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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잡은 물고기와 잡지 못한 물고기의 차이는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잡았다고 하더라도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상태와 정말 어디로 도망가지도 않을 안일한 상태의 애완 물고기. 후자는 정말이지 재미가 없었다. 


물론 오키타는 도망갈지도 모른다. 누나의 남자친구를 보면 또다시 흔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쪽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자수를 할 리도 없다. 갈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최근엔 나에게 많이 맞춰주는 태도를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나로서는 오랜 시간 호감을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맞춰주는 모습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좋게 보여야 할 일이지만.. 기구하게도 그런 태도가 되려 재미없게 느껴졌다. 차라리 이 새끼를 발견한 그 호텔에서의 행동처럼 술에 취해 나에게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며 제멋대로 행동했다면 조금은 흥미가 더 생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키타가 그 여자를 잡아서 죽이고 싶다는 계획에 동의한 것도 내가 더 흥미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오키타는 누나의 남자친구를 마주칠 것이다. 혹시나 마주치지 않았다면 본인이 멀리서라도 그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내가 본다면 조금 더 강하게 이 녀석에 대한 마음이 커질까? 


3일 후 계획 당일. 오키타는 오후 8시에 히지카타는 순찰 중이라서 없고, 마츠다이라 선생은 윗 사람을 만나 보고하는 시간이라며 그 시간에 집엘 찾아간다고 말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서는, 아부토에게 전화해서 그 녀석이 어디로 가는지 뒤를 밟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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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는 나를 봐도 나를 잡아넣을 수 없을 거야. 

히지카타는 나를 봐도 나를 잡아넣을 수 없을 거야.

히지카타는 나를 봐도 나를 잡아넣을 수... 없을 거야....


히지카타의 집 앞에 왔다. 집 옆에 작게 있는 골목의 틈에서 집안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왜 인지 심장은 진정하지 못하고 쿵쾅쿵쾅 뛰었다. 예상대로 히지카타는 없었다. 집은 처음에 내가 방문했을 때에 비해서 조금 지저분한 느낌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가 마구 널어져 있었고, 어째서인지 쓰레기통이 엎어져 주변에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소파나 침대의 배치마저 심하게 삐뚤어져 배치되어 있는 광경이 도둑이라도 든 것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하게 만들었다. 쿠리코는 어디에 있지? 왜 집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놔두는 거지? 정말로 도둑이라도 든 건가? 이렇게 생각하며 집안을 살 필 때, 갑자기 집 안에서 큰 비명과 함께 거친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디에요?! 나... 나 너무 무서워요 아아악!!! 지금 당장 와주면 안 돼요?!?!.. 왜... 왜 못 오는데요!! 지금 와주세요!! 지금 당장...! 자세한 이야기는 마... 만나서 할게요...! 호.. 혹시 몰라... 이 핸드폰도 지금 도청당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지...지금... 하...하아.... 히지카타씨....!"


분명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다행히도 이 여자의 현재 상태는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뭔가 싱겁다. 뭐야. 고작 내가 살짝 건드린 정도로 이렇게 망가져 있으면 어떡해? 저렇게 난리치는 타입이면 끌고 가기도 힘든데..


"... 오늘도.. 집안을 구석구석 다 뒤졌어요... 아직 못 찾았는데... 아직도... 아직도 어디선가 우리를 엿보고 엿듣고 있을지도 몰라요..... 뭐라구요? 지금 안심하라는 말이 나와요? 그때도.. 우린 아무것도 몰랐잖아.... 이게 다 당신 옆에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거잖아!! 아직도 못 잡았다면서요?! 전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 미쳐버릴 것 같...아요...!!!"


히지카타는 뭐라고 답하고 있을까? 울음소리에 가까운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한 10여 분이 지나자 익숙한 차량이 굉장한 엔진 소리와 함께 집 앞에서 멈춘다. 나는 발걸음을 뒤로 빼면서 몸을 숨겼다. 히지카타는 그 차에서 내려선 급하게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쿠리코...! 왜 그래? 정말 왜 그래 이제 괜찮다니ㄲ...."

"뭐가...! 뭐가 괜찮다는 거예요 도대체...!!!! 혹시 저 쓰레기통 안에 있을지도 몰라요...! 소파 아래에 붙어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없을 때 우리 집에 다시 와서 침대 아래에 다시... 다시 붙여놨을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그런 일 없어."

