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ing B











그의 누나는 꽤나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다. 거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의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여러 곳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곳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하얀 환자복을 입고서, 병문안을 가면 힘 없이 웃어주던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고 가슴이 아파온다. 힘 없는 눈동자 사이로 죽음이라는 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로부터 듣는 말은 항상 절망적인 이야기. 의사는 거의 포기하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왔고 그 역시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했다. 탄식과 한숨에 가까운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서 자리를 떴다. 


자존심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히지카타 역시 옆에서 슬퍼했지만 오키타와 슬픔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히지카타로써는 본인이 한번 거절한 여자를 앞서서 걱정하는 것이 조금은 오지랖이라고 생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키타는 히지카타가 자신의 누나를 생각한다고는 조금의 생각도 하지 못 했다. 그렇게 친하게 지냈다고 한들 자신이 차버린 여자는 관심도 없다 이거구나. 가끔 위로해주려는 듯이 한 번씩 눈길을 던지는 히지카타를 느끼기도 했으나, 저 혼자의 오해라고 받아들이고는 혼자서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정말 예상도 하지 못할, 상상도 못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기적이 그에게 일어났다. 싸구려 삼류 드라마 따위나, 아이들이 보는 교육적인 동화책에서 있을 법한 그런 기적. 착한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그런 어이없는 결말 만큼이나 허무한 그런. 

절대로 나을 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장담하던 그 의사가 갑자기 병이 호전되었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에게 말했다. 병이 호전되었다니. 어째서요? 절대로 방법이 없다고 해놓고는 무슨 일이죠? 기쁜 마음 반절, 그리고 불안한 마음 반을 가지고서 물었다. 의사도 모른다고 말했고 꼼꼼한 검사를 해봐도 정말로 눈에 보이게 확 좋아진 증세에 그는 행복했다. 미츠바도 그 결과를 보여주듯이 다시 혈색이 좋아졌고 어느새 퇴원을 해도 좋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약은 꾸준히 먹어야 했고, 폐병에 의한 약간의 후유증으로 가끔 기침을 해댔지만 이미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게 된 제 누이를 보고 오키타는 한편으로 안심하면서도 혹시나 언제라도 저를 떠날까 봐 무서워져, 누이에게 말했다.


"누님, 그냥 에도로 올라오세요. 저 너무 걱정이 되서..." 


"에도? 아.. 그건 생각을 좀...."


그녀가 망설이는 이유를 그는 알았다. 히지카타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새끼. 그렇게 아프다는데도 문병 한 번 오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물론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제 누이를 받아 주지 않았다는 것도. 하지만 사랑에 아파하는 누님을 보면 그래도, 그래도 그가 마냥 미워 그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누님도 아파하겠지.


계속 생각해볼게, 생각해볼게 하고 미루는 미츠바의 대답에 답답해, 그는 히지카타에게 부탁을 하기로 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이런 부탁을 자신이 한다는 것도, 그리고 특히나 그 녀석에게 누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미치게 자존심이 상해서 수차례 다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에 그를 찾았다.


조금은 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방문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고민 끝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마디 내뱉었다. 


"히지카타씨. 할 이야기가 있어요"


히지카타는 여전히 차갑고 냉정한 눈빛을 하고 있었고 그 눈빛에 질세라 오키타 역시 평소보다 더욱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들어오라고 말하는 그, 그리고 그 공간의 분위기가 무겁다. 수차례 고민을 했다고 한들 그의 자존심에 쉽사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자신이 그에게 부탁을 하러 왔다는 것부터가 정말 꺼림칙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를 알기에 그가 거절할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에겐 한줄기의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리하기에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입을 떼었다.


"...누나가 병에서 나았어요"


"그래?.. 확실한 거야?"


무뚝뚝하게 그랬구나. 정도의 덤덤한 반응을 예상했건만 그는 눈에 띄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었고 그의 반응에 오키타도 약간은 놀랐다. 


"네.. 뭐.. 일단은 그래서 퇴원도 했고.. 아예 완벽하게 나은 건 아니지만.."


"그거 정말.. 다행이네.."


그 말을 더듬으면서 말하고서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얼핏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 오키타는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말했다.


"... 히지카타씨. 누님께 한 번만 연락이라도 해주시면 안 됩니까?"


"무슨 말이냐 그거"


"..... 나 역시 네가 진짜 재수 없고 마음에 안 드는데.. 걱정이 되서 에도에 올라오라고 해도 싫데요. 그 이유가 뭐겠어요? 다 당신 때문...."


"미안. 나에게 그럴 의무 없어"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연락 한번 하는 게 그렇게 힘들까? 게다가 병이 호전되었다니까 그렇게 안심한 듯한 미소도 보였으면서. 오키타는 그를 한참 쳐다보다가 말했다. 


"역시 너는 재수 없는 새끼네"


그리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누님은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저런 새끼를 좋아한답니까? 누님처럼 예쁜 여자가 다가오면 어떤 남자던 다 좋아할 텐데. 세상에 저 새끼보다 잘난 새끼 한 명이 없겠어요?











***











방을 나간 오키타를 한참 보던 히지카타는 술김에 실수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입을 맞췄던 일이 슬그머니 생각난다. 사랑했다. 감추려던 그 억압에 있어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고 돌이켜보면 죄악이었다. 실수였다면서 머뭇거리면서 어리숙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다 알고 있다는 식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에도에 갈 때 자신도 데려가 달라면서 서늘한 가을밤의 낙엽이 쓸리는 그 바람 속에서 말했다. 그녀는 아마도 그 입맞춤으로 감정을 확신하고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단호한 거절에도 그녀는 생각보다 덤덤했고 떠나는 마지막까지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참 고마웠다. 


오키타는 미츠바의 마음을 거절한 것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픈 그녀의 병문안도 가지 않았다는 것에서 엄청난 살기를 띄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남몰래 병원에 찾아간 적은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못 했다. 계속 그 앞에서 서성이다가 사들고 왔던 하얀 꽃다발을 병실 앞에 슬쩍 두고 돌아왔었다. 그것을 미츠바가 자신이 두고 갔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히지카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라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죄를 지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누님에게 연락이라도 한 번 해주면 안 되겠냐는 그 녀석의 말이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오키타는 제 앞에서 미츠바의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어떻게 하면 자신과 미츠바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이야기를 할까 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우습다. 


키스, 그리고 병원에 찾아갔다가도 그냥 돌아왔던 일. 차마 전해주지 못하고 두고 왔던 꽃다발.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면 더 이상의 접근은 안된다고 다 잡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연락을 취하고 싶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녀석만큼은 아니겠지만 역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고 병이 나은 그녀의 모습을 한 번쯤 더 보고 싶기도 했기에.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마음을 다시 다 잡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토시로씨. 저예요. 잘 지내세요?]


미츠바였다. 놀라서 잠깐 움찔하는 순간 핸드폰이 한번 더 울렸다.


[전에 꽃 두고 가신 거 당신이죠?]


그 연락에 다시 한번 이유 모를 한숨을 푹 쉬고는 답장을 했다.


[퇴원했다면서? 건강해졌다고 들었어. 다행이네]


[다행?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당연하지. 이제 소고 녀석도 조금 마음 편하게 있겠어]


[그러겠죠? 소고 많이 챙겨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어]


[나, 에도에 가도 돼요?]


어째서 이런 것을 나에게 묻는 것일까? 소고 녀석이 했던 말이구나 하는 생각에 멈칫했다가 답을 했다.

 

[왜 그걸 나에게 묻는 거야? 상관없잖아]


[상관이 있으니까 묻는 거죠]


[말이 이상한데? 내가 오지 말라고 하면 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네]


[싫으시다고 하면 안 갈 거예요]


[싫을 이유야 없지]


[에도에 가면 만나주실 거예요?]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만나도 될까?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녀에게 나쁜 사람이지만.. 혹시나 나중에 일어날 일들로 인해서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 하지만 그런 온갖 생각들을 이겨낼 정도로 그녀가 보고 싶었나 보다.


[그래. 만나자]






에도로 떠나기 전에 봤었고 중간에 한 번 더 만날 일이 있었지만 그 이후가 처음이었다. 하얀 백합처럼 웃으며 나타난 그녀는 몇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다. 모습이 보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피우던 담배를 서둘러 버리고서는 오랜만에 싸울때의 긴장감이 아닌 따스한 설렘이 그를 새삼스레 떨게 만들었다. 


"여기 와보셨어요? 저는 여기 소고와 함께 와봤어요"


어딜 가야 할 지도 몰라 망설이는 그에게 그녀가 안내한 곳은 그와 오키타도 자주 다니던 카페였다. 항상 사람이 많고 시끌시끌 했었는데 그 날은 도와주는 것인지 새삼 사람이 없이 고요했다.


"뭐.. 나도.. 소고녀석하고 왔었어"


"여전히 제멋대로 굴고 있는 것 같던데. 토시로씨 말도 여전히 잘 안듣고 있죠?"


"아냐, 잘 들어"


"거짓말"


입을 살짝 가리고서 웃는 모습이 귀여웠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하나도 변한게 없네"


"변한게 없다뇨? 머리 잘랐잖아요. 전에는 긴머리였는데, 기억도 못하는거죠?"


"아, 아니야 기억하고 있어"


여자는 시간이 흘렀어도 하나도 변한게 없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역효과가 나버렸다. 히지카타는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자 미츠바가 말했다.


"머리, 다시 기를까요?"


"왜?"


"기른게 더 나았으려나 싶어서"


"아냐, 둘 다 예뻐"


무심코 이야기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뱉은 진심에 히지카타도, 미츠바도 둘다 순간 얼어서 잠시 말이 없었다. 하얀 피부가 살짝 붉게 물드는 미츠바를 보고 히지카타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둘은 살짝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고는 부끄러운지 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드문드문 들기야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히지카타는 다시 느끼는 그 설레임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살며시 지었다.



오키타는 그 둘이 만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누나가 에도로 와야겠다고 다짐을 한 것은 순전히 본인이 오라고 설득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키타는 그 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시 마음을 확인해서 둘의 관계가 약간은 변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이상하게 에도에 온 이후 행복해 하는 미츠바의 모습이 오키타에게도 훤히 보여서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저 건강이 좋아졌고, 자신이 옆에 있다는 것에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여전히 히지카타를 싫어하기는 했지만 미츠바와 히지카타가 그저 전처럼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된 거라고 생각을 했기에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는 미츠바를 보고 그저 마음의 정리를 한 줄로만 알았다. 


미츠바는 둔영에 종종 찾아왔고 그럴때마다 사고를 치던 오키타는 바로 수습하고서는 누님, 오셨어요? 하고 정 반대의 행동을 보였다. 그래서 둔영의 대원들은 미츠바에게 더 자주 찾아와주면 안되느냐고 부탁하는 일도 많았다.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점은 히지카타가 담배를 줄였다는 점이었는데, 그저 요즘에 금연에 대한 주변의 권유도 많았고 히지카타 본인도 담배 이제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고 입버릇 처럼 말했던적이야 많았기 때문에 이번엔 정말로 담배를 그만두려는가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미츠바는 히지카타와 데이트를 할때 오키타를 종종 같이 데리고 갔다. 히지카타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물론 둘이 즐기는 날도 있겠지만 영화를 본다거나 밥을 먹을때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면서 셋이서 약속을 잡는 경우도 많았다. 누나의 부탁이면 거절 못하는 그였기 때문에 당연히 같이 보자고 하면 히지카타가 싫어서 싫더라도 네! 누님 하고 깎듯하게 대답하곤 했다. 사실 그 약속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혹여나 미츠바가 마음을 숨기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더불어 받아주지 않는 히지카타에게 다시 고백을 하고 상처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다. 


"누님, 히지카타... 말이에요"


"응?"


"이제 아무렇지 않은 거에요? 저는 누님이 그 녀석과 이야기 하는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후훗 왜?"


"자기는 아무렇지 않다 이거잖아요 개 같은새끼가.. "


".....나도 아무렇지 않은데?"


미츠바는 히지카타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가 조금은 두려워서 둘이 만난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비밀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말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영화를 볼때나 밥을 먹을 때나, 미츠바와 이야기 한마디만 하면 으르렁대면서 날을 새우고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그를 보면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누나에게 한번만 더 상처를 주면 널 죽여버릴거야"


"....뭐?"


틈틈히 본인을 찾아와서는 한마디씩 살기를 띄면서 하는 말. 히지카타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웃어? 이새끼야 웃어? 나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열 받아있거든? 오키타는 씩씩대면서 말했고 그런 오키타를 보며 히지카타는 완전히 황당한 표정으로 '네네, 어련하시겠습니까' 하고는 머리를 한대 쥐어박고는 했다. 











***












"대장, 괜찮으세요? 대장"


멀리서 울리는 대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다가오더니 크게 울렸다. 그 말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차 안이었고, 방금 전까지 앞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던 두 대원들은 걱정이 되었는지 제 옆에 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 어어..."


"많이 안 좋으시면 그냥 쉬세요. 부장님은 왠지 믿지 않으실 것 같긴 한데.. 그럼 누님께 데려다 드릴까요?"


".. 누나?"


누나는 죽었다. 하지만 방금 갑자기 비집고 들어온 기억을 보면 누나는 죽지 않았고, 둔영에서 멀지 않은 작은 집에 살고 있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의심이 들기도 했고,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서 그는 그대로 제 옆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들을 냅다 뿌리치고서 본인의 기억 속의 그 집을 찾아가기 위해서 뛰었다. 멀지 않은 곳이어서 뛰어도 충분한 거리였다. 10분 정도 뛰었고 그는 본능적으로 그 처음 보는 집의 위치를 알았다. 누가 알려준다거나, 건물의 외관도 본 적이 없지만 본 적이 있었다. 세모난 갈색 지붕, 그리고 작은 잔디밭. 그리고 빨간색 우체통. 아. 누나는 우체통이 빨간 색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흰색으로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하고 생각했다가 부슈에 있는 집에는 우체통 따위를 달기 위해서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마침 문이 열리고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소고! 지금 순찰시간 아니니? 또 땡땡이치는 거야?"


조곤조곤한 말투, 웃으면서 나온 사람은 정말로 그의 누이였다. 한참 눈을 깜빡여도, 눈을 비벼도 그녀가 맞았다. 닮은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동일인물이었다. 귀신을 봤다며 무서워할 수도 있고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잔뜩 경계할 수도 있지만 그는 그 무엇보다 우선 꿈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녀가 제 앞에 나타나 있다는 것. 그래서 꿈이라고 생각을 하고선 다가갔다. 하지만 너무도 생생한 촉감 등등이 이상할 정도였다.


"소고, 왜 그러고 서 있어?"


".... 누.... 누나?"


"뭐야, 왜 그래?"


"... 정말로.. 정말 누나예요?......"


"뭐야, 장난치는 거야?"


"아.. 아니요.. 누.. 누나.. 보.. 보고 싶...었....."


"응? 어제도 봤잖니. 그렇게 맨날 보고 싶은 거야?"


하고 웃어 보였다. 어제? 어제도 봤었나? 하고 생각하자 이상하게도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히 어제 미츠바는 오키타에게 이틀 뒤에 히지카타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면서 물었었다.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도 대충 기억이 난다. 최근에 개봉한 스릴러 영화를 보자면서 잔뜩 들떠했었다. 


"내일 영화 보는 거 잊지 않았지?"


미츠바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기억이 맞다. 없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믿기지가 않아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미츠바의 손을 덥석 잡고서는 와락 품에 안겼다. 미츠바는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그를 쳐다보았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러니?"


부모의 심정으로 그를 키워온 미츠바로 써는 이렇게 안겨오는 그가 마냥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님, 그럼 내일도 여기에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럼? 이사라도 갈까봐?"


미츠바는 그의 말에 꺄르르 웃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응?"


"아.. 아니에요 누나... 저..."


"왜 이러니 오늘? 지금 일 해야할 시간 아니야? 너 이러다가 토시로씨에게 또 혼난다?"


하고 말하면서 빙긋 웃었다. 그런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하던지 신경쓰지 않았다. 히지카타는 어차피 그에게 아무런 말도 못할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지금은 그 어느것도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다. 이대로 뒤돌아서 가버리면 영영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초조했고 가슴이 너무 쿵쾅쿵쾅 뛰어서 얼른 가보라고 말하는 미츠바의 말을 들으면서도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가 다시와도 누님은 여기에 있나요?"


"자꾸 왜그러니? 당연하지"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려 하는 그를 보고 수상하게 여긴 미츠바는 그의 인상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말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어디 아픈거야?"


"아..아뇨.. 그게 아니라... 너무... 안믿겨서... 너...너무 좋아...서요"


"뭐가 그렇게 좋을까? 소쨩이 좋으니까 누나도 기쁘다"


누나는 죽었잖아요. 이미 무덤에 묻힌 사람이잖아요.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잖아요. 근데 지금 내 앞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서 있잖아요. 다시.. 사라질거잖아요. 


"나랑 오늘 하루는 하루종일 있으면 안돼요?"


오키타의 평소에 행실이 과격하고 난폭하다는 것 쯤은 미츠바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앞에만 오면 순한 양이 되어버린 다는 것도. 하지만 이렇게 심하게 매달려오는 적은 별로 없었기에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부모님 없이 자란 그가 한번쯤 응석부리고 싶어하는 날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하고는 웃으면서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좋아하는 표정은 아니었고 약간 어두움에 시린 표정을 계속 짓고 있을 뿐이었다. 


아는 곳이 별로 없는 미츠바는 얼마 전 히지카타와 갔던 카페로 오키타를 데리고 들어갔다. 딸랑 하는 종소리가 조금은 즐겁게 들리기도 하고, 뭔가의 끝맺음을 주는 듯이 서글프기도 하였다. 마주보고 앉은 둘. 오키타는 왜 인지 한참 말이 없었고 미츠바는 그런 그를 조금은 풀어주기 위해서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소고, 여기 전에 같이 왔었던 곳이잖아. 나 기억 잘하지? 소고는 뭐 마실거야?"


