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꼬리표 完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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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는 존나 착하다. 항상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고, 부하들을 갈구는 때에는 죽어라고 갈구지만, 오래 지켜봐온 나는 알고 있다. 아, 물론 그렇다고 병신같이 착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가끔 병신보다 더 병신같이 착할 때도 있다는 것. 아- 그립다. 정말 병신 같다고 느꼈을 때가 있었는데. 우리의 사랑이 가장 컸던 때였다.


지금 현재 그와 나의 위치를 바꾼다면 난 아마 반강제적으로 행했다고는 하나 동기를 부여한 그에게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인데, 그는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는지 계속해서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나 아무렇지도 않아.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안에서만 빙빙 돌 분,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위로하기는 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음.. 딱히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그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 스스로가 하고 싶은 움직임을 취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그도, 나도 움직임을 멈춘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몸을 일으켰을때 그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내 곁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번엔 나를 위해 무릎을 꿇었다고 생각하니까 몸이 전율하듯이 기뻤지만,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우선 나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몸을 일으키면서 짧은 신음을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것이다. 히지카타는 그런 나를 보고 널부러진 옷을 주워다 주었다. 그가 내민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으면서도 몇 번이나 짧은 신음을 뱉으면서, 그리고 그의 표정을 관찰하면서 알았다.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지를. 사람은 개와 같아서 쫓으면 도망가고, 뒤돌아서면 쫓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까지 내가 그를 쫓았다면, 지금 이 일을 계기로 그와 나의 위치가 바뀌었다. 나는 이렇게 가끔씩 뒤돌아서 있으면 되고, 그러면 그는 나를 쫓아올 것이라는 것.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허리를 짚고, 엉망진창인 제복을 입고서 불편한 걸음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히지카타가 말 없이 내 뒤를 따라와서 내 어깨에 제 제복을 걸쳐주었다. 내가 말없이 그를 쳐다보자 그가 내 시선을 급히 피하면서 말했다.


"...옷이.. 엉망이니까.."


말 없이 돌아서서 걸었지만 나는 그의 체취가 섞인 옷을 사랑하는 그가 직접 나에게 걸쳐주었다는 것이 설레어서 뒤돌아서서 소리 없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걸었다. 차이나도 그래서 나를 그렇게 좋아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걸쳐준 옷 하나에 나는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었고, 마치 그가 나를 껴안아주고 있는 듯한 기분에 한껏 들떠있었다.











-

하지만 허리는 정말 더럽게 아팠다. 다음날 방에서 하루종일 누워서 티비나 보고 있는데, 아무도 날 부르러 오지 않는 거다. 그건 좋았다. 아마도 히지카타가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겠지? 그것도 좋지만, 찾아와서 한번 더 나를 걱정하거나, 나에게 용서라도 빌러 와주는 게 난 더 좋다. 히지카타, 니가 나에게 차라리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오히려 더 재미가 없었을지도 몰라. 니가 그렇게 나왔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쿨한 척 하면서 이왕 이렇게 된거 섹스파트너를 형씨에서 나로 바꿔보는건 어때? 라는 말을 했을지도? 물론 나는 형씨같은 동일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은 안했을 것이다. 만약에 라는 것이니 아무렇게나 상상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일어나지 못할 일이니까. 그러니까 막 상상해보는 거지 뭐.


둔영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돌아오고, 시끌시끌해져 모두가 돌아온 것을 알았다. 무기력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는데, 어울리지 않게 문 앞에서 나를 불렀다.


"소고.."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들어갈게"


그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나른하게 눈을 치켜뜨고 쳐다보았다. 그런 나를 보고 여전히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는 어색하게 서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조용히, 잠자코 있다가 물었다.


"...왜 왔어?"


"...걱정...되서.."


"무슨 걱정?"


"..."


"형씨, 찾아갔어?"


"...아니.."


그럼, 그래야지. 역시 너는 다시금 내 앞에서 병신같이 착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왜? 왜 안 갔어?"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길 한참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네가.. 신경쓰여서"


병신, 다시 생각해도 너는 진짜 병신새끼야. 히지카타, 그러니까 내가 너를 이렇게 미친듯이 사랑하고, 가지고 싶어 하는 거야. 네가 이렇게 사랑스러우니까. 네가 너무 멋있으니까. 너 같은 사람을 소유하는 사람은 모두가 그렇게 느낄걸? 아마 형씨도 잠시나마 그런 우월감에 찌들어 있었을거야. 그리고 너와의 관계가 깨진 지금은 아마 더 크게 추락하고 있을 거고. 그러게 누가 남의 것에 손을 대라고 했나? 처음부터 나는 경고했는데.


"이미.. 너는 나에 대해서.. 완전히 정이 떨어졌겠지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여전히 침대에 누워서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니까 더. 네가 나와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궁금해. 네가.. 항상 말하는 것처럼 부장자리를 내놓고 떠나라면.. 떠날게. 지금 니가 잠자코 있는게...나는 더 괴로워서.. 싫어할 걸 알면서도... 찾아왔어"


그랬어? 내가 떠나라고 하면 떠날 생각까지 했어? 니가?


"떠날 수 있어?"


"...응"


"거짓말"


"..."


대답하진 않았지만, 그가 허튼 소리는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떠나 보낼 생각도 없고,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를 미워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나는 지금도 내 눈앞에 있는 그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안아줬으면, 나에게 키스해줬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엔 형씨의 이름이 아닌 내 이름을 부르면서.별 대답 없이, 나는 그냥 목이 마르니 물을 한잔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나를 의아하게 보다가 잠시 머뭇거리고는 물을 한잔 가져다주었다.


떠나? 니가 나를 떠나? 누구 맘대로 떠나. 나를 사랑하니까 떠날 수 없다고 말해야지. 그러면 더 좋았을 텐데.


 아직도 네가 나에 대해 품었던 마음을 기억하지 못 하는 건 참 슬퍼.그가 제 정신이든 아니든, 이제 그것은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그가 내 옆에만 있기만 하면 된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원하는 데로 행동할테니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기도 했으나,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히지카타가 나에게 '떠나라고 하면 떠나겠다'는 말을 한 뒤로 난 약간의 고민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가 끝까지 나를 사랑한다고는 말해주지 않아서 서운하기도 했다. 마냥 미안해, 미안해가 아니라 (기억을 못하더라도) 사랑해서 그랬어 라고 한마디라도 해주지. 그냥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도 조금은 좋았을 것 같은데, 기억이 돌아온 걸까? 나 사랑받고 있는 걸까? 하고 조금은 두근두근 했을 텐데. 아아....아니, 아니지. 실제로 이렇게 말했으면 더 지랄을 떨었을 지도 모르겠다. 정말 나를 사랑해? 정말이야? 맹세할 수 있어? 그러면 해결사 사무실에서 울고 있는 형씨를 너의 권력을 다 동원해서 뭐라도 죄목을 만들어서 내 앞에 끌고 와봐요. 죽이라고는 안 할테니 감옥에 처넣어봐요. 물론 고문은 내가 할거야. 그리고 차이나를 찾고 있다고 했지? 나, 차이나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랑 갔는지, 어떤 꼴을 누구에게 어떻게 당했었는지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을 거야.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 일들은 아무것도 상관없는 일이지? 그렇지? 라고 끝없이 비아낭 대면서 거짓말을 한 너에게 미친 듯이 확인하려 들었을거야.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테니까.

사실.. 네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확인해대는 거..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괴롭고 힘들다고..











-

사랑에는 여러 가지의 이름과 색깔을 지니고 있다고 하듯이, 나는 히지카타의 사랑이 어떤 이름으로 나에게 존재하던 상관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나에게 보여주는 사랑의 이름은 '책임'과 '죄책'. 행동의 댓가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그 책임감 말이다. 밝고 명랑한 색상은 아니였지만, 그런 형태의 사랑도 나는 사랑했기 때문에 기뻤다. 자꾸만 죄책감에 의해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그에게 나는 말했다.


"형씨, 만나고 있어?"


그는 내 말에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금의 그를 100퍼센트 믿지는 못하는 입장이다. 그는 나에게 이미 여러 번의 거짓말을 해왔으니까.


"아, 그렇구나"


그가 전에 나에게 자신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확실한 답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내 옆에서 내가 대답해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지만.


"형씨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


"난 너와 형씨가 만나는게 너무 싫어"


"..."


사실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그는 형씨를 만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린 나는 끊임없이 그를 의심하고, 확인받지 못하면 괴로웠다. 











-

그 이후로는 무기창고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히지카타의 앞에서 일부러, 더 병적으로 그 곳을 가길 기피했고, 그럴 때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형씨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후로는 딱히 별 일이 없이 잔잔했다. 히지카타는 전보다 더, 병신같이 착했다. 나는 그래서 그런 그가 너무 좋았다. 정말 의심 할 구석 하나 없이, 나의 말을 잘 따랐다. 하지만 그를 100퍼센트 신뢰하기엔 앞서 거짓말을 했던 일들이 자꾸 떠올라서 깊숙이 믿진 못했다. 새벽에 나갈까봐 의심한 나는 항상 그의 침구에 들어가 그의 온도에 의해 데워진 이불 안에서 그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그의 살 냄새는 언제 맡아도 기분이 편안해져서 나는 언제나 그에 의해서 치유 받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는 나의 털끝하나 건들이지 않았다.


 

나 몰래 연락을 했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통신 쪽에 히지카타의 연락내역 조회를 받았다. 경찰이라는 직업은 이런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참 편리하다. 그것을 받으면 항상 보란 듯이 히지카타의 책상 위에 떡하니 올려놓았다. 물론, 그 목록에서 형씨가 그에게 연락을 취한 것은 몇 번 있었지만, 전부 받지 않은 것이었고, 그가 연락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올려놓은 것을 우두커니 서서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말했다.


 

“혹시, 나 몰래 형씨와 만난다거나, 연락 같은 거, 한다면 싫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 

-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형씨는 허겁지겁 둔영에 찾아왔다. 정말 다행히도, 내가 마침 문 쪽을 서성이고 있었고, 히지카타는 집무실에 있었다. 형씨를 잘 알고 있는 대원들은 형씨를 그냥 들여보내려 할 때, 나는 다가가서 말했다.


"뭐야?"


"아, 해결사 형씨께서 오셨어요"


경비병은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고, 그의 뒤에서 형씨는 나를 보곤 나와 저 사이에 있는 경비병의 어깨를 허겁지겁 해치곤 나에게 바짝 다가왔다. 몰골이 정말 말이 아니다. 원래도 복실복실한 머리카락이 지금은 더 엉망진창이 되어서 저절로 눈살이 찌푸러졌다.


"오...오키타군 나.. 나 히지카타를.. 마..만나려고.."


내 어깨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려왔다. 아, 불쌍해


"왜요?"


내 어깨에 올려져있는 손을 약간 기분 나쁘다는 식으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연락도...안되고... 아니..나 그러니까.. 잠깐.. 할.. 할 이야기가.."


"히지카타는 없어요"


"집무실에 계신데.."


옆에 작게 말하는 경비병의 작은 중얼거림 소리. 닥치고 있을 것이지 저 새끼가.


형씨는 그 경비병을 한번 보고, 나에게 다시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불러달라고 말했다. 거의 울부 짓고 있었는데 그 몰골이 너무 안쓰러워 보여서 형씨를 좋아하지 않는 나라고 하더라도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나의 것을 잠시나마 빼앗은 사람에게 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줄 정도로 마음이 넓지 않은 나는 그런 형씨를 한참 쳐다보다가 다시 말했다.


"히지카타는 없어요"


"있다고 하잖아"


"없어요"


"너...이 자식.."


형씨는 다소 흥분한 듯 했지만, 힘이 없어서인지, 나에게 달라 들어도 크게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히지카타는 더 이상 형씨를 만나지 않아요"


"비켜, 직접 이야기하겠어"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니까요"


한 발짝 둔영 안쪽에 발을 들여놓는 형씨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전보다 더 죽어버린 그 동태눈깔이 우스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뒤에서 무슨 상황인지 몰라 우리를 멀뚱히 바라보는 대원들에게 말했다.


"뭘 쳐다보고 있어? 문 닫아"


닫히는 문틈사이로 나에게 밀쳐져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형씨의 모습에서 시체 냄새가 나는 듯이 역했다.





형씨가 그렇게 와서 난리를 치기를 몇 번, 히지카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소리 소리를 지르면서 난리치기를 몇 번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죽어가는 몰골을 한 형씨를 보면서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그러면 항상 힘없는 목소리,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히지카타.....히지카타... 하고 중얼거리고는 내 앞에 주저앉곤 했다. 다행히도 히지카타는 그런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았으며, 관심 가지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가 너무 기뻤다.



지쳤는지, 형씨는 언젠가 부터는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히지카타에게 찾아가서 턱을 괴고 일에 집중하는 그를 관찰하곤 했다. 조금은 살이 빠졌나.. 약간 야윈 것 같다.


“살 빠진 것 같아”

 

“..그래?”

 

“응”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누구?”

 

“너”

 

“딱히 별 생각 없는데?”

 

“...아....그래"

 

그는 잠깐 무슨 말을 꺼내려는 듯 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는 대충 짐작은 했다. ‘자신에게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뭐 그런 말이었겠지 뭐. 그에게 자꾸만 애정을 표현하는 내가, 가끔은 그와 있었던 일에 대해 트라우마가 남은 듯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넌 나를 사랑해”


“...”

 

“그래서 그런 거야, 그렇지?”


그는 내 말에 하던 일을 멈추고 또 다시 대답을 피했다.

 

 








-

형씨가 왜 찾아오지 않는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나는 나의 개인적인 행복에 취해 있기 바빴으니까. 그러다가 우연히 해결사 사무실을 지나가다가 그 곳의 관리자인 할멈과 고양이 귀 천인 둘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긴토키 저 새끼는 죽으려고 작정을 한 모양인지, 하루 종일 집에 틀여 박혀서 도데체 무얼 하고 있는 거야? 가서 밥 먹었나 확인해보고 안 먹었으면 먹으라고 협박이라도 해! 억지로라도 먹여 그리고 이것도 좀 가져다 주고!"


그 할멈이 건넨 도시락 같은 것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고양이귀 천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처음 해결사 형씨의 사무실을 봤을 때, 이 곳의 첫 인상이 생각난다. 그땐 차이나, 형씨, 그리고 안경 셋이서 시끌시끌했고 밝은 공기가 항상 가득했었다. 잠시나마, 이 곳을 동경했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의 이곳은 형씨와 비슷하게 시체 냄새가 풍기는 음침한 시체 소각장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내가 싫어하는 그 음침한 골목길과 함께 더불어 절대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강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굳게 닫힌 창문으로 불이 켜 있지 않은 컴컴한 공간을 잠시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히지카타는 전과 달라질 것 없이, 내 옆에 있었다. 둘이 있을 때 가끔 나는 그의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했는데, 히지카타는 그럴 때 약간 당황하면서 잠시 우울해 하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것은 나에게 행한 행위가 생각나서 죄책감에 의한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안경은 지나가다가 나를 만나면 형씨의 소식을 종종 털어놓곤 했는데, 내 생각엔 저도 답답해서 그러는 것 같다. 얼마나 말 할 사람이 없으면 나에게 털어 놓겠어. 안경은 거의 울먹거리면서, 계속해서 목이 메어 하면서 말을 했는데 안경의 말에 의하면 형씨는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대충 이야기하는 기간을 보아하니, 내가 전에 고양이 천인과 할멈의 이야기를 엿들었을 쯔음인 것 같다. 안경은 그때 당시 카구라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다녀보고 있었다고 한다. 형씨는 의사도 부르지 않고, 심하게 앓다가 우연히 한껏 밀린 집세 독촉을 하러 왔다가 발견한 할멈이 겨우 의사를 불러 치료를 해서 목숨은 겨우 구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컸는지 목소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을 하자고 해도 필사적으로 거부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혹시 카구라가 잠깐이라도 이 곳에 올 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충격이 큰 것은 이해하지만 갑자기 이제 와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면서 울먹거렸는데, 내 생각엔 카구라와 동시에 히지카타와의 관계가 끝나버렸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나는 계속 울먹거리며 이야기 하는 안경의 이야기를 그냥 옆에 앉아서 경단을 하나씩 빼먹으면서 아, 그랬구나.. 저런... 정도의 가식적인 말을 작게 중얼거리면서 여유있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히지카타씨는 그 이후론 연락도 없으시고.. 바쁘신지 찾아오시지도 않으시네요. 잘 지내시죠?"


"응 걘 항상 바쁘지 뭐"






차이나에게는 편지가 두 세통 왔다. 펼쳐보기는 했는데,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 대충 훑어봤을 때 잠깐 눈에 각인된 구절은 [오빠가 가끔 이상해].


나는 앞으로는 이 주소가 아닌 다른 주소로 보내라면서 주소 한 줄 만을 써서 답장했다. 계속 이 곳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은 싫어. 혹시 히지카타가 보고 오해하면 어떡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과 연락하는 것이 끔찍히 싫은 나는 그 심정을 사무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행동이다. 물론 그 주소는 나도 모르는 이상한 곳으로 적당히 골라서 썼다. 



히지카타는 가끔 멍하게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뒤에서 껴안으면서, 사랑해, 너도 그렇지? 하고 물었다. 힘없이 그래. 하고 답하면 그런 건 싫어. 너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줘 라고 말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그를 나는 조금은 이해하기로 해서 딱히 별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연인인 그의 품에 안겨서 항상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그가 내 옆에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안심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다시 이 품을 되찾기 위해, 나 혼자만이 소유하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히지카타. 나는 네가 정말로 좋아. 사랑해.

 


 





 


 

부장님, 전과자들은 전과를 꼬리표로 달고 어떻게 생활할까요?

어떻게 생활하긴, 타협해서 살아야지 뭐. 그걸 뗄 방법도 없잖아? 제 업보인데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지 뭐.

