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평범했다. 그리고 히지카타에게 항상 모든 걸 이해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히자카타가 본인에게 무뚝뚝하게 구는 걸 성격이 그렇다고 생각했고, 연락이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일이 바빠서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그녀가 히지카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잃을 것 같은 불안함도 더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여자가 그렇게 헤프게 행동을 하는 쉬운 여자도 아니였다. 남자들의 상상처럼 환상적인 것도 아니고, 실망스러울 정도로 외설적인 모습도 아닌 지극히 평범했다. 길게 만난 시간은 아니였지만 그녀는 히지카타에게 같이 있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평범한 여자에게 이런 용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이런 제안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옆에 두려는 이유였기에. 그녀는 고분고분했고, 그래서였는지 딱히 재미는 없었다. 자기가 그렇게 말해놓고도 무서웠는지 저.. 쉬워 보인다거나 하진 않죠? 하고 거듭 말하곤 했는데, 쉬워 보인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런 걸 거듭 말하는 부분은 짜증스러웠다. 기본적인 욕구에 의한 쾌락은 느낄 수 있었고, 좋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선에 의한 쾌락뿐이었다. 끝나고 나서 느껴지는 감정은 허무함과 왜 이렇게 까지 하면서 그녀를 옆에 두어야 했는지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따라다녔다. 그래도 그녀에게 그런 욕구를 풀어서인지, 그 전과 같이 그 녀석을 봤을 때 자신이 무서울 정도의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자신을 침식해가던 비도덕적인 모습이 약간은 수그러들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 녀석과 전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진 않았지만 한 켠에선 아직도 그 녀석을 곁에 두고 싶은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약간의 불안함과는 다르게 소고는 긴토키의 말에 잘 따랐고,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고 해서 전과 딱히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둘 다 그 사이가 비밀이라는 것 정도는 무의식으로 알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니진 않았다. 별 일 없이 조용했다. 긴토키가 소고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은 여전했고, 긴토키는 그 점에 대해서는 딱히 불만은 없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귀는 사이가 되어서 스킨십은 확실히 전보다 자연스레 할 수 있었지만, 긴토키는 과도하거나 부담스럽게 느낄 법한 스킨십은 하지 않았다. 손을 잡거나, 껴안거나, 가볍게 뽀뽀정도만 하는 정도에서 멈추었다. 그런 긴토키를 보고 소고가 물었다.

  

“나한테 쫄았어요? 생각보다 소심하네요 형씨”

  

놀리듯 말하는 그에게 긴토키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 혹시 기다리고 있냐? 너 답지 않게?”

  

긴토키가 능글맞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럴 리가. 생각만 해도 토 나와. 전에 형씨가 한 말이 있으니까 물어본거예요”

  

“이 녀석아, 역시 꼬맹이라 뭘 모르는구나? 원래 나같이 솔직한 사람일수록 알고 보면 순수한 법이야. 오히려 겉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일수록 속은 썩어 문드러진 경우가 많거든? 너도 범죄자들 많이 봐서 알거 아냐, 얼굴에 나 범죄자예요. 라고 써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 지능적이고 머리 잘 돌아가는 놈들은 누구보다도 착하게 생긴 놈들이라고.”

  

긴토키는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치며 말했다.

긴토키는 어렵게 얻은 것 일수록 잃을 땐 허무할 정도로 쉽게 떠날 수 있다는 불안함이 항상 짓누르고 있어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히지카타와 그가 항상 마주칠 수 있는 공간에 있다는 불안함 때문이였을까?