"아. 저요. 음.. 아, 누나 여기 새로 나온 딸기로 된 음료가 있던데 드셔 보셨어요?"


"응 얼마 전에! 맛있었어"


"..그래요? 누구와 오셨어요?"


"토시로씨랑 곤도씨랑 왔었어. 넌 일하는 중이라서 못불렀네. 미안"


보통 히지카타와 갔다고 말을 하면 왜 또 그 자식과 함께였냐면서 화를 냈어야 할 그여야 할텐데 조용히 있는 그가 수상해, 잠시 정적을 지키다가 다시 말을 했다.


"아참, 토시로씨가 너 엄청 칭찬하던데? 얼마전에 네가 대형범죄자를 잡았다고 그러던데 왜 말 안했어?"


"네? 아.. 아니 뭐.. 딱히 별게 아니라서.."


"별 일이 아니라니, 누나는 소고가 정말 자랑스러워"


타카스기를 잡았다는 것은 변함이 없구나 하고 그는 한참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항상 만날 수 없는 그녀와 함께 있기에 모든 것을 우선 뒤로 미루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누님, 이대로 제 곁에 계속 머물러주세요. 계속 내 옆에 있어주세요...



















거물 급의 범죄자는 쉽사리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다. 우선 그에게로부터 캐물어야할 것도 많고, 혹시나 정말로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하더라도 집행하기에 앞서 많은 절차가 있었다. 그를 따르는 다소 난폭한 성질의 귀병대의 존재까지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사형선고가 내리기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타카스기는 그의 뒤를 봐주는 상위 간부급들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에 사형선고의 집행을 건의했다고 하더라도 윗 쪽에서는 집행하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이유 없이 그를 놓아주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들은 그저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운도 좋아... 잡은 순간 사형일 줄 알았는데"


오키타는 마음에 들지 않아 투덜거리면서 타카스기의 앞에 앉았다. 타카스기의 말대로 그가 취조를 하게 되었지만 타카스기의 말을 따라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잡았다는 이유로 히지카타도 곤도도 그에게 일을 마무리 지으라면서 지시한 탓이었다. 자신이 잡은 범죄자는 본인이 직접 마무리 짓고 싶어 했던 오키타였지만 이번 일은 뭔가 타카스기가 원하는 대로 이뤄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은 어두운 취조실에서 히지카타가 대강 정리해 준 자료를 토대로 질문을 하려고 입을 떼려 할 때 타카스기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게 뭐야?"


"... 질문은 내가 해. 너는 대답만 하는 거야"


"너무 무서워하지 마, 나는 꽤나 좋은 사람이야. 가끔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하거든"


무서워하기는 누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한번 짓고는 질문을 했다.


"카츠라와는 무슨 사이지? 카츠라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어?"


".... 나는....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원들도 가끔은 들어준다고, "


취조를 할 때 수많은 정신병자들이야 많이 만나봤지만 타카스기의 속삭이는 듯한 말투와 목소리는 심히 거슬렸다. 


"... 카츠라에 대해서 모른다면 네놈이 이끌던 귀병대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말해"


"내가 이렇게 소원을 들어준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이상한 표정으로 '대가가 있겠죠?' 하고 겁먹은 표정으로 물어봐. 하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대가 같은 걸 그렇게 크게 바라지 않아"


대답은 하지 않고 자꾸만 이상한 말을 혼자 해대는 타카스기를 오키타는 한번 쳐다보고는 중얼거렸다.


".... 진짜로 미친 건가?"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도 당연히 있어. 하지만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한 거야"


"...."


"네가 가장 바라는 건 당연히 죽은 누나를 다시 보고 싶다 정도겠지?"


타카스기의 말에 오키타는 약간은 흠칫했다. 어느새 오키타는 저도 모르게 타카스기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 했다. 덤덤하게 질문 공세를 하던 그가 조금은 다른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게 된 타카스기는 오키타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가 말했다.


"누나가 보고 싶지 않아?"


"...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죽은 사람의 이야기는 들먹이지 마. 네놈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않고"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믿어보는 건 어때? 딱히 바라는 건 없다니까? 넌 좋잖아?"


"정신병자가 이런 개소리를 지껄이는데 어떤 멍청한 새끼가 믿겠어? 한 번만 더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면 죽여버리겠어"


"나 못 죽여, 너는"


타카스기는 다시 피식 웃었다. 오키타는 칼을 쥐고 싶은 마음이 간질간질 했지만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오늘은 정신 상태가 이상한 모양이니 내일 다시 하지"


"갈 거야? 그럼 잘 생각해봐. 누나를 살려줘.라고 한 마디만 하면 돼. 대가가 없다는 게 이상하다면.. 이걸로 할게. 나를 여기에서 꺼내줘. 그게 내가 너에게 바라는 대가야. 한번 생각해봐. 응? 이 정도면 완전히 득보는 거잖아, 그렇지?"


"그래, 살려줘. 꼭 그랬으면 좋겠네. 됐어? 이 새끼 끌고 가"


제 발로 들어와 놓고는 다시 꺼내달라니. 오키타는 정신병 환자처럼 저에게 들이대며 말하는 그가 조금은 거슬리기도 해서 신경질적으로 밖에 있는 대원들에게 말했다. 대원들은 허겁지겁 들어와서는 타카스기를 끌어내었고 타카스기는 아무 저항 없이 계속 웃으면서 그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혼자 남은 취조실에서 그는 타카스기의 어이없는 발언에 약간이라도 움찔한 자신이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타카스기 저 새끼는 수많은 범죄의 끝에 결국은 미쳐버린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대역 죄인은 역시 다른 평범한 죄인과는 그릇부터 달랐던 것일까? 미쳤다고 하더라도 그의 말은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취조를 마치고 나오자 히지카타가 밖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카스기의 헛소리에 화를 참았던 그는 히지카타의 얼굴을 보자 약간은 안심이 되어 저도 모르게 그날은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파묻었다. 힘들어? 히지카타는 작게 묻고서 오키타의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었다. 도와줄까? 됐어요. 그런 거 아니야. 피곤해? 그것도 아니야 그냥 졸려.. 히지카타는 담배를 서둘러 끄고는 양손으로 그를 꼭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답답하면서 놓으라고 할 법도 한데 그날은 조용했다. 


"왜 가만히 있어?"


".. 가만히 있어도 지랄이야..."


히지카타는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익숙한 다다미방의 벽에 쿵 하고 벽에 밀쳐진 채로 히지카타는 조금 의아한 듯이 그를 쳐다본다. 오키타는 히지카타가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잡아 자세를 낮추게 한 후에 입을 맞추어 왔다. 입술은 부드럽지만 면도한 턱 부분은 약간 까칠하다. 그 적당한 믹스가 좋았다. 미세한 담배 향도 오늘은 나쁘지 않다. 처음엔 조금은 어색해하면서 했던 키스도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졌는지 입을 맞추어 오면 제 머리칼을 커다란 손으로 헝클어줄 때 간질간질한 느낌이 좋다. 질척이는 키스를 하고 나서 익숙하게 셔츠 단추를 풀어주면 준비되었다는 듯이 히지카타 역시 오키타의 셔츠에 손을 대었다. 오키타는 망설임이 없지만 히지카타의 손길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지금은 어렵지 않다. 어차피 연인의 관계였고, 전혀 이상하지 않은 행위라는 것을 히지카타는 다시금 떠올리면서 반쯤 벗긴 셔츠 안쪽으로 손을 자리하였다.


"히지카타 씨...는.... 치사해....."


"하아.... 뭐가?"


"으읏... 그냥.... ... 다..."


퍼붓던 키스를 점점 목에서 가슴 쪽으로 옮겨가면서 히지카타 역시 그의 목소리와 그의 온도에 흥분해 버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부장이라는 직책이라던가 하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날아가 버린 듯했다. 태초의 모습 그대로 마주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마치 어린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장난을 하듯이 다른 어떠한 것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순수해졌다.

히지카타의 혀와 끈적한 타액이 그의 피부에 닿을 때마다 그 야릇한 신경에 집중되어 참지 못하고 내지를 교성을 내지르다가 눈이 마주치면 어울리지 않게 수치스러워하면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곤 했다. 그 모습이 히지카타는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 얼굴. 보여줘.."


".. 흐읏...시.. 싫어.."


끈적이면서도 집요한 애무의 끝에 오키타는 항상 뜨거운 열에 녹은 듯이 힘이 하나도 없이 흐물흐물해졌다. 1번대 대장이라는 그 위엄 따위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이런 것이 약점이라고 한다면 분명 큰 약점이 될 것이었다. 애무의 유희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혹은 부드럽게, 히지카타의 솟아오른 그 부분이 접촉을 시도해 올 때면 두려움이 약간은 앞서면서도 하나가 된다는 생각에 기뻤다. 평소에 흐트러짐 없는 그가 이렇게 이성을 잃을 정도로 자신의 위에서 흥분하고 있다는 점이 오키타도 좋았다. 그를 자신의 안에 담으면 점점 뜨거워진 접촉과 맹렬한 움직임에 숨 쉬는 법을 잊을 정도로 헐떡이더라도 절대로 떨어지고 싶지 않아, 오키타는 히지카타의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방 안을 가득 매우는 숨소리와 질척이는 마찰음이 그들의 공기가 되어 춤을 춘다.


행위의 끝을 알리는 뜨거운 액체가 쏟아져 내림과 동시에 뜨거운 숨을 토하고 나서 쓰러진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시트 위에서 한참을 쾌락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서로의 살갗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스르륵 감겨오는 따스한 나른함이 기분 좋게 몸을 감싸 안는다.   







오키타는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관계가 끝나고 나서 품에 조용히 안겨 그의 잠든 모습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열기가 날아가면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에 몸을 떨면서 그에게 파고들고, 그와 맞대고 있을 때 다시 느끼는 그 따스함을 좋아했다.


어느새 오키타는 히지카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주체 되지 못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믿지만 믿지 못했고, 내색하지 못했지만 조바심이 일었다. 이 녀석이 떠날 리도 없고, 떠나게 두지도 않을 것이지만.. 혹시나 어떠한 변수로 인해서 자신을 떠난다고 한다면 그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했다. 깊은 마음의 골을 매워주는 이 존재에 대해서 그는 너무 사랑하다 못해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히지카타씨, 히지카타씨  혹시나 당신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이렇게 뜨겁게 사랑을 한다면... 차라리 아무도 가지지 못했으면 좋겠어요. 음... 사라져 버리는 게 나아요. 


어릴 적부터 그는 딱히 어떤 것을 가지고 싶다, 하는 욕심이 많은 성격은 아니었다. 무엇을 봐도 별로 관심 없는 눈길로 봐왔지만 그럴수록 본인이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생겼을 경우에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고 가지지 못할 바엔 남도 가지지 못하게 부숴버렸다. 그의 태도를 본 미츠바는 그를 여러 번 꾸중했지만 고쳐지진 않았다. 다만 미츠바의 앞에서는 조금은 고분고분 해졌다는 정도. 그는 누나의 앞에서는 착한 아이이고 싶어 했다.


눈앞에 있는 그의 속눈썹, 콧날, 입술을 보면서 본인의 마음을 가다듬고서 눈을 감았다. 함께 맞을 수많은 날 들 중 하루는 그렇게 장식되었다.











***












긴토키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은 카구라와 신파치를 불렀다. 웬일로 집으로 불렀냐면서 찾아온 카구라는 집안을 뛰어다녔고 신파치는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청소를 했다. 담배 냄새가 많은 것 같다면서 혹시 담배를 피우냐는 말도 곁들여서 신파치는 평소와 다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이 둘은 역시나 변한 것이 없었다. 그 둘이 집안을 정신없게 할 때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카츠라가 찾아왔다. 카구라와 신파치가 집안에 있는 것을 보고는 카츠라는 조금은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였고, 그 행동을 보고 긴토키는 그가 타카스기 이야기를 하러 왔음을 눈치채고는 가까이에 앉으라고 말했다.


"타카스기가 잡혔다고 들었어"


카츠라는 그 둘이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신파치와 카구라 둘이서 청소랍시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터라 딱히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몰라. 그 씨발 새끼"


긴토키는 귀찮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몰라. 알 거 없어"


"누구보다 신경 쓰고 있는 거 다 안다"


그날따라 심각하게 불안정해 보이는 긴토키를 보고 카츠라는 이어서 말했다.


".. 찾아가 보지그래?"


"갔었어"


"네가 걱정할까 봐 내가 왔잖냐, 그 새끼는 걱정할 거 없어. 너 잘 모르던가? 위쪽들하고도 많이 연관되어있다고 들었어. 아마 죽이지는 못할 거야."


"죽든지 말든지.. 그리고 나 찾아갔었다니까? 이 말 전해주려고 온 거야?"


"뭐.."


"그렇다면 돌아가 지금 애들도 있고...."


카츠라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무시하고서 소파에 자세를 고쳐 앉아서는 제 집이라도 되는 것 마냥 천연덕스럽게 TV를 틀었다.


걱정? 그래... 미치게 걱정하고 있다고, 생사 확인 같은 거... 그거 지겨울 정도로 하고 있다고.





그 전날도 긴토키는 오키타를 찾아가서 그의 안색을 살폈다. 뜬금없이 자신을 뚫어지게 관찰하는 그를 보고 오키타는 조금은 신경질적인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기색에 긴토키는 아, 미안하고는 조금은 물러섰다.


"면회 오셨어요?"


"응? 아, 뭐.."


"저 쪽에서 몸수색 받으시고 가세요"


무뚝뚝했다. 오늘도 별로 기분이 안 좋은 걸까? 긴토키는 신경이 쓰여 뒤돌아가는 그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겨 몸수색을 받았다. 몸수색을 하는 대원으로부터 가지고 있던 목검을 두고 가라는 말을 들었다. 얌전히 시키는 대로 목검을 맡기고서 커다란 유리에 구멍이 몇 개 뚫려 있는 쾌쾌한 방으로 들어가 타카스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쇠문의 마찰 소리가 들리고 두 손에 반짝이는 수갑을 찬 그가 긴토키의 맡은 편에 나타났다.


"왔구나. 어쩌나.. 이런 곳에서 만나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타카스기는 비아냥 대는 말투로 말했다.


"죽었나 살았나 확인하러 왔지"


"설마 죽길 바라고 온 거야? 아니겠지? 하하.. 그보다 난 담배가 피우고 싶어"


".. 담배 같은 소리.."


"참, 긴토키, 나 네가 아끼는 그 녀석을 오늘도 봤어.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재미있어 보여"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말로 재밌어 보여. 게다가 나는 잘 이해가 안가. 전혀 강해 보이지 않던데? 조그만 자극에도 부서져버릴 것 같아"


타카스기는 허공에 시선을 두고서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긴토키는 다시 한번 그가 미쳤다는 것을 다시금 확신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 보통 그런 타입이 세 보이는 척 온갖 허세를 떨다가 목이라도 매달 타입이야. 아니지 아니지, 목을 매단다기보다는...."


"헛소리 그만해"


"아! 생각났어. 목을 매다는 쪽보다는 연탄가스 같은 걸 들이키는 방법으로 자살할 타입. 아마 목을 매다는 것은 무서워서 준비를 다 해놨다가도 그 두껍고 튼튼한 줄을 보고서 덜덜 떨고 있을걸? 아아, 아플 것 같아.. 하지만 이 이상으로 살고 싶진 않은데... 이러면서"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렇기에 방법을 바꿔서 밀실 안에서 연탄가스를 들이마시는 방법으로 자살을 하겠지. 본인이 밀실로 만들어 놓고 연탄가스로 서서히 중독이 되어갈 즈음, 마지막 숨넘어가기 직전에는 살고 싶어서 나가려고 발버둥 치다가 죽을 거야. 하지만 본인이 만들어 놓은 그 밀실은 꽤나 완벽해서 나가지도 못할 거고... 문에 견고하게 붙여놓은 청테이프라던가, 음.. 뭐 여튼 그런 걸 정신없이 뜯어내면서, 혹은 괴로움에 문을 긁어 대면서 손톱이 다 나가고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도 그곳은 너무 완벽한 밀실이었으니까.. 그렇게 서서히 중독 대서 죽어가는거. 어때? 잘 어울리지 않아?"


의견을 묻듯이 그는 말꼬리를 올리고서 긴토키를 쳐다보았다.


"...."


"그리고 아무도 발견 못할 거야. 꽤 오랜 시간 동안."


타카스기는 그 말을 하고서 무엇이 재미있는지 한참을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미친 듯이 웃었다. 두터운 유리 벽 사이로 숨이 넘어갈 듯이 웃는 (우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모를 정도로 흐느끼고 있었다) 그를 보고 긴토키는 자신도 모르게 그가 무서웠고, 동시에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썩은 송장같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누구든지 광기에 돌아버린 사람을 보면 그런 표정을 지어올 것이다.


"하하...... 왜 그런 표정을 지어 긴토키?"


"... 기분이 더러워서"


"꼴려?"


"아니. 전혀"


"너도 올래? 우리 같이 있으면 더 좋을 텐데"


"내가 너처럼 미친줄 알아?"


