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융해점 完

[카무오키] 융해점 11 完

2015. 11. 21. 18:15
 

모노님께서 그려주셨어요ㅠㅠ 너무 예쁘지 않아요?ㅠㅠ

너무 좋아서ㅠ행복사ㅠㅠㅠ!!

 

 
 
 
 

 
 
 

 


비릿하다. 피맛은. 쇠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한 것이 핥으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러진다. 맛이 없다. 냄새 역시 비릿하다. 피 냄새를 계속 맡고 있노라면 속이 머슥머슥해서 역겹기 그지없다. 지금이야 익숙해졌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지만 어릴 적 어린아이의 눈으로 처음 시체와 그 옆에 흥건한 피를 봤을 때는 역겨움에 안색이 파리해져선 시선을 피했었다. 그냥 무서웠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그리고 죽음과 동반한 핏빛 액체가 스멀스멀 바닥을 적시며 기어 나오는 것도. 그날 밤엔 흥건하게 고여있던 새빨간 피웅덩이의 잔상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한없이 뒤척였던 기억이 난다. 맞아. 그런 시절도 있었지. 그리고 조금 나이를 먹고서 에도로 와선 내 손으로 손수 베어서 피가 흥건해진 것을 봤을 때는 칼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면서 흥분할 정도로 좋아했다. 사람 몸에서 곧 바로 나올 때 발하는 매력적인 붉은빛!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검붉게 바래져 메말라 붙어버리는 것 역시 참 예쁘다. 핏빛은 항상 사람을 흥분하게 만든다니까. 
 
이 악당도 그렇다. 처음엔 공포로 다가와서 나를 짓눌러놓았고, 나도 모르게 이 녀석에게 기대면서 무뎌진 나는 서서히 난 그 공포에 익숙해졌다. 그 이후엔 남들이 흉하게 볼지 언정, 그 악한 기운을 가득 띄고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 녀석과 나는 어디서부터 인지 언제부터인지, 왜 인지 모르게 서로 사랑에 빠진다. 악당, 너는 이렇게 사악하고 순수해서 좋아.

피로 물들어버린 그 밀실 아닌 밀실에서 우리는 그 고작 며칠 못 본 것에 대한 회포를 풀 듯이 뒤엉켜 한참을 키스했다. 나도 이 녀석도 목마른 사람처럼 허겁지겁 서로의 입안의 촉촉함을 느끼는데 급급했다. 엘리베이터 벽으로 쿵 하고 거칠게 부딪치면서도 싫지 않았고 나 역시 그 녀석을 절대로 나에게서 떼어놓지 않을 것처럼 껴안고서 이 녀석을 느낀다. 거칠다 못해 포악한 그의 키스는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었어도 흥미로웠을 것이다.
 
잠깐 얼굴을 때고 눈을 맞추었을 때, 악당의 새파란 눈동자 안의 나는 액체처럼 투명했다.
 
 
 

* * *
 
 
 
 
여름은 싫다. 하지만 겨울도 싫다. 그래도 겨울이 아주 미세한 차이로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소한 이유를 말하자면 여름은 차가움을 찾게 되지만 겨울은 따스함을 찾게 된다는 점이 좋다. 따끈따끈하잖아. 겨울엔 곤도씨가 커다란 봉지로 귤을 한 아름 사 오곤 했는데 귤을 까먹으면서 코타츠에 앉아서 히지카타랑 나, 곤도씨랑 셋이서 쓸데없는 잡담을 하는 것은 꽤나 즐거웠다.   

"부모란 정말 힘든 거야"
 
곤도씨가 신문을 보다가 한 말이었다. 코타츠에 쏙 들어가서 나는 귤껍질을 까면서 또 안경네 누나랑 결혼해서 애새끼까지 낳는 망상까지 하고 있느냐면서 한마디 했다. 히지카타는 냉정하게 세상에 안 힘든 게 어디 있느냐며 투덜거렸다.
 
"자식들 때문에 아무리 싫은 일도 해야 하고 그렇잖아. 그런 거 보면 불쌍하지"
 
"부모만 그렇겠어요?"
 
"아, 물론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관계보다 가족은 아무래도 더 애틋하잖냐"
 
애틋. 나는 그 말을 듣고서 내 옆에 없는 누나를 떠올렸다. 머릿속에 마지막 남았던 가족을 떠올려봤자, 나에겐 가족이라는 애틋한 관계의 사람이 지금은 없었다.
 
"내가 있는 이 자리를 지킨다는 게 보통이 아니야, 그걸 위해서 정말 버릴 수 없지만 버리는 것들도 많잖어.. 선택의 기로가 올 때가 있다고 하더라, 간혹. 예를 들어서 결혼을 했는데 다시 한번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버렸다거나.. 그러면 어떻게 하겠냐? 그렇다고 끝낼 수도 없고 지 자식들이 있는데 어떻게 가정을 버리냔 말이지. 뭐, 불륜을 좋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만 진짜 사람일 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니까. 어쨌든 보통 정상적인 부모의 경우엔 가족이라는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악물고 포기하는 거지.. 근데 뭐, 그러다 보면 잊혀지고, 나중엔 내가 미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야. 만약 그 잠시의 감정에 끌려서 다 내팽개치고 그 하나를 선택한다면 분명히 평생 후회해. 그니까 지켜야되는거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뭐, 사랑 하나 가지고만 이야기 했지만 다른 것도 많지, 너무 하고 싶은 꿈이 있지만 가족 때문에 못한다거나... 그러니까 너희도 그 중심을 잘 잡으라는 거야! 하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 말에 나는 관심없이 세상 다 살은 할배같네요. 하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가족이라는 관계의 사람이 없는 나로써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되려 약간의 질투도 있었던 것 같다. 엄마라던지, 아빠라던지, 누나라던지 여튼 가족이라는 것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약간의 열등감이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절대로 표정엔 드러나지 않았을 거다. 난 표정으로 내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 나의 무표정을 지켜보다가 옆의 히지카타가 조용히 귤을 까서 내밀면서 먹어 하고 말했다. 재수없는 히지카타는 그때에도 역시나 나의 내면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내민 벗겨진 귤을 보곤, 안 먹어. 하고 짧은 답을 하곤 고개를 홱 돌렸다. 그땐 전혀 생각 못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도 히지카타는 날 사랑했다. 
 
내 자리.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 곤도씨의 옆, 둔영의 가운데, 다른 대원들이 무서워서 한마디도 못하는 히지카타에게 유일하게 대드는 문제아, 내가 정한 이 길을 똑바로 걸어나가길 바라는 누나의 남동생.  

물론 나에게만 이런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악당 녀석도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 분명 그를 찾는 녀석도 있다고 했고, 하루사메 단장이라면 분명 돌아가서 제 자리를 찾는 것 역시 중요할 텐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그는 나의 손을 이끌면서 가자, 하고 말했다.
 
"어딜?"
 
"나가야할거아냐?"
 
옆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피해서 엘리베이터를 나와 서는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내가 어떤 놈 죽이기 전에 나가는 길을 물어봐놨어"
 
머뭇거리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망설임이 있는 내 걸음을 보고 그가 뒤를 둘어보며 물었다.
 
"왜?"
 
"아니.."
 
일단 이곳에서 나가야 하는 것은 맞다. 문제는 그 이후라는 것이다. 이 새끼는 내가 이 곳에 다시 왔다는 것에서, 그리고 키스에 순순히, 아니 겪하게 응했다는 점에서 내가 저를 선택했다고 조금의 의심없이 믿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녀석이 걱정되어서 온 것은 맞다. 이런 상황이 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가둬져 있었다면 내가 꺼내주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상황은 내 손으로 직접 내 동료들에게 칼을 들이밀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내 손을 잡아 끌고 달리는 악당이 조금은 신난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했다. 이 길은 처음 와보는 길이지만 이 길의 끝은 결국 우리 둔영 근처라는 것을 안다. 아무리 멀리 돌아서 온다 한들, 내 옆엔 히지카타가, 그리고 곤도씨가, 그리고 우리 대원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이 녀석만 모른다. 꽤나 깊숙했던 침침한 지하를 빠져나와 시원한 바깥 공기를 한숨 들이쉬고 나서 그가 다시 내 손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잡아끄는 힘에 저항하듯이 끌려가지 않고 멈춰섰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돌아보는 이 악당.

"왜?"

"어디로 가는데?"

"어디로 라니?"

이 녀석은 아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어디든지 상관없잖아, 그게 중요해?"

내가 갈등하고 있음을 모르는 그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몰라서 나에게 바짝 다가와서는 왜? 뭐 때문에 그래? 응? 왜 내가 네 동료들을 다치게 할 것 같아서 그래? 안 그럴게. 됐어? 응? 하고 고개를 숙인 나에게 다가와서 바짝대고 말했다. 차라리 그런 걸로 고민을 했다면 차라리 편했을텐데. 히지카타가 도망갈까? 하고 물어왔을 때 딱 잘라서 거절했던 것과는 달랐다. 물론 히지카타는 진짜 갈 생각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던것도 있었지만 난 히지카타와는 둘이서 떠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악당녀석과는 내심 떠나고 싶다. 이 녀석과 하는 외줄타기라면 분명 재밌을 것 같아. 이 녀석과 함께 있는 한 우린 그때처럼 최강일거야. 그 누구도 우릴 건드리지도 못할거야.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 녀석을 따라 떠나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몰려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히지카타와 곤도씨가 바다 한가운데의 암초처럼 그 앞을 우뚝 가로막고서서, 내 마음을 하얗게 산산조각내고 가로막는다...
 
이 녀석과 함께 어디론가 향해도 전에 있었던 모든 일 들이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시 그와 나는 방황할 것이고, 다시 내 동료였던 사람들을 피해 도망다녀야 하는 피곤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 안정감이라곤 없는 나날에서 아슬아슬한 스릴을 느껴 재미야 있을 수는 있지만, 곤도씨가 말 한데로 그것은 잠깐이고, 다시 나는 이 동료들과 내 자리를 기억하면서 회한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싫었느냐고 물어온다면 좋았다 라고 대답할테지만 다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선뜻 돌아간다고 대답할 수 없다. 아니, 그런 대답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약간의 망설이는 행동을 보고 왜 그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의 이 악당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와락 껴안았다. 좋다. 내가 끌어안자 살짝 놀라하던 그가 내 등을 가만히 쓸어내리면서 왜 그래?하고 작게 웃는다. 그의 그다지 크지 않은 어깨와, 뒷목까지 길게 땋아 늘어트린 선주홍빛 머릿칼, 차갑지만 따스한 너. 그리고 내 품안에서 쉬고 있다가 나온 따듯한 단도, 그리고 너와 어울리는 피냄새, 그리고 내 손에 흐르는 뜨거운 액체. 아, 내가 너를 찔렀구나.

나에게서 서서히 멀어지면서, 찔렸다고 할지언정 당황도 하지 않고 동요도 하지 않는 그 표정이 여전히 너는 나에게 최고의 악당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가 무어라고 말 하기 전에 내가 말했다.

"..이미 다 알려졌을거야"

"응?"

"대원들이 곧 이쪽으로 와"

"근데?"

"...그러니까 가. 대원들이 오면 난 에도를 지키는 경찰으로써 널 잡을거야"

"잡아? 누가?"

"내가 너를. 그니까 가. 너도 너의 자리로 가"

내 말에 조금은 놀라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동요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찌른 제 등을 흘깃 한번 돌아보고나서 나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같이 가는거 아니야?"

"어딜? 난 안가. 너랑 장난치면서 좋았던 것도 여기까지야. 너도 역할이 있듯이 나도 여기서의 역할이 있어. 그러니까 꺼져"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는 표정이 더 나를 열받게 만든다.

"안들려? 꺼지라고 하잖아!" 

이제야 파악이 되었는지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웃고 있지만 이 녀석의 주위 분위기가 확 변한다. 내 뺨에 닿아오는 바람조차 소름끼치게 느껴질 정도로 그의 분노는 나에게 절실하게 느껴져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전에 이 녀석에게 당했던 심장 윗쪽의 어깨부근의 흉터가 갑자기 욱씬욱씬 쑤셔오는것 같았다. 아프다. 다 나았을 텐데.. 아프다.
악마의 모습이 있다면 순수한 아이의 형상일 것이라고 했던가? 내 눈앞에 있는 이 악당도 너무나 순수했다. 그래서 무섭다.

"다시 말해봐"

"...난 안가. 혼자 가" 
 
"다시 말해"

"안간다고"

"다시"

"..."

"다시 이야기해"

"...."

"다시 말해보라니까?"

"...미쳤어?"

"그니까 다시 말해보라고 엉? 난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으니까"

"...."

그는 처음에 나를 죽이고 싶어 했던 그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다가와 내 목을 서서히 죄여오면서 다시 물었다. 이런 건 이 녀석의 방식이 아니었다. 나를 후려쳤으면 모를까.

"다시 똑바로 말하라고. 내가 반 병신된 널 데려가길 원해?"

나는 안다. 내가 이 녀석의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을 했고, 생각 못한 그 충격에 괴롭다는 것을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새끼라는 것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함께 갈 수도 없고 함께해서도 안된다. 목이 졸려지면서도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녀석의 파란 눈만을 응시했다. 저항이라고 하기엔 작았지만 그 녀석의 팔목을 가늘게 잡고서. 그 이상으로 저항하지 않은 것은 이 녀석이 이런식으로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에게 기대를 심어줬다가 꺾어버렸다는 약간의 죄책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이 점점 흐릿하게 보이면서 내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잠시 어둠 안에 약간의 희열이 찾아올 때 쯔음, 그는 내 목을 죄여오던 손을 신경질적으로 놓고는 쓰러져 켁켁대는 나에게 다가와서 눈 높이를 맞추곤 말했다. 
 
"오랜만에 우리, 싸울까?"
 
아니. 나는 너와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도망치라고 한 것이었고... 니가 나보다 강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그래서 무서워서? 다시 싸우면 이번엔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 그런 시덥잖은 이유가 아니라 그냥.. 몰라.. 서로 죽이고 싶어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니가 그냥 가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사형수가 도망쳤다는 것을 알고 이 곳으로 온 대원 무리들이 내 뒤편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요란한 발소리에 악당은 나에게서 눈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저 대원들 숫자가 많다고 한들, 이 녀석 한 명에겐 상대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켁켁대는 나는 우리 대원들에게 동공풀린 눈으로 다가가는 악당녀석을 보고 하지마, 하지마 하고 외치려 했지만 야속하게도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신난 악당 녀석. 그리고 우리 대원들이 거의 다 쓰러졌을때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대원 중 누군가가 떨어트린 칼을 주워들고서 그 악당에게 비틀비틀 다가가 목에 겨누었다. 칼끝의 차가운 기운을 느꼈는지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하아.. 그만.. 그만...해"
 
한 손에는 이 녀석 등을 찔렀을 때의 피가 한손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어서 끈적끈적했다. 망설임이 있으면 죽는다고 했었나. 지금 내가 든 칼엔 망설임이 너무나 많이 담겨있어서 휘두를수도 없을 만큼 무겁다. 그는 내가 겨눈 그 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내 앞에 아무렇지 않게 걸어온다. 나는 그저 숨을 몰아쉬면서 그에게로 향했던 칼을 그대로 들고 있을뿐, 살의를 가지고 그에게로 향하진 못했다.
 
"겨누지만 말고 죽일 각오로 덤벼, 응? 날 잡으시겠다면서."
 
그렇게 말해도 지금의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처음 나를 만났던 그 순간처럼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 때처럼 무섭게 나를 몰아붙였고, 나는 겨우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 칼이 그의 근처에 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녀석을 베기에 자꾸만 망설임이라는 틈새가 생겨, 그 앞에서 자꾸만 고민하는 것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당해본 적은 지금을 포함해서 두번인데 처음도 이 녀석, 그리고 두 번째도 이 녀석이다. 나와 다르게 이 새끼는 나를 죽이려 드는 몸짓에 전혀 망설임이 없다. 너와 나의 차이점이었다. 나는 어느새 생겨버린 소소한 감정 때문에 내 앞의 악당을 쉽게 베지 못했고, 너는 악당답게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괴물이었다.  
"뭐야, 왜 이래?"

벽에 부딪친 채로 주저 앉아있는 내 앞에 다가와서 말했다.
 
"전과 같지 않잖아. 재미없게"
 
결국 끝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도 알았으면서. 처음 이 녀석과 싸웠던 그 때 한번 죽었다고 생각했으니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저 앉은 내 앞에 다가오는 악당은 서서 한참 동안 나를 내려다보면서 뜸을 들이다가 제 등에 내가 꽂았던 단도를 뽑아선 내 앞에 던져놓았다.
 
"재미없어"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을 힘도 없어서 벽에 기댄 채로 내 앞에 서 있는 그 악당 녀석을 흐릿한 눈으로 멍하니 본다.
 
"나랑 같이 가"
 
머리칼을 휘어잡고는 억지로 고개를 들게 한 후 나에게 말했다.
 
"....못..가.."
 
"왜"
 
"...너랑 나, 다르니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내 머리칼을 잡은 손을 가볍게 스르르 놓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그는 그저 그렇게 생각보다 너무나도 순순히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내가 가지 않겠다고, 갈 수 없다고, 떠나라고 말해놓고서 우습게도 가지 말라고 잡고 싶었다. 왜 나는 경찰이었을까? 왜 너는 내가 잡아야할 대상이었을까? 왜 너는 나의 앞에 내려왔을까? 왜 너는 그때 나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나를 데리고 갔을까?.... 점점 멀어지는 악당, 그리고 시야를 점점 가려오는 어둠의 혓바닥이 서서히 나를 집어삼킨다.
 
 
 
 
* * *
 
 
 
 
 
눈을 떴을때 내 옆엔 히지카타가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이었고 링겔이 여러 줄기로 주렁주렁 달려있는 걸 보니 입원한 모양이다. 눈을 깜빡거리는 나를 보고 히지카타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괜찮아? 이제 정신이 들어? 하고 물었다. 그리고는 늦어서 미안.. 하고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날짜를 확인하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멍한 상태로 있다가, 무슨 일이 있었나 잠깐 생각하다가 기억해냈다. 그리고 히지카타의 반응을 보고 알았다. 내가 말 한대로 악당은 가버렸고 우리는 사형수를 놓쳤다.
 
악당. 진짜 가버렸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갑자기 복받치는 감정에 그만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내가 선택한 답이였지만 나는 그런 답을 내린 내가 원망스러워서 그냥 뚝뚝 흘리는것도 아니고 어린 아이처럼 목을 놓아 소리까지 내면서 미친 듯이 울었다. 히지카타는 그런 나를 보고 당황스러워 했지만 그냥 말없이 내 옆을 지켜주었다.
 