  

  

어느 날은 그가 땡땡이를 친다며 같이 경단을 먹자고 불러냈다. 그가 먼저 긴토키를 찾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긴토키는 하던 일을 내팽게 치곤 그가 지목한 장소에 달려갔다. 이미 먼저 와서 경단을 한입 물곤 허겁지겁 뛰어온 그를 쳐다보며 너무 늦는다며 괜한 심통을 부리는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 볼을 살짝 꼬집었다. 옆에 앉아서 일에 대한 투정을 부리는 그 녀석의 말을 한참 들어주었다. 저도 맨날 사고를 치지만, 곤도씨는 더 한다니까요? 그리고 야마자키는 맨날 나 늦잠 자는데 안 깨우고 그냥 가요 이 새끼가 진짜 죽을라고. 그의 말을 듣고 긴토키는 야마자키?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소고는 아- 지금 옆방이거든요 하고 짤막한 대답을 했다. 전엔 히지카타였던 것 같은데 옮겼나? 분명 일에 대한 투정을 부릴거면 가장 먼저 나와야 할 히지카타의 이름은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맞지만, 너무 철저하게 한번도 말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조금은 신경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긴토키는 자신을 신경써주고 있다고 생각했고, 꼭 자신을 신경써주는 것이 아니라도 이 녀석이 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때 어딘가를 보고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둡게 그늘지는 그를 보고 긴토키는 그가 바라보는 장면을 돌아보았다. 비번인지 유카타 차림의 히지카타와 옆에 있는 그녀가 눈에 띄었다. 긴토키는 그의 시야를 가리고 들며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려 애썼다. 조..좀 있다가 점프 사러갈래? 오늘 발매일이잖아! 아참, 난 샀지.. 너 아직 안봤지? 이번에 새로 연재하는 그 만화 진짜 반전이야, 나 보고 진짜 기절할 뻔 했다니까? 그 정도로 그의 표정은 쉽게 풀리진 않았지만 우선 그의 시선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 한참 본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를 헛소리를 주절거리는데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긴상! 어? 오키타 대장도 같이 있네요? 명랑한 그 목소리에 지금까지 그의 수고가 모조리 원점이 되어버렸다. 멀찌감치 떨어져 셋의 모습을 지켜보며 담배를 피우는 히지카타와 앞에서 긴토키에게 재잘거리는 그녀, 그리고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운 그 녀석까지. 긴토키는 안절부절했다.

  

“오키타 대장 요즘 되게 조용하네요?”

  

그녀의 말에 소고는 살짝 그녀를 올려다 보았고,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내가 이겼어, 라고 말하는 듯한 그 표정을 봤을 때 그에게 그 순간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은 살기가 돌았다.

  

“다음에 히지카타씨와 셋이서 함께 봐요,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난.”

  

히지카타씨? 저 년이 지금 누구 이름을 함부로 불러? 니가 그 새끼를 칭할 수 있는 이름은 백보 양보해서 부장님. 정도야 이 암퇘지 같은 년아.

  

  

그의 살기를 느꼈는지 긴토키는 벌떡 일어나서 그의 팔을 잡곤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 미얀, 우리 지금 어디가봐야 되서. 기회가 있으면 다음에 보던지 하하. 가자.

  

소고는 긴토키에게 별 저항없이 끌려 갔지만 그 이후 시간은 하루종일 말이 없었다. 그 둘을 눈 앞에서 보니 배알이 꼴렸는지 속이 좋지 않아 답답했다. 긴토키는 옆에서 자꾸 어떤 말을 건넸는데,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사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수가 없을 그의 태도를 보고 긴토키는 물었다.

  

“어이 오키타, 표정 좀 풀지?”

  

“...”

  

“니가 이러고 있으면 난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니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거야?”

  

긴토키가 화가 난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는 억눌렀다고 생각했지만 소고는 그가 화가 났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게 긴토키가 아니고, 히지카타였다면, 그리고 다른 이유로 화가 나서 아무말 없이 있을 때 히지카타가 이런 식으로 화를 냈다면 온갖 지랄을 다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건 히지카타가 아니고, 닮았다고 해도 미묘한 면에서 히지카타와 그는 다른 면이 있었다. 이것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지만, 긴토키에게는 애써 웃어보였다. 내가 뭘요?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리고 그 날 소고는 둔영으로 돌아가 제 방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느끼는 패배감과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화가 나서 잠을 못 이루는 것은 또 오랜만이였다. 히지카타와 사귄다는 것 자체도 그 꼴을 보기 싫어 제 눈알을 파버리고 싶을 정도 였고, 그것보다 더, 더 미치게 화가 났던 것은 그녀가 자신을 쳐다봤던 그 우월감에 찬 그 눈빛에 그는 생각만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듯해 그 감정을 주체 할수 없어 괴로웠다.