"으응, 난 지금 가장 너와 하고 싶어"


타카스기는 유리창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조금만 참아 긴토키. 나 곧 나갈거야. 게다가 나 내일도 그 녀석을 만난다고" 


그 말을 하고 나서 긴토키의 뒷말은 듣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려는 듯, 면회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벨을 거칠게 눌러댔고, 붕대가 감아있지 않은 쪽의 가는 눈이 그날따라 더욱 묘한 기운이 돋아 저와 그 사이에 묵묵히 자리하고 있는 견고한 유리벽을 부숴버리고 당장이라도 타카스기의 멱살을 잡아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먹으로 저 얼굴의 가는 눈이 잘 떠지지 않을 정도로, 혹은 그 눈 역시 다른 눈과 마찬가지로 빛을 잃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짓이겨주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 올랐다. 그리고 붉은 액체와 상처 투성이가 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부어오른 그의 얼굴과 고통이라는 괴상한 희열에 파르르 떨면서 자신 앞을 힘 없이, 밟아죽이기 직전에 발악을 하는 벌레처럼 기고 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열과 함께 묵직해짐을 느꼈다. 그 가학적인 상상을 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곳부터 끓어올라 단단해버린 것이다. 후욱 올라오는 열기와 어느 곳에 풀어야 할지 모르는 그 찝찝함을 느끼면서 신센구미 둔영을 도망치듯이 뛰어 나왔다. 


아... 어제는 정말 최악이었어.











***











따스한 햇볕이 비추기도 전에 히지카타는 나갔는지 옆 자리에 없었다.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는 그가 일어나는 소리에 잠시 눈을 떴었고, 히지카타는 눈 뜬 자신을 보고서 좀 더 자, 하고 따스하게 말했던 것이 얼핏 생각났다. 얼굴에 웃음이 번지면서 그는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선다. 샤워를 마치고서 늘 입는 하얀 셔츠, 검은 제복, 손에 익은 칼을 들고서 나가려다가 어젯밤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르는 시트를 주워 들고서 세탁기에 던져 넣고 밖으로 나섰다. 별로 달라진 것 없는 일상이었다. 눈에 아직도 덜깬 잠이 남아있는 듯 눈꺼플이 무겁다. 먼저 나와 대기하고 있는 대원들과 함께 순찰을 가기 위해서 차에 올라탔다.


앞에 탄 두명의 대원들은 그가 타기 전부터 이미 잡담을 하고 있었고 뒷좌석에 앉은 그는 이동 시간동안 얕은 잠에 들었다. 앞좌석의 대원들의 잡담소리가 귀에 들렸다.


"오키타 대장은 저렇게 얌전히 있으면 정말 누님과 닮으셨어"


"그치? 다시 생각해도 신기해 어떻게 저렇게 다른지.."


"조금만 누님을 닮으셨어도 둔영은 평안했을텐데"


얕은 잠결에 둘의 대화소리를 듣던 오키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비하 때문이아니라 이미 없는 존재, 자신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존재의 명사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눈을 뜨고서 앞에서 대화하는 둘을 잠시 잠자코 지켜보다가 말했다.

   

"..나, 안자고 있어. 그 이야기 그만해"


보통이라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죄송합니다 대장! 하고 안절부절 못해야 할 두 대원은 이번에는 되려 활달하게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누님 앞이라면 아무 소리도 못하시면서. 대장, 오늘 누님 오시는 날이라고 안하셨어요?"


앞 자리에서 뭐가 좋은지 웃는 그들을 보고 오키타는 황당함에 말문이 턱 막혔다. 미츠바가 죽었다는 것을 모를리 없는 이 둘의 반응에 자신을 놀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늘도 매운맛 과자를 사오시려나요?"


하고 조수석에 앉은 한 명이 그를 돌아보는 순간. 요 몇일 조금 잠잠하다 싶었던 머리가 크게 울리면서 동시에 심장이 잠깐 멈춘 듯한 충격이 그를 덮쳤다. 눈 앞이 빛을 잃은 듯이 순간 시커먼 어둠으로 변했고 괴로운 듯이 머리를 감싸쥐었다. 심장소리가 쿵, 쿵 하고 몇차례 울리는 소리 틈새로 대장, 괜찮으세요? 갑자기 왜그러세요? 하고 차를 세우고서 달려왔는지 뒷좌석 문이 왈칵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면서 과격하게 한꺼번에 쏟아지는 괴상한 기억들이 형상을 잡아갔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 미츠바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

ㅠㅠ오랜만에 히지오키!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것을 근처에 가져다 대면 바로 탄력 있게 튕겨져 찢어져 버릴 것 같은 긴장감이 그를 죄어온다그래서인지 차 안에 흔히 풍기는 가벼운 시트 냄새와 휘발유 냄새에 순간 멀미가 일어난 것 같이 어지럽기까지 하였다갑자기 머리가 아픈 것 같기도 하다.하지만 이런 대형 범죄자를 두고는 아파도 아프지 않아야 했다오키타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타카스기가 에도에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범죄자를 잡기 위해서 꽤나 열심히 활동을 하는 그였지만 이런 대형 거물급이 아무렇지 않게 제 옆에 와서 자수를 한다니이것은 반갑고 기쁘기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서는 것이었다누구라도 그럴 것이다잠시 머릿속에 혼란을 겪은 그는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별생각 없어그냥 자수한 거야.숨어서 지내는 것도 이제 슬슬 지겹고.. 이왕 자수하는 거내 친구가 각별히 아끼는 사람에게 공을 주면 좋으니까"

 

"친구? ..각별..?"

 

그 말에 타카스기는 웃어 보이면서 들고 있던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히지카타에 의해서 자주 맡아오던 담배 냄새였지만 약간 달랐고그의 담배 향은 더욱이 기분 나쁜 퀘퀘한 향이었다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렇게 자수를 하겠다고 순순히 차에 올라탄 이 범죄자를 그대로 놓아주기도 뭐 하고,그렇다고 감사합니다 하고 덥썩 잡아가기도 뭔가 찝찝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데리고 가야 한다고는 생각했다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무슨 속셈이 있든지 간에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서는 천천히 다시 시동을 걸었다.

 

"조사를 한다면 내가 너를 선택해서 자수한 만큼본인이 직접 해줬으면 하는데"

 

"..."

 

"그게 싫다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곧 죽을 녀석이 말이 많네네 녀석은 조사할 것 따위도 없어."

 

타카스기는 그의 되바라진 말투에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신센구미의 대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거라고는 생각 하진 않았지만 역시나 였네날카롭게 날을 세우고서 애써 자신을 쳐다보지 않으며 경계를 하는 그를 보면서 타카스기는 아직은 어린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맞붙어도 굉장히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면서 피식 웃었다자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거슬리는지 슬쩍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아, 불안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주제도 모르고 자신과 싸우고 싶어 하는 속내가 근질거리는 것이 훤히 보여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저 건방진 낯짝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안돼그런 짓을 하면 긴토키가 싫어할 거야.

 

 

타카스기를 옆에 태우고서얼떨결에 휴무인 날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사람처럼 타카스기를 잡아서 둔영으로 들어오자 당황한 표정의 히지카타와 곤도그리고 다른 대원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뒤에... 설마.."

 

"타카스기예요저쪽에 데려다 놓으면 됩니까?"

 

어어 하고 얼떨결에 대답을 하며 그가 지나가는 길을 자신도 모르게 비켜준 히지카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후다닥 뒤쫓아 가서 말했다.

 

"... 뭐야?잡은 거야?"

 

"어쩌다 보니"

 

별 감흥 없이,귀찮다는 듯이 대답을 했고그 옆에 타카스기는 피식 웃었다우선은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자.하고 뒤로 물러나자 오키타 본인도 뭔가 찜찜한지 그냥 고개를 한번 끄덕하고는 제 갈 길을 갔다히지카타가 느끼기에도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분명히 칭찬해줘야 할 일이었고다른 대원들은 신기해하면서 "우와 오키타 대장이 잡은 겁니까?" 하고 다들 놀라 했다.확실히 타카스기는 양이지사 중에서도 위험인물이었기 때문에 저들끼리 들떠서는 호기심 반두려움 반에 오키타가 타카스기를 데리고 간 그쪽을 바라보며 웅성웅성 댔다.

 

오키타는 타카스기를 지하의 감옥으로 안내한 후 검은 창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말했다위험인물인 만큼 손발을 자유롭지 못하게 단단히 채웠지만 여전히 그를 보고 실실 웃어대는 타카스기는 기분이 나쁘다 못해 도대체 누가 지금 상황에서 나쁜 상황인지도 모를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그렇게 실실 쪼개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네놈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거야"

 

"?"

 

"뭐든"

 

철컥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창살의 문을 닫고서 뒤돌아 나오는 그 길에 아무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아나가는 도중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여전히 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운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밖으로 나와 조금은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자히지카타는 오키타 역시 자신과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조금은 풀어주려 말을 걸어왔다.

 

"잘했어설마 타카스기를 잡아올 줄은 몰랐다"

 

"... .. 근데 조금 이상하다구요카츠라처럼 도망갈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렇게 도망칠 거면 왜 순순히 와서 잡혔는지도 의문이고.."

 

히지카타는 모처럼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가 신기하기도 하고한편으로는 조금은 철이 들었나 하는 생각에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경계를 더 강화해서 못 도망가게 하면 되는 일이야모처럼 사고 안치고 좋은 일했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없어요 없어피곤해 그냥 쉴래요"


말은 관심 없다는 식으로 툭 내뱉었지만 히지카타의 그런 손길이 따스해서 그런지 한켠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그래, 불안할 것이 뭐가 있어. 저 녀석이 함께 있는데.

 

 

 








***







 

 

 

 

웬일그날은 대박이 터졌다빠칭코에서 잃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어느 순간부터인지 잔뜩 기대를 하고 그 오락기의 앞에 앉았다고 하더라도 잃고 나오는 일이 자연스러웠다그런데 오늘은 처음 기계서부터 꽤 많은 돈을 땄고그다음도그다음도 성과가 좋았다간혹 조금씩 돈을 땄다고 하더라도 한 번 더 하면 그 이상을 잃었어야 했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운이 최고점을 찍은 것이다두둑해진 주머니를 만지면서 거의 처음으로 멀쩡하게 빠칭코에서 나왔다.

밀린 집세를 내야겠다는 착실한 생각을 하는 성실한 인간은 아니었기에 긴토키는 그저 오늘 운이 좋았다는 것과 돈이 생겼다는 들뜬 기분으로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거리를 배회했다그리고 나선 곰곰이 생각하다가 간만에 돈이 있는데 뭐라도 좀 사다 줄까 하고는 상점으로 향했다형형색색 한 것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고옆에서 호객하는 장사꾼들은 긴토키에게 와서 구경을 하라며 귀찮게 굴었다무얼 줘야 좋아하려나 하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비싼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위치에서 적당해 보이는 가격의 손목시계를 보고서 발 걸음을 멈추고는 멍하니 바라보다가망설임 없이 바로 구입해버렸다딱히 값을 깍지 않아도 되는 점은 무척이나 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방법이야 어찌 되었든돈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었다시간이 그렇게 많이 늦지는 않았으니아직 잔다거나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 그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오키타, 지금 시간도 얼마 안됐는데 뭐하고 있어일하는 중?"

 

[일 끝나고 쉬고 있죠 뭐어쩐 일이에요?]

 

"아니잠깐 볼 수 있나 해서"

 

[..내일 봐요]

 

"아니 진짜 잠깐둔영 앞이야"

 

사실 둔영 앞은 아니었지만 긴토키는 급하게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서들리지 않게 전화기 스피커 쪽을 손으로 막은 뒤에 주소를 급하게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잠깐 앞으로 나올 수는 있지?"

 

결국 오키타의 알겠다는 대답을 듣고서 긴토키는 택시기사에게 최대한 빨리 가달라면서 졸라댔다택시기사는 긴토키를 힐끗 보더니이 주소는 신센구미 둔영 근처 아니요여자친구 만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하고 물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날 있잖수막 기분 좋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날아저씬 그런 날 없어?"

 

"나 참생긴 것 부터 딱 날 백수 구만 뭘"

 

장난 식으로 허허 웃으며 택시기사는 말했다긴토키는 그런 말에 사람 좋게 그저 웃어보였다.

 

 

택시에 내리자마자 잔뜩 짜증난 표정으로 본인을 기다리고 있는 오키타를 보고서는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유카타 차림에 자고 있었는지 머리엔 여전히 우습게 생긴 안대를 걸쳐놓고선 그를 노려본다.

 

"뭐예요 형씨바로 앞이래서 나갔더니 이제 와요?"

 

평소에도 나른한 말투에 힘이 넘쳐나 보이는 녀석은 아니지만 그 날 따라 유독 피곤해 보이는 인상에 조금은 머쓱해진 긴토키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뒷목을 긁적였다.

 

"미안.. 근데 나 나쁜 의도로 불러낸 건 아니야"

 

"그니까 뭔데요"

 

"선물"

 

"선물?"

 

긴토키는 본인이 갓 사온 선물을 그에게 내밀었다받은 그의 표정은 정말이지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당연히 그도 그럴게딱히 무슨 날도 아니고평소에 돈 없다고 난리를 치던 사람이 (심지어 딱히 무슨 사이도 아닌뜬금포로 저녁에 막무가내로 찾아와서는 선물을 내밀고 있는 상황은 누가 봐도 조금은 놀랄 상황이었다.

 

"....뭐야이거 안에 뭐 이상한 거 들어 있는 거 아니에요?"

 

오키타는 그가 준 상자를 들고선 위 아래 흔들어 보기도 하고무슨 소리가 나지는 않는지 귀에도 가져다대보고 하였다그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같아긴토키는 그 모습을 보고 한참 웃다가 내가 네 녀석이 히지카타에게 하는 짓을 하겠냐면서 손사래를 치면서 열어보라고 말했다이상한 게 나온다면 오늘은 정말로 죽여버릴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리며 선물의 포장을 뜯는 그 녀석긴토키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면서 천천히 포장을 뜯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손목시계?"

 

"어때?"

 

"...저 이런 거 딱히 안 쓰는데요"

 

"알아그래도 이제 내가 줬으니까 써"

 

"...이런거 걸리적 거리는데.."

 

하긴이 녀석이 크게 좋아한다거나선물을 사준 사람을 봐서라도 설령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좋아요하고 외쳐주는 사근사근하고 상냥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상해 투덜거렸다.

 

"야 이 녀석아선물 사준 사람의 성의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 거야 네 녀석은?"

 

"보여요"

 

"보이는구나일부러 그러는 거지 이거?"

 

"아뇨암튼 잘 쓸게요고마워요근데 이거 주려고 여기 온 거예요?"

 

"......어어"

 

"그럼 이제 가보세요"

 

".. 그래 다음에 보자"

 

여전히 차갑게 대하는 녀석의 행동에 많이 피곤한가그냥 조금 참았다가 내일 줄걸 그랬나하는 생각에 긴토키는 스스로를 탓하며 뒤돌아섰다.

 

"형씨"

 

"?"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그는 반갑게 다시 돌아보자 그가 둔영에 들어가다 말고 말을 걸어왔다.

 

"저 오늘타카스기 신스케잡았어요"

 

"누구?"

 

"타카스기요형씨가 카츠라와 친하게 친분이 있는 만큼 타카스기와도 친분이 있다는 거 알아요"

 

타카스기아닌데그 녀석은 집에 있을 텐데쫓겨 다니는 것도 지겹다면서 나가기도 귀찮아하는 그런 녀석인데 어떻게...? 긴토키는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다행히도 어둠에 가려져 그의 표정이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그렇다고요나 자랑하는 거예요 형씨에게나 오늘 칭찬도 많이 받았어요지금 주신 것도 무슨 뜻으로 나에게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씨가 저에게 해주는 칭찬으로 받을게요.. 지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래...... 근데그 녀석.. ...뭐래어디서 잡았어?"

 

"..누나의 묘 있는 부근에서요본인이 직접 저에게 와서 자수했어요진짜 황당하죠그래서 그런가.. 정말 이상하단 말이에요 기분이여튼들어가세요선물은 잘 쓸게요"

 

그는 그렇게 이야기를 멋대로 마치고는 홀로 둔영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타카스기가오키타에게 잡혀아냐 그럴리가 없어그는 갑자기 드는 불안감에 숨이 몰아쳐서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렸다그럴리가 없었다숨을 몰아쉬면서 집 앞의 계단을 서서히 올라가선 익숙하게 어두운 미닫이문을 천천히 열었다이미 베일대로 베어있는 담배향이 훅 하고 몰려오지만익숙하게 눈앞으로 가려오는 청승맞은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았다기척도 없고원래 따스하진 않았지만 그 날의 집은 얼어붙을 것 같이 차가운 냉기를 가득 머금고서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종이를 태웠는지 책상엔 종이가 탄 것으로 보이는 가늘게 부숴져 있는 컴컴한 잿가루와 퀘퀘한 냄새가 섞여 지저분하게 쌓여 있다담배나 피우면서 마약 중독자 마냥 누워서 나뒹굴어야 할 그가 보이지 않자 급히 초조함을 느낀 그는 불안한 듯이 집의 한 가운데를 왔다가 갔다가 하며 불안해하다가, 쇼파에 앉아서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확실히 그는 갈 곳도 없고, 카츠라나 사카모토에게 갔을 리도 없다. 이 곳에 없다면 오키타의 말대로 잡혀간 것이 확실했다. 망할 새끼자수병신 같은 소리하네왜 갔어왜 찾아갔어왜 그 녀석을 만나러 간거야?

 

고요한 집에서는 밖에서 들리는 취한 사람들의 주정 부리는 소리이름 모를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린다그런 소소한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 밖에 없었다불안함이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불안그래 이것은 불안이었다그 개새끼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무슨 행동을 할 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오는 초조함속에서 끓어오르는 화가 주체되지 않아서 그는 속으로 계속 욕지거리만 지껄였다개새끼 그 병신새끼그냥 가만히 옆에서 찌그러져 있을 것이지 뭐 그렇게 바라는 게 많아처음부터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겠다고 했으면서.

