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우리츠] 햄스터 02

2017. 3. 26. 17:5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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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투명인간처럼 다니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귀는 있었기에 아이들의 말소리는 조금 듣고 있었다. 내 앞에 앉는 여자아이들의 시끄러운 수다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들의 고민은 항상 연애 이야기였다. 고백을 할지 말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만 수백 번 들었다. 오늘 그 애랑 눈이 마주쳤는데 웃어주더라, 웃어준 거 보면 그래도 나를 조금은 좋아하는 게 아닐까? 카게야마군은 누구한테나 그렇게 웃어주던데? 아냐아냐, 혹시 몰라!... 얼마 전에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 줬더니 고맙다고 했단 말이야! 에이, 그거 누구한테나 그러는 거 아냐? 카게야마군이라면.. 잘은 모르겠지만 나한테 웃으면서 말해줬단 말이야!
 
그녀들이 말하는 카게야마 리츠는 옆 반의 조용한 학생부였다. 여자들이 이렇게 떠들썩하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깔끔한 미소년 타입의 학생이었다. 복도를 오가다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을 뿐, 직접적으로 말을 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타입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나도 그런 '모두'라는 그룹에 평범하게 속해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두에게 자상하면서도 그 이상은 다가오지 못하도록 경계를 확실하게 치고 있어서 모두가 섣불리 다가가지는 못했다.

등교를 할 때에 한 번씩 마주친 적이 있다. 학생부인 그가 아침에 선생님을 도와서 서 있는 날이면 반의 여자아이들은 모두 바짝 긴장해서는 조금 상기된 표정을 하고 교실에 뛰어 들어와서 엄청난 일이라도 생긴 듯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떡해 어떡해 오늘 나 어때? 상태 별로지 않아? 카게야마군이 날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해! 흠 내가 보기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항상 저 상태일 텐데.. 뭐, 여튼 좋겠다, 잘생긴 새끼는 저렇게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한 학급 여자아이들의 이야기 소재를 간단히 바꿔버리는구나.

다음날은 일부러 지각을 했다. 전날 여자아이들의 시끄러운 수다를 듣고서 그날도 카게야마 리츠가 지각을 잡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각을 하면 그래도 그가 내 이름을 물어봐 주지 않을까? 그럼 서로 한마디라도 나누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각을 했는데, 그는 내 얼굴을 보고는 홱 지나쳤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나는 그냥 통과였다.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에 나는 그에게 조금 화난 듯이 다가가서 말했다.

"저기, 나도 지각인데"
"...스즈키 쇼우지? 이름은 알고 있어. 다음부터 지각하지 마"

냉정하지만 조금은 친절했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 딱 한마디 하고는 뒤돌아서 갔다. 선생님이 지각한 사람들에게 주는 벌을 나는 받지 않았다. 나 혼자서 교실로 돌아오면서 우리 반의 호들갑 떠는 여자애들처럼 나 역시 조금 들떠서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하고 기분 좋은 얼떨떨함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학생부에게도 선생님들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을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이내 시무룩해져서는 조용히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내 존재감을 각인시켜주고 싶었는지 그가 교문 앞에 설 때마다 지각을 했다. 그래도 그는 항상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음부터 지각하지 마. 표정도 늘 똑같았다. 조금은 기분이 좋지는 않은? 여유를 띄고 있는 기분 나쁠 정도로 은은한 미소가.


"쇼우군, 학교는 어때?"

세리자와는 돌아와서 가방을 내려놓는 나에게 물었다.

"음.. 학교.. 뭐... 똑같지 뭐"
"다행이다. 혹시나 또 싸우고 오거나 할까 봐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적당히 친해야 싸울 일도 있다는 걸 전직 히키코모리인 세리자와는 당연하게도 모르고 있다.

"네가 왜?"
"사장님이 걱정하시잖아"
"그 새끼가 걱정은 무슨"
"아버지에게 그런 말버릇을 쓰는 게 아냐! 게다가 사장님이 얼마나 걱정하시는데"

세리자와는 내 앞에 와서는 친구는 누가 있는지, 뭐 관심 있는 여자아이는 없는지 등등 이상한 이야기를 물었다.

"친구가 되고 싶은 녀석은 있어"
"정말? 어떤 아이야?"
"음.. 조금 냉정해 보이는..."
"쇼우군의 마음에 들었다면 분명히 좋은 아이겠지. 궁금하다"
"..."
"그래서, 말은 해봤니?"
"아니 ..말도 못해봤어"
"그럼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면 되겠네"
"너 같은 히키코모리에게 그런 말 들을 이유 없어"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것처럼.."

