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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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잡은 물고기와 잡지 못한 물고기의 차이는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잡았다고 하더라도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상태와 정말 어디로 도망가지도 않을 안일한 상태의 애완 물고기. 후자는 정말이지 재미가 없었다. 


물론 오키타는 도망갈지도 모른다. 누나의 남자친구를 보면 또다시 흔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쪽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자수를 할 리도 없다. 갈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최근엔 나에게 많이 맞춰주는 태도를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나로서는 오랜 시간 호감을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맞춰주는 모습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좋게 보여야 할 일이지만.. 기구하게도 그런 태도가 되려 재미없게 느껴졌다. 차라리 이 새끼를 발견한 그 호텔에서의 행동처럼 술에 취해 나에게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며 제멋대로 행동했다면 조금은 흥미가 더 생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키타가 그 여자를 잡아서 죽이고 싶다는 계획에 동의한 것도 내가 더 흥미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오키타는 누나의 남자친구를 마주칠 것이다. 혹시나 마주치지 않았다면 본인이 멀리서라도 그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내가 본다면 조금 더 강하게 이 녀석에 대한 마음이 커질까? 


3일 후 계획 당일. 오키타는 오후 8시에 히지카타는 순찰 중이라서 없고, 마츠다이라 선생은 윗 사람을 만나 보고하는 시간이라며 그 시간에 집엘 찾아간다고 말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서는, 아부토에게 전화해서 그 녀석이 어디로 가는지 뒤를 밟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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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는 나를 봐도 나를 잡아넣을 수 없을 거야. 

히지카타는 나를 봐도 나를 잡아넣을 수 없을 거야.

히지카타는 나를 봐도 나를 잡아넣을 수... 없을 거야....


히지카타의 집 앞에 왔다. 집 옆에 작게 있는 골목의 틈에서 집안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왜 인지 심장은 진정하지 못하고 쿵쾅쿵쾅 뛰었다. 예상대로 히지카타는 없었다. 집은 처음에 내가 방문했을 때에 비해서 조금 지저분한 느낌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가 마구 널어져 있었고, 어째서인지 쓰레기통이 엎어져 주변에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소파나 침대의 배치마저 심하게 삐뚤어져 배치되어 있는 광경이 도둑이라도 든 것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하게 만들었다. 쿠리코는 어디에 있지? 왜 집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놔두는 거지? 정말로 도둑이라도 든 건가? 이렇게 생각하며 집안을 살 필 때, 갑자기 집 안에서 큰 비명과 함께 거친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디에요?! 나... 나 너무 무서워요 아아악!!! 지금 당장 와주면 안 돼요?!?!.. 왜... 왜 못 오는데요!! 지금 와주세요!! 지금 당장...! 자세한 이야기는 마... 만나서 할게요...! 호.. 혹시 몰라... 이 핸드폰도 지금 도청당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지...지금... 하...하아.... 히지카타씨....!"


분명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다행히도 이 여자의 현재 상태는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뭔가 싱겁다. 뭐야. 고작 내가 살짝 건드린 정도로 이렇게 망가져 있으면 어떡해? 저렇게 난리치는 타입이면 끌고 가기도 힘든데..


"... 오늘도.. 집안을 구석구석 다 뒤졌어요... 아직 못 찾았는데... 아직도... 아직도 어디선가 우리를 엿보고 엿듣고 있을지도 몰라요..... 뭐라구요? 지금 안심하라는 말이 나와요? 그때도.. 우린 아무것도 몰랐잖아.... 이게 다 당신 옆에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거잖아!! 아직도 못 잡았다면서요?! 전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 미쳐버릴 것 같...아요...!!!"


히지카타는 뭐라고 답하고 있을까? 울음소리에 가까운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한 10여 분이 지나자 익숙한 차량이 굉장한 엔진 소리와 함께 집 앞에서 멈춘다. 나는 발걸음을 뒤로 빼면서 몸을 숨겼다. 히지카타는 그 차에서 내려선 급하게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쿠리코...! 왜 그래? 정말 왜 그래 이제 괜찮다니ㄲ...."

"뭐가...! 뭐가 괜찮다는 거예요 도대체...!!!! 혹시 저 쓰레기통 안에 있을지도 몰라요...! 소파 아래에 붙어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없을 때 우리 집에 다시 와서 침대 아래에 다시... 다시 붙여놨을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그런 일 없어."

"어떻게 단언할 수 있어요?! 아직 그놈은 잡지도 못했는데...! 언제 와서 우릴 감시하고 있을지 난 모르잖아요...!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끔찍해서 돌아버릴 것 같은데....!"

"... 미안해... 내일 다시 병원에 같이 가보자... 약은 먹었어?"


쿠리코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면서 히지카타의 가슴에 안겨서는 엉엉 울었다. 히지카타는 그 큰 손으로 쿠리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행동에 갑자기 주먹이 꽉 쥐어진다. 역시 저 여자는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확신되는 순간이다. 저 머리칼을 내 주먹으로 절대로 빠지지 않게 휘감아주지.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고문은 쉽게 끝나지 않을 테니까. 히지카타는 나를 적당한 선에서 봐주었지만, 내가 너를 봐줘야 할 이유도, 그럴 감정도 없으니까. 쿠리코가 울다 지쳤는지, 히지카타는 쿠리코를 소파에 잠시 눕혀놓고는 사랑스럽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곤 깊은 한숨 후에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와서는 내가 숨어 있는 그 틈의 근처에 와서는 담뱃불을 붙였다.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이쪽으로 온 건가? 하는 생각에 헷갈려서 바로 뛰어나갈 뻔했으나, 그럴 일은 없다는 생각에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익숙한 뒷모습이다. 히지카타는 후우 하고 연기를 뱉었다.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담배 향이 너무 반가워서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히지카타가 온 순간 내 계획은 틀어져 버렸지만 당황하거나 하진 않았다. 되려 조금은 기뻤던 것 같다. 그래, 나는 히지카타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여자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부수적이었을 뿐, 그저 변명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히지카타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 익숙한 그 체취를 한번 다시 맡고 싶다. 한번 더 이야기하고 싶다.. 내려앉은 어둠 때문에 담배 연기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손을 뻗었다. 닿을지도 모르는 위치였다. 손끝에 히지카타의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닿아서는 안된다. 나는 바보처럼 손을 뻗었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멍해졌다. 히지카타가 뒤를 돌아보며 내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아.. 아니...."

"내가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잖아!!"


히지카타는 나를 만난 사실에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머리가 아픈 듯이 머리를 감싸 쥐면서 한숨을 길게 푹 내쉰다.


"언제부터 있었어?"

"...."

"지켜보고 있었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만족해? 쿠리코는 완전히 도청 후유증에 시달려서 병원의 약 없이는 항상 저 상태 그대로야. 수면제 없이는 잠도 못잔다고!! 네가 바라던 게 저런 모습이었잖아!!"

"... 히지카타 너는... 저런 모습으로 내가 만족한다고 생각했어?"

"그럼 대체 얼마나 어떻게 더 망가져야 속이 시원하겠어?!!!


...내가 바라던 히지카타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로.. 정말로 히지카타가 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인가 조바심마저 날 정도였다. 히지카타가 날 처음 보고서 해야 할 말은 잘 지냈니? 어디서 지내니? 같은 말이 먼저였어야 할 놈이 왜 쿠리코의 모습을 나에게 운운하면서 분노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을까?


"...너.. 저 여자를 사랑해?"


내 질문에 히지카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


"...넌 왜 항상 그따위 질문만 해? 나는..."

"구... 궁금해서 그래. 말해봐. 정말 사랑하는 거야?"

"내가 전에도 이야기했을 텐데? 그럼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뭐 때문에 결혼을 하겠어? 넌 아직도...!!"

"......"

"아니다. 그만하자"


히지카타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내 눈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였다. 


".... 거짓말이야. 너는 우리 누나만 사랑했잖아. 그런데...."

"그 이야기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만해"

"...... 지긋지긋?"

"그래 지긋지긋하다고. 대체 언제까지 그 일로 날 쫓아다닐래? 이제 서로.. 제발 서로 갈 길 가자"

"서로 갈 길 가자고?"

"... 내가 지금도 네 얼굴을 이렇게 마주 보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미츠바 때문이야!! 알았어? 내가 미츠바를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도 너를 이렇게.. 이렇게 맨정신으로 겨우 쳐다보고 있는 거라고!!"

".... 무슨 소리야?"

"... 더 이상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뜻이야."


히지카타는 물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등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 했다. 나는 허겁지겁 히지카타의 팔을 잡고서 말했다.


".. 잠깐...! 잠깐만"

"놔. 자수하러 온 거는 아닐 거 아냐"

"... 정말.. 정말 쿠리코를 사랑하는..."

"그래 쿠리코를 사랑하고 있어"


사랑하고 있다, 라니. 팔을 붙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나도 모르게 히지카타에게 말했다. 제멋대로 지껄이는 거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내 의식이 아닌 기분이다.


"...단순히.. 누나 때문에 계속 이렇게 너에게 집착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왜 이러는지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

"...그야 너는 당연히 나를 괴롭히는 게 재미있을 뿐이겠지"

"정말 단순하게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장난 그만해. 그런 네 상태 안 궁금해. 내가 왜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 내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래서..."


히지카타는 제 팔을 잡고 있는 내 손을 과격하게 뿌리치며 말했다.


"자수할 거 아니면 얼른 가라. 다음에 내가 너를 다시 봤을 때는 바로 연행이야"

"......!!.... 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야! ....그래. 나... 나는 너와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쿠리코가 부러웠는지도..."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히지카타는 나와 이야기하던 좁은 골목 틈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최악이다. 내 꼴이 너무 우스워서 되려 웃음이 새어 나온다. 피식 웃으면서 발끝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려 옆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히지카타는 누워서 곤히 잠든 쿠리코의 옆에 앉아선 한숨과 함께 답답한 듯이 목에 메고 있던 타이를 거칠게 풀어놓았다. 한참을 서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조금은 후련한 것 같기도 했다. 눈물이 날 것 같다거나, 딱히 너무 슬퍼서 미쳐버릴 것 같다거나 한 그런 감정은 없었다. 단지, 히지카타의 진심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 이상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미련은 사라졌다. 그리고 쿠리코를 죽여버려야겠다는 생각도. 물론, 히지카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거나, 나 같은 사람보다는 쿠리코 같은 사람이 더 잘 어울리겠지, 뭐 그런 답지 않은 생각이 든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저.. 이미 망가져 버려서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쿠리코의 몰골과, 나를 탓하며 소리 지르는 히지카타의 모습이.. 이미 내가 손을 쓰기도 전에 너무나도 추해져 있었기 때문에... 단지 그 때문에...  


성과 없이 혼자 정처 없이 걸어오는 길은 쓸쓸했다. 그렇게 추운 날이 아닌데도 춥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카무이에게 연락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 그 녀석을 만나면 착실하게 굴던 지금 모습의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이 상황을 눈치챈 그 새끼는 또다시 나를 비웃으며 자극할 테니까. 그 새끼한테는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단순한 임무 실패? 갑자기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불쌍해서? 아니면 혹시나 히지카타를 만날까 봐, 뭐 그런 어이없는 이유를 대야 하나?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정처 없이 걷다가, 집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카무이를 잡으려고 대기했던 이후로 처음이다. 아직도 warning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는 노란색 테이프가 사방에 깔려있었고, 미처 사라지지 않은 시멘트 바닥에는 선혈 자국이 낭자했다. 테이프를 손으로 잡아 뜯으며 안으로 억지로 파고들었다. 그때 당시, 모두가 신발을 신고 마구 들어오는 바람에 바닥엔 검은 신발 자국들이 더럽게 이곳저곳 찍혀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거미줄이 사방에 펼쳐져 있는 게, 몇 년은 아무도 드나든 적이 없는 폐가같이 보인다. 내 방이었던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운 방에 희미하게나마 빛났던 야광 별들은 거의 다 빛을 잃고, 한 개 정도만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2층 침대에 올라가 보니 언제인지 기억에조차 없는 언젠가의 내가 이불을 박차고 빠져나온 흔적 그대로 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2층 침대에 걸터앉아서 멍하니 야광별을 바라보다가, 벽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별을 떼어냈다. 뒤의 접착 때문에 벽지가 뜯어졌지만 상관없다. 지금은 이런 문제로 눈치를 봐야 할 사람도 없고, 나를 추궁할 사람조차 없기 때문에. 밖에서 들어오는 주홍색 가로등 불빛이 집 안으로 벌레처럼 슬금슬금 기어들어온다. 내가 올라온 침대의 사다리는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집의 모두가 사라진 이후로 이 위로 올라와 본 적도 없었지만 다시 이곳에 앉아 있으니 왜 새벽까지 잠을 자고 있지 않느냐며 그리운 잔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학교에 가야 하는데 숙제를 깜빡해서 어떡하지? 하는 소소한 고민, 히지카타가 또 엄마와 누나 이야기로 나를 협박하며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를 할 거라는 걱정, 다들 잠깐 외출해서 없어진 것뿐이라는 안도, 카무이도 같이 갔으려나? 왜 아무도 없지? 왜 집은 이렇게 더러워졌지? 저 거미줄은 뭐야? 왜 우리 집이 이렇게... 아냐 모르겠다.. 일단 졸린데 잠을 좀 잘까.. 일어나면.. 다시 왜 이렇게 늦게까지 자냐면서 일어나라고 할거야. 내일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숙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 다 못했으니까 일어나서 얼른 답지라도 배껴야지. 히지카타가 또 수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럼 누나한테 다 일러바칠지도 모르는데. 치사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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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토의 전화를 받았다. 마지막 위치가 집인 것을 보고 즉시 철수하라고 말했다. 추가로 다른 단원들이 보내온 사진에는 히지카타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여러 장 찍혀서 왔다. 그리고 추가로 대화 내용이 녹음된 음성 파일을 보내왔다. 누나의 남자친구와 만날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도 약간의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니길 조금은 바랐었는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심지어 죽여버리겠다고 계획했던 그 여자는 접촉조차 하지 않고서 돌아간 것을 보니 이 새끼에게 너무나도 큰 실망을 해버린 것도 사실이다. 올 때까지 기다릴까? 아니야. 가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봐줘야지.




[내... 내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래서...]

[자수할 거 아니면 얼른 가라. 다음에 내가 너를 다시 봤을 때는 바로 연행이야]

[......!!....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야! ....그래. 나...나는 너와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쿠리코가 부러웠는지도...]




도착한 집은 고요했다. 벌써 이곳을 떠났나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곧 들려오는 미세한 숨소리가 이곳에 그 녀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가족들이 사라진 이후론 그 침대에 올라가지도 않았던 녀석이 위의 침대에서 쓰러져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구질구질하다는 생각과 함께 더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구질구질해. 뭐 하는 거야? 너답지 않잖아. 너 왜 그렇게 누워 있는 거야? 지금 그러고 있을 때야? 나한테 말했던 것처럼 그 여자를 데리고 왔어야지. 익사시키기로 했잖아. 그 독기 다 어디 갔어? 


"야, 지금 잠이 오냐?"


나는 아래에서 위를 향해 외쳤다. 들리지 않는지 한참을 곯아떨어진 녀석은 새근새근하는 부드러운 숨소리만 주기적으로 내뱉을 뿐이었다. 손을 뻗어서, 침대 프레임 옆에 있는 얼굴을 살짝 손대자 힘없이 눈을 가늘게 뜬 이 녀석이 작게 말했다.


".....시발.. 내 얼굴에 손대지 마... 누나는...?"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곧 침착하게 대답했다.


"누나는 모르겠고.. 누나의 남자친구라면 방금 보고 왔어"

"...그 새끼 뭐 하는데? 아.. 씨발... 나 숙제해야 하는데.."

"그래. 숙제 안 하고 왜 누워 있어? 같잖은 동정심이라도 생기셨나 봐. 직접 마주치지도 않고 바로 도망이라니... 진짜 별 볼일 없는 쓰레기 같은 새끼를 내가 상대하고 있는 모양이야"


내 비아냥에 이제야 정신이 드는지 곧 눈을 똑바로 뜨고는 몸을 급히 일으켰다. 


"재미없다 너"

"...."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 아니 나...."

"구차해 보이는 변명까지 할 거야? 대체 날 얼마나 실망시킬 거야? 이러지 말자.."

"...그..그런게 아니라... 나는..."

"...나는 네가 얼마나 멋있게 그 여자를 죽일지 잔뜩 기대했단 말이야. 어떤 표정으로 그 여자를 데리고 올까, 어디를 잡고서 끌고 올까, 그 여자가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으면. 너는 어떤 대답을 할까.... 근데 이렇게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쫄보 새끼인 졸은 상상도 못했지"


내 말에 오키타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파악한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본 최근의 표정 가장 비참하고 당황한 표정이었다. 본인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왜 그냥 돌아왔는지. 어째서 히지카타와의 대화 후에 마음을 접었는지에 대해서 돌이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 내가 잠시... 다시... 그러니까.."

"뭐.. 나와는 상관없지만 굳이 다시 실행하려면 좋을 대로 해"

"..."

"너랑 히지카타랑 만났던 거, 그리고 대화 내용 녹음파일까지 전부다 그 여자에게 보냈어"

"....뭐?"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 법이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일은 없잖아. 잘해봐"


오키타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못한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그만하자."

"..."


내 말에 오키타는 분명히 왜 그러느냐고, 무슨 일이냐고 추하게 매달릴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단순히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오키타는 처음에 있었던 그 2층 침대에서 변함없이 나를 내려다보며, 조금은 아쉬움이 묻어 있는 듯한, 그래서 조금 오묘해 보이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잘 지내"


아니, 내가 바란 대답과 반응은 이런 게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새끼를 다시 받아줄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어이없이 알겠다고 즉 답을 할 줄도 몰랐던 것이다. 되려 내가 당황해 버렸다. 그렇다. 나의 단순한 착각이었다. 이 새끼는 누나의 남자친구의 앞에서만 비굴해지고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 앞에서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새끼는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겠지, 누나의 남자친구도 이 새끼를 떠났으니 당연히 내가 떠나는 것만큼은 막고 싶을 거야..! 하고 생각해버린 어이없는 자만감...


"...어디서 지낼 예정이야?"

"끝난 사이에 그런 것까지 가르쳐 줘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 그래. 그렇지"


생각보다 단호한 대답에 나 역시 맺음 말을 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는 끝났다.


내 마음이 아직 덜 끝났다면 다시 들어가서 오키타 새끼를 끌어내리고, 얼굴이라도 짓밟으면서 대답이 왜 이따위냐면서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이었는지도 의문이었고, 내가 그렇게 억지를 부려도 이번에 오키타는 내가 원하는 답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나에게 추하게 빌기를 바랐나? 그렇다고 받아줬을 것도 아니었으면서...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지만 다시 이 새끼와 만난다고 해서 바뀔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전에 끝났어야 할 인연이 지금까지 구차하게 내 욕심만으로, 혹은 이 새끼의 욕심 때문에 이어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빠져나가다가 문득, 확실하게 들어가서 죽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부토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임무 이야기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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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긴 시간을 정리하였고, 다시 아부토의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상하게 조금 기뻐 보이는 아부토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오늘은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그래서 어떤 걸 해야 되는데.. 하고 일상을 보고하면서 나를 따라다녔다. 이런 생활이 조금 허전한 감은 있지만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 새끼는 어떻게 지낼까 잠시 생각이 나기는 했다. 왜냐하면 내가 보낸 음성과 사진들을 보고 그 여자는 엄청나게 난리를 치면서도 조금은 기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음성 파일에는 '쿠리코를 사랑한다' 라는 메세지가 단호하게 담겨있었고, 타인에게, 그것도 아무런 관계없는 타인도 아닌 영원히 잊히지 않은 첫사랑의 남동생에게 보내는 강렬한 메세지였기 때문에 아마 듣는 순간, 오르가즘이라도 느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갈등했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는 하면서도, 자신의 남편은 그 범인을 잡지 않고 그냥 보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여자는 이겼다. 결국 누나의 남자친구는 그 사진과 영상을 가지고 있는 쿠리코에게 잘못했다며 빌었다고 했다. 그 이후 경찰에서 오키타 녀석을 잡는 데에 관심도가 훨씬 높아졌다. 이제야 누나의 남자친구는 그 녀석을 잡아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아부토에게 그 이야기를 보고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지금 있는 곳도 분명 지금은 확실히 조사할텐데.


"단장, 근데.. 조금 곤란하다고 해야 하나.. 여튼 그런 일이 있는데..."

"응?"

 

곤란해하는 아부토의 뒤에는 전에 행방불명 됐었던 카구라가 무언가 거대한 자루 끌고서 당당하게 내 앞으로 온 것이었다. 생각보다 옷차림은 깔끔했다. 누군가가 돌봐주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상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표정과 태도는 꽤 마음에 들었다.


"... 생각보다 말끔하네? 다시 돌아왔을 때는 거지 꼴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카구라가 답하기 전에 아부토는 뜬금없이 끼어들어선, 어떤 가게에서 다행히 도음을 줬다고 했다며 왜인지 당황한 듯한 표정과 말투로 말했다.


"다시 올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왔네?"

"오빠한테 선물이 있어서 말이야"


카구라는 끌고 오던 큰 자루를 내 앞에 털썩 놓았다.


"...그건 또 뭐야? 뇌물인가? 그냥 갖다 버려"


만만치 않은 저 또라이 같은 성격으로는 분명 열자마자 등장하는 스프링 달린 피에로처럼 기괴한 걸 가지고 왔을 거라고 예상하고선 손을 내저었다.


"뭐긴! 잘 봐! 오빠의 이상한 관계는 이제 내가 다 정리했다 해. 이제 가족은 우리뿐이라고"


심드렁하게 앉아 꼼지락거리며 잘 풀리지 않는 자루의 묶인 매듭을 푸는 카구라를 보며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드디어 매듭이 풀린 자루 안은 까맣게 속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 안의 익숙한 모래 빛의 머리카락을 보고선 온몸이 소름과 함께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충격받진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인지 확인을 위해서 자루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내 표정을 살피며 웃는 카구라의 눈빛과 한마디가 나를 그 자리에 고정시켜두었다.


"어때? 이제 나를 하루사메로 받아줘라 해"



카구라의 기고만장한 표정, 내 눈치를 보는 아부토, 그리고 쓰러져 있는 자루 안의 오키타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아부토.... 데려가서 입단시켜. 저건... 저건 두고 가"

"응응! 오빠가 정말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해"


카구라는 황홀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카구라는 아부토에게 자, 안내해줘. 하고는 키득키득 웃으며 아부토를 따라나선다. 타박타박하는 가벼운 발 걸음이 사라져 갈 때, 그 자루 옆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죽었을 리는 없다. 단지 내가 놀란 이유는 카구라가 어떻게 이 새끼를 찾아갔는지, 어떻게 이 녀석을 순순히 데리고 올 수 있었는지, 단지 그게 궁금할 뿐이다. 그리고 그 자루 안의 오키타의 살갗에 손을 대는 순간 평소에 느껴지던 그 온기가 아닌, 익숙하면서도 이상한 냉기가 겉도는 피부에 나도 모르게 손을 떼고 말았다.


....

...시시해..

이게 뭐지. 차라리 그때 내가 죽일걸. 


이 녀석을 감싸고 있던 자루를 다시 위로 올려서 덮고는 다시 아부토를 불렀다. 경찰의 눈에 아주 잘 띄는 곳에 버리라고 말했다. 이 녀석의 시체는 되도록 누나의 남자친구가 발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상만 해도 기대되는 반응일 것이다. 






-

그 녀석의 시체를 발견한 경찰과 언론에 의해서 뉴스는 완전히 그 녀석 이야기로 뒤덮였다. 신문 1면에는 카구라가 들고 온 그 자루에 그대로 싸여져 있는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실렸다. 찍힌 사진의 주변 풍경이 칙칙하고 너저분한 것을 보아하니 쓰레기장 같은 곳에 버렸나 보다. '前신센구미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 시체로 발견. 타살 유력'. 누나의 남자친구의 인터뷰가 궁금해서 계속해서 뉴스와 신문을 보고 있지만 누나의 남자친구는 인터뷰를 철저하게 피하는 듯했다. 언뜻 찍힌 뉴스에 찍힌 그의 모습엔 허용할 수 없는 허탈함과 함께, 자신이 그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선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고문 후 놓아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한참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고문을 했던 그때, 놓아주지 말고 옥에 가두어 놓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적어도 사형이었으면 이렇게 쓰레기장에서 더러운 자루에 쌓여서 수많은 의문을 가지고 나타나지는 않았을 테니. 아니면 이후에  만난 그때, 불안에 떠는 아내가 있는 그 집의 골목에서, 서툰 고백을 했던 그때.. 그때 억지로라도 잡아서 감옥에라도 처박아두고 집행을 미루려 노력이라도 했던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혹은 쿠리코와 이혼이라도 했어야 했을까? 하는 알 수 없는 질문이라도 마구잡이로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그 녀석의 죽음으로 조금은 안정을 되찾은 아내와 함께 평온한 모습을 연기하는 그 모습이 정말이지 역겨워서 장기마저 다 토해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째서 저런 위선적인 놈을 마지막까지 좋아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다.



오키타와 마지막에 대화를 했었던 집을 둘러보았다. 부서질지도 모르는 사다리의 첫 칸을 밟고서 침대 위를 살짝 바라보았다. 침대 시트엔 이미 굳어 까맣게 변해버린 피와 빛을 잃은 야광별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앞뒤로 그 별을 살피다가 다시 침대 위에 얹어놓고는 집을 떠난다. 내일은 놀이공원에 갈 생각이다. 까만 하늘의 놀이공원. 그곳의 폭죽은 다시 찬란하게 터질 것이고, 같이 탔던 관람차는 지금도 높은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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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네요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ㅜㅁㅜ

카무오키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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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분명히 믿는다. 히지카타 역시 얼마나 많은 고민 후에 행동으로 옮겼는지는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에.


도망쳤다. 히지카타가 나가서 대원들을 소집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히지카타가 건네준 돈과 통장을 냅다 들고서 최대한 멀리 가려고 뛰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히지카타가 나에게 나가라고 말할 줄은 몰랐다. 히지카타는 당연히 나를 옆에 두는 선택을 할 줄만 알았지, 나에게 도망가라고 할 줄은 정말로..예상 못했다.


우선 나를 감출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를 잘 알아보지 못할 법한 작은 시장으로 가서 대충 모자와 옷을 사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모습을 감추려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히지카타는 내 뒷모습만으로 나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나를 못 본 척 해줄 것이다. 아무리 나를 찾겠다고 했어도.. 부하들을 데리고 나를 쫓더라도 일부러 내가 가지 않을 법한 곳을 조사하도록 지시할 것을 나는 안다.

.... 정말로 그럴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쿠리코가 히지카타 옆으로 이동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내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맞닥트렸기 때문이다.


이제 어디로 가지..?

정신이 아득했다.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런 상황이 오니 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건 카무이 한 사람 밖엔 없었다. 하지만 정말 카무이를 찾아가야 할까? 그건 그거대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자신의 정체를 그렇게 감쪽같이 속여 놓고, 내가 히지카타를 찾고 있을 적에... 

이 일을 지금 생각하면 뭘 하나.. 이제 다 지나간 일이 되버렸는데.... 내가 그렇게 찾아 헤메이며 찾아놓은 히지카타는 결국... 결국 쿠리코의 옆자리에 가버린거고.. 히지카타를 찾던 나는 이제 히지카타에게서 도망치게 된 것이다. 


조용한 곳에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요시와라에 가서 술이나 마실까? 그러다가 잡히면 어쩌지? 잡히면... 아니, 그냥 자수할까?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단순하게 도망친다던가, 숨는다는 개념에 대해서 잘 몰랐다. 나는 쫓는 사람이지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서 술을 마셔야겠다. 한창 술을 마시다가 잡히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지카타가 준 돈은 다 술값으로 탕진해버려야지. 잔뜩 술에 취해서 헛소리나 하고 있을 때, 신고를 받은 히지카타가 와서 날 쳐다보는거지. 탁자 위에 술병과 함께 자신이 준 봉투가 널부러져 있는거야. 자신이 준 돈을 술 값으로 전부 날렸다는데에서 오는 그 한심함에 잔뜩 찬 분노... 그 표정을 보고싶다. 자신이 준 돈으로 안전하게 숨어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 근처에서 술이나 마시다가 허무하게, 헛소리나 하면서, 술 냄새 풍기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잡히면 얼마나 황당할까? 내가 온순하게 네 생각대로 살아줄 줄 알았어? 그렇게 더러울 정도로 성실하게 목숨 부지하면서 살아갈 줄 알았냐고. 


간판 조명이 깨끗하게 빛나는 것을 보니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나 보다. 딱 봐도 요시와라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어떤 술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손님도 몇 없었고, 귀 아플 정도로 시끌벅적하지도 않았다. 눈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 밝혀져 있는 주황색 불빛이 은은한 게 마음에 든다. 히지카타가 준 두툼한 봉투를 얼핏 보니 거의 3~4백 정도는 넣어준 것 같다. 어떻게 이런 돈을 뺐을까? 쿠리코의 눈을 피해서 이런 돈을 빼내기도 힘들었을 텐데.... 마지막에 나에게 던졌던 통장이 생각난다. 그 새끼가 찾아서 넣었다는 내 돈은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져서 통장을 열어보자 작은 메모가 하나 끼워 있었다.


'가끔 돈 보내줄게.'


... 그렇게 나를 보냈으면... 그렇게 나에게 말로라도 죽여버리고 싶다고 했을 거면.. 이런 짓은 왜 하는데 이 씨발 새끼야. 이런 짓을 자꾸 하니까 내가... 내가.... 자꾸 기대하잖아. 차라리 나를 위해서 히지카타는 철저하게 처음부터 잘해주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줍잖은 친절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몰아세운 게 아닌가... 그 메모를 꾸깃꾸깃하게 구겨서 던져버리려고 했지만 메모를 구겨 쥔 손을 펴서 버릴 용기가 없었다. 다시 그 구깃한 종이를 펴서, 익숙한 그 글씨체를 보면서 한참....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통장에 잘 끼워두었다. 


