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우리츠] 햄스터 01

2017. 2. 27. 00:34



01












-

엄마와 아버지의 말다툼 소리는 어릴 적부터 지겹게 들었다. 상냥한 엄마는 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고, 낮에는 애써 웃으면서 아버지를 대했지만 내가 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문을 닫고 들어간 안방에서는 둘의 답 없는 말다툼 소리가 하루 종일 들리었다. 엄마는 내가 듣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 고요한 밤의 소리는 꽤나 명확하게 들렸기 때문에 잠들기 직전까지 둘의 이야기를 듣다가 잠에 들었다. 엄마는 왜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자비하게 하냐면서 따지고 들었고 아버지는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신경 써서인지 낮춘 목소리로 소리를 뱉고 있었고 아버지는 덤덤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다툼 소리는 무서우리만치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항상 조용한 밤을 꿈꾸었던 나였지만 항상 소음이 있던 밤이 조용해지자 째깍째깍하고 울리는 시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며 무언가 없어진 듯한 휑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엄마는 나에게 인사도 없이(자고 있을 때에 들어와서 인사를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간단한 짐을 들고선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그런 것 따위는 크게 신경 쓸 일 아니라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깔끔한 옷차림으로 밖을 나설 뿐이었고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 소음에 대해서 그 누구도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다. 누구라도 이렇게 만들어진 잔잔한 공기를 반가워할리 없다. 


집에는 엄마가 불쌍하다며 데리고 왔던 고양이 한 마리만이 자신의 털을 두어 번 핥다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본인이 키우려 데려온 고양이마저 신경 쓰지 못했는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지 그대로 뒤돌아보지도 않고서 집을 떠난 것이다. 늘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씨 따스한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렸으면서 정작 본인은 키우려 데려온 동물과 더불어 자식새끼마저 내던지고 도주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허무함과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나를 떠난 엄마를 마냥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긴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고 목소리도 사근사근하고... 아버지와 다르게 나에게 항상 다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엄마가 돌아왔을 때에 나를 보고 쇼우는 훌륭하게 자랐구나! 하고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씨 따뜻한 아이로 자라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는 햄스터를 사기로 했다. 무작정 나가서 찾은 애완동물 숍에 가서는 무작정 햄스터 15마리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는 어항 중에 가장 큰 투명한 어항, 그리고 장난감처럼 작은 햄스터 먹이, 햄스터들이 놀기 위해서는 쳇바퀴 도 필요하다며 추천하길래 그것도 여러 개를 함께 샀다. 자고 있는지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햄스터들의 작은 등은 찹쌀떡처럼 부드러워 보여서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집에 있는 고양이도 똑같이 사랑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노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그 고양이에게 한 마리 던져주었다. 내가 던져준 햄스터를 보자마자 눈을 빛내며 금세 잊고 있던 야생의 발톱을 세우는 이 녀석을 보니 엄마 역시 아무도 모르게 숨겨왔던 야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고양이가 입 주위를 시뻘겋게 물들이며 햄스터를 발톱으로, 이빨로 물어뜯어 차가운 고깃덩어리로 온도를 낮추는 광경을 구경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의 고양이는 쥐를 먹어본 적이 없는지 사냥은 했지만 시식은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뻘건 생물을 앞에 두고 재미없다는 듯이 제 발톱에 묻은 더러운 피를 혀로 할짝할짝 핥으며 도도하게 꼬리를 세우고는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겨갈 뿐이다. 나는 한참을 관찰하다가 죽어버린 햄스터의 작은 손을 슬쩍 잡아선 창문을 열고 던져서 버렸다.