세리자와는 또다시 나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면서, 마치 종교에 미쳐버린 지독한 신자처럼 눈을 빛내며 말했다. 사장님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내 방에 전혀 겁 없이 방 문을 열고 들어오셨었어.. 그리고는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이제 안심하라며.. 밖엔 비가 온다면서 우산을 내미시고는..... 아무도 믿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나를 안심하게 해주셨지.. 그때 봤던 사장님은 마치.....

"내 방에서 나가"

나는 그 덩치를 낑낑대며 밖으로 밀어내고는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하굣길에 그를 기다렸다. 리츠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절대 세리자와가 말을 걸어보라고 조언한 것을 들은 것은 아니다. 세리자와가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할 계획이었다. 학생회 회의를 마치고 나서 정문을 나서는 그 녀석을 간신히 용기를 내어 붙잡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에 나도 모르게 완전히 쫄아버린 찌질이처럼, 저기.. 하고 말을 걸었다.
 
"그... 그니까 너랑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 시간 좀 내 줄 수 있을까?"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생각보다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았다. 내가 느끼기로는 나의 이상한 행동들(허구한 날 지각에 잡혀서 풀려난다거나 하는) 때문에 리츠 본인도 내가 자신에게 언젠가는 이렇게 다가올 거라 예상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카페에서 시킨 음료가 앞에 놓이고, 앞의 이 녀석이 잠자코 내 말을 기다리는 그 순간이 왜 이렇게 떨렸는지 모른다. 이상하게 초조해져서 실수로 주문해버린 맛없어 보이는 뜨거운 음료 컵을 만지작 만지작거리다가, 괜히 뒷머리를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그... 그니까 별 건 아니고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해. 들어줄게"
"음... 그니까.. 그냥 너랑 조금 치.. 친하게..."
"... 친하게?"
"... 어... 밥도 같이 먹고.. 사이좋게.. 지.. 지내고 싶은..."
"내가 너랑?"
"..... 응... 아, 조.. .조금 뜬금없지? 하하..."
"왜?"

어째서 자신이 나와 그렇게 지내야 하냐는 질문엔 마땅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정신이 나갔는지 이상한 대답을 했다.

"나 초능력자거든"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내 앞에 이 성실한 학생부 학생은 분명히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니, 그니까 방금 말은.."
"..... 저.... 정말?" 

"...응?"

"정말 초능력자야?"


방금 전까지 조금 까칠한 모습을 하고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 전혀 관심 없다는 태도로 앉아 있던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내 말에 급 화색을 띠며 나에게 적극적으로 물었다. 정말이야? 초능력자? 그럼 숟가락을 구부릴 수 있어? 한 개 말고 여러 개도 구부릴 수 있어? 물건을 띄울 수도 있어? 철봉을 구부린다거나 강아지를 띄우거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허공으로 띄울 수 있어? 늘 냉정한 이미지의 이 녀석이 이렇게 눈을 빛내면서 질문을 하는 건 학교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이야? 보여줄 수 있을까?.. 신기하다..! 우리 형도 초능력자야! 초능력자가 또 있었다니.. 너 신기하다.. 나도 초능력에 관심이 많아. 나도 가르쳐 주면 안 될까?"

초능력을 가르친다니. 아버지가 데려갔었던 그 이상한 병동 같은 곳이 잠깐 떠오르긴 했지만 이렇게 기대에 찬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알겠다고 대답해버렸다. 진짜지? 고마워! 하고 내 손을 덥석 잡고서는 감격에 가득 차서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도 늘어놓았다. 내 앞에서 활달해진 그의 태도에 나도 기분이 좋아서 잠자코 들었다.

"초능력자인 우리 형은.. 본인의 힘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자신이 초능력자라는 것을 싫어해. 쓸모없다고 하고.. 하지만 그런 힘이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거야...! 나는 지금까지 쭉 형을 존경하고 동경하고 있어. 저기, 스즈키, 나.. 나도... 될 수 있을까? 형과 같은 초능력자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될 수 있어. 내가 있잖아"

나는 웃으면서 내 앞에 있는 숟가락을 시험 삼아 휘어 보였다. 광택을 내며 얌전히 놓여있던 숟가락이 힘없이 허공에서 휘는 것을 보며 그는 나를 더욱 빛내며 쳐다보았다. 리츠가 말하는 리츠의 형과 같이 나 또한 아버지가 집착하는 초능력이라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진 않았지만 관심 있는 상대의 환심을 이렇게 간단히 산 것에 대해서는 편리하다고 생각하였다.