그렇겠죠? 떼고 싶어도 떨어지지 않겠죠?

잘 알면서 그런 건 왜 물어봐?

아니 그냥요.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꼬리표 때문에 자꾸 걸려서 힘들다면서 혹시 없냐고 묻길래.

그런게 있겠냐.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거야. 꼬리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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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을 내지 말라고 몇몇 분들이 말씀하셨지만, 제가 처음에 스토리를 짰을때의 구성이 여기까지 였습니다

아마 이런 완결이 될거라고 생각하시고 말씀하신것 같네요

히지오키 쏘우편을 보다가 문득 집착하는 오키타 보고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됐습니다 그래서 막힐때마다 쏘우편 재탕하면서

생각을 많이했어요 결말을 정해놨지만 저도 고민을 너무 많이했습니다...ㅜㅜ

이걸 쓰면서 저도 너무 재미있게 썼었어서 저 역시 끝을 썼다는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예요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 모두 완전 사랑합니다 같이 히지오키 파고 천국갑시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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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27

2015. 8. 22. 23:13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이 녀석의 체취는 나를 편하게 만들어서 한참이나 우울한 감정과 더불어 편안함이 몰려오게 만들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안겨 있었다. 그는 나에게 떨어져서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곤, 잘 알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그에게 잘 알았냐고 되물었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다만 여전히 내가 싫어하는 그 동정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 볼 뿐이다. 비록 그 눈빛 하나로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까지는 들여다 볼 수 없었으나, 불과 얼마 전에 그가 나를 사랑했던 때의 기억을 되찾기는 커녕, 나에게 해방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비참함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나서, 그는 약간 당황하면서 힐긋 내 눈치를 살피고는 조심스레 전화를 받아들었다. 그 공간의 울림이 커서 수화기 건너의 발신자의 말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렸다.

 

[.. 히지카타.. 히지카타.. .. .....]

 

형씨였다. 그만. 그 한마디를 다 끝맺음 짓지 않았을 때, 나는 히지카타의 핸드폰을 거칠게 빼앗아서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기계의 부품들이 사방으로 거칠게 튀어올랐다. 히지카타의 눈빛이 동정의 눈빛에서 나의 행동으로 인해 화가 난 눈빛으로 바뀌는데는 아주 잠깐의 시간이 걸렸다.

 

"무슨 짓이야?"

 

"....갈 거잖아"

 

"?"

 

"형씨한테 가버릴 거잖아. , ...애초에... 애초에 네 옆은 나였는데!"

 

그가 앞서 무슨 말을 하던, 어떤 식으로 나를 설득하던, 그것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의 설득에 놀아나는 건 우스운 일이니까! 그를 어떻게든 나에게로 다시 돌리려 발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나에게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보여서 그에게 물었다.

 

"... 왜 그런 표정을 지어?"

 

"....... 이유를 말한다고 니가 이해할까?"

 

이해?

 

"진심으로 질려버릴 것 같아. 그만해"

 

질려?

 

"그만하자"

 

그가 나에게 화를 낸다기보다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해서 나도 말했다.

 

"너도 ... 너도 그만해"

 

내 말에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한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는 나에게서 뒤돌아 몇 걸음 옮기고는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뒤돌아 보고는 손짓했다.

 

"나와. 가자"

 

"...어딜 가?"

 

"나와"

 

그가 나에게 다시 손짓을 했다. 하지만 나는 손짓 하는 그가 이 공간을 나가면 다시 나에게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확신을 했다. 여기에서 나가는 즉시 그는 형씨에게 뛰어 나갈 것임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죽어버리겠다고 한 협박은 이미 통하지 않을 것이고, 형씨의 전화 한통으로 이미 나는 죽을 수 없는 위치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경찰으로써는 해선 안 될 생각을 해버렸다. 보여주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는 너의 모습을, 약에 취한 너라면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네가 보고 싶은 모습. 무의식속에 너는 완전히 나만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를 보게 될 거야! 너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있던, 가장 평범하게 지내면서 서로가 즐거웠던 그 날 있잖아! 그 날을 다시 보게 될 거야!

 

나는 히지카타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가져갈 것이 있다면서 태도를 바꾸어 말했다. 이 때 혹시나 그가 수상하게 여긴다면 어쩌나 생각했지만 그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찾는 척 하며 마약이 있는 근처로 다가가, 마약 주사기 더미 위에서 두어 개를 슬쩍 집어들고 그에게 천천히,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유난히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리는 듯 했다.

 

너도 나와 같이 나를 사랑하는 너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러면 내가 너를 얼마나,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거야. 다시는 그런 질렸다는 표정 같은 거 지을 수 없을 걸? 반쯤 미소 짓는 나를 의심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너의 곁에 다가가서 그의 팔에 주사기를 꽂아 넣을 때, 그는 또 다시 내가 저를 괴롭히는 줄 알고 이게 뭐냐면서 귀찮은 듯이 그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는 무슨 짓이냐면서 강하게 물었다.

 

"... 너 이거... ...뭐야?"

 

내 어깨를 강하게 잡아 흔들면서 나에게 화를 내며 말했지만, 나는 대답 없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흐음... 왜 효과가 없을까.

 

 

 

 

 

 

 

 

 

 

-

잠시 힘없이 주저앉은 히지카타의 눈동자는 텅비어 있어서 나는 그의 얼굴를 쓸어내렸다 잠시 미동없이 있다 이내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제 얼굴에 닿은 내 손위에 제 손을 겹쳤다.

 

"..하아...뜨거워..."

 

나는 그와 시선을 맞추고 앉아서는 말했다.

 

"히지카타씨 뭐가 보여요? 내가 보이죠?"

 

나는 히지카타의 목을 끌어 안으면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히지카타 사랑해 "

 

"....진짜로 죽고싶....구나"

 

? 뭐야 아직 안 보이나봐...나는 다시 주사기 하나를 그의 팔뚝에 찔러넣으면서 다시 물었다.

 

"안 보여요? 아직도?"

 

주사기 피스톨을 끝까지 밀어 넣고, 빼낸 곳에서 미세하게 흐르는 그의 검붉은 피가 괜시리 섹시해서 그 부분을 핥았다. 비릿한 피냄새가 내 입안에 퍼졌지만,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달아서 입술을 핥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자꾸 거칠게 숨을 내쉬는 그를 보고 나는 괜시리 약간은 걱정이 되어서 그를 그 모포 위에 눕혔다. 그는 여전히 계속 숨을 내쉬었고 나는 그런 그의 가슴팍을 껴안고 옆에 누워서 그런 그의 표정을 계속 지켜보았다.

 

"히지카타씨.. 히지카타씨.."

 

"..."

 

"사랑해요..사랑해.."

 

거칠게 숨을 내쉬던 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옆에 있는 나를 땀 가득한 얼굴로 보고는 말했다.

 

"하아.... 소고....."

 

".. 나 여기에 있어"

 

"...이런짓.........하아...."

 

""

 

나는 다시 그에게 가까이 가서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중얼거렸다

 

"너무 오래...기다렸단 말이야"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나를 외면하는 너를 언제까지 지켜봐야하는지, 그런 너의 행동을 언제까지 감시해야 하는지.. 숨이 막혀서 때로는 질식 할 것만 같았다.

 

 

히지카타의 얼굴이 그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나의 얼굴에 점점 다가와서 나는 약간 당황하기도 하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을 때 그가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도톰한 입술이 입술에 겹치고 따뜻한 감촉이 다소 거칠게 나의 입 안을 헤집어 왔지만 그것이 좋았다. 맞닿은 타액의 진득함이 달다. 그가 나에게서 잠시 떨어져서 아쉽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나에게 다시 또 거칠게 키스를 했다. 맞닿은 턱이 약간 까칠하고 익숙한 담배향이 내안을 가득매우는 느낌에 머리가 띠잉하고 울릴 정도로 좋았다. 내 입안과 입술을 애무하면서 내 머리칼을 가볍게, 간지럽게 헝클어 놓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키스를 하다가 나와 그가 앉아있는 모포에 스르륵 눕혔다. 그가 내 어깨를 살며시 잡는 것도, 허리 쪽을 가볍게 쓰다듬는 것도 좋았다.

 

키스를 마치고 서로 숨을 몰아쉬면서 마주 봤을 때 그가 말했다.

 

"하아...... 이런거 원하는..거지?..하아..그렇지?"

 

나는 대답할 방법마저 잊을 정도로 그와의 키스에 취해서 그저 숨만 거칠게 몰아쉬었다. 내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히지카타는 나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러 나를 다시 눕혔다. 내 위에 올라타선 저가 걸치고 있던 제복을 거칠게 벗어 내리면서 나를 내려다보는 그는 내가 알던 그 어떤 모습보다도 나를 홀렸다. 그리고는 내가 입고 있는 제복 역시 거칠게 잡아서 뜯어내다시피 벗겨냈다. 그런 거친 행동엔 좀 놀라서 나는 그때부터는 조금은 그가 무섭게 느껴졌다.

 

"....히지카타...."

 

", 너 이런 거.. 하아..하고 싶다며.. 하아..."

 

다 벗겨지지 않은 옷이 내 손목에만 아슬아슬 걸쳐져 있었고, 그가 내 목을 따뜻한 입술로 적시었다. 그의 흑녹색 머리칼이 나를 간지럽혀서, 체취가 나를 야릇하게 흥분시켜서 나도 모르게 작은 신음을 흘렸다. 목에서, 가슴으로 점차 내려가면서 혀끝으로 내 몸의 작은 감각세포들을 하나하나 예민하게 반응하게 만들었다.

 

"흐읏.."

 

좋았지만 이 행위가 사랑해서, 나를 아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좋으면서도 마냥 좋지는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이 사랑받길 간절히 원했던 것이지 이 행위를 하고 싶은 것이 우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지춤에 손을 대는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어이없게도 내손을 강하게 뿌리치면서 말했다.

 

"하아...원했잖아? 이젠 또 뭐가 싫은 건데?"

 

".....잠까..."

 

힘없이 널부러진 손과 그에 의해서 힘 없이 벗겨지는 옷들, 그리고 마약에 취해서 인지 다소 과격한 그의 행동이 약간 무섭게 느껴지면서도 그 와중에 나를 찾아서 좋았다. 그러나 처음 겪는 경험이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앞섰던 것은 있었다. 다시 한번 그를 말리려 상체를 일으키려 하려는 순간, 그가 억지로 다리를 벌리곤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흐읏...."

 

",.. 좋아?"

 

".. ..잠깐만......"

 

그럼에도 그는 거부하려는 나의 의사 따위는 존중하지 않았고, 거부하려 움직이는 나에게 말했다.

 

"하아.....움직이지마. 그럼 더 아프다?"

 

그가 억지로 파고들어 농락하던 손가락을 빼고는, 제 것을 넣었을 때, 숨이 턱 막히면서 그 고통에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 ..... 아파.. ..히지카타... ..흐읏.."

 

내가 그에게 깔려서 나도 모르게 이런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민망해져서 거친 숨을 내쉬다가, 피가 나올 듯이 입술을 깨물곤 그의 눈을 피했다. 그리고 그는 별로 나의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 몸을 거칠게 움직여댔다. 그 때마다 나는 그 고통에 아프다는 소리만 짧은 비명과 거친 숨과 함께, 계속해서 내뱉었다. 완전히 흥분했는지, 원래 나보다 완력도 좋았던 그 였지만, 그 정도인줄은 몰랐다. 나는 그가 확 뒤집으면 뒤집혔고, 그가 나를 잡아 당기면 그 쪽으로 힘없이 기울었다. 고통에 나도 모르게 모포 자락을 꼬옥 움켜쥐었다. 팔에 힘이 풀려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엎어졌을 때, 히지카타는 그 상태에서도 양 손으로 내 허리와 골반 쪽을 잡아 치켜올리고는 쳐대는 행위를 계속했다. 그리고 다시 그에 의해 거칠게 뒤집혀 그의 어깨에 다리가 걸쳐진 채, 그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을 때, 그의 표정을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절망했다. 그 역시 거친 숨을 내뱉으며 나와 교류하며 접촉하고 있었지만 그 눈은 나를 생각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그저 그 녀석의 하룻밤에 씨앗과 정욕만을 받아내는 어느 어두운 곳의 구석에 있는 몸 파는 사람으로 전락해 아프다는 것도 잊은 채 허공만을 바라보며,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서 거칠게 흔들렸다. 절정에 다다라 그의 정액이 바깥으로 튀어 끈적한 젤리 마냥 툭툭 떨어졌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대로 누워서 어디에 그의 정액이 떨어지던 말던, 그대로 누워 있었다. 히지카타는 내 옆에 쓰러지듯 누워서 내 허리를 끌어 안더니 말했다.

 

"긴토키.....사랑해......"

 

그는 약에 의해서 환각을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가 보는 환각은 이상했다. 그는 나를 끌어 안으면서, 부드럽게 목과 어깨부분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그 애무는 전의 애무와는 달랐다. 지금의 이 애무가 바로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거칠고, 부드러운 것의 차이보다는 그냥 내가 느꼈다. 이런 것이 사랑이라고. 그가 형씨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일어난 질투심에 의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이 녀석이 완전히 강제로 나를 안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어느 정도는 자처했던 부분이 있었기에, 저항할 의사를 잠시나마 비춘 나를 반 강제적으로 안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감도 없었지만, 이 녀석이 방금 한 말에 대해서는 내 자신이 너무나 비참해서, 이 녀석과 할 때에 본 이 녀석의 눈동자와 함께 걷잡을 수 없이 슬프게 했다. 내 허리를 끌어안은 그의 품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계속 흘렸다. 그럼에도 나는 이 녀석이 좋았다. 그는 약에 취해서, 나와의 관계의 나른함에 의해서 나를 품에 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나도 꿈꿔왔던 그의 품에서 꿈도 꾸지 않고 그대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면서 잠들었다.

 

 

 

 

 

 

 

 

 

-

옆에서 뒤척이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가늘게 떴다. 잠에 취해서 순간 이 곳이 어디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옆에서 몸을 일으키고 머리가 아픈지 머리를 감싸 쥐고서 제 옆에 자신이 뿌린 정액을 몸에 묻힌 채 누워 있는 나를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나의 옷과 자신의 옷을 보고는 더 머리가 아파왔는지 한참을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가 제 옷을 주워서 걸치곤 충격에 의해 비틀거리면서 창고를 서둘러 벗어났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뒤척였다. 그렇게 그를 가지 못하게 발악했으면서, 지금은 왜 그를 가게 놔두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소고.."

 

 

. 그가 나에게 다시 올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다시 돌아온 그는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내 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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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26

2015. 8. 19. 22:11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다음 날, 다시 여관에 찾아갔을 때에는 그 날 새벽에 이 곳에서 차이나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든 일들이 거짓인 양 흔적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나와 차이나가 여기에 들어오기 전의 모습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어느 다른 평범한 여관과 다르지 않게 창문 틈의 쏟아지는 햇빛을 받고 있었을 뿐이다.










-이 틀 정도가 지났다. 히지카타는 길지 않은 간단한 입원을 한 상태였고, 이유를 모르는 곤도씨나 다른 대원들은 무슨 일이냐면서 물어도 히지카타는 여전히 나에게 책임을 묻거나 하고 싶지 않았는지, 아니면 쪽팔려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의 병실을 자주 찾았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무섭게 뻔뻔하네. 하긴, 이런 면이 너답긴 해"

그가 나를 알아줘서 좋았다. 나는 웃으면서 아프지 마세요 라고 중얼거렸다.


카부키쵸의 거리에서 차이나라는 존재는 지워졌다. 나는 차이나가 누구와 어디로 갔는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의 입장에선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의 행방불명이었다.

히지카타의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형씨를 만났다. 나를 발견하고는 실성한 사람처럼 나를 붙잡고, 퀭한 얼굴에 숨까지 한 번에 몰아내쉬면서 말했다.

"카...카구라..가..카구라가 없어졌어.. 아..아무리 찾아도.. 없어. 어디에도 없어.."

재밌었다. 질식할 것처럼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는 것도, 퀭한 얼굴에 달린 눈에 핏발까지 세우고는 한껏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는게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그런 형씨를 눈을 빛내면서 쳐다보았다.

"호..혹시...혹시 못 봤어? 아니면 연락이라도.. 연락..... 없었어?.."

"만나지 말라면서요?"

나도 모르게 약간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의 말에 형씨는 갑자기 정신이 약간은 들었는지 잠깐 멍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도, 그런 형씨가 재미있어서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형씨를 올려다보았다.

"부...부탁이야.. 찾아줘, 너..경찰이잖아"

"만나지 말라면서요"

"...나...나..카구라랑 만나서 할...이야기가 많은데... 제발... 아. 그래. 그러면 혹시 연락이라도 ..혹시 닿는다면 꼭... 말좀..."

나는 그 순간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필요할 땐 찾아와서 부탁을 했다가, 내가 뭔가 수상쩍게 생각되면 단물 빠진 껌 마냥 내뱉어놓고는, 다시 내가 필요했는지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또 다시 부탁을 하고 있는 그가 너무나 교활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내 얼굴에 여유로운 빛,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헛웃음, 그리고 내 눈앞에서 흥분하는 형씨가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비취는 웃음에 화가 났는지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가! 뭐가 재밌어! 나는 지금 너에게 부탁을 하고 있잖아! 나...나는 지금 정말로 돌아버리겠단 말이야!"

"지금 화내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형씨는 다시 애써서 화를 가라앉히며 나에게 애써 화를 누르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부탁..할게.. 나에게는.. 연락같은 걸 하지 않을 것 같아... 기억도 없고.. 전처럼 과격한 모습도 없는데.. 혹시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이야.. 나에게 오지 않아도 좋으니까. 제멋대로 다 해도 상관없으니까 잘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정도만.."