겨우 히스테릭한 울음을 멈추고나서 멍하니 있자 히지카타가 내 얼굴에 범벅된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렇게 그 놈을 놓친게 억울하냐고 물었다. 놓친게 슬프긴 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잘못 짚었다. 그 말엔 대답하지 않았다. 내심 나는 눈을 떴을 때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악당이었으면 하고 바랐는지도..
​어찌되었든, 그 결과적으로 나는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그 전의 의심하던 눈빛이나 수근거림도 없고 모두가 날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로 봤다. 내가 악당을 필사적으로 잡으려 한 것처럼 봤고, 그 동안의 의심들은 전부다 자취를 감추었다.
 
그 악당 녀석은 잘 돌아갔으려나.. 아직 지구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미련을 가지고서 우리 둘의 흔적이 있던 우중충한 판자촌, 매춘굴 등등 범죄를 저질렀었던 곳을 한 번씩 가보기도 했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역시 없다. 떠났다. 하기사, 그 악당 녀석이 감성적으로 이런 곳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습긴하다. 그 녀석은 나에게 등을 보이며 걸어가면서 날 잊었을 거야. 내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거야. 아니 어쩌면 반대로 그 녀석은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는지도.
 
나는 내 자리를 지켰고, 내 선택을 존중해준 악당도 자신이 있던 자리로 무사히 돌아갔음을 직감으로 알았다. 그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이 어디에선가 죽었다거나 했을 리는 없을테니.. 내 마음이 허전한 것은 그저 다시 그 녀석을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그런 막연한 마음의 먹먹함이었다.
 
히지카타와 나는 가끔 섹스 정도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히지카타는 나를 연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히지카타는 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나는 다시 만나서도 안되고 만나기도 힘든 우주의 악당과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가끔 그 악당이 막연하게 생각나서 미칠 지경이 됐을 때, 악당을 대신해 옆에서 나를 품어주는 사람이 히지카타일 뿐인 관계였다. 히지카타의 깊은 진심은 알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찾는건 히지카타가 아니라는게 죄스럽긴 하다. 
 
​후회는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이 자리를 지킨게 맞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은 힘들다. 돌이켜보면 그 악당 역시 지켜야 할 자리를 놔두고 날 선택해준 것인데 나는 그런 그를 버리고 이 자리를 선택한 것이다. 그가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한들, 그 악당 역시도 약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텐데.. 그 철없는 악당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나 혼자 단정지어 버린채로. 뒤늦게야 깨닫고 나서 결국 난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 밖엔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어찌되었던 되돌릴 수 없는 내 선택의 결과물인 검은 제복을 주섬주섬 주워 입는다. 
 
악당과 나,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뜨거운 온도여서 서로의 주위를 그늘보다 더 싸늘하게 만들어버릴 것임을 나는 알았다. 그 악당도 알았을 것이고.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각오가 되어있었지만 나는 그런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무서웠던거야. 결국. 니가 나를 믿는 만큼 나는 너를 믿지 못했고.
네가 나를 순순히 떠났던 이유는 내가 이 둔영안에 내 자신을 가두었고, 생각보다 더 심하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강박에 병적으로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지.
 
추적추적 비가 올 때 우산을 쓰고 괜시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즐긴다. 햇빛을 싫어하는 그 바보는 잿빛의 어두운 하늘과, 톡톡 떨어지는 비와 우산을 좋아했으니까. 
  
 

 
 * * *
 
 
 
1년 하도고 몇 개월 정도가 지났다.
 
비가 왔다가 막 개어서 햇빛도 없이 우중충하고 바람이 시원하게 일렁인다. 젖은 땅의 흙냄새가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습습하면서도 촉촉한 날이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투명한 물방울이 나무의 잎사귀 끝에 한 알씩 맺혔다가 떨어지는 그 형상에 시선을 맞추고는 멍하니 쳐다본다. 톡 톡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기분 좋다. 
 
-경찰
 
나를 경찰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기에 뭔가 하고 창문 주위를 둘러봤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환영인지 실체인지 모를 나의 악당이 내 앞에 전처럼 우산을 쓰고서 여전한 웃는 낯짝을 하고서 나를 찾아왔으니까. 아-, 기다렸어 나의 악당... 이제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냥 나를 녹여줘

 

환영인지 실체인지 모를 그 녀석은 대답이 없다. 그래서 나는 슬프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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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축자축! 완결!!

완결기념으로 그냥 혼자 카무오키를 쓰게된 계기를 풀어보자면ㅋㅋㅋㅋㅋ

쓰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끌려서 교회(...)를 갔는데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와중

갑자기 스톡홀름 콤플렉스 이야기를 하는거예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는지는 하나도 모르겠고

스톡홀름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갑자기 아! 이거다! 하고 갑자기 가방에서 펜이랑 종이 꺼내서

망상 메모 해놓고 쓴겁니다ㅋㅋㅋㅋ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가볍게 상중하 세편만 쓸까 하다가 다섯편정도는 될 것같아서 그냥 숫자 붙였는데

이렇게 길어질줄이야ㅋㅋㅋㅋ

여튼 이거 쓰면서 제 망상에 제가 치여서 카무오키에 빠졌습니다

다 표현하지 못하는 곶손이라는게 죄송하지만ㅋㅋㅋ....

여튼 지금까지 봐주셔서 완전완전 감사합니다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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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10

2015. 11. 4. 23:39

 

허니멜팅님 께서 그려주셨어요>_<

 

 

 

 

 

 

 

 

 

 

 

 

 

 

 


갑작스럽게 그를 마주 볼 일이 생겼다.

 

 

우리 부대의 대원들은 내가 인질로 잡혔고, 같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한패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하는 듯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를 배신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살기 위해 그 악당 녀석을 모른 척한 것은 맞지만, 아무것도 모른다고 히지카타의 앞에서 말했을지 언정, 한패가 아니라고 한 적은 없다.

 

"그 범인은 어땠어?"

 

6번대였나... 전에 맡고 있던 대장이 잠깐 입원을 해서 예비 배치된 사람이었다. 별로 관심도 없고 나와 친하지도 않았다.

 

"... 뭐가?"

 

"네가 당한다는 건 생각지 못 해서. 강해?"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친한 척이야? 하는 생각에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뭔가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표정.

 

"좀 있다가 그 범인 녀석을 보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갈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순간 바로 대답하려고 그 녀석을 홱 돌아보았다가, 바로 수긍을 하는 것은 조금 수상해 보일 것 같아 그냥 잠자코 그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왜 눈치를 살펴? 그냥 보러 가는 거잖아 가서 한번 살피고..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고 그럴 거야. 감시 차원이지만."

 

사실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해 하고 말하면서 그는 그냥 웃었다. 이 녀석은 내가 그를 무서워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 녀석은 그 범인은 나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고, 그래서 그를 마주 보면 내가 발작이라도 일으키면서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은 거겠지. 그래 가자 하고 말을 하기도 전에 그 녀석은 내 팔목을 꽉 잡고는 웃으면서, 따라와 지금 갈 거야 하고는 거칠게 끌어당겼다. 지금 내가 근신 중인 데다가, 히지카타가 옆에 없어서 이렇게 막 대하는구나 싶어서 이 건방진 태도의 이 녀석이 잡은 손을 확 뿌리치면서 말했다.

 

"잡지 마 기분 나빠"

 

나는 그를 앞서서 걸으면서 다시 말했다.

 

"앞장서, 가자면서"

 

그는 당황한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이내 다시 내 어깨에 손을 확 올리면서 말했다.

 

"센 척 하긴, 무섭지?"

 

아.. 오늘따라 재수 없게 왜 이래? 어깨에 얹은 손을 확 뒤집어서 부러트려놓으려다가, 한 번 참았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전에 자료에서도 본 것과 흡사하게 지하에 통로가 있었고(자료실에서 본 자료는 공개적인 자료인만큼 많은 정보가 있지는 않았다.), 지키는 사람들은 우리의 얼굴과 직급을 확인하고는 비교적 쉽게 들여보내줬다. 밖에서 봤을때는 좁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안은 굉장히 깊었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조차 인증이 필요했다. 이 녀석이 누른 층은 지하 14층이었다.

 

"인증할 땐 뭐가 필요한 거야?"

 

내가 묻자 그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왜? 내가 두고 갈까 봐 무서워? 하고 묻는다. 저렇게 재수 없는 캐릭터였나? 죽여버리고 싶다.

 

"사실 오늘부터 내가 담당자로 지정되어서 나만 출입이 가능해. 지문인식이나 홍체 인식 뭐 그런 거 있잖아"

 

애매하게 답을 한 후 자신도 여기에 처음 와본다면서 웃었다. 이 새끼 무서워서 나한테 같이 가자고 한거 아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어두운 공간이 열렸다. 드문드문 있는 횃불만이 있었고, 습한 냄새가 가득 매워져 있었다. 지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어차피 곧 실험실로 옮길 것이기에 일부러 많은 사람들을 배치하진 않은 것 같다. 간수들은 나와 그를 보고는 인사했다. 엄청난 것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그런 것은 없었다. 그냥 보통 상상하는 지하 감옥처럼 단순했고, 빛이 없고 칙칙했으며, 막연한 느낌의 답답함이 나를 짓누르는 그런 곳이었다. 어디에서 떨어지는지 모를 물 소리가 똑, 똑, 똑 하고 울리는 것은 살짝 으스스했다.

 

"아, 저기다"

 

그가 가리킨 곳은 문이라기보다는 무슨 봉인을 해놓은 사막 한가운데의 컨테이너 박스 밀실 같은 느낌으로 엄청난 양의 사슬이 칭칭 감겨있었다. 아예 그냥 커다란 검은색 네모난 상자 같아 보이는 그곳. 내 옆에 이 새끼가 없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이 새끼가 어떤 꼴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여전히 웃고 있으려나? 개새끼.

 

가까이 다가가자 옆에 있는 이 녀석이 어떤 버튼을 누르자 앞에 있는 철문이 위로 올라가면서 열렸다. 그리고는 그 안에 있는 커다란 철창이 드러나면서 서서히 내가 기다리고,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그 악당 녀석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열리는 쪽을 바라보면서 손엔 쇠사슬이 묶여져서는 서 있는 나를 보고 놀란 듯이 눈을 치켜떴다. 나 역시 며칠 동안 그의 부재 때문이었는지, 오랜만에 본 그가 너무 반가워서 옆의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도 그런 나를 보고는 그냥 피식 웃었다.

 

같이 동행한 그 녀석 뒤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그를 쳐다보고 있자, 그가 나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왜 그렇게 서 있어? 가까이 와"

 

제 팔로 내 목을 확 휘어잡으면서 그가 나를 그 녀석이 있는 그 창살로 가까이 잡아끌면서 기분 나쁘게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봐, 너, 이 녀석에게 끌려다녔잖아"

 

뭐야, 생각보다 키도 작고 별로 위협적인 것 같지는 않네? 이 새끼가 악당을 보고 한 말이었다. 내 옆에 있는 이 새끼의 말은 신경 쓰고 있지 않았으나,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있는 저 악당, 사실 당장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 녀석이 옆에 있었으니 하지 못했지만. 약간 옆의 이 녀석이 거슬린다는 식의 표정을 무의식중에 짓고 있었는지 악당이 날 보고는 전에 마주쳤을 때와 같은 웃는 낯짝으로 말했다.

 

"얼른 없애. 거슬리잖아"

 

"저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내 옆의 녀석은 못 알아듣겠다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나에게 물었고 신센구미의 제복을 입고 있는 나는 이 녀석을 없앨 수는 없었고, 나에겐 한없이 방심하고 있는 이 녀석의 뒷 목을 내리쳐 기절시켰다. 나로서는 자비를 베푼 것이다.

 

힘 없이 쓰러지는 그 녀석을 보고는 나는 악당이 있는 철장에 다가가선 반가움이 주체되지 않았지만 애써 퉁명스럽게 말했다.

 

"존나 짜증난다 너"

 

나를 보고 웃는 그 녀석, 저 새끼가 죽는다면 그 죽이는 사람이 나였으면 했다. 그것이 이 악당과 나의 사랑이었다. 처음에 만난 순간부터, 같이 다니면서 약간 관계에 변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사람이 되길 원하는 것은 변함없었으니까.

 

"너 역시"

 

"내가 오길 기다렸지?"

 

"... 사진보다 실제로 보는 게 낫네. 제복 입은 모습은. 전에 신문에서 봤을 때는 너무 착실해 보였어"

 

"왜 순순히 이곳에 왔어?"

 

"... 몰라 나도"

 

그가 잠깐 생각하는듯하더니 빙긋 웃으면서 다시 나에게 말했다.

 

"너, 생각보다 늦게 왔어. 바로 달려올 줄 알았는데"

 

기대하긴.

 

"바로 달려오기엔.. 나도 이것저것 생각해야 했으니까"

 

나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는 주위를 둘러보곤 이어서 말했다.

 

"나가. 넌 나갈 수 있잖아"

 

"너는?"

 

"나?..."

 

"왜? 네가 항상 말하는 그 새끼랑 있으니까 안심되나 봐? 응?"

 

"... 뭐라는 거야?"

 

"네가 맨날 말하는 그 녀석 있잖아. 다른 사람에겐 피도 눈물도 없는 네가 꼼짝 못하는 그 녀석"

 

비아냥 대는 말투. 내가 저와 함께 범죄를 저질러 왔다는 것 역시 부정했다는 것은 대강 알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내가 대원들의 달라진 태도에 싫증을 느꼈다고는 하나, 그래도 이 자리가 내 자리라는 확신은 있었다. 이런 혼란과 싫증은 잠깐이고, 조금만 견디면 되는 이런 소소한 감정 때문에 송두리째 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래, 이 악당의 말대로 안심했다. 이 악당이 나와 맞대는 창이었다면 히지카타는 나에게 있어 방패였다. 혼란스러운 내가 지금 찾고 있는 것은 방패였는지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가 그 말을 하고는 소리 내어서 잠시 웃고는 다시 말했다.

 

"너도 보통은 아니네. 역시, 하긴 그 정도는 돼야 나랑 같은 족속 아니겠어?"

 

한참을 이 악당과 서로를 쳐다보다가, 나는 그저 희미하게 살짝 웃으면서, 다음에 봐. 하고 말했다. 시간이 초과되어 내려오는 철문 사이로 보이는 그 녀석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화가 나 있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닫힌 철문 앞에서 알 수 없는 허전함에 멍하니 서 있다가 기절시킨 이 재수 없는 새끼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끌고 와서는 잔뜩 패서 깨운 뒤에 나는 그곳을 나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 * *

 

 

 

 

 


"그 범인 만나고 왔다면서?"

 

히지카타가 돌아와서 그 말을 들었는지 나에게 물었다. 날 그곳으로 데리고 갔던 그 6번대 대장은 히지카타에게 엄청 깨졌다고 들었다. 히지카타는 내가 그곳에 간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응"

 

"6번대 녀석은 갑자기 기절해서 기억이 없다는데, 그곳에서 뭘 했어?"

 

"... 이야기"

 

"무슨 이야기?"

 

"... 그냥 이야기"

 

내 말에 히지카타는 내 앞에서 그냥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는 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죽고 싶어?"

 

"아니"

 

"... 그래. 알고 있으면 됐어"

 

 

우리 둘 사이엔 적막이, 그리고 바깥에는 비가 오려는지 모르겠지만 차가운 기운이 돈다. 우리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밖에 있는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그의 얼굴에 반쯤 비스듬히 걸쳐져 그의 얼굴의 반절이 어둡고, 반절이 밝게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새끼 얼굴이야 여전히 재수 없게 잘생겼지만.

 

히지카타는 그날 내 앞에서 한참 담배를 피우다가, 말없이 나가선 술을 진탕 먹고 들어왔다. 이전 같으면 나에게 같이 마시자면서 간단한 말이라도 했을 텐데 그런 말은 없었다. 사실 그렇게 물어왔어도 나는 동행하지 않았을 테지만. 돌아와서는 아직 잠들지 않은 나를 보고 비틀비틀 다가와서는 나를 와락 끌어안으면서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말했다.

 

"... 미치겠다.."

 

술 냄새.

 

".. 아... 나.. 너무 힘들다.."

 

나를 다시금 꼬옥 끌어안는 이 녀석을 보면서 힘들어하는 원인이 나 때문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으나, 내 머릿속에는 마지막에 봤던 화난 듯 한 그 악당 녀석의 눈 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서 절망적이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날 끌어안고서 있던 히지카타는 나를 들여다보고는 내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서 제 입술을 내 이마에, 눈에, 그리고 뺨, 그리고 귓볼에, 그리고 목덜미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그가 나를 원했고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거부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열기를 띈 그의 손길, 어깨에 걸쳐진 옷자락을 애무하던 입술로 조심스럽게 끌어내리는 행위에도 나는 입에 대지 않은 술에 취한 듯 몽롱해서 이 새끼가 하는 행동에 순순히 응했다. 이 따스한 느낌은 히지카타가 나를 원하고 있었던 시간만큼, 기다렸던 기간만큼 눌려있었던 거칠지 않은 욕망이라는 것을 느꼈다.. 바스락거리는 흰 시트를 꽉 붙잡은 내 작은 손을 제 큰 손으로 감싸 주는 것도, 허리와 가슴을 쓸어내리는 부드러운 손길도, 동그랗게 솟아 있는 유두를 혀끝으로 조심스럽게 핥는 것도... 그가 내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을 때도 내 작은 신음 한 번에 아파? 하고 물으면서 끊임없이 내 쇄골과 가슴에 애무를 해댔다.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하겠다고 몇 번이나 내 귀에 대고 속삭였지만 되려 나는 히지카타의 뒷목을 한껏 끌어안으면서 계속하라고 말했다.

 

"소고.. 내가.... 내가..."

 

"하아....으읏.."

 

"...좋아...해.. 사랑해.. 하아..."

 

"하..아..아앗..."

 

".....사랑..해..."

 

새삼 히지카타는 어깨가 굉장히 크다. 끌어안은 나를 잔뜩 품어줄 만큼. 뜨거운 숨이 맞닿을 때마다 도톰한 입술이 살며시 포개졌다.

 

정신과 육체의 결합이 모두 이루어졌을 때 사랑이 완벽한 것이라고 했지만, 나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사랑이라고 느끼지 못 했다. 하지만 자상하다 못해 너무 부드러워서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나를 안는 방식은. 저 감옥에 있는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

 

 

히지카타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 벅찰 만큼.