 

 









***











그 곳에 가두어져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이 조용하다누군가 잠을 자면 자는 숨소리라도 들려야 할 것인데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간혹 왔다 갔다 하는 경비들은 타카스기의 가까이엔 다가오지 않았다이미 이름만으로도 꽤나 알려져서인지뒤돌아서면서도 자꾸만 자신을 돌아보던 그 어린 대장과 같이 이들도 자신이 무슨 돌발 행동을 할 것 같아 잔뜩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당사자는 딱히 생각도 없는데 왜 저들끼리 경계하고 난리야안심해나가지 않는다니까?

딱딱한 벽에 기대어 앉아 마주 보이는 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려니 등이 차갑게 시렵다바닥도 차가웠다어둠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서도 그는 미친 사람마냥 피식피식 웃으면서 즐거워했다한시라도 빨리 날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면서 눈을 살포시 감는다.내일이 오면 긴토키는 싫어도 내 앞으로 달려 올 수 밖에 없을 걸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발악하고 있을 거야내가 이곳에 있으면 하루 종일 안심하지 못할 거니까아마 하루 종일 뒤척거리면서 한숨도 못자면서 걱정하고 있을거야긴토키긴토키이-, 불안해?불안해어서 내 앞으로 달려와이렇게 친절하게도 내가 기다리고 있잖아아무 짓도 하지 않고 가만히여기에서.

 

 








아침이 밝은 둔영은 소란스러웠다히지카타와 함께 아침을 맞은 오키타는 그 날도 여전히 5분만.. 하고 중얼거리면서 일어나지 못했다. 먼저 준비를 마치고서는 문을 닫기 직전까지도 늦지 말고 오라며 기어코 한소리를 하는 히지카타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한참을 이불안에서 뒤적렸다. 

겨우 일어나 거의 반쯤 감은 눈으로 대충 준비를 마친 후, 덜 깬 잠을 떼어내듯 눈을 비비며 회의실로 들어가자먼저 앉아 있는 곤도가 그를 보고는 씨익 웃어보였다어제 일에 대한 칭찬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다하지만 별로 기쁘진 않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회의를 따분하게 듣고 나서 심드렁하게 밖으로 나가자 왜인지 허겁지겁 뛰어온 듯한 긴토키가 회의실 문 밖에 서 있었다딱히 놀랄 일은 없었다어차피 긴토키는 자주 왔다 갔다 하는 사이이고야마자키의 일을 도우는 잡부였기 때문에 별로 당황하지 않고 물었다.

 

"일하러 온 거예요?"

 

"... .. 어 뭐.. 그렇긴 한데.."

 

"야마자키는 저 안쪽에 있어요 곧 나올거예요"

 

"아니아니 너한테 할 말이 있어"

 

"하세요"

 

"....잠깐 자리를 좀..."

 

회의실 문 앞에서 떡하니 서 있는 그 들의 위치를 보고 긴토키는 약간 당황해 하면서 말했다오키타의 뒤에 있는 시커먼 대원들이 전부다 그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오키타는 인지를 못했었는지 저 앞에서 당황해 하는 긴토키를 한 번그리고 제 뒤에 있는 대원들의 무리들을 한번 보고는 따라오라면서 안내했다.

 

".. ...저기 오키타.."

 

긴토키는 잠깐 걷는 그 순간도 참지 못하게 초조해서 뒤 따라가면서 말을 걸었다.

 

"네 형씨"

 

"..그니까 별 일은 없어?"

 

"무슨 소리예요?"

 

"아니야"

 

오키타가 안내한 곳은 손님들이 오면 잠깐씩 앉아서 이야기하는 용도로 쓰이는 어떤 곳이었다긴토키는 그 장소를 알고 있다먼지 청소를 한 적도 있었고 물건을 옮기려 몇 번 들락날락 한 적도 있었다남자들만 있는 곳이라 그런지 청소를 해도 깨끗하고 깔끔하지 않았고어딘가 모르게 칙칙한 분위기가 항상 가라앉아 있는 그런 곳이었다.

 

"형씨무슨 일이세요?"

 

".. 그니까 그게.. 타카스기.. 일로.."

 

"네"

 

"...면회 좀 할 수 있을까?"

 

"면회요?"

 

카츠라가 잡힌 적은 숱하게 많다그가 도망쳐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그 때의 긴토키는 항상 덤덤했지만타카스기가 잡혔다는 것을 알고 급히 찾아와 그와 면담을 요청해 오는 긴토키가 조금은 이상해 보였다하지만 오키타는 그의 태도가 오랜만에 만난 삐뚤어진 친구를 한 번은 다시 만나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왜요?"

 

".. 아니 그냥 좀... 궁금한 것도 있고......"

 

"상관은 없어요근데 표정이 왜 이렇게 심각해요?"

 

오키타의 눈에 비췬 긴토키는 평소와 다르게 안절부절 했고 계속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한 채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손가락을 가만히 두지 못 했다.그 모습이 수상한 오키타는 못마땅한 얼굴로 한참을 쳐다보다가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일 있어요돈이라도 떼이셨나"

 

그의 장난스러운 대꾸에 긴토키는 말없이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형씨가 평소와 달라서 오늘은 뭔가 그냥 불안해다음에 오세요."

 

"?"

 

"지금 이렇게 이상할 정도로 진정되지 않은 상태의 형씨는 면담하게 해줄 수는 없다는 말이에요면담은 다음에 하세요."

 

이런 모습의 오키타를 보자 히지카타의 영향을 꽤나 많이 받기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예상외로 단호했고 차가웠다하긴,어제 말하길 오키타 본인도 스스로 불쑥 찾아온 타카스기에 대해서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더 예민한 상황일거라고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먼저 가보겠다면서 그 방에서 홀연히 나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긴토키는 아무 말도 못한 채로 그저 한숨을 한번 푹 내쉬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우선 본인은 우연히 이 곳 둔영에서 일하는 잡부였고대형 거물급 범죄자가 있는 기밀의 장소를 까다롭게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해도 내부자에겐 잡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잠깐은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생각해보면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오키타 녀석과 함께 타카스기를 만나러 갔다면 그 미친 녀석은 더 발작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 해결사 형씨이런 곳에서 뭐하세요오늘은 지하 감옥 정비를 하러 가야 되는데요?"

 

지하 감옥이라.. 책상에 앉아서 머리 아픈 듯이 감싸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야마자키가 말을 걸어왔다사람에겐 가끔 기회가 찾아온다지금 그것은 너무나 필연적으로 다가와서 수상하기마저 한 그런 이상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 것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뿌리칠 수 없이 다시 찾아올 것을 안다이런 상황에서는 항상 그래왔기 때문에그는 야마자키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어 보이며 그 곳에 가자고 말했다그 곳엔 아마 타카스기가 있을 것이고타카스기를 오늘 만나게 될 것이다앞서가는 야마자키의 뒤에서 긴토키는 입꼬리 한쪽을 끌어올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어보였다.

 

야마자키는 그 곳에 타카스기라는 거물급이 있는지 조차 잘 모르는 듯 했다. 알더라도 그저 잡부의 명분으로만 자신을 생각하기에 한치의 의심도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타카스기와 만나는 것을 금지시켰던 자신을 이렇게 아무 스스럼없이 이런 곳에 데리고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형씨저 쪽 구역 좀 보고 오시겠어요?”

 

급기야는 혼자 갔다가 오라는 저 녀석. 마침 그 곳의 경비원들은 모두 야마자키가 불러내어 아무도 없었다. 그 구역으로 들어가면 어디엔가는 타카스기가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는 자신을 보면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웃을 지도 떠올렸다아직은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고 자신을 기다리는 타카스기는 아마도 자신을 보고는 올 줄 알았다는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일 것이 분명했다야마자키가 말한 그 컴컴한 구역의 문을 열고 들어가 숨이 턱 막히는 어둠을 보고는 다시금타카스기는 저 안에 웅크리고 있겠구나 하고 확신했다그는 아마도 지금 발걸음 소리를 듣고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이다아마 창살에 매달려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겠지만 분명히 참고 있을 거야.

텅 빈 창살을 두어개 지나자 무릎을 끌어안고서 제 앞에서 멈춘 발걸음 소리에 붕대를 하지 않은 쪽의 눈으로 그를 힐긋 쳐다보았다그리고는 움직이지 않은 채 눈만으로 웃어보이고는 말했다.

 

왔어?”

 

그래네가 그렇게 네 앞으로 오게 끔 나를 끌어당기는데 어떻게 내가 너를 벗어나겠어?

 

네가 올 줄 알았어.”

 

긴토키는 오키타의 앞에선 왜 그렇게 초조했는지 모를 정도로 타카스기의 얼굴을 보자 놀라울 정도로 침착해졌고그가 있는 철장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서는 양손으로 쇳내가 진동하는 철장을 붙잡고는 말했다.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당연히

 

그에게는 묘한 향기가 흐른다그 향은 사람을 약간은 흥분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고그 대상이 긴토키일 경우엔 더욱이 거세게 작용 되었다그 둘의 향은 닮았다그렇기에 둘은 이런 관계를 아슬아슬하게도 유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긴토키는 항상 그런 자신을 후회하는 일이 많았지만 후회도 그 순간 잠깐이었을 뿐매번 반복되었다그 날 역시 뒤돌아서 후회 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 또타카스기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가까이 와

 

그 말에 타카스기는 어둠 안에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펴고선 가까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그리고는 창살을 사이에 두고 키스를 하려는 듯 바짝 다가온 타카스기를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한번 웃어보이고는 어깨를 잡았다.

 

키스 말고아래 해줘

 

타카스기는 그런 긴토키의 눈빛을 잠깐 쳐다보고는 말없이 스르르 주저앉고서 버클을 풀고서 꺼낸 그의 기둥의 머리부터 입술을 사랑스럽게 맞추어가며 말했다.

 

고작 하루 지났을 뿐 인데못 견디는구나 역시역시 쓰레기 같은 새끼야. 그래도 괜찮아 그런 너를 내가 사랑하니까

 

질척이는 혓바닥이 그의 것을 스칠 때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다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보드랍게 휘감아오는 그의 따스한 입안의 온도만이 그를 휘어잡았다그 감각은 사실 대상이 누구여도 좋은 것이었다지금 그의 앞엔 일명 성욕을 받아내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타카스기일 뿐이다격정에 다다라 그의 질척한 입안에 질펀하게 하얀 액체를 싸지르고서 타카스기의 턱을 쥐고는 알지? 먹어, 난 먹어주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더라하고 다소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타카스기는 그가 그런 말을 할 것임을 알고 있다는 듯 이내 군말없이 꿀꺽 삼키었다비릿한 냄새였지만 역겹진 않았다긴토키는 그것을 삼키는 타카스기를 보고는 항상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 표정이 수치스러움을 안겨주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되겠지만타카스기는 그 모습 역시도 사랑하였다.

 

그렇게 창살을 사이에 두고 몰래 하는 구강섹스는 긴토키를 더욱 흥분 시켰음을 안다관계가 끝나고서 긴토키는 타카스기에게 말했다.

 

“..왜 만났어왜 자수했어?”

 

여기에 있으면 네가 허겁지겁 날 찾을 거니까

 

타카스기는 한번 잠시 말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여기서 처형당해도 상관없어그래서 난 도망칠 생각도 딱히 없고.”

 

“....... 제정신이야?”

 

상관있는 건 네 쪽이겠지.”

 

하고 말하고는 킥킥 웃었다.

 

장난이야나갈 거야.나가더라도 나중에.”

 

타카스기는 여유 있게 말하고는 계속 웃어 보였다.긴토키는 열받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이 곳에서 쓸데없는 짓을 시킨 건너잖아?”

 

그가 말하는 것은 방금 전 행했던 행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긴토키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 올렸고, 그 표정을 보고 타카스기는 소리내어서 웃었다.


"형씨, 다 끝나셨어요?"


밖에선 야마자키가 그를 찾는 소리가 들렸고, 타카스기는 다시금 웃어 보이면서 그에게 말했다.


"또 와"


"...."


그의 말엔 대답하지 않고서 긴토키는 표정을 바꾸고서는 그 곳을 나섰다.


"어, 야마자키. 이 곳 봤는데 별 거 없는데?"


"알고보니 저희가 찾는건 저쪽에 있었더라구요"


"사람 일부러 고생시키는거지 너? 그런거지?"


야마자키와 시덥지 않은 대화를 하며 사라지는 긴토키를 보면서 타카스기는 그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병신. 




























오키타는 너무 어릴적 부모님을 잃었기 때문에 가족의 죽음이란 누나 한 명 밖엔 알지 못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누나는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과 멀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만날 수는 없는 사이였다는 것. 그런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친족의 죽음이란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병행했다고 한들 절대로 덤덤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는 몇 번이나 누나를 꿈에서 만났다. 항상 꿈에서 누나가 나타나는 장면은 달랐다. 갑자기 등장해서 사실 죽었다는 것이 거짓말였다고 웃으면서 나타날 때도 있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와 아빠가 누나와 함께 등장해서 즐겁게 웃으면서 식사를 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아침마다 옆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기 바빴고 눈물을 닦으면서 아.. 꿈이었구나.. 하는 허무함에 그날은 하루 종일 힘이 없었다.

가끔 히지카타는 미츠바의 묘에 찾아가곤 한다는 것을 오키타는 알았다. 하지만 오키타는 기일, 그리고 생일이 아니면 절대로 찾아가지 않았다. 찾아갈수록 느껴지는 누나의 죽음이 소름 끼치도록 실감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평소에는 똑같이 지낸다. 다행히 히지카타라는 존재가 옆에 조금 더 크게 자리 잡아 그를 위로해주었고, 와글와글한 둔영의 분위기 때문에 평소에는 잘 잊고 지냈다. 다를 것 없이 술도 마시고, 똑같이 사고도 치고.. 잊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고나 할까. 그래도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그녀는 틈틈이 수면 위로 떠올라 그에게 말을 걸었고, 그럴 때마다 그녀를 따라 비틀비틀 내려앉는다. 가끔 찾아오는 두통이 그녀와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최악이었다. 

 

아침은 유난히 예민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하는 회의에선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못했고, 그나마 히지카타 정도가 말을 걸 뿐이었다. 대답도 항상 틱틱대며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냈는데, 그래도 히지카타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할 수 있는 한 명이었다. 회의 이후에 히지카타는 항상 오키타를 다시 찾아와선 달랜다고 달래지지 않을 그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려 따로 찾아왔고 오키타는 그런 그의 행동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히지카타 역시 사람인지라 그가 아침마다 투덜거리는 것을 항상 웃으면서 기분 좋게 받아줄 수만은 없었다. 하루는 왜 너는 아침마다 지랄이냐면서 한번 소리를 높였다가 일주일 가까이를 싹싹 빌어야 했다. 잘못했다고 하면 홱 돌아보면서,

"지금도 지랄할 거니까 저리 가시죠"

하고 특유의 싸한 표정을 짓고는 지나간다. 아, 아냐 이건 더 피곤한 일이야, 그는 그때 깨닫고는 그 이후로는 절대로 그에게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






사카모토는 긴토키가 없는 틈새에 다시 한 번 타카스기를 만나려 찾아왔다. 타카스기는 자신을 찾아온 사카모토를 보고서 씨익 웃으면서 들어오라고 안내했다. 그날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사카모토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손에 들고 온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사카모토는 사실 꽤나 망설였다. 분명히 신센구미는 본인들의 적이다. 적을 조사하는 일이야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타카스기의 태도에 그냥 조금은 오싹한 느낌을 받으면서 조사를 시작했다. 타카스기가 왜 콕 집어서 그를 지목했는지도 사카모토는 알 수 없었다.
타카스기는 그가 내민 봉투의 서류를 꺼내서 사락사락 한 장씩 대충 훑어보고는 만족하다는 듯이 내려놓았다. 

"사카모토, 너는 역시 조사를 참 잘하는구나. 고마워"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을까?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술 마실래?"

"지금은 대낮이 아닌가?"

"상관없어? 나야 상관없는데 너는 상관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의외로 별로 아무렇지 않나 보네? 그러면 바로 오던지. 타카스기는 그 말을 덧붙이고는 먼저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이라고 해봤자 침대가 있는 방일뿐이었지만. 타카스기가 값을 치른다는 의미는 이것을 말한 것이었다. 잠깐의 텀을 두고는 따라들어간 침실에는 긴토키의 체취가 가득했다. 벗길래? 내가 벗을까? 하고 물어오는 타카스기. 사카모토가 멍하니 서 있자 타카스기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제가 벗을 작정인 듯이 제 옷자락을 잡았다. 아, 아니야. 사카모토는 타카스기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듯이 손을 강하게 잡았다. 타카스기는 그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서는 쳐다보았다.

"너, 설마.. 설마 긴토키와도 이러는 건감?"

"..... 무슨 소리야?"

"아니지?"

평소엔 항상 바보같이 웃는 사카모토가 화난 듯 엄격한 표정을 지어 타카스기는 잠깐 머뭇하다가 대답했다.

"....응. 아니야."

"그래. 다행이다. 당황스럽네 나는, 나, 너랑 이럴 생각 전혀 없어, 값을 치르라고 했던 것은.. 그냥 자네가 수상해서 한 말이었던 거네만... 그리고 더더욱 이런 것을 뜻한 것도 아니었고."

사카모토는 여전히 진지했고 타카스기는 그런 약간은 머쓱해져, 사카모토를 보고는 풋 하고 웃고는 다시 말했다.

"뭐야, 나도 장난이야. 그럼 설마 정말로 내가 너랑 이럴 거라고 생각한 거야?? 미안 네가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는 걸 보니 진심이었나 보네, 다시는 안 그럴게. 자료는 고마워"

타카스기는 사카모토의 어깨를 작게 툭툭 치고는 다시 거실로 나갔다. 타카스기는 다시 거실의 소파에 앉아 여유 있게 앉아서는 사카모토가 준 서류를 꺼내어 차분히 읽었다.

"뭔가, 내가 도울게 있다면.."

