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싸/ing D

[쇼우리츠] 햄스터 04

2017. 7. 1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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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엄마와 아빠의 끝이 이렇다고는 하지만 모든 사랑의 끝이 이렇게 더럽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만 보아도 평생을 사랑하는 둘의 이야기를 그려놓은 이야기들이 흔하지 않은가? 서로를 끝끝내 잊지 못하는 진실한 사랑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기적처럼 만나고,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은 사랑을 보여주며 정말이지..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어요...! 하고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을 보면 아.. 정말로 세상에 사랑이라는 것은 있구나..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그런 영화를 보고있자니 뜬금없이 의문이 생겼다. 엄마와 아버지는 왜 저런 진실한 사랑을 품은 사람과 결혼하지 못했는가? 어째서 저런 영화같은 사랑을 하지 못했는가?


세리자와는 아버지의 곁에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이고 지금 현재로는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니 세리자와는 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리자와에게 아버지는 왜 엄마를 떠나게 내버려 두었는지, 세계정복을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이유 말고 조금 더 제대로 된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런 이상한 이유로도 헤어지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나로써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말 이유였다면 아버지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묻는다면 세리자와는 분명 또다시 과도한 충성심을 불태우며 그 여자가 사장님의 커다란 뜻을 모르는 거야!라고 발끈하며 지루한 설교를 늘어놓을 것이 뻔하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질문을 돌려서 물었다.


"세리자와는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있어?"

"응? 갑자기 그런 이야기는 왜?"

"갑자기 궁금해져서. 왜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이상할 정도로 깊은 사랑이 정말 있을까.. 하는 그런.."

"당연하지!"

"아.. 그래?"


너무 묻자마자 강력하게 대답하는 세리자와의 태도에 되려 당황해버렸다.


"원래 그렇잖아.. 내가 정말 죽을 정도로 힘든 때라던가.. 그럴때에 나를 변화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은 정말이지 평생을 가도 잊을 수 없게 되잖아... 물론 꼭 그런 특별한 이유가 아니어도 빠져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야.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기도 하니까. 뭐든지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 아.. 그렇구나"

"응 당연하지!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계산해야 해 쇼우군.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침착해야 한다? 무엇을 주더라도 다 주면 안 돼. 항상 계산해야 해. 그렇지 못하다면 그 순간 돌아설 거야. 절대로 상대방에게 커다란 믿음은 가지지 않는 게 좋아. 그 사람을 지나치게 믿어버린 다음의 이야기는 별로 아름답지 않아. 그 사람이 떠나는 일 밖엔 남지 않거든"

".... 음.. 일단 난 줄 것도 없는데?"


아버지는 돈이 많을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관심 밖인 나는 남들보다 조금 많은 용돈 외엔 별로 가진 게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엄마가 버려둔 고양이, 어항 속을 돌아다니는 햄스터... 외에 또 있나?


"무언가를 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중점은 아니지만.... 뭐, 일단 뭐든 그렇거든. 다 주면 안 돼. 상대도 나에게 다 준 것 같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


항상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는 세리자와의 단호한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조금은 우물쭈물하다가 물었다.


".... 엄마도 그랬을까?"


내 질문에 표정이 굳는 세리자와를 보며 실수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이었기 때문에 눈치를 살피며 다시 말을 했다.


"..그러니까, 큰 뜻은 없.."

"....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세리자와는 내가 입 밖으로 꺼낸 엄마라는 단어가 싫었는지 자리를 벌떡 일어나서는 화난 듯이 문을 콰앙 닫고는 자리를 떠났다. 세리자와는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이상하고 알 수 없는 말만을 혼자서 말했다. 조금 더 캐묻고 싶기도 했지만 이미 감정이 상해 나가버린 그를 붙잡을 수는 없었고,(사실은 붙잡고 싶지 않았고) 더 이야기해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리자와의 대화 후에 리츠에 대해 생각하다가, 리츠를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는 병동에 견학 차원의 의미로 데려가 주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그렇게 거대하지 않다. 단순하게 리츠가 옥상에서 되려 나의 짐을 덜어주며 잡아주었던 손이 너무 따뜻했기 때문이다. 다시 그 손을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각이 자꾸 나를 웃게 만들었다는 것도 큰 이유 중에 하나다. 리츠라면 그런 병동을 보고 나를 더욱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얼마나 이런 거지 같은 아버지 밑에서 고민하고 있는지, 이런 상황을 이겨낼 가장 좋은 명답을 찾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츠같이 완벽한 사람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날 확률이 얼마나 되며, 그런 사람이 나와 이렇게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를 지금의 리츠를 좋아하는 만큼 좋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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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이것에 대해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린 서로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연결해놓았다고 생각한다.


별이 총총 떠있는 밤이다. 우리는 리츠의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서 잠깐 만났다. 나는 사가지고 온 음료수를 건네주었고 리츠는 고맙다며 받아들었다. 그네에 앉아서 함께 간단한 음료를 마시면서 사소한 이야기를 했다. 이상하게 꿈을 꾸고 있는 듯이 몽롱해서 서늘한 밤공기가 너무 달콤하게 느껴졌다.



뭐 했어?

음.. 형도 나가고 해서 그냥 집에서 집안일도 도와드리고.. 책도 보고..

와 재미없어

참나, 그러는 넌 뭘 했는데??

나는 집에서 고양이랑 같이 마하 파이터 후토시4를 봤어! 다시 봐도 정말 명작이야!

으 재미없어

아냐! 완전 감동적이야! 다음에 나랑 같이 보자!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내가 다 준비를 해 놓을게!

집? 아 그래.. 뭐 다음에

그때 고양이도 보여줄게!

그래

리츠 넌 뭘 좋아해?

응? 내가 고양이를 안 좋아하는 것 같이 말했나? 아냐, 나 고양이 좋아해!

그래? 나는 네가 좋아


내 말에 리츠는 잠시 조금 놀란 듯이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선 작게 말했다.


뭘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거든?

나는 다른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할 자신이 없어.

아.. 그만해

왜? 나는 지금 내 심정을 말하고 싶은데....


내 말에 리츠는 대답 없이 귀까지 빨개져서는 바닥만 쳐다보았다.


나는.. 너와 이렇게 학교가 아닌 집 앞의 놀이터에서 잠깐이라도 만날 수 있는 사이라는 게 너무 좋아.

...

나에게 이런 행운이 또다시 찾아올까?

...

리츠는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나도 널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 하고 말했다.


뽀뽀해주면 안 돼?

아.. 안돼

왜?!

집 근처잖아. 혹시 누군가 지나가기라도 하다가 보면 어쩌려고...

그럴 일 없을 것 같은데.. 아무도 없잖아

어쨌든 안돼!

음.. 그럼 손잡고 조금 걷자! 그건 괜찮지?


또다시 리츠가 안된다고 말할 것 같아서 바로 일어서서는 리츠의 손을 잡고 잡아끌었다. 리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반대쪽을 필사적으로 바라보았다. 잡고 있는 손이 긴장 탓에 옅은 땀이 살짝 베는 것도 같아서 괜히 나조차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저.. 리츠

..응

내일도 만날까?

... 내일?"

응. 오늘은 너희 집 근처에서 만났으니까 내일은 우리 집 근처로 와

너희 집?

우리 아버지의 연구소. 가고 싶어 했잖아.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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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는 다음날 저녁 내가 본 모습 중에 가장 상기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정말 행복해했다. 리츠가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아.. 아니지 리츠가 자신의 형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 오늘이 처음이다. 항상 침착한 리츠가 나의 손을 덥석 먼저 잡고서, 스즈키 스즈키! 지금 가면 혹시 다른 직원분들도 계실까? 그럼 어떻게 하지? 나 인사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해?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마 없을 거야. 시간도 늦었고.."

"아.. 그런가? 어쩔 수 없네.. 가서 구경하고 다음에는 너희 아버지도 뵙고 싶어"

"응?"

"너희 아버지 말이야!"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대단한 사람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세리자와 밖엔 없었다. 세리자와의 광적인 반응은 좋아하지 않지만 리츠가 우리 아버지를 이렇게 대단한 것처럼 언급해주는 게 굉장히 신기하기도 하고 항상 멀게만 느껴지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나에게 조금은 큰 존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 그래 뭐..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 넌 정말 좋겠다. 이렇게 굉장한 아버지도 계시고 말이야"

"그 정도는 아닌데.."

"멋있잖아!"


그런가? 나는 멋쩍은 듯 웃었다. 이렇게 기대에 차있는 리츠를 보니 약간의 불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왜 리츠를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을 했을까? 정말 리츠는 이곳을 보고도 놀라지 않을까? 이것을 본 리츠가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만의 가장 큰 착각이었으면 어쩌나. 리츠의 손을 잡고서, 그 거대한 하얀 건물 가까이에 와서야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건물에 붙어있는 거무스름한 창문이 어쩐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음.. 근데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들어가?"

