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융해점 7

2015. 10. 9. 17:23

 

 

 

 

 

 

 

 

 

 


뜻하지 않게, 우리는 유명해졌다.


유명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우리가 길을 물으려 순수한 마음으로 어떤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우리를 본 그 사람은 정말이지 괴물이라도 본 사람처럼 발작을 해대면서 뒷걸음을 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한 채로 뒤로 나자빠져서는 잘못했다면서 살려달라고 빌었다. 당황한 내 옆에 악당도, 나도 풀썩 엎드려서 거의 울다시피 흐느끼는 그 사람에게 혐오감을 느껴서 손을 대지도 않고 그냥 돌아섰다.


그리고 나와 악당은 농담 식으로 욕을 섞어가면서 저런 유형은 죽일 가치조차 없는 유형이라면서 평가했다.


"저런 유형은 정말이지 당황스럽게 만들어"


악당이 말했다. 나도 공감하면서 웃었다.


어떻게 우리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 한 것도 나중이었다. 우리 둘은 그런 유형의 사람을 처음 봤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욕설을 하면서 평가하기 급급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는 공포에 질린 모두의 눈초리를 보고 우리가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우릴 공격할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가지도 않았다. 아니, 못 나갔다고 말을 해야 하나? 우리가 들어선 순간, 점원들의 새하얗게 질리는 얼굴, 그리고 그 가게 손님들의 조용한 수군거림 소리로 기분 나쁘게 조용했다. 뻔뻔한 악당 녀석은 나에게 이곳은 굉장히 조용하다면서 웃어댔는데 모두의 그 눈초리는 우릴 공격하는 것보다 더 크게 나에게 타격을 입혔다. 더 이상 그곳에 있기가 싫어서 그 악당을 끌고 그곳을 나왔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고도 공포스럽게 울리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나가고 나서 한참 후의 일이었다.


"왜?"


악당은 나에게 물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사람들이 우릴 알아보잖아"


"아 그래?"


무신경한지 바보 같은 건지, 이 녀석은 그냥 별 상관없다는 듯한 행동을 보였고, 나도 크게 상관이야 없었지만 그 관심이 당황스럽긴 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쫓기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인 당연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새삼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때는 그냥 경찰들을 피해 다녔다. 이 악당은 계속 나를 따라오면서 투덜투덜 대면서 어째서 우리가 도망 다녀야 하느냐고 물으면서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고, 나는 그 물음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부턴 너무 번화한 곳은 피해서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곳만을 다녔는데, 확실히 그곳은 알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고, 딱 보기에도 돈이 없어 보이는 낡은 옷을 입은 아이들, 그리고 삐쩍 마른 노인들만이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멀뚱히 그들을 쳐다보는 우리를 한 번씩 쳐다보고도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치거나,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하듯이 지나갔다. 유령들이 가득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주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지랖 넓은 어떤 노인이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우리 그런데 못 가. 문제아 거든."


이 악당이 농담 섞인 특유의 껄렁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 노인이 우릴 빤히 쳐다보더니 우리에게 주머니에 있는 한껏 꾸깃꾸깃한 돈을 꺼내더니 내 손에 콱 쥐여주면서 말했다.


"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너무 황당해서 나와 이 녀석은 서로를 쳐다보고, 내 손에 들려 있는 그 돈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나는 다시 내밀면서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지 말고 받아, 요즘 세상도 흉흉한데 얼른 어른들 품으로 돌아가라. 돌아다니다가 큰일 난다?"


결국 돈은 돌려받지 않아서 내가 쥐고 있었고, 이 악당은 굉장히 어이없어하면서도 가서 뭐라도 사 먹을까? 하면서 내 손에 들려 있는 돈을 쓰윽 빼갔다.


감히 우리를 동정을 하는 거야?. 하고 생각을 하면서 화가 날 수도 있었을텐데, 별로 화가 나진 않았다. 그냥 그 돈을 쥐고서 향하는 이 악당을 뒤따라서 아이스크림 따위의 소소한 것을 사 먹었다. 하지만 한 두 입 정도 먹다가 왜인지 모를 역겨움 때문에 맛이 느껴지지 않아서 반 쯤 먹다가 버렸다.

