나의 공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불이 켜 있지 않은 캄캄한 이 공간.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지, 왜 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 공간에서 나는 특유의 마른 나무 냄새가 그 날 따라 유난히 역겨웠다. (나는 원래 그 냄새를 굉장히 정겹다고 생각해서 좋아했었다.) 계속 머리가 띠잉하고 울리고 머리가 웅웅 울려 대는게 너무 싫은 느낌이다. 침을 한번 삼키니 식도가 아려왔다. 왜 이러지..?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고요했다.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하곤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힘없이 풀썩 쓰러졌다. 바닥에 찧은 어깨와 무릎이 아파서 감싸 쥔채 한참 바닥에 널 부러져 있었다. 아프다. 아프다.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침대아래에 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보여 호기심에 손을 뻗었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 그 것이 궁금했던 걸 보면, 난 그것을 꼭 보아야 했었나보다. 그걸 주워서 쳐다보았는데 찢어진 한쪽 면과 동그랗게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음을 암시하는 자욱이 보여 다시 한번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곤 갑자기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의 한 조각이 생각났다. ‘콘돔’ 내가 주워든 그 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에 써 있던 텍스트였다.

  

아.. 맞다.. 나 여기 오기 전에...

떠올리자마자 다시금 역겨움이 파도치듯이 몰려왔고, 일어나지지도 않는 몸을 끌고 거의 기어가다 시피 화장실로 가서 헛구역질을 했고, 그 콘돔 쓰레기는 신경질적으로 던져서 버렸다. 그 것이 내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되새김질 시켜주는 매개체로 작용해 괴로웠다. 겨우 겨우 화장실에서 나온 후, 그대로 탈진해 바닥에 쓰러졌다. 아닌데... 아닌데.. 그거.. 내가 잘못본건데..

  

  

  

  

끼이익-하고 문이 열리며 가냘픈 마찰소리가 귀를 찌르는 듯했다.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 신발을 벗는 소리, 걸어오는 발소리. 뭐지.. 그 발소리의 주인이 내 근처에서 멈추고는 멱살을 틀어쥐곤 말했다.

  

“이 자식아. 여기 있었어? 너 요즘 진짜 왜 이러냐? 사람 말려 죽일 일 있어?”

  

또렷히 들리진 않았고, 닫은 유리창 건너편에서 말하는 듯 불투명하게 들리었는데 나는 그 말을 하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고 이 녀석의 손을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으로 힘겹게 뿌리치곤 바닥에 주저앉아 헛구역질을 했다. 당황한 이 녀석의 표정과, 역겨움과 함께 내가 느낀 건.. 이 녀석이 나에게 와줘서 좋았다. 아무 연락도 닿지 않는 나를 가장 먼저 찾아준 사람이 이 녀석이여서 좋았다.

  

  

  

  

  

  

  

  

  

-

그대로 내가 정신을 잃었었는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낯선 풍경이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을 하고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아이들이 우는 소리도 멀리서 들렸다. 내가 있는 곳은 병원 2인실이었고, 옆 침대엔 아무도 없어서 나 혼자 밖에 없다. 날짜를 보니 이틀을 내리 버린 모양이다. 날짜가 휙 지나가 있다. 팔에 꽂혀있는 바늘과 연결되어 위에 매달려 있는 팩을 보고선 음.. 나 어디 아픈가? 하고 생각하곤 어깨며 팔이며 다리며 쭉 훑어 보다가 어디도 이상이 없음을 알고 일도 안하는데 잠이나 자야겠다싶어 다시 누웠다.

  

“어? 대장 일어나셨네요? 많이 아프십니까?”

  

타이밍 딱 좋게 1번대 중 한 명이 병문안을 왔다. 이 녀석은 전에 얘기한 적이 있는 합성형 인간이었다.

  

“아프긴, 안 아파 아픈 척한거야 땡땡이치고 싶어서”

  

“에이- 부장님께서 엄청 걱정하시던데요?”

