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가벼운 뽀뽀로 잠을 깨워줘야지. 자신만의 환상으로 약간은 부풀어 있던 긴토키는 그가 꿈꿔왔던 환상과는 반대로 그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형씨, 저 가요”

  

언제 일어났는지 이미 준비를 마친 그가 문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긴토키는 눈을 비비며 물었다.

  

“일찍이라뇨, 저 이미 지각이예요”

  

그는 태평하게 말했다.

  

“내가 깨워주려고 했는데”

  

“그랬다간 하루종일 잤을수도 있겠네요. 암튼 갈게요”

  

뒤돌아 가려는 그를 붙잡고 긴토키는 말했다.

  

“조심히, 가... 그리고 연락, 할게”

  

문득 지난밤의 일이 생각나서인지 약간은 그에게 말을 하면서도 망설임이 묻어 말이 약간씩 끊겼다. 그는 그런 긴토키에게 별일 없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문을 나섰다.

  

전의 상황이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서두르려는 척이라도 했겠지만 일종의 반항으로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음에도 그는 여유있게 둔영에 들어갔다. 회의는 이미 끝난지 꽤나 되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스케줄을 확인하러 가는 길에 야마자키를 만났고, 그런 그를 보고 야마자키는 새삼 흠칫 놀라했다.

  

“오키타 대장, 어제 어디 갔었어요? 그보다 요즘 왜 회의 안 오십니까?”

  

“...음.. 난 오늘 C구역인가? 넌 어디로가?”

  

그는 야마자키의 질문엔 대꾸하지 않았다.

  

“저는 F구역이요. 근데 대장, 부장님은 만나셨습니까? 어제 부장님께서 찾으시던데 가봐야 하는거 아니예요?”

  

“날 찾았다고?”

  

“어제 저녁에 대장을 찾아왔었다가 저랑 만났어요. 어디갔냐고 물으시는데 제가 알아요? 쭉 기다리시다가 새벽쯤 돌아가시는 것 같던데, 어제 어디 갔었어요?”

  

또 다시 전날의 비어있는 시간의 행방을 물어왔지만 대답하지 않은 채 야마자키를 뒤로 했다. 찾아가야 하나, 하고 망설이다가 소고는 가지 않았다. 전에 자신의 자존심이 그 녀석에게 밟혔다고 생각해 한번 당해보라는 식의 유치하면서도 통쾌한 복수였다. 하지만 호기심은 자꾸 스멀스멀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왜 찾아왔을까. 무슨 말을 하려고 왔을까. 왜 기다렸을까. 그냥 둔영으로 돌아올걸 그랬나..

  

  

  

  

 

 

 

  

  

히지카타는 미리 그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일이 많아 둔영에 남아있었기에 일을 마치곤 다시 그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전 날 결국 그를 만나지 못해 오늘은 기필코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새벽까지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돌아오지 않아 현재 그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들고 연락을 취하려고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결국은 하지 못했다. 연락을 취하려는 이유 중 약간은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리고 크게는 자꾸만 그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 그와 긴토키의 관계가 재생되어 안절부절 했었다. 결국 그는 늦은 새벽까지도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히지카타는 힘 없이 상상만을 잔뜩 가지곤 돌아갔었다.

  

아직도 그 녀석이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 이상으로 시간을 끄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고, 자존심 쎈 그가 먼저 이야기를 하러 와준 것에 대한 약간의 감동도 존재했다. 병신같이 준비를 하지 못한 자신을 약간은 책망하며 그의 방으로 향했다.

  