 

 

 

 

 

 

* * *

 

 

 

 


 

그렇게 돌아다니던 우리는 그 다음엔 대놓고 경찰을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사복을 입고 우릴 덮치는 경우도 많았고, 경찰차를 이용해서 쫓아오는 경우도 많았는데 설렁설렁 도망치다가 기를 쓰면서 쫓아오는 경찰들을 보면 우스워서 그냥 공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차를 뺏어서 타고 경찰인 척 하는 것도 재밌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의 공포에 어린 눈초리나, 우릴 잡으러 용기있게 달려온 경찰들도 막상 우리 앞에 와서는 덜덜 떠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쭐해졌다. 심지어 몇명이 달라들던 상관없이 우린 다 이겼으니까.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것까지 성공하게 유도해준 적도 있다. 알고 있다. 자신의 손목과 내 손목에 연결하는 수법. 그리고는 잡았다! 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럴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경찰의 손목을 단도로 잘라내버렸다. 그리고 친절하게 그 손을 주워서 들고 주저 앉은 그 사람에게 건네주면서, 자, 손잡고 병원에 가봐, 하고 말하곤 했다. 그때 나를 올려다보는 그 눈빛도 나를 너무나 자만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에게 손목을 바친 경찰은 여섯명정도 였다.

 


우리 둘이 같이 있음에 한해서 우린 최강이었고, 누구도 우릴 막을 수 없다는 그 우월감에 젖어서 경찰이라는 존재가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았고, 오히려 우리의 유흥을 자극해주는 존재라고 인식해버렸다. 그래서 더 자극하려 일부러 경찰서에 대놓고 찾아가서 방화를 일으킨 적도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확 달아오르는 열기와 함께 탁탁 하고 타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허둥지둥 나오는 사람들. 그 꼴이 우스워서 나와 이 악당은 멀리서 지켜보면서 웃었다. 멀리서 달려오는 소방차와 커다란 불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재밌어서.

 

"봐. 예쁘지? 난 저게 너무 좋아"

 

악당은 보면서 말했다.

 

"응"

 

나도 보면서 웃었다. 뭐랄까. 따스했다. 커다란 불이 타오르면서 느껴지는 열기가,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피곤했다. 경찰이 무섭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쉴때는 그냥 방해받지 않고 쉬고 싶었다. 주위가 먹색으로 까맣게 물들어 다들 잠겨버린 시간. 우리가 그 으슥한 골목을 다시 서성일때, 그때 돈을 주었던 그 노인을 우연히 다시 마주쳤다. 집 근처에 쓰레기 따위를 버리러 나온 듯 했는데, 이 악당은 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 했지만 나는 알았다. 그렇다고 굳이 아는 척을 한다거나, 고맙다거나 하는 인사를 할 생각은 없어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그 오지랖 넓은 노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가출한거냐?"

 

가출. 맞네. 일단 집엔 안가고 있으니.

 

"갈 곳 없으면 우리집에 와서 자고 가. 어차피 아무도 없어"

 

"우리가 누군줄 알고 집에서 재워주겠데?"

 

악당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작게 말했다지만 조용한 어둠이 깔린 그 시간에는 충분히 들릴법했고, 그 소리를 들은 노인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따라오라고 말했다.

 

이런 친절이 그렇게 좋은 결과로 돌아온 적이 없어 나는 약간 망설였지만, 악당은 망설임 없이 그 노인을 뒤따라가면서 집 커? 나 뭐 먹고 싶은데 줄 수 있어? 아, 그러고보니 아까 돈 줬던 아저씨구나, 줄거면 좀 더주지. 하고 장난스럽게 말을 하며 걸었다.

 

"안 와?"

 

따라오지 않는 나를 뒤돌아보며 묻는다. 저 녀석이 있으니 상관없지. 하는 다소 수동적인 생각을 하면서 뒤따라갔다. 판자촌 아니랄까봐 걸어 올라가는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걸려서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할때서야 도착했다. 미로같이 얽히고 너무 깊숙해서 도둑도 오려다가 짜증날 것 같은 위치. 거의 쓰러져가는 집이었고, 벽 하나로 그냥 위치가 구분되어 있는 그런 곳이었다. 퀘퀘한 냄새와 무엇하나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그런 공간이 좋진 않았지만 피곤한 나는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난 안쪽에 있을테니까 너흰 그쪽에서 자라"

 

그 말을 남기고 안쪽으로 홱 들어갔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산다는게 신기하다"

 

어둠에 서서히 익숙해졌을때 내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러게"

 

쓰고 있던 갓을 내려놓고 눕자 이 녀석이 내 옆에 바짝 다가와서는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핥아댔다.

