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누나는 꽤나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다. 거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의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여러 곳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곳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하얀 환자복을 입고서, 병문안을 가면 힘 없이 웃어주던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고 가슴이 아파온다. 힘 없는 눈동자 사이로 죽음이라는 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로부터 듣는 말은 항상 절망적인 이야기. 의사는 거의 포기하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왔고 그 역시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했다. 탄식과 한숨에 가까운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서 자리를 떴다. 


자존심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히지카타 역시 옆에서 슬퍼했지만 오키타와 슬픔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히지카타로써는 본인이 한번 거절한 여자를 앞서서 걱정하는 것이 조금은 오지랖이라고 생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키타는 히지카타가 자신의 누나를 생각한다고는 조금의 생각도 하지 못 했다. 그렇게 친하게 지냈다고 한들 자신이 차버린 여자는 관심도 없다 이거구나. 가끔 위로해주려는 듯이 한 번씩 눈길을 던지는 히지카타를 느끼기도 했으나, 저 혼자의 오해라고 받아들이고는 혼자서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정말 예상도 하지 못할, 상상도 못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기적이 그에게 일어났다. 싸구려 삼류 드라마 따위나, 아이들이 보는 교육적인 동화책에서 있을 법한 그런 기적. 착한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그런 어이없는 결말 만큼이나 허무한 그런. 

절대로 나을 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장담하던 그 의사가 갑자기 병이 호전되었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에게 말했다. 병이 호전되었다니. 어째서요? 절대로 방법이 없다고 해놓고는 무슨 일이죠? 기쁜 마음 반절, 그리고 불안한 마음 반을 가지고서 물었다. 의사도 모른다고 말했고 꼼꼼한 검사를 해봐도 정말로 눈에 보이게 확 좋아진 증세에 그는 행복했다. 미츠바도 그 결과를 보여주듯이 다시 혈색이 좋아졌고 어느새 퇴원을 해도 좋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약은 꾸준히 먹어야 했고, 폐병에 의한 약간의 후유증으로 가끔 기침을 해댔지만 이미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게 된 제 누이를 보고 오키타는 한편으로 안심하면서도 혹시나 언제라도 저를 떠날까 봐 무서워져, 누이에게 말했다.


"누님, 그냥 에도로 올라오세요. 저 너무 걱정이 되서..." 


"에도? 아.. 그건 생각을 좀...."


그녀가 망설이는 이유를 그는 알았다. 히지카타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새끼. 그렇게 아프다는데도 문병 한 번 오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물론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제 누이를 받아 주지 않았다는 것도. 하지만 사랑에 아파하는 누님을 보면 그래도, 그래도 그가 마냥 미워 그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누님도 아파하겠지.


계속 생각해볼게, 생각해볼게 하고 미루는 미츠바의 대답에 답답해, 그는 히지카타에게 부탁을 하기로 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이런 부탁을 자신이 한다는 것도, 그리고 특히나 그 녀석에게 누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미치게 자존심이 상해서 수차례 다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에 그를 찾았다.


조금은 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방문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고민 끝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마디 내뱉었다. 


"히지카타씨. 할 이야기가 있어요"


히지카타는 여전히 차갑고 냉정한 눈빛을 하고 있었고 그 눈빛에 질세라 오키타 역시 평소보다 더욱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들어오라고 말하는 그, 그리고 그 공간의 분위기가 무겁다. 수차례 고민을 했다고 한들 그의 자존심에 쉽사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자신이 그에게 부탁을 하러 왔다는 것부터가 정말 꺼림칙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를 알기에 그가 거절할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에겐 한줄기의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리하기에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입을 떼었다.


"...누나가 병에서 나았어요"


"그래?.. 확실한 거야?"


무뚝뚝하게 그랬구나. 정도의 덤덤한 반응을 예상했건만 그는 눈에 띄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었고 그의 반응에 오키타도 약간은 놀랐다. 