"없어"

이제 딱히 상관없다는 듯이 본인이 준 서류에 집중하는 그를 보고서 사카모토는 한참 옆에 앉아서 타카스기를 쳐다보다가, 자신이 조금은 한심해 보여 긴토키의 집에서 나왔다. 타카스기는 그냥 손을 잠깐 흔들 뿐, 다른 인사말도 없었다. 조금은 찜찜한 기분으로 나온 사카모토는 조금 걷다가 긴토키와 자신이 조사했었던 그 신센구미의 나이 어린 대장이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사를 했었을 때, 크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가끔 일적으로 부탁을 하는 사이라는 것 정도? 간단한 신체정보, 공격 스타일, 가족관계(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친한 지인 관계는 신센구미 내부 인원 몇과 해결사 정도 밖에는 없을 정도로 좁았다.

 


당연히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 게다가 신센구미에서 최고의 검객이라는 칭송을 받는 인물이라면 위협이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기왕 적을 치려고 한다면 저런 꼬마가 아닌 위의 머리를 치려 들어야 했을 타카스기 였기에 더욱 이상했다. 심지어 타카스기는 적을 이렇게까지 조사를 하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저 꼬맹이가 저렇게 강한가? 예전에 타카스기는 말했었다. 

'사카모토. 내가 이길 수 없는 적을 이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음... 그런 사람은 아군으로 구슬리면 되지 않겠는가? 아하하'

'아냐, 방법은 하나야. 그 인물을 조사하는 거지. 무엇이든 간에 사소한 것도 모두. 그러면 이길 수 있어. 내가 혹시나 앞으로 누군가를 조사해달라고 하면 정말 세세한 거라도 다 조사해다 줘. 물론 그럴 일은 별로 없겠지만 말이야.'

저 꼬맹이. 물론 강하다고는 들었지만 아직 타카스기나 긴토키와 비교해 저 둘을 뛰어넘을 정도로 위협적일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것이다.
사카모토는 히히덕 거리면서 대화를 하는 긴토키를 보자 왜인지 모르게 아까 들었던 긴토키 집의 침실과, 눅눅할 정도로 기분 나쁜 그 체취가 갑자기 확 밀려오는 느낌이 들어 마주치고 싶지 않아, 그냥 뒤를 돌아 다른 길로 돌아서 갔다.






***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뭘?"

"아니 뭐.. 형씨에게는 숨겨도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요. 이미 알고 있다고도 전에 말했고"

"응? 아아아"

긴토키는 잠시 생각하더니 들고 있던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

"뭐.. 그냥.. 말했잖아. 딱 보면 보였다니까? 너희 둔영 애들이야 둔해빠졌으니까 모르겠지만 긴상 같이 눈치 빠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안 통한다고"

"참나"

긴토키는 그의 말에 웃어 보였다.

"저 얼마 전에 차이나 만났는데"

"그래? 잘 있어?"

"똑같죠 뭐. 근데 요즘 잘 부르지도 않고 집에 찾아가도 문을 안 열어준다는데 왜 그러시는 거예요?"

"문을 안 열어주는 게 아니라, 집에 없으니까 못 열어주는 거지 짜식아"

그의 말에 오키타는 그냥 어이없다는 듯이 살짝 웃어 보였다. 긴토키의 그런 능청스러운 면을 그는 나쁘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또다시 갑작 스레 찾아온 두통 때문에 머리를 붙들고 잠시 아 또 시작이야. 하고는 작게 탄식하듯이 중얼거렸다. 

"왜, 왜 그래?"

"아.. 별건 아니에요.. 그냥 저 요즘 머리가 가끔씩 아파서.."

"... 아 그래?"

"네.. 항상 갑자기 이래요 갑자기. 병원에서도... 별 건 없다는데.... 이거 진짜 짜증 나거든요..."

한참을 머리를 감싸고 있자 긴토키는 옆의 그를 한참 쳐다보다가 오키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 왜요.."

긴토키는 한참을 망설이는 듯이 가만히 있다가, 아냐, 너무 아파 보여서 하고 말하고는 그냥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키타는 그 손길이 왜인지 조금 이상해 긴토키를 한 번 쳐다보았다. 긴토키는 그를 보고는 이제 괜찮아? 하고 웃어 보였다. 긴토키 역시 오키타의 눈빛을 보고는 어색한 듯이 웃어 보인다. 오키타는 머리가 아파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귓 속으로 바람 소리가 쏴아 하고 더욱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이 이상했다.





오키타는 둔영으로 돌아오면서도 아까의 긴토키가 너무나 어색해서 그가 쓰다듬었던 머리카락을 다시 한번 괜스레 쓰윽 만졌다. 왜인지 모르게 그가 어색해져 버린 그 순간이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져 약간 소름마저 돋았다. 아니, 내일이 누나의 생일이라서 조금 예민해졌을 뿐일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둔영에 돌아오자 아직도 일을 하는 히지카타의 방엔 불이 환히 켜져 있다. 그 모습을 보자 가서 장난을 쳐야겠다는 생각에 웃으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히지카타는 확 열리는 문을 보고는 저렇게 당당하게 문을 확 열어젖히고 들어온 사람은 오키타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뻔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를 맞이했다.

"뭐야, 아직도 일하는 거야? 나 심심한데 놀아줘"

오키타는 들어오자마자 책상에 앉아 있는 그의 등 뒤에 매달려 목을 확 끌어안고는 답지 않은 어리광을 부렸다. 이렇게 하지도 않던 행동을 부리는 것을 보고 히지카타는 책상에 있는 달력을 눈으로 힐끗 확인을 했다. 아, 내일이구나. 그가 의도를 했건, 아니건 그 누나의 기일이나, 생일이 오는 그 전 날은 항상 하지도 않던 짓을 종종 해왔다. 예를 들어서 갑자기 일을 열심히 한다거나, 오늘처럼 이런 어리광을 부린다거나.. 더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하지만 결코 슬퍼하는 기색은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이럴 때는 이런 어리광을 기쁘게, 의외라는 듯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받아줘야 그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받아줄 수 있다는 것을 히지카타는 안다. 

"그래, 그만해야겠다"

펜을 놓고 뒤를 돌아 그를 보아도 오키타는 그를 꼬옥 끌어안고서는 놓아주지 않았다. 벌써부터 내일 그곳에 갈 것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히지카타는 저를 안고 있는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놀아달라며? 영화 볼래?"

"아니, 그건 내일"

"... 그럼... 게임이라도 할래?"

"아니 그건 내일 낮에"

"내일 낮?... 너...."

내일은 너 미츠바에게 갔다 오는 거 아니야? 하고 말을 하려다가 말을 삼키고선 다시, 그래 그럼 뭘 하고 싶은데? 하고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 하고 피곤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를 보고는 측은한 마음과 더불어 그냥 한번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앞에서 힘들다거나, 슬프다거나 한마디라도 털어놓았으면 조금은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만.. 이 녀석이 그럴 리가 없으니. 

"그래, 알았으니까 잠깐 이 손 좀 놔봐"

하고 말하자 이대로 목졸라 죽여버릴 거야 하고 말하고는 장난스레 목을 콱 잡았다가 다시 키득키득 웃으면서 손을 놓았다. 저 버릇은 연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모양이다. 마주 보자마자 샤워하러 가겠다면서 제 방으로 훌쩍 떠버린다. 같이 있으려고 왔던 게 아닌가? 히지카타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혼자 담배를 몇 개비 연달아 물었다. 얼마 후 그가 다시 방안으로 확 들어와서는 말했다.

"키스해줘"

뜬금없는 소리에 놀라서 히지카타는 적지 않게 당황을 했고 그저 멀뚱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키스하자니까? 하고 말하고는 들어와서는 멱살을 턱 쥐었다. 아아 잠깐만, 잠깐만. 하고 말하자 오키타는 완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심심하구나?"

"응"

"아, 그... 그니까 곤도 씨에게 갈까?"

"아니"

"심심하다면서. 난 잘 거야"

"그럼 나도"

오늘따라 정말 이상했지만 그런 모습이 히지카타는 나쁘지만은 않아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의 동그랗게 뜬 눈을 보면서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불을 끄고선 침구에 누웠다. 옆에 누운 오키타는 멍하니 있다가 꼼지락꼼지락 온기를 찾아 그의 품에 들어왔다. 

"왜 이래 오늘따라? 심하네. 1번대 대장님이 아니신 거 같아" 

"응 오늘은 나. 선배님이니까요"

본인이 말해놓고도 어이없었는지 오키타도 풋 하고 웃었다. 히지카타가 제 품에 들어온 오키타의 뒷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자 살짝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고서 히지카타의 입술에 입을 살며시 맞추었다. 격렬하지도, 음탕하지도 않았다. 포개어지는 온도만으로도 그저 좋았다. 한참을 껴안고 입을 맞추다, 히지카타는 꼬옥 끌어안고는 말했다.

"자야지"

오키타는 그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다시금 끌어안았다. 우웅 더.. 이렇게 있고 싶어. 더. 하고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히지카타는 그가 사랑스러워 모랫빛 머리카락이며 이마, 부드러운 뺨에 입을 맞추다가 목으로, 어깨로, 입을 옮겨가다가는 헉 하고는 그의 옷을 여미었다. 당황한 히지카타를 보고 오키타는 뭐가 우스운지 피식피식 웃어 댔다. 무엇이 그렇게 우습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그럴 정신이 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자신이 선을 넘을 그 가운데에서 아슬아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서는 정신만을 간신히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오키타의 웃음이 조금은 그를 자극하는 듯해 시선을 애써 피했다. 

응? 나 오늘은 하려고 작정하고 온 건데, 히지카타씨, 안아주지 않을 거예요? 왜 자꾸 기회는 여러 번 있는데도 어째서 날 안지 않아요? 하고 묻는 그의 입술과 눈빛이 그는 두렵다. 내가 남자여서 그래요? 아니면 아직은 이런 짓을 할 정도로는 내가 꼴리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을 정도의 매력은 없나? 역시 문제는 히지카타씨가 아니라 나한테 있는 거였나 봐. 아, 아니면 혹시.... 하고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히지카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혹시.. 누나의 동생이어서 그런 거예요 설마? 하고 말을 이어올 것 같아 그는 황급히 입을 맞추었다. 웬지 모르게 오키타는 이미 약간은 슬픔에 감염된 듯 촉촉한 눈을 하고 있었지만 이 이상은 놔두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야. 하아.. 아니야, 단지 내가.. 내가 너를 더 아껴주고 싶었을 뿐이야"

분명히 그 말은 진심이었다. 오키타는 약간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을 하고 있었고, 그날 히지카타는 그를 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조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한켠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를 안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보다 그에게 더 커다란 상처를 입히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오키타는 지금 이런 식으로의 접촉이라도 시도하고 싶다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것을 히지카타는 알아버린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상관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으나, 이내 그의 하얀 몸의 미세한 온도에, 그리고 살결에, 나른한 표정으로 제 아래에 누워 있는 그를 보고서는 다른 생각은 이내 다 지워져버렸다. 지금 순간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신의 애인이었다. 뒷목을 살며시 끌어안는 그의 손길을 느끼면서 부드럽게 그를 탐해갔다. 꼬옥 끌어안는 손과 잇새로 조금씩 흘러나오는 작은 신음이 귓가에 뜨겁게 닿는다.






***







아.. 어제.. 맞다. 나 어제.. 분명히 실수는 아니었지만 어제는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했던 것은 맞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먼저 일어나 앉은 걸 보면 웬일이냐고 물어오겠지? 오키타는 먼저 자리에서 조심스레 빠져나와 본인의 방으로 돌아가서는 따스한 물로 몸을 씻고선 나갈 준비를 했다. 그곳에 갈 때의 마음은 우울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을 해서인지 출발은 홀가분하고 좋다. 기분 좋게 꽃집에서 누나가 좋아했었던 이름 모를 하얀 꽃도 사고, 기분 좋게 운전을 하면서 라디오까지 들으면서 간다. 하지만 도착해서의 그 마음은 처음 누나가 세상을 막 떴을 때나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슬픔이라는 안개가 여전히 묵직하게 누르고 있다. 누나, 누나가 만약에.. 만약에 다시 돌아온다면 전 누나를 꼭 옆에 두고 싶어요 더 말 잘 듣고 속도 썩이지 않는 좋은 동생이 되었을 거예요 하고 후회를 해보기도 하고, 저를 혼자 두고 가면서도 편하던 가요 그곳은? 하고 생각하면서 원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혼자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는 본인만 가슴이 먹먹해져 올 뿐. 오늘도 미츠바의 무덤 앞에서 꽃을 내려놓고는 멍하니 잠시 서 있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서 이내 뒤돌아서 돌아갈 생각으로 차에 올라탔다. 끄지 않은 라디오에서는 어느 노래가 나오다가 전파에 이상이 있는지 지지직 거렸고, 이내 신경질적으로 라디오를 꺼버렸다. 

오늘 일하러 가지 않은 것은 것이야 좋다만, 이 암울한 곳에는 더 있고 싶지 않았다. 아, 오늘 낮엔 게임이나 하기로 했지. 그는 생각하고선 느릿하게 시동을 다시 걸었다. 사람도 얼마 없는 길에 포장되지 않는 울퉁불퉁한 길이라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느릿하게 운전을 하는데 웬 사람이 턱하니 가로막고 서 있는 바람에 그는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무늬의 옷에 한 손에는 담뱃대를 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도 없는 이런 곳에 뜬금없이.

"뭐야? 저리 비켜 잘못하면 죽는다?"

그러나 그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서 그대로 서서는 담배를 한입 맛 좋게 한입 빨아들이고는 말했다.

"뭐야, 자수하려고 손수 찾아왔는데 알아보지도 못 해서 서운한데?"

뭐? 오키타는 그의 말에 놀라서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신센구미에서 쫓고 있는 가장 위험한 인물. 양이지사 중에서도 가장 난폭하기로 알려진 타카스기 신스케였다. 사실 이런 곳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지 못했고, 지금 그는 현재 이 우울한 덫에서 벗어날 생각만 하고 있었기에 그를 알아보지 못 했던 것이다.

오키타가 허겁지겁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그는 그저 웃으면서 그대로 조수석 문을 열고는 올라탔다. 

"표정이 왜 그래? 좋지 않아? 나 잡고 싶지 않았어?"

물론 양이지사를 잡는 것이야 그의 책무였고, 그나마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기에 열심히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시시하게 자수해 온 타카스기는 다른 누가 봐도 수상해, 옆에 여유 있게 앉은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수상해? 걱정하지 마. 정말로 나, 지금은 자수하려고 온 거야" 

차분히 앉아서는 되려 그가 다시 물었다.

"오키타 소고라고 했지? 반가워. 이렇게 이야기를 직접 해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네" 























-

어제 다 써놓고 날려버려서 오늘 복구하느라 정말ㅠㅠ정말로ㅠㅠ 멘탈이 힘들었습니다 흐엉엉ㅠㅠㅠㅠㅠㅠㅠ





 

 

 

 

 

 

 


 


내가 너를 생각하는 그 순간 온 세상이 너만 바라보는 것 같아. 너는 너무도 하얗게 빛이 나서 다른 사람들이 혹시나 빼앗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어. 하지만 다행이야 넌 나를 떠나지 못할 거잖아? 나는 너에게 나의 최선의 사랑을 줄게. 내 안에는 네가 너무나 가득 차서 때로는 네가 두렵고, 소름이 돋아서 까슬까슬해.


입안에 슬그머니 베어 오는 피 맛에 타카스기는 입맛을 쩝하고 다신다. 도발에 화가 났는지 긴토키에게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부분이 얼얼했다. 그렇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처음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으니까. 게다가 일부러 도발한 것 역시 제 쪽이라는 것을 알기에 타카스기는 물 한 잔을 떠서는 화를 삭이려 누워 있는 긴토키에게 다가가선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 텐데.. 모르는 척인지 모르고 싶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등을 보이는 긴토키의 어깨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오늘은 너,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처음이 아니었다. 수차례 들었기에 타카스기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서도 결국 잠자리에 들 때는 섹스가 목적이 아니었어도 자신을 옆에 두고서 잠에 드는 긴토키였기 때문이다. 들이키면 피 맛이 진동하는 물을 한 모금 들이키면서 제 옆의 연인을 달래려 다시 바짝 다가가 앉았다. 긴토키가 아무리 남들의 시선에 너무하게 대한다고 하더라도 타카스기에게 긴토키는 생각보다 다정했다. 타카스기는 음식 하나 할 줄 몰랐기에 요리는 긴토키가 담당했고, 담배를 피워대도 환기 같은 건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환기나 빨리 등등도 긴토키가 죄다 맡고 있었다. 상냥하진 않았지만 투덜거림 속에서 대하는 다정한 태도에 타카스기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한테 못되게 구는 애인이야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지만 그런 애인이 남에게 자상하게 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카스기도 그랬다. 양이지사라는 신분으로 숨어 있는 입장이라서 나돌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닥 친한 사람도 없었으며 하루 종일 외출나간 긴토키를 기다리는 타카스기로서는 남들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긴토키의 행동에 질투가 나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타카스기를 긴토키는 그닥 신경쓰지 않았다. 그 점이 가끔 타카스기를 가끔은 참을 수 없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타카스기가 생각보다 덤덤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이렇게 긴토키가 싫다며 등을 보였다고 한들, 짖궂게 손장난으로써 자극하면 긴토키는 언제 그랬듯이 저를 안아왔다는 점. 타카스기는 누워 있는 긴토키에게 다가가서 품 속에 차가운 손을 쓰윽 집어넣으면서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정말 괜찮아?"
 
"... 꺼져"


그의 완강한 태도에 그는 그저 피식 웃으면서 바지춤에 손을 쓰윽 밀어 넣으면서 다시 묻는다.


".. 이래도? 벌써 선거 같은데?"