-

시간이 흐르며 나는 엄마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목소리가 어땠는지, 점점 잊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 당연한 일인 듯이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야 많았지만 엄마가 00있을 때에나 간단한 이야기 몇 마디를 나누었던 사이였던 우리였기 때문에 딱히 대화를 할 필요도 없었고 아버지는 계속 바빴다. 조금 안쓰러웠는지 자신의 부하 몇 명을 나에게 보내주며 나를 돌보게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의 관심이 꽤나 고파서 잘 따랐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조금씩 변하는 그들을 보며 내가 바라는 관심의 정도와, 돈을 조건으로 주는 이들의 관심은 형태가 달라도 너무나 다른 것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초능력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굉장히 사랑했던 아버지는 내가 본인과 똑같다고 믿었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나에게 같이 갈 곳이 있다며 따라나선 곳은 조금은 신나게 뒤를 따른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초능력 발전소였다. 병동 같은.. 아니 병동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그 이상한 곳은 돈 많은 아버지의 건물이니 굉장히 크고 깔끔했지만 안에 있는 환자 비스무레한 사람들의 상태는 굉장히 이상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좀비같이 축 늘어진 데다 초점이 사라져 있었고, 누워있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사람들을 보자 실험의 흔적이 훤히 보이는 역겨움이 공기에 세세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이 곳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를 이 평범한 재능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괴로워하면서도 그 특수능력을 굉장히 손에 넣고 싶어 했다. 이미 그 재능이 있는 나로서는 분명히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기에 지루하게 쳐다보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이런 것으로 사람들을 이용하고 버릴 것이라는 것은 감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집회는 나가지 않았으니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의 최 측근들인 '오초' 정도였다. 그들과는 그래도 꽤 친하게 지냈다. 그들 중 세리자와는 다른 이들로부터 사장의 비즈니스 와이프가 아니냐며 놀림을 당하고 있었는데 내 앞에서는 절대로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룰이었는지 나는 그가 그렇게 놀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한참 동안이나 몰랐다. 한참 후, 내가 있을 때 눈치 없이 '야, 비즈니스 와이프!' 하고 하토리가 세리자와를 불렀을 때 알게 되었다. 물론, 나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동의했다. 뒤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불리고 있었을 것이지만 내 앞에서 그 말을 꺼낸 이후로는 다시는 내 앞에서 세리자와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들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세리자와는 그렇게 불릴 법도 했던 게,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그만큼 잘 대해주었다. 나를 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고 아빠를 설득했던 것도 세리자와였다. 내가 혼자서 밥을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도 아닌 데다 정식으로 요리를 해주는 사람을 부르면 되는 간단한 문제를 갑자기 자기 혼자서 나에게 밥을 해준다며 한 번씩 오다가, 점점 횟수가 잦아지더니 이제 대다수의 시간을 우리 집에서 함께 했다.


"쇼우군 일어나! 학교 가야지!"


본인도 사회생활을 못해서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주제에 말은 잘했다. 나이를 먹으면 꼰대가 되는 것은 다들 똑같나 보다. 세리자와가 웃으면서 차려준 아침식사는 거창하게 차린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해주었다. 오늘은 바싹 구운 토스트와 부서져서 지저분하게 접시에 담긴 계란 프라이였다. 계란 프라이의 모양이 지저분해도 일단 계란 프라이였으니 맛은 있었다.


"... 세리자와,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으.. 응 뭔데?"

"혹시 아버지에게도 요리해준 적 있어?"

"아니 없는데?"

"그래? 의외네. 다른 사람들이 와이프라고 부르는 이유가 뭔가 있겠지 싶었는데"

"하하... 쇼우군.. 그건 다른 애들이 말실수한 거야 그런 거 아냐.. 하하.. 그리고 사장님은 아침은 안 드시잖아. 나머지는 주로 밖에서 드시니까.. 사장님은 오늘 아침에도 엄청 일찍 나가셨어. 어제 늦게까지 힘드셨을 텐데... 나도 열심히 해서 사장님처럼 되어서 사장님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어."

"....... 이 정도면 종교네 종교"

"응?"

