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꼬리표 完

[히지오키긴] 꼬리표 12

2015. 8. 19. 13:47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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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와 약속을 했던 그 비번 날이었다. 사실 잊고 있었는데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핸드폰을 개통하고 다음날에 차이나에게 연락이 왔다.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이지만 알아내려 한다면 주변의 사람들을 이용해 알아내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테니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인거 알지 이 자식아 4시에 봐]

  

나는 귀찮아서 그 연락을 보고 그냥 귀찮아서 답장을 하지 않았고, 연달아 문자가 몇 통 왔다.

  

[사디스트, 내 문자 씹는거냐 해?]

[이 자식아 봤으면 답을 하라고!]

  

자꾸 울리는 핸드폰이 귀찮아서 응 이라고 한 글자 보냈다. 빨리 만나서 그딴 가방 던져주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귀찮지만 옷을 챙겨 입었다.

  

약속했던 장소엔 이미 차이나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곤 뛰어 와서 내 멱살을 움켜쥐더니 소리쳤다.

  

“이 자식아! 지금 시간이 몇시야! 남자라면 10분 정도 먼저 와서 여자를 기다리는게 예의 아니냐 해? 심지어 난 10분 늦게 왔는데 네 녀석이 더 늦으면 어떡하냐해!”

  

“뭐야.. 데이트 하냐? 게다가 그런 어이없는 발상은 또 뭐야? 누가 여자라는거야?”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며 이 꼬맹이의 손을 뿌리쳤고 따라오라고 말하며 앞장섰다.

  

“나도 길 안다해”

  

“그래?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네”

  

“응. 사실 몇 번 왔었다 해”

  

...?

  

“뭐?”

  

“혹시 니가 있을까봐! 창 밖에서 불 켜있나 정도만 보고 지나갔다 해! 네 녀석이 있는 그 곳 창문에 내가 별 그려놨거든!”

  

올라가기 전에 밖에서 보니 진짜로 노란색 크래용으로 작게 별이 그려져 있었다. 이 꼬맹이가 말하지 않았으면 몰랐을거다.

  

“지우고 가”

  

“왜! 예쁘잖아”

  

“저딴거 남기지 말라고! 싫으니까!”

  

내가 완전 투덜투덜 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그녀는 따라오면서 무엇이 좋은지 자꾸 키득키득 웃었다. 집 문앞에서 차이나에게 밖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가방만 던져주고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굳이 여기에 이 꼬맹이가 들어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문을 열자 그녀가 같이 쪼르르 따라 들어왔다.

  

“밖에서 기다리라니까?”

  

“왜? 청소하게? 깨끗하다 해”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전처럼 구경을 하는 그녀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한참 쳐다보다가 구석에 놓인 가방을 집어 들고 그녀에게 휙 던졌다.

  

“자. 얼른 가”

  

“집에 손님이 왔는데 차라도 한잔 주는 게 예의 아니냐 해?”

  

꼬맹이는 탁자 앞에 앉더니 나에게 차를 내오라고 주문했다. 아. 그래 오늘 니가 나 괴롭힐 작정하고 왔구나.

  

나는 물 한잔을 떠서 그 꼬맹이 앞에 내밀고 말했다.

  

“차는 없고 물이야 먹고 가”

  

나의 말에 그녀가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뭐야? 왜”

  

“내가 여기 있는 게 그렇게 싫냐 해?”

  

“좋진 않아”

  

“나는 니가 좋다 해”

  

뭐라는 거야?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의 그런 표정을 살피던 그녀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다시 말했다.

  

“그.. 그니까, 내가 너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다 해”

  

순간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하지도 못했다. 이 꼬맹이도 우물쭈물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농담이라고 생각을 하기엔 이 꼬맹이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이 꼬맹이가 왜 지금 까지 나에게 그렇게 행동을 해 왔는지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 꼬맹이의 말이 현재 상황에 너무나도 뜬금없었고, 전-혀 그런 말이 나올 타이밍이 아닌 상황이여서 떨떠름했다. 하지만 이런 엉뚱하고 뜬금없는 면이 이 꼬맹이 답다고도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다른 사람이었으면 조금은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다. 뭐.. 내가 너무 생각이 없었기에 몰랐다는 것도 맞는 것 같다.

  

“당연하겠지. 난 잘생겼으니까”

  

나는 농담식으로 넘어가려 대꾸했다.

  

“이.. 이 자식아, 나 농담하는거 아니다해!”

  

이 꼬맹이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농담 아니야”

  

“너.. 너는.. 나.. 어떻...게 생각하냐 해?”

  

어떻게... 라니

  

“...해결사 형씨네의 힘쎈 바보 정도?”

  

“... 칫”

  

나는 이 꼬맹이를 한번도 여자로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장난치는 친구 정도의 감정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이런 꼬맹이의 말이 어색했다. 하지만 우리 사이는 항상 장난이 맞닿아왔던 사이라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다시는 안본다거나 그럴 것 같진 않았다. 한참 적막이 돌았다. 나는 이 꼬맹이에게 아까처럼 거칠게 돌아가라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려 했으나. 이 꼬맹이의 상태가 처음 왔을 때와는 좀 다르게 우울해 보여서 한참 있다가 내가 말했다.

  

“저기. 차이나”

  

내가 조심스럽게 이 꼬맹이를 불렀다.

  

“야 사디스트, 가서 맥주사와”

  

“..집에 안가?”

  

“오늘 같은 날 어떻게 그냥 집에 가냐 해! 어쨌든 너 내 친구니까 이런 날 같이 술 먹어줘라 해!”

  

친구라니,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같이 술도 먹어주지 않는 친구가 어디에 있냐며 이 꼬맹이는 나에게 소리소리 질렀고 나는 그런 그녀를 한참 한심하게 쳐다보다가 알겠다고 말하고 그것을 사러 갔다. 나도, 이 꼬맹이도 똑같이 술을 먹어서는 안 되는 입장인 것은 같았기에 나는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왜 이 꼬맹이의 말을 들으면서 이딴 걸 사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온 맥주를 주르륵 늘어 놓았다. 이 꼬맹이는 그것을 한 캔 들고는 한 잔 한잔 홀짝 홀짝 마시더니 왜인지 모르게 취한 듯한 눈으로 나를 한번 보았다.

  

“너, 누구 좋아하는 사람 있냐해?”

  

이 꼬맹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없지? 나도 이런 적 처음이다해.. 긴짱이랑은 다른 감정이다해.. 긴짱도 물론 소중하지만 너와 있으면 뭔가 더 즐거운 것 같은 알 수 없는 기분이다 해”

  

이 꼬맹이의 내가 좋다는 말을 약간의 반 농담식으로 들었는데 얘가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으니 뭔가 아주 약간은 안쓰럽기도 하고, 그냥 그 순간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조금은 이런 헛소리를 들어줄까 해서 그냥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가까이 가서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어 마셨다.

  

“사실, 저 가방 일부러 놓고 간거다 해. 여기 한 번 더 오려고. 여기 있으면 너랑 둘이 있을 수 있잖아”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뭐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에.

  

“그날 나를 도와준 사람이 너여서 되게 좋았다 해.”

  

“...경찰이니까 당연하지”

  

“그래도! 그게 다른 녀석들이 아닌 너여서 난 되게 좋았다 해”

  

나로써는 듣기가 조금 미안하기도하고 너무 어색하다 못해 약간 소름이 돋기까지 하는 이 꼬맹이의 이야기를 언제까지 들어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나는 이 꼬맹이의 마음을 거절한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거나, 동정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자꾸 신경 쓸 만큼 크게 와 닿지도 않았고, 이 꼬맹이는 혼자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그녀가 나에게 마음을 밝혀왔던 어쨌던 간에 그냥 변함없는 해결사 형씨네의 힘쎈 바보다. 이 꼬맹이가 나에게 말한 건 저 자신의 마음을 그냥 멋대로 나에게 말한 것뿐, 나에겐 나의 마음이 따로 있으니까.

  

  

  

 

 

 

“...나.. 오빠가 있다 해”

  

약간 취했는지 이 꼬맹이는 발음이 어눌했다.

그녀와 나는 항상 서로 장난치기 바빴기에 이런 가족사는 물론이고, 사소한 사생활이야기는 서로 한번도 꺼낸 적이 없어서 (물론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성격도 아니다.) 이런 걸 털어놓는 그녀가 신기하기까지 했다.

  

“오빠가 자꾸 나를 찾아온다해...같이 가자는데.. 난 가기가 싫어. 근데 긴짱한테 말하면 분명 그냥 가라고 할거야. 그래서 말도 못했다 해”

  

“가면 되잖아 가족인데”

  

“싫어! 긴짱하고 있는 게 좋단 말이야!”

  

이 꼬맹이는 나에게 버럭 말했다.

  

“그렇게 간절히 말한다면 나라면 갔을 텐데”

  

나는 누나를 떠올리곤 말했다. 내가 말하자 이 꼬맹이는 한참 망설이더니 말했다.

  

“....오빠가 나를...때린....단 말이야”

  

이 꼬맹이가 취했는지 엎드려서 중얼 중얼거렸다.

  

“이번엔... 좋게 이야기를 하러 온 것 같았는데에.... 내가...나도 모르게 되게 심한 말을 해버렸다해.. 그래서 이번에도...하아...그리고 저 가방..주고 간건데.. 사실 뭐가 들어있을지 감도 안 온다해. 버리긴 뭐하고.. 그래도 바보 오빠가 준건데..”

  

그때 맞았던 건 이 가방을 훔쳐간 그런 허접한 녀석들이 아니었던 거다. 하긴, 그런 잔챙이들한테 당할 이 꼬맹이가 아니니까.

  

이 꼬맹이는 엎드려서 쿨쿨 잠들어 버렸고 나는 한참 그런 이 꼬맹이를 보다가 그냥 둔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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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열쇠를 가지러 다시 내 공간에 가보니 이 꼬맹이가 또 가방을 두고 갔다. 옆엔 이런 쪽지도 함께 있었다.

  

[나쁜 자식 깨우기라도 하지 그냥 두고 가냐 해!]

  

....아 진짜 귀찮게.. 나는 다시 이 꼬맹이가 두고 간 가방을 전에 있던 구석에 던져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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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나는 히지카타와 함께 순찰을 갔다. 히지카타는 여전히 가끔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봤지만 나는 이런 그의 표정도 좋았다. 이 녀석이 나를 보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은 아마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칠때 짓는 표정임을 나는 알고 있다.

  

“오늘 저쪽 순찰 갔다와 난 여기 순찰하고 있을게”

  

그가 말했다. 그 날은 이상하게 다른 날처럼 의심이 들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순순하게 알겠다고 말하곤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혼자 돌아다는 것은 재미가 없어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만담을 들으며 풍선껌을 크게 불면서 거리를 지나는데 형씨를 만났다. 그를 본 난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고, 형씨는 그런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다가왔다. 그 와중에 히지카타가 아닌 내가 형씨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은 했구나? 그때 병원에서 본 이후로 처음인가?”

  

형씨는 넉살 좋게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고 나는 그런 그의 손을 귀찮다는 듯이 쳐냈다.

  

“뭐야- 너 요즘 변했다?”

  

형씨가 장난스럽게 나한테 말했다. 그래, 예전이라면 웃으면서 내가 먼저 달려가서 형씨 오늘 뭐해요 나랑 놀아요 등등 이야기를 많이 했을 텐데..

  

하지만 넉살좋게 웃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약간은, 아주 약간은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으로 마음을 터 놓은 친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만큼 화가 나기도 했다. 형씨는 내가 이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면서.. 내 소중한 모든 걸 빼앗아갔지만 그래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다 알고 있었으면서.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내가 오랜만에 따랐던 사람이 나를 배신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원망했고 미웠다. 우리 누나한테까지 소개 할 정도로 나는 그를 은근히 믿고 있었기에, 내 앞에서 아무일 없다는 듯이 웃고 있는 그 얼굴이 너무 가증스러워서 나는 다시 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경고를 하고 싶었다. 형씨에게 음료나 한잔 마시자고 권했다. 형씨는 웃으면서 그럴까? 오늘은 내가 살게! 라고 말했다. 웬일이래.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주스를 시켰고, 형씨는 초콜렛 파르페를 시켰다. 그를 마주보고 있자니 혐오감이 일어서, 자꾸 그 장면이 눈에 아른거려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저 주스에 꽂혀서 나온 빨대로 유리컵에 담긴 주스만 휘휘 저을 뿐이었다. 형씨는 파르페를 숟가락으로 크게 한 스푼 먹더니 말했다.

  

“요즘 얼굴보기 힘들다?”

  

“저요?”

  

“응 너도 그렇고”

  

그가 그 말을 하곤 다시 파르페를 한 숟갈 떠서 입에 한입 크게 넣더니 말을 이었다.

  

“..오오구시군도 그렇고”

  

“...역시 히지카타랑 친하시네요 맨날 싸우면서”

  

형씨가 이 녀석 이름을 말했다는 것조차 나는 화가 치밀어서 최대한 이성을 붙들고 말했다.

  

“친하긴. 안 친해~ 근데 그냥 안보여서 너도 그렇고, 그 녀석도 그렇고”

  

“언제부터 우릴 그렇게 찾으셨어요?”

  

나는 삐딱하게 말했다.

  

“응? 찾는다니~ 그런 거 아니고 그냥 말한거라니까?”

  

형씨는 그냥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참나, 그냥 물어본거라니. 그렇게 연락해댔으면서. 나랑 같이 있는 시간에도 히지카타에게 연락하면서 언제 만날 수 있을지 틈틈이 엿보고 있잖아요. 야비하게. 대담하게 나와 있을때 빼내려고도 하잖아요. 그래봤자 안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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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씨의 그 말을 뒤로 우리는 침묵을 지켰다. 서로 아무 말이 없었고, 그 침묵을 깬 건 나였다.

 

 

  

“얼마예요?”

  

“응? 파르페? 7천원이었나..”

  

“아니요. 형씨요”

  

“나? 내가 얼마냐니 무슨 소리냐? 하루 일당 물어보는거냐?”

  

“하루 섹스 하려면 얼마냐고요”

  

나는 삐딱한 태도로 최대한 화가 나지 않은 척을 하려고 무표정을 간신히 유지하며 물었다. 나의 태도와 질문에 형씨는 약간은 당황한 것 같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 역시 지지 않고 그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수저를 물고 있던 그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하지만 이내 다시 쾌활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또 이런 농담이냐? 하긴 너 원래 이런 농담 잘했지?”

  

나는 그냥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피식 웃어보였다.

  

“나랑 자고 싶냐? 어떡하냐, 나도 잘 사람은 가리거든. 깔리던, 박던 포지션 불구하고 너 같은 꼬맹이는 사절이야. 왜 나 같은 놈에게 얼마냐고 물었는진 모르겠지만, 요시와라 가보는건 어때? 거기 가면 30-40대 아줌마들은 너 같이 어린놈한테 환장할지도? 게다가 그런 아줌마들은 가격도 얼마 안할걸?”

  

역시 형시는 호락호락 하진 않았다. 내가 말로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서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렇구나 조언 감사해요 형씨. 하긴, 나도 형씨같은 사람은 줘도 안먹어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왜 돈까지 주면서 요시와라까지 가나 싶네요. 대주고 싶어서 나 쫓아다니는 형씨네 꼬맹이도 있는데”

  

내 비아낭대는 말투와 웃는 얼굴에 형씨는 진짜로 화가 났는지 벌떡 일어나선 내 멱살을 잡았다. 나는 더 화를 돋구려고 싱긋 웃었다.

  

“왜 이러세요? 화나셨어요?”

  

“이 새끼야 작작해”

  

“뭘요?”

  

“카구라 건들면 죽을 줄 알아”

  

“......형씨가 할 말은 아니죠”

  

나는 형씨의 손을 확 뿌리치면서 말했다. 형씨는 내 말을 듣고 조금 놀란 듯 했고, 그냥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전 이만, 일하러 가야해서”

  

나는 그냥 나가려다 이런 사람에게 얻어먹는 것은 내가 성이 풀리지 않아서 내 지갑에 있던 현금을 대충 집히는데로 꺼내서 탁자에 내려놨다.

  

“형씨한텐 얻어먹고 싶지 않아요”

  

그는 내가 왜 이러는지 생각하는 듯했다. 나에게 화가 나 있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동시에 나를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그런 그를 놔두고 그냥 유유히 그 카페를 나섰다. 나가면서 유리창으로 본 형씨는 계속 무슨 생각을 하듯 그 자리 그대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었다.

  

형씨는 이기적이에요. 형씨가 아끼는 그 꼬맹이에 대해선 끔찍하게 생각하면서 왜 내가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은 멋대로 나에게서 낚아채서 더럽혀요? 뭐, 섹스파트너라는 관계라는 게 형씨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니 그 책임까진 묻지 않겠지만 이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왜 자꾸 연락해요 이 녀석에게. 벗어나려는 이 녀석이 보이지 않아요? 뭐, 그래. 이제. 알고 있으니 떨어지라는 내 몸부림은 이제 보이죠? 눈치 하나는 귀신같이 빠르신 분이잖아요. 섹스파트너라면 그 위치와 역할답게 정리도 구질구질하지 않게 깔끔하게 정리 하는 게 맞잖아요.

  

더 이상 과거의 나와 즐겁게 놀아주던, 나쁜 친구였던 형씨는 어느덧 내 안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사라졌다. 지금 나에겐 섹스파트너의 위치와 역할을 잊고 자꾸만 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성욕이라는 무기로 접근하는 남창으로 보일 뿐이었다. 형씨가 일방적으로 히지카타를 좋아하는지, 어쩌는지는 관심없다. 그래봤자 나와 비교대상 조차 되지 않게 히지카타는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나는 충분히 경고했다고 생각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다. 제 발로 떨어지길 기다려야했다. 아.. 그냥 사실대로 직접적으로 더 강하게 말할 걸 그랬나? 더 열 받게 섹드립이라도 더 칠걸 그랬나? 나는 다시 곧장 히지카타에게 달려갔다. 잠시 떨어졌지만 형씨를 만나서인지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다시 만나서 그에게 나를 향한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다. 달려온 나를 보고 히지카타는 왜 왔냐며 물었다. 나는 그의 말에 이렇게 말했다.

  

“혼자 순찰 하니까 너무 심심해. 히지카타씨랑 같이 할래요”

  

내가 말하자 히지카타가 나를 한번 쳐다보곤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가 짓는 이 미심쩍은 표정도 내가 귀여워서 어쩔줄 모르는 표정임을 알고 있다.

  

“왜 이러냐 요즘. 수상하게”

  

“내가 뭘?”