"네.. 뭐.. 일단은 그래서 퇴원도 했고.. 아예 완벽하게 나은 건 아니지만.."


"그거 정말.. 다행이네.."


그 말을 더듬으면서 말하고서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얼핏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 오키타는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말했다.


"... 히지카타씨. 누님께 한 번만 연락이라도 해주시면 안 됩니까?"


"무슨 말이냐 그거"


"..... 나 역시 네가 진짜 재수 없고 마음에 안 드는데.. 걱정이 되서 에도에 올라오라고 해도 싫데요. 그 이유가 뭐겠어요? 다 당신 때문...."


"미안. 나에게 그럴 의무 없어"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연락 한번 하는 게 그렇게 힘들까? 게다가 병이 호전되었다니까 그렇게 안심한 듯한 미소도 보였으면서. 오키타는 그를 한참 쳐다보다가 말했다. 


"역시 너는 재수 없는 새끼네"


그리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누님은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저런 새끼를 좋아한답니까? 누님처럼 예쁜 여자가 다가오면 어떤 남자던 다 좋아할 텐데. 세상에 저 새끼보다 잘난 새끼 한 명이 없겠어요?











***











방을 나간 오키타를 한참 보던 히지카타는 술김에 실수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입을 맞췄던 일이 슬그머니 생각난다. 사랑했다. 감추려던 그 억압에 있어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고 돌이켜보면 죄악이었다. 실수였다면서 머뭇거리면서 어리숙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다 알고 있다는 식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에도에 갈 때 자신도 데려가 달라면서 서늘한 가을밤의 낙엽이 쓸리는 그 바람 속에서 말했다. 그녀는 아마도 그 입맞춤으로 감정을 확신하고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단호한 거절에도 그녀는 생각보다 덤덤했고 떠나는 마지막까지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참 고마웠다. 


오키타는 미츠바의 마음을 거절한 것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픈 그녀의 병문안도 가지 않았다는 것에서 엄청난 살기를 띄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남몰래 병원에 찾아간 적은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못 했다. 계속 그 앞에서 서성이다가 사들고 왔던 하얀 꽃다발을 병실 앞에 슬쩍 두고 돌아왔었다. 그것을 미츠바가 자신이 두고 갔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히지카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라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죄를 지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누님에게 연락이라도 한 번 해주면 안 되겠냐는 그 녀석의 말이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오키타는 제 앞에서 미츠바의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어떻게 하면 자신과 미츠바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이야기를 할까 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우습다. 


키스, 그리고 병원에 찾아갔다가도 그냥 돌아왔던 일. 차마 전해주지 못하고 두고 왔던 꽃다발.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면 더 이상의 접근은 안된다고 다 잡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연락을 취하고 싶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녀석만큼은 아니겠지만 역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고 병이 나은 그녀의 모습을 한 번쯤 더 보고 싶기도 했기에.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마음을 다시 다 잡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토시로씨. 저예요. 잘 지내세요?]


미츠바였다. 놀라서 잠깐 움찔하는 순간 핸드폰이 한번 더 울렸다.


[전에 꽃 두고 가신 거 당신이죠?]


그 연락에 다시 한번 이유 모를 한숨을 푹 쉬고는 답장을 했다.


[퇴원했다면서? 건강해졌다고 들었어. 다행이네]


[다행?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당연하지. 이제 소고 녀석도 조금 마음 편하게 있겠어]


[그러겠죠? 소고 많이 챙겨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어]


[나, 에도에 가도 돼요?]


어째서 이런 것을 나에게 묻는 것일까? 소고 녀석이 했던 말이구나 하는 생각에 멈칫했다가 답을 했다.

 

[왜 그걸 나에게 묻는 거야? 상관없잖아]


[상관이 있으니까 묻는 거죠]


[말이 이상한데? 내가 오지 말라고 하면 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네]


[싫으시다고 하면 안 갈 거예요]


[싫을 이유야 없지]


[에도에 가면 만나주실 거예요?]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만나도 될까?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녀에게 나쁜 사람이지만.. 혹시나 나중에 일어날 일들로 인해서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 하지만 그런 온갖 생각들을 이겨낼 정도로 그녀가 보고 싶었나 보다.