나는 싸늘한 얼굴을 하고 형씨를 쳐다봤다.

"헤어진거죠?"

"...응?"

"히지카타랑. 헤어진거죠?"

"..."

내 말에 형씨는 놀란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헤어진거죠? 다시 만날 일, 없는 거죠? 왜 대답이 없어요?"

"....으..응?....."

"찾아볼게요 카구라. 연락 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나의 질문에 형씨는 다소 기가 죽은 듯이 시선을 돌렸다. 나의 질문에 바로 응! 헤어졌어! 라고 속 시원하게 말해주었으면 더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울하게, 슬프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말아달라는 듯이 가슴 아픈 표정을 지어줘서 기뻤다. 물론 카구라를 찾아보겠다는 말은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다. 문득, 가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으나, 그런 나의 의심을 풀어주기라도 하듯이, 그 다음날에 차이나에게서 편지가 왔다. 다행히도 그 편지는 다른 사람들의 손을 통하지 않고, 내가 바로 받았다.

[잘 지내냐 해? 인사도 하지 못하고 가서.. 정말 너무나 아쉽다해. 어떻게 알았는지 오빠가 찾아왔어. 나는 너무 반가워서 보자마자 바로 오빠에게 달려가서 안겼는데 오빠는 약간 그런 나의 행동을 어색하게 여기더라해.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사를 하고 가자고 했는데.. 시간이 없다고 잡아 끌어서 어쩔 수 없었다해. 오빠랑 가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서운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하지만 그래도 우리 오빠를 만나서 다행이기도하고, 좋기도 했다해.

몇 일 됐는데, 아직 아빠는 못 만났다해. 오빠 말로는 아빠는 지금 여행 중이시래. 그래서 우선은 둘이 있는 거라고 말했는데 집이 정말 커! 전에 있던 그 아저씨네 집하고는 다르게 말이야! 다음에 꼭 놀러와! 내가 초대할게! 내가 우리 오빠에게, 알게 모르게 네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해. 근데 이상하게 오빠가 궁금해서 묻는 내 이야기 속 사람의 인상착의는 같이 사는 아저씨였다해. 그래서 내가 그 아저씨는 그냥 오빠가 잠시 나를 맡긴 곳의 아저씨잖아! 라고 말했더니 약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는 그냥 웃어보였다해. 그래서 내가 기억이 멀쩡하지 않아서 잘은 모른다. 라고 말했더니. 잠시 나를 보더니 불안했겠구나. 하고 그냥 머리를 쓰다듬어줬어. 우리 오빠는 정말 자상해. 그 아저씨에게도 사실 사과의 한마디는꼭 하고 싶었는데. 이름도 주소도 연락처도 하나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 없다해. 그니까 오빠가 전해줘.너무 보고 싶어. 정말이야.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 싶어. 내가 나중에 크면 다시 지구에 갈게! 그러면 나랑. 결혼하자. 나는 오빠의 가장 예쁜 신부가 되고 싶다해!]


결혼이라는 글자에서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황당해서. 다른 뒷 장엔 그 전해달라는 편지인지 반절로 접힌 편지지 겉에 아저씨에게 라고 쓰여 있었다.


[아저씨. 지금까지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다해. 여러가지로 내가 짜증내고, 말도 막 한 부분은 많지만.. 나는 이상하게 아저씨가 편했다해. 그래서 자꾸만 화를 내게 되고, 심하게 했던 것 같다해. 나는 오빠랑 드디어 떠나게 됐어. 인사도 못하고 가서 진심으로 서운하다해.. 내가 기억을 못한다면서 안쓰럽게 쳐다보는 그 눈이 가끔 생각날 것 같아. 건강하게 잘 지내라해! 나 같은 어린이처럼 딸기우유 같은 거 먹지 말고!]

나는 그 편지를 읽은 그 즉시 찢어서 태워버렸다. 아 다행이야 정말로. 무사히 돌아갔구나 차이나. 그 곳의 생활에 익숙해지면, 이 곳의 생활 같은 건 생각도 안나는 법이야. 사람은 잊을 수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해.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많은 기억도 없는 우리를 그렇게 깊이 생각하진 못할거니까.잘 가 차이나. 나 역시 네가 조금은 보고 싶을거야.

-

히지카타는 퇴원을 했고, 몸이 아프거나 하진 않았지만 얼굴엔 항상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찾아가서 그 그림자를 걷어주려 일을 하는 그의 뒤에 다가가서 넓은 등에 얼굴을 묻고 가슴팍을 끌어안고 한참을 있었다. 그도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무엇을 하든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런 그에게 심술이 나서, 유카타가 살짝 내려가 드러난 어깨에 입술을 대자 그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데체 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하나도 알 수가 없어"

나? 내가 뭘? 난 나의 생각을 남김없이 다 표현했잖아. 좋아서 좋다고 했고, 화가 나서 때렸어. 그리고 미안해서..걱정되서 병문안을 갔어. 거기에서도 너는 그런 나의 행동이 '나답다'고 말했고.

"짜증나려고 하니까 돌아가"

"왜?"

"내가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내 표정을 보고 내 생각을 읽은 그가 말했다.

"나는 네가 무서워"

전에도 나에게 몇번 무섭다는 말을 해 왔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넌 결국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잖아. 마음대로 해"

"히지카타"

"그렇잖아. 너, 내 의사 따위가 중요해?"

...당연하지. 너의 생각을 난 확신하고 있어. 그래서...

"넌 내가 긴토키랑 헤어지길 바랬잖아? 뭐.. 그래, 너 때문이라고 탓을 하거나 하진 않아. 나와 그 녀석 둘의 문제니까. 어찌되었든, 헤어졌잖아. 너 원하는 대로 다 됐잖아?"

그래,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됐어.

"나 정말 끝난 것도 맞아. 그렇다고 다시 찾아간다거나, 그런 바보 같은 짓도 안 할거야. 됐지?"

난 그의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말투, 표정과 상관없이 그 말의 내용에 의해서 순간 기쁨에 가득 찼다. 그럼.. 다시.. 나를...

"그렇다고 너를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지도 않아. 아, 이런 말 듣기 싫어하던가? 됐다. 내 의사가 뭐가 필요해.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잖아."

...왜 자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때려서 화가 났을까? 그래서 자꾸 저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에게 시선을 거두는 히지카타를 다시금 뒤에서 꼬옥 껴안으면서 말했다.

"왜... 자꾸 그렇게.. 이야기해... 화났어? 내가.... 때려서? 미안해. 잘못했어..... 아니면, 너도 나를 때려! 나도 너처럼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맞아줄게.. 가만히 있을게! 진짜야!"그는 자신을 안고 있던 내 손을 거칠게 풀어내면서 말했다.

“손대지마”











-

카부키쵸 쪽을 순찰하다가 안경 녀석을 만났다. 오랜만이라서 인사를 해오는 이 녀석도 전처럼 밝진 않았다. 힘 없이 인사를 한 후,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오키타씨, 안녕하세요, 혹시.. 카구라 소식은 아직...이죠?"

"응. 뭐.."

"하.. 진짜 사람 미치게 하네요 정말.. 오키타씨도 수고가 많아요.. 그리고 오키타씨도 충분히 힘들겠어요. 카구라랑 꽤 친했었잖아요?"형씨는 이 녀석에겐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보다. 나는 그냥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긴상은 거의 죽어가요 아주.. 밥도 거의 안 먹고.. 그 좋아하는 딸기우유며, 군것질 거리도 모두 끊은 채로 하루 종일 돌아다녀요. 정말 어찌나 바보 같은지 제가 항상 적당히 하라고 말려도 소용이 없어요. 자다가도 수도 없이 깨더라고요... 카구라가 썼던 그 벽장 안을 울면서 한참동안 멍하니 쳐다보기도 하고.. 물론 나도 슬프긴한데 긴상이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제가 이성적으로 변한다니까요... 계속 기억도 없는 애가 어디 이상한 데에 끌려간 건 아닐지 맨날 납치나 이런 범죄뉴스라도 뜨면 당장 달려가기도 하고.. 정말이지.."

형씨 많이 아프시구나. 나도 그랬는데. 나도 그렇게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서 죽고 싶고, 맨날 뒤를 밟으면서 어둠 속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그랬어요. 진심으로 죽는게 낫겠다고 생각 할 정도였다니까요? 차라리 죽고 싶죠? 알아요. 근데 막상 죽지도 못 하겠죠?그거, 무슨 심정인지 잘 알죠. 그럼.


"근데, 어제 히지카타씨가 왔더라구요"

나는 별 감흥없이, 아니 재미있는 루머라도 듣는 듯이 안경 녀석의 이야기를 가볍게 듣다가, 안경 녀석의 그 말에 급하게 쳐다보았다.

"히지카타가?"

"네, 그러면서 자신도 찾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마라. 뭐 이런 비슷한 말하면서 이것저것 사들고 왔더라고요. 약이며 뭐며, 히지카타씨에게 그런 자상한 면이 있을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근데 히지카타씨를 보고 긴상이 주저 앉아서 오열하는거 있죠? 히지카타씨가 둘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 나가달라고 그래서 저는 나왔지만.. 정말 놀랐어요. 맨날 티격태격하면서 싸워대도 둘은 역시 사이가 좋나봐요."

나는 관리되지 않은 표정을 감추려 고개를 푹 숙인채 바빠서 이만 가봐야 겠다고 했다. 안경은 바쁜데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미안하다면서 나에게 다음에 또 보자면서 이내 한숨을 푹 쉬고는 인사를 하고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 참, 형씨가 그렇게 걱정이 되서 직접 찾아가기까지? 생각보다 형씨의 저주가 강했나보다. 나에겐 한없이 냉정한 그가 형씨 앞에서, 헤어진 형씨 앞에서, 자신을 믿지 못하는 형씨 앞에서 그런 자상한 사람으로 변할 줄은 몰랐다. 몇 걸음 걷다가 나는 허탈함과 동시에 실망감에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근처의 벤치에 잠깐 앉아서 왔다 갔다 하는 정신을 붙잡으려 했다. 나한테 좋을대로 하라면서. 끝났다면서! 다시 찾아가지 않겠다면서! 또, 또야! 또 나한테 거짓말 하고 있잖아 너. 왜 인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와서 실성한 놈처럼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웃어댔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절망감과 동시에 무엇이 그를 자꾸만 형씨에게 가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불현 듯, 혹시 지금까지 정말로..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개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런 한심한 생각을 잠시나마 품었다는 사실에 나를 자책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히지카타는 저가 형씨를 찾아갔다는 사실과, 카구라를 몰래 찾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카구라를 찾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숨기려 했다. 그 꼴이 우습고, 소유욕이 누구보다도 큰 나는 그 것을 못 본채 해 줄 정도로 인자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애쓰지마”

“뭘?”

“형씨 때문에 카구라 찾고 있잖아. 그만하라고”

나는 상냥하게 미소까지 띄우면서 말했다. 그러나 나의 말에 히지카타는 의아한 표정과 함께 약간은 질렸다는 표정까지 지으면서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서 물었다.

“왜?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

나는 계속 미소를 띄우면서 다정하게 이야기 했다. 히지카타는 그 자리에서 잠시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내 어깨를 화난 듯이 밀치고는 지나쳐 갔다.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소리를 높여 이야기 했다.

“내 마음대로 하라며! 하지만 나는 너에게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말한 적 없어!”










-
히지카타가 나를 무기창고로 불러냈다. 나를 불러냈다는 것 만으로도 들뜬 나는 그가 말한 무기창고 앞에 약속시간보다 5분이나 먼저 일찍가서 서성였다. 무기창고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 그 곳에 마음대로 출입이 가능한 사람은 곤도씨와 히지카타씨 단 두 명, 그리고 나머지는 승인이 없다면 절대로 출입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히지카타와 종종 들어간 적이 있지만, 나도 멋대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들어간 것도 단순히 무얼 찾으러 가는 것이었는데, 그 때는 굉장히 귀찮아하면서 왜 하필 나를 데리고 왔냐면서 하루 종일 투덜투덜거렸다. 그 땐 내 옆에 그가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내가 그렇게 투덜투덜거리거나 싫다는 듯이 말해도 그가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볼 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조금 더 잘해주는 건데 말이야.


시간이 지나고 익숙한 담배 향과 함께 그가 내 앞에 와서 섰다. 그의 표정은 어떤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고,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일찍왔네 ’혹은 ‘왠일이야 먼저 와서 기다리고’ 같은 흔한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눈짓으로 따라오라는 신호만 보내왔을 뿐이다. 나는 그의 뒤를 순순히 따랐다. 무기창고는 지하에 있어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곳은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어둡다. 싸구려 주황색 등이 큰 공간에 드문드문 몇 개 정도 매달려 있을 뿐이고, 여기저기 쌓여 있는 바주카포, 남은 제복들, 총, 굴러다니는 탄알, 전쟁이 일어난다면 쓸 모포가 많이 쌓여있다. 그리고 곳곳엔 양이지사 놈들에게 빼앗은 잡다한 무기들, 그리고 마약광에게 빼앗은 마약, 훈련용 죽도 등등이 쌓여 있었다. 그 곳은 아무리 청소를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 이상한 곳이다. 물론 청소를 할 때는 출입이야 허락 되지만, 히지카타나 곤도씨가 필히 같이 있어야 되는 그런 엄격한 곳이었다. 우리 1번대가 그 곳을 청소할 때도 항상 제대로 하지 않는 나 였기에 감시하는 히지카타와 장난을 치곤 했다. 좋은 무기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에게 달라면서 졸라대면 그런게 가능할 것 같냐고 화를 내면서도 몰래 나에게 빼주곤 했다.


“별 건 아니고..그냥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너무 험악한 곳에서 하는 거 아니예요? 혹시 협박하려는 건가?”

나는 킥킥거리면서 쾌활하게 웃었다. 히지카타는 전혀 웃지 않았다. 간만에 온 무기창고여서 나는 괜히 쌓여 있는 물건들을 구경했다. 쓸만한 것이 있다면 가져갈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소고”

그가 구경하는 나를 낮게 불렀다.

“응 말해”

나는 돌아보지 않고, 계속 구경하던 것을 구경했다. 양이지사들은 꽤나 신기한 물건을 잘 만든단 말이야.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는 그의 말에 그제야 뒤를 돌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어떻게 해야 날 내버려 두겠어?”


나는 바라는 게 없었다. ‘날 내버려 두겠어?’ 라고 말 한 것에 대한 의미도 알 수가 없었다.

“히지카타씨, 나는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그냥..”

내가 약간은 웃으면서 말하자 그는 나에게 말했다.

“니가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많은 생각을 해봐도, 난 전혀 모르겠어. 그래서 묻는 거야. 너를 의심한 것은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리고.. 그리고.. 나는 아직 긴토키를... 긴토키가 없으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힘들어”

.....

“그래서.. 그래서.. 이제 그만 나를 놔주면 안 될까? 지금 긴토키가 힘들어 해..내가 있어줘야 할 것 같아. 그래서.. 그래서 그래.. 니가 시키는건 다 할게. 무릎이라도 꿇으라고 하면 무릎이라도 꿇을게”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내 앞에 망설임 없이 털썩 무릎을 꿇으면서 나에게 계속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너를 결코 서운하게 하지 않을게. 그냥 .. 우리 사이 내버려 두면 안될까?”

니가 지금 내 앞에서.. 망설임 없이.. 그것도 형씨 때문에 무릎을 꿇는다고?

“그래.. 니가 나에게 뭘 특별히 한 것은 아니야. 그래. 근데.. 니가 하는 작은 사소한 행동들이 나에겐 엄청난 압박이야. 너도 알다시피 넌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존재야”

“일어서”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니까.. 그건 내가 항상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일어서”

“응? 소고. 내가 너에게 부탁 같은 거 한 적 별로 없잖아. 이번은 제발..”

“일어서라고 하잖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양이지사에게서 빼앗은 물건중 하나를 집어 들고 홧김에 그에게 집어 던졌다. 맞추려고 던진 것은 아니었기에 그냥 그의 옆에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고, 나는 그의 행동과 말에 의한 분노에 씩씩댔다. 히지카타는 별 말없이 그런 나를 약간은 동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나를 어떤 눈빛으로 보던 상관없지만, 지금 그가 나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언제부턴가 형씨에게 느끼는 열등감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새끼야 말 안 들려? 일어서라고”

나는 히지카타에게 다가가서 멱살을 움켜쥐고 말했다. 히지카타는 여전히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볼 뿐이고, 형씨 따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내가 너무 싫어서 나는 근처의 아무 무기나 집어 들고는 이 이상으로 형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죽어버리겠다고 했다. 이번에 죽겠다고 한 것은 진심이었다. 내가 내 화를 못이겨서. 히지카타는 그제야 일어서서는 죽어버리겠다고 난리치는 내 앞에와서 섰다. 나는 그 순간이 왜인지 슬퍼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는 주먹으로 내 얼굴을 한 대 때렸는데, 그 어느 때보다 아팠다. 얼굴이 홱 돌아갔고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입안에 가득번지는 피비릿내가 그 때처럼 씁쓸하고 아팠던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나에게 다가와선 나를 와락 껴안았다.

“소고, 그런 말, 장난으로라도 하지마. 계속 말하고 있잖아. 나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 알잖아.”

그런데 왜! 왜 자꾸 나를 슬프게 만들어... 나밖에 없다면서 왜 자꾸 형씨에게 신경 쓰는 건데.. 왜 내가 형씨 따위 사람에게.. 열등감 느끼게 만들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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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25

2015. 8. 19. 22:10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이 꼬맹이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민했다. 얼굴 볼 자신이 없어서 돌아가지 않겠다는 차이나. 근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내가 약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도 맞다.
괴로운 쪽이라면 이대로 '안'보던, '못‘보던 어느 쪽이 던지 마주치지 않는 쪽 이라는 것.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아니, 그보다 더 아련하고 가슴이 아플지도 모른다.