"어떻게 단언할 수 있어요?! 아직 그놈은 잡지도 못했는데...! 언제 와서 우릴 감시하고 있을지 난 모르잖아요...!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끔찍해서 돌아버릴 것 같은데....!"

"... 미안해... 내일 다시 병원에 같이 가보자... 약은 먹었어?"


쿠리코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면서 히지카타의 가슴에 안겨서는 엉엉 울었다. 히지카타는 그 큰 손으로 쿠리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행동에 갑자기 주먹이 꽉 쥐어진다. 역시 저 여자는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확신되는 순간이다. 저 머리칼을 내 주먹으로 절대로 빠지지 않게 휘감아주지.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고문은 쉽게 끝나지 않을 테니까. 히지카타는 나를 적당한 선에서 봐주었지만, 내가 너를 봐줘야 할 이유도, 그럴 감정도 없으니까. 쿠리코가 울다 지쳤는지, 히지카타는 쿠리코를 소파에 잠시 눕혀놓고는 사랑스럽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곤 깊은 한숨 후에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와서는 내가 숨어 있는 그 틈의 근처에 와서는 담뱃불을 붙였다.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이쪽으로 온 건가? 하는 생각에 헷갈려서 바로 뛰어나갈 뻔했으나, 그럴 일은 없다는 생각에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익숙한 뒷모습이다. 히지카타는 후우 하고 연기를 뱉었다.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담배 향이 너무 반가워서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히지카타가 온 순간 내 계획은 틀어져 버렸지만 당황하거나 하진 않았다. 되려 조금은 기뻤던 것 같다. 그래, 나는 히지카타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여자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부수적이었을 뿐, 그저 변명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히지카타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 익숙한 그 체취를 한번 다시 맡고 싶다. 한번 더 이야기하고 싶다.. 내려앉은 어둠 때문에 담배 연기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손을 뻗었다. 닿을지도 모르는 위치였다. 손끝에 히지카타의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닿아서는 안된다. 나는 바보처럼 손을 뻗었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멍해졌다. 히지카타가 뒤를 돌아보며 내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아.. 아니...."

"내가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잖아!!"


히지카타는 나를 만난 사실에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머리가 아픈 듯이 머리를 감싸 쥐면서 한숨을 길게 푹 내쉰다.


"언제부터 있었어?"

"...."

"지켜보고 있었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만족해? 쿠리코는 완전히 도청 후유증에 시달려서 병원의 약 없이는 항상 저 상태 그대로야. 수면제 없이는 잠도 못잔다고!! 네가 바라던 게 저런 모습이었잖아!!"

"... 히지카타 너는... 저런 모습으로 내가 만족한다고 생각했어?"

"그럼 대체 얼마나 어떻게 더 망가져야 속이 시원하겠어?!!!


...내가 바라던 히지카타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로.. 정말로 히지카타가 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인가 조바심마저 날 정도였다. 히지카타가 날 처음 보고서 해야 할 말은 잘 지냈니? 어디서 지내니? 같은 말이 먼저였어야 할 놈이 왜 쿠리코의 모습을 나에게 운운하면서 분노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을까?


"...너.. 저 여자를 사랑해?"


내 질문에 히지카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


"...넌 왜 항상 그따위 질문만 해? 나는..."

"구... 궁금해서 그래. 말해봐. 정말 사랑하는 거야?"

"내가 전에도 이야기했을 텐데? 그럼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뭐 때문에 결혼을 하겠어? 넌 아직도...!!"

"......"

"아니다. 그만하자"


히지카타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내 눈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였다. 


".... 거짓말이야. 너는 우리 누나만 사랑했잖아. 그런데...."

"그 이야기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만해"

"...... 지긋지긋?"

"그래 지긋지긋하다고. 대체 언제까지 그 일로 날 쫓아다닐래? 이제 서로.. 제발 서로 갈 길 가자"

"서로 갈 길 가자고?"

"... 내가 지금도 네 얼굴을 이렇게 마주 보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미츠바 때문이야!! 알았어? 내가 미츠바를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도 너를 이렇게.. 이렇게 맨정신으로 겨우 쳐다보고 있는 거라고!!"

".... 무슨 소리야?"

"... 더 이상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뜻이야."


히지카타는 물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등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 했다. 나는 허겁지겁 히지카타의 팔을 잡고서 말했다.


".. 잠깐...! 잠깐만"

"놔. 자수하러 온 거는 아닐 거 아냐"

"... 정말.. 정말 쿠리코를 사랑하는..."