"아냐"


세리자와는 내가 봐도 많이 변했다. 사회에 나설 수 있도록 그를 인도해준 사람이 아버지였으니 이렇게 고맙게 생각할 법도 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 아버지가 세리자와를 데리고 왔을 때의 첫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에 그는 아버지의 뒤를 바짝 쫓아오며 손에는 빗물에 젖은 우산을 꼬옥 쥐고서 마치 감옥에 10년쯤 갇혀있다가 나온 범죄자처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잔뜩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방 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가 이렇게 나에게 말도 걸어주고, 자신의 주장도 이야기할 정도로 사회성이 좋아진 것에 대해서 아버지의 영향이 상당히 크게 끼쳤던 것은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변하는 것을 보면서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영향을 받고, 그 영향으로 나도 변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학교가 귀찮게 느껴졌지만 별말 없이 따른 것이었다.



학교는 쵸미시에 있는 어느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초등학교는 엄마가 있을 적에 잠깐 다녔었는데, 3학년 때에 반에 있는 어떤 아이와 별것도 아닌 이야기로 심하게 다투다가 서로 코피를 흘렸다.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주먹을 휘두르면서 싸우기도 한다는 게 아버지의 이상스러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됐었는지, 아니면 내가 피를 흘리면서 온 것이 패배자처럼 하찮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흰 티셔츠에 후두둑 묻어 있는 핏자국과 얼굴에 시퍼런 멍 자국을 인상을 잔뜩 찡그린 얼굴로 한참 쳐다보고서 다음날부터 학교에 가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 이후로는 학교에 간 적이 없지만 어떻게 했는지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졸업장은 나왔다. 그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학교의 기억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금은 품었다. 그리고 항상 품는 막연한 기대는 역시 잘못되어 있었다. 그 학교는 모두가 거지새끼 같았다. 우선 이상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 소리를 높여서 이야기하는 것도 시끄러웠고, 장난이랍시고 하찮은 지우개를 훔쳐서 달아나는 것도, 그것을 되찾으려 필사적으로 쫓는 것도,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급하게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달라며 구걸을 하는 것도... 모두 다 꼴불견이었다. 


내가 있는 반의 반장으로 보이는 어떤 여자애는 나에게, 스즈키... 쇼우 군 이지?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걸 한 번도 못 들어봤어. 부 활동 같은 건 하고 있니? 하고 가식적으로 웃으며 묻기도 했는데, 그런 대답할 가치 없는 질문 역시 무시했다. 그 이후로 다른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결국 나는 이 정도였다. 세리자와와는 다른 형태로 구석에 처박힌 곰팡이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얼마 후,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학교의 규율을 전혀 지키지 않아도 나를 건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아버지가 누군가를 시켜서 행한 권력 탓에 선생님들도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혼내지 않고, 그렇다고 예뻐하지도 않았다. 보통 이런 곳에 찾아와서 아버지의 말을 전하는 것은 주로 시마자키였다. 그리고 분명 시마자키는 특유의 껄렁껄렁하고 재수 없는 말투로 협박에 가까운 부탁 아닌 부탁을 했을 것이다. 그의 태도에 선생님들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선생님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딱히 아이들과 말을 하지 않는 나였기 때문에 나도 조용히 숨을 죽이고 시간만을 지키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것 역시 묘한 기분이었다. 싸구려 집단 안에 속해 있는 투명인간.


그날도 돌아와서 고양이에게 햄스터 한 마리를 던져주었다.

고양이는 여전히 입가에 피를 묻히며 물어뜯고,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햄스터가 발톱 아래 깔려서 바둥대는 것까지 전과 비교했을 때에 다른 모습은 없었다.


고양이는 얌전히 죽은 햄스터를 물고 내 방 앞에 살포시 놓았다. 지난번에 만졌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피투성이 햄스터의 작은 손은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만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별일이 없으면 3일에 한번 오는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메세지를 남긴다.


[고양이가 햄스터를 물어 죽였어요. 바로 와서 치워주세요]











'몹싸 > ing 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쇼우리츠] 햄스터 04  (1) 2017.07.10
[쇼우리츠] 햄스터 03  (0) 2017.05.21
[쇼우리츠] 햄스터 02  (0) 2017.03.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