  

나는 그의 답에 활짝 웃으면서 답했다. 약간은 당황해 하면서 그는 그냥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담배는 싫지만 히지카타가 피는 담배라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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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이 끝나고 나는 그의 방에 찾아갔다. 샤워를 마친 후 낮은 책상에서 책을 읽고 있던 그는 내가 오자 나를 보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별 목적 없이 찾은 것이어서 나는 그냥- 이라고 답하곤 그의 책상 앞에 앉았다. 그가 읽던 책을 덮으려고 하자 나는 그의 행동을 말렸다.

  

“나도 이거 읽었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니가 이걸 읽었다고?”

  

“응. 그니까 니가 알려줘”

  

어렸을 때 가끔 이 녀석이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었는데, 그때 나는 이까짓 녀석이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게 너무 싫어서 맨날 입을 삐쭉 내밀곤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일부러 틀린 대답하곤 했다. (틀린 거 아니고 정말로 일부러 틀린 대답을 의도적으로 한거다.) 이 녀석이 잔소리를 하면 난 욱해서 대들곤 했는데 그러면 이제 공부고 뭐고 둘이 또 치고받고 싸웠다. 누나는 그런 우리를 보고 보기가 좋다면서 소리내서 웃었다. 그때 나는 싸우고 있는데 뭐가 보기가 좋냐고 누나에게도 투덜거리면서 작은 투정을 부리곤 했다.

  

어릴 땐 자주 그랬었는데 크고 나서는 그냥 책 좀 봐라, 이런 식의 잔소리만 가끔 했는데 그것도 강요 같은 건 아니고 그냥 한마디씩 하는 정도라 새겨 듣지 않았다. 과거가 그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오랜만에 이 녀석이 알려줄 때 나오는 말투가 듣고 싶었다.

  

“진짜로 알려달라고 하는 거야? 진심으로?”

  

그의 의심쩍은 말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옆으로 오던가. 앞에 앉아서 책 볼 거야?”

  

아, 그러네.

나는 이 녀석 옆으로 가서 앉았다. 내가 순순히 이 녀석에게 공부 같은 걸 배운 적이 없으니 같이 책을 보고 있었던 적도 없다. 그래서 이런 적도 처음인 것 같다. 옆에 앉아서 턱을 괴고 책의 글자를 읽는 녀석의 옆 얼굴을 서서히 들여다보는 것도. 그와 함께 같은 것을 옆자리에 앉아서 보고 있다는 것도 새로웠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의 의미는 모르겠지만 그냥 같이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듣고 있어?”

  

“응? 어..어어”

  

어릴 땐 몰랐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려고 할 때 이 녀석의 목소리는 평소 때와 다르게 꽤나 나긋나긋하다. 중간에 알겠지? 하고 상냥하게 되물어보기도 한다. 사실 난 하나도 모르겠는데 마냥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모르는 얘기 계속 듣고 있으려니 졸리긴 졸린다. 내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하품을 하자 이 녀석이 설명을 멈추고 날 보더니 말했다.

  

“그럼 그렇지 니가. 가서 자 이 새끼야”

  

책을 덮는 이 녀석을 한참 쳐다보다가 내가 말했다.

  

“나 여기서 자면 안돼?”

  

“그러던가”

  

생각보다 그가 쿨하게 그러라고 말해서 내심 좋았다. 나는 이 녀석과 어릴 때부터 같이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같이 잠자리에 들 때도 많았지만, 내가 이 녀석을 싫어했으니까 에도에 와서 각자 방을 쓰고 나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었다. 히지카타가 내가 잘 곳을 마련해주려 침구를 깔아주었는데 제 침구와는 좀 떨어진 곳에 깔 길래 내가 가서 침구를 딱 붙여 놓았다.

  

“..뭐하냐?”

  

“..음...침구가 떨어져있으면 뭔가 불안하지 않아?”

  

그의 질문에 나는 약간 당황해서 이상한 이유를 댔고 히지카타는 그냥 별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 새끼 지금 나 당황한 거 보면서 즐기는 거지?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웠을 때 내가 장난친답시고 녀석의 배게를 빼앗았다. 그가 또 시작이라는 듯이 귀찮아하며 몸을 일으켰다. 난 그런 그의 행동에 한참 웃으면서 장난을 걸었는데 한참 장난을 응해주던 히지카타가 갑자기 행동을 멈추더니 가만히 있었다.

  

“화났냐? 여기”

  

나는 한참 웃다가 장난을 그만두고 그에게 돌려주었다. 어둠이 짙게 드리워 있는 방안에서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나는 알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은 약간 씁쓸했다.

  

“요즘은 그냥.. 니가 무섭다.”

  

그가 내가 돌려준 베게를 받아들더니 말했다.

  

“...계속 이런 관계가 유지될지, 어떻게 될지도 자신 없고..”

  

“...응?”

  

“몰라 그냥... 미안 헛소리야”

  

그가 털썩 누워서는 나에게 등을 보였다. 그의 고민이 나에게 살며시, 그리고 조심스럽게 전해지는 듯 했다. 그는 죄책감에 짙눌리고 있었다. 나에게 미안한 거야. 자신이 사랑하는 내가 모르게 뒤에서 형씨와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침구에 누워서 한참 어두운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작게 말했다.

  

 

“히지카타. 나는 너에게 쉽게 실망 같은 거. 안해”

  

 

나는 그의 쓸쓸해 보이는 등을 와락 끌어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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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11

2015. 8. 19. 13:46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내일은 나 깨우고가”

  

잠들기 전에 내가 말했다.

  

“왜. 이제 병원에 있으니까 좀 살만하냐? 둔영에서 깨우면 지랄 지랄 하더니”

  

“원래 그런 거잖아”

  

“둔영에서나 잘해 둔영에서나. 병원 같은 데에서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지 말고”

  

“어쨌든!”

  

내가 다시 말하자 그가 알겠으니까 얼른 자. 나 내일 일찍 일어날거니까- 하고 지친 듯이 말하곤 잠들었다.

  

  

  

자다가 왜인지 모르게 잠에서 깼다. 눈 앞에 보이는 약간 떨어져 있는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는 그 녀석의 모습이 보여 내심 안심했다. 이 녀석이 여기에 와준 것 만으로도 나는 안정감을 찾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얼마 지나지도 않았네. 달빛에 비춰 짙은 녹색으로 빛나는 그의 머리칼이 좋았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이 공간에 그와 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잠이 오지 않아서 한참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잠들어 있는 침대 옆에 놓여있는 낮에 형씨가 사온 싸구려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조차 해보지 않았다. 저 값싼 비닐만큼이나 싸구려 인간이다. 그와 내 사이를 방해 하듯이 우리의 사이에 놓인 그 싸구려 비닐봉지가 괜시리 너무 화가 나서 그것을 신경질적으로 집어들곤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바스락거리며 작게 내는 마찰음이 나를 비웃는 듯해서 욱한 마음에 쓰레기통 채로 밖으로 던져버렸다.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바닥에 닿아 부서지는 작은 마찰음과 봉지 안에 들어 있었는지 유리병 깨지는 소리가 이어서 함께 들렸다. 내가 주스를 즐겨먹는걸 생각하고 주스를 사온 모양인데, 그딴 거 필요 없다고.

  

다시 자려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히지카타가 감아준 붕대에서 아직도 그의 손길이 자꾸 묻어나 붕대를 감은 손목을 자꾸만 만지작 거렸다. ‘그럼 평생 나랑 살래?’ 그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돌아서 잠이 오질 않았다.

  

  

  

  

  

  

  

“나 간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화들짝 놀라 안대를 위로 쓱 올렸다. 내가 일어날 줄 몰랐는지 그는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뭐야, 내가 깨운거야? 하고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약간 미안해 할 때 짓는 머쓱한 표정이 너무 좋다.

  

“할일도 없는데 뭐 하러 일찍 일어나? 그냥 좀 더 자. 퇴원은 좀 있다 오후쯤에 하자. 이따 보자”

  

나는 그의 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서 깨우라고 한 것이었기에 그가 나가는 것을 보곤 다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괜시리 들떠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이 녀석이 이따 보자 라고 말해줘서 좋았다.

  

  

  

  

어릴 때 누나가 책을 읽으라고 줘서 억지로 한 두장 읽은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있었던 구절이 하나 떠오른다.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오후 세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나는 그 부분을 읽고 이해가 가지 않아서 누나에게 왜 네시에 오는데 세시부터 행복하냐고 물었다. 누나는 나의 말에 잠깐 고민하더니 그 사람이 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으니까. 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릴 때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 왜 기대해? 뭘 가져 오기라도 거야? 하고 자꾸 물었는데 누나는 그런 나의 질문에 당황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 그 사람이 오면 기쁘니까! 하고 대답했는데 나는 왜 그 사람이 온다는 것으로 한 시간이나 전부터 기뻐하고 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누나의 말에 이 주인공은 세상 참 피곤하게 사네- 라고 중얼거렸다. 결국 그 부분을 읽다가 나는 잠들어 버렸다. 역시 나와 책은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황해 하던 누나가 생각나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시간이 꽤나 많이 지난 지금. 나는 그걸 이해했다. 이런 느낌이었던 거다. 그냥 그가 막연히 던진 ‘오후’라는 단어에 나는 이른 아침인 지금부터 언제인지 모르는 막연한 오후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고 이유없이 즐거웠다. 일어나 햇살이 좋아 밖을 내다 보니 어제 홧김에 밖에 던져버린 쓰레기통의 잔해를 청소부가 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홧김에 저지른 행각이 조금은 미안해졌다. 그렇게 까지 할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욱해서..

  

  

  

  

  

두 시쯤인가 병실 문이 열렸다. 나는 그가 왔음을 기대하고 화들짝 문 쪽을 바라보았는데 야마자키였다. 그리곤 이내 약간은 실망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 왔어? 나 오늘 퇴원할건데”

  

“네 알고 왔어요. 부장님께서 저한테 시키셔서..”

  

“응?”

  

“저한테 시키셔서..”

  

....뭐야.. 내가 별 말없이 그대로 있자 야마자키가 내 눈치를 슬슬 보더니 지금 싫으시면 좀 있다가 가시겠어요? 하고 다시 물었다.

  

“아냐 지금 가”

  

나는 그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얼마 없는 짐을 대충 챙겼다. 아침부터 기다리고, 기대했던 시간을 모조리 무시당하고 부정당한 기분이라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씨발새끼. 약간 내 눈치를 보는 야마자키를 뒤로 하고 차에 신경질적으로 올라탔다. 기운 없이 차의 창문을 열고 밖을 한참 주시하고 있자 그런 나를 보고 야마자키가 물었다.

  

“둔영에 들어가기 싫으시면 더 있다가 오시지 그러세요?”

  

“그런거 아냐 가자. 가”

  

나는 여전히 힘없이, 시큰둥하게 말했고 야마자키는 이런 나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였기에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자꾸 말을 걸어오길래 그냥 닥쳐 달라고 말했다. 야마자키는 그냥 내가 피곤하거나, 돌아가기 싫어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가는 길에 뭐 먹고 갈래요? 하고 물었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전환도 할겸 그렇게 하자고 답했다.

  

“근데.. 히지카타는?”

  

내가 한참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물었다.

  

“부장님은 항상 바쁘시잖아요”

  

아- 알지 그 새끼 바쁜거. 그래도 와야지. 온다고 했잖아. 날 기대하게 만들었잖아. 이 녀석을 어떻게 괴롭힐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나였는데 지금은 이 녀석이 나에게 전과 같은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 녀석이 나에게 전보다는 나를 덜 사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도 정도가 있다고, 둘 다 좋아하는 마음이야 같지만 그 마음에도 약간 정도가 있다고 하듯이 그 마음의 우열에서 나는 이 녀석에게 패배한 거다. 전에는 이 녀석이 날 더 좋아했다면 지금은 내가 조금, 아니 조금 더 많이, 생각 이상으로 이 녀석을 더 좋아하고 있는지도.

  

“야마자키, 너는 어떤 사람이 좋냐”

  

“여자요? 뭐. 남자들은 다 똑같지 않아요? 예쁜 여자가 좋죠”

  

“이런 스타일은 어때? 존나 멍청하게 생긴데다, 파마머리에 실없는 소리도 자주하고, 나이값도 못해. 또...”

  

“그렇게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데,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해요”

  

내 말에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나 하고 야마자키에게 물었는데 그가 이렇게 부정적으로 대답해줘서 안심했다.

  

“근데 또 모르죠, 콩깍지 씌인 미친 인간이 있을지도”

  

  

  

  

  

  

  

  

  

  

  

-

누나와 곤도씨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 이 녀석을 내가 이렇게 깊게 생각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누나가 세상을 뜨기 전엔 진심으로 얼굴도 쳐다보기 싫은, 나를 방해하며 나의 소중한 것을 다 빼앗아가는 재수 없는 새끼였다. 나를 아침에 깨우는 것도 싫고, 상관이라서 내가 이 녀석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도 싫고, 곤도씨가 이 새끼를 챙기는 것도 싫고... 그래도 함께 지낸 세월이 있는지라 미운 정이었는지 함께 있었을 때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누나를 버렸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은 응어리로 남아 항상 그를 싫어했다. 보통 자신을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 쪽 역시 나를 같이 싫어하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그런 것 없이 항상 내 괴롭힘에 당해주고, 필요할 때 그에게 가서 친절하게 웃으면서 졸라대면서 말하면 그는 그런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그를 괴롭혔던 것 같다. 나를 싫어하지 않아서. 왜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나는 니가 이렇게 싫은데, 왜 착한척이야? 라는 부정적인 생각과 이래도 니가 나를 싫어하지 않아? 라는 시험적인 시선도 있었으나, 그는 그런 나의 시선을 무시하듯이 조금 툴툴 거리긴 해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의외였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처음 봤다.

  

그리고 누나가 세상을 뜨고 나서부터 그를 대하는 나의 감정이 나도 모르게 미세하게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다. 히지카타의 마음이 내게도 깊게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슬비처럼 내가 젖는지도 모르게 아주 조금씩 나에게 스며들어 결국 나는 그에게 흠뻑 젖어버렸다. 다시 돌이킬 수도 없이.

  

그렇게 그를 괴롭히는 것에 즐거워하면서 지내기를 몇 년, 이 새끼 잘 되는 꼴 보기 싫어서 방해하며 지내기를 몇 년, 이런 것에 익숙하던 내가 이 녀석 없이는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적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었을지 이 녀석은 모를 것이다.

  

둔영으로 돌아왔을 때 히지카타는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새끼에게 무엇 하나 지고 있지 않은 내가 그 녀석에게 졌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그 녀석을 무심히 지나쳐 가는데 나를 발견한 히지카타가 나를 보고 말했다.

  

“왔어? 피곤할 텐데.. 쉬어”

  

그 말을 하나 툭 던지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서 바쁘게 일을 하는데 난 그가 나에게 무심하게 말을 걸어주는 것도 좋고, 그 답게 집중해서 일하는 모습도 좋아서 방금 전까지 나의 기대를 져 버려 이 녀석에게 잔뜩 화가 나있던 마음이 아이스크림 녹듯이 사르르 사라졌다. 방에 돌아와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 녀석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흘러 넘쳐서 그가 일하고 있는 집무실으로 천천히 걸었다. 다른 대원들은 없고 이 녀석 혼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들어가자 내 발소리를 들은 그가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왠일이냐며 묻고 다시 잡고 있던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히지카타씨 괴롭히러 왔죠”

  

“지금 바쁘니까 좀 있다가 괴롭혀라”

  

나는 그의 책상 맞은편에 앉아서 턱을 괴고 그를 한참 쳐다봤다. 무언가에 열중하는 이 녀석은 꽤나 멋있다. V자의 머리카락이라며 놀려 댔던 머리카락도 좋고, 청회색 눈동자의 색이 가끔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겨서 좋고, 하지만 나를 볼 땐 한없이 따뜻해서 좋다. 날렵한 콧날도 좋고, 담배를 물고 있는 입도 섹시해서 좋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가끔 복잡한 듯한 표정을 짓는 그 표정도 좋다.

  

“뭐야. 왜 그렇게 빤히 봐?”

  

“참 뭣같이 생겼네- 라고 생각하던 참이예요”

  

“참나”

  

그가 짧게 말하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는데, 나는 그가 나를 조금 더 봐줬으면 해서 장난으로 서류를 가리기도 하고 열중하는 그의 앞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도 하면서 옆에서 그에게 장난을 걸었다.

  

“좀 가만히 있을래? 나 지금 진짜 바쁘거든?”

  

“좀 가만히 있을래? 나 지금 진자 바쁘거든?”

  

내가 그의 말투를 흉내내서 말하곤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심심해? 좀 있어봐. 나 이거 좀 끝내게”

  

나는 그의 말에 하던 장난을 멈추고 다시 그를 빤히 쳐다봤다.

  

“기분 나쁘게 왜 이렇게 실실쪼개냐?”

  

응?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나보다. 새끼 부끄러우니까 말하는 꼴 좀 봐

  

  

  

  

  

  

  

  

  

  

-

내가 졌다는 걸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인정한 나는 그 날부터 태도를 바꾸었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 당연히 이런 나의 마음을 알 것이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이런 나의 마음을 인정했는지.

  

“순찰 같이 가자”

  

“...뭐... 그래”

  

운전석에 앉으려고 문을 열자 그가 오늘은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며 나를 말렸다. 그리곤 장난스럽게 환자 대우라는거다- 하고 살짝 웃어보였는데 옛날이라면 그런 이 녀석의 태도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욱해서 화를 냈을지도 모르는 그의 행동이 지금은 그저 좋았다.

  

  

나를 걱정해줘서 좋아. 네가 나를 생각해줘서 좋아. 네가 나를 위해줘서 좋아.

다른 대원들에겐 그렇지 않은 니가 내 앞에선 물러지는 것도 좋아. 좋아. 좋아. 히지카타 니가 너무 좋아.

  

  

  

한참 순찰 중 그가 핸드폰을 슬쩍 확인하더니 잠깐 어디 좀 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순간 형씨가 떠올랐다.

  

“어디?”

  

“아니.. 아는 사람이랑 약속 있어서”

  

“누구??”

  

“있어. 넌 말해도 몰라”

  

“그니까 누구”

  

“...”

  

그가 약간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말했다.

  

“왜이래?”

  

“나도 같이가”

  

내가 두 눈을 똑바로 치켜뜨고 그를 쳐다보면서 말하자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 아냐 다음에 보자고 하지 뭐”

  

히지카타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연락을 취하는 듯했다. 뭐? 다음? 다음에 본다고? 나는 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삐뚤어져 있었다. 그리곤 한참 생각하다가 히지카타의 낚아채어 최근 연락한 명단을 열어보았다. 나의 그런 돌발행동에 놀랐는지 아니면 반응하지 못했는진 모르겠지만 히지카타는 다시 빼앗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아까 연락을 취했는데 그 시간 주고 받은 연락 기록이 말끔하게 없었다. 받은 것도, 보낸 것도 나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히지카타는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조금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나를 보았다. 히지카타가 형씨와 연락을 하고 있었다는게 더 확실해졌다.

