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누구에게나 양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完

아침엔 가벼운 뽀뽀로 잠을 깨워줘야지. 자신만의 환상으로 약간은 부풀어 있던 긴토키는 그가 꿈꿔왔던 환상과는 반대로 그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형씨, 저 가요”

  

언제 일어났는지 이미 준비를 마친 그가 문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긴토키는 눈을 비비며 물었다.

  

“일찍이라뇨, 저 이미 지각이예요”

  

그는 태평하게 말했다.

  

“내가 깨워주려고 했는데”

  

“그랬다간 하루종일 잤을수도 있겠네요. 암튼 갈게요”

  

뒤돌아 가려는 그를 붙잡고 긴토키는 말했다.

  

“조심히, 가... 그리고 연락, 할게”

  

문득 지난밤의 일이 생각나서인지 약간은 그에게 말을 하면서도 망설임이 묻어 말이 약간씩 끊겼다. 그는 그런 긴토키에게 별일 없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문을 나섰다.

  

전의 상황이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서두르려는 척이라도 했겠지만 일종의 반항으로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음에도 그는 여유있게 둔영에 들어갔다. 회의는 이미 끝난지 꽤나 되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스케줄을 확인하러 가는 길에 야마자키를 만났고, 그런 그를 보고 야마자키는 새삼 흠칫 놀라했다.

  

“오키타 대장, 어제 어디 갔었어요? 그보다 요즘 왜 회의 안 오십니까?”

  

“...음.. 난 오늘 C구역인가? 넌 어디로가?”

  

그는 야마자키의 질문엔 대꾸하지 않았다.

  

“저는 F구역이요. 근데 대장, 부장님은 만나셨습니까? 어제 부장님께서 찾으시던데 가봐야 하는거 아니예요?”

  

“날 찾았다고?”

  

“어제 저녁에 대장을 찾아왔었다가 저랑 만났어요. 어디갔냐고 물으시는데 제가 알아요? 쭉 기다리시다가 새벽쯤 돌아가시는 것 같던데, 어제 어디 갔었어요?”

  

또 다시 전날의 비어있는 시간의 행방을 물어왔지만 대답하지 않은 채 야마자키를 뒤로 했다. 찾아가야 하나, 하고 망설이다가 소고는 가지 않았다. 전에 자신의 자존심이 그 녀석에게 밟혔다고 생각해 한번 당해보라는 식의 유치하면서도 통쾌한 복수였다. 하지만 호기심은 자꾸 스멀스멀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왜 찾아왔을까. 무슨 말을 하려고 왔을까. 왜 기다렸을까. 그냥 둔영으로 돌아올걸 그랬나..

  

  

  

  

 

 

 

  

  

히지카타는 미리 그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일이 많아 둔영에 남아있었기에 일을 마치곤 다시 그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전 날 결국 그를 만나지 못해 오늘은 기필코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새벽까지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돌아오지 않아 현재 그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들고 연락을 취하려고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결국은 하지 못했다. 연락을 취하려는 이유 중 약간은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리고 크게는 자꾸만 그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 그와 긴토키의 관계가 재생되어 안절부절 했었다. 결국 그는 늦은 새벽까지도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히지카타는 힘 없이 상상만을 잔뜩 가지곤 돌아갔었다.

  

아직도 그 녀석이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 이상으로 시간을 끄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고, 자존심 쎈 그가 먼저 이야기를 하러 와준 것에 대한 약간의 감동도 존재했다. 병신같이 준비를 하지 못한 자신을 약간은 책망하며 그의 방으로 향했다.

  

잠기지 않은 문을 힘없이 열었고, 그의 공간으로 들어가자 온 몸을 감싸오는 그 녀석의 향기에 취해 쓰러질 것 같았다. 분명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공간에 허락 없이 들어 왔다는 걸 알면 분명히 화를 낼 것 같았지만 이미 그를 사로잡은 그 향기에 잡혀 다시 나갈 수는 없었다. 청소도 해주었고, 깨우러 매일같이 드나들 땐 왜 이런 것을 몰랐었나 하는 생각에 지금의 자신이 놀라울 따름이였다. 전 날은 방에 들어가서 기다린 것은 아니었기에 몰랐지만 그 전날도 늦잠을 잤었는지 정리하지 않고 나간 침구가 눈에 띄었다. 그 광경을 보니 그가 아직도 우스운 안대를 쓰고 무방비로 유카타가 약간은 흘러내려 동그란 어깨와 선명한 쇄골을 드러낸 채로 쌕쌕 잠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곧 있으면 오겠다 싶어 시간을 확인하다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책장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책 같은 것엔 관심도 없으면서 도데체 무얼 꽂아 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책장 앞으로 다가가 책장을 쭈욱 훑었다. 예상대로 전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읽어보라고 준 책도 몇 권 있었고(물론 전혀 손 댄 흔적이 없는, 세월만 타서 깨끗하게 낡은 상태였다.), 그가 읽는 점프 만화잡지에서 주는 부록이라던가, 신센구미에서 읽어보라고 나누어 준 매뉴얼 같은 것이 거의 였다. 사람을 볼 때 어떤 사람인지를 보기 위해선 그 사람의 책장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책장에 꽂혀 있는 많은 보잘 것 없는 것 중에, 그래도 자신이 준 책을 가지런히 보관이라도 해줬다는 점이 기뻤다. 그리고 눈을 돌리려는 틈에 눈에 띄는 건 그 앞에 시계 따위로 반쯤 가려져 있는 낡은 양장으로 된 책이였다. 뭐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금박으로 써 있는 이름을 확인하곤 책으로 보이는 물건(책으로 보였지만 그것은 앨범이였다.)의 주인이 누구인지 직감했다. 조심스레 꺼내어 펼쳐 드는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추억이 담긴 한 장 한 장의 조각들이 그 녀석과 자신이 한참 으르렁대던 때를 담고 있어 이내 씁쓸함에 사로잡혔다.

  

맨날 싸우긴 했어도 우리는 단연 친한 사이라도 할 만한 사이였는데.

내가, 네가, 그리고 이 앨범의 주인인 그녀가, 우리의 관계를 망쳐버렸어.

  

그녀를 그와 자신의 방해물로 인식했지만 그 때의 그는 그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뒤에 나오는 그와 그 앨범의 주인인 그녀의 사진을 보니 첫 사랑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며 그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잠시 잊고 있었던 죄책감이 약간은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그리고 뒷장으로 넘길 때마다 그녀가 나를 많이 사랑했었구나 하고 느끼긴 했다. 그리고 동시에 유품을 정리할 때 그 녀석은 왜 자신에겐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소고는 별 생각 없었을 수도 있고, 꼭 보여 주어야 한다는 의무도 없다. 그렇기에 그런 의문은 아무런 의미는 없는 것이였다. 그러나, 히지카타는 집무실에서 그 녀석과의 격정적인 키스를 떠올리곤 제멋대로 그의 마음을 예측했다. 너도, 나, 좋아하는거 아냐? 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냐? 죄책감이 약간은 살아났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현재 그에게 그 죄책감은 신경도 쓰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도데체 나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야? 마음을 확인받고 싶은 거야?

한참 그녀가 남긴 앨범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곤 조금 놀라 멈칫 하는 그가 보였다. 동그랗게 뜬 눈이, 적갈색 눈동자가 여전히 매력적이였다.

 

  

“... 꺼져, 멋대로 들어와도 좋다고 한적 없어”

  

소고는 사실 그를 기다렸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리곤 곧 히지카타가 들고 있는 앨범을 발견하곤 다가가 거칠게 빼앗았다.

  

“함부로 이딴거 만질 자격 없어. 너. 꺼지라는 소리 안들려?”

  

그가 소리쳤다.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커지자 히지카타는 그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선 현재 옆방에 있는 야마자키를 불러선 잠시 나가있으라고 말했다. 야마자키는 그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져 잠시 눈치를 보다가 후다닥 방에서 뛰쳐나갔다. 야마자키가 멀리 나가는 것을 보곤 히지카타는 다시 그의 방으로 돌아와 말했다.

  

“... 얘기, 하러 왔어”

  

“지난번엔 병신처럼 말도 못하더니 오늘은 잘하네?”

  

소고는 여전히 그를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제 어디 갔었어? 왜 안왔어?”

  

“나랑 할 이야기는 그게 아니잖아. 내가 한 질문에 답만 주고가”

  

“....명령이야 대답해”

  

히지카타는 담담히 말했다. 긴토키와의 관계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었기에 꼴에 질투심이 터졌는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지난 밤의 행방이 궁금했다. 게다가 그는 명령이라는 말을 하면 그래도 말을 잘 들었으니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에 소고는 어이가 없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나 참, 부장님. 내가 한 질문에 답을 주시는 게 먼저입니다”

  

그는 비꼬듯 말했다.

  

“해결사랑 있었어?”

  

“...”

  

대답할 의지가 없다는 확고한 그의 얼굴을 보고, 히지카타는 졌다는 듯 말했다.

  

“그래, 무슨 말이 듣고 싶은거야?”

  

“...뭐?”

  

“너 키스, 나와 함께 했잖아.. 나 혼자 억지로 한거 아니잖아..”

  

“.....”

  

소고는 그의 말에 뭐라고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그래.. 때린건 미얀해.. 근데 그 정도로 맞아서 니가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랐어. 난 지금 이해가 안돼 소고”

  

미친.......놈...

  

  

“나는 지금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나 니가 너무나 가지고 싶어. 나 너를 좋아...”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 따위 소리가 아니란 말이야!!”

  

소고는 그의 뒷 말을 서둘러 잘랐다.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자신 역시 그에게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뒷 말이 두려웠다. 그에게서 빼앗은 앨범을 들고 있어서인지, 그녀가 옆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옆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특유의 선한 미소로 그에게 다가가 그 무엇보다 따뜻하게 속삭였다. 자신과 다르게 악의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순수하며 선했다. 소고, 나는 토시로씨를 아직도 사랑해. 그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심치 않아. 그런데, 지금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니?

  

“... 그럼?”

  

히지카타는 그에게 물었다.

  

“... 아...”

  

나에게 한 짓에 대해 납득시켜봐. 싫다고 하는 나를 왜 억지로 탐하려 했는지 나를 납득시켜봐. 라고 말하려다 자꾸만 그의 누나가 옆에 있는 기분이 들어 말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미안해, 잘못했어 이러면서 싹싹 빌기라도 해야지. 이 정신병자 새끼야. 내가 너한테 단순히 맞아서 화가 났다고? 내가 그럴 리가 있어? 그리고.. 니가 방금 하려던 말.. 그런말 다시는 꺼내지마, 그런 말을 네 녀석이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꺼낸다면, 그건.. 그건 우리 누나 뿐이야.”

  

소고가 언성을 높혀 말했다. 그래.. 우리 누나 뿐이잖아.

  

“하.. 정말....또.. 또 그 말이야? 제발 그 이야기 좀 그만 하면 안돼?”

  

히지카타는 지겹다는 듯, 듣기 싫다는 듯이 말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거야? 소고는 그의 말을 듣자 참을 수가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의 멱살을 거칠게 잡았다.

  

“다시 한번 말해봐 이 새끼야. 뭐라고 했어?”

  

“...”

  

히지카타는 잠시 맞추었던 그의 눈을 피했다.

  

“평생 기다려온 사람의 행복까지 빼앗아 놓고, 너는 행복하길 바래? 너에게 선택할 권리 같은게 있을 것 같아?”

  

“...”

  

“없어, 아니 내가 없앨거야. 다른 여자를 만나면 그 년 없앤 것처럼 죽일거야. 그냥 넌 평생 이렇게 내 옆있어”

  

“.....”

  

“평생 내가 옆에 있으라면 있겠다고 했었잖아? 평생 내 옆에 있어. 아. 그렇다고 내가 함께 있어주겠다는 말은 아냐, 너 혼자, 혼자 내 옆에 있는거야”

  

그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울컥 목이 약간 메어오는 것과 눈에 살짝 액체가 고이려는 것을 느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멱살을 쥐었던 손이 중점을 잃고 느슨해졌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역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한 히지카타는 그대로 그를 껴안았다. 그를 가득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벅차 이 녀석이 한 말이 무슨 내용 이였는지 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놔! 씨발 이 새끼야 그가 힘껏 저항해왔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그를 고정시켰다. 빠져나가려 몸부림 치는 그와 그런 그를 몇 차례 잡아채기를 여러 번, 그가 지쳤는지 잠잠해졌다. 히지카타는 그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뜨거워 입술이 닿은 자리가 데일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가 입술에 입을 맞추려 할 때 그의 눈에 다시 나타나는 그녀의 형상이 눈앞에 아른거려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가오는 그를 보고 말했다.

  

“... 하지마. 이 이상하면 곤도씨에게 다 말할거야”

  

그 답지 않은 말이였다. 자신이 직접 해결을 보는 것도 아니고, 고자질 형식으로 다른 이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이상했다. 소고는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히지카타가 아까 자신과 이야기 하기전에 야마자키를 내보내는 것을 보고 그는 그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파악했다. 야마자키를 내보낸 것은 그가 자신과의 있었던 일이 둘 이외의 사람에게 알려지는 점을 두려워 한다는 것(사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쨌든 타격을 입는 것은 더 높은 자리에 있고, 쌓아온 이미지나 보여진 행동이 누구보다 반듯했던 히지카타에게 타격이 클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뭘?”

  

“니가 나한테 한 짓, 다 말할거야. 더 과장해서 노골적으로 이야기 할 거야. <권력으로 나를 제압하고, 힘으로 나를 압박하고는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나를 불러서 강간하려고 했어요.> 어때? 부장님 맘에 들어요?”

  

그는 소고가 예상한데로 그 말에 큰 동요를 보였다. 히지카타는 소고의 그 어떤 말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지만 이 말은 그의 모든 행동과 본능을 멈출 정도로 무서웠다. 그의 말에 앞으로 자신의 행보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대원들의 경악스러운 표정과 수군거리는 소리, ‘아니 어떻게.. 남자를.. 그것도 거의 가족처럼 지내던 친한.. 오키타 대장을..?’ 분명 그 중엔 말도 안 된다고 믿지 않는 무리도 생길 것이다. 그 중의 한명은 곤도씨 겠지. 이토가 모함하려 했을때도 자신의 편에 서주려 애쓰던 곤도 였으니까. 하지만 이토와 다르게 지금의 상대는 이 녀석이고, 그의 그런 말에 아무 말 못하는 자신을 보면 곤도는 무어라고 말을 할까...

  

“..아..”

  

그가 그를 가두었던 손을 풀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무섭죠? 내가 입 여는 순간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요”

  

아.. 히지카타.... 소고는 잠시 텀을 두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그러면.... 누나가.. 슬퍼할 것 같아요”

  

나도 약간은..

  

“그니까, 평생 내 옆에 가만히 있어. 내 입단속 해야 될 거 아냐?”

  

히지카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 어제 어디 갔었냐고 물어봤었죠? 맞아요. 형씨랑 있었어요. 나랑 형씨 꽤나 친하잖아”

  

“...”

  

“아.. 심심한데 곤도씨랑 게임이나 하러 가야겠다. 히지카타씨는 안 올거죠?”

  

경멸했던 그가 자신의 말에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희미하게나마 희열을 느끼면서도 슬펐다. 그 순간 그가 작아보여서인지 이 이상 그가 자신에게 했던 짓에 대한 화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가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려 했던 일이 조금은 기뻐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대로 뒤돌아 방을 나섰다. 사실 곤도에게 간다는 것은 그냥 한 말이였다. 그리고 몇 걸음 옮기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투명한 액체가 힘없이 후두둑 쏟아졌다. 미츠바가 죽었을 때 이후로 그렇게 눈물이 주체되지 않고 울어본 적은 처음이였다. 히지카타가 혹시나 나와도 자신을 볼 수 없을 정도의 거리에서야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으면서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넋이 나간듯이 앉아 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무엇이 그렇게 슬픈지 자꾸만 흐르는 눈물이 원망스러웠다. 이것으로 히지카타에게 더 더욱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다. 그 녀석이 했던 말과, 자신의 협박으로.

  

자꾸 그가 하려던 <좋아해>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을 보니, 그가 자신에게 했던 짓과는 별개로 사실은 그의 마음을 받고 싶었나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납득시켜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도 그를 납득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이다. 히지카타도 누나를 거절 했을 때 이렇게 계속 생각났을까? 다시 붙잡고 싶었을까? 이렇게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니까 우리 누나를 계속 사랑해줘.. 라는 마음이 같이 들었다. 같은 마음을 품고 있지만 그를 거절해야 하는 괴로움이 이렇게 아픈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에 대한 실망감과 원망,절망, 그리고 그를 향한 애틋함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마음속의 그가 너무 아팠다.


잘했어, 니가 한 행동이 옳았어,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자꾸만 모든걸 잊은 채 히지카타에게 달려가고 싶기도 하고, 다시 떠올려도 열 받는 그 새끼의 행동이 생각나기도 하고 복잡했다.

  

누나. 나 잘한거.. 맞죠?

  

  

  

  

  

 

  

다음날 소고는 아무렇지 않게 당당히 회의에 참석했다. 사실 아직도 얼굴을 당당히 볼 자신은 없었지만, 히지카타에게 나는 멀쩡하며, 네 녀석 따위를 티끌만큼도 신경쓰고 있지 않아.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 새끼 때문에 자신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도 이내 자존심 상했기 때문이다. 히지카타는 소고를 보고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그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소고는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회의를 덤덤히 진행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하고 있었지만 철저히 그의 쪽을 쳐다보지 않고 있다는 걸 그는 알았다. 의식하고 있구나. 하고 속으로 통쾌하기도 했다.

  

나한테 쫄았구나 새끼. 얼마나 무서우면 내 성격조차 잊어버리냐 너. 내가 그런 말을 곤도씨한테 정말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는 거야? 제대로 나에 대해서 생각도 못할 정도로 너는 그걸 잃는 것이 무서운거야. 소중하게 쌓아왔던 네 직위를 잃어버리는 것이.

  

소고는 그가 어이없게도 측은해졌다.

  

  

  

  

  

소고는 미리 얘기하지 않고 긴토키의 사무실에 찾아갔다. 갑작스레 찾아온 그를 보고 긴토키는 미리 언지라도 좀 주고 오지 왜 이렇게 찾아왔냐며 투덜대며 신파치가 없어서인지 잔뜩 늘어진 잡동사니들을 서랍이나 옷장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그 날은 둔영에 있으면 마음이 더 복잡해 질 것 같아서 찾아갔다. 그가 히지카타에게 화가 났고, 하지만 조금은 풀렸고, 약간 측은한 감정을 가진 것도 사실이고,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해줘서 기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저 이미 알고 있는 그런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싶었다. 뭐 마실래? 하고 물으며 앉으라고 말하는 긴토키를 보고 그는 그에게 다가가 먼저 말 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그런 의외의 행동에 긴토키는 왜 이러냐 오늘? 갑자기 이러니까 수상하고 무서워 라고 말하면서 그의 연갈색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냥..”

  

“이럴땐 ‘그냥’이 아니고 너무 좋아서요~ 이런 대답이 좋아”

  

“...너무 좋아서요”

  

“...어디 아퍼? 진짜로? 무슨 일 있어?”

  

긴토키가 그의 이마를 짚으며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라고 중얼거렸다.

  

“없어요 그런거. 그냥..”

  

“...”

  

“그냥.. 그냥 오늘은..”

  

뒷말은 그냥 흘려 넘겼다.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긴토키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 쯤은 알았다. 그리고 그럼에도 자신을 찾아와 줬다는 것에 안심했다. 소고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형씨가 날 떠나면.. 난 정말 슬플 것 같아요”

  

날 떠나면 더 이상 날 잡아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럼 정말로 히지카타에게 달려가고 싶을지도 몰라.

  

“너 정말 오늘 이상하다? 난 안 떠나. 사실 말하면 니가 걱정이야 나는.”

  

긴토키는 그의 말에 약간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뭘”

  

“... 아냐. 내가 잘못 말했어”

  

긴토키는 웃어보였다. 히지카타를 떠올렸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을 생각하곤 입을 다물었다. 긴토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눈 앞에 그를 놓치면 그 다음의 사랑을 기다리는 것도, 제대로 사랑할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막연한 느낌.

다시 누군가를 기다리기까지의 참을 수 없는 허무함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음과 자신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 이루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집착 혹은 갈망이였다.

  

소고가 자신에게 ‘떠난다면 슬플 것 같아요’ 라고 말해줘서 계속 가지고 있었던 불안함이 약간은 홀가분했다. 얼마 전까지 진실로 그를 죽여서라도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그를 옆에 두고 싶었기에 그의 이런 태도가 다행이었다. 나를 사랑해줘, 나를 사랑해줘... 그리고 눈앞의 그에게 말했다.

  

“오키타, 시작한 이상 우린 인연이고 연인이야. 절대 헤어지지 않을거야 우리”

  

  

그리고 긴토키는 자신의 안에 숨어 있는 본성을 그와 있을 땐 죽어도, 조금도 나타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키타, 너의 앞에선 완벽하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 항상 너를 좋은 모습으로 혹은 바보 같은 모습으로 좋아하기만 하는 그런 긴토키로 있어줄게.

너는 이런 나를 사랑해줘.

  

  

  

  

  

  

 

  

  

  

몇일 후, 생각을 마친 소고는 히지카타를 찾아갔다. 히지카타는 여전히 그를 약간은 두려워 하는 듯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히지카타, 너무 티내지마. 곤도씨가 먼저 눈치라도 채면 어쩌려고? 아, 아니다. 그럴일은 없겠네. 상상도 못하겠지.”