  

  

  

  

  

  

그렇게 2주 정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짧으면 짧은 시간이였고, 길다면 긴 시간이였다. 여전히 히지카타와 소고는 뜸한 사이를 유지했다. 둘의 사이가 또 다시 이상해지자 곤도는 히지카타에게 또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히지카타는 가장 변명하기 쉽고, 곤도가 가장 납득할 만한 이유로 저 새끼 건방진 버릇 좀 고쳐놓으려고 한다며 둘러댔다. 자존심도 쎈 녀석인지라, 경단집 앞에서 마주친 날 이후로 찾아오거나, 사적인 이유로 말을 거는 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찰 중일 때, 왠일로 그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어디신지요? 부장님 급히 둔영에 좀 돌아오셔야겠습니다. 사건이 좀 터졌지 말입니다? 이상했다. 이 녀석이 먼저 문자를 다하고. 심지어 이 말투는 뭐야? 무슨 일이야 하고 답장을 보내자 바로 바로 답장이 왔다. 글쎄, 오셔야겠다니까요? 문자에서 느껴지는 이 녀석의 비아낭거림이 귀 옆에서 말하듯 생생해 수상했다. 곤도는 또 다시 출장중이였기에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자신에게 연락하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녀석이라면 이런 상황엔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하라고 시켰을 터인데.. 그는 무언가 찝찝함을 느꼈지만 우선 둔영으로 돌아갔다. 돌아간 둔영에는 그를 포함한 몇몇 대장들이 모여 있었고, 그곳의 분위기는 중력이 조금 더 강하게 작용하듯이 무거웠다.

  

“아, 오셨네요 부장님”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는 그 녀석의 표정, 그리고 다른 대장들의 무거운 표정이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히지카타씨, 귀신 부장도 이제 다 옛날 말 인가보네요”

  

재밌어 죽겠다는 그의 표정이 수상쩍으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이 녀석의 반항적인 표정이 매력적이였다. 뭐라는거야? 그는 건조하게 말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그 여자 말이야, 양이지사의 스파이였어요. 모르고 있었죠? 내가 잡지 않았으면 신센구미가 통째로 당할 뻔했어요. 와. 정말이지 간도 큰 년이야, 우리 둔영에 일하겠다는 명목으로 들어와선 그 무섭다는 귀신 부장까지 꼬셔내다니. 정말이지 그 능력은 칭찬해주고 싶네요. 자 이걸 봐요”

  

그가 내민 사진에는 양이지사의 아지트로 의심하여 최근에 조사하고 있던 그 장소에, 최근에 쫓고 있던 양이지사들의 모습과 그녀가 이야기 하듯 서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놀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신감을 느꼈다거나, 충격을 받아서 다시는 사람을 못 만나겠다거나, 하는 그 정도는 아니였고, 단순히 놀랐다. 뭐, 사실 신센구미 부장이라는 그의 위치에선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이였다. 그는 그저 그 사진을 보곤 그래, 그래서? 하고 되물었다.

  

“일단 구속 했습니다 부장님, 요즘 쫓고 있는 양이지사들, 정보 캐려면 고문이 최고 아니예요? 아, 유감스럽게도 부장님은 만나실 수는 없으십니다. 아무래도 관련 있는 사람이잖아요? 사적인 감정이 튀어나오면 곤란하잖아요. 잡은 것도 저니까 마무리도 제가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가 약 올릴 때 자주 썼던 어법이였다. 깍듯한 존댓말을 써가면서 히지카타씨가 아닌 부장님 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말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그 특유의 살짝 늘어트리는 말투. 지금 그는 히지카타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응을 사냥감을 기다리는 여왕거미 마냥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히지카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그가 그런 행동을 취하는 걸 기다린 것 마냥, 기뻤다. 그 녀석 특유의, 미츠바와 닮은 얼굴을 하고 악마같은 살인자의 눈을 한 그 모습이 히지카타를 가장 흥분시키는 요소가 되었는지, 몸이 찌르르 울릴 정도로 흥분되었다. 하지만 그의 겉 모습은 무표정이였기에, 그를 지켜보는 소고는 그의 무표정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슬퍼했다면 눈앞에 있는 이 자식도 죽여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지금 행동이 다행이였다.