[그래. 만나자]






에도로 떠나기 전에 봤었고 중간에 한 번 더 만날 일이 있었지만 그 이후가 처음이었다. 하얀 백합처럼 웃으며 나타난 그녀는 몇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다. 모습이 보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피우던 담배를 서둘러 버리고서는 오랜만에 싸울때의 긴장감이 아닌 따스한 설렘이 그를 새삼스레 떨게 만들었다. 


"여기 와보셨어요? 저는 여기 소고와 함께 와봤어요"


어딜 가야 할 지도 몰라 망설이는 그에게 그녀가 안내한 곳은 그와 오키타도 자주 다니던 카페였다. 항상 사람이 많고 시끌시끌 했었는데 그 날은 도와주는 것인지 새삼 사람이 없이 고요했다.


"뭐.. 나도.. 소고녀석하고 왔었어"


"여전히 제멋대로 굴고 있는 것 같던데. 토시로씨 말도 여전히 잘 안듣고 있죠?"


"아냐, 잘 들어"


"거짓말"


입을 살짝 가리고서 웃는 모습이 귀여웠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하나도 변한게 없네"


"변한게 없다뇨? 머리 잘랐잖아요. 전에는 긴머리였는데, 기억도 못하는거죠?"


"아, 아니야 기억하고 있어"


여자는 시간이 흘렀어도 하나도 변한게 없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역효과가 나버렸다. 히지카타는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자 미츠바가 말했다.


"머리, 다시 기를까요?"


"왜?"


"기른게 더 나았으려나 싶어서"


"아냐, 둘 다 예뻐"


무심코 이야기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뱉은 진심에 히지카타도, 미츠바도 둘다 순간 얼어서 잠시 말이 없었다. 하얀 피부가 살짝 붉게 물드는 미츠바를 보고 히지카타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둘은 살짝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고는 부끄러운지 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드문드문 들기야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히지카타는 다시 느끼는 그 설레임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살며시 지었다.



오키타는 그 둘이 만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누나가 에도로 와야겠다고 다짐을 한 것은 순전히 본인이 오라고 설득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키타는 그 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시 마음을 확인해서 둘의 관계가 약간은 변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이상하게 에도에 온 이후 행복해 하는 미츠바의 모습이 오키타에게도 훤히 보여서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저 건강이 좋아졌고, 자신이 옆에 있다는 것에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여전히 히지카타를 싫어하기는 했지만 미츠바와 히지카타가 그저 전처럼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된 거라고 생각을 했기에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는 미츠바를 보고 그저 마음의 정리를 한 줄로만 알았다. 


미츠바는 둔영에 종종 찾아왔고 그럴때마다 사고를 치던 오키타는 바로 수습하고서는 누님, 오셨어요? 하고 정 반대의 행동을 보였다. 그래서 둔영의 대원들은 미츠바에게 더 자주 찾아와주면 안되느냐고 부탁하는 일도 많았다.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점은 히지카타가 담배를 줄였다는 점이었는데, 그저 요즘에 금연에 대한 주변의 권유도 많았고 히지카타 본인도 담배 이제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고 입버릇 처럼 말했던적이야 많았기 때문에 이번엔 정말로 담배를 그만두려는가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미츠바는 히지카타와 데이트를 할때 오키타를 종종 같이 데리고 갔다. 히지카타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물론 둘이 즐기는 날도 있겠지만 영화를 본다거나 밥을 먹을때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면서 셋이서 약속을 잡는 경우도 많았다. 누나의 부탁이면 거절 못하는 그였기 때문에 당연히 같이 보자고 하면 히지카타가 싫어서 싫더라도 네! 누님 하고 깎듯하게 대답하곤 했다. 사실 그 약속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혹여나 미츠바가 마음을 숨기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더불어 받아주지 않는 히지카타에게 다시 고백을 하고 상처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다. 