잠기지 않은 문을 힘없이 열었고, 그의 공간으로 들어가자 온 몸을 감싸오는 그 녀석의 향기에 취해 쓰러질 것 같았다. 분명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공간에 허락 없이 들어 왔다는 걸 알면 분명히 화를 낼 것 같았지만 이미 그를 사로잡은 그 향기에 잡혀 다시 나갈 수는 없었다. 청소도 해주었고, 깨우러 매일같이 드나들 땐 왜 이런 것을 몰랐었나 하는 생각에 지금의 자신이 놀라울 따름이였다. 전 날은 방에 들어가서 기다린 것은 아니었기에 몰랐지만 그 전날도 늦잠을 잤었는지 정리하지 않고 나간 침구가 눈에 띄었다. 그 광경을 보니 그가 아직도 우스운 안대를 쓰고 무방비로 유카타가 약간은 흘러내려 동그란 어깨와 선명한 쇄골을 드러낸 채로 쌕쌕 잠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곧 있으면 오겠다 싶어 시간을 확인하다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책장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책 같은 것엔 관심도 없으면서 도데체 무얼 꽂아 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책장 앞으로 다가가 책장을 쭈욱 훑었다. 예상대로 전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읽어보라고 준 책도 몇 권 있었고(물론 전혀 손 댄 흔적이 없는, 세월만 타서 깨끗하게 낡은 상태였다.), 그가 읽는 점프 만화잡지에서 주는 부록이라던가, 신센구미에서 읽어보라고 나누어 준 매뉴얼 같은 것이 거의 였다. 사람을 볼 때 어떤 사람인지를 보기 위해선 그 사람의 책장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책장에 꽂혀 있는 많은 보잘 것 없는 것 중에, 그래도 자신이 준 책을 가지런히 보관이라도 해줬다는 점이 기뻤다. 그리고 눈을 돌리려는 틈에 눈에 띄는 건 그 앞에 시계 따위로 반쯤 가려져 있는 낡은 양장으로 된 책이였다. 뭐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금박으로 써 있는 이름을 확인하곤 책으로 보이는 물건(책으로 보였지만 그것은 앨범이였다.)의 주인이 누구인지 직감했다. 조심스레 꺼내어 펼쳐 드는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추억이 담긴 한 장 한 장의 조각들이 그 녀석과 자신이 한참 으르렁대던 때를 담고 있어 이내 씁쓸함에 사로잡혔다.

  

맨날 싸우긴 했어도 우리는 단연 친한 사이라도 할 만한 사이였는데.

내가, 네가, 그리고 이 앨범의 주인인 그녀가, 우리의 관계를 망쳐버렸어.

  

그녀를 그와 자신의 방해물로 인식했지만 그 때의 그는 그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뒤에 나오는 그와 그 앨범의 주인인 그녀의 사진을 보니 첫 사랑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며 그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잠시 잊고 있었던 죄책감이 약간은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그리고 뒷장으로 넘길 때마다 그녀가 나를 많이 사랑했었구나 하고 느끼긴 했다. 그리고 동시에 유품을 정리할 때 그 녀석은 왜 자신에겐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소고는 별 생각 없었을 수도 있고, 꼭 보여 주어야 한다는 의무도 없다. 그렇기에 그런 의문은 아무런 의미는 없는 것이였다. 그러나, 히지카타는 집무실에서 그 녀석과의 격정적인 키스를 떠올리곤 제멋대로 그의 마음을 예측했다. 너도, 나, 좋아하는거 아냐? 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냐? 죄책감이 약간은 살아났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현재 그에게 그 죄책감은 신경도 쓰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도데체 나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야? 마음을 확인받고 싶은 거야?

한참 그녀가 남긴 앨범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곤 조금 놀라 멈칫 하는 그가 보였다. 동그랗게 뜬 눈이, 적갈색 눈동자가 여전히 매력적이였다.

 

  

“... 꺼져, 멋대로 들어와도 좋다고 한적 없어”

  

소고는 사실 그를 기다렸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리곤 곧 히지카타가 들고 있는 앨범을 발견하곤 다가가 거칠게 빼앗았다.

  

“함부로 이딴거 만질 자격 없어. 너. 꺼지라는 소리 안들려?”

  

그가 소리쳤다.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커지자 히지카타는 그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선 현재 옆방에 있는 야마자키를 불러선 잠시 나가있으라고 말했다. 야마자키는 그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져 잠시 눈치를 보다가 후다닥 방에서 뛰쳐나갔다. 야마자키가 멀리 나가는 것을 보곤 히지카타는 다시 그의 방으로 돌아와 말했다.

  

“... 얘기, 하러 왔어”

  

“지난번엔 병신처럼 말도 못하더니 오늘은 잘하네?”

  

소고는 여전히 그를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제 어디 갔었어? 왜 안왔어?”

  

“나랑 할 이야기는 그게 아니잖아. 내가 한 질문에 답만 주고가”

  

“....명령이야 대답해”

  

히지카타는 담담히 말했다. 긴토키와의 관계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었기에 꼴에 질투심이 터졌는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지난 밤의 행방이 궁금했다. 게다가 그는 명령이라는 말을 하면 그래도 말을 잘 들었으니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에 소고는 어이가 없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나 참, 부장님. 내가 한 질문에 답을 주시는 게 먼저입니다”

  

그는 비꼬듯 말했다.