메뉴판을 들고 고민 없이 꽤나 비싼 양주를 겁 없이 시켰다. 전에 마츠다이라 선생이 한 잔 정도 인심 쓰며 줬던 적이 있는 그런 술이었다. 공들인 듯한 유리병과 날씬하게 빠진 유리잔, 그리고 얼음과 온더락 잔을 내밀며 어떻게 드시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마츠다이라 선생은 한번 마셔보라며 이런 술은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거라면서 스트레이트로 줬었지. 멋모르고 받아서는 겁 없이 원샷으로 마시자, 옆에서 히지카타가 애한테 이런 술을 그냥 주면 어떻게 하냐며 낄낄거리면서 웃는 마츠다이라 선생에게 화냈던 기억이 난다. 얼음을 하나 집어서 입에 넣었다. 처음 마셔보는 끈적한 양주 때문에 켁켁 거리는 나를 보면서 히지카타는 온더락 잔에 물과 얼음을 채워서 줬었는데.. 이제 와서 이런 추억이나 생각을 하면 뭘 하나.. 스트레이트 잔에 양주를 잔뜩 따랐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영롱한 액체. 망설임 없이 단숨에 들이켰다. 목이 뜨겁다. 그리고 얼음을 하나 집어 먹었다. 안주는 필요 없냐는 직원의 질문에 필요 없다고 대답하고선 다시 잔에 술을 따랐다. 연거푸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 띵하고 울린다. 앞에 있는 바텐더에게 근처에 있는 호텔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바텐더는 그렇게 좋은 곳을 찾지 않으신다면.. 하고 고민하며 어떤 호텔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나와서 거닐었던 그 거리는 번쩍번쩍하고 시끄러웠다. 바닥엔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발자국이 찍힌 화려한 전단지가 잔뜩 깔려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범죄자로 알고 있는데, 범죄자들은 잠이 없나? 요시와라의 길목을 걸으며 느낀 점이었다. 시간이 몇 시인데 다들 뛰어나와서는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떠들고 말야. 밤에 싸우랴, 술 마시랴 나름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빛이 물에 떨군 잉크처럼 흐릿하게 번진다. 눈앞이 흐릿흐릿했다. 양주 한 병을 안주도 없이 들이켜서 그런지 귀도 먹먹한 것 같았다. 바텐더가 추천한 호텔은 '사색' 이라는 이름의 호텔이었는데, 말만 호텔이지 오래되어 보였다. 내 행색이 돈이 없어 보였나 보다. 어떤 곳도 상관은 없었기 때문에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숙박비를 계산하며 물었다.


사색이 뭘 뜻하는거죠? 죽은 사람의 얼굴 빛인가?


농담한 건데 알바생인지 주인인지는 말이 없었다.


에이, 농담이에요~ 왜 정색을 하고 그래?


그 주인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차갑게 열쇠를 툭 던져주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방 키에 달린 번호를 보자 내가 묵을 숙소는 3층의 모퉁이었다. 호텔 복도 바닥은 검붉은색 싸구려 카펫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상당히 많은 얼룩이 있는 걸 보아하니 청결하진 않은 모양이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방안의 색상을 붉은색, 보라색, 갈색 등등 조금은 따스한 느낌을 주는 색상들이었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들어가서 잠시 침대에 앉아 있을 때, 프론트에서 전화를 했는지 호텔방 안의 전화가 울렸다.


[요시와라 특성상 얼마나 깨끗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겠냐마는, 그래도 조용히 있어주세요. 저희도 피곤하니까]

내가 뭐 애새끼도 아닌데 층간 소음 걱정하시는 건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조용히 있어달라는 뜻입니다 당신, 얼마 전까지 경찰이었던 오키타 소고 아니야?]

.....날 신고하시겠다?

[아뇨 안 하겠다고 했어요. 경찰이 들이닥치면 저희도 피해가 크다고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감히 네가 뭔데 나를 협박해? 내가 누군 줄 알고.. 내가 누구인 줄 알아? 내가 바로..... 신세구미에.... 아, 이젠 아니구나...


앞에 있는 작은 냉장고를 열어보니 판매용인 맥주와 양주가 몇 개 들어있었다. 다 꺼내서 병 채로 들고서 그대로 들이부었다. 자고 싶다. 내일은 카무이 녀석을 한 번 찾아볼까? 이 새끼는 분명히 나를 보고 싶어 할 텐데.... 


확신했던 이별도 결국은 상대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헤어져야 할 이 녀석이, 지금의 나에게는 약간은 찾고 싶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히지카타도 처음엔 내가 반드시 옆에 두고 있어야 할 사람이었겠지. 지금은 이렇게 버렸어도.. 옆에서 같이 잠드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쿠리코가 되어버린 것도.... 


무작정 프론트에 전화를 걸었다. 절대로 취한 상태는 아니다.


[네. 뭐 필요한 거라도...]

내가 누구인 줄... 알면서도 지금 협박질을 했다 이거지? 

[...많이 취하신 거 같은데 그만 주무시....]

아, 됐고. 하루사메 7사단 단장으을... 만나고 싶은데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

[...손님, 저희는 그런 건...]

여기서 장사 하루 이틀 해!? 하다못해 그놈들이 가끔은 찾아올 거 아니야!! 그게 언제냐고...!!!

[.....]


프론트는 말이 없다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씨발 지금 내가 경찰이 아니라고 무시하는 거야? 내가 경찰으로서 조사하러 가면 살살 기면서 난리 쳤을 새끼들이.. 들고 있던 술 병을 바닥에 던졌다. 와장창하고 멋있게 깨져야 할 병이 호텔 바닥의 카펫 때문에 깨지지 않고 그만 데구르르 굴러다니는 것이다. 하, 시발 아무것도 마음대로 안된다니까? 역시 내가 내 직위를 잃어버려서 그런 건가?....

방안이 너무 고요해서 티비를 틀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티비에서 나오는 파란 불빛이 방 안을 잔뜩 비추었다. 티비에는 익숙한 모습의 히지카타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 시민 여러분들께 심려 끼쳐 드린 부분은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최대한 빨리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스파이가 내부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대중들은 현재 큰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최대의 공적을 올리기도 하는 등, 실력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요, 잡았을 경우 그의 처분이 궁금합니다.]

[...당연히 내부에 있는 법대로 처리합니다. 최대 사형, 최소 징역 15년 이상으로 일단은 추측하고 있지만 정확한 것은 우선 오키타 대장을 찾은 이후에 논의될 것 입니다.]

[현재 어디로 갔는지 위치 경로는 파악되셨습니까?]

[...멀리 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해서.. 찾을 예정입니다]


티비 앞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다시 눈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해놓고, 너는 왜 내 눈앞에 나타나는 걸까?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그 눈빛을 보자 나와 눈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다시.. 자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더라도 히지카타를 만나야겠다....잊기 위해 마신 술이, 고요함을 잊으려 틀었던 TV가 다시 나를 견딜 수 없이 흔들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꽤 길었다. 히지카타는 무어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고, 옆에서 인터뷰를 하는 아나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우스꽝스러운 광고가 시작 될 때, 충동적으로 호텔안에 있는 전화기를 다시 신경질 적으로 들고서 경찰 신고 다이얼을 눌렀다. 하지만 다이얼이 눌리는 번호는 프론트 라고 쓰여진 버튼 한개 뿐이다. 버튼을 누르자 다시 프론트에 전화가 걸렸다.


[...또 7사단 단장을 찾으시는 겁니까?]

아니, 그런거 아니고 경찰.. 경찰을 불러줘

[...그건 안됩니다. 지금 호텔을 나가시면 불러드리죠]

씨발 왜!! 지금 당장 경찰불러!!!!!!

[...급한 일이신가요? 무슨 일이시죠? 지금 저희가 올라가겠습니다]

오지마!! 오면 다 죽여버릴거야

[협박치곤 과하시네요? 아까도 말했지만 경찰을 지금 부르면 이 호텔에 묶고 계신 손님들 모두 피해를 입습니다. 당신만 범죄자라고 생각하나본데 그런거 아니니까 자수할거면 곱게 혼자 하라는 뜻입니다. 이해했어요?]

......

[그리고... 좋은 소식인진 모르겠지만 당신이 아까 찾던 7사단 단장이 직접 당신을 찾던데....]


그 말 끝이 흐려갈때 무렵, 내 방의 문고리가 당기는 소리가 들린다. 철컥 철컥- 이상한 위압감이다.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수화기를 떨어트리고, 이상할 정도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술 병을 잡고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겁없이 문으로 터벅터벅 가서는 문을 벌컥 열고는 내다 보았다. 앞에는 카무이가 무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내가 술에 취해서가 아니다.


하하, 왔어?

....

들어와.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핸드폰을 빼앗겨버렸어. 네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진 않아서.

얼마나 마셨어?

글쎄.. 얼마 안 마셨어 자! 들어와! 와서 너도 마셔.


카무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방으로 들어와선 침대에 걸터앉았다.


자 마셔


병 채로 내밀자 카무이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는 한 모금 들이켰다. 카무이 옆에 누워선 천장을 보면서 생각 없이 말했다.


나 찾았지?

당연하지. 그런 당연한걸 왜 물어?

왜? 날 걱정해서?

걱정? 그럴리가. 경찰보다 먼저 널 잡고 싶어서

잡아서 어쩌게?

.....


카무이는 다시 한번 술병을 들고선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잊었던 이 녀석의 정체가 떠올라버렸다. 술에 취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서러움과 함께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오른다. 몸을 일으켜선 거칠게 멱살을 잡았다. 


야 이 씨발새끼야

....

잊고 있었어. 너 7사단 단장이라며? 하루사메 소속.... 이었다며? 야 이 개새끼야....! 재밌어? 재밌었냐고...! 내가... 내가 히지카타 찾아다닐때 무슨 기분이었냐? 웃겼지? 씨발 내가 데리고 있는데 저 병신 같은 새끼는 되지도 않는 종이 쪼가리 들고 다니면서.... 다니면서....

...그땐 나도 우리 쪽이 데리고 있다는 걸 몰랐어. 그러니까 나도 너를 도와준거고.. 물론....

너는 충분히!! 충분히 데리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하면서 날 도와줄 수도 있는 소름끼치는 새끼야!! 

그래. 나중에 알았을 때는 나 역시 즐겼던 건 사실이야. 너한테 보내준 걸 아직도 후회해. 그냥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근데 뭐, 지금은....

지금은 뭐. 뭐, 이 새끼야!!

너도 할 말 없잖아? 너도 날 잡으려고 손수 먼저 전화까지 해놓고?

....경찰이 범죄자를 잡는 게 이상해?

아니, 지극히 정상이지. 그럼 범죄자가 사람을 납치하는 건? 네 말에 따르면 이것도 정상 아냐?


할 말이 없었다. 아.... 나는 한숨과 함께 그대로 쓰러져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너는 날 왜 찾았어?


카무이가 건조하게 물었다.


그냥 생각났어..

그러니까 왜.

몰라 그냥 생각났어. 몰라.... 다 짜증나,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다 짜증나!! 

...처음엔 네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어.

은근히 순진해 빠졌네... 날 믿었어? 왜? 내가 뭔데? 

그러게.

그래서, 지금은? 팔아버리려고 왔어?

아니, 죽여야지.

어차피 죽을거 자수하게 해줘.

그런 부탁을 들어줄 정도로 착해 빠지진 않아서.

 

하지만 죽이겠다고 말하는 카무이의 표정에 살기는 전혀 없었다. 카무이는 손에 들고 있던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병을 옆에 탁자에 놓고선 내 옆에 같이 누웠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이 새끼는 나를 다 용서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본인을 팔아 넘겼고 죽이려고 했던 사실도 이미 다 잊었구나, 아니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나를 용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구나. 호텔방의 은은한 조명으로 꿈틀거리는 따스함 때문인지, 그런 이 녀석의 아무런 조건없이 나를 용서해버리는 어이없는 행동 탓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가만히 눈을 맞추다가 내가 먼저 카무이의 손 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이며 물었다.


전에 경찰들이 진 치고 있던 집 앞에..  왔었지? 왜 왔어?

너한테 물어보려고.

뭘?

무슨 상황인지 몰랐으니까.


너랑 헤어지려고 했었어. 너랑 헤어지려고 했어. 너랑 헤어지려고.... 술 김이라도 이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섞어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도 죽을 뻔 했어. 이거 봐. 나 고문도 당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이해할거지?


나는 왼손에 감긴 붕대를 보여주면서 계속 말했다.


너 물고문 당해봤어? 씨발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샤워실에서 솨아아 하고 쏟아지는 물소리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끼쳐. 욕조도 당분간은 못 볼 것 같아. 물 닿는 게 소름 끼칠 정도더라고. 그래서 결심했지. 누군가를 죽일 땐 반드시 익사시켜서 죽일 거야.

너 자수한다며? 죽을 거라면서

음.. 역시 아직은 못 죽겠다


카무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웃어? 이거 보라고. 나 존나 아팠다니까? 진짜 뒤질뻔했다고.

그 정도 당하고 도망친 거면 상대가 너무 무른거 아냐?


그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다시 히지카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카무이는 이어서 말했다.


제대로 고문할 생각이면 저렇게 조금 하고 끝났겠어?


그래 맞아. 히지카타 너도 얼마나 힘들었어? 히지카타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내 생각 계속하겠지? 나를 잡는다고 했으니까.. 나를 잡는다고 했으니까 끝까지 쫓으려고 하겠지? 그리고 혹시나 정말로 나를 찾아버릴까 봐 조마조마 하겠지? 손톱 두개로 끝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본인도 고통스러울 테니까 속으로 제발 눈앞에 나타나지 말기를 빌고 있겠지? 사실은 미치게 보고 싶으면서..

 

네 표정 보니까 알겠다. 너 고문한 새끼. 그 새끼구나? 누나의 남자친구.


카무이는 몸을 일으켜서는 옆에 놓아두었던 술을 한모금 마셨다. 눈 앞이 술기운 때문에 어질어질했다. 몸이 한 없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 와중에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음..뭐.....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긍정의 뜻을 담은 애매한 답을 해버렸다. 


그 새끼도 너 고문하면서 즐겼을거야.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웃는 이 녀석을 보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히지카타가 정말로 나를 아꼈다면.. 그랬다면 나와 함께 도망쳐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라면 고문이 아니더라도 취조실에만 나를 쳐 박아둘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손을 내밀어서 이 새끼가 쥐고 있던 술을 빼앗았다. 겨우 몸을 일으키고서는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앞에 앉아 있는 카무이를 거칠게 끌어안고 키스했다. 나는 취했다. 취해서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히지카타는 그럴 의도는 없었을 거고, 이 새끼가 말 한 것처럼 즐기지도 않았을 거고, 처음에 내가 생각 했던 것처럼 누구보다도 슬퍼했을거야. 카무이는 내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서 그대로 침대 위로 함께 쓰러졌다. 이 새끼 아래에서 내 왼손을 들어서, 감겨있는 붕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치료는 왜 해줬을까? 최소한의 배려였을까? 치료라도 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었을까? 좆같네 씨발. 그만. 나는 단호하게 카무이에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안되겠어. 가야겠어.

어딜? 너 취했어.

취한게 어때서?


비틀비틀 걷는 나를 보며 카무이는 나를 뒤따라와서는 말했다. 


오늘은 가만히 있는게 좋을 것 같은데

놔!! 지금 가서 죽여버려야겠어

그래. 죽이는거 좋지. 근데...

죽이고 나도 자수 하던가 하면 되잖아! 놔!!


카무이는 내 목을 잡고선 벽으로 거칠게 몰아붙였다. 쿠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앞이 느리게 흔들린다. 그만하자. 카무이는 그대로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이 쭉 빠진다. 나는 취했다...


한참을 잤다. 그 날 나는 카무이와 손을 잡고, 어쩌면 내가 이 새끼를 끌어안고 잠들었다. 내가 이 새끼의 옆을 선택하도록 강요한 것은 다름 아닌 히지카타였다. 아니, 히지카타는 아니다. 히지카타의 옆에 있는 그 여자. 그 여자다. 결정했다. 내가 그 여자를 죽이게 되는 방식은 익사다. 한참을 데리고 논 다음에 숨을 끊어주겠어. 네가 나에게 살려달라고 빌고,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내가 가지고 놀아주지. 



 




-

아침에 이 녀석이 옆에 있어서 순간적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모든 일이 떠오른다. 자주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이 새끼와 나의 상황이 지금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닌지라, 술먹고 진상짓을 한 것 같기도 해서 조금은 쪽팔린다. 카무이는 눈을 뜬 나를 보며, 속은 괜찮아? 하고 농담 섞어서 내가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면서 답지 않은 장난을 쳐댔다. 다 기억난다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허리를 끌어안으며 호텔에 더 있지 말고 자신과 함께 하루사메로 가자고 했다. 훨씬 안전할 거라고. 스파이로 의심받고 있다면 정말로 악당이 되면 그만이라며 웃었다. 경찰과 악당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경찰일 때에 가지고 있던 자부심과, 악당이 되어버린 그 비참함은 이 녀석이 절대로 모를 것이다. 



샤워를 하려고 별생각 없이 욕실에 갔다가 옆에 있는 욕조를 보고 흠칫 놀라서 뒷 걸음질을 치다가 마침 일어나서 나를 찾던 카무이와 부딪쳤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시 세면대로 가서는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며 수도꼭지를 당겼다.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소리를 듣자마자 몸이 싸늘하게 식으며 땀이 함께 흘렀다. 카무이는 눈치챘는지 뒤에서 다가와서는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어깨에 턱을 얹고 말했다.


"왜? 힘들어?"


장난끼 담긴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 새끼에게 어제 고문의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에 대해서 미치도록 후회했다. 하지만 밀어내지는 않았다. 이 새끼가 나를 안아주자마자 약간 안도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같이 씻을까?"


카무이는 다시 물었다. 나는 긍정의 뜻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음...욕조만 보면 그 새끼가 한 짓이 생각나서 그런 건가?"


카무이는 나를 욕조 안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냅다 던졌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우당탕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언제라도 물이 가득 찰지도 모르는 욕조 안에서 병적으로 벗어나려고 팔을 저었다. 카무이는 바로 들어와서는 발버둥 치는 나를 강제로 감싸 안으며 괜찮아, 괜찮아, 하고 속삭인다. 아니, 씨발 내가 안 괜찮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파도에 밀려나온 물고기처럼 거칠게 숨을 헐떡일 뿐이었다. 강제로 입을 맞췄다. 입안을 돌아다니는 미끌미끌한 혓바닥, 그리고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할지도 모르는 나는 이 녀석에게로부터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카무이는 내 거친 반응에 다시 씨익 웃으면서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다시 말했다.


"자아, 천천히 숨 쉬는거야. 알았지? 설마 키스하는 법도 잊어버린거야?"

"....그... 그만....나..나갈래..나가자...하아....허억..."


나가자는 내 말은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가볍게 입을 맞춰왔다.


"자. 괜찮지?"


괜찮긴 뭐가...! 나는 다시 발버둥 치고, 손을 뻗어서 욕조의 옆을 겨우 잡았다. 카무이는 재밌다는 듯이 내 팔을 잡아서 자신의 목 뒤로 둘렀다. 자, 나를 잘 잡으면 되잖아.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잡아야 한다는 무의식은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면서 카무이의 목을 완전히 끌어안았다. 


"허억....나...나가자...제발..하아...헉... 제발 나가자..."

"그래. 가자. 한 번 하고 가자"

"나가서 하자.. 나가서.."

"아니, 여기서"

"...이....씨발새끼..."


내가 입고 있던 바지 버클을 풀며, 기억에 덧씌워줄게. 하고 씨익 웃었다. 벗긴 바지를 옆으로 휙 던져놓고는 다리를 잡아당겨선 제 어깨에 걸쳤다. 기대고 있던 몸이 욕조 아래로 쭈욱 미끄러지는 것, 그리고 위로 보이는 공포스러운 수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욕조 아래로는 차가운 물이 점점 차오른다. 옷이 축축하게 젖어들며 살갗을 휘감아온다. 그 감촉이 마치 커다란 구렁이가 나를 켜켜이 감싸 안는 것 같다. 내 옆으로 물이 넘실넘실, 아슬아슬하다. 살려줘.....! 무..물이...물이...! 카무이는 작게 속삭인다. 기다렸지? 여기는.. 이 나와 함께 있었던 집이야... 집이야... 하고 말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시작되어야 할 애무가 한참 동안 없다가 카무이는 갑자기 키득키득 웃었다. 한 쪽 눈을 힘겹게 살짝 뜨고 쳐다보자 카무이는 어깨에 걸쳤던 다리를 내려놓고는 나가자고 했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정말이지 추할 정도로 힘겹게 욕조에서 허겁지겁 빠져나갔다. 욕조에 물은 없었고, 당연히 내 옷도 젖지 않았다. 이마에 잔뜩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한참 밖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카무이가 내 앞에 와서 내 상태를 빤히 쳐다보기에, 흐르는 땀을 힘겹게 닦으며 소리쳤다.


"헉...헉..야... 야 이 씨발새끼야!!.. 헉..허억... 사..사람 말이.. 말 같지 않냐? 헉..허억...하아.."

"아, 미안. 말같지 않았던 건 아닌데 뭔가 짜증나잖아"

"하아... 씨발....."

"왜 이 정도까지 트라우마를 만든 사람을 왜 계속 생각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


그 말에 카무이 얼굴을 다시 홱 올려다보았다. 그때의 그 표정이 새삼스럽게 상처받은 표정으로 보여서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옷 입어. 나가자"


...분명 나와서 침대에서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화났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으면서 어제 샀던 모자를 푹 눌러 쓰자, 귀찮으니 쓰지 말라며 모자를 벗겼다. 모자 쓰면 네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 갑자기 또 나를 배신할지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웃는 모습에 또다시 열이 확 오른다. 하지만 이상한 힘이었다. 이 새끼와 손을 잡고 걸을 때만큼은 나 역시 무섭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모자를 쓰지 않아도 되었고,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었다. 카무이는 전화기를 들곤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응. 내 방에 있는 욕실에 욕조 치워. 지금 출발하니까 15분 쯤 걸려"


카무이는 전화를 끊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전에 와봤었지? 거기서 하자"


그럼 그렇지.



화풀이 인지도 모르겠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고, 들어가자마자 머리칼을 홱 움켜쥐는 손길도, 옷을 벗기는 악력도 평소보다 너무 거칠어서 이 새끼 역시 화났구나.. 하고 속으로만 삼켰다. 키스도, 애무도 거칠었다. 평소라면 자국 남지 않게 내가 조심시키는 것도 있지만 본인도 조금은 신경 썼었는데 지금은 말릴 엄두조차 나지 않아서 짐승처럼 거칠게 핥아대는 모습을 보면서도 잠자코 있었다. 달래줄 생각으로 뒷 목에 손을 살짝 둘렀는데, 카무이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눈치보는거야? 왜 안말려"

"...내가 네 눈치를 왜봐?...이제 말릴 이유 없잖아. 출근도 안하니까"

"출근만이 문제는 아니었겠지. 그때는 거기에 그분도 계셨으니"

"아냐...그건 아니... 아앗....!"


카무이는 혀로 애무하던 목을 물어버렸다. 아 씨발 더럽게 아프네. 평소와는 확실히 다르다. 거칠게 다리를 벌려서는 손가락을 밀어 넣는 것도, 내가 이물감에 움찔하며 신음을 지를 때에도... 보통 때엔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더 심하게 나오는 신음을 이를 꽉 물어 참았다. 장난끼도, 사랑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그런 섹스였다. 뭐 애초에 우리 둘의 사이에서 사랑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만이 들 정도의 과격함이었다. 질척질척하는 소리의 점점 리듬이 빨라지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참을 수 없는 신음을 헤프게 내지르고 있었다. 

끝인 줄 알았던 행위는 몇 번이고 계속되었다. 결국 나중에는 내 허리를 잡는 손목을 힘겹게 잡으며 그만하자고 달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카무이는 귀찮다는 듯이 내 머리를 거칠게 누르며 다시 삽입을 시작했다. 


함께 샤워를 한 후,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허리를 잡으며 소파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카무이는 바닥에 앉아서 내 얼굴을 보면서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발정 났었냐? 하고 화났냐는 질문을 돌려서 비아냥대고 싶었지만 괜한 도발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화는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내가 히지카타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여자를 익사시킬 수 있을까? 가장 멋있고 잔인하게 물에 빠트려 죽일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요시와라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카무이와 돌아다녔으니 아마도 이미.. 히지카타의 손에 내가 이 새끼와 함께 요시와라에 있다는 정보까지는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볍게 입을 맞추는 카무이를 쳐다보며 가만히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는데"

"할 말?"

"화내지 말고 천천히.. 들어줬으면 좋겠어"


쿠리코의 이야기를 차근차근히 이야기했다. 어차피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쪽에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쿠리코의 처음 인상, 그다음 히지카타와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의 도청 이야기까지. 도청 이야기는 전에도 이 새끼가 화낸 적이 있었던 만큼 조금 망설였지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듣던 카무이는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는지를 물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 게다가 몰래 이런 일을 실행했다가 겪게 될 이 녀석과의 신경전.. 나에게 아직 이 녀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극하는 일은 되도록이면 조심 해야한다.


"음... 내가 이 여자를 죽이고 싶어서"

"...."

"넌 어떻게 생각해?"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생각보다 카무이는 흔쾌히 답해주었다. 내가 도와줄 게 있을까? 카무이는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화가 한 번 왔는데 카무이는 대충 받아선 쉬고 있으니까 전화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말로 그 이후엔 전화가 오는 일이 없었다. 맨날 전화가 미친 듯이 울리던 내 책상이 생각나서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소파에 누워서 탁자에 쌓여있는 신문을 뒤적거리며 카무이에게 신문을 보느냐고 물으며 참 의외라고 말했다. 카무이는 그딴 걸 누가 보냐며 아부토가 한 번씩 사 오는 거라고 답했다. 심심해서 신문을 뒤적거리다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뉴스에서 방송하고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에서 반드시 같이 나와야 할 이 녀석이 같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나만 나오지? 왜 너는 안 나와? 이 쪽 입장에서 내가 너를 도운 스파이라고 친다면, 너도 같이 나와야 하잖아"

"인질이 있어서 그럴거야"

"인질?"

"응. 경찰쪽에서 아직은 모르는거 같은데.. 인질이 도망갔다는걸 알면 나도 같이 수배하겠지. 어제 인질이 도망갔어"

"안 잡아?"

"귀찮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생인 카구라가 인질이었다고 한다. 카구라가 동생이었다는 점에서 놀라긴 했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정보를 넘겨서 카무이가 경찰 내부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던 그 당시에, 카무이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이유로 협박을 하고 있었던 카구라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는지 카구라는 조용히 몸을 숨기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할 때 카무이가 건네줬었던 포크를 숨겨놓고 있다가, 얼마 전 식사를 건네주는 틈을 타서 함께 있던 모두를 찔러 죽이고 도망 갔다고 했다.  


"그럼 찾아야 하는거 아니야?"

"나한테 나중에 하루사메로 영입하라고 했었어. 그럼 다시 오겠지"

"너도 참 이상하다"

"너만큼 이상하려고"


카무이는 나에게 계획을 물었다. 계획..이라..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히지카타와 마츠다이라 선생이 절대로 그 근처에 나타나지 않는 시간을 알고 있으니 그때 그 여자를 납치할 거라고 했다. 누나의 남자친구, 마주치면 어떻게 할 거야? ... 그럴 일 없어. 세상에 절대는 없다는 거 몰라? 아니면.. 혹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 같은 거.. 하고 있는 건가? 씨발 그런 거 절대 없다고 했잖아!!!!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카무이는 나를 쳐다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과민반응하지 마. 너무 티 나잖아. 정곡이 찔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나는 순간.. 히지카타도... 나를 체포하려고 할거고.. 그럼 나도 히지카타에게 맞서야 하는 입장이야. 그런 걸 왜 기대하겠어? 절대로 그런 일 없....."

"그래. 알아서 해"


카무이는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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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Jacob's ladder 35

2018. 10. 26. 15:19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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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갈게. 한 마디 했을 뿐이다. 내 말을 듣자마자 말 없이 전화기를 들고서 내 집 주변에 대원들의 배치를 명령하는 히지카타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뭘 하느냐고 묻자 분명히 그 새끼는 널 만나러 올 거라며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상한 확신을 하며 내 옆에 6번대 대장을 함께 배치한 것이다. 무섭게 감이 좋다는 건 아주 잘 알겠다. 

신뢰? 신뢰는 모래성과 같아서 쌓아올리기는 어렵지만 작은 파도에도 쉽게 무너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와 히지카타의 관계에는 신뢰라는 가벼운 단어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장벽이 있다. 알지도 못하는 6번대 대장놈이 아무렇지 않게 우리 관계에 대해서 말했지만, 말도 안된다. 히지카타가 지금 나도 모르는 어떤 사정이 있어서 나에게 조금 냉랭하게 대하고 있지만 나에겐 히지카타가 고개를 숙이게 하는 방법이야 아주 많다. ....물론 요즘 잘 먹히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에도 먹히지 않으면 더 강하게 눌러서 널 죽여버릴거야. 죄책감 때문에 쿠리코 얼굴도 못 쳐다보게 만들어주지. 

......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항상 카무이와 누워 있던 이 집이었다. 달빛이 스며들던 이 창문에서는 이제 잔뜩 긴장되는 핏빛 붉은색의 경광등이 번쩍이며 침입하고, 늘 술을 사다가 마시던 편의점 앞부터 시작해서 집 밖은 지금 다들 진을 치며 기다리고 있다. 이 안에는 나를 조롱하며 탓하는 동료들.. 
이 6번대 대장놈의 말이 맞다. 내가 처음부터 그 새끼를 넘길 생각만 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그랬다면 다른 때와 같이 편안하게 누워 있었을거야. 지금 이렇게 내 마음이 불편할 일도 없었겠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답답함을 느꼈다. 이런걸 미련이라고 하는건가? 다시 이 녀석과의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건 아니다. 이 녀석과 이렇게 끝내고 다시... 다시 히지카타와 둘의 생활로 돌아갈거야.


"나 잠시 나갔다올게"
"그래. 밖에 다른 놈들이 너무 조용한데 무슨 일 없는지도 한번 보고"

6번대 대장놈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집에 그만 가고 싶다며 계속해서 투덜투덜거린다. 아, 더는 못듣겠다. 도망치듯이 문을 열자 섬뜩한 고요함과 함께 시원한 바람, 그리고 역한 피비릿내가 훅 파고 들었다. 피비릿 냄새의 정체에 불길함을 느낀 나는 놀라서 허겁지겁 밖을 바라보았다. 감시하고 있던 모두가 다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한 두명이 아니었다. 복도에 쓰러져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착각이라도 하는 것 같은 검붉은 핏물. 고의적으로 뿌려놓은 것 같이 흐르고 있는 핏물을 보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많은 사람들을 소리없이, 단시간에 이렇게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녀석 한 명 뿐이었기 때문이다. 널부러진 시체들을 뛰어넘어 미친듯이 달렸다. 핏 물 때문에 철벅철벅하고 지저분한 소리가 난다. 집 밖에 깔려있던 그 많은 동료들도 모두 쓰려져 있는 채로 소름끼치게 고요했다.. 그 녀석은 언제 사라진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시체들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반짝 반짝 하고 얼굴을 비추는 붉은 경광등, 아래에 흐르는 시뻘건 피... 나를 만나러 온거야? 왜 이렇게까지 해서 나를 만나려고 한거야? 놓쳤다는 아쉬움 보다는 복잡함이 앞섰다. 이렇게까지 해서 나를 보러 왔으면서 왜 그냥 갔을까? 우두커니 서 있을 때, 뒤 늦게 밖에 나온 6번대 대장은 허겁지겁 나를 향해 달려와서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물었다. 나는 말을 잊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나도 잘 모르겠다고 겨우 대답했다.
 