  

“....”

  

히지카타는 대답하지 못했다.

  

“평소처럼 하죠 우리. 전처럼. 할 수 있죠?”

  

“..전..?”

  

“응. 나는 여전히 당신을 싫어하는 1번대 대장이고, 당신은 신센구미의 부장이고 곤도씨의 보좌이자, 항상 나에게 자리를 위협받는 부장이예요. 나는 전처럼 당신을 죽이려 할 것이고, 당신은 그런 나에게 적당히 하라고 화내지만, 그렇다고 고된 벌은 주지 않는 상사. 그리고 곤도씨 앞에선 웃으면서 장난도 치는 사이. 아, 전처럼 날 아침마다 깨우러 와. 그러는 편이 자연스럽잖아”

  

“...”

  

“할 수 있죠?”

  

“...”

  

“아, 아니지. 히지카타 당신에게 선택권은 없어. 내 말대로 해”

  

“...”

  

히지카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고, 소고는 그런 그가 슬펐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모질게 말했다.

  

“...곤도씨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면 내 말대로 해”

  

그는 그 말을 남기곤 걸음을 옮겼다.

  

  

 

 

  

  

  

  

“어이 소고,지금 도데체 몇시야? 일어나”

  

“엄마... 오늘은 일요일인데...”

  

“일요일 아니고 오늘 화요일이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

  

안대를 거칠게 벗고는 눈을 비벼댔다. 지나가는 야마자키는 오키타 대장! 또 늦잠입니까? 하고 놀리듯 말하곤 지나갔다. 항상 모든 준비를 마치곤 그를 깨우러 오는 히지카타. 그리고 그런 그에게 항상 투정을 부리는 소고. 남들이 봤을 때는 딱히 문제 없는 신센구미의 평화로운 아침이였다.

  

여전히 그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런 그에게 히지카타는 어느 때처럼 화를 냈다. 그리고 어느 날처럼 곤도가 불러 같이 이야기라도 하자고 불러내면 같이 가선 곤도 앞에서 어느 때와 같이 으르렁대며 행동했다. 곤도는 그런 둘에게 여전히 사이가 좋구나? 라고 말했고, 소고는 좋다뇨? 곧 제 손에 죽을 텐데. 라고 어느 때와 같은 대답을 했다. 남들이 보기엔 전혀 문제 없는 사이였다. 소고와 긴토키는 자연스레 일을 부탁하는 친한 사이로 비춰졌고, 남들 앞에서 둘은 그런 사이로 보이게 행동했다.

  

 

히지카타의 비도덕적인 면은 아직도 남아있어 가끔 그와 단 둘이 순찰을 간다거나, 아무도 없는 공간에 둘이 있다거나 할 때 아직도 꿈틀 거려 조심스레 그의 어깨나 팔을 한 번씩 슬쩍 잡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잡은 곳을 신경 쓰인다는 듯, 불쾌하다는 듯 쳐다보는 그의 싸늘한 시선을 볼 때 마다 그의 협박이 떠올라 그 이상 그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소고는 히지카타가 자신에게 한 짓을 죽어도 말 할 의향이 없고, 앞으로도 없다. 하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와 자신의 역할을 알기에 그를 때로는 갈망하면서도 그 감정이 애정과 증오의 형태가 뒤섞인 모습으로 바뀌어 그를 괴롭히면서, 자신도 그를 원하지만 그럴수록 그런 그의 마음을 강하게 부정하며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듯 모질게 협박했다.

  

긴토키는 이 둘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하기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만족하고 있다. 단지 둘이 순찰을 한다거나 해서 둘이 있는 일이 있을 때는 소고가 그에게 감정을 가졌던 적이 있기에 질투 했지만, 히지카타가 그와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에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다툼 정도가 있었다. 다행히도 소고가 그를 떠날 마음은 없었기에 긴토키의 의도대로 그의 숨겨진 본성은 나타날 일은 없었다. 그가 떠나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정말로 다행이였다.


  

  

히자카타는 양보할 수 없는 그의 쌓아온 사회적 위치와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소고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제 누이가 향했던 사랑의 대상이,

긴토키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집착이 같은 선상에 존재했다.

  

 

그리고 그 날도 제 3자의 눈에 비췬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때와 같은 하루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지나간다.

  

 

 

 

 

 

 

 

 

 

 

 

 

 

 

문제는 회의였다. 아무렇지 않게 회의를 가야겠다 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회의 당일 아침 그는 도무지 그의 얼굴을 볼 용기가 서지 않았다. 갈까 말까 하고 고민하는 와중에 회의를 가는 지 옆방에서 나오는 야마자키의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야마자키와는 다른 그의 발소리. 항상 이 문을 열고 깨워주곤 했는데. 그때의 너는 정말로 니가 맞아? 내가 정신병이라도 앓고 있는 거야? 차라리 그러길 바랐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당분간은 회의를 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의를 가지 않다보니 히지카타를 마주칠 일은 없었다. 다른 대원들도 회의에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이 없는걸 보니 히지카타가 알아서 둘러대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후로도 이 좁은 둔영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히지카타 역시 그를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찾아와서 무어라고 변명이라도 해주길 기다렸다. 자신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그래서 자신을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주길 바랐다. 화가 나고 역겨웠지만 좋아했으니까 오랜 세월 함께 했으니까. 한 구석으로 그를 믿고 있는 마음이 은근히 컸던 모양이다. 도데체 나에게 했던 행동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리고 했던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용서 할 수 없지만 용서하고 싶었다.

  

.....그야.. 내가 너한테 미쳐버렸으니까

  

왜 니가.. 니가 자꾸 나를 괴롭혀.. 내버려두지.. 왜 나를 자꾸... 힘들게 해..


  

  

  

  

긴토키와 소고는 그 날 이후로 전 보다 사이가 좋아졌다. 소고는 그의 앞에서 항상 철이 없었고 그런 점은 긴토키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친구였다. 둘의 사이를 가장 정확히 정의한다면 ‘친구’였다. 친구 같은 연인.

  

소고에게 ‘편하다’ 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쪽은 히지카타였겠지만 긴토키에게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라면 히지카타보다는 긴토키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 맞겠다.

  

  

한편 긴토키는 고민이 많았다. 소고가 히지카타를 부정해주어 기뻤던 것도 잠시,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TV를 보다 떠올랐다. 왜? 라는 것을 물었어야 했었다는 걸, 아 이런 멍청한 새끼. 생각을 아예 못하고 지나가버렸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겠지만 이미 그는 생각해버렸고, 궁금해하고 있었고 어느새 상상하고 있었다. 혹시나 마음을 말했다가 거절 당했던걸까?

  

애석하게도 그때 그 순간에 모든 것을 끝내고 오지 못했다. 한참 궁금해 하던 그는 이내 그것을 억지로라도 잊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은 채로 옆에 있는 것이 싫다고 말했던 것은 이용당하고 싶지 않은 그의 마지막 오기였다. 하지만 그 말에 그는 천연덕스럽게, 혹은 천진난만하면서도 영악하게 대답했었다.

  

에이, 둘 다 스파크 튀게 좋아서 사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모르시는구나?

  

전에 형씨가 말했듯이 어차피 안 되는 사람인데 기운 빼서 뭐해요?

  

  

맞는 말이였고, 시작이 반 이라는 말도 있다는 생각을 해다. 좋은 시간을 보냈을 때도 있었고, 불안할 때는 셀 수도 없이 많이 있었고, 싸우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런 그 녀석이 자신을 떠날 의지는 없어 보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랬다. 그 녀석 말대로 어차피 이루어지지 못할 상대의 녀석에게 질투라니, 스스로를 안심해 안심해 하고 토닥이며 잊기로 했다.

  

혹시나 그가 만약에 또 다시 그 녀석을 두고 고민해 온다면, 한번쯤 눈치재지 못하게 그 녀석과 그 녀석의 누나에 대해 다시금 상기 시켜주면 되는 문제였다. 그 녀석과 그 녀석의 누나와 함께 식당에 갔었을 때 보았던 그 녀석의 모습이라면 결코 히지카타에게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란 무섭도록 떨어지지 않는 것이기에 긴토키는 자신의 본성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새 그 본성에 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니까 혹시라도 그 새끼 생각하지마- 나를 이용하거나 나를 버릴 생각도 하지마- 나는 너를 시체로라도 옆에 두고 싶을 정도란 말이야.

  

  

  

 

 

  

  

  

히지카타 역시 그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는 그날 회의 시간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야마자키에게 오늘 회의는 생략하는 것으로 하자고 연락을 취했다. 나중에 야마자키에게 우연히 들은 바로는 그 녀석 빼고는 모든 대원이 모두 나와 있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제 입을 틀어막더니 오키타 대장에겐 제가 말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약간은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마라 나도 말하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가서 네 녀석 이야기든 뭐든.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미안하다, 잘못했다 라는 말은 꺼낼 수는 없었다. 고작 그 한마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고, 그 모든 상황이 너무 싫어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동시에 몰려오는 그럼 신센구미는? 항상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럼 곤도씨는? 나를 믿고 내가 보좌해야 할 사람인데, 그럼 그 녀석은? 등등을 시작으로 이틀 후에 양이지사 놈들의 아지트라고 확정된 곳으로 가서 놈들을 검거해야하는데, 그럼 그건 어쩌지? 라던가 몇 일후에 처리해야할 사소한 일들이 차례차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그는 알았다. 지금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신센구미와 일, 직책이었다. 죽는 것을 두려워 한 적은 크게 없었지만, 지금 그는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의지가 굳건하지 않음과 동시에 비도덕적인 그의 또 하나의 내면이 자꾸만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그 녀석과 다시 마주쳐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 하루종일 꽉차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얼어붙을 듯이 냉소적인 새벽이였다. 쓸쓸한 새벽하늘을 문득 바라보며 지금 자려나, 그 녀석도 원채 잠을 잘 못 이루던데. 하고 생각하다가 상상했던 그 녀석의 안대 쓴 모습과, 얼마 전 그를 탐하려 했던, 그리고 아직도 그의 손과 입술과 그와 맞닿았던 모든 곳이 생생히 기억하는 그의 체온이 생각나 후끈 뜨거워졌다.

  

 

 

 

꿈에 녀석이 나왔다. 그는 꿈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꿈이라 그런지 그 녀석에게 사과할 용기가 생겼고, 곧 다가가 그 녀석의 앞에서 무릎을 꿇곤 잘못했다고 말했다. 진실로 너에게 잠시 내가.. 내가 미쳤었나봐.. 말하는 와중에 눈에선 뜨거운 액체가 주륵 하고 흘러내렸다. 그리곤 곧 그 눈물이 멈출 생각도 없이 얼굴선을 쉼 없이 타고 내려왔다. 잘못했어. 미얀해 정말로 내가 미쳤었나봐, 아니. 미쳤어. 뭐라고 말해야.. 진심이 전해질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난 정말로..

  

히지카타씨?

  

그 녀석은 샤워 직후였는지 샤워가운에 수건을 들곤 그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이였다. 그리곤 울고 있는 그를 보고는 아 뭐야, 쪽팔리게 지금 우는 겁니까? 귀신 부장님께서? 하곤 우습다는 듯이 킥킥 웃었다. 나를.. 용서해주는거야? 하고 묻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뭘 용서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더니 아- 설마 ‘그 일’ 때문에? 하고 다시 작게 웃었다. 그리곤 쇼파에 풀썩 앉더니 다리를 무릎 꿇은 그의 앞에 두곤 거만한 표정으로 앉아선 이렇게 말했다.

  

히지카타씨. 나랑 하고 싶은 거 아니였어요? 나는 발이 성감대예요, 내 발에 키스하고 구걸해봐요 해달라고.

  

우습다는 듯이 내려다보면서 킥킥 웃는 모양새가 놀리는 것이 확실했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빌다가도 그런 그의 모습에 홀린 듯이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 그의 발에 키스하고 있었다. 내면에 크게 잡힌 자신의 욕망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역시 히지카타씨는 그런 모습이 어울려요. 맨날 듣는 얘기잖아요? 막부의 ‘개’라고. 발에 하는 키스는 복종을 의미한다더라고요. 나한테 복종하는 거죠?

  

한 팔로 턱을 괴곤 내려다보며 씨익 웃는 모습이 히지카타에겐 이성적인 다른 생각 따윈 들지 못하게 하는 충분한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 꿈안에 영원히 갇히고 싶었다. 그 누구의 간섭도,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도덕적일 필요도 없고, 죄책감에서도 해방된 채 단 둘이. 그 세상에 존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 녀석은 회의를 몇 일간 나오지 않았고, 히지카타는 그 점을 속으론 약간은 안심하면서도 자꾸 신경 쓰였다. 다른 대원들은 히지카타에게 왜 오키타 대장은 안나오냐며 물어왔지만 히지카타는 그냥 대충 무시하곤 회의를 설렁설렁 진행했다. 그리곤 회의내용은 전해주라고 일렀다.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틀어지는 그 녀석과의 관계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츠바의 존재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혹은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혹은 그녀가 이 녀석의 누나가 아니였다면, 그녀가 착하고 순수한 여자가 아니였다면, 그녀가 날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그 녀석에게 이런 어긋난 마음이 생겼을까? 그 전에 이 사회의 ‘부장’이라는 존재의 책임감에 짓눌려 있지 않았다면 이런 더러운 욕망이 생겼을까? 생각해도 소용없는 엎질러진 물이였다. 항상 옆을 맴돌던 그 녀석이 갑자기 사라진 듯한 느낌에 히지카타는 말할 수 없는 고독감이 밀려왔다.

  

  

그 날은 유난히 피곤했고, 히지카타는 여러 가지 신경 쓸 일이 많아 일을 마치는 게 좀 늦었다. 들어가서 마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으로 들어가려 다가가는데 어두운 방 앞에서 서성이는 누군가를 발견하곤 뭐야? 하는 생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서성이는 누군가가 누구인지 확인하곤 그 자리에 발이 파 묻힌 듯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 역시 놀랐는지 흠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어?”

  

“...아..”

  

무어라고 말을 더 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입이 얼어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해 잘못했어..

미안해 잘못했어..

  

  

그리고 히지카타와 소고는 그의 방 안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바라보는 그 녀석의 눈빛이 너무 따갑고 무서워 눈을 계속 마주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잠시 마주쳤다가 아래를 봤다가를 반복했다. 소고도 생각을 정리하는지 별 말 없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생각을.. 해봤어.”

  

“...”

  

“난 너처럼 똑똑하지 않아서 니가 한 말의 의미를 찾을수가 없어”

  

“...”

  

“내가 먼저 너한테 이야기 하러 왔다는게 미치게 자존심 상하긴한데, 아 내가 답답해서 자존심 챙기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아서.”

  

“...”

  

“자, 나를 납득시켜봐”

  

소고는 그 순간은 솔직한 이야기를 하러 왔다. 수 많은 고민을 했고, 기다렸고, 혼자 생각을 하다가 그것으로는 결론을 맺을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되던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나는..”

  

히지카타는 죄를 지은 범죄자 마냥 그의 앞에 고개를 숙인 채 그 이상 말을 잊지 못하는 자신의 행동이 갑자기 우습고 황당했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내가 너의 눈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만큼? 말했잖아, 난 노력했고, 그걸 자극한 네 녀석의 잘못도 있어. 그의 안에서 자꾸만 나오는 다른 인격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차마 입 밖에는 내지 못한 채 하고 싶은 말들이 안에서만 한참 맴돌고 있을 때 눈앞에 있는 그가 한숨과, 약간의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됐다. 나도 더 이상 이런식으로 네 녀석 앞에 앉아 있기 힘들어”

  

너만 힘들어? 나도, 나도 힘들어 나도, 너는 왜 항상 네 녀석 입장만 생각해? 그 말 역시 입 밖으론 나가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너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거든”

  

소고는 방을 나오며 굉장히 화가 났다. 기껏 자존심까지 굽히고 찾아간 것의 결과가 이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한켠에선 아니야 지금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본인이 너무 짜증스러웠다.

  

일어서서 돌아 나가는 그의 뒷 모습 중 가장 눈에 띄는 하얗게 빛나는 발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한손으로 턱을 괴곤 피식 웃던 거만한 모습까지 꿈에서 보았던 환상과 현실이 살짝 접점이 되어 히지카타의 눈 앞에 잠깐 비추었다.

  

  

  

  

  

  

  

  

마음이 썩 좋은 것은 아니였지만, 긴토키는 항상 옆에서 웃게 해주는 제주가 있어서 그와 있을때는 그렇게 많이 심각하다거나 생각에 잠긴다거나 하지 않았다. 물론 상대적인 것이라, 긴토키 입장에선 약간은 기분 좋아 보이지 않는 그가 계속 신경쓰였다. 그래도 긴토키에게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그가 먼저 자신을 부르는 일도 많았고, 조금은 마음을 열어간다고 느꼈기에 약간은 안심하자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그날은 신파치도 츠우 콘서트가 있다며 다음날 저녁쯤이나 오겠다고 했다. 긴토키는 그 사실을 생각하곤 소고와 평소와 다름없이 소소한 것들을 보고, 간단한 먹거리를 즐기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두워지자 이만 가보겠다고 일어서는 그에게 긴토키는 말했다.

  

“어어, 잠깐만 오키타, 신파치가”

  

“안경이요?”

  

“응, 신파치가 내일 저녁쯤 온데”

  

“아, 또 츠우 콘서트 갔나보네요”

  

“응. 그래서 말인데 .. 오랜만에 우리집에서 자고가라, 응?”

  

“안돼요 혼나”

  

말하곤 걸음을 옮기려는데 긴토키가 잠시 그를 쳐다보다 물었다.

  

“.. 히지카타에게?”

  

소고는 그가 말하는 이름에 아.. 그 녀석은 이제 나를 혼내지도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전이라면 조금은 기뻤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느끼는 이 씁쓸한 감정에 우울해졌다. 그리곤 긴토키에게 말했다.

  

“아,.. 생각해보니 상관없을 것도 같아요 가요.”

  

긴토키는 그의 대답이 기뻤다. 같이 자자 라는 뜻의 말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듯이, 긴토키 역시 여러 가지 생각이 있지만 가장 큰 생각은 그를 옆에 오래 두고 싶었다. 끌어 안고 잠들어 보고 싶고, 깨울 땐 모닝 키스 같은 걸로 깨워 보고 싶기도 하고.. 전에 함께 있었을 때야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니까. 물론 이 상황이 다 만들어 지게 된다면 조금 더 욕심내서 이상의 스킨십도 생각하고 있었다.

  

  

“손”

  

긴토키는 손을 달라고 제 손을 내밀었다. 그는 말없이 그의 손에 제 손을 포게었다.

  

약간 앞서서가는 긴토키를 소고는 힐끗 쳐다보았다. 원래도 손이야 잡았던 적은 많았지만, 그 날의 느낌은 그에게 약간 어색하면서 달랐다. 그가 조금은 간지러웠다고 해야하나..

  

  

  

"이거 생각나?“

  

집에 도착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긴토키가 생각났는지 후다닥 무언갈 꺼내왔다.

  

“뭐예요?”

  

긴토키가 꺼내온 것은 노란색 피카츄 인형이였다.

  

“신파치가 하도 잔소리해서.. 원랜 밖에도 놨었는데 다 안으로 넣어뒀어”

  

“그니까 그게 뭔데요?”

  

“피카츄잖아. 몰라?”

  

“뭐야, 그거야 알죠. 난 또 뭐라고”

  

“야야 , 이거 니가 사격해서 따준 인형이잖아. 생각 안나?”

  

긴토키의 말에 그는 전에 함께 갔었던 축제를 떠올렸다. 아- 그때가진 아무 문제 없는 사이였는데 말이지, 아니 오히려 그 새끼가 하는 짓이 너무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 때 까지는 그 여자를 죽일 생각도 없었고, 그 상황에서 그 여자에게 느끼는 자신의 월등한 우월감에 젖어 행복했었다. 히지카타의 말대로 그 여자를 죽인 자신의 행동이 불씨가 되었다면, 그 전에 그 새끼가 그 여자를 사귄다거나 하는 행동 같은 것으로 그 새끼야 말로 자극하면 안되는 것이였다. 뭐 이제와서 생각해도 소용없는 짓이지만.. 작은 한숨을 쉬곤 이내 아. 그랬구나 하곤 짧게 대답했다.

  

“너랑 피카츄랑 닮았어. 노란것도 그렇고 전기 뿜어 내면서 승질내는것도, 아- 근데 귀엽긴 피카츄가 조금 더 귀엽다는거?”

  

그리곤 우스웠는지 긴토키는 그의 옆에서 소리내어 웃었다.

  

“피카츄 약해서 싫은데, 이왕 포켓몬으로 말해 줄 거면 저딴 애 말고 최강 포켓몬이 좋아요, 전설의 포켓몬이라거나”

  

“어이 들었냐 피카츄 널 무시하잖아 너의 힘을 보여줘!”

  

“나 졸려요 잘 거야”

  

시덥잖은 장난을 치려는 긴토키 앞을 지나가며 그가 말했다.

  

“응? 잘 거야?”

  

긴토키는 잠시 가만히 서 있더니 그를 쫓아가 들고 있던 인형의 입 부근을 그의 입에 갖다 대었다. 소고는 그의 어이없는 행동에 뭐하는 짓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긴토키는 말했다.