  

정말일까? 히지카타는 약간은 의심했다. 아니면 정말 자신이 무뎌진 것일까?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하지만 그는 그 이상 파고 들진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 다른 대원들의 대화를 엿듣다가 그들의 말에서 조금은 이상함이 느껴지는 말을 들었다. 아까 고문실에서 그 여자가 자꾸 자신 죄가 없다며 오키타 대장 이름을 말하던데? 그거 뭐야? 근데 그것도 생각해보면 그 여자 전에 오키타 대장에게 거짓말해서 근신 받게 한 일 있잖아? 그거 모두가 아는 사실은 아니지만 몇 몇 알 사람들은 알던데? 이 사건 터지니까 더 그 일이 확대되더라. 그래서 그 여자 말은 신빙성이 없다고 하더라고, 대상이 또 오키타 대장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오키타 대장도 그 말 듣고 그냥 웃더라. 어이없겠지. 근데 뭐.. 정보를 캐내려 해도 똑같은 말만 반복하던데.. 모른다랑 오키타 대장 이야기만 하니 뭐....

  

  

  

  

  

  

하루 이틀이 지나고 히지카타는 고문실을 찾았다. 히지카타를 무서워하는 그 앞을 지키는 대원들이 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우물쭈물 망설였고, 히지카타는 그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고문실은 몇 번을 들어와도 좋은 느낌은 아니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의자에 앉아 오렌지맛 쭈쭈바 따윌 쪽쪽 소리나게 빨아먹는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소고는 원래 쭈쭈바를 자주 즐겨먹곤 했는데, 시체만 없을 뿐이지 피비릿내가 진동하다 못해 역겨운 그 곳에서 그런 것을 여유롭게 빨아 먹고 있다는 것은 그가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듯 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가 히지카타를 올려다보고는 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거의 다 빨아먹은 쭈쭈바 비닐을 물곤 씨익 웃는 모양새가 히지카타의 눈에 미치도록 야하게 비췄다. 그는 히지카타를 보곤 다른 대원들을 모두 나가게 했다. 그 어두침침하고 칙칙한 공간에 남은 건 둘과 그녀, 이렇게 셋 뿐이였는데, 그녀가 있는 공간은 꽤나 멀었고, 현재 히지카타에겐 보이지 않았다. 소고와 눈을 마주치는 그 몇 초의 순간이 그는 숨막히게 긴장되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그를 더 흥분시켰을 것이다.

  

그가 자리에서 천천히 여유롭게 일어나 그에게 따라 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이고 이런, 걱정되서 손수 찾아오셨습니까? 그런데 어쩌죠? 저 년이 입을 안여네요? 자꾸 헛소리만 한다고요”

  

그는 히지카타를 그녀의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꽤나 많이 고문을 당했는지, 반 탈진 상태로 묶여 의자에 앉혀 있었고, 얼굴과 온몸이 엉망진창으로 피로 물들어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익숙치 않은 사람이였으면 경악할만한 모습이였다. 하긴 이 녀석이 여자라고 고문대상을 봐주거나 하는 인정 넘치는 녀석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였다. 그런 그녀가 힘겹게 눈을 뜨곤 히지카타를 알아봤는지 힘겹게 입을 열곤 말했다. 히..히지카타씨.. 아.. 아니예요..저.. 아니예요... 오키타.. 대장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가 그녀의 머릿채를 확 휘어잡으며 말했다. 봐요 히지카타씨, 이 년이 자꾸 이런 헛소리를 한다고요. 구역질나게, 이 정도면 정보 같은걸 캘 수 있는 상태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저희 신센구미의 국중법도에 음... 몇 조항이였더라.. 쓸모 없는 악성 인질은 사형에 처한다.. 라는 항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전 머리가 나빠서 정확히 몇 조항 이였는지는 잘 기억은 안나네요. 그냥 지금 사형식을 거행할까요? 그는 킥킥 웃으며 히지카타의 손에 칼을 쥐어주었다.