[전에 경찰이 추적하고 있었던 그 18살 소년에 대해 아직 성급한 확신이라며 천천히 수사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경찰의 입장에서도 어린 나이에 신센구미의 부국장을 납치하는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벌였다고 보기엔 조금 과한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 걸까요? 다음 뉴스입니다.....]

"여기 전단입니다. 구역 정해졌습니다. 전단 붙이고 오라고 하십니다"
 

야마자키는 전단뭉치와 함께 우리에게 구역이 배정된 표를 건네주었다. 배정된 인원들과 함께 전단지 뭉치를 들고 나가면서, 익숙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카무이와 함께 히지카타를 찾는 전단을 붙이던 그 때.. 그 새끼,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꽤나 열심히 붙여줬었는데.. 답지 않게 지금 나 후회하는건가? 나와 함께 전단지 배포 구역을 담당하는 두명은 봉투를 뜯자마자, 대장 우리 얼른 이거 붙이고 가서 쉬죠. 대충 붙입시다. 하고 털털하게 말하면서 전단지 뭉치를 성의없이 주워들었다. 덤덤하게 전단지가 포장되어 있는 종이 포장을 뜯었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넘겼던 사진.. 그 녀석의 웃는 모습이 있을 생각하니 같이 전단지를 붙여주던 카무이의 모습과 전단지에 들어있을 카무이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혼란스럽다. 자기 자신의 수배전단을 붙이면서 나를 위로해주는 그 녀석. 전단지에 있는 이 녀석이 진짜 이 녀석인가? 아니면 내 앞에 있는 이 녀석이 진짜인가? 전단지에서 이 녀석이 말하는 것만 같다. 내가 도와줄까? 도와줄까? 도와줄까? 괜찮아 곧 찾을 거야. 난 네 눈 앞에 있잖아. 카무이는 손을 내밀며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어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잡지도 못하고... 그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벽만 바라보면서, 허공만 바라보면서 멍하니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뜯은 봉투에서 꺼낸 전단에 있는 사진은 카무이가 아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의 아저씨... 어디에서 봤었지... 어디에서 봤었지... 하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작년에 여러명을 납치 감금 및 살해 죄로 사형이 확정된 범인이었다. 심지어 죄명에는 그때 그 사건처럼 민간인 납치 감금 및 살해 죄 라고 쓰여져있었다. 이미 수배중인 이 녀석을 갑자기 왜.. 이 시점에서 수배하고 있는 거지? 카무이는 어떻게 된 거지? 배정된 양을 허겁지겁 붙이고 히지카타를 찾아갔다.
히지카타는 내가 올 줄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등장에 별로 놀라지 않았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히지카타가 앉은 책상으로 가서는 카무이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히지카타는 내 눈을 살짝 피하면서, 조금 있다가 회의가 시작될 거니까 그때 오라며 답했다.


"아니... 회의는 회의고... 내가 넘긴 놈이니까 그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잖아. 왜 갑자기 대상이 바뀐거야?"
".....그니까 이따 회의에서 알려주겠다고 하잖아. 나가"
"그래. 나갈게. 내 핸드폰은 이제 줘"
"....아직 안돼"

히지카타와 내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지금 나한테 뭐 문제 있어?"
"...."
"내 핸드폰은 왜 가져가서 안 주는건데? 그리고 지금 네 태도도 그렇고.. 오늘 전단에 있는 그 범인도 그렇고.."
"회의 때 봐. 나가"

....죽여버리고 싶다. 왜 저러지? 신경질 적으로 문을 쾅 소리나게 닫고 나오자 두 명이 부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척을 하다가 나를 힐끗 바라본다. 분명 뭔가가 있다. 핸드폰도 그렇고.. 지금 나를 감시하는 듯 붙어있는 이 놈들도 그렇고.. 분위기가 이상하다.

"대장, 회의실로 가시죠"

이 둘은 다시 약간은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뭐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회의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깊숙히 의심했다면 조금 예상이라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둘이 어째서 나를 감시하는지 고민할 틈도 없이 회의실 앞에서 쿠리코를 마주쳐 버린 것이다. 히지카타에게 뭘 전해주려 왔는지 손엔 흰 종이가방을 들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은 당황한 듯이 발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태도에서 이대로 자신을 아는척 하지 말고 지나가달라고 사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일부러 얼굴에 미소까지 띄우고선 다가가, 비아낭거리며 말을 걸었다.

"하, 또 히지카타를 만나러 오셨나봐요? 구질구질하게 직장까지 쫓아와서는.."

나를 노려보며 한 마디라도 할 줄 알았으나, 쿠리코는 고개를 홱 돌리고는 다른 쪽으로 향했다. 나에게 등 돌리는 쿠리코의 어깨를 잡고선 다시 말했다.

"왜 무시하세요?"
"이 손 놔!!!.... 당신이랑 더 이상 할 이야기 없으니까 말 걸지 말아주세요"
 

그때 나를 쳐다보는 쿠리코의 눈빛이 공포에 가득 찬 것 같기도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건 당연하겠지만 쿠리코가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건 생각보다 짜릿하고 즐겁기도 했다.
회의가 시작됐다.
먼저 어째서 내가 넘긴 놈을 제치고 다른 사람을 체포했는지가 궁금했는데, 잡히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진행하는 사건을 바꾼 것 같았다. 전단에 박아넣은 그 놈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고, 회의에 참석한 모든 대장들은 그 의견에 다른 의견없이 고분고분했다. 어째서 많은 동료가 죽어버린 카무이의 사건에 대해선 조금의 의문도 없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카무이를 쫓을 일은 없다는 것에 약간은 안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의 고민이 더 생겨버렸다. 내가 이 녀석과 이별의 방법으로 택한 방법이 실패해버렸으니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것... 이번에 연락을 끊은 것으로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연락을 할 이유는 없어져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럼 끝난건가?
"다음 회의 주제입니다. 그 전에..."
회의 진행자는 화면을 뒤로 넘겼다. 그 뒷 화면에는 현직 경찰의 범죄행위에 대한 행동강령인 국중법도를 띄워놓았다. 또 시작인가? 결국 이것에 대한 교육인거였던거야? 지루함을 느껴 길게 하품을 하며 책상에 털썩 엎드렸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왔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타박타박 하는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낯익은 여자 목소리가 들리었다.
"....이 자리를 통해서 꼭 말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짝 고개를 들어 보니 왠 사람 한명이 나와서 말을 하고 있었다. 피해자 대표라도 되나? 하는 생각에 다시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오키타 소고 입니다"
내 이름 언급에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인다. 벌떡 일어나서 보니, 그 여자는 바로 쿠리코였다. 아니 시발 사람이 몇번 시비 건 거 가지고 지금 여기까지 나와서 동정심 유발하는 거야? 나는 그대로 쿠리코를 향해서 조용히 말했다. 이럴 때 소리를 높이는 것은 추하기 때문에 여유있게 말하는게 남들 눈에도 좋게 비치는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지금 당신은 아버지와 히지카타씨를 등에 업고서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인데, 제가 아무리 많은 일을 저질러 봤지만 회의실까지 난입해서 이렇게 당당히 말하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요. 쿠리코씨에게 제가 조금 건방 떨었던 거야 사실이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와서 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치면 지금까지 저에게 불만 많은 다른 일반인들은 뭐가 됩니까?"
"지금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거 같은데요. 당신이 저에게 조금 건방 떨었다는 이유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시나 보네요"
쿠리코는 꽤나 당당하면서도 화가 잔뜩 난 듯, 책상위에 비닐에 넣어져 있는 작은 물건을 내려놓았다. 회의실에선 정적이 흐르고, 그 작은 물건이 무엇인지 몰랐다.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코리코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뭔지 아시겠죠"
쿠리코는 그 작은 물건을 손으로 들어서 보여주었다.
"이미 지문감식 끝났고, 당신 집에 있는 도청장치 압수했습니다. 이제야 무슨 일인지 실감이 좀 나시나요?"
.....뭐지?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는 저희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최근까지 도청한 흔적까지 남아있습니다...! 뿐만아니라 히지카타씨가 없을 때 저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며 사진을 찍고, 사람을 붙여서 저를 감시하게 했습니다..."
쿠리코는 어느새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쿠리코의 발언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회의실 안의 대장들과 대원들은 모두 웅성거리며 나를 돌아본다. 히..히히지카타는 어디에 있지? 내가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살피자 쿠리코는 눈물을 닦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히지카타씨를 등에 없고서 눈에 뵈는게 없는 건, 어느 쪽이죠?"
-
얼떨떨 한 상태에서 팔이 뒤로 포박된채 수갑이 채워지고, 취조실으로 끌려왔다. 어이없어. 히지카타 불러줘. 내 앞에 있는 대원에게 말했다. 그 대원은 내 말에 조금 움찔하면서 자.. 잠시만요.. 하고는 서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서류 뒤적거리지 말고 히지카타 부르라고..!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야 하는거 아냐?"
신경질적인 내 말투에 대원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장님은 10분 정도 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요... 우선 질문을 하고 있으라고..."
씨발.. 하고 작게 말하자 눈치를 보며 지...질문할게요...! 하고는 질문을 시작했다.
"도청을 하신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 하십니까?"
"......"
"대답이 없으신 건.. 긍정으로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도청을 하게 되신 이유는...."
"....."
"혹시 쿠리코씨에 대한 스토킹..."
"..안닥쳐?"
"....하..하지만"
"닥쳐. 내가 누군줄 알면서도 이런식으로 나를 취조하는거야?"
아 씨발. 작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들킨거지? 절대로 확인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긴 5분 후에 침묵을 깨며 히지카타가 들어왔다. 같이 있던 대원은 벌떡 일어나며, 부장님! 저 이만 나가봐도 될까요? 하고 울먹거리며 묻는다. 히지카타는 귀찮다는 듯이 턱짓으로 나가는 쪽을 가리키고는 내 앞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히지카타는 내 눈을 애써 피하는듯 보였다. 주머니에서 내가 전에 내밀었던 사진을 책상 앞에 올려놓으며 내 앞으로 내밀었다.
"같이 산다는 친구가 이 녀석이지?"
"...."
"그게 아니라면 전에 집에서 경찰들을 배치했을 때 집을 온 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었고... 네 핸드폰에 연락도 없었으니.. 이 녀석이겠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집에 도청... 이라..."
"...히지카타.. 그러니까 나는...!"
"하루사메 7사단 단장과 함께 살며 부국장의 집을 도청...그 이후에 생긴 납치..."
"하루사메 단장? 무슨 소리야 나는...."
"모른다는 말은 하지마. 한 집에 같이 살면서 그 정도도 몰랐다는게 말이 안 된다는건 잘 알거야"
혼란스럽다. 하루사메 단장은 분명히 덩치 큰 갈색머리의 남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발끈해서 제대로 설명하라고 말했다. 히지카타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면서 다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카무이의 프로필이었는데 직업 칸 옆에 '하루사메 7사단 단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밑에 그 동안 7사단에서 저질러온 수많은 악행들과 함께 옆에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함께 쓰여 있었다. 클립으로 그 종이에 함께 붙어있던 사진에는 멀리서 몰래 찍은 듯한 카무이의 모습과 그 옆에 내가 7사단 단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 덩치의 남자가 함께 이야기를 하는 모습, 그리고 단원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이상하게 전투능력이 좋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설마 7사단의 단장이였을 줄이야.. 그러고보니 히지카타를 찾았다고 하면서 나에게 확신을 주었을 때가 생각난다. 이상하게 확신에 찬 말투, 그리고 혼자서 불안한 나. 그래서... 너는 그래서 확신에 차있었던거야. 네가 말 만하면 히지카타는 풀어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정신이 아득해지며 히지카타 납치 사건이 있었을 때가 떠올랐다. 같이 전단지를 붙여주면서 이 새끼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그렇게 히지카타를 위해서 밤을 지세울때, 핸드폰을 붙잡고 난리를 칠 때, 매번 히지카타의 제보를 받고 갔다가 실망해서 돌아오는 나를 보면서, 자신이 데리고 있는 히지카타... 그리고 안에서 난리치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거야?
"...이..이거..."
"...모르는척 연기하지마"
"지..진짜 몰랐어...!"
"..다시 묻는다. 도청을 한 이유"
히지카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도청을 한 이유... 그걸 어떻게 내가 내 입으로 이야기 하겠는가?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이 다음은 고문실이야. 적과 내통한 자는 엄벌에 처한다. 이걸 네가 모르진 않을거야"
"....네가.."
"..."
"네가 나를 고문할 수 있어?"
나는 히지카타를 보고 씨익 웃었다. 히지카타 네가 나를 이길 수는 없어. 
하지만 그건 단순한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히지카타는 내가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난 후 잠시의 침묵 후에 내 머리칼을 억세게 움켜쥐고는 자신을 똑바로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왜 내가 너를 고문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거지?"
그리고는 바로 안에 있는 수화기를 신경질적으로 들고선 말했다. 들어와. 바로 고문실로 이송해. 쎈 척 하긴, 그래도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니까? 나는 끝까지 히지카타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웃는다. 히지카타는 담배를 하나 꺼내어서 입에 물었다. 입에 문 저 담배조차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너는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밖에 없고, 풀리지 않는 의심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하게 될거야. 히지카타, 결국 너는 나에게 끝까지 이길 수 없으니까.
끌려간 고문실은 으슬으슬 추웠다. 맨날 고문을 하는 입장에서 고문을 받는 입장으로 의자에 앉게 될 줄은 몰랐다. 대원들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앉혀놓고는 문을 닫고 나가선 그 앞에서 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근데, 사실일까? 아닌 것 같은데.. 부장님이 화나실 만도 하지.. 아무리 그래도 오키타대장인데.. 이럴줄은 몰랐다. 무슨 소리? 집을 도청해왔다는데?? 도청 때문에 더 그런시는거겠지... 게다가 부장님이 납치당하셨을때 마츠다씨에게 쿠리코씨가 도움을 요청하셨데. 집을 좀 찾아봐야겠다고 도와달라고. 원래 목적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유서나 단서를 찾으려고 하신건데 갑자기 저 도청장치가 나왔다더라.. 누군가가 뒤집어 씌운거 아닐까? 글쎄.. 그러기엔.. 증거가.... 갑자기 그들의 대화가 끊기고 히지카타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그리곤 밖에 있던 대원들에게는 잠시 대기하라며 소리쳤다. 내 앞에 서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연기가 희미하게 피어오른다. 
"나도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정황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쿠리코가 바람을 피고 있다며 증거를 모아온 것도 그렇고, 그걸 내가 돌아오자마자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
"...도청을 한 이유는 뭐야"
"...."
"네가 입을 다물면 나는 이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어. 도청을 통해서 내 스케줄을 알아내고 7사단 단장과 작당을 해서 나를 납치한 후, 하루사메에 의뢰해서 찾게 한 다음 돈을 받아 챙겼다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지 않겠어? 그 이후 단장 녀석을 경찰 측에 넘기려 한 이유는... 세력 싸움인가?"
"..."
"대답해. 심지어 얼마 전 네 집을 지키고 서있던 모든 대원들이 죽어버린 일이 있었지. 그때 너와 이 녀석과 접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세워지던데.. 사실인가?"
"...아니야. 나 그런거 절대 아니야. 그 새끼가 단장인것도 몰랐어. 하루사메에 있는지도 몰랐고... 접점이라니 무슨 소리야! 바람쐬러 나갔을 뿐이고.. 나갔을 땐 이미 다들.... 정 그렇다면 하루사메를 뒤져봐. 내 기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 모두 죽어버려서 네가 밖에 나간 시간 동안 뭘 했는지 증명해줄 사람은 없어. 하루사메? 그래, 네 말대로 뒤졌어. 물론 네 정보는 없었지. 하지만 이 병원"
히지카타는 나에게 병원 진단서를 내밀었다. 날짜를 보니 히지카타가 납치된 상황에서 내가 자살을 하려 했을 때 카무이가 날 데리고 갔었던 병원이었던 것 같다. 보호자 이름 란에는 모르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 병원은 하루사메가 주로 이용하는 곳이지. 심지어 이 보호자명을 사용하는 건 하루사메 밖에 없어. 왜 너의 진료기록이 여기에서 나오는 건지 설명해봐"
"...그건...상관없어. 그 녀석이 자신이 아는 병원으로 나를 데려갔을 뿐이라고!"
"....7사단의 단장이라는 사람이 직접 병원까지 데려간다..? 도청을 한 이유.. 이야기해"
"...."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주지"
히지카타는 다시 담배를 하나 꺼내어 물었다. 갑자기 내가 하루사메에서 심어 놓은 사람으로 몰리게 되는 이런 황당한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도청을 한 진짜 이유를 말 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본인 앞에서 네가 섹스는 하는지 궁금했어 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으며, 지속적으로 도청을 한 이유는 단지 너의 신음소리가 듣고 싶었어 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짧아진 담배를 발로 밟아서 끄며 히지카타는 다시 말했다.
"정리 끝났어?"
"..."
나는 히지카타를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그럼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지"
밖에서 대기하던 대원들이 들어왔다. 그리고는 말없이 커다란 욕조에 물을 담기 시작했다. 진심일까? 쏴아아 하고 쏟아지는 물소리가 소름끼친다. 다. 물고문? 괜찮아 이 정도는 내가 버틸 수 있을거야. 물이 넘실넘실 거리는 모습이 외부의 빛에 의해서 반짝반짝 거린다. 그 표면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히지카타는 내 뒷머리를 거칠게 잡고는 말했다.
"아직도 말 할 생각 없어?"
하, 이런 물러터진 놈. 그런 정신머리로 날 고문할 생각을 하다니.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웃는 내 입꼬리를 보며 약간 약이 올랐는지 거칠게 물 속으로 내 머리를 쑤셔넣었다. 차가운 물이 내 피부에 닿으며 귓 속에서 소리가 웅웅 하고 울린다. 몇 초 정도 숨을 참을 수 있으려나? 전에 일분을 못버텼던 것 같은데 조금은 늘었으려나.. 아냐 히지카타는 그렇게 오랜 시간 나를 이 물 안에 담궈 놓을 수 있는 정신력이 없어. 당연히 그렇게 고통스럽기 전에 나를 빼내줄거야. 하지만 한계점이 왔을 때에 묶인 두 손으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히지카타는 나를 빼내주지 않았다. 발버둥 치는 나를 무자비하게 붙들고 점점 더 힘주어 내 머리칼을 눌러댔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소리를 지를 수 없어서 뻐끔거리는 입에선 수 많은 물방울만 뽀글뽀글 나올 뿐이다. 죽을 것 같아... 정말... 정말 죽을 것 같아....! 살려줘...! 히지카타, 내가 잘못했어 다 말할게 다 말할테니까 제발 꺼내줘 너 이렇게 나 죽일거야? 정말 다 말할게 정말이야.. 정말이야..... 히지카타 나 좀 살려줘...! 다 말할게. 그런거 아니야! 다 말할게! 희미한 정신만 간단히 잡고 있을때 히지카타는 나를 끄집어 냈다. 공기가 그렇게 달콤한 지 몰랐다. 뚝뚝 떨어지는 물, 그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히지카타는 다시 물었다. 대답은? 자.. 잠깐만...자..잠시만...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살았다는 안도와 함께 공기를 들여마시는데 급급하며 간신히 마시는 달콤한 공기의 쾌락에 몸을 떨었다.
"대답"
히지카타는 다시 단호하게 묻는다.
"헉...허억..하아...하아... 나...나는...ㅎ..하루...사메... 가 아니야... 오...오해..."
"그거 말고 도청한 이유"
"하악....하아... 하아.. 아..아냐... 나는... 그런...그런게..아...아냐"
"도청한 이유를 말하라고!"
히지카타는 다시 나를 물에 가까이 가져갔다. 아..아아....아..아니야..난.. 아니...... 다시 물에 담가지고.. 한참 후 다시 대답을 묻고, 그것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반쯤 탈진한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며 계속 연거푸 그 소리만을 했다. 모..몰랐...어.. 하아...하아... 미...믿어줘.. 하루사메...를 몰라... 정말...ㅈ..정말...아니야....내 풀린 눈을 보며 히지카타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원들에게 나를 의자에 앉히라고 명했다. 의자에 앉아서 추욱쳐진 채로 거칠게 숨만 몰아쉬는 나를 보며 다시 물었다. 
"도청한 이유"
"..... 아니야... 그런... 하루사메....같은...게..아냐.... 믿어줘..."
"그거 말고 도청한 이유를 말하라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 나는 간신히 히지카타를 쳐다보며 계속 아니야.. 아니야... 하고 반복하다가 스르르 눈 앞이 까맣게 물들어버린다. 꿈이길 바랐을 것이다. 히지카타가 나를 정말로 고문을 할 줄은 몰랐기에.. 이렇게 모질게... 아니면 히지카타도 지금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나? 제발.. 제발 아니기를 바라면서 제발 자신을 확신시켜달라는 간절한 마음도 있을거야.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리 그래도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 하냐고...
무언가의 충격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로 깨어나길 간절히 기도했지만 눈을 뜬 것은 다시 고문실이었다. 히지카타는 담배를 하나 피우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옆에 있는 대원이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내 옷이 잔뜩 젖어 있는 걸 보니 찬 물을 부어 나를 깨운 모양이다. 
"도청한 이유를 말해"
"...."
내가 말이 없자 이번엔 다른 고문을 하려 하는지 대원 두 명이 책상을 하나 가지고 왔다. 뭘 하려는걸까? 아직도 정신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해서 반쯤 감긴 눈으로 히지카타를 쳐다보고 있었다. 뒤로 묶은 수갑을 풀더니 한 손을 책상 위에 두고, 의자와 나를 사슬로 묶었다. 그리고 책상 위 에 있는 어떤 기계에 내 손을 올려놓고 기계에 팔을 단단히 묶었다. 새끼 손가락을 어떤 기계에 고정시켰는데, 그 정체를 알 수도 없이 몽롱한 상태였다.
"대답"
"....아..아니야...나는.. 아..아니.."
히지카타는 책상에 있는 그 기계의 손잡이 부분을 거칠게 당겼다. 순간 손가락 끝이 잘려나간 듯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든다. 손톱을 빼는 기계였던 것이다. 덜덜 떨리는 손, 그리고 나는 무의식 상태에서도, 이렇게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도 소리지를 힘은 남아 있었는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가 덜덜 떨자 쇠사슬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짤랑짤랑 거렸다. 떨어져 나온 손톱과 손톱이 빠진 부분에 남아있는 살, 그리고 희미하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피가 보인다. 미세하게 몸을 떨면서 히지카타를 올려다 보았다. 히...히지카타...히...히지카타.......내가 힘겹게 이름을 부르자 히지카타는 다시 말했다. 대답해. 네가 결백하다는 증거. 그게 필요하니까 어서 도청한 이유를 말하라고...! 히...히지카타..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대답해..!!! 
내가 말이 없자 이번엔 다른 손가락을 기계에 끼운다.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이 흐른다. 나무 탁자 위에 내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이 툭툭 떨어진다. 아아아악! 요..용서해줘 마.. 말할게!! 말할게....! 하...하지마...! 말할게....! 히지카타는 나를 다시 보았다.
"...도...도청한 이유... 도청한 이유...그... 그니까... 그...그게... 시...시켰어. 그... 같이 사는.. 그 녀석이 시켰어...!"
"... 나를 납치하기 전 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 이후에도 도청을 시도한 이유는 뭐지?"
"....그...그...그게.. 나... 나도 모...몰라 나도...몰라"
"그럼 내가 납치 되었을 때도 알았다는 거네"
"...처...처음엔 모..몰랐어.. 지..진짜야.. 대원들에게.. 물어보면 잘 알거야.. 내가 얼마나...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게 설마.. 연기로 될 거라고는... 생각 못할 정도로... 열심히...."
"그 녀석이랑 같이 살게 된 이유는 뭐야. 경찰인 네가 그런 녀석과 같이 살게 된 이유"
"...가... 가족이야...! 네가 저..전에 찾았었던... 그....그 녀석.... 그..그녀석이야....그..그래서.. 그래서..."
"도청을 시켰을 때 순순히 응한 이유는 뭐지?"
".......그... 그건...."
"정말 스파이인가?"
"........아..아냐..스..스파이는 아냐....!"
"스파이는 아니지만 그 단장 녀석이 시키는 일에 순순히 응했고.. 하지만 납치사건의 범인이 단장이라는건 몰랐다..? 말이 안맞잖아. 어디부터 거짓말인거지? 다시 말해봐"
"지... 진짜....지...진짜야....! 미...믿어줘....."
히지카타는 내 말을 믿고 있지 않았다. 의심의 눈빛. 정말로 나를 스파이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지금의 정황으로는 무엇하나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네 섹스 신음소리를 듣고 싶어서 라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 이런 고문을 받고도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히지카타는 대원들에게 턱짓을 했고, 대원들은 우르르 몰려와선 나를 붙잡았다. 다시 시작되는 고문이라는걸 알았기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히...히지카타...! 아냐...! 진짜야.. 나... 저...정말이야...! 믿어줘...! 히지카타아아아....!! 무자비하게 손잡이가 당겨지고 손가락이 잘리는 듯한 고통... 다시 소리를 지르면서 억울함에 치를 떨었다. 아아아아아악...! 히지카타... 히...히지카타... 아아아아....! 미...믿어 달란 말이야아.....! 하악...하아...하아... 헉.. 헉.. 히..히지카타...히지...카타.. 히지카타.....히지카타...히지카타.. 살려줘... 나 정말로.. 정말로 아...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살려줘... 너무 아파.. 이거 진짜.. 너무 ...너무 아파... 나 아니야.. 미...믿어줘... 믿어줘... 하악... 하아... 미...믿어줘.. 아...아파... 그만해... 아파... 너무..너무 아파... 하악...하아...하악.......
히지카타는 신음하는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대원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책상에 엎드려서 땀과 물에 범벅된 몸을 떨며 신음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제발... 사실을... 말해"
"...사...사실이야.. 정말.....정말이야 히....히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는 조용히 날 묶어두었던 사슬을 풀었다. 힘이 다 빠져서 신음하며 몸을 떠는 나를 보며 고개를 홱 돌린다. 언뜻 눈물이 보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 참을 수 없는 손가락 끝의 고통의 뒤에서 조용히 웃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히지카타는 다시 대원들을 불러 나를 철창에 집어 넣게 했다. 담요 하나를 툭 던져주며 얌전히 있으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다. 온 몸이 젖은 솜 처럼 무거웠다. 손톱이 뽑힌 왼손을 보며 벽에 기대 앉아 있다가 담요를 덮고는 나도 모르게 스르르 선잠에 빠져들었다. 꿈도 꾸지 않을 만큼 어둡고 깊은 잠에 들었다. 영영깨지 않기를 잠시 기도하기도 했으나, 히지카타가 나에게 내게 언뜻 보인 눈물.. 그 눈물의 빛을 보니 다시 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빛이 나에겐 승리의 확신이었다.
잠시 눈을 떴을 때는 내 손을 만져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고문으로 지쳤기 때문에 완전히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조용히 번지는 담배향과 흐릿하게 보이는 이목구비를 보고선 히지카타라는 걸 알았다. 손톱이 뽑힌 내 손을 보고선 가만히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그 모습에 울컥해서는 히지카타의 목을 감싸 안아버렸다. 당황한 히지카타는 가만히 있다가 내가 다시 잠이 들자 조용히 눕혀주고, 담요를 덮어주고는 나갔다. 역시 나는 이긴 것이다. 역시나 히지카타는 나에게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히지카타, 네가 나에게 이기려면 더 고문했어야해. 물에 더 처박았어야지. 진짜 죽일 작정으로 했었어야지. 손톱을 뽑으려면 2개가 아니라 내가 거품 물면서 소리 질러도 10개 다 뽑아버렸어야해. 내가 눈물을 보이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계속 했어야 해. 잠도 재우지 말고 하루종일 고문했어야지. 다른 범죄자를 잡아서 고문 했을 때처럼. 네가 앞에만 서면 다 술술 불어버리는 그런 범죄자들.. 그럼 놈들처럼 나를 가차없이 대했어야지. 그렇게 나를 똑같이 했어야지. 괜히 귀신이 아니잖아? 하지만 너는 결국.. 내 뒤에 있는 누나 때문에... 결국은.. 누나 때문에... 나를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거야..... 그러니까 너는 평생 나를 이기지 못하는거야.... 결국 나한테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될껄..
다음날 또 다시 고문실의 의자에 앉았다. 솔찍하게.. 조금 쫄린다. 눈은 치켜뜨고 있었지만 욱씬거리는 손끝의 고통, 그리고 물 안에서 발버둥치던 기억이 살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욕조에 가득 담겨 있는 물을 보자마자 갑자기 구역질이 나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히지카타는 내 앞에 와서는 다시 물었다.
"... 너.. 진짜로 그 녀석이 시킨거야?"
"그렇다고 어제 대답했잖아"
"...."
히지카타는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전에 스파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고 있어?"
"...."
"왜... 왜그런거야"
"...믿어줘. 그런거... 아니야"
히지카타는 나를 묶었던 사슬을 풀었다. 순간 다시 물 고문이 시작되려나 하는 생각에 움찔했다. 하지만 히지카타는 바로 품에서 봉투를 꺼내더니 나에게 툭 던졌다. 꽤나 많은 양의 지폐였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고 다니지도 않는 녀석이 갑자기... 무슨 돈을 이렇게...
"난 네가 도망쳤다고 할거고... 우리의 부주의로 놓쳤다고 할거야. 바로 떠나"
"...어...어딜가라는거야...! 히지카타...!"
"여기 있으면 넌 사형아니면 최소 감옥에서 7년 이상은 썩어야 해. 내 위치에서 널 묵인할 순 없어"
"......히..히지카타... 왜... 날 못믿는거야?"
"...못믿게 만들잖아. 네가...!!"
히지카타는 답답하다는 듯이 나에게 소리지르고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으며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히지카타가 말하는 '내 위치'에는 신센구미의 부장이라는 위치도 있겠지만 쿠리코의 남편이라는 위치도 포함해서 말하는거겠지...
"내가 널 못 본척 한다고 하더라도, 쿠리코도, 마츠다이라 선생님도 너를 용서하지 않을거다. 뒷 문으로 조용히 떠나. 배치한 대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시간을...내가 벌어줄게."
".......히지카타....."
"그렇다고 착각하지마. 내가 널 용서하는 건 아니야. 지금 당장이라도 널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가장 크다는거.. 알아둬"
"..."
"잘 도망가. 다시 잡혀오면.... 그땐 정말로.. 사형이다"
"..히...히지카타..나... 내...내가 어..어디로..."
"네 통장에 있는 돈 다 찾아놨어.다른 사람 명의 카드에 넣어놨으니까 챙겨가"
히지카타는 통장과 주민등록증을 툭 던졌다.
"가.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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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34











30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시간에 30분이라는 시간을 걸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긴급이다.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이런 짧은 시간에 모두를 소집하는 걸까? 핸드폰을 보면서 이상하게 머뭇거렸다. 좋은 느낌은 아니다. 잡고 있던 손잡이를 놓고서 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서 신발을 벗었다.

