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우리츠] 햄스터 03

2017. 5. 2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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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굣길에 리츠는 이제 곧 시험기간이니 공부를 해야 한다며 걱정을 했다. 너 같은 모범생도 시험기간에 걱정을 하는구나? 하고 묻자, 학생들이라면 모두가 걱정을 하지 않냐면서 새삼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성적이 어느 정도냐면서 초능력을 알려주는 보답으로 내가 공부라도 가르쳐줄까? 하고 웃으면서 묻는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니 나는 물론 좋다며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을 했다.


그럼 바로 갈까? 어디에서 하지? 하고 함께 잠시 고민을 하며 하굣길을 나설 때에 교문 앞에 서 있는 웬 거지 같은 여자를 발견했다. 전단지 따위를 나누어 주는 아줌마 인가보다 하고 지나치려 할 때에 그 여자는 갑자기 덥석 내 팔을 잡는 것이었다.


"쇼우...! 드디어 만났구나...! 잘 지냈니?"


누구인지 몰라 눈을 깜빡이며 한참 쳐다보았고, 내 옆에 있는 리츠도 이상한 눈으로 이 여자를 바라보았다.


"...누구..."

"엄마란다...! 시간이 너무 흘렀니? 엄마가 많이 변했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주름살과 잡티 투성이의 늙은 피부와 더러운 거적 같은 옷 틈새로 엄마의 기운이 슬그머니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심정은 정말이지 더럽고 치욕스러운 것이었다. 


"어... 엄마?"


당황해서 입 틈새로 신음처럼 뱉은 소리에 리츠는 나와 눈앞의 허름한 꼴을 한 엄마를 번갈아 보고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강 눈치를 챘는지 먼저 가볼게 내일 봐. 하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멀리 걸어가는 리츠를 보고서 엄마는 나에게 호소하듯이 너무 배가 고프다며 밥을 사달라고 했다. 알겠다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나를 잡아끌고는 대충 눈에 보이는 어느 허름한 분식집으로 들어가서는 최대한 빨리 나오는 음식을 달라며 허겁지겁 주문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엄마의 호들갑스러운 태도가 유난스러웠는지 정말로 앉자마자 바로 내어준 싸구려 분식들은 절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음식들을 보자마자 수저나 젓가락도 사용하지 않고서 양손으로 허겁지겁 집어서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걸신들린 듯이 먹는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에 쓰는 말이었다. 분식집의 주인들과 옆에 앉은 다른 손님들이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눈길조차 느끼지 못하는지, 한참을 게걸스럽게 주워 먹던 엄마는 그 와중에 앞에 앉은 나는 조금 신경이 쓰였는지 멀뚱히 눈을 뜨고 쳐다보는 나를 보고서 내 앞에도 음식이 담긴 싸구려 플라스틱 접시를 조금 밀어 주었다.


"쇼우도 먹으렴.."

"됐어요."


이런 걸 먹는 순간 식중독으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실제 엄마가 입에 정신없이 쑤셔 넣는 그 음식들은 너무 마른 표면을 하고 있었고, 재료조차 신선해 보이지 않아서 집에서 세리자와가 가끔 해주는 계란 프라이가 훨씬 낫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내가 느끼는 그런 것들 따위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 그 음식들을 정신없이 다 비운 엄마는 그제야 자신이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앞에 두고서 너무 급하고 추하게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뒤늦게 얼굴을 붉혔다.


"잘 지내셨어요?"


덤덤하게 묻는 내 첫마디에 엄마는 슬그머니 내 표정을 잠깐 살피고는 입을 다물었다. 


"..뭐.. 별로 알고 싶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여전해요. 오초도 여전하고요.. 엄마가 키우던 고양이도 아직 집에서 돌아다니고 있어요"

"...쇼우.."

"네"

".....엄마가 원망스럽니?"

"......"


선뜻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 내가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싫어서 집을 나갈 거였으면 고양이와 함께 나도 데리고 갔어야 옳지 않나 하고 생각했었지만, 다음의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절대로 엄마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 저.. 혹시... 미안한데... 돈 좀 있니? 엄마 좀 줄 수 없어...?"