  

“너는 뽀뽀해도 별 말 없구나, 난 가벼운 뽀뽀라도 하기 전에 얼마나 눈치를 살펴야 되는지..”

  

긴토키는 인형을 끌어안고 장난식으로 초라함을 어필하며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는지 소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하던가..”

  

“응?”

  

“키스 하고 싶으면 하던가”

  

자신이 약간 말하고도 쪽팔린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얼얼했다. 그의 모습을 보곤 긴토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가 입술을 맞대었다. 소고에게 그 날은 그냥 뭔가 조금 이상했다. 긴토키와의 키스가 히지카타와의 키스가 얼핏얼핏 겹쳐졌지만, 그만큼 간절하다거나 계속 기억날 만큼 머릿속에 남을 정도는 아니였다. 하지만 싫지 않았고, 그가 입안을 헤집어 올 때 그는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을 사르르 감았다.

  

한참을 키스하다 입술을 떼었을 때 긴토키가 목 언저리로 입술을 옮겼다. 그가 어깨 부근을 살짝 잡았을 때 그는 집무실에서의 히지카타가 생각이 나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히지카타가 무섭다기보다는 집무실에서의 히지카타가 아닌 히지카타가 그저 소름이 끼쳤다. 오랜 시간 믿고 지낸 것에 대한 배신감이 제일 컸을 것이고, 자신이 억지로, 억지로 그런 일을 당했다는 수치심에서 오는 감정이였다.

  

“그만, 싫어요”

  

소고는 긴토키를 밀어냈다. 긴토키는 이건 자신이 부리는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거부 의사를 밝히자 일단 멈추었다.

  

“왜?”

  

왜. 그 말도 자꾸 히지카타가 그 때 당시 했던 말과 겹치어 그는 잠시 느껴지는 현기증에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선택을 다시 한번 후회했다. 히지카타와 닮아서 긴토키를 옆에 두려 했지만, 지금은 그에 따른 결과가 약간은 어긋나고 있었다.

  

“아...아니, 나, 나 둔영으로 갈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하는 그를 보고 긴토키는 허겁지겁 팔을 잡았다.

  

“아.. 미얀. 안그럴게. 가지마”

  

긴토키는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안그럴게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긴토키에게 다행히도 소고는 문 앞에서 멈추었다. 그저 아직 어려서 이런 것에 거부반응이야 충분히 보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기준이란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 이후엔 약간 넋 나간듯해서 그냥 바로 잠에 들 요량으로 그를 데리고와 옆에 눕혔다. 옆에 누워 왠일로 곧 바로 잠드는 그 녀석이 신기해 긴토키는 머리를 한번 쓸어 넘겨주었다. 정말로 싫었는지 식은땀이 범벅된 그를 보고 긴토키는 약간은 서운했지만 크게 신경 쓸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긴상, 요즘 좀 이상해요”

  

“뭐가? 내가? 내가 왜”

  

수상쩍게 쳐다보는 신파치의 눈빛에 긴토키는 약간 움찔했다. 신파치는 은근히 이상한 시점에서 눈치가 빨라서 무서울 때도 종종 있었다. 연애를 암묵적인 룰으로 숨기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신파치가 어떤 눈빛으로 볼지 두려운 감정도 약간은 앞섰다.

  

“요즘 감정 기복이 심하길래, 혹시나.. 말도 안되지만 연애라도 하나 했죠. 왜 연애하면 그 사람 때문에 기분이 오락가락 한다잖아요? 근데 뭐.. 설마... 하하”

  

신파치는 여전히 수상쩍은 눈으로 보았지만 설마 저런 날 백수가 연애를 하겠어? 라는 의문을 더 크게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긴토키는 그의 말을 부정하듯 TV에 나온 케츠노 아나운서의 모습을 보고 우와! 케츠노 아나다! 오늘 하루도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외치며 그날따라 더욱더 과장된 액션으로 TV앞에 딱 붙어 소리쳤다.

  

“뭐.. 저런 한심한 꼴을 누가 좋아하겠어..”

  

신파치가 탄식하듯 말하고는 긴토키가 늘어놓은 만화책과 먹고 남겨놓은 딸기 우유 등을 치우며 말했다.

  

“야, 신파치 너 은근히 사람 관찰하는거 좋아하지 않아? 니가 봤을 때 오오구시군은 어때?”

  

지금 소고의 행동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하면서 약간의 열등감으로 제 3자의 입장으로써의 히지카타의 평가가 궁금했다.

  

“음.. 히지카타씨는.. 멋있죠, 우선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잖아요?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 카리스마도 있고, 뭐.. 일단 잘생겼으니까”

  

늘상 듣던 그의 평이였다.

  

“누구랑은 다르게라니.. 그거 설마 날 가리키는거냐? 그럼 나는?”

  

“정- 반대겠죠”

  

“됐다 됐어, 너한테 이런 걸 묻는 내가 잘못이다 잘못이야”

  

긴토키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누웠다. 이 사람아 청소하는거 안보여! 신파치는 그대로 털썩 드러누운 긴토키에게 소리쳤다. 아아.. 완전 엄마야 엄마...

  

“아 맞다! 어제였나? 오키타씨 만났어요”

  

그 이름에 긴토키는 귀를 쫑긋 세웠다. 최대한 덤덤하게 물었다.

  

“아아. 그래?”

  

“완전 표정 안 좋던데, 요즘 그 쪽도 무슨 일 있어요? 인사했는데 보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쳐가더라고요”

  

“아.. 그래?”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야.

  

“긴상 모르세요? 오키타씨랑 친한거 아니예요? 요즘 자주 만나잖아요?”

  

“아.. 뭐.. 친하지..”

  

  

  

  

  

  

  

  

  

  

  

  

  

  

“......그야.. 내가 너한테 미쳐버렸으니까”

  

그 말이 사실 소고에게는 약간 놀랍기도, 설레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미쳤다. 너에게 미쳤다. ‘미쳤다’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대충 그가 알고 있는 뜻은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거나, 제 정신이 아닌 상태를 이르는 말이었다.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생각하고 있을 때 히지카타가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뭐야, 하는 생각에 그를 약간은 공격적인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히지카타는 그런 그의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눈빛이 그를 다시 한번 자극하는 촉매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그를 와락 껴안았다. 말 그대로 히지카타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무슨 용기로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는지. 무슨 용기로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는지, 그것은 저항할 수 없는 무언가의 이끌림이였다. 가슴팍에 안겨 숨 쉴때마다 작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가슴과 입고 있는 제복을 뚫고 나오는 따스한 온기가 미치게 좋았다. 히지카타는 약간 자세를 낮추곤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했다. 다가오자 약간 고개를 틀어서 피하려 했지만 히지카타는 그의 뒷 머리를 끌어당겨 그대로 키스했다. 소고는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지금 입을 맞춰오는 그의 말의 뜻을 반은 의심하고 반은 이해했다. 이 새끼는 나를 아직도 누나랑 겹쳐 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한쪽, 그리고 한쪽으론 아냐 혹시나 나를.. 하는 생각으로 복잡했다. 제 누이의 마음에 대한 죄책감은 아직도 한쪽 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와 맞댄 입술이 너무 달아서 그 순간은 떼고 싶지 않았다.

  

그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이 바깥과 시간이 분리되어 다르게 흐르는 듯 했다. 처음 부슈에서 재수 없다고 생각한 이 녀석을 만났을 때부터, 에도에 올라와서 있었던 수 많은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에 촤르륵 흘러갔다.

  

키스. 라는 단어를 두고두고 생각한다면 분명 이 순간을 평생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꿈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몽롱하고 데일 정도로 뜨겁게 맞닿은 입술과 뒤엉키는 매끄러운 혀의 감촉이 이상할 정도로 야릇했다.

  

계집애도 아니고 첫 키스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첫 키스도 이 녀석과 함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한참을 서로 정신을 놓고 키스 할 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소고가 놀라 떨어지려 하자 히지카타가 물었다.

  

  

“왜”

  

둘은 약간은 뜨거운 입김을 서로 약하게 내뱉고 있었다.

  

“아.. 아니..”

  

뭔가 어색한 기운이 그를 감쌌다.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전개여서 그런지, 그는 히지카타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말했다.

  

“누..누가 오잖아”

  

“안와.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

  

히지카타가 다시 입을 맞추려 들자 그제야 약간은 제정신을 찾곤 그는 고개를 홱 돌려 피했다.

  

“왜 또”

  

“..왜 라니 이 새끼야. 지.. 지금 이제 저.. 정상적인 행동이야? 미친 씨발”

  

그는 실수 했다는 생각이 들어 욕을 지껄였다. 히지카타에게 하는 욕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욕이였다. 있는 힘껏 히지카타를 밀쳐내곤 나가려고 문고리를 비틀어 열자 뒤에서 히지카타가 신경질적으로 문을 밀쳐 닫았다. 부서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가지마”

  

무슨짓이야? 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히지카타는 그에게 다시 입을 맞추었다. 그와의 키스가 결코, 절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실은 그 역시 계속 하고 싶었지만 자꾸만 그의 머릿속에 재생되는 히지카타와 제 누이의 고백 장면이 그를 자꾸만 멈칫하게 만들었다. 키스하다가 자꾸 멈칫 멈칫하며 피하려는 그의 행동이 히지카타를 약간은 더 자극하는 셈이 되었다. 한손으로 윗 단추 두어개를 풀어 해치자 소고는 그의 손을 급히 잡곤 다시 한번 그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소고, 너.. 진짜 자꾸... 짜증나게, 할래?.. 가만히 있어”

  

히지카타는 그를 붙잡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목에 입술을 파묻었다. 꿈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가슴이 벅차오는 기쁨과 그 광기에 숨이 가빠올 정도였다. 그래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가 약간씩 움직일 때마다 모습을 선명히 드러냈다가 숨었다 하는 쇄골이 이렇게 야했었나 하고 생각했다.

  

“놔! 이 새끼야”

  

소고는 신경질적으로 그를 밀쳐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문꼬리를 잡자 히지카타는 그의 뒷덜미를 잡곤 문에서 억지로 떨어트려 바닥에 던지듯 눕혔다. 히지카타와 자주 싸웠기에 대충 완력 정도야 가늠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 그의 힘이 평소와 달리 너무나 강해서 소고는 당황했다. 바닥에 부딪쳐 등과 뒷 머리가 욱신거려 그는 미간을 좁혔다.

  

“소고.. 나는 말이야..”

  

히지카타가 그의 위에 올라타선 말했다.

  

“나는... 최대한 노력했다고 생각해.. 정말이야.. 그래서 술집에 가서 여자랑 술을 먹어보기도하고.. 그 여자를 옆에 두기도 했고.. 그러면서 너랑 멀어지려고 노력도 했고.. 그래서 방도 옮겼잖아..”

  

“무슨 소릴 하는거야”

  

“계속 니가 옆에 오면.. 참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래서...”

  

히지카타는 그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손이 흥분에 의해 약간은 떨리고 있었다. 보송보송한 솜털과 키스직후여서 인지 타액에 의해 매끄럽게 빛나는 그의 입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먹음직스러웠다.

  

“근데... 근데... 왜 니가.. 니가 자꾸 나를 괴롭혀.. 내버려두지.. 왜 나를 자꾸... 힘들게 해..”

  

소고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를 두었다는게 왜 노력한 것이며, 참을 수가 없었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지 그는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그때까지도 그에게 히지카타는 도덕적이고 정갈하며 자신이 자주하는 음담패설에 대해 항상 혼내곤 했기에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히지카타는 두어개 풀어 해쳤던 그의 셔츠의 단추를 마저 풀었다. 급했는지 다소 그의 손길이 거칠었다.

  

“씨발 진짜 미쳤냐 이새끼야!”

  

소고는 그럴 리가 없는 그가 지금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에게서 떨어지려 그를 밀쳐내려고 했다. 힘이 이상하게 너무 쎈 눈 앞의 이 녀석이 오늘은 도데체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강하게 저항을 했다. 아무리 히지카타의 완력이 그 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 역시 일단은 남자였고, 저항을 쉽게 막을 수는 없었다. 그가 옷 단추를 푸르는 것 이상의 행동은 못하게 되어 눕혀 있던 몸을 반쯤 일으키려 할 때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확 돌아가고 약간 일으키려 했던 몸이 다시 바닥에 떨어지고 순간 눈 앞에서 전기가 튄 듯 번쩍 하고 튀었다. 정신이 머엉 하면서 볼 언저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때렸어? 그는 놀란 표정으로 주먹을 쥐고 있는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히지카..타..”

  

말을 잊기 전에 두어번 더 얻어 맞았다. 턱과 귀쪽을 맞아서 인지, 히지카타가 갑자기 이렇게 강력하게 강압적으로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해 충격을 받아서 인지 다소 흐릿했다.

  

“소고, 내가.. 내가 가만히 있으랬잖아. 반복해서 말하게..하지마.. 나..오늘은 진짜.. 화나려고.. 하거.. 든?”

  

이 새끼가 히지카타가 맞는건가.. 내가 지금 다른 사람과 착각을 하고 있는 건가.. 물리적, 정신적 충격 탓 인지 몸도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널부러져 있었다 라는 말이 어울렸다. 어물어물한 시야로 보이는 광경은 히지카타가 그의 몸을 애무하고 있다는 것 정도와 자신도 모르게 약간씩 움찔 움찔하는 그의 반사적인 몸이 수치스러웠다. 씨발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고 되뇌이고 있을 때 밖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어떤 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부장님. 국장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불러달라고 하시는데요”

  

다행히도 그 이름 모를 대원은 들어오지 말라는 히지카타의 명령에 철저히 따랐고, 노크 후 밖에서만 이야기 했다. 그런 그 대원의 행동은 히지카타에게도 소고에게도 무척이나 다행이였다.

  

그 목소리에 히지카타는 헤매고 있던 이성을 간신히 찾았고, 한참을 거칠게 내뱉던 숨을 한 차례 진정시키곤 대답했다.

  

“어.. 조금 있다가.. 간다고 전해”

  

히지카타는 눈 앞에 있는 헤집어져 있는 셔츠와 쇄골 언저리의 키스마크, 얻어 맞아서 생긴 얼굴의 흔적들이 모두 자신의 행동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그에게 황급히,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 마냥 떨어져 이미 거친 숨을 더욱 거칠게 몰아 쉬었다.

  

“아.....”

  

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 미친.. 더러운 새끼”

  

소고는 울리는 머리를 붙잡곤 몸을 일으켜 옷을 추스렸다. 히지카타는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떨어져 놓고도 그는 그의 옷을 추스르는 그의 모습이 이내 아쉬웠다. 미얀해, 괜찮아 라던가 그런 류의 말을 할 용기는 없었다. 그저 이 녀석이 비틀비틀 나가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와 맞대고 있었던 그 순간이 그리워 시간을 되돌리고 싶기도 하면서 되돌린다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텐데.. 하고 두 가지 정 반대의 생각을 했다. 다행이야 여기에서 멈춰서. 하지만 조금 아쉽기도.. 아냐 다행이야 여기에서 멈춰서. 하지만 조금은 ..

  

  

  

  

  

집무실에서 나온 소고는 방금 있었던 히지카타와의 일을 떠올리곤 곧 바로 미츠바가 떠올랐다. 키스는 분명히 본인도 원했지만, 그 이후의 일은 사실 원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추잡한 짓은 그에게 단순한 유흥거리로 대원들이 보는 걸 같이 보거나, 그런 것을 소재로 당황하는 사람들에게 농담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의 대상이 본인이 될 거라 생각 해 본적이 없기에 다시 떠올리곤 그는 온몸에 소름과 거부감 그리고 만약 그 대원이 부르러 오지 않았다면? 혹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하는 생각에 역겨움을 느꼈다.

  

히지카타를 좋아하는 감정은 있었지만 그에 비례한 만큼 실망도 컸다. 그리고 자존심이 쎈 그 였기에 더더욱 자신에게 그런 짓을 억지로, 심지어 저항하는 자신에게 주먹까지 휘둘러가며 하려 했던 그를 용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켠으론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약간은 있었는지 거부감과 역겨운 감정은 분명히 있었지만 자꾸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생각이 나면서 이해하고 싶어서 고민도 했다. 그러나 용서 될 리가 없었다. 일단 그에게 저항했다는 이유로 얻어 맞았다는 것에서 오는 충격이 첫 번째 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그 녀석의 축축한 입술과 혓바닥이 자신의 목덜미와 쇄골부터 가슴, 배와 허리 부근까지 맛보았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두 번째 였다.

  

긴토키에게 여러차례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에선 별로 만나고 싶지도,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장 흔하면서도 그 대답에 화를 낼수도, 따질수도 없는 대답으로 바빠요, 바빳어요, 바쁠거같아요 라는 대답으로 상황을 피해갔다. 둔영에 일하러 긴토키가 올 때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그때는 일부러 그가 오기 전에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도망치듯 하루 이틀, 삼일정도를 피해 다니길 5일째가 되던 날, 그 날도 다름없이 긴토키가 올 쯔음에 후다닥 밖으로 나가는 앞에서 긴토키를 정면으로 딱 마주쳤다. 이제야 잡았다 라는 표정을 짓고있는 긴토키를 보고 당황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인사했다.

  

“어디가?”

  

“아.. 일이 좀..”

  

“왜 너만 그렇게 정신없이 바빠?”

  

“나만 바쁜거 아니예요 다 바빠요 지금 우리”

  

“그래? 아까 야마자키는 요즘 일이 별로 없어서 심심하다고 하던데”

  

“.. 그 새끼야 맨날 뭐..”

  

“누가 들으면 너 일 엄청 열심히 하는 성실한 공무원인줄 알겠다야”

  

긴토키는 기가 찬 웃음을 보이고는 곧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요즘 이상해”

  

“...”

  

“나 피해?”

  

“누가 피해요? 그런거 아니고 진짜로 바빠요 요즘”

  

“따라와 너 안 바쁜거 알어”

  

“싫어요”

  

“왜?‘

  

“그냥”

  

“그냥이 어딨어 왜그러는데”

  

“.... 생각을 좀..”

  

“생각? 무슨생각”

  

긴토키는 그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시점부터 히지카타와 사귀고 있었던 그 여자의 죽음까지, 그리고 지금. 생각을 한다고 말하니 약간 불안했다.

  

“아.. 제발..지금은 그 누구도 만나기 싫어요”

  

그가 지칭하는 ‘그 누구도’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게 그는 서운했다. ‘우리’로 칭해져야 하는 사이 아냐? 우리. 끝내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그를 보고 긴토키는 왜인지 자꾸만 히지카타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 녀석에게 히지카타라는 이름을 먼저 내뱉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말을 하려다가 그저 한숨만 내뱉었다. 조용히 지내던 날들의 순간이 왠지 멀어지는 느낌이였다.

  

“오키타, 나는”

  

“...”

  

“나는 너랑 있었던 시간이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이겠지만, 한번도 마음 편히 지낸 적이 없었어. 넌 편하냐”

  

“...”

  

“어때 넌”

  

“... 형씨. 내말 듣고 있어요? 나 오늘은 아무도 만나기 싫다고 했어요. 일하러 온 거면 일이나 하고 가요”

  

그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이야기했고, 여전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히지카타와 격렬한 키스를 나누었으며, 히지카타가 자신을 강제로 탐하려 했던 순간이 화가나고 역겹지만 아주 약간의 미세한 한켠으로는 그를 생각하고, 이유가 뭐였든간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였다. 긴토키를 너무 너무 좋아해서, 혹은 순정만화에 흔히 나오는 나의 첫 키스를 너에게 주지 못했어! (그 때가 처음도 아니였지만) 라는 착한 척 가증떠는 그런 여자 따위가 하는 생각도 아니고, 그냥 옆에서 믿어주는 듯한 그의 행동에 대한 의리였다.

  

  

“그래”

  

긴토키는 이 녀석에게 화가 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였지만 그 날은 정말로 화가 났다. 원래 얄밉게 자신이 화를 내던 말던, 기분이 좋던 말던 자기 내키는 대로 하는 녀석이라는걸 알지만 말하는 꼴이 그날따라 정말이지... 아.. 너무 화가나서 생각 하는 것도 멈추 었다. 지붕 공사도 어느덧 거의 끝나고 있었다. 표정 관리가 안되어 화풀이 하듯 거세게 망치질을 해대고 있자 무서웠는지 심부름을 밥 먹듯이 시키는 대장급 인부도 말을 걸지 않았다. 씨발 이럴 때 일이나 빡세게 시킬 것이지.

  

  

  

  

  

  

‘한번도 마음 편히 지낸적이 없었어’

  

그 말이 가슴 깊숙이 파고 들었는지 그 말을 할 때의 긴토키의 표정까지 함께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게, 나도 마음이 펴하진 않았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리고 그제야 갑자기 실수했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기도 했다. 히지카타를 좋아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고, 홧김에 옆에 있던 그를 찾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다시 그를 찾아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소고는 그가 헤어짐을 말하려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론과 드라마나, 만화책 따위에서 이별을 보았기 때문에 알지만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였다. 썩 기분이 좋은 느낌은 아니였다.

  

그러다가도 한켠에선 집무실에서의 히지카타가 자꾸 떠올라 낮게 욕을 내뱉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생각은 충분히 했어? 뭔 생각을 그렇게 오래하냐 너]

  

긴토키였다. 그 문자를 은근히 기다렸나보다. 그의 말투가 생각나 살짝 웃음이 나왔다.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다시 문자가 왔다.