도착한 회의실에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자리에 앉아서 들어오는 나를 돌아보았다. 늘 지각을 하는 나였지만 이번엔 늦게 온 것도 아니었는데 모두가 그 전에 온 것처럼 자리에 정돈되어 앉아있는 것도 이상했고, 이상한 정적과 함께 맞이하는 수많은 눈빛들이 괜히 의심스럽기까지 하였다. 어두운 회의실의 스크린에는 내가 잡겠다며 히지카타에게 내밀었던 카무이의 사진이 밝은 빛과 함께 띄워져 있었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보니 언제 찍었었나 궁금해진다. 놀이공원이었나?

"어서와, 앉아"

히지카타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의 다른 대장들의 눈치를 은근히 신경 쓰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열려 있었던 문이 철컥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힌다.

"급하게 모두를 소집한 건, 다름이 아니라 1번대 오키타 대장이 나에게 보고한 납치범을 잡기 위해서다. 이 사진의 인물이지. 다음은 이 녀석의 프로필이다"

히지카타가 화면을 넘기자 상당히 많이 비어있는 카무이 녀석의 프로필이 공개되었다. 내가 상상한 그림이 아닌데다가, 이렇게 크게 모두에게 공개되기까지 해서 상당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는 말했다.

"이건...! 나 혼자 잡겠다고 분명히 말했을텐데... 왜 이렇게 공개 하는 거야?!"

"지금 회의 중이야. 그렇게 격 없이 이야기 하지 마"

히지카타의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가 나의 기세를 짓눌러버렸고, 한풀 꺽인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서 다시 말했다.

"....제가 정보를 넘긴.. 저...저 사람은 분명 제가 혼자 잡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분명 그랬지만 혼자가 잡기엔 분명 버거울 수도 있다는 판단과,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그때 받는 타격도 상당하기 때문에 모두와 함께 하는게 낫다는 결론이야.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

히지카타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며 약간 뜸을 들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당사자와는 어떤 사이지? 친분이 있다고는 했는데"

"...아... 그건.."​

"뭐, 자세히 묻지 않을게. 친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잡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한거지?"

 

분명 히지카타의 말이 맞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히지카타 다운 행동은 아니다. 평소에 냉철한 히지카타라면 이렇게 다급하게 진행하진 않을 텐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시간을 끌었던 것은 시덥잖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이었다.

"...아.. 물론 그렇기야 하지만... 나.. 아니 저 역시 실패의 위험 때문에.."

"그런 이유라면 지금 당장도 가능하겠네. 친분이 있다면 연락처도 알고 있겠네"

"......"

"핸드폰 잠깐 줘봐"

 

히지카타는 저벅저벅 걸어와서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입에 문 담배. 위에서 내려다보는 강압적인 눈빛. 오랜만이다. 나는 약간의 뜸을 들인 후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뭐가 의심스러워서 이러는진 모르겠지만,.. 맞아. 연락처 저장되어 있어. 꽤나 자주 연락하는 사이야"

"그렇다면 지금 당장 여기에서, 우리 모두가 듣는 이 자리에서 전화해. 이 곳으로 오라고 해. 적당한 변명은 나보다 네가 더 잘 만드니까 걱정 안해도 되지?"

 

히지카타는 내 핸드폰을 옆의 대장에게 넘겼다. 그러자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에 연결하고서는 나를 쳐다본다. 왜 지금 나는 고민하는 거지? 이미 히지카타에게 사진을 넘긴 순간부터 이 녀석을 버리기로 결심한 게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관계는 살짝 고체가 될 뻔한 액체에 가깝다. 끈적하면서도 손 안에는 쉽게 가둬지지 않는 액체였던 것이다. 굳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흘려보내기도 쉽다. 약간의 정 이라고 착각했던 그런 이상한 감정 같은 것들은 지금 바로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면 그만인데...

 

핸드폰이 설치된 곳으로 가서는 '카무이' 라는 이름 옆에 있는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회의실에 가득 울린다. 감정이란 이상했다. 모두 흘려보낸다고 하더라도 흘려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도 모르는 내 안에서 '지금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외치는 한 줄기의 외침이 있었던 것이다. 받지마... 전화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받지마

 

[응! 왜?]

 

내 바람과는 달리 카무이는 한참의 신호음 후에 천진난만하게 전화를 받았다.

 

"아.. 아니 뭐하나 해서"

[뭐지? 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그냥 궁금해서. 지금 뭐하고 있어?"

[너랑 통화하고 있잖아. 하하]

 

히지카타는 종이에 글씨를 써서 보여주었다. 그 종이엔 이렇게 써있었다. 이 곳으로 오라고 해.

 

"...딱히 바쁘지 않으면 잠깐 이 쪽으로 올 수 있어?"

[어딘데?]

"전에 너 한번 왔었지? 내가... 전에 한번 오라고 한 적 있었잖아"

[아. 전에? 응응]

"여기로 와. 얼마나 걸려?"

[음... 한 20분? 근데 왜 오라는 거야?]

"아.. 어 그니까.. 내가 너무 일찍 나와버렸어. 심심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해도 어색하게 횡설수설했다. 전화기 너머로 카무이는 내 말을 말없이 듣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흔쾌히 그래! 알았어! 하고 밝게 대답했다. 전화가 끊기자 히지카타는 핸드폰을 집어 들며, 우선 자신이 가지고 있겠다고 말했다. 나를 감시하겠다는 건가? 내가 범죄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리와"

 

히지카타는 내 팔목을 덥썩 잡으며 제 쪽으로 나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나도 모르게 히지카타 쪽으로 몸의 중심이 향하며 가슴팍에 머리를 찧었다. 왜 그러냐며 거칠게 한 소리 하려고 히지카타를 홱 올려다보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히지카타는 다시 거칠게 일으켜 잡으며 말했다.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

" 개수작이야"

"수작 같은 거 아니야. 단장 너야말로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했어? 나한테 한마디라도 해주지"

아부토와 나 사이에선 정적이 흘렀다.

 

아부토가 가지고 온 것은 다름 아닌 경찰 내부의 사건 파일이었다. 경찰 내부에 잠입해 있는 스파이를 통해서 연락 받았다고 했다.

 

"단장 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단장이라는 정체까지 숨기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수배한다는 지시까지 떨어지냐고"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조직의 이름이 아닌 개인적으로는 얌전하게 있었다고"

"얌전하게 지냈다는 놈이 수배까지 떨어지냐? 게다가 지금 회의하고 있는 중이라는데 이렇게 회의까지 열린 거면 꽤나 큰 사건의 용의자라는 거잖아."

"그런 일 없다니까?"

 

길길이 날뛰는 아부토의 말을 들으며 곰곰히 곱씹어 보았다. 내가 하루사메 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딱히 튀는 짓을 한 적이 없으니 정말로 없다. 하루사메, 그리고 집. 거의 다른 곳으로 간 적도 없고. 누굴 때린 적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 오키타를 때린 적은 있었지만.. 그건.... 음...

 

"아! 있긴 한데... 그게 그렇게 회의까지 열릴 정도로 큰일은 아니야. 게다가 좀 지난 일이고.. 네가 심어놓은 녀석이 잘못 체크한 거 같은데"

"그래. 그럴지도 몰라서 내가 자세히 상황 보내라고 했으니까 기다려봐"

 

얼마 후, 어떤 한 명이 서류 봉투를 들고 문을 두드렸다. 핸드폰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황에는 직접 종이에 몰래 복사해서 넣어서 보내기도 했는데 지금 상황이 그러한 듯 했다. 아부토는 받은 서류 봉투를 거칠게 뜯으며 말했다.

 

"회의록이야. 이걸 보면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겠지"

 

아부토는 두툼한 종이 뭉치를 넘겨가면서 회의록을 눈으로 쭉 훑다가 소리내어 읽었다.

 

"이름 카무이 나이 18살. 다른 나머지 정보는 정확하지 않으나, 어떤 조직에 몸 담고 있음. 부국장(히지카타 토시로) 납치 사건 때에 도움을 주었으며 그 전부터 하루사메와 연결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음. 보고자. 오키타 소고"

"....뭐?"

"하... 네 녀석이 하루사메의 단장이라는 게 써 있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 인가? 아니지. 다행이라고 할게 뭐 있어? 어차피 너 잡아 넣겠다고 보고한 건데.... 어떻게 된 거야? 납치사건 이야기는 뭐야? 도움을 줬다는 게 뭔 소리냐고"

"...마지막에... 다시 읽어봐. 보고자가 누구라고?"

"오키타 소고"

 

말도 안돼. 아부토가 들고 있던 회의록을 거칠게 빼앗았다. 아부토는 지금 장난을 치고 있었다. 지금 내 반응을 보는 거야. 이미 나와 오키타의 사이를 눈치챘고, 내가 위험하게 경찰이랑 같이 지내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그냥 단순한 설득으로는 절대로 내가 돌아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이렇게 자극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있는 거야. 지금 이 회의록을 조작한 후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혹시나 거짓말을 하는지 사실을 말하는지 내 입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마치 내 같잖은 부모라도 되는 것처럼.

"...언제부터 알았어?"

"뭘?"

"이 새끼.. 언제부터 알았냐고"

 

마지막에 쓰여 있는 '오키타 소고' 라는 글씨를 툭툭 치며 물었다.

 

"언제부터라니. 경찰인데다가 1번대 대장이니 대강 알고는 있었지. 가끔 신문에서도 봤고"

"그런 거 말고! 나와의 관계를 언제부터 알았냐고!! 똑바로 말해"

 

거칠게 아부토의 멱살을 잡아채며 말했다. 황당해 하는 표정을 보니 더 열이 뻗친다.

 

"단장.. 너 지금..."

 

아부토는 멱살을 잡은 내 팔목을 잡으며 놓고 이야기 하자고 말하며 어이없어 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 지금 내가 뭐 거짓 정보라도 말하고 있다는 거야?"

"그럼 이 새끼가 어떻게 나한테....."

"이 녀석아, 그 새끼랑 너랑 어떤 관계인지 뭐 그런 거 하나도 몰라. 난 사실만 말하고 있는 거야. 이 손 놓고 차근차근 이야기 하자. 일단 놔"

 

내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멱살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부토가 내 손을 잡으며 잡고 싶으면 다시 잡으라면서 우선 놓으라고 차분하게 이야기 했다. 아부토라면 충분히 이렇게 나를 진정시키고도 뒤에서 모든 일을 꾸밀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아부토는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어떻게 된 거야. 말해봐"

 

그리고 그 때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또 다시 '오키타 소고' 라는 이름이 액정에 뜬 것이다. 힐끗 쳐다보는 아부토의 눈길. 아부토의 눈길을 확인하며 나는 일단 큰 심호흡 후, 진정하고서 전화를 받았다. 대화는 별 게 없었다. 무작정 뭘 하느냐고 물었고, 자신이 전에 불렀던 그 곳으로 와 달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었다. 복잡하다. 큰 피로함을 느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도, 오키타도. 하지만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아니 의심할 정황이 있을 때 이런 전화가 오는 것에 대해 마냥 편하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멍하니 있었다. 아부토는 나를 쳐다보고는 안 갈거지? 하고 물었다. 아니, 난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었다. 이 녀석이 지금 처한 상황을 알고 싶었다. 왜 나를 전화를 불렀는지, 회의록의 상황은 뭐였는지, 지금 당장... 내가 생각하는 이상하고 복잡한 오해의 날실들을 끊어달라고..

"가지마. 네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가면 너 분명히 귀찮아진다? 그 경찰 놈이랑 어떤 관계야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다시 전화 할까? 그리고 물어볼까? 왜 나를 그렇게 불렀는지 이유를 물어볼까? 협박 받고 있는 건가? 그게 아니면 지금 이 상황에서.. 회의로 납치 사건을 운운하면서 나를 잡으려고 한다는 것은.... 누나의 남자친구가 있었던 모든 일을 다 말한 건가?...

"아부토"

"그래. 이제 이야기를 좀 할 마음이 들었어?"

"아니. 여기 가둬 놓은 내 동생. 지금 가서 죽여. 그리고 아까 이 새끼랑 통화한 그 장소에 애들 시켜서 버리고 와"

"... 갑자기... 왜..."

"전에 네가 그랬지? 히지카타 그 새끼에게 모든 일을 발설한다면 카구라 죽이겠다고 했잖아. 발설했으니 죽여야지"

".... 이런 짓을 해서 우리에게 득 될게 있는 것도 아닌데.."

"최근에 내가 귀찮아서 죽을 것 같았으니까 이득이지. 명령이야. 죽여서 이 장소에 버리고 와. 이게 내 대답이니까"

 

종이에 대강 위치를 적어서 아부토에게 주었다. 아부토는 종이를 받으면서도 계속 머뭇거렸다.

 

"네가 안 하면 내가 직접 가서 던지고 올 거야. 내가 갈까 네가 갈래?"

 

아부토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게. 대신 당장은 아니고.... 좀 생각해봐. 내 친구 녀석의 동생을 죽이는 나도....."

"그럼 내가 할게"

"아니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내 말은... 그니까 작별 인사라도 할 겸 오늘 식사라도 해. 어때?"

 

또 식사를 하라고? 아냐, 나는 오키타와...

....그렇네.. 이제 돌아갈 곳도 좀 애매해진 시점이네.

기분이 이상했다. 확인되지 않은 오늘 하루만.. 오늘 하루만 여기에 있는 거야. 오늘 하루만.. 하고 계속해서 불안한 나에게 속삭였지만, 왜인지 지금이 마지막 일 것 같은 불안감이 자꾸만 일었다. 우리의 생활은 이렇게, 아무 예고도 없이,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끝나버린 것 같다는 그런 예감. ... 아니야.. 확인 해봐야 해. 분명 뭔가 오해가 있을 거야. 아부토의 조작, 아니면 분명 협박 받고 있는 거야. 아까 전화를 할 때도 좀 이상했잖아. 그래. 아무 일 없어. 약간의 오해가 있는 거야. 일도 이렇게 됐는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카구라랑 식사나 해볼까? 다 소용없어진 자신의 무기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 할지.

 

핸드폰엔 시간이 지나서인지 '오키타 소고' 라는 이름으로 또 전화가 왔다. 받아야 하나?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 쳐다보고 있자 아부토는 나에게 받지 말라고 했다.

 

"순순하게 오겠다고 대답한 네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기 때문에 지금 저 쪽이 초조한거야. 거절이 아닌 무응답이 제일 상대가 열 받게 하는 좋은 방법이야. 받지 마. 핸드폰도 끄지 마. 그냥 그대로 놔둬."

 

아부토의 말대로 했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서랍에 넣었다. 나도 약간은 오키타를 의심하고 있었나보다. 아부토의 말에, 아냐! 이 녀석이 그럴리가 없어. 가서 상황을 듣고 와야겠어! 하고 큰소리치지 못하는 걸 보면 완벽하게 그 녀석을 믿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아마도 그 녀석이 억지로 쑤셔넣은 내 피부 안에 남아있는 뜨거운 화학약품 탓이고, 가냘픈 믿음과 의심에서 갈등하던 어릴 적의 기억의 탓일 것이다.

캄캄한 서랍. 이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보이겠지. 전화가 오더라도 진동도 소리도 몸 안으로 삭히면서 조용히 '오키타 소고' 라는 글씨만 비춰오겠지. 계속.. 계속 깜빡이겠지..

 

 

 

-

"다시 전화해봐"

 

히지카타가 내민 핸드폰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카무이가 이야기 했던 20분은 이미 훌쩍 지났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기다린 게 벌써 5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것이다. 너무 많이 전화를 해도 수상하게 생각 할 테니 이번에 전화를 걸고 그 다음 문자를 해보라고 했다.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을 보면서 안심했다. 문자는 보냈다. [전화 왜 안 받는데?]

 

완전한 긴장상태를 쭈욱 이어오던 대원들은 3시간이 지나자 이제 오지 않을거라고 확신하며 하품이나 길게 하고 있었다. 이미 사기를 잃은 대원들을 보며 나는 히지카타에게 철수하자고 했다.

 

"히지카타, 무작정 이러지 말고, 조금 더 시간을 두면 되잖아? 지금 꼭 잡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곧 만나니까 그때 잡으면 되잖아?"

 

히지카타는 내 말에 나를 잠깐 보더니 답답한지 잠시만 기다리라며 어디론가 들어갔다. 진범을 잡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벌써부터 힘 빼야 하는 이유는 뭔데? 그나저나 이 새끼.. 전화는 왜 안 받는 거지? 문자도 답도 없고. 집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

"어서 와라 해"

카구라는 게임을 하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카구라의 옆에 놓여있는 작은 핸드폰. 저걸로 오키타에게 연락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최후의 만찬이다.

오늘은 특별한 식사이니 더 많은 요리를 준비해주었다. 카구라는 기분이 좋은지 식탁에 앉아서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기분 좋아 보이네?"

"응! 당연하다해! 오늘은 이상하게 게임에서 많이 이겼다해!"

"다른 사람이랑 연락 같은 거 한 적 없어?"

"있다해! 긴쨩이 오늘 연락 왔었다해! 잘 지내냐고. 별 일 없냐구"

"그렇구나. 잘 지낸다고 했어?"

"그렇다해! 오늘도 오빠랑 같이 식사 할 거라고 했다해!"

"다른 전화는 없었어?"

"응. 없었다해!"

 

카구라는 앞에 있는 음식을 정신없이 먹으며 대답했다. 내가 직접 전화하기에 곤란하니까.. 이 녀석을 이용할까? 그렇게 치면 아직 죽이지 말고 조금 더 이용하다가 죽이자.

 

"어떡하지? 하지만 너에게 안 좋은 소식이 있는데"

 

내 말에 카구라는 식사를 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 마저 먹으면서 들어"

"..."

 

카구라의 눈동자가 진정하지 못하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니가 날 협박하고 있던 그 일, 벌써 그쪽에서 알아버렸거든"

 

그 말에 카구라는 포크를 떨어트렸다.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겠지. 나는 옆에 있는 여분의 포크를 손에 쥐어주었다.

 

"왜 그래? 왜 이렇게 불안해하고 그래? 너 답지 않게. 궁금해서 왔어. 네가 다음엔 날 뭘로 협박하려 들려나 궁금하기도 하고.. 네 반응도 궁금하고.."

분명 당황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려 카구라는 내 말에 눈빛을 되찾으며 말했다.

"...포크는 어쩌다가 떨어트린거다해. 보통 사람들도 가끔 포크는 떨어트린다고"

"그렇겠지"

"협박할게 없어졌지만, 난 별로 아무 생각 없다해. 내가 오빠한테 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니고"

"..."

"날 하루사메로 영입해라. 후회 안 할거다해"


어이없게 당당한 모습에 할말을 잃었다. 내가 언제든지 자신을 없앨거라는 생각은 못하는 건가?


"....생각해볼게. 저기에 있는 네 핸드폰 가지고 와"

 

카구라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조금은 느릿느릿하게 핸드폰을 주워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내밀었다. 받은 핸드폰을 열어보니 긴쨩이라고 저장되어있는 사람과 문자를 주고받은 문자가 있었고, 아직 읽지 않은 문자로 '사디' 라고 저장되어있는 사람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사디가 누구야?"

"누구긴? 오빠랑 같이 사는 그 놈이다해"

 

문자를 열어보자 이렇게 문자가 와 있었다.

[혹시 네 오빠라는 사람. 오늘 만난 적 있어?]

 

"답장해. 왜 물어보냐고. 보내기 버튼은 내가 누를거니까 그대로 줘."

 

카구라는 내 눈치를 보며 핸드폰을 가져가서는 손가락을 움직여 문자를 써서는 나에게 주었다.

 

[그런 걸 왜 물어보냐 해?]

[그냥 궁금해서]

[먼저 연락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해?]

[나도 내가 먼저 할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

[우리 오빠는 어떻게 알았냐해?]

[나도 방금 들었어]

[오빠라면 아까 만났다 해]

[그래? 상태 어때 보였어?]

[그냥 똑같던데? 오빠 잡아넣기라도 하려고 했냐 해? 그렇다면 나도 좀 도와달라해]

[도와달라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뭐..나도 거의 갇혀 있다해. 근데 진짜로 잡으려는 거냐해?]

[해결사 말로는 잘 지내고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뭔 이상 있는 거야?]

[너 사디 맞냐해?]

[그럼 누구겠어?]

[흠..]

[너 그 새끼 만나면 한번 물어봐 줘. 왜 내 연락 안 받는지]

 

"다음은 뭐라고 쓰냐 해?"

 

카구라는 나에게 물었다. 카구라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으며 이제 됐다고 말했다. 방금 카구라와 문자를 주고 받은 사람.. 정말 오키타일까? 왜 연락을 받지 않는지 물어봐달라는 문자를 한참 보고 있을 때 카구라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저 문자 쓰는 사람 그 새끼 아니다해"

 

그리고는 내 손에 든 핸드폰을 빼앗아서는 스피커 모드로 전화 버튼을 눌렀다. 상대가 전화를 받자 카구라는 말했다.

 

"어이 사디, 경찰나리께서 왜 내가 도와달라는 말에는 답이 없는거냐해"

"...."

"그거 직무유기다해, 역시 월급 도둑이야"

"...."

"왜 말이 없냐해? 받았으면 말을 하라해"

 

상대 쪽 전화기에서는 약간의 소음 외에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미세하게 사람들의 움직임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일부러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쯤은 알았다. 카구라도 말이 없자 오키타 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어지자 카구라는 말했다.

 

"긴쨩을 부를때 이 새끼는 '해결사' 라고만 호칭하진 않는다해, 해결사 형씨, 혹은 형씨 라고 부른다해"

 

집에 가야겠다. 가서 이야기를 들어야겠어. 비슷한 입장인거야. 우리 둘 모두. 연락할 수단은 모두 끊어졌고 감시당하고 있는거야. 지금 오키타도 수많은 눈들을 피해서 어떻게 하면 나에게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거야.. 아마 방금 카구라의 전화를 받아든 그 사람을 보면서도.. 자신의 핸드폰이 울릴 때 혹시나 내가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을 거고.... 오늘 새벽에 집에 가야겠다. 가서 잠깐만이라도, 오키타가 날 바라보는 그 눈이라도 한번 봐야겠어. 나랑 단 한 번만이라도, 몇 초라도 눈이 마주친다면.. 그렇다면 오키타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카구라의 방에서 나와서 밖에 나왔을 때, 아부토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상냥한 말투로 오늘은 이만 집에 가자고 했다. 별 다른 저항 없이 조용히 아부토를 따랐다. 오늘따라 아부토는 말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들떠보이기도 하고, 뭔가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오래 비웠다가 돌아온 집은 미리 와서 청소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보다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풀썩 누웠다. 아부토는 입을 옷을 꺼내주며 피곤할 텐데 푹 쉬라고 말했다. 건조한 침대의 이불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를 맡으면서 오키타도 이렇게 누워서 나를 기다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로 내 옆에서 이상한 꿈을 꿨어. 하고 막 잠 깬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웃어 보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은 밤이 아닐지도 모른다. 곧 해가 뜰 거야. 부서지는 햇빛 때문에 일어나게 될거야. 듣기 싫은 오키타 녀석의 알람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일어나기 싫다면서 투덜대는 잠꼬대가 옆에서 들릴거야....

어느 순간인가부터 우리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떤 꿈도 깨지 않는 꿈은 없는데... 너무 달콤해서 그걸 잊고 있었는지도.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기분 좋은 따스한 물이 쏴아아 하고 쏟아진다. 물줄기가 따갑게 떨어지고 따뜻한 물이 만들어내는 수증기가 내 눈앞을 가린다. 답답했다.

"같이 잘까"

 

샤워 후 나와서는 아래에 펴둔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아부토를 보며 말했다. 아부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볼 뿐이다.

 

"...그냥 물어봤어. 싫으면..."

"아..아니! 그런 건 아니야....!"

"불 끄고 와"

 

아부토는 불을 끄고서 조금 머뭇거리며 누워있는 내 옆에 배게를 놓았다. 그리고는 잔뜩 긴장한 듯 뻣뻣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눕는다.

 

"...뭔데 이렇게 긴장해?"

"아아아니 내가 오늘 그냥 좀..."

"오늘 엄청 피곤한데......잠이 안 올 것 같아서.. 손 줘봐"

 

아부토는 손을 내밀었다. 오키타의 손에 비해 엄청 크고 손가락이 울퉁불퉁하다.

 

"나 잘 때까지 머리 쓰다듬어줘"

"그거야 뭐....근데 내가 먼저 자버리면 어떡해?"

"죽는거지"

 

아부토는 가볍게 웃고는 내 머리카락에 손을 댔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창문을 통해서 옅게 퍼지는 밤공기가 쓸쓸하다. 생각했다. 지금 아부토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꿈이길.... 서랍에 넣어둔 내 핸드폰도 눈을 뜨면 내 옆에 놓여있기를... 아부토는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내리면서 조용히 물었다.

"끝까지 말 안 할 거지?"

"...뭘"

"내가 그 경찰이랑 어떤 사이냐고 물어봤었잖아"

"너 이미 알고 있는 거 알아"

"...안다고 하기엔 애매한데... 대충 예상하고 있는 거랑 네가 확실히 이야기 하는 건 다르니까"

​"그러니까 이야기 안 할 거야"

"나쁜 새끼"

"...조사한다거나 뒤를 밟는다거나 하지마"

"죽기 싫으니까 안 해"

"...나 말고 그 새끼도 하지 말라고"

"그럴 가치 없어"

지금 당장 가야겠다. 다시 결심한 건 새벽에 눈을 떴을 때였다. 창문에 걸려있는 옅은 색의 아슬아슬한 초승달이, 옆에서 자고 있는 낯선 아부토가, 방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공기가 모두 나에게 지금이 꿈이 아니라고,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옷장을 뒤져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찾았다. 가장 특징없이 무난해 보이는 검은색 후드티와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서 단원 한 명 불러서 태워다 달라고 할까 고민했다가, 괜히 추적이 붙으면 귀찮아지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길가에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세운 뒤, 짧게 주소를 말했다. 택시기사는 조용히 액셀을 밟으며, 이 새벽에 무슨 일 때문에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타기 전부터 틀어져 있던 라디오에서는 신센구미 부국장 납치사건의 범인을 찾아서 조사 중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여성 아나운서는 정말이지 세상의 비통함을 모두 짊어진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네, 그렇죠. 하지만 범인이 설마하니 18살이라는 것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이 아닐 거라는 의심이 많이 제기되고 있긴 합니다만.. 꽤나 중요한 참고인이 있다나봐요. 현재 사람들은 모두 사진을 공개하라고 하는데 아직은 조급하다고 생각했는지 경찰 쪽에서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18살 밖에 안된 소년이 단순히 돈 때문에 부국장을 납치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는 합니다. 심지어 부국장 정도를 납치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18살.. 정체도 의도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너무 성급한 조사가 아니냐는 말도 있고 말이에요... 택시기사는 백미러로 나를 힐끗 쳐다보면서, 요즘엔 경찰들도 납치되는 세상이에요. 학생도 어딜 가는지 모르겠지만 조심 하세요~ 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대답 없이 있다가, 아저씨도요. 하고 짧게 대답했다.


조금 먼 곳에서 내려서 집 주위를 살펴보니 이미 사복 입은 경찰들이 그 근처에서 혹시나 올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략 눈대중으로만 봤을 때 20~30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주위 저 새끼들.. 비명도 못 지르게 다 죽여 버릴 수 있을까? 저 안에 오키타는 있을까? 조금 실망한 점은 재미없게도 새벽이라서 다들 졸고 있었다는 점이다. 집 근처에서 조금 기웃거리자 어떤 경찰이 다가와서는, 이 근처는 위험하니까 얼른 집에 가라며 위협적인 말투로 말했다.

 

"왜 위험해요?"

"뉴스 안 봤니? 납치범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장소란다. 심지어 이런 새벽에 왜 돌아다니는 거야? 얼른 집에가라!"

모자를 벗으면서, 말했다.

"그럼 경계를 더 철저하게 하는게 기본 아닌가?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 경찰의 낯빛이 하얗게 질리는 모습을 보면서 모자로 얼굴을 막고 목을 뒤로 꺾었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쉬웠다. 쓸데없이 많은 경광등의 빨간 불빛 때문에 은근히 주위가 산만했고, 적당한 소음도 있었으며, 졸다가 일어난 경찰들은 모두 말문이 막혀서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집 문 앞까지 가는데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손에 묻은 피와 쓰러진 경찰들의 시신을 피해가며 집 문 앞에 기대어 잠시 차오르는 숨을 돌렸다. 안에 없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오키타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희와 비는 항상 함께 온다는 말이 있듯이 안도와 함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서 있는 게 힘들 정도로 멍해졌다. 오키타의 목소리가 전달하는 말.. 그 옆의 동료와의 대화의 내용이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야, 오키타 대장. 이게 뭔 생고생이야? 애초에 네가 히지카타한테 우쭐거리면서 이 새끼 정보만 안 넘겼어도 이런 일은 없잖아"

"오해하지 마시죠. 난 분명 혼자 잡아오겠다고 한 건데 갑자기 일이 이렇게 커져버렸다고"

"그럼 혼자 잡아오던가, 시간은 왜 그렇게 길게 잡았어? 그러니까 히지카타가 나선 거 아니냐고"

"나라고 지금 이 상황이 좋은 줄 알아? 나도 좆같다고"

"얼마나 어설프게 전화했으면 그 새끼가 오지도 않냐고. 그 이후로 전화도 안 받고 말야. 하 시발 어쩐지 좀 쉽게 풀린다 했어"

"나도 쉽게 풀릴 줄 알았다고요. 그 새끼가 그렇게 쉽게 눈치 챘을 줄 내가 알았겠어? 전화 상으론 웃으면서 온다고 한 거 같이 들었잖아"

"넌 신뢰를 잃은 거야. 원래라면 그 히지카타가 네가 하겠다는 일에 이렇게 직접 나섰겠냐?"