 

 

관계가 끝나고서 그는 나를 꼬옥 끌어안고서 잠에 들었다. 더워, 답답해하고 빠져나가려고 해도 절대 놔주지 않았다. 방금 전 방안을 가득 메웠던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 들면서 나는 몽롱했던 정신을 다잡으며 제정신을 차렸고, 이내 홀가분해졌다. 뚜렷한 윤곽을 잡은 기분이 들었다. 고민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답답한 이 녀석의 더운 품을 빠져나가야겠다 하는 생각만이 들었다.

 

히지카타는 그 열기 가득한 정사 후 아침에는 저가 술을 먹고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실수를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나 역시 동의한 부분이기에 그냥 피식 웃으면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네 녀석이 그런 실수를 저지를 리 없잖아. 나 역시 거부하지 않았고. 그는 나에게 뒤늦게서야 관계할 때 속삭였었던 제 마음을 정식으로 털어놓았고, 나는 무미건조하게 '나도' 하고 대답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히지카타가 나가고 나서 그가 우연히 두고 간 단도 하나를 몰래 품 안에 넣었다.

 

 


 

 

* * *

 

 

 

 

이틀. 이틀 후였다. 악당 녀석을 병원으로 옮기는 것으로 확정 지어진 날은. 자꾸 정세를 살펴도 혼란스럽지 않고 다른 때와 비슷했다. 어느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고 그 녀석 역시 조용히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는 조급했다. 내가 그렇게 찾아가고 뒤돌아서 왔을 때 악당 녀석의 화가 난 눈을 보고 나는 그가 어떻게 해서든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와 함께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살짝이나마 비췄기 때문에 열이 받아서라도, 그래서 저 혼자라도 도망쳤길 바랐다. 아, 근데 그 새끼가 혼자 조용히 나갈 새끼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점이긴 하다.

 

내가 발 걸음을 옮겨 찾아간 사람은 그 6번대 대장이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나를 보고 그도 의아했는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선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오늘은 안가?"

 

"어딜?"

 

"사형수 수용소"

 

"어제 다녀왔는데"

 

"별일 없었어?"

 

"거기에서 별일이 있었으면 이렇게 조용하겠어? 왜 뭔 일인데?"

 

"나, 거기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

 

"뭔데? 다음에 가면 가져다줄게"

 

"아, 아냐 오늘 가야 해, 그리고 나도 가야되서.. 같이 좀 가줘"

 

"오늘은 바빠"

 

"그럼 언제 갈 건데?"

 

"음... 내일모레? 그때 옮기는 날이거든, 그때나 갈 것 같아"

 

그를 병원으로 옮기는 날이었다.

 

"뭔데? 그렇게 중요한 거야?"

 

내가 그 말을 듣고 잠잠히 있자 그가 다시 내게 물었다.

 

"응"

 

"어쨌든 좀만 기다려. 아, 그리고 너 데리고 가서 나, 부장한테 엄청 깨졌었거든? 널 데려가는 건 너 하는 것 좀 보고 생각해볼게"

 

그가 날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저 새끼가...

 

"닥치고 안내해"

 

슬슬 약 올리는 이 새끼의 행동이 재수 없어서 까칠하게 말했다. 내가 열받았다는 것을 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날 돌아보곤 말했다.

 

"그래, 가자. 그렇게 가야 한다면야. 근데 나 너 데려간거 알면 부장한테 엄청 깨져. 다 네 탓으로 돌릴거다"

 

나는 좋을대로 하라고 말했다. 히지카타야 뭐 ... 물론 내가 그 곳에 다녀왔을때, 죽고 싶냐고 물었던 것이 생각났고(협박이 아니라 사형당하고 싶냐는 의미였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대던 모습이 생각났지만 지금은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전과 똑같은 절차를 밟은 후 들어가서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선 그가 말했다.

 

"난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릴게 가서 가지고 와"

 

"그러던가"

 

"사실 나 거기 가기싫어. 기분이 별로야. 엘리베이터에서 조용히 기다릴게"

 

"그래"

 

엘리베이터의 숫자 표지판이 한 글자 한 글자 모습을 바뀌면서 변한다.

 

..

12

13

14

 


"자, 다녀와"

 

엘리베이터가 도착 안내를 하려 잠시 정적이 흘렀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6번대 녀석이 내 앞에 서서 말을 했고 열리자마자 왠 간수 하나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힘 없이 쓰러졌다. 그 탓에 크게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와 그 안에서 놀란 나와 그 6번대 녀석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고는 동시에 열린 곳을 보았다. 그 앞에 서 있는 것은 익숙하게 피를 뒤집어 쓴 악당 녀석. 손가락 끝에 흥건히 묻은 피를 핥는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정신차렸구나, 너. 그런 감탄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내 옆에 있는 6번대 대장 녀석의 따스한 피 세례를 받았다. 그 역시 허무하게 내 옆에서 차갑게 식는 시체가 되어, 엘리베이터에서 조용히 기다리겠다고 했던 말이 유언이라도 되어버린 듯 엘리베이터 안에 요란하게 쓰러졌다.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불과 얼마 전에 이 악당녀석과 내가 저지르고 다녔던 일들은 항상 이런 일들이었으니까. 밖에 있는 그 녀석과, 안에 있는 나 사이에 쓰러진 이름 모를 간수의 시체가 엘리베이터문을 막는 역할을 도맡아 나와 그 사이의 경계에서 문이 닫히지 않게 막아주었다. 엘리베이터의 전등은 요란한 충격 때문인지 자꾸만 깜빡 거렸고 닫히지 못하는 엘리베이터 문이 자꾸만 숨을 격하게 쉬듯이 껄덕거렸다. 피를 뒤집어 쓴 나, 그리고 그 녀석은 그냥 서로 마주보고 씨익 웃었다.

 

"멋있네. 첫 번째 탈출자야 너. 축하해. 아, 아직 완벽히 나간건 아니니까 축하는 좀 이른 건가?"

 

"할 말은 그 뿐이야?'

 

"글쎄.."

 

그는 내가 있는 엘리베이터로 앞에 쓰러진 시체를 짓밟고 다가와서는 말했다.

 

"축하만 하지말고 선물도 주지 그래?"

 

그는 웃는 얼굴로 내 앞에 다가와서는 입술을 맞대었다. 피 냄새. 그와 내 사이에 딱 어울리는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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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9

2015. 10. 26. 23:51

 

  

 

 

 

 

 

 

 

 

 

 

 

 

 

 

 

도망?

나랑 도망가자고?

  

철장 사이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슬프다 못해 애처롭다. 나를 위해서 저런 표정을 지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지만 이상하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네가.. 가겠다고 하면 난 지금이라도..."

  

"..."

  

".... 지금이라도.. 너랑 도망갈 수 있어"

  

"...."

  

지랄

  

이 녀석은 두렵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빼낸다면 빼낼 수야 있지만(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 그 이후에 제 자신이 입을 타격과, 또한 내가 입을 타격을 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저 답지 않게 도망갈까? 하고 묻는 것이다. 히지카타는 철장 사이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달라는 듯이, 다소 힘없게. 하지만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 손 줘봐"

  

그가 말했지만 그 말에도 나는 그냥 차가운 눈으로 이 녀석이 내민 손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안 가"

  

"... 응?"

  

"너랑 안 간다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니까 빨리 꺼내줘"

 

 

 

 

 

 

* * *

 

 

 

 

 

히지카타는 그 자신도 나와 함께 갇힌 듯이 내가 눈을 뜨면 내 옆에 있었다. 이 새끼가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나도 안다. 이 날은 더 피곤했는지 나와 그의 사이에 있는 차가운 철장에 등을 기대 고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런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새삼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도 괜찮아. 너는 나를 위해 이런 희생을 하는 것을 좋아하잖아. 너 스스로가 자처해 왔잖아.

  

거칠해진 피부, 그리고 항상 올곧은 어깨와 등이 새삼 그날따라 너무도 많은 고민과, 많은 짐을 짊어진 듯 힘겨워 보여서 내심 이 가운데의 철장이 없었다면 한번 안아주고 싶다 하는 나답지 않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같이 도망치자고 한 말이 진심이던 아니었든 간에, 말이라도 같이 가겠다고 할 걸 그랬나 아까 내밀었던 손을 못 이기는 척 잡아줄 걸 그랬나 하고 약간의 후회를 잠깐 품기도 했다. 아... 내가 미친 거지.

 

 

 

 

 

 

* * *

 

 

 

 

  

이틀 뒤, 문이 열렸다. 처음 보는 얼굴의 몇 명이 나에게 나오라고 말했다. 사실 정말 나를 꺼낼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이 들었는데 정말 나를 빼내다니, 새삼 대단하다. 그 둘의 뒤를 따라가자 히지카타가 내 앞에 와서 섰다. 그리고는 내 팔을 붙잡고는 막무가내로 나를 데리고 제 방으로 끌고 갔다.

  

"근신이야 너. 기간 동안 조용히 지내"

  

"... 응"

  

"왜 자꾸 네가 불안하지?"

  

"... 내가 뭐"

  

"불안해 그냥"

  

언제까지나 제 품 안의 범위에서만 내가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돌이켜보면 나쁜 짓을 했어도 제복을 입고 경찰 신분에 맞게, 다소 거칠었지만 악당을 퇴치한다는 개념 안에서 날뛰었던 내가 범죄라는 사탕을 처음 맛봤다는 것을 그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았다. 할 말이 끝난 듯 가만히 서있는 그를 보고 돌아간다고 말하고 뒤돌자 그가 날 잡으면서 말했다.

  

"나랑 있어 당분간"

  

"..."

  

"왜? 방 치워놨어? 죽은 줄 알고?"

  

텅 빈 방을 상상하곤 괜스레 우스워서 피식 웃었다.

  

"아니 손 하나 까딱 안 했어"

  

"근데?"

  

"불안해. 나랑 같이 있어"

  

뭐가 불안하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혼자가 되었을 때 종종 찾아오는 그 악당의 잔상이 나를 미치게 할 것만 같아서 잠자코 끄덕였다. 그는 그런 나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분명 편안하다. 누군가에게 쫓길 염려도 없고,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내가 누구인지 감춰야 한다는 강박도 없이, 내 옆에 있는 나에게만 한없이 물러터진 권력자와 나란히 누워 같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매서운 눈매, 날카로운 콧날, 빛이 발하면 진한 녹색으로 빛을 발하는 머리칼, 다소 거칠어진 피부임에도 여전히 잘생긴 이 새끼, 그리고 청색을 띤 회색 눈동자.. 내가 제 옆에 있음을 확인해서 안심했는지 다시 눈을 스르르 감는다. 그리고는 잠꼬대하듯이 중얼거렸다.

  

"... 다행..이야...."

  

분명히 편안하고, 더 없이 따뜻했지만 자꾸만 나는 무언가가 풀리지 않는 듯한 답답함에 계속 몸을 뒤척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일어나 앉았다. 새벽인 듯 고요한 공기 소리와 새파란 느낌이 살짝 으스스했다. 비가 오나? 싶게 습한 것 같기도 하고.. 이 녀석의 방을 살짝 둘러보다가 이 녀석의 책상에 다가가서 앉았다. 성격답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역시나 주인을 닮았구나 하고 수긍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한 번도 볼 생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이 녀석의 두꺼운 서류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기분이다. 하지만, 직감이라는 것이었을까? 수많은 서류 뭉치중 하나를 그냥 빼내어 펼쳤을 때, 나는 새벽의 공기와 동화해 온몸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집단 학살 사건에 대한 보고서. 악당 녀석의 정보가 들어있는 서류였다.

  

괜히 뒤척이는 히지카타의 움직임에 놀라서 흠칫했다가, 조심스럽게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얇은 종이 한 장을 넘기는 것일 뿐인데 왜 이렇게 손이 떨리는지 도둑질을 하는 듯한 느낌에 조마조마해하면서 이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있는지, 이 서류에 기록되어있는 정보가 혹시나 내 예상과 같이 이상한 인체실험에 의한 보고서는 아닐지 하는 불안함이 나를 뒤덮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누나가 죽었을 때 이후로 알지 못했었는데.. 울음소리가 날 것 같아서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눈시울이 뜨겁게 타는 것을 느꼈다. 그 감옥의 호실 번호로 보이는 숫자가 적혀 있고, 사진은 없었다. 죄목 만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다 어디에서 있었던 일인지 모두 다 알고 있는 일이었는데, 죄목 중의 하나에는 새로 뒤집어쓴 죄목도 하나 있었다.

  

 

 

[납치한 경찰을 동화시켜 죄를 짓게 했다.]

[어떤 수법을 사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나, 그 경찰의 취조 결과 그는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림. 실제로 매춘굴 학살 살인사건의 경우 증인이 된 어떤 한 아이는 그 경찰은 친절했다고 말하면서 혹시나 죽진 않았냐고 묻기도 했다.]

[그가 경찰임을 알고 있어서 의도치 않게 악당과 그를 집에 재워주고도 살아난 노인은 그 경찰에게선 전혀 살의가 없었다고 증언]

  

 

 

이 부분은 히지카타가 힘을 썼다는 것을 알았다.

  

뒷장으로 넘길수록, 사건에 대한 기록만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고, 그의 과거 행적까지 함께 들여다보았다. 하루사메 단장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이 녀석의 과거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특이사항란에 적어진 것을 보니 그 안에서는 이상하리만큼 고분고분해서 의아했다고 쓰여 있었다. 웃는 얼굴이 선하다는 느낌보다는 소름 끼치는 느낌이다 하고 쓰여있는 구절을 보자 그 녀석을 새삼스레 다시 마주치고 싶었다. 굉장히 여유로운 모습이며, 가끔 그 앞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는데 그 부분을 읽고 나는 슬그머니 웃었다.

  

 

  

[여유로운 모습이 특징, 고분고분하지만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는 평]

[특정 인물 A(오키타 소고)에 대해서 가끔 묻기도 하는데 왜 묻는지 알 수 없는 질문을 함]

[특정 인물과의 관계가 어떤지, 주로 어떤 평판을 받고 있는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등등 사소한 질문]

[한 대원이 되려 그에게 관계를 묻자 잠깐 고민하더니 그냥 웃었다고 함.]

  

 

 

나에 대해서 물었다니. 그 부분에서 왠지 모르게 기뻤다.

  

 

[특정 인물 B(히지카타 토시로)에 대해서도 묻는 듯 한 행동을 보임. 특정 인물 B(히지카타 토시로)는 이 범인을 알지도 못하고, 본적도 없다고 하지만 이 범인은 특정 인물 B(히지카타 토시로)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함]  

[이름은 모르는지 몇몇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그에 대해서도 물음]

  

  

히지카타에 대해서 물어봤다.. 라.. 물론 아무도 대답 같은 건 해주지 않았겠지만 왜 그가 히지카타에 대해서 물었을까?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알았다. 아.. 나와 히지카타의 사이를 부러워하고 있구나.. 전에 둔영에 있었을 때 내가 히지카타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내가 히지카타에게 잡혔던 그때에, 내가 아무 동작도 취하지 못한 채 얼어 있었던 그 순간이 그에겐 나름 충격이었는지도. 순순히 잡혀온 이유는 나의 선택을 보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이유일 지도 모르지만 내 멋대로 생각했다.

  

뒷장을 휙휙 넘기다 보니 중간에 끼워져 있는 종이 한 장. 인체실험 동의서 등등 그에게 의사를 묻는 서류는 아니고, 막부 측의 동의서였다. 싸인이 되어 있는 날짜를 확인하니 오늘 날짜여서 안심했다. 서류의 한가운데에 집행 날짜가 적혀 있는 것을 보니, 오늘부터 5일 후였다.

  

건방진 새끼. 감히 나를 시험하려 들어? 당장이라도 눈앞에 마주 앉혀 놓고 대가리라도 한대 날려주고 싶은 기분이다. 말 그대로 이 새끼는 씨발 새끼였다. 그냥 놔둬도 이 새끼는 저가 알아서 나올 거라는 믿음은 강했지만 그냥 이 새끼가 나를 두고 시험하려 들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났다.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도, 내가 저를 선택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내가 가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리고 혹시나 잘못돼서 정말로 인체실험 대상이 되어버리면 어쩌려고? 건방진 새끼야. 심지어 나는 나에 대해서 부정하며,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너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웠는데. 뭐.. 혹시나 다시 만나면 이건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올 것이라는 믿음 하에 했던 행동이라고 변명하겠지만.

  

나는 서류를 다시 책상에 꽂아놓고 잠자리에 누워서 나를 기만하고 있는 악당의 태도가 왜인지 모르게 자꾸 화가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 * *

 

 

 

 

 

다음 날 나는 전처럼 신센구미의 제복을 입고서 앉아 있었다. 아직 나는 근신 중이고, 그래서 당당히 1번대 대장으로써 회의를 참석한다거나 하는 것은 하지 못 했다. 히지카타는 나에게 저를 따라오라고, 가만히 있으면 답답하니 드라이브도 할 겸 순찰을 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냥 조용히 둔영에서 있겠다고 말했다.

  

"... 그래? 그럼 경위서나 쓰던지"

  

거절한 나에게 그가 말했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투덜대면서 내 옆을 떠나는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자료실에 가서 경위서라는 글만 써놓은 채로 앉아서 쓰려고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굴리다가 어디부터 어떻게 무얼 써야 하는지 하나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평소처럼 그냥 안대를 쓰고 그대로 엎드렸다. 나를 믿어서 나를 위해주는 히지카타와, 저에게 올 것이라고 나를 확신하면서 나를 끌어당기는 그 악당.. 그 사이에서 나는 같잖게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거 들었어?"

  

"뭐?"

  

"히지카타 부장님이 오키타 대장.."

  

"야야야, 저기 오키타 대장 있잖아!"

  

"자는 거 아냐?"

  

"어쨌든 목소리 낮춰!"

  

"아.. 주의할게. 암튼 부장님 이번에 완전 막부의 모든 사람들에게 질타 받았었다잖아"

  

"왜?"