그 말에 나는 왜인지 모르게 터져 나오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주머니에 있는 용돈을 전부 꺼내서(그래봤자 오만 원 안팎 되는 돈이었지만) 테이블에 놓고는 엄마에게 말했다.


".. 아버지에게 돌아오세요"


내 말에 엄마는 생각하는 듯한 잠깐의 침묵도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가 테이블에 놓은 돈을 집어서 눈으로 대충 돈을 센 다음,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저.. 혹시 더 없니?"

".... 학교에 많은 돈을 들고 다니진 않아서요"


헤어지면서 엄마는 수 차례 나에게 인사를 했지만,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찝찝하고 답답한 이 짜증 나는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서 애꿎은 길가의 돌멩이만 발로 툭툭 찼다. 분명히 아버지는 미친 듯이 일만 하는 데다가 초능력으로 세계정복이니 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말만 지껄이는 씨발놈이지만 나와 고양이를 모두 버리고 간 엄마도 다르지 않다. 그 주제에 낯짝도 뻔뻔하게 그 몰골로 버린 아들까지 찾아와? 게다가 그 얼마 안 되는 돈을 받으려 요구까지 해? 차라리 엄마가 자상하고 돈 많은 다른 남자를 만나서 우리 모두를 잊고 평생 내 앞에 나타날 생각도 하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면 차라리 내 맘이 편했을까?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초라한 몰골로 와서 우리 함께 살자, 같이 가자 하고 그 꼬질꼬질한 손을 내밀었다면 내 마음이 조금은 편했을까? 그것도 아니다. 내 앞에서 울면서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했다면?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면? 차라리 나에게 아버지를 속 시원하게 욕하기라도 했다면? '내가 집을 나간 이유는'으로 시작하는 30분짜리 구차한 변명이라도 늘어놓았다면? 아... 아니다.. 다 아니다. 그 어떤 경우였어도 나는 내 눈앞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앞에 그런 추한 몰골로 나의 엄마라는 이름을 대며 초라하게 등장 한 것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에 옮길 수 없는 돌이라도 들어앉은 듯이 답답해서... 집으로 급하게 달음박질쳤다.


벌컥 열리는 문소리를 듣고서 나를 바라보는 노란 눈을 가진 고양이. 어항에서 우글우글하게 모여있는 햄스터. 투명한 어항. 뚜껑을 열자 밥을 준거라고 생각했는지 위를 바라보는 13쌍의 검은 눈, 작은 손, 그리고 그들 중 누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는 나.


그리고 이내 누구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어항에서 잡히는 대로 집어서는 고양이 앞에 세 마리를 툭 툭 던져놓았다. 떨어져서 작은 경련을 일으키는 햄스터들과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에 호기심과 손톱을 세우며 다가가는 고양이를 관찰하다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침대에 풀썩 눕는다. 


엄마가 사랑하는 나와 고양이는 엄마와는 다르게 불행하지 않다. 

엄마는 나와 고양이를 두고 가면서 본인의 모든 운 마저 모두 내려놓고 갔기 때문이다.











-

리츠는 고맙게도 나에게 전에 만났던 엄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궁금하겠지만 차마 물을 수 없어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옆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리츠를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말했다. 


"저기"

"응"

"궁금하지 않아?"

"뭐가?"

"전에 만났던.. 우리 엄마"

"글쎄"


리츠는 펜을 내려놓고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네가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

"..."

"근데 지금 네가 짓는 표정을 보니까.. 너 나에게 털어놓고 싶구나?"

리츠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자 몰랐던 나의 답답함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런 내 상황을 누군가 들어주고 내 이런 상황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해주기를 어렴풋이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은근히 겁이 많았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겁이 많아질 것이다.


"... 분명히 그렇지만 네가 나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무서워"


학교에서의 내 이미지는 돈 많은 어느 집의 부잣집 아들이었고 리츠 역시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 확실 했기 때문에.