  

“내놔 임마”

  

그는 내 손에서 제 핸드폰을 쓱 빼갔고, 나는 그런 그를 한참 쳐다봤다.

  

  

그가 형씨와 몸을 섞고 있는걸 알았을 때 형씨에게 화가 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반대로 히지카타를 약간은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도 맞지만, 내가 그 둘의 관계를 알아버린 이상 히지카타는 그 섹스파트너를 정리하는게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과거의 일이라면 눈 감아줄 수 있다. 나는 이 정도로 너에게 실망을 한다거나, 이런 일로 인해서 너를 싫어하거나 하지 않아. 이미 녀석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데에 많은 세월을 썼고, 나에게 더 이상 이 녀석을 싫어할 기력도, 이유도 별로 없었다. 그렇기도 하지만 가장 큰 건 이 고집스러운 내가, 이 내가 아프더라도 이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를, 니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크게, 더 많이 좋아해버린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 괜찮아. 나를 건드리지 못해서, 나를 안고 싶은 마음을 참기 위해서 형씨를 애써 나로 생각하면서 안았을 거니까.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

  

말을 할까 고민을 했지만 내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 반듯한 이 녀석이 얼마나 수치스러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이 녀석을 위해서 이런 생각까지 한 다는 것에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말을 하는 것은 조금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매일 그에게 순찰을 같이 가자고 졸랐다. 그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만드냐며 투덜댔고, 안된다고 한 적도 있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나는 내 순찰 구역을 무시하고 그의 구역에 찾아갔다. 왜 여기에 있냐며 화를 내는 녀석의 말엔 그저 웃으면서 그니까 순찰 같이 하자고 했잖아요- 라며 말하면 지긋지긋하다면서 고개를 저었고, 나는 그런 그의 행동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옆에서 한참 웃었다.

  

  

  

하루는 같이 순찰을 하다가 목이 말라서 큰 카페로 들어갔다.

  

“넌 주스 먹을거지?”

  

그는 당연하게 확인 차 나에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엇을 먹을지 잘 알아서 나에게 확인 차 묻는 그 태도가 너무 좋다. 음료를 받아 자리에 앉아서 그가 나에게 물었다.

  

“요즘 왜 이렇게 나만 따라다녀?”

  

“히지카타씨 괴롭히는게 재밌으니까요”

  

“그거 참 성공적이네”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새끼. 다 알면서 확인 차 물어보긴.

  

히지카타와 둘이서 소소하게 둔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나. 곤도씨 이야기. 대원들 이야기를 하는데 히지카타의 폰이 울렸다. 히지카타는 울리는 핸드폰을 급하게 받더니, 내 앞에서 당당히 받아들지 않고, 핸드폰을 들곤 밖으로 나갔다. 내 앞에서 못 받는 전화는 유일하다. 형씨의 전화다.

  

왜 전화 했을까? 왜 연락을 주고 받는 걸까? 전화해서 무슨 소릴하고 있을까?

  

히지카타가 전화를 끊고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왔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표정이 어두웠다. 히지카타는 나에게 왜 표정이 안 좋냐고 물어올 거야.

  

“표정이 왜그래?”

  

봐. 나는 그가 내 생각대로 말해줘서 좋았다.

  

“아무것도 아냐”

  

“소고, 나 잠깐 가봐야 할 것 같다. 너 천천히 마시고 와”

  

급한 듯 말하면서 겉옷을 챙기는 그의 태도가 싫어서 내가 물었다.

  

“어디 가는데?”

  

“아니. 잠깐... 암튼 좀 있다 보자”

  

황급히 나가려는 그를 보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그의 팔을 잡았다.

  

“가지마”

  

나의 말에 히지카타는 약간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잠깐이면 돼. 조금만 기다..”

  

“싫어! 내가 왜 기다려? 너 지금 나랑 있잖아. 내가 먼저잖아.”

  

“...왜 이렇게 어리광이야? 잠깐이라니까?”

  

그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가”

  

내 말에 히지카타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금방 올게 하고 나를 달래듯이 나직히 말했다.

  

  

“너, 이 가게 나가면 나 이 건물 부숴버릴 거야”

  

그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닥치는대로 다 죽여버릴 거야”

  

나도 모르게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는지 그를 붙잡으려 떠오르는 말을 아무렇게나 뱉었다. 하지만 말투는 침착하게 했다. 그리고 그럴 리 없지만 만약 그가 간다면 진심으로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여버려야겠다는 지극히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가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사랑하는 내가 자신을 잡았으니까.

  

내 말에 그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다가와서는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아야....왜 때려..”

  

“말이라도 그딴 소리 하지마 이 녀석아. 니가 그런 소리하면 진짜로 실행할 것 같아서 무서워”

  

그는 다시 내 앞에 앉았다. 나는 그런 그의 행동에 만족해서 싱긋 웃어보였다.

  

히지카타. 다시는 나랑 있을 때 그런 섹스파트너 따위 잠깐이라도 볼 생각 하지마. 아니지. 이제 다시는 볼 생각 하지마.

  

 

  

  

  

  

-

​어릴적 소고가 읽었다는 책 구절은 <어린왕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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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10

2015. 8. 19. 00:17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히지카타가 나에게 느끼는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이 형씨라고 하더라도 형씨는 이 녀석에게 그저 심심풀이 섹스파트너였다. 그 대원이 말한 것과 같이 몸을 섞을 수는 있을지라도 나에게 하는 애정 어린 행동을 형씨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아마 형씨와 할 때도 어린 나에게 하지 못하는 행동을 분출하고 있을 뿐, 형씨와 진심으로 사랑이 담긴 애정행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나는 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이 둘을 내버려 두어야 하나?

  

아침에 일어나 옆의 침대를 보니 이 녀석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말끔히 정리 되어있는 침대를 보니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깨워서 인사라도 하고 가지.

옆의 탁자엔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틀정도 더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걸로 해뒀어. 그렇게 알고 푹 쉬어. 오늘은 바빠서 저녁쯤이나 들릴 것 같다. 곤도씨가 오후에 잠깐 간다고 했으니까 곤도씨랑 놀고 있어. 바늘 뽑고 돌아다니면 죽는다]

  

급하게 썼는지 필체는 이 녀석이 맞지만 글씨가 이 녀석의 평소 글씨가 아니었다. 원래 이 녀석의 글씨는 더 또박또박하다. 반대로 나는 글씨를 못 써서 삐뚤삐뚤하게 썼는데 그래서 이 녀석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글씨만 봐도 사람이 보인다나 뭐라나.. 그래서 내가 천재는 악필이라잖아- 라고 말했다가 기어이 한 대 맞았다.

  

그 쪽지를 보고 이 녀석이 두고 간 책(다 재미없고 두꺼운 것만 가져다 놨기에 그나마 얇은 책을 들었다.)을 휘리릭 넘기면서 중간에 들어있는 삽화정도만 보고 있는데, 병실 문이 확 열렸다.

  

“오키타군- 아프다며?”

  

형씨였다. 형씨 뒤에는 차이나도 함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 보이는 그 얼굴을 보니 다시금 속에서 신물이 올라올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대답 없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원래 라면 굉장히 반갑게 인사했겠지만 지금은 얼굴도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여전히 동태 눈깔을 하고는 내 침대 옆에 앉았다. 그리곤 대충 사온 듯한 마트 비닐봉지를 나에게 건넸다.

  

“자- 입원했다 길래, 과일바구니는 너무 비싸서 못 샀어. 바구니가 뭔 소용이냐? 대신 마트에서 맛있는 거 많이 사왔으니까 먹어!”

  

“....입원한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흰색 싸구려 비닐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내 앞에 놓였고, 나는 여전히 시큰둥하게 말했다.

  

“응? 아- 아까 오오구시군을 만났거든, 얘기해주더라고”

  

히지카타를 만났다고? 나는 순간 그의 말에 약간은 움찔 했다. 그리고 자꾸 내가 본 장면이 머릿속에 재생되어 가슴이 막힌 듯 답답했다. 낯짝 하나 변하지 않고 웃으면서 히지카타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보니 참 능청스럽게 말을 잘한다. 내가 그런 행각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 형씨의 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같이 때론 욕도 한마디씩 하면서 즐겁게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 히지카타가 연애를 하는 게 아니냐며 의심하면서 만났을 때도 있었지? 난 틀리지 않았다. 연애는 아니지만 그 녀석이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 챈 걸 보면. 단지 그 대상이 내 앞에서 그렇게 이죽거리면서, 내 의심에 장단을 맞추며 대담하게 농담을 날려줄 정도로 낯짝이 두꺼운 사람일거라곤 생각 못한 거다. 내가 말한 그 ‘어떤 년’에게 난 보기 좋게 놀아난 것이었다. 내가 상담 했을 때도 그렇다. 형씨가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물어보지 않은 점을 이상하게 여겼었는데 이제야 알았다. 형씨는 알고 있었다. 내가 누구에게 마음이 향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런 나를 지켜보면서 퍽이나 재미있었겠지. 상담을 해온 상대가 품고 있는 대상을 빼앗아서 막상 맨 몸을 부비고 있는 건 제 자신이라는 우월감을 느끼면서, 그 녀석이 날 좋아하는 것 같아요 라는 나의 말을 차갑게 비웃으면서, 그리고 그런 나에게 그 녀석은 널 좋아하고 있는지도 몰라 라는 듯한 뉘앙스까지 여유있게 풍겨주면서-. 나는 형씨에게 관찰하기에 재밌는 장난감 같은 대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를 속이고, 그 상대의 생각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건 없을 테니까.

  

“아- 그랬구나. 이런 건 어떻게 사왔어요? 파르페 하나 사 드실 돈도 없는 형씨가? 몸이라도 파셨나”

  

도저히 웃어 보일수가 없고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그의 얼굴도 최대한 보고 싶지 않아서 시선도 철저히 돌렸다.

  

“몸이라도 판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신에게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형씨는 사람좋게 웃어보였다.

  

“그렇잖아요 맨날 일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형씨는”

  

나는 비아낭 대는 말투로 시선한번 주지 않은 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가장 재수 없게 쏘아댔다.

  

“...원래 개념 없는 건 알고 있지만 오늘은 말이 좀 심한데? 머리를 다쳤냐?”

  

형씨가 약간은 기분이 상했는지 말투가 조금은 변했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는 신경쓰지 않으면서 화를 돋구 듯이 아무렇지 않게 책장을 넘겼다. 사실 형씨가 조금 더 욱해서 나에게 시비를 걸어 주길 바랬는지도.

  

“긴쨩! 오늘은 그냥 넘어가라해. 우리 병문안 온거다해”

  

옆에서 차이나가 형씨를 말리는 듯 말했고, 형씨는 그 꼬맹이의 말에 나에게 다시 말했다.

  

“미안, 너 피곤한 모양인데 내가 잘못 온 모양이다. 다음엔 전처럼 웃으면서 보자”

  

형씨는 애써 웃으면서 말했는데 나는 그 모습도 가증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를 보고 참 재밌었죠? 형씨? 대꾸도 인사도 안하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 그는 약간은 참는 듯이 병실을 나갔고, 따라온 그 꼬맹이도 나를 한번 뒤돌아보고는 형씨를 따라서 나갔다. 내 앞에 놓여진 싸구려 비닐봉지. 사실 그것도 도로 가져가라고 던져버릴 수도 있었으나, 그것까지는 그만두었다. 사실 그렇게 형씨에게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뭔가 열등감에 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섹스만 하는 욕정풀이 대상에게 내가 그렇게 화를 내야할 이유는 없다. 형씨가 혹시나, 정말 만약에 히지카타에게 마음이 있다면, 오히려 그가 나에게 화가 나 있겠지. 몸이고 마음이고 모든 걸 주어도 나를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누워서 티비 따윌 돌리면서 한참 보다가 하루종일 뒹굴거리는 것도 지겨워서 병원 구경이라도 할겸 몸을 일으켰다. 링겔이 걸어다니기에 방해되어서 바늘을 뽑으려고 했다가 히지카타가 바늘을 뽑고 돌아다니지 말라고 쪽지에 남겨 놓은 것을 생각하고 링겔 거치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진작 돌아갔다고 생각한 차이나가 문 옆의 벽에 기대고 서 있어서 소스랏치게 놀랐다.

  

“깜짝이야. 여기서 뭐하냐 너?”

  

형씨와 차이나가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한참 티비 따윌 보면서 뒹굴 댄지 꽤 오래 되었는데.

  

“아니.. 그냥..”

  

“뭐야?”

  

“많이.. 아프냐 해?”

  

“전혀”

  

“아- 그거 물어보고 싶어서.. 아 그리고! 나 긴짱한테 우리 사귄다고 했다고 한건 거짓말이었다 해. 장난인데 네 녀석이 그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어서.. 그 일로 많이 화났냐 해?”

  

내 기억 속엔 있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화가 났다고 하기엔 너무 쪼잔한 일인데? 여튼 알았으니까 돌아가”

  

내가 그대로 지나치려 하자 이 꼬맹이가 나를 잡듯이 뒤에서 다급하게 말했다.

  

“혹시..! 혹시 나 때문에 긴짱에게 그렇게 퉁명스러운건가 해서 고민했다 해, 너 긴짱 되게 잘 따르잖아”

  

“그런거 아니야”

  

이 꼬맹이의 말에 짧게 답하고 뒤돌아가는데 이 꼬맹이가 나를 계속 쫓아오면서 물었다.

  

“근데, 어디가 아프냐해?”

  

“안 아파”

  

“그럼 입원은 왜 한거냐 해?”

  

아 진짜 귀찮게 하네. 내가 걸음을 멈추고 이 꼬맹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말했다.

  

“귀찮게 하지말고 가. 너한테 화난거 없다고 했잖아. 된 거 아냐?”

  

“...화난거 아니니까 평소처럼 놀자고 하는거다 해! 그리고 네 녀석은 나한테 줄 것도 있으면서!”

  

“내가 너한테 줄게 뭐가 있어? 아.. 가방?”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꼬맹이에게 줄 가방을 하필이면 그날 찾으러 갔었다. 그냥 좀 시간 걸리더라도 골목길 말고 좀 돌아서 갈걸. 아니면 그냥 좀 나중에 줘야겠다 하고 평소처럼 귀찮게 여길걸.

  

“내가 찾으러 간다해. 너 그곳 언제 가냐 해?”

  

이 꼬맹이는 웃으면서 나에게 물었고, 나도 거기에서 찾아다가 일일이 다시 주러가기가 귀찮아서 곰곰이 생각하곤 내가 비번인 하루를 말했다. 꼬맹이는 알겠다면서 그날 그 근처에서 만나자며 웃으며 말했다. 늦으면 각오하라며 평소처럼 험악하게 주먹을 쥐어보이면서 말했는데 정말 늦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엇! 둘이 연애중이신가?”

  

곤도씨가 우리 둘을 보고 크게 웃으면서 물었고, 나는 그런거 아니라고 힘없이 말했다. 내 옆에 있던 꼬맹이는 우물쭈물하더니 이만 가보겠다며 후다닥 돌아갔다. 곤도씨가 가는 그 꼬맹이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더니 말했다.

  

“소고 괜찮냐?”

  

“네, 아픈건 아니예요”

  

“아니 그거 말고, 나 때문에 쟤 간거 아니야?”

  

이 사람이 진짜, 아니라니까.

  

“그래도 여자친구 있으니까 좋지? 병문안도 와주고”

  

“그런거 아니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요?”

  

내가 약간 짜증난다는 듯한 말투로 투덜거렸고 곤도씨는 뭐가 웃긴지 그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큰 손도, 쓰다듬는 것도 크게 다를 거 없는 행동이지만 히지카타와는 명백히 달랐다. 그 녀석의 손은 나를 설레게 하는 야릇함이 있다.

  

“토시 녀석이 너 쓰러져서 병원 업고 와서 얼마나 걱정 했는 줄 알아? 혹시나 너도 병이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한 모양이야. 그런 건 없다고 말 듣자마자 한시름 놓더라.”


너도 병이 있지 않나 걱정을 했다- 라. 병으로 세상을 뜬 누나 생각을 했었나보다.

  

“그것도 그럴게 평소에 멀쩡하던 놈이 그러니까 걱정 할 만은 하지”

  

곤도씨가 말하면서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나는 그런 곤도씨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아니예요 곤도씨, 뒷 말은 틀렸어요.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아파서 걱정한 것이 아니라, 이 녀석이 날 사랑해서 더욱 걱정한거예요.

  

  

  

 

병실에서 홀로 돌아가는 티비를 보더니 곤도씨가 말했다.

  

“소고, 너 저 드라마 봤냐?”

  

“저렇게 사랑 위주의 해피엔딩 드라마는 안봐요”

  

“그래? 연애하고 있으면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텐데”

  

내가 말없이 흘겨보자 헛기침을 한 두번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기에서 나오는 대사 중에 그런 말이 있어. 사랑은 의지로 하는 게 아니다. 사랑을 하는 순간 이미 인간은 제 정신이 아닌 미친 상태인 것이다. 멋있지 않냐?”

  

곤도씨가 혼자 다시 돌이키면서도 너무 감동을 했는지 혼자 몸을 베베 꼬면서 난 이미 오타에 씨에게 미쳐있는 한 마리의 원숭이야. 라고 말하며 눈을 빛냈다.

  

“...그렇게 스토킹에 명분을 얻고 싶습니까?”

  

“난 스토킹 아니라니까!”

  

곤도씨가 나에게 당황하며 말했고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서 한참 웃었다.

  

“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너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아무 조건 없이 목숨 내놓을 수 있어? 난 있어! 오타에씨를 위해서 죽을 수 있다고!”

  

곤도씨는 내 앞에서 절규하듯이 말했다.

  

사랑 따위에 목숨을 걸어? 당연히 난 그럴 수 없다. 생각도 해 본적 없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히지카타 너라면 날 위해서 목숨도 기꺼이 내 놓을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곤도씨의 그 말이 그냥 기분이 좋았다. 말없이 웃는 나를 보고 곤도씨는 왜 이렇게 기분이 좋냐? 하고 물었다. 그 물음에 난 그냥 웃겨서요 하고 웃었다.

  

  

  

  

  

“소고 난 이만 가봐야겠다”

  

곤도씨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아. 곤도씨 나 전화 좀 쓸게요”

  

히지카타가 저녁에 오겠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어서 나는 전화나 한통 해볼 생각으로 말했다.

  

“전화? 써. 근데 나 얼마 전에 폰 한번 날려서 연락처 없는 사람이 대다수야. 히지카타도 없을 걸?”