"누님, 히지카타... 말이에요"


"응?"


"이제 아무렇지 않은 거에요? 저는 누님이 그 녀석과 이야기 하는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후훗 왜?"


"자기는 아무렇지 않다 이거잖아요 개 같은새끼가.. "


".....나도 아무렇지 않은데?"


미츠바는 히지카타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가 조금은 두려워서 둘이 만난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비밀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말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영화를 볼때나 밥을 먹을 때나, 미츠바와 이야기 한마디만 하면 으르렁대면서 날을 새우고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그를 보면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누나에게 한번만 더 상처를 주면 널 죽여버릴거야"


"....뭐?"


틈틈히 본인을 찾아와서는 한마디씩 살기를 띄면서 하는 말. 히지카타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웃어? 이새끼야 웃어? 나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열 받아있거든? 오키타는 씩씩대면서 말했고 그런 오키타를 보며 히지카타는 완전히 황당한 표정으로 '네네, 어련하시겠습니까' 하고는 머리를 한대 쥐어박고는 했다. 











***












"대장, 괜찮으세요? 대장"


멀리서 울리는 대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다가오더니 크게 울렸다. 그 말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차 안이었고, 방금 전까지 앞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던 두 대원들은 걱정이 되었는지 제 옆에 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 어어..."


"많이 안 좋으시면 그냥 쉬세요. 부장님은 왠지 믿지 않으실 것 같긴 한데.. 그럼 누님께 데려다 드릴까요?"


".. 누나?"


누나는 죽었다. 하지만 방금 갑자기 비집고 들어온 기억을 보면 누나는 죽지 않았고, 둔영에서 멀지 않은 작은 집에 살고 있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의심이 들기도 했고,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서 그는 그대로 제 옆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들을 냅다 뿌리치고서 본인의 기억 속의 그 집을 찾아가기 위해서 뛰었다. 멀지 않은 곳이어서 뛰어도 충분한 거리였다. 10분 정도 뛰었고 그는 본능적으로 그 처음 보는 집의 위치를 알았다. 누가 알려준다거나, 건물의 외관도 본 적이 없지만 본 적이 있었다. 세모난 갈색 지붕, 그리고 작은 잔디밭. 그리고 빨간색 우체통. 아. 누나는 우체통이 빨간 색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흰색으로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하고 생각했다가 부슈에 있는 집에는 우체통 따위를 달기 위해서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마침 문이 열리고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소고! 지금 순찰시간 아니니? 또 땡땡이치는 거야?"


조곤조곤한 말투, 웃으면서 나온 사람은 정말로 그의 누이였다. 한참 눈을 깜빡여도, 눈을 비벼도 그녀가 맞았다. 닮은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동일인물이었다. 귀신을 봤다며 무서워할 수도 있고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잔뜩 경계할 수도 있지만 그는 그 무엇보다 우선 꿈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녀가 제 앞에 나타나 있다는 것. 그래서 꿈이라고 생각을 하고선 다가갔다. 하지만 너무도 생생한 촉감 등등이 이상할 정도였다.


"소고, 왜 그러고 서 있어?"


".... 누.... 누나?"


"뭐야, 왜 그래?"


"... 정말로.. 정말 누나예요?......"


"뭐야, 장난치는 거야?"


"아.. 아니요.. 누.. 누나.. 보.. 보고 싶...었....."


"응? 어제도 봤잖니. 그렇게 맨날 보고 싶은 거야?"


하고 웃어 보였다. 어제? 어제도 봤었나? 하고 생각하자 이상하게도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히 어제 미츠바는 오키타에게 이틀 뒤에 히지카타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면서 물었었다.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도 대충 기억이 난다. 최근에 개봉한 스릴러 영화를 보자면서 잔뜩 들떠했었다. 


"내일 영화 보는 거 잊지 않았지?"