"내 지문이 등록되어 있으니 상관없어"


지문을 찍으니 삑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서 <스즈키 쇼우>라는 이름과 함께 어서 오십시오 하는 기계음이 들리며 문이 열렸다. 역시나 그곳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을 켤까 하고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 불을 켤 수 있는지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정체 모를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파란 빛만이 우리의 시야를 도와주고 있었다.


"스즈키, 괜찮아. 혹시 몰라서 내가 손전등도 가지고 왔어. 그냥 올라가자"


리츠는 설렘에 가득 찬 모습으로 손전등을 꺼내어 스위치를 올렸다.


"뭔가 탐험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뭔가 재밌어. 어릴 때 형이랑 같이 어두운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런 식으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거든. 형도 나도 어렸을 때 니까 둘 다 엄청 울면서 돌아다녔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어. 형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거든. 그러면서 본인도 울면서 나에게 울지 말라고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말하는 거야. 다행히 바로 부모님을 만났지만.. 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귀여워.. 그치?"

".. 기억력이 좋네"

"응! 나 일기 쓰는 것도 좋아해서 가끔 읽어보거든. 형이랑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 일기장에 적혀있어"

"그 일기장에 내 이야기도 있어?"


내가 묻자 리츠는 아무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발견하고서 아! 여기에 있네, 엘리베이터. 이거 타고 올라가자! 하고는 나에게 손짓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나는 계속 머뭇거렸다. 정말 데리고 가도 될까 고민이 되었기 때문에 층을 누르는 것을 자꾸만 고민했다. 리츠는 손전등으로 번호판을 비추어 보더니, 8층 옆에 <초능력 개발실>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을 보고는 고민 없이 8층의 버튼을 눌렀다.


올라가는 화살표를 바라보면서 내 옆에 기대에 찬 리츠에게 말했다.


"저기... 리츠."

"응?"

".. 네가 상상하는 것만큼 멋있는 곳이.. 아닐지도 몰라.."

"하하,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이곳에 데리고 오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해"

"..."


리츠는 내가 이해가지 않는 듯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놀랄지도 몰라"

"..."

"아니.. 아마 정말 놀랄 거야. 하지만 그만큼 내가 널 믿고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줬으면...."


말이 끝나기 전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리츠는 내가 하는 말을 들으려 나를 보다가,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의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전등으로 그곳을 비춰본 순간.. 그곳에 보인 유리관에 고문의 흔적이 보이는, 피를 뒤집어쓴 어떤 남자의 형상이 손전등의 빛을 받고서 환하게 보였다. 하얗게 뒤집어 까인 눈, 머리에 쓴 이상한 황동 빛의 헬멧, 그리고 희미해진 심박수를 힘겹게 체크하는 기계, 그 옆에 보이는 날 선 고문 도구들.. 리츠는 보자마자 손전등을 떨어트렸다. 굴러다니는 손전등의 빛을 받은 바닥에는 시체인지 뭔지 모르는 동물과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핏자국이 흥건한 바닥이 환한 빛을 받아서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리츠는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로 하얗게 질려서는 손으로 입을 막고선 엘리베이터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아무 말없이 조용히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 내가 왜 고민을 했는지 알겠지...?"

"... 아... 아... 아니 이게.... 뭐..... 뭐... 야....?"

"이래서 보여줄 수가 없었어.. 하지만 너는 분명히 모든 걸 알고도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리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도망치듯이 그 건물을 뛰어나가려 했다. 나는 리츠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들고 말했다.


"... 진정해 리츠, 무섭지? 미안해. 천천히 가자. 같이 가면 되잖아"

"이.... 이거 놔!!!"


리츠는 내가 잡은 팔을 거세게 뿌리치면서 말했다.


"... 나.. 나... 집에 갈래"

"같이 자고 가자. 근처에 내가 아는 삼촌의 집이 있어. 오늘 아무도 없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야. 시간도 너무 늦었고..."

"아냐 됐어. 갈게"




리츠는 급히 그 어두운 골목에서 가로등을 가로질러서는 달려가다가 마침 비어있던 택시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택시를 타고서 사라져버렸다. 리츠가 많이 놀랐나 보다.

...물론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럴만하지. 그 어떤 누구라도 이런 장면을 갑자기 보게 된다면 놀랄 것이고.......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리츠에게 전화를 했다. 몇 번을 해도 리츠는 계속해서 통화 중이었다. 15분쯤 후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길했지만 괜찮다고 혼자서 위로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리츠의 집 앞으로 찾아가려 했다가,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왠지 이대로 집 앞으로 가도 리츠는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직감이 들었다. 세리자와를 부를까 잠시 고민하다가 또 이곳에 내가 왔다는 걸 알면 또다시 차기 사장이 될 준비가 되었다며 난리를 칠 것을 생각하고서, 한숨을 쉬며 택시를 잡아서 탔다. 택시에서도 계속해서 전화를 했다. 핸드폰을 든 손에는 왜인지 땀이 흥건했다. 리츠가 전화를 받는다면 바로 차를 돌려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제발 전화를 받아달라는 간절한 생각을 하다가, 뜬금없이 리츠는 지금 샤워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택시의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택시의 라디오에서는 데미안 라이스의 My Favourite Faded Fantasy라는 노래가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는 예전에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종종 틀어두었던 노래였던 것 같다. 이 노래는 가사가 정말 좋다. 다 좋지만 오늘따라 가장 구슬프게 들리는 마지막 구절, 

I’ve never loved loved loved like you. 

I’ve never loved.. 

I’ve never loved.. 

I’ve never loved..  

[누군가를 당신만큼 사랑한 적이 없다]




택시는 목적지를 변경할 일이 없었다. 우리 집 앞으로 올 때까지 리츠는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곳에 내가 오늘 올 일은 없었을 텐데. 

내가 늦게 들어와도 단 한 번도 나와보지 않던 아버지는 오늘따라 내 발소리에 밖으로 나와서는, 약간 풀이 죽어서 들어오는 내 앞에 저벅저벅 다가왔다. 나는 자동으로 시선을 피한다.


"이상한 일이구나. 이 시간에 그곳엔 왜 간 거냐"

"... 그냥..."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구나"

".. 그건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지만... 그냥.. 조금 놀랐어.."

"그게 끝이냐?"


아버지는 실망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내 안에서 맴도는 말을 오늘은 꼭 묻고 싶었다. 살살 눈치를 살피다가 충동적으로 말을 꺼냈다. 충동적이라고는 하나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 엄마는...."

"네 엄마?"

"아버지를 사랑했어?"

"... 갑자기 그런 걸 왜"

"그냥 궁금해서. 엄마도 이런 아버지의 모든 모습을 보고서 나간 거잖아"

"물론 사랑했지. 우리 서로 정말 미친 듯이 사랑했다"

"..."

"그래서 아직도 너를 보면 네 엄마가 생각나는구나"


아버지는 처음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뺨을 가볍게 쓸어내려 주었다. 아버지의 손은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굉장히 싫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싫지 않았다. 단지 아버지와 내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어색해서 빤히 눈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기만 했다. 아버지는 내 턱을 부드럽게 잡고 입술을 부드럽게 가져다 대었다. 그 행위 자체로 나는 리츠밖엔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상한 기분이었다. 턱에 까칠한 수염이 리츠와는 다르게 거칠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향수 냄새가 조금 더 강하게 나를 감싸 안는 느낌이라는 것. 물컹한 혀에서는 리츠와는 다른 옅은 담배 냄새가 나는 것.. 리츠와의 입맞춤에서는 리츠의 머리카락이 내 이마를 살짝 간지럽혔었는데.. 


아버지와의 알 수 없는 입맞춤에 멍하니 뜨고 있는 눈, 그 눈의 시야에서 우리 집에 있는지도 몰랐던 세리자와가 벽 틈에서 나와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세리자와의 표정엔 너무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 이상할 정도였다. 정말로 이상했다. 손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사주었던 검은 우산을 부러질 정도로 꽉 붙들고서 시체처럼 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리자와를 보고서도 이 행위를 멈춰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분명히 엄마와 아버지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분이 너무 더럽다. 이상하게 너무 더럽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누워서 한참을 뒹굴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통화 목록에는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는 리츠의 이름만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찍혀있다. 시간도 보지 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받지 않았다. 아버지와 엄마가 서로 사랑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 갈등하게 만들고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휘잉 하고 내 뺨을 스친다.

급하게 커다란 어항을 열고서 햄스터를 급하게 한 마리 꺼내었다. 안녕? 나는 한마디 하고는 그대로 밖으로 던졌다. 내 손에 남아있던 온기가 곧바로 식어버린다. 깜깜한 밤이기에 어디로 떨어졌는지, 살았는지, 혹시나 아래의 나무에라도 걸렸는지 전혀 모른다. 서둘러 창문을 탁 소리 나게 닫고서 다시 돌아누웠다. 고양이는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서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뺨을 한번 쓸어내려 주고, 고양이의 입술에 쪽 하고 한번 뽀뽀를 해주었다. 귀엽다. 이쁘다. 햄스터 한 마리를 입에 물려주고는 거실로 나가게 했다. 내 방에서 햄스터가 찍찍대며 소리 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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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우리츠] 햄스터 03

2017. 5. 2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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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굣길에 리츠는 이제 곧 시험기간이니 공부를 해야 한다며 걱정을 했다. 너 같은 모범생도 시험기간에 걱정을 하는구나? 하고 묻자, 학생들이라면 모두가 걱정을 하지 않냐면서 새삼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성적이 어느 정도냐면서 초능력을 알려주는 보답으로 내가 공부라도 가르쳐줄까? 하고 웃으면서 묻는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니 나는 물론 좋다며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을 했다.