  

[네 아니요 정도의 대답은 해라]

[얼마나 피 말리는 줄 알아? 나도 너와 같아서 당하는데엔 약하거든?]

  

아- 찌질해 그는 그렇게 생각하곤 피식 웃었다.

  

[찌질하니까 문자는 한 개만 보내요]

  

  

  

그리고 그날 밤, 둘은 만나서 화해했다.

  

긴토키는 무엇을 생각했냐며 묻진 않았다. 대신 무슨 일이 있으면 털어놓으면 안되냐고 투정을 부렸다. 그의 말에 소고는 그냥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나는 니가 나랑 헤어지려 한다고 생각했어”

  

“난 형씨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나? 내가? 에이 무슨”

  

긴토키는 웃으며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이내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히지카타 말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소고가 말했다.

  

“... 그 새끼 이야기 하기 싫어요 하지마요”

  

긴토키가 본 소고의 표정은 진심이였다. 긴토키는 약간 어둡게 변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그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를 강력하게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부정해주어 기뻤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기뻤다. 긴토키는 소고를 와락 껴안았다. 소고는 순간 그와 닮은 히지카타가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움찔 했지만 긴토키는 다행히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미안. 사실은 유우가 죽었다는 얘기 듣고 혹시 니가 아직도 히지카타에게 마음이 있는건 아닌가. 혹시 그래서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잠깐. 아주 잠깐. 진짜로 1초 정도? 생각했어. 미안.. 진짜로 미안..”

  

아- 역시 형씨는 눈치가 빠르시네. 맞아 내가 그랬어요 나 가지지 못 할 거, 남 주기도 싫어서. 아 씨발 그 새끼만 생각하면 존나 소름끼치고 구역질나게 싫은데 그래도 그 새끼가 다른 누구랑 있는 건 존나 싫어요. 아아 걱정마요 난 형씨 곁에선 떠날 생각은 없으니까.

 

 

 

 

 

 

 

 

 

  

그 여자는 평범했다. 그리고 히지카타에게 항상 모든 걸 이해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히자카타가 본인에게 무뚝뚝하게 구는 걸 성격이 그렇다고 생각했고, 연락이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일이 바빠서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그녀가 히지카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잃을 것 같은 불안함도 더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여자가 그렇게 헤프게 행동을 하는 쉬운 여자도 아니였다. 남자들의 상상처럼 환상적인 것도 아니고, 실망스러울 정도로 외설적인 모습도 아닌 지극히 평범했다. 길게 만난 시간은 아니였지만 그녀는 히지카타에게 같이 있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평범한 여자에게 이런 용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이런 제안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옆에 두려는 이유였기에. 그녀는 고분고분했고, 그래서였는지 딱히 재미는 없었다. 자기가 그렇게 말해놓고도 무서웠는지 저.. 쉬워 보인다거나 하진 않죠? 하고 거듭 말하곤 했는데, 쉬워 보인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런 걸 거듭 말하는 부분은 짜증스러웠다. 기본적인 욕구에 의한 쾌락은 느낄 수 있었고, 좋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선에 의한 쾌락뿐이었다. 끝나고 나서 느껴지는 감정은 허무함과 왜 이렇게 까지 하면서 그녀를 옆에 두어야 했는지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따라다녔다. 그래도 그녀에게 그런 욕구를 풀어서인지, 그 전과 같이 그 녀석을 봤을 때 자신이 무서울 정도의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자신을 침식해가던 비도덕적인 모습이 약간은 수그러들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 녀석과 전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진 않았지만 한 켠에선 아직도 그 녀석을 곁에 두고 싶은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약간의 불안함과는 다르게 소고는 긴토키의 말에 잘 따랐고,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고 해서 전과 딱히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둘 다 그 사이가 비밀이라는 것 정도는 무의식으로 알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니진 않았다. 별 일 없이 조용했다. 긴토키가 소고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은 여전했고, 긴토키는 그 점에 대해서는 딱히 불만은 없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귀는 사이가 되어서 스킨십은 확실히 전보다 자연스레 할 수 있었지만, 긴토키는 과도하거나 부담스럽게 느낄 법한 스킨십은 하지 않았다. 손을 잡거나, 껴안거나, 가볍게 뽀뽀정도만 하는 정도에서 멈추었다. 그런 긴토키를 보고 소고가 물었다.

  

“나한테 쫄았어요? 생각보다 소심하네요 형씨”

  

놀리듯 말하는 그에게 긴토키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 혹시 기다리고 있냐? 너 답지 않게?”

  

긴토키가 능글맞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럴 리가. 생각만 해도 토 나와. 전에 형씨가 한 말이 있으니까 물어본거예요”

  

“이 녀석아, 역시 꼬맹이라 뭘 모르는구나? 원래 나같이 솔직한 사람일수록 알고 보면 순수한 법이야. 오히려 겉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일수록 속은 썩어 문드러진 경우가 많거든? 너도 범죄자들 많이 봐서 알거 아냐, 얼굴에 나 범죄자예요. 라고 써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 지능적이고 머리 잘 돌아가는 놈들은 누구보다도 착하게 생긴 놈들이라고.”

  

긴토키는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치며 말했다.

긴토키는 어렵게 얻은 것 일수록 잃을 땐 허무할 정도로 쉽게 떠날 수 있다는 불안함이 항상 짓누르고 있어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히지카타와 그가 항상 마주칠 수 있는 공간에 있다는 불안함 때문이였을까?

  

  

어느 날은 그가 땡땡이를 친다며 같이 경단을 먹자고 불러냈다. 그가 먼저 긴토키를 찾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긴토키는 하던 일을 내팽게 치곤 그가 지목한 장소에 달려갔다. 이미 먼저 와서 경단을 한입 물곤 허겁지겁 뛰어온 그를 쳐다보며 너무 늦는다며 괜한 심통을 부리는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 볼을 살짝 꼬집었다. 옆에 앉아서 일에 대한 투정을 부리는 그 녀석의 말을 한참 들어주었다. 저도 맨날 사고를 치지만, 곤도씨는 더 한다니까요? 그리고 야마자키는 맨날 나 늦잠 자는데 안 깨우고 그냥 가요 이 새끼가 진짜 죽을라고. 그의 말을 듣고 긴토키는 야마자키?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소고는 아- 지금 옆방이거든요 하고 짤막한 대답을 했다. 전엔 히지카타였던 것 같은데 옮겼나? 분명 일에 대한 투정을 부릴거면 가장 먼저 나와야 할 히지카타의 이름은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맞지만, 너무 철저하게 한번도 말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조금은 신경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긴토키는 자신을 신경써주고 있다고 생각했고, 꼭 자신을 신경써주는 것이 아니라도 이 녀석이 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때 어딘가를 보고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둡게 그늘지는 그를 보고 긴토키는 그가 바라보는 장면을 돌아보았다. 비번인지 유카타 차림의 히지카타와 옆에 있는 그녀가 눈에 띄었다. 긴토키는 그의 시야를 가리고 들며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려 애썼다. 조..좀 있다가 점프 사러갈래? 오늘 발매일이잖아! 아참, 난 샀지.. 너 아직 안봤지? 이번에 새로 연재하는 그 만화 진짜 반전이야, 나 보고 진짜 기절할 뻔 했다니까? 그 정도로 그의 표정은 쉽게 풀리진 않았지만 우선 그의 시선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 한참 본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를 헛소리를 주절거리는데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긴상! 어? 오키타 대장도 같이 있네요? 명랑한 그 목소리에 지금까지 그의 수고가 모조리 원점이 되어버렸다. 멀찌감치 떨어져 셋의 모습을 지켜보며 담배를 피우는 히지카타와 앞에서 긴토키에게 재잘거리는 그녀, 그리고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운 그 녀석까지. 긴토키는 안절부절했다.

  

“오키타 대장 요즘 되게 조용하네요?”

  

그녀의 말에 소고는 살짝 그녀를 올려다 보았고,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내가 이겼어, 라고 말하는 듯한 그 표정을 봤을 때 그에게 그 순간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은 살기가 돌았다.

  

“다음에 히지카타씨와 셋이서 함께 봐요,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난.”

  

히지카타씨? 저 년이 지금 누구 이름을 함부로 불러? 니가 그 새끼를 칭할 수 있는 이름은 백보 양보해서 부장님. 정도야 이 암퇘지 같은 년아.

  

  

그의 살기를 느꼈는지 긴토키는 벌떡 일어나서 그의 팔을 잡곤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 미얀, 우리 지금 어디가봐야 되서. 기회가 있으면 다음에 보던지 하하. 가자.

  

소고는 긴토키에게 별 저항없이 끌려 갔지만 그 이후 시간은 하루종일 말이 없었다. 그 둘을 눈 앞에서 보니 배알이 꼴렸는지 속이 좋지 않아 답답했다. 긴토키는 옆에서 자꾸 어떤 말을 건넸는데,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사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수가 없을 그의 태도를 보고 긴토키는 물었다.

  

“어이 오키타, 표정 좀 풀지?”

  

“...”

  

“니가 이러고 있으면 난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니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거야?”

  

긴토키가 화가 난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는 억눌렀다고 생각했지만 소고는 그가 화가 났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게 긴토키가 아니고, 히지카타였다면, 그리고 다른 이유로 화가 나서 아무말 없이 있을 때 히지카타가 이런 식으로 화를 냈다면 온갖 지랄을 다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건 히지카타가 아니고, 닮았다고 해도 미묘한 면에서 히지카타와 그는 다른 면이 있었다. 이것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지만, 긴토키에게는 애써 웃어보였다. 내가 뭘요?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리고 그 날 소고는 둔영으로 돌아가 제 방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느끼는 패배감과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화가 나서 잠을 못 이루는 것은 또 오랜만이였다. 히지카타와 사귄다는 것 자체도 그 꼴을 보기 싫어 제 눈알을 파버리고 싶을 정도 였고, 그것보다 더, 더 미치게 화가 났던 것은 그녀가 자신을 쳐다봤던 그 우월감에 찬 그 눈빛에 그는 생각만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듯해 그 감정을 주체 할수 없어 괴로웠다.

  

  

  

  

  

  

그렇게 2주 정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짧으면 짧은 시간이였고, 길다면 긴 시간이였다. 여전히 히지카타와 소고는 뜸한 사이를 유지했다. 둘의 사이가 또 다시 이상해지자 곤도는 히지카타에게 또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히지카타는 가장 변명하기 쉽고, 곤도가 가장 납득할 만한 이유로 저 새끼 건방진 버릇 좀 고쳐놓으려고 한다며 둘러댔다. 자존심도 쎈 녀석인지라, 경단집 앞에서 마주친 날 이후로 찾아오거나, 사적인 이유로 말을 거는 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찰 중일 때, 왠일로 그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어디신지요? 부장님 급히 둔영에 좀 돌아오셔야겠습니다. 사건이 좀 터졌지 말입니다? 이상했다. 이 녀석이 먼저 문자를 다하고. 심지어 이 말투는 뭐야? 무슨 일이야 하고 답장을 보내자 바로 바로 답장이 왔다. 글쎄, 오셔야겠다니까요? 문자에서 느껴지는 이 녀석의 비아낭거림이 귀 옆에서 말하듯 생생해 수상했다. 곤도는 또 다시 출장중이였기에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자신에게 연락하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녀석이라면 이런 상황엔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하라고 시켰을 터인데.. 그는 무언가 찝찝함을 느꼈지만 우선 둔영으로 돌아갔다. 돌아간 둔영에는 그를 포함한 몇몇 대장들이 모여 있었고, 그곳의 분위기는 중력이 조금 더 강하게 작용하듯이 무거웠다.

  

“아, 오셨네요 부장님”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는 그 녀석의 표정, 그리고 다른 대장들의 무거운 표정이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히지카타씨, 귀신 부장도 이제 다 옛날 말 인가보네요”

  

재밌어 죽겠다는 그의 표정이 수상쩍으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이 녀석의 반항적인 표정이 매력적이였다. 뭐라는거야? 그는 건조하게 말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그 여자 말이야, 양이지사의 스파이였어요. 모르고 있었죠? 내가 잡지 않았으면 신센구미가 통째로 당할 뻔했어요. 와. 정말이지 간도 큰 년이야, 우리 둔영에 일하겠다는 명목으로 들어와선 그 무섭다는 귀신 부장까지 꼬셔내다니. 정말이지 그 능력은 칭찬해주고 싶네요. 자 이걸 봐요”

  

그가 내민 사진에는 양이지사의 아지트로 의심하여 최근에 조사하고 있던 그 장소에, 최근에 쫓고 있던 양이지사들의 모습과 그녀가 이야기 하듯 서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놀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신감을 느꼈다거나, 충격을 받아서 다시는 사람을 못 만나겠다거나, 하는 그 정도는 아니였고, 단순히 놀랐다. 뭐, 사실 신센구미 부장이라는 그의 위치에선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이였다. 그는 그저 그 사진을 보곤 그래, 그래서? 하고 되물었다.

  

“일단 구속 했습니다 부장님, 요즘 쫓고 있는 양이지사들, 정보 캐려면 고문이 최고 아니예요? 아, 유감스럽게도 부장님은 만나실 수는 없으십니다. 아무래도 관련 있는 사람이잖아요? 사적인 감정이 튀어나오면 곤란하잖아요. 잡은 것도 저니까 마무리도 제가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가 약 올릴 때 자주 썼던 어법이였다. 깍듯한 존댓말을 써가면서 히지카타씨가 아닌 부장님 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말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그 특유의 살짝 늘어트리는 말투. 지금 그는 히지카타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응을 사냥감을 기다리는 여왕거미 마냥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히지카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그가 그런 행동을 취하는 걸 기다린 것 마냥, 기뻤다. 그 녀석 특유의, 미츠바와 닮은 얼굴을 하고 악마같은 살인자의 눈을 한 그 모습이 히지카타를 가장 흥분시키는 요소가 되었는지, 몸이 찌르르 울릴 정도로 흥분되었다. 하지만 그의 겉 모습은 무표정이였기에, 그를 지켜보는 소고는 그의 무표정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슬퍼했다면 눈앞에 있는 이 자식도 죽여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지금 행동이 다행이였다.

  

정말일까? 히지카타는 약간은 의심했다. 아니면 정말 자신이 무뎌진 것일까?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하지만 그는 그 이상 파고 들진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 다른 대원들의 대화를 엿듣다가 그들의 말에서 조금은 이상함이 느껴지는 말을 들었다. 아까 고문실에서 그 여자가 자꾸 자신 죄가 없다며 오키타 대장 이름을 말하던데? 그거 뭐야? 근데 그것도 생각해보면 그 여자 전에 오키타 대장에게 거짓말해서 근신 받게 한 일 있잖아? 그거 모두가 아는 사실은 아니지만 몇 몇 알 사람들은 알던데? 이 사건 터지니까 더 그 일이 확대되더라. 그래서 그 여자 말은 신빙성이 없다고 하더라고, 대상이 또 오키타 대장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오키타 대장도 그 말 듣고 그냥 웃더라. 어이없겠지. 근데 뭐.. 정보를 캐내려 해도 똑같은 말만 반복하던데.. 모른다랑 오키타 대장 이야기만 하니 뭐....

  

  

  

  

  

  

하루 이틀이 지나고 히지카타는 고문실을 찾았다. 히지카타를 무서워하는 그 앞을 지키는 대원들이 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우물쭈물 망설였고, 히지카타는 그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고문실은 몇 번을 들어와도 좋은 느낌은 아니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의자에 앉아 오렌지맛 쭈쭈바 따윌 쪽쪽 소리나게 빨아먹는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소고는 원래 쭈쭈바를 자주 즐겨먹곤 했는데, 시체만 없을 뿐이지 피비릿내가 진동하다 못해 역겨운 그 곳에서 그런 것을 여유롭게 빨아 먹고 있다는 것은 그가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듯 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가 히지카타를 올려다보고는 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거의 다 빨아먹은 쭈쭈바 비닐을 물곤 씨익 웃는 모양새가 히지카타의 눈에 미치도록 야하게 비췄다. 그는 히지카타를 보곤 다른 대원들을 모두 나가게 했다. 그 어두침침하고 칙칙한 공간에 남은 건 둘과 그녀, 이렇게 셋 뿐이였는데, 그녀가 있는 공간은 꽤나 멀었고, 현재 히지카타에겐 보이지 않았다. 소고와 눈을 마주치는 그 몇 초의 순간이 그는 숨막히게 긴장되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그를 더 흥분시켰을 것이다.

  

그가 자리에서 천천히 여유롭게 일어나 그에게 따라 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이고 이런, 걱정되서 손수 찾아오셨습니까? 그런데 어쩌죠? 저 년이 입을 안여네요? 자꾸 헛소리만 한다고요”

  

그는 히지카타를 그녀의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꽤나 많이 고문을 당했는지, 반 탈진 상태로 묶여 의자에 앉혀 있었고, 얼굴과 온몸이 엉망진창으로 피로 물들어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익숙치 않은 사람이였으면 경악할만한 모습이였다. 하긴 이 녀석이 여자라고 고문대상을 봐주거나 하는 인정 넘치는 녀석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였다. 그런 그녀가 힘겹게 눈을 뜨곤 히지카타를 알아봤는지 힘겹게 입을 열곤 말했다. 히..히지카타씨.. 아.. 아니예요..저.. 아니예요... 오키타.. 대장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가 그녀의 머릿채를 확 휘어잡으며 말했다. 봐요 히지카타씨, 이 년이 자꾸 이런 헛소리를 한다고요. 구역질나게, 이 정도면 정보 같은걸 캘 수 있는 상태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저희 신센구미의 국중법도에 음... 몇 조항이였더라.. 쓸모 없는 악성 인질은 사형에 처한다.. 라는 항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전 머리가 나빠서 정확히 몇 조항 이였는지는 잘 기억은 안나네요. 그냥 지금 사형식을 거행할까요? 그는 킥킥 웃으며 히지카타의 손에 칼을 쥐어주었다.

  

“존경하는 부장님, 직접하시죠. 신센구미를 만만히 보고 부장님을 이용하려한 파렴치한 년이 아닙니까? 설마 남아있는 사적인 감정으로 못하겠다거나 그런 어이없는 실망스럽고 찌질한 모습을 아랫 부하에게 보이진 않으실거죠?”

  

칼을 쥐어주는 그의 손이 손에 닿았다. 이렇게 너와 닿는 것이 얼마만일까. 눈앞에 그녀는 아니라고 계속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 그녀를 사랑한 적은 없지만 사람인지라 그래도 알고 지냈던 사람을 아무 감정 없이 죽일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였다. 그리고 단순한 그의 직감으로 그녀의 상황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녀석이 뭔가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확신이 들었지만 캐묻지 않았다. 칼을 쥐어준 매력적인 살인마에게 홀렸기 때문일지도. 그리고 오히려 그에게 묻고 싶었다. 왜 장난을 이렇게 심하게 치는 거야? 뭐 때문에 이렇게 재밌어 하는 거야? 나는 너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이 여자를 옆에 두려 한 것인데. 재밌어? 그의 모습이 흥분감을 심어주어 좋으면서도 다른 면에선 화가 치밀었다. 그는 쥐어준 칼을 바닥에 그대로 내동댕이쳤다. 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번 튀어 올랐다가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못 하시겠어요?”

  

그의 입과 말투에선 웃음기가 살짝 묻어났지만,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곤 그 칼을 주워 들고 다시 히지카타 앞에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곤 귀에 대고 속삭였다. 최근엔 통 교류 없이 지냈었기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의 체취를 느끼는 것은 오랜만이였다. 어렴풋한 샴푸냄새, 그리고 특유의 살 냄새, 가까이 왔을 때 볼 언저리를 살짝 간질이는 머리카락까지.. 아찔했다. 그런 것에 정신을 빼앗겨 어렴풋이 들은 그의 말은 재미있었다. 히지카타씨, 아니 부장님. 빨리 죽여 이 새끼야. 부장님.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왜 이렇게 착한 척 하시는거예요? 당신은 이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자, 빨리해 이 새끼야

  

그가 가까이 다가와 아찔했던 기억, 그리고 간지럽게 속삭이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재미있는 말. 그 말이 주문이 되었는지 히지카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 앞에 있는 건 차갑게 식어 단순한 고깃덩어리로 변한 그녀와 그 앞엔 그 피를 뒤집어 쓴 자신이 있었다. 그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그를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그에게도 피가 튀었는지 그가 투덜거렸다.

  

“더러워”

  

“... 소고...”

  

소고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앞에 죽어 있는 그녀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은 없었다. 다른 것보다는 그에게 그에 대해서 묻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기에 그는 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소고는 여유있게 그런 그를 쳐다보았다.

  

“왜...왜..”

  

하지만 소고는 그가 자신에게 화가나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가오는 그의 눈빛이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섭다거나 한 것은 아니였기에 덤덤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너...왜...”

  

“제가 뭘요? 왜 라니.. 참 이상한 말을 하시네요. 당신이 만든 법을 집행한 것 뿐입니다. 나한테 왜 그러냐고 왜 물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 여자를 직접 죽인 사람은 당신 아닙니까?”

  

“..아니...아니.. 너..”

  

아니 그딴 걸 묻고 싶은 게 아니야 나는 지금 나는.. 나는...

  

그가 손을 뻗어 그를 잡으려 하자 그는 신경질 적으로 그의 손을 쳐냈다.

  

“그 더러운 피 묻은 손으로 만지지마.”