  

번호야 뭐, 내가 이 녀석 번호를 외우고 있으니까 상관없었다. 전화를 걸으려고 번호를 또박또박 누르다가 생각해보니.. 곤도씨 얼마 전에 히지카타한테 전화 했었잖아? 나랑 히지카타랑 불과 얼마 전에 부슈에 갔었는데.

  

“곤도씨 히지카타 번호는 왜 없어요? 얼마 전에 전화 했었잖아요”

  

“언제? 나 최근에 그 녀석이랑 전화한 적은 없을 걸? 거의 직접 만나서 얘기하거나.. 일단 거기 번호 없으면 연락한 적 없는 건데?”

  

“밤에 전화 했었잖아요?”

  

“밤에 내가 그 녀석한테 전화를 왜 하냐? 여자도 아니고”

 

나는 누르던 번호를 멈추고 곤도씨에게 핸드폰을 다시 돌려주었다.

  

 

 

 

히지카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

저녁에 잠깐 들리겠다는 이 녀석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좀 있다 오겠지, 오겠지 하면서 기다렸는데 결국 시계 바늘이 1시 반 쯔음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시간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두가 이미 잠들어 있고도 남을 시간이다. 혹시 내 핸드폰 망가진 걸 잊고 그 쪽으로 뭔가 연락을 했나? 바쁜가?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니면.. 아니면.. 형씨랑 있나?

  

그 생각이 들자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머리까지 울릴 정도로 쿵쿵하고 크게 뛰었다. 아무리 사랑이 없는, 섹스파트너 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나는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결국은 그럴 수 없는 인간이었다. 정말 둘이 같이 있나? 나에게 제 공간을 주기 전까진 그 곳에서 그 혐오스러운 행각을 벌인 것 같던데 혹시 이 틈을 타서 내 공간에 있나? 아니면 야한 조명이 비추는 퇴폐스러운 모텔이라도 갔을까? 가서 그때 내가 본 것처럼 입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아.. 나는 나의 상상만으로도 속이 매스꺼웠다. 그리고 화가 나서 링겔 바늘을 단숨에 뽑곤 병실을 뛰쳐 나갔다. 둔영엔 갈 수도 없어서 잠깐 고민하다가 병원 로비에 있는 전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쓰겠다고 말했다. 허겁지겁 달려와서 숨을 몰아쉬는 나에게 로비에 있는 여자가 나에게 무어라고 말을 했는데 나에겐 들리지가 않았다. 자꾸 무어라고 말하는 여자에게 신경질적으로 전화 좀 쓰겠다고 말하자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내 앞에 전화기를 내밀었다. 화가 나서인지 불안해서 인지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침착하게 눌렀다. 삑- 삑- 하고 숫자가 하나씩 눌리는 효과음. 그리고 뚜르르- 하고 길게 울리는 연결음이 그 날따라 왜 이렇게 긴지 기다리기가 힘들어 입술을 물어뜯었다.

  

[...에.. 여보세요..]

  

잠에 잔뜩 취한 그 녀석의 목소리였다. 아.. 왜인지 나는 그 목소릴 듣는 순간 찾아온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아.... 히지카타..”

  

[... 뭐야.. 너냐? 지금이 몇시야.. 왜]

  

역시 너는 내 한마디에도, 심지어 잠결에도 내 목소리를 바로 알아보는 사람이다.

  

“....자고 있었어?”

  

[시간 좀 봐라 새끼야, 자고 있지 그럼]

  

그의 목소리가 잠에 취해 살짝 웅얼거리는 것조차 너무 좋았다.

  

“..병원 와주면 안돼?”

  

나도 모르게 말투가 조금은 호소하듯이 나왔다.

  

[..지금?]

  

“응”

  

[..아... 지금?]

  

“응 지금”

  

나는 그의 대답을 알고 있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 준비하고 갈게’

  

[..그래.. 조금만 기다려. 준비하고 갈게]

  

역시나 원하는 대답을 듣고서 전화를 끊었고, 그냥 로비에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불이 다 꺼져서 어두운 병원에 혼자 앉아 있으니 누나의 장례식 날로 돌아간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먹먹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한참을 ‘그 때’처럼 멍하니 앉아 있으니 새삼 이런 새벽에 불러내도 아무 말 없이 와주는 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내 머리카락을 살짝 헝클어 놓는 익숙한 감각에 위를 올려다 보았다. 히지카타가 잠에 아직 덜 깬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자고 있는 사람한테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유카타 차림의 그가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의 제복 차림도 좋아하지만, 검정색의 검정색 유카타가 내 상사가 아닌 내 옆에 있어주는 그냥 한 사람 같아 보여서 유카타 차림을 조금 더 좋아했다.

  

니가 오겠다고 하고 오지 않았잖아,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야, 너..”

  

히지카타가 내 팔을 보곤 말했다. 내가 내 팔을 보니 아까 링겔을 뽑을 때 잘못 뽑았는지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까 로비에서 전화를 빌려주던 여자가 무어라고 했던 부분이었던 듯 하다. 내가 말없이 내 손에 흐르는 피를 쳐다보고 있자 우선 병실로 가자고 나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조용히 잡혀 가면서 말했다.

  

“나 내일 퇴원 할래”

  

“왜? 좀 더 쉬지”

  

“싫어 퇴원 할래”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좋긴 하지만, 난 원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상관없었고, 무엇보다 이 녀석을 하루종일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녀석의 옆에 있고 싶었다. 내가 없는 하루에 또 형씨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녀석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병실에 도착해서 나는 내 침대에 앉았고 히지카타는 내 옆에 앉아 놓여 있던 붕대로 피가 흐르는 내 손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내 팔을 잡고 있는 이 녀석의 손이 따뜻하고 스칠 때 마다 간지러웠다.

  

“바늘 빼지 말랬지.. 내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지? 너?”

  

“...”

  

“나 없으면 괴롭힐 사람 없어서 어떻게 살래?”

  

나는 이 녀석의 말이 약간 의미심장하게 들려서 힐끗 이 녀석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나의 시선은 느끼지 못했는지 마저 붕대를 감아주었다.

  

“니가 내 옆에 없을 리가 없잖아”

  

“그럼 평생 나랑 살래?”

  

나랑 평생 살자고 말하는 건가?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당황해서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받는 고백 같아서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게 느껴져 혹여나 그가 이런 내 얼굴을 볼까봐 약간 고개를 숙이곤 말했다.

  

“너.. 너같은 놈이랑 평생 산다고는 안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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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09

2015. 8. 19. 00:16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어디 가려는지 말도 안해주고, 어디야? 가고 싶다는 데가?”

 

 

무작정 나를 끌고 안내하는 그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지 종잡을수가 없어서 물었다. 내 말에 대답 없이 혼자 자꾸만 여기였나? 이쪽이었나? 하고 중얼거리며 길을 찾는데 어느 정도 끌려가서 나는 이 녀석이 나를 데려가려는 곳을 알았다. 미츠바와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이 장소를 찾아내서 굉장히 좋았다고 말하면서 소고도 데리고 와야겠다며 활짝 웃었다. 사실 나는 그런 풍경을 본다는 것은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게 좋았고, 그녀와 함께 본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그녀가 나를 데려와 줬다는 게 좋았다.

  

그녀와 있으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나였어서 그 광경을 보는 그녀를 쳐다보다가, 그녀가 나를 보면 시선을 피했다가를 반복했는데 옆에서 본 그녀의 옆 얼굴이 너무 예뻐서 그 자리에서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길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지 이정표를 보고 고민하는 이 녀석을 보곤 말했다.

  

“이쪽 아냐?”

  

“여기 알아?”

  

“아니, 그냥 이쪽 일 것 같아서”

  

제 누나와 와 봤다고 하면 그 때처럼 나를 싫어할 것 같아서 모르는 체 했다.

어째서 이 녀석이 이 장소를 나와 오고 싶어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카구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나를 데리고 왔을까? 아니면 그냥 편히 떠날 친구가 필요했을까? 그 와중에 긴토키가 아닌 나를 데리고 와줘서 좋았다.

  

“히지카타 어때? 좋지?”

  

이 녀석 답지 않게 한껏 들떠서 말했는데, 그 모습이 미츠바가 나에게 처음 이 장소를 알려주었을 때와 겹쳐 기분이 묘했다.

  

“응, 근데 이거 보자고 오자고 한거야? 요즘 너 답지 않게 꽤나 감성적이다?”

  

“나이를 먹어서”

  

나이 같은 소리, 애새끼가.. 그때 전화가 와서 보니 긴토키였다. 옆에 있는 이 녀석의 눈치를 잠깐 살피다가 받아들었다.

  

[이 새끼야 장난하냐? 뭐야? 문자해도 말도 없고. 왜 못오는데?]

  

“....”

  

[아 씨발 내가 신파치랑 카구라랑 비는 시간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아..”

  

[왜 말이 없어? 뭐야 어디야?]

  

“...”

  

나는 이 녀석의 물음에 하나도 답하지 못했고, 옆에 있는 소고 녀석의 눈치만 살피다가 좀 있다가 연락할게- 라고 말하곤 연락을 끊었다.

  

“누구?”

  

“곤도씨, 어디냐길래”

  

딱히 댈 사람이 없어서 곤도씨를 이야기했다. 긴토키의 목소리가 약간 화가 나 있기도 했고, 내가 멋대로 전화를 끊어버려서 더 화가 났을거라고 생각해서 어서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을 느꼈다.

  

“이만 돌아가자 기차 끊기겠다”

  

시계를 한번 들여다보았다.

  

 

“히지카타..”

  

그는 나의 돌아가자는 말은 듣지 않은 듯 여전히 눈 앞에 펼쳐진 야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음에 오징어잡이 배.. 보러갈래?”

  

 

...

이 녀석의 말에 나는 몹시 머뭇거렸다. 세번째로 이 장소에 데려와서, 이 장소에서 똑같이 미츠바가 나에게도 이 말을 했었다. 나는 에도로 가기로 되어 있었고, 그녀의 옆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마음을 정해두었던 터라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녀는 역시 그런 것에는 관심 없으시구나- 하고 웃었는데 그 미소가 너무 슬퍼서 돌아오는 내내 나의 처지를 원망했다. 그녀가 에도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건 그 이후의 일이었다.

  

에도에 올라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혼자 그녀가 말한 오징어잡이 배를 보러갔다. 새벽의 공기가 차갑고 공기 중에 촉촉한 이슬이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그녀가 나와 함께 보고 싶어한 그 풍경이 궁금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둠을 환히 비추는 동그란 집어등들이 배에 줄줄이 매달려 바다를 찬란히 비추고 있었다. 까만 하늘과 까만 바다의 경계가 어딘지 알 수 없어 하늘이 바다인지, 바다가 하늘인지 구분되지 않아 그 광경이 흡사 하늘에 떠있는 별 자리 같았다. 이런 풍경을 보고 싶어 했구나..나와 함께.

  

아침이 밝아 오면서 나도 그 풍경의 환상에서 서서히 벗어났고, 그와 함께 밀려오는 씁쓸함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래, 보러가자”

  

이 녀석이 이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그가 여기에 나와 함께 오자고 한 이유를 그때 알았다. 그녀를 함께 떠올릴 사람이 필요 했구나.

  

  

  

 

 

돌아오는 기차에서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조는 이 녀석이 불편해보여 기대게 해주려 그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대었다. 감은 속눈썹과 살결이 그 날 따라 유난히 부드러워 보였다. 이 녀석을 조금 편하게 기대게 해주고, 긴토키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곤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시냐, 깡패경찰 부장나리 아니십니까?]

  

“미안, 아까 일이 좀..”

  

[뭐하는데 너?]

  

“소고 녀석이 어디 좀 가자고 해서”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건데. 말해놓고는 순간 아차 싶었다.

  

[또 그 녀석이냐]

  

“아니..이 녀석이 워낙 졸라대기도 하고.... ”

  

[아냐 미안할 건 없어, 낼 이야기해 나 잘거니까]

  

그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화가 났다면 더 쏘아댔을 녀석인데 이 정도로 그치는걸 보니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음을 알고 안심했다.

  

  

  

기차에서 내려 둔영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잠이 덜 깼는지 계속 하품을 했다. 그러게 왜 이렇게 멀리 가재.. 하고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사실 나도 이 녀석이 나를 부슈에 데려가줘서 고마웠다. 그녀와 함께 봤던 그 야경을 다시 보는 그 아련함이 좋았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말 해줄 때도 되지 않았나. 나는 방으로 들어가는 이 녀석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약간 당황까지 하면서 없다고 말했다. 끝까지 말 안하는거봐 이 새끼.

  

그 이후로 둔영에 종종 카구라가 찾아왔고,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 내가 한번 쳐다보면 그는 숨기려는 듯이 카구라를 끌고 나갔는데 나는 그런 행동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긴토키가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그가 나를 부른 곳은 그날 소고 녀석이 담당하고 있는 구역이었다. 만나는 것 정도야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간 것이었는데 그가 자꾸 나에게 장난식으로 키스할까? 라며 장난을 쳤다.

  

“하지마, 여기 오늘 그 녀석 구역이라고”

  

“응 나 아까 그 녀석 봤어. 차타고 가는 거 이미 끝난 시간 아니야?”

  

끝난 시간은 맞는데... 나는 자꾸 꺼림칙해서 그냥 돌아가려 했다.

  

“음.. 그럼..”

  

긴토키가 나의 손을 잡고는 골목으로 날 잡아끌었다.

  

“뭐야?”

  

“오늘은 밖에서 어때?”

  

“미친 소리 하지마”

  

나는 그가 잡은 손을 뿌리쳣다.

  

“왜?”

  

“왜라니! 일단 여기 그 녀석 구역이고..”

  

“가는거 봤다잖아”

  

“그래도 그냥 뭔가 불안해”

  

“음.. 나도 지금 여기가 아니면 싫어”

  

그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 녀석이 맨날 이런 식으로 고집 부린다고 했었지?”

  

별걸 다 따라하시네, 그렇게 고집부리는 새끼가 그 녀석 한명이 아니고 둘씩이나 된다면 난 아마 말라 죽을지도.

  

“그때 니가 내 약속깬 거 진짜 짜증났거든? 나 완전 기대하고 있었다고. 그니까 오늘은 그냥 내 뜻대로 해”

  

머뭇거리는 나를 그가 껴안고 평소처럼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키스했다. 이 녀석의 입술이 뜨거웠다. 가만히 쓸어내리는 손길도 부드러웠다. 그의 이런 행동에 나는 이 곳이 어디인지, 쭉 신경 쓰고 있었던 소고 녀석의 존재도 잊고 이 녀석에게 집중했다.

  

  

  

  

  

  

 

  

  

 

 

 

 

 

 

 

 

-

정신이 번쩍 들었을 때 나는 나의 공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불이 켜 있지 않은 캄캄한 이 공간.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지, 왜 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 공간에서 나는 특유의 마른 나무 냄새가 그 날 따라 유난히 역겨웠다. (나는 원래 그 냄새를 굉장히 정겹다고 생각해서 좋아했었다.) 계속 머리가 띠잉하고 울리고 머리가 웅웅 울려 대는게 너무 싫은 느낌이다. 침을 한번 삼키니 식도가 아려왔다. 왜 이러지..?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고요했다.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하곤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힘없이 풀썩 쓰러졌다. 바닥에 찧은 어깨와 무릎이 아파서 감싸 쥔채 한참 바닥에 널 부러져 있었다. 아프다. 아프다.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침대아래에 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보여 호기심에 손을 뻗었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 그 것이 궁금했던 걸 보면, 난 그것을 꼭 보아야 했었나보다. 그걸 주워서 쳐다보았는데 찢어진 한쪽 면과 동그랗게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음을 암시하는 자욱이 보여 다시 한번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곤 갑자기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의 한 조각이 생각났다. ‘콘돔’ 내가 주워든 그 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에 써 있던 텍스트였다.

  

아.. 맞다.. 나 여기 오기 전에...

떠올리자마자 다시금 역겨움이 파도치듯이 몰려왔고, 일어나지지도 않는 몸을 끌고 거의 기어가다 시피 화장실로 가서 헛구역질을 했고, 그 콘돔 쓰레기는 신경질적으로 던져서 버렸다. 그 것이 내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되새김질 시켜주는 매개체로 작용해 괴로웠다. 겨우 겨우 화장실에서 나온 후, 그대로 탈진해 바닥에 쓰러졌다. 아닌데... 아닌데.. 그거.. 내가 잘못본건데..

  

  

  

  

끼이익-하고 문이 열리며 가냘픈 마찰소리가 귀를 찌르는 듯했다.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 신발을 벗는 소리, 걸어오는 발소리. 뭐지.. 그 발소리의 주인이 내 근처에서 멈추고는 멱살을 틀어쥐곤 말했다.

  

“이 자식아. 여기 있었어? 너 요즘 진짜 왜 이러냐? 사람 말려 죽일 일 있어?”

  

또렷히 들리진 않았고, 닫은 유리창 건너편에서 말하는 듯 불투명하게 들리었는데 나는 그 말을 하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고 이 녀석의 손을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으로 힘겹게 뿌리치곤 바닥에 주저앉아 헛구역질을 했다. 당황한 이 녀석의 표정과, 역겨움과 함께 내가 느낀 건.. 이 녀석이 나에게 와줘서 좋았다. 아무 연락도 닿지 않는 나를 가장 먼저 찾아준 사람이 이 녀석이여서 좋았다.

  

  

  

  

  

  

  

  

  

-

그대로 내가 정신을 잃었었는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낯선 풍경이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을 하고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아이들이 우는 소리도 멀리서 들렸다. 내가 있는 곳은 병원 2인실이었고, 옆 침대엔 아무도 없어서 나 혼자 밖에 없다. 날짜를 보니 이틀을 내리 버린 모양이다. 날짜가 휙 지나가 있다. 팔에 꽂혀있는 바늘과 연결되어 위에 매달려 있는 팩을 보고선 음.. 나 어디 아픈가? 하고 생각하곤 어깨며 팔이며 다리며 쭉 훑어 보다가 어디도 이상이 없음을 알고 일도 안하는데 잠이나 자야겠다싶어 다시 누웠다.

  

“어? 대장 일어나셨네요? 많이 아프십니까?”

  

타이밍 딱 좋게 1번대 중 한 명이 병문안을 왔다. 이 녀석은 전에 얘기한 적이 있는 합성형 인간이었다.

  

“아프긴, 안 아파 아픈 척한거야 땡땡이치고 싶어서”

  

“에이- 부장님께서 엄청 걱정하시던데요?”

  

이 녀석의 ‘부장님’이라는 호칭에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가 이어나가는 말을 마저 들었다.