그럼 바로 갈까? 어디에서 하지? 하고 함께 잠시 고민을 하며 하굣길을 나설 때에 교문 앞에 서 있는 웬 거지 같은 여자를 발견했다. 전단지 따위를 나누어 주는 아줌마 인가보다 하고 지나치려 할 때에 그 여자는 갑자기 덥석 내 팔을 잡는 것이었다.


"쇼우...! 드디어 만났구나...! 잘 지냈니?"


누구인지 몰라 눈을 깜빡이며 한참 쳐다보았고, 내 옆에 있는 리츠도 이상한 눈으로 이 여자를 바라보았다.


"...누구..."

"엄마란다...! 시간이 너무 흘렀니? 엄마가 많이 변했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주름살과 잡티 투성이의 늙은 피부와 더러운 거적 같은 옷 틈새로 엄마의 기운이 슬그머니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심정은 정말이지 더럽고 치욕스러운 것이었다. 


"어... 엄마?"


당황해서 입 틈새로 신음처럼 뱉은 소리에 리츠는 나와 눈앞의 허름한 꼴을 한 엄마를 번갈아 보고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강 눈치를 챘는지 먼저 가볼게 내일 봐. 하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멀리 걸어가는 리츠를 보고서 엄마는 나에게 호소하듯이 너무 배가 고프다며 밥을 사달라고 했다. 알겠다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나를 잡아끌고는 대충 눈에 보이는 어느 허름한 분식집으로 들어가서는 최대한 빨리 나오는 음식을 달라며 허겁지겁 주문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엄마의 호들갑스러운 태도가 유난스러웠는지 정말로 앉자마자 바로 내어준 싸구려 분식들은 절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음식들을 보자마자 수저나 젓가락도 사용하지 않고서 양손으로 허겁지겁 집어서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걸신들린 듯이 먹는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에 쓰는 말이었다. 분식집의 주인들과 옆에 앉은 다른 손님들이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눈길조차 느끼지 못하는지, 한참을 게걸스럽게 주워 먹던 엄마는 그 와중에 앞에 앉은 나는 조금 신경이 쓰였는지 멀뚱히 눈을 뜨고 쳐다보는 나를 보고서 내 앞에도 음식이 담긴 싸구려 플라스틱 접시를 조금 밀어 주었다.


"쇼우도 먹으렴.."

"됐어요."


이런 걸 먹는 순간 식중독으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실제 엄마가 입에 정신없이 쑤셔 넣는 그 음식들은 너무 마른 표면을 하고 있었고, 재료조차 신선해 보이지 않아서 집에서 세리자와가 가끔 해주는 계란 프라이가 훨씬 낫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내가 느끼는 그런 것들 따위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 그 음식들을 정신없이 다 비운 엄마는 그제야 자신이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앞에 두고서 너무 급하고 추하게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뒤늦게 얼굴을 붉혔다.


"잘 지내셨어요?"


덤덤하게 묻는 내 첫마디에 엄마는 슬그머니 내 표정을 잠깐 살피고는 입을 다물었다. 


"..뭐.. 별로 알고 싶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여전해요. 오초도 여전하고요.. 엄마가 키우던 고양이도 아직 집에서 돌아다니고 있어요"

"...쇼우.."

"네"

".....엄마가 원망스럽니?"

"......"


선뜻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 내가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싫어서 집을 나갈 거였으면 고양이와 함께 나도 데리고 갔어야 옳지 않나 하고 생각했었지만, 다음의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절대로 엄마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 저.. 혹시... 미안한데... 돈 좀 있니? 엄마 좀 줄 수 없어...?"


그 말에 나는 왜인지 모르게 터져 나오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주머니에 있는 용돈을 전부 꺼내서(그래봤자 오만 원 안팎 되는 돈이었지만) 테이블에 놓고는 엄마에게 말했다.


".. 아버지에게 돌아오세요"


내 말에 엄마는 생각하는 듯한 잠깐의 침묵도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가 테이블에 놓은 돈을 집어서 눈으로 대충 돈을 센 다음,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저.. 혹시 더 없니?"

".... 학교에 많은 돈을 들고 다니진 않아서요"


헤어지면서 엄마는 수 차례 나에게 인사를 했지만,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찝찝하고 답답한 이 짜증 나는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서 애꿎은 길가의 돌멩이만 발로 툭툭 찼다. 분명히 아버지는 미친 듯이 일만 하는 데다가 초능력으로 세계정복이니 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말만 지껄이는 씨발놈이지만 나와 고양이를 모두 버리고 간 엄마도 다르지 않다. 그 주제에 낯짝도 뻔뻔하게 그 몰골로 버린 아들까지 찾아와? 게다가 그 얼마 안 되는 돈을 받으려 요구까지 해? 차라리 엄마가 자상하고 돈 많은 다른 남자를 만나서 우리 모두를 잊고 평생 내 앞에 나타날 생각도 하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면 차라리 내 맘이 편했을까?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초라한 몰골로 와서 우리 함께 살자, 같이 가자 하고 그 꼬질꼬질한 손을 내밀었다면 내 마음이 조금은 편했을까? 그것도 아니다. 내 앞에서 울면서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했다면?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면? 차라리 나에게 아버지를 속 시원하게 욕하기라도 했다면? '내가 집을 나간 이유는'으로 시작하는 30분짜리 구차한 변명이라도 늘어놓았다면? 아... 아니다.. 다 아니다. 그 어떤 경우였어도 나는 내 눈앞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앞에 그런 추한 몰골로 나의 엄마라는 이름을 대며 초라하게 등장 한 것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에 옮길 수 없는 돌이라도 들어앉은 듯이 답답해서... 집으로 급하게 달음박질쳤다.


벌컥 열리는 문소리를 듣고서 나를 바라보는 노란 눈을 가진 고양이. 어항에서 우글우글하게 모여있는 햄스터. 투명한 어항. 뚜껑을 열자 밥을 준거라고 생각했는지 위를 바라보는 13쌍의 검은 눈, 작은 손, 그리고 그들 중 누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는 나.


그리고 이내 누구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어항에서 잡히는 대로 집어서는 고양이 앞에 세 마리를 툭 툭 던져놓았다. 떨어져서 작은 경련을 일으키는 햄스터들과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에 호기심과 손톱을 세우며 다가가는 고양이를 관찰하다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침대에 풀썩 눕는다. 


엄마가 사랑하는 나와 고양이는 엄마와는 다르게 불행하지 않다. 

엄마는 나와 고양이를 두고 가면서 본인의 모든 운 마저 모두 내려놓고 갔기 때문이다.











-

리츠는 고맙게도 나에게 전에 만났던 엄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궁금하겠지만 차마 물을 수 없어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옆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리츠를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말했다. 


"저기"

"응"

"궁금하지 않아?"

"뭐가?"

"전에 만났던.. 우리 엄마"

"글쎄"


리츠는 펜을 내려놓고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네가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

"..."

"근데 지금 네가 짓는 표정을 보니까.. 너 나에게 털어놓고 싶구나?"

리츠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자 몰랐던 나의 답답함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런 내 상황을 누군가 들어주고 내 이런 상황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해주기를 어렴풋이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은근히 겁이 많았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겁이 많아질 것이다.


"... 분명히 그렇지만 네가 나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무서워"


학교에서의 내 이미지는 돈 많은 어느 집의 부잣집 아들이었고 리츠 역시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 확실 했기 때문에.


"내가 왜 너에게 실망을 해? 그럴 일 없어. 너도 나의 이상하고 바보 같은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준다며 나를 도와주고 있잖아"


그 말을 듣자 누구도 들어준 적 없는 내 고민을 조금은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환상이 들었다. 내가 리츠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없고, 리츠도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우리의 관계이기에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조금씩 입을 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일도, 쭉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그런 몰골로 학교에 찾아온 것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달라고 이야기했다는 것도... 더불어 어릴 적 기억의 엄마는 은은한 기품이 있었기에 절대 어제 본 것 같은 추한 몰골의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돈을 달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을 정도로 뻔뻔하지도 않았다는 것까지. 


내 말을 듣고 리츠는 별로 동요하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고마웠다.


"아버지가 왜? 어머니는 왜 아버지와는 살 수 없다고 하신거야?"

"우리 아버지는 초능력자라고 했었지? 본인이 초능력자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어. 실제로 지금도 그런 쪽에서 일하면서 미친 듯이 몰두하고 있기도 하고. 더불어 타인의 초능력의 잠재력에 대해서도 연구도 많이 하고 있.."

"초능력의 잠재력?"


아..


"초능력 개발? 뭐야? 연구하고 계신 거야? 그래서 성과는 .. 있으신 거야?"