  

“해결사랑 있었어?”

  

“...”

  

대답할 의지가 없다는 확고한 그의 얼굴을 보고, 히지카타는 졌다는 듯 말했다.

  

“그래, 무슨 말이 듣고 싶은거야?”

  

“...뭐?”

  

“너 키스, 나와 함께 했잖아.. 나 혼자 억지로 한거 아니잖아..”

  

“.....”

  

소고는 그의 말에 뭐라고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그래.. 때린건 미얀해.. 근데 그 정도로 맞아서 니가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랐어. 난 지금 이해가 안돼 소고”

  

미친.......놈...

  

  

“나는 지금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나 니가 너무나 가지고 싶어. 나 너를 좋아...”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 따위 소리가 아니란 말이야!!”

  

소고는 그의 뒷 말을 서둘러 잘랐다.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자신 역시 그에게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뒷 말이 두려웠다. 그에게서 빼앗은 앨범을 들고 있어서인지, 그녀가 옆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옆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특유의 선한 미소로 그에게 다가가 그 무엇보다 따뜻하게 속삭였다. 자신과 다르게 악의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순수하며 선했다. 소고, 나는 토시로씨를 아직도 사랑해. 그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심치 않아. 그런데, 지금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니?

  

“... 그럼?”

  

히지카타는 그에게 물었다.

  

“... 아...”

  

나에게 한 짓에 대해 납득시켜봐. 싫다고 하는 나를 왜 억지로 탐하려 했는지 나를 납득시켜봐. 라고 말하려다 자꾸만 그의 누나가 옆에 있는 기분이 들어 말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미안해, 잘못했어 이러면서 싹싹 빌기라도 해야지. 이 정신병자 새끼야. 내가 너한테 단순히 맞아서 화가 났다고? 내가 그럴 리가 있어? 그리고.. 니가 방금 하려던 말.. 그런말 다시는 꺼내지마, 그런 말을 네 녀석이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꺼낸다면, 그건.. 그건 우리 누나 뿐이야.”

  

소고가 언성을 높혀 말했다. 그래.. 우리 누나 뿐이잖아.

  

“하.. 정말....또.. 또 그 말이야? 제발 그 이야기 좀 그만 하면 안돼?”

  

히지카타는 지겹다는 듯, 듣기 싫다는 듯이 말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거야? 소고는 그의 말을 듣자 참을 수가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의 멱살을 거칠게 잡았다.

  

“다시 한번 말해봐 이 새끼야. 뭐라고 했어?”

  

“...”

  

히지카타는 잠시 맞추었던 그의 눈을 피했다.

  

“평생 기다려온 사람의 행복까지 빼앗아 놓고, 너는 행복하길 바래? 너에게 선택할 권리 같은게 있을 것 같아?”

  

“...”

  

“없어, 아니 내가 없앨거야. 다른 여자를 만나면 그 년 없앤 것처럼 죽일거야. 그냥 넌 평생 이렇게 내 옆있어”

  

“.....”

  

“평생 내가 옆에 있으라면 있겠다고 했었잖아? 평생 내 옆에 있어. 아. 그렇다고 내가 함께 있어주겠다는 말은 아냐, 너 혼자, 혼자 내 옆에 있는거야”

  

그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울컥 목이 약간 메어오는 것과 눈에 살짝 액체가 고이려는 것을 느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멱살을 쥐었던 손이 중점을 잃고 느슨해졌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역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한 히지카타는 그대로 그를 껴안았다. 그를 가득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벅차 이 녀석이 한 말이 무슨 내용 이였는지 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놔! 씨발 이 새끼야 그가 힘껏 저항해왔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그를 고정시켰다. 빠져나가려 몸부림 치는 그와 그런 그를 몇 차례 잡아채기를 여러 번, 그가 지쳤는지 잠잠해졌다. 히지카타는 그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뜨거워 입술이 닿은 자리가 데일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가 입술에 입을 맞추려 할 때 그의 눈에 다시 나타나는 그녀의 형상이 눈앞에 아른거려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가오는 그를 보고 말했다.