  

"너도 알잖아. 오키타 대장.. 솔직히 아직 증거도 부족하고 용의자 선상에서 유력한데도 혼자 끝까지 엄청 우겼다나 봐. 근데 부장님이 평소에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한 번은 믿어주겠다는 식으로 됐나봐. 그런데도 오키타 대장 근신 먹은 거 보면 아직 미심쩍다는 것 같아, 아무래도 사건이 사건인 만큼 좋은 눈으로 보진 않았겠지. 부장님도 참.... 아, 혹시 보고서 봤어? 그 사형인 수용소에 잡힌 그 녀석이 오키타 대장에 대해서 묻는다잖아. 아아, 거기 지키던 대원도 너무 이상해서 물어봤데 정말 오키타 대장은 정말로 죄를 짓지 않았냐, 너 혼자 저지른 일이냐 하고 물었더니 아 재수없어. 화가 나려고 해. 죽여버릴까? 하고 웃으면서 말했데. 또라이 새끼 같지 않냐..?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어? 그거 물어본 새끼는 아예 기겁해서 도망쳤데.. 그 또라이 새끼의 생각이야 내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재수 없어 화가 나려고 해 죽여버릴까? 이거 나한테 하는 말이지? 빌어먹을 악당 새끼야. 나도 지금 널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나 있거든?

 

"... 흐음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해"

  

안대를 쓰고 있어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부의 사정이 이렇구나 하는 것은 알았다. 어제 보고서도 훔쳐봤었으니까. 날 억지로라도 믿어주는 건 히지카타 너뿐이었구나.

  

"근신기간 끝나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1번대 대장으로 돌아오는 거야?"

  

"음... 복잡한 뭔가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까? 하여간 같은 범죄자라 하더라도 뒤에서 힘써주는 사람이 있으면 빠져나가기도 쉬워"

  

이런 말들이 오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히지카타 너는. 그리고 내가 이런 말을 들으면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하지만 나는 상처고 뭐고 일단 그 악당과의 만남으로써 본래 있던 이 곳에서 올바른 치열에 덧니처럼 튀어나와 잡아 뽑아버려야만 하는 존재였다.

  

키득거리는 대원들. 뒤에서 그런 수근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 대원들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곳에 있기에 너무나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미 그 악당 녀석과 처음에 입술을 맞대고 키스를 하는 그 순간 녹아버린 나의 죄책감이, 그래서 비집고 나와 버린 나의 가시가, 이젠 더 억누를 수 없이 커져버린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들을 이해했다. 저 새끼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지금 열 받아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에게 어떤 무기가 있는지 생각하면서 굴리고 있던 연필을 한 손으로 힘주어 쥐고 있었다. 근신중이라 무기를 빼앗겼기에 망정이지, 내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 들이 나가는 소리를 듣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료실에서 처음, 아니 두 번째로 자료실에서 자료를 찾았다.

  

‘살인자 수용소’

  

제목도 깔끔해서 좋다.

 

 

 

 

 

* * *

  

  

  

 

  

곤도씨는 이런 시점에 출장을 가서 없었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히지카타뿐이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히지카타는 역시나 그런 내 마음을 여전히 들여다보듯이 내 상태를 알고서 잠시라도 떨어지려 하지 않고서 나를 무척이나 챙겨주었다. 히지카타가 옆에 있을 때는 다른 대원들도 똑같이 전처럼 인사를 하고 예를 갖추며 행동했지만 그런 것들이 이미 나는 다 싫었다. 그날 자료실에서 들은 이야기로 인해서 나는 오히려 히지카타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히지카타도 마찬가지로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짓을 할까 봐 나를 감시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서 갑자기 그의 행동 역시 이 안에 있는 다른 대원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

오키타 수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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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8

2015. 10. 17. 10:30








나와 악당은 그렇게 각자로 분리된 채로 연행되었다. 악당은 대원들과 대장급들이 함께 연행을 했는지 나와 히지카타 단 둘만 남겨져 있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약간 기다림 비스무레 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내 정체가 낱낱히 드러나 약간 수치스럽기도 하고, 왜 인지 모르게 두렵기도 하고...

 

히지카타는 체포를 하려고 수갑을 채우기 전엔 내가 누구인지 몰랐던 것 같다. 내가 놀란 만큼 그도 나를 보고는 한참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었으니까. 우리 둘 다 한참동안 말문이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와 나는 침묵 안에서 손목에 은빛으로 말갛게 빛나는 사슬로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그냥 이 상황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서 발걸음을 옮기는 히지카타를 따라서 왜인지 모르게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데, 그가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연결되어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와락 끌어안았다. 순간적이기도 하고 내가 조금 얼떨떨한 상태였기에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의 가슴팍 쯔음에 파묻혀져 가득 번지는 익숙한 담배향과 그의 체취를 가득 들이 쉬자 다시금 아.. 정말로 나 이 녀석의 옆에 와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줄...알았어... 진짜로..."

 

"..."

 

"그럴리.. 없다고... 생각 하면서도 소식 하나 없이....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일이야... "

 

"..."

 

"...... 맞지...? 소고... 너 맞지...?"

 

히지카타는 다시 내 얼굴을 보면서, 어울리지 않게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까칠한 굳은 살이 박혀 거친 손으로 내 뺨을 쓸어내리면서 물었다. 사실 내 생각 안의 히지카타는 이런 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망설임 없이 나를 내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약간은 망설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날 내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귀신 부장님이시잖아.

 

그렇기에 그의 태도가 당황스러웠고, 나는 다시금 멍하니 있었다. 이 녀석의 태도마저 이상해서 자꾸만 실감이 나지 않는 듯 하다. 아직도 내 옆엔 악당의 잔상이 남아서 잠시 후면 나에게 장난을 치면서, '맘에 들지 않는데 죽여버릴까?' 하는 헛소리를 하면서 내 옆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타게 된 신센구미 전용 경찰차는 느낌이 이상했다. 경찰차를 빼앗아서 악당 녀석과  즐겨 타본 적은 있었지만... 창밖을 가만히 내다보면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너무 조용한 내가 이상했는지 히지카타가 나를 한번 힐끗 보고는 물었다.

 

"다친데는?"

 

"...없어"

 

"..그래.. 다행이다.."

 

이상하게 히지카타는 정작 바로 물었어야 할 왜 그런 범죄자와 함께 했는지,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한 것은 묻지 않았다. 그 점은 의아했다.

 

 

 

 

 

* * *

 

 

 

 

신센구미 둔영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연행된 나는 유치소에 갇혔다.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하자면서 애써 나의 시선을 피하는 히지카타를 보면서 그래도 저 새끼 딴에는 나를 나름 배려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머릿속은 주파수를 잡지 못하는 라디오처럼 혼란스러워서 한참을 멍하니 텅빈 어두운 벽만을 혼자 바라보다가도 환청인지 뭔지 모를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혹시나 악당 녀석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밖을 정신없이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악당은 오지 않았다. 우스웠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수동적인 사람이 되었는지. 악당. 너는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왜 순순히 잡힌거야?

 

 

 

 

* * *

 

 

 

 

다음날, 취조실에 끌려간 나의 눈 앞에 히지카타가 비춰졌다. 그는 여전히 나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거울로 보이지만 감시망인 그 거울 뒷 쪽에선 몇 명일지 모르는 사람들이 나와 히지카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일단은.... 조사.... 니까"

 

그는 여전히 자신 없는 표정을 하고서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말했다.

 

"이런 입장으로 여기에 와보니까 또 다르네요"

 

"..."

 

"몇 명이나 지켜보고 있어요?"

 

"...없어.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

 

"....거짓말"

 

"진짜야"

 

옆에 있는 녹음 테이프의 녹음 단추를 누르면서 그제서야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냉정을 찾은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 와서야 범죄자가 되어버린 것이 실감났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아.."  

 

"...."

 

"언제부터 그 녀석과 함께 한거야?"

 

"...."

 

"증인들의 증언이 있어 어떤 사람은 네가 그 녀석을 순순히 따라가는 것을 보고, 동료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어떻게 된 거야?"

 

"..."

 

"다른 지방의 경찰들의 증언을 받고자 하지만, 현 상태로는 제대로 증언을 할 수 없는 상태라서 받을 수 없어"

 

"...."

 

"너도 그 녀석과 같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어?"

 

".....히지카타씨"

 

내가 입을 열었다. 히지카타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다소 불안한 눈빛으로, 녹음기의 눈치를 보듯이 녹음기를 힐긋 쳐다보고는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 녀석은요? 그 녀석은 어디에 있어요?"

 

"....같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거야?"

 

"그 녀석도 취조 했어요? 뭐라던가요? 그 녀석은?"

 

내가 그 말을 뱉자마자 얼굴이 홱 돌아가면서 뺨이 뜨겁게 부어올랐다. 이상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히지카타의 다소 열 받은 표정, 나는 그냥 우스워서 킥킥 웃었다. 그런 나의 멱살을 확 잡아 올리고는 다시 물었다.

 

"같이 동참했냐고 묻잖아"

 

".....아. 오랜만이다. 히지카타 네 녀석이 나한테 화내는거"

 

악당과 있을 때 화를 내는 건 주로 내 쪽이었고, 사실 화를 낸 적도 많지 않지만 그 녀석은 그냥 헤실헤실 웃으면서 한마디씩 받아치기만 했었으니까. 한번 씩 내가 기분이 좋지 않게 말을 하면, 이내 내 말에 무조건으로 따라줬던 그 녀석이었는데... 히지카타는 열 받은 표정으로 거칠게 붙잡고 있던 손을 풀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오늘의 나의 태도로 그는 알았을 것이다. 내가 함께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고, 그것을 신나게 즐겼다는 사실을.

 

 

 

 

두 번째 취조가 시작 되었을 때, 그는 다시 이성을 찾은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 또 다시 별 것 없는 질문을 해댔고, 이번에도 나는 그 어떤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쳤는지 히지카타도 입을 다물었고, 촤르륵 돌아가는 녹음 테이프 소리만이 우리 사이에서 조금은 애처롭게 울리고 있었다. 히지카타가 한참 있다가 나에게 말했다.

 

"....니가 묻는 그 녀석은 취조 같은 건 없어. 사형수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어"

 

그 말은 묻을 것도 없이 즉각 사형에 처한다는 이야기였다. 아, 하긴 그 녀석 너무 날뛰긴 했어.

 

"네가 궁금한 건 알려줬으니 너도 답을 해"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품에서 펜과 메모지를 꺼냈다. 그런 것은 이 곳에 가지고 들어오면 안 되는 금지물품이었다. 서스럼 없이 꺼내드는 것을 보아하니, 정말로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것은 분명했다.

 

"사실대로 답하는 게, 좋아"

 

그는 나에게 말을 하면서 메모지에 무어라고 글을 쓴 후 내 앞에 내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라고 해. 그 한마디만 하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해 줄게]

 

그 쪽지를 본 나는 놀란 표정으로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귀신부장님께서 부정을 저지르는 장면이라니. 하지만 나도 여기에서 내 범죄를 인정해버리면 사형될 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사형수 수용소는 내부에서 탈출한 사람이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웬만하면 그 곳으로 수감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정말 극악무도하며, 살려두기엔 너무나도 위험한 존재라고 인식된 사람만이 들어가는 곳. 사실 나도 말로만 들었을 뿐이지, 대충 저 건물 이구나~ 하고 겉에서 지켜본 적만 있을 뿐, 들어가 본 적도 없고, 내가 있을 때 그 곳으로 연행된 사람도 없었다. 그 곳에 들어가서 나온 사람도 당연히 없고... 그 악당 녀석은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나도 그 곳에 가겠지..? 그 곳에 가면 만나려나.? 하고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머릿속의 깊은 곳의 기억에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었다. 2년 전 이었나......막부에서 행하는 어두운 일 중 하나는 인체실험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면 수긍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실험 대상을 어떤 사람이 할 것이냐에 대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도 그냥 인체실험을 한다더라 정도의 소문만 돌고 있었기에 확실하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어느 날 7번 대의 대장이 와서 말해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 7번대 대장은 이것저것 많이 조사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사형수 수용소 근처에 갔었고, 그 근처에서 옛날에 이름을 떨쳤던 연쇄살인범의 시체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냥 사형 됐나 보지 뭐, 이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요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 연쇄살인범의 시체는 그냥 사형을 당한 범죄자의 몸이 아니었다고 했다. 여러 번의 이상한 약물을 사용한 것 인지는 모르겠지만, 손가락이 다 휘고, 팔과 다리가 기아처럼 얇은데다가, 다른 곳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라서 사실 잘 알아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한 쪽 눈이 녹아져 내려 있었으며, 뺨의 한쪽은 핏줄이 시퍼렇게 다 보일 정도로 흉측했다고. 게다가 손가락 끝이 잘린지 오래인지 끝이 둥글었다고 했다. 연쇄살인범이라는 타이틀이 있었기에 나는 그냥 흘려 넘겼다. 딱히 동정심도,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갑자기 그런 일이 떠오르자마자 졸렬하게도 나는 무서웠다. 남의 목숨을 그렇게 하찮게 가지고 놀았으면서도 나의 죽음의 앞에서는 나도 몸을 웅크리는 것이다. 그냥 죽는다면야 죽겠지만 (사실 그것도 싫지만) 그 곳에서 실험체가 되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태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 앞에서 숨만 쉬며, 이런 상황, 저런 상황에 의한 기록을 내 몸을 통해서 새기는 고깃덩어리가 되어서 살고 싶진 않았으니까. 히지카타도 그래서 이렇게 부정까지 저지르면서 나를 빼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지. 그냥 사형이라고 해도 이렇게 까지 했겠지.

 

 

나는 대답 없이 계속해서 멍하니 있엇고, 히지카타는 그런 나를 마음 졸이는 표정으로 지켜보었다.

 

그리고 나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몰라....... 나 아무것도 몰라....."

 

 

히지카타는 내가 그 말을 더듬더듬 말하자 녹음기를 탁 소리 나게 껐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다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 말라는 듯이 내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으면서, 돌아가는 모습을 멍하니 보면서, 나는 악당을 생각했다. 몇 일이 지나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 탈옥하긴 힘든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고, 그 엄청난 새끼를 가만히 두었을 리 없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면서 정말로, 벌써, 혹시나.. 소문대로 이상한 병원의 실험체로 쓰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새끼는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부터 왜인지 모르게 조급해져서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미친 듯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히지카타는 나를 매일 찾아와서 차가운 철장을 사이에 두고 별 말을 하지는 않아도 내 옆에 있어 주었다.

 

"히지카타.."

 

내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나를 쳐다보았다. 날카로운 눈매는 여전하다.

 

"왜"

 

"아.. 아냐"

 

"......소고"

 

"응"

 

"내가... 내가 미안해"

 

미안하다니. 생각치 못한 말이었다.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그를 쳐다보자 다시 나에게 말을 이었다.

 

"내가.. 더 빨리 찾았어야 했는데... 미안해... 미안....힘들었지...?"

 

"..."

 

"내가.. 애초에 내가... 그 곳에 너를 보내지 않았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그가 그 곳으로 나를 보내서 내가 그 악당과 마주치게 된 것은 맞지만, 나는 그 사실에 대해서 그를 전혀 원망한 적이 없었다. 내가 악당에게 잡힌 것은 순전히 내가 그 무식하게 강한 악당에게 졌기 때문이고, 그때 느낀 감정은 그저 그 녀석을 이기지 못했다는 데에서 오는 수치심 뿐이었다.

심지어 나중엔 그 녀석과 동화해서,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던 것도 사실이니까.

 

"...니가 죽었다고.. 인정하라고 했을 때는.. 앞이 까매져서 잠도 오지 않더라.."

 

"..."

 

"난 생각보다 너를... 많이 믿었었나봐."

 

".."

 

"미안해..."

 

이 녀석답게, 그는 이 모든 원인을 저한테 돌리면서 자책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로 죽었다면 정말 볼 만 했겠다 하는 짓궂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마워. 이렇게라도 살아 있어 줘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곧바로 풀려날 순 없고, 몇 일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면서 담요를 내밀었다. 잠이 오지 않는 그 곳에서 나는 그 악당이 혹시나 실험체가 되어서 끔찍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히지카타가 준 담요를 뒤집어 쓰고 한참을 앓았다.

 

히지카타도 그렇다. 아무리 히지카타라지만 현재 나같이 증거도 두렷하지 않은 대형 범죄자를 무죄로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어찌어찌 잘 풀어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사람을 좋게 보지 않을 텐데. 그럼 저가 지금까지 얻었던 신임에도 타격이 클 것은 본인도 잘 알 것인데 말이야. 하여간 너는 나와 다르게 다 제 탓이고, 다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새끼였다. 몇 년 전에도 그랬다. 저가 우리 누나를 죽게 만든 범죄자라도 되는지, 나에 대해서 더, 더 끔찍히 여겨주면서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했으니까. 그런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그의 그런 관심을 즐겼던 것을 부정하기에 힘든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 점을 자주 이용했으니까.

 

 



* * *

 

 

 

 

히지카타는 아직도 종종 악당에 대해서 캐물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한참의 질문 끝에도 내가 입을 열지 않자, 그도 지쳤는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악당 녀석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게 없어, 말 할 것도 없고.. 그 녀석은 그렇다 치고 난 언제 빼줄건데?"

 

거만하게 물었다. 히지카타가 내 앞에서 제 탓임을 호소하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꺼낸 순간부터 나는 범죄자가 아니라 억울하게 들어온 무고한 사람으로 약삭빠르게 태도를 바꾼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

 

"...난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어. 빨리 나를 꺼내"

 

병신 너는 나한테 평생 당하면 살거야.

 

히지카타는 자신 없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여기에 있기 싫어. 시간이 지속된다면 혀 깨물고 죽어 버릴 거야"

 

"그런 말 하지마."


"그러니까 빨리 꺼내달라고 하잖아! 네가 못하는게 어디에 있어? 넌 다 할 수 있잖아. 다 너 때문이야! 네 말대로 날 빨리 찾았어야지. 애초에 날 그 곳으로 보내지 말았어야지. 네 말대로 나에게 잘못이 있었다는 건, 너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잖아! 왜 내가 여기에 들어올 까지 방치해 두었냔 말이야!"


히지카타는 그런 나의 말에 조용히 있었다. 담배를 하나 꺼내들어 입에 물고는 나에게 말했다.


"그러게...."


"..."


"...나랑 도망갈까?"

















-

오키타수는 사랑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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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7

2015. 10. 9. 17:23

 

 

 

 

 

 

 

 

 

 


뜻하지 않게, 우리는 유명해졌다.


유명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우리가 길을 물으려 순수한 마음으로 어떤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우리를 본 그 사람은 정말이지 괴물이라도 본 사람처럼 발작을 해대면서 뒷걸음을 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한 채로 뒤로 나자빠져서는 잘못했다면서 살려달라고 빌었다. 당황한 내 옆에 악당도, 나도 풀썩 엎드려서 거의 울다시피 흐느끼는 그 사람에게 혐오감을 느껴서 손을 대지도 않고 그냥 돌아섰다.