"초능력자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영향은 받고 있을 거야. 게다가 네 형이 초능력자라면 너도 약간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잠재되어 있을지도 몰라"
"... 정말 그럴까?"
"뭐.. 유전적인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 우리 아버지도 초능력자야. 나도 어릴 적부터 쓸 수 있었고.. 엄마는 초능력자가 아니었지만"
"그럼 나도 초능력자가 될 수 있을지 너희 아버지에게도 한 번 물어봐 주면 안 될까? 혹시 모르잖아! 너희 아버지는 알고 계실 수도"
"... 아버지? 아.. 뭐.. 그래 물어볼게"

그 이후로 내가 원하는 대로 리츠와 나는 친하게 지냈다. 반은 달랐지만 밥도 같이 먹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도 함께 했다. 주 대화는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계속 지켜봐도 안타깝게 그는 초능력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었다. 이런 말을 할 타이밍도 놓쳤을뿐더러, 괜히 이런 이야기를 해서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한 희망만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리츠는 초능력에 대한 자신의 소견이 아니면 형 이야기를 주로 했고 나는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거나 세리자와를 삼촌이라고 칭하면서 세리자와 이야기만을 조금 하는 편이었다.


리츠의 형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리츠의 이야기만으로 나는 그의 형에게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리츠가 형의 이야기를 할 때는 세리자와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할 때에 느껴지는 약간의 병적인 신앙심이 희미하게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봤을 때 리츠가 이런 성격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항상 꺅꺅거리는 여자아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연히 지나가다가 보는 그의 이미지는 냉정하고 침착한 이미지였기에 이런 그의 모습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런 모습을 알고 있는 게 나뿐일 거라고 생각하면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네 형은 어디 학교에 다녀?"
"우리 옆 학교 있잖아. 작은.. 그곳에 다녀"
".. 응? 그 학교는..."
"응 너도 아는구나?"

리츠는 별생각 없는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지금껏 리츠의 이야기를 들은 나로서는 리츠의 형은 리츠와 닮아서 얼굴도 잘생기고(물론 리츠는 자신과 형은 전혀 닮지 않았고, 형은 앳된 외모에 자신보다 순한 인상이라고 말했었지만) 리츠와 비슷하게 조금은 냉랭한 분위기를 풍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도 잘하는 데다가 초능력도 쓰는, 그래서 초능력 같은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며 비웃는 엄청난 포스의 범접하지 못하는 존재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형이 다니고 있다는 그 학교는 성적이 최하위권의 학생들만이 들어가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모두가 기피하는 학교. 뭐, 나 역시 정말로 성적만을 두고 말한다면 리츠의 형과 함께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리츠에게 혹시나 형의 사진이 있냐고 물었다. 리츠는 웃으면서 사진은 많지만 모두 집에 있다고 말했다. 리츠에게 너의 형이 궁금하다고 말하자, 다시 웃으면서 형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하고 다시금 형의 대단함에 대해서 열거하는 것이었다. 우리 형은 어릴적 나를 지켜주기도 했고.. 화가 났을 때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지만 나에 한정해서는 정말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야. 나는 우리 형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어...! 나는 세리자와와 겹쳐 보이는 리츠를 잠시 못마땅한듯이 바라보다가, 그렇구나 다음에 리츠의 형을 꼭 한번 보고 싶네. 하고 비꼬듯이 말했다. 비꼬는 듯한 말투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리츠는 웃으면서 너도 아마 우리 형을 보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버릴껄? 하고 웃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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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는 아버지와 세리자와, 그리고 다른 오초 멤버들과 함께 했다. 엄청 어릴 적 외에는 딱히 와본 적이 없지만 여전히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세리자와가 나에게도 같이 가자면서 잡아끌었기도 했고, 리츠의 질문이 나도 조금은 궁금해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용한 집에서 둘이 이야기를 별로 해본 적도 없어서 여럿이서 그나마 조금씩 이야기가 오갈 때에 슬쩍 끼어들어서 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식사에 참석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많지 않았다. 본인이 먹을 음식은 세리자와가 알아서 주문을 했고 오초에서 그나마 말이 많은 시마자키나 하토리가 간간이 저들끼리 이야기를 했다.

"그나저나 쇼우군은 여기에 웬일이래? 원래 절대 안 오잖아?"

숨을 죽이고 있는 나에게 시마자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 너무 어릴 적에 와서 여기가 이렇게 비싼 식당인지 몰랐어. 친구들 통해서 들으니까 되게 비싼 곳이더라. 그래서 오랜만에 이런 비싼 곳에서 밥이나 먹을까 해서. 집에서 대충 해 먹는 건 항상 비슷하잖아"
"이런 식당을 아는 친구가 있단 말이야?"

