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일을 쉬는날을 어느샌가부터 싫어하게 되었다. 가서 일을 해야 그 녀석에게 자연스럽게 찾아가서 장난이라도 치고 말이라도 걸 텐데. 단 맛을 좋아하는 긴토키는 돈이 있을 때 마다 찾아가는 케익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엔 얼마전부터 일하게 된 유우가 있었고, 그녀는 긴토키를 보면 항상 웃으며 대하고 산 케익보다 한 개씩 더 넣어주거나, 서비스로 줄 수 있는 것들을 자주 챙겨주기도 했다. 그 날도 그 쯔음을 지나다 보이는 폭신폭신한 케익과 잔뜩 부풀려 올려진 생크림을 보고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 가게로 들어갔다. 진열되어 있는 케익을 구경하고 있을 때 유우가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긴상! 또 오셨네요?”


 

그날따라 너무 기분이 좋아보여 수상쩍을 정도인지라 긴토키는 그녀에게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기분이 좋아보이냐며 복권 당첨이라도 됐냐며 농담섞인 어조로 말했다.

 

“하하 그것보다 더 좋은일인데요?”


 

“그런것보다 더 좋은일이 있다고? 그런게 어딨어?”

 

긴토키는 투덜투덜 거리며 케익 진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곤 그녀에게 케익이 왜 이렇게 비싸냐며 괜한 투정을 부렸다. 그녀가 웃으며 긴토키에게 말했다.


 

“오늘은 제가 사드릴게요. 저 긴상한테 감사할 것도 있어요”


 

“감사?”


 

긴토키는 그녀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곧바로 가장 좋아하는 딸기 크림케익을 여러조각 달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그녀는 자르기 전의 원상태의 케익 한판을 통째로 포장해 주었다. 그리곤 긴토키에게 말했다.

 

“네 저 부장님하고 사귀기로 했어요”

 

부장? 부장이 누구냐? 긴토키는 순간 무슨 소리인가.. 하고 한참 생각했다.

 

“왜 그러세요~ 히지카타 부장님이요”

 

“아아.. 히지카타.. 응? 히지카타? 그 녀석이랑 사귄다고?”

 

긴토키는 생각도 못한 그녀의 말에 놀라 몇 번 더 확인했다. 그녀는 환히 웃으며 그렇게 됐다며 수줍게 웃었다.

 

“와 이거 생각도 못했다야, 축하해 잘 어울리네”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 그리곤 고마우면 케익 몇 조각 더 얹어 달라며 졸랐다. 그리곤 소고가 좋아할 것 같은 별로 달지 않은 케익을 몇 개 더 골랐다. 벌써 알고 있으려나? 케익을 한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소고에게 전화를 걸었다. 케익을 너무 많이 사서 그러는데 혹시 같이 먹지 않겠냐며 익살스럽게 말했고 사실 거절할거라 생각해 그 다음을 뭐라고 더 말을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찰나, 예상과 다르게 그는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 먹음직스러운 케익들을 꺼내 놓곤 식탁에 앉아 그를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괜한 발걸음 소리만 들리면 혹시 벌써 왔나? 하고 기대하기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을 계속 확인하며 손끝으로 식탁위를 톡톡 쳤다. 체감보다 훨씬 긴 대략 20분 정도를 보내고 나서야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복을 입고 있는걸 보니 일을 하다가 땡땡이나 칠 겸으로 온 모양이였다.


 

“왔어? 케익을 너무 많이 사버려서 같이 먹자”


 

 “참나, 많이 사버렸어 같이 먹자 라니 형씨답지 않은데요? 많이 샀으면 놔두고 혼자서 먹어야지 라고 생각할 사람인데?”