"그래 쿠리코를 사랑하고 있어"


사랑하고 있다, 라니. 팔을 붙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나도 모르게 히지카타에게 말했다. 제멋대로 지껄이는 거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내 의식이 아닌 기분이다.


"...단순히.. 누나 때문에 계속 이렇게 너에게 집착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왜 이러는지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

"...그야 너는 당연히 나를 괴롭히는 게 재미있을 뿐이겠지"

"정말 단순하게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장난 그만해. 그런 네 상태 안 궁금해. 내가 왜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 내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래서..."


히지카타는 제 팔을 잡고 있는 내 손을 과격하게 뿌리치며 말했다.


"자수할 거 아니면 얼른 가라. 다음에 내가 너를 다시 봤을 때는 바로 연행이야"

"......!!.... 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야! ....그래. 나... 나는 너와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쿠리코가 부러웠는지도..."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히지카타는 나와 이야기하던 좁은 골목 틈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최악이다. 내 꼴이 너무 우스워서 되려 웃음이 새어 나온다. 피식 웃으면서 발끝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려 옆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히지카타는 누워서 곤히 잠든 쿠리코의 옆에 앉아선 한숨과 함께 답답한 듯이 목에 메고 있던 타이를 거칠게 풀어놓았다. 한참을 서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조금은 후련한 것 같기도 했다. 눈물이 날 것 같다거나, 딱히 너무 슬퍼서 미쳐버릴 것 같다거나 한 그런 감정은 없었다. 단지, 히지카타의 진심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 이상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미련은 사라졌다. 그리고 쿠리코를 죽여버려야겠다는 생각도. 물론, 히지카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거나, 나 같은 사람보다는 쿠리코 같은 사람이 더 잘 어울리겠지, 뭐 그런 답지 않은 생각이 든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저.. 이미 망가져 버려서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쿠리코의 몰골과, 나를 탓하며 소리 지르는 히지카타의 모습이.. 이미 내가 손을 쓰기도 전에 너무나도 추해져 있었기 때문에... 단지 그 때문에...  


성과 없이 혼자 정처 없이 걸어오는 길은 쓸쓸했다. 그렇게 추운 날이 아닌데도 춥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카무이에게 연락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 그 녀석을 만나면 착실하게 굴던 지금 모습의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이 상황을 눈치챈 그 새끼는 또다시 나를 비웃으며 자극할 테니까. 그 새끼한테는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단순한 임무 실패? 갑자기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불쌍해서? 아니면 혹시나 히지카타를 만날까 봐, 뭐 그런 어이없는 이유를 대야 하나?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정처 없이 걷다가, 집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카무이를 잡으려고 대기했던 이후로 처음이다. 아직도 warning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는 노란색 테이프가 사방에 깔려있었고, 미처 사라지지 않은 시멘트 바닥에는 선혈 자국이 낭자했다. 테이프를 손으로 잡아 뜯으며 안으로 억지로 파고들었다. 그때 당시, 모두가 신발을 신고 마구 들어오는 바람에 바닥엔 검은 신발 자국들이 더럽게 이곳저곳 찍혀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거미줄이 사방에 펼쳐져 있는 게, 몇 년은 아무도 드나든 적이 없는 폐가같이 보인다. 내 방이었던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운 방에 희미하게나마 빛났던 야광 별들은 거의 다 빛을 잃고, 한 개 정도만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2층 침대에 올라가 보니 언제인지 기억에조차 없는 언젠가의 내가 이불을 박차고 빠져나온 흔적 그대로 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2층 침대에 걸터앉아서 멍하니 야광별을 바라보다가, 벽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별을 떼어냈다. 뒤의 접착 때문에 벽지가 뜯어졌지만 상관없다. 지금은 이런 문제로 눈치를 봐야 할 사람도 없고, 나를 추궁할 사람조차 없기 때문에. 밖에서 들어오는 주홍색 가로등 불빛이 집 안으로 벌레처럼 슬금슬금 기어들어온다. 내가 올라온 침대의 사다리는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집의 모두가 사라진 이후로 이 위로 올라와 본 적도 없었지만 다시 이곳에 앉아 있으니 왜 새벽까지 잠을 자고 있지 않느냐며 그리운 잔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학교에 가야 하는데 숙제를 깜빡해서 어떡하지? 하는 소소한 고민, 히지카타가 또 엄마와 누나 이야기로 나를 협박하며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를 할 거라는 걱정, 다들 잠깐 외출해서 없어진 것뿐이라는 안도, 카무이도 같이 갔으려나? 왜 아무도 없지? 왜 집은 이렇게 더러워졌지? 저 거미줄은 뭐야? 왜 우리 집이 이렇게... 아냐 모르겠다.. 일단 졸린데 잠을 좀 잘까.. 일어나면.. 다시 왜 이렇게 늦게까지 자냐면서 일어나라고 할거야. 내일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숙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 다 못했으니까 일어나서 얼른 답지라도 배껴야지. 히지카타가 또 수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럼 누나한테 다 일러바칠지도 모르는데. 치사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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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토의 전화를 받았다. 마지막 위치가 집인 것을 보고 즉시 철수하라고 말했다. 추가로 다른 단원들이 보내온 사진에는 히지카타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여러 장 찍혀서 왔다. 그리고 추가로 대화 내용이 녹음된 음성 파일을 보내왔다. 누나의 남자친구와 만날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도 약간의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니길 조금은 바랐었는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심지어 죽여버리겠다고 계획했던 그 여자는 접촉조차 하지 않고서 돌아간 것을 보니 이 새끼에게 너무나도 큰 실망을 해버린 것도 사실이다. 올 때까지 기다릴까? 아니야. 가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봐줘야지.