 
그가 손으로 중요 부위를 손으로 가만히 쥐자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신경질적으로 뿌리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놀래라, 그렇게나 흥분했어?"


타카스기는 다시금 능글맞게 웃어 보였지만 긴토키가 흥분해서 그렇게 일어나 앉은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너, 한 번만 더해. 진짜로 죽는 수가 있어"


"죽긴 누가"


타카스기는 다시금 웃어 보이면서 담배를 물었다.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타카스기를 보고서 긴토키는 다시 주먹을 꽈악 쥐었다가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침대에 누웠다.


"너..... 진짜 그런 식으로 자꾸 나 건들지 마.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네가 나를?"


타카스기는 재밌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런 타카스기의 웃음을 등 뒤로 들으면서 긴토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 * *





 

그날 역시 땡땡이 치려 항상 똑같은 장소에 앉아 당고 따위를 먹고 있기에 히지카타는 그런 그를 나무라기 위해 다가왔다. 사실 나무라기 위해서만 온 것은 아니다. 그것을 핑계로 대원들의 눈을 피하고서 조금의 이야기라도 나누려 한 것이었다. 다가온 저를 보고 장난스럽게 쳐다보는 그를 보고는 살짝 웃어 보이며 그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나, 싫어?"


앉자마자 하는 어이없는 소리.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아니, 딱히 느껴지지 않아서"


분명히 또 제 반응을 보려고 저런 소리를 지껄인다는 것을 히지카타는 알고 있었다. 저 소리만 벌써 열 번은 들은 것 같다.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뻔하다. 원하는 게 있으니 나를 만족시켜라,라는 건방진 태도라는 것. 


"오늘은 또 뭐야?"


"또 라니, 히지카타씨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진짜 재수 없어요"


"그래 알았어. 싫어하는 거 아니야. 됐어?"


"아뇨 싫지 않다고 하면 딱 그 정도잖아요. 그렇게 치자면 나, 야마자키가 싫지 않은데? 형씨도 싫지 않고, 곤도씨도 싫지 않아요"


아, 이렇게 따져올 때 만 이렇게 똑똑하게 따져온다.


"아.. 그래 좋..."


"좋다니, 예예 저도 좋아요 형씨도 좋고, 곤도씨도 좋아요"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가 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혹시나, 저 자식이 어울리지 않게 사랑해, 뭐 이딴 오그라드는 말을 원하는 건가 해서 생각만 해도 빨개지는 얼굴을 감추고선 작게 그래.. 사랑해.... 하고 작게 말했다.


"네? 뭐라는 거예요? 안 들려"


"사... 사랑한... 다니까"


"..... 뭐야, 오그라들게. 오늘따라 왜 이래요 히지카타씨? 소름 끼치게"


오키타는 먹고 있던 마지막 당고를 빼서 입안에 넣으면서 막대를 휙 던지고는 말했다. 그리곤 웃으면서, 그렇게나 저를 생각해 주실 줄이

야.. 하고는 먼저 가보겠다면서 유유히 자리를 떴다. 저.... 저 새끼 진짜.... 히지카타는 저를 놀린 것에 성공한 오키타가 기분 좋은 듯이 콧노래를 부르며 가는 뒷모습을 한참 지켜본다. 어쩌겠어. 저 새끼가 좋으면 나도 좋지.

사랑이라는 이념을 생각하는 것이야 각자 다르겠다만, 히지카타는 사랑이란 마냥 아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오키타는 약하지 않은 상대이고, 실제로 실력을 겨루면 본인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야 알지만 아직도 응석 부리는 꼬맹이 정도로만 생각이 되어 히지카타는 그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보고 있었다. 오키타가 하는 모든 장난을 받아주고, 당해주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히지카타에게 그는 모래와 같아서 쥐었다고 생각하면 어느샌가 손가락 사이 틈을 다 빠져나가 형체조차 찾을 수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히지카타는 기간이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깨에 손을 올린다거나 손목이나 손을 가끔 잡아챈다거나 하는 정도의 가벼운 스킨십 외에는 시도하지 않았다. 빨간 과일 맛 사탕같이 달콤해 보이는 입술이나, 하얀 목덜미라던가, 보드라워 보이는 뺨을 본다면.. 심지어 그 존재가 자신의 애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제 입술을 맞대어보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히지카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한낱 추잡한 감정에 이끌려 제 자신을 잃는 사람은 아니었다. 

 

순찰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오키타는 그의 방으로 쪼르르 와서는 문을 빼꼼 열고는 뭐 해? 하고 묻는다. 들어오라는 뜻으로 손짓을 두어 번 하고는 보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의 앞에 와서 앉는 오키타는 막 샤워를 끝내고 왔는지 모랫빛 머리칼이 덜 말라서 촉촉했고 따뜻한 목욕물 탓인지 뺨이 약간 발그레했다.


"머리카락 잘 말려. 감기 걸린다"


"응? 난 안 걸리던데"


"걸려, 이리 와"


오키타가 가까이 다가와 앉자 히지카타는 덜 마른 머리칼을 제 손으로 한번 옆으로 쓸어내렸다. 손에 감기는 느낌이 부드럽고 차갑다. 오키타는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히지카타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확 묻었다. 그의 행동에 약간 놀란 히지카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뒷 목덜미와 유카타 사이로 보이는 속살에 시선이 가는 것을 가까스로 외면하며 품에 가득 끌어안았다. 답답해, 이거 놔! 하고 확 제 팔을 뿌리치는 그의 말에 히지카타는 바로 재빨리 손을 확 놓는다. 놓으란다고 진짜로 놔? 오키타는 그의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저가 머리 꼭대기 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재미있어했다. 맘에 들지 않은 이유는 어째서 연인 취급을 해주지 않느냐는 것. 낮에 자신이 싫으냐며 물었던 질문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살짝 물었던 것이었다. 저가 놓으라고 외쳐서 약간은 당황한 듯한 얼굴의 히지카타를 물끄러미 보다가, 한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서 장난스럽게 볼을 쭈욱 늘여 당기면서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키스, 싫어해?"


싫어할 리가. 히지카타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나랑 하기 싫은 건가?"


".. 그런 거 아니야 이 녀석아"


"아아, 혹시나 내가 고자를 사귀고 있는 건 아닌가 했어"


하고 말하고는 갑작스레 입술에 쪽 하고 귀엽게 입을 맞춰왔다. 입을 맞춘 직후 시선을 피하는 쪽도 어째서인지 히지카타. 기지배냐.. 하고 생각했지만 가벼운 입맞춤 한번에 왜 인지 눈앞의 녀석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다. 그런 히지카타가 우스운 오키타는 히지카타의 표정을 보곤 꺄르르 웃으면서 지켜본다. 또 한번, 또 한번 입술에 장난스레 입을 맞춰오던 오키타는 가늘게 웃으면서 말했다.


"더 진하게 해도 좋은데"


그 말이 주문이 된 양 히지카타는 자신도 모르게 덜 말라서 촉촉한 머리카락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서 조심스레 입술을 포개었다. 나에게서 도망치면 어쩌나,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보란 듯이 웃으면서 빠져나가버리면 어쩌나.. 지금까지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고 말할 것 같아서 무섭다. 진득한 타액이 서로에게 전해지면서 촉촉해진다. 하아, 뭐야 키스하는 법 잘 알고 있네. 처음은 누구랑 했어? 하고 나른한 목소리로 물어온다. 히지카타는 말없이 다시 입을 맞추었다. 누구냐고? 네 누나. 이런 말 전할 수 없잖아. 미츠바와 비교한다면 현재 눈앞의 어린 연인은 생김새만 닮았을 뿐, 성격은 전혀 달랐다. 둘 다 자신이 꼼짝 못하는 상대라는 것은 같았지만.


키스를 끝내고 나서는 졸려, 잘꺼야 하고 이부자리에 쏙 들어가선 히지카타에게 어서 오라는 듯 샐죽히 쳐다본다. 아. 사랑스러워. 저렇게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가 있어. 이끌려 그의 옆에 누워 어린 제 연인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번져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그의 기분 좋은 숨소리를 더 가까이 듣고 싶어 꼬옥 껴안았다. 불편한지 우웅... 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 귀엽다.


 




* * *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긴토키가 집을 나서기 전 식탁을 마주 보고 앉아서는 말했다.


“즈라라도 만나는 게 어때?”


“왜?”


"네가 집에만 있으니까 더 미친놈이 되어가는 것 같아”


그 말에 타카스기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미친놈이라.. 그러는 너는?”


“내가 뭐”


“너는 네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구나”


“나가는 것이 그렇게 꺼려진다면, 집으로 불러도 좋아”


애쓰네. 타카스기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습관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좀 작작 펴 진심으로 질식할 것 같으니까 하고 외치고는 일을 하러 가겠다며 문을 신경질적으로 닫고는 나갔다. 나간 뒤, 테이블을 보니 즈라의 연락처가 적혀있다. 관심을 분산시키겠다 이건가? 타카스기는 메모지를 그대로 두고는 창밖을 내다본다. 밖에는 오토세와 장난을 치면서 인사하는 긴토키가 보였다. 저에겐 보여주지 않는 사람 좋은 긴토키의 모습. 가소롭다 못해 우습다. 병신이야 저거. 저걸 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인간들도 이상한 사람들이지만.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닫고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가 지명해준 카츠라가 아닌 사카모토에게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결코 긴토키가 미친놈이 되어간다고 말을 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사카모토와 이야기를 하면 조금은 답답함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카모토는 여행을 많이 다녀서 전부터 항상 이야기 소재가 많았다. 그래서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시끄럽게 저 혼자 떠들어 주는 것이 좋다. 타카스기는 전화기를 들고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킨토키? 자넨가 웬일인감? 아하하]


활달한 웃음소리는 여전하다.


“긴토키 아니야 나야”


[...응? 타카스기?]


“응 긴토키의 집에 있어. 올래?”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달려오는 그, 얼마 있자 사카모토는 숨을 몰아쉬면서 집 앞으로 달려왔다.


“왜 이렇게 서둘러서 왔어?”


“음.. 그니까 네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아하하”


숨을 몰아쉬는 문 앞의 그는 조금은 머쓱한지 계속 웃어댔다.


“일은 무슨, 없어 그냥 불렀어”


“아하하 그런감? 그렇다면 다행이지”


쾌활하게 웃으면서 그는 안으로 들어왔다.


“킨토키는 없남?”


“응 없어”


“그 자식 그래도 일은 하고 있네 그려, 맨날 술만 쳐 먹는 줄 알았네만”


“... 전부터 그랬잖아. 그 새끼는 술 먹기 위해서 돈 버는 거지 뭐”


“그 새끼 얼마 전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술 주정 한번 거하게 하던데, 무슨 일 있는 건 아닌감? 술 먹고 아주 울면서 미안하다고 전화를 하던데? 여자한테 차이기라도 한건 아닌감?”


사카모토는 급히 오느라 피곤했는지 소파에 등을 기대 고서 털썩 앉았다.


“뭐가 그렇게 미안하시데?”


타카스기는 사카모토의 앞에 앉아서는 물었다.


“그런 것 까지는 말 안 하던데? 뭐라더라.. 그 자식 답지 않게 뭐, 다행이다. 안심이다 이런 이상한 말까지 하지 뭔감. 아. 근데 나 나름 손님인데 차라도 한잔 내주지그래”


“... 손님은 무슨, 저기 있으니까 따라 마시던가”


그 말투에 사카모토는 타카스기가 급격하게 기분이 곤두박질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실제로 타카스기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것을 대충 눈치챈 타츠마는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면서 차를 두 잔 끓여서는 타카스기의 앞에도 한잔 내려놓았다. 너도 마셔, 담배만 피우지 말고. 사카모토는 상냥했다. 어릴 적에도 긴토키와 타카스기의 싸움을 말리는 역할을 담당했었으며 싸움을 싫어하고 사람을 위로할 줄 아는 남자였다. 그래서인지 타카스기는 그가 이렇게 사소한 것을 알아채고 챙겨줄 때면 아, 이런 모습이 보통 애인의 모습이려나? 하는 생각을 가끔, 아주 가끔했다. 그리곤 이내 아냐, 그래도 긴토키가 더 섹시하지. 하고는 생각하는 것이다.


“킨토키와 같이 사는 건감?”


“뭐, 어쩌다보니”


“잘 됐네. 킨토키도 힘들어 하는 것 같던데 네가 옆에서 위로.. 아 아니지 네가 위로 같은 걸 하는 사람인감? 아하하 여튼, 싸우지 말고 지내

라고. 너흰 항상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싸우니까 말야”


아아, 그건 걱정 안해도 좋아. 지금도 지겹게 맨날 싸우고 있어. 침대 위에서 더 격하게 뒹굴어 우리. 상상 못하겠지만 우린 서로의 정액이 무슨 맛인지도 알고 있다고. 음, 뭐랄까 약간 씁쓸하고 기분 나쁘게 미끌거려. 타카스기는 저 혼자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음.. 근데 신센구미면 너랑 즈라를 쫓고 있는 집단 아닌감?”


“맞아 왜”


“아니, 킨토키는 신센구미와도 친한 것 같길래.. 조심하라는 말이었네, 킨토키가 팔아 넘기면 어쩌려고 아하하”


“팔으라지 뭐”


“거기 어떤 꼬맹이랑 친한 것 같던데 말야. 종종 자주 보이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걱정되었지 뭔감? 근데 뭐 너라면 걱정 안 해도 되겠지 아하하”


사람 좋은 바보 같은 웃음.


“근데 말야, 날 부른 이유는?”


“...니가 옆에서 떠들어주면 조금은 기분이 나이지지 않을까 했어. 근데 더 최악이 되어버렸네”


“응?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감?”


사카모토는 타카스기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저가 타온 차를 몇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킨토키와 있는 이유는 뭔감?”


“어쩌다가 라고 말했잖아”


“그 녀석 요즘 이상하지 않남? 붙어 있는 너는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한다만, 요즘 나랑 술만마시면 헛소릴 해대길래.”


“헛소리?”


“오키타..? 맞나? 여튼, 이 비슷한 이름을 이야기하길래”


그 말에 타카스기는 굳은듯이 사카모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잘못 들었나? 하고 타카스기의 표정에 당황하는 사카모토는 괜스레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라고?”


“아, 아냐 역시 잘못 들었어! 아하하!”


왜 인지는 모르지만 타카스기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 사카모토는 대답을 피했다. 그대로 넘어가려 일부러 그 동안 있었던 모험들을 이야기해주겠다며 조잘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엔 j행성에 갔었는데 말야, 하고 말을 꺼내려는 중 타카스기는 말허리를 단호히 자르고는 말했다.


“..맞아. 오키타”


“응?”


“알아봐줘”


“뭘?”


“그냥 그 인간에 대해서. 니가 아까 말했던 신센구미에 안에 있어. 긴토키랑 같이 자주 만난다는 꼬맹이 이름이 오키타야”


“..아 그렇구먼..”


“너 잘하잖아. 사람 뒷조사 같은 거”


실제로 장사를 해서 인맥이 꽤나 넓은 사카모토에게 사람 한명을 조사하는 것 쯤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실실 쪼개면서, 평소보다 약간은 낮은 태도로 부탁을 해오는 타카스기는 뭔가 무섭다. 사카모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 대답하지 못했다. 왜? 못해? 아니, 싫은 건가? 우리 키스할까? 타카스기는 앉아있는 사카모토의 옆에 바짝 다가와서는 담배연기를 훅 내뿜는다. 달콤한 연기사이로 보이는 한쪽 눈이 가늘게 휘어지면서 서서히 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몽롱함을 느꼈다.


사카모토는 전부터 타카스기를 단순한 친구로서 보고 있진 않았다. 그는 숨긴다고 숨겨왔지만 그 사실을 타카스기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바짝 타는 속을 진정하며 앞으로 다가온 입술앞에서 사카모토는 타카스기를 살짝 밀쳐내고서 말했다.


“드..드디어 미친 건가 자네? 아하하”


당황하는 그의 태도에 타카스기는 그와 함께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긴토키와 비슷한 소릴 하네, 알아봐줄 거지? 타카스기는 다시 묻는다.


“글세, 나는...”


으응, 값을 치르겠다잖아. 내일 다시와. 그 말을 나가는 뒤로 메아리처럼 들으면서 사카모토는 자신도 모르게 긴토키의 집에서 허둥지둥 뛰쳐나왔다. 더 그 곳에 있으면 커다란 실수를 범할 것 같은 기분이 자신을 덮쳐왔기 때문이다. 타카스기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저를 다시 그 집으로 돌아오게 끔 잡아끄는 것 같았지만 도리질을 치며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러나 자꾸만 물에 젖은 무거운 옷을 입은 듯이 온 몸이 무거웠고 괜스레 으슬으슬 춥기까지 했다. 달콤한 담배향을 다시 한번 맡고 싶은 기분이었다.

 

 

 

 

 

 

 

 

 

 

 

 

 

 

 

 

 

 

해결사의 사카타 긴토키. 그를 보는 주위 사람들의 평은 다들 우호적이었다. 그가 성실하다거나,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선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귀찮아하면서도 사람들의 부탁을 투덜거리면서 들어주었고, 엉뚱하지만 일을 곧잘 해결해주는 그런 매력에 사람들은 그가 작은 사고를 치고 다녀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우연히 사람들을 만나면 술 한 잔 정도 얻어먹는 것쯤은 쉬운 일이었다. 털털한 성격에 능력은 없지만, 묘한 끌어당김이 있어서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서 주위에선 말했다.