"내가 왜 너에게 실망을 해? 그럴 일 없어. 너도 나의 이상하고 바보 같은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준다며 나를 도와주고 있잖아"


그 말을 듣자 누구도 들어준 적 없는 내 고민을 조금은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환상이 들었다. 내가 리츠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없고, 리츠도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우리의 관계이기에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조금씩 입을 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일도, 쭉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그런 몰골로 학교에 찾아온 것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달라고 이야기했다는 것도... 더불어 어릴 적 기억의 엄마는 은은한 기품이 있었기에 절대 어제 본 것 같은 추한 몰골의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돈을 달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을 정도로 뻔뻔하지도 않았다는 것까지. 


내 말을 듣고 리츠는 별로 동요하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고마웠다.


"아버지가 왜? 어머니는 왜 아버지와는 살 수 없다고 하신거야?"

"우리 아버지는 초능력자라고 했었지? 본인이 초능력자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어. 실제로 지금도 그런 쪽에서 일하면서 미친 듯이 몰두하고 있기도 하고. 더불어 타인의 초능력의 잠재력에 대해서도 연구도 많이 하고 있.."

"초능력의 잠재력?"


아..


"초능력 개발? 뭐야? 연구하고 계신 거야? 그래서 성과는 .. 있으신 거야?"

"아니.. 어.. 그니까.."

"왜 말 안 했어? 아버지가 그런 쪽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말은 안 했잖아! 내가 간절한 거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왜 말 안 했어?"


리츠는 거의 울듯한 얼굴을 하고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말했다.


"아니.. 리츠, 들어봐. 그게 아니라"

"나도... 나도 데려가 주면 안 될까? 나도.. 초능력자가.. 되고 싶은데.."

"하.. 하지만 성과는... 아직.."

"그래도..! 혹시나 내가 처음으로 초능력에 각성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잖아! 너도 말했잖아! 우리 형이 초능력자인 만큼 나에게도 잠재력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아니.. 그니까.."

"쇼우 제발...  부탁할게.. 응?"


리츠는 내 가슴팍에 제 얼굴을 묻고 제발.. 제발 부탁이야 쇼우 제발.. 제발 부탁이야.. 하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날 이후 리츠는 아버지의 병동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집착 후에 병동을 찾아오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초능력이라는 미지의 힘에 대한 집착의 정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1%의 가능성에 다가간다는 그 두근거림이 그를 더욱 증폭시킨 것이다. 리츠를 만나게 되면 리츠의 첫 마디는 항상 아버지께 물어봤어?로 시작해서 계속해서 자신을 아버지에게 데려가 주기를 희망했다. 절대로 들어줘서는 안되는 그 부탁이 부담으로 다가왔던 나는 리츠를 만나고 싶은 만큼 리츠를 만나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만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리츠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커져가고 있었다.


"리츠, 들어봐. 내가 아버지께 물어보긴 했어. 하지만 아직 많이 불안정하다고 하셔. 그러니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야"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리츠의 손을 잡고 말했다.


"불안정? 어떤 식으로? 시간? 얼마나? 난 초능력자인 가족이 있잖아. 그니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수도 있잖아? 너도 그랬잖아.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나에게 잠재되어 있을 거라고 했잖아"

"...리츠"

"응"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


내 말에 리츠는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잠시의 침묵 후에 말했다.


"...고집?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이제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누구나 이런 상황이 오면 그렇지 않겠어? 아, 알겠다. 그런 것도 너 같이 잘난 집안의 사람들은 모르는 이야기지?"

"그런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에 대한 상황을 알고 있는 네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해?"

"네 상황? 어떤 상황을 말하는거야? 학교의 선생님들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잘난 너희 집안?"

"....리츠...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마. 내 상황 잘 알잖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라니. 너야말로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 알고 있잖아. 그걸 지금 고집이라고 말하는 거야?"

"리츠, 너 지금 상태 이상해. 다음에.. "

"... 뭐야, 무시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 근데 너는 아니잖아"

"리츠"

"응"

"...나에게도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면 안 될까?"

"무슨 사정? 말해봐"


이미 리츠는 나의 입장에 서서 이해할 눈빛이 아니었다. 물론 막무가내로 원하는 리츠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정만은 말할 수가 없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 줄 알아? 내가 어릴 적에 본 그곳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좀비들이 서식하는 듯한 이상한 병동 같았단 말이야. 그런 곳에 가서 네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데 그런 곳에 널 데려가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말문이 막혀 침묵을 지키자 리츠는 나에게 말했다.