나는 엎드려 있는 꼬맹이가 심한 말을 내뱉고 나서 뛰쳐나온 것에 대해 후회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냥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뱉고 있을 뿐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








-
갈 곳이 없다는 차이나에게 더 이상 돌아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차이나의 편에 서서, 숙소를 잡아주겠다고 했다. 나의 말에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는 차이나. 그리고 방까지 데려다 준 다음 가려는 나를 끈덕지게 붙잡았다. 어딜 가냐면서 이런 곳에 자기가 혼자 있으면 어떻게 하냐면서 자꾸만 나를 붙잡았다. 아 정말이지.. 꼬맹이들은 가끔은 너무나 순수하게 다가와서 약간은 망설이게 만들 때가 있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고집으로 물고 늘어지면서 칭얼댈 때는 나를 무척이나 화 나게 만들 때가 많다. 다음날 아침 일찍 오겠다고, 무슨 일이 있다면 전화하라고 말하면서 겨우겨우 달래놓고 나왔다. 피곤해, 정말이지 애들은 피곤하단 말이야. 하나같이. 특히 차이나, 너의 이런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적응 안 된다고.


둔영에 돌아온 나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한참을 그냥 바닥에 누워서 뒤척였다. 히지카타는 무얼하고 있을까? 아직 자고 있으려나. 그 날 그렇게 수 많은 담배 꽁초의 재를 손끝으로 떨어트리면서, 처량하게 울리는 신호 연결음 만을 들으면서 그도 느꼈길 바랐다. 둘 사이가 끝났다는 것을. 혹여나 그 녀석의 그런 행동에 의해서 형씨가 흔들릴까봐 조바심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 근데, 그건 그렇고 차이나는 이제 어쩌지? 저렇게 그곳에 계속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만약 돌아가서 화해라도 해버리다면, 그것 역시 싫은데... 이렇게 머리를 쓰는 것이 특기가 아닌 나는 이런 고민 같은 걸 하는 게 익숙치 않아서 머리만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른 새벽. 나는 혹여나 그가 다시 찾아갈까봐 온몸의 신경을 청각으로 집중시킨채 고요한 둔영을 감지하고 있었다. 조용한 기운 만이 이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 나는 조용히 밖을 나와서 뺨에 닿는 차가운 새벽의 공기를 느끼며 잠시 고민할 때, 탁- 하고 히지카타의 방 문이 열리는 가벼운 마찰소리에 그 쪽을 돌아보았다. 히지카타는 나와 있는 나를 보고 놀랐는지 잠깐 멈칫 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게 무얼 하냐고 물었다.

"그러는 넌, 뭘하는데?"

이 새벽에 몸도 성하지 않은 이 녀석이 바깥에만 나왔다는 것 자체로도 화가 날 정도로 나는 예민해져 있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들어가서 자라고 말하고는 신발을 신는 그 녀석을 보고 다시 한번 화가 치밀어서 다시 물었다.

"너, 어디가?"

나의 말투에 가시가 돋혀 있었을거다. 그렇게 내 앞에서 당당하게 신발을 신으면서 떳떳하게 행동을 해 올 줄은 몰랐다. 아니지 일부러 그러는 거 일수도.

"알아서 뭐하게"

그의 짤막한 한마디. 그리고 나를 뒤로한 채 둔영을 떠났다. 나는 몇 차례 형씨에게 가는 그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그의 뒤를 당당하게 밟았다. 멀리서 보이는 히지카타가 그 날도 어김없이 형씨의 해결사 사무실로 향하는 걸 보고 나는 진심으로... 뭐라고 해야하나... 비참함을 느꼈다. 내가 뒤쫓아 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를 수도 있지만, 모른다는 것이 나는 더 슬프다. 나를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다는 거니까. 이랬건 저랬건, 나는 이 녀석에게 그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그런 위치의 사람이었다. 짜증나. 불공평했다. 나는 그를 위해서 나의 많은 것을 희생해왔다. 그 것은 그도 잘 알 것이다. 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근데 니가 지금 나에게 이런 행동을 취한다고? 너는 말야. 형씨만큼이나 이기적이고, 나만큼 치사한 새끼야. 그리고 다시 그가 해결사 사무실의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초라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의 앞에 다가가서 말했다.

"미친새끼"

"..."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걸 보니, 내가 뒤 따라온걸 몰랐나보다. 개새끼. 병신새끼. 이 나쁜 새끼야.

"뭐해?"

"..."

".....돌아가자"

내가 말했다. 사실 욕을 무더기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컸지만, 뱉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 소고"

"응"

"돌아가"

"응, 돌아가자"

"가"

"그래, 가자"

"가"

"갈거야! 같이"

"..."

그는 나의 말에 말없이 흰 연기를 내 뿜으면서 약간은 단호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 난 안갈거야. 너 혼자 가라고 말하고 있잖아"

나 혼자? 내가 말 없이 그를 쳐다봤으나, 그의 눈은 바로 눈 앞에 있는 내가 아니라, 불이 꺼져 있는 해결사 사무실 안의 어두컴컴한 창문만을 말없이 쳐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자고 있으려나..."


그 중얼거리는 아무것도 아닌 한 마디가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 모를거다. 나는 그 순간 그 동안 참아왔던 모든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그를 사랑해서 했던 모든 행동들. 나는 나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자존심마저 너를 위해서 내려 놓는데에 얼마나 큰 결심과, 수치심을 느꼈는지... 너는 모를거야. 그리고 그만큼 비례한 분노가 이 이상으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정신 못차리는 이 답답한 새끼를 어떻게 정신이 들게 만들어야 할까. 얼마 전의 나라면 충분히 이성적이었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해서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향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 순간 타는 듯이 아파 오는 내 손. 사실 이성적이지 않아서 무슨 생각으로 그를 때렸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의 얼굴에 한번 주먹을 내리치고 나서 이상하리 만큼 순순히 쓰러진 그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끌고서 잘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개를 끌고 가듯이 질질 끌고서 갔다.


골목. 난 분명히 이런 으슥한 골목이 이 녀석과 형씨의 섹스가 떠올라서 미치도록 혐오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선 역시 이런 골목만큼 좋은 곳은 없다. 쾌쾌한 냄새와 보이지 않는 어둠, 그리고 이상하게 순순히 나에게 맞아주며 저항하지 않고 끌려온 이 녀석. 거칠게 이 녀석을 내려 놓았을 때, 수 많은 골목들의 가지로 뻗어있는 골목의 한 쪽 구석에선 이 녀석과 형씨가 그 때와 같이 서로의 이름을 신음과 함께 뒤섞어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히지카타의 몸을 개걸스럽게 핥아내리는 형씨가 자꾸만 내 눈에 보였다.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려도, 그 소리가 굉장히 생생하게 내 귀를 파고 들어서 귀를 막아도, 자꾸만 내 옆에 있는듯이 생생하게, 너무나 괴롭게! 자꾸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쪽에서 나타난 히지카타를 끌어안은 형씨와 눈이 마주쳤을 때, 형씨가 나에게 말해왔다.

'뭐하는 거야?'

그 눈이 너무나 섬뜩해서 나는 순간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못했다.

‘어이 오키타. 사랑이 뭐라고 생각 하는거야? 나처럼 이렇게. 그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한번 그의 목덜미를 핥아올리는 그 장면을 보고 나는 몸이 차게 식으면서 식은땀이 내 온 몸을 간지럽게 타고 흘렀다. 그 역함에 의한 공포를 이기려 내 눈앞에 순순히 나에게 끌려온 이 녀석을 신경질 적으로 더 폭력을 가했다. 씨발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이렇게 된 원인은 다 너라고!

깊이 생각하진 못했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끌고 와서도 나는 한참이나 그의 얼굴에, 온 몸에 주먹을 내리치면서 분노에 이해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내 눈앞에 자꾸 보이는 형씨도, 그런 형씨와 부둥켜안고 있는 너도,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서 내 앞에 피를 흘리면서 주저 앉아있는 너도.... 다 나를 화나게 한다고 지금!


"씨발.. 사람을 언제까지.. 병신으로 보는거야..."

히지카타는 대답도 없었고,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의 행동이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응? 히지카타"

아프다고, 하지 말라고 말이라도 하란 말이야 병신새끼야. 나는 말없이 나에게 순순히 맞는 이 녀석의 태도가 더 화가나서 계속해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치다가, 반응 없는 그의 행동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발길질까지 해댔다. 내 주먹도 맞은 이 녀석만큼이나 아팠다. 내 피인지, 이 녀석의 피인지 모를 피가 뒤섞여 손에서 뚝뚝 떨어질 때 나는 이상하게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재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때려도 반응이 없었고, 전투 의지조차 없는 그런 사람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으나, 사랑하는 이 사람의 엉망이 된 모습을 보는것도 나쁘진 않았다. 심지어 그 가해자가 '나'라는 것에 대한 기쁨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응이 있었다면 조금 더 좋았을거라고 생각해.

피로 물들은 이 녀석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내가 말했다.

"히지카타.. 아파?"

"..."

"니가 자꾸.. 그런 병신같은 짓을 하니까.."

"..."

"내가....내가.. 화가 나잖아.. 니가 자꾸 나의 마음을 몰라주잖아! 외면하잖아! 나는 그만큼 너를 위해주고 있는데, 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잖아! 오히려 그런 나에게 자꾸.. 자꾸 내 마음을 난도질하잖아! 저.. 저딴 저 이상한 새끼랑 더럽게 몸을 섞으면서 나는 쳐다보지도 않잖아! 원래.... 원래 형씨의 자리는... 내 자리였는데 말이야...."

"..."

여전히 아무말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 녀석의 멱살을 잡아 쥐고는 거칠게 흔들면서 말했다.

"왜 대답이 없어? 왜? 말해! 말하란 말이야! 나의 편이 되어주겠다면서, 나의 곁에서 있어주겠다면서, 그렇게 약속했으면서!"

그때 나는 약간 흥분을 못 이겨서 악을 쓰면서 말했다.


".........힘들었...겠구나"

그가 드디어 입을 열고 한 첫 마디였다.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건.. 슬프네...생각보다 더 심하게."

나는 그 말을 듣고 그의 멱살을 잡았던 손에 힘을 뺐다. 나에게 그렇게 맞으면서도 내 생각이 아닌, 형씨 생각을 하고 있어서. 씨발 미친새끼. 형씨가 너를 못 믿는게 그렇게 힘들어? 그거, 말했잖아. 너는 나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형씨에게 아무 말 못한거라니까.? 왜 그걸 모르는거야. 이런 모습의 히지카타는 진실로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이나 혐오스러웠다.

지금 이 순간은 이 녀석과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히지카타를 싫어하게 되었다거나, 놓아주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잠시, 이 순간만..

쓰러져서 피를 흘리고 있는 히지카타를 뒤로하고서, 양 손에 흐르는 나와 히지카타의 피로, 내가 걸어가는 길을 표시하듯이 피를 떨어트리면서 걸었다. 주체되지 않는 분노 때문에 몸을 덜덜 떨기까지 하면서. 둔영에 돌아온 나는 카구라의 오빠라는 사람이 쓴 편지가 생각나서 통 보지도 않는 두꺼운 책에 끼워둔 그의 편지를 다시 꺼내어 펼쳐들었다. 나는 무척이나 흥분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여전히 미세히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쳐들었다. 형씨는 나에게서 그를 빼앗아서는,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게 팔 다리를 잘라내버린 개 같은 자식이다. 남의 것을 썼으면 얌전히 돌려줘야지. 씨발. 마지막 장에 써 있는 카구라의 오빠라는 사람의 연락처를 보고 나는 급하게 그 마지막 장을 들고서 뛰쳐나갔다. 공중전화는 사람들이 잘 쓰지도 않고, 오래 되기도 해서 그 옆에 있는 담배꽁초 더미와, 빛 바랜 전화기, 구식의 다이얼버튼 그리고 비위생적인 수화기가 마음이 들진 않았지만,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런 낯선 사람에게 나의 연락처 따위를 알리고 싶진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몇 번의 신호 연결음이 울리고, 받았는지 울리던 연결음이 끊겼다. 받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너머의 상대도 아무런 말 없이 시간이 몇 초쯤 흘렀을 때, 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입을 열었다.

[카구라..?]

“...제대로 걸었나보네”

[..뭐야, 어떤 놈이야?]

차이나의 오빠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목소리나 말투가 부드러웠다.

[이런 장난, 좋아하지 않아. 죽고 싶어?]

죽고싶어? 라는 말뒤에 작게 웃어보였다. 전체적인 말투도 싱글싱글 웃는 말투였다. 하지만 장난식으로 하는 말투에 보이지 않는 살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역시 상당히 위험한 사람임은 확실했다.

“카구라가, 그 쪽을 기다리고 있어”

[...넌 뭔데?]

“카부키쵸에 60-5번지에 있는 여관. 내일 4시 이전까지 와서 데려가”

[...너는 뭐냐고 묻잖아.]

“..지구의 경찰. 가족을 찾아주려는 것 뿐이야.”

무어라고 이야기 하려하는 그의 말은 더 이상 들을 이유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추어, 그 새벽에, 정말 모두가 잠들었음에 의심치 않을 그 시각에 울린 내 핸드폰 액정엔 차이나의 이름이 띄워졌다. 잠깐 와달라는 전화였다.









-
차이나에게 가면서 갑자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오빠라는 사람. 올까? 내가 4시까지라고 말 한 것은 일부러 시간을 정해 준 것이었다. 마지노선도 없이 초조해지고 싶지 않아서. 당연히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지 않는다면? 음... 그것은 장담 할 수 없었다. 그 때의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오겠지. 나는 그와 닮았기 때문에 그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누구와 작별인사 같은 것은 나누게 하지도 않을거야. 나도 그럴 테니까.


-
여관에 찾아갔을 때, 문을 열자마자 차이나는 급히 와서는 나에게 그 여관을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형씨를 찾아가야겠다면서 가서 심한 말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래? 그럼 내일...”

“아냐! 지금 가야겠다해!”

“..내일가자. 내가 같이..”

“아냐! 지금 가야된다해!”

차이나는 나의 말을 단호하게 자르면서 말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래도 모르겠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래도.. 그래도 만나야 할 것 같다해!"

다시 나를 제치고 가려는 차이나의 어깨를 다시 붙잡고 말했다.

"가지 말라니까!"

"아냐! 지금 가야해!"

"늦었잖아!"

나의 다시한번 정신차리라는 듯이 어깨를 강하게 잡자 차이나가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이 몇시인 줄 알기나해? 지금 새벽이잖아. 다들 자고 있을..시간이잖아. 그리고... 위험..하니까.. 너 혼자 어딜가겠다는건데?"

기다려, 내일까지만.. 내일 언제올지 모르는, 네 오빠가 올 때까지만 얌전히 있으란 말이야! 하루만, 하루만..
차이나는 절대로 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가게 하지 않을거야. 만나지마! 만나지 않겠다고 네 입으로 나에게 말했잖아!

"아... 미안하다해.."

꼬맹이가 나의 말에 얌전해져서는 말했다.

"이 새벽에 막무가내로 불러내서는... 나 완전히 제 멋대로다해"

그리고는 히지카타와 나의 피로 물들어 있는 내 손을 보더니, 다쳤냐면서 물었다. 나는 왜 인지 모르게 그 손이 부끄러워서 그냥 신경쓰지 말라면서 대답을 피했다. 나를 쳐다보면서, 와줘서 고맙다면서, 다시 그 무서울 정도로 순수한 파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이렇게 막무가내로 굴어도 찾아와줘서' 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아서 순간 차이나가 무서워졌다.

“나 잠들 때 까지만 있어 주면 안돼? 그리고 내일부턴 정말 말 잘 들을게. 꼼짝 말고 여기에서 기다릴게”

응. 좋아. 나는 대답대신 꼬맹이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앉아서는 빨리 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 내가 기억 못하는 시절에 나는 어땠냐 해?”

“.. 그냥 뭐..”

“그때도, 내가 오빠 좋아했냐 해?”

“아니”

“그때의 나랑 지금의 나랑, 어느 쪽이 더 좋아?”

“지금”

지금의 너니까 이렇게 순순히 내 말에 따라주잖아.

“다행이다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자”

“...내 친오빠는 말야. 항상 웃고 있었지만 기뻐서 웃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해. 지금 오빠도 그래보여. 그냥.. 뭐랄까.. 불안해 보인다해”

“얼른 자라니까”

“내가 옆에 계속 있게 해주면, 불안하지 않게 해 줄 자신 있는데... 나도...네가.. 아니 오빠가 있어주면 전혀 불안할 것 같지 않다해.!... 생각해보니까.. 진짜 가고 싶었으면 그냥 뛰쳐나갔을텐데.. 와 달라고 전화를 한거보면 나도 약간 망설였나보다해.. 그냥 너무 불안해서. 그래서..........”

내가 별 대꾸가 없자, 벌써 자냐해? 하고 묻고는 한참 후에 까지 별 말 없는 걸 보니 잠이 들었나보다. 이 꼬맹이가 나를 향하는 마음은 정말이지.. 그래, 분명히 나를 감동시킬 만했을 거야. 지금 내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네 옆에 있는 그 형씨라는 사람이 나의 것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말이야.

봐요! 히지카타, 난 착한 경찰이야. 길을 잃고 헤메이는 어린아이를 봐서, 가족을 찾아주는 것이잖아. 형씨 같은 변태적인 성욕을 가진 사람의 곁에 꼬맹이를, 그것도 여자 꼬마아이를 두는 것은 정말로 위험하잖아요. 이 꼬맹이도 계속 두게 된다면 어딘가에 가지도 못하게 팔 다리가 잘릴지도 모른다고 당신처럼! 그렇죠? 그렇죠 부장님? 나 잘했죠? 그렇죠? 날 칭찬할 수 밖에 없을 걸? 나는 착한 경찰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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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24

2015. 8. 19. 22:08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곤도씨가 나를 살짝 불러냈다. 술이라도 먹자고 하려나 해서 갔을 때 곤도씨가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소고, 히지카타 녀석 오늘은 완전히 최악이다. 오늘은 괜히 찾지 말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라”

 

“그 새끼가 지랄 하는게 하루 이틀 입니까? 왜 이렇게 오늘따라 호들갑이에요?”