"닥쳐요"

그 이후에 집엔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정신 차려보니 아부토의 집 앞에 와 있었고, 놀라서 뛰어나온 아부토의 멍청한 얼굴이 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손과 얼굴, 그리고 옷에 묻은 피를 보고는 어딜 갔다 왔느냐고 물으며 의미 없이 다친 덴 없냐고 물었다. 힘없이 모자를 벗어서 던지고 터덜터덜 걸어서 다시 침대위에 털썩 누웠다. 아부토는 입고 있는 후드티는 벗고 자라면서 소매를 잡아당겼다. 나에게 꽤나 큰 옷이었기 때문에 옷을 잡아당기는 아부토의 손길에 금세 반나체가 되어 이불을 끌어안고는 잠에 들었다.

애초에 네가 히지카타한테 우쭐거리면서 이 새끼 정보만 안 넘겼어도 이런 일은 없잖아. 오해하지 마시죠. 난 분명 혼자 잡아오겠다고 한 건데 갑자기 일이 이렇게 커져버렸다고. 그 새끼가 그렇게 쉽게 눈치 챘을 줄 내가 알았겠어? 전화 상으론 웃으면서 온다고 한 거 같이 들었잖아. 애초에 네가 히지카타한테 우쭐거리면서 이 새끼 정보만 안 넘겼어도 이런 일은 없잖아. 오해하지 마시죠. 난 분명 혼자 잡아오겠다고 한 건데 갑자기 일이 이렇게 커져버렸다고. 그 새끼가 그렇게 쉽게 눈치 챘을 줄 내가 알았겠어? 전화 상으론 웃으면서 온다고 한 거 같이 들었잖아...............정보만... 안...넘겼....이런....없잖... 분명... 혼자....일이...이렇...버렸다고....눈치챘...줄 알았...어..? 전화상으ㄹ...웃으...같이.. 들었.......정ㅂ..만..안..넘ㄱ..도 이런.....없...아..분명 혼...ㅈ..ㅏ잡..ㅇ려고......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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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년 안에 완결을... 반드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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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압캄압 요소 주의*



33

 









-

유치하기 짝이 없는 복수심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보려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내 머리에서 뭐 얼마나 고상하고 고고한 단어가 떠오르겠는가? 


인쇄 버튼을 누르자 프린터가 바쁘게 인쇄된 종이들을 토해냈다. 내일 히지카타에게 모든 증거를 보여주기로 했다. 수북이 쌓이는 종이를 보며 순서대로 나왔는지 검토하면서 차례대로 정리했다. 


아직도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느즈막한 저녁에 겨우 만난 히지카타는 웃으면서 나에게 음료를 주며, 기억은 나냐며 물었다. 히지카타의 예상으로는 전날의 추태를 보인 내가 조금은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분명 기분이 좋았더라면 나 역시도 당황해하면서 히지카타의 얼굴을 보기도 민망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고, 되려 싱글싱글 웃으며 묻는 히지카타의 면상을 한대 후려 갈기고 싶은 기분이었다. 히지카타가 민망할 정도로 정색하며 답했다.


"기억나. 전부 다"

"다행이네"

"다행? 뭐가 다행인 건데?"


내 말에 히지카타는 말 문이 막혔는지 답하지 않았다. 까칠하고 싸늘하게 구는 내 태도에 히지카타도 당황해 했다. 어제 술 마실 때의 나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고, 히지카타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기에 더 괘씸한 거다. 그런 내 태도를 봤으면 나를 혼자 두고 가진 말았어야지.


"일어나보니까 너 없더라.. 나 혼자 있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 거야"

"..."

"기분 진짜 좆같았어"

".... 속은 괜찮아? 앞으로 그렇게 무식하게 먹지 마"


히지카타는 내 눈을 피하며 말했다. 변명 대신 말을 돌리네.


"응. 이제 그렇게 안 마실 거야. 사실 하려던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어. 술김에 신나버려서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어. 내일은 술 마시지 말고 차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자"


인쇄가 끝났는지 프린트에서 나오는 미세한 소리가 멈추었다. 출력을 마친 인쇄 종이를 봉투에 넣었다.


".. 뭘 출력하는 거야?"

"내일 보면 알아. 왜? 일 너무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어색해?"

"아니.. 뭐.. 그런건 아니고.."

"원래 나같이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이 뭔가를 열심히 할 때가 무서운 거잖아"


히지카타가 무언갈 이야기하려고 할 때, 일부러 듣지 않고 밖을 나갔다. 봉투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더 쏴붙였어야 했는데 왜 일부러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분 나쁘게 일부러 어깨라도 부딪치고 나올 걸....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다시 쳐다보았다. 홧김에 히지카타를 지나쳐서 나왔지만... 사실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내가 터트린 이 일로 변화될 히지카타와 이 안의 조직, 그리고 이 일이 사회에 상상이상으로 큰 이슈가 될까 봐... 맞아. 일단 지금의 나는 나 답지 않다. 히지카타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인가? 이상하게 드는 이런 복잡한 감정은 뭘까.... 하지만 마냥 망설여지는 것만도 아니다. 히지카타도 알아야 할 일이고, 어차피 곧 밝혀질 일을 내가 먼저 들춰내는 것 뿐이다. 지금껏 내가 일하면서 만들어진 사건들 역시 상상 이상으로 컸는데 뭐, 


히지카타의 충격받은 표정과 마츠다이라 선생의 모든 걸 잃은 표정이 보고 싶다.. 이쁘장한 얼굴을 한 쿠리코의 절규.. 절대 그런 일 없었다며 히지카타에게 매달리는 그 모습.. 혹은 정곡을 찔려서 새파랗게 질려서는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며 무릎이라도 꿇으며 히지카타를 잡는 그런 추한 모습이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이제 방해자들을 싹 정리하는 거야. 히지카타, 너와 나 이제 전처럼 아침까지 같이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 길다란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도 한번씩 쓰다듬어줬으면 좋겠어. 같이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면서. 











-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카페에 가볍게 선율이 울린다. 클래식 같은 걸 즐겨 듣는 편은 아니지만 이 음악은 알고 있다. 파란 빛을 머금은 가냘픈 초승달이 옅은 구름이 간간히 뿌려져 있는 보랏빛 하늘에 떠 있는 장면이 어렵지 않게 연상되는 음악이었다. 끊어질 듯한 미세한 달빛.. 봐달라며 애처롭게 말하는 감정이 들어있지만 결국 작곡가 자신도 비극으로 끝날 결말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얇고, 강렬하면서도 불안하다. 베토벤이 청혼하려 만들었지만 그 여자의 약혼자의 앞에서 연주해버린 그런 비운의 음악.


음악이 끝나갈 즘에 히지카타가 들어왔다. 노트북을 보고 있는 나를 보며 달려왔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 같다고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오늘따라 히지카타는 더 잘생겼다. 은은한 여유까지 있고.. 히지카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몸은 괜찮아?"

"뭐, 당연하지. 너랑 술도 먹을 정도 였잖아. 근데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뭐야?"


뭐가 급한지 바로 묻는다. 승질도 급하셔라. 저 초조한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 앞에 놓인 주스 한잔을 마시면서 물었다.


"너도 들어봤을 거야. 부모가 자기 자식을 제일 모른다고들 하잖아"

".... 응 많이 들어봤지"

"그렇다면 애인은 서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하는 중이야"


히지카타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 둔 사진을 꺼내서 히지카타의 앞에 내밀었다. 히지카타는 내가 책상에 놓은 사진들을 들고서 한 장 한 장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마주보고 앉은 나는 옆에서 눈을 빛내며 쳐다볼 뿐이다.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을 훑어본 히지카타는 내 앞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 이 사진을 보여주는 이유가 뭐야?"

"내가 그런 것도 알려줘야 돼? 잘 봐, 이 사진 속 여자. 쿠리코, 아니 네 아내잖아"

".... 알아. 근데?"

"... 이 옆에 남자는 마츠다라고...!"

"다 알아. 근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지. 같이 커피 한잔 마신 게 뭐가 어때서?"

"커피만 마신 게 아니니까 그렇지. 이거 봐. 이 뒤에 사진 보면 집까지 드나들고 있잖아!"


내가 다시 사진을 집어 들고 콕 집어서 보여주자 히지카타는 다시 그 사진을 보고는 다시 나를 보며 물었다.


"할 이야기라는 게 고작 이런 거였어?"


... 히지카타가 아닌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 할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게 자존심 상했더라도... 그게 내 앞이라서 체면을 지키려 애쓰더라도, 절대로 감추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라고 생각했다. 말로는 저렇게 덤덤하게 말하더라도 표정이라도 살짝은 굳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런 의심 없는 표정으로 하는 말이 고작 이런 거였어? 라니... 사랑이 없어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지금 히지카타가 이렇게 말하는 데엔 사랑의 부재라기보다는 그 여자를 향한 굳은 믿음이 보이는 것 같아서... 어지러울 정도로 조급함을 느꼈다.


"고...고작? 고작이라니? 나는....! 너 없는 동안에 이걸 알고 갈등했어. 너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이걸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고민? 고민을 했다고? 네가? 내가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여주고 있는데?"


히지카타는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꽤나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기에 내가 이런 사실을 알려준 것 자체가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자신의 부인이 이런 짓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도 이렇게 냉정할 수 있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이미 알고 있었거나,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다녀도 별로 상관없는 사이라는 것.


"아하, 너 이미 알고 있었구나?"

"... 뭘?"

"혹시나 해서 통화기록하고 같이 드나드는 영상 같은 것도 다 준비했는데.. 필요 없겠네"

"....."


히지카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의도를 읽을 수가 없어서 나도 히지카타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 너 이상해서"

"뭐가 이상해"

".... 내가 다시 돌아올 줄 알고 있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확 돋는다. 안된다. 이렇게 던지는 말에 냉정함을 잃어서는 안된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다..당연하지. 그게 우리 둘 사이의 믿음 아니겠어?"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 백 퍼센트의 믿음 같은 건 생기지 않을텐데. 너 정말 대단하다"

"대단하다,라는 표현은 틀렸어. 너 정말 나를 믿는구나 라고 말해야지"


우리 사이에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히지카타는 이상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은 처음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상황을 보면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히지카타는 자신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지했는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실소를 터트리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 미안. 지금 내가 조금 예민하지?"

"응. 지금 예민해. 그래도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이번엔 내가 이해할게"

"소고.. 네가 쿠리코를 싫어하는 거, 잘 알아. 그래도.. 이런 모함은 하지 마"

"모함 아니야. 뭐야? 지금 나를 못 믿는 거야?"

"못 믿는다는거 아니야. 하지만 이런 건 지금 시점에서 도움 안 돼. 우리가 할 일은 따로 있잖아"

"업무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다..? 납치범 찾는 이야기인가?"

"우린 경찰이야. 이런 시덥지 않은 이야기보다는 업무 이야기하자"

"이미 찾아뒀어. 범인도"


내 대답에 히지카타는 내 말에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나에게 물었다.


"찾았다니?"

"걱정하지 말라구, 찾았어"

"어떻게 찾았는데?"


히지카타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다시 물었다. 그리고는 취조하듯이 나에게 질문을 연속으로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어떤 근거로? 네가 나한테 납치당한 정황이나 그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어떤 환경이었는지, 납치범 목소리는 어땠는지, 물어본 적은 있어? 내가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걸 알아볼 시간도 없었을 텐데. 네가 어떻게? 


히지카타의 질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해졌다. 내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당황했다. 히지카타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다시 말했다.


"납치범을 추정하는 거야? 아니면 한 명 찍어서 범인으로 만든 다음에 이 사건을 끝내려는 거야?"

"... 끝내려는 건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추정..."

"추정...이라.."


히지카타의 표정은 계속 어두웠다. 지금 예민하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대로는 절대 이야기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지 않았다. 우선 히지카타의 이런 까칠하고 진정되지 않는 태도에 나 자신이 이 대화를 더 이상 진행시키고 싶지 않았다. 히지카타가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려 할 때 히지카타의 말을 가로막고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만. 네 상태 지금 진짜 별로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앉아"

"다음에 이야기하자"

"앉으라고!" 


벌떡 일어나서 나가려는 나를 향해서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히지카타가 나에게 저렇게 소리친 적은 그렇게 많지 않다. 카페의 모든 사람들이 히지카타와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냉정한, 아니 그 이상으로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는 히지카타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카페를 나갔다. 문에 달려 있는 작은 종소리가 짤랑- 하고 짧게 울리었다. 물론 히지카타가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상사의 입장인 것은 맞지만 오늘 같은 개같은 명령은 정말이지 사람 빡치게 만든다. 바깥 바람을 가볍게 맞으며 히지카타가 혹여나 쫓아올 것 같아서 몇 걸음 가다가 뒤를 슬쩍 돌아보았지만 히지카타는 카페에 그대로 앉아서 뭐가 복잡한지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비록 쫓아오길 바란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 나가는 나를 보며 쫓아와서 미안하다고 어딜 가냐며 날 붙잡길 바란 것도 있다. 하지만 뭐.. 저런 모습을 보니.. 분명 후회하고 있겠지. 나한테 소리 지른 것, 그리고 재수없는 말투를 써버렸다는 걸.

 

다시 걸음을 몇 발자국 옮기는데, 뒤에서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나도 모르게 홱 뒤돌게 되었다. 히지카타가 내 어깨를 잡아당긴 것이다. 히지카타의 표정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사과를 하려 온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야기라도 들어보자. 네가 추정하는 사람이 누군지"

"..."

"이야기해 보라고!!! 누굴 잡으려고 나한테 신나서 이야기 한 건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한다고 했잖아! 진짜 범인을 찾지 않고 추정으로만 이렇게 했다고 지금 화난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니까 말해"


히지카타는 지금 굉장히 조급했고,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화가 나 있었다. 내 어깨를 잡은 손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세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깨가 욱신욱신 거렸지만 아프니까 놓으라는 식의 말을 이 상황에 하기는 자존심이 상해서 전혀 표현하지 않은 채로 히지카타를 당당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면 너 지금 왜 이렇게 화났는데? 왜, 네 아내가 너 없을 동안 바람피웠다는 사실이 그렇게 인정이 안돼? 내 아내가 이럴 리가 없는데.. 이 새끼가 지금 모함하는구나 하고? 거기에다가 내가 지금 단지 추정만으로 범인 잡겠다고 한다고 지금 화난 거잖아 너"

"그런 거 아니라고 하잖아"

"그럼 왜 화났냐고!!"


히지카타의 빙빙 돌리는 말에 나 역시 화나서 소리를 높였다. 히지카타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나 역시 히지카타를 노려보았다. 잡힌 어깨가 너무 욱신거려서, 나도 모르게 히지카타의 팔을 쳐내면서, 시발 이거 좀 놓고 이야기해! 하고 말하고는 욱신 거리는 어깨를 살짝 인상 쓰며 잡았다가, 아프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더럽다는 듯이 어깨 부분을 툭툭 털었다. 평소라면 먼저 굽혔어야 할 히지카타는 복잡하다는 듯이 담배를 입에 물고는 나를 지나쳐갔다.

괜히 한마디 했다가 이게 뭐야... 그래도 예전 같으면 내가 엉뚱한 추정으로 범인을 몰아가도 웃으면서 잘 받아줬으면서.. 자신의 일이라 그런가.... 

뭐.... 이번엔 내가 조금은 잘못했는지도..











-

카구라를 달가워 하지 않는 나와는 다르게 아부토는 카구라에 대해서 이것 저것 많이 생각해 주었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공간을 제공했었는데, 카구라는 다다미 방으로 된 인테리어가 좋다고 해서 인테리어를 새롭게 했다. 처음에 쓸데없이 큰 공간은 별로라고 투덜댔었지만 금새 넓은 곳에 적응해가면서 새로운 것에 관심을 보였다. 최근에 관심을 보인 것은 게임이었다.


내가 갔을 때도 카구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죽어! 죽어! 하고 조금은 우습게 외치면서 게임기를 몇 개를 부쉈는지 모른다. 아부토가 그 놈의 게임기를 몇 개를 사다 줬는지 모른다며 투덜투덜 거리는 걸 몇 번이나 들었다. 네 동생은 어떻게 너랑 하나도 다를게 없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똑같애! 내가 봐도 똑같았다. 일단 아부토가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며 시중드는 것 까지 포함해서. 


전에 있었던 해결사에게는 아직도 종종 연락을 하는 것 같았다.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리지 않았다. 그쪽에서 카구라에게 어디에 있냐, 잘 지내냐 등등 묻는 것을 들었지만 카구라는 늘 찾던 가족을 찾아서 잘 지내고 있고, 지금 행복하다고 답했다. 


나와 점심을 함께 먹는 것으로 카구라는 꽤나 안심하는 듯 보였다. 같이 앉은 식탁은 컸다. 처음에 카구라가 가장 만족해했던 것은 큰 식탁과 먹고 싶은 만큼 제공해주는 음식이었다. 늘 식사시간엔 카구라가 원하는 만큼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카구라가 식사를 할 때에 나는 그렇게 많은 음식을 먹지 않았다. 점심에 마주보고 앉았을 때 이상하게 입맛이 별로 없었다. 카구라는 게걸스럽게 식탁 위의 음식을 해치우며 나에게 왜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냐 나도 먹고 있어. 말하며 나도 숟가락을 들었다. 말없이 식사를 하다가 카구라가 나에게 물었다.


"내가 나가지도 못하게 하면서, 왜 긴쨩하고 연락하는 건 아무 말도 안 해?"

"굳이 말릴 거 없잖아"

"내가 나가고 싶다고 말하면 긴쨩은 날 구하러 올 건데?"

"정 이곳에서 나가고 싶으면 말해. 보내줄게"

 

카구라는 내 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 대답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거.. 오빠도 알고 있는 거 안다 해"

"... 밥이나 먹어"

"그렇게 이야기 할게 아니라, 긴쨩이랑 연락하지 말라고 나에게 부탁이라도 해야 되는 거다 해"

"부탁? 그런 부탁을 뭐하러 해? 내가 진심으로 네가 그쪽과 연락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부숴버리면 그만이야"

"..아, 그런 자신감 때문에 그렇게 까칠했냐 해? 하지만 그건 안될걸?"


카구라는 내 말에 오히려 묘한 자신감을 얻었는지 방금 전 약간이나마 흥분하던 모습을 감추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 일정 시간에 한번 내가 직접 예약 취소를 하지 않으면 긴쨩에게 자동으로 문자가 전송될 거야"

"...."

"긴쨩에게, 그리고 경찰에게... 내가 찾았다는 가족이 하루사메 7사단 단장이고, 사실 나는 납치되었다는 내용이 담긴 문자. 더불어 최근 신센구미 부국장을 납치했던 주범이라고. 그리고 현재 오키타 소고와 동거 중이라는 것까지 전부. 긴쨩은 내 말을 당연히 믿을 거고.... 신빙성을 더해주겠지. 물론 오빠를 잡는건 조금은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꿩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다해? 경찰의 입장에서 오빠를 잡는 게 힘들다면.... 대상을 바꾸겠지?"


카구라는 말 끝을 흐리며 내 표정을 힐끗 살폈다. 그리고는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신만만하게 핸드폰을 부숴버리면 그만이라던 오빠가 왜 표정이... 굳어졌을까...... 그렇게 되는 건 싫은가 보다 해? 바보오빠"

"...뭐, 상관없어"

"정말 상관없냐 해?"


카구라는 앞에 있는 고기 한 점을 칼로 거칠게 반절로 자른다. 내리친 칼과 대리석 식탁의 마찰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째앵 하는 소리가 반사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멈춘 후에야, 카구라는 먹음직스럽게 입에 넣고는 우물우물 씹었다. 유난히 빛나는 눈동자가 약간은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무어라고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내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는데.. 받아칠 말이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웃는 얼굴을 유지해야 했다.


"...."

"하하하 우리 영원히 사이좋게 지내자 오빠야. 이제 저녁도 나랑 같이 먹는거 어떻냐 해?"


카구라는 웃으면서 앞에 놓인 딸기 주스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보란 듯이 켜고는 말했다. 하아.. 간만에 망할 사디에게 연락이나 해볼까아... 그 새끼... 생각보다 멍청한 바보 새끼라서 아직도 제 옆에 있는 사람이 뭔지도 모를 텐데....


죽여버리고 싶다. 










-

정말로 떠날 줄은 몰랐다. 차이나는 전에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해결사를 떠난 것이다. 아직 본인도 조금은 그리워하는지 형씨와는 연락을 지속한다고 들었다. 가족에게 돌아갔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카구라가 없는 형씨가 조금 쓸쓸해 보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자신이 평생 데리고 살 수는 없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 어쩌면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친하지 않았던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따로 연락을 해서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근했던 사이 역시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나에게 연락이 왔다.


[안녕! 잘 지내?]


뜬금없다 못해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은 반가웠다. 왜 이런 문자를 형씨도 아닌 나에게 보냈을까?


[네가 나한테 이런 문자를 보낼 때도 있네. 소름 끼친다]

[잘 지내냐고 물어봤잖아. 답은?]

[너 없어서 잘 지내. 형씨도 아니고 나한테 연락을 하다니]

[감동했냐해?]

[그럴 리가]

[돌아온 마요라 상태는 어떠냐 해? 역시 별로지? 범인에 대해 수사하고 있어?]


히지카타에 대해서 묻다니. 히지카타의 상태.. 조금 예민하고.. 또 약간 뭔가에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조금 불신하는 것 같기도 하고....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잖아]


한참을 고민하다가 보냈다. 히지카타의 상태에 대해 차이나에게 알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보자. 그전까지는 먼저 연락 안 했으면 좋겠다 해]

[? 뭔 소리냐 연락은 지금 네가 먼저 했거든?]


내 말에 카구라는 말이 없었다. 이상하다.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을 때, 히지카타가 나에게 다가왔다. 


"오키타"

"...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회의실로 들어갔다. 또 뭘로 지랄을 하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앉아서 삐딱하게 나를 기다리는 히지카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들어가서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끼익하고 문이 닫혔다.


"네가 전에 하려던 이야기, 마저 듣고 싶어서"

"...."

"그날 내 상태가 별로 였던 거 인정하고 사과할게. 다시 이야기해봐"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다 잊고 순순히 말할 성격으로 보여?"

"...쿠리코 이야기 먼저 해봐"


쿠리코 이야기를 먼저 해보라는 말에 조금 솔깃했다. 이제야 의심이 시작된 건가? 


"왜 갑자기 다시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나를 찾아와서 직접 한 이야기잖아. 게다가 네가 지목한 범인이 누군지도 궁금하고.. "


히지카타는 뭐가 불안한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히지카타가 자주 불안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내가 한 쿠리코의 이야기에 의심이 시작된 걸까? 밖에 대원 하나를 불러서 내 노트북과 책상 안의 서류들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히지카타는 아무런 표정 없이 내 이야기를 전부 들었다. 여전히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면서. 


"내가 어제 이야기한 거 여기까지야. 왜 다시 듣고 싶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럼 이제 그것도 이야기해봐. 납치범도 찾았다며"

"그건 아직..약간 부족하지만...."

"부족한 거 이미 알고.. 네가 그저 추측으로 한 놈을 잡아넣어서 여론을 막으려 했다면.. 어떤 놈을 찍었는지도 궁금해"


히지카타의 초조해하는 손을 바라보면서 조금 망설이다가, 준비해 놓았던 서류 봉투에서 카무이의 사진을 꺼내어 내밀었다.


"이 녀석이야"


히지카타는 그 사진을 보고는 조금 놀라는 듯 했지만 큰 반응은 없었다.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는진 몰라도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괜찮아. 나랑 동갑이야. 왜 이 녀석을 찍었냐고 한다면.... 우선 충분히 수상해"


다른 서류에서 카무이 녀석에 대한 개인정보를 내밀었다. 빈 칸이 많았고 이름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작성 되어있는 정보가 없었다.

 

"내가 알기로 어떤 조직에 속해 있다고 알고 있어. 어딘진 정확히 모르지만.... 다른 무엇보다 하루사메에게 연결해서 널 찾도록 도와준 전적이 있어"


히지카타는 말 없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너...와는 어떻게 아는 사인데? 널 도와줄 정도라면...."


어떻게 아는 사이.... 가족....이라고 말하기엔 내가 너무 개새끼같아서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친구....라고 해야 하나..."

"..친구?"

"말하기 애매한 사이지만 어느 정도의 친분이 있어. 너 찾으려고 여기저기 찾다가...."

"말하기 애매한 사이?"

"무고한 사람을 잡아넣는다고 생각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의 무능을 더 이상 드러낼 수 없잖아. 이 정도면 대충 그림도 맞고.. 그래서 추천한거야. 일단 잡아넣고 진범은 천천히.... 어때?"

"이 새끼 어떻게 잡을건데?"

"내가 있는 곳을 알아. 내가 진행하게 해주면 일주일 안에 잡아올게"


내 말에 히지카타는 말을 멈췄다. 나를 한참 바라보았는데 이상하게 눈빛이 슬퍼 보인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지 궁금하지만 차마 물을 수는 없어서 나도 모르게 히지카타의 손을 덥썩 잡아버렸다. 히지카타는 내가 잡은 자신의 손을 보고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떨구고는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죄가 없는 사람을 잡는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아니야! 분명 죄가 있잖아. 뭐하면 뒤집어 씌워도 괜찮잖아? 근거는 충분히 있어. 뭘 걱정하는거야?"


히지카타는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다음날 다시 이야기하자면서 먼저 방을 나갔다. 왜일까?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약간의 돌발상황이 생기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내 계획 대로인데..... 왜일까....




"여기, 왜 이래?"


옷을 갈아입을 때, 카무이는 내 어깨에 있는 멍 자국을 보며 물었다. 거울에 비춰보니 부분 부분이 붉게 변하여 손가락 모양으로 선명하게 멍울져있었다. 순간 뭐라고 변명을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종종 있는 범죄자들과의 몸싸움이라고 둘러댔다. 


"너 완전 정신이 빠진거 아니야?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멍이 질 때까지 잡고 있게 놔뒀단 말이야?"

"상황이라는 게 있잖아"

"상황? 그런 상황이라는 게 있을까? 네가 그렇게 쉽게 잡힐 놈이 아닐 텐데. 어떤 놈이야?"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 녀석에게 까칠하게 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새끼를 곧 잡으려면 최대한의 신뢰를 얻어두는게 좋다.


"답지 않게 걱정이야?"


웃으면서 물었다.


"응.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놈일까"

"... 걱정따위 하지 말라고 해야하나,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되나?"

"음... 평소에 걱정따윈 하지 말라고 했었으니까 이번엔 좀 색다르게 고맙다고 해줘. 음... 사실 둘 다 상관없어. 어쨌든 내가 너를 한 번은 더 생각 했다는거 아니겠어?"

"그렇구나, 너무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그러니까 너도 나를 걱정해줘..라고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나를 걱정할 일은 없겠네. 난 너처럼 찌질하지 않으니까"


카무이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저 말을 하며 웃는 이 새끼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이 새끼와 있었던 지난 날들이 갑자기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주마등처럼 빠르면서도 천천히, 그리고 생생하게... 이제 와서 양심이 뜨거워진 건가? 이제 와서 저 새끼에게 조금은.. 미안한가? ...미안하다기보다는 저 녀석 말대로 조금은 걱정이 된다. 내가 잡으면 분명 놀란 얼굴로 쳐다보겠지? 왜 자신이 잡혔는지도 의문일 거야. 그리고 죄명을 말해준다면.. 자신이 기껏 베풀어준 호의로 인해서 철창으로 가게 되는 자신의 이상한 운명을 저주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나.. 나를 지금보다 더 많이, 다른 방향으로 더 많이 생각할거야. 한번, 두번으로는 화가 풀리지 않아서 아마도 평생... 네가 사랑한 나를 아마도 영원히 증오하게 될 거야. 나는 널 바로 잊겠지만.


나는 정말로 괜찮은데... 네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걱정된다 나도.


침묵 속에서 카무이는 뒤에서 나를 꼬옥 껴안았다. 둘이 이렇게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뒤를 살짝 돌아보니 카무이가 뺨에 가볍게 키스해왔다. 마음이 이상하게 무섭다. 그리고 참을 수 없이 무겁다. 등에 부딪히는 따스한 온도가 조금은 생각 날 지도 모른다.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 하고 중얼거린다. 나도 모르게 나를 안고 있는 이 녀석의 손을 살짝 잡았다. 카무이는 나를 그렇게 잠시 안고 있다가 갑자기 연락을 받고서는 급히 회의가 생겼다며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빨리 올 테니까 기다려야 해! 하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웃음으로 겨우 답했다. 


 

나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잠시나마 있었던 내 불편한 마음이 싹 가신다. 저 새끼를 이대로 내 손으로 보내는게 양심에 잠깐 찔렸을 뿐이다. 급하게 방에 숨겨두었던 도청 장치의 이어폰을 바로 귀에 꽂았다. 히지카타에게 정식으로 쿠리코의 일에 대해서 말했으니 둘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전에도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땐 카무이 녀석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들을 수 없었던 것도 있었고, 쿠리코에 대한 정보, 카무이 녀석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느라 들을 여력이 없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 전원 버튼을 누르자 잠시의 침묵과 함께 오류라도 있는지 지지직 소리를 내며 도청이 끊어져 버렸다. 고장이라도 난 건가? 전원도 껐다가 켜보기도 하고 설정을 다시 건들어보았다. 그런데도 연결 오류로 나타나는 소음은 멈추지 않았다. 쭉 잘 됐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접속했나? 몇 번이나 더 설정을 만지작 거리다가 내 승질을 이기지 못하고 도청기계를 내려쳤는데, 그만 외관의 알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살짝 부숴져버렸다. 하필이면 이럴 때에 고장이 날 게 뭐야?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더 만지작거리다가 아쉬운 마음에 히지카타의 집 앞에라도 가볼까도 고민했다. 히지카타와 쿠리코가 싸우는 장면, 싸움이 아니라면 쿠리코의 구차한 변명을 꼭 듣고 싶었는데... 


뭔가에 홀린 듯이 신발을 신었다. 나도 나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신발을 신고 신발장에 서서도 한참을 멍하니 갈등했다. 이 상황에 히지카타의 집 앞을 찾아갔다가 히지카타라도 만난다면.. 히지카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냐, 가지 말자. 오늘은 그냥 참자....


하지만 내가 신은 신발이 저주받은 빨간 구두라도 되는지 발은 멋대로 나가는 문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이다. 손을 느리게 뻗어 문고리를 열고 나가려는 찰나, 연락이 왔다.