 

"...그만"

 

내 말에 그가 얼굴을 들고 나를 한번 쳐다본다. 내가 그 녀석의 어깨를 짓누르면서 억지로 눕히고는 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 그 날은 다른 짓을 하려는 생각은 없어보였지만 계속 귀찮게 나를 끌어 안았다. 옆에 누가 엉겨붙어댈때 편히 자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뭔가 따뜻했고, 더불어 나는 피곤한 나머지 듣지 않는 이 녀석에게 놓으라고 몇 번 이야기를 중얼거리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언제 잠들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자다가, 이 녀석이 뒤척이는 탓에 나도 함께 깼다. 잠에 잔뜩 취해서 가까스로 눈을 뜨고 그 녀석을 쳐다보았다. 악몽이라도 꿨는지, 내가 그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그 때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히 자리를 뜨려는 그가 칼을 찾는다는 것을 아는 나는 누워있는 채로 그의 팔을 급히 잡았다. 그가 놀란듯이 나를 돌아본다.

 

"그러지마"

 

그는 말없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숨소리를 내쉬었다. 나는 눈을 부비면서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시 말했다.

 

"...칼 찾는거 잖아. 하지마"

 

내 말에 약간은 놀란 표정과 더불어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프잖아"

 

그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내 품에 와락 안겨서는 약간은 떠는듯 하기도 하고, 진정되지 않는 자신을 달래듯이 한참을 있었다. 생각보다 이 녀석도 약했다. 나도 약했고. 거칠게 내 몸을 애무할때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약해져 있는 모습이 약간 어색해보이기도 했지만, 철없는 이 녀석의 모습을 약간의 동정심과 함께 달래주고 싶었다. 이 녀석의 등을 한번 손으로 쓸어 내리자 그가 나를 더욱 꽈악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이대로 있자..."

 

품을 파고드는 이 녀석이 애 같아서 평소라면 웃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슬펐다. 이 녀석은 언제까지고 내 옆에서 나보다 더 잔악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이어야 했다. 나는 그런 이 녀석의 자유분방함을 약간은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지 않아도 상관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품에 파고드는 이 녀석과 함께 나도 그를 다시금 꼬옥 끌어안았다.

 

 

 

 

* * *

 

 

 

 

 

 

아침에 같이 있었던 노인은 뭐라도 먹고 가라면서 허접한 상을 차려주었다. 나는 자꾸 의심의 눈초리로 그 노인을 보았는데, 당장 우리를 해치려는 눈치는 보이지 않아 경계만 잔뜩 세우고 있었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집어먹는 그 녀석을 한심하게 쳐다보는데 그 노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신센구미에 대장 아니야?

 

그 말에 옆에서 먹던 그 녀석도, 나도 행동을 멈추고는 그 노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돌아가는게 좋지 않겠어?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내 옆의 악당을 곁눈질으로 슬쩍 쳐다보았다. 그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서 어느 때처럼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웃음은 어느 때보다 섬짓했다. 나를 알고 있다면, 지금 유명한 이 녀석도 알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악당을 안다면 애초에 우릴 이 곳으로 들일 리가 없다는 생각에 잠시 지켜보았다.

 

"얼마전까지 에도에서 살았어. 그래서 티비에서 종종 봤지. 근데 이런데에서 직접 만날 줄은 몰랐네"

 

그 노인은 그 말을 하고는 내 앞에 물을 한잔 떠서 내밀었다. 나는 그때까지 입을 다문채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한 노인에게 신세를 지고, 집을 나서고 얼마 안되어서 악당이 말했다.

 

"안되겠어. 없애야겠어"

 

"왜?"

 

"그냥"

 

"그러지마, 가자"

 

"그럼 넌 여기에 있어"

 

"그냥 가자니까?"

 

"얼마 안걸려. 1분이면..."

 

"왜이래? 그냥 가"

 

"그럼 먼저가고 있어 뒤따라갈게"

 

"아무것도 못하는 늙은이야. 죽여서 뭐해?"