 

카구라는 같이 살다가 지금은 신파치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신파치의 집으로 가라는 그 말을 했을 때, 카구라는 어째서 자길 보내냐면서 왈가닥한 성격만큼이나 난리를 쳐댔지만, 어쩔 수 없다면서 완강한 태도로 보냈다. 신파치나 타에는 별말은 안 했지만 이유를 궁금해했고, 긴토키는 그냥 장난 식으로 아아 가끔 아슬아슬할 때도 있잖아? 하고 농담 섞인 말을 했다. 그 말을 마친 후 타에에게 간신히 목숨만 유지할 정도로 맞은 것은 덤. 해결사 일을 그만둔 것은 아니고, 아직도 종종 하고 있다. 일이 들어오면 그때 카구라와 신파치를 불러서 같이 일을 하러 나가곤 한다. 그때는 역시나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카구라와 신파치에게 구박을 받으며 어울렸다.

 

일이 없을 때는 신센구미 내부의 잡일 따위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잡일 중의 잡일이었는데 문서 정리, 남은 제복 정리, 빨래, 청소 등등... 우연히 사람을 구하고 있는 야마자키를 만나서 구한 일자리였다. 야마자키라면 만만해서 본인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고, 야마자키가 거의 모든 일을 하기 때문에 굉장히 편했다. 야마자키는 신파치만큼이나 잔소리가 많았다. 일을 하고 있을 때면 간혹 한 번씩 마주치는 오키타와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한 번씩 쳐다보고는 휙 지나간다. 히지카타와는 교류가 꽤 있지만 사이가 좋다고 하기엔 약간 거리가 있는 사이였고, 오키타는 장난기 많고, 제 자신과 비슷한 긴토키를 꽤나 좋아해서 종종 만나기도 했다. 긴토키 역시 오키타라는 존재를 꽤 좋아해서, 그와 마주치는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실제로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르게 자주 마주쳤다.

 

"해결사 형씨.. 전 그냥 다음부터 다른 사람을 쓰려고..."

 

누워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긴토키를 보고 일을 하는 야마자키가 말하자, 긴토키는 야마자키를 한대 쥐어박으면서, 왜, 나 열심히 하잖아 이 녀석아 하고 말하며 노려보았다. 왜 내 주위는 항상 저런 재수 없는 사람뿐일까 하고 야마자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일을 마쳤는지 땡땡이를 쳤는지, 오키타가 그 둘에게 다가와서는 옆에 털썩 앉았다.

 

"형씨. 이제 해결사 일은 때려치운 겁니까? 왜 여기에서 이딴 일이나 하고 있어요?"

 

오키타를 보곤 긴토키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곤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때려치우다니? 지금도 일이 너무 많아서 돌아버릴 지경이거든?"

 

"근데 왜 차이나는 갑자기 내 쫓은 겁니까? 여자로 느껴지기라도 하셨나.."

 

".... 그 꼬맹이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겠냐"

 

긴토키는 투덜투덜 대면서 시계를 보더니 집에 갈 시간이라고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끝난 거예요? 그럼 나 술이나 한잔 사주세요"

 

오키타가 집에 가려는 긴토키의 앞을 가로막고 서선 장난스레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왜. 가서 히지카타랑 소꿉놀이나 해"

 

"내가 그 자식하고 왜요??"

 

"싸웠냐?"

 

"걔랑 나 사이 몰라요? 새삼스레 왜 이래"

 

긴토키의 말에 오키타는 어이없다는 듯이 툴툴댔고 긴토키는 그런 그를 가만히 관찰하듯이 보다가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면서 귀에 대고 속닥였다.

 

"너... 다 티나"

 

그의 말에 오키타는 눈이 많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고, 말을 마치 고서 앞서 가는 긴토키를 쳐다보았다.

 

"가자 술 먹자며? 대신 돈 있는 네가 사"

 

오키타는 앞서서 걸어가는 긴토키를 수상쩍은 표정을 지켜보고는 뒤따라 갔다.

 

 

 

 

 

긴토키가 안내한 술집은 돈 없는 아저씨들이 좋아할 법한 작은 술집이었다. 노숙자나 돈이 없는 사람들이 와서 값싼 술을 한 잔씩 먹고 푸념 따위를 늘어놓는 곳이어서 항상 시끌벅적했다. 낡은 나무 탁자와 의자, 값싼 술과 안주들이 반기는 그곳에 익숙하다는 듯이 긴토키는 주인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들어가고는 뒤따라오는 오키타에게 의자를 빼내면서 앉으라고 권했다. 둥근 탁자는 노숙자들에게 점령당해 자리가 없기도 했고, 긴토키는 나란히 앉아서 술을 먹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항상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이런 데에서 술 먹는 거 좋아요? 난 시끄러워서 싫은데"

 

오키타는 탁자에서 술에 잔뜩 취해 우는 사람, 고개를 처박고 자는 사람, 고함을 치는 사람 등등을 쳐다보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같이 돈 없는 사람들은 이런 데가 아니면 술을 못 먹거든?"

 

"나한테 사달라면서요"

 

"응 네가 사"

 

"뭐야"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강력 추천 메뉴가 몇 개 있었지만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뭐가 맛있어요?"

 

"메로구이"

 

추천 메뉴라는 글씨도 붙어 있지 않은 것을 보니 그다지 이 집에서 자신 있게 권하는 메뉴도 아닌듯했지만 긴토키는 강하게 권했다.

 

"저 그거 별로 안 좋아해요"

 

"응. 근데 맛있어. 한번 먹어봐"

 

막무가내로 안주를 주문하고는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쳐다보는 오키타에게 머쓱한 듯이 씩 웃어 보였다.

 

"그래서, 어때?"

 

"뭐가요"

 

"오오구시군 말이야"

 

"어떻긴 뭐가 어때요 똑같지"

 

"다 보인다니까?"

 

"빙빙 돌리지 말고 그냥 물어봐요. 뭐가요"

 

"둘이 사귀는 거 아녀? 아직 서로 떠보는 단계인가?"

 

".... 뭐래.."

 

오키타는 곁눈질로 긴토키를 슬쩍 보고는 그냥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둔영에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단연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전과 다른 점이 전혀 없었으며, 초반에 약간의 어색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전과 똑같이 싸우면서 지냈기 때문이다. 약간의 차이점이라면 히지카타가 전보다 더 그에게 물러서 심한 장난을 받아주느라 힘들어했다는 것 정도였다고 할까.

 

"어떻게 알았지? 하고 눈치 살피는 표정인데?"

 

긴토키는 그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곤 다시 말했다.

 

"뭐, 오오구시군이야, 너한테 잘하겠지"

 

웃으면서 술잔을 연거푸 입에 가져가는 그를 보면서 오키타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긴토키를 수상쩍게 쳐다보면서, 조금 집어먹어본 안주는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꽤 맛있었다.

 

 

 

 

 

 

* * *

 

 

 

 

 

 

술만 먹었다 하면 취하기 직전까지 마시는 타입이라고는 하나 그날은 그렇게까지 마시지 않았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긴 나쁘지 않네요. 하고 덤덤하게 말하면서 안주를 먹는 그 소년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 와중, 그 소년은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가봐야겠다면서 그만 일어나자고 말했다. 누구인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더 묻지 않고 그냥 능글맞게 웃으면서 보냈다.

 

"그 표정 싫으니까 하지 마요"

 

술잔을 조금은 퉁명스럽게 내려놓고는 덤덤한 말투로 갑니다- 하고 손을 흔드는 그를 보고는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까지 지켜보다 컴컴한 집으로 향했다. 왠지 모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카구라와 신파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곳은 발랄한 카구라의 목소리도, 또 술을 마셨냐며 잔소리를 하는 신파치의 잔소리도 없이 담배 냄새만이 퀴퀴하게 베어 어둑어둑한 와중에 희미한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긴토키는 한숨을 내쉬면서 집의 불을 켰다. 불을 환하게 켰다고 한들 밝지 않았다.

 

"어디 갔다가 와?"

 

소파에 쓰러진 듯이 누워서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는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보면서 약 올리듯이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집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하는 거야?"

 

"어디 갔다가 오는 길이냐고 묻잖아"

 

타카스기는 긴토키에게 바짝 다가와서는 그를 살피더니 이어서 말했다.

 

"술 마셨구나? 너"

 

"... 적당히 해. 나 화나려고 해"

 

"왜 화가 나실까?"

 

비아냥대는 말투. 긴토키는 화난 듯이 그를 한참 쳐다보고는 홱 돌아섰다.

 

"아아, 알았다 너 그 꼬맹이 만나고 오는 길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삐딱하구나?"

 

"... 그만해"

 

"맞네. 왜? 그 애가 뭐래?"

 

"뭘 뭐래. 그런 거 아니야"

 

긴토키는 바짝 다가오는 타카스기를 밀쳐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긴토키는 술김인진 몰라도 어지러운 머리를 감싸고는 방으로 홱 들어간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타카스기는 신경질적으로 뒤따라 들어갔다.

 

"뭐야 너?"

 

"그만하라잖아"

 

긴토키는 머리를 다시금 감싸 쥐고는 말했다.

 

"뭘 그만해?

 

"...... 됐어, 나가"

 

".... 미쳤구나 너"

 

"왜"

 

"오늘은 나랑 안 해?"

 

"어. 나가"

 

"나는 네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돼"

 

타카스기는 비웃는 듯이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아무하고도 있지 마. 나랑만 있어줘.

 

"아.. 그래 지겹도록 들은 말이지"

 

"나... 기다리게 하지 마"

 

"그래, 지겹도록 들었어"

 

지겨운 듯이 타카스기의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 긴토키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면서 담배연기가 자욱한 집안을 환기시키려 창문을 탁 소리 나도록 신경질적으로 열었다.

 

"긴토키"

 

"뭐"

 

"아, 넌 원래 그랬지."

 

타카스기는 돌아보는 긴토키를 보면서 열받게 하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긴토키는 그런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대충 알겠다는 듯이 그를 한번 돌아보았다.

 

"낯짝도 두꺼운 새끼..."

 

타카스기가 그 말을 뱉자마자 긴토키는 화가 난 발걸음으로 타카스기의 앞에 와서 섰다. 타카스기는 그런 그를 살짝 올려다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저기에 꽂혀있는 사진 앨범, 저기에 왜 아무것도 없어? 원래 잔뜩 있었잖아. 다 버렸어?"

 

 

 

 

 

 

* * *

 

 

 

 

 

 

"어딜 갔다가 와?"

 

"형씨랑 술 마셨어요"

 

"빨리 왔네?"

 

"네가 전화했잖아"

 

"그야... 왔는데 네가 없으니까"

 

"아.. 히지카타씨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겁니까?"

 

오키타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히지카타에게 물었다.

 

"그러겠냐 꼬맹아. 근데 웬일로 어디냐는 내 한마디에 바로 들어와?"

 

"그런 거 아닌데. 그냥 거기까지 먹고 싶어서 먹다가 온 거예요. 착각은"

 

오키타는 히지카타의 옆에 앉아서 장난스레 말했다.

 

"춥다 들어가"

 

"싫어, 여기 있을 거야"

 

오키타는 주위를 둘러보며 둔영의 둘러보고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히지카타의 어깨에 살짝 기댔다. 골칫덩어리, 제 말이면 무조건 싫다는 말을 먼저 하는 새끼. 히지카타는 제 어깨에 살며시 기대오는 그의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초반의 간지러운 설렘도 잠깐이었고 익숙해지자마자 다시 본인을 괴롭히는 그 녀석이 히지카타는 좋았다. 가끔은 오늘처럼 알아서 기분을 따라주는 것도 좋다. 한참 그 둘은 서로의 감정에 취해 있었고, 누구나 그렇듯이 그 역시 헤어진 후의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역시 헤어질 생각 같은 것은 하고 있지 않지만, 알 수 없는 변수로 인해서 틀어지는 일은 예측할 수 없기에 괜스레 헤어진다면 어떤 식으로 헤어지게 될까? 하고 이별을 상상하다가 그런 자신이 어이가 없어 그냥 피식 웃었다. 사랑이라는 건 정말 알 수없다. 왜, 언제, 어떻게, 어째서라는 모든 생각의 틀을 깨버리고 빠져나갈 수도 없이 다가와서는, 떠나갈 때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잡히지 않고, 원인을 생각해봐도 납득이 가지 않은 상태로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리고 나서는 이후에 더 괴롭게 미련이라는 모습으로 찾아와서는 다시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괜스레 생각이 난다거나, 하는 뒤늦은 후폭풍으로 몰아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사람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의 양면이라고 생각했다.

 

미츠바도 그랬다. 그녀를 옆에서, 멀리서 지켜보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대체하려 했으나, 잔인하게도 하늘은 지켜보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지금 제 옆에 있는 건 그녀의 남동생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모순되는 상황이기도 하고, 약간 비도덕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옆에 기대어 있는 이 소년을 사랑하게 된 것은 그녀를 지켜보지도 못하게 한 하늘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대어서 작은 숨소리를 내면서 술을 덜 마셔서 아쉽다- 면서 투덜대는 오키타를 보고 작게 웃었다.

 

"왜 웃냐 너"

 

"아니.. 그냥"

 

오키타는 처음 사랑을 시작했기에도 그렇고, 더구나 그 존재가 히지카타였기에 그가 떠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몇 년간 히지카타와 곤도와 함께였던 사이여서 다른 사람들은 잘 믿지 못해도 히지카타라면 믿었던 것이다. 히지카타에게 대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히지카타는 어떤 여자들이 봐도 좋아할 만한 남자였다. 일도 잘하고 매사에 열정적인 데다 일명 '얼굴값'을 못하는 남자였다. 사생활이 문란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분명히. 오키타는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하고 인기 있을 법 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의 유별난 미각만은 제외하고.

 

"히지카타"

 

"응?"

 

"왜, 드라마처럼 혹시 우리 헤어지면 너, 나 둔영에서 계속 볼 수 있어?"

 

오키타는 갑자기 생각나서 장난스럽게 한 말이었지만, 히지카타는 순간 제 생각을 들킨 것 같아서 조금 놀랐다. 하지만 눈앞에 이 장난기 많은 애인이 원하는 답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니 절대. 넌 나 볼 수 있어?"

 

"당연하지. 못 볼 건 또 뭐야?"

 

약간은 당황하는 히지카타의 표정을 보고 오키타는 그 표정을 원했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었다. 장난이야- 장난,하고 웃으면서 말하고 오키타는 한참을 웃었다.

 

"니가 헤어져 달라고 애원해도 절대로 헤어져주지 않을 거야. 감히 니가 나를? 내가 마음 변하기 직전까지 너는 절대로 나를 떠날 자격이 없어"

 

오키타는 제멋대로 중얼거렸다. 아이고, 어련하시지. 히지카타는 그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내가 변하면 넌 어떡할래?"

 

오키타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야..."

 

"넌 놔줘야지! 내가 떠나겠다고 했으니까!"

 

히지카타가 말하기도 직전에 말을 가로채서는 말했다. 너 혼자 물어보고 혼자 답하고, 재밌냐? 히지카타는 그냥 그의 행동이 우스워서 피식 웃었다. 자신과 달리 잡념도 없고, 깊이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 오키타를 보면서 히지카타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성격 탓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성격과 비슷하게 겪은 세월의 간격 탓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저런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오키타 역시 헤어짐에 대한 생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아서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그날은 다시 어릴 적으로 돌아가, 미츠바를 사랑했던 때만큼이나 옆에 기대어 있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깊은 하늘에 떠서 눈 웃음을 보내고 있는 초승달도, 에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별 들도 오늘은 유난히 반짝이는 기분이 들어서 히지카타는 오키타의 어깨를 다시 감쌌다. 피곤하다면서 길게 하품을 하는 그를 보면서 어떠한 변수에도 이 녀석과 떨어지지 않길 기도했다.

 

 

 

 

 

 

 

 

 

 

 

 

 

 

 

 

 

 

 

 

 

 

 

 

 

 

 

 

 

머리를 꿰뚫는 듯한 고통에 그는 걸음을 멈춘 채로 머리를 감싸고 한참을 벽에 기대어 섰다.

 

그는 얼마 전 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을 앓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에도 가봤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자꾸 알 수 없는 검사를 하고, 머리가 아픈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쓸데없이 많은 것을 물어보고는 이렇게 답했다.

 

“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네요. 스트레스성 두통입니다. 신센구미에 1번대 대장이라고 했죠? 어린 나이라 그런지 업무에 의한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은데 뭐든지 훌훌 털어버리고 고민 같은 것은 빨리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의사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진료실을 나왔다. 오늘로써 병원만 8번째였다. 모두가 원인을 모르겠다, 스트레스성이다 이딴 말만 해대서 일부러 큰 병원, 유명한 병원을 찾아갔지만 모두 똑같이 이 말을 반복할 뿐이다. 사실 자신이 들어도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일에 의한 스트레스라니,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닌데. 의사들이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적당하게 때우는 말이 스트레스성이라는데, 그 말이 딱인 것 같았다.

 

둔영에 돌아오자마자 돌아온 그를 보고 히지카타는 달려가서 물었다.

 

“뭐래?”

 

“스트레스성 이래요. 히지카타씨. 역시 니가 나한테 너무 많은 일을 시키니까..”

 

“니가 스트레스성?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새끼야. 니가 그러면 나는 이미 업무과로로 죽고도 남았지”

 

“근데 왜 안 죽냐”

 

쳇 하고 짧은 소리를 냈다. 히지카타는 입을 삐죽 내미는 그를 보곤 병원 결과와 상관없다는 듯이 그의 손목을 잡아 이끌고는 책상 앞에 앉혔다. 그리고 서류를 가지고 와서는 틀린 부분이라면서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진짜 가차없네. 사람이 아프다는데”

 

“어차피 작은 걸로 맨날 그러는거 다 알아 임마”

 

오키타는 히지카타가 내려놓은 서류에 고개를 처박고는 그대로 엎드렸다. 가차 없는 새끼. 나 나름 환자라고-

 

“일어나, 설명 해줄게”

 

“...좀 있다가 할게요”

 

“또 머리 아파서 그래?”