미츠바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기억이 맞다. 없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믿기지가 않아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미츠바의 손을 덥석 잡고서는 와락 품에 안겼다. 미츠바는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그를 쳐다보았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러니?"


부모의 심정으로 그를 키워온 미츠바로 써는 이렇게 안겨오는 그가 마냥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님, 그럼 내일도 여기에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럼? 이사라도 갈까봐?"


미츠바는 그의 말에 꺄르르 웃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응?"


"아.. 아니에요 누나... 저..."


"왜 이러니 오늘? 지금 일 해야할 시간 아니야? 너 이러다가 토시로씨에게 또 혼난다?"


하고 말하면서 빙긋 웃었다. 그런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하던지 신경쓰지 않았다. 히지카타는 어차피 그에게 아무런 말도 못할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지금은 그 어느것도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다. 이대로 뒤돌아서 가버리면 영영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초조했고 가슴이 너무 쿵쾅쿵쾅 뛰어서 얼른 가보라고 말하는 미츠바의 말을 들으면서도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가 다시와도 누님은 여기에 있나요?"


"자꾸 왜그러니? 당연하지"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려 하는 그를 보고 수상하게 여긴 미츠바는 그의 인상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말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어디 아픈거야?"


"아..아뇨.. 그게 아니라... 너무... 안믿겨서... 너...너무 좋아...서요"


"뭐가 그렇게 좋을까? 소쨩이 좋으니까 누나도 기쁘다"


누나는 죽었잖아요. 이미 무덤에 묻힌 사람이잖아요.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잖아요. 근데 지금 내 앞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서 있잖아요. 다시.. 사라질거잖아요. 


"나랑 오늘 하루는 하루종일 있으면 안돼요?"


오키타의 평소에 행실이 과격하고 난폭하다는 것 쯤은 미츠바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앞에만 오면 순한 양이 되어버린 다는 것도. 하지만 이렇게 심하게 매달려오는 적은 별로 없었기에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부모님 없이 자란 그가 한번쯤 응석부리고 싶어하는 날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하고는 웃으면서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좋아하는 표정은 아니었고 약간 어두움에 시린 표정을 계속 짓고 있을 뿐이었다. 


아는 곳이 별로 없는 미츠바는 얼마 전 히지카타와 갔던 카페로 오키타를 데리고 들어갔다. 딸랑 하는 종소리가 조금은 즐겁게 들리기도 하고, 뭔가의 끝맺음을 주는 듯이 서글프기도 하였다. 마주보고 앉은 둘. 오키타는 왜 인지 한참 말이 없었고 미츠바는 그런 그를 조금은 풀어주기 위해서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소고, 여기 전에 같이 왔었던 곳이잖아. 나 기억 잘하지? 소고는 뭐 마실거야?"


"아. 저요. 음.. 아, 누나 여기 새로 나온 딸기로 된 음료가 있던데 드셔 보셨어요?"


"응 얼마 전에! 맛있었어"


"..그래요? 누구와 오셨어요?"


"토시로씨랑 곤도씨랑 왔었어. 넌 일하는 중이라서 못불렀네. 미안"


보통 히지카타와 갔다고 말을 하면 왜 또 그 자식과 함께였냐면서 화를 냈어야 할 그여야 할텐데 조용히 있는 그가 수상해, 잠시 정적을 지키다가 다시 말을 했다.


"아참, 토시로씨가 너 엄청 칭찬하던데? 얼마전에 네가 대형범죄자를 잡았다고 그러던데 왜 말 안했어?"


"네? 아.. 아니 뭐.. 딱히 별게 아니라서.."


"별 일이 아니라니, 누나는 소고가 정말 자랑스러워"


타카스기를 잡았다는 것은 변함이 없구나 하고 그는 한참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항상 만날 수 없는 그녀와 함께 있기에 모든 것을 우선 뒤로 미루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누님, 이대로 제 곁에 계속 머물러주세요. 계속 내 옆에 있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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