"아니.. 어.. 그니까.."

"왜 말 안 했어? 아버지가 그런 쪽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말은 안 했잖아! 내가 간절한 거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왜 말 안 했어?"


리츠는 거의 울듯한 얼굴을 하고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말했다.


"아니.. 리츠, 들어봐. 그게 아니라"

"나도... 나도 데려가 주면 안 될까? 나도.. 초능력자가.. 되고 싶은데.."

"하.. 하지만 성과는... 아직.."

"그래도..! 혹시나 내가 처음으로 초능력에 각성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잖아! 너도 말했잖아! 우리 형이 초능력자인 만큼 나에게도 잠재력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아니.. 그니까.."

"쇼우 제발...  부탁할게.. 응?"


리츠는 내 가슴팍에 제 얼굴을 묻고 제발.. 제발 부탁이야 쇼우 제발.. 제발 부탁이야.. 하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날 이후 리츠는 아버지의 병동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집착 후에 병동을 찾아오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초능력이라는 미지의 힘에 대한 집착의 정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1%의 가능성에 다가간다는 그 두근거림이 그를 더욱 증폭시킨 것이다. 리츠를 만나게 되면 리츠의 첫 마디는 항상 아버지께 물어봤어?로 시작해서 계속해서 자신을 아버지에게 데려가 주기를 희망했다. 절대로 들어줘서는 안되는 그 부탁이 부담으로 다가왔던 나는 리츠를 만나고 싶은 만큼 리츠를 만나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만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리츠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커져가고 있었다.


"리츠, 들어봐. 내가 아버지께 물어보긴 했어. 하지만 아직 많이 불안정하다고 하셔. 그러니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야"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리츠의 손을 잡고 말했다.


"불안정? 어떤 식으로? 시간? 얼마나? 난 초능력자인 가족이 있잖아. 그니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수도 있잖아? 너도 그랬잖아.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나에게 잠재되어 있을 거라고 했잖아"

"...리츠"

"응"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


내 말에 리츠는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잠시의 침묵 후에 말했다.


"...고집?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이제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누구나 이런 상황이 오면 그렇지 않겠어? 아, 알겠다. 그런 것도 너 같이 잘난 집안의 사람들은 모르는 이야기지?"

"그런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에 대한 상황을 알고 있는 네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해?"

"네 상황? 어떤 상황을 말하는거야? 학교의 선생님들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잘난 너희 집안?"

"....리츠...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마. 내 상황 잘 알잖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라니. 너야말로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 알고 있잖아. 그걸 지금 고집이라고 말하는 거야?"

"리츠, 너 지금 상태 이상해. 다음에.. "

"... 뭐야, 무시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 근데 너는 아니잖아"

"리츠"

"응"

"...나에게도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면 안 될까?"

"무슨 사정? 말해봐"


이미 리츠는 나의 입장에 서서 이해할 눈빛이 아니었다. 물론 막무가내로 원하는 리츠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정만은 말할 수가 없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 줄 알아? 내가 어릴 적에 본 그곳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좀비들이 서식하는 듯한 이상한 병동 같았단 말이야. 그런 곳에 가서 네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데 그런 곳에 널 데려가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말문이 막혀 침묵을 지키자 리츠는 나에게 말했다.


"됐어. 돌아가. 오늘은 너와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혼자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와서 문을 열자 세리자와가 쇼우군! 돌아왔구나! 하고 두 팔을 벌리며 격하게 환영을 했다. 평소에도 싫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귀찮게 느껴져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없어"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학교의 일을 묻는 세리자와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쭉 걸어들어간 거실에는 언제 왔는지 시마자키가 소파에 드러누워서는 특유의 빈정대는 말투로, 도련님 오셨네? 하고는 입꼬리를 실실 거리며 웃었다. 시마자키가 나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데엔 이유가 있다. 좋지 않은 느낌에 무시하고 지나치려는데, 시마자키는 소파에 눕혔던 몸을 일으키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도련님! 나 얼마 전에 지나가다가 사모님 만났는데"

".... 아 그러셔? 앞도 못 보는 새끼가 잘도 보네"

"안 보이니까 더 잘 아는 거지. 나 만나기 전에 사모님은 도련님 만나고 오는 길인 것 같던데"

"... "

"어쩐지, 사모님이 날 보자마자 너무나 화들짝 놀라시더라고. 사모님 많이 힘드신 것 같으시던데.. 도련님이 눈물의 위로라도 해드렸어?"


살살 긁는 시마자키의 이런 뱀 같은 말투를 듣고 있으면 아, 내가 첫 번째로 사람을 죽여서 뉴스에 난다면 그 대상은 저 새끼가 되겠구나.. 하고 새삼 생각하게 될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그냥 본론만 이야기하지?"

"본론? 없는데. 하하, 도련님 화날 때 말투가 묘하게 바뀌는 게 재밌어서 그래"

"재밌어?"


시마자키는 시력이 없는 만큼 혀도 없었으면 훨씬 좋았을 뻔했다. 주먹을 쥔 손바닥에 손톱이 박혀 아플 정도로 주먹을 꽈악 움켜쥐자 눈치챈 세리자와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쇼우군 그만하고 이리 와, 하고는 나와 시마자키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조금은 식혀주었다. 사실.. 내가 이렇게 화가 났다고 하더라도 그저 나 혼자 시마자키의 도발에 넘어가서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것일 뿐이지만.


분이 덜 풀려 보이는 나에게 세리자와는 따뜻하게 데운 녹차를 한잔 내밀고는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서는 그저 웃어 보이는 세리자와에게 괜한 투정을 부렸다.


"미친 새끼. 시마자키 저 새끼는 우리 집에 왜 온 거야? 저딴 개소리 지껄이러 온 거면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해. 재수 없게. 한 번만 더 저딴 소리 하면 혀를 뽑아버리겠다고 해"

"시마자키는 누구 나한테 그렇지 뭐. 우리한테도 똑같아. 사장님께 앞에서만 조용히 있지. 쇼우도 나중에 차기 사장이 되면 아마.."

"그만. 듣기 싫어. 나 지금 기분 안 좋은 거 안 보여? 차기 사장 이야기 좀 안 할 수 없어? 난 아버지를 따를 생각 따윈 눈꼽만큼도 없단 말이야! 세리자와는 가끔 마치 내 부모라도 된 듯이 구는데, 착각하지 마. 아버지의 비즈니스 와이프라고 조롱당하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방금 말은 좀 심했나? 하는 생각에 뱉어 놓고 나도 모르게 세리자와의 눈치를 살피다가, 작은 목소리로, 방금 말은 미안. 내가 요즘 좀..... 하고 말했다.


"... 쇼우. 그 여자를 만났다는 게 진짜야?"

"그 여자라니? 그 여자가 누구야?"

"아까 시마자키가 그랬잖아. 만났다고"

".. 설마 엄마를 말하는 거야?"

"..역시 그래서 이상해졌구나 왜 만났어? 혹시 그립다거나 그런 거야?"

"이상해졌다니.. 엄마가 학교 앞에 찾아와서 만나게 된 거야."

"찾아왔다고? 그 여자는 이상한 사람이야. 사장님의 그 크신 포부조차 이해 못하고.. 자신의 자리가 얼마나 복받은 자리라는 것도 모르고.. 그 자리를 그렇게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그 자리를 그렇게 쉽게 박차고 나가는 거야"

"세리자와.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마자키에게 듣기로 쇼우 너에게 용돈까지 구걸해서 갔다며? 역시 쇼우는 착하구나.. 불쌍한 사람에게 적선도 할 줄 알고.. 역시 좋은 사장이 될 수 있겠어.. 사장님이 나를 구해주셨듯이 쇼우도 아마 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마음씨 따스한 사장이 될 수 있을 거야. 쇼우가 말한 대로 나는 쇼우의 부모가 될 수는 없지만 이미 나에게 있어서 쇼우는 내가 키워야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자식이니 나도 사랑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 쇼우도 그런 여자 따위 생각도 하지 말고.. 시마자키가 그 여자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하던 전혀 화날 필요 없어. 그 여자는 이미 부모의 자격을 박탈당한 거야" 


세리자와의 말은 틀린 말은 없다. 실제로 내가 왜 시마자키의 같잖은 도발에 이렇게 열받아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납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리자와는 내 두 손을 꼭 잡으면서, 쇼우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으면서 살아야 해... 하며 두 눈 가득히 알 수 없는 눈물을 가득 보이며 눈시울을 붉히었다.  나는 이상하게 소름이 돋아 그가 잡고 있는 손을 빼내려 했지만 세리자와의 커다란 손은 내 손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리츠와의 사이가 서먹해진 것에 대해서 나는 그 어떤 해결책도 마련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리츠가 고집을 꺾고 나를 이해해주는 것이었던 반면, 리츠는 내가 자신을 꼭 아버지의 병동에 데려가 주길 바랐던 것이다. 리츠는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으니 나 하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지내기엔 아무런 영향이 없었겠지만 리츠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수업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리츠와 보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지나가는 리츠를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엔 없었다.