"됐어. 돌아가. 오늘은 너와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혼자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와서 문을 열자 세리자와가 쇼우군! 돌아왔구나! 하고 두 팔을 벌리며 격하게 환영을 했다. 평소에도 싫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귀찮게 느껴져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없어"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학교의 일을 묻는 세리자와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쭉 걸어들어간 거실에는 언제 왔는지 시마자키가 소파에 드러누워서는 특유의 빈정대는 말투로, 도련님 오셨네? 하고는 입꼬리를 실실 거리며 웃었다. 시마자키가 나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데엔 이유가 있다. 좋지 않은 느낌에 무시하고 지나치려는데, 시마자키는 소파에 눕혔던 몸을 일으키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도련님! 나 얼마 전에 지나가다가 사모님 만났는데"

".... 아 그러셔? 앞도 못 보는 새끼가 잘도 보네"

"안 보이니까 더 잘 아는 거지. 나 만나기 전에 사모님은 도련님 만나고 오는 길인 것 같던데"

"... "

"어쩐지, 사모님이 날 보자마자 너무나 화들짝 놀라시더라고. 사모님 많이 힘드신 것 같으시던데.. 도련님이 눈물의 위로라도 해드렸어?"


살살 긁는 시마자키의 이런 뱀 같은 말투를 듣고 있으면 아, 내가 첫 번째로 사람을 죽여서 뉴스에 난다면 그 대상은 저 새끼가 되겠구나.. 하고 새삼 생각하게 될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그냥 본론만 이야기하지?"

"본론? 없는데. 하하, 도련님 화날 때 말투가 묘하게 바뀌는 게 재밌어서 그래"

"재밌어?"


시마자키는 시력이 없는 만큼 혀도 없었으면 훨씬 좋았을 뻔했다. 주먹을 쥔 손바닥에 손톱이 박혀 아플 정도로 주먹을 꽈악 움켜쥐자 눈치챈 세리자와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쇼우군 그만하고 이리 와, 하고는 나와 시마자키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조금은 식혀주었다. 사실.. 내가 이렇게 화가 났다고 하더라도 그저 나 혼자 시마자키의 도발에 넘어가서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것일 뿐이지만.


분이 덜 풀려 보이는 나에게 세리자와는 따뜻하게 데운 녹차를 한잔 내밀고는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서는 그저 웃어 보이는 세리자와에게 괜한 투정을 부렸다.


"미친 새끼. 시마자키 저 새끼는 우리 집에 왜 온 거야? 저딴 개소리 지껄이러 온 거면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해. 재수 없게. 한 번만 더 저딴 소리 하면 혀를 뽑아버리겠다고 해"

"시마자키는 누구 나한테 그렇지 뭐. 우리한테도 똑같아. 사장님께 앞에서만 조용히 있지. 쇼우도 나중에 차기 사장이 되면 아마.."

"그만. 듣기 싫어. 나 지금 기분 안 좋은 거 안 보여? 차기 사장 이야기 좀 안 할 수 없어? 난 아버지를 따를 생각 따윈 눈꼽만큼도 없단 말이야! 세리자와는 가끔 마치 내 부모라도 된 듯이 구는데, 착각하지 마. 아버지의 비즈니스 와이프라고 조롱당하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방금 말은 좀 심했나? 하는 생각에 뱉어 놓고 나도 모르게 세리자와의 눈치를 살피다가, 작은 목소리로, 방금 말은 미안. 내가 요즘 좀..... 하고 말했다.


"... 쇼우. 그 여자를 만났다는 게 진짜야?"

"그 여자라니? 그 여자가 누구야?"

"아까 시마자키가 그랬잖아. 만났다고"

".. 설마 엄마를 말하는 거야?"

"..역시 그래서 이상해졌구나 왜 만났어? 혹시 그립다거나 그런 거야?"

"이상해졌다니.. 엄마가 학교 앞에 찾아와서 만나게 된 거야."