 

“그래, 같이 먹자고 하려고 많이 샀다, 됐냐”

 

그의 말에 긴토키는 입을 쭉 내밀고 말했다. 뭐 사실 산 것도 아니였지만

소고는 그런 긴토키를 보곤 웃기다는 듯 살짝 웃고는 포크를 들었다. 그가 평소보다 예민하게 군다거나 신경질적이지도 않았고 그 날은 생각보다 긴토키에게 전보다 조금은 호의적인 태도로 대해주어 긴토키는 조금 의아했다. 일단 히지카타와 유우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못들은 듯 했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감정적인 이 녀석은 애초에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열 받을 때 나오는 지랄맞은 성격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 사실을 알아서 그대로 포기한다거나 혹은 그대로 정이 떨어져, 자신을 봐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가 소고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였다. 괴로움이 극에 치달아 지칠대로 지치고 앓다 보면 히지카타의 존재 자체가 괴로운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더 정확히 봐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케익을 한 입 한 입 먹으며 긴토키는 다른 때와 다를 거 없는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구라에게 편지가 왔는데 다 먹는 이야기밖에 없다는 둥, 신파치는 맨날 와서 하는 이야기가 오타에가 곤도에게 아직도 스토킹을 당해서 정말 화가 난다고 하더라 가서 니가 좀 말려봐. 긴토키가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자 소고는 그냥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고 그냥 알겠다는 듯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에게 별 관심없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그는 크게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눈치를 살피다 말을 꺼냈다.


 

“너 그거 알아? 히지카타랑 유우씨랑 사귄다던데?”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긴토키는 순간 바짝 긴장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약간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의 눈치를 슬슬 살폈지만 오히려 그는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를 터트렸다.


 

“전에도 그러더니, 형씨는 그런 소문을 믿습니까?”

 

소고는 그녀와 히지카타는 전부터 그런 이야기도 많았고, 대원들도 종종 놀려대곤 했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소고의 반응에 긴토키는 다시 호들갑을 떨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냐! 이번엔 진짜야! 유우씨가 진짜 그랬다고!”


 

믿어달라는 과장된 몸짓으로 말했지만, 소고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에 대한 의심이 티끌만큼도 없어 보였다. 그리곤 헛소리 말라는 듯 예예, 그런가보죠. 그나저나 뭐 마실거 없어요? 하고 관심 없다는 듯이 화제를 바꿨다. 지금은 모르는게 다행.. 인건가? 긴토키는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어 그에게 따라주었다. 어차피 알게 될건데


 

 


 

 


 

 


 

 

 


 

 


 

 

소고는 히지카타가 다른 여자랑 연애 따위의 것을 할까봐 두려워 하면서도 내심 굳게 믿고 있었다. 일단 그는 가장 사랑했던 누나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이기에 받을 수 없다 며 거절했고, 그는 항상 여자에 관심없는 인상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눈앞에서 다른 여자가 들이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시퍼렇게 눈을 뜨고 쳐다본 것도 맞지만, 항상 혹시나 하는 것은 역시나로 바뀌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그의 행동이 항상 좋았다.


 

다음날 그는 뭔가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느낌에 히지카타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응? 그의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청소를 열심히 했다 라기엔 너무나도 말끔히 비워져 있는 냉기 도는 텅 빈 그의 방이 뭔가 싶어 한참 그의 방 문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장 여기서 뭐해요?”


 

야마자키가 커다란 짐을 들고 잠시 비켜달라며 텅 빈 히지카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그 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앞으로 제가 여기 방 쓰게 됐어요. 아 귀찮게 방을 왜 바꾸자고 하시는지.. 야마자키는 투덜투덜 거렸다. 야마자키의 말에 그는 잠시 이해하지 못해 다시 붙잡고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부장님께서 방 바꾸자고 하시던데요?"

 

“갑자기 왜?”

 

그가 야마자키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그때 마침 뒤에서 걸어오던 곤도가 그 둘의 대화를 듣곤 갑자기 껴들어 소고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너랑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으면 연애를 못하잖냐 이 녀석아”

 

“아 역시! 그런거 맞죠!”

 

야마자키는 뭔가 알았다는 듯이 곤도의 말에 즐겁게 맞장구 쳤고, 곤도는 소고의 머리칼을 마구 헝클었다. 연애? 그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그 둘에게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아 대장 모르셨습니까? 부장님 유우씨랑 연애한다는데요?”