  

“존경하는 부장님, 직접하시죠. 신센구미를 만만히 보고 부장님을 이용하려한 파렴치한 년이 아닙니까? 설마 남아있는 사적인 감정으로 못하겠다거나 그런 어이없는 실망스럽고 찌질한 모습을 아랫 부하에게 보이진 않으실거죠?”

  

칼을 쥐어주는 그의 손이 손에 닿았다. 이렇게 너와 닿는 것이 얼마만일까. 눈앞에 그녀는 아니라고 계속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 그녀를 사랑한 적은 없지만 사람인지라 그래도 알고 지냈던 사람을 아무 감정 없이 죽일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였다. 그리고 단순한 그의 직감으로 그녀의 상황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녀석이 뭔가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확신이 들었지만 캐묻지 않았다. 칼을 쥐어준 매력적인 살인마에게 홀렸기 때문일지도. 그리고 오히려 그에게 묻고 싶었다. 왜 장난을 이렇게 심하게 치는 거야? 뭐 때문에 이렇게 재밌어 하는 거야? 나는 너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이 여자를 옆에 두려 한 것인데. 재밌어? 그의 모습이 흥분감을 심어주어 좋으면서도 다른 면에선 화가 치밀었다. 그는 쥐어준 칼을 바닥에 그대로 내동댕이쳤다. 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번 튀어 올랐다가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못 하시겠어요?”

  

그의 입과 말투에선 웃음기가 살짝 묻어났지만,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곤 그 칼을 주워 들고 다시 히지카타 앞에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곤 귀에 대고 속삭였다. 최근엔 통 교류 없이 지냈었기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의 체취를 느끼는 것은 오랜만이였다. 어렴풋한 샴푸냄새, 그리고 특유의 살 냄새, 가까이 왔을 때 볼 언저리를 살짝 간질이는 머리카락까지.. 아찔했다. 그런 것에 정신을 빼앗겨 어렴풋이 들은 그의 말은 재미있었다. 히지카타씨, 아니 부장님. 빨리 죽여 이 새끼야. 부장님.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왜 이렇게 착한 척 하시는거예요? 당신은 이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자, 빨리해 이 새끼야

  

그가 가까이 다가와 아찔했던 기억, 그리고 간지럽게 속삭이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재미있는 말. 그 말이 주문이 되었는지 히지카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 앞에 있는 건 차갑게 식어 단순한 고깃덩어리로 변한 그녀와 그 앞엔 그 피를 뒤집어 쓴 자신이 있었다. 그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그를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그에게도 피가 튀었는지 그가 투덜거렸다.

  

“더러워”

  

“... 소고...”

  

소고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앞에 죽어 있는 그녀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은 없었다. 다른 것보다는 그에게 그에 대해서 묻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기에 그는 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소고는 여유있게 그런 그를 쳐다보았다.

  

“왜...왜..”

  

하지만 소고는 그가 자신에게 화가나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가오는 그의 눈빛이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섭다거나 한 것은 아니였기에 덤덤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너...왜...”

  

“제가 뭘요? 왜 라니.. 참 이상한 말을 하시네요. 당신이 만든 법을 집행한 것 뿐입니다. 나한테 왜 그러냐고 왜 물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 여자를 직접 죽인 사람은 당신 아닙니까?”

  

“..아니...아니.. 너..”

  

아니 그딴 걸 묻고 싶은 게 아니야 나는 지금 나는.. 나는...

  

그가 손을 뻗어 그를 잡으려 하자 그는 신경질 적으로 그의 손을 쳐냈다.

  

“그 더러운 피 묻은 손으로 만지지마.”

  

소고는 그대로 뒤돌아서 유유히 어둡고 칙칙한, 조금이라도 더 있으면 그 곳의 어둠에 먹혀 버릴것만 같은 고문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곳을 나가 그는 한참을 실성한 듯이 웃었다. 슬프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기쁘지만 기쁘지 않았고 속이 후련하지만 후련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엇하나 해결된 것이 없는 이상한 기분이였다.