[내... 내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래서...]

[자수할 거 아니면 얼른 가라. 다음에 내가 너를 다시 봤을 때는 바로 연행이야]

[......!!....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야! ....그래. 나...나는 너와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쿠리코가 부러웠는지도...]




도착한 집은 고요했다. 벌써 이곳을 떠났나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곧 들려오는 미세한 숨소리가 이곳에 그 녀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가족들이 사라진 이후론 그 침대에 올라가지도 않았던 녀석이 위의 침대에서 쓰러져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구질구질하다는 생각과 함께 더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구질구질해. 뭐 하는 거야? 너답지 않잖아. 너 왜 그렇게 누워 있는 거야? 지금 그러고 있을 때야? 나한테 말했던 것처럼 그 여자를 데리고 왔어야지. 익사시키기로 했잖아. 그 독기 다 어디 갔어? 


"야, 지금 잠이 오냐?"


나는 아래에서 위를 향해 외쳤다. 들리지 않는지 한참을 곯아떨어진 녀석은 새근새근하는 부드러운 숨소리만 주기적으로 내뱉을 뿐이었다. 손을 뻗어서, 침대 프레임 옆에 있는 얼굴을 살짝 손대자 힘없이 눈을 가늘게 뜬 이 녀석이 작게 말했다.


".....시발.. 내 얼굴에 손대지 마... 누나는...?"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곧 침착하게 대답했다.


"누나는 모르겠고.. 누나의 남자친구라면 방금 보고 왔어"

"...그 새끼 뭐 하는데? 아.. 씨발... 나 숙제해야 하는데.."

"그래. 숙제 안 하고 왜 누워 있어? 같잖은 동정심이라도 생기셨나 봐. 직접 마주치지도 않고 바로 도망이라니... 진짜 별 볼일 없는 쓰레기 같은 새끼를 내가 상대하고 있는 모양이야"


내 비아냥에 이제야 정신이 드는지 곧 눈을 똑바로 뜨고는 몸을 급히 일으켰다. 


"재미없다 너"

"...."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 아니 나...."

"구차해 보이는 변명까지 할 거야? 대체 날 얼마나 실망시킬 거야? 이러지 말자.."

"...그..그런게 아니라... 나는..."

"...나는 네가 얼마나 멋있게 그 여자를 죽일지 잔뜩 기대했단 말이야. 어떤 표정으로 그 여자를 데리고 올까, 어디를 잡고서 끌고 올까, 그 여자가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으면. 너는 어떤 대답을 할까.... 근데 이렇게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쫄보 새끼인 졸은 상상도 못했지"


내 말에 오키타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파악한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본 최근의 표정 가장 비참하고 당황한 표정이었다. 본인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왜 그냥 돌아왔는지. 어째서 히지카타와의 대화 후에 마음을 접었는지에 대해서 돌이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 내가 잠시... 다시... 그러니까.."

"뭐.. 나와는 상관없지만 굳이 다시 실행하려면 좋을 대로 해"

"..."

"너랑 히지카타랑 만났던 거, 그리고 대화 내용 녹음파일까지 전부다 그 여자에게 보냈어"

"....뭐?"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 법이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일은 없잖아. 잘해봐"


오키타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못한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그만하자."