그리고 나와 악당은 농담 식으로 욕을 섞어가면서 저런 유형은 죽일 가치조차 없는 유형이라면서 평가했다.


"저런 유형은 정말이지 당황스럽게 만들어"


악당이 말했다. 나도 공감하면서 웃었다.


어떻게 우리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 한 것도 나중이었다. 우리 둘은 그런 유형의 사람을 처음 봤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욕설을 하면서 평가하기 급급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는 공포에 질린 모두의 눈초리를 보고 우리가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우릴 공격할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가지도 않았다. 아니, 못 나갔다고 말을 해야 하나? 우리가 들어선 순간, 점원들의 새하얗게 질리는 얼굴, 그리고 그 가게 손님들의 조용한 수군거림 소리로 기분 나쁘게 조용했다. 뻔뻔한 악당 녀석은 나에게 이곳은 굉장히 조용하다면서 웃어댔는데 모두의 그 눈초리는 우릴 공격하는 것보다 더 크게 나에게 타격을 입혔다. 더 이상 그곳에 있기가 싫어서 그 악당을 끌고 그곳을 나왔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고도 공포스럽게 울리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나가고 나서 한참 후의 일이었다.


"왜?"


악당은 나에게 물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사람들이 우릴 알아보잖아"


"아 그래?"


무신경한지 바보 같은 건지, 이 녀석은 그냥 별 상관없다는 듯한 행동을 보였고, 나도 크게 상관이야 없었지만 그 관심이 당황스럽긴 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쫓기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인 당연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새삼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때는 그냥 경찰들을 피해 다녔다. 이 악당은 계속 나를 따라오면서 투덜투덜 대면서 어째서 우리가 도망 다녀야 하느냐고 물으면서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고, 나는 그 물음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부턴 너무 번화한 곳은 피해서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곳만을 다녔는데, 확실히 그곳은 알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고, 딱 보기에도 돈이 없어 보이는 낡은 옷을 입은 아이들, 그리고 삐쩍 마른 노인들만이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멀뚱히 그들을 쳐다보는 우리를 한 번씩 쳐다보고도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치거나,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하듯이 지나갔다. 유령들이 가득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주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지랖 넓은 어떤 노인이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우리 그런데 못 가. 문제아 거든."


이 악당이 농담 섞인 특유의 껄렁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 노인이 우릴 빤히 쳐다보더니 우리에게 주머니에 있는 한껏 꾸깃꾸깃한 돈을 꺼내더니 내 손에 콱 쥐여주면서 말했다.


"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너무 황당해서 나와 이 녀석은 서로를 쳐다보고, 내 손에 들려 있는 그 돈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나는 다시 내밀면서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지 말고 받아, 요즘 세상도 흉흉한데 얼른 어른들 품으로 돌아가라. 돌아다니다가 큰일 난다?"


결국 돈은 돌려받지 않아서 내가 쥐고 있었고, 이 악당은 굉장히 어이없어하면서도 가서 뭐라도 사 먹을까? 하면서 내 손에 들려 있는 돈을 쓰윽 빼갔다.


감히 우리를 동정을 하는 거야?. 하고 생각을 하면서 화가 날 수도 있었을텐데, 별로 화가 나진 않았다. 그냥 그 돈을 쥐고서 향하는 이 악당을 뒤따라서 아이스크림 따위의 소소한 것을 사 먹었다. 하지만 한 두 입 정도 먹다가 왜인지 모를 역겨움 때문에 맛이 느껴지지 않아서 반 쯤 먹다가 버렸다.

 

 

 

 

 

 

* * *

 

 

 

 


 

그렇게 돌아다니던 우리는 그 다음엔 대놓고 경찰을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사복을 입고 우릴 덮치는 경우도 많았고, 경찰차를 이용해서 쫓아오는 경우도 많았는데 설렁설렁 도망치다가 기를 쓰면서 쫓아오는 경찰들을 보면 우스워서 그냥 공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차를 뺏어서 타고 경찰인 척 하는 것도 재밌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의 공포에 어린 눈초리나, 우릴 잡으러 용기있게 달려온 경찰들도 막상 우리 앞에 와서는 덜덜 떠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쭐해졌다. 심지어 몇명이 달라들던 상관없이 우린 다 이겼으니까.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것까지 성공하게 유도해준 적도 있다. 알고 있다. 자신의 손목과 내 손목에 연결하는 수법. 그리고는 잡았다! 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럴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경찰의 손목을 단도로 잘라내버렸다. 그리고 친절하게 그 손을 주워서 들고 주저 앉은 그 사람에게 건네주면서, 자, 손잡고 병원에 가봐, 하고 말하곤 했다. 그때 나를 올려다보는 그 눈빛도 나를 너무나 자만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에게 손목을 바친 경찰은 여섯명정도 였다.

 


우리 둘이 같이 있음에 한해서 우린 최강이었고, 누구도 우릴 막을 수 없다는 그 우월감에 젖어서 경찰이라는 존재가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았고, 오히려 우리의 유흥을 자극해주는 존재라고 인식해버렸다. 그래서 더 자극하려 일부러 경찰서에 대놓고 찾아가서 방화를 일으킨 적도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확 달아오르는 열기와 함께 탁탁 하고 타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허둥지둥 나오는 사람들. 그 꼴이 우스워서 나와 이 악당은 멀리서 지켜보면서 웃었다. 멀리서 달려오는 소방차와 커다란 불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재밌어서.

 

"봐. 예쁘지? 난 저게 너무 좋아"

 

악당은 보면서 말했다.

 

"응"

 

나도 보면서 웃었다. 뭐랄까. 따스했다. 커다란 불이 타오르면서 느껴지는 열기가,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피곤했다. 경찰이 무섭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쉴때는 그냥 방해받지 않고 쉬고 싶었다. 주위가 먹색으로 까맣게 물들어 다들 잠겨버린 시간. 우리가 그 으슥한 골목을 다시 서성일때, 그때 돈을 주었던 그 노인을 우연히 다시 마주쳤다. 집 근처에 쓰레기 따위를 버리러 나온 듯 했는데, 이 악당은 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 했지만 나는 알았다. 그렇다고 굳이 아는 척을 한다거나, 고맙다거나 하는 인사를 할 생각은 없어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그 오지랖 넓은 노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가출한거냐?"

 

가출. 맞네. 일단 집엔 안가고 있으니.

 

"갈 곳 없으면 우리집에 와서 자고 가. 어차피 아무도 없어"

 

"우리가 누군줄 알고 집에서 재워주겠데?"

 

악당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작게 말했다지만 조용한 어둠이 깔린 그 시간에는 충분히 들릴법했고, 그 소리를 들은 노인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따라오라고 말했다.

 

이런 친절이 그렇게 좋은 결과로 돌아온 적이 없어 나는 약간 망설였지만, 악당은 망설임 없이 그 노인을 뒤따라가면서 집 커? 나 뭐 먹고 싶은데 줄 수 있어? 아, 그러고보니 아까 돈 줬던 아저씨구나, 줄거면 좀 더주지. 하고 장난스럽게 말을 하며 걸었다.

 

"안 와?"

 

따라오지 않는 나를 뒤돌아보며 묻는다. 저 녀석이 있으니 상관없지. 하는 다소 수동적인 생각을 하면서 뒤따라갔다. 판자촌 아니랄까봐 걸어 올라가는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걸려서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할때서야 도착했다. 미로같이 얽히고 너무 깊숙해서 도둑도 오려다가 짜증날 것 같은 위치. 거의 쓰러져가는 집이었고, 벽 하나로 그냥 위치가 구분되어 있는 그런 곳이었다. 퀘퀘한 냄새와 무엇하나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그런 공간이 좋진 않았지만 피곤한 나는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난 안쪽에 있을테니까 너흰 그쪽에서 자라"

 

그 말을 남기고 안쪽으로 홱 들어갔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산다는게 신기하다"

 

어둠에 서서히 익숙해졌을때 내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러게"

 

쓰고 있던 갓을 내려놓고 눕자 이 녀석이 내 옆에 바짝 다가와서는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핥아댔다.

 

"...그만"

 

내 말에 그가 얼굴을 들고 나를 한번 쳐다본다. 내가 그 녀석의 어깨를 짓누르면서 억지로 눕히고는 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 그 날은 다른 짓을 하려는 생각은 없어보였지만 계속 귀찮게 나를 끌어 안았다. 옆에 누가 엉겨붙어댈때 편히 자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뭔가 따뜻했고, 더불어 나는 피곤한 나머지 듣지 않는 이 녀석에게 놓으라고 몇 번 이야기를 중얼거리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언제 잠들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자다가, 이 녀석이 뒤척이는 탓에 나도 함께 깼다. 잠에 잔뜩 취해서 가까스로 눈을 뜨고 그 녀석을 쳐다보았다. 악몽이라도 꿨는지, 내가 그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그 때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히 자리를 뜨려는 그가 칼을 찾는다는 것을 아는 나는 누워있는 채로 그의 팔을 급히 잡았다. 그가 놀란듯이 나를 돌아본다.

 

"그러지마"

 

그는 말없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숨소리를 내쉬었다. 나는 눈을 부비면서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시 말했다.

 

"...칼 찾는거 잖아. 하지마"

 

내 말에 약간은 놀란 표정과 더불어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프잖아"

 

그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내 품에 와락 안겨서는 약간은 떠는듯 하기도 하고, 진정되지 않는 자신을 달래듯이 한참을 있었다. 생각보다 이 녀석도 약했다. 나도 약했고. 거칠게 내 몸을 애무할때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약해져 있는 모습이 약간 어색해보이기도 했지만, 철없는 이 녀석의 모습을 약간의 동정심과 함께 달래주고 싶었다. 이 녀석의 등을 한번 손으로 쓸어 내리자 그가 나를 더욱 꽈악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이대로 있자..."

 

품을 파고드는 이 녀석이 애 같아서 평소라면 웃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슬펐다. 이 녀석은 언제까지고 내 옆에서 나보다 더 잔악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이어야 했다. 나는 그런 이 녀석의 자유분방함을 약간은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지 않아도 상관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품에 파고드는 이 녀석과 함께 나도 그를 다시금 꼬옥 끌어안았다.

 

 

 

 

* * *

 

 

 

 

 

 

아침에 같이 있었던 노인은 뭐라도 먹고 가라면서 허접한 상을 차려주었다. 나는 자꾸 의심의 눈초리로 그 노인을 보았는데, 당장 우리를 해치려는 눈치는 보이지 않아 경계만 잔뜩 세우고 있었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집어먹는 그 녀석을 한심하게 쳐다보는데 그 노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신센구미에 대장 아니야?

 

그 말에 옆에서 먹던 그 녀석도, 나도 행동을 멈추고는 그 노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돌아가는게 좋지 않겠어?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내 옆의 악당을 곁눈질으로 슬쩍 쳐다보았다. 그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서 어느 때처럼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웃음은 어느 때보다 섬짓했다. 나를 알고 있다면, 지금 유명한 이 녀석도 알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악당을 안다면 애초에 우릴 이 곳으로 들일 리가 없다는 생각에 잠시 지켜보았다.

 

"얼마전까지 에도에서 살았어. 그래서 티비에서 종종 봤지. 근데 이런데에서 직접 만날 줄은 몰랐네"

 

그 노인은 그 말을 하고는 내 앞에 물을 한잔 떠서 내밀었다. 나는 그때까지 입을 다문채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한 노인에게 신세를 지고, 집을 나서고 얼마 안되어서 악당이 말했다.

 

"안되겠어. 없애야겠어"

 

"왜?"

 

"그냥"

 

"그러지마, 가자"

 

"그럼 넌 여기에 있어"

 

"그냥 가자니까?"

 

"얼마 안걸려. 1분이면..."

 

"왜이래? 그냥 가"

 

"그럼 먼저가고 있어 뒤따라갈게"

 

"아무것도 못하는 늙은이야. 죽여서 뭐해?"

 

"어차피 얼마 못사는 늙은이가 좀 더 살아서 뭐해?"

 

이런 식의 말다툼을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내가 그 노인을 죽이지 말라고 말한 것은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단순히 우리에게 베푼 호의와, 에도에서의 나를 알아봐줬다는 데에서 오는 약간의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 금방이라도 뛰어갈 것 같은 악당의 팔을 붙잡았다.

 

"너 왜그래? 너 지금 이상해"

 

 내 말에 약간은 흥분상태의 그가 행동을 멈추고 무언가 생각하는듯이 눈동자를 굴리다 말했다.

 

"아니.. 아.. 그니까.. 아. 아니야, 그래 가자"

 

그는 저를 잡고 있던 내 손을 약간 화가 난 듯이 거칠게 풀고는 앞질러 걸었다. 그 녀석을 뒤따라 걸으면서 물었다.

 

"악당"

 

"..."

 

"왜 그러냐 너?"

 

내가 그의 옆으로 바짝 따라가 어깨에 손을 얹고 물었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나를 홱 돌아보고는 거칠게 키스 했다. 그리고 은근히 영악했던 나는 그의 행동을 보고 알았다. 이 악당이 불안해 하고 있음을. 그 노인을 죽이려 한 이유도 혹여나 내가 떠날까봐, 그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내가 마음이 변할까 두려워 하고 있음을.

 

 

 

 


 

* * *

 

 

 

 

 

악당녀석과 반대로 나는 혼자 있으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얼굴이 알려진 것은 악당 녀석이고 함께 다니는 갓을 쓰고다니는 사람과 이렇게 2인조. 이 정도로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인지 어쩌다가 혼자 있을때면 사람들이 조금 놀라하다가, 아니야 혼자있잖아~ 하고는 움추림을 풀고 편하게 돌아다니곤 했다. 그 점이 편했다면 편했다. 물론 나를 혼자 두고 싶어하지 않는 악당은 나에게 굉장히 조급해했고, 어느 날 저녁 나에게 물었다.

 

"나 만나기전엔 어떻게 지냈어?"

 

그의 말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그 질문을 할 때 그는 새삼 진득하고, 파란 눈동자 뒤에 뭔지 모를 순수함이 보여서.

 

"알잖아, 경찰이니까 너같은 악당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지"

 

"같이 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어?"

 

"음.. 진짜 싫은 바보 한 명, 좀 고마운 한 명, 존재감 없는 바보 한 명, 그리고...."

 

"싫은 바보는 누구야?"

 

"있어. 난 그 새끼가 진짜 싫어"

 

"왜?"

 

"그냥. 싫은데 이유가 있나"

 

"난 이유가 있는데"

 

"난 없어"

 

"그럼 너는 뭐가 싫은데?"

 

"음.. 그냥..."

 

"그냥?"

 

내 말에 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을 해도 될지 말지 한참을 망설이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엄마"

 

이런 말을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꺼내기 힘들었다는 것도. 그래서 그 이후론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는데, 본인이 답답했는지 드문드문 말을 꺼냈다. 말에 두서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가 자꾸 꿈에 나온다고, 그럴때면 화를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악몽을 꾸고, 자해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말을 하다가 더 깊은 속내를 털어 놨을 법도 한데, 그는 털어놓지 않았고, 나 역시 그가 털어놓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싫어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좋아해서, 사랑해서 마음이 아픈 것이지. 나는 대답 대신에 그냥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떠나면 싫어"

 

그가 말했다.

 

"옆에 있잖아"

 

"지금이 아니라 내일도"

 

"왜이래? 내일도 같이 있잖아"

 

"신센구미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어? 들려줘"

 

저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어린아이가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하고 조르는 장면이 연상되서 피식 웃었다.

 

".....내가 진짜 싫어하는 그 새끼는 담배를 존나 피워. 옆에 있으면 정말이지 연기로 질식해서 죽어버릴 것 같아. 그리고 입버릇처럼 말끝마다 할복하라고 해. 진짜 죽는다고 했다면 뛰어나와서 쩔쩔매면서 말릴껄? 그 새낀 맨날 말은 존나 거칠거든. 그리고...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새끼가 죽은 우리 누나를 좋아했었거든, 그래서인지 나한테 꼼짝도 못해. 다른 대원들한테는 존나 지랄지랄해도 나한테는 그렇게 못한다니까. 웃기지?.."

 

".."

 

"사고 치고 돌아오면, 말로는 너 이자식 정말 죽고싶어? 죽을래? 하고 소리 질러도 지가 알아서 다 처리하더라고. 그래서 난 맨날 사고치고 다녔어. 그 새끼 일 많은거 아니까 괴롭히려고.... 그런 놈 하나 옆에 있으면 재밌긴해. 알고 당해주는건지, 멍청한건지 맨날 나한테 당하거든....... 짜증나게 그 새끼가 생기긴 좀 생겼어. 그래서 맨날 여자들이 꺆꺆 거리는데, 진심으로 듣기 싫어. 골빈년들은 그런 소리를 내도 꼭 멍청하게 내더라. 질려."

 

".."

 

"같이 순찰도 많이 했는데 옆에 앉아서 운전지적을 얼마나 하는지 진짜 짜증나. 원래 운전석에 앉는 사람은 좀 닥쳐줘야 하잖아? 나도 그래서 너한테 별 말 안했던거야. 꼴에 귀신 부장이라고 불리면서 귀신은 또 얼마나 무서워 하는지.... 나보다 나이가 거의 10살 가까이 차이나는 놈이 그러고 있으면 얼마나 꼴갑인줄 알아 그거? 아아.. 맞다, 모기 천인이 우리 둔영에 들어와서 난리 났을땐 정말 웃겼어.  그때 네 동생도 같이 있었었는데. 가짜 퇴마사 흉내낸다고 변장하고 왔는데 황당하게 하고 왔었어. 어설프게 변장하고. 어쨌든 그때 한창 인형으로 그 새끼를 저주하고 있었는데 진짜 귀신같은애가 나와서 난 정말 내 저주가 먹힌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좋았는데 아쉽게도 그냥 모기천인이여서 그대로 끝났어 재미없게... 음... 그리고.. 또..."

 

"...흐음..."

 

"뭐야?"

 

"아니 그냥 재밌게 지냈구나 하고"

 

"재미? 아냐 그 새끼가 얼마나 재수없는 새끼인데"

 

그는 내 말에 습관처럼 그냥 웃었다.

 

 

 

 

 

* * *

 

 

 

 

 

악당은 갑자기 경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면서 보고 온다며 잠시 자리를 뜬 상태였다. 같이 가자는 말에 귀찮은 나는 혼자서 갔다오라면서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갓을 쓰긴 썼지만 사람들의 힐끔거림은 이상하게 별로 없었다. 그 날은 날도 화창했고, 하늘하늘 부는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스산했다. 생각보다 이 녀석이 늦는다 하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 보는데, 옆에서 익숙한 담배향이 지독하게도 번져 왔다. 쓰고 있는 갓 때문에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 담배향의 주인은 유카타를 입고 내 근처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옆으로 바짝 다가가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악당녀석처럼 요란하게 움직여서 주목받고 싶진 않았으니까) 단도를 숨겨들고서 작게 말했다.