 


“아.. 뭐.. 그거야 그렇..긴한데 그냥 오늘은 좀..”

 

곤도씨는 끝을 흘기면서 어물쩡하게 말했다. 사실 그냥 돌아가려 했지만 곤도씨가 이렇게 나를 말려오니까 더 그가 보고 싶었다. 원래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어지니까. 나는 히지카타가 기뻐할 때도 좋고, 슬퍼할 때도 좋고 나에게 화를 낼 때의 모습도 좋다. 진심으로 히지카타 네가 너무너무 좋다. 위로는 되지 않을 지라도, 옆에서 너의 화나는 일이 무엇인지, 너의 고민이 무엇인지 들어주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해결은 해주지 못할 지라도.

나는 너를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난 녀석이라서 네가 괴로워할 때도 장난을 치고 싶어서 안달나 할 거야. 그러면 나의 장난에 너는 고민하던 것을 잠깐 잊고 피식 하고 잠깐만이라도 웃어주면 된다. 나는 그 작은 사소한 것이 미치도록 좋은 사람이다.

 


나의 공간을 그렇게 의심가득한 눈으로 뒤집어서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안심했을까? 약간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곤도씨의 말을 무시하고, 히지카타의 방 앞으로 다가갔을 때,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그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흐느끼는 소리였다. 너무 어색하고도 당황해서 나는 문을 열려던 손을 잠시 멈추고 그의 방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문 틈으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과 함께 새어나오는 울음소리가 나를 그 자리에 마비시켰다. 이 녀석이 울고 있다니. 곤도씨가 나에게 가만히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한 것은 이 모습을 먼저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가 우는 이유를 짐작한다. 나에게 미안해서 울고 있는 거지? 너? 의심했던 너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런 거지? 나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거지? 그렇지? 응?

 


 

한참을 흐느끼던 그가 갑자기 말을 했다. 전화통화를 하는 듯 했다.

 

“...그니까... 나는... 아니라고 하잖아......”

 

“그니까... 나는...”

 


“아.. 아니.. 왜.. 왜 그게 헤어진다는 이유가 되는지...”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마.....”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어떻게 살...아”

 

히지카타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 형씨였다.

 

 

이 둘이 헤어졌다.

 

 

 

 

 

 

 

 

 

 


 

 

 

 

-

드디어! 헤어졌구나! 이거 봐. 그런 육체적으로 맺어진 관계, 그런 더러운 것이 사랑일 리가 있어? 짐승들만도 못한 쓰레기 같은 관계라고. 지금 히지카타가 우는 것은 일시적이다. 사람이 정신이 돌아 올 때는 그렇게 잠깐의 충격을 겪기 마련이니까. 눈물의 원인이 내가 아닌 형씨 때문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상관없다. 이 둘이 어찌되었든 갈라졌으니까! 나는 꽤나 단순했다. 그래서 히지카타와 형씨가 헤어졌으니, 히지카타는 당연히 나에게 올 거라고 기뻐했다. 곧 그는 연결되어있는 실을 타고서 한 걸음 한 걸음 자신도 모르게 걸어와서 내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히지카타- 사랑해. 얼른 나에게 다가와. 그리고 나를 안아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나의 온 몸을 촉촉한 상태로 적셔줘.

 

 

 

 

 

 

그래, 분명히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날 그는 심하게 앓았다. 내가 직접 그의 상태를 본 것은 아니고, 야마자키가 발견해서 그 날 아침회의는 취소됐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도 일시적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한 것이 아픈 듯한 느낌까지 함께 받았다.

 


의무실에 가서 히지카타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아프니 당연히 의무실에 들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들 말로는 야마자키에게 들어서 직접 찾아갔어도 이딴 건 필요 없다면서 그냥 조금 자면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가서 증상을 좀 봐줄 수 있냐고 물었다. 글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히지카타가 열이 있는 것 같으니 우선 약을 좀 전해주라면서 작은 약병도 함께 내밀었다. 그리곤 더불어 그 의무병은 나에게 말했다. “오키타 대장 말이라면 부장도 못이기는 척 하면서 들을거예요. 두 분 맨날 티격태격해도 정말 사이 좋으시잖아요?” 나는 그 말에 괜시리 우쭐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약간 들뜬 말투를 애써 감추면서 그딴 소리 말고 어서 내놓으라면서 약병을 낚아 챘다.

 

 

 

 


히지카타의 방에 갔을 때, 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답지 않게 어지럽게 널려있는 물건들을 보고, 그가 정말 아픈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열이 있는지 약간 숨소리가 거칠어서 나는 그의 이마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평소 온도보다 약간 높아서 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아프구나 너. 그가 아파서, 그런 그와 함께 나도 함께 아팠다. 내가 이마에 손을 얹은 것을 느꼈는지, 그가 내 손목을 살며시 잡았다.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그가 내 손목을 따스하게 잡아서 설레이면서 놀랐다.

 

“...안갈거지..?”

 

“...”

 

​“..가지마..”

 

당연하지. 내가 너의 옆이 아니면 어디에 있어.

 


그가 그렇게 이야기해줘서 좋았다. 가지 말라고 해줘서 좋았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 네가.. 와줘서 정말.. 기뻐.. 내가 아파서 니가 왔다면.. 항상.. 이런 상태였으면 좋겠다.”

 

난 항상 네 옆에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알았다. 그가 지금 대화하고 있는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그는 착각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야 히지카타, 형씨가 아니라고”

 

내 말에 히지카타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나를 놀란 눈으로 보다가 직후 잡은 손을 놓았다.

 

“아..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미안”


그 말을 남기고는 뒤척이며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나에게 등을 보였다.

 

“.. 왜 왔어?”

 

“아프다 길래. 약 주려고 왔어”

 

“두고 가”

 

내 눈도 마주보지 않고 말하는 그가 야속해서 한참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왜 헤어진 형씨에게는 그렇게 상냥하게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나에게는 냉정하게 두고 가라면서 매몰차게 말하는지..

 

“약 먹는 모습.. 보고 갈거야”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너를 위해주고 있는 나를 보고 조금이라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해서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이런 말, 내가 너한테 할 수 있을 것 같아? 원래의 나라면 먹고 죽어- 라거나, 빨리 죽어 정도의 말이 어울리잖아.

 

 

 

 

나는 그의 바로 옆에 앉아있지만, 그와의 거리는 좀처럼 가깝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있었으나, 좀처럼 닿지 않았다. 돌아가라고 그는 재차 말했지만 나는 그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아무런 존재도 되지 않고, 그에게 어떠한 위로조차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계속 느끼게 만들어서 그 순간은 멍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옆에 있지도 않은 형씨를 그리워 하는 이 새끼가 너무 답답해서 순간 욱하는 감정을 느꼈다. 헤어졌잖아. 니네 끝났다면서. 근데 왜.. 히지카타, 형씨는 말야 그 정도밖엔 안됐던 거야. 그냥 잠깐 너와 즐겼던 사이였을 뿐이야. 너희 둘이 헤어지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너와 형씨가 왜 헤어졌는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작은 바람 같은 사고에도 휩쓸릴 정도로 가벼웠던 거야. 하지만 나는 네 옆에서 영원할 거라니까? 그니까... 나를...지금 당장 나를 사랑해줘....... 내가 한참을 말없이 옆에 앉아있자 그가 다시 말했다.

"두고 가라고 했잖아."

내가 형씨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를 떠나지 못하는 히지카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재 그가 형씨를 원하고 있기에 형씨가 부러웠다. 그래서 그만큼 미웠다. 어째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나를 두고 어째서 형씨를 기다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왜 형씨에게.. 나에게 그 곳을 줬다고 말하지 않았어?"

 


"..."

"...너, 잠깐 햇갈린거야."

"..."

"그래서 말도 못하잖아. 형씨가 화를 내건 어쩌건, 너를 의심하든 어쩌든 내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는 거잖아"

"...가라고 했잖아. 가"

"그래서, 뭘 좀 찾았어? 나 의심해서 그 곳 뒤졌던 거 아니야?"

"..."

"봐,..나 아니라니까. "

"..."

"히지카타, 너 변했어"

내 말에 히지카타는 몸을 일으키고선 거칠게 나를 돌아보았다. 아파서 그런지 얼굴이 좋진 않았지만 그런 모습으로도 나는 충분히 그에게 취했다.

"너.. 닥치고 가라는 말 안 들려?"

"좋아해"

"꺼지라고!"

"히지카타. 나 네가 너무 좋아"

"..."

 


"나는 네가.."

내 말이 끝나기 전에 그가 나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표정은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이런 모습으로도 충분히, 충분히 너에게 취했다. 내가 약간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그는 내 표정을 보고는 이내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리곤 말했다.

"..그만해"

"헤어진거잖아?"

이 말을 했을때 히지카타의 표정이 내 표정만큼 슬프게 일그러졌다.

"왜 헤어졌는지 생각해봐. 너랑 형씨는 그 만큼이야. 거기까지라고"

"..."

"왜? 뭐.. 형씨랑 그까짓 형편없는 사랑 비스무레 잠깐 했다고 치자. 그딴거.. 영원할 줄 알았나봐?"

씨발 존나 순수하네.

"..어제 방 앞에서 통화내용 들어보니까 아주 가관이더라. "

아무 말도 없이 내 어깨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어서 가슴이 아팠다.

"..너라는 새끼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이 보여"

물론 진심은 아니다. 나에겐 넌 아직도 태양, 혹은 달과 같은 고유명사로써 나에게 존재하는 단 하나의 존재였으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크게 빛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이때 나는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다른 무엇도 생각나지 않은 상태로 그냥 한없이 슬펐다. 히지카타가 슬퍼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나도 함께 슬펐다. 그가 울어서 나도 울 것 같았다. 그가 힘들어해서 나도 힘들고...

 

 

 

 

 

 

 

 

-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히지카타는 좀처럼 낫지 않았다. 아마 내가 가져다 준 약도 입에 대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둔영 안은 겉으로는 다들 걱정하는 척 했지만, 약간은 암묵적으로 축제 분위기였다. 나만 빼고. 내가 즐거워하지 않자 다른 대원 모두가 왜 기뻐하지 않냐고 물었다. 제일 좋아해야 할 사람이 대장 아닙니까? 하고 묻는 대원도 있고, 사실 내가 히지카타를 그렇게 만든 흑막이 아니냐며 물었다. 나는 그 말에 장단을 맞춰주려 "응 사실 내가 몇 일 전부터 귀신을 불러냈거든" 하고 대충 대꾸했다. 그를 괴롭히려는 이런 나의 행동이 다른 대원들의 눈엔 너무나 당연해서. 나는 사실 그의 옆에 딱 달라붙어서 하루 종일 그를 치료해주고 싶었다. 내가 치료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못 한다면 그냥 옆에 앉아서 그냥 그를 지켜보고 싶었다. 한참을 나답지 않게 머리를 굴렸다. 그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혹여나 들킬까봐 찔렸는지 다른 대원들이 나를 의심하면 어쩌지? 하고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던 거다. 그리곤 나는 끝내 그를 치료해주겠다 이런 낯간지러운 말은 끝까지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평소처럼 일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 날은 무슨 마약범을 붙잡으러 간다며 다들 열을 올렸다. 물론 나는 내 마음이 히지카타의 옆자리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없이 다른 번대 대장들이 하는 걸 나와 상관없는 일을 보는 듯이 멍하니 서 있었다. 다른 번대 대원들이 잡았다면서 신나하는 것도 전혀 공감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있는데, 대원하나가 물었다.

 


"빼앗은 마약들은 어디에 둘까요? 무기창고에 둘까요?"

"그럼, 니가 하기라도 하려고?"

나의 시큰둥한 목소리에 나에게 물었던 대원이 크게 웃으면서, 이거 진짜 효과 죽인데요! 깰땐 좀 머리 아프다고 하지만 완전히 자신이 보고싶은 장면만 보인데요! 라고 말하면서 장난스럽게 한봉지 가져갈까?하고 장난을쳤다.보고 싶은 장면만 보인다니. 그럼 내 눈앞엔 나를 사랑해서 견디지 못하는, 히지카타만 보이겠구나. 그런 환각만 보인다면 지금 당장 마약에 쩔은 약쟁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사실 마약에 쩌들은 약쟁이들은 굉장히 안쓰러운 사람들이다. 보고 싶은 것을 실현할 수 없어서 마약으로 인한 환각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니까.

 

 

 

 

 

 

나를 정말로 화나게 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히지카타가 몸이 성하지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담배를 피운다는 것과, 여전히 새벽에 나돌아다닌다는 점이었다. 확증은 없었지만 왜 인지 모를 나의 심증이 자꾸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헤어진다는 전화를 한 이후에 아팠기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저녁에 그의 신발 아래에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모래 몇 알, 머리카락 한 올을 두어 표시를 해두었다. 혹시나 그가 나간다면 이것을 밟고 갈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이렇게 해두면 다음 날 확인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아침에 확인한 그 결과, 역시나 나의 심증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딜 가는지는 알고 있다. 형씨를 만나러 가는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진심으로 아니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를 것이다. 그 날도 새벽에 담배를 물고, 성하지 않은 몸을 이끌면서 나서는 그의 뒤를 숨죽인 채 밟으면서 익숙한 거리로 향하는 그가 미웠다. 해결사 사무실. 그 앞에서 그는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귀에 가져다 대고, 다른 한손으로는 익숙하게 담배를 피웠다. 그렇게 몇 시간, 그의 발 밑에 엉망으로 떨궈져 있는 수 많은 담배꽁초가 그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계속되는 한숨과, 그리고 잘 보이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눈물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담배를 피워대는 시간만큼 나는 그를 어둠속에서 지켜보면서, 혹시나 흐느끼는 소리가 세어나갈까 무서워 내 입을 틀어막고 한참을 울었다. 혹시나 그가 형씨에게 마음이 빼앗겨 정말로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이미 헤어지자고 형씨는 말했지만 그냥 잠깐 싸운 것일 뿐이고, 다시 이 둘이 웃으며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수 만 가지의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서 울고 있는 나를 더더욱 시커멓고 차가운 낭떠러지에 몰아넣을 뿐이다. 다행히도 형씨는 히지카타의 전화도 받지 않고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는 그의 뒷 모습이 쓸쓸하다 못해 그자리에 주저앉을 것 처럼 위태로워 보여서 부축해주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그가 지금 바라는 사람이 내가 아닌 걸 내가 잘 알고 있어서. 내가 간다고 한들 이런 나에게 위로받지 못할 걸 아니까. 그리고 그런 그의 행동에 상처받을 내 마음의 고통이 무서워서. 그걸 직접 느끼기엔 내가 너무 괴로웠다. 그가 돌아간 후에도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내 슬픈 감정을 눈물을 통해 쏟아내기라도 하듯이 한참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 보다 더 오래 그 어둠 속에 머물렀다.

 

 


 

 

 

 

 

 

 

 

 


-

차이나는 내가 만나지 않겠다고 한 이후로, 몇 번 나를 찾아오긴 했었다. 하지만 나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바로 그 다음날에 나를 찾아왔을 때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갔다. 기억을 잃기 전의 차이나였다면, 이런 나를 냅다 쫓아와선 뒤통수라도 갈겼을 텐데, 지금 차이나는 나에게 그렇게 저돌적이고 공격적이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서, 차이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두 번째 찾아왔을 때는 내 표정에 단호함이 보였는지,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도 못했다. 그리고 두어 번 정도를 더 찾아왔는데 그 때마다 딱히 무엇을 하지는 못하고 그냥 나를 먼 발치에서 쳐다보기만 했다. 물론, 나는 차이나를 돌아보지 않아서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얼마나 있었는지 그런 것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는 몇 일 동안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때, 히지카타에게 모든 신경이 쏠려있어서 차이나에 대해서 전혀 생각 못하고 있다가, 비가 오는 어느 날, 보라색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다른 어떤 사람을 보고 그 때야 생각해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차이나는 찾아오지도 않네. 하고. 아쉽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조금 더 격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순순해서 지루했다. 차라리 기억을 잃기 전의 차이나 쪽이 그런 면에선 재미가 좋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거리에서 우연히 차이나를 만났다. 지나치려 하는데 차이나가 내 팔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해”

 

차이나가 나를 약간은 울먹이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나. 그 아저씨한테 가지 않을거다 해. 그 집에 다시는 안갈거야. 그 아저씨랑 엄청 싸웠다해. 그니까.. 이제 다 상관없다해..이제 나랑 다시.. 만나줄.. 거지?”

 

차이나를 쳐다보니, 전에 여행 간다면서 나를 찾아왔을 때와 비슷한 가방을 메고서, 짐을 싸서는 나왔다고 말했다. 갑자기 머리가 더 아파지는 기분이다. 나는 이렇게 짐을 싸서 나오는 것 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냥 형씨가 아끼는 만큼 좀 더 대들거나, 상처를 주는 것 까지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강하게 집을 나오는 선택을 할 줄이야.

 

“너. 그럼 갈 곳은 있어?”

 

차이나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면서 없다고 말했다. 이건.. 아니니까 나는 차이나를 달래서 다시 형씨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싫어도 거기에 있어야 오빠랑 아빠가 올거 아냐.. 정도의 적당한 말을 둘러대려 했다.

 

꼬맹이는 목이 마르다면서 나한테 음료수를 사달라고 꽤나 당당하게 요구했다. 나는 그런 차이나의 말에 순순히 알겠다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간 카페에서 차이나는 주문한 음료가 나오기도 전에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맞다! 그거 아냐해?”