물론, 다가갈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결론을 지을 수 있을 만한 대책도 없이 무작정 다가가서 이야기하기엔 너무나도 터무니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근처만 맴돌다가 한숨을 쉬고 집에 돌아오는 것을 반복할 수 밖엔 없었다. 리츠가 문자로 '오늘 학교 끝나고 옥상에서 잠깐 보자'라고 문자를 보내오기 전까지.


그 문자를 발견하고 나서 왜인지 모를 두려움과 함께 파란 하늘이 휑하게 뚫린 옥상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새삼스럽게 옥상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며 평소에는 있지도 않은 고소공포증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어서 스멀스멀 구역질이 올라왔다. 리츠는 이미 옥상에 와서는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열리는 옥상 문의 소음을 신호로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죄지은 듯이 리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리츠의 시선에서 도망쳐 고개를 푹 숙였을 뿐이다. 리츠는 내 앞에 겁 없이 저벅저벅 다가와서는 내 턱을 치켜들어 자신을 똑바로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왜 피해? 똑바로 봐야지 스즈키"


하고 평소보다 당돌하게 나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의 리츠가 무섭게만 느껴졌다. 내 눈빛을 느꼈는지 리츠는 조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조금은 슬픈 듯이 말했다.


"스즈키, 나는 화해를 하고 싶어서 너를 이곳으로 부른 거야. 그런데 지금 너의 그런 태도는 나와 이야기조차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느껴지네"

"아.. 아냐...! 그런 게 아니라..."

"... 내가 지나치게 너에게 선택을 강요했다면 미안해"

"아... 아니 나야말로..."

"아버지에게 그런 문제로 부탁하기가 힘들다면 하지 않아도 좋아. 그런 건 됐고 혹시 가능하다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견학 정도는 하고 싶은데 그것도 불가능할까? 뭐.. 지금 당장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다음에 대답해줘도 괜찮아"


리츠는 자상한 말투로 말하고는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우물쭈물하는 나의 손을 잡고서 내려가자! 하고 평소처럼 다정하게 말했다. 맞잡은 손이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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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우리츠] 햄스터 02

2017. 3. 26. 17:50



02

-
학교를 투명인간처럼 다니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귀는 있었기에 아이들의 말소리는 조금 듣고 있었다. 내 앞에 앉는 여자아이들의 시끄러운 수다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들의 고민은 항상 연애 이야기였다. 고백을 할지 말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만 수백 번 들었다. 오늘 그 애랑 눈이 마주쳤는데 웃어주더라, 웃어준 거 보면 그래도 나를 조금은 좋아하는 게 아닐까? 카게야마군은 누구한테나 그렇게 웃어주던데? 아냐아냐, 혹시 몰라!... 얼마 전에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 줬더니 고맙다고 했단 말이야! 에이, 그거 누구한테나 그러는 거 아냐? 카게야마군이라면.. 잘은 모르겠지만 나한테 웃으면서 말해줬단 말이야!
 
그녀들이 말하는 카게야마 리츠는 옆 반의 조용한 학생부였다. 여자들이 이렇게 떠들썩하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깔끔한 미소년 타입의 학생이었다. 복도를 오가다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을 뿐, 직접적으로 말을 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타입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나도 그런 '모두'라는 그룹에 평범하게 속해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두에게 자상하면서도 그 이상은 다가오지 못하도록 경계를 확실하게 치고 있어서 모두가 섣불리 다가가지는 못했다.

등교를 할 때에 한 번씩 마주친 적이 있다. 학생부인 그가 아침에 선생님을 도와서 서 있는 날이면 반의 여자아이들은 모두 바짝 긴장해서는 조금 상기된 표정을 하고 교실에 뛰어 들어와서 엄청난 일이라도 생긴 듯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떡해 어떡해 오늘 나 어때? 상태 별로지 않아? 카게야마군이 날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해! 흠 내가 보기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항상 저 상태일 텐데.. 뭐, 여튼 좋겠다, 잘생긴 새끼는 저렇게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한 학급 여자아이들의 이야기 소재를 간단히 바꿔버리는구나.

다음날은 일부러 지각을 했다. 전날 여자아이들의 시끄러운 수다를 듣고서 그날도 카게야마 리츠가 지각을 잡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각을 하면 그래도 그가 내 이름을 물어봐 주지 않을까? 그럼 서로 한마디라도 나누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각을 했는데, 그는 내 얼굴을 보고는 홱 지나쳤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나는 그냥 통과였다.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에 나는 그에게 조금 화난 듯이 다가가서 말했다.

"저기, 나도 지각인데"
"...스즈키 쇼우지? 이름은 알고 있어. 다음부터 지각하지 마"

냉정하지만 조금은 친절했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 딱 한마디 하고는 뒤돌아서 갔다. 선생님이 지각한 사람들에게 주는 벌을 나는 받지 않았다. 나 혼자서 교실로 돌아오면서 우리 반의 호들갑 떠는 여자애들처럼 나 역시 조금 들떠서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하고 기분 좋은 얼떨떨함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학생부에게도 선생님들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을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이내 시무룩해져서는 조용히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내 존재감을 각인시켜주고 싶었는지 그가 교문 앞에 설 때마다 지각을 했다. 그래도 그는 항상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음부터 지각하지 마. 표정도 늘 똑같았다. 조금은 기분이 좋지는 않은? 여유를 띄고 있는 기분 나쁠 정도로 은은한 미소가.


"쇼우군, 학교는 어때?"

세리자와는 돌아와서 가방을 내려놓는 나에게 물었다.

"음.. 학교.. 뭐... 똑같지 뭐"
"다행이다. 혹시나 또 싸우고 오거나 할까 봐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적당히 친해야 싸울 일도 있다는 걸 전직 히키코모리인 세리자와는 당연하게도 모르고 있다.

"네가 왜?"
"사장님이 걱정하시잖아"
"그 새끼가 걱정은 무슨"
"아버지에게 그런 말버릇을 쓰는 게 아냐! 게다가 사장님이 얼마나 걱정하시는데"

세리자와는 내 앞에 와서는 친구는 누가 있는지, 뭐 관심 있는 여자아이는 없는지 등등 이상한 이야기를 물었다.

"친구가 되고 싶은 녀석은 있어"
"정말? 어떤 아이야?"
"음.. 조금 냉정해 보이는..."
"쇼우군의 마음에 들었다면 분명히 좋은 아이겠지. 궁금하다"
"..."
"그래서, 말은 해봤니?"
"아니 ..말도 못해봤어"
"그럼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면 되겠네"
"너 같은 히키코모리에게 그런 말 들을 이유 없어"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것처럼.."

세리자와는 또다시 나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면서, 마치 종교에 미쳐버린 지독한 신자처럼 눈을 빛내며 말했다. 사장님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내 방에 전혀 겁 없이 방 문을 열고 들어오셨었어.. 그리고는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이제 안심하라며.. 밖엔 비가 온다면서 우산을 내미시고는..... 아무도 믿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나를 안심하게 해주셨지.. 그때 봤던 사장님은 마치.....

"내 방에서 나가"

나는 그 덩치를 낑낑대며 밖으로 밀어내고는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하굣길에 그를 기다렸다. 리츠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절대 세리자와가 말을 걸어보라고 조언한 것을 들은 것은 아니다. 세리자와가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할 계획이었다. 학생회 회의를 마치고 나서 정문을 나서는 그 녀석을 간신히 용기를 내어 붙잡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에 나도 모르게 완전히 쫄아버린 찌질이처럼, 저기.. 하고 말을 걸었다.
 
"그... 그니까 너랑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 시간 좀 내 줄 수 있을까?"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생각보다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았다. 내가 느끼기로는 나의 이상한 행동들(허구한 날 지각에 잡혀서 풀려난다거나 하는) 때문에 리츠 본인도 내가 자신에게 언젠가는 이렇게 다가올 거라 예상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카페에서 시킨 음료가 앞에 놓이고, 앞의 이 녀석이 잠자코 내 말을 기다리는 그 순간이 왜 이렇게 떨렸는지 모른다. 이상하게 초조해져서 실수로 주문해버린 맛없어 보이는 뜨거운 음료 컵을 만지작 만지작거리다가, 괜히 뒷머리를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그... 그니까 별 건 아니고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해. 들어줄게"
"음... 그니까.. 그냥 너랑 조금 치.. 친하게..."
"... 친하게?"
"... 어... 밥도 같이 먹고.. 사이좋게.. 지.. 지내고 싶은..."
"내가 너랑?"
"..... 응... 아, 조.. .조금 뜬금없지? 하하..."
"왜?"

어째서 자신이 나와 그렇게 지내야 하냐는 질문엔 마땅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정신이 나갔는지 이상한 대답을 했다.

"나 초능력자거든"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내 앞에 이 성실한 학생부 학생은 분명히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니, 그니까 방금 말은.."
"..... 저.... 정말?" 

"...응?"

"정말 초능력자야?"