 

"불 꺼"

 

사복 경찰이었나? 그는 급히 내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나는 어느 경찰과 다르지 않게, 제 손과 연결해서.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휘두르려고 높이 처들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돌아다보고, 나도 그를 올려다 보면서 눈이 마주친 순간. 머리가 머엉 해지면서 주변의 소리가 히뿌옇게 번져감을 느꼈다.

 

 

이 세상의 시간이, 나와 내 눈앞에 그 빼고는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아.. 히지카타였다.

 

 

나는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수 많은 대원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악당이 스스로 그 무리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도망가, 그냥 가! 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경직된 눈으로 손목이 붙들린채 서 있는 나를 보고, 바닥을 나뒹구는 단도를 보고 악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잡으려 달라드는 대원들을 보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불안함이 앞서기도 했다. 이 녀석이 혹시나 이들을 다 죽여버리면 어쩌나, 내 눈앞의 히지카타도 죽여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그냥 도망치라고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예상과 다르게 그는 공격도, 도망도, 저항도 하지 않았다. 악당이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텐데. 그는 그냥 잠자코 잡혔다. 딱 그 말이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냥 순순히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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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6

2015. 9. 30. 22:10

 



히지카타.

 

간만의 꿈에 죽어도 싫은 히지카타가 나왔다. 개새끼. 씨발새끼. 하지만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꿈에서라도 나는 그들과 함께여서 좋았다. 이상하게 꿈에서도 느껴지는 히지카타의 담배향과, 지겹게만 들리던 그 목소리가 나를 자꾸만 그 꿈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하지만 꿈이 그렇듯이 그것은 그냥 잠시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상이기에 아무런 힘이 없다.

눈을 떴을 땐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현재 나의 동료인 악당과, 떠들석하게 우리 이야기로 정신없는 뉴스의 아나운서. 우릴 잡으려고 하면서도 우릴 두려워하고 있는 정부. 이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전보다 내가 약간은 의기소침해졌는지 악당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도 안해"

"나랑 싸울래?"

답지 않게 내 의견은 왜 물으시나. 싸우고 싶으면 먼저 공격하면 되잖아. 나는 그냥 멍하니 그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그냥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귀찮아"

악당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범죄자 신분인 우리는 명성에 맞는 악당답게 꽤나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고, 아무도 우리를 범죄자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하기사, 주황색 머리칼을 가진 사람이 이 녀석만 있지도 않을 뿐더러, 겉보기에는 그냥 나이 어린 소년 둘 정도 밖엔 보이지 않을 테니까. 신문을 보고나서 이후로 마음이 복잡해진 나는 그냥 멍하니 생각하는 일이 많아져, 어디에나 있을 법한 대형 커피숍에 가서 초점 없는 눈으로 지나다니는 사람 따위를 몇 시간이고 쳐다보기만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토해내고 싶어 하아 하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옆에 앉아서 시킨 스무디를 쪽쪽 하고 소리내어 빨아먹던 녀석이 나의 한숨을 흉내내듯이 옆에서 저도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 넌 왜?"

 

"그냥"

 

가벼운 대답 후에 그는 키득키득 웃었다.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사람의 본성은 다 악해. 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내보이고 사느냐, 누르며 사느냐 하는 것은 이후의 환경이야'

 

곤도씨가 말했었다. 완전히 공감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쁜 짓은 언제나 재밌고 즐겁다. 들키지 않으려는 그 조마조마함이 재밌잖아. 나는 히지카타에 비해 일을 제대로 하지는 않는 불량한 경찰이고, 실제로 다소 과격한 행동도 많았다. 게다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나에게 히지카타를 옆에 붙여 놓았던 것은 나의 가시를 억눌러주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히지카타는 나를 잘 억눌러 주었고.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그 녀석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억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나봐. 그리고 실제로 그랬는지도.

 

내가 지루해 한다고 생각했는지 내 옆에 있는 악당이 나에게 말했다.

 

"재밌는 거 할까?"

 

"...재밌는 거?"

 

"응"

 

"뭔데?"

 

"따라와"

 

그는 나에게 손짓했다.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고는 꼭대기 층으로 향하는 56층 버튼을 눌렀다. 빨갛게 불이 들어감과 동시에 56층입니다 하는 기계음이 들린다. 도대체 옥상에 올라가서 뭘 하려는 짓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말했다.

 

"설마 같이 죽자, 뭐 이딴 개소리를 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셨네"

 

피식 웃었다.

 

"넌 착하고 싶어 하잖아"

 

핑- 하는 울림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가 그 말을 하며 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그의 뒤를 바짝 쫓으며 물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한번쯤 착해주겠다 이 말씀이야. 이 몸께서"

 

그는 씨익 웃더니 가방에 들고 있던 돈을 꺼내들곤 말했다.묶여있는 종이끈을 툭 잡아 떼더니 그대로 허공에 흩날렸다. 얼마 단위로 묶어놓았는지 모를 지폐 더미가 바람에 의해서 가득 휘날렸다. 바람에 따라서 이리 저리 팔랑대는 종이 쪼가리가 햇빛에 받아서 오묘한 색상으로 휘날렸다. 예쁘다고 생각했다.

 

"이런 짓은 처음 해봐"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돈을 학종이 날리듯이 날리는 짓을 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나도 물론 처음이었다.

 

"돈이 있으니까 재미가 없어"

 

그는 우리가 훔쳐낸 그 돈을 전부다. 손으로 집어서 닥치는 대로 주저하지 않고 허공으로 던졌다. 나는 그런 그의 옆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그 기이한 광경을 쳐다보면서 미친놈.. 하고 중얼거리고는 한참 웃었다. 훔쳐낸 돈이 10억 정도였다고 해도 쓴 돈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이 장소에서 우리는 그 나머지 돈을 전부다 소진했다.

 

"봐, 착한했지? 저 아래 사람들은 이거 가지려고 난리 칠껄?"

 

그는 킥킥 웃었다.

 

"이딴게 없어도 당당할 수 있잖아."

 

 

그랬다. 돈이 있어서 당당한 것도 아니었고, 범죄를 말리려고 그에게 한 말이 오히려 범죄를 덧씌워버린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어긋나는 상황에 나는 약간의 짜증이라도 솟구쳤던 것일까?

 

 

그렇게 우린 다시 처음의 원점의 상태로 돌아왔지만, 나는 처음의 상태의 내가 아니었다. 이 녀석은 다시 종종 사람을 죽였지만 집단은 아니고 소소하게 한 두명 정도만 죽였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말려야 할 자격도 없었을 뿐더러, 그가 이러는 이유는 나와 제 자신을 위해서 였으니까. 예를 들어서 잠을 자려고 할 때도, 뭘 먹으려 할 때도 우린 처음엔 명령에 가까운 부탁, 그리고 거절하면 죽였다. 우리가 가는 여관은 구석에 있는 허름한 곳이었고, 늦은 시간엔 항상 그런 여관을 지키는 사람이 한 사람 정도여서 처리는 간단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내 힘을 사용하는 여러가지 다양성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데 말고 좋은데 가보고 싶어"

 

악당이 말했다.

 

"가자 그럼"

 

나는 그의 옆에 누워서 말했다.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악당이 누워 있는 나를 턱을 괴고선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가고 싶어"

 

내가 말했다.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내 머리칼을 손 끝으로 쓸어내렸다.

 

"뭐야?"

 

"그냥"

 

악당은 그렇게 말하고는 얼굴에 가까이 다가와서는 내 입술에 제 입술을 살짝 가져다대었다. 도톰한 느낌도 따뜻함도 다른 인간들과 다르지 않았다. 혀로 내 입술을 할짝 핥아 대는 게 강아지 같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나도 거부감 없이 그에게 다가가서 입을 맞추었다. 우리 둘의 벌어진 입술 틈으로 교차하는 혀 끝이 맞닿을때.. 설레임이라고 느껴질 법한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꿈틀대었다.

 

그 날 밤 우리는 밤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길은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키스를 했다. 살짝 맞닿는 뺨의 솜털이 간지럽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지금 이 느낌이 좋아서 그와 서로 끌어안고 정신없이 그의 온도를 느끼려 했다. 신센구미는 나를 버리려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난 버려져버렸고, 나의 외로움을, 쓸쓸함을 달래줄 상대가 옆에 있는 이 녀석 뿐이라고 생각해 버렸나봐. 그 원인을 제공한 녀석도 이 악당이라는 것도 잊고서.

 

그 키스가 동족이 되는 의식이라도 된 것 마냥 그 이후로 나는 그 어떤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와 동화했다. 원래 나의 모습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누르고 있던 것이 사라지고, 나를 옭아매던 죄책감을 녹여주는 적절한 온도가 그 악당의 입술의 따스함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도록. 그는 아이 같았지만 저가 느끼는 일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어서 같이 있으면 즐거웠다.

 

나는 경찰 내부의 사람이라서 경찰이 어떻게 움직일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오는 지 정도를 잘 알고 있었고, 그 만큼 우린 꽤나 순조로웠다.

 

이 악당은 꽤나 거칠었고, 무식한 괴력이 특기였지만 어이없게도 가끔 여자와 아이는 잘 죽이지 않았다. 이유는 여자는 강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있고, 아이는 커서 강해질 가능성이 있어서 라나 뭐라나... 하지만 살육을 즐기는 그는 싸움을 하려 쉽게 달라 들었다. 반대로 나는 싸움은 되도록 피하려했고, 웬만하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했지만, 필요할 때면 어린 아이고 여자고 상관없이 죽였다. 한번은 내 칼을 훔치려 들던 어떤 거지 꼬맹이를 죽이려고 칼을 휘두를 때, 악당이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너 완전 악당이잖아? 아이는 봐 줘. 더 강해질 수 도 있잖아"

 

내가 악당? 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어조를 뱉고 그를 쳐다볼 때 눈치 빠른 잽싼 거지는 도망쳤다. 악당은 그냥 내 옆에서 웃었다. 나는 악당이 아닌데......

 

틈틈히 신문도 확인했다. 우리를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얼굴은 확인 하지 못한 것 같다. 워낙 시골에서 일어난 일이라 그런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그 뒤에 집단 살인은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신문을 뒤적거리면서 범죄란 쪽 기사를 주의 깊게 읽고 있으면 가게의 주인들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세상이 너무 험난해졌다면서 나에게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나예요 나. 여기서 살인귀라면서 지껄이는 2인 중 한 명이 나라고요.

  

 

 

  

* **

  

  

  

 

  

“자 이거 쓰고다녀”

  

이 악당이 내 머리에 커다란 갓을 씌워 주면서 말했다.

  

“그렇게 맨 얼굴로 당당히 다니면 언젠간 잡힐 거 아냐”

  

그는 그렇게 말하곤 키득키득 웃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범죄자의 신상을 따지는 바로 옆에 항상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 실종> 이라는 긴 기사와 나의 사진이 떡하니 붙어 있었으니 혹시 그런 범죄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사람의 얼굴을 잘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봤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안심했다. 커다란 갓의 뒤에 얼굴을 감추고서 맘껏 휘두를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어째서 안도감을 느끼냐고 묻는다면 정확히는 나도 뭐라 대답을 해야 할 지 망설여진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썩 좋아하진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내가 택한 방법을 이 악당 녀석은 웃으면서 ‘미친, 니가 더 잔인하잖아?’ 하고 말하면서 웃었다. 나도 그와 같이 웃었다.

  

내가 택한 방법이 내 생각엔 더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서 무엇을 가지려 다가갔을 때, 거부하는 상대에게 힘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면서 우리의 말을 고분고분히 들을 때까지 손가락을 하나하나를 자르는 것. 보통 평범한 사람은 한 개째에서 살려달라고 울며불며 말하게 된다. 이 것은 초기 단계였는데, 나중엔 점점 과격해져서 한번 잡은 상대는 절대로 그냥 순순히 놓아주기가 싫었다. 살려줘.. 살려줘.. 살려주세요..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그 정도를 그냥 무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가장 흥분해서 상대를 가지고 놀았을 때, 내 눈 앞의 상대는 두 팔과 두 다리를 잃고서 몸뚱이만 묶여있는 상태로 흰 자를 보이면서 말라비틀어진 입에서는 음산한 신음 소리만을 띄엄 띄엄 내뱉는다. 하지만 나는 결코 죽이지 않았다. 악당이 아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의 취미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악당이 아닌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그 모습을 보고, 얼굴에 잔뜩 튀겨져 있는 피를 보면 이 악당은 나에게 다가와서, ‘얼굴이 더러워 졌어’ 라고 말하면서 내 얼굴을 혀로 살짝 핥는다. 내가 그 녀석을 쳐다보면서 희미하게 웃으면, ‘괜찮아. 이 모습이 좋아.’ 하고 말하면서 다시 한번 감미롭게 혀를 뒤 섞었다.

  

그 때부터는 더 이상 신문을 쳐다보지 않았다.

  

  

  

 

  

* * *

  

  

 

  

구석의 허름한 여관을 전전하던 우리가 말했던 호화로운 호텔. 그 곳은 내가 전에 호위를 하러 문 앞까지만 들어 갈 수 있었던 호텔이었다. 사치의 대명사. 모든 서민들의 꿈이라고 일컫어 지는 그런 호텔. 이 호텔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그런 호텔이어서 그런지, 도시와는 약간 떨어진 곳이었다. 하루에 묵는 손님을 많이 받지도 않는 곳이라고 알고 있다. 심지어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콧대 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콧대가 높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호위로 이 곳에 와 본 만큼, 나는 그 보안을 어느 쪽에서 담당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았고, 악당에게는 너무 난리치지 말고 키를 받으라고 말한 후 보안을 담당하고 있는 그 곳을 총 책임자 한 명만을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죽였다. 그 총 책임자 한 명은 살려주었는데, 온 몸을 묶고, 눈과 입을 막고서 그의 무전기만을 빼앗은 후에 돌아왔다. 당연히 프론트에서는 키를 주었을 리도 없고, 그 악당이 난리를 치지 않았을 리도 없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 같이 그가 서 있는 프론트는 괴기스러운 팔, 다리와 검붉은 피로 호화로운 장식들이 물들어 있었다.

  

“아.. 이러면 호화롭지 않잖아”

  

나는 말하고서 그가 쥐고 있는 키를 받아들고 호수를 확인한 후에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무전기로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말했다.

  

[프론트가 더러워. 청소 좀 해]

  

그리고 한참 후 놀란 듯한 목소리의 무전.

  

[저...저 이거.. 시...시체...시..신고..르....ㄹ]

  

[알아. 알아서 할 테니까 우선 치워]

 

 

들어가 보지도 못했던 그 호텔. 다른 것 보다는 그냥 한편의 호기심이었다. 그 곳은 정말 돈을 쳐 발랐구나. 하는 느낌이 확실하게 드는 그런 곳이었다. 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깔려 있는 대리석 바닥과, 호화로운 침대. 모든 것이 눈이 아플 정도로 반짝이는 걸로 가득한 그런 곳이었다. 창문에 서서 보니 바다가 철썩 철썩 하고 우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우리는 단순히 재미였고, 이것이 오래 갈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그냥 처음 보는 광경이기에 구경을 했다.

  

“뭐, 당연히 알고 있지? 우리의 이런 시간. 길어봤자 오늘 하루야”

  

“왜?”

  

“곧 사건을 조사한다면서 경찰들이 올 테니까”

  

“다 죽여 버리면 되잖아”

  

악당, 나는 악당이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니까?”

  

내 말에 악당은 키득키득 웃더니 알겠다고 순순히 말했다.

  

그 곳 창문에서 바라본 밤의 바다의 부서지는 파도는 계속 쳐다보아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파도는 일정하지 않고, 밀려오는 길이도 다르고, 부서지는 소리도 다르며, 싣고 오는 것도 달랐기 때문에. 내가 한참 쳐다보고 있자 악당이 옆에 와서 창 틀에 기대어 섰다. 나는 어쩌다가 이 녀석에게 실려 왔을까.

  

거대한 욕실에서 따스한 물로 피로 얼룩진 몸을 씻어 내고나서 왠지 모를 노곤함에 큰 침대에 몸을 털썩 뉘였다. 좋네. 잔잔하게 파도 소리만이 가득 울려 퍼지는 공간에서 무방비에 가까운 상태로 언제 닥쳐올지도 모르는 공포가 약간은 잠재하고 있는 이 상황. 악당이 샤워를 마치고 나와선 누워 있는 내 옆에 털썩 같이 누워선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려 다가왔다. 왠지 모를 장난끼가 올라와 일부러 뒤로 얼굴을 슬쩍 빼면서 약을 슬슬 올렸다. 항상 그의 키스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했던 나였기 때문에 그 악당의 표정엔 살짝 당황한 기색이 보인다. 살짝 입술 끝에서 닿을락 말락하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장난을 치자 이 악당이 몸을 일으켜 나를 위에서 확 누르면서 뭐야? 하고 한쪽 입 꼬리를 씨익 울리면서 물었다. 나는 그냥 이 모든 상황이 웃겨서 소리 내어서 웃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그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면서 부드럽게 입술을 맞추었다. 한참을 타액의 마찰음으로 끈덕진 소리가 이어지고 키스가 끝났을 때 이 녀석은 내 목과 쇄골 사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 내 살을 빨아들였다 놓았다 했다.

  

“..좋다”

  

내가 말했다. 그는 내 말에 잠시 나를 한번 올려다 보더니 다시 하던 행동을 계속 한다. 맞닿은 살결이 데일 듯이 뜨거웠고, 그의 거친 숨소리와 나의 숨소리가 뒤섞이면서 나는 그날 이 악당과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그 호텔에서 한껏 뒤엉켜 섹스를 했다. 섹스란, 사랑이라기보다는 그저 외설스럽다는 말에 가까운 행위라고 생각해왔었지만, 좋았다. 악당과 나의 잠깐 크게 타오르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일시적인 감정과 관계 일 수 있겠지만 알게 뭐야. 난 지금이 좋으면 됐어.

  

하얀 액체가 튀어오르는 것으로 관계가 끝나고 서로 나란히 누워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너 눈이 빨간색이라서 그런가? 햇빛이 비출 때 옆에서 보면 눈동자 속이 비어 있는 것 같아

뭐야 그거. 눈동자 속이 비어 있는 것 같다 라는 말은 처음 들어봐 무슨 의미야?