[긴급회의. 각 번대 대장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출석 바람. 지하 회의실로. 30분 이내.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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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캄압/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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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대로 8시에 전화가 왔다. 전화의 내용도 카무이 녀석이 말한 내용과 같았다. 12시에 15억을 준비해서 가져오라는 내용이었다. 혹시 몰라서 마련해 놓은 돈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제시한 금액에는 못 미쳤기 때문에 마츠다이라 선생은 현금 5억과 가지고 있던 10억원 정도의 건물 부지를 넘기겠다고 했다. 점점 가격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며 구입했었던 그 건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내놓는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정확한 가격을 매긴다면 그 이상의 금액이 될지도 모르는 건물이다. 돈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냐며 따졌을 때 돌아온 대답은, 저희가 의뢰를 완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군요. 저희를 믿지 않으셨나 봐요? 미리 준비해 놓으셔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하고 말하며 비아냥댔다. 그 답을 듣고 우리 모두는 그들이 마츠다이라 선생의 재산을 조사했다는 결론 밖에는 내리지 못했다. 명의를 이전할 서류를 준비하고, 현금을 가방에 담으면서도 마츠다이라 선생과 곤도씨는 계속해서 의심했다.

"이게 함정이면 어쩌지?"
"아까 보내온 사진 보셨잖습니까. 사실이겠죠"

이 둘의 대화를 옆에서 들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곤도씨가 말이 없는 나를 보며 물었다.

"소고, 왜 말이 없어? 혹시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 거냐?"
".. 아닙니다. 저도 그냥.. 믿기지가 않아서... 그리고 불안해서 말을 아끼는 중이에요"

내 말에 곤도씨는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고생했다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이었다. 

"너의 고생이 많았다. 꼭 히지카타가 멀쩡히 돌아왔기를 기다리자"

곤도씨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촉촉하다. 나는 가만히 웃어 보였다.

협상을 하는 장소엔 내가 가겠다고 우겼다. 히지카타의 상태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면 빌딩의 명의 이전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돈이 담긴 가방을 챙겨서 아래 대원 대여섯 명과 함께 확인하러 떠났다. 이상했다. 늘 히지카타의 상태를 확인했었지만 상쾌한 바깥공기와 함께 얼굴을 마주 보는 히지카타의 모습은 또 새로웠다. 멀리에서 언뜻 언뜻 보이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히지카타는 시체처럼 구급용 시트에 눕혀져서 왔다. 얼굴 위에 하얀 천만 덮여 있지 않았을 뿐이라서 혹시나 죽은 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협상 장소에는 7번대 단장이 직접 나왔다. 뒤에 멀찌감치 서 있을 뿐이었지만 위압감이 엄청나다. 바퀴 달린 카트를 성의 없이 우리가 서 있는 쪽으로 휙 밀어재꼈다. 혹시나 히지카타가 떨어질지도 몰라서 나도, 그리고 함께 왔었던 대원들도 화들짝 놀라서는 그 카트를 잡으러 뛰었다. 

"걱정 마라, 잘 묶어 뒀으니까. 치료비를 추가로 더 받으려다가, 다음번에도 또 부탁한다는 의미로 인심 썼다. 상태 확인하고 명의 이전 실행해. 하루사메 앞으로"

거만한 태도로 말하는 그 단장 놈을 노려보며 전화를 걸어서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들은 기분 나쁘게 낄낄대며 명의가 정확히 이전되었는지 확인될 때까지 우리를 위압적으로 포위하고 있다가, 거래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두말 없이 자리를 떴다. 

즉시 히지카타를 병실로 급하게 옮겨서 상태 체크를 시행했다. 다친 적이 있었는지 다친 부위를 치료한 흔적이 있었다. 혹시나 이 다친 부위 때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묻자, 다행히 상처가 아물고 있는 중이라서 아무런 이상은 없고 현재 단순 수면 상태라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의 말에 안심해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츠다이라 선생과 쿠리코, 그리고 곤도씨가 달려왔다. 이미 한참 전부터 울고 있었는지 쿠로코의 눈과 코가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히지카타를 발견하고는 끝끝내 소리를 참지 못하고는 히... 히... 히지카타씨!! 하고 히지카타의 손을 붙잡고는 목놓아 울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도 그 즉시에서 말리지는 못했다. 그 울음소리에 이상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그 손을 놓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소리칠 수 없었고.. 떨어지라며 그 사이를 파고들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 옆에서 쳐다보다가 드디어 입을 열고 말했다.

"...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니 가시죠. 옆엔 제가 있겠습니다."
"가세요! 제가 옆에 남을게요" 

쿠리코는 훌쩍이던 눈물을 훔치며 나를 바라보는 순간에는 꽤나 독한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가시죠. 그쪽 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부장님께서 제대로 쉬시지도 못하겠어요"

곤도씨는 내 말이 심했다는 듯이 내 어깨를 잡았고 마츠다이라 씨는 내 말이 맞다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래 쿠리코. 오늘은 쉬도록 놔두자. 혹시 모르는 일이 있을 때도 너보다는 저 녀석이 있는 게 훨씬 안심이다"
".... 아빠! 저는 이 사람의 부인이에요!!"
"네 마음도 다 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는 거라고 하잖냐. 거래한 집단이 그렇게 질 좋은 집단은 아니니까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 안정 취할 때까지는, 아니 병원에서 나와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그렇게 하자. 어차피 곧 돌아올 거야. 게다가 매일 올 건데 잠자는 그 새벽시간도 못 버티는 거냐?"

마츠다이라 선생의 말에 쿠리코는 얌전히 자신의 뜻을 굽혔다. 자신의 아버지의 말엔 생각보다 고분고분했다. 그 와중에도 잠들어있는 히지카타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래, 지금 마음껏 붙잡고 있어. 그 손을 히지카타가 뿌리치게 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모두 돌아간 새벽.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가벼운 바람소리가 기분이 좋다. 조금 망설이다가 히지카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것이었다. 카무이 녀석이 처음에 히지카타를 보여줬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 멀리서 히지카타의 모습을 보며 정말 발작할 뻔했었지.... 그때도 이렇게 손을 잡고 싶었었지. 

쿠리코가 쭉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 그 이유를 나도 알 것 같다.

"소고.."

히지카타의 희미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히지카타를 바라보았다. 

"어...! 히지카타...! 저.. 정신이 들어? 괘.. 괜찮아? 이제 안심해도 괜찮아, 이제 내가...! 아, 아니다. 의사를 불러야 하나? 의...의사.... "
".... 왜 이렇게 갑자기 호들갑이야? 나 괜찮아. 물 한 잔만 주라"

히지카타는 생각보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떡 일어서서 물 주전자를 들었다. 일부러 몸에 좋다는 차를 끓여 놓은 주전자였는데 어찌나 물을 많이 담아 놓은 건지 손이 떨려서 주전자를 들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주전자가 무거운 게 아니라 내 손에 힘이 없었다. 겨우 물을 담을 때에도 사방에 물을 뚝뚝 흘리며 꼴사납게 바닥을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적시어 가는 바닥의 한 모퉁이에 내 눈물도 방울방울 떨어져서 섞이었다. 

".... 힘들었지?"

뒤에서 히지카타가 물었다. 

"... 힘들었겠냐? 내가? 곧 있으면 내가 네 자리... 네 자리 내가 올라가는 건데... 씨발 네가.. 네가 다시 와서... 다시..."
".. 미안해 걱정하게 만들어서"
"걱정 안 했다고 씨발!"

그리고 나는 뭐가 그렇게 서글펐는지, 어린 나이에 가장 아끼던 인형이라도 잃어버린 아이처럼 목 놓아서 엉엉 울어버렸다. 히지카타는 이런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을 것이다. 울음이 그칠 즈음에는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약간의 머뭇거림을 보이며 손을 잡았다. 히지카타는 내 손을 가볍게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나도 네가 생각났나 봐. 그곳에 있을 때 이상하게 네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

감동... 을 받고 싶었지만 그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내 목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는 그 위치에 항상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히지카타의 마음이 나를 향해서 환청까지 들린 게 아니라.. 실제 나의 목소리였다는 생각... 되려 불안했다. 히지카타를 돌려주겠다는 일정을 늦춘 것도 나였고, 히지카타가 있는 곳을 알면서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서 혼자만 히지카타를 바라봐 왔던 것도 나였기 때문이다. 하루사메와 우리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그런 건 사실 변명에 불과하다. 조직에 알려서 대책을 간구했을 수도 있었던 문제다. 그저.. 나는 나 혼자서 히지카타를 보고 싶었고, 쿠리코와의 스캔을 조금 더 치밀하게 파고들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 퇴원하고 정상으로 돌아오면 같이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

히지카타는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너랑 그딴 거 먹으러 간대? 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차마 입안에서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기분 좋게 내 손을 잡은 온기와 웃어 주는 그 눈,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모두 눈물 나게 기뻤기 때문이다. 대답 못하는 나를 보며 히지카타는, 아깐 왜 울었어? 하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너무 쪽팔려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히지카타는 다시 소리 내서 웃으면서, 아, 여기 먼지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건가? 그런 거지? 하고 가볍게 놀렸다. 죽고 싶었다. 이대로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다. 너무 쪽팔려서, 그리고 이런 가벼운 일상적인 즐거움, 우리 둘만 있는 따뜻하고 간지러운, 이런 상황에서 죽고 싶었다. 

이상하다. 나에게 행복한 순간은 소독약 냄새와 함께 찾아온다. 왜 히지카타와 나, 둘 중 하나의 아픔과 함께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까? 길지도 않은 이 행복한 잠깐의 순간. 아픔도 뭣도 다 잊게 해주는 그런... 나비처럼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지도 못한 추한 얼굴의 나방이 음침함 속에서 빛이면 사족을 못 쓰고 달라붙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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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너는 너무 단순해"
"그걸 이제 알았어?"
"아니, 항상 알았지, 그래도 한번 물어볼게, 이번에 그 경찰 놈 놓아줬는데 그 새끼가 돌아가서 우리가 한 짓이었다며 다 불어버릴 수도 있고, 그 만한 힘도 있는 놈인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 뭘 어떻게 해? 다 쓸어버리려고 했지"
"그럼 지금부터는 카운트다운인 건가?"
"응. 잘 세어봐. 언제쯤 올지 나도 궁금하니까"
"거봐, 이렇게 단순해. 설마 일부러 그런 건가?"
"왜 이렇게 빙빙 돌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야?"
"하.... 뭐, 그래, 왜 네가 마음을 바꿨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난 네가 이렇게 평화적인 생각을 했다는 데에 뿌듯함을 느낀다."
"무슨 소리야. 공격해오길 기다리는 건데, 이게 평화적인 거야?"
"네가 퍽이나 기다리고 있겠다"

아부토는 앞에 레모네이드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새삼스럽게 셔서 못 먹겠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으으 너무 시다. 여기 레모네이드는 절대 못 마시겠네"
"그러게 왜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래?"
"너도 변하는데 나만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사소한 것부터 조금씩 바꿔보는 거야"
"언제나처럼 최악의 선택이 될걸?"
"왠지 그럴 것 같다고 방금 생각했어. 아무튼, 내가 너를 굳이 일부러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그러고 보니 이곳은 우리가 항상 만나던, 카구라가 항상 찾아오던 그 카페가 아니었다. 어두운 분위기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조금 더 깔끔하게 정돈된 카페였다. 

"그러게... 왜 여기로 물렀어? 전에 가던 곳이 편하잖아. 아무 이야기나 막 해도 되고 귀찮은 일도 없는데.. 설마 이것도 변화야?"
"변화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아니겠어?"

아부토는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씨익 웃어 보였다.

"커피에서 바퀴벌레라도 나왔나?"
"커피에서 나왔으면 다행이게? 아주 한복판에서 난리를 치고 있더라. 덕분에 호출당해서 죽도록 고생했다. 야야, 이거 좀 봐. 이거 산재다? 어?"

아부토는 어깨도 결리고 얻어맞은 다리도 아프고 귀도 다쳤다면서, 온몸에 붙인 거즈와 반창고를 보여주었다. 

".... 흠.. 네가 이 정도면 그 새끼는 완전 작살났겠네"
"아니, 멀쩡해. 나는 털끝 하나도 못 건드렸다. 어쩌겠냐? 내 못난 상사 동생인데"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한다는 표정을 하는 나를 보며 아부토는 너!! 네 동생!! 하고 외쳤다. 그제야 떠올랐다. 카구라가 나에게 연락을 해왔던 때를. 내가 연락을 피하자 카페에서 난리를 쳤고, 카구라와 내가 자주 만나는 것을 목격한 카페의 상주 인원들도 함부로 카구라를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호출을 받고 아부토가 뛰어나간 듯했다.

"그랬구나.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데.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했어?"
"잘 모셨어. 그리고 보험으로도 사용했지"
"보험?"

아부토는 레모네이드를 하나 더 주문하며 말했다. 단장 네 동생. 경찰들이랑 친분 있던데, 그 경찰 놈 풀어주기 전에 미리 말해놨지. 우리와의 일, 우리 단장과 이야기했던 모든 것을 발설한다면 이 여자애는 영영 볼 수 없을 거라고. 단장의 동생이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우리가 가차없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 우리가 데리고 있으니 선택은 그쪽이 하는 거라고 이야기해 뒀어. 그 정의로운 경찰의 입장에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했었던 이 작은 여자애가 위험에 처하는 것만은 안된다고 생각했나 봐.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랑 같이 산다면서 왜 동생이 이렇게 너를 미친 듯이 찾아?"
"... 걔가 좀.. 불안증세가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아, 그렇구나"
"동생이 또 다른 이야기 안 해?"
"무슨 이야기?"
"아니야"

아부토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이 다시 레모네이드의 주문을 확인하며 빨리 달라고 재촉했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말했다.

"단장 너, 후회하고 있지?"
"뭘"
"그 경찰 놈. 그냥 죽여버릴걸. 하고"
"역시 넌 눈치가 참 좋아. 맞아. 잠깐 후회했어. 그리고 너도 원망했어"

내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원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게 의외였는지 아부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컵을 대충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 그냥 죽여서 시체로 데려오지 왜 살려서 데리고 왔을까. 그래서 왜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나를 ... 후회하게 만들었을까?"
"결국은 또 내 탓이냐?"
"그럼 내가 널 탓해야지 누굴 탓해?"

아부토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나도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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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인지 모른다. 다만 주황빛 가로등 빛이 환하게 비추다가 점점 옅어지는 걸 보니 새벽의 시간 인가보다. 새벽의 시작과 끝. 아침이 밝는 시간에도 오키타는 오지 않았다. 핸드폰은 꺼져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한없이, 누나의 남자친구를 돌려준 날부터 2일 동안이나 이 새끼를 이 집에서 보지 못했다. 내가 나 답지 않게 너무 많은 것을 먼저 줘버렸나?

혼자 있다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원래  바쁠 때는 바빠서 힘들고, 한가할 때는 잡생각이 많이 들어서 힘들다던데 지금이 딱 그런 것 같다. 괜히 오키타 없이 이 큰 집에 있자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처음 여기 왔을 때도 그렇고 엄마 아빠의 얼굴... 얼굴은 잊어버려서 생각이 안 난다. 하지만 누나의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게 생각이 난다. 오키타랑 닮았었지. 조금 더 섬뜩한 기분이 드는 느낌으로.. 그리고 나와 함께 생활하던 아부토도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아부토와 함께 생활 했을 때는 스트레스 없이 하루하루 즐겁게 지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생활이기에 별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에 들어와서 잘 모르던 때에 했던 여러 가지 임무도 생각난다.. 하루사메에 들어와서 얼마 안 됐을 때였나... 우리가 치려는 조직에서 스파이를 한 명 고용했다. 나라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을 방법이지만, 상대 조직이 꽤나 몸집도 컸고 스파이를 이용하면 이렇게 편리하게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스파이에게는 물론 상당한 대가를 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스파이가 우리가 시킨 대로 정보도 잘 빼왔고, 우리의 요구에 모든 걸 응했지만, 우리 쪽에선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 그 스파이를 죽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 쓸모가 없잖아. 사냥을 끝냈으니 사냥개는 죽이는 거야. 이쪽이 더 깔끔해. 이런 놈 하나 더 있으면 나중에 껄끄럽다?

내가 단장이 된 이후로는 우리 사단에서 스파이를 쓴 적은 없다. 사냥개에 대한 동정심 이딴 거 아니고 그냥 구질구질해서. 뭐 하러 귀찮게 한 단계를 더 거쳐가야 하나? 하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가 써본 적도 없는 사냥개의 입장이 되어버린 거다. 기분이 묘하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열심히 사냥해다 바치는 그런 입장이 되었다는 점이.. 어색하면서도 이상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닐 거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니야, 이 새끼가 나한테 그럴 리가 없어. 뭐가 그럴 리가 없지? 이 새끼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래도 나랑 약속도 했고... 약속? 지금 여기까지 와서 약속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무슨 의미가 있어? 이미 3일씩이나 연락도 없이 그 새끼 옆에 붙어 있다는 것 만으로 끝났잖아. 
끝났잖아. 
끝났잖아. 
끝났잖아.
끝나긴 뭐가 끝나. 내가 끝낸 적이 없는데 왜 끝나. 누가 사냥개야. 누구 마음대로 날 부려먹고 버려. 내가 언제 끝낸다고 말한 적 있어? 내가 왜 2일이나 머저리처럼 있었는지 모르겠다. 바로 나가려고 문을 벌컥 여는데 그 앞에 오키타가 졸린지 하품을 하면서 벌컥 열고 나오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 가?"

오키타는 굉장히 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를 지나쳐서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잃고 이 새끼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을 옮길 뿐이다. 오키타는 이불을 깔더니 누워서는 이불을 덮었다. 

"나갈 거면 얼른 나가든가"

오키타는 안대를 쓰더니 이불을 당겨서 덮는다. 홧김에 열었던 문을 다시 닫고서 이 녀석 앞에 앉았다.

"야"
"... 자려고 안대까지 했잖아"
"... 너 오랜만에 왔어. 심지어.."
"...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자"

전형적이다. 전형적으로 사냥개를 어떻게 버려야 좋을지 고민하는, 혹은 아직 버릴 타이밍이 오지 않아서 시간을 끌어야 하는 사냥꾼이다. 멍청해 보이는 안대를 쓴 이 녀석을 한참 쳐다보다가, 신경질적으로 안대를 벗겨서는 던져버렸다. 갑자기 들어오는 빛 때문에 눈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 붉은 눈동자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화를 내서 무엇을 얻고 싶은가? 쏟아내려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멈칫하다가, 올라타서 거칠게 키스했다. 저항할 거라고 생각했다. 몸 부림을 치면서, 입술이라도 깨물면서 키스를 강제로 끝낸 후 나에게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소리라도 지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키스에는 순순했다. 이 태도에 조금 당황해서 입술을 떼자 오키타는 나를 보곤 말했다 

"이렇게나 기다렸구나... 나를.... 키스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해. 키스하면 되잖아. 근데 나 지금 계속 밤새워서 너무 힘들어. 어제 회식한대서 술도 좀 많이 마셨고.... 나 좀 잘게"
"...."
"표정 뭐야? 그럼 옆에 와서 같이 자던가"

오키타는 제 옆을 톡톡 치면서 말했다. 

"... 옆에서 끌어안고 계속 너 못 자게 할 거야"
"그건 안되는데..."

옆에 와서 자라는 말에 지금껏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게 내 오해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오키타는 경찰이고, 경찰 간부가 납치되었던 큰 사건이니 더 바빴을 것이다. 곧바로 뒤에서 오키타를 끌어안고 계속해서 뒤 목을 핥았다. 뒷 목과 머리카락에서는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머리카락이 내 얼굴에 스치는 촉감이 촉촉해서 보니, 머리카락 끝이 덜 말라서 부드럽게 뭉쳐있었다. 그리고 순간, 그 촉감과 샴푸 냄새, 몸에서 나는 비누냄새, 아직 가시지 않고 남아있는 술 냄새를 확인하자마자 왜, 왜 씻고 왔지? 하는 의문이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었다. 한번 가득 차있었던 생각은 쉽게 나가지 않는 법이었다. 귓볼을 반쯤 물며 물었다.

"어디서 씻었어?"
"어디긴 씨발. 둔영에서 씻었지. 밤새웠다고 했잖아"
"흐음"
"잘 거야. 말 걸지 마"

그리고는 얼마 안 돼서 잠들었는지 색색하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자주 새벽 당직을 선다면서 늦게 왔던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샤워를 하고 집에 들어왔었고, 그땐 그 어떤 의심도 해본 적이 없다. 지금 나의 이런 태도는 내가 놓아준 누나의 남자친구에 대한 열등감이다. 

뒤로 셔츠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앞 단추를 두어 개 가만히 풀었다. 조금 더 모습을 드러내는 뽀얀 어깨와 목덜미. 혹시나 가슴 안쪽에 자국이 있지 않을까 싶어 안고 있던 팔을 풀고서 훑어보았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 훑어보며 안심하면서도 이상했다.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멍하니 셔츠를 열어서 가슴과 목덜미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 피식하는 웃음소리에 오키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가 웃긴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하냐? 표정을 보니 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생각일까... 졸음이 반쯤 들어 나른한 눈으로 반쯤 눈을 휘며 웃었다. 그리고 나는 살며시 쥐고 있던 이 녀석의 셔츠를 놓았다. 잠깐의 정적과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만 째깍째깍하고 가볍게 들린다. 그리고 오키타는 다시 눈을 가볍게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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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은 꺼놨다. 방해받고 싶지 않다. 히지카타는 입원을 한 다음 날 저녁, 바로 퇴원을 했다. 전에 있었던 상처는 이미 깨끗하게 아물었고, 단지 피곤에 쌓였을 몸을 좀 쉬어주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히지카타답게 그동안 미뤄놓은 일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쿠리코에게 전화를 하는 옆에서 미세하게 들리는 쿠리코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말에 쿠리코는 보고 싶으니 꼭 일찍 오라며, 애교 있는 말로 졸라대었다. 전화를 끊은 히지카타는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더니 집에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평소의 나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이번엔 일을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함께 둔영으로 들어갔다. 히지카타는 먼지 쌓인 자신의 책상을 닦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 그러게"

그리고는 내 책상에 아직 미쳐 다 뿌리지 못한 실종신고 전단지를 발견하고는 피식 웃으며 빨리 버려달라고 말했다. 사진은 꽤나 잘 나온 걸로 해주지 않았냐는 내 질문에 자신은 실물이 더 잘생겼다고 말한다. 저 새끼 말이 사실이라 더 짜증난다. 자리에 앉아서 서류를 뒤적이는 히지카타를 보며 말했다.

"중요한 일은 아마 곤도씨나 마츠다이라 아저씨가 다 처리했어. 이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무리는 무슨, 너야말로 웬일이야? 집으로 돌아가"
"... 너 도와주고 나서 너랑 술이나 한잔 마시고 싶어서"
"나?"
"그럼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아.. 나는...."

히지카타는 내 제안에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분명 아까 쿠리코가 빨리 들어오라며 졸랐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너 찾으려고 이렇게 개 난리를 쳤는데 술 한잔 못 마셔줘?"

전단지 한 장을 들고서 눈앞에 다시 내밀었다. 내 얼굴과 전단지를 번갈아보더니,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알겠다고 했다. 

나와 술을 마시고 일찍 들어가려고 했는지, 아니면 정말로 일이 많지는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은 1시간 반 정도 후 바로 끝났다. 그리곤 전에 자주 갔던 술집으로 함께 갔다. 내가 유난히 기뻐 보였는지 히지카타가 나를 보고 자꾸 웃었다. 짜증 나면서도 이번엔 기뻐하는 내 모습을 내가 감추지 못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실실 웃는 것이었다. 이상한 설렘이었다. 안주를 고를 때에도 들떠서 매일 봤었던 메뉴판을 다시 보며, 이거 먹을까? 오늘은 이걸 먹어볼까? 하고 대화를 하는 이 작은 순간이 좋았다.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맞다. 오늘 퇴원했는데 술 괜찮으려나? 하고 물었다. 히지카타는 어이없어하며, 그런 걸 술을 따르며 이야기하느냐면서 우리가 언제 다쳐서 술을 안 마신 적이 있었냐며 웃었다. 잘생겼다. 어떻게 이놈은 이렇게 가장 초라해 보여야 할 퇴원 이후의 순간조차 잘생겼을까. 두어 잔 술을 주고받으며 히지카타가 없을 때의 둔영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 그때 나도 모르게 곤도씨한테 대들었다니까요? 내가 막 소리 지르니까 곤도씨 표정이 아주... 야 소고, 자주 느끼는 거지만 너 반말하다가 이렇게 가끔 존댓말 쓰면 소름 끼쳐. 그럼 더 자주 해야겠다. 맨날 소름 끼쳐서 죽으라고. 참나, 그러든가. 여하튼 그때 곤도씨가 엄청 당황해했어요. 그래도 누구처럼 막 화내고 그러지 않고 나중에 막 고생했다고 위로도 해주고... 그 '누구' 가 설마 나야? 어, 맞긴 한데 노린 건 아니야. 노렸고만 뭘. 아니에요 노린 거 아니야. 술이나 먹어. 

술기운이 조금씩 올라올 때쯤, 히지카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쿠리코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잽싸게 핸드폰을 낚아채고는 말했다.

"치사합니다 부국장님. 전 핸드폰도 꺼놨는데 이러기 있어요?"
"... 뭐야.. 취했냐? 이리 줘."
"싫어 받지 마. 이거 받으면 너 갈 거잖아!"
"어딜 가~ 늦게 간다고 말이라도 해놔야 걱정 안 하잖아"
"그니까아 난 핸드폰도 꺼놨는데 이럴거냐고"
"그럼 너도....."

히지카타는 뒤에 무슨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멈추고는 한숨을 잠시 내쉬다가 말했다. 

"그래. 전화 안 받을게. 이렇게 말해도 너 내 핸드폰은 안 줄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히지카타의 핸드폰을 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가지고 있어. 우리 둘 다 전화받지 말자"
"웅. 그럴 거야"
"그나저나 너 취한 거 같아"
"안 취했어! 술 더 줘요!"

사실 지금 나는 조금 취했고, 눈이 조금 풀렸다. 히지카타는 나를 보더니 내가 내민 잔을 보더니 술을 따라주었다. 그리고는 날 보더니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조금 망설인다. 할 말이 있는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때의 히지카타의 모습을 잘 안다. 분명 쿠리코의 이야기를 꺼낼 때, 그럴 때 보통 저런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 히지카타가 입을 열면 또다시 쿠리코 이야기를 하겠지. 그러면 살짝 내가 곧 터트릴 쿠리코의 불륜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다. 히지카타는 조금 더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너, 핸드폰은 왜 껐어?"
"....내 핸드폰? 그야.... 귀찮으니까"
"왜 귀찮은데? 누가 귀찮게 해?"

...이상한 질문. 뭐야 이번엔 쿠리코 이야기가 아닌 거야? 아니면 쿠리코가 나에게 전화를 할 거라고 생각하고 물어보는 건가?

".... 뭘 위해서 물어보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아무하고도 연락하고 싶지 않아서..."
"그니까 그 '아무하고도' 라는 범위에 들어가는 사람이 누구냐고. 너한테 연락하기 싫어서 벌벌 떠는 너네 1번대 애들은 아닐 거고, 나야 같이 있으니까 아닐 거고, 곤도씨? 마츠다이라 선생? 아니면..."
"아, 알았다! 히지카타 너어.."

히지카타의 초조하면서도 이상하게 화가나보이는 그 표정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나랑 쿠리코랑 연락할까 봐 그러는 거야?"
"걔가 너한테 연락을 왜 하겠어? 그게 아니라..."
"하하 맞잖아. 이상한 거 느끼는 거야?"
"소고!"
"우웅?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술잔을 홀짝 마시자 내 술잔을 신경질적으로 빼앗았다. 아까워라... 술을 절반이나 흘려버렸잖아! 빼앗긴 술잔과 테이블에 흘려버린 술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아? 왜 마시던 걸 가져가는 건데에! 다 흘렸잖아! 술은 다시 담을 수도 없는데...."
"너 누구랑 살아 지금"

히지카타의 표정이 우스웠다. 뭐야, 답지 않게 나를 향해서 무서운 얼굴 하고 말이야.

"..음.. 친구랑 산다고 했잖아. 하하 얼굴 뭐야?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야?"
".. 친구.. 그러니까 친구가 누구....!."
"왜애! 그런 거 전에는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지금은 왜 그게 그렇게 궁금한건데에! 내가 핸드폰을 꺼둔 게 그렇게 신경 쓰여? 이 오키타 소고가 설마하니 스토킹이라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봐? 하하 언제부터 그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았어?"
"... 관심 항상 많지. 왜 그래"
"... 많았어? 다행이다...! 나도 많아... 나 히지카타 너 없어졌을 때.. 정말 죽고 싶었어요.. 대원들이고 곤도씨고 마츠다이라 선생이고 전부 다 답답하고.. 그래도 같이 있는 친구가 많이 도와줬어. 전단지 돌릴 때도 같이 붙여주고... 제보 전화는 또 얼마나 많이 왔는줄 알아? 너 닮은 실종자를 50명도 넘게 만났어. 진짜... 진짜루우...  엄청 다쳐있거나 팔 하나, 다리 하나 없는 그런 사람 들 보면 가슴이 얼마나 덜컹 했는 줄 알아? 다시는... 이렇게 내 앞에서 멀쩡하게 있는 너를 보지 못할까 봐... 부국장이 아닌 너를 보고 싶지 않아서..."
"... 그래... 고생했어. 미안하다"
"근데에 왜 이렇게 나한테 화난 표정을 지어어? 자꾸 갑자기 핸드폰 이야기하고..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
"소고, 내가 지금 그런 말한 게 아니잖..."
"나안.. 가끔 생각나.. 너랑 나랑 둘이 살았을 때 말이에요. 너 결혼하기 전에. 내가 맨날 짜증 냈지만 그래도 나는 그때가 굉장히 좋았다고... 집에 와서 같이 이상한 요리해주는 너도.. 웃겼고....."

내 말에 히지카타는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라서 마셨다.

"어어?! 왜 혼자 마셔?!"
"소고 너 취했어. 그만.."
"그만 마시라고 할 거지? 그러지 마. 나 이렇게 너랑 술 먹고 싶었단 말이야아"

히지카타는 아무말 하지 않고 자신이 빼앗아갔던 나의 술잔을 다시 내 앞에 놓아 주었다. 나는 취했고.. 또 점점 더 취하고 있었고 어느새 어떤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 손잡아 줘. 정말 네가아 내 앞에 있는지. 갑자기 정신 차리면 없어지는 게 아닌지이.... 무섭단 말이야"
 
히지카타는 피식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됐냐?"
"응 됐어! 히지카타 맞지? 정말... 정말 히지카타가... 맞지...?"