"..."


내 말에 오키타는 분명히 왜 그러느냐고, 무슨 일이냐고 추하게 매달릴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단순히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오키타는 처음에 있었던 그 2층 침대에서 변함없이 나를 내려다보며, 조금은 아쉬움이 묻어 있는 듯한, 그래서 조금 오묘해 보이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잘 지내"


아니, 내가 바란 대답과 반응은 이런 게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새끼를 다시 받아줄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어이없이 알겠다고 즉 답을 할 줄도 몰랐던 것이다. 되려 내가 당황해 버렸다. 그렇다. 나의 단순한 착각이었다. 이 새끼는 누나의 남자친구의 앞에서만 비굴해지고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 앞에서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새끼는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겠지, 누나의 남자친구도 이 새끼를 떠났으니 당연히 내가 떠나는 것만큼은 막고 싶을 거야..! 하고 생각해버린 어이없는 자만감...


"...어디서 지낼 예정이야?"

"끝난 사이에 그런 것까지 가르쳐 줘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 그래. 그렇지"


생각보다 단호한 대답에 나 역시 맺음 말을 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는 끝났다.


내 마음이 아직 덜 끝났다면 다시 들어가서 오키타 새끼를 끌어내리고, 얼굴이라도 짓밟으면서 대답이 왜 이따위냐면서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이었는지도 의문이었고, 내가 그렇게 억지를 부려도 이번에 오키타는 내가 원하는 답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나에게 추하게 빌기를 바랐나? 그렇다고 받아줬을 것도 아니었으면서...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지만 다시 이 새끼와 만난다고 해서 바뀔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전에 끝났어야 할 인연이 지금까지 구차하게 내 욕심만으로, 혹은 이 새끼의 욕심 때문에 이어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빠져나가다가 문득, 확실하게 들어가서 죽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부토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임무 이야기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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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긴 시간을 정리하였고, 다시 아부토의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상하게 조금 기뻐 보이는 아부토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오늘은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그래서 어떤 걸 해야 되는데.. 하고 일상을 보고하면서 나를 따라다녔다. 이런 생활이 조금 허전한 감은 있지만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 새끼는 어떻게 지낼까 잠시 생각이 나기는 했다. 왜냐하면 내가 보낸 음성과 사진들을 보고 그 여자는 엄청나게 난리를 치면서도 조금은 기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음성 파일에는 '쿠리코를 사랑한다' 라는 메세지가 단호하게 담겨있었고, 타인에게, 그것도 아무런 관계없는 타인도 아닌 영원히 잊히지 않은 첫사랑의 남동생에게 보내는 강렬한 메세지였기 때문에 아마 듣는 순간, 오르가즘이라도 느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갈등했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는 하면서도, 자신의 남편은 그 범인을 잡지 않고 그냥 보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여자는 이겼다. 결국 누나의 남자친구는 그 사진과 영상을 가지고 있는 쿠리코에게 잘못했다며 빌었다고 했다. 그 이후 경찰에서 오키타 녀석을 잡는 데에 관심도가 훨씬 높아졌다. 이제야 누나의 남자친구는 그 녀석을 잡아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아부토에게 그 이야기를 보고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지금 있는 곳도 분명 지금은 확실히 조사할텐데.


"단장, 근데.. 조금 곤란하다고 해야 하나.. 여튼 그런 일이 있는데..."

"응?"

 

곤란해하는 아부토의 뒤에는 전에 행방불명 됐었던 카구라가 무언가 거대한 자루 끌고서 당당하게 내 앞으로 온 것이었다. 생각보다 옷차림은 깔끔했다. 누군가가 돌봐주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상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표정과 태도는 꽤 마음에 들었다.


"... 생각보다 말끔하네? 다시 돌아왔을 때는 거지 꼴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카구라가 답하기 전에 아부토는 뜬금없이 끼어들어선, 어떤 가게에서 다행히 도음을 줬다고 했다며 왜인지 당황한 듯한 표정과 말투로 말했다.


"다시 올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왔네?"

"오빠한테 선물이 있어서 말이야"


카구라는 끌고 오던 큰 자루를 내 앞에 털썩 놓았다.


"...그건 또 뭐야? 뇌물인가? 그냥 갖다 버려"


만만치 않은 저 또라이 같은 성격으로는 분명 열자마자 등장하는 스프링 달린 피에로처럼 기괴한 걸 가지고 왔을 거라고 예상하고선 손을 내저었다.