방금 전까지 조금 까칠한 모습을 하고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 전혀 관심 없다는 태도로 앉아 있던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내 말에 급 화색을 띠며 나에게 적극적으로 물었다. 정말이야? 초능력자? 그럼 숟가락을 구부릴 수 있어? 한 개 말고 여러 개도 구부릴 수 있어? 물건을 띄울 수도 있어? 철봉을 구부린다거나 강아지를 띄우거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허공으로 띄울 수 있어? 늘 냉정한 이미지의 이 녀석이 이렇게 눈을 빛내면서 질문을 하는 건 학교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이야? 보여줄 수 있을까?.. 신기하다..! 우리 형도 초능력자야! 초능력자가 또 있었다니.. 너 신기하다.. 나도 초능력에 관심이 많아. 나도 가르쳐 주면 안 될까?"

초능력을 가르친다니. 아버지가 데려갔었던 그 이상한 병동 같은 곳이 잠깐 떠오르긴 했지만 이렇게 기대에 찬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알겠다고 대답해버렸다. 진짜지? 고마워! 하고 내 손을 덥석 잡고서는 감격에 가득 차서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도 늘어놓았다. 내 앞에서 활달해진 그의 태도에 나도 기분이 좋아서 잠자코 들었다.

"초능력자인 우리 형은.. 본인의 힘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자신이 초능력자라는 것을 싫어해. 쓸모없다고 하고.. 하지만 그런 힘이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거야...! 나는 지금까지 쭉 형을 존경하고 동경하고 있어. 저기, 스즈키, 나.. 나도... 될 수 있을까? 형과 같은 초능력자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될 수 있어. 내가 있잖아"

나는 웃으면서 내 앞에 있는 숟가락을 시험 삼아 휘어 보였다. 광택을 내며 얌전히 놓여있던 숟가락이 힘없이 허공에서 휘는 것을 보며 그는 나를 더욱 빛내며 쳐다보았다. 리츠가 말하는 리츠의 형과 같이 나 또한 아버지가 집착하는 초능력이라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진 않았지만 관심 있는 상대의 환심을 이렇게 간단히 산 것에 대해서는 편리하다고 생각하였다.

"초능력자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영향은 받고 있을 거야. 게다가 네 형이 초능력자라면 너도 약간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잠재되어 있을지도 몰라"
"... 정말 그럴까?"
"뭐.. 유전적인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 우리 아버지도 초능력자야. 나도 어릴 적부터 쓸 수 있었고.. 엄마는 초능력자가 아니었지만"
"그럼 나도 초능력자가 될 수 있을지 너희 아버지에게도 한 번 물어봐 주면 안 될까? 혹시 모르잖아! 너희 아버지는 알고 계실 수도"
"... 아버지? 아.. 뭐.. 그래 물어볼게"

그 이후로 내가 원하는 대로 리츠와 나는 친하게 지냈다. 반은 달랐지만 밥도 같이 먹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도 함께 했다. 주 대화는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계속 지켜봐도 안타깝게 그는 초능력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었다. 이런 말을 할 타이밍도 놓쳤을뿐더러, 괜히 이런 이야기를 해서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한 희망만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리츠는 초능력에 대한 자신의 소견이 아니면 형 이야기를 주로 했고 나는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거나 세리자와를 삼촌이라고 칭하면서 세리자와 이야기만을 조금 하는 편이었다.


리츠의 형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리츠의 이야기만으로 나는 그의 형에게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리츠가 형의 이야기를 할 때는 세리자와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할 때에 느껴지는 약간의 병적인 신앙심이 희미하게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봤을 때 리츠가 이런 성격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항상 꺅꺅거리는 여자아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연히 지나가다가 보는 그의 이미지는 냉정하고 침착한 이미지였기에 이런 그의 모습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런 모습을 알고 있는 게 나뿐일 거라고 생각하면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네 형은 어디 학교에 다녀?"
"우리 옆 학교 있잖아. 작은.. 그곳에 다녀"
".. 응? 그 학교는..."
"응 너도 아는구나?"

리츠는 별생각 없는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지금껏 리츠의 이야기를 들은 나로서는 리츠의 형은 리츠와 닮아서 얼굴도 잘생기고(물론 리츠는 자신과 형은 전혀 닮지 않았고, 형은 앳된 외모에 자신보다 순한 인상이라고 말했었지만) 리츠와 비슷하게 조금은 냉랭한 분위기를 풍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도 잘하는 데다가 초능력도 쓰는, 그래서 초능력 같은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며 비웃는 엄청난 포스의 범접하지 못하는 존재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형이 다니고 있다는 그 학교는 성적이 최하위권의 학생들만이 들어가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모두가 기피하는 학교. 뭐, 나 역시 정말로 성적만을 두고 말한다면 리츠의 형과 함께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리츠에게 혹시나 형의 사진이 있냐고 물었다. 리츠는 웃으면서 사진은 많지만 모두 집에 있다고 말했다. 리츠에게 너의 형이 궁금하다고 말하자, 다시 웃으면서 형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하고 다시금 형의 대단함에 대해서 열거하는 것이었다. 우리 형은 어릴적 나를 지켜주기도 했고.. 화가 났을 때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지만 나에 한정해서는 정말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야. 나는 우리 형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어...! 나는 세리자와와 겹쳐 보이는 리츠를 잠시 못마땅한듯이 바라보다가, 그렇구나 다음에 리츠의 형을 꼭 한번 보고 싶네. 하고 비꼬듯이 말했다. 비꼬는 듯한 말투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리츠는 웃으면서 너도 아마 우리 형을 보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버릴껄? 하고 웃었을 뿐이다.











-
저녁식사는 아버지와 세리자와, 그리고 다른 오초 멤버들과 함께 했다. 엄청 어릴 적 외에는 딱히 와본 적이 없지만 여전히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세리자와가 나에게도 같이 가자면서 잡아끌었기도 했고, 리츠의 질문이 나도 조금은 궁금해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용한 집에서 둘이 이야기를 별로 해본 적도 없어서 여럿이서 그나마 조금씩 이야기가 오갈 때에 슬쩍 끼어들어서 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식사에 참석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많지 않았다. 본인이 먹을 음식은 세리자와가 알아서 주문을 했고 오초에서 그나마 말이 많은 시마자키나 하토리가 간간이 저들끼리 이야기를 했다.

"그나저나 쇼우군은 여기에 웬일이래? 원래 절대 안 오잖아?"

숨을 죽이고 있는 나에게 시마자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 너무 어릴 적에 와서 여기가 이렇게 비싼 식당인지 몰랐어. 친구들 통해서 들으니까 되게 비싼 곳이더라. 그래서 오랜만에 이런 비싼 곳에서 밥이나 먹을까 해서. 집에서 대충 해 먹는 건 항상 비슷하잖아"
"이런 식당을 아는 친구가 있단 말이야?"

시마자키는 눈이 안 보이는 녀석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목소리 톤 만으로도 내 감정을 귀신같이 잘 체크했다. 시마자키는 약간 당황했을 내 표정을 예상한 듯이 웃다가 다시 말했다.

"비싼 거 먹으려고 이런 곳에 왔다는 핑계는 좀 흔하네. 차라리 어린애답게 오늘은 아빠랑 같이 밥 먹고 싶었어요! 이런 거 하지그래?"
"... 그 입 좀 닥칠래?"

내 말에 시마자키는 뭐가 우스운지 키득키득 웃었다. 시마자키는 항상 말을 저런 식으로 조금 짜증을 유발하는 말투다. 재수 없는 새끼.
곧 고급스러운 하얀 접시에 담겨 두껍게 썰려 몇 조각 담기지도 않은 회가 몇 접시 등장했다. 웨이터들은 항상 한 손엔 위생상태를 증명해 보이듯이 새하얀 천을 받들고서 마치 식탁에 소리라도 나게 접시를 두면 큰일이라도 나듯이 조심스레 접시를 내려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 식당은 점심, 저녁 이렇게 하루에 10팀도 받지 않는 고급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점이 커다란 장점이었다.

"세리자와가 맛있는 거 안 해주나 봐? 우리한텐 매일같이 와서 오늘 아침은 이거 해줬네 저거 해줬네, 하면서 자랑스러워하면서 이야기하던데"
"... 아, 뭐... 맛있지. 계란 프라이가 맛없는 거 봤어?"

내 말에 오초 모두 소리를 죽여서 웃어댔다. 옆에서 아버지도 조금 우습다는 듯이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버지의 표정을 잠시 살피던 나는 아버지에게 묻는 게 아닌 척, 오초에게 물었다.

"근데, 나 좀 궁금한 거 있는데 초능력 실험 말이야. 혹시.. 성공 한 적 있어...?"
"이야, 이제야 조금 사장님의 뒤를 이을 생각이 들었구나 쇼우!"

내 질문에 가장 감격을 하며 좋아하는 사람은 세리자와였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물론 우리와 함께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지. 전 세계를 통틀어도 초능력 실험에서 성공한 곳은 우리 '손톱'밖에 없다고! 전에 왔던 본부에서 계속에서 초능력자들을 만들어내고 있어. 다음에 또 보러 올래? 전보다 훨씬 깔끔하고 좋아졌어! 세리자와가 나에게 장황한 설명을 하는 동안 나는 슬쩍 아버지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아버지도 나를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관심이 생겼는지 의문이구나"
"... 관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궁금해서..."