 

“뭐야 그 얘기야? 말이 돼?”


 

그때도 그는 믿지 않았다. 곤도야 항상 스캔들을 만들어 놀릴 궁리를 하는 사람이고, 야마자키도 그런 가벼운 스캔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였기 때문에 그는 곤도와 야마자키 앞에서 소리내어 웃었다. 그들의 시덥잖은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둔영에 소문의 중심이였던 그녀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를 본 곤도와 야마자키는 웃으며 히지카타를 보러 왔냐며 정답게 말을 건냈다. 그런 둘의 모습에 그는 놀란 표정으로 곤도와 야마자키를 한번 보고는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난번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그녀와의 만남이였다. 지난번에 그녀를 위협한 일이 있었기에 이번에 그는 감정적으로 행동하진 않았다. 눈이 마주친 그녀는 전에 그에게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전처럼 두려워한다거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 꼬리를 살짝 휘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소고를 포함한 셋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곤 여유있게 걸어가는 그녀를 보곤 그는 그녀에게서 패배감 비스무리한 것을 느끼면서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도 에이 설마, 아니야, 아니야, 하고 세차게 부정했다. 곤도는 소고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리와- 오랜만에 둘이 게임이나 하자 라고 정답게 말하며 그를 잡아 끌었고, 그는 그녀가 간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킨채 곤도에게 천천히 끌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곤도가 또 다시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이거봐 이거봐- 또 이러잖아! 하며 크게 웃었다. 그 말에 소고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곤도에게 그런거 아니라며 곤도를 잡아 끌었다.


 

 

 


 

 


 

 


 

 

야마자키의 방은 그의 방과 꽤 거리가 있었다. 옆방의 주인이 바뀐 것을 착각하고 히지카타- 하고 부르며 문을 벌컥 열었다가 놀란 야마자키가 몰래 보고 있던 만화책 등을 후다닥 숨기는 것을 보고 아, 바꿨댔지, 하곤 전 야마자키의 방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해 반쯤 열어둔 문 틈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느즈막한 저녁이지만 일을 하고 있는 히지카타가 시선과 기척을 느꼈는지 그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약간 머쓱해 하며 소고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왜 바꿨어?”


 

“.. 멋대로 들어오지마”

 

히지카타는 그를 한번 보곤 다시 일에 집중했다. 갑자기 확 냉랭해진 그를 보곤 소고는 물었다.

 

“야”

 

“뭐”


 

“그 여자, 오늘 왜 온거야? 너 만나러 온거야? 설마?”


 

“응”


 

“징그럽다 진짜, 아직도 스토커질이야? 니가 그렇게 자꾸 아무말도 안하니...”


 

“사귀고 있어”


 

그의 단호한 대답에 소고는 놀랐지만 이내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그 여자랑 정말 사귀는 거야?”


 

그의 질문에 히지카타는 그제야 일하던 손을 멈추곤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대답했다.


 

“응”


 

“....”


 

이런 대답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였다. 소고의 예상대로라면 분명히 관심없어,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이 정도였다. 이런 류의 대답이 아닌 다른 대답을 하는 히지카타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정확한 대답을 들어버렸다.


 

“그거 물어보러 온거야? 끝났으면 돌아가 바빠”


 

“...히지카타, 난 그 년 싫어”


 

“어쩌라고”


 

이번엔 변수가 많았다. 자신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면 분명 히지카타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백보 양보해서 왜? 라던가, 자신을 설득하고 달래는 말투로 (물론 그랬어도 할 수 있는 지랄은 다했겠지만) 알고 있어, 근데.. 라던가 이런식의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는 것인데, 이번에 그가 한 대답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대답이였다. 어쩌라고? 이 새끼가 말 다했나


 

“만나지마”


 

“니가 만나지 말라고 하면 만나지 말아야 되는건가?”


 

냉랭히 말하자 소고는 그의 말에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할 말 끝났으면 나가”


 

“야... 야 이자식아 너 진짜로 그 여자 좋아해?”