  

“대장 일어나기 전까지 계속 있다가 잠깐 자리 비우셨어요. 참 부장님도 대단하셔. 누가 사내새끼 아프다고 옆에 있어요? 퇴원하시면 부장님께 조금은 잘해드려요 쫌”

  

아무리 이 녀석이 이렇게 말한다고 한들, 지금은 히지카타를 보고 싶지 않았다.

  

“... 닥치고 빨리 가. 나 아픈거 아니야 잘 거야”

  

“네네, 갑니다 가요”

  

웃으면서 형식적으로 사온 병 음료수 따위를 내 옆에 놓고 1번대 대표로 제가 온겁니다- 하고 말하면서 가려는 그를 보니 완전 뜬금없이 갑자기 생각나서 물었다.

  

“너, 다른 여자 만나고 다니는거 아직도 안 걸렸냐”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이 녀석도 당황했는지 나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번 보고는 대답했다.

 


“아이고- 쭉 안 걸리다가 얼마 전에 걸렸어요”

  

그는 그저 한숨을 한번 내쉬곤 이내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걸리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멀쩡한데?”

  

내 말에 가려던 그가 다시 내 옆에 앉더니 말했다.

  

“대장, 생각해보세요, 섹스는 아무나와 할 순 있어도 그 섹스만 하는 상대와 손을 잡거나, 귀엽게 입을 맞추거나, 아프다고 해서 걱정을 한다거나, 영화를 보거나, 카페를 가서 일상을 이야기 하거나 하지 않는다고요. 음.. 아프다고 하면 몇 일은 못 하겠네 이정도의 생각? 제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은근 감동하더라고요. 근데 이건 그냥 발린말로 한 게 아니라 사실대로 저의 속마음을 이야기 한거예요. 대장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남자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걸요? 특히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은 건들 수 없는 위치일 땐 더더욱 그런 법이예요”

  

이런 허울 좋은 소리를 좋게 생각하는 병신 같은 년도 있구나..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대장, 요즘 연애한다던데 설마 벌써..?”

  

“그 꼬맹이랑 그런거 아니라고 수백 번은 말했던 것 같다. 나 잘거니까 이제 꺼져”

  

그는 웃으면서 네- 갑니다 둔영에서 봐요- 하곤 병실을 나갔고, 그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많아져서 잠은 오지 않았다. 나를 걱정해서 옆에 하루 종일 있었다..라.. 역시 히지카타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고 있고, 그에게 있어서 내가 첫 번째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이 의문이 많았다.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나도 나를 잘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심심한데 야동이나 볼까 하고 다운 받았는데 그 야동 주인공이 나의 가까운 사람인 것과 비슷한 충격이지 않을까. 심지어 나는 나와 가까운 상상도 못한 두 명의 광경을 보고나니 혐오스러움의 극치를 봤던 것 같다. 그런걸 보려고 생각하고 봤어도 충격이겠지만, 나는 그냥 골목길을 걷는 중이었다고. 그런 외설스러운 것을 보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 날 그 구역을 담당했던 걸 뻔히 알면서

  

그때는 갑작스러운 충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다시 그 일을 다시 떠올렸을때 그 때처럼 역겹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몸서리치게, 소름끼치게 떠올리기 싫을 뿐이었다.

  

잠깐 자리를 비웠던 히지카타가 돌아왔다. 눈을 뜬 나를 보고는 괜찮냐며 다가왔다. 나는 분명히 이 녀석을 좋아하고 이 녀석의 마음 역시 의심하지 않지만 자꾸 생각나는 그 장면에 이 순간은 그를 보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아 너 연락도 안 되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아침에도 안 들어오고”

  

“...”

  

나 핸드폰 부서졌는데 생각 못하고 있나?

  

“병원에서는 그냥 일시적인 충격이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던데 무슨 일 있어?”

  

옆에서 계속 질문하는 그의 말을 고스란히 무시하곤 잠자코 있으니 그가 다시 말했다.

  

“..피곤하지? 좀 더 쉬어”

  

그 말과 함께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을 조심스레 끌어올려주었는데, 그 손길과 세심하게 챙겨주는 그의 모습에 나는 자꾸만 그의 마음을 확신했다. 봐, 넌 나를 가장 첫 번째로 생각하고 있잖아. 그가 가려고 일어나길래 나는 그를 잡듯이 말했다.

  

“물”

  

“응?”

  

“물 떠와”

  

내 말에 그는 아무소리 없이 물을 떠다줬고 물 컵을 받아들은 내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넘겼다. 나를 보는 이 녀석의 푸른빛을 띄는 회색 눈동자가 그날따라 더 매력적이었다.

  

“너, 한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진짜... 내가 얼마나 걱정 했는지 알아? 너한테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나는 나중에 네 누나를 무슨 얼굴로 보냐..”

  

누나 핑계 대긴. 그냥 내가 걱정된다고 해.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이 녀석의 표정을 보고 내가 그때 보았던 광경을 잠시 잊었다. 아니, 잊고 싶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이 녀석도 합성형 인간이었다.

  

내가 고집스러운 면이 많아서 내가 좋아하고 있는 사람의 이런 일을 목격하게 된다면 그 순간 이성을 잃고 미쳐 버릴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나는 그때는 침착했다. 나답지 않게 이 녀석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항상 나에게 꼬맹이, 혹은 애새끼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내가 저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항상 각인하고 있는 듯 했다. 그를 빤히 보다가 물었다.

  

“내가 어려?”

  

“..갑자기 뭐래”

  

“맨날 나한테 꼬맹이라고 하거나 애새끼라고 하잖아”

  

“꼬맹이한테 꼬맹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나와 그의 사이엔 대략 10년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고, 항상 이 녀석을 나와 동등한 친구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그 차이가 처음으로 크게 느껴졌다. 이 녀석은 10년의 세월이라는 벽을 두고 고민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래서 나에게 이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손을 뻗을 수 없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 나는 어렸고, 그래서 내가 이 녀석을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10년이나 먼저 살아온 이 녀석을 100퍼센트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공백을 형씨라는 존재에서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까 왔었던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여자는 한마디로 병신 같은 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 여자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가야겠다. 내일 또 올게”

  

“...지금?”

  

“내일 일도 있고..”

  

“...여기서 자고 가면 안돼?”

  

“...”

  

평소에 그런 말을 할 리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해서 인지 히지카타가 나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나는 그냥 아.. 아니 그냥 심심해서 하고 덤덤한 척 말했다.

  

“진짜 많이 아프냐?”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심심해서...”

  

비어있는 옆 침대에 겉옷을 벗어서 놓더니 말했다.

  

“그래 여기서 자고 가지 뭐, 너 감시도 할 겸”

  

이 녀석이 사랑하는 건 나였다. 최대의 관심사도 나다. 내가 원한다면 무엇이 되었든 들어주려고 항상 노력하고 그것을 바로 이루어주는 존재다. 나를 위해서 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게 생각할 녀석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떨어진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그 녀석의 옆 모습이 좋았다. 전에 그 녀석의 방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다시 그의 품에 안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뒤늦게 질투라는 감정이 일었다.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저 녀석의 눈에 담기는 게 나 하나였으면 좋겠고, 그 큰 손이 만지는 건 나 하나였으면 좋겠고, 입을 맞추는 대상이 나 하나였으면 좋겠고,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은 나 하나였으면 좋겠다.

  

“히지카타..”

  

“...”

  

잠들었는지 그는 대답이 없다.

 

 

 

 

 

 

​-

밍나.. 히지오키 파세요....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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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08

2015. 8. 18. 22:24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술을 먹고 긴토키에게 말해버렸다.

그 녀석이 나랑 둘이 있는데 널 데리고 가니까 조금... 서운하더라- 라고. 아주 엄청 취해서 헛소리를 한건 아니고, 적당히 술을 마시고 그냥 속 이야기를 했다.

  

“너랑 나랑 둘이 있으면 그 녀석은 항상 너만 챙기잖아.”

  

“아 예예-”

  

긴토키는 내 말을 들으면서 술 한잔을 들이켰다.

  

“그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하나..”

  

말을 하다가 순간 오해하려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 녀석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 녀석의 표정은 하나도 변함이 없었다. 표정으론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물었다.

  

“혹시 내가 이런 이야기 해서 기분 나빠?”

  

“응? 내가 왜?”

  

긴토키는 아무렇지 않게 앞에 있는 오뎅을 하나 꺼내서 호호 불고는 한입 먹음직스럽게 물었다.

  

“아니, 전에 그런 식으로 얘기하길래”

  

“뭐야, 설마 질투하냐고 물어보고 싶은거야?”

  

오뎅을 한입 물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고는 대답했다.

  

“미쳤냐? 그런 애새끼한테 질투를 하게?”

  

“아니 뭐..”

  

“그 녀석 누나였으면 모를까”

  

“....”

  

가끔 이 녀석은 미츠바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나는 이 녀석이 미츠바 이야기를 꺼낼 때 마다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말도 못했다. 사실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그 말 조차 꺼내지 못했다.

  

“장난이야, 왜 또 당황하냐?”

  

긴토키는 내가 미츠바 이야기에 대답하지 못하면 꼭 이렇게 왜 당황하냐며 웃었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니까 더 그런 것 같다.

  

“아, 그리고 니 아들새끼에 대해선 너무 앞서나간다야, 난 오히려 오키타군 좋아. 가끔 좀 개념 없는 소릴 하긴 하지만 그런 점이 나와 잘 맞거든. 그때 너한테 했던 이야기는 좀 달라. 생각해봐라, 아무리 시누이가 제 친오빠한테 애인행세 한다고 여자로 보고 질투하냐? 아니잖아. 똑같아. 니 아들인데 왜 질투를 하냐? 그때 너한테 그런 식으로 말한 건 그냥 그때 잠깐 니 행동이 짜증나서야”

  

그는 술을 한잔 가득 따르고는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니 심정도 모르는 건 아니야. 봐. 역시 넌 그 새끼한테 부모라니까? 저기요 학부형님- 그 새끼 나이 또래 애들은요 당신처럼 잔소리하는 꼰대 부모님한테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법입니다요. 지금은 가족보다 나 같은 못된 친구를 더 좋아할 시기예요. 알겠습니까?”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유식한 척이야”

  

“긴파치 센세잖아”

  

이 녀석이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모를 실태 안경을 쓰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

“저.. 히지카타씨. 이거.. 받아주세요”

  

뭔가 했더니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라고 했다. 왠 처음보는 여자가 나에게 주고 도망가길래 뭔가 쳐다 보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대원들 말로는 매번 오는 여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한다면서 어떻게 매번 갖다 바치는 여자 얼굴 기억도 못하냐며 성화였다. 내가 난 먹을 생각이 없으니 먹으라고 내밀었더니 갑자기 대원들이 화를 내면서 저희도 자존심이 있지, 부장님이 주는 건 안 먹습니다! 라고 말하며 가버렸다. 주는데도 싫데 이 자식들이. 그러고 보니 발렌타인데이라.. 우리는 사소한 이벤트 같은 건 챙기지 않지만 초콜렛을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이런 날 정도는 가볍게 챙겨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지나가다가 맛있는 과자점이 있다며 한번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그 과자점으로 들어갔다. 딸기우유를 좋아했으니까 딸기가 곁들어진 초콜렛 케이크를 고르고는 이 녀석이 좋아할 생각을 하니 나도 기뻤다. 그리고 포장까지 해달라고 말했는데 받고 보니까 아까 받은 그 여자에게 받은 것과 같은 포장이었다. 이 여자에게 받은 것은 평범한 쿠키였고, 내가 산 것은 케이크라서 타입만 다를 뿐, 똑같았다. 긴토키를 살짝 불러내서 건내줬더니 이 녀석이 내가 이런 것을 챙겨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받아들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잘 먹겠다고 했다. 본인은 챙길 생각을 못했다는 게 미안했나보다. 나는 그의 그런 마음이 너무 좋았다.

  

둔영으로 돌아와서 방으로 돌아가려 지나가던 중 그 녀석 방에서 티비 소리가 들리기에 벌써 들어왔나 싶어서 문을 살짝 열고 보니, 이 녀석이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다. 베게를 안고 누워 있는 모습이 새삼 더 앳되어 보여 어린이 동화책에 나오는 삽화 같아서 나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이 녀석이 나를 보고 몸을 일으켰는데,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과자가 생각나서 말했다.

  

“오늘 발렌타인 데이라고 다들 난리치던데, 넌 생각보다 조용하다?”

  

“녀석들이야 원래 그런 거에 쉽게 난리치는 녀석들이니까. 그러는 히지카타씨는 좀 받았습니까?”

  

나를 흘겨보며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이 녀석에게 그 과자를 휙 던졌다. 뭔지 모르고 받아든 그 녀석이 받아든 포장된 과자를 보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 너 먹어. 어차피 오늘 아무것도 못 받았을 거잖아”

  

포장된 과자와 나를 번갈아 보는 그 녀석에게 다시 말했다.

  

“너 단거 안 좋아하는 거 아는데 이런 날은 이런 거 먹으라고 있는 날이니까”

  

베게를 안고 앉아선 내가 준 하얀 포장의 과자를 들고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이 녀석을 보니 새삼스레 미츠바와 많이 닮았다.

  

  

  

  

  

  

  

  

  

    

-

하루하루 문제가 끊이지 않는 둔영이라 그런지. 그 날도 문제가 터졌다. 소고 녀석이 찾아와서 1번 대에 있는 어떤 녀석을 다른 곳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이 녀석이 또 제 멋대로 굴기 시작했구나 싶어서 이유를 추긍했는데, 왠일로 이 녀석의 잘못이 아닌 정말 또라이 같은 새끼였다.

  

“아.. 뭐, 별건 아닌데, 그 새끼 게이인가봐. 일단 그게 젤 큰 이유고.. 아, 게이인건 아무래도 좋다 그래, 근데 그 새끼 섹파가 나랑 닮았다잖아. 존나 소름끼치게. 그런 새끼를 어떻게 우리 부대에...”

  

“뭐? 그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어? 니 승질에?”

  

“아니.. 뭐.. 당연히 그 자리에서 죽도록 패줬지”

  

“그 새끼 어딨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일개 대원새끼가 감히 대장한테 뭐라고?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그렇지. 사실 이 녀석이 아닌 다른 대장이 이런 말을 전해왔다면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 녀석이 어려서인지 나는 무심코 과민반응을 보였다. 그런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그의 표정이 왜인지 그 날은 조금 달랐다.

  

긴토키에게 이 일을 이야기 했더니 긴토키는 박장대소를 터트리면서 말했다.

  

“정말 그 섹파랑 닮았을까? 음. 하긴 그러고 보면 그 새끼 표정만 좀 풀고 있으면 가끔 귀엽긴 해. 궁금하다 그 섹파 어떻게 생겼을지”

  

내가 화난 초점과 다른 곳에 반응하는 그를 나는 노려봤고, 긴토키는 농담이라면서 다시 웃었다.

  

  

  

  

  

  

  

  

  

-

“히지카타, 히지카타 내가 재밌는거 알려줄까?”

  

긴토키가 나에게 와서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뭔데?”

  

“아.. 사실 재밌는 건 아니고...”

  

긴토키가 팔짱을 끼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가, 이내 어이없게 웃었다가를 반복했다.

  

“카구라랑 니 아들새끼가 좀 이상해”

  

“카구라랑 소고? 뭐가 이상한데?”

  

“둘이 서로 좋아하는 것 같아..”

  

“에이 설마”

  

“아냐 진짜야! 얼마 전 발렌타인 데이때 세상에 카구라가 초콜렛을 만드는거야! 그 카구라가! 난 당연히 날 주는 줄 알았는데 너 잠깐 만나고 잠깐 산책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멀리서 봤어. 카구라가 오키타군한데 그 초콜렛 주는거. 확실해! 나 진짜 그 자리에서 턱 빠질 뻔했다니까?”

  

“정말?”

  

“어! 확실해 이거 진짜야! 심지어 둘이 티격태격하면서 장난까지 치더라. 확실해 확실해”

  

“... 음 좀 이상하긴 한데, 카구라가 일방적으로 혼자 그런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 말에 긴토키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래.

  

“니 아들 녀석이 나한테 고민상담을 해왔단 말이야. 신경쓰이는 애가 있다면서”

  

긴토키가 잔뜩 흥분해선 말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의 행동이 의아하기도하고, 그 녀석이 내가 아닌 이 녀석에게만 고민상담을 했다는 게 거슬려서 나는 약간 투덜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니가 말하는 데로라면 걔네가 둘이 서로 좋다는데 네 녀석이 왜 한숨이야?”

  

“우리 카구라가 걱정이라서 말이야. 니 아들자식이 보통 날라리여야지”

  

사실 나도 이 녀석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의아하긴 했다. 이 녀석이 연애..? 라니 그런 감정에 대해 인식도 못하고 있을 녀석이 틀림없고, 사람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라서 그런지 카구라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녀석을 상대할 여자애라면 카구라 정도 밖엔 없긴 하겠네- 하고 생각한 것도 맞다. 소고가 날라리에 문제아라는 건 아는데, 그 이야기를 내가 아닌 이 녀석이 집어서 이야기 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 소고가 뭐 어때서. 누가 들으면 카구라는 아주 조용하고 참한 여자앤 줄 알겠다?”

  

“참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 녀석처럼 문제아는 아니거든?”

  

“소고가 아무리 문제아라지만 나름 공무원이야. 카구라 상대로 그런 소리 들을 이유 없어”

  

“아버님 또 나오셨네”

  

턱을 괴곤 내 말에 또 시작이라는 듯이 말하는 그 녀석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니 아들새끼 욕했다고 지금 화난거야? 알겠어,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긴토키가 내 표정을 보고는 한참 웃었다.

  

  

카구라라.. 잘 어울린다고 해야하나.. 그 녀석이 긴토키를 잘 따르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별로였는데, 만약 그 녀석에게 그런 나보다 우선순위가 더 높은 사람이 생긴다면..

나는 상상하고는 이내 아쉬웠다. 이제 그 녀석은 내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뭐랄까. 오랫동안 내 옆에 있어서 소중한 줄도 모르고,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거대한 서랍장을 나의 허락 없이 누군가가 버린 기분이었다. 골머리 앓고 있으며 항상 자리만 차지하는 머리 아픈 존재지만 막상 사라지니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그 존재의 커다란 멍 자국이 남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그 녀석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같이 나갔던 대원을 불러서 왜이렇게 안 오냐고 묻자 마지막 순찰을 하고 연락을 취했는데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제 멋대로인 녀석이니 이 녀석을 탓할 수도 없어 나는 연락을 취했다.

  

짧게 연결음이 울리고, 이 녀석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왜 안와”

  

[이제 가려고요]


“.. 그래 어딘데?”

  

[근처예요 암튼 이제 가...]