 

“뭘?”

 

“아저씨랑 싸우기 전에 우연히 아저씨랑 그 안경이랑 이야기 하는 거 들었는데, 그 별 그려져있던 집 있잖아. 거기에 그 히지카타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해. 그리고 그 날 아저씨 엄청 충격 받은 표정으로 집에 왔다 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의 시체였다해 시체. 원래 눈도 동태눈깔이어서는.”

 

히지카타가 내 공간을 찾아간 날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왜 만나지 못하게 말을 했냐고 물어보니까 지금은 그딴 거 신경 쓸 틈이 없다면서 나한테 화내는 거 있지? 지금 엄청 상태 안 좋다고 그러면서. 누구는 좋은 줄 안다해!..”

 

꼬맹이는 짜증난다는 식의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약간은 그런 행동에 후회가 있는 듯 하기도 했다. 눈빛이 약간 흔들렸거든.

 

차이나는 계속 말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히지카타라는 사람이랑 헤어진 것 같다해. 맨날 그 녀석이 집 앞에 새벽에 찾아오는 것 같다해. 그리고 그 아저씨도 그 새벽에 거실에 앉아서 계속 술만 퍼마시더라해. 전화 계속 울려서 내가 시끄럽다고 소리 질러도 그냥 힘없이 미안. 이러기만 하더라. 지겹게 말야. 새벽내내 진동소리 듣고 있다고 생각해봐라해. 그거 완전히 신경 쓰이는 소리다해! 그리고.. 내가 못 찾아왔던 날..은 그날은 완전히 대판 싸웠다해.. 사실 내가 찾아가고 있다는거 들켰서 나한테 뭐, 만나지 말라고 하면서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나도 지친다, 이런 말 하는데 왜 자꾸 자기 생각만 하냐해? 나도 지친다해! 그러다가.. 이번엔 내가 좀 심하게 말한 것 같긴 한데.. 완전 귀찮다고, 왜 이런 곳에 오빠와 아빠가 나를 맡겼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서 화를 냈다해. 돈도 없고, 거기에다 동성애자라는 것도 더럽다고 말해버렸다해.. 오히려 화도 안내고.. 표정이 엄청 안 좋았는데.. 다시 마주칠 자신이 없어서 나왔다해. 이제...다시는 안갈거야.”

 

나는 다른 말은 잘 모르겠고, 형씨와 히지카타가 헤어졌고, 형씨도 굉장히 힘들어 한다는 것, 그리고 차이나와 형씨가 싸웠다는 것 정도만 확실하게  들었다.

 

“아.. 오빠랑 아빠는 언제 오는 거냐해..”

 

차이나가 지친 듯이 카페의 책상에 철푸덕 엎드려서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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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23

2015. 8. 19. 22:07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매우 이른 아침에 둔영으로 돌아왔다. 그때에도 희미하게 불이 켜져있는 히지카타의 방을 보고, 이 녀석은 돌아와서도 형씨와의 대화 내용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오늘 또 나에게 화를 내러 오겠지? 히지카타는 지금 나와 형씨 사이에서의 선택지에 섰다. 한 명을 선택하는 순간 한 명은 잃게 될 거다. 나를 선택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난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전의 상황이라면 그가 나를 선택할 것 이라는 것은 절대적이어서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나를 선택해달라고 구걸해야했다. 나는 너를 떠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히지카타는 내 예상과 다르게 나를 부르거나, 찾아와서 화를 내거나 캐묻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그 답지 않게 술에 잔뜩 취해서 비틀비틀 거리며 둔영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런 히지카타를 본 다른 대원들이 부축해주려 다가가자 내버려 두라면서 거칠게 화를 내며 뿌리쳤다. 어쩔 줄 몰라하는 다른 대원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다가가서 대원들에겐 돌아가라고 이른 후, 그의 앞에 섰다. 으, 술 냄새. 이 녀석이 이렇게 ‘술’이라는 것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서 그 답지 않은 추태를 부리며 내 앞에 있는 것은 처음이다. 내가 다가가서 그의 팔을 내 어깨에 얹었다. 이상하게 순순했다.

 

“....미츠바..”

 

진짜로 취했나보다. 나를 누나로 착각해서 보다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누나로 착각을 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냥 그가 내 부축에 순순히 응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했으니까.

 

“...어떡하지.. 나..”

 

중얼거리는 이 녀석의 목소리. 언제 들어도 섹시해서 이 자식을 쫓아다니는 여자들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누나가 이 녀석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가... 내가 소고 녀석을... 그렇게 만든 거... 겠지?..”

 

응. 히지카타는 다행히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눈물을 보였던 꼬맹이는 그 다음날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그런 점을 의식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는 은근히 그 꼬맹이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또 형씨가 어딘 갈 데리고 갔을까? 내가 직접 해결사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는 안경 녀석만이 홀로 그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이 녀석에겐 흥미가 없어서 그냥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곤 그냥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꼬맹이들이 노는 놀이터의 그네에 멍하니 앉아있는 차이나를 발견해서 옆에 비어있는 그네에 나도 앉았다.

 

“뭐해?”

 

내가 묻자 꼬맹이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보다가, 이내 더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날 형씨와 히지카타의 대화를 어디까지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울고 있었던 모습과 지금의 태도에서 혹시나 기억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약간 나를 두근두근하게 만들었다.

 

“아니........그냥.... 기분이... 안 좋다해...”

 

“그래?”

 

내 말에 다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고, 가볍게 그네를 조금 여운있게 흔들어 대던 꼬맹이가 입을 열었다.

 

“계속.. 생각했는데.. 히지카타라는 녀석이랑 나랑 같이 사는 아저씨랑 서로 좋아하는 사이냐해?... 둘 다 남자 아니냐해? 이상하다 해.... 싫다해..”

 

남자와 남자가 서로 좋아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거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히지카타와 형씨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냐고 묻는 질문에는 긍정하고 싶지 않아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나.. 나에 대한 이야기는 뭐냐 해?”

 

다행히 기억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해.. 히지카타라는 사람.. 나랑 잘 아는 사람이었냐해?”

 

다시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에게 물어서 나는 아직 확실하게 말을 하지 못하겠다고 대답하고 알아보겠다고 했다. (왜 이렇게 애매하게 대답했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덧붙여서 말했다.

 

“난 네 편이잖아”

 

 

당연히 그 날 꼬맹이의 상태는 평소보다 심하게 불안정해보여서 나는 차이나를 보다 상냥하게 달랬다. 그리고 나의 달램에 차이나는 조금은 안심했는지 울려던 얼굴을 하다가 이내 약간은 안정된 표정을 지었다.

 

 

 

 

 

 

 

 

 

-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을 깜빡 했는지, 혹은 진짜 히지카타가 나와 순찰을 가려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 순찰 명단엔 나의 이름과 히지카타의 이름이 한칸에 나란히 있었다. 좋았지만 지금의 상태에서 그와 좁은 차 안에서 둘이 있다는 것은 약간 무섭기도 했다. 그가 어떤 말을 해올지 한 마디 한 마디가 두려웠다. 히지카타는 먼저 조수석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태도를 보아하니 그가 나와 함께 가려고 한 것 같다. 내가 운전석에 앉자 그가 말했다.

 

“... 어떻게 해야 되냐. 내가”

 

나는 그의 말에 그를 한번 쳐다보고 말 없이 시동을 걸었다.

 

“..넌 정말....”

 

“나 아니야!”

 

내가 그의 말을 자르곤 말했다.

 

“나 아니야! 나 그런 적 없어!”

 

“...”

 

“해결사네 차이나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거잖아! 나 아니라고! 난 아무것도 몰라! 너랑 형씨의 대화를 엿들었어! 그래서 아무 말 안했던 거야!”

 

내가 절규하듯이 말했다. 거칠게, 그리고 홧김에 운전을 하고 있었지만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히지카타도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렇게나 길이 보이는 데로 운전하고 있었다.

 

“...그럼 카구라가 그 집은 어떻게 알아?”

 

“몰라! 나도 모른다고!”

 

내가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말하고 있는 것도 맞지만, 그의 의심하는 말투에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그대로 같이 동반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대로 아무대나 거칠게 한참을 달리다보면 가파른 절벽 같은 곳이라도 나올 것이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으니 상관없었다. 바다에 떨어져서 고통스럽게 물에 잠겨 물고기의 밥이 되더라도, 사람의 인적이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에 정체불명의 시체가 되어서 까마귀 밥이 되도록 버려지더라도 말이야. 혼자 죽는 것은 사절이다. 전엔 차라리 그가 나를 죽여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누나는 천국에 있을 테니 지옥으로 간 나 혼자만 다른 세계에서 고통스럽게 내가 죽여왔던 시체들의 늪에 파묻혀서 다른 사람과 행복한 그를 지켜본 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미치게 우울한 일이다.


 

나의 말을 들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엔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고 나는 계속해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야! 난 몰라! 몰라! 그러자 히지카타는 말없이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 누나가 이런 너를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내가 뭐! 난 떳떳해!”

 

내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자 히지카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디인지 모를 느낌의 이상한 길을 운전하는 나는 그의 의심 가득한 표정이 싫어서 완전히 거칠게 차를 세웠다. 조금 더 빨리 달리고 있었다면 차가 뒤집혔을지도 모른다. 급정거로 인해서 나와 히지카타는 앞 유리에 이마를 부딪힐 뻔했다. 멈춘 차안에서 다시 나를 쳐다보는 히지카타의 눈동자가 아직도 의심이 가득해서 순간 파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버렸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눈동자에 내가 투명하게 비치는 건 정말 황홀했으니까. 나는 히지카타에게 말했다.

 

“..누나가.. 나를 의심하는 너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지 생각해봐. 너야말로!”

 

나의 누나가 나에게 있어서 기준이자 날 흔드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누나 이야기를 꺼낸 것 같은데, 누나는 나 뿐만 아니라 이 녀석에게도 약점이 된다는 것을 안다. 내 말에 그는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지만, 그가 여전히, 아직도, 여전히, 여전히 나를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말야.. 니가 지금 내 앞에서 우리 누나 이야기를 꺼내는 거야? 뻔뻔한 새끼”

 

내가 그를 천천히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말없이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럼. 피해야지. 그렇고 말고.

 

그날 나와 히지카타는 그 이상의 대화도 없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길을 마냥 떠돌았다. 무슨 풍경이 차창 밖을 지나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속 안이 까만 긴 터널을 지나간 듯 하기도하고, 숲을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도시를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무전에서 자꾸 소음과 함께 무어라고 소리가 들렸는데 나도, 히지카타도 그것에 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히지카타는 제 쪽에 있는 창문을 고개를 돌린 채 바라보고 있고, 나는 운전을 하고 있으니까 앞 유리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잡고 있을 뿐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감각적으로 둔영에 돌아오긴 했다.

 

 

 

 

 

 

 

 

 

 

-

[오키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근데 앞으론 카구라를 이 이상으로 흔들지마. 너라는 존재가 계속 옆에서 맴돌고 있어서 나에게 마음을 주려 하지 않는 것 같아. 부탁해놓고 이렇게 말하는것도 어이없는 일이긴하지만..이제 더이상 찾아오지 말아줬으면 해]

 

[너 우리 카구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음.. 사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너의 태도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어. 니가 이렇게 상냥하게 카구라를 대하는 것이 이상해.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의 이유도 사실 이게 가장 확실한 이유야]

 

[부탁할게]

 

 

형씨에게 온 문자. 장난하시나. 내가 당신이 부탁하면 들어줘야 하는 그런 만만한 사람인가? 내가 형씨에게 히지카타에 대해서 지금의 형씨와 같은 태도를 보였을 때 형씨는 어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길. 형씨는 여전히 이기적이예요. 너무나.

 

 

 

 

 

 

 

 

 

-

형씨가 내 공간에 지속적으로 찾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나는 그 곳엔 가고 싶어도 갈 수는 없었다. 그 곳에 내가 딱히 꼭 가야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가지도 않았지만.

 

그리고 그 날은 그 근처를 지나가는데 내 공간에 불이 켜져 있는 거다. 난 찾아간 적이 없는데.. 그리고 그 근처에 세워져 있는 신센구미 전용 차량을 보고 나서야 그 안에 있는 사람이 히지카타라는 걸 알았다. 그는 나를 의심하다 못해 내가 있는 그 공간을 조사라도 해 볼 요량인 듯 했다. 누가 경찰 아니랄까봐.. 뒤져봐라. 난 당당하니까. 그리고 설마 그런 곳에 증거를 버젓히 남겨두는 그런 머리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어쨌든 나의 고백에도 나를 믿지 못하고 이 곳 까지 나 몰래 뒤져야하는 그의 행동은 나를 다시 한번 미치게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나는 그만큼 신뢰받고 있지 못했던 거다. 그리고 나는 차이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음에도 없는 차이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이유는 그냥 우울해서. 나에게로만 향하는 그 순수하고도 절대적인 마음을 받으면서 조금은 위로받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히지카타의 행동에 의해서 나는 외로웠으니까..

 

“여기로 와주면 안돼? 지금 바로”

 

나의 말에 차이나는 근처라고 답하면서 바로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소를 다시금 확인하면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알겠다고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전화를 했고 불러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차이나가 아닌 저 공간을 뒤지고 있는, 나를 의심하고 있는 히지카타 였기에 이 꼬맹이가 나에게 와서 온갖 새하얀 순수한 말들로 나를 쓰다듬어도 위로되지 않을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위로받고 싶었다.

 

나의 공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걸어서 온다면 꽤나 멀다.) 거리에서 멍하니 벤치에 앉아있는데 달려오는 차이나가 보인다. 내가 저를 불러줬다는 기대감에 벅찬 표정을 지으면서 달려오는 차이나를 보면서 내가 지독하게도 치사한 새끼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죄책감도 전혀 느끼지 않고 오히려 이 꼬맹이의 지금 상태를 꽤나 좋아하고 있었다. 차이나의 상태가 목각인형 같았기 때문이다. 히지카타와 내가 이어져 있는 운명의 실과는 달리, 나와 꼬맹이 사이의 실은 내 의지로 쉽게 꼬맹이를 조종할 수도 있고, 끊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놓는다고 이 꼬맹이는 죽는다거나 하진 않을 거다. 이 꼬맹이에겐 다른 꼬리표가 붙어 있으니까. 아, 그리고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런 상태는 차이나에게 있어서도 다행인지도 모른다. 남이 아닌 가장 신뢰하는 가족에게 이런 일을 당한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상처이니까. 다시 가족을 그리워하는 상태가 된 거잖아.

난 착한 경찰이야.

 

 

내 공간을 헤집으면서 내 마음까지 같이 헤집어 대는 히지카타. 그리고 그런 그가 믿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에 서서이 지쳐가는 나. 그 어두운 통로에서 난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서 있었고, 내 눈에 보이는 희미한 내 그림자만 어디서 오는지 모를 빛에 의해서 작아졌다가 길어졌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뭐하냐 해! 넋이 나가선”

 

어느새 내 앞에서 선 차이나가 내 얼굴을 양 손으로 움켜쥐었다.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하곤 옆에 앉으라고 말했다. 차이나와 있을 때 좋은 점은 내가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차이나가 알아서 이야기를 쫑알쫑알 해댄다는 거다. 물론 싫을 점으로 작용되는 때가 많지만 이런 날은 그냥 옆에서 이렇게 무슨 말이던지 말을 걸어주는 편이 좋다. 물론 귀 기울여서 듣고 있진 않기 때문에 무어라고 말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듣고 있냐 해!”

 

“응? 어어..”

 

자기 말에 제대로 집중도 안할 거면서 왜 불렀냐면서 투덜거리는 꼬맹이를 잠시 쳐다보다가 말했다.

 

“나랑 떠날래?”

 

나도 모르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바로 응! 이라고 답할 줄 알았는데, 차이나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말했다.

 


“음.. 가고 싶...긴한데.. 어디로 갈거냐해? 언제?”

 

쳇, 마음에 안 들어.

 

“가기 싫구나?”

 

“아냐! 가고 싶다해! 근데...”

 

“근데?”

 

“오빠랑 아빠가...”

 

꼬맹이 답게 온다는 가족들을 떠올리고는 우물쭈물하면서 당황해했다.

 

“됐어. 너랑 안가”

 

내가 약간의 한숨과 함께 말하자 꼬맹이가 말했다.

 

“나랑 떠날 생각도 없었으면서!”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그냥 여기서 함께 있는 게 좋다해. 지금 이대로가 나는 좋다해”

 

이대로? 장난하나. 이대로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아마 나는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심장에 사상충이라도 생긴 듯 심장이 뛰어서 하루 종일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지 못한 채 진짜로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너무 답답해서 남을 베던 칼로 나를 도려내면서 내 피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자해를 즐기는 우울증 환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대로면, 히지카타는 정신병자가 되어버린 나를 여전히 쳐다보지도 않겠지. 아니면 그런 한심한 나를 보면서 또 다시 ‘누나가 네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을 하겠냐’고 한심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고는, 나를 외면하고서 꼴사납게 당당한 저는 형씨에게 맨날 찾아가고 있겠지? 존나 개 같은 상황이잖아 이거. 씨발 다 죽어버려.

 

 

차이나는 나에게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는다면서 자꾸 나를 위로해주려 했다. 사실 이런 것을 바라고 부른 것은 맞지만 소용없었다. 한참 옆에서 쫑알쫑알 시끄럽던 꼬맹이는 같이 사는 아저씨가 일찍 오라고 했다면서 투덜거리며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제 나, 너 안 만날거야”

 

“..응? 왜?”

 

“그러니까 너도 나 찾아오지마”

 

“왜..?”

 

“너랑 같이 사는 그 아저씨가 만나지 말래”

 

내가 말하자 차이나는 완전히 놀란 얼굴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형씨의 말에 따라주기로 했다. 나의 방식으로.