투명해 보인다고

그니까 그거 무슨 의미냐고 묻잖아

...딱히 별 의미 없는데?

악당인 니가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눈알이라도 뽑아서 줘야 될 것 같아

그럴 리가. 계속 지켜볼 수 있도록 옆에 있어.

  

 

큰 영양가는 없는 대화였지만, 그 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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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5

2015. 9. 23. 10:34

 

 

 

 

 

 

 

 

 

 

악당이 아니면 죽일 수 없는 게 나라고 자신 있게 말한 만큼 나는 악당이라고 판단되면 거침없이 달라 들었다. 우리가 조심성이 없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런 어둠을 향해서 찾아가는지 알 수 없게 그 장기매매를 일삼던 여관을 나와서부터는 계속 그런 범죄가의 중심 쪽에만 머물렀다.

 

평범한 도박장이 아닌 위험한 냄새가 나는 도박장에서도 우리가 어리고 돈이 있다는 것을 안 많은 위험한 사기꾼이 주변에 들끓었다. 쉽게 얻은 돈이기에 쓸 때도 그 돈이 많은지 적은지 조차 파악되지 않을 만큼 많이 썼다. 몇 번 잃어서 아 저 새끼 존나 잘하네 하고 생각할 때 내 옆에 있던 악당이 말했다.

 

"여기선 속임수가 들키면 손을 자르던가?"

 

하고 말하면서 씨익 웃었다.

 

속임수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악당은 그 자리에서 나와 게임을 하던 그 녀석의 손을 내 허리춤에 꽂혀 있던 칼을 꺼내서 잘라버렸다. 우리를 어린애라서 만만하게 보고 있던 녀석은 뒤늦게서야 소리를 지르면서 잘린 팔목 절단부위를 붙잡고 나뒹굴었다. 나뒹구는 팔 한쪽을 보곤 나는 건조하게 말했다.

 

"어쩐지. 내가 이렇게 못할 리가 없지"

 

나는 중얼거리면서 악당이 잠시 빌려서 썼던 내 칼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감히 우리에게 사기를 치려던 그 녀석은 알고 보니 뭐 꽤나 유명한 조직의 보스랜다. 그래서 그 똘마니들이 많이 왔는데, 나도, 이 악당도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끔하게 다 처리했다. 너무 시시해서 김이 샐 정도로. 이 녀석들에 한해서는 나도 안심했던 것이다. 이 녀석들은 나쁜 녀석들이기에 죽여도 상관없어 라고.

 

 

 

 

 

참 우습게도 우리는 마냥 어리고 약하게 보였나보다. 사기를 치려고 과잉 친절을 베푸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들러붙었고, 구걸을 하는 사람도 여럿 만났다. 술을 마시고 진상부리는 사람, 깡패들, 이상한 종교로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사람, 검은 차를 타고 납치를 노리는 납치범들 등등 너무 심하게 우릴 귀찮게 하면 적당히 우리를 놓아주게끔 만들었다. 깡패들은 지들끼리 싸우다가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왔었는데, 이 악당은 그 깡패의 도발을 좋아했다. 나는 그냥 그 거리에서 더 이상 싸움을 하는 게 귀찮아서 그냥 그를 끌고 왔지만. 밤에 숨어있다가 우릴 덮친 납치범은 무기가 있는 나보다는 멍청하게도 그냥 우산 하나를 들고 다니는 이 악당을 납치했다. 뭐..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 외에 위협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야 적당히 무시하면서 걷다가, 우연히 길을 잘못 들어가서 매춘굴을 거닐게 되었을 때는 구역질이 났다. 매춘굴은 신센구미에서도 단속 때문에 몇 번 와본 적이 있지만 올 때마다 이 여자들을 인형처럼 세워놓은 화려한 쇼 윈도우와 진득하게 잘해줄게~ 하고 콧소리와 함께 멍청하게 큰 가슴을 부벼대면서 들러붙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짜증난다. 신센구미에서 갔을 땐 그래도 나는 어리다고 생각해서인지 많이 오지 않았는데 히지카타에겐 유독 많이 들러붙었었다. 몸 파는 주제에 눈은 있다 이건가? 하긴 같은 값이면 더 잘생긴 사람이랑 하고 싶겠지. 왜 유치찬란한 삼류연애 소설 따윌 보면 사연 많은 매춘부가 우연히 찾아온 근사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가 많잖아. 하지만 어쩌나? 안타깝게도 니코틴 중독인 그 병신 새끼는 고자여서 이런 쭉쭉 빵빵한 여자들에겐 관심이 없었었다.

 

이번엔 우리 둘이 지나가자 옆에서 수근대는 소리. 뭐야 애새끼들이잖아? 가서 엄마 젓이나 더 먹고 오던가 씨발. 같은 욕설이 간혹 들렸다. 그런 말을 하는 년의 면상을 보니 그런 말을 할 만도 하다. 아줌마 주제에 어려 보이려고 발악하는 듯한 떡칠화장과 볼성사납게 짧은 스커트가 정말이지 보는 내가 열이 받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거든.

 

"여기 여자들은 왜 이러는거야?? 저 유리 안에 사람들은 뭐고?"

 

그가 가리키면서 물었다

 

"몸 파는 거야 한번 하자고 안달 내는 거지"

 

"요시와라 같은 곳인가?"

 

"알고 있구나. 근데 느낌이 여기는 좀 더 어둡고 지저분한 느낌이야"

 

"여자랑 해봤어?"

 

그가 물었다

 

"아니, 그러는 넌?"

 

"해봤어. 나이가 몇 갠데"

 

"좋냐?"

 

"아니 여자가 못생겼었거든"

 

"근데 왜 했어?"

 

"궁금해서"

 

"단순하네. 기왕 할거면 예쁜 애랑 하지"

 

"다 거기서 거기여서 뭐. 전에 요시와라에서 제일 예쁜 여자랑 하게 해달라고 장난삼아서 말했다가 거하게 싸웠거든, 뭐 그건 일부러 싸우려고 자극한 말이었지만. 근데 막상 실제로 보니까 그냥 그랬어"

 

"원래 그런 사람일수록 소문만 무성하지 뭐"

 

 

목이 마르다고 해서 근처의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그 곳은 간판만 편의점이지 편의점이 아니라 그냥 성인용품 판매점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았다. 물을 찾으려고 둘러보는데 이 녀석이 포장이 막대 사탕처럼 되어 있는 콘돔을 집어 들고 물었다

 

"뭐야 이거??"

 

"콘돔이잖아"

 

"뭐 하는 건데?"

 

“섹스할 때 쓰는 거잖아. 해봤다는 새끼가 이런 것도 몰라”

 

“그러는 너는 경험도 없다면서 잘 아네?”

 

그는 웃으면서 그냥 내려놓았다. 기본 상식이다, 기본 상식.

 

“해볼래?”

 

“뭘?”

 

“섹스”

 

“아니. 하고 싶음 혼자 갔다 와”

 

“그럼 너 도망갈 거잖아”

 

“안 갈게. 갔다 와”

 

 

남자 새끼니까 이해했다. 내가 이상한 거겠지. 일단 나는 저런 암퇘지들과 돈까지 줘가면서 뒹굴고 싶지는 않다. 난 정말로 도망갈 생각은 없었고, 근처에 있는 오락실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이런 곳이야 시간 제한도 있으니 간단하게 빼고 오라고 말하고는 난 오락실로, 그 녀석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나를 순순히 믿는 것도 이상했지만, 어쨌든 난 도망가지 않을 거니까 상관은 없었다.

 

내가 찾아간 오락실은 근처의 매춘굴과는 약간은 달랐다. 시간이 많이 늦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청소년 정도의 내 또래 사람들도 많이 보였고, 더 어린애들도 많이 보였다.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인 것 같아 보이는 게 아마도 매춘굴에서 일하는 암퇘지들의 자식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옛날 생각이 나서 아날로그 게임 정도를 하는데 어떤 꼬마가 나를 건드리면서 말했다.

 

“형, 나랑 한 판해요”

 

보기에 대충 다섯 살에서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맹이여서 이 시간에 무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지 않았다고는 하나, 지금은 10시정도 되는 시간이었으니까 이런 꼬맹이들에게는 늦은 시간이다.

 

“집에 안가?”

 

“난 맨날 이 시간에 여기에서 노는데?”

 

그 꼬마는 내 옆에 앉아서는 나에게 물었다.

 

“형도 엄마 기다리는 거야?”

 

“응? 아니 난 그냥..게임하러”

 

부모님이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나는 어쨌든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이 꼬마가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나에게 누나가 부모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누나는 누나였고 그 책임을 다 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니까. 아, 그렇다고 누나가 부족했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누나는 나에게 최고였으니까. 그냥, 단순하게 누구나가 없는 것에 대해서 부러움을 느끼는 그런 유치한 감정 정도라는 거다.

 

어쨌든 나는 심심하기도 해서 이 꼬마랑 몇 게임을 했다. 어린애들을 썩 좋아하는 나는 아니었지만, 가끔 이런 순수함을 보면 나조차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가끔은, 아주 가끔은 재밌어 했다. 하다가 돈이 떨어졌다 길래 내가 그냥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서 줬다. 고맙다고 연신 말하면서 동전을 바꾸는 모습을 보니 그냥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시 게임에 집중을 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의 시끄러운 웅성거림이 확 멈추더니 이상하리만큼 잠잠하게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두려운 무언가를 본 듯 수근수근대는 소리가 이어져 뭔가 싶어서 그 쪽을 쳐다보았다. 온 몸에 피를 묻힌 악당 녀석이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 동전을 바꿔서 온 그 어린애는 이 악당을 보고는 들고 있던 동전을 다 떨어트려버렸다. 짤랑 짤랑 하는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새파랗게 질린 채로 멍하니 서 있는 꼬맹이와 오락기에 앉아서 그를 쳐다보는 나, 그리고 우리 둘을 둘러싸고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 나는 이 상황에서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녀석의 감시인이니까.

 

 

“가자”

 

 

그가 말했다. 수근대는 사람들과 공포에 질려서 우리 둘을 번갈아 보는 이 꼬맹이..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그 오락실을 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또 뭔가 제 맘에 안 들었겠지. 얼마나 맘에 안 들었는지는 몰라도 저 정도의 피를 묻히려면 적어도 이 새끼가 갔다가 나오면서 만난 사람은 다 죽인 것 같다. 나는 묻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내가 조용히 있으니 이상하게 그 새끼가 나에게 말을 했다.

 

“.... 짜증나게”

 

“응”

 

“재수 없게”

 

“응”

 

“....생각나게”

 

“..원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나는 곳이야 여긴”

 

그 말을 하고나서 우린 아무 말도 안했다.

 

 

 

 

 

 

 

* * *

 

 

 

 

 

 

 

 

얼마나 왔는지도 몰랐고, 얼마나 많은 기간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그 곳이 어디쯤인지도 몰랐다. 그냥 계획 없이 이곳 저곳 떠돌았으니까. 짐작이 가는 것은 우린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도시에만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사람이 많은 것을 보니 약간의 도시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린 전혀 내켜하지 않았고 그냥 심드렁하게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차창 밖으로 구경하다가 답답해서 좀 걷기로 했다. 그리고 이 녀석이 뜬금없이 배가 고프다면서 과자가 먹고 싶다며 어떤 작은 가게로 들어갔을 때, 그 앞에서 파는 신문을 잠깐 떠들어 보았다. 나는 사실 신문 읽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히지카타는 신문을 꼭 봐야한다고 항상 잔소리를 해댔지만, 그래서 보는 척을 하면서 그냥 삽화나 사진이나 보다가, 신문에 실린 만화나 좀 보다가, 퀴즈 게임이나 좀 풀거나 했다. 그런 나를 알고 히지카타는 그렇게 신문이 보기 싫으면 범죄자가 실려 있는 페이지라도 보라고 잔소리를 해대서 그 페이지는 보긴 했다. 난 범죄자를 잡는 것에는 꽤나 열정적이었으니까. 그 부분을 자세히 보는 것은 아마 경찰 밖엔 없을거다. 약간의 반 습관으로 신문의 범죄자 쪽 페이지를 펼쳤을 때 나는 보자마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시골의 어느 곳부터 시작된 엄청난 범죄, 집단으로 시체가 발견 / 용의자는 단 2명으로 파악되고 있음]

 

 

[y지역에서 차에 치인 다수의 사람들이 발생. 그대로 도망쳐 방치까지.. 사망자 12명, 중상자 거의 30명 가량. 공공재 파손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j지역의 은행에서는 은행 강도 짓까지 벌인 것으로 추정. 피해액은 대략 10억 정도로 파악되고 있음. t마을에서는 어느 여관의 주인장과 더불어 한 무리가 지하실에서 사망. 14명의 토막 난 시체와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장난을 친 듯한 시체가 심각하게 훼손 된 채로 발견되었다. 근처의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용의자의 인상 착의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이 사건도 동일범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둘이 타고 다니는 차량 번호를 추적하려 하지만 쉽지 않음. 게다가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아직까지 그 차량을 타고 다니는 지는 의문. 몇 일 전 문제의 N폭력 조직집단의 우두머리와 상당수의 간부급들이 죽어버리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 또한 이 둘이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 그리고 가장 최근 h지역에서는 매춘 굴에서 일어난 집단 사살사건이 다시 한 번 발생. 동일범으로 추정되고 범인을 잡기 위해서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그 아래는 나와 이 녀석이 어디서 찍혔는지 모르는, 화질이 심각하게 좋지 않은 사진 한 장이 실려 있었다. 이 녀석의 주황색 머리칼 색상만 선명하게 보였고, 나는 이 녀석이 둘러주었던 회색 망토를 쓰고 있는 사진인 것을 보니 아마 은행을 갈 무렵 쯔음? 인 듯하다. 얼마나 큰 이슈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라면 가득 매우고 있어야 할 다른 범죄자들은 구석에 작게 있었고 온통 우리 둘이 벌인 범행으로 가득 매워져 있었다. 심지어 우리의 예상경로까지 대놓고 분석해놓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왔다. 멍청이들. 예상경로 같은 걸 대놓고 신문에 발행하면 어떡하냐?

 

 

[대략의 인상착의는 한 명은 주황빛을 띈 긴 머리 그리고 키는 170정도로 추정. 다른 한 명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지 않아 조사 중. 그 한 명도 덩치는 크지 않으며, 키도 비슷한 것으로 추정.]

 

 

혹시나 해서 신문 맨 앞면을 다시 펼쳐 보니 맨 앞도 화려하게 우리의 범죄로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뭐.. 신문카피는 원래 과장이 심하지만 우리를 일컬어서 악마의 자식들이 아니냐, 사실 신이 내린 저주가 아니냐 등등..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는 카피로 잔뜩 겁을 주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악당 녀석을 감시하는 감시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범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옆엔 이런 기사도 있었다.

 

 

[신센구미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 실종.

사망으로 추정 중이지만, 아직 동료들은 인정하고 있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인질로 붙잡혀 있었다고 추정되는 곳에서 발견된 그의 유품을 보고 인정하라면서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음으로 신센구미에서는 그의 사망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형 범죄자가 등장한 탓에 1번대 대장의 후임을 어떤 사람으로 할지에 대해서 막부는 재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막부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그런 신센구미의 태도에 대해서 사람들은 많은 비난은 쏟아내고 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신문엔 자주 실려봤다. 신문에 실릴 때의 나는 항상 당당하게 브이 자를 그리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신문에 실리곤 해서 히지카타에게 항상 잔소리를 듣곤 했는데 이렇게 정식적으로 ‘범죄’ 란에 내가 실리게 된 것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옆에 살아있는 나의 실종기사, 사망 추정기사, 심지어 나를 찾고 있는 나의 동료들의 간절함과 나를 향하고 있는 신뢰가 순간 내 몸에 와 닿으면서 나는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돌아가? 나는 이미 범죄란과 더불어 헤드라인에 대형만하게 실릴 정도로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악당의 동료가 되어버렸는데. 그것도 전적이 아주 화려한. 나는 이 녀석에게 악당이라고 말하면서 부정했지만 어느새 동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신문을 잔뜩 얼어서 한참 쳐다보고 있자 그 악당 녀석이 과자 따위를 사서 나오다가 신문을 보는 내 어깨에 턱을 기대곤 보다가 말했다.

 

“어? 이거 너잖아?”

 

실종기사 위에 있는 나의 사진이었다.

 

“제복을 입었을 땐 이런 느낌이구나?”

 

나는 신문을 확 덮고 그에게 말했다.

 

“차. 버리자”

 

“그래!”

 

“우리 수배되고 있어”

 

나는 약간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응!”

 

너무 당연한 말을 한 건가. 그는 놀라는 기색도, 당황하는 기색도 하나도 없이 그냥 웃으면서 막 사온 과자를 우적우적 먹고 있었다.

 

나는 그 신문을 덮자마자 가게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우리를 알아채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전혀 짐작도 못하는 듯 했다. 일반인들은 이런 범죄란을 잘 보지도 않고, 설령 봤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제 눈앞에 이런 대형 범죄자가 떡 하니 여유롭게 나타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런 알아보지도 못할 사진으로 누굴 어떻게 찾겠다는 거야?

 

나는 항상 쫓기만 하는 사람이어서 쫓겨 다닌다는 것이 약간은 두려웠나보다. 답지 않게 조바심을 냈다. 아니, 나는 경찰인데 범죄자가 되어버렸다는 자괴감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당황해?”

 

그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아니야”

 

“수배되서 무서워? 아냐 이제 오히려 걱정 없지? 이제 그 어떤 일을 저질러도 똑같아. 사형선고. 우린 이미 잡히면 사형이야. 경찰인 네가 더 잘 알잖아?”

 

“...”

 

“근데, 우리가 잡힐 리가 있어?”

 

그는 웃었다. 그 자신만만한 미소. 맞다. 우리가 잡힐 리는 없다. 우린 강하니까. 내가 잡힐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몰라, 그냥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자꾸만 나는 걱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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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융해점 4

2015. 9. 18. 21:54

 

 

 

 

 

 

 

 

 

 

 

 

 

 

다다른 곳은 어느 여관이었다. 너무 허름해서 사실 내지키진 않았지만 너무 늦었고, 둘 다 피곤해서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허름한 만큼 들어가자마자 그 로비는 술집이었는데 딱 보기에도 범죄자 같이 생긴 무리들이 문을 열고 들어온 우리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시끌벅적하다가 갑자기 멈춘 그들의 말소리가 부담스러웠지만, 나와 함께 온 이 악당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여관으로 들어가 두 명이요 하고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동안에도 이 무리들은 한참 우리를 쳐다보았다. 내가 쳐다봐도 피한다거나, 하는 것 없이 기분 나쁘게 히죽히죽 웃으면서, 손에 든 술잔을 홀짝 대면서 우릴 위에서 아래로 쭈욱 훑었다.