  

그 상태로 전화가 끊겼다. 이 새끼 지금 또 장난치나? 가끔 내가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면 일부러 전화가 끊겼다는 핑계를 대며 끊어버리기도 했는데, 혹시나 또 나에게 장난을 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어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그렇게 끊긴 이후로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또 장난이겠지? 설마 이 녀석 정도 되는 애가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기라도 하겠어? 원한이야 많이 사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 지금 또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려고 누웠다가 걱정인지 뭔지 전혀 잠이 오지 않아서 그 녀석이 순찰 갔었던 그 근처를 한번 둘러보고, 혹시나 해서 이 녀석의 순찰지역이 아닌 옆 쪽도 한번 둘러 보고, 혹시나 다른 곳으로 갔나 해서 계속 돌아보는데 내가 이 녀석을 찾으러 나간 것을 알았는지 야마자키에게 전화가 왔다. 왜 이렇게 과민 반응이냐며 와서 주무세요- 라고 말했다. 그리곤 덧붙여서 오키타 대장도 밤에 놀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유별난 나의 모습을 이 새끼도 알고 있으니 내가 이 녀석의 장난에 100번이면 100번 놀아나는 거다 라고 수없이 되뇌이면서, 동시에 욕을 지껄이면서 애써 잠을 청했다.

  

  

  

  

아침에 혹시나 혹시나 해서 일어나자마자 그 녀석의 방문을 벌컥 열었는데, 다행이도 익숙한 안대를 쓰고 잠들어 있는 이 녀석이 침대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심하면서도 나를 걱정시켰다는 것에 화가 나서 엄청나게 잔소리를 해댔다.

  

“이 자식아 안 일어나? 너 어제 몇시에 들어왔어? 전화는 왜 안받아?”

  

“핸드폰 부서졌어요”

  

그가 하품을 하면서 피곤한지 살짝 쥔 손으로 눈을 부벼댔는데 그 모습이 그의 모랫빛 머리칼과 더불어서 아기 사자같았다.

  

“그래도, 나 어제 일 열심히 했는데”

  

잠에서 덜 깼는지 잠자코 내 잔소리를 듣다가 그가 말했다.

  

“누가 뭐래?”

  

“진짜야. 그니까 다른 일은 좀 넘어가면 안됩니까?”

  

“조용히 해 너, 잘한 거 하나도 없어. 근처라고 바로 온다고 해놓곤 연락도 끊기고 말이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무슨 일이라니?”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왜요? 어디가서 죽기라도 했을까봐?”

  

“그래 이 새끼야”

  

“내가 당신 죽이기 전에 죽을 것 같습니까?”

  

...또 저 소리 진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어제 저녁에 내가 찾아다닌 것이 너무 한심하고 화가 나서 나도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게, 나도 깜빡했다 이 자식아”

  

내가 짜증났다는 것을 감추지 않고 몸을 홱 돌려서 나가자 이 녀석이 쫓아와서는 그러게 내가 같이 순찰 가자고 했잖아요- 라고 우습다는 듯이 킥킥대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같이 가자고 했었지. 긴토키와 만나려고 일부러 이 녀석과 같이 가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내심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화낼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약간은 들기도 했다.

  

  

  

  

  

  

  

  

  

  

-

“어이 토시, 그거 들었냐”

  

순찰을 하고 있던 중, 곤도씨가 뜬금없이 나를 다급하게 찾고는 말했다.

  

“뭘? 그러고 보니 무슨 일 있는 거야? 왜 이렇게 급하게 왔어?”

  

내 물음에 한참을 헉헉 거리면서 숨을 몰아쉬고는 말했다.

  

“소고 녀석 어제 늦게 왔잖아?”

  

“응? 응”

  

“해결사네 꼬맹이랑 있었다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긴토키가 말했던 사실이 생각났고, 그가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는 걸 다시한 번 깨달았다. 난 한번 들었던 사실이라 덤덤했고, 곤도씨는 내 반응을 보고 왜 안 놀라? 난 완전 기절할 뻔 했는데 하고 중얼 거리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무슨 대화내용이.. 아침까지 왜 있어주지 않았냐고 그랬다던데? 걔네 몇 살이냐?”

  

곤도씨는 약간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고, 나는 그런 곤도씨에게 어린애들 가지고 무슨 생각을 하냐며 화를 냈다. 저 어린 애새끼들이 뭘 안다고.. 어른들이니까 이런 상상을 하는 거지. 곤도씨, 저 대화를 듣고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린 나이 먹었다는 증거라고.

  

  

  

  

  

나는 소고 녀석이 나에게 직접 말을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긴토키에게는 상담까지 했다면서 나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서운했다. 괜히 술이 땡겨서 술이나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술집에 갔는데 긴토키를 부를까 생각했다가 그냥 그 날은 혼자 마시고 싶었다. 긴토키와 같이 마시면 얼마 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더불어 지금 그 녀석에게 약간의 질투 비스므레 한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긴토키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이 둘에 대한 나의 감정이 가리키는 방향의 지표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늘 그 녀석과 둘이서 오던 작은 술집이라 그런지 주인이 날 보자마자 흰 곱슬머리 형씨는 같이 안 오셨네요? 하고 정겹게 물었다. 나는 그냥 오늘은 혼자 마시고 싶어서요- 라고 말했다.

  

“두 분은 오래된 친구세요? 항상 정겨워 보이세요”

  

“뭐.. 그냥..”

  

“얼마전엔 흰 곱슬머리 형씨께서 혼자 오셔서 술 드셨었는데, 애인이 있나봐요? 술 먹고 한참 이야기 하더라고요”

  

나..?

  

“뭐라고 하더라.. 재수 없지만 때론 자상한 면도 있다고, 얼마전엔 초콜렛 받았다고 자랑하시던데요?”

  

“그래요?”

  

주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자 나는 갑자기 그가 급 보고 싶어졌다.

  

“네, 술 먹곤 갑자기 애인자랑만 주구장창 하던데 아는 사이예요?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듣는데,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그 녀석이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걸 새삼 다시 느껴서 고민하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잊을 정도로 기뻤다. 나는 술 한잔을 들이켰다.

  

“글세, 나도 잘은 모르지만 재수 없는 건 맞는 것 같네요. 근데, 내 애인이 그 놈 애인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야”

  

  

  

  

  

  

  

  

  

  

-

그 날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오랜만에 거하게 술에 취했다. 계속 술집 주인과 기분 좋게 긴토키 이야기를 해서인지 자꾸 그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긴토키.. 긴토키..

  

방금전까지 나는 소고녀석의 태도에 대해 분명히 약간의 질투를 느끼고 있었을지 언정, 이 녀석의 행동에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이 녀석에게 은근히 의지하고 있는 존재였다. 소고 녀석도 내가 긴토키에게 받는 따스한 느낌을 카구라에게서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심 안심했다. 그래도 나한테 말은 해주지 이 망할 녀석아.

  


술을 마시고 둔영에 들어간 부분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그가 많이 보고 싶었는지 꿈에 그가 나왔던 것은 기억이 난다. 어느 때와 똑같이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나는 그런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꽉 끌어안았다.

  

  

  

  

  

  

  

  

  

  

-

숨기는게 있어서인지, 그는 아침부터 내 눈을 피했다. 답지 않게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았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눈을 피하는 행동이 이 녀석 답지 않았다.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약간은 걱정했는데, 역시나 이 녀석은 나를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 난 녀석이라 그런지 하루하루 이 녀석의 지랄을 받아 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 새끼가 스트레스를 나한테 푸는 것 같다는 생각이야 늘 해왔긴 했지만 어느 날은 유난히 지랄이 심해서 한마디 했다.

  

“너 요즘 왜 이렇게 심해졌냐?”

  

내 말에 이 녀석은 그저 내가 마냥 재밌었는지 소리내어 웃었다. 그래. 내가 이런 말을 한다 한들 귓등으로 듣지도 않을 녀석에게 말해서 뭐하냐..

  

그렇게 지랄을 하다가 갑자기 급 일을 열심히 하는 그가 의심스러웠다. 갑자기 왜 이러지? 수상하긴 했지만 여튼 일은 열심히 하니까 나는 그 태도가 예뻐서 불러서 잔뜩 칭찬해줬다.

  

“소고 왠일이야? 니 녀석이, 오늘 잘했으니까 맛있는 거 사줄게”

  

“음.. 그럼 타코야키”

  

더 비싼 걸 사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타코야키를 얘기하는 이 녀석의 태도가 의아하기도하고, 갑자기 카구라와 있으면서 좀 변했나? 하고 생각한지 이틀 후.. 그럼 그렇지 이 새끼가. 또 다시 사고를 치고 신문 1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웃으면서 브이자를 그리고 찍은 사진이 날 약올리 듯 보여 얄미웠다. 이 자식이 진짜..

  

불러다가 화를 냈는데, 이 녀석은 그런 날 보고 생글생글 웃었다. 이 녀석이 가끔 이렇게 웃으면서 날 보면 나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웃는 모습이 미츠바와 닮았고, 그래서 나는 이 녀석에게 화가 약간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이 녀석은 그걸 알고 있는 듯 했다.

  

“잘못했어. 이제 안 그럴게”

  

“말은”

  

그 날은 긴토키와 약속이 있었다. 신파치도 없고, 카구라는 저녁에 동네 친구들과 깡통차기를 하러간다고 했다며 나를 집에 초대했다.

  

‘카구라는 기본으로 깡통차기 하러가면 3-4시간은 안 들어와, 심지어 얼마 전엔 아침에 들어왔다니까? 엉망이 되어서는’

  

내 짐작으로는 아침에 들어왔다고 한 날은 소고 녀석과 있었다고 곤도씨가 말해 준 날 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굳이 그 둘의 확실치도 않은 이야기를 내 입으로 전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그의 초대에 긍정적인 대답만 했다.

  

“히지카타씨, 나 가고 싶은데 있어요”

  

“근데”

  

“같이가자”

  

“...어딘데?”

  

“있어. 오늘 가자, 밤에 가야된 단 말이야”

  

“오늘? 안돼 나 오늘은 좀..”

  

“싫어 난 오늘 가고 싶어”

  

이 화법, 또 시작이다.

그가 무언가를 사달라고 데려가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나와 꼭 가고 싶다 라고 말한 적은 처음이었어서 나는 약간 궁금하기도 하고, 이 녀석의 이런 화법엔 처음에 꼭 태클을 걸었어도 마지막은 항상 그래, 그래 라는 대답만 해왔던 습관이 베어 있어서 인지 나는 긴토키와의 약속보다 이 녀석의 약속에 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긴토키와의 시간이야 앞으로 이 녀석과 보낼 시간보다 많을테니까.

  

쭉 소고녀석과 같이 있어서 긴토키에겐 문자로 가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 녀석은 기차를 타야 된다며 내 팔을 잡아 당겼는데, 나는 이 녀석이 나를 빨리 오라며 당기는게 내심 좋았다. 기차여행이라- 길게 가는 건 아니였지만 이 녀석과 둘이 가는 건 처음이라 괜시리 뻘줌했다. 이 녀석도 그런지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 밖에서 빠르게 휙휙 넘어가는 풍경의 다양한 빛깔이 이 녀석 눈동자에 여러 가지 빛으로 빛나는게 예뻤다. 빨간 눈. 긴토키와 같은 색이다. 긴토키와도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

  

“곤도씨도 같이 가자고 하지 그랬어?”

  

부슈에 간다고 생각나니 곤도씨가 급 생각나서 물었다.

  

“곤도씨는 안경네 누나 쫓아다니고 있을 거 아냐”

  

“하긴, 뭐.”

  

“근데 갑자기 부슈는 왜?”

  

“가보면 알아”

  

그가 나를 보고 웃는 모습이 다른 때와는 달리 순진해보여서 좋았다. 그 녀석의 머리칼을 잔뜩 헝클었는데 내 손에 닿은 이 녀석의 머리칼이 복슬복슬한 긴토키와는 달리 굉장히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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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07

2015. 8. 18. 22:16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그 새끼 말과 같이 나는 등신 같았고, 그대로 둔영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얼마 되지 않은 후에 후회가 물밀 듯이 몰려와 나의 행동을 혼자 비난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랬으면 안 되었는데, 내가 어리석었다. 그렇게 한참을 나의 행동에 대해서 돌아보고, 뭐라고 이야기 해야하나, 한참 생각하고 있을 때 막 돌아왔는지 소고 녀석이 날 보곤 다가와선 말했다.

 

“오늘은 왜 땡땡이 친거 가지고 뭐라고 안해요?”

 

아까 긴토키의 폰에 전화를 걸었을 때 자신이 받았던 부분을 인식하고 말하는 거다.

...아 역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저 놈은.

 

“..아깐 바빴어.”

 

오늘은 그냥 좀 넘어가라. 아까 긴토키와 다투었던게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어서 나는 더욱더 그 쪽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고, 머릿속에 가득 차 있어서 눈 앞의 이 녀석에게 신경 쓸 틈이 별로 없....

 

“히지카타씨, 나랑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

 

“안 가”

 

“난 먹고 싶어, 가자.”

 

“난 먹기 싫은데”

 

“그럼 옆에만 있어요”

 

시작됐다. 이 녀석이 강경하게 제 말을 따르라는 식의 대화법을 시작할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이 녀석의 말에 몇 번 저항하다가 안 된다는 것을 알면 무조건 따라주었다. 나에게 이 녀석은 항상 안쓰럽고, 가엾은 마음이 머물러 있다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이 녀석의 말에 둔영에서 끌려나와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소고는 둘러보다가 쭈쭈바를 먹고 싶다며 하나 골라서 계산대에 올려놓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계산을 했다. 이 녀석이 쭈쭈바를 물고는 점프가 새로 나온 걸 깜빡했다며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는 책을 들곤 서서 쭈욱 훑었다.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긴토키와 싸운 부분 때문에 기분도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 녀석 옆에서 어서 들어가자고 말했다.

 

“먼저 가던가”

 

먼저 가면 니가 가만히 있냐?

 

“됐어. 같이 가”

 

“그럼 좀만 기다려요 이거 뒷 부분 진짜 궁금하단 말이야”

 

책을 훑는 그를 어이없게 쳐다보다가 창밖을 보았는데, 낮에 싸우고 헤어졌던 긴토키가 편의점 밖에서 우리를 딱 보고 있는 거다. 나는 반가움과 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뛰쳐 나가려다가 옆에 있는 이 녀석이 신경쓰여 힐끗 보았다. 긴토키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가 책을 보다가 밖을 보더니 어? 형씨다! 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이 녀석의 행동에 긴토키는 편의점에 들어왔다. 그때 우리는 서로 눈을 한번 마주치기만 했고, 소고는 긴토키에게 신나서 이야기 했다.

 

“형씨, 아까 얘기 했던 거 다음 편 봤어요? 저 지금 보고 있는데 전개가 급 이상해지는데요?”

 

“아- 그래? 왜 난 괜찮던데?”

 

그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소고에게 다가가서 같이 책을 보면서 보란 듯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여기까지 왠일이지? 편의점이라면 집 근처에도 있을텐데.

 

“근데 형씨 여기까진 왠일이예요?”

 

소고 녀석의 물음에 긴토키가,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도 함께 같이 놀랐다. 그리고 긴토키는 이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오오구시군 만나러 왔어.”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인지 너무나 불안해서 사색이 된 얼굴로 긴토키를 쳐다보았고 긴토키는 그런 나를 보곤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리곤 씨익 웃었다.

 

“히지카타요? 왜? 그러고 보니까 낮에 저 새끼가 형씨한테 전화도 했었는데”

 

“내가 저 새끼랑 만나야 할 일이 싸우러 온 거 말고 또 뭐가 있겠어?”

 

긴토키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내 멱살을 쥐곤 말했다.

 

“따라 나와 이 새끼야”

 

소고는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곤 웃겼는지 형씨 화이팅- 죽여도 상관없어요 라고 말하곤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의 나를 억지로 끌어내다시피 편의점에서 끌어내서는 밖에 나와서 말했다.

 

 

 

 

 

“미안. 아깐 나도 순간 욱해서.. 좀 생각 없이 말했어”

 

그건 내가 하려던 말인데..

 

“아냐.. 내가.. 내가 너무..”

 

“근데 이 새끼야! 그렇게 나랑 싸워놓고 편의점에서 히히덕거리고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소고 녀석이 잠깐 편의점 가자길래. 라고 말하려다가 낮에 긴토키가 ‘그 녀석이 가지 말라고 하면 넌 나에게 오지 않을 거잖아’ 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 그 말은 그만두었다. 그 녀석이 나에게 먼저 화해를 하러 와주었다는 사실에 나는 왜 내가 찾아갈 생각은 하지 못했는지 부끄러웠다. 나는 분명히 연애같이 섬세한 부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능동적이지 못한 수동적인 인간이었다.

 

“됐다. 여튼 내일봐. 내일은 저 녀석의 눈을 어떻게든 피해서 나한테 연락해”

 

그가 화는 풀렸지만 나를 째려보며 나에게 말했고 나는 꼭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긴토키는 나에게 니 아들새끼한테 난 간다고 전해줘라- 하고는 스쿠터를 타곤 돌아갔다. 편의점에 올 때는 계속 신경 쓰이던 문제가 사라졌고, 무엇보다 이 녀석이 이 짧은 이야기를 하려 나에게 먼저 와서 이야기 해주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뻐서 묘하게 들떴다. 긴토키가 시야에 사라질 때까지 이 녀석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형씨는 갔습니까?”

 

“응 너한테 간다고 전해주라고 하고 가더라”

 

덤덤하게 책을 보며 쭈쭈바를 쪽쪽 빨아대는 그를 보고 나는 약간은 들떠서 인지 그에게 말했다.

 

“뭐 더 먹을래?”

 

내 말에 수상쩍은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보았다.

 

“표정이 왜 그래? 다른 거 더 먹을 거면 말하라고”

 

“...갑자기 왜 이렇게 들떴습니까?”

 

...

 

“아.. 아까 그 해결사 녀석 쥐어 패니까 속이 다 시원해서”

 

“뭐야.”

 

이 녀석이 작게 말하고는 책을 덮고는 이제 돌아가자고 말했다. 이 녀석하고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은근히 이 녀석은 내가 숨기는 와중 가끔 놓치는 허술한 부분을 콕 집어서 이야기했다. 이 녀석 역시 나를 잘 알고 있으니 그렇겠지만 이런걸 보면 은근히 소름이 돋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세상엔 비밀은 없다고 어차피 언젠간 들키거나, 아니면 밝혀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엔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긴토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뭐 하러 그런 걸 먼저 고민하냐, 닥치고 고민해도 충분해, 세상은 한치 앞도 모르는 일인데..’ 그런 그의 말이 항상 걱정을 달고 다니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다른 일로도 머리가 터지는데, 하나 더 얹어 놓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이 녀석이 시키는 데로 연락을 취했다. 그래, 사실 내 핸드폰을 자주 보는 녀석도 아닌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거야.