시마자키는 눈이 안 보이는 녀석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목소리 톤 만으로도 내 감정을 귀신같이 잘 체크했다. 시마자키는 약간 당황했을 내 표정을 예상한 듯이 웃다가 다시 말했다.

"비싼 거 먹으려고 이런 곳에 왔다는 핑계는 좀 흔하네. 차라리 어린애답게 오늘은 아빠랑 같이 밥 먹고 싶었어요! 이런 거 하지그래?"
"... 그 입 좀 닥칠래?"

내 말에 시마자키는 뭐가 우스운지 키득키득 웃었다. 시마자키는 항상 말을 저런 식으로 조금 짜증을 유발하는 말투다. 재수 없는 새끼.
곧 고급스러운 하얀 접시에 담겨 두껍게 썰려 몇 조각 담기지도 않은 회가 몇 접시 등장했다. 웨이터들은 항상 한 손엔 위생상태를 증명해 보이듯이 새하얀 천을 받들고서 마치 식탁에 소리라도 나게 접시를 두면 큰일이라도 나듯이 조심스레 접시를 내려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 식당은 점심, 저녁 이렇게 하루에 10팀도 받지 않는 고급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점이 커다란 장점이었다.

"세리자와가 맛있는 거 안 해주나 봐? 우리한텐 매일같이 와서 오늘 아침은 이거 해줬네 저거 해줬네, 하면서 자랑스러워하면서 이야기하던데"
"... 아, 뭐... 맛있지. 계란 프라이가 맛없는 거 봤어?"

내 말에 오초 모두 소리를 죽여서 웃어댔다. 옆에서 아버지도 조금 우습다는 듯이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버지의 표정을 잠시 살피던 나는 아버지에게 묻는 게 아닌 척, 오초에게 물었다.

"근데, 나 좀 궁금한 거 있는데 초능력 실험 말이야. 혹시.. 성공 한 적 있어...?"
"이야, 이제야 조금 사장님의 뒤를 이을 생각이 들었구나 쇼우!"

내 질문에 가장 감격을 하며 좋아하는 사람은 세리자와였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물론 우리와 함께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지. 전 세계를 통틀어도 초능력 실험에서 성공한 곳은 우리 '손톱'밖에 없다고! 전에 왔던 본부에서 계속에서 초능력자들을 만들어내고 있어. 다음에 또 보러 올래? 전보다 훨씬 깔끔하고 좋아졌어! 세리자와가 나에게 장황한 설명을 하는 동안 나는 슬쩍 아버지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아버지도 나를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관심이 생겼는지 의문이구나"
"... 관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궁금해서..."

그리고 대화는 끝이었다.
어쨌든 나는 아버지가 인간의 후천적인 초능력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리츠도 아버지의 병동에 가면 초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전에 그곳에서 봤던 그 이상한 광경들은 도대체 뭐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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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례가 있데. 후천적인 초능력 개발에 대한..! 어때 굉장하지?"

요즘 들어 계속 나와 다니면서 초능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큰 기대에 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리츠는 약간 풀이 죽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고민 끝에 리츠에게 조금이라도 활력을 불어넣어 줄 생각으로 어제 들은 내용에 대해서 일부러 더 활기차게 말했다.

".. 정말이야?"
"그럼!"
"어딘데? 그곳이"
"..."

그것까지는 말할 수가 없었다. 오초가 칭한 그 '본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아직 나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했을뿐더러, 거기에 있던 이상해 보이는 상태의 사람들 때문에 초능력을 어떻게 발현시키는 지도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의 침묵 후에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지만 곧 알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별것 아닌 곳에서 발현했다니까 생각보다 간단할지도 몰라. 초능력의 발현 말이야. 게다가 너 같은 경우는 초능력자인 형도 있으니 더 쉬울 거야"
"정말 쉬울까?"

"... 그..그럼 당연하지!"

"그래... 그럼 우리 뭐라도 해볼까?"
"..? 뭘 해보고 싶은데?"
"예를 들면.. 영화나, 만화에서처럼 키스라던가"
"...응?"
"왜 기적처럼 일어나는 거 있잖아. 그런 거...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순진하다 너"
"가끔은 가장 순진한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잖아"

키스? 리츠가 초능력을 가지기 위해서 뭐라도 해보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어도 난 전부터 줄곧 리츠와 키스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리츠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 올줄은 몰랐기 때문에 나로써는 잘됐다 싶은 마음만이 훨씬 컸던 것이다. 해볼까? 하고 조심스럽게 떠보는 말을 꺼낼까 말까 하며 답지 않게 고민하는 나, 그리고 안전을 위해 세워져 있는 철조망 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리츠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한참 말이 없었다.