  

이 녀석의 ‘부장님’이라는 호칭에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가 이어나가는 말을 마저 들었다.

  

“대장 일어나기 전까지 계속 있다가 잠깐 자리 비우셨어요. 참 부장님도 대단하셔. 누가 사내새끼 아프다고 옆에 있어요? 퇴원하시면 부장님께 조금은 잘해드려요 쫌”

  

아무리 이 녀석이 이렇게 말한다고 한들, 지금은 히지카타를 보고 싶지 않았다.

  

“... 닥치고 빨리 가. 나 아픈거 아니야 잘 거야”

  

“네네, 갑니다 가요”

  

웃으면서 형식적으로 사온 병 음료수 따위를 내 옆에 놓고 1번대 대표로 제가 온겁니다- 하고 말하면서 가려는 그를 보니 완전 뜬금없이 갑자기 생각나서 물었다.

  

“너, 다른 여자 만나고 다니는거 아직도 안 걸렸냐”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이 녀석도 당황했는지 나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번 보고는 대답했다.

 


“아이고- 쭉 안 걸리다가 얼마 전에 걸렸어요”

  

그는 그저 한숨을 한번 내쉬곤 이내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걸리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멀쩡한데?”

  

내 말에 가려던 그가 다시 내 옆에 앉더니 말했다.

  

“대장, 생각해보세요, 섹스는 아무나와 할 순 있어도 그 섹스만 하는 상대와 손을 잡거나, 귀엽게 입을 맞추거나, 아프다고 해서 걱정을 한다거나, 영화를 보거나, 카페를 가서 일상을 이야기 하거나 하지 않는다고요. 음.. 아프다고 하면 몇 일은 못 하겠네 이정도의 생각? 제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은근 감동하더라고요. 근데 이건 그냥 발린말로 한 게 아니라 사실대로 저의 속마음을 이야기 한거예요. 대장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남자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걸요? 특히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은 건들 수 없는 위치일 땐 더더욱 그런 법이예요”

  

이런 허울 좋은 소리를 좋게 생각하는 병신 같은 년도 있구나..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대장, 요즘 연애한다던데 설마 벌써..?”

  

“그 꼬맹이랑 그런거 아니라고 수백 번은 말했던 것 같다. 나 잘거니까 이제 꺼져”

  

그는 웃으면서 네- 갑니다 둔영에서 봐요- 하곤 병실을 나갔고, 그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많아져서 잠은 오지 않았다. 나를 걱정해서 옆에 하루 종일 있었다..라.. 역시 히지카타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고 있고, 그에게 있어서 내가 첫 번째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이 의문이 많았다.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나도 나를 잘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심심한데 야동이나 볼까 하고 다운 받았는데 그 야동 주인공이 나의 가까운 사람인 것과 비슷한 충격이지 않을까. 심지어 나는 나와 가까운 상상도 못한 두 명의 광경을 보고나니 혐오스러움의 극치를 봤던 것 같다. 그런걸 보려고 생각하고 봤어도 충격이겠지만, 나는 그냥 골목길을 걷는 중이었다고. 그런 외설스러운 것을 보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 날 그 구역을 담당했던 걸 뻔히 알면서

  

그때는 갑작스러운 충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다시 그 일을 다시 떠올렸을때 그 때처럼 역겹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몸서리치게, 소름끼치게 떠올리기 싫을 뿐이었다.

  

잠깐 자리를 비웠던 히지카타가 돌아왔다. 눈을 뜬 나를 보고는 괜찮냐며 다가왔다. 나는 분명히 이 녀석을 좋아하고 이 녀석의 마음 역시 의심하지 않지만 자꾸 생각나는 그 장면에 이 순간은 그를 보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아 너 연락도 안 되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아침에도 안 들어오고”

  

“...”

  

나 핸드폰 부서졌는데 생각 못하고 있나?