  

소고는 그대로 뒤돌아서 유유히 어둡고 칙칙한, 조금이라도 더 있으면 그 곳의 어둠에 먹혀 버릴것만 같은 고문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곳을 나가 그는 한참을 실성한 듯이 웃었다. 슬프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기쁘지만 기쁘지 않았고 속이 후련하지만 후련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엇하나 해결된 것이 없는 이상한 기분이였다.

  

  

  

안녕? 아아 놀라지마, 그냥 생각해보니 나도 너의 생각과 같아. 이제 너와 친하게 지내려고, 전엔 좀 미안했어, 사과할 겸, 부탁도 좀 할 겸 온거야. 히지카타가 이걸 이 주소로 좀 전해 달라던데? 가서 히지카타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 아마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응? 아 거기 좀 위험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있다고? 전혀 아니야, 그런 곳을 우리가 모르겠어? 항상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다음에 정말 셋이서 꼭 같이 보자. 꼭. 내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부탁 좀 할게.

  

  


  

  

  

  

  

“응? 오늘은 걔 없네? 오오구시군 애인 말이야”

  

긴토키는 오랜만에 케익 집을 들렸다. 거기의 다른 일하는 여자들이 긴토키를 보곤 누굴 찾으시는지.. 하고 물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던 긴토키는 인상착의로 대강 그녀를 설명했다. 그리고 누군지 알았는지 수군대더니 한명이 긴토키에게 말했다.

  

“아..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였나 보네요. 알고 보니 양이지사였데요,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됐는진 모르지만...”

  

말끝을 흐렸고, 이런저런 수근거림 끝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양이지사? 죽어? 너무나 뜬금없는 소리에 긴토키는 할 말을 잃었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수근 대는 소리로는 신센구미의 나이 어린, 맨날 신문에 나오는 그 무서운 꼬맹이가 그녀를 과격하게 데리고 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일 간 그는 갑자기 바빴고, 만났을 때도 한숨을 쉬거나, 약간은 복잡함을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별 대답은 없었고, 장난식으로 형씨는 모르는 노동의 스트레스라는 겁니다. 라고 웃으며 대답할 뿐이였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니 그는 항상 숨기는 일이 많았다. 무얼 물어도 대답하지 않거나, 말하기 싫어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굳이 캐묻진 않았지만, 그땐 그때의 상황이라 치더라도 지금 우린 서로 특별한 사이 아냐? 이런 상황정도는 말해줘도 되잖아? 복잡한 얼굴을 하고서는 왜 털어놓지도 않아 넌.

  

원래의 그 였다면 그를 만났을 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히지카타와의 연관성 때문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았다. 모르는 척 그의 태도를 한번 보고 싶은 그 답지 않은 의심 때문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혼자 있던 집무실에 소고를 불렀다. 사이가 좋지 않고, 싸워도 명령이라면 투덜거리면서도 따랐기 때문에 그는 얼마 후 히지카타의 눈  앞에 나타났다. 나타난 그는 여전히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히지카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표정이 왜 이래?”

  

“...내 표정이 뭐.”

  

“다른 사람이야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알았어, 니가 함정을 팠다는 것 쯤은.”

  

“....”

  

“그냥 단순하게 물어보고 싶어서. 왜 그랬어?”

  

“...나도 묻고 싶네요 그럼 왜 죽였습니까? 날 죽였어야지”

  

히지카타의 눈에 비친 소고는 딱히 당황하지도 않고, 예상 했다는 듯이 말했다.


죽여? 지금? 내가? 너를? 어떻게 죽여.. 내가 널.. 끔찍하다 못해 애가 탈만큼 아끼는데...그리고 설령 죽인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왜? 아무것도 못해보고? 너를 죽이려고 마음 먹었다면 그 전에.... 아 아니지..

그의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였다.

그러고 보니 히지카타는 소고가 왜 그랬을까에 대한 생각은 끊임없이 고민했으면서 자신이 왜 그런 그를 말리지 않았는 가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고 말했어야 했고 말렸어야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멈췄어야 했다.

     

  

“......그야.. 내가 너한테 미쳐버렸으니까”

  

  

소고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볼 때, 그의 눈동자에 히지카타 자신이 비추었을 때, 그는 미츠바의 마음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라는 강한 마음이 바스러진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아주 약한 바람에도 날아가 버렸다.

  

  

  

 

 

 

휴일. 일을 쉬는날을 어느샌가부터 싫어하게 되었다. 가서 일을 해야 그 녀석에게 자연스럽게 찾아가서 장난이라도 치고 말이라도 걸 텐데. 단 맛을 좋아하는 긴토키는 돈이 있을 때 마다 찾아가는 케익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엔 얼마전부터 일하게 된 유우가 있었고, 그녀는 긴토키를 보면 항상 웃으며 대하고 산 케익보다 한 개씩 더 넣어주거나, 서비스로 줄 수 있는 것들을 자주 챙겨주기도 했다. 그 날도 그 쯔음을 지나다 보이는 폭신폭신한 케익과 잔뜩 부풀려 올려진 생크림을 보고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 가게로 들어갔다. 진열되어 있는 케익을 구경하고 있을 때 유우가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긴상! 또 오셨네요?”


 

그날따라 너무 기분이 좋아보여 수상쩍을 정도인지라 긴토키는 그녀에게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기분이 좋아보이냐며 복권 당첨이라도 됐냐며 농담섞인 어조로 말했다.

 

“하하 그것보다 더 좋은일인데요?”


 

“그런것보다 더 좋은일이 있다고? 그런게 어딨어?”

 

긴토키는 투덜투덜 거리며 케익 진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곤 그녀에게 케익이 왜 이렇게 비싸냐며 괜한 투정을 부렸다. 그녀가 웃으며 긴토키에게 말했다.


 

“오늘은 제가 사드릴게요. 저 긴상한테 감사할 것도 있어요”


 

“감사?”


 

긴토키는 그녀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곧바로 가장 좋아하는 딸기 크림케익을 여러조각 달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그녀는 자르기 전의 원상태의 케익 한판을 통째로 포장해 주었다. 그리곤 긴토키에게 말했다.

 

“네 저 부장님하고 사귀기로 했어요”

 

부장? 부장이 누구냐? 긴토키는 순간 무슨 소리인가.. 하고 한참 생각했다.

 

“왜 그러세요~ 히지카타 부장님이요”

 

“아아.. 히지카타.. 응? 히지카타? 그 녀석이랑 사귄다고?”

 

긴토키는 생각도 못한 그녀의 말에 놀라 몇 번 더 확인했다. 그녀는 환히 웃으며 그렇게 됐다며 수줍게 웃었다.

 

“와 이거 생각도 못했다야, 축하해 잘 어울리네”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 그리곤 고마우면 케익 몇 조각 더 얹어 달라며 졸랐다. 그리곤 소고가 좋아할 것 같은 별로 달지 않은 케익을 몇 개 더 골랐다. 벌써 알고 있으려나? 케익을 한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소고에게 전화를 걸었다. 케익을 너무 많이 사서 그러는데 혹시 같이 먹지 않겠냐며 익살스럽게 말했고 사실 거절할거라 생각해 그 다음을 뭐라고 더 말을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찰나, 예상과 다르게 그는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 먹음직스러운 케익들을 꺼내 놓곤 식탁에 앉아 그를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괜한 발걸음 소리만 들리면 혹시 벌써 왔나? 하고 기대하기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을 계속 확인하며 손끝으로 식탁위를 톡톡 쳤다. 체감보다 훨씬 긴 대략 20분 정도를 보내고 나서야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복을 입고 있는걸 보니 일을 하다가 땡땡이나 칠 겸으로 온 모양이였다.


 

“왔어? 케익을 너무 많이 사버려서 같이 먹자”


 

 “참나, 많이 사버렸어 같이 먹자 라니 형씨답지 않은데요? 많이 샀으면 놔두고 혼자서 먹어야지 라고 생각할 사람인데?”


 

“그래, 같이 먹자고 하려고 많이 샀다, 됐냐”

 

그의 말에 긴토키는 입을 쭉 내밀고 말했다. 뭐 사실 산 것도 아니였지만

소고는 그런 긴토키를 보곤 웃기다는 듯 살짝 웃고는 포크를 들었다. 그가 평소보다 예민하게 군다거나 신경질적이지도 않았고 그 날은 생각보다 긴토키에게 전보다 조금은 호의적인 태도로 대해주어 긴토키는 조금 의아했다. 일단 히지카타와 유우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못들은 듯 했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감정적인 이 녀석은 애초에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열 받을 때 나오는 지랄맞은 성격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 사실을 알아서 그대로 포기한다거나 혹은 그대로 정이 떨어져, 자신을 봐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가 소고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였다. 괴로움이 극에 치달아 지칠대로 지치고 앓다 보면 히지카타의 존재 자체가 괴로운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더 정확히 봐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케익을 한 입 한 입 먹으며 긴토키는 다른 때와 다를 거 없는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구라에게 편지가 왔는데 다 먹는 이야기밖에 없다는 둥, 신파치는 맨날 와서 하는 이야기가 오타에가 곤도에게 아직도 스토킹을 당해서 정말 화가 난다고 하더라 가서 니가 좀 말려봐. 긴토키가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자 소고는 그냥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고 그냥 알겠다는 듯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에게 별 관심없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그는 크게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눈치를 살피다 말을 꺼냈다.


 

“너 그거 알아? 히지카타랑 유우씨랑 사귄다던데?”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긴토키는 순간 바짝 긴장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약간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의 눈치를 슬슬 살폈지만 오히려 그는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를 터트렸다.


 

“전에도 그러더니, 형씨는 그런 소문을 믿습니까?”

 

소고는 그녀와 히지카타는 전부터 그런 이야기도 많았고, 대원들도 종종 놀려대곤 했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소고의 반응에 긴토키는 다시 호들갑을 떨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냐! 이번엔 진짜야! 유우씨가 진짜 그랬다고!”


 

믿어달라는 과장된 몸짓으로 말했지만, 소고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에 대한 의심이 티끌만큼도 없어 보였다. 그리곤 헛소리 말라는 듯 예예, 그런가보죠. 그나저나 뭐 마실거 없어요? 하고 관심 없다는 듯이 화제를 바꿨다. 지금은 모르는게 다행.. 인건가? 긴토키는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어 그에게 따라주었다. 어차피 알게 될건데


 

 


 

 


 

 


 

 

 


 

 


 

 

소고는 히지카타가 다른 여자랑 연애 따위의 것을 할까봐 두려워 하면서도 내심 굳게 믿고 있었다. 일단 그는 가장 사랑했던 누나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이기에 받을 수 없다 며 거절했고, 그는 항상 여자에 관심없는 인상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눈앞에서 다른 여자가 들이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시퍼렇게 눈을 뜨고 쳐다본 것도 맞지만, 항상 혹시나 하는 것은 역시나로 바뀌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그의 행동이 항상 좋았다.


 

다음날 그는 뭔가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느낌에 히지카타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응? 그의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청소를 열심히 했다 라기엔 너무나도 말끔히 비워져 있는 냉기 도는 텅 빈 그의 방이 뭔가 싶어 한참 그의 방 문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장 여기서 뭐해요?”


 

야마자키가 커다란 짐을 들고 잠시 비켜달라며 텅 빈 히지카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그 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앞으로 제가 여기 방 쓰게 됐어요. 아 귀찮게 방을 왜 바꾸자고 하시는지.. 야마자키는 투덜투덜 거렸다. 야마자키의 말에 그는 잠시 이해하지 못해 다시 붙잡고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부장님께서 방 바꾸자고 하시던데요?"

 

“갑자기 왜?”

 

그가 야마자키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그때 마침 뒤에서 걸어오던 곤도가 그 둘의 대화를 듣곤 갑자기 껴들어 소고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너랑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으면 연애를 못하잖냐 이 녀석아”

 

“아 역시! 그런거 맞죠!”

 

야마자키는 뭔가 알았다는 듯이 곤도의 말에 즐겁게 맞장구 쳤고, 곤도는 소고의 머리칼을 마구 헝클었다. 연애? 그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그 둘에게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아 대장 모르셨습니까? 부장님 유우씨랑 연애한다는데요?”


 

“뭐야 그 얘기야? 말이 돼?”


 

그때도 그는 믿지 않았다. 곤도야 항상 스캔들을 만들어 놀릴 궁리를 하는 사람이고, 야마자키도 그런 가벼운 스캔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였기 때문에 그는 곤도와 야마자키 앞에서 소리내어 웃었다. 그들의 시덥잖은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둔영에 소문의 중심이였던 그녀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를 본 곤도와 야마자키는 웃으며 히지카타를 보러 왔냐며 정답게 말을 건냈다. 그런 둘의 모습에 그는 놀란 표정으로 곤도와 야마자키를 한번 보고는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난번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그녀와의 만남이였다. 지난번에 그녀를 위협한 일이 있었기에 이번에 그는 감정적으로 행동하진 않았다. 눈이 마주친 그녀는 전에 그에게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전처럼 두려워한다거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 꼬리를 살짝 휘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소고를 포함한 셋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곤 여유있게 걸어가는 그녀를 보곤 그는 그녀에게서 패배감 비스무리한 것을 느끼면서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도 에이 설마, 아니야, 아니야, 하고 세차게 부정했다. 곤도는 소고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리와- 오랜만에 둘이 게임이나 하자 라고 정답게 말하며 그를 잡아 끌었고, 그는 그녀가 간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킨채 곤도에게 천천히 끌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곤도가 또 다시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이거봐 이거봐- 또 이러잖아! 하며 크게 웃었다. 그 말에 소고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곤도에게 그런거 아니라며 곤도를 잡아 끌었다.


 

 

 


 

 


 

 


 

 

야마자키의 방은 그의 방과 꽤 거리가 있었다. 옆방의 주인이 바뀐 것을 착각하고 히지카타- 하고 부르며 문을 벌컥 열었다가 놀란 야마자키가 몰래 보고 있던 만화책 등을 후다닥 숨기는 것을 보고 아, 바꿨댔지, 하곤 전 야마자키의 방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해 반쯤 열어둔 문 틈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느즈막한 저녁이지만 일을 하고 있는 히지카타가 시선과 기척을 느꼈는지 그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약간 머쓱해 하며 소고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왜 바꿨어?”


 

“.. 멋대로 들어오지마”

 

히지카타는 그를 한번 보곤 다시 일에 집중했다. 갑자기 확 냉랭해진 그를 보곤 소고는 물었다.

 

“야”

 

“뭐”


 

“그 여자, 오늘 왜 온거야? 너 만나러 온거야? 설마?”


 

“응”


 

“징그럽다 진짜, 아직도 스토커질이야? 니가 그렇게 자꾸 아무말도 안하니...”


 

“사귀고 있어”


 

그의 단호한 대답에 소고는 놀랐지만 이내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그 여자랑 정말 사귀는 거야?”


 

그의 질문에 히지카타는 그제야 일하던 손을 멈추곤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대답했다.


 

“응”


 

“....”


 

이런 대답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였다. 소고의 예상대로라면 분명히 관심없어,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이 정도였다. 이런 류의 대답이 아닌 다른 대답을 하는 히지카타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정확한 대답을 들어버렸다.


 

“그거 물어보러 온거야? 끝났으면 돌아가 바빠”


 

“...히지카타, 난 그 년 싫어”


 

“어쩌라고”


 

이번엔 변수가 많았다. 자신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면 분명 히지카타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백보 양보해서 왜? 라던가, 자신을 설득하고 달래는 말투로 (물론 그랬어도 할 수 있는 지랄은 다했겠지만) 알고 있어, 근데.. 라던가 이런식의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는 것인데, 이번에 그가 한 대답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대답이였다. 어쩌라고? 이 새끼가 말 다했나


 

“만나지마”


 

“니가 만나지 말라고 하면 만나지 말아야 되는건가?”


 

냉랭히 말하자 소고는 그의 말에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할 말 끝났으면 나가”


 

“야... 야 이자식아 너 진짜로 그 여자 좋아해?”


 

아.. 이 말은 그가 정말로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이였다. 변수가 많은 이번의 사건에서 생각할 틈도 없이 튀어나온 말이였지만 이 말을 내뱉고 그는 곧 그 이후에 들릴 이 녀석의 대답이 무서웠다.


 

“응”


 

거의 대답을 듣고 그는 한동안 충격에 멍했다.


 

“.. 거짓말”


 

“진짜야, 할 말 다 했으면 나가라고 하잖아 안들려?”


 

사귈수야 있지.. 분명히 뭔가 사정이 있을 거야 라고 생각했고 설마 그녀가 좋아서, 이 새끼가 그 여자를 좋아해서 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그의 말에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잊을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후에 자신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린 말이 자신도 놀랐다.


 

 

 

“...내.. 내옆에 이.. 있어주면.. 아..안돼?”


 

 

“...개소리 그만하고 꺼져”


 

 

잠시의 텀을 두고 히지카타는 덤덤히 말했다. 빨리 나가! 히지카타는 멍 하니 서있는 그에게 소리쳤다.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기 보다는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 수 없을 정도로 멍했다. 동시에 갑자기 으슬으슬한 것이 무엇이 무서운지 모르겠지만 무섭고 갑자기 뛰었다거나 운동을 한것도 아닌데, 아픈것도 아닌데 호흡이 가쁘고 식은땀이 흘렀다.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그의 방에서 나왔다. 휘청거리며 벽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여 가면서도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저러다가도 다시 뛰어와서는 장난이야 이번은 좀 심했지? 미얀, 그런거 아냐 라고 말해줄 것만 같았다. 그 날의 날씨는 그의 기분을 대변해주듯이 비가 쏟아져 내렸다. 굵은 빗방울이 땅에 후두둑 떨어지며 금세 투명하게 빛을 발하며 사방으로 튀었다. 낮에 마주쳤던 살짝 눈웃음 치던 그녀의 눈초리, 그리고 그의 냉랭해진 태도가 무엇보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맛보고 싶지 않은 패배감에 젖게 만들었다.


 

 

그는 비를 맞는 것은 끔찍이 싫어했지만 그날은 비를 맞아보고 싶은 날이였다. 그는 그대로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둔영을 나갔다. 뒤에서 경비대원들이 비옷이나 우산 가져가라며 소리쳤지만 세차게 몰아치는 빗소리와 머릿속이 복잡한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얼굴에 차갑게 부딪쳐 오는 빗물이 따가우면서도 적셔가는 빗줄기가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쓰지 않고, 그렇다고 허둥대지도 않은 채 돌아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보니 어느새 많던 사람도 다 사라지고 얼마 없었다. 아마 시간도 시간이라 모두 집에 들어갔겠지. 마냥 빗물이 튀기는 바닥을 쳐다보며 걷다 보니 누군가와 부딪혔다. 그 사람은 우산을 쓰고 있었는지 그도 잠시 비를 피한 셈이 되었다. 시비를 걸어온다면 이번엔 그냥 죽여버려야지. 라고 감정적인 생각을 하곤 고개를 들었을 때 눈 앞에 있는건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긴토키였다.


 

 

“감기 걸려.”


 

 

“.....”


 

긴토키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그가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럴 때 자신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을 그제서야, 그 녀석의 비참한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이거, 쓰고가”

 

긴토키는 우산 손잡이를 비를 맞아 다소 차가운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소고는 잠시 우산을 받아 들더니 이내 우산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렸다. 빗물과 함께 뒹구는 우산을 보고 긴토키는 그를 잠시 보곤 다시 우산을 주웠다.


 

“그냥.... 그냥 가요 오늘은 더 이상 말 걸지 말고”


 

“어떻게 그냥 가. 쓰고가”


 

그는 다시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냥 가라는 소리 안들려?! 이딴거 필요 없다잖아!”


 

 

그는 이번엔 다소 과격하게 우산을 던졌고 그 우산은 다시금 빗바닥에 뒹굴었다. 긴토키는 이번엔 우산을 주워들으러 가지 않았다. 빗물에 가려서 확실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그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씨가.. 형씨가 아니란 말이예요.. 비오는날 내 비를 막아주는건 저딴 우산이 아니란 말이예요.. 그 녀석이 씌워주는 비옷이란 말이예요...”


 

 


 

대충 당연히 그러겠지, 이렇게 했겠지 라는 확신을 혼자만의 생각으로 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확실하게 확인 받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이미 예상했고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새삼 놀라고 괜스레 자신이 맞추었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기도 한 감정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감정을 그의 입으로 간접적으로 확인을 해서 인지 아니면 절대로 눈물 같은걸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그가 울고 있었기 때문인지, 긴토키는 그가 그 녀석 때문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긴토키가 그에게 한 발짝 다가오자 그가 말을 이었다.


 

“.... 지금.. 내가 가장 원망하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알아요?”


 

“....”


 

“....형씨예요 형씨, 애초에 왜 그 여자를 우리 쪽에 데리고 왔어요? 왜... 왜 그 녀석하고 그 여자를 만나게 했어요? 왜... 왜 그여자를 데리고와서 나를 근신까지 받게 만들었어요? 왜... 왜..! 그래서.. 그래서...”


 

그는 목이 메였는지 뒷말을 하려다 잠깐 멈추고는 다시 말했다.


 

“왜 이런 .. 아 씨발... 왜 이런 개같은 상황까지 만들어요 왜! .... 왜애...”


 

“....”


 

“왜 내가 알고 싶지도 않은 내 감정까지 알게 만들어요 왜... 왜...”


 

진심으로 긴토키를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이기적인 그는 그저 그 순간은 누군가를 탓해야 했고, 마침 그 상대로써 가장 좋은 긴토키가 있었던 것 뿐이다. 이미 소용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화를 식히려 했다.