 

아.. 이 말은 그가 정말로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이였다. 변수가 많은 이번의 사건에서 생각할 틈도 없이 튀어나온 말이였지만 이 말을 내뱉고 그는 곧 그 이후에 들릴 이 녀석의 대답이 무서웠다.


 

“응”


 

거의 대답을 듣고 그는 한동안 충격에 멍했다.


 

“.. 거짓말”


 

“진짜야, 할 말 다 했으면 나가라고 하잖아 안들려?”


 

사귈수야 있지.. 분명히 뭔가 사정이 있을 거야 라고 생각했고 설마 그녀가 좋아서, 이 새끼가 그 여자를 좋아해서 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그의 말에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잊을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후에 자신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린 말이 자신도 놀랐다.


 

 

 

“...내.. 내옆에 이.. 있어주면.. 아..안돼?”


 

 

“...개소리 그만하고 꺼져”


 

 

잠시의 텀을 두고 히지카타는 덤덤히 말했다. 빨리 나가! 히지카타는 멍 하니 서있는 그에게 소리쳤다.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기 보다는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 수 없을 정도로 멍했다. 동시에 갑자기 으슬으슬한 것이 무엇이 무서운지 모르겠지만 무섭고 갑자기 뛰었다거나 운동을 한것도 아닌데, 아픈것도 아닌데 호흡이 가쁘고 식은땀이 흘렀다.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그의 방에서 나왔다. 휘청거리며 벽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여 가면서도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저러다가도 다시 뛰어와서는 장난이야 이번은 좀 심했지? 미얀, 그런거 아냐 라고 말해줄 것만 같았다. 그 날의 날씨는 그의 기분을 대변해주듯이 비가 쏟아져 내렸다. 굵은 빗방울이 땅에 후두둑 떨어지며 금세 투명하게 빛을 발하며 사방으로 튀었다. 낮에 마주쳤던 살짝 눈웃음 치던 그녀의 눈초리, 그리고 그의 냉랭해진 태도가 무엇보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맛보고 싶지 않은 패배감에 젖게 만들었다.


 

 

그는 비를 맞는 것은 끔찍이 싫어했지만 그날은 비를 맞아보고 싶은 날이였다. 그는 그대로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둔영을 나갔다. 뒤에서 경비대원들이 비옷이나 우산 가져가라며 소리쳤지만 세차게 몰아치는 빗소리와 머릿속이 복잡한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얼굴에 차갑게 부딪쳐 오는 빗물이 따가우면서도 적셔가는 빗줄기가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쓰지 않고, 그렇다고 허둥대지도 않은 채 돌아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보니 어느새 많던 사람도 다 사라지고 얼마 없었다. 아마 시간도 시간이라 모두 집에 들어갔겠지. 마냥 빗물이 튀기는 바닥을 쳐다보며 걷다 보니 누군가와 부딪혔다. 그 사람은 우산을 쓰고 있었는지 그도 잠시 비를 피한 셈이 되었다. 시비를 걸어온다면 이번엔 그냥 죽여버려야지. 라고 감정적인 생각을 하곤 고개를 들었을 때 눈 앞에 있는건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긴토키였다.


 

 

“감기 걸려.”


 

 

“.....”


 

긴토키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그가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럴 때 자신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을 그제서야, 그 녀석의 비참한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이거, 쓰고가”

 

긴토키는 우산 손잡이를 비를 맞아 다소 차가운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소고는 잠시 우산을 받아 들더니 이내 우산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렸다. 빗물과 함께 뒹구는 우산을 보고 긴토키는 그를 잠시 보곤 다시 우산을 주웠다.


 

“그냥.... 그냥 가요 오늘은 더 이상 말 걸지 말고”


 

“어떻게 그냥 가. 쓰고가”


 

그는 다시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냥 가라는 소리 안들려?! 이딴거 필요 없다잖아!”


 

 

그는 이번엔 다소 과격하게 우산을 던졌고 그 우산은 다시금 빗바닥에 뒹굴었다. 긴토키는 이번엔 우산을 주워들으러 가지 않았다. 빗물에 가려서 확실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그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씨가.. 형씨가 아니란 말이예요.. 비오는날 내 비를 막아주는건 저딴 우산이 아니란 말이예요.. 그 녀석이 씌워주는 비옷이란 말이예요...”