  

“병원에서는 그냥 일시적인 충격이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던데 무슨 일 있어?”

  

옆에서 계속 질문하는 그의 말을 고스란히 무시하곤 잠자코 있으니 그가 다시 말했다.

  

“..피곤하지? 좀 더 쉬어”

  

그 말과 함께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을 조심스레 끌어올려주었는데, 그 손길과 세심하게 챙겨주는 그의 모습에 나는 자꾸만 그의 마음을 확신했다. 봐, 넌 나를 가장 첫 번째로 생각하고 있잖아. 그가 가려고 일어나길래 나는 그를 잡듯이 말했다.

  

“물”

  

“응?”

  

“물 떠와”

  

내 말에 그는 아무소리 없이 물을 떠다줬고 물 컵을 받아들은 내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넘겼다. 나를 보는 이 녀석의 푸른빛을 띄는 회색 눈동자가 그날따라 더 매력적이었다.

  

“너, 한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진짜... 내가 얼마나 걱정 했는지 알아? 너한테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나는 나중에 네 누나를 무슨 얼굴로 보냐..”

  

누나 핑계 대긴. 그냥 내가 걱정된다고 해.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이 녀석의 표정을 보고 내가 그때 보았던 광경을 잠시 잊었다. 아니, 잊고 싶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이 녀석도 합성형 인간이었다.

  

내가 고집스러운 면이 많아서 내가 좋아하고 있는 사람의 이런 일을 목격하게 된다면 그 순간 이성을 잃고 미쳐 버릴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나는 그때는 침착했다. 나답지 않게 이 녀석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항상 나에게 꼬맹이, 혹은 애새끼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내가 저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항상 각인하고 있는 듯 했다. 그를 빤히 보다가 물었다.

  

“내가 어려?”

  

“..갑자기 뭐래”

  

“맨날 나한테 꼬맹이라고 하거나 애새끼라고 하잖아”

  

“꼬맹이한테 꼬맹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나와 그의 사이엔 대략 10년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고, 항상 이 녀석을 나와 동등한 친구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그 차이가 처음으로 크게 느껴졌다. 이 녀석은 10년의 세월이라는 벽을 두고 고민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래서 나에게 이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손을 뻗을 수 없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 나는 어렸고, 그래서 내가 이 녀석을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10년이나 먼저 살아온 이 녀석을 100퍼센트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공백을 형씨라는 존재에서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까 왔었던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여자는 한마디로 병신 같은 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 여자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가야겠다. 내일 또 올게”

  

“...지금?”

  

“내일 일도 있고..”

  

“...여기서 자고 가면 안돼?”

  

“...”

  

평소에 그런 말을 할 리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해서 인지 히지카타가 나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나는 그냥 아.. 아니 그냥 심심해서 하고 덤덤한 척 말했다.

  

“진짜 많이 아프냐?”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심심해서...”

  

비어있는 옆 침대에 겉옷을 벗어서 놓더니 말했다.

  

“그래 여기서 자고 가지 뭐, 너 감시도 할 겸”

  

이 녀석이 사랑하는 건 나였다. 최대의 관심사도 나다. 내가 원한다면 무엇이 되었든 들어주려고 항상 노력하고 그것을 바로 이루어주는 존재다. 나를 위해서 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게 생각할 녀석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떨어진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그 녀석의 옆 모습이 좋았다. 전에 그 녀석의 방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다시 그의 품에 안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뒤늦게 질투라는 감정이 일었다.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저 녀석의 눈에 담기는 게 나 하나였으면 좋겠고, 그 큰 손이 만지는 건 나 하나였으면 좋겠고, 입을 맞추는 대상이 나 하나였으면 좋겠고,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은 나 하나였으면 좋겠다.

  

“히지카타..”

  

“...”

  

잠들었는지 그는 대답이 없다.

 

 

 

 

 

 

​-

밍나.. 히지오키 파세요....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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