  

“... 하지마. 이 이상하면 곤도씨에게 다 말할거야”

  

그 답지 않은 말이였다. 자신이 직접 해결을 보는 것도 아니고, 고자질 형식으로 다른 이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이상했다. 소고는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히지카타가 아까 자신과 이야기 하기전에 야마자키를 내보내는 것을 보고 그는 그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파악했다. 야마자키를 내보낸 것은 그가 자신과의 있었던 일이 둘 이외의 사람에게 알려지는 점을 두려워 한다는 것(사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쨌든 타격을 입는 것은 더 높은 자리에 있고, 쌓아온 이미지나 보여진 행동이 누구보다 반듯했던 히지카타에게 타격이 클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뭘?”

  

“니가 나한테 한 짓, 다 말할거야. 더 과장해서 노골적으로 이야기 할 거야. <권력으로 나를 제압하고, 힘으로 나를 압박하고는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나를 불러서 강간하려고 했어요.> 어때? 부장님 맘에 들어요?”

  

그는 소고가 예상한데로 그 말에 큰 동요를 보였다. 히지카타는 소고의 그 어떤 말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지만 이 말은 그의 모든 행동과 본능을 멈출 정도로 무서웠다. 그의 말에 앞으로 자신의 행보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대원들의 경악스러운 표정과 수군거리는 소리, ‘아니 어떻게.. 남자를.. 그것도 거의 가족처럼 지내던 친한.. 오키타 대장을..?’ 분명 그 중엔 말도 안 된다고 믿지 않는 무리도 생길 것이다. 그 중의 한명은 곤도씨 겠지. 이토가 모함하려 했을때도 자신의 편에 서주려 애쓰던 곤도 였으니까. 하지만 이토와 다르게 지금의 상대는 이 녀석이고, 그의 그런 말에 아무 말 못하는 자신을 보면 곤도는 무어라고 말을 할까...

  

“..아..”

  

그가 그를 가두었던 손을 풀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무섭죠? 내가 입 여는 순간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요”

  

아.. 히지카타.... 소고는 잠시 텀을 두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그러면.... 누나가.. 슬퍼할 것 같아요”

  

나도 약간은..

  

“그니까, 평생 내 옆에 가만히 있어. 내 입단속 해야 될 거 아냐?”

  

히지카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 어제 어디 갔었냐고 물어봤었죠? 맞아요. 형씨랑 있었어요. 나랑 형씨 꽤나 친하잖아”

  

“...”

  

“아.. 심심한데 곤도씨랑 게임이나 하러 가야겠다. 히지카타씨는 안 올거죠?”

  

경멸했던 그가 자신의 말에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희미하게나마 희열을 느끼면서도 슬펐다. 그 순간 그가 작아보여서인지 이 이상 그가 자신에게 했던 짓에 대한 화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가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려 했던 일이 조금은 기뻐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대로 뒤돌아 방을 나섰다. 사실 곤도에게 간다는 것은 그냥 한 말이였다. 그리고 몇 걸음 옮기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투명한 액체가 힘없이 후두둑 쏟아졌다. 미츠바가 죽었을 때 이후로 그렇게 눈물이 주체되지 않고 울어본 적은 처음이였다. 히지카타가 혹시나 나와도 자신을 볼 수 없을 정도의 거리에서야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으면서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넋이 나간듯이 앉아 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무엇이 그렇게 슬픈지 자꾸만 흐르는 눈물이 원망스러웠다. 이것으로 히지카타에게 더 더욱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다. 그 녀석이 했던 말과, 자신의 협박으로.

  

자꾸 그가 하려던 <좋아해>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을 보니, 그가 자신에게 했던 짓과는 별개로 사실은 그의 마음을 받고 싶었나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납득시켜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도 그를 납득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이다. 히지카타도 누나를 거절 했을 때 이렇게 계속 생각났을까? 다시 붙잡고 싶었을까? 이렇게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니까 우리 누나를 계속 사랑해줘.. 라는 마음이 같이 들었다. 같은 마음을 품고 있지만 그를 거절해야 하는 괴로움이 이렇게 아픈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에 대한 실망감과 원망,절망, 그리고 그를 향한 애틋함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마음속의 그가 너무 아팠다.


잘했어, 니가 한 행동이 옳았어,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자꾸만 모든걸 잊은 채 히지카타에게 달려가고 싶기도 하고, 다시 떠올려도 열 받는 그 새끼의 행동이 생각나기도 하고 복잡했다.

  

누나. 나 잘한거.. 맞죠?