그리고 대화는 끝이었다.
어쨌든 나는 아버지가 인간의 후천적인 초능력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리츠도 아버지의 병동에 가면 초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전에 그곳에서 봤던 그 이상한 광경들은 도대체 뭐였는데?










-
"성공한 사례가 있데. 후천적인 초능력 개발에 대한..! 어때 굉장하지?"

요즘 들어 계속 나와 다니면서 초능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큰 기대에 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리츠는 약간 풀이 죽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고민 끝에 리츠에게 조금이라도 활력을 불어넣어 줄 생각으로 어제 들은 내용에 대해서 일부러 더 활기차게 말했다.

".. 정말이야?"
"그럼!"
"어딘데? 그곳이"
"..."

그것까지는 말할 수가 없었다. 오초가 칭한 그 '본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아직 나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했을뿐더러, 거기에 있던 이상해 보이는 상태의 사람들 때문에 초능력을 어떻게 발현시키는 지도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의 침묵 후에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지만 곧 알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별것 아닌 곳에서 발현했다니까 생각보다 간단할지도 몰라. 초능력의 발현 말이야. 게다가 너 같은 경우는 초능력자인 형도 있으니 더 쉬울 거야"
"정말 쉬울까?"

"... 그..그럼 당연하지!"

"그래... 그럼 우리 뭐라도 해볼까?"
"..? 뭘 해보고 싶은데?"
"예를 들면.. 영화나, 만화에서처럼 키스라던가"
"...응?"
"왜 기적처럼 일어나는 거 있잖아. 그런 거...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순진하다 너"
"가끔은 가장 순진한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잖아"

키스? 리츠가 초능력을 가지기 위해서 뭐라도 해보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어도 난 전부터 줄곧 리츠와 키스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리츠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 올줄은 몰랐기 때문에 나로써는 잘됐다 싶은 마음만이 훨씬 컸던 것이다. 해볼까? 하고 조심스럽게 떠보는 말을 꺼낼까 말까 하며 답지 않게 고민하는 나, 그리고 안전을 위해 세워져 있는 철조망 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리츠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한참 말이 없었다.

"리츠, 초능력을 가지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
"음... 글쎄.. 하고 싶은 건... 딱히..."
"그런 것도 없는데 왜 초능력이 있었으면 하는 거야?"
"..."
"내가 봤을 때 이미 너는 인기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잖아"
"스즈키 너, 사람들이 왜 꽃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
"예쁘니까?"
"왜 예쁜데?"
"음.. 어려운데.. 그냥 봤을 때 예쁘니까..."
"그런 이유야 나도"

리츠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야 나도. 하고 조금 씁쓸하게 웃어 보이던 리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나에게 가만히 다가와서는 입을 맞추었다. 바로 입술을 떼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은 당황스러움 밖에는 없었지만 직후 얼굴에 잔뜩 몰리는 열이 지금 내 얼굴이 얼마나 가관인지를 알려주었다.

"아. 역시 이래도 아무 효과는 없네."

놀라움에 당황하는 나와는 다르게 한숨을 내쉬며 실망부터 하는 리츠를 보면서 나는 돌아가려는 리츠의 어깨를 잡고서 말했다.

"그건 키스가 아니니까"

나는 계속하자는 듯이 말했고 리츠도 싫지 않다는 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서서히 포개지는 우리 둘의 입술, 그리고 눈을 감는 찰나에 보이는 떨리는 리츠의 속눈썹과 검은 눈동자가... 장밋빛 태양의 빛이 침투해 빨간 빛이 파도처럼 울렁이는 그 눈동자가 너무나 예뻐서. 잔잔히 머리카락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바람도, 서투르게 서로의 입안을 데우는 우리도.
내가 초능력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리츠와 가깝게 지낼 일은 없었을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다시금 초능력이 있는 나의 천부적인 속성에 감사할 수밖에..

자연스럽게 혀로 핥고 서로를 침범해가는 우리는 조금 이상하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내가 이상해져 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 때의 나는 정말로 순수하게 리츠의 모든 것을 빨아먹고 싶어했다. 하지만 리츠는 나의 초능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만큼 나를 빨아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나도 리츠도 서로 좋아했다. 나는 리츠의 이런 면을 자세히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관계였다는 것을 왜 이 때는 몰랐을까?










-
리츠를 껴안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내 옷에 묻은 희미한 체취가 푹신한 침대와 더불어 나를 기쁘게 하였다. 리츠 냄새는 참 좋다. 재수 없는 시마자키가 뿌리는 스킨 향 향수처럼 독하지도 인위적이지도 않고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미네기시에게서 나는 소독약 냄새처럼 화학적이지도 않고.. 시바타에게 나는 땀 냄새처럼 지독하지도 않고 세리자와에게서 나는 아저씨 냄새처럼 거부감이 드는 것도 아니다. 같이 있으면 한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그래서 나도 모르게 편하다, 하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창문 틀에 앉아서 마치 본인이 이 커다란 집의 주인이라도 된 듯이 여유 있게 혼자서 돌아다니던 고양이는 이곳저곳을 배회하다가 마지막 지점으로 내 방을 선택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내 방에 들어와서는 동그란 솜뭉치 같은 발로 펄쩍 뛰어서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옆으로 폴짝 뛰어올라왔다. 따뜻한 곳을 찾아왔는지 내 옆에 와서는 배를 깔고 앉아서는 꼬리로 나를 가볍게 톡톡 건들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다는 듯이 눈을 감는다. 그러고 보니 전에 리츠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자 의외라면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질문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 응? 고양이..... 이름..?"
"...?"

내 반응에 리츠도 함께 당황해했다.

"뭐야? 설마 이름이 없는 거야? 그럼 도대체 뭐라고 불러?"
"음..... 딱히 부를 일이.."
"보통은 키우려고 데려오자마자 이름부터 생각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 엄마는 그 고양이를 뭐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그냥 고양이라고 불러 나는"
"그럼 이름이 고양이인 거네? 특이하다 마치 사람의 이름이 사람인 것과 똑같은 거잖아?"

리츠는 뭐가 웃긴지 우스워했고 나는 이상하게 멍한 기분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나도 함께 웃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웃고 있는 리츠와 함께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어 보이기만 하였다.

벌떡 일어서서는 13마리가 담겨있는 햄스터 어항에 가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귀여운 햄스터들은 여전히 보드라운 허연 등을 동그랗게 말고서 조금씩 숨을 뱉으며 자고 있었다.
이 녀석들에게도 이름이 필요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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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우리츠] 햄스터 01

2017. 2. 27. 00:3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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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버지의 말다툼 소리는 어릴 적부터 지겹게 들었다. 상냥한 엄마는 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고, 낮에는 애써 웃으면서 아버지를 대했지만 내가 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문을 닫고 들어간 안방에서는 둘의 답 없는 말다툼 소리가 하루 종일 들리었다. 엄마는 내가 듣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 고요한 밤의 소리는 꽤나 명확하게 들렸기 때문에 잠들기 직전까지 둘의 이야기를 듣다가 잠에 들었다. 엄마는 왜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자비하게 하냐면서 따지고 들었고 아버지는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신경 써서인지 낮춘 목소리로 소리를 뱉고 있었고 아버지는 덤덤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다툼 소리는 무서우리만치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항상 조용한 밤을 꿈꾸었던 나였지만 항상 소음이 있던 밤이 조용해지자 째깍째깍하고 울리는 시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며 무언가 없어진 듯한 휑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엄마는 나에게 인사도 없이(자고 있을 때에 들어와서 인사를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간단한 짐을 들고선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그런 것 따위는 크게 신경 쓸 일 아니라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깔끔한 옷차림으로 밖을 나설 뿐이었고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 소음에 대해서 그 누구도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다. 누구라도 이렇게 만들어진 잔잔한 공기를 반가워할리 없다. 