히지카타의 표정이 조금 씁쓸해 보였다. 그리고는 술 집에 걸려 있는 시계를 힐끗 본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2시 1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이 커다란 손. 저 시계를 몇 번 더 바라보며 히지카타는 나를 떠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시계를 두어 번 쳐다본 후에 떠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며 바쁘게 뛰어가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하얀 토끼처럼.. 엘리스는 그때 하얀 토끼를 단순하게 쫓아가는 게 아니라 죽일 기세로 뛰어서 시계를 부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 토끼도 즉시 달리는 것을 멈추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경험도 하지 않았겠지... 나는 술잔을 들어서 벽에 있는 시계를 향해서 있는 힘껏 던졌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부실한 시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가 던진 튼튼한 술잔에 맞아서는 2를 가리키던 바늘이 6으로 푹 고꾸라진다. 나는 그걸 보며 큰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나 웃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히지카타는 내 손을 놓고는 바로 누군가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며 술값을 치르고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서 데리고 나갔다.

"집에 가자 데려다줄게"
"... 이거 봐아! 너 그럴 줄 알았어... 시계.. 본 순간 너 집에 갈 줄 알았어어.."
"무슨 소리야. 얼른 가자"
"싫어. 안가"
"...."
"너도 안 갈 거야. 나도 안 갈 거고"
"가자. 점점 추워진다. 응?"
"나랑 오늘 같이 자면 안 돼?"
"... 무슨. 안돼. 집에 가자"
"싫어어어!! 그럼 나 너 따라갈 거야"
"...야.. 너 진짜"
"부탁이야. 딱 한 번만. 응?"
"너.. 아침에 깨고 나서 후회할걸?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거"
"후회는 내가 하잖아, 네가 하는 거 아니잖아! 가자. 응?"

히지카타는 내 고집에 졌다는 듯이 내가 손을 잡고 가는 데로 마지못해 끌려갔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초라하지도 않은 그런 숙박업소에 들어갔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침대가 있는 방은 없었고, 다다미 방에 침구가 깔아진 방을 안내해주었다. 히지카타는 이게 뭔 짓이냐며 한숨을 푹푹 쉬며 얌전히 개어져 있는 이불에 등을 기대며 앉았다. 내가 우겨서 사온 맥주 두어 캔과 입실할 때 준 물 두어 병을 보더니 히지카타는 맥주를 땄다. 그리고 나에게는 물을 주었다.

"넌 그만 마셔"
"너는 왜 먹는데에?"
"먹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나랑 먹지"

히지카타의 옆에 앉아서 어깨에 살며시 기대었다. 히지카타는 나를 힐끗 볼 뿐, 맥주를 따서 한없이 들이킬 뿐이다. 피곤한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술기운 때문에 몽롱하게 꿈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그 경계에서 기댄 히지카타의 체취에 취해서는 중얼거렸다. 쿠리코가 먼저 청혼했어?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히지카타는 맥주를 들었던 손을 멈칫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내 입은 말을 듣질 않는다. 너도 알겠지만 나 그 여자 되게 싫어요. 당연하다는 거 알지? 근데 왜 나한테 갑작스럽게 통보했어? 너도 말 못해서 타이밍 보고 있었던 거죠? 너도 말 못할 정도였다면 나 이해하지? 이해 못하면 안 돼. 넌 끝까지 말 안 할 것 같지만.. 그래도 궁금해. 정말 그 여자 좋아해? 사랑하냐고 물어보면 내가 더 비참할 것 같아서 그렇게는 물어보기 싫어. 그렇게 빨리 그 여자랑 결혼할 거면 왜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렇게 평생 옆에 있을 것처럼 굴었어... 그리고 너 내가 아직도 누나 때문에 쿠리코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물론 완벽하게 아니라고는 말 못하지만.... 아무튼... 넌 그게 문제야.. 그런 면이... 진짜 사람 비참하게 만든다고.. 웅.. 그렇다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왜인지 침구 위에 이불까지 덮은 채로 자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없었고, 내가 가져갔던 히지카타의 핸드폰도 없다. 아픈 머리를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탁자 위에 쪽지 하나를 남겨두었다.

[고마워. 나를 그렇게 걱정해줘서.. 새벽까지 근무한 걸로 해 둘 테니까 오후에 나와]
​[그리고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정갈한 글자에 갑자기 혈압이 확 오른다. 하 시발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머리도 아파 죽겠는데.. 어제 가지고 들어왔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에서조차 술 맛이 나는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오늘 아침에 내 곁을 비운 히지카타는 곧 쿠리코의 옆자리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괜찮다... 

히지카타가 남긴 쪽지를 주먹으로 구겼다. 힘없는 메모지가 동그랗게 모여지며 엉망으로 구겨졌다.

얼른 샤워라도 하고 집에 가서 편하게 더 자야겠다. 이제 슬슬 카무이 녀석도 지랄할 타이밍이니 들어가서 달래줘야지. 내가 마지막에 이 녀석을 버릴 때까지 이 녀석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믿었으면 좋겠다.  집에서 무방비로 있다가 들이닥친 대원들, 그리고 내가 수갑을 채우기 전까지. 수갑을 차고도 나를 보며 무슨 일이냐며 말도 안된다며, 감옥에 들어가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나를 찾았으면 좋겠다. 히지카타 때문에 자신을 화나게 하지 말라고 했던가... 히지카타 때문에 네 모든게 날아갈거야. 

너도 나와 헤어지는 순간은 순순하지 않을거지? 나 역시 순순하게 헤어질 생각은 없었나봐. 네가 당황하는 표정은 별로 본 적이 없으니 꼭 한번 보고 싶다. 어떤 표정일지 기대할게. 
하지만 너와 있었던 모든 일이 즐거웠어.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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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게 느끼는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순간 영원히 그 대상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할 수 없다. 열등감이란 가장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감정이다. 굉장히 끈적끈적하고도 투명해서 자신 안에 그런 괴물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그걸 알아챈다고 하더라도 인정하기 힘들다. 인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변하는 건 없다. 


내가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어릴 적 부터 있었던 감정이다. 괜히 부정하지 말고 인정하자. 그렇게 하면 편해질 거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었지만 역시나 변하는 건 없었다. 변하는게 없다면 항상 저 새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렇게 초라하게 있어야 하나? 그래, 이런 감정은 영원히 나에게 자라는거야, 하고 생각하면서?


초라해? 내가?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든 것은 그 시간과 상황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나를 향해서 웃어주는 게 당연하잖아? 내가 초라하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일시적이고, 현재 상황이 맞지 않는 것 뿐이야.




아부토와의 상의 없이 내 멋대로 오키타에게 누나의 남자 친구를 풀어주겠다고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아부토에게도 우선 이야기를 해야 했다. 답지 않게 머뭇거리면서, 소파에 피곤한 듯 털썩 앉아있는 아부토의 맞은편에 앉아서 말을 꺼냈다.

"그 경찰 놈, 5일 후에 전화해서 풀어주자"

"그래 어디로 나오라고 할까? 돈은..."

"돈은 네가 알아서 받아"

"단장이 직접 할 거야?"

"뭘?"

"현장에서 죽이겠다며"

"아.. 아니.. 생각이 바뀌었어. 그냥 살려서 보내자"

"왜?"

"그냥 귀찮아서"

"네놈이 귀찮다는 이유로 살려주기도 한단 말이야?"

할 말이 끝났다며 무심하게 일어서서 나가려는 내 어깨를 붙잡고 아부토는 물었다. 어떤 대답을 해야 아부토가 납득할지 잠시 생각해야 했다.

"... 단장, 너 지금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거지?"

아부토는 내 표정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럼 살려주자"

아부토는 그 말을 뒤로하고 단원들에게 말을 전하려 걸음을 옮겼다.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렇게 순순하게 납득하는 모습은 수상하다. 보통이라면 왜 그러느냐면서 더 물었어야 할 텐데.

"아부토!"

내가 부르자 아부토가 뒤를 돌아본다.

"불필요한 잡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

"단장, 너 지금 이상하다?"

"...내가?"

아부토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 이유를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말하는 게 좀 수상한데? 어차피 단장의 명령에 따르는 게 내 역할인데"

아부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게.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그대로 내 방의 소파에 털썩 누웠다. 5일 후, 그리고 달라질 나의 태도와 오키타의 태도.... 오키타는 벌써 변하고 있었다. 누나의 남자친구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나의 확신에 찬 말투와 설득, 그리고 매일 볼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조건에 그간 기생하고 있던 우울의 기운을 모두 토해낸 것 같았다. 아침에 나갈 때 여전히 전단지를 한 묶음 들고나가면서 무엇이 즐거운지 갔다 오겠다며 활달하게 집을 나섰다. 그렇구나. 그 놈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너의 감정은 저렇게 생기를 띄는구나. 하지만 이상했다. 여유 없이 불안한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서 히지카타를 놓아주겠다고 했던 나였지만, 진짜로 눈에 띄게 활달해진 모습을 보니.. 기분이 전부 꼬여버린 실타래 같다.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머리가 아프다. 복잡함을 앓고 있을 때, 카구라가 카페에 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항상 나도 모르게 나갔었지만 이번의 연락에는 나를 움직이는 힘이 사라졌다. 가면 또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같이 살자는 둥, 연락을 피하지 말라는 둥, 그런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을 게 뻔하다. 핸드폰을 옆으로 던져놓고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핸드폰의 전화 소리는 꿈속까지 침범해서 내 옆에서 계속 울었다.











-

주어진 5일. 길지 않은 시간동안 어떻게 하면 저 여자를 최대한으로 괴롭힐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모든 대원들에게 그 여자에게 연락이 왔는지를 물었다. 거의 모든 대원들이 한 번씩은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어제 쿠리코와 카페에서 만난 이후에도 연락을 받은 대원이 두어 명 있었는데, 가장 연락을 많이 받는 대원에게 물었다. 

"쿠리코, 아, 아니 그래, 형수님께서 뭐라셔?"

"...네? 아.. 아니.. 그냥.. 뭐 추가로 나온 건 없냐고 물어셨습니다"

"또 다른 말은 안 해?"

"....아.. 다른 말은... 그냥.. 뭐 자기가 괴롭히려고 연락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래?"

언뜻 이 대원을 쓱 훑어보니, 전엔 잘 몰랐었는데 키가 훤칠했다. 게다가 살짝 긴 검은 흑발에 옆으로 매력있게 째진 눈이 약간 히지카타와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물론, 히지카타가 옆에 있었다면 보이지도 않았을 외모였지만 히지카타가 없는 이 순간, 가장 비슷한 인상의 대원에게서 히지카타를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혹시 만난 적도 있어?"

"아.. 있지만..."

"따로 만난 적도 있단 말이야?!"

내가 약간 눈을 빛내며 묻자 이 대원의 낯빛이 심각하게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대장. 오해십니다. 둘이 만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항상 같이 있는 대원과 함께 나갔었어요. 그리고 간단히 차 한잔 정도 하고 바로 돌아온 것뿐입니다.."

"누가 뭐래?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왜 그래 너 혼자?"

내 말에 옆에서 듣던 다른 대원들이 다 키득키득 웃었다.

"왜, 영화에 많이 있잖아. 남편을 잃은 형수님의 부재를 달래주는 부하직원. 이런 거 스릴 넘치고 좋은데"

"...맹세코 대장님이 상상하시는 그런 일, 없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냥 물어본 거야"

뒤돌아 나가려는데 수군대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 야야, 오키타 대장 미친 거야? 왜 저런 소릴 해? 부장님 이야기 나오면 웃지도 않고 항상 찾은 증거가 이것 밖에 없냐고 개지랄 떨던 사람이 갑자기 표정도 갑자기 변하고.. 완전 무서운데... 혹시 이제 대장도 지친 게 아닐까? 부장은 이제 못 찾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마츠다이라 선생과 곤도씨의 서재 앞에서 조용히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마침 둘의 대화는 히지카타였다. 둘이 내 쉬는 한숨소리에 무게가 느껴졌다. 그도 그럴게 지난번에 마츠다이라 선생은 하루사메에게 히지카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며 신센구미에 있는 눈먼 예산들을 모조리 꼴아박았다. 내가 알기로도 이제 남은 예산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곤도씨는 그 사실을 눈치채고 말했다.

"토시를 찾는다면.. 지불할 금액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는 거 다 압니다. 그렇다면 저희 대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서...."

"아니다. 내 딸의 간곡한 부탁이고, 이제 내 사위인데.. 나에게 있는 재산을 처분해서라도 돈 마련해야지"

내가 알기로 마츠다이라 선생은 꽤나 부자였다. 오랫동안 위쪽에 빌붙어 있으며 아래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먹은 양이 꽤나 많아서 자신의 명의가 아닌 마누라나 쿠리코 명의로도 건물이 꽤나 여러 채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아니뗀 굴뚝에 연기는 나지 않는 법이다. 

"저.. 그놈들이 얼마를 요구할지.. 만약 찾는다면 아마 기고만장해서 더 요구할 겁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우선 찾기를 기다려 보자고"

쿠리코가 제 아빠에게 내 이야기를 하진 않았는지 내심 궁금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나 보다. 만약 했다면 마츠다이라 선생이 나에게 어떻게 행동을 할지도 궁금했었는데.... 재미없네. 그 이후엔 재미없는 신센구미 내부 사정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순찰이 끝날 때 쯤, 일부러 히지카타와 쿠리코의 집이 있는 쪽을 돌면서 혹시나 그 여자가 밖에 나오지는 않았을지 돌면서 찾았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아무리 만나려고 기를 써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역시 내가 이 여자에게 하는 이런 행동은 하늘의 뜻임이 분명했다. 두 번 정도 그 근처를 배회하다가 쿠리코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으로 무언가를 사오는 중이었는지 작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차의 장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형수님! 어디 갔다 오시는 길입니까? 무거워 보이는데 태워다 드릴까요?"


내 말에 쿠리코는 이제는 혐오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다. 차를 가장 느리게 밟으며 바짝 따라가며 계속 말을 걸었다.


"왜 무시하세요? 안들리셨나? 타세요. 제가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게요. 제 상사분의 아내분이시면 저의 가족 아닙니까"


내 말에 쿠리코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왜 저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죠? 그냥 가세요"

"좋은 의도로 말한 건데 그런 식으로 쳐다보시면 저도 상처 받아요. 기껏 형수님이라고도 불러드렸는데"

".... 그냥 가세요"

"아하, 알겠다! 제가 히지카타와는 닮지 않은 분위기라서 그런 거구나"

"......?"


내 말에 쿠리코는 걸음을 멈추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저희 대원들에게 연락하고 계시던데, 그 검은 머리카락이 살짝 긴.. 이름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녀석 꽤나 히지카타와 닮았죠? 그 녀석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봤어요. 남녀 사이에는 절대 라는 말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형수님 혹시 히지카타를 핑계로 둘이 은밀하게 만나고 있는 거 아닌..."


내가 말을 끝내지도 않았을 때, 쿠리코는 조수석 차 문을 화난 듯이 벌컥 열었다. 차 문이 혹시 떨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차 문을 잡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하, 차 문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이제 저희 내부에 돈도 없는데 차 문 이라도 날아가면 다 형수님이 물으셔야 한다구요. 타세요. 모셔다드릴게"

"야 이 미친 새끼야!!! 참는 것에도 정도가 있어..."


쿠리코는 차 문을 열고 지금까지 들어 본 그녀의 목소리 중에 최고로 크게 소리질렀다. 그리고는 본인도 지쳤는지 씩씩 대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 애교 많던 눈에는 눈물마저 고인 듯 촉촉하게 젖어있다.


"참으라고 한 적 없는걸요?"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나도 참지 않을 거야!!"

"참으라고 한 적 없다니까요? 아니 전 형수님이 너무나 걱정이 되서 하는 말이죠. 이대로 히지카타가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재혼이라도 생각하시라는 말이에요. 제가 마냥 비꼰다고 생각하지 마시죠~ 전 단지 형수님이 걱정되서 그래요. 이대로 평생 혼자 사실거에요?"

"... 미친새끼"


쿠리코는 차 문을 쾅 하고 닫고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불안하지? 내가 눈치를 챘기 때문에..... 저 재수없는 새끼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혼자 두근두근하는 가슴을 붙잡고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을 거다. 집으로 돌아가서 그 대원과의 관계를 어떻게 감추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거야. 심각한 표정으로 초조하게 집안을 서성이면서......어떻게 하면 감출 수 있을까. 어떤 핑계를 대면 자연스러울까. 히지카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외로운 밤을 홀로 보내기엔 자신 역시 힘들었다며 스스로를 위로 하면서...





둔영으로 돌아와서 아까 연락을 취했다던 대원을 급하게 다시 찾았다. 그 대원은 다시 불안한 눈빛을 하고서 내 앞에 섰다.


"이름이 뭐였지?"

".. 마츠다 입니다"

"그렇구나.. 마츠다.. 오전에 내가 너에게 했던 말은 장난일 뿐이니까 신경 쓰지 마. 나 원래 그런 말 잘하잖아"

"...네 알겠습니다"

"오다가 형수님을 만났는데 말야. 엄청나게 불안해 보이시더라고. 참... 걱정이야. 이러다가 병이라도 걸리시는건 아니신지... 내가 집까지 태워다 준다고 해도 끝끝내 거절하시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오는 길에 일부러 구입한 커다란 핑크색 장미로 되어 있는 꽃다발을 마츠다에게 내밀었다.


"이거 전해주고 와. 내가 줬다고 하면 또 안 받으신다고 할지도 모르니까 네가 샀다고 하고. 뭐 이 정도의 심부름은 할 수 있지? 마츠다이라 선생님의 따님이시자, 부장의 아내인데 우리가 챙겨야 하잖아. 그렇지?"


내가 내민 꽃다발을 가만히 쳐다보던 마츠다는 나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형수님께 연락이 와도 절대 받지 않겠습니다"

"....? 죄송하다는 말 듣자는 거 아닌데"

"저에게 일부러 이러시는 거 다 보입니다. 무슨 속셈이신지는 몰라도 빤히 보이는 덫에 걸릴 만큼 바보는 아닙니다. 차라리 벌을 주시죠"


건방진 새끼가.... 지금 이딴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중하게 나에게 고개를 숙인 이 녀석을 한참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래? 그럼... 어떤 벌을 주지?..... 이 꽃을 산 건 아깝고... 내가 드리면 절대로 안받으실텐데..."

"..."

"그래, 네가 정 그렇다면 내가 드려야지 뭐. 가서 일이나 해"


나는 별 일 아니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마츠다는 나에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이야기하고 가는 것을 보며 작은 카드에 간단한 편지를 썼다.


[형수님, 이제 연락은 힘들 것 같아요. 이 꽃다발로 마음을 대신 전합니다... -마츠다 올림-]


퇴근 할 때에 지나가는 꼬맹이 한 명을 붙잡고 쿠리코의 집 앞에 놓아주라고 하면 그만이다. 저 꽃다발을 받은 쿠리코는 바로 마츠다에게 연락을 해오겠지? 그럼 그 증거를 붙잡으면 그만이고. 5일 안에.. 아니 히지카타가 돌아오는 날, 히지카타가 정신을 차린 날. 그래서 출근을 하면서 바로 예전처럼 자신의 자리를 찾는 그날 바로 이혼..... 아니, 이혼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마츠다이라 선생이 자신의 돈을 들인 것을 어필하며 히지카타에게 이혼만은 참아달라고 부탁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이혼은 절대로 할 수 없게 된다면.. 그렇다면 같이 살더라도 저 여자와 같은 침대를 쓰는 일은 없게 해주시옵소서..


둔영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서 쿠리코가 그 꽃다발을 발견하고 집어드는 장면, 그리고 카드를 보는 장면까지 모조리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그리고 둘이 어디에서 만났는지 마츠다와 친한 대원에게 은근슬쩍 물어 어떤 카페에서 쿠리코를 만나는지도 다 알아냈다. 그리고 그 카페의 CCTV를 확보 하여 만나서 이야기 하는 장면까지. 마츠다가 하는 말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 다른 대원을 포함해서 셋이 만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둘이서 만났던 날이 꽤나 자주 보인다. CCTV안의 쿠리코는 여전히 훌쩍이는 듯이 어깨를 미세하게 떨고 있었고, 이 대원은 근심이 가득한 듯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둘의 데이트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최근에 쿠리코의 집을 드나드는 마츠다와 쿠리코가 찍힌 CCTV를 확보했다. 조금 머뭇거리는 마츠다와 들어오라며 손짓을 하는 쿠리코... 아.. 불쌍한 히지카타.. 나에게 평생을 감사해야해.




바빴다. 늦은 저녁엔 잠들어 있는 히지카타를 잠깐이라도 만났다. 처음에 발견했을 때는 그 난리를 치며 눈물까지 쏟았지만, 이제는 그 조바심보다는 나만이 히지카타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는 이상한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꼈다. 이대로 신센구미에 돌아가지 않고, 나 혼자서 히지카타를 독점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다. 그래서 실제로 납치까지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함과, 이렇게 잠들어 있는 히지카타가 아닌, 히지카타 스스로가 나에게 걸어오도록 하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히지카타는 내 상사로서 나를 이끌어주며 나를 질타하는 그런 모습의 히지카타이기 때문에.. 그런 너를 다시 보고 싶다.


아침엔 똑같이 전단지를 들고 출근, 그리고 오후엔 돌아올 히지카타가 제일 먼저 접할 이슈, 즉 마츠다와 쿠리코의 스캔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리고 이렇게 바쁜 게 즐거운 적도 처음이었다. 이 증거 자료들을 보고서 갇혀 있다가 해방되었다는 기쁨을 즐길 틈도 없이 충격에 빠진 히지카타, 그리고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마츠다와 쿠리고의 놀란 표정... 이혼만은 안된다며 매달리는 쿠리코와 마츠다이라 선생.. 히지카타는 그때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결혼 따윈 부질없고, 결국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는 누나의 옆에서 나와 함께 있었을 때였으며, 누나가 없는 지금은 내 옆에서 영원히 머물러야 함을..





카무이는 집에 없었다. 겉 옷을 벗어 놓은 것을 보니 멀리 간 것 같지는 않은데.. 전화를 걸어보니 옥상에서 바람을 쐬고 있다고 했다. 조금 쌀쌀하다며 나에게도 올라오라고 조금은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새끼 겉 옷을 챙겨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카무이는 아래의 검은 도시 야경을 보며 답지 않게 깊은 생각을 하는 듯이 서 있었다. 내가 옆으로 가서 겉옷을 가져다 주자, 옷을 가져오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하고 중얼거리며 받아 입었다.


"내일이네"

"... 그러게"

"몇 시쯤 전화한다고 했어? 그 시간에 맞춰서 놀란 연기라도 해야 하니까 준비해야겠어"

"... 저녁 8시쯤 한다고 했던 것 같아. 12시에 나오라는 내용으로"

"...고마워"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카무이는 이번엔 굉장히 다운되어 있었다. 나 혼자서 이상하리만큼 밝게 이야기하다가, 조금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나한테 이런 정보 주는 거 걸릴까 봐 그래?"

".... 아니, 그런 문제라면 별로 상관 안 해"

"그럼?"

".... 그냥"


카무이는 조금 이상하게 웃었다. 상태가 평소와는 너무 달라서 조금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찬 바람을 맞고 있는 옆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깨에 살며시 기대었다. 내 이상행동에 카무이는 조금 이상하게 나를 바라보고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가만히 있었다.


"...내가 말 했던 조건... 꼭 지켜"

"....아, 알았어. 히지카타 때문에 널 화나게 하지 말라는 거였잖아. 꼭 지킬게"

"...."

"..절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


나는 어깨에 기댄채로 중얼거렸고 카무이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녀석의 옆으로 보이는 얼굴에서 얼핏 비치는 불안의 감정이 재미있었다. 이 새끼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나에게 보여준 첫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안심시켜야 한다고 느꼈다. 


"너 오늘 기분 안 좋지?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 건 없어"

"근데 지금 기분 안 좋잖아"

"너 지금 재수 없다. 내가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알고 물어보는 거잖아 너"


그 말엔 조금 당황했다. 끝까지 감정을 숨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 새끼와 숨긴다는 단어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당당하게 질문해온다.


"무슨 소리야? 모르겠는데.. 왜 그래 너? 난 그냥 기분 안 좋아 보여서 술이나 먹자고 하려고 했는데"

"술? 술... 그러게, 마실까?"

"응 먹자. 내가 살게"


집에서 마실까, 밖에서 마실까를 고민하다가 카무이가 밖에서 마시자고 말했다. 귀찮은데 집에서 먹자는 내 의견에 오랜만에 밖에서 먹고 싶다고 했다. 전에 요시와라 앞에서 궁상떨면서 혼자 맥주 한 잔 다급하게 마시고 있었잖아, 하고 비꼬는 말까지 잊지 않으면서. 


나는 조금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술집을 가자고 했고 카무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술집을 가자고 했다. 오늘은 저 녀석에게 맞춰주려고 했기 때문에 이 녀석의 의견에 억지로 동조해주는 척하며 물었다.


"아니, 분위기도 좋고 깔끔하고 안주도 맛있고 술도 맛있는데 왜 일부러 다른 곳에 가자는 거야?"

"....거긴 너무 개방적이잖아. 게다가 우리가 그런 곳에서 분위기 잡으면서 술 먹을 일도 없고.."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시나?"

"네가 경찰이니까 네가 나를 담당하면 되겠네"

"아, 체포 준비하라는 건가?"

"그러시던가"


이 새끼가 안내한 술집은 꽤 구석에 있었고 어두운 조명에다가 북적북적했다. 빨간색 레터 조명으로 '라케시스' 라고 쓰여 있었다. 생긴지는 꽤나 오래되었는지 레터 조명이 깔끔하게 빛나고 있지는 않았다. 덩치 크고 험악한 인상에다가 문신까지 전신에 까맣게 새겨놓은 아저씨들이 많이 보이는 걸보니 뒷 세계에서 거래 장소로 종종 사용하는 그런 곳인가 보다. 카무이에게 가장 유명한 요리를 물었더니 두부요리가 맛있다며 이미 주문을 해뒀다고 했다. 네 입맛이 아닌데? 하고 말하자 가끔은 이런 것도 먹는다며 투덜투덜거렸다. 


자리는 구석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원목에 검은 칠을 해 놓은 데다 붉은색에 가까운 전등불이 분위기가 있기도 하고, 어째 조금 으스스하기도 했다. 그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밖에서 들리는 문신한 놈들의 소란 피우는 소리까지 더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안주나 나오기 전에 술을 한잔 마셨다. 쨍하고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했다. 앞에 앉은 이 녀석은 내가 한 잔을 비울 동안 이상하게 말없이 3잔을 연거푸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고서 입을 열었다.

"후회했어"

"뭘"

"왜 알면서 물어봐? 알잖아 너도"

"왜 자꾸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는 그런 새끼잖아"

"그렇긴 하지"

".... 내가 왜 너에게... 히지카타 그 새끼가 있는 곳을 안다고 말했을까"

벽에 몸을 살짝 기댄 채로 작은 술잔을 집어 들며 흐릿한 말투로 말하는 카무이의 눈빛이 왜인지 외로워 보였다.

"... 그야, 네가 나를 좋아하니까"

조금 분위기를 바꿔볼까 하는 생각에 약간의 침묵 후, 최대한 밝게 말을 던졌다. 내 말에 카무이는 우습다는 듯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한다고..?"

"..."

"그런가..."

"..."

"그럼 너는? 나를 좋아해?"

"당연히 좋지"

"정말?"

"응"

"이제 거짓말도 잘하네"

"이제 잘하는 게 아니고 원래 잘했어"

"...개새끼"

"히지카타가 돌아와도 변하는 건 없어. 너도 알잖아?"

"응. 알아. 그리고.... 그 새끼가 돌아와도 변하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너는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을 거라는 것도"


반박을 못하겠다.

나도 이 녀석도 침묵을 지킨 채로 한참을 있었다. 밖에서 들리는 소음이 다행스럽게 우리의 침묵이 어색하지 않도록 매꿔주었다.


"안주 나왔습니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주인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음식을 들고서 들어왔다. 


"오늘은 다른 분이랑 오셨네요? 늘 부단장님과..."

"그만, 오늘은 그냥 놓고 가. 나 본 것도 비밀로 해줘"

"....아. 네 알겠습니다"


꽤나 자주 오는 곳인가 보다. 두부요리와 더불어 성게알을 올린 계란말이와 예쁘게 장식되어 있는 사시미까지 이름 모를 현란한 요리들이 놓였다. 서비스라고 하기엔 조금 과했다.


"자주 오는 곳이야? 서비스가 과한데?"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다른 알바생으로 보이는 어떤 여자가 서비스를 전해드리라고 했다며 보기에도 고급스럽게 보이는 술과 예쁘게 각이 져 있는 술잔 두개를 두고 갔다.


"... 자주 온다기보다는"

"아, 거의 사는 곳인 건가? 혹시 친하다는 그 친구가 하는 술집이야?"

"그런 거 아니야"


카무이는 다시 술을 들이켰다. 나도 덩달아 술 잔을 입에 가져갔다. 몇 잔을 말없이 비우다가 내가 침묵을 깼다.


"나도 지금 후회해"

"뭘?"

"그냥 집에서 먹자고 할걸 하고"

".. 뭐야 집에 가고 싶어?"

"아니, 술 먹으니까 하고 싶어서"


원래라면 이 정도 술 들어갔을 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눈이 반짝했을 텐데 오늘은 별 미동이 없다.


"뭐야, 왜 이렇게 싱겁냐?"

"... 이렇게 될 까봐 밖에서 먹자고 한 거야"

"너도 거짓말 잘하네 내가 가자고 한 곳은 개방적이라거 싫다며? 그래서 이렇게 룸으로 되어 있는데 온거잖아?"

"...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는 거잖아. 후회를 자주 하고 싶지 않으니까"

카무이는 다시 평소처럼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 익숙한 미소를 보고서 안심했다.


"이리 와. 옆에 앉아"

"귀찮은데"

"이미 섰잖아?"


발로 앞에 앉은 이 새끼의 발목부터 위로 훑어가자 내 얼굴을 보며 술을 한잔 따라서 마셨다.


"그만해 여기서 하기 싫어"

"왜? 더 스릴 있고 좋은데"


그 말을 마치고 벌떡 일어서서는 카무이의 옆에 앉았다. 나는 안다. 내가 옆에 앉으면 이 녀석도 결국엔 뿌리치지 못한다는 걸.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가까이에 다가온 나를 뿌리칠 정도의 힘은 없었던 것이다. 옆에 앉자마자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뺨을 만졌다. 그리곤 허리를 끌어당겨서 더 바짝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급하게 키스하고 허겁지겁 목에 입술을 묻는다. 몽롱하게 올라오는 술기운과 더불어 따뜻한 온기가 더해져 오는 게 기분 좋다. 단추를 푸르며 가슴 팍에 손이 내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그 손을 부드럽게 잡으면서 말했다.


"... 하아... 여기서.. 안 한다며"


카무이는 대답 없이 잡은 내 손을 뿌리치곤 다시 내 목에 입술을 묻으며 집요하게 키스했다.