 

“히지카타씨 핸드폰좀 줘봐요”

 

..... 이 녀석은 감이 좋은 건지.. 나를 괴롭히는 데엔 타고 난게 틀림없다.

 

“..핸드폰? 왜”

 

“아니 뭐 좀.. 하려고”


“..연락 올 데 있어서 안돼”

 

“누군데?”

 

“있어. 넌 말해도 몰라”

 

나는 일 관련해서 연락을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애써 말을 다듬으며 말했다. 그때 내 핸드폰의 마지막 연락은 긴토키였고, 내용은 [그래, 어젠 일부러 찾아갔는데 엇갈리지 않아서 진짜 다행이었어.]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너 연애하냐?”

 

귀신같은 새끼.

 

“아니”

 

내 짧은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그의 표정이 무섭기도 하고, 뭔가 알고 있나?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 했다.

 

“왜, 아니라서 아니라고 하는데 뭐가 맘에 안 들어?”

 

“탐정의 추리가 틀렸으니 실망하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입을 삐죽거리는 그 녀석의 태도가 웃기기도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가장 크게는 두려웠다. 쭉 고민하고 있던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고민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전엔 이 녀석이 퍼트리고 다면서 나를 괴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그나마 귀여운 편이었다. 지금은 그런 것 보다는 이 녀석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 들었다. 나와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싫을 정도로 나를 혐오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비번이였기에 긴토키와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밥을 먹기로 했다. 그때 소고 녀석은 몰래 바짝 나를 쫓아왔는데, 내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특히나 아침에 연애하냐고 물어봐 놓고 제 자신을 아는 내가 이런 걸 방심할 것이라고 생각 하는 건가?

 

 

 

 

 

 

 

 

 

 

-

“히지카타씨 저 부탁있어요”

 

왜 이렇게 공손하지? 이것 좀 사와 저것 좀 사와 할 때와는 다른 공손함. 이것은 본인이 생각해도 내가 들어줄 것 같지 않을 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 말했을 경우, 나 조차도 해결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일을 부탁할 때 쓰는 화법이다. 나는 이 녀석이 이런 화법을 사용할 때가 가장 피곤하다. 보통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안 돼>. 여기에서 만약에 순순히 물러난다면야 전혀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10번에 8번은 하루 종일 날 쫓아다니면서 해달라고 조르고, 내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건 내가 알아야 할 일이 아니잖아요. 히지카타씨가 잘 생각해보셔야지.> 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안 된다 싶으면 화난척도 하고 다시 조르기도 하고 반복하는 일이 많은데 사실 이 녀석이 나에게 그런 식으로 다가오면 평소 이 녀석의 모습이 아니라 그런지 은근히 재밌었다. 그래서 사실 이 녀석이 말한 일이 해결이 되어도 일부러 해결 못한 척 이 녀석의 태도를 지켜보는 일도 있었다.

 

“나. 잠복근무할 때 쓰는 집 하나 주면 안돼요? 그래봤자 원룸 크기잖아?”

 

장난하나. 역시나 이 새끼가 이렇게 착하게, 순하게 본인이 불리하듯이 바짝 제 모습을 감추고 나올 때는 어이가 없을 만큼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해오곤 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집을 달라니. 잠복근무 때 쓰는 집에 대한 관리가 그렇게 허술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위의 상부에선 그런 곳을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하지 않는다고 이 자식아. 물론 하루 이틀이야 멋대로 쓸 수는 있겠지만 이 녀석이 이렇게 부탁을 해오는 것을 보아 그런 의도는 아님이 분명하다.

 

“안 돼”

 

“왜! 어차피 그냥 쓸데 없이 있는 것도 많이 있을 거 아냐!”

 

“그런 터무니 없는 부탁을 하러 온 거냐 너 지금?”

 

“응”

 

“안 돼.”

 

나는 단호하게 말했고, 그 즉시로 자리를 떴다.

 

 

나의 그런 단호한 태도로 이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포기해주길 바랬건만, 이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는지 일 끝나고 오면 정말 뜬금없이 나에게 물을 떠다주면서 “부장님, 오늘도 많이 피곤하시죠? 물 한잔 드세요.” 라며 물을 주거나, “부장님 혹시 담배 떨어지셨으면 사다드릴까요?” 라거나.. 그런 제 행동에 내가 별 반응이 없으니 방에 혼자 있을 때 찾아와서는 두 손을 모으고는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히지카타, 아니 부장님 제발요” 라며 조르기도 하고 (저렇게 졸라 댈 때는 긴토키가 맨날 ‘아들’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서 피식했다.) 하다하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이젠 화내는 걸로 작전을 변경한 듯 나에게 툴툴댔다.

 

저렇게나 원하는 걸 보니, 나는 내가 가진 우리의 아지트가 생각나면서 이걸 줘야하나. 하고 생각했다. 아까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 까지 이 녀석에게 무언 갈 해주었다고 해서 손해를 봤다 라고 생각을 하거나,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 녀석에게 불만을 느낀 적은 기필코 한번도 없었다. 나는 이 녀석이 무언 갈 나에게 강력하게 원할 때 그것을 들어주면 평소 잘 웃지 않는 그가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굉장히 좋았다. 그가 나에게 웃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나에게 약간의 보람 비스므레 한 것도 느끼게 하고, 이 녀석이 행복해 하는걸 보는 것이 나에게도 행복이었다. 나와 긴토키야 굳이 거기가 아니여도 상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긴토키에게 ‘우리의 아지트’를 이 녀석에게 주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얼마 전에 그가 나에게 한 말이 아직까지도 나에게 약간은 크게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긴토키에게 그 집을 팔았다고 말했다. 긴토키는 나의 그런 판단이 의아했는지 왜 그랬냐고 물었고, 나는 대충 그냥.. 돈이 급해서. 이 정도로 둘러댔다. 긴토키는 캐묻는 성격이 아니여서 그냥 그러냐? 그럼 그 돈으로 나 맛있는 것 좀 사줘라 라고 말했다. 다행이면서도 이런 그가 고맙고 좋았다. 나의 연인이 이런 사람 이라는게 너무나 다행이고 다시 한번 고마웠다.

 

 

같이 순찰당번이 되었을 때, 이 녀석의 표정이 아- 왜 하필 이럴 때 같이 순찰이야? 라고 말하듯 속마음이 얼굴에 내비쳐서 웃겼다. 나는 이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귀여워서 우리의 아지트를 주기로 결심하고도 그의 태도를 지켜보았다. 나와 다른 그에게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느끼기도 하고, 그런 그의 태도가 마냥 어려서 내가 그에게 늘 물렀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모습을 가끔 나에게 비춰준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런 그의 어리광과 응석을 다 받아주었다. 이 녀석의 응석을 받아주게 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몇 장면이 떠오르는데, 그 중하나는 부슈에 있었던 시절 어느 날이다. 이 녀석은 미츠바의 무릎을 베고 얌전히 잠들어 있고, 나와 그녀는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런 이 녀석의 모랫빛 머리칼을 흰 손가락으로 가만히 쓰다듬었고, 나는 그런 그녀와 이 녀석을 번갈아 보았다.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가락이 고왔다.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던 터라, 그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설레어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을 때는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 제가 소고의 응석을 너무 받아주기만 해서 그런지 토시로씨에게 너무 건방지죠? 죄송해요..”

 

그녀는 소고를 쳐다보면서 약간은 씁쓸하게 말했는데, 그 때의 표정이 무척이나 쓸쓸해보여 가여웠다.

 

“아냐, 죄송할게 뭐가 있어..”

 

“이렇게 건방지게 굴어도 토시로씨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어이없는 부탁이라는 걸 알지만, 조금은 이해해 줄 수 있죠?”

 

물론 나는 당연히 이해하겠다고 말했다. 아니 말하지 않아도 이미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 대답을 듣고 그녀는 나를 보고 수줍게 웃었다. 밖에서 풀벌레들이 새록새록 울었는데, 아직도 그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 그 때의 수줍게 웃던 그녀와, 하얗던 그녀의 손가락과, 쌔근쌔근 자고 있었던 이 녀석이 생각난다.

 

매정하게 그녀를 뒤로하고 에도에 와서도 나는 그녀의 말이 자꾸 걸려서인지 나 역시 그의 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이 된 것도 다른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 이후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런 마음이 더 커진 것도 맞다.

 

 

 

 

같이 순찰을 하는 내내 계속 내가 묻는 말에 네,네 정도의 짧은 대답만 하는걸 보고 화난 걸 보여주려고 애쓴다는 걸 알았다. 속으로 얼마나 나에게 욕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까 싶어 일부러 모르는 척, 신경 안쓰는 척 했다. 옆에서 보는 이 새끼의 애써 참으려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순찰이 끝나고 휙 돌아서서가는 이 녀석을 불렀다.

 

“소고”

 

멈춰서 나를 돌아보는 표정에 화가 나 있는 척을 하지만, 나에겐 보였다. 약간 기대에 차 있는 눈빛이.

 

“이거 두고 갔어”

 

내가 스케쥴 표를 내밀자 이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게 사뭇 감정조절 못하는 애기 같아서 그의 머리에 손을 툭 얹으며 말했다.

 

“따라와 애써 연기하지 말고”

 

 

 

 

 

앞에 여전히 맘에 안드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며 앉아 있는 이 녀석이 정말이지 애 같았다. 나는 이 녀석에게 이유를 물었다. 사실 이유 같은 건 듣지 않아도 줄 생각이었지만, 그냥 내가 궁금했다. 그는 둔영이 시끄럽다고 했다. 자신도 여기가 아닌 돌아갈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너무 매정하게 느껴졌다. 이 녀석에게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 녀석의 이런 모습조차 알고 있지 못했다는 데에 미안했다. 여전히 이런 걸 왜 묻냐는 듯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입술이 작게 오물오물 거리는게 귀여웠다. 조금 더 가까이 있었다면 머리를 잔뜩 헝클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그를 약올리는 것을 마치고, 열쇠를 툭 던져주면서 쓰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녀석의 동그란 눈이 점점 커지면서 이내 내가 좋아하는 그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조용히 있고 싶다고 하며 원한 공간이니, 내가 절대 가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와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좋았다.

 

대충 그 공간을 미리 치워두긴 했지만 혹시나 긴토키와 나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조심스러워 그 녀석과 함께 그 공간으로 갔다. 다행히 긴토키의 남아있는 흔적은 없었고 그 녀석이 들어가서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따라온 나에게 왜 따라 왔냐고 묻는데, 할 말이 딱히 없어서 혹여나 이 공간에서 허튼 짓을 한다면 죽여 버리겠다고 말했다.

 

 

 

 

 

 

 

 

 

 

-

긴토키가 나에게 집 팔은 돈으로 맛있는 걸 사달라며, 사람들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밖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살갑게 하지 않고 숨길 필요 없이 그냥 친구 같은 사이로 만날 수도 있지 않냐며 말했다. 그러면서, 혹시나 누굴 만나겠냐? 라고 말하며 웃었다. 마냥 긍정적인 그의 태도가 나와는 달라서 어떻게 이렇게 속 편한 생각만 하고 살까 하면서도 부러웠다.

 

무얼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집 팔아서 돈도 많겠다, 회 정도는 사달라고 말하고는 비싼 횟집으로 날 데리고 갔다. 빨리 오라며 잡아 끄는 이 녀석의 손길이 괜시리 사람들이 볼까봐 두려우면서도 닿은 감촉이, 그 체온이 적당히 미지근해서 좋고, 그의 손아귀가 적당히 거칠고, 날 끌어당기는 힘도 딱 알맞게 좋았다.

 

나 많이 먹을 거다? 그가 말하고는 메뉴판을 보는 그 녀석의 들뜬 모습이 그 나이로 보이지 않아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그냥 웃겨서”

 

“오랜만이니까 다 시킬거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 녀석은 생각보다 그렇게 억지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몇 일 굶은 듯이 먹길래 내가 누가 뺏어먹지 않는다며 천천히 먹으라고 국물을 내밀었더니 국물을 마시면 이것들을 다 먹지 못한다며 방해하지 말란다. 참나.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는 파르페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가자고 하는 카페는 가장 중앙에 유치해 있어서 유동인구도 많은 곳이라서 내가 조금 꺼려하자, 뭐 어떠냐며 오늘 우리는 어느 사람들과 같이 친구사이로 먹으러 온 거라며 다시 강조했다.

 

“너, 니 아들새끼랑 둘이 이런데 올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가면 되잖아. 니가 괜히 찔려서 더 그러는 거야 새끼야”

 

그러네.

 

카페에 들어가서 마주보고 앉아 있으니 갑자기 전에 소고녀석이 우리 둘을 수갑으로 묶어 놨을 때가 생각났다.(그때도 우린 연인사이였다.) 당황했지만 조금은 좋으면서도 웃겨서 티격대고 있을 때 무전으로 이 녀석이 “히지카타씨 뭐하세요, 싹싹 비셔야죠”라고 하는 바람에 우린 티격대고 있던 우리의 대화를 어느 때보다 감사히 여겼고, 어느 때와 같이 원수 같은 사이를 연기해야 했다. 같이 있어서 즐거웠지만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소고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어디선가 지켜보며 무전을 해댔고, 묶어놓는 것도 진심으로 뭐같이 묶어놔서 행동 하나하나가 불편했다. 심지어 양이지사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까지.. 아주 파란만장했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에 더 생생히 남아 있긴하다.

 

이 녀석이 원하는대로 그 카페에 가서 초콜렛 파르페와 커피를 주문하고 마주보고 둘러보니 사람들 모두 별 생각 없이 우리를 바라보는데 내가 괜시리 너무 예민하게 굴고 있었다. 긴토키는 제 요즘 일상을 잔뜩 늘어놓았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 너무 커서 키우기가 힘들다고 하고, 카구라 이야기를 하면서는 여자애라 그런지 요즘 부쩍 예민해서 샴푸가 별로다, 치약이 별로다 하면서 불만이 많다며 힘들다고 했다. 아무래도 여자애는 너무 바라는 것과 까다로운 면이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넌 아들이라 좋겠다야”

 

그가 나를 보곤 비웃듯이 말했다. 닥쳐라 좀...

그러더니 밖을 보더니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양반은 못되시나보네, 저기 니 아들이다야.”

 

긴토키는 웃으면서 그 녀석에게 손을 흔들곤, 들어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나는 또다시 괜시리 바짝 긴장하면서 속으로 아냐, 우린 지금 그냥 우연히 만난 친구야, 우연히 만난 친구야, 라고 속으로 계속 되뇌였다.

 

“자자, 앉아”

 

이 녀석이 들어오자 긴토키가 웃으면서 제 옆자리를 툭툭쳤다. 그 녀석은 별 말없이 그의 옆에 앉았고, 우리 둘을 보더니 말했다.

 

“둘이 사이 안 좋다 안 좋다 하더니 둘이 왜 카페에 다정히 앉아 계시는 겁니까?”

 

“다정하게 있긴, 우연히 만났어”


긴토키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괜시리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몇마디를 하면 들킬 것 같은 느낌에 그냥 잠자코 있었다.

 

“우연히도 참 자주 만나시네”

 

이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비꼬는 말투로 말했는데 나는 그 점이 또한 불안했다.

 

“형씨. 요즘 쟤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아- 연애라도 하나 싶어서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어떤 년인지는 몰라도 진짜 잘 숨더라고요. 기가 막히게”

 

투덜투덜 말하는 그의 말투. 그리고 이 녀석이 말하는 그 ‘어떤 년’의 정체인 긴토키는 곁눈질로 나를 한번 쓱 쳐다보더니 곧 그 녀석에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둘이 한참을 주위에 있는 여자와 한번씩 엮으면서 낄낄대며 웃었는데 나는 그런 긴토키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도데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농담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일지 한편으론 궁금하면서도 둘이 참 죽이 잘 맞긴 하네. 하고 생각했다.

 

뭐, 대화내용이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둘이 친하다는 점은 나에게 있어 다행이었다. 지금은. 나중에 이 녀석이 우리의 관계를 알고 나서야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알더라도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이렇게 실없는 소리도 같이 해주는 이런 사이 이길 바란다.

 

 

“근데 요즘 왜 집에 잘 없어요? 이상하게 내가 갈 때마다 없어”

 

“아- 바빠서, 아하하”

 

“그럼 오늘은 나랑 게임하러가요”

 

“야, 너 일안해?”

 

내가 두 녀석의 대화에 끼었다.

 

“일 많이 했는데 뭐, 히지카타, 넌 오지마 나 형씨랑 놀 거야”

 

이 녀석이 나에게 말하면서 긴토키를 쳐다보았고,

 

“음.. 그.. 그럴까?”

 

이 녀석도 그를 쳐다보곤 말했다.

 

“넌 오지마, 나 오키타군이랑 놀 거야”

 

긴토키도 이 녀석을 따라하면서 장난스레 말했다.

 

 

소고 녀석이 이끌어서 긴토키는 힐끔 나를 쳐다보곤 끌려 나갔고, 나는 혼자 덩그러니 카페에 남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둘이 친한게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것은 분명한데, 지금은 바로 다른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소고녀석에게 끌려간 긴토키의 행동에 질투를 느낀다면 이해가 될 거다. 왜 나에게 오지 않고 그 녀석에게 끌려가? 라고 생각 하는 건 나의 연인에게 느끼는, 어떻게 보면 당연 할 수도 있는 일인데, 나는 그게 아니라 긴토키를 끌고 간 소고 녀석의 행동에 질투 비스므레 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녀석은 항상 나와 긴토키가 함께 있을 때면 내가 아닌 긴토키를 선택했다. 나를 괴롭히는게 좋아서 그러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를 놔두고 긴토키를 끌고 갈 때면, 아무리 내가 이 녀석에게 바라는 것 없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 없이 잘해준다고 하더라도 그의 이런 행동이 못내 서운했다. 나도 그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인지라, 10을 주면 그래도 1정도는 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담배나 필겸, 이쯤이면 돌아오겠다 싶어서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마침 돌아오는 이 녀석이 보였다.

 

“우와, 기다린 겁니까 히지카타씨?”

 

나를 보고 장난스레 말하면서 내 앞에 서서히 걸어왔다. 나는 그 순간은 약간 그에게 화가 나있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기다렸겠냐, 이 자식아, 잠깐 바람쐬러 나왔어”

 

“아~ 그러시구나, 바람 잘 쐬고 들어오세요”

 

뭐가 웃긴지 웃으면서 들어가려는 그의 팔을 잡았다. 그가 그런 나에게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쳐다보았다.

 

“재밌었냐?”

 

“응 재밌었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덤덤하게 대답하는 이 녀석의 표정을 보자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 녀석을 잡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잡았던 팔을 놓았다.