 

“시...싫다해! 그 아저씨가 뭔데 상관이냐 해! 그런 아저씨 말 같은거 완전히 무시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런 말 하지마라 해.. 오빠랑..아빠도 없고... 그럼 난 혼자잖아.. 싫다 해..”

 

울먹울먹 거리는 차이나를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그 아저씨가 만나지 말라는 데엔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널 위해서 하는 말이겠지 그니까 말 잘 들어. 너 착한 아이잖아”

 

으 역겨워. 내가 이런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다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하지만 이럴 땐 좋은 사람인척 하는 게 나를 포장하기에 제일 좋다.

 

 

이런 꼬맹이들은 감정이 항상 폭팔해서 잠깐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에도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법이다. 자연스럽게도 아닌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과, 심지어 나를 의지하고 있기에 상냥하게 말했다. 나는 이 꼬맹이가 나의 말에 울먹거릴 것도 알고, 그렇다고 나를 이대로 순순히 만나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럴 땐 분노의 방향이 원인제공자에게 향할 것이기에. 차이나, 나를 좋아한다고? 그러면 보여줘봐.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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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22

2015. 8. 19. 14:08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의도하지 않았다. 남을 구슬려서 내 뜻대로 구슬리고 조종하는 것이야 좋지만, 차이나가 그 대상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 꼬맹이가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날 의지해서 인지, 내 말을 잘 들었다. 말을 하라고 하면 말했고, 아이의 상태여서 그런지 거짓을 말하지도 못했다. 가볍게 거짓말을 했을 땐 얼굴에 확 드러나고 이내 사실 거짓말이야! 라고 말하면서 실토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점은 편했다. 거짓말이라고 해봤자, 너무나 사소하고 작은 거짓말이라서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이 꼬맹이의 마음이 나에게도 피부에 닿는 듯이 느껴졌다. 사소한 모든 일을 말하고, 제 속마음과 가족 이야기까지 가끔 상세하게 나에게 털어놓았다. 아빠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꼬맹이의 오빠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주의 깊게 들었다. 별건 없었다. 이 꼬맹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편지에서 기록했던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녀석이었다. 하긴, 범죄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 더 가깝다.

  

차이나의 말에 따르면 요즘 형씨는 매일 어딘 갈 싸돌아다닌다고 했다.(요즘엔 나도 자주 가지 않는 내 공간으로 가는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히지카타의 전화는 거의 받지 않고, 히지카타가 종종 집에 찾아오면 거의 문전박대를 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차이나는 안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고, 열어주려 하면 나가지 못하게 잡으면서 본인이 나가서 이야기 하겠다며 말려서 히지카타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자꾸 찾아오는지 이해가 안 간다. 같이 사는 그 아저씨는 맨날 그 녀석한테 화만 내는 것 같던데’ 라고 말했다.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나의 입장으론 좋았으나.. 내가 아닌 형씨를 찾아간 그에게 내가 아닌 형씨가 화를 낸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다. 히지카타 병신새끼.

  

“근데, 우리 오빠랑 아빠가 진짜로 오긴 하냐 해? 언제 오냐 해?”

  

“...음.. 글쎄, 곧 오실거야”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꼬맹이들에게 가족이란 존재는 항상 찾게 되기 마련인데..

  

“아빠랑 오빠랑 오면 나 여기서 떠나는 건가?”

  

혼자 잠깐 생각하듯 머리를 갸우뚱 하면서 중얼거렸다.

  

“..더 늦게 왔으면 좋겠다해! 나 오빠랑 헤어지기 싫다해”

  

내 옆에서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행이다. 보채기 시작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다른 방향으로 여기에 있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같이 사는 아저씨 말고, 오빠랑 살면 더 좋을 텐데”

  

눈을 빛내며 말하는 차이나가 본래 형씨에게 말 할 법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서 좋았다. 나 역시 형씨에게 소중한 하나를 슬며시 쥐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약간의 우쭐한 감정에 차이나에게 웃으면서 그러게, 아쉽다 라고 말했다. 내 말에 바짝 다가와서 나, 좋아해? 하고 발그레한 얼굴로 물었다. 형씨도 이런 기분 이었나보다. 남에게 누군갈 빼앗아서 내 뜻대로 행동하는 그 우쭐함. 물론 나는 이 꼬맹이와 무엇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고선 황홀해하는 누군가를 짓밟는다는 것은(그것도 내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아끼는 그 ‘누군가’였기에 더욱 더.) 내가 즐기는 놀이 중에서도 단연 돋보적으로, 충분히 내 관심을 붙잡았다.

  

  

  

히지카타는 내가 이 꼬맹이와 여전히 만난다는 것을 모르는 듯 했다. 꼬맹이는 형씨한테는 나와 만나는 것을 말하는 듯했는데, 형씨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형씨는 여전히 히자카타에게 실망한 듯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이고, 히지카타는 그런 형씨를 별 말 없이 달래려는 것 같았다. 나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화나는 일이었지만, 나를 쉽사리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그의 행동은 좋았다. 현재 그에게 나는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인 듯했다. 잘라버릴 수도 없어서 어떻게든 달고 다녀야하는. 그가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미치도록 기쁘게 했다.

  

나는 당당해서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둔영을 다녔고, 히지카타는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얼굴에 징그러운 새끼. 라고 말하는 듯 경멸의 눈초리를 나를 한번 쏘아보곤 고개를 돌렸다. 몇 번이고 그에게 말할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눈초리를 받는다면 누구라도 말하고 싶을 것이다. 아무리 구차하다고 느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도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참았다. 지금은 말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병신아 가서 이야기를 해! 구차하지 않아! 내가 아니라는 한마디면 그는 믿을 거야! 라고 속에서 외쳤지만 그가 그런 표정을 지어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 꼬맹이가 왔다. 그 날은 다른 날 보다 더 힘이 없고 시무룩 해보여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일...은 없고.. 그냥.. 뭔가 좀 찜찜하다 해”

  

잠깐 시무룩하더니, 이내 웃으면서 지금 걱정하는 거냐면서 살짝 웃었다. 걱정. 하고 있긴 하지. 꼬맹이가 잠깐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 아저씨 말이야. 어제 상태가 완전 이상했다해. 잠깐 나갔다 왔더니 넋 나간 사람처럼 한참 앉아 있길래 내가 아저씨, 왜 이러고 있냐해- 하고 물어보니까 날 보더니 막 울면서 아저씨가 아니야. 넌 나를 긴짱이라고 불렀어. 카구라야. 이러는데 기분이 왜 이렇게 이상하냐해? 그래서 좀 무서워서 그냥 다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해. 아저씨들도 우는구나. 난 아저씨들이 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해! 멍청해 보여! 완전 찌질하다 해”

  

지금 꼬맹이의 입장에선 나도 엄청 커 보일 텐데, 형씨는 더 거대해 보일 거다. 꼬맹이들은 어른들은 피도 눈물도 없고 뭐든 해결해 줄 것 같은 큰 존재라서 그런 눈물에 당황하고 실망한 듯 하다. 투덜거리며 말했다.

  

“오늘은 그 아저씨랑 같이 있기 싫어! 오늘은 오빠랑 있을래”

  

“내가 있는 곳은 엄-청 무서운 아저씨들이 더 많은데?”

  

수준에 맞춰주려 이야기 하는 나 자신이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괜찮아. 나 엄청 강하다 해!”

  

어렸을 때도 본인이 강한 것은 인지하고 있었나보다. 자기는 이래보여도 누구든 다 이길 수 있다면서 상관없다는 그 꼬맹이에게 말했다.

  

“내가 상관있어 내가”

  

“왜? 내가 걱정되냐 해?”

  

...아니. 지금 이 상황에 널 데려가면 히지카타의 그 눈초리와 더불어 그를 영영 잃게 될 것 같기도 해서.

  

“흠.. 그럼 오늘 나랑 같이 우리 집에서 자고가! 오빠랑 있으면 그 아저씨가 있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해!”

  

자고 갈 생각은 없었다. 난 이 꼬맹이의 방이 두더지 집처럼 생긴 벽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돌아가지 않아도 히지카타는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형씨가 슬퍼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형씨의 그런 엉망인 얼굴을 보고 싶어졌다. 그냥 못이기는 척 꼬맹이의 말에 따르면서 집에 데려다주고 나올 생각으로 순순히 말에 따랐다. 꼬맹이는 나를 쳐다보면서 내 손을 깍지껴서 잡고는 신난 듯이 팔을 흔들면서,

  

“오빠랑 같이 자면 잠도 잘 올 것 같아. 귀신이 나와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아!”

  

라고 말하고는 베시시 웃었다. 귀신의 존재에 대해서 믿지도 않았던 차이나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이 꼬맹이가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을 실감하면서 그것이 우스워서 웃었다.

  

꼬맹이의 손에 이끌려서 형씨의 집 앞에 서서 문을 열어주고서 나와 꼬맹이를 바라보는 형씨의 표정이란..

  

“아저씨! 오빠랑 같이 잘거야”

  

차이나이 말에 형씨는 눈을 크게 뜨곤 나를 쳐다보았다. 형씨는 차이나의 말 그대로 잠을 몇일 못잔 듯 표정이 수척했고, 마치 운 것 같은 눈과 어두운 얼굴 빛을 하고 있었다. 형씨의 표정과, 차이나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웃겨서 나는 살짝 웃었다.

  

“장난하냐. 돌아가”

  

형씨는 아마 전에 내가 차이나에 대해서 ‘나에게 대주고 싶어 안달난 여자’라는 식으로 표현한 것을 떠올렸는지 아니면 그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왜 그러냐 해!”

  

차이나는 형씨의 말에 내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형씨에게 원망하는 듯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라면 놓으라면서 떨어트려 놓을 텐데, 형씨의 앞이라서 이 꼬맹이의 행동을 내버려뒀다. 그와 동시에 형씨의 얼굴에서 비치는 이도저도 못하는 당황한 기색. 그것은 내가 히지카타 때문에 형씨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그때 내 표정도 저렇게 가관이었나 보다.

  

“비켜라 해”

  

차이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는 형씨를 밀쳐내고 내 손을 잡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쇼파에 잠깐 앉아 있으면 주스를 가져다 주겠다고 밝게 말하곤 주방으로 들어갔다. 쇼파에 앉아있는 내 앞에 형씨가 서서는 죽일 듯이 나를 쳐다보자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모텔이라도 갈 걸 그랬나요?”

  

“이 자식이..”

  

“장난이에요. 그럴 생각 없어요. 그냥 저 꼬맹이가 하도 졸라대서. 어쩔 수 없이 온 거예요”

  

“...너.. 카구라 데리고 장난 하지마”

  

“원래 저랑 차이나는 서로 장난치는 사이예요”

  

차이나는 가져온 주스 컵을 내 앞에 내려놓고는 내 옆에 앉아서 나를 노려보는 형씨를 쳐다보고는 왜 그런 표정으로 보냐면서 화를 냈다. 자기를 걱정해주는 사람이고,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쳐다보면 짜증난다면서 화냈다. 또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자기는 아저씨를 싫어할 거라면서 말했다. 형씨가 나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봤다면, 그 말을 하는 차이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화를 내는 눈빛으로 차이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눈빛을 잘 안다. 내가 종종 히지카타를 그런 눈빛으로 쳐다봤었으니까. 나와 꼬맹이를 번갈아 보던 형씨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그래. 자고 가 그럼. 넌 나랑 자”

  

형씨가 날 가리키면서 말했다. 난 딱히 상관은 없었지만, 형씨와 잠을 자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싫어. 나랑 잘 거야”

  

차이나는 팔을 꽉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나와 상관없이 이어지는 이 둘의 대화.

  

“네 방을 알고 이야기 하는 거야?”

  

“내 방이 왜!”

  

“거긴 네가 혼자 자는 곳이잖아”

  

“그럼 오늘 아저씨가 내 방에서 자”

  

“저 새끼랑 같이 내 방에서 잔다고?”

  

“왜? 안돼냐 해?”

  

“.....그럼 셋이서 자”

  

“싫어. 아저씬 밖에서 자”

  

한참을 그렇게 둘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고, 나는 그 둘의 말다툼이 재밌어서 그저 지켜보았다. 셋이서 자자, 밖에서 자라 계속 말다툼을 하다가 결국 형씨가 카구라의 말에 이기지 못하곤 말했다.

  

“그래. 그럼 문 열어놓고 자”

  

“왜 이렇게 난리인지 알 수가 없다 해”

꼬맹이는 투덜거리면서 알겠다고 했다. 이 꼬맹이의 순수한 생각과, 나와 형씨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달랐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앞서 자고 갈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나는 차이나의 끈질긴 붙잡음과, 신뢰를 더 얻기 위해서, 그리고 형씨의 열 받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약속대로 문은 활짝 열어두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나는 꼬맹이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니까? 나 참. 형씨는 쇼파에 누워서 자겠다고 했다.

  

  

  

  

  

  

  

  

  

-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중간에 한번 깼다. 그리고 내 얼굴 앞에 있는 차이나를 보고 살짝 놀랐다. 내 예상대로 히지카타는 나를 찾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괴로워하는 형씨의 태도와 완전 싫다는 눈빛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차이나와 함께 잠들었다. 내 손을 꼭 잡은 이 꼬맹이를 보니, 너무나 순진하고도 순수해서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이 꼬맹이만큼 순진하지도 않거니와, 나에게 보내는 절대적인 순수한 마음을 받아줄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요한 새벽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꼬맹이와, 나의 것을 빼앗아서 벌을 받고 있는 형씨,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의 숨소리만이 울렸다. 그 적막 속에서 나는 내가 차이나를 사랑했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이것은 순수함에 취해 잠깐의 고통을 겪는 나의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잠에 들기 위해 몸을 한번 뒤척였을 때, 조용한 이 공기를 깨트리고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도둑인가? 나는 일어나야하나.. 하고 잠깐 망설였다.

  

“긴토키!”

  

...하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어날 필요도 없었고.

  

“..... 흐음... 뭐..뭐야..”

  

잠에서 당황해하는 형씨 목소리, 그리고 그런 그를 찾아온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히지카타였다.

  

“그냥.. 니가 보고싶어서”

  

“목소리 낮춰. 애들 자고 있어”

  

 

“아.. 미안”

  

혹시나 나를 찾을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가 일었었지만, 그런 마음을 품기도 전에 히지카타는 형씨에게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슬펐다.

갑자기 목소리가 확 줄어든 둘.

  

“그나저나 왜 왔어? 돌아가”

  

“...말했잖아. 보고 싶어서 왔어”

  

“그래?”

  

“...응”

  

“...그럼 대답을 마저 해. 대답을 듣지 못한 채로는 너를 만날 수 없어”

  

“....”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아직도 계속 하는 듯하다.

  

“이상해. 거기 몇 번을 가봐도 그렇고. 그 앞에서 죽치고 있어봐도 아무도 없어”

  

“...”

  

“너. 거기 다른 사람에게 팔지도 않은거 아냐?”

  

“...”

  

“왜 아니라고 못해? 아, 그리고 어제 발견한 건데, 이 옷 이거 네 꺼지? 이 옷 내가 그 집에서 종종 입었던 옷 맞지?”

  

“...”

  

“이게 왜 카구라 방에서 발견 된 건지 말해볼래?”

  

그 말에서 나는 형씨가 말하는 그 옷이 무슨 옷인지 알았다. 내가 전에 카구라에게 건네줬던 옷이었다. 유령 같다고 말하면서 놀려댔던.

  

“너..”

  

형씨의 말에서 분노가 느껴졌다가, 이내 한숨을 쉬더니 다시 말했다.

  

“너.. 대답할 생각 없구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니가 이러고 있으면 나는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잖아”

  

잠시 적막을 지키다가 말했다.

  

“나도 너를 믿고 싶다.”

  

믿고 싶다. 라는 말은 현재 믿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 정말 웃음을 참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다른 공간에서 이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면 아마 나는 너무 재밌고 우스워서 큰 소리를 내서 웃었을 거다.

  

“씨발... 이야기를 좀.. 하라고...”

  

“......긴토키..”

  

“상황이라도 설명해주라. 내가 이상한 생각이 드니까.....씨발..”

  

그 말에 또 입을 다무는 히지카타에게 형씨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침착하게 말했다.(카구라가 깰 것 같아서 억누른 것 같다.)

  

“그.. 그 어린애를...손발을 다 묶어놓고... 옷까지...... 벗겨놨단 말이야. 심지어... 심지어 울고 있는데.... 나는..나는 카구라의 그런 표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형씨는 울고 있었다. 화를 낼 단계는 지나간 것 같다. 이번엔 거의 말을 잊지 못한 채로 숨까지 제대로 못쉴 정도로 흐느끼며 울어댔다. 그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카구라가 잡고 있던 내 손을 다시금 꼬옥 잡는 것 같아서 돌아보니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는 꼬맹이가 파란 눈동자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멍한 눈으로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무어라고 말을 하려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쉿’

  

내가 입에 손가락을 대고 신호를 보냈다. 꼬맹이는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눈을 감고는 들리지 않게 흐느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차라리 차이나를 사랑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의 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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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21

2015. 8. 19. 14:06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오늘 돌아오겠다고 말한 그는 돌아올 시간이 충분한 시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 형씨를 찾아갔나? 원래라면 그렇게 까진 행동을 취하지 않았지만, 그날은 뭔가 확인하고 싶어서 늦은 저녁 몸을 일으켜 형씨의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옅은 밤 안개가 옅게 깔려 그 날의 밤은 몽환적이었다. 밤에 우는 이름 새들의 소리마저 그 밤을 메아리쳐서 약간 으슥했다. 그가 보고 싶었지만, 형씨와 있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서, 가면서도 제발 히지카타가 그 곳에 있지 않길 바랐다. 늦은 시각이어서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에 있다면 쉽게 그를 발견 했을 텐데 거리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서 형씨의 집안에도 불이 꺼져 있어서 약간은 안심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바로 옆 좁은 골목에서 작게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전에 골목에서 히지카타와 형씨의 그런 충격적인 모습을 본 나는 그 이후로 골목 쪽을 서둘러 보는 것을 두려워해서 그 안은 확인하지 않은 채, 바짝 기대어 대화소리를 엿들었다.