"뭐긴! 잘 봐! 오빠의 이상한 관계는 이제 내가 다 정리했다 해. 이제 가족은 우리뿐이라고"


심드렁하게 앉아 꼼지락거리며 잘 풀리지 않는 자루의 묶인 매듭을 푸는 카구라를 보며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드디어 매듭이 풀린 자루 안은 까맣게 속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 안의 익숙한 모래 빛의 머리카락을 보고선 온몸이 소름과 함께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충격받진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인지 확인을 위해서 자루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내 표정을 살피며 웃는 카구라의 눈빛과 한마디가 나를 그 자리에 고정시켜두었다.


"어때? 이제 나를 하루사메로 받아줘라 해"



카구라의 기고만장한 표정, 내 눈치를 보는 아부토, 그리고 쓰러져 있는 자루 안의 오키타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아부토.... 데려가서 입단시켜. 저건... 저건 두고 가"

"응응! 오빠가 정말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해"


카구라는 황홀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카구라는 아부토에게 자, 안내해줘. 하고는 키득키득 웃으며 아부토를 따라나선다. 타박타박하는 가벼운 발 걸음이 사라져 갈 때, 그 자루 옆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죽었을 리는 없다. 단지 내가 놀란 이유는 카구라가 어떻게 이 새끼를 찾아갔는지, 어떻게 이 녀석을 순순히 데리고 올 수 있었는지, 단지 그게 궁금할 뿐이다. 그리고 그 자루 안의 오키타의 살갗에 손을 대는 순간 평소에 느껴지던 그 온기가 아닌, 익숙하면서도 이상한 냉기가 겉도는 피부에 나도 모르게 손을 떼고 말았다.


....

...시시해..

이게 뭐지. 차라리 그때 내가 죽일걸. 


이 녀석을 감싸고 있던 자루를 다시 위로 올려서 덮고는 다시 아부토를 불렀다. 경찰의 눈에 아주 잘 띄는 곳에 버리라고 말했다. 이 녀석의 시체는 되도록 누나의 남자친구가 발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상만 해도 기대되는 반응일 것이다. 






-

그 녀석의 시체를 발견한 경찰과 언론에 의해서 뉴스는 완전히 그 녀석 이야기로 뒤덮였다. 신문 1면에는 카구라가 들고 온 그 자루에 그대로 싸여져 있는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실렸다. 찍힌 사진의 주변 풍경이 칙칙하고 너저분한 것을 보아하니 쓰레기장 같은 곳에 버렸나 보다. '前신센구미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 시체로 발견. 타살 유력'. 누나의 남자친구의 인터뷰가 궁금해서 계속해서 뉴스와 신문을 보고 있지만 누나의 남자친구는 인터뷰를 철저하게 피하는 듯했다. 언뜻 찍힌 뉴스에 찍힌 그의 모습엔 허용할 수 없는 허탈함과 함께, 자신이 그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선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고문 후 놓아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한참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고문을 했던 그때, 놓아주지 말고 옥에 가두어 놓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적어도 사형이었으면 이렇게 쓰레기장에서 더러운 자루에 쌓여서 수많은 의문을 가지고 나타나지는 않았을 테니. 아니면 이후에  만난 그때, 불안에 떠는 아내가 있는 그 집의 골목에서, 서툰 고백을 했던 그때.. 그때 억지로라도 잡아서 감옥에라도 처박아두고 집행을 미루려 노력이라도 했던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혹은 쿠리코와 이혼이라도 했어야 했을까? 하는 알 수 없는 질문이라도 마구잡이로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그 녀석의 죽음으로 조금은 안정을 되찾은 아내와 함께 평온한 모습을 연기하는 그 모습이 정말이지 역겨워서 장기마저 다 토해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째서 저런 위선적인 놈을 마지막까지 좋아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다.



오키타와 마지막에 대화를 했었던 집을 둘러보았다. 부서질지도 모르는 사다리의 첫 칸을 밟고서 침대 위를 살짝 바라보았다. 침대 시트엔 이미 굳어 까맣게 변해버린 피와 빛을 잃은 야광별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앞뒤로 그 별을 살피다가 다시 침대 위에 얹어놓고는 집을 떠난다. 내일은 놀이공원에 갈 생각이다. 까만 하늘의 놀이공원. 그곳의 폭죽은 다시 찬란하게 터질 것이고, 같이 탔던 관람차는 지금도 높은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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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네요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ㅜㅁㅜ

카무오키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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