"리츠, 초능력을 가지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
"음... 글쎄.. 하고 싶은 건... 딱히..."
"그런 것도 없는데 왜 초능력이 있었으면 하는 거야?"
"..."
"내가 봤을 때 이미 너는 인기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잖아"
"스즈키 너, 사람들이 왜 꽃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
"예쁘니까?"
"왜 예쁜데?"
"음.. 어려운데.. 그냥 봤을 때 예쁘니까..."
"그런 이유야 나도"

리츠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야 나도. 하고 조금 씁쓸하게 웃어 보이던 리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나에게 가만히 다가와서는 입을 맞추었다. 바로 입술을 떼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은 당황스러움 밖에는 없었지만 직후 얼굴에 잔뜩 몰리는 열이 지금 내 얼굴이 얼마나 가관인지를 알려주었다.

"아. 역시 이래도 아무 효과는 없네."

놀라움에 당황하는 나와는 다르게 한숨을 내쉬며 실망부터 하는 리츠를 보면서 나는 돌아가려는 리츠의 어깨를 잡고서 말했다.

"그건 키스가 아니니까"

나는 계속하자는 듯이 말했고 리츠도 싫지 않다는 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서서히 포개지는 우리 둘의 입술, 그리고 눈을 감는 찰나에 보이는 떨리는 리츠의 속눈썹과 검은 눈동자가... 장밋빛 태양의 빛이 침투해 빨간 빛이 파도처럼 울렁이는 그 눈동자가 너무나 예뻐서. 잔잔히 머리카락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바람도, 서투르게 서로의 입안을 데우는 우리도.
내가 초능력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리츠와 가깝게 지낼 일은 없었을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다시금 초능력이 있는 나의 천부적인 속성에 감사할 수밖에..

자연스럽게 혀로 핥고 서로를 침범해가는 우리는 조금 이상하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내가 이상해져 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 때의 나는 정말로 순수하게 리츠의 모든 것을 빨아먹고 싶어했다. 하지만 리츠는 나의 초능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만큼 나를 빨아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나도 리츠도 서로 좋아했다. 나는 리츠의 이런 면을 자세히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관계였다는 것을 왜 이 때는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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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를 껴안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내 옷에 묻은 희미한 체취가 푹신한 침대와 더불어 나를 기쁘게 하였다. 리츠 냄새는 참 좋다. 재수 없는 시마자키가 뿌리는 스킨 향 향수처럼 독하지도 인위적이지도 않고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미네기시에게서 나는 소독약 냄새처럼 화학적이지도 않고.. 시바타에게 나는 땀 냄새처럼 지독하지도 않고 세리자와에게서 나는 아저씨 냄새처럼 거부감이 드는 것도 아니다. 같이 있으면 한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그래서 나도 모르게 편하다, 하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창문 틀에 앉아서 마치 본인이 이 커다란 집의 주인이라도 된 듯이 여유 있게 혼자서 돌아다니던 고양이는 이곳저곳을 배회하다가 마지막 지점으로 내 방을 선택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내 방에 들어와서는 동그란 솜뭉치 같은 발로 펄쩍 뛰어서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옆으로 폴짝 뛰어올라왔다. 따뜻한 곳을 찾아왔는지 내 옆에 와서는 배를 깔고 앉아서는 꼬리로 나를 가볍게 톡톡 건들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다는 듯이 눈을 감는다. 그러고 보니 전에 리츠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자 의외라면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질문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 응? 고양이..... 이름..?"
"...?"

내 반응에 리츠도 함께 당황해했다.

"뭐야? 설마 이름이 없는 거야? 그럼 도대체 뭐라고 불러?"
"음..... 딱히 부를 일이.."
"보통은 키우려고 데려오자마자 이름부터 생각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 엄마는 그 고양이를 뭐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그냥 고양이라고 불러 나는"
"그럼 이름이 고양이인 거네? 특이하다 마치 사람의 이름이 사람인 것과 똑같은 거잖아?"

리츠는 뭐가 웃긴지 우스워했고 나는 이상하게 멍한 기분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나도 함께 웃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웃고 있는 리츠와 함께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어 보이기만 하였다.

벌떡 일어서서는 13마리가 담겨있는 햄스터 어항에 가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귀여운 햄스터들은 여전히 보드라운 허연 등을 동그랗게 말고서 조금씩 숨을 뱉으며 자고 있었다.
이 녀석들에게도 이름이 필요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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