"찾아왔다고? 그 여자는 이상한 사람이야. 사장님의 그 크신 포부조차 이해 못하고.. 자신의 자리가 얼마나 복받은 자리라는 것도 모르고.. 그 자리를 그렇게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그 자리를 그렇게 쉽게 박차고 나가는 거야"

"세리자와.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마자키에게 듣기로 쇼우 너에게 용돈까지 구걸해서 갔다며? 역시 쇼우는 착하구나.. 불쌍한 사람에게 적선도 할 줄 알고.. 역시 좋은 사장이 될 수 있겠어.. 사장님이 나를 구해주셨듯이 쇼우도 아마 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마음씨 따스한 사장이 될 수 있을 거야. 쇼우가 말한 대로 나는 쇼우의 부모가 될 수는 없지만 이미 나에게 있어서 쇼우는 내가 키워야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자식이니 나도 사랑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 쇼우도 그런 여자 따위 생각도 하지 말고.. 시마자키가 그 여자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하던 전혀 화날 필요 없어. 그 여자는 이미 부모의 자격을 박탈당한 거야" 


세리자와의 말은 틀린 말은 없다. 실제로 내가 왜 시마자키의 같잖은 도발에 이렇게 열받아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납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리자와는 내 두 손을 꼭 잡으면서, 쇼우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으면서 살아야 해... 하며 두 눈 가득히 알 수 없는 눈물을 가득 보이며 눈시울을 붉히었다.  나는 이상하게 소름이 돋아 그가 잡고 있는 손을 빼내려 했지만 세리자와의 커다란 손은 내 손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리츠와의 사이가 서먹해진 것에 대해서 나는 그 어떤 해결책도 마련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리츠가 고집을 꺾고 나를 이해해주는 것이었던 반면, 리츠는 내가 자신을 꼭 아버지의 병동에 데려가 주길 바랐던 것이다. 리츠는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으니 나 하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지내기엔 아무런 영향이 없었겠지만 리츠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수업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리츠와 보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지나가는 리츠를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엔 없었다.


물론, 다가갈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결론을 지을 수 있을 만한 대책도 없이 무작정 다가가서 이야기하기엔 너무나도 터무니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근처만 맴돌다가 한숨을 쉬고 집에 돌아오는 것을 반복할 수 밖엔 없었다. 리츠가 문자로 '오늘 학교 끝나고 옥상에서 잠깐 보자'라고 문자를 보내오기 전까지.


그 문자를 발견하고 나서 왜인지 모를 두려움과 함께 파란 하늘이 휑하게 뚫린 옥상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새삼스럽게 옥상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며 평소에는 있지도 않은 고소공포증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어서 스멀스멀 구역질이 올라왔다. 리츠는 이미 옥상에 와서는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열리는 옥상 문의 소음을 신호로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죄지은 듯이 리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리츠의 시선에서 도망쳐 고개를 푹 숙였을 뿐이다. 리츠는 내 앞에 겁 없이 저벅저벅 다가와서는 내 턱을 치켜들어 자신을 똑바로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왜 피해? 똑바로 봐야지 스즈키"


하고 평소보다 당돌하게 나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의 리츠가 무섭게만 느껴졌다. 내 눈빛을 느꼈는지 리츠는 조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조금은 슬픈 듯이 말했다.


"스즈키, 나는 화해를 하고 싶어서 너를 이곳으로 부른 거야. 그런데 지금 너의 그런 태도는 나와 이야기조차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느껴지네"

"아.. 아냐...! 그런 게 아니라..."

"... 내가 지나치게 너에게 선택을 강요했다면 미안해"

"아... 아니 나야말로..."

"아버지에게 그런 문제로 부탁하기가 힘들다면 하지 않아도 좋아. 그런 건 됐고 혹시 가능하다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견학 정도는 하고 싶은데 그것도 불가능할까? 뭐.. 지금 당장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다음에 대답해줘도 괜찮아"


리츠는 자상한 말투로 말하고는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우물쭈물하는 나의 손을 잡고서 내려가자! 하고 평소처럼 다정하게 말했다. 맞잡은 손이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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