 

“..아니 그냥 귀찮아서”

 

“그럼 일어나봐 알려줄 거 있어서 그래”

 

“고칠 거 써 놨을 거 아냐, 그냥 좀 가요”

 

“일어나보라고 하잖아”

 

히지카타의 말에 오키타는 신경질 적으로 고개를 홱 들고선 그를 쳐다보았다.

 

“여기..”

 

히지카타가 종이에 써 있는 글자를 가리켰다. 오키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선 히지카타가 가리킨 종이로 시선을 잠시 내려서 보고는, 그 글씨를 보자마자 얼어버렸다.

 

[나 너 좋아해]

 

...?

오키타는 그 글자를 읽고 완전히 당황한 표정으로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그 글귀만 봤을 때는 낙서 인줄 알았다. 의미를 묻으려 그를 다시 쳐다보자 히지카타는 오키타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다가, 황급히 서두르면서 서류를 챙기면서 말했다.

 

“여.. 역시 너 아프니까 일은 내일 해”

 

“뭐... 뭐야?”

 

그리곤 그의 반응에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글귀였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서류에 낙서처럼 써 있던 그가 가리킨 문구를 보고는 넋이 나가서 아무런 말도 잊지 못했다. 히지카타는 서둘러서 그 서류 뭉치를 집어 들곤 도망치듯이 뛰어 나가버렸다. 좋아한다고 써 있었던 거야 지금? 항상 히지카타를 어떻게 괴롭힐지 고민하는 그에게 히지카타의 이 것은 분명히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찬스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과 히지카타는 이런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말도 안 된다고 다시금 생각하면서, 저 새끼 진심인가? 하는 생각에 이상하게 사로잡혀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딱히 그 이후로 히지카타는 별로 특별한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키타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었다. 자신를 떠보는 건지, 진심인지, 아니면 엿먹이려고 하는 건지 그는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신센구미 안에서의 히지카타를 한참이나 눈을 부릅뜨고 관찰하다가 시선이 마주치면 서둘러서 홱 피하곤 했다. 이상하게 맨날 마주치던 눈인데 뭔가 마주보기가 두려웠다. 그러면 히지카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소고,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봐’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곤 했다. 그러면 괜히 본인만 혼자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잊어버리려 도리질을 치며 히지카타와 무리지어 있는 쪽으로 달려가서 본인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곤 했다. 그런 행동이 더 혼란스러웠다. 좋아한다고 제 할말만 툭 던져놓고 가면 어쩌라는 거야. 저 새낀 항상 그런식이였다. 그의 이런 우유부단한 행동이 왜인지 모르게 자꾸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왜 인지 모르게 자신이 마음속에 히지카타를 너무도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미치도록 자존심 상하면서도 수동적으로 그가 어떤 행동이라도 취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차마 먼저 다가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서 너, 나 좋다며? 라고 묻기도 너무 구차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땡땡이를 칠 때 늘 찾아가는 공원의 벤치는 나무의 그늘이 적당히 그물쳐 딱 좋은 장소였다. 나뭇잎 틈틈으로 보이는 하늘이 눈이 크게 부시지 않아서 적당하기 때문이다. 그는 종종 그 곳에 앉아서 틈을 내서 땡땡이를 치면서 쭈쭈바 따위를 쪽쪽 빨면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유난히 복잡한 생각들을 잊으려 멍한 눈으로 앉아 있었다. 돌이켜보면 곤도씨도 곤도씨지만, 제 옆에서 항상 붙어 있었던 것은 히지카타였고, 자신의 어떤 말에 잽싸게 반응해주는 것도 히지카타였다. 곤도가 신파치의 누이를 따라다니면서 애정을 구걸하는 모습을 봤을땐 별 생각이 없었지만, 전에 마츠다이라 선생의 딸인 쿠리코의 연애를 훼방놓기 위해 히지카타가 그녀에게 잘해주는 모습을 지켜볼때는 이상하게 기분이 언짢았던 것도 기억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런데서 땡땡이냐?”

 

언제 왔는지 모르게 히지카타가 다가왔다.

 

“흥, 땡땡이 아니고 잠깐 쉬는 거거든?”

 

그가 볼멘소리로 히지카타에게 투덜투덜 거리면서 말했다.

 

“일 완전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이야기 한다 너?”

 

히지카타는 오키타의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오키타는 히지카타가 앉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일을 하러 갈 거라고 말하면서 그를 잔뜩 노려보았다.

 

“소고”

 

그런 오키타의 손목을 잽싸게 잡아채면서 히지카타가 말했다.

 

“생각.. 해봤어?”

 

“뭘?”

 

“아니.. 그.. 내가.. 전에...”

 

히지카타는 답지 않게 우물쭈물 댔고, 오키타는 순간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그가 지금껏 기다렸던, 장난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휙 넘기듯이 말한 그 고백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어...어..어어?”

 

자신도 완전히 당황해버렸고 얼굴이 훅 달아오르는 느낌에 고개를 푹 숙였다. 혹시나 달아오른 얼굴을 눈치채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그니까... 네 생각을...묻고 싶.....”

 

“.........씨발 이 병신새끼 진짜!”

 

오키타는 당황하면 더 욕이 먼저 튀어나올 때가 많았다. 사실 누구나 그렇듯이 사람이 욕을 할 때는 화가 나서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보다는 화가 났는데 할 말이 없거나, 당황하거나, 답답할 때가 많다. 오키타는 지금 당황하고 답답해서 욕을 뱉어내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그의 욕에 당황해서 약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을 할 거면 바로 하던가. 진짜 재수없게. 넌 진짜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는 새끼야!”

 

“.. 역시 내가 싫..”

 

“당연히 싫지! 완전 병신새끼 아니야 이거! 완전 싫어! 세상에서 제일 싫어! 너 같은 새끼 진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진짜!”

 

오키타는 씩씩대면서 화를 냈다. 히지카타는 그런 오키타의 격한 반응에 약간은 놀라하면서도 실망한 기색을 보이면서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손은 왜 놔?”

 

“응?”

 

“이런 이야기를 할 거면 빨리 하란 말이야! 자꾸 사람 속 터지게 새..생각할 시간.. 주지 말고.. 그렇다고 그 이후에 뭐 달라지는 행동도 없고.. 뭔가 얼마나.. 내가 새.. 생각했...는데...”

 

오키타의 말에 히지카타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오키타는 그대로 그냥 일하러 갈 거라면서 씩씩대면서 뛰어갔다. 히지카타는 그런 그의 뒷 모습을 보고 그 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멍하니 있었고, 오키타도 그 날은 이상하게 다른 대원들을 괴롭히지 않고 그냥 조용하게 있었다. 대원들이 부장님이 오라고 하시는데요 라고 말하면 멍하니 앉아 있다가 과민반응을 보이면서 응? 나? 나? 하고 외치자 다른 대원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뭐 잘못하셨어요? 대장님 말고 야마자키요. 이러면서 무슨 사고를 쳤냐고 묻기도 했다.

 

 

 

둘 다 서툴러서인지 시작은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오키타는 처음 겪는 이런 간지러움과 익숙한 히지카타에게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어색함이 싫으면서도 싫지 않았다. 본래 옆에 있던 친근한 것이 갑작스럽게 어색해졌다는 이질감에 오키타는 한 동안은 히지카타를 둔영에서 피했다. 그 어색함이 미치도록 싫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한 지붕에 같이 있는 사이라서 마주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대원들이 모르게 하려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려 하면 히지카타는 그런 그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 투덜대면서 손을 살짝 뿌리치면서 만지지 말라고 화를 내면서도 심장이 콩닥콩닥뛰었다.

 

히지카타는 그런 그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서 그가 혼자 있을 법한 곳을 찾아가서 말을 걸곤 했다. 사실 본인도 어색해서 한참 근처에서 빙빙 돌다가 심호흡정도를 한번 하고는 찾아가서 말을 걸었다.

 

“괜찮아?”

 

갑작스레 다가온 히지카타 때문에 오키타는 눈에 보일 정도로 화들짝 놀랐다.

 

“깜짝이야.. 뭐가?”

 

“머리 아픈거, 이제 괜찮냐고”

 

“다 히지카타씨 때문이니까 이제 히지카타씨가 내가 할 일까지 다 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땅바닥을 쳐다보면서 애꿎은 땅바닥을 발끝으로 툭툭 찼다. 히지카타는 이런 오키타의 행동이 사귀자는 말을 하고 난 다음에 오는 간지러운 어색함 이라는 것을 알아서 머리칼을 잔뜩 헝클었다. 오키타는 다시 화악 얼굴이 붉어지면서 주위를 살폈다.

 

“왜?”

 

“누... 누가 보면 어떡해”

 

“너 되게 신경 쓰는구나 이 정도가 뭐 어때서”

 

사실 그렇게 신경을 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자꾸만 몰려오는 어색함이 앞서서 한 행동이었다. 히지카타는 그런 오키타가 마냥 귀엽게만 보여서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 * *

 

 

 

 

히지카타에게 오키타는 문제 덩어리에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삼는 귀찮은 자식일 뿐이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문제 덩어리. 항상 싸우고, 대들고, 정말이지 답이 없는 자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 그를 뒤쫓는 자신의 행동이 제 자신도 피곤했다. 그리고 그가 어느 날부터 가끔 두통에 시달린다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오키타를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대원이 아프다고 해도 걱정을 했을테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과하게 챙겨주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병원에 갈 필요는 없을 거라는 그를 거의 반 협박에 명령 어조로 병원에 갔다 오라면서 강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직접 끌고 가기도 했다. 한 병원을 믿지 못해서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들은 답은 모두 똑같은 대답이어서 그나마 안심했다. 선천적으로 조금씩 두통을 앓는 사람이 있다면서 그런 것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스트레스도 주의 하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상당히 예민한 녀석이니 알게 모르게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꽤나 받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큰 병이 아니었다는 데에 안심하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피곤한지 운전석에서 얌전히 잠든 녀석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어렸을 때부터 지내왔던 시간이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랐다. 제 누나나, 곤도씨 때문에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모습,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하면서 왜 자신도 그땐 그런 이 녀석을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어린아이의 입장에서는 항상 자신만을 봐와주는 사람의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빼앗긴다는 것은 꽤나 충격이었을 텐데.

 

 

 

“뭐? 지금도 내가 히지카타씨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냐고요? 미친”

 

셋이서 술을 마시던 중. 곤도가 갑작스레 자리를 비우면서 뜻하지 않게 둘이 술을 마시게 되었을 때, 아직도 자신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안주를 뒤적거리던 오키타는 완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착각도 자유지. 그건 그냥 어릴 때 이야기라고요. 지금도 물론 히지카타씨가 싫다는 것은 변함없지만 지금 곤도씨는 너보다 나를 훨씬 더 좋아하거든?”

 

완전히 유치한 대답에 히지카타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약간 취해서 살짝 풀린 눈으로 웃는 그를 빤히 쳐다보던 오키타가 다시 말했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나를 보고 있다는 게 더 짜증나. 씨발새끼야. 너는 항상 너 새끼가 존나 잘났다고 생각하지?”

 

“누가 그렇데?”

 

“아, 그렇게 잘나신 분이 왜 아직까지 연애도 안하고 이러고 살고 계실까? 응?”

 

“관심 없다니까”

 

“그것도 너 잘났다 이거잖아. 이 여자 저 여자 다 나와는 수준이 안 맞아 뭐 이런 거잖아. 역시 진짜 싫어.”

 

오키타는 술을 다시 한 모금 들이키고는 풀린 혀로 하 싫어. 진짜 싫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꼭 너같은 놈들이 제일 오래살더라 하고 풀린 눈으로 쳐다보면서 연거푸 술을 홀짝 홀짝 들이켰다. 오키타는 술을 마시면 취할 때 까지 먹는 편이었다. 취한것 같다면서 말려도 연거푸 술을 들이키는 주변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피곤하게 하는 그런 타입. 그런 그를 알아서 히지카타는 조금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늦은 시간에서야 그만 돌아가자면서 일어섰을 때 오키타는 꽤 취했는지 약간 비틀 비틀 거리며 걷다가 히지카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

 

“취했어?”

 

그 말에 오키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취했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어하면서도 걷기가 힘에 부쳐서 자신의 손목을 꼬옥 잡는 그 적당한 온기가 좋았다. 사랑은 특별한 장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서 온다. 뜬금없이 그냥 뭘 먹을까? 하고 물어보는 그 순간에도, 그냥 신발 끈은 고쳐 묶는 일상적인 순간에도.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장면은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장면이겠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사소한 찰나를 보고 그 사람을 다르게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기에 특별한 것이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그때 자신이 오키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버렸다. 그가 잡은 손을 가볍게 풀었다. 자신을 살짝 올려다 보는 오키타를 한번 보고는 약간 비틀거리는 그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으면서 가자- 하고 작게 말하곤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놓으라고 화를 내야 할 녀석인데 그 날 따라 고분고분하게 기대어 걸었다. 오키타는 지탱이 잘 되지 않았는지 히지카타의 허리 부근의 웃옷 제복을 어린애마냥 주먹으로 콱 움켜 잡았고, 그 감촉에 히지카타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의 어깨 부근을 다시금 꼬옥 끌어 안았다.

 

 

 

 

* * *

 

 

 

 

"타카스기"

 

"응"

 

"....니가 에도에 있다는 소문 쫙 퍼졌어"

 

"근데?"

 

"알아두라고"

 

"뭐야, 걱정하는 거야? 나를?"

 

타카스기는 들고 있던 곰방대를 한입 깊이 빨아들였다.

 

"그냥.. 알아두라고"

 

긴토키는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

 

"일하러"

 

"일을 하긴 하는 구나"

 

"얹혀 사는 주제에 그런 식으로 말하긴"

 

긴토키의 말에 타카스기는 눈꼬리를 살짝 휘면서 웃어보였다.

 

"얌전히 있어"

 

긴토키는 무언가 짜증난다는 듯이 수건을 잡아채어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저렇게 차갑게 뒤돌아서도 다시 와서는 날 찾을거면서. 타카스기는 그가 누워있던 온기가 남은 이불을 확 끌어 안았다.

그가 들어간 샤워실에서는 쏴아아 하고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관계를 할때 긴토키는 좀처럼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사랑해 라던가, 좋아해 라던가 하는 보통 연인들이 하는 그런 자상한 한마디도 없다. 관계를 원할 때는 그냥 와서 이렇게 한마디 했다.

 

'이리와'

 

그렇다고 해서 타카스기는 그 한마디가 싫지 않다. 뭔가 진짜로 원하는 것 같잖아. 물론 순순히 가지는 않는다. 몇 번은 순순히 갈 때도 있지만, 원하는 쪽이 와. 라고 다소 비웃는 듯이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묘한 표정으로 표정을 일그러트리면서 다가와 머릿채를 거칠게 휘어잡으면서 말했다.

 

'좋네'

 

그러면 타카스기는 그런 긴토키를 보면서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것이다. 그 웃음이 짜증난다는 듯이 긴토키는 그를 거칠게 잡아챘다. 허겁지겁 옷을 벗기고, 그의 속살이 하얗게 빛을 발하면 성급하게 그의 맨살에 입술을 맞대며 온기를 확인했다.

 

긴토키는 타카스기의 입이 자신의 것을 가득 물고 새빨간 혀로 겉을 조심스럽게 애무 할 때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낄 정도로 좋아했다. 그리고 일부러 타카스기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따뜻한 입안에 더 깊숙히 집어넣으려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할때 타카스기의 힘겨워하는 표정을 즐겼다. 보통의 사랑하는 관계라면 (남자와 남자끼리 이런 관계를 맺는것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보겠지만) 왜 사랑함이 느껴지지 않는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텐데, 그렇다고 타카스기가 그런 그를 싫어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즐겼고, 일부러 긴토키를 자극해 더욱 자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면 한껏 미쳐버리겠다는 표정을 짓고 웃음 짓던 긴토키는 표정이 싹 굳히고는 말했다.

 

‘재밌냐?’

 

저도 재밌어 죽을것 같으면서. 그 물음은 긴토키 제 자신에게도 하는 질문임을 타카스기는 알았다. 그 물음에 타카스기가 다시 야릇한 웃음을 보이면 확 뿌리치고는 그에게서 등을 돌리곤 했다. 아, 항상 이런 건 아니다. 오늘은 그 모습이 더 꼴렸는지 화가 난 듯 거칠게 끌어 안았다. 낡은 침대의 삐걱거리는 마찰음과 환희와 약간의 고통어린 교성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흐읏... 더 해줘 더.'

 

'미친새끼'

 

타카스기의 말에 긴토키는 욕설을 나직하게 뱉으며 더욱 거칠게 그를 안았다. 분명 남들이 봤을 때는 정상적이지 않은 이상한 관계였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런 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어찌됐든 그 둘은 즐기고 있었으며, 이 둘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비밀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수건으로 거칠게 닦아내며 나온 긴토키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로 담배를 피우는 타카스기를 나무랐다.

 

"집 안에서 담배피우지마."

 

"밖엔 나가기 귀찮아"

 

타카스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다시 입에 가져갔다. 긴토키는 한참 그런 그를 노려보다가 그냥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즈라가 너 물어보더라"

 

긴토키가 천장에 흩날려 나부끼는 뿌연 연기를 보다가 말했다.

 

"근데?"

 

"잘 지내냐고"

 

"그래서?"

 

"난 그냥 잘 모르겠다고 했어"

 

"응"

 

"나갔다 올게 조용히 있어"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귀찮은 새끼. 타카스기의 행동이 긴토키는 싫다. 둘이 알고 지낸 세월이야 길다지만 타카스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등을 다 안다는 듯, 하지만 입 밖으로는 절대 꺼내지 않으면서 행동했다. 그것이 더 기분 나빴다.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 새끼. 괴롭혀도 괴롭혀도 오히려 그런 것을 즐기는 듯한 태도 또한 화가 났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