 


“... 그니까.. 이야기를 해봐..”

“...”

“왜 연락은 안 해? 왜 피해? 응?”

그 친숙한 목소리. 우울하게도 히지카타였다. 약간은 나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형씨를 달래고 있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그 안을 쳐다보지 못했고 도저히 그 자리에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고개를 가슴팍에 파묻듯이 푹 숙였다.

“이유를 말해야 내가 알 거 아냐, 너 얼마 전에 소고 녀석 만났다며?”

“...”

“자꾸 이렇게 말 안할래?”

“.....나에게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 너”

“그런 거 없어”

 


“그럼 너 전에 혼자 살았던 그 집에 지금 누가 살고 있어?”

“...거긴 왜?..”

“카구라가....카구라가 거길 알고 있데. 그 곳 너랑 나 둘만 아는 곳 아니야?”

형씨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은색머리 아저씨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해. 그 표정이 좀 무서웠다해..]

꼬맹이가 나에게 또박또박 글씨를 써서 줬던 내용의 마지막 부분이 생각났다. 나는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슬쩍 그 둘이 대화하는 곳을 훔쳐보았다. 형씨는 화가 난 듯 했고, 히지카타는 그런 형씨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태도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차이나는 나와 그 곳에서 만났던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형씨는 몰랐던 거다. 그 공간을 차이나도 함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 잠깐 생각이 좀 필요해”

형씨가 약간 단호하게 말했다.

“..카구라가 알고 있다는 게 무슨 상관이야?”

“그 집안 유리창에 낙서를 해놨어. 그럼 그 안에 들어갔다는 거잖아”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아. 됐다. 나 지금 생각할게 좀 있어. 그니까 오늘은 우선 돌아가”

형씨는 약간 화가 난 듯, 그리고 힘이 빠진 듯 말했다.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했고, 히지카타는 이유를 말하라고 화를 냈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흐르다가 형씨가 망설이다가 말했다.

“.....카구라의 주머니에서 무슨 사진이 떨어졌어. 근데 그게.....말 할 수 없는 내용이야.”

......나는 그 사진이 무슨 사진인지 바로 알았다. 그리고 순간 온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내가 분명 다 태워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꼬맹이는 급한 나머지 내가 봤던 그 한 장을 주머니에 우겨넣었나보다. 근데..그 이야기가 왜 나와?

“뭐라는 거야? 똑바로 이야기해! 사진이 뭐가 어쨌다는 건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성이 있는 건데?”

형씨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한참 한숨을 쉬다가, 머리를 감싸다가 끝내 말했다.

“.........하... 씨발!..... 손발이 다 묶여져선 울고 있는 사진이었다고!”

“....뭐?”

 


“이상해! 다 이상해! 카구라가 그런 곳을 알고 있었다면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어! 기억을 잃은 것과 이 모든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아! 그 집. 지금 누가 있어?”

 


형씨의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다시 불안했다. 이상하지만 그럴듯한 조합으로 형씨는 상상하고 있었다. 그 집에서 카구라가 그 집 주인에게 그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나보다. 약간의 불안함과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속이 쓰릴 정도였다.

“.....”

“왜 대답을 안 해? 거기 누가 있냐고 묻잖아 이 자식아!”

형씨는 히지카타의 멱살을 움켜쥐면서 소리 질렀고, 히지카타는 그런 형씨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거다. 내가 오해 받을까봐.

“언제, 누구한테 팔았는지.. 그래 누구인지까지는 모를 수 있지. 인상착의라도 말해”

“....”

“나한테 숨기는 거 없다며?”

히지카타는 그 순간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형씨가 그의 모습에 더 이상한 상상을 해버렸는지 멱살을 잡고는 거세게 흔들면서 왜 아무 말이 없냐면서 언성을 높혔다. 지켜보지 않아도 형씨가 외치는 소리만으로 충분히 그가 흥분했고,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항상 게으름에 가득 찬 동태 눈깔을 하고 있는 그가 그 순간은 광기어린 눈동자를 하고 있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히지카타는 말없이 그의 흥분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나에게 줬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나 나를 놓을 수 없는 아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겠지. 나는 약간은 불안하면서도 이내 불안하지 않았다. 왜나하면 나에겐 내가 아니라는 증거도 이미 있었고, 히지카타가 날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나의 오빠라는 사람이 낱낱이 제 죄를 기록한 편지. 버리지 않은 것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히지카타에게 윽박지르는 그의 광기와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다시 둔영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뭐랄까.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즐거웠다. 기뻤다. 그가 나를 지키려든다는 점이.. 역시, 성욕으로 묶어놓은 그런 가볍고 더러운 사랑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형씨를 자상한 말투로 달래면서,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말하면서 화를 냈더라도 그는 나를 결코 놓진 못했다. 그와 연결되어있는 새끼손가락에 묶인 운명의 실이 서서히 그를 잡아당기고 있다. 새끼손가락이 저릿할 정도로. 둔영에 돌아온 나는 괜시리 들떠서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형씨가 나에게 주었던 고통들이 바닷물처럼 천천히, 서서히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운명이라는 존재에게 감사하다고 온 마음을 다해서 기도했다.

 

 

 

 

 

 

 

 

 

 

 

 

 

 

-
다음날 회의에서 본 히지카타는 굉장히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잠도 거의 못 잔 듯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괜시리 푹푹 한숨을 내쉬어댔다. 대원들은 잔뜩 저기압인 상태의 히지카타를 보고 다들 서로 눈치만 보면서 긴장한 말투로 히지카타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달래주고 싶기도 하고, 어제의 일이 생각나서 칭찬해주고 싶기도 해서 그런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나와 눈을 맞추더니 이내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 모습도 귀여워서 작게 킥킥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히지카타는 나를 보며 화난 듯이 표정을 굳히고 경멸에 가까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갑자기 회의실의 공간은 공기가 더욱 더 힘을 받은 듯 무거워졌고, 나는 그런 상황에도 그에게 쫄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현재 나는 그에게 패배자의 입장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유효했기에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뭐가 그렇게 좋아?”

히지카타가 화가 난 표정으로 물었다. 목소리도 다른 때에 나를 혼낼 때와는 다르게 한결 차갑고 무거웠다. 다른 대원들이 긴장해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안다. 저런 표정의 히지카타는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동시에 나에겐 그렇게 심하게는 안한다는 것. 긴장 풀어 새끼들아.

“딱히 좋진 않아요”

나는 최대한 진중하게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표정이 그렇진 않았나보다.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내 앞에 내던졌다. 이런 행동을 나에게 한 적은 처음이었지만, 요즘 미친 히지카타는 종종 나에게 해온 적 없는 일을 여러 번 해왔기 때문에 사실 약간은 화도 났지만 자비롭게 그를 이해했다. 여러 장의 종이들이 팔랑팔랑 내 앞에서 춤을 추며 떨어지는 모습. 오히려 나는 축하하는 종이 꽃가루를 조금 크게 자른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터무니 없는 생각했다. 그리곤 내 앞에 널부러진 서류를 한 장 한 장 주워서 히지카타에게 얌전히 포개어 가져다 주었다.

“부장님, 서류 흘리셨는데요?”

아직도 화가 덜 풀린 표정이었지만, 나의 이런 행동엔 약간 놀란 것 같았다. 내가 내민 서류를 확 낚아채고는 말했다.

“따라와”

그 날 회의는 그렇게 내가 이 녀석에게 끌려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뒤따라가는 이 녀석의 뒤통수부터 느껴진다. ‘나 존나 화났어’ 라고. 왜 화가 났는지 난 알 수 없었다. 그를 뒤따라가자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문 닫아 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순순히 문을 닫았다. 닫자마자 이 녀석이 내 멱살을 쥐어 올리며 벽에 거칠게 몰아붙였다. 갑작스러운 이 녀석의 태도가 당황스러워서 눈을 깜빡거리면서 쳐다봤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너?”

“...뭘...”

“너, 내가 준 곳에서 무슨 짓 하고 다녀?”

“...”

나는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그가 나를 아껴서 나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히지카타는 나를 믿고 있지 않았다. 내가 의심받을까봐 형씨에게 감추었다기 보다는 그때 당시 잔뜩 흥분한 형씨에게 그 어떤 말을 한다하더라도 그를 진정 시킬 수 없기에 우선 그를 진정시키려 한 것, 그리고 나를 떠올리고 확신과 함께 확인이 필요 하다고 생각 했나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힘없이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말했다.

“... 너.. 씨발..너 최악이야”

최악?

“그런 짓까지 벌이는 녀석이라고는 생각 안했어”

그런 짓?

“...”

“봐, 너 내가 무슨 일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잖아. 그니까 더 물어보지도 않잖아. 캐묻지도 않잖아!”

그래. 알고 있어. 너랑 형씨 이야기 다 들었으니까. 나의 덤덤한 표정과 대답하지 않는 태도가 그의 생각에 확신을 주었나보다.

내가 여전히 입을 다물고 말없이 충격 탓에 말간 눈동자로 그저 화를 내는 이 녀석을 멍하니 올려다보자 그가 내 어깨를 거칠게 흔들면서 진짜야? 말해! 말을 해! 하고 소리 지르면서 거칠게 흔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 뿐만 아니라, 너를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범죄라면서 나에게 소리 질렀다. 히지카타... 아무리 땡땡이 치고 다니고 일도 제대로 안하고 다닌다고 치더라도 나도 경찰인데, 설마 그런 걸 모르겠어?

 


형씨가 이 녀석에게 했던 행동과 비슷한 행동이었다. 잔뜩 화가 나서 소리 지르는 꼴이. 변명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의심을 해왔다면 주저하지 않고 해명 했을 거다. 오해가 있다 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미쳐버린 니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잠시 내 곁을 떠난 것도 모자라서 나를 의심하고, 당연히 나라면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는 확신까지 가지고서 나를 몰아붙이면서.. ‘최악’이라고?

 


흥분한 그가 진정되었는지 잠시 말을 아꼈다. 그리고 한참 말이 없는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니라고 믿고 싶어”

믿고 싶어? 그 말조차 지금 너는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거야. 이미 네 머릿속에 내가 그런 짓을 하고도 남는 다는 확신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야. 나는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차이나의 오빠라는 사람의 편지를 통해서 실패사례를 간접적으로 경험했기에 어느 때보다 착실하게 기다렸고, 히지카타의 눈치를 보면서 최선을 다해서, 나의 모습을 바꾸면서까지 그에게 맞추어 왔다고 생각한다. 히지카타가 아마 나의 입장이 되었다면 나는 그를 무슨 일이 있어도 믿었을 거야! 절대로 이렇게 의심하고, 혼자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만약에 네가 나를 속여서 내가 속았다고 하더라도, 너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너의 곁을 끝까지 지켰을 거야. 네가 무고한 사람을 죽였더라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너를 믿었을 거야. 네가 세상을 등지는 일이 있더라도 그 옆에 나도 함께 할 거야. 설령 네가 너와 나에게 소중한 곤도씨를 해친다 하더라도 나는 이해할거야. 너에게 말 못할 사정이 생겼구나. 하면서.

 


“양심이 있다면, 이제 카구라 만나지마”

 


..... 나라면.... 끝..까지..너를.... 믿을....거야

“내가 잘못 생각했어. 너를”

 

 

 

 

 

 

 

 

 

 

 

 


-
나의 순수한 마음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한 불신이었다. 그런 그의 배신은 전보다 더 나를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돌발행동은 하지 않았다. 나답지 않게 소심했다. 그 다음날에 히지카타는 회의를 빠져도 나를 찾지 않았고, 일을 하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았다. 대형 사고라도 하나 일으킬까 했다가, 왠지 그래도 그가 나를 혼내거나, 따로 부르지 않는다면 더 우울해 질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대원들 말에 의하면 내 이야기를 하자 그냥 완전히 무시하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러워했다. 어떻게 했길래 회의를 빠져도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 말을 하지 않냐면서 자기들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이 상황이 하나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의 그는 나를 쫓아와야 하는데, 쫓아오긴 커녕 아예 관심을 끊어버렸다는 점이 나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 날은 이 녀석의 말대로 차이나를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차이나도 나를 전처럼 찾아오거나 하지 않았다. 그 점은 무척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척 예민해져 있던 터라, 그날 꼬맹이를 만났다면 쌓아온 신뢰를 한번에 잃었을 수도.

 

 

 

반쯤 정신을 놓은 채로 마치 몽유병환자처럼 멍하니 걸어다니다가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물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먼 발치에 서서 그를 쳐다보자 그도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이내 나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쳐다보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내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말했다.

 


“....널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 중이야”

 


긴 한숨과 함께 품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그 날 따라 슬프다. 날 어떻게. 어떻게 할 건데.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주겠다고 했으면서. 그렇게 말은 해도. 결국은 날 믿을....거지?

 


나는 여전히 말 없이 그의 옆에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숙이고 한참 서 있었다. 먼저 내 곁을 뜬 건 히지카타였다.

 

 

 

 

 

 

 

 

 

 

 

“미안하다 해!”

다음날 차이나가 나를 찾아와선 두 손을 모으고 외친 첫 마디였다.

“혹시.. 나 기다렸냐 해? 같이 있는 그 아저씨가 갑자기 어딜 가자고 해서.. 핸드폰도 빼앗겨버렸다 해! 돌려 달라고 해도 안주더라해.. 그래서 어젠 연락도 못했다해. 혹시 나 기다려서 화난거냐 해?”

내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차이나가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그런 거 아냐”

 


“오늘은 내가 아이스크림 사준다해!”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어 손바닥에 올려놓곤 한참 세어보다가, 몇 백원이 모자란다면서 보태주면 안되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다. 히지카타가 나에게 만나지 말라고 해서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난 그런 짓을 한 적이 없고, 양심이 아프지도 않으니까. 그냥 이 꼬맹이가 항상 귀찮았던 나의 평범한 행동이다. 차이나는 그런 내 앞에 쪼르르 달려와서 내 앞을 막곤 말했다.

 


“왜 이러냐해! 진짜 화 난거냐 해?”

“아니라고”

“이상하다해! 같이 사는 그 아저씨도 그렇고.. 왜 다들 기분이 안 좋냐해..”

나만 이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형씨도 그때 이 녀석과 싸워서 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기분 좋진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나보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만약 이렇게 구석에 몰린 상황에서 형씨가 웃으면서 지낸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정말 미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히지카타라는 사람은 도데체 뭐냐 해? 왜 맨날 그 아저씨가 그 녀석한테 전화만 오면 예민하게 화가 나 있는지 모르겠다 해. 그러다가 내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면 애써 웃어주는 것도.. 뭔가 안쓰럽고...그리고.. 혹시 기억 나는 게 있으면 바로 이야기 하라고 슬프게 말한다 해”

정말 말을 했을까? 기억이 났을까? 나는 마음을 바꿔서 주머니에 있던 몇 백원을 이 꼬맹이에게 내밀었다.

“...?”

뭔가 해서 쳐다보는 이 꼬맹이에게 말했다.

“몇 백원 모자란다며? 니가 사는거니까 난 너 모자란 만큼만 줄거야”

잠깐 울적하게 이야기 하던 차이나는 내 손에 놓인 동전을 들고는 오렌지맛하고 포도맛 중에 무슨 맛을 먹을 거냐고 물으면서 활달하게 웃었다. 자기가 사온다고 말했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같이 가자고 했다. 자기가 사가지고 왔는데 내가 기다리지 않고 사라질 것 같다면서 내 팔을 잡아 끌었다.

난 포도맛, 이 꼬맹이는 오렌지맛을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쪽쪽 빨아먹었다. 내가 지금 이런 뭣 같은 상황에, 시덥지 않은 이런 쭈쭈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 꼬맹이와 앉아 있는 이유는 그냥 이 꼬맹이에게서 말을 듣고, 형씨의 상황을 듣고 싶어서였다. 형씨가 히지카타와 싸운 것은 다행이다. 근데 뭐.. 나도 히지카타와 좋은 상황은 아니었기에 형씨보다 내가 우월한 것도 없었고, 오히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히지카타에 한정해서 형씨보다 한 단계 아래였기 때문에 그냥 덤덤하게 들었다.

 


 


“뭐가 생각나면 형씨보다 나한테 먼저 이야기해”

“응? 응응!”

꼬맹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궁금하면 우선 나에게 먼저 물어봐”

“응응!”

“무슨 일 있으면 나에게 말해”

“응응!”

이 꼬맹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진짜 그 아저씨 나 되게 좋아하나봐. 가끔 우리 아빠 같을 때도 있어”

“너무 정 주지마. 그래도 남이잖아”

차이나는 그런 내 웃음을 좋아했으니까 나는 다정하게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내 말에 차이나는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나의 상황이 좋은 상황이었다면 더 신나게, 더 신랄하게 머리를 쥐어짜내서 형씨에게 어떻게 할지 계획을 짰을텐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남을 괴롭히는 것 보다 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였다. 정리.. 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그냥 안타깝지만 히지카타를 지켜보는 것 밖엔 없었다. 아직도 난 어려서인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내가 변명하지 않아도 히지카타라면 무조건적으로 날 믿어줄거라고 생각하고 그러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가 만약에 날 끝까지 버린다면 난 죽어버릴거야. 그 녀석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가장 각인되도록. 본체에서 떨어질리 없는 꼬리표가.. 불운하게도 떨어진다면 꼬리표에게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어떻겠어요? 죽은 것이나 다름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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