 

긴토키는 그의 말을 듣고 그가 근신을 받은 이유가 그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같이 생활 했을 때 그는 근신의 이유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알았다.


 

 

“나를...원망하는거야?”


 

 

 

그러게, 그렇게 치면 나는 왜 그 날 새벽에 괜히 나갔다가 널 만나서, 이 고생이냐. 더 앞서서 나는 왜 그녀의 의뢰를 수락했을까. 무슨 말을 했어도 딱 잘라서 안 된다고 할 걸. 왜 너한테 같이 지내자고 말했을까? 왜 그때 카구라는 여행을 가서 없었으며, 신파치 한테 휴가는 왜 줬을까?


 

 


 

 


 

 


 

 

히지카타는 그가 다녀갔던 본인의 방을 한번 둘러 보았다. 그와 떨어지려 방을 옮긴 것이였다. 옮기는 것이 귀찮았는지 야마자키는 자꾸 이유를 물었지만 그냥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짤막한 대답과 함께 강제로 방을 옮기게 했다. 옆방에 벽 하나, 그리고 나가면 몇 걸음만 지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그가 있다는 것이 그는 무서웠다. 그런데, 왜 나를 찾아와. 사실 그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도 그의 충격 받은 표정을 보고 그를 쫓아가 잡을 뻔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있어 달라는 말의 의미는 그냥 제 누이와의 관계를 생각한 배신감에 평생 그걸 지고 가라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남이 몰래 숨겨놓은 땅콩을 훔쳐먹는 것과 같아서 용기내어 하나 집어먹은 순간, 그 전에 두려워 했던 감정이 점점 사라지고 그 일이 쉬워지는 것이다. 처음은 어렵지만 두 번째는 처음보다, 세 번째는 두 번째보다 쉽다는걸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한번만, 오늘 하루만, 하고 자꾸 그 녀석에게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핸드폰이 울리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확인해보니 아까 그 녀석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던 불쌍한 그녀가 애교있게 온갖 이모티콘과 함께 무어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별 시덥잖은 내용이였기에 그는 귀찮은 듯 핸드폰을 던져 놓고 그 날 따라 유난히 몰아치는 빗 소리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그를 떠올리고 있었다.


 

 


 

 

 

 


 

 


 

 

긴토키는 소고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비를 얼마나 맞았는지 그대로 자신을 지나쳐 가려는 그의 팔목을 가볍게 재지하자 그는 살짝 휘청였다. 잡고 있는 팔목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끼곤 긴토키는 그에게 자신의 집에 가자고 잡아 끌었다. 그는 싫다고 했지만 긴토키는 막무가내로 그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건을 두어개 꺼내어 하나는 그에게 받으라는 듯 가볍게 던졌고, 하나론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걸 보니, 그래도 아까보다는 진정된 듯했다. 긴토키는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목에 자신의 얼굴을 닦던 수건을 걸치곤 그에게 다가갔다.


 

“닦아, 감기걸려”


 

“...”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홀딱 젖은 옷이라서 추울텐데, 긴토키는 제 옷을 하나 꺼내어 내밀었다. 이거입어, 너 진짜 감기걸린다? 그 말에도 별 반응이 없자 그는 옆에 옷을 내려놓고 그의 옆에 자신이 던져 쇼파에 널부러져 있는 수건을 들곤 그의 얼굴의 물기를 양손으로 감싸 듯 닦아주었다. 반응이 없는걸 보니 이런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기가 귀찮은 듯 했다. 그러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저.. 형씨, 아깐 미얀해요. 내가.. 그니까 잠깐.. 좀 ... 아.. 뭐라고 해야지.. 암튼. 미안해요”


 

가늘게 떨며 더듬더듬 이야기 하는 그를 보고 긴토키는 그가 자신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는걸 알았지만 그가 히지카타를 좋아한다고 간접적으로 밝힌것과, 자신을 향한 원망의 말에 그 역시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긴토키는 그의 말에 억지로 웃어보였다. 그리고 되물었다.


 

“뭐가?”


 

“...”


 

“너 나한테 미안해 할거 없어”


 

그의 말에 소고는 얼굴을 살짝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긴토키는 그의 앞에 무릎을 굽히곤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


 

“근데, 나도 너 만큼 힘들어”


 

남의 마음 같은거 알고 싶지않은 그 였지만 그 순간 긴토키의 눈이 슬퍼보였는지, 아니면 본인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긴토키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긴토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긴토키는 마저 남은 물기를 닦아주다 무언가에 홀리듯 그의 얼굴간의 간격을 좁혔다. 입을 맞추려 가까이 다가갔다가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일부러 장난스럽게 몇 번 입을 맞춘적이 있었지만 이 순간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소용이 없다 라고 생각을 했는지 그는 떨어지려 할 때, 긴토키는 입술에 닿은, 그리고 맞닿은 얼굴의 부드러우면서 비를 맞아 차가운 감촉에 소스랏치게 놀랐다. 사무치던 그가 먼저 입을 맞춰왔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했고, 긴토키는 내심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곧 그 와의 키스에 빨려 들어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만큼은 눈 앞에 있는 그도, 자신도 서로를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 때문인지 그를 바닥으로 끌어내려 눕힌 채 키스를 이어갔다. 그도 별 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바닥에 누워서 하는 키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흥분감을 더해 그의 젖은 옷에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그의 턱선으로, 목으로 입술을 옮겨 갔다. 젖은 옷이 추워서 인지 가늘게 떨리는 몸과 체온이 높은 것이 느껴져 애무를 멈추었을 때 그가 우습다는 듯이 킥킥 웃었다.


 

 

“왜 멈춰요? 계속해요 나랑 야한 짓 해보고 싶다며? 이런 기회 다시는 없을지도 몰라”

 


 

긴토키가 본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이 텅 비어 자신과 했던 키스가 자신을 사랑해서 한 것이 아니였다는 것을 알았다. 소고가 그에게 먼저 키스를 한 것은 긴토키를 향한 약간의 동정심과 자신에게 가하는 자해였다. 가만히 있으면 히지카타와 그 여자가 떠올라 다시 눈물 같은걸 흘리며 추해지고 싶지 않은 그의 행동이였다.


 

 

“너... 열있어. 옷부터 갈아입어”


 

 


 

 


 

 

 

 


 

 

직후 소고는 고열에 시달렸다. 옷을 갈아입고 옷이 마르면 가겠다며 쇼파에 앉아있다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차가운 밤 공기에 비를 맞은채로 꽤 오랜 시간 있었던 것도 그렇고, 울다 지친것도 영향이 꽤 있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자는 그를 보며 긴토키는 중간 중간 열이 잘 떨어지는지 확인을 해보곤 했지만 사실 그는 소고에게 화가 나 있었다. 씨발 나쁜 새끼, 사람 감정을 이따구로 가지고 놀아? 속으로 미친 듯이 욕을 하곤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를 놓을 수 없다는건 알고 있었다. 연락도 없이 그가 사라진걸 알고 곤도에게 연락이 왔고, 긴토키는 그 전화를 받곤 지금 몸이 좀 안좋아 자고 있으니 일어나면 돌려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의 폰에 와있는 세네개의 문자가 있었는데 나머지는 곤도가 전화하기 전에 보낸 문자였고 나머지 두 통은 히지카타에게 온 문자였다. ‘깨우러 안 갈거니까 회의 지각하지마’, ‘장난해? 어디갔어’

그걸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 긴토키는 옆의 삭제 버튼으로 히지카타가 보낸 두 문자를 지워버렸다.


 

 

 

소고가 잠에서 깼을 때 열은 다 내려 멀쩡했다. 그는 시간을 보고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급히 핸드폰을 찾았다. 자신이 그렇게 많이 앓아 누워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리곤 폰을 보고는 약간 풀이 죽은 듯 했다. 통화 목록을 보고 그가 물었다.

 

“형씨. 곤도씨 전화 형씨가 받았어요?”


 

“응, 너 아파서 자고 있다고. 깨면 보낸다고 했어”

 

소고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는 왔던 문자함을 확인했다. 당연히 뭐라도, 욕이라도 연락을 했겠지 하는 생각에 문자함을 봤지만 전화도, 문자도 없는 그가 점점 더 괘씸했다. 곤도가 아니라 히지카타에게서 연락이 오는게 보통의 경우였기에 그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닫고 다시 누웠다.


 

“안가?”


 

긴토키가 그를 보며 물었다.


 

“네 안가요”

 

“...빨리 가. 나 지금은 너한테 화났어”

 

“왜요?"

“너무 건방져서”

 

“나 원래 건방진거 몰라요?”


 

“알아 그래서 이 정도만 하는거야. 니가 신파치 였으면 아마 나한테 죽도록 맞았을 거야”

 

“형씨 나랑 사귈래요?”

 

긴토키는 그의 말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장난 그만해라 응?”


 

“장난 아닌데”


 

“너 나 안 좋아하잖아 나 그런거 싫어”

 

“에이, 둘 다 스파크 튀게 좋아서 사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모르시는구나? 형씨 은근히 연애에 환상 있으시네요? 연애 많이 해봤다면서”


“...너 왜그래? 아프더니 미친거야?”


 

“그러게 미쳤나.. 뭐야. 나 좋아한다면서 왜 바로 대답 안해요? 싫으면 뭐..”


 

“아냐 아냐 조..좋아. 좋아!”


 

긴토키는 그에게 화가 났던 마음이 눈 녹듯이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계속 그에게 물었다. 진짜야? 근데 갑자기 왜? 그의 질문에 소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형씨는 그 새끼랑 닮은 면이 많아서요”

 

씨발 꿩 대신 닭이냐. 긴토키는 표정이 눈에 보이게 점점 굳어가자 소고가 다가와서 말했다.

 

“전에 형씨가 말했듯이 어차피 안 되는 사람인데 기운 빼서 뭐해요? 옆에 있는 사람을 보기로 한 것 뿐이예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전에 말했잖아요 저 형씨 싫지 않다고.

 

하긴,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사람을 닮았다 라는 말이 마냥 기분나빠 할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의 옆에 딱 붙어 있는 그 녀석이기에 기분이 나쁜 것이였다. 
 

“나 은근히 구속하는 스타일이야”

 

긴토키는 약간의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곤 그를 꼬옥 껴안았다.


 

 


 

 


 

 


 

 


 

 

 

 

 

 

 

 

 

 

 

 

 

 

 

 

 

마음이 복잡한 상황 때문인지 그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옴과 동시에 술이 고팠다. 마침 그녀와의 약속도 있었던 터라 어차피 술은 마시게 되겠지만 그녀와 둘이 마신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부담스럽게 작용해 그는 애꿎은 야마자키에게 같이 술이나 마시러 가자며 잡아끌었다. 야마자키는 그런 히지카타에게 왜 자기를 데리고 가냐며 수상하다며 투덜투덜 거렸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히지카타를 발견하고 빙긋 웃는 그녀가 야마자키를 보곤 약간은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이내 활짝 웃으며 둘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그가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를 보고 놀란 것은 야마자키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 자기가 있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그녀와 히지카타를 번갈아 보며 히지카타에게 속삭이듯 저.. 이 자리에 제가 있어도 됩니까? 하고 물었고, 히지카타는 말없이 그를 잡아끌었다.


야마자키와 유우는 간단한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는 말없이 술만 들이켰다.


 

 

“부장님,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니 별로”


 

 

 

그는 짧게 대답했다. 그가 긴토키와 소고의 모습을 보고 놀란 건 사실이지만 그는 그 모습을 보고 그냥 뒤돌아섰다. 그래서 내가 뭘 어쩔건데?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었고, 그것에 대해서 캐묻지도, 아는 척 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때 그는 야마자키에게 자신의 지갑을 주면서 천천히 먹고 계산하고 오라고 말했다. 유우가 함께 일어섰지만 히지카타는 일이 있어서 그러니 먼저 가보겠다고 말했다. 자리에선 아무렇지 않았지만 밖의 공기를 한숨 마시자 순간 머리가 울리는게 술을 꽤나 마셨나보다. 그는 충동적으로 강가에 가고 싶어졌다. 강가의 축축한 풀냄새와 귓가를 간질이는 듯 잔잔히 울리는 풀벌레 소리가 부슈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강가에 앉아서 작은 돌 따위를 괜히 화풀이 하듯 하나씩 던지다 췻김에 나온 용기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뭐해”


[뭐하긴, 술 마셨습니까? 술 처먹었으면 곱게 와서 자라]


“안 취했어. 할 일없으면 잠깐 올래?”


[...어딘데]


왠일로 순순히 물어오는 그의 말에 그는 기분이 좋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왠일로 그는 투덜거린다거나, 귀찮아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았다.


“누구랑 마셨어?”

“야마자키랑”


“야마자키는 어딨는데?”


“몰라-”


“같이 마셨으면 챙겨야지 내가 나오게 만들어? 건방진 새끼”


“...왠일로 순순히 나왔어?”


히지카타는 투덜거리는 그에게 물었다. 그 녀석의 적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살짝 움찔하더니 답답해서 라고 대답했다. 기대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긴토키와의 그 모습을 보니 약간은 뭔가가 더 확실하게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면서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자꾸 앞을 서성거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 나는..”


“응”


“....나는....”


눈앞의 네가 다른 사람이였으면 이 상황에서 말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아냐....”


그런 그를 보고 소고는 그가 몹시 취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소고.. 나는....”


“그래 너는”


“....아냐..”


“...”


“...아... 나는....”


“...”


“....아니다...”


술에 덜 취했는지 아니면 취해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꾸만 목구멍에 무언가가 턱 걸려 그 말을 꺼낼수가 없어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자꾸만 겹치어 보이는 그와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아냐... 나는 자격이 없어 자격이..”


“뭐라는거야 자꾸”


“...넌 내가 싫지?”


“...당연한 소리를”


“...내가 누군가의 옆에서 행복해지는게 보기 싫다고 했었던가?”


“...”


그의 말에 소고는 별 말 없이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 때 말이 조금 심했나? 취해서 저런말도 하고


“...그럼.. 네 옆에서 평생 불행하게 있을까?”


“뭐?”


“니가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할게”


그래 소고, 난 선택 같은 걸 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아니야


“자꾸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가자 너 취했어”


그는 정말로 황당했는지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소고는 그의 정신 나간 듯한 소리를 듣고 일어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히지카타, 너 내가 그런 말했다고 답지 않게 삐진거냐 설마?”


소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그보다 더 심한말을 얼마나 더 해왔는데 고작 그런걸로?


“히지카타 너 자꾸 나한테 당하고만 있다는 듯이 말하지마 너도 나 열받게 하잖아?”


그는 불만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니가 자꾸 그러니까 사람들이 내가 일방적으로 나만 잘못했다는식으로 말하는데 나 그거 억울해 그는 마저 덫붙여 말했다.


“난 적어도 너처럼 그렇게 오래가진 않아. 난 쿨하거든. 봐, 나 지금도 너한테 화난 거 다 잊고 왔잖아”


사실 아직 풀리진 않았지만 그가 불러낸 사실이 좋았다. 전화를 받으면서 살짝은 취한 목소리로 자신을 불러내는게 반가웠다. 술 취하고 생각나는 사람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뭐 믿을 만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아 그렇지 너 그랬었지”


“물론, 쫌팽이 같은 누구랑은 달라서 말이지”


“....그렇게 잘 잊어버릴거면 키스한번 더 할래?”


히지카타가 그의 얼굴 앞에 불쑥 다가왔다. 소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을 치곤 그런 자신의 행동이 미치게 자존심 상했다. 뭔가 엄청나게 신경쓰고 있었던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듯해 치욕스럽기까지 했다. 더불어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눈 앞에 있는 애증에 가득찬 이 녀석이 가증스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이 새끼가.. 너 미쳤냐?”


그는 때리려고 주먹을 들었다가 됐다 하고는 그대로 신경질적으로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걸음 가다가 화가 덜 풀렸는지 멈추곤 뒤돌아서 히지카타에게 소리쳤다.


“재밌냐? 병신새끼야”


자신의 표정을 거울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세상에서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증오심에 가득찬 듯한 표정일 것이다.


히지카타는 그런 그를 보고 다리가 땅에 붙은 것 마냥 꿈쩍도 하지 못했다. 나 정말 취했구나 이런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서성이던 감정이 긴토키와의 행각에 대한 질투심을 표출한 것일까? 또 다시 그 녀석을 화나게 만들어 버렸다.


그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그는 다시금 털썩 주저앉았다. 아.. 오늘도 날씨가 흐렸었나.. 오늘도 별이 하나도 없네


 

 

 

 

 

 

 

 


 

 

 

 


팽팽하게 잡아당긴 줄의 긴장감이랄까 조금만 뾰족한 것을 가져다 대면 탄력있게 끊어질 것 같이 그의 상태는 아슬아슬했다.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위치의 그와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은 그 내적의 두 명의 본인이 자꾸만 갈등을 빚고 있어 그는 그 스트레스에 괴로웠다. 술을 먹고 그 녀석에게 연락을 취한 것부터 자신이 철저히 감추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 것에 대한 괴로움이 커 그는 업무 중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제 그렇게 화를 내고 나간 그 녀석은 아침에 자신을 마주치자마자 ‘병신새끼’ 라고 아침인사를 대신하곤 가버렸다. 그래도 그런 욕을 지껄여준다는 것은 그가 지난밤의 일을 잊었다거나,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교대로 나간 순찰에선 또 다시 어김없이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히지카타를 보곤 웃으면서 왜 먼저 가셨어요 아쉬웠는데- 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왜 이렇게 맨날 쫓아다녀? 이렇게 자주 만나는거 진짜 이상하잖아”


히지카타는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곤 물었다.


“....”


그녀는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놀란 기색 없이 그를 덤덤히 쳐다보았다.


“모르셔서 물어보시는건 아니시죠?”


“...뭐?”


“당연하잖아요 이러는 이유. 저 부장님 아직도 좋아해요”


놀라진 않았지만 사실 큰 관심 없었기에 그는 그런 그녀를 무관심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부장님은 모르시겠지만, 이런거 세 번씩이나 말하는거.. 진짜 쉬운거 아니예요”


그렇겠지 누구는 한번도 말 못하고 있는데. 새삼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뻔히 자신의 대답을 알고 있을터인데


“...관심... 없으시다는거 알지만... 그래도 한번은....제가 한말을 신경이라도 써주세요”


그녀는 그에게 인사하곤 뒤돌아섰다. 대답을 알고 있는 눈치였고, 그걸 모르는 것이 말이 안될 정도로 그가 행동해 왔기에 그는 마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마저 피웠다.

 

 

 


삐뚫어진 욕망이 점점 커져가서인지 그는 꿈속에서 몇 번이나 그와 입술을 맞대고 그를 탐하는 꿈을 여러번 꾸었다. 그리고 종종 그가 미츠바로 변하기도하고, 꿈에 그녀가 나왔다고 생각하면 그녀가 그로 변하기도 했다.


미츠바와 닮았지만 전혀 다른 성격. 미츠바로 말하자면 자신이 손대면 더러워질까봐 무섭고 부담스러운 새하얗고 약한 카라꽃 같다고 하자면, 그는 손을 대어도 더럽힐 걱정은 해도 되지 않는 밟아도 죽을 걱정 없는, 그러기에 더 꺾고 싶은 구석에 피는 생명력 질긴 한입이라도 베어문다면 독이 가득 퍼질것 같은 독초 같은 그런 존재였다. 그런 외적 모습이 카라꽃과 닮았다고 생각한다면, 심지어 사랑했던 사람이였다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자신의 안에서 작게 비겁한 위로를 하고 있었다.


그런 꿈을 반복해 꾸고 나서 그는 자신의 비도덕적인 면모가 점점 자신을 침식해간다는 것을 느끼며 두려웠다. 그것을 두려워한 결정적인 이유는 늘 깨우던 그 녀석을 깨우러 그의 채취가 가득한 그의 방에 들어갈 때부터 머리가 울릴정도로 미치게 설레인다는 점, 그리고 항상 봐왔던 우스꽝스러운 안대를 쓰고 자는 그 녀석을 보곤 자신이 항상 깨우러 오는 규칙적인 시간이 아니라 (이를테면 새벽이라던가) 뜬금없는 시각에 기척없이 찾아가선, 완력으로는 자신이 그 녀석보다는 앞서기에 실제로 탐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버렸다. 안대를 쓰고 있기에 앞을 보지 못할 것이고, 조심한다면 자신을 숨길수도 있지 않을까, 일명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느 미친 잔혹한 강간범 같은 생각을 신센구미 부장인 그 자신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이대로는 진심으로 범죄자가 되어버릴 것 같아 정신없이 이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다행이였다. 이런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성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자신이 멀쩡하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렇다고 그가 그 녀석을 아끼지 않는다거나 그런 삐뚫어진 욕망만을 품은 것은 아니였다. 누구보다도 그를 생각했고, 누구보다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의 인격 안에 일어나는 해석이 미묘하게 엊갈려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배덕감과 그것을 이기지 못하는 죄책감과 금욕적인 자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 위치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자신의 옆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문제였다. 술집여자가 풍기는 향수가 싫어 술집여자와는 함께 있기도 싫었다면 그게 아닌 그냥 다른 평범한 ‘여자’를 두고 많은 문제 중 한 가지 정도를 해결하면 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마침 떠오르는 한 명이 있었다.

 

 

 

 

 

 

 

“어서오세요! 어..?”