  

  

  

안녕? 아아 놀라지마, 그냥 생각해보니 나도 너의 생각과 같아. 이제 너와 친하게 지내려고, 전엔 좀 미안했어, 사과할 겸, 부탁도 좀 할 겸 온거야. 히지카타가 이걸 이 주소로 좀 전해 달라던데? 가서 히지카타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 아마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응? 아 거기 좀 위험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있다고? 전혀 아니야, 그런 곳을 우리가 모르겠어? 항상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다음에 정말 셋이서 꼭 같이 보자. 꼭. 내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부탁 좀 할게.

  

  


  

  

  

  

  

“응? 오늘은 걔 없네? 오오구시군 애인 말이야”

  

긴토키는 오랜만에 케익 집을 들렸다. 거기의 다른 일하는 여자들이 긴토키를 보곤 누굴 찾으시는지.. 하고 물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던 긴토키는 인상착의로 대강 그녀를 설명했다. 그리고 누군지 알았는지 수군대더니 한명이 긴토키에게 말했다.

  

“아..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였나 보네요. 알고 보니 양이지사였데요,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됐는진 모르지만...”

  

말끝을 흐렸고, 이런저런 수근거림 끝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양이지사? 죽어? 너무나 뜬금없는 소리에 긴토키는 할 말을 잃었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수근 대는 소리로는 신센구미의 나이 어린, 맨날 신문에 나오는 그 무서운 꼬맹이가 그녀를 과격하게 데리고 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일 간 그는 갑자기 바빴고, 만났을 때도 한숨을 쉬거나, 약간은 복잡함을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별 대답은 없었고, 장난식으로 형씨는 모르는 노동의 스트레스라는 겁니다. 라고 웃으며 대답할 뿐이였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니 그는 항상 숨기는 일이 많았다. 무얼 물어도 대답하지 않거나, 말하기 싫어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굳이 캐묻진 않았지만, 그땐 그때의 상황이라 치더라도 지금 우린 서로 특별한 사이 아냐? 이런 상황정도는 말해줘도 되잖아? 복잡한 얼굴을 하고서는 왜 털어놓지도 않아 넌.

  

원래의 그 였다면 그를 만났을 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히지카타와의 연관성 때문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았다. 모르는 척 그의 태도를 한번 보고 싶은 그 답지 않은 의심 때문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혼자 있던 집무실에 소고를 불렀다. 사이가 좋지 않고, 싸워도 명령이라면 투덜거리면서도 따랐기 때문에 그는 얼마 후 히지카타의 눈  앞에 나타났다. 나타난 그는 여전히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히지카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표정이 왜 이래?”

  

“...내 표정이 뭐.”

  

“다른 사람이야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알았어, 니가 함정을 팠다는 것 쯤은.”

  

“....”

  

“그냥 단순하게 물어보고 싶어서. 왜 그랬어?”

  

“...나도 묻고 싶네요 그럼 왜 죽였습니까? 날 죽였어야지”

  

히지카타의 눈에 비친 소고는 딱히 당황하지도 않고, 예상 했다는 듯이 말했다.


죽여? 지금? 내가? 너를? 어떻게 죽여.. 내가 널.. 끔찍하다 못해 애가 탈만큼 아끼는데...그리고 설령 죽인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왜? 아무것도 못해보고? 너를 죽이려고 마음 먹었다면 그 전에.... 아 아니지..

그의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였다.

그러고 보니 히지카타는 소고가 왜 그랬을까에 대한 생각은 끊임없이 고민했으면서 자신이 왜 그런 그를 말리지 않았는 가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고 말했어야 했고 말렸어야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멈췄어야 했다.

     

  

“......그야.. 내가 너한테 미쳐버렸으니까”

  

  

소고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볼 때, 그의 눈동자에 히지카타 자신이 비추었을 때, 그는 미츠바의 마음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라는 강한 마음이 바스러진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아주 약한 바람에도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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