  

“아, 미안 여기 손님들인데 꽤나 짓굳지?”

  

안내하는 주인은 상냥한 인상이었고, 보자마자 곤도씨와 많이 닮아서 놀랐다. 말투도 그렇고, 턱수염도 그렇고. 약간 세워져있는 머리칼도 닮았다.

  

“둘은 친구니? 여행하는 거야?”

  

친구. 우리 둘은 서로를 잠시 쳐다보다가 서로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에.. 뭐...친구.. 이러면서 얼버무렸다.

  

“여기 이 사람들은 여기 단골손님이야. 여기가 상당히 외진 곳이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용케 볼 수가 없거든 조금 신기해서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

  

곤도씨를 닮아서 인지 친근한 그의 인상이 싫지 않았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준 2층 방에 얼마 없는 짐을 풀어놓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봤어?”

  

“뭘?”

  

“음.. 아냐”

  

우린 서로 이야기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캐묻지 않았다. 이 여관에 손님은 로비의 사람들과 우리 밖에 없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한참 누워있는데 노크를 하곤 그 주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혹시 출출하면 맥주라도 한 잔 할래? 아래의 손님들은 모두 돌아갔어”

  

나는 원래 붙임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그런 것을 쉽게 허락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낯이 익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을 약간은 풀어 놓은 것 같다. 순순히 응하는 나를 이 악당은 그냥 별 상관없다는 듯이 따라서 아래로 같이 내려갔다.

  

테이블에 앉자 그 주인이라는 사람이 우리 둘에게 맥주를 한잔씩 앞에 내려놓았다.

  

“마셔. 오랜만에 어린친구들 보니까 기분 좋다. 어디 갔다가 오는 길이니?”

  

곤도씨보다 말투가 약간 사근사근한 것 같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저희 둘 다 별로 생각이 없어서”

  

이 악당은 그냥 옆에서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하고선 술만 홀짝홀짝 마셨다.

  

“그래? 그럼 저기 앞에 바다도 있어. 내일 그쪽에 한번 가봐. 너희 차도 타고 왔던데 그럼 더 가까울거야. 몇 일 더 머물지 그래? 여관비가 부담스럽다면 내가 조금 싸게 해줄게 그냥 너희같은 애들이랑 조금 더 이야기 해보고 싶어서 말야”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서 나는 이 악당 녀석을 힐끗 쳐다봤는데 그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할까?”

  

사실 나는 내심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그의 대답이 좋았다. 맥주를 두어잔 마시고 나서 방에 돌아왔을 때 이 악당이 물었다.

  

“어때?”

  

“뭐가?”

  

“아니, 네가 꽤나 저 주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아는 사람하고 닮아서. 그 뿐이야”

  

그는 그냥 다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네가 경찰과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은 숨기는게 더 좋아보여”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일 바다에 가볼까?”

  

나는 무시하고 물었다.

  

“응 가자”

  

  

  

다음날 그 주인은 우리에게 지도까지 챙겨주면서, 제법 세세하게 이것 저것 알려줬다. 그래서 나는 그 모습도 고마웠다. 진짜로 곤도씨 같았다. 아니, 곤도씨와 히지카타를 적당히 합쳐놓은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꽤나 고분고분하게 의견을 잘 들었고, 고맙다는 인사도 꽤나 정중하게 했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곤 이 악당은 옆에서 피식 웃으면서 너 이렇게 착했었냐? 하곤 킥킥 웃었다. 이 새끼가 진짜.

  

찾아간 바다는 근사한 바다는 아니었다.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었으니까. 큰 바다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많이 보이지 않는 작은 바다였다. 이 근처에 어부가 많은지 어선이 종종 있었고, 조개껍질도 많았고, 그래서인지 생선 썩은 냄새와 함께 새들도 많이 날아다녔다. 까마귀도 유난히 많아서 그런 점은 약간 기분이 좋진 않았다.

  

“와 바다다. 좋지?”

  

“글쎄”

  

나는 싱겁게 말했다.

  

“니가 오자고 했으면서 싫다고 하면 어떡해? 좋다고 해”

  

그 악당이 말했다. 무시했다.

이 녀석은 가끔 정말 애 같을 때가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히지카타는 너보다 더 애같은 녀석이 세상에 있을 리가 있냐면서 놀라하겠지만, 있다. 지금 내 옆에.

  

근처에 보이는 어슬렁 거리면서 걸어다니는 아저씨들은 다들 시커멓게 탔고, 턱수염을 덥수룩 하게 기르고 있었으며, 입에 담배를 하나씩 물고서 껄렁껄렁하게 멀리서 우릴 지켜보거나, 기분 나쁘게 쳐다보고 지나갔다.

  

“저렇게 쳐다보는 사람들 죽여버리고싶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죽일까?”

  

그는 싱글싱글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아차 싶었던 나는 그냥 농담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말했다.

  

“봐, 너도 나랑 다를 거 없다니까?”

  

“죽여버리고 싶다 라는 말은 누구나 하는 거거든? 그런 농담을 하는 이유는 진짜로 죽일 수 없기 때문이야 이 새끼야”

  

“넌 할 수 있잖아?”

  

말하곤 그는 다시 키득키득 웃었다. 몇 일째 기분 나쁘게 이 새끼가 자꾸.

  

돌아온 우리를 보고 주인은 우리에게 어땠냐고 다녀온 소감을 물었고, 이 녀석은 대놓고 별거 없던데요? 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냥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녀석이 너도 별로라고 했잖아? 라고 말하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셋이서 같이 맥주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해도 이 악당은 대화에 잘 끼지 않았다. 이야기 하다보면 이 녀석은 그냥 말 없이 술만 마시거나, 먹다가 먼저 잔다고 하면서 먼저 올라가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일주일 가량을 그 곳에서 보내면서 나는 그 주인과 꽤나 친해졌다. 그 날도 이 악당은 맥주를 홀짝홀짝 저 혼자 다 마시더니 자긴 잔다면서 올라갔다.

  

“저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잘 모르겠다.”

  

“저 새낀 맨날 저래요”

  

“넌 담배는 안피니?”

  

담배 하니까 나도 모르게 히지카타가 생각났다.

  

“네 안펴요. 근데 아저씨는 뭐라고 불러야 되요?”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저렇게 이야기 하는 것도 곤도씨 같아서 친근했다. 그 날은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도 이야기를 하다보니 술을 많이 마셨다.

  

주인 아저씨는 자신에게 나 정도 되는 동생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보면 동생이 생각난다고. 어릴 때 사고로 죽어서 아마 별일 없이 컸다면 나 정도 됐을거라면서. 그러면서 그래서 네가 친근한가봐~ 하고 웃었다. 곤도씨가 자꾸 생각나는 나도 말했다.

 

"아저씨도 저 아는 사람하고 꽤 많이 닮았어요"

 

"그래?"

 

"네"

 

"어떤 사람인데?"

 

"음...뭐라고 해야하나.. 엄청 가까운 사이...인데"

 

곤도씨와 내 사이를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자 그냥 그 사람은 말했다.

 

"안 그럴 것 같았는데 존댓말은 꼬박꼬박 쓰네?"

 

그렇게 말하고는 내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나도 그냥 멋쩍게 웃었다

 

분명히 다른 사람인데도 나는 너무나 닮은 이 사람에게 자꾸 곤도씨를 찾았고, 처음 보는 사람을 나 답지 않게 잘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나는 신센구미를 찾지 않고 있지만, 신센구미안의 우리들이 아닌, 부슈시절의 우리들의 모습을 찾고 있었나보다. 신센구미가 아니었다면 우린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들에게 돌아갈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나를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는지, 아니면 지금 즐기고 있는 이상한 휴식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올 때 보니까 칼을 가지고 있던데 혹시 막부 쪽에 사람이니?”

  

“아.. 그거 그냥 모조품이예요”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니 쪽팔려서 죽고 싶다. 옆에 그 악당 녀석이 있었다면 아마 큰 소리로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어버렸을 거다.

  

“얼굴 빨간데 많이 마셨어?”

  

그 주인이 내 뺨에 손을 얹으면서 물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썩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스윽 뒤로 빼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말했다.

  

  

  

  

* * *

  

 

 

  

‘....그래서......그럼....언제....’

  

‘..기다려...정보....를.....모르니......것이...’

  

‘...녀석......하지만......아.....근데.....’

  

  

시끄러워! 조용히 좀 했으면 하는 생각에 눈을 가늘게 떴다. 퀘퀘한 냄새와 약간 습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내가 있는 곳은 어두운 지하로 추청되어 보이는 곳이었다. 그 곳에 그때 첫날 그 술집에서 봤었던 것 같은 그 기분 나쁜 그 인간들이 가득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묶여 있었다. 손목을 살짝 움직여 강도를 보니 느슨하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묶어놓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깜빡 깜빡 거리면서 일어나자 그 주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상황 판단을 바로 했다. 물론 이 주인을 좋아했다. 잘 따랐고. 그렇지만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냥.. 아. 그래서 잘해줬었구나 하는 회의감이 약간 나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주인이 내 앞에 다가와서는 큰 손으로 내 턱을 잡고는 말했다.

  

“눈 두 개, 간, 콩팥, 폐, 등등 팔 수 있는 것 다 팔면 얼마 정도 할까?”

  

그 사람의 뒤에선 어떤 안경을 쓴 사람이 나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눈 한쪽이 대략 2천에서 3천, 다른 장기들은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어리니까...”

  

하고 중얼거리면서 무엇이 써 있는지 모르는 책을 뒤적뒤적 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궁금했다. 내 몸값이 얼마나 될지.

  

“저, 시력 좋아요 멀리 있는 것도 잘 봐요”

  

내가 말하자 다들 나를 쳐다봤다.

  

“담배도 안펴요. 운동도 잘해서 아마 다른 데도 좋을 거예요. 저 어릴 때 부터 병도 쉽게 안 걸렸거든요. 술은 좋아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괜찮겠지 뭐. 등급 좋을 거예요 얼마예요? 완전 비쌌으면 좋겠다”

  

“표정하나 안 바뀌고 그런 말 잘하는구나”

  

“이럴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요”

  

그 주인은 내 앞에 바짝 다가와서는 내 귀에 대고 말했다.

  

“나는 너 정도 되는 아이들을 참 좋아해 피부가 굉장히 부드럽거든 머리카락도 그렇고”

  

그러면서 내 머리칼을 살며시 헝클었다. 나는 그냥 별 생각이 없었다. 이미 느슨한 밧줄은 거의 다 풀어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이 사람은 곤도씨와 닮았어도 곤도씨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이라도 믿고 마음을 줬던 사람이 알고 보니 돈을 벌기위해서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처음엔 덤덤했었는데 점점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내가 그를 좋아했으니까 더 화가 났다. 내 순수함을 배신했으니까. 난 그를 처음부터 믿었다. 아무 조건 없이. 그리고 그 것에 대한 결과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시커먼 무리들과 함께 더불어 내 몸값을 책정하는 장기매매라니. 잠시나마 우리가 신센구미가 아니였다면 하는 가정 아래에서 우리의 모습을 이런 장기매매범을 통해서 봤다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나의 곤도씨는 너 같은 새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착하고 순수한 사람인데, 감히 그의 탈을 쓰고 이런 짓을 행하지마!

 

묶인 손을 풀고 나서 내가 그의 손을 잡자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분명 묶여 있었는데 어떻게 된거냐 하는 표정이었는데, 그 표정의 물음엔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이렇게 병신같이 묶는 사람에게 잡히는 바보는 세상에 단 한명도 없어. 아 많았으니까 계속 이런 바보한테 장기를 털렸으려나.

 

놀라서 달라드는 그 무리들. 나에게 칼은 없었지만 무기는 이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그 어느것이라도 상관없으니 하나만 빼앗으면 되었다. 나무 몽둥이, 톱, 망치, 도끼, 낫... 칼은 없네. 폐도령 시대에 칼을 구하긴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에겐 칼이 제일 잘 맞는데. 내가 비록 완력은 강하지 않았다고 하나, 이런 제대로 되지도 않은 이런 놈들은 10명이고 20명이고 달라 들어도 상관없다.

 

내가 제일 먼저 노린 사람은 커다란 낫을 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상당히 말랐는데, 이 장기매매범 중에서 돈을 가장 밝히게 생겼다. 게다가 직접 장기를 수술하는지 그의 뒤에 끌고 온 바퀴달린 카트에는 매스나, 비닐장갑, 가위 등등이 피가 들러 붙은 채로 시퍼런 빛을 발하면서 번쩍이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의 배를 갈라서 우월감을 느끼는 이런 사람들은 사실 싸움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처럼 누워선 꼼짝 못하는 사람밖엔 상대해 보지 않았을 테니까.

  

낫을 손에 쥔 나는 그 안에 있는 거대한 덩치를 한 많은 남자들을 향해서 낫을 휘두르기만 해도 그들의 몸의 일부가 툭툭 떨어지고 그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나를 괴물을 보듯이 쳐다보면서 도망가려고 문을 향해 달려갔지만 내가 도망갈 것을 염두해서 본인들이 걸어놓은 자물쇠를 당황해서인지 열지 못했고, 그들이 자물쇠를 열기를 기다려줬다가 나가기 직전. 그들 역시 내 손에 반토막이 났다. 문 손잡이를 잡고 주욱 미끌어지는 그 모습이 얼마나 볼만하던지.. 내 표정은 평소와 똑같이 무표정이었겠지만 나는 화가 난 상태였다. 토막 난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 덜덜 떠는 곤도씨와 닮은 그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나는 물었다.

  

“담배 펴요? 시력은?”

  

피에 물든 가격이 대강으로 적어져있는 그 책을 집어 들고 물었다. 새 하얗게 질려서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쳐다보다가 내가 말했다.

  

“몇살이에요? 늙었을 테니까 값도 얼마 못 받겠네요? 여기서 직접 수술도 하나봐요”

  

나는 카트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는 정신이 반쯤 나갔는지 아무 말도 못했다. 딱 그 상태였다. 무서워서 도망치지도 못할 만큼 하얗게 질려버린 상태. 나는 이런 상태인 인간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가장 마지막에 죽이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 상태가 되어서 떨지도 못하고 나를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나는 그런 상태의 사람들은 죽이지 않고 보내주곤 했다. 그냥 보내도 정상으로 살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 어렸을 때 잠시나마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칼을 잡고도 정당하고, 모두에게 머리를 조아림받고, 사람을 죽여도 합법이거든요”

  

나는 그 카트에 있는 수술용 칼을 집어들고 말했다.

  

“공부를 못해서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바로 접었지만”

  

매스를 집어들고 다가가선 그에게 다가가서 귀에 대고 말했다.

  

“곤도씨는, 당신하고 달라요. 순수하거든요”

  

매스를 그의 눈 사이에 살짝 대면서 말했다. 눈이 먼저예요. 한 쪽 눈에 매스를 박아 넣었을 때 그는 괴성을 질러댔다. 얼마나 괴로운지를 뼈저리게 알려주는 그런 소리였다. 나는 가끔 이런 것에도 즐거움을 느껴서 내 주위에 있는 이상한 형태의 토막 난 시체들과 더불어 그 비명소리가 나를 흥분시켰다.

  

“의사놀이 계속 해도 되요?”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 * *  

  

 

 

 

이성을 차렸을 때 내 앞에 있는 곤도씨를 닮은 그 주인. 하지만 얼굴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입에는 거품을 문채로. 한쪽 눈은 매스가 박혀 있었고. 다른 쪽 눈은 뭉개져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서 복부까지는 살갖의 가죽이 커텐 마냥 활짝 열려있고, 장기들이 밖으로 가득 나와 있었다.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게 아니었다. 잡아서 꺼낸 것이었다. 그 지하 창고는 장난감 블록마냥 맞춰야 할 것처럼 널부러져 있는 다른 이들의 시체와, 그 주인의 시체가 해부 실험의 끝물에 이성을 잃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난도질을 하고 버린 개구리마냥 쓰러져 있었다.

 

멍하니 그 광경들과, 내 손에 흥건히 묻어 있는 피, 그리고 옆에 나와 함께 있는 낫을 번갈아 보고 있는데 문이 끼익- 하고 조용한 소리를 내면서 문이 열렸다. 나는 떨어져있는 매스를 집어들고 들어오는 사람을 향해서 힘껏 던졌다.

들어온 사람은 악당이었다. 내가 던진 매스를 감각으로 슬쩍 피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재밌는 걸 할 줄 알았으면 그냥 같이 있을 걸 그랬어”

  

그는 피투성이의 나와 내가 벌인 일을 보고는 아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었는데, 이 악당은 그들이 장기매매범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 봤어? 하고 물어봤던 것이 그 것이었는데, 나는 그걸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바다에도 장기들을 잔뜩 버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까마귀가 많은 이유는 아마 그런 이유일거라고.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서 생각보다 네가 순순하길래 놀랐어 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구경하면서 아주 재밌었다나 뭐라나. 뭐, 딱히 알려줄 의무는 없었으니까 그런 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그에게 서운하다거나, 뭐 그런 사사로운 감정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는 알기가 힘들잖아. 진짜로 어떻게 알았어?”

  

그냥 궁금해서 물었다.

  

“그냥 얼굴에 써 있던데?”

  

“얼굴에 써있는 글씨를 읽을 줄 아는구나 난 뭐라고 써있어?”

  

“살인마 라고 써있어”

  

“정말 잘보는구나 너.”

  

 

 

 

* * *

 

 

 

  

그 주인 없는 여관에서 우리는 이틀정도를 더 머물렀다. 이미 묶는 손님도 우리 뿐이었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으슥하고도 수상쩍은 여관인데 우린 말 그대로 겁이 없었으니 이런 곳에 묶게 된 것이다.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때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지하실의 시체 썪는 냄새가 올라왔을 때였다.

  

“봐. 너도 다르지 않다니까”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정당방위야”

  

“와아 정말 대단한 정당방위야”

  

그는 비꼬듯이 말하고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정당방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실 이런 동기를 기다렸던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분명히 살인자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옆에 있는 악당과 같지 않다고 힘차게 부정하고 있었다. 그런 거센 부정안에서 사실 거침없는 그를 부러워 했는지도.

 

 

 

 

 

 

 

 

 

 

 

-

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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