 

 


 

대충 당연히 그러겠지, 이렇게 했겠지 라는 확신을 혼자만의 생각으로 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확실하게 확인 받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이미 예상했고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새삼 놀라고 괜스레 자신이 맞추었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기도 한 감정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감정을 그의 입으로 간접적으로 확인을 해서 인지 아니면 절대로 눈물 같은걸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그가 울고 있었기 때문인지, 긴토키는 그가 그 녀석 때문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긴토키가 그에게 한 발짝 다가오자 그가 말을 이었다.


 

“.... 지금.. 내가 가장 원망하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알아요?”


 

“....”


 

“....형씨예요 형씨, 애초에 왜 그 여자를 우리 쪽에 데리고 왔어요? 왜... 왜 그 녀석하고 그 여자를 만나게 했어요? 왜... 왜 그여자를 데리고와서 나를 근신까지 받게 만들었어요? 왜... 왜..! 그래서.. 그래서...”


 

그는 목이 메였는지 뒷말을 하려다 잠깐 멈추고는 다시 말했다.


 

“왜 이런 .. 아 씨발... 왜 이런 개같은 상황까지 만들어요 왜! .... 왜애...”


 

“....”


 

“왜 내가 알고 싶지도 않은 내 감정까지 알게 만들어요 왜... 왜...”


 

진심으로 긴토키를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이기적인 그는 그저 그 순간은 누군가를 탓해야 했고, 마침 그 상대로써 가장 좋은 긴토키가 있었던 것 뿐이다. 이미 소용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화를 식히려 했다.


 

긴토키는 그의 말을 듣고 그가 근신을 받은 이유가 그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같이 생활 했을 때 그는 근신의 이유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알았다.


 

 

“나를...원망하는거야?”


 

 

 

그러게, 그렇게 치면 나는 왜 그 날 새벽에 괜히 나갔다가 널 만나서, 이 고생이냐. 더 앞서서 나는 왜 그녀의 의뢰를 수락했을까. 무슨 말을 했어도 딱 잘라서 안 된다고 할 걸. 왜 너한테 같이 지내자고 말했을까? 왜 그때 카구라는 여행을 가서 없었으며, 신파치 한테 휴가는 왜 줬을까?


 

 


 

 


 

 


 

 

히지카타는 그가 다녀갔던 본인의 방을 한번 둘러 보았다. 그와 떨어지려 방을 옮긴 것이였다. 옮기는 것이 귀찮았는지 야마자키는 자꾸 이유를 물었지만 그냥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짤막한 대답과 함께 강제로 방을 옮기게 했다. 옆방에 벽 하나, 그리고 나가면 몇 걸음만 지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그가 있다는 것이 그는 무서웠다. 그런데, 왜 나를 찾아와. 사실 그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도 그의 충격 받은 표정을 보고 그를 쫓아가 잡을 뻔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있어 달라는 말의 의미는 그냥 제 누이와의 관계를 생각한 배신감에 평생 그걸 지고 가라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남이 몰래 숨겨놓은 땅콩을 훔쳐먹는 것과 같아서 용기내어 하나 집어먹은 순간, 그 전에 두려워 했던 감정이 점점 사라지고 그 일이 쉬워지는 것이다. 처음은 어렵지만 두 번째는 처음보다, 세 번째는 두 번째보다 쉽다는걸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한번만, 오늘 하루만, 하고 자꾸 그 녀석에게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핸드폰이 울리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확인해보니 아까 그 녀석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던 불쌍한 그녀가 애교있게 온갖 이모티콘과 함께 무어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별 시덥잖은 내용이였기에 그는 귀찮은 듯 핸드폰을 던져 놓고 그 날 따라 유난히 몰아치는 빗 소리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그를 떠올리고 있었다.