  

  

  

  

  

 

  

다음날 소고는 아무렇지 않게 당당히 회의에 참석했다. 사실 아직도 얼굴을 당당히 볼 자신은 없었지만, 히지카타에게 나는 멀쩡하며, 네 녀석 따위를 티끌만큼도 신경쓰고 있지 않아.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 새끼 때문에 자신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도 이내 자존심 상했기 때문이다. 히지카타는 소고를 보고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그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소고는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회의를 덤덤히 진행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하고 있었지만 철저히 그의 쪽을 쳐다보지 않고 있다는 걸 그는 알았다. 의식하고 있구나. 하고 속으로 통쾌하기도 했다.

  

나한테 쫄았구나 새끼. 얼마나 무서우면 내 성격조차 잊어버리냐 너. 내가 그런 말을 곤도씨한테 정말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는 거야? 제대로 나에 대해서 생각도 못할 정도로 너는 그걸 잃는 것이 무서운거야. 소중하게 쌓아왔던 네 직위를 잃어버리는 것이.

  

소고는 그가 어이없게도 측은해졌다.

  

  

  

  

  

소고는 미리 얘기하지 않고 긴토키의 사무실에 찾아갔다. 갑작스레 찾아온 그를 보고 긴토키는 미리 언지라도 좀 주고 오지 왜 이렇게 찾아왔냐며 투덜대며 신파치가 없어서인지 잔뜩 늘어진 잡동사니들을 서랍이나 옷장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그 날은 둔영에 있으면 마음이 더 복잡해 질 것 같아서 찾아갔다. 그가 히지카타에게 화가 났고, 하지만 조금은 풀렸고, 약간 측은한 감정을 가진 것도 사실이고,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해줘서 기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저 이미 알고 있는 그런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싶었다. 뭐 마실래? 하고 물으며 앉으라고 말하는 긴토키를 보고 그는 그에게 다가가 먼저 말 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그런 의외의 행동에 긴토키는 왜 이러냐 오늘? 갑자기 이러니까 수상하고 무서워 라고 말하면서 그의 연갈색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냥..”

  

“이럴땐 ‘그냥’이 아니고 너무 좋아서요~ 이런 대답이 좋아”

  

“...너무 좋아서요”

  

“...어디 아퍼? 진짜로? 무슨 일 있어?”

  

긴토키가 그의 이마를 짚으며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라고 중얼거렸다.

  

“없어요 그런거. 그냥..”

  

“...”

  

“그냥.. 그냥 오늘은..”

  

뒷말은 그냥 흘려 넘겼다.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긴토키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 쯤은 알았다. 그리고 그럼에도 자신을 찾아와 줬다는 것에 안심했다. 소고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형씨가 날 떠나면.. 난 정말 슬플 것 같아요”

  

날 떠나면 더 이상 날 잡아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럼 정말로 히지카타에게 달려가고 싶을지도 몰라.

  

“너 정말 오늘 이상하다? 난 안 떠나. 사실 말하면 니가 걱정이야 나는.”

  

긴토키는 그의 말에 약간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뭘”

  

“... 아냐. 내가 잘못 말했어”

  

긴토키는 웃어보였다. 히지카타를 떠올렸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을 생각하곤 입을 다물었다. 긴토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눈 앞에 그를 놓치면 그 다음의 사랑을 기다리는 것도, 제대로 사랑할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막연한 느낌.

다시 누군가를 기다리기까지의 참을 수 없는 허무함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음과 자신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 이루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집착 혹은 갈망이였다.

  

소고가 자신에게 ‘떠난다면 슬플 것 같아요’ 라고 말해줘서 계속 가지고 있었던 불안함이 약간은 홀가분했다. 얼마 전까지 진실로 그를 죽여서라도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그를 옆에 두고 싶었기에 그의 이런 태도가 다행이었다. 나를 사랑해줘, 나를 사랑해줘... 그리고 눈앞의 그에게 말했다.

  

“오키타, 시작한 이상 우린 인연이고 연인이야. 절대 헤어지지 않을거야 우리”

  

  

그리고 긴토키는 자신의 안에 숨어 있는 본성을 그와 있을 땐 죽어도, 조금도 나타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키타, 너의 앞에선 완벽하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 항상 너를 좋은 모습으로 혹은 바보 같은 모습으로 좋아하기만 하는 그런 긴토키로 있어줄게.

너는 이런 나를 사랑해줘.

  

  

  

  

  

  

 

  

  

  

몇일 후, 생각을 마친 소고는 히지카타를 찾아갔다. 히지카타는 여전히 그를 약간은 두려워 하는 듯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히지카타, 너무 티내지마. 곤도씨가 먼저 눈치라도 채면 어쩌려고? 아, 아니다. 그럴일은 없겠네. 상상도 못하겠지.”