그의 걸음이 다다른 곳은 그녀가 일하고 있다는 케이크 가게였다. 많은 남자들이 이상형으로 뽑는 케이크집에서 일하는 여자. 사실 자신은 그런 얼빠진 남자들에 해당하는 사람은 아니였지만,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로 조건은 충분했다. 케익 같은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그 였기에 그녀는 케익 가게에 찾아온 그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피했다. 그는 아기자기하게 잔뜩 토핑되어 있는 케익들을 한번 쓰윽 둘러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맛있어?”


“..아..음.. 부장님은 단거 별로 안좋아하시니 이걸로..”


“아니 그냥 여기서 제일 인기있는거 추천해줘”


“선물이신가요? 그럼 이거랑.. 이거..”


그녀는 조심스레 조각케익 몇 개를 추천했다. 그는 그녀가 추천한 두세개 조각의 케익을 다 달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그녀는 깨끗해 보이는 흰 상자에 조심스레 포장을 하곤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잠시 받아들더니 다시 눈앞의 그녀에게 내밀었다.


“...?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너 먹어, 너 주려고 샀어”


“저... 저요?”


“응”


그는 자신이 내민 상자를 들고 놀란 표정의 그녀를 등 뒤로 하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가자 그녀가 바로 뒤따라 쫓아 나왔다.


“저....저기 부장님! 이거... 뭐..뭐예요? 무...무슨 의미예요?”


그녀가 당혹스러움과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아니 감출 생각도 없는지 말을 똑바로 잊질 못했다. 그는 뒤따라온 그녀를 별 감흥 없이 쳐다보며 말했다.


“나 역시 너를 좋아해 내 옆에 있어줘”


책을 읽는 듯이 말했다. 이 말이 이렇게 쉽게도 뱉을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그는 그날 알았다.

그녀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바로 눈치를 챘을 수도 있을 정도의 무미건조함이였지만 이미 그녀는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었고, 그의 표정, 말투 이런 것 쯤은 보이지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연한 분홍빛으로 번져가며 그 얼굴을 가리려 손으로 얼굴 반을 가리었다. 그녀는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는지 그를 와락 껴안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그는 애써 웃어보였다. 그녀는 믿기지 않았는지 저 아무 때나 연락해도 되요? 저 찾아가도 되요? 하고 물어보며 다른 여자랑 있으면 저 화내도 되요? 라고 물었다. 여자? 여자는 신경 안써도 돼 그는 말했다. 그의 말에 그녀는 화사하게 웃었다.


그래 여자는 신경 안써도 돼. 여자는


그리고 그는 한편으론 지금 자신의 행동을 조금은 후회하고 있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야마자키, 소고는 어딨어?”

 

“아까 해결사 형씨랑 어디 가던데요?”

 

“해결사?”

 

“네, 방에서 나오던데.. 한번 연락해볼까요?”

 

“아.. 아냐 내가 해볼게”

 

방에 사람을 잘 들이지 않는 그 녀석이 해결사 녀석을 방에 들였다는 말을 듣고 히지카타는 불안함과 더불어 의아했다. 그래서 인지 더욱 그를 찾아 앞에 데려다 놓고 싶었다. 자신의 눈에 띄는 곳에, 눈동자에 비추는 곳에 계속 있어줬으면.

 

히지카타가 그에게 조금은 다른 욕구를 품은 마음을 가져버린 것도 사실이지만, 그는 실제로 그를 상대로 그것을 표출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실제로 도덕적인 사람이고, 반듯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도 확실하게 의식하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그의 위치에 걸맞는 그 정도의 사람이였다. 꿈에서 있었던 일은 꿈에서의 자신이기에 가능한 일이고, 실제였다면 절대로 그런 실수를 접하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잊으려 노력했다.

 

 

‘히지카타씨 새삼 대단하네요’ 

 

‘어떻게 좋아하는 사람이 고백을 해오는데 그걸 거절합니까? 나라면 아마 죽어도 못할 거야’

 

 

마츠다이라와의 술자리에서 잠시 밖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가 했던 말이였다. 그땐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며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네 녀석이 어떻게 그런 감정을 알고 있어?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런 감정을 공감하는일이란 엄청난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힘들텐데, 그런 감성따윈 매말라 비틀어진 네가 그런 감정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어?

그는 그 상대가 어쩌면 긴토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는 소고가 잘 따르는 상대이기도 했고, 부탁도 종종하러 갔었다.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그 녀석이 잘 따르는 녀석이라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이런 마음의 결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고를 쭉 옆에 잡아두고 싶고, 그가 스스로 자신의 옆에 있어주길 바라지만 그런 생각은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단하다..라.. 그래 자신이 생각해도 그때의 자신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쉬웠던 것은 아니다.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얼마나 후회하면서도 후회하면 안된다고 자신을 다그쳤는지, 얼마나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는지, 얼마나 그 순간 괴로워 몸을 혹사했는지.

하지만 자신에게 있을 가슴이 설레여 괴로운 그런 일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는 인생에서 맛 볼 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그 고통의 전야가 안개처럼 내려앉았다.

 

더더욱 상대가 그 녀석 이였기에

그는 핸드폰을 들고 그의 이름을 검색한채 액정에 떠 있는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다 결국 연락을 취하지 못한 채 그날따라 무겁게 느껴지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자꾸만 알게 모르게 간섭하게 되는 자신이 잘못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고, 안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리의 필요성을 피부로 와 닿을 만큼 뼈저리게 느끼진 못했다. 순찰을 간다거나 양이지사를 검거한다거나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그와 함께 있을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가끔 몰래 그 녀석의 순찰 당번을 자신과 같이 하는 것으로 바꿔 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혹은 여러 가지 양심의 문제 때문에 반드시 바꿔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때만 바꿔놓았고, 마땅한 이유가 많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에 둘이 같이 가는날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같이 순찰을 가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의 낙이였다. 따분한 순찰을 돌고 있을 때 언젠가부터 유우를 자주 만났다. 마주칠 때마다 태워달라고 하거나, 자연스레 음료수를 마시자고 하며 그녀는 말을 걸어왔다. 자주 만나네? 하루는 히지카타가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그러게요? 이런거 혹시 운명 아닐까요? 하며 눈을 빛내며 웃었다. 그녀의 다른 말은 크게 새겨듣진 않았지만 ‘운명’ 이라는 말에 그는 왠지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운명이라, 그럼 나는 어떤 운명을 가졌길래 이렇게 도덕적이지 못한 상황에 처해버린걸까 미친것이든 무엇이든 일단 이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비양심적인 마음을 가지게 했으면서 그것을 거역할 수 있는 용기는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현재 뼈저리게 마음의 정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역시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불어 미츠바가 생각났다. 마음을 고백할 용기도, 받을 용기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 전에 쳐내지도 못한 자신의 우유부단함이 원망스러웠다.

 

 

그가 그렇게 기다리던 그와의 순찰날이 왔다. 언제부터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와의 관계가 전보다 약간은 서먹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답을 할 수 없었다. 싸운것도 아니고 둘 사이에 무슨 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차에 타서도 서로 별 말없이 히지카타는 옆 쪽에 있는 창문만 보고 있었고, 소고도 별 말없이 운전만 했다. 가벼운 차 엔진소리만 조용히 울릴 뿐이였다.

 

 

히지카타는 잠시 생각하다 소고를 힐끗 보고는 말을 걸었다.

 

 

“순찰구역 도착하면.. 경단 먹으러 갈래?”

  

“우와- 땡땡이 치자는 겁니까?”

 

 

몇 번 갔었던 익숙한 경단 집에서 경단을 주문하곤 날이 좋아 밖에 나란히 앉았다. 그가 접시에 놓인 경단을 하나 집어 들곤 말했다.


 

“요즘 나 닮아갑니까? 왜 이렇게 정신상태가 빠졌어요?”

 

경단을 한입 물고는 말했다.

 

“왜, 일 안하고 땡땡이 치는건 너만의 특권인줄알아?”

 

히지카타도 지지않고 투덜거리며 대꾸했다. 한참 서로 말없이 앉아있다가 소고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여자 만났죠?”


“그 여자? 아, 유우 말하는건가? 만났어”


 

이상하게 요즘 자주만나더라 라고 대답을 하려는 찰나 또 다시 마침 이야기 하고 있던 그녀가 둘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히지카타를 보고는 반갑게 달려오다가 옆에 있는 소고를 보곤 약간은 겁먹은 듯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부..부장님, 오키타 대장 또 뵙네요”

 

소고는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말없이 경단을 입에 넣었다.

 

“그러게 이상하게 너무 자주 보는거 아냐?”


 히지카타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소고를 살폈다.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적당히 빠져주길 바랬다. 그녀는 소고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약간은 안심한 것인지 히지카타의 옆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댔다. 저번엔 다른곳에서 만났었는데 이번엔 여기서 뵙네요? 요즘도 많이 힘드세요? 제가 옆에 있었으면 많이 도와드렸을 텐데, 가끔 가서 도와드릴까요? 그녀는 말끝을 애교있게 살짝 올리며 늘어트리는 말투로 재잘거렸다.

 

“우리 지금 일하는 중이라..”

 

히지카타는 당황하며 말했다.

 

“쉬고 계신거 아니예요?”

 

유우가 웃으며 말했다.

 

“일정표는 어떻게 손에 넣었으려나, 완전 스토커 아니야?”

 

그 둘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던 소고가 경단을 다 먹은 스틱을 입에 물곤 그녀에게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거 아니예요 우연히..”

 

“우연같은 소리, 히지카타 너도 무섭지?”

 

그의 물음에 히지카타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됐다, 얼른 일이나 하러가자 하며 일어섰다. 그러나 소고는 그의 말엔 큰 관심없이 유우 앞에 다가갔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며?”

 

소고는 그녀와 히지카타의 대화를 통해 한 두 번 만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우연한 만남을 가장해 계속 그와 접촉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자꾸 얼쩡거리는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유우는 소고를 무서워했지만 둘이 있는 상황이 아닌 히지카타가 옆에 있기에 약간은 안심하곤 히지카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의 그런 태도가 그를 더 열 받게 만들었다.

 

“미친년이”

 

그는 더 가까이 다가가 거칠게 한손으로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점점 힘이 들어가며 비틀어쥘 때 그녀의 표정이 공포와 고통으로 묘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에 그는 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람말이 말 같지 않아? 눈에 띄지 말라고 하잖아”

 

“아..아...사...살ㄹ..”

 

“소고!”


 

 

히지카타가 뛰어들어 그를 뜯어 말렸다. 난입한 히지카타 때문에 그는 겨우 약간의 이성을 차리곤 이내 약간은 아쉬워 하며 손을 놓았다. 그리곤 그대로 쓰러져 목을 붙잡고 쉴새없이 켁켁거리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부축하는 히지카타를 보며 알 수 없는 비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그런 그를 보고 소리쳤다.

 

“이 새끼야 너 미쳤어? 일반인을 상대로!”


 

부축을 하면서도 사실 그는 약간은 소고가 자신이 그녀에게 호감이 있다고 오해할까봐 ‘일반인’이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며 말했다.

 

“넌 둔영 돌아가서 각오해, 이거 시말서로 안 끝날줄알아”

 

그를 가질 순 없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과 오해하게 만드는 행동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경찰이 일반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말이 안되고, 그걸 지켜본 상관이 부하직원을 감싸고 도는건 말이 안되는 일이 아닌가? 당연히 일반인을 감싸는게 맞는거다. 소고는 그를 한참 쳐다보더니 입에 물고 있던 스틱을 바닥에 던지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를 그대로 두고 갈순 없기에 쫓진 못했다. 그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쳐다보다 그녀에게 정중하게 미얀하다고 말하곤 자기가 책임지고 벌을 줄테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일을 크게 만들면 그에게 피해가 갈 것이기에 그는 그녀를 애써 달랬다. 그러자 한참 기침을 하다 진정한 그녀가 그런 그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말했다.

 

“그럼 저 사케 한 잔 사주세요, 그럼 오늘일 다 잊을수 있을거 같아요”


 

 


 

 

 

 

 

 

 

 

 

 

 

 

 

 

오랜만에 곤도가 둘을 불렀다. 셋이 있는건 오랜만이지? 그냥 얼굴이나 보자고 불렀어. 그는 앞에 과일같은 간단한 먹거리를 두곤 앉으라며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곤도가 부르기 전에 소고는 히지카타에게 불려가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물론 그는 자세히 듣진 않았지만 히지카타는 그를 불러놓곤 말했다. 너, 정신차려 네 녀석의 힘이 힘없는 그런 여자애나 협박하라고 있는 줄 알아? 너 그거 잘못되면 문제 커진다? 제발 부탁이니까 생각 좀 하고 움직이면 안돼? 요즘 좀 조용하다 했더니 이런 사고를 쳐? 너 나 없었으면 어쩔뻔했어? 히지카타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반박을 하고 싶지만 그도 본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곤 그저 예예- 죄송합니다. 알았어요 잘못했다고. 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삐딱한 자세로 앉아 알았으니 그만하라고 말했다. 결국 엄청난 시말서를 써오라는 말을 듣고 그는 투덜투덜 거렸다.


옆에 앉아서 과일 따위를 하나씩 집어먹고 있을 때, 곤도가 히지카타에게 물었다.

 

“연애같은거 안해?”

 

“연애는 무슨”

 

히지카타는 관심없다는 듯 대답했다.

 

“인기도 많으면서 연애는 왜 안해? 아깝다야”

 

곤도는 웃으며 물었다. 그의 말에 소고는 그를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관심없어”

 

“하긴, 저녀석이 옆에 있는데 니가 연애나 제대로 하겠어?”

 

“...저 녀석? 그거 혹시 나 말하는 겁니까?”

 

소고가 잠자코 있다가 놀란 듯이 물었다.

 

“그럼, 여기 우리 셋 말고 또 누가 있어?”

 

“내가 뭘 어쨌다고요?”

 

“이 녀석 연애하면 니가 맘편히 살겠냐 이녀석아? 니 질투심에 다른사람한테 쟤 뺏기는걸 보고 가만히 있겠어? 전 부터 여자들이 토시한테 들이대는거 보면 눈에 불켜고 이 녀석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쳐다보면서. 얘가 혹시나 만나는 여자가 생기더라도 여자쪽에서 너 때문에 토시랑 못 만난다고 할걸? 너 같은애 한명 옆에 있는 것 보다는 차라리 연애에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시어머니에 시누이 열명정도 있는게 더 낫다고 생각할지도?”

 

곤도는 머릿속으로 상상했는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내가 무슨! 그런거 아니거든요? 그리고 쟤 연애 안 하는게 왜 나랑 관계가 있어요? 그건 저 새끼가 고자니까 그런거겠지”

 

곤도는 모르고 있지만 방금 전 그의 말대로 들이대는 여자애를 힘으로 협박했다며 잔소리를 듣고 왔기에 그는 혹시나 마음이 들키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다. 곤도는 여전히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곤도의 방에서 나올 때 히지카타가 장난식으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그래서 힘없는 여자애를 공격하셨나? 대장님”

 

히지카타는 놀리듯이 물었다. 그리고 내심 그는 곤도의 말에 당황하는 그의 모습이 기분 좋은 것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말서는 써와야 된다?”

 

히지카타는 그 모습이 귀여워 웃으며 말했다. 웃어? 소고는 그의 모습에 그녀를 부축하던 일이 생각나 독하게 말을 뱉었다.

 

“별 미친소리를 다 듣네 오늘. 그냥 네 녀석이 누구 옆에서든 행복한 꼴 같은거 보기 싫은거야”

 

그는 어깨에 얹은 그의 손을 쳐내고는 앞서서 걸었다. 개새끼야 그 년한테 니가 너무 무르게 해주니까 자꾸 들러 붙는거 아냐 나한테 먼저 왔어야지 그년이 아니라

 

 

 


 

 


 

 


 

시말서. 세 글자를 쓰곤 한참을 멍하니 하얀 빈 종이를 쳐다보고 앉아있었다. 뭐라고 써야할지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보통 건물을 부숴서 시말서를 썼을때는 양이지사들에게 뒤집어 씌울수라도 있어 그나마 변명거리가 있었는데 이번일에 대해서는 뭐라고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여자애가 열받게 자꾸 얼쩡거려서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써서 냈다가 이딴걸 시말서라고 써온거냐며 다시 써오라며 재수없는 그 녀석에게 잔소리만 들었다.

 

“찾았다- 뭐해? 공부해?”

 

어느새 나타난 긴토키가 그의 앞에 의자를 놓곤 마주보고 앉았다. 그리곤 그의 앞에 놓여있는 종이에 써진 글을 보고 물었다.

 

“시말서? 시말서 쓰는거야?”

“..뭐..보다시피.. 이리줘요”

 

“하나도 안썼는데?”

 

“뭐라고 써야할지 몰라서요 아 미치겠다”

 

그는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업드렸다.

 

“그래? 내가 도와줄게! 대충 상황 설명해봐 나 말빨 좀 서는거 알지? 그만큼 이런것도 잘쓰거든? 해결사한테 의뢰하라고”

 

긴토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소고는 약간 불안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냥 대충 지어내면 안돼?”

 

“옆에 같이 있었으니까 고민이죠, 아 머리아파”

 

“엄청 깨졌겠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설교 들었어요 그 새끼는 잔소리 시작하면 끝이 없다니까요?”

 

“음..근데 왜 그랬어?”

 

긴토키가 묻자 소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냥요 그냥, 짜증나서 그 순간 죽이고 싶었어요. 저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요”


 

소고가 여자애가 누구인지도 말하지 않았고, 상황을 너무나 간략하게 말해서 왜 그랬는지 도통 감을 잡을수는 없었다. 약간 감정상한 듯 툴툴대며 말하는 그에게 긴토키는 웃으며 말했다.


 

“이유 말하기싫구나? 뭐 암튼 그래서 그 여자애는?”

 

“...히지카타가 부축하는거 까지 보고 그 다음은 몰라요 짜증나서 그냥 다른데로 갔거든”

 

그의 말을 듣고서야 긴토키는 그 이유를 대충 눈치챘다. 그리고 그가 약간 감정이 상해 있는 부분도 대충은 짐작 할 수 있었다. 긴토키는 그가 쓰던 종이에 무어라고 글을 쓰며 말을 이었다.

 

“뭐, 직업이니까 당연하겠지 뭐, 근데 나라면 너부터 잡아놓고 부축했을 거야”

 

“...”

 

“너도 뭔가 이유가 있었을거 아냐, 아니 없어도 상관없이 나한텐 니가 1번이니까 니가 무슨 짓을 했다 해도 널 내 옆에서 가게 두지 않았을거야 일단, 난 경찰이 아니잖아?”

 

긴토키는 그에게 말하곤 씨익 웃었다. 어떻게 그런거 일일히 경찰의 역할 따지면서 행동하냐 오오구시군은 새삼 대단하다니까? 긴토키가 작게 중얼거렸다.

 

 
소고는 히지카타에게 화가 나 있었지만 생각할수록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 밖에는 생각할 수 없어 그에게도 그러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 녀석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건 자신이고, 이해를 하면서도 생각할수록 화나는 그 장면에 치를 떨었다. 그 틈을 적절히 파고 들어서인지 긴토키의 말이 그는 약간은 고마웠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긴토키가 새삼 고마워 그는 한참 쳐다보다 말했다.

 

“사탕... 있는데 먹을래요?”

 

“사탕? 왜?”

 

“아니 뭐.. 난 별로 안좋아하니까”

 

우물쭈물 말하는 그를 한손으로 턱을 괸채 쳐다보다 밖에서 자신과 소고를 쳐다보는 히지카타를 발견했다.

 

“음.. 사탕도 좋긴한데.. 이걸로”

 

그는 가볍게 그의 입술에 쪽 소리나게 입을 맞추었다. 조카에게 해주는 듯한 가벼우면서 귀여운 뽀뽀 정도였지만 그는 그 순간이 너무나 달았다.

 

물론 그 이후에 그가 난리를 쳤지만 그런 것 쯔음은 예상했기에 웃으며 받아 넘겼다. 씩씩대는 그가 조금은 진정했을 때 긴토키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시말서 쓰는것도 도와주잖아. 의뢰니까 계산은 해야죠 손님. 그리고 나 약간은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긴토키는 능글맞게 웃었다. 히지카타가 이런 모습을 보게 하려고 일부러 한 것은 소고에게 질투를 받고 있는 그가 부러워 괜히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각인 시키려는 것이였다. 히지카타가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았을지 그는 알 수 없었지만, 어린 아이가 어른들에게 그들은 관심도 없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로봇 따위를 들고 자랑하는 것과 같은 심리였고,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의한 것도 있었다.