 

"어차피 얼마 못사는 늙은이가 좀 더 살아서 뭐해?"

 

이런 식의 말다툼을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내가 그 노인을 죽이지 말라고 말한 것은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단순히 우리에게 베푼 호의와, 에도에서의 나를 알아봐줬다는 데에서 오는 약간의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 금방이라도 뛰어갈 것 같은 악당의 팔을 붙잡았다.

 

"너 왜그래? 너 지금 이상해"

 

 내 말에 약간은 흥분상태의 그가 행동을 멈추고 무언가 생각하는듯이 눈동자를 굴리다 말했다.

 

"아니.. 아.. 그니까.. 아. 아니야, 그래 가자"

 

그는 저를 잡고 있던 내 손을 약간 화가 난 듯이 거칠게 풀고는 앞질러 걸었다. 그 녀석을 뒤따라 걸으면서 물었다.

 

"악당"

 

"..."

 

"왜 그러냐 너?"

 

내가 그의 옆으로 바짝 따라가 어깨에 손을 얹고 물었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나를 홱 돌아보고는 거칠게 키스 했다. 그리고 은근히 영악했던 나는 그의 행동을 보고 알았다. 이 악당이 불안해 하고 있음을. 그 노인을 죽이려 한 이유도 혹여나 내가 떠날까봐, 그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내가 마음이 변할까 두려워 하고 있음을.

 

 

 

 


 

* * *

 

 

 

 

 

악당녀석과 반대로 나는 혼자 있으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얼굴이 알려진 것은 악당 녀석이고 함께 다니는 갓을 쓰고다니는 사람과 이렇게 2인조. 이 정도로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인지 어쩌다가 혼자 있을때면 사람들이 조금 놀라하다가, 아니야 혼자있잖아~ 하고는 움추림을 풀고 편하게 돌아다니곤 했다. 그 점이 편했다면 편했다. 물론 나를 혼자 두고 싶어하지 않는 악당은 나에게 굉장히 조급해했고, 어느 날 저녁 나에게 물었다.

 

"나 만나기전엔 어떻게 지냈어?"

 

그의 말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그 질문을 할 때 그는 새삼 진득하고, 파란 눈동자 뒤에 뭔지 모를 순수함이 보여서.

 

"알잖아, 경찰이니까 너같은 악당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지"

 

"같이 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어?"

 

"음.. 진짜 싫은 바보 한 명, 좀 고마운 한 명, 존재감 없는 바보 한 명, 그리고...."

 

"싫은 바보는 누구야?"

 

"있어. 난 그 새끼가 진짜 싫어"

 

"왜?"

 

"그냥. 싫은데 이유가 있나"

 

"난 이유가 있는데"

 

"난 없어"

 

"그럼 너는 뭐가 싫은데?"

 

"음.. 그냥..."

 

"그냥?"

 

내 말에 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을 해도 될지 말지 한참을 망설이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엄마"

 

이런 말을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꺼내기 힘들었다는 것도. 그래서 그 이후론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는데, 본인이 답답했는지 드문드문 말을 꺼냈다. 말에 두서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가 자꾸 꿈에 나온다고, 그럴때면 화를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악몽을 꾸고, 자해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말을 하다가 더 깊은 속내를 털어 놨을 법도 한데, 그는 털어놓지 않았고, 나 역시 그가 털어놓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싫어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좋아해서, 사랑해서 마음이 아픈 것이지. 나는 대답 대신에 그냥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떠나면 싫어"

 

그가 말했다.

 

"옆에 있잖아"

 

"지금이 아니라 내일도"

 

"왜이래? 내일도 같이 있잖아"

 

"신센구미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어? 들려줘"

 

저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어린아이가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하고 조르는 장면이 연상되서 피식 웃었다.

 

".....내가 진짜 싫어하는 그 새끼는 담배를 존나 피워. 옆에 있으면 정말이지 연기로 질식해서 죽어버릴 것 같아. 그리고 입버릇처럼 말끝마다 할복하라고 해. 진짜 죽는다고 했다면 뛰어나와서 쩔쩔매면서 말릴껄? 그 새낀 맨날 말은 존나 거칠거든. 그리고...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새끼가 죽은 우리 누나를 좋아했었거든, 그래서인지 나한테 꼼짝도 못해. 다른 대원들한테는 존나 지랄지랄해도 나한테는 그렇게 못한다니까. 웃기지?.."