"...자국.. 남는다... 흐으..ㅅ.... 조...조심해"


점점 나를 붙드는 손에서 다급함, 그리고 자제하려는 망설임이 느껴진다. 그렇게 첨엔 안 한다던 놈이 이렇게 나오니까 재밌다. 목에 얼굴을 묻고 있던 이 녀석의 얼굴을 들어서 나를 보게 만들었다. 키스를 하려고 했다고 생각했는지 들이미는 입술을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그만하자. 집에 가자"


내 말이 장난이라고 생각했는지 가로막는 손을 치우고는 내 턱을 붙잡고는 입술을 맞대었다. 가볍게 맞닿은 후 다시 뒤로 빼며 다시 말했다.


"집에 가자"

"...뭐야, 장난 그만해"

"...너도 여기서 할 생각 없었다면서. 가자"

".....응..?"

"날도 좋은데 걸어가자 30분 정도면 갈 텐데"


단추를 잠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 말에 이 새끼 표정이 묘하게 열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이 진심인지 장난인지 계산하는 듯 묘하게 일그러졌다.


".... 장난 그만하고 이리 와. 여기서 마저..."

"장난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나가자. 근처에..."

"이 근처에 숙소 싫어. 다 낡은 곳이잖아. 이렇게 좋은 술 먹고 그런데 가면 기분 더럽잖아"

".....너 왜 하지도 않던 짓을 해?"

"재밌잖아"

"그래 나가자"


내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에 나는 다시 앞에 앉아서 말했다.


"우선 앉아. 지금은 안 갈래. 술 더 먹고 천천히 가자"

"......너.."

"자, 한 잔 마셔"


술을 가득 따라서 한 잔 내밀었다.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받아들고는 신경질적으로 홀짝 받아 마셨다.


".... 오늘따라 왜 이러지?"

"그러게, 기분이 왔다 갔다 하네"


카무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잡아 달라는 뜻으로 손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 녀석 손에 내 손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그리곤 나도 똑같이 오늘따라 왜 이러지? 하고 물었다.


"그러게, 나도 이상하네"


카무이는 내 말에 약간의 한숨 섞인 대답을 했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선 불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불안의 원인이 나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동시에 이제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생각했다. 히지카타가 쿠리코의 불륜을 알아챈 다음, 히지카타가 그 여자를 용서할 수 없다며 나에게 올 때. 확실해졌을 때 헤어지자. 그런데... 어떻게 헤어지지? 집을 팔아버릴까? 이제 혼자 있고 싶어졌다고 할까? 아냐, 너무 막연해. 깔끔하게 그만 만나자고 할까? 아냐 아냐, 그렇게 말하면 분명히 난리를 치겠지. 깔끔하게 말하지 말고 나 답지 않지만 착하게 말해볼까? 착한 아이 증후군에 걸린 사람처럼, 난... 경찰이고.. 넌 범죄 조직에 있잖아.. 내 옆에 계속 있다면 너도 위험할 거야... 하고 눈물이라도 흘릴까? 생각만으로 토 할 것 같다. 카무이는 완전히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뭐야? 연예인이라도 할 생각인가? 하고 웃으면서 물어보겠지. 어째 헤어지는 것으로 이렇게 고민을 해야하나....? 아...! 그렇지 죄를 뒤집어 씌우자. 10년에서 15년 정도 감옥에서 살다 오는 것도 좋겠다. 죄 명은.... 가장 적당한 걸로 하면 되겠네. 



'경찰 간부 납치 사건 가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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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압캄압 요소 주의*





30












히지카타를 찾았다고?

이번에도 거짓 제보 일 수도 있다. 수백 번을 거짓 제보에 헛걸음을 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기대하게 된다. 이번에는 정말로 히지카타를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그 막연한 희망.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새끼는 찾았다는 내용의 문자 하나를 보내놓고는 내가 바로 전화를 걸자 이번엔 전화를 안 받는다. 시발 사람 돌아버리게.


[전화 왜 안 받는데? 너 장난이었어 이딴 소리 하면 진심으로 죽여버린다]

[너도 내 전화 안 받았잖아]

[진짜로 찾았어? 어디야 너]

[무서워서 말하겠어? 눈에 띄면 죽이겠다고 하던데.. 집에도 오지 말라며?]

[미안 내가 잘못했어... 어디야?]

[내가 어떻게 믿어? 이러다가 만나면 돌변할지?]

[제발 부탁이야. 미안해. 나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아 정말 찾은 거야? 오늘 몇 시에 와? 빨리 와 주면 안 돼? 못 오면 어디서 찾았는지 그런 정보라도 알려줘 혹시 지금 히지카타와 같이 있는 거야?]


답이 없다.

정말이지 거의 30분가량을 핸드폰만 붙잡고 통화 연결음만 들었다. 나는 어디든지 바로 뛰어갈 요량으로 차 안에서 이 새끼와 연락이 닿기 위해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히지카타가 잘못된 걸까? 그래서 전화를 못 받는 건가? 아냐, 아닐 거야 이 새끼 지금 나 약 올리려고 안 받는 거야. 


[저녁 11시 반에 하루사메 후문 앞으로 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제복 입고 오지 마]


문자 하지 말고 전화받으라고 씨발놈아 라고 썼다가 애써 정신을 붙잡고서 쓴 내용을 지웠다. 그리고는 다시 작성해서 보냈다.


[전화 좀 받아]

[받을 상황 아니야]


하 씨발.... 씨발 뭔데... 현재 시간은 7시 15분이었다. 4시간 정도 남았다. 4시간이나 남은 이 많은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갑자기 온몸이 미친 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핸들에 머리를 기대고는 천천히 숨을 고른다. 모두에게 알려야 할까?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아냐 이번에도 아닐지도 모르는데 우선 침착하게 기다려보자.. 무사한가?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의 히지카타가 맞을까?




10시 반부터 하루사메의 후문 근처를 서성였다. 모자를 눌러쓰고서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상을 하나하나 본다. 밤의 요시와라 라는 말이 헛되지 않듯이 곳곳에 술 취한 사람들과 잔뜩 꾸민 여자들이 내 앞을 수도 없이 지나갔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불빛들에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다. 진한 향수 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왜 이렇게 시간이 가질 않는지 시계를 볼 때마다 1분, 2분씩 지나 있었다. 조금 진정해볼까 해서 시간도 떼울 겸 근처의 적당한 크기의 가게에 들어가서 바 테이블에 앉아서는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가게는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시끄러운 웃음소리와 이야깃 소리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했다. 조용했다면 내 안으로 삼키는 상상으로 5분도 견디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것과 별개로 이 와중에 술 먹을 정신도 있느냐고 다그칠 수도 있지만.... 하지만 그 이상으로 진정되지 않는 나를 억지로라도 진정시켜야 했고,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빨리 지나가도록 독촉해야 했다. 주문한 맥주를 앞에 놓아주었다. 차가운 물 방울이 옆에 방울방울 맺혀 있다. 떨리는 손 때문에 한 손으로 맥주를 들지 못하고 양손으로 맥주 잔을 들고 벌컥 벌컥 들이켰다. 옆에서 나를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들이키기 힘든 사약이라도 마시는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11시 3분. 자꾸만 시간을 확인을 하며 단숨에 마셔버린 빈 맥주 잔을 초조하게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대체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옆을 돌아보자 카무이가 내 옆에 앉아서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서 씨익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 이 씨ㅂ...."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멱살을 잡자, 카무이는 여전히 웃으면서 내 뺨을 살짝 쓰다듬었다.


"대장님~ 왜 이렇게 일찍 왔어? 30분이라고 했잖아?"

"씨발 전화받으라니까 전화도 안 받고........"

"받을 상황 아니랬잖아"

"어딨어? 가자. 왜 여기로 오라고 했어?"

"아직 시간 안돼서 못 가. 그래서 내가 30분에 오랬잖아"

"넌 왜 이렇게 빨리 왔는데? 여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우연히 지나가다 봤어"

"그보다, 말 좀 해줘. 어떻게 된..."

"기다려. 곧 보여줄게. 이거 놔줄래?"


그제야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그래도.. 이상했다. 똑같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 새끼가 있다는 것에 내가 조금은 안정을 찾고 있었다.


"확실한 거야?"


내 말에 카무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인사는... 확인하고 할게"

"그래"




시간을 대충 확인하고서는 카무이는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어디론가 향했다. 


"하루사메 안에 있는 거야?"

"조용히 하고 따라와. 소리 내지 말고"


궁금한 게 많았지만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수월했다. 하루사메의 보안이 이렇게 부실했었나 싶게 다른 비밀 통로도 아닌 정문, 제대로 된 문으로 꽤나 당당하게 침입한 것이다. 지키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많진 않았지만 몇 있긴 있었다. 하지만 가서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자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무슨 엘리베이터를 타서야 내가 작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이렇게 허술했었나? 보안이? 외부인이 이렇게 막 침입해도 되는 거야?"

"되겠어? 당연히 안되지"


한참 후, 엘리베이터가 열린 곳은 감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두침침하고 조용했다. 그 어두운 광경... 흡사 감옥 같아 보이는 그 광경들 사이에서 급격하게 심장박동이 증가했다. 혹시나.. 혹시나 이 하루사메 놈들이 히지카타를 고문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어디 하나라도.. 내가 마지막 본 히지카타의 모습이 아니면 어쩌나...... 나는 무서워서 앞서가는 카무이의 어깨를 급히 잡았다. 카무이는 나를 조금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야.... 야... 여.. 여기... 감옥.. 같아 보이는데..."

"... 근데?"

"히지카타의 상태를 봤다고 했지?"

"...."

".. 머.... 멀쩡해?"

"곧 나오는데 보면 되잖아"

"아니.. 나.. 너무..... 하....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어"


카무이는 내 얼굴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더니, 공포에 떠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다소 거칠게 잡으며 말했다. 


"뭐야, 왜 이래. 여기 앞까지 왔잖아. 볼 용기도 없이 날 보챘어?"


그리고는 내 팔을 격하게 잡아끌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식어간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당황했고, 동시에 겁에 질렸다.. 겁에 질린다는 감정.... 자주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만, 급격하게 느껴지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 다가오는 무력감과 한동안 나를 괴롭혀 올 그 잔상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움츠리게 되었다. 곧 보게 될 히지카타의 몰골.. 그 몰골이 너무 두렵다. 그것을 보고 내가 후에 느끼게 될 감정이 너무나도 두렵다. 그 광경을 보고 내가 어떤 패닉을 겪게 될지 두렵다. 하지만 나를 끌어당기는 이 무자비한 놈은 나의 거친 저항과는 상관없이 그 두려운 장소의 앞으로 나를 잡아당긴다. 발이 꼬여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이 새끼는 나의 그런 상태에 대해서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 여기야"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마에 차가운 땀을 닦으면 저 어두운 창살 사이를 덜덜 떨며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려워 했음에도... 히지카타가 있다는 곳의 앞에 끌려오니 궁금함을 참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급하게 창살 앞으로 다가가서 안을 살폈다. 히지카타다... 정말 히지카타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탄식하듯이 어.....어? 히지카타...? 하고 홀린 듯이 창살에 붙어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맞지...?히....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 나.. 나야, 나... 나왔어....! 히지카ㅌ.....!"


카무이는 뒤에서 내 입을 거칠게 막았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미쳤냐며 다그쳤다.


"네가 그렇게 소리 내면.... 확인하러 올 거 아냐...!"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현실적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녀석이야 히지카타와 관련이 없으니 그렇다고 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 자잘한 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그저 카무이에게 입이 막아져선 한참을... 왜 흐르는지 모르는 눈물이 한참을... 카무이 녀석의 손과 내 뺨을 적시었다.  


".. 좀.. 다쳐서 치료하고 있다고 했어. 너희에게 연락이 가기까지는 3일에 정도 후에.."


한참을 있다가 대답을 하려 내 입을 막고 있는 카무이의 손을 가만히 풀고 말했다.


"..... 이상은.. 없는 거야...? 확실히 풀어주긴 하는 거야? 이놈들이?"

".... 확실해"

"못 믿어. 지금 내가 데려갈 거야."


나를 잡으려는 카무이의 손을 뿌리치고서 잠겨 있는 철창의 문을 억지로 잡아 뜯으려 잡았다. 밑도 끝도 없이 안간힘을 쓰는 나를 보고 굉장히 어이없다는 듯이 카무이는 나를 뜯어말렸다.


"미친놈아! 소란 피우지 마. 여기서 죽고 싶어?"

"내가 너를 어떻게 믿어? 아니 네가 아니라, 이 하루사메 놈들을 어떻게 믿어? 풀어준다고 해 놓고 안 놓아줄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니.. 야, 정신 좀 차려!"

"뭔 정신을 차려? 이 상황에서 내가 지금 진정하고 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 조금만 더 생각해봐. 야, 나,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해? 갑자기 또 무슨 개 소리야 씨발"


욕을 하고 나고서야 급 이상하다는 생각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워서 생각을 정리할 틈은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이 녀석의 행적들이 잠깐 떠올랐을 뿐이다. 사실 전부터도 약간은 짐작하긴도 했었던, 그런 여러 가지 사실들이.


".... 나, 네가 굉장히 잡고 싶어 하는 부류의 사람이야"

"....... 대충 알고 있었어. 근데? 지금 그 이야기 왜 하는데?"

"그러니까 더 확실한 거라고. 너 진짜 멍청하구나"


.....


"정말 믿어도 좋아. 만약 3일 이내에 연락이 가지 않는다면 네 쪽에서 먼저 말해도 되잖아. 네가 먼저 확인한 거니까"

"..... 아..."

"오늘은 제발 조용히 하고 가자. 우선 살아있는 거 알았잖아?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하루사메도 불필요한 잡음을 내고 싶어 하지 않아"

"........." 




카무이가 나를 진정시키기에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겨우 옮기며, 우선 그곳을 나왔다. 나오면서도 다시 카무이에게 말했다.


"네가 너를 믿으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니까.... 히지카타를 반드시 보낸다는 그 말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

"응 책임질 수 있어. 지금 하루사메가 연락하지 않는 이유는 저 새끼가 다쳤기 때문이야. 옆에 있는 의료 기구들 못 봤어? 게다가 몰래 빼가면 너도 입장 곤란해질 거 아냐. 저 집단하고 맞서서 계속 싸울 거야?"


확실히 그건 곤란하다. 하루사메와 진작 맺어놓은 협정도 있고, 하루사메가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면 우리가 눈을 피해서 몰래 침입했다는 증거도 많이 있을 것이고... 


"3일이 너무 길어서 그러면 2일 후에 연락하라고 할게"

"너, 네가 말하면 다 될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래봤자 너 속해있는 조직에서 들었을 거면서. 허세 그만 부려. 새끼야"

"..... 너무 그렇게 이야기했나?"


어쨌든 히지카타를 봤고,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2일, 혹은 3일 후면 히지카타가 다시 내 앞에 올 것이다. 그 희망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게다가 이상하게 확신하는 이 녀석까지.. 나는 너무 피곤했고.. 안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집에 터덜터덜 돌아온 후, 급 몰려오는 피로감에 침대에 풀썩 쓰러져 배를 깔고 누웠다. 그러자 카무이도 내 옆에 따라 눕는다. 잠깐의 침묵 후에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반쯤 몸을 일으키곤 눈이 마주쳐도 눈을 피하지 않는 이 새끼의 파란 눈을 계속 응시하다가, 말했다.


"고마워. 그렇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해줘서 내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어. 고마워."

"....음.. 나는 네가 내 직업에 대해 별 반응을 안 보인 게.. 약간 의외였어"

"왜? 그럼 막장 드라마의 한 대사처럼, 날 속였군요..?! 같은 대사라도 했어야 했나?"

"뭐.. 그런 건 아니었어도 충격받은 표정이라도 할 줄 알았지"

"딱 봐도 너 양아치 같아. 너 같은 놈을 그런 놈들이 평범하게 살게 놔두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나, 이대로 체포할거야?"

"조사해 보고 결정해야지"


카무이는 내 팔을 잡아끌어서 제 얼굴 앞에 바짝 나를 끌어왔다. 이상하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키스해줘"

"....키스?"

"남에게 책임을 이야기할 때 얼마나 확실해야 하는지 알지?"


응? 하고 금방이라도 닿을 거리에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미묘하게 쓰다듬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야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쓰다듬는 머리 부분부터 소름이 돋듯이 쫘악 온몸에 열기가 퍼진다. 나는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아.. 잠깐만"

"응?"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확실하게 할 것은 해야 했다. 아직 히지카타가 돌아온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잠깐 사이에 하루사메 새끼들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잖아"

"... 아냐 그럴 일 없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럼 히지카타가 돌아올 때까지 하루에 한 번은 내가 히지카타의 상태를 볼 수 있게 해줘"

"...."

"왜? 안돼?"

"..아냐, 그렇게 해줄게"

"정말로 가능해?"

"응 그렇게 할게"


카무이는 다시 내 입술에 입을 맞춘다. 잠시의 입맞춤 후에 밀쳐내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도 차질이 있으면 어떻게 해? 그럼..."

"내가 납치라도 해서 데려다줄게"

"...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 정도로 확실하다는 거야. 왜 이렇게 못 믿어?"

"지금 내가 이렇게 불안해하는 게 당연한 거야! 네가 네 일이 아니라서 나를 이해 못하는 거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확신하는 저 녀석의 여유가 짜증스러웠기 때문이다.


"불안한 상태의 네가 싫어"

"나는 불안한 내 상태가 좋은 줄 알아? 나 역시 이런 내가 미치게 싫어! 나도 불안하기 싫고 그냥 네 말 믿고 맘 편하게 쭉 뻗고 자고 싶다고!"

"... 그래"


카무이의 표정은 미묘했다. 그러나 공감을 하고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 그래도 정말 고마워..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정말 안심했어.. 정말이야..."

"..."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변수가 걱정되는 건.. 네가 이해해야 돼. 나에게 히지카타는..."


카무이는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 입에 거칠게 키스했다. 방금 전에 나누었던 간지럽고 부드러운 입맞춤과는 다른 것이었다. 어깨를 밀어내려 뻗는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채었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손목이 저려온다. 놓으라는 의미로 저항하는 내 몸부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 되려 더욱 거칠게 내 옷 속에 손을 집어넣으며 강제로 옷을 벗기려는 이 행동을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오늘 섹스에 대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강제에 가까운 시작은 역시나 기분이 좋지는 않다. 결국 이 새끼의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동시에 입안 가득 번지는 피비린내가 역하게 다가온다. 그제야 카무이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멈추고,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는 입 근처에 살짝 번지는 피를 손으로 닦아냈다. 그리고는 불쾌한 표정의 나를 왜 그러냐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표정이 더 화가 치민다.


".... 씨발!.... 뭐 하는 건데"

"....아퍼"

"어쩌라고, 갑자기 뭔데 이 미친새끼야"


카무이는 표정 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지금 기분이 별로야"

".... 별로? 내 기분은 존나 개 같아"


내 말에 조금 생각하는 듯하다가, 다시 입을 떼었다.


"...내가 필사적으로 그 새끼를 찾아주는 데엔 조건이 있어"

"갑자기 무슨..."

"그 새끼 때문에 내가 열받는... 그런 상황 만들지 마. 지금처럼 그 새끼 이름 부르면서 나를 이해시키려 하지 말라는 거야"

"......뭐야, 조건 한번 더럽네? 그냥 네가 기분 나쁘다고 하면 끝인 거잖아"

"뭐, 그렇지"

"치사한 새끼"


상관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히지카타가 안전하게 돌아오기만 하면 되고, 이 새끼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엄청난 사람도 아닌데다가, 단순하게 하지 말라는 수준의 가벼운 구두상의 조건이야 별 효력도 없다. 히지카타가 돌아올 때까지만 적당히 비위 맞춰주며 부려 먹으면 된다. 이 녀석은 꽤나 유능한데다가, 단순해서 부려먹기가 편해서 좋다. 


"계속하자"


거칠게 벗기려 들어 반 정도 벗겨져 있는 옷을 벗으며 말했다. 카무이는 씨익 웃으면서 내 목에 입술을 묻었다. 오늘은 나도 애무가 길어지는 시간이 좋아서 한참 서로의 몸을 핥았다. 오랜만에 이렇게 달콤하게 침대를 뒹굴게 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안함. 물론 있다. 하지만 이 불안함이 촉매가 되어 내 몸에 닿는 이 촉감 하나하나가 모두 그 이상의 쾌감이 되었다. 카무이는 귀를 핥으며 오늘은 왜 이렇게 더 느끼는 것 같지? 하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허겁지겁 입을 맞출 때에 우리의 혀를 섞는 마찰음 사이로 핸드폰 벨소리가 눈치 없이 울렸다.


"아... 하....ㅅ, 잠깐만"


핸드폰을 찾으려 몸을 반쯤 일으켰다.


"왜, 어딜 가"


카무이는 반쯤 일으킨 나를 다시 허무하게 홱 눕혔다. 


"아니, 전화 오잖아. 전화. 받아야... 아...아앗... 야아.."

"....너...그 새끼 관련 전화인 것 같아서 그런 거잖아? 하아....이미 찾았는데 받아야 돼?"

 

능청스럽게 일부러 민감한 부분 만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자신의 아래에 나를 가두었다. 


"...아...ㅅ... 비...비켜! 그래도 받아야 돼...!"


내가 손을 뻗자 카무이는 자신이 먼저 핸드폰을 홱 낚아채었다.


"내놔!"

"싫어. 내가 받을게"

"미친 새끼야 장난치지 마....!" 


카무이는 내 손을 이리저리 피하며 핸드폰 액정에 떠 있는 이름을 읽었다.


"...쿠..리..코?"


쿠리코...?


"응?"


생각지 못한 이름에 맥이 탁 풀린다.


"이거 누구야? 지금 새벽인데?"

"아.. 놔둬, 받지 마. 그 사람. 그.. 히지카타의..."


그리고 나는 말을 잠시 멈췄다.


"아, 부인?"

"..."


부인이라는 그 말에 아무런 말을 못했다. 우리의 이상한 침묵 속에 벨소리가 몇 번 더 울리다가 끊겼다. 두 번째 전화가 다시 울릴 때 나는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껐다. 카무이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고.. 나는 최악의 기분이 되었다.


카무이와 나는 그날 세 번 했다.  두 번째는 카무이가 멋대로 시작했고, 그 이후엔 내가 더 하자고 했다. 몸은 젖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했는데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여자의 존재를 느끼자마자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꺼두었던 핸드폰을 다시 켜보니 문자가 두어개 와 있었다. 뭐, 언제나 긴 전화 후에 오는 문자와 동일했다. 아직도 소식은 없냐, 뭐 그런 내용이었다. 곧 있으면 다시 저 여자에게로 돌아가게 될 히지카타.... 그렇게 생각하니 허무해진다. 참 간사했다. 찾지 못할 때에는 제발 멀쩡히 돌아와 주기만을 바랐었는데,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생각지 못한 다른 많은 것들이 아쉬워지는 것이었다. 죽 쒀서 개 준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심정이겠지.. 저 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히지카타를 다시 되찾는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치사하다. 


내가 계속 뒤척이자, 깼는지 카무이가 눈을 반쯤 뜨고는 잠에 잠긴 목소리로 왜 안자? 하고 나를 끌어안았다. 



"그러게..."

"..... 우웅... 왜 그래... 너 그래서 맨날 늦게 일어나잖아..."

"야, 나.. 부탁이 있는데"

"... 으응... 내일... 내일 이야기해애.."

"히지카타를 이틀만 더 데리고 있어주면 안 될까"

".... 뭐?"


카무이는 내 말에 잠이 깼는지 반쯤 감겼었던 눈을 똑바로 뜨고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니까... 3일이 아니라 5일... 데리고 있어주는 것도 가능한지 물어보는 거야"

".... 뭐야? 당장 데리고 가겠다고 난리를 칠 때는 언제고"

"아니, 갑자기 조금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 그래 뭐.. 알아볼게... 근데, 뭘 하려고 그러는데?"

"그건 아직 생각 중이니까.. 이제 자자"


달래듯이 카무이를 끌어안고 말했다.


내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되는 데로 평소와 같이 전단지를 들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평소처럼 벽에 열심히 붙이면서 다닌다. 대원들에게 히지카타에 대한 정보가 더 없느냐고 화를 내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쿠리코에게 전화를 건다. 그렇게 자주 전화를 걸어왔으니 내가 한번 만나줘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처럼. 만나서 그 여자의 몰골이 어떤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자. 어떤 상태인지, 어떤 몰골인지.











-

전단지를 붙였다. 아무리 열심히 하는 척을 한다고 해도 이미 히지카타가 알고 있다는 여유에 평소처럼 필사적이지는 못했다. 행동에 의미가 있음과 없음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평소에 붙이던 양을 들고 왔어도 이번엔 반절도 붙이지 못하고서 둔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정대로 쿠리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날보다 훨씬 예의 있는 태도로.


"네, 오키타 소고 입니다. 어제 새벽에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그 시간이면 보통 자고 있는 시간이죠"

[아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통화는 길게 못하니, 짧게 이야기하죠. 오후 한 5시쯤 정도 해서 'falle'라는 카페에서 봐요. 거기서 이야기해요"


전화를 끊자, 의도치 않게 내 통화 소리를 들은 대원들이 작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형수님 말이야. 나한테도 전화 왔었는데"

"너도? 나도 왔었어. 많이 걱정되긴 하시나 봐. 그래도 저녁에 시간이 몇 시인 줄도 모르고 전화를 하시니까.. 뭐.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건 알겠지만.. 새벽에 전화 와서 마누라가 보고 누구냐고 추긍해서 깜짝 놀랐다니까"






시간이 되어 카페로 향했다. 내가 장소로 고른 'falle' 라는 카페는 오렌지 주스가 맛있다. 신선한 오렌지를 사용하는 것 같다. 분위기는 약간 어둑한 곳에 빨간빛을 띄는 주광색 조명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밤에는 펍으로 사용하며 맥주나 위스키 등을 팔기도 하는 곳이다. 예전에 한번 혼자 술을 마시러 갔었을 때, 칵테일을 만드는 사장에게 벽에 장식되어 있는 사냥 총을 보고 진짜 총 인지를 물은 적도 있었다. 체포당하기 싫으니 가짜라고 웃으며 넘겼었는데, 나중에 알기론 취미가 사냥이라고 했다.  


전에 내가 히지카타를 만나기 전의 그 초조함을 이 여자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렇게 전화를 해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갔다. 하지만  내가 와서 자리에 앉아서 음료를 시킬 때까지도 이 여자는 오지 않았다. 주문한 주스가 나오고도 5분 정도가 지난 후에야 유리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먼저 와서 주스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서는 내 앞에 앉았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네. 늦으셨네요.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아.. 저는... "


쿠리코는 메뉴판을 보고 잠시 고민하더니 자몽차 한 잔을 주문했다.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저 그보다...! 히지카타 씨는...."

"듣자 하니까 저희 대원들에게도 전화 많이 돌리시는 것 같던데.... 어제 새벽에 전화했을 때도 없었던 소식이 오늘 아침이라고 있겠어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니면 혹시... 외로워요? 그래서 자꾸 전화하는 거 아니에요?"


내 말에 원래도 안색이 좋지 않았던 이 여자의 얼굴에서 불쾌함이 눈에 띄게 보였다. 


"아니, 왜 그런 거 많잖아요. 남편이나 부인이  잠깐 출장을 간 사이에 바람이 나는 그런 일화, 많잖아요. 남편이 없는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주다가 사랑에 빠진다, 뭐 그런"

"..... 오키타씨.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농담... 정말 기분 나빠요"

"기분 나쁘라고 한거 아닌데, 왜 이렇게 정색을 하세요? 찔려요?"

".....이런 말하려고 부른 거예요?"

"네. 그럼 저에게 무슨 좋은 말이라도 들으실 줄 알고 뛰어나오셨어요? 아니면 저와의 카페 데이트라도 상상하셨나?"


내 말에 쿠리코는 정말로 화가 난 듯 화를 주체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앞의 주스를 마시며 다시 말했다.


"혹시 몰라, 벌써 우리 대원 중 하나와는 섹스 파트너로 지내고 있을지"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쿠리코는 앞에 있는 물 컵을 집어던졌다. 물 세례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물컵을 던질 줄은 몰랐다. 내 옆의 벽으로 유리컵이 와장창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큰 파편은 아래로 떨어지고, 미세한 파편 조각만이 튀어서 다친다거나 하진 않았다. 카페에 있던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고, 놀란 주인이 뛰어와선 나에게 괜찮으냐며 머리나 옷에 묻은 물을 닦으라며 수건을 주고 후다닥 파편을 치웠다.


"물 세례도 아니고 물 컵을 던질 줄은 생각 못했네요. 쿠리코씨" 

"쿠리코씨가 아니죠! 형수님이라고 부르도록 하세요!!"

"....전 히지카타에게도 부장님이라고 안 해요. 그러니 당신에게도 예의를 지킬 이유 없고요"

"....제가 당신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당신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다름 아닌... 당신도 저와 같이 히지카타씨의 실종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힘들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당신의 태도는...."

"저기, 잠시만. 저의 이런 행동은요, 당신이 나에게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건 아닌데요? 게다가 저 역시 히지카타의 실종에 대해서 심각하고 누구보다 간절하게 찾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 둘의 입장이 같다고 하더라도.... 설마 당신을 대하는 제 태도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저에게 따뜻한 위로라도 바라셨어요? 그리고 저 뿐 아니라 신센구미 모두 열심히 찾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 당신이 항상 이렇게 우리를 쪼아대는게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당신이 히지카타의 부인이라고 해서 우리의 부장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다만..."

"저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히지카타를 찾고 있는데, 당신은 가만히 앉아서 우리한테 전화질이나 한다는 게 재수 없다는 거예요. 저는"

"왜 가만히 앉아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더 들을 거 없고요. 아무튼 전화질 그만하라고"


잔에 남은 주스를 마저 들이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쿠리코는 나를 보면서 분해서 미치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쳐다보았다. 더 이상 쏘아붙이면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이 눈까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불쌍하다? 뭐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없다. 어차피 이 여자에게 곧 돌아가게 될 히지카타... 돌려주기 전에 내가 손해 보는 만큼 이 여자도 고통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밖엔 들지 않았다. 너무나 억울하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 그 거대한 장벽이 나를 절대적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것. 운 좋게 내가 먼저 찾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질 수가 없다는 것. 주인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이 현실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계속되는 전화질로 새벽에 잠도 못 자게 만들었으니까 음료 정도는 당신이 사요"


그 말을 하고선 카페에서 자리를 떴다. 유리문 너머로 슬쩍 보니 내가 자리를 뜬 이후로 참고 있었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찮은 자존심에 내 앞에서는 죽어도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재수 없는 년. 뭐가 그렇게 억울한데? 어차피 곧 있으면 히지카타의 옆을 차지할 사람은 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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