 

“아.. 아니.. 아. 아니다”

 

피던 담배를 툭 던지고 앞질러서 가는데 이 녀석이 뒤에서 우두커니 서서 나를 쳐다보는게 느껴져서 괜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멍하니 서 있어? 안 들어올 거야?”

 

내 말에 그가 내 뒤로 후다닥 뛰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말하는 걸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어도, 나는 계속 어떻게든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야.”

 

“뭐”

 

“나는 가끔 니가 어이없다.”

 

“나? 내가 뭘”

 

“해결사 녀석보다 내가 훨씬 잘해주잖아?”

 

“...”

 

“근데 왜.. 아. 아니다, 아니야. 내가 무슨 소릴 하고 있냐 지금”


“응?”

 

“아무것도 아니라고 새끼야, 가서 자!”

 

말을 하다 보니 뭔가 분위기나 말투가 이상해졌다. 남자와 여자였으면 이런 상황에서 완전히 오해해 버렸을지도. 하지만 설마 이 녀석이 남자인데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온 나를 오해 할 일은 없을 것이고, 괜시리 어색하고 어떻게 말해도 쫌팽이 같아 보일 것 같아서 말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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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06

2015. 8. 18. 22:14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ㅠㅠ.. 수가 2명 있을 경우는 삼각 컾링 표기가 너무 애매하고 어렵다니까요 ㅠ_ㅠ

네이버에 검색해도 나와있지 않습니다........................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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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바의 장례식을 하는 날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도 못했고, 제대로 한마디 못해본 체로 그녀를 보냈다는 죄책감에 나는 그녀의 장례식에 가면서도 약간은 가도 되는건가..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용서라도 빌으려면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어떻게 이렇게 이성적인 생각을 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장례식에서 본 소고의 모습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원래 장례식에서 상을 당한 사람의 가족들이 생각보다 덤덤한건, 실감나지 않아서 라던데, 이 녀석도 그런것 같아서, 보는 내내 걱정이 되었다. 미츠바를 사랑했던 나도 가슴이 아팠던건 사실이지만 그녀를 버리고 갔던 내가 아파야 하는건 당연스러운 일이고, 짊어져야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릴적에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하나 핏줄인 누나마자 잃은 이 녀석이 너무 가엾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분명히 또 지랄지랄 할거다.


그때 해결사 녀석도 왔다. 장례식장 안에서는 서로 가벼운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장례식이 끝나고, 다른 대원들이 다 돌아갔을때, 나는 소고녀석을 제일 먼저 찾았다. 아직 안에 있나, 해서 들어갔는데 이제야 실감이 나는지 병원 안에서 넋을 빼고 힘 없이 앉아있는 녀석을 보고 평소의 이 녀석의 모습이 아니라 더욱 가슴이 쓰라리게 아팠다. 이 녀석의 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그래서 더 아팠다.

 

나는 옆에 앉아서 한참 침묵을 지켜주다가 이 녀석이 너무 안쓰럽고, 가엾고, 안타까워서 그대로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무슨 짓이냐고 화라도 냈어야 할 이 녀석이 힘없이 내 가슴팍에 안기는 것도 참을 수 없게 아팠다. 나는 그대로 이 녀석을  끌어안고 말했다.

 

“내가.. 내가 너의 가족 역할까지 다 도맡아줄게. 내가..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그때서야 실감이 났는지, 아니면 참고 있었던게 터졌는지 모르겠지만 내 품에서 소리내어서 우는 이 녀석이 한 없이 약한 이 녀석 나이의 꼬마로 보였다. 어쩌면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 같은게 아니라 이렇게 부모님 품에서 응석 부리면서 살아도 될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더불어, 나에게 묘한 책임감이 돌았다. 미츠바가 나에게 남기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그녀를 대신해서 이 녀석을 챙겨줘야 겠다는 마음.


울다 지쳐서인지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그를 방에다 데려다 주고, 눕혀주고, 눈을 스르르 감는 것까지 본 후에 나는 그의 옆에서 한참 그를 바라보았다. 아팠다. 그리고 눈 가에 있는 눈물자국을 살짝 훔쳐주었다.

 

 


둔영안은 너무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마음놓고 사람들 앞에서 울 수 있는 입장도 위치도 아니여서 장례식장에선 오히려 울지 않았지만, 그녀가 마지막에 숨을 거두었던 병원의 옥상에서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 그 해결사 녀석이 뒤에 있었다.

 

 

 

이 슬픔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고, 그대로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술이나 한잔 할까 하고 작은 포차에서 술을 마시려 들어갔는데 그 안에 하얀 머리가 특이한 해결사 녀석이 이미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항상 티격태격하는 이 녀석과 오늘은 싸울 의지도, 기운도 없어서 그냥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랬더니 해결사 녀석이 날 힐끔 보더니 잔을 내밀었다.

 

"자"

 

"..뭐야"

 

"그냥, 내가 한 잔 사는거니까 마셔"

 

맨날 엉뚱한 짓만 할 것 같았던 그가 내미는 술잔이 고마우면서도 어색해서 망설이다가 받아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아무말도 안했다. 나도, 그 녀석도 그냥 술만 연거푸 마셨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 녀석에게 약간의 관심을 가졌던것은 이때부터 였던 것 같다.

 

 

 

 

 

 

 

 

 


-

"오오구시군. 나 너를 좋아하나봐"

 

그가 나를 불러놓고 할말이 있다며 다짜고짜 말했다. 근래 들어서 제일 깜짝 놀란 말이었다.

 

"그.. 그게... 너도 나한테 마음 있는거 아냐?"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쑥스럽다는 듯이 약간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원채 그가 장난을 많이 치는 녀석이라서, 대답을 뭐라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이 녀석이 다시 한마디 했다.

 

"장난아니야, 그리고 나랑 사귀면 니 날라리 아들녀석도 내가 잘 잡아줄게"

 

"아들..?"

 

"응, 맨날 너랑 붙어다니는 그 꼬맹이. 니 아들이잖아"

 

"아들 같은 소리.."

 

"오케이 하는거지? 그럼 나랑 사귀는거야?"

 

장난스러우면서도 밝아지는 그의 개구진 표정이 좋았고, 따뜻했다. 나는 이 녀석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그냥 고개를 조심스레 끄덕였고,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때 말을 할때 엄청 고민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내 마음을 말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했더니 남자새끼가 찌질하다며 욕을 해댔다.

 

 

 

 


그래... 뭐, 다 좋았는데.. 문제는 소고녀석이었다. 분명히 알게 된다면 비웃으면서 둔영 여기저기에

 

'얘들아 히지카타가 남자랑 사귄댄다! 그 상대가 누군지 알아? 전에 우리 가끔 도와주는 그 해결사 형씨 알지? 그 사람이래 미친거 아니냐?'

 

보지않아도 뻔했다. 분명 관심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말하고 다니면서 내가 당황하고 괴로워하는걸 즐기고 있겠지. 특히 이 녀석이 죽도록 싫어하는 나인데, 분명 기회다! 하곤 신나서 날아다닐거다. 고민하다가 긴토키에게 말했다.

 

"저..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 다 좋은데 나는.. 음.. 뭐랄까.. 공개적 일수는 없어. 너의 생각은 어쩔지 모르지만.. 나 일단은 신센구미의 부장이라는 직책도 그렇고.. 특히 소고 녀석한테 들키면 진짜로 끝이야! 너도 그 녀석을 알잖아, 그래서... 음... 좀...."

 

"비밀로 하자고?"

 

나는 그의 말에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다. 완전 스릴 넘치고 좋은데?"

 

예상외로 그는 굉장히 재밌어했다. 그리곤 덧붙여서 자신도 카구라와 신파치에게 절대로 들키면 안된다며 혼자 유난떨지 말라고 소리쳤다. 관계가 이렇게 된다 한들, 그와 나의 사이

가 크게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우린 티격태격 많이 싸웠고, 그래도 바뀐 부분이라면 조금의 배려가 늘었다는 점과 전처럼 서로 눈치보면서, 마음 들킬까 걱정할 필요 없이 서로를 챙겨줄 수 있다는 점 정도였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데엔 이유를 꼽을수 없다지만, 내가 이 녀석을 좋아하게 된 수많은 이유중 한가지는 지친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상대라는 점이었다. 곤도씨, 소고, 대원들 모두를 짊어지는 나에게 휴식을 주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나를 신센구미 부장이 아닌, 그냥 히지카타 토시로로써 존재하게 해주는 대상이었다.


긴토키에게 둔영에서의 일 이야기를 가끔 했었는데, 말 없이 잠자코 들어주는 것을 보고,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자꾸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자 그 녀석은 퉁명스럽게 이제 알았냐? 다시는 하지마. 라고 말하고 나서도 오늘은 뭐했어? 라던가, 소고녀석이 사고쳐서 신문에 나온걸 보고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오- 이번 사진 되게 잘나왔는데?"

 

 


나와 그는 소고나, 그가 데리고 있는 카구라와 신파치 이야기도 곧 잘했다. 사실 이 녀석과 하는 이야기중 50~60퍼센트가 그들 이야기 였을 것이다. 사실 나는 카구라와 신파치와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지만 긴토키는 소고와도 친했었어서 이 녀석 이야기를 좀 더 많이 했는데, 하루는 그가 말했다.

 

"히지카타, 그 녀석은 너 같은 놈의 승질로 다스릴수가 없어요 이 사람아, 나 같은 사람이 더 잘 다룬다고"

 

내가 어이없이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녀석 내말은 되게 잘들어"

 

그러고보니, 미츠바에게 소개시키기도 했었지, 참.

 

"왜, 그 녀석 제 누나에게도 나 소개시켰잖아"

 

순간 생각을 들킨 것 같아서 놀랐다. 그리고 괜히 이 녀석이 미츠바 이야기를 꺼내니까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별 말없이 담배를 물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맞아. 그 녀석 누나 예뻤는데"

 

"응.. 뭐, 예쁘지"

 

"아직도, 못 잊었어?"

 

그가 나에게 여전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자 그가 바로 웃으면서, 뭐야? 왜 당황하냐? 하면서 크게 웃었다.

 

첫사랑 이야기를 숨겨도 모자랄 판에 서로가 알고 있기까지한 그런 이상한 상황.. 그냥 기분이 좀.. 이상했다.

 

 

 

 

 

 

 

 

 


-
긴토키는 나에게 맨날 소고를 아들녀석 혹은 아들새끼 라고 말했는데, 처음엔 그런 말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말라고 화를 내다가 지금은 그 말에 별 다른 소리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행동에 가끔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녀석을 굉장히 잘 알고 있었다. 뭐, 오랜 세월을 같이 보냈으니 내가 아는 만큼 그 녀석 역시 나를 잘 알고 있을테지만. 그래서 더 조심했다. 자동으로 긴토키와 나는 그 녀석 앞에선 으르렁 대면서 싸웠는데, 연기... 라기보다는 정말로 우린 가끔 그렇게 싸웠으니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다.


"히지카타씨, 조금 이상해요"

 

이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눈치 챘나? 나는 당황한 것을 감추려 탐정놀이 하지말라고 말하고는 뒤돌아갔다. 내가 알고 이 녀석이라면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에서, 특히 그 목표대상이 나라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으니까 나는 긴토키에게 바로 연락을 취해선 말했다. 단분간 우연을 가장해 만나자고. 남들이 보면 그렇게까지 해야하냐고 어이없어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소고녀석에게 만큼은 죽어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소문이 퍼져서 ? 정말 그것 뿐인지는 모르겠다.

 


그녀석이 나를 위심하는 눈으로 볼 때부터 습관이 하나 생겼다. 긴토키와 문자나, 연락을 하면 그 즉시 문자와 받은 연락 기록을 삭제하는것.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긴토키가 재밌어 하다가 한마디했다.

 

"우와 그렇게까지 해야되냐? 완전 본처 몰래 바람피는 남자같네 아주, 그 녀석 그렇게까지 안봤는데, 폰 검사도 하냐?"

 

"하겠냐, 그냥 혹시 몰라서, 그 새끼는 가끔 내가 생각치도 못한 행동을 한단말이야"

 

전에 쏘우 영화 보고나서 지구본인지 지구조였는지 모를 그 새끼와 짜고서 한 장난은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이다. 나 하나 골탕먹이려고 자기 자신까지 4일 무렵을 굶어가면서, 그렇게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열받는 건 그 때 그 새끼는 내가 자신을 절대로 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는게 더 열받는 일이다. 그때 돌아와서 그 자리에서 그 새끼를 죽이지 못한게 한이 된다며 한참을 열받아 했던게 생각난다. 그때 그 녀석은 내 앞에 와선 '아무도 죽게 하지 않겠어! 너도, 신센구미도!' 라고 내 목소리를 따라하면서 한참을 놀려댔는데, 다음에 그런 장난을 다시 한다면 기필코 죽여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열받아하는 내 행동이 재밌었던지 한참을 즐겁게 웃어댔다.

 


그때 그 녀석에게 메세지가 왔다.

 

[야끼소바빵]

 

내가 그걸 보고 핸드폰을 닫자 긴토키가 옆에서 쓰윽 다가와서 같이 보았다.

 

"뭐야?"

 

"소고녀석이 올때 사오라고"

 

"너는 겉보기엔 전혀 이런 말에 응해줄 것 같지 않은데 생각보다 고분고분하단 말이야 신기해"

 

음..? 그런가.? 이 녀석이 말을 이었다.

 

"너 오키타군 존나 좋아하는구나?"

 

"좋아하긴, 골치덩어리새끼. 내 인생에 도움이 하나도 안되는 새끼야 이새끼는"

 

"히지카타, 니가 자꾸 이 녀석을 받아주니까 이 녀석이 더 이러는거야"

 

"받아주긴 뭘? 나 이녀석한테 맨날 화내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이녀석아"


그 말을 하고 긴토키는 그냥 웃었다. 그가 무슨말을 하는지,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수 없었다. 뭐,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고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소고 녀석에게 행하는 나의 행동이 이런 것이 무의식중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앞에서 초코 파르페를 한 숟갈 떠 먹더니 말했다.

 

"오늘 밤에 그 곳으로 와"

 

긴토키가 씨익 웃으면서 내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몽유병 환자 마냥 밤에 그 녀석을 만나러 갔다. 그가 말하는 '그 곳' 은 내가 전에 징계 받을 때 썼던 집이었다. 원래 잘 가진 않았지만 이 녀석과 몰래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곳은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저녁에 몰래 나와서 가면 그 녀석은 먼저와서 문을 열어주었는데, 장난을 친답시고 '어이,그래서 당신 마누라는 이혼 안해준데? 그럼 다시는 나 만나러 오지마, 나 가지고 지금 장난치는거야 뭐야 이 자식아' 라면서 장난을 쳤다. 그리고 자긴 이런 상황이 아침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막장드라마 같아서 너무 재밌다고 했다. 재밌냐, 난 피곤해서 돌아버리겠다.

 

내가 침대에 걸터앉자,그가 다가와서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이 녀석은 항상 관계의 시작 전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버릇이 있었다. 이 녀석과 함께하는 모든것이 좋지만 나는 이것이 가장 좋았다. 그 입맞춤을 할때면 순수한 어릴때로 돌아간 것 같다는 착각이 일었다. 둔영에 대한 책임이고 뭐고, 내 위치가 뭐든간에 다 내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가지 아쉬운건 이 녀석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얼마전에 집에 돌아갔더니 카구라가 깨서 새벽에 어디갔다 오냐고 물어보는거야, 나 진심으로 소름끼쳤어.... 아 맞다, 어제 오키타군 우리집 왔었는데"

 

그 녀석이 내 무릎을 베고 누워선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어제? 이 새끼 또 땡땡이 쳤구나"

 

"니네 진짜 세금도둑 아녀?"

 

"난 빼고 얘기할래? 난 머리터지게 일하고 있거든?"

 

"원래 아래가 잘못하면 윗대가리가 욕먹는거지 뭐"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여기도 좋지만, 밖에서 좀 평범하게 만나고 싶어"

 

"... 그러게"

 

어떻게 생각하면 예상도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긴 한데, 우리 둘 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것도 사실이었다. 그 만큼 우린, 아니 내가 조금 더 이 사실이 밝혀지는걸 두려워 했다.


"아. 나 갑자기 좋은 생각났어"

 

그가 몸을 일으키고는 말했다.

 

"니 아들녀석 우리집와서 나 아니여도 카구라랑도 잘 놀더라고, 그럼 그때 내가 나올게, 그럼 우리 방해꾼들은 하나로 집에 묶어 놓을수 있잖아. 맨날 가는 우지 긴토키 스페셜 덮밥도

좋지만 나도 너한테 비싼것 좀 얻어먹을래 니 아들녀석처럼"

 

아들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이 녀석은 쓸데없는 곳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다. 이번엔 꽤나 그럴듯 했고, 소고녀석이 그 근처에 순찰을 가면 이 녀석의 집에 찾아간다는 건 내가 알고 있고, 소고의 순찰 스케쥴이야 내가 항상 알고 있으니 그리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계획은 아주 그럴듯해도 생각못한 변수가 뒤통수를 치듯이, 우리의 이런 사소한 계획도 생각못한 일이 많았다. 긴토키가 나오다가 소고녀석에게 잡힌다거나, 갑자기 카구라가 나들이를 가자고 해서 아예 다같이 외출을 해버린다던가, 소고녀석과 카구라가 집에서 너무 심하게 싸워서 집이 망가졌다거나 이런 일들이 생기면 나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이 녀석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연락을 하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까 연락을 하긴 해도 제대로 못했다. 이럴때 순간 왜 우린 이런 사이가 되기 전에 서로 으르렁 대며 서로를 싫어하기 바빴는지 후회되었다. 조금 더 살갑게 지냈으면 연락정도는 편하게 했을수도 있었을텐데.


그 날도 잡혔는지 오지도 않고, 혹시나 해서 전화를 했는데 소고 녀석이 받아들곤, '어, 히지카타씨가 왠일로 형씨한테 전화를 다 합니까?' 하고 묻길래 잘못  걸었다며 끊었다. 아. 땡땡이 치는거냐며 화를 냈어야 했는데 다른 점을 너무 의식하느라 그 점에 대해선 말도 못했다. 여튼 연락도 안되는 상황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처음에 이 녀석을 다른 요인 때문에 기다렸을땐 그래도 밖에서 만나는게 어디야, 라는 생각에 크게 불만이 느껴지진 않았는데, 이것도 한두번이지. 자꾸 반복되다보니까 여간 힘든게 아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고, 못올지도 모르는 상태로 우두커니 기다리는게 한심하기도하고..  한 두시간 지났나. 이 녀석이 그제야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화가 치밀어서 나도 모르게 욱해선 말했다.

 

 

"이제오냐? 나 이제 들어가야 되니까 다