  

“....”

  

히지카타는 대답하지 못했다.

  

“평소처럼 하죠 우리. 전처럼. 할 수 있죠?”

  

“..전..?”

  

“응. 나는 여전히 당신을 싫어하는 1번대 대장이고, 당신은 신센구미의 부장이고 곤도씨의 보좌이자, 항상 나에게 자리를 위협받는 부장이예요. 나는 전처럼 당신을 죽이려 할 것이고, 당신은 그런 나에게 적당히 하라고 화내지만, 그렇다고 고된 벌은 주지 않는 상사. 그리고 곤도씨 앞에선 웃으면서 장난도 치는 사이. 아, 전처럼 날 아침마다 깨우러 와. 그러는 편이 자연스럽잖아”

  

“...”

  

“할 수 있죠?”

  

“...”

  

“아, 아니지. 히지카타 당신에게 선택권은 없어. 내 말대로 해”

  

“...”

  

히지카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고, 소고는 그런 그가 슬펐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모질게 말했다.

  

“...곤도씨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면 내 말대로 해”

  

그는 그 말을 남기곤 걸음을 옮겼다.

  

  

 

 

  

  

  

  

“어이 소고,지금 도데체 몇시야? 일어나”

  

“엄마... 오늘은 일요일인데...”

  

“일요일 아니고 오늘 화요일이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

  

안대를 거칠게 벗고는 눈을 비벼댔다. 지나가는 야마자키는 오키타 대장! 또 늦잠입니까? 하고 놀리듯 말하곤 지나갔다. 항상 모든 준비를 마치곤 그를 깨우러 오는 히지카타. 그리고 그런 그에게 항상 투정을 부리는 소고. 남들이 봤을 때는 딱히 문제 없는 신센구미의 평화로운 아침이였다.

  

여전히 그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런 그에게 히지카타는 어느 때처럼 화를 냈다. 그리고 어느 날처럼 곤도가 불러 같이 이야기라도 하자고 불러내면 같이 가선 곤도 앞에서 어느 때와 같이 으르렁대며 행동했다. 곤도는 그런 둘에게 여전히 사이가 좋구나? 라고 말했고, 소고는 좋다뇨? 곧 제 손에 죽을 텐데. 라고 어느 때와 같은 대답을 했다. 남들이 보기엔 전혀 문제 없는 사이였다. 소고와 긴토키는 자연스레 일을 부탁하는 친한 사이로 비춰졌고, 남들 앞에서 둘은 그런 사이로 보이게 행동했다.

  

 

히지카타의 비도덕적인 면은 아직도 남아있어 가끔 그와 단 둘이 순찰을 간다거나, 아무도 없는 공간에 둘이 있다거나 할 때 아직도 꿈틀 거려 조심스레 그의 어깨나 팔을 한 번씩 슬쩍 잡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잡은 곳을 신경 쓰인다는 듯, 불쾌하다는 듯 쳐다보는 그의 싸늘한 시선을 볼 때 마다 그의 협박이 떠올라 그 이상 그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소고는 히지카타가 자신에게 한 짓을 죽어도 말 할 의향이 없고, 앞으로도 없다. 하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와 자신의 역할을 알기에 그를 때로는 갈망하면서도 그 감정이 애정과 증오의 형태가 뒤섞인 모습으로 바뀌어 그를 괴롭히면서, 자신도 그를 원하지만 그럴수록 그런 그의 마음을 강하게 부정하며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듯 모질게 협박했다.

  

긴토키는 이 둘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하기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만족하고 있다. 단지 둘이 순찰을 한다거나 해서 둘이 있는 일이 있을 때는 소고가 그에게 감정을 가졌던 적이 있기에 질투 했지만, 히지카타가 그와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에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다툼 정도가 있었다. 다행히도 소고가 그를 떠날 마음은 없었기에 긴토키의 의도대로 그의 숨겨진 본성은 나타날 일은 없었다. 그가 떠나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정말로 다행이였다.


  

  

히자카타는 양보할 수 없는 그의 쌓아온 사회적 위치와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소고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제 누이가 향했던 사랑의 대상이,

긴토키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집착이 같은 선상에 존재했다.

  

 

그리고 그 날도 제 3자의 눈에 비췬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때와 같은 하루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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