 


소고는 그 날 이후로, 긴토키에게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내가 좋을까? 형씨는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이미 거절을 했는데도 이런 행동을 하는건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그리곤 한편으로는 이 상태에서 긴토키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면 약간은 심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긴토키가 자신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니가 착한 녀석일 리가 없잖아?' 맞아요 형씨, 형씨 말대로 정말 난 착한 녀석은 될수가 없어

 


 

 

 


 

 


 

 

 

 

​책을 읽지 않는 편은 아니였다. 그러나 책을 읽는 목적은 항상 같았다. 전술에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책. 그 외의 책들에 관해서는 읽어 보고싶다 라는 생각조차도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것인데 왜인지 히지카타는 그날따라 머리를 식히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며 서점을 찾았다. 필요한 책을 사서 바로 나오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시켜서 구입했기에 서점이라는 공간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목적 없이 들어간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무 책이나 집어 들어 앞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어떤 장르의 책인지, 그 책의 제목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딱히 상관없었다. 집어 들은 책은 소설이었다. 평범한 소설이었는데 앞 부분에서 파악한 내용은 이러했다. 어떤 남자가 어릴 때 사랑했던 그녀를 잊지 못해 그녀의 어릴 적 모습을 그대로 닮은 어린아이에게 그녀의 모습을 찾으며 집착해가는 내용이었다. 히지카타는 앞부분의 내용을 꽤 읽어 내려가다 문득 그의 상황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소리 나게 덮고는 내려놓았다. 사실 뒷부분의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궁금함과 동시에 무서워졌다. 그 책에서 주인공이자 서술자의 신분은 범죄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평범한 소설일 뿐이고 그 두꺼운 책의 뒷부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범죄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무서웠다. 그리고 약간은 자신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감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 녀석에게 그녀를 찾아 헤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그녀와의 갈증이 타다 못해 밑바닥을 드러내며 닮은 그를 보며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불어 만약, 아주 만약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그 녀석과 함께 있다면, 단순히 지금의 관계가 아닌 그 이상의 관계가 된다면 행복해질까? 아니었다.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의 그 이상의 죄책감을 그는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녀석에게 미츠바란 그 녀석 자신의 모든 것일 테니.

  

그런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 그는 소고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조심스레 마음을 말하고 싶고, 묻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되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붕이 망가져서 이틀 정도를 더 그와 같은 공간에서 잠이 들었다. 옆에서 잠이 든 그를 보며 그의 손가락 끝을 두어 번 건드려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그가 조금이라도 뒤척이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떼었다. 그와 함께 있는 그때가 좋으면서도 괴롭고, 아슬아슬했지만 다른 면에선 안정적이었다. 미치도록 곁에 두고 싶고 함께 하고 싶지만 일정 거리 이상으론 가까이하면 안 되는 그런 사이였다. 그와 소고의 사이에는 미츠바라는 거대한 존재가 벽이 되어 존재기에. 그는 그 벽을 절대로 거역할 수 없고, 소고 역시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히지카타는 종종 긴토키와 소고가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했다.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 둘의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긴토키가 한없이 부러워졌다. 그간 지켜본 긴토키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그는 큰 생각 없이 소고에게 다가가려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긴토키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고가 미워 극단적일 때는 그대로 끌고 와 다시는 그 녀석 앞에서 웃지 말라며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 녀석이 순순히 맞고 있을 녀석이 아니기에 하는 생각일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관계보다 더 극단적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소고와 자신의 관계라는 걸 그는 다시금 깨달았다.

  

일종의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에 잡혀 도착증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는 한참 해결방안을 찾다가 다른 여자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곤도에게 요시와라에 가자고 말했다. 곤도는 그의 말을 듣고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바로 찬성했다.

  

“둘이가? 소고는?”

 

“어린 새끼가 그런 데를 왜가?”

 

소고에겐 이런 곳에 간다는 것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곤도는 어깨동무를 하고는 토시, 너와 함께 가면 여자들이 많이 붙어서 너무 좋아. 근데 무슨 바람이 불었어? 하며 혼자 재잘거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곤도의 말대로 많은 여자들이 따랐다. 그는 그다지 선택하지 않았고, 곤도가 좋다는 유녀들로 적당히 골라 술을 마셨다. 히지카타의 옆에 앉은 유녀는 소고와 닮은 연갈색 머리칼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 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풍겨오는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꽃향기와 과일 향기가 섞인 강렬한 향수가 머리가 울릴 정도로 역겨웠다. 그녀가 옆으로 바짝 다가오자 그는 더 다가오지 말라는 듯 말했다. “향수 냄새가 너무 독하네요” 그는 한마디 하곤 적당히 술만 마셨다. 다른 남자들은 저런 역겨운 향수를 좋다고 하는 걸까? 그는 의문이 생겼다. 어느새 곤도는 그의 술을 따라주던 여자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 틈을 타 그는 이만 돌아가겠다고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에 또 오실 거죠? 그땐 향수를 좀 줄일게요”

 

확신 있는 말투를 듣고 히지카타는 그녀가 그 술집에서 나름 잘 나가는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말에 그저 가벼운 목례로 답을 한 후, 그 술집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생각했다. 괜히 이런 곳에서 마셨네 옆에 네가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둔영에 도착하자 돌아온 그를 보곤 소고가 와선 말했다.

  

“왜 혼자와? 곤도 씨는? 나도 오늘 술 먹고 싶었는데- 나도 데려가지”

 

둘이 요시와라를 간 것에 대해서는 모르기에 그가 투덜투덜거렸다. 그런 그의 뾰로통한 표정이 귀여웠다.

 

술을 덜먹은 애매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차라리 아예 취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잠들면 편했을 텐데 적당한 감정선, 적당한 이성으로 그를 마주 보고 있기가 더 힘들었다.

 

히지카타가 그냥 뒤돌아가자 소고는 따라오며 자신과 한잔 더하자며 졸라댔다. 방금 전까지 속으로 차라리 더 취할 걸 하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됐다고 말하며 먼저 잔다며 안으로 들어가 침구에 몸을 눕혔다. 기억을 잃을 정도의 취한 상태에서 나오는 자신의 본성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무서웠기 때문이다. 요시와라에 간 것이 해결은커녕 더욱 확신시켜주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소고는 낮의 둔영에서 낮잠을 청했다. 히지카타가 집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확인했기에 방해가 될 사람은 없었다. 한참 낮잠에 빠져들었을 때, 누군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흔들어 깨우는 조심스러운 손짓이 히지카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저... 대장.. 손님...이 오셨어요”

 

잠에서 깨어 안대를 벗자 대원 한 명이 약간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말했다.

 

“손님? 근데 나를 왜? 곤도씨나 히지카타에게 말해”

 

둔영까지 찾아와 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그는 그를 깨운 대원에게 짜증 난다는 식으로 툴툴거렸다.

  

“그게... 대장을 찾는데요?”

 

“나를?”

 

그러고 보니 오늘은 지붕공사 휴일이었나, 그것을 확인한 소고는 분명 긴토키일 것이라 생각하고 대원이 말하는 손님을 만나기 위해 대원의 안내를 따랐다. 안내하는 대원이 자꾸만 저.. 대장.. 그런데.. 라고 말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는 듯 자꾸 눈치를 보며 말을 더듬어 댔지만 그의 태도를 소고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대원에게 빨리 안내하라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곤 동시에 따로 연락을 할 것이지 왜 귀찮게 이런 식으로 찾아왔을까 하고 생각했다. 대원은 이 안입니다 하고 짧은 말을 남기고서도 자꾸만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그는 약간은 의아하게 그 대원을 쳐다보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옆으로 당기고 들어가자 눈앞에 있는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 유우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녹차 따위를 얌전히 마시다가 들어온 그를 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장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그를 향해 조용히 웃어 보였다. 당연히 다시는 볼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이곳 둔영에.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그녀의 앞자리의 의자를 빼내어 털썩 앉았다.

  

“나를 찾아? 왜? 설마 내가 다시 둔영에서 마주치고 싶다고 해서 손수 찾아오셨나?”

 

“뭐.. 그렇다고 해둘게요”

 

그녀는 살짝 웃어 보이며 책상에 상자 하나를 놓고 그의 앞으로 조심스레 그의 쪽으로 밀었다.

  

“뭐야?”

 

“선물이에요 대장. 아, 이제 대장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네요? 오키타군이라고 불러야 하나..”

 

“내 이름 부르지 마. 그리고 너한테 이런 거 안 받아. 나 찾은 용건이나 말하고 꺼져”

 

표정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평소 때보다도 차가운 무표정에 그녀는 그를 보고 약간은 조심스레 말했다.

  

“사과하러 왔어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아, 그거라면 별로 받을 생각 없어. 용건이 끝났으면 돌아가. 다시 오지 마”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자 그녀도 함께 일어섰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저만 잘못했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나가려던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물론 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쪽이랑 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만큼 나.. 괴롭혔잖아요 ”

 

그녀의 대답에 그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 재밌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구요... 그리고 이걸로 앞에 나타날 일은 없으니 걱정 마세요..”

 

“너 따위 때문에 걱정까지 할 것 같아?”

 

“....저 오늘은 정말로 사과하러 온거예요 너무 적대 하지말..”

 

“그니까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말했잖아?”

 

“부장님께서는 와도 좋다고 하시던데요”

 

그녀의 그 한마디가 그를 자극했다. 어디서 만났는지 왜 그녀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하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그 새끼야 뭐 네가 말하니까 그냥 대충 알겠다고 했겠지 뭐”

 

“...”

 

“아, 너 같은 년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

 

“...”

 

“바퀴벌레. 혹은 거머리라고 하는 거야, 암퇘지 같은 년”

 

그는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책상에 놓여있는 그녀가 준 선물을 들고선 말했다.

 

“이거. 무서워서 어떻게 받아? 니가 또 무슨짓을 할지 모르는데?”

 

그리곤 책상 아래로 던지고 발로 짓밟았다. 상자채로 짓밟혀 보이는 그 안의 내용물은 쿠키였다. 그녀는 그 모습을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됐지 이제? 꺼져”

 

속이 시원하진 않았다. 일단 그녀가 이 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끔찍이 싫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만을 보러 왔다는것도 말이 안되기에 그는 더 신경쓰였다. 괜히 낮부터 기분 잡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야마자키가 순찰 갈 시간이라며 그를 불러냈다. 자꾸만 히지카타 쪽이 신경쓰여 그는 야마자키에게 물었다.

  

“히지카타는?”

 

“부장님이요? 뭐... 아까 보니까 엄청 바쁘시다던데요? 말 걸기도 무섭던데”

 

“그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를 만날 틈도 없을 거라 생각한 그는 순순히 순찰을 따라나섰다. 물론 그의 머릿속은 하루 종일 복잡해서 퍼엉 하고 터질것만 같았다.

  

 

그녀는 히지카타를 기다렸다. 딱 봐도 바빠 보이는 상황이라 그냥 말없이 잠자코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실 그녀가 소고에게 당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왔기에 생각보다 크게 충격을 받진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에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잊지 않은가? 오히려 홀가분했다. 히지카타가 바쁜 일이 끝나 밖으로 나와 음료수를 마시고 있자 그녀는 다가가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녀를 본 히지카타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하하.. 찾아와도 된다고 하셔서요”

 

그녀는 쑥스러운 듯 시선을 맞추지 못하곤 말했다.

  

“아 어어.. 근데 진짜로 찾아올 줄은 몰랐어”

 

“많이 바쁘세요? 잠깐 이야기 괜찮을까요?”

 

그녀의 말에 히지카타는 알겠다고 말하곤 그녀에게 음료수를 하나 건넸다.

 

히지카타와 마주 앉은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오키타 대장을 먼저 찾았어요. 사과하려고요. 역시 여전하네요 오키타 대장”

 

“그렇지 뭐.. 근데 니가 진짜로 사과하러 올 줄은 몰랐어. 그냥 내버려 두지 그랬어, 그 녀석 엄청 화냈을 것 같은데”

 

“지금 저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그녀의 표정에선 화색이 돌았다. 그가 걱정하는 쪽은 그녀가 아니라 소고 쪽이었다. 분명히 그녀를 만나곤 오늘 하루 종일 기분 나쁘게 보낼 그를, 그리고 더불어 혹시나 또 무슨 사고를 치진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인데 그녀가 그렇게 물어오자 당황했다.

 

“아니.. 뭐..”

 

“괜찮아요 그 정도는 예상하고 왔어요 그보다 전 오늘 부장님을 만나서 더 기뻐요”

 

 

그녀는 활짝 웃어 보였다. 간단한 대화만을 하고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며 그녀는 돌아갔다. 그녀는 분명히 예뻤다. 요시와라에서 만난 유녀보다는. 분명 다른 남자들도 그녀를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를 끌어당기진 못 했다. 그녀는 분명히 그 녀석보다 예쁘고 작고 가녀리고 성격도 얌전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게 그는 그녀에겐 그 이상의 어떠한 감정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는 차라리 그 녀석에게 느끼는 감정을 그녀에게 느끼길 바랐다.

  

 

 

 

 

 

 

 

 

 

“어제. 나 기다렸지?”

 

긴토키가 다음날 그의 앞에 나타나선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은 다 알고 있어 라는 말을 하듯이 기고만장했다.

  

“내가? 내가 형씨를요?”

 

“응”

 

“이건 또 무슨 개소리..”

 

“생각 안 났어? 보통 맨날 있다가 하루 눈에 안 보이면 생각나는 거 아냐? 거짓말! 나 기다렸잖아! 연락 올 거라고 생각했잖아!”

 

“아.. 뭐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소고는 들러붙는 긴토키가 귀찮은 듯이 대충 대답했다.

  

“정말? 그럼 나 오해한다? 나 기다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긴토키의 말이 아주 다른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약간은 당황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뭐, 그쪽이 보고 싶다거나, 좋아서 생각이 났다는 것과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너 방 쪽 지붕 다 됐어, 방 정리해줄게”

 

긴토키가 웃으며 말했다.

  

“참고로 나 청소나 정리 잘하는 편은 아닌거 알지?”

 

그는 덧붙였다.

  

청소 정도의 문제였다면 굳이 긴토키를 방에 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긴토키는 안에서 공사한 부분을 봐야 한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소고는 누군가를 방에 들이는 것을 약간은 껄끄러워했다. 남에게 약점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인지 딱히 방에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싫어했다. 그래서 그가 히지카타에게 장난스레 청소를 해달라고 맡겼을 때 스스럼없는 자신에 약간은 놀랐다. 자신이 없는 자신의 공간을 남에게 부탁해 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요 들어와요”

 

그는 긴토키를 방으로 안내했다.

 

“생각보다 깔끔하네”

 

긴토키는 방을 한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마음에 둔 사람의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의미로 설레는 일이였다. 남자들의 방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색채도 화려하지 않고 딱히 꾸며놓지도 않은 공간이지만, 그의 향기로 가득한 공간과 서투르지만 정리되어 있는 모양새가 그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빨리할 거 하고 나가요”

 

그가 투덜거렸다.

  

“왜 빨리 나가래? 나 오래 있고 싶은데?”

 

사실 안에서 지붕 공사와 관련되어할 일은 없었다. 이미 거의 끝마친 상태였지만 그는 그것을 그럴듯한 핑계로 구실 삼았다. 대충 그 부분을 보는 척을 하고는 지붕의 망가진 잔해와 공사 중 떨어진 쓰레기들을 청소해주었다. 자신의 공간의 일이라 그런지 그것을 보고 소고도 함께 거들었다.

 

끝나고 벽에 기대어 추욱 늘어져 앉아있자 소고가 그에게 음료수 한 잔을 건넸다. 긴토키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앉으라는 뜻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소고는 별 생각 없이 그의 옆에 자신도 벽에 기대어 앉았다.

  

“잠은 어디서 잤어? 상태 보니까 여기선 못 잤을 것 같은데”

 

긴토키의 물음에 그는 괜스레 약간 고민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히지카타가 옆방이라서 거기서 잤어요”

 

“....아 ..옆방이야?”

 

“네”

 

긴토키는 그의 말을 듣고 짐작하고 있는 그의 마음이 걸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내가 만들어준 셈인 건가? 하는 생각에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자꾸만 나는 연결고리식의 역할 밖엔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답답했다. 하지만 이내 히지카타의 마음이 그를 향해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하기에 별다른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그가 좋아하는 사람과 한 방에 있다는 생각에 설레였을 생각에 나타나는 질투심이였다.

 

옆쪽의 창문에서 햇빛이 살며시 쏟아졌다. 옆에 앉은 그의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화사하게 빛났다. 그의 공간 안에 둘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음료수나 마시면서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답 같은 것 들은 적 없다며 계속 그의 옆에 편하게 있을 구실을 찾고 있었지만 어쨌든 시간은 흐르기에 일은 곧 끝날 것이고, 이렇게 그의 공간 안에 함께 있을 구실도 사라질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즈음이면 그의 마음을 나에게로 향하게 돌려놓을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한번 향하면 그 순간은 다른 쪽에 시선이 쉽게 가지 않는다는 것쯤은 긴토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은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

  

공간을 둘러보고 있을 때 책 꽂이 쪽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눈에 띄어 그는 일어나 그쪽으로 향했다. 약간의 세월을 탄 듯한 양장 표지로 되어있는 책으로 보이는 것에 금박으로 ‘Okita’ 라고 영어 스펠링이 필기체로 작게 쓰여 있었다. 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것은 그 금박이였다.

  

“이거 뭐야?”

 

긴토키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것을 펼쳤다. 책은 아니었고 앨범이었다. 안에는 어릴 적 사진들이 한 장 한 장 침착하게 꽂혀 있었다. 이런 섬세한 면이 있었나? 하고 생각했다.

  

“아.. 그거 앨범이에요 내껀 아니고.. 누나 거예요"

  

“음. 봐도 돼?”

 

“이미 보고 있으면서 뭘. 난 잘 안 봐요”

 

“왜?”

 

“그냥”

 

그러고 보니 꽂혀 있는 윗부분에 미세하게 있는 먼지가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살며시 쌓여있었다. 괴로운 기억은 잊고 싶어서 그러려니 하고는 앨범을 순차로 넘겼다. 당연하겠지만 그녀 본인의 사진도 있었고, 몇 년 전의 곤도, 히지카타, 소고의 사진이 주로 있었다. 어릴 적 소고의 사진을 보고는 긴토키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왜요?”

 

“아니 웃겨서 지금 너하고 너무 똑같아서”

 

“당연하죠 같은 사람인데”

 

“귀엽다”

 

“징그러”

 

뒷장으로 넘길수록 나오는 건 그녀와 히지카타의 사진이었다. 활짝 웃는 그녀와 약간 어색해하는 히지카타. 그 옆엔 정성스레 쓴 듯한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그 둘의 사진을 보고 그는 그제야 새삼 깨달았다. 아, 맞다 히지카타 녀석, 얘네 누나랑 그런 관계였지? 잊고 있었네

 

“그만 봐요”

 

그는 긴토키의 손에서 앨범을 빼앗아 제자리에 꽂아 넣었다.

  

“오오구시군 사진이 많네.”

 

일부러 말했다.

 

“그래도 누나 사진이라도 있으니 보고 싶을 때 볼 수는 있잖아. 난 사진도 남은 게 없어서 볼 수가 없거든”

 

약간의 동정심 유발이랄까? 그는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그런 그의 말에 무어라도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소고는 대답하지 못 했다.

  

“근데 이거 보니까 너희 누나는 모두를 정말 좋아했었나 봐, 너야 당연하겠지만 곤도도, 히지카타도”

 

“...”

 

“히지카타는 역시 좀 특별했나? 뒷 부분엔 이 녀석 사진밖엔 없던데?”

 

긴토키는 일부러 말했다. 약간은 안타까운 얼굴과 살짝 웃는 얼굴로 나는 말야,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아. 그냥 다시 한번 인지해 라는 뜻으로 한 말이였다. 긴토키의 말에 소고는 뒷 부분까진 안봐서 몰라요 라고 작게 대답했다.

  

긴토키는 그의 마음을 확신해 사실 불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그리고 나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약간은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째서 상처를 주려고 해? 라고 다른 사람들은 반박해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닌 사람을 좋아하니까 내가 도와줘야지! 라는 바보같이 착해 빠진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세상은 넓으니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런 분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과 반대의 소유욕이 더 앞섰다. 어차피 그는 누나의 마음이 히지카타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그에게 다가가지 못할 거야. 그렇다면 내 옆에 있는 쪽이 훨씬 더 행복할 거야

그는 생각했다. 사실 히지카타가 아니라면 자신을 선택하게 할 자신도 있었다.

  

“한편으론 부럽네. 이거 히지카타도 봤어?”

 

긴토키의 말에 그는 멍하니 서선 망설이는 듯하더니 답했다.

  

“글쎄요.. 봤을...수 도 있고..”

 

그렇게 대충 얼버무렸다. 모르는 문제의 정답 해설집을 본 듯한 느낌이랄까. 긴토키는 한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잘 어울리던데, 안타깝네.. 결혼했을 수도 있잖아? 그럼 히지카타랑 너 진짜 가족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 기분은 좀 이상하긴 하겠다”

 

“..가족?”

 

“매형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던 거네”

 

긴토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소고는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히지카타가 널 아끼나 봐. 너흰 이미 가족 같은 사이잖아”

 

“가족은 무슨..”

 

“가족이지 뭐, 네가 맨날 대들고 으르렁대도 그 녀석은 다 받아주잖아 그 녀석도 너희 누나가 생각나서 더욱 널 아끼는 걸 거야”

 

소고는 긴토키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고 긴토키는 안타까움을 머금은 미소로 웃으며 말했다.

  

“그 녀석, 맘에 안 들긴 해도 좋은 녀석이잖아? 그건 너도 공감하는 부분이지?”

 

긴토키는 생각했다. 나는 틀린 말을 하고 있지 않아. 나쁜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그저 사실 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지. 역시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사디즘적인 성향이 있어. 니가 그 녀석 때문에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니 뭔가 약간의 희열이 느껴지는걸 보니.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아껴주기만 하고 위해 줄 수만은 없는 부분이거든?

  

너는 말야, 닮았어. 싸가지 없고 자존심 쎈 타카스기를. 그리고 다른 부분에선 나를.

그래서 난 니가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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