집에는 엄마가 불쌍하다며 데리고 왔던 고양이 한 마리만이 자신의 털을 두어 번 핥다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본인이 키우려 데려온 고양이마저 신경 쓰지 못했는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지 그대로 뒤돌아보지도 않고서 집을 떠난 것이다. 늘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씨 따스한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렸으면서 정작 본인은 키우려 데려온 동물과 더불어 자식새끼마저 내던지고 도주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허무함과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나를 떠난 엄마를 마냥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긴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고 목소리도 사근사근하고... 아버지와 다르게 나에게 항상 다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엄마가 돌아왔을 때에 나를 보고 쇼우는 훌륭하게 자랐구나! 하고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씨 따뜻한 아이로 자라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는 햄스터를 사기로 했다. 무작정 나가서 찾은 애완동물 숍에 가서는 무작정 햄스터 15마리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는 어항 중에 가장 큰 투명한 어항, 그리고 장난감처럼 작은 햄스터 먹이, 햄스터들이 놀기 위해서는 쳇바퀴 도 필요하다며 추천하길래 그것도 여러 개를 함께 샀다. 자고 있는지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햄스터들의 작은 등은 찹쌀떡처럼 부드러워 보여서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집에 있는 고양이도 똑같이 사랑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노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그 고양이에게 한 마리 던져주었다. 내가 던져준 햄스터를 보자마자 눈을 빛내며 금세 잊고 있던 야생의 발톱을 세우는 이 녀석을 보니 엄마 역시 아무도 모르게 숨겨왔던 야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고양이가 입 주위를 시뻘겋게 물들이며 햄스터를 발톱으로, 이빨로 물어뜯어 차가운 고깃덩어리로 온도를 낮추는 광경을 구경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의 고양이는 쥐를 먹어본 적이 없는지 사냥은 했지만 시식은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뻘건 생물을 앞에 두고 재미없다는 듯이 제 발톱에 묻은 더러운 피를 혀로 할짝할짝 핥으며 도도하게 꼬리를 세우고는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겨갈 뿐이다. 나는 한참을 관찰하다가 죽어버린 햄스터의 작은 손을 슬쩍 잡아선 창문을 열고 던져서 버렸다.











-

시간이 흐르며 나는 엄마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목소리가 어땠는지, 점점 잊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 당연한 일인 듯이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야 많았지만 엄마가 00있을 때에나 간단한 이야기 몇 마디를 나누었던 사이였던 우리였기 때문에 딱히 대화를 할 필요도 없었고 아버지는 계속 바빴다. 조금 안쓰러웠는지 자신의 부하 몇 명을 나에게 보내주며 나를 돌보게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의 관심이 꽤나 고파서 잘 따랐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조금씩 변하는 그들을 보며 내가 바라는 관심의 정도와, 돈을 조건으로 주는 이들의 관심은 형태가 달라도 너무나 다른 것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초능력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굉장히 사랑했던 아버지는 내가 본인과 똑같다고 믿었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나에게 같이 갈 곳이 있다며 따라나선 곳은 조금은 신나게 뒤를 따른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초능력 발전소였다. 병동 같은.. 아니 병동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그 이상한 곳은 돈 많은 아버지의 건물이니 굉장히 크고 깔끔했지만 안에 있는 환자 비스무레한 사람들의 상태는 굉장히 이상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좀비같이 축 늘어진 데다 초점이 사라져 있었고, 누워있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사람들을 보자 실험의 흔적이 훤히 보이는 역겨움이 공기에 세세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이 곳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를 이 평범한 재능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괴로워하면서도 그 특수능력을 굉장히 손에 넣고 싶어 했다. 이미 그 재능이 있는 나로서는 분명히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기에 지루하게 쳐다보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이런 것으로 사람들을 이용하고 버릴 것이라는 것은 감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집회는 나가지 않았으니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의 최 측근들인 '오초' 정도였다. 그들과는 그래도 꽤 친하게 지냈다. 그들 중 세리자와는 다른 이들로부터 사장의 비즈니스 와이프가 아니냐며 놀림을 당하고 있었는데 내 앞에서는 절대로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룰이었는지 나는 그가 그렇게 놀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한참 동안이나 몰랐다. 한참 후, 내가 있을 때 눈치 없이 '야, 비즈니스 와이프!' 하고 하토리가 세리자와를 불렀을 때 알게 되었다. 물론, 나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동의했다. 뒤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불리고 있었을 것이지만 내 앞에서 그 말을 꺼낸 이후로는 다시는 내 앞에서 세리자와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들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세리자와는 그렇게 불릴 법도 했던 게,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그만큼 잘 대해주었다. 나를 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고 아빠를 설득했던 것도 세리자와였다. 내가 혼자서 밥을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도 아닌 데다 정식으로 요리를 해주는 사람을 부르면 되는 간단한 문제를 갑자기 자기 혼자서 나에게 밥을 해준다며 한 번씩 오다가, 점점 횟수가 잦아지더니 이제 대다수의 시간을 우리 집에서 함께 했다.


"쇼우군 일어나! 학교 가야지!"


본인도 사회생활을 못해서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주제에 말은 잘했다. 나이를 먹으면 꼰대가 되는 것은 다들 똑같나 보다. 세리자와가 웃으면서 차려준 아침식사는 거창하게 차린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해주었다. 오늘은 바싹 구운 토스트와 부서져서 지저분하게 접시에 담긴 계란 프라이였다. 계란 프라이의 모양이 지저분해도 일단 계란 프라이였으니 맛은 있었다.


"... 세리자와,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으.. 응 뭔데?"

"혹시 아버지에게도 요리해준 적 있어?"

"아니 없는데?"

"그래? 의외네. 다른 사람들이 와이프라고 부르는 이유가 뭔가 있겠지 싶었는데"

"하하... 쇼우군.. 그건 다른 애들이 말실수한 거야 그런 거 아냐.. 하하.. 그리고 사장님은 아침은 안 드시잖아. 나머지는 주로 밖에서 드시니까.. 사장님은 오늘 아침에도 엄청 일찍 나가셨어. 어제 늦게까지 힘드셨을 텐데... 나도 열심히 해서 사장님처럼 되어서 사장님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어."

"....... 이 정도면 종교네 종교"

"응?"

"아냐"


세리자와는 내가 봐도 많이 변했다. 사회에 나설 수 있도록 그를 인도해준 사람이 아버지였으니 이렇게 고맙게 생각할 법도 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 아버지가 세리자와를 데리고 왔을 때의 첫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에 그는 아버지의 뒤를 바짝 쫓아오며 손에는 빗물에 젖은 우산을 꼬옥 쥐고서 마치 감옥에 10년쯤 갇혀있다가 나온 범죄자처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잔뜩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방 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가 이렇게 나에게 말도 걸어주고, 자신의 주장도 이야기할 정도로 사회성이 좋아진 것에 대해서 아버지의 영향이 상당히 크게 끼쳤던 것은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변하는 것을 보면서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영향을 받고, 그 영향으로 나도 변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학교가 귀찮게 느껴졌지만 별말 없이 따른 것이었다.



학교는 쵸미시에 있는 어느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초등학교는 엄마가 있을 적에 잠깐 다녔었는데, 3학년 때에 반에 있는 어떤 아이와 별것도 아닌 이야기로 심하게 다투다가 서로 코피를 흘렸다.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주먹을 휘두르면서 싸우기도 한다는 게 아버지의 이상스러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됐었는지, 아니면 내가 피를 흘리면서 온 것이 패배자처럼 하찮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흰 티셔츠에 후두둑 묻어 있는 핏자국과 얼굴에 시퍼런 멍 자국을 인상을 잔뜩 찡그린 얼굴로 한참 쳐다보고서 다음날부터 학교에 가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 이후로는 학교에 간 적이 없지만 어떻게 했는지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졸업장은 나왔다. 그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학교의 기억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금은 품었다. 그리고 항상 품는 막연한 기대는 역시 잘못되어 있었다. 그 학교는 모두가 거지새끼 같았다. 우선 이상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 소리를 높여서 이야기하는 것도 시끄러웠고, 장난이랍시고 하찮은 지우개를 훔쳐서 달아나는 것도, 그것을 되찾으려 필사적으로 쫓는 것도,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급하게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달라며 구걸을 하는 것도... 모두 다 꼴불견이었다. 


내가 있는 반의 반장으로 보이는 어떤 여자애는 나에게, 스즈키... 쇼우 군 이지?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걸 한 번도 못 들어봤어. 부 활동 같은 건 하고 있니? 하고 가식적으로 웃으며 묻기도 했는데, 그런 대답할 가치 없는 질문 역시 무시했다. 그 이후로 다른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결국 나는 이 정도였다. 세리자와와는 다른 형태로 구석에 처박힌 곰팡이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얼마 후,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학교의 규율을 전혀 지키지 않아도 나를 건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아버지가 누군가를 시켜서 행한 권력 탓에 선생님들도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혼내지 않고, 그렇다고 예뻐하지도 않았다. 보통 이런 곳에 찾아와서 아버지의 말을 전하는 것은 주로 시마자키였다. 그리고 분명 시마자키는 특유의 껄렁껄렁하고 재수 없는 말투로 협박에 가까운 부탁 아닌 부탁을 했을 것이다. 그의 태도에 선생님들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선생님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딱히 아이들과 말을 하지 않는 나였기 때문에 나도 조용히 숨을 죽이고 시간만을 지키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것 역시 묘한 기분이었다. 싸구려 집단 안에 속해 있는 투명인간.


그날도 돌아와서 고양이에게 햄스터 한 마리를 던져주었다.

고양이는 여전히 입가에 피를 묻히며 물어뜯고,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햄스터가 발톱 아래 깔려서 바둥대는 것까지 전과 비교했을 때에 다른 모습은 없었다.


고양이는 얌전히 죽은 햄스터를 물고 내 방 앞에 살포시 놓았다. 지난번에 만졌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피투성이 햄스터의 작은 손은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만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별일이 없으면 3일에 한번 오는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메세지를 남긴다.


[고양이가 햄스터를 물어 죽였어요. 바로 와서 치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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