 

".."

 

"사고 치고 돌아오면, 말로는 너 이자식 정말 죽고싶어? 죽을래? 하고 소리 질러도 지가 알아서 다 처리하더라고. 그래서 난 맨날 사고치고 다녔어. 그 새끼 일 많은거 아니까 괴롭히려고.... 그런 놈 하나 옆에 있으면 재밌긴해. 알고 당해주는건지, 멍청한건지 맨날 나한테 당하거든....... 짜증나게 그 새끼가 생기긴 좀 생겼어. 그래서 맨날 여자들이 꺆꺆 거리는데, 진심으로 듣기 싫어. 골빈년들은 그런 소리를 내도 꼭 멍청하게 내더라. 질려."

 

".."

 

"같이 순찰도 많이 했는데 옆에 앉아서 운전지적을 얼마나 하는지 진짜 짜증나. 원래 운전석에 앉는 사람은 좀 닥쳐줘야 하잖아? 나도 그래서 너한테 별 말 안했던거야. 꼴에 귀신 부장이라고 불리면서 귀신은 또 얼마나 무서워 하는지.... 나보다 나이가 거의 10살 가까이 차이나는 놈이 그러고 있으면 얼마나 꼴갑인줄 알아 그거? 아아.. 맞다, 모기 천인이 우리 둔영에 들어와서 난리 났을땐 정말 웃겼어.  그때 네 동생도 같이 있었었는데. 가짜 퇴마사 흉내낸다고 변장하고 왔는데 황당하게 하고 왔었어. 어설프게 변장하고. 어쨌든 그때 한창 인형으로 그 새끼를 저주하고 있었는데 진짜 귀신같은애가 나와서 난 정말 내 저주가 먹힌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좋았는데 아쉽게도 그냥 모기천인이여서 그대로 끝났어 재미없게... 음... 그리고.. 또..."

 

"...흐음..."

 

"뭐야?"

 

"아니 그냥 재밌게 지냈구나 하고"

 

"재미? 아냐 그 새끼가 얼마나 재수없는 새끼인데"

 

그는 내 말에 습관처럼 그냥 웃었다.

 

 

 

 

 

* * *

 

 

 

 

 

악당은 갑자기 경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면서 보고 온다며 잠시 자리를 뜬 상태였다. 같이 가자는 말에 귀찮은 나는 혼자서 갔다오라면서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갓을 쓰긴 썼지만 사람들의 힐끔거림은 이상하게 별로 없었다. 그 날은 날도 화창했고, 하늘하늘 부는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스산했다. 생각보다 이 녀석이 늦는다 하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 보는데, 옆에서 익숙한 담배향이 지독하게도 번져 왔다. 쓰고 있는 갓 때문에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 담배향의 주인은 유카타를 입고 내 근처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옆으로 바짝 다가가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악당녀석처럼 요란하게 움직여서 주목받고 싶진 않았으니까) 단도를 숨겨들고서 작게 말했다.

 

"불 꺼"

 

사복 경찰이었나? 그는 급히 내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나는 어느 경찰과 다르지 않게, 제 손과 연결해서.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휘두르려고 높이 처들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돌아다보고, 나도 그를 올려다 보면서 눈이 마주친 순간. 머리가 머엉 해지면서 주변의 소리가 히뿌옇게 번져감을 느꼈다.

 

 

이 세상의 시간이, 나와 내 눈앞에 그 빼고는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아.. 히지카타였다.

 

 

나는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수 많은 대원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악당이 스스로 그 무리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도망가, 그냥 가! 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경직된 눈으로 손목이 붙들린채 서 있는 나를 보고, 바닥을 나뒹구는 단도를 보고 악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잡으려 달라드는 대원들을 보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불안함이 앞서기도 했다. 이 녀석이 혹시나 이들을 다 죽여버리면 어쩌나, 내 눈앞의 히지카타도 죽여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그냥 도망치라고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예상과 다르게 그는 공격도, 도망도, 저항도 하지 않았다. 악당이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텐데. 그는 그냥 잠자코 잡혔다. 딱 그 말이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냥 순순히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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