 

 


 

 

 

 


 

 


 

 

긴토키는 소고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비를 얼마나 맞았는지 그대로 자신을 지나쳐 가려는 그의 팔목을 가볍게 재지하자 그는 살짝 휘청였다. 잡고 있는 팔목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끼곤 긴토키는 그에게 자신의 집에 가자고 잡아 끌었다. 그는 싫다고 했지만 긴토키는 막무가내로 그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건을 두어개 꺼내어 하나는 그에게 받으라는 듯 가볍게 던졌고, 하나론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걸 보니, 그래도 아까보다는 진정된 듯했다. 긴토키는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목에 자신의 얼굴을 닦던 수건을 걸치곤 그에게 다가갔다.


 

“닦아, 감기걸려”


 

“...”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홀딱 젖은 옷이라서 추울텐데, 긴토키는 제 옷을 하나 꺼내어 내밀었다. 이거입어, 너 진짜 감기걸린다? 그 말에도 별 반응이 없자 그는 옆에 옷을 내려놓고 그의 옆에 자신이 던져 쇼파에 널부러져 있는 수건을 들곤 그의 얼굴의 물기를 양손으로 감싸 듯 닦아주었다. 반응이 없는걸 보니 이런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기가 귀찮은 듯 했다. 그러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저.. 형씨, 아깐 미얀해요. 내가.. 그니까 잠깐.. 좀 ... 아.. 뭐라고 해야지.. 암튼. 미안해요”


 

가늘게 떨며 더듬더듬 이야기 하는 그를 보고 긴토키는 그가 자신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는걸 알았지만 그가 히지카타를 좋아한다고 간접적으로 밝힌것과, 자신을 향한 원망의 말에 그 역시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긴토키는 그의 말에 억지로 웃어보였다. 그리고 되물었다.


 

“뭐가?”


 

“...”


 

“너 나한테 미안해 할거 없어”


 

그의 말에 소고는 얼굴을 살짝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긴토키는 그의 앞에 무릎을 굽히곤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


 

“근데, 나도 너 만큼 힘들어”


 

남의 마음 같은거 알고 싶지않은 그 였지만 그 순간 긴토키의 눈이 슬퍼보였는지, 아니면 본인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긴토키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긴토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긴토키는 마저 남은 물기를 닦아주다 무언가에 홀리듯 그의 얼굴간의 간격을 좁혔다. 입을 맞추려 가까이 다가갔다가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일부러 장난스럽게 몇 번 입을 맞춘적이 있었지만 이 순간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소용이 없다 라고 생각을 했는지 그는 떨어지려 할 때, 긴토키는 입술에 닿은, 그리고 맞닿은 얼굴의 부드러우면서 비를 맞아 차가운 감촉에 소스랏치게 놀랐다. 사무치던 그가 먼저 입을 맞춰왔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했고, 긴토키는 내심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곧 그 와의 키스에 빨려 들어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만큼은 눈 앞에 있는 그도, 자신도 서로를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 때문인지 그를 바닥으로 끌어내려 눕힌 채 키스를 이어갔다. 그도 별 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바닥에 누워서 하는 키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흥분감을 더해 그의 젖은 옷에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그의 턱선으로, 목으로 입술을 옮겨 갔다. 젖은 옷이 추워서 인지 가늘게 떨리는 몸과 체온이 높은 것이 느껴져 애무를 멈추었을 때 그가 우습다는 듯이 킥킥 웃었다.


 

 

“왜 멈춰요? 계속해요 나랑 야한 짓 해보고 싶다며? 이런 기회 다시는 없을지도 몰라”

 


 

긴토키가 본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이 텅 비어 자신과 했던 키스가 자신을 사랑해서 한 것이 아니였다는 것을 알았다. 소고가 그에게 먼저 키스를 한 것은 긴토키를 향한 약간의 동정심과 자신에게 가하는 자해였다. 가만히 있으면 히지카타와 그 여자가 떠올라 다시 눈물 같은걸 흘리며 추해지고 싶지 않은 그의 행동이였다.


 

 

“너... 열있어. 옷부터 갈아입어”


 

 


 

 


 

 

 

 


 

 

직후 소고는 고열에 시달렸다. 옷을 갈아입고 옷이 마르면 가겠다며 쇼파에 앉아있다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차가운 밤 공기에 비를 맞은채로 꽤 오랜 시간 있었던 것도 그렇고, 울다 지친것도 영향이 꽤 있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자는 그를 보며 긴토키는 중간 중간 열이 잘 떨어지는지 확인을 해보곤 했지만 사실 그는 소고에게 화가 나 있었다. 씨발 나쁜 새끼, 사람 감정을 이따구로 가지고 놀아? 속으로 미친 듯이 욕을 하곤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를 놓을 수 없다는건 알고 있었다. 연락도 없이 그가 사라진걸 알고 곤도에게 연락이 왔고, 긴토키는 그 전화를 받곤 지금 몸이 좀 안좋아 자고 있으니 일어나면 돌려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의 폰에 와있는 세네개의 문자가 있었는데 나머지는 곤도가 전화하기 전에 보낸 문자였고 나머지 두 통은 히지카타에게 온 문자였다. ‘깨우러 안 갈거니까 회의 지각하지마’, ‘장난해? 어디갔어’

그걸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 긴토키는 옆의 삭제 버튼으로 히지카타가 보낸 두 문자를 지워버렸다.


 

 

 

소고가 잠에서 깼을 때 열은 다 내려 멀쩡했다. 그는 시간을 보고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급히 핸드폰을 찾았다. 자신이 그렇게 많이 앓아 누워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리곤 폰을 보고는 약간 풀이 죽은 듯 했다. 통화 목록을 보고 그가 물었다.

 

“형씨. 곤도씨 전화 형씨가 받았어요?”


 

“응, 너 아파서 자고 있다고. 깨면 보낸다고 했어”

 

소고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는 왔던 문자함을 확인했다. 당연히 뭐라도, 욕이라도 연락을 했겠지 하는 생각에 문자함을 봤지만 전화도, 문자도 없는 그가 점점 더 괘씸했다. 곤도가 아니라 히지카타에게서 연락이 오는게 보통의 경우였기에 그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닫고 다시 누웠다.


 

“안가?”


 

긴토키가 그를 보며 물었다.


 

“네 안가요”

 

“...빨리 가. 나 지금은 너한테 화났어”

 

“왜요?"

“너무 건방져서”

 

“나 원래 건방진거 몰라요?”


 

“알아 그래서 이 정도만 하는거야. 니가 신파치 였으면 아마 나한테 죽도록 맞았을 거야”

 

“형씨 나랑 사귈래요?”

 

긴토키는 그의 말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장난 그만해라 응?”


 

“장난 아닌데”


 

“너 나 안 좋아하잖아 나 그런거 싫어”

 

“에이, 둘 다 스파크 튀게 좋아서 사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모르시는구나? 형씨 은근히 연애에 환상 있으시네요? 연애 많이 해봤다면서”


“...너 왜그래? 아프더니 미친거야?”


 

“그러게 미쳤나.. 뭐야. 나 좋아한다면서 왜 바로 대답 안해요? 싫으면 뭐..”


 

“아냐 아냐 조..좋아. 좋아!”


 

긴토키는 그에게 화가 났던 마음이 눈 녹듯이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계속 그에게 물었다. 진짜야? 근데 갑자기 왜? 그의 질문에 소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형씨는 그 새끼랑 닮은 면이 많아서요”

 

씨발 꿩 대신 닭이냐. 긴토키는 표정이 눈에 보이게 점점 굳어가자 소고가 다가와서 말했다.

 

“전에 형씨가 말했듯이 어차피 안 되는 사람인데 기운 빼서 뭐해요? 옆에 있는 사람을 보기로 한 것 뿐이예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전에 말했잖아요 저 형씨 싫지 않다고.

 

하긴,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사람을 닮았다 라는 말이 마냥 기분나빠 할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의 옆에 딱 붙어 있는 그 녀석이기에 기분이 나쁜 것이였다. 
 

“나 은근히 구속하는 스타일이야”

 

긴토키는 약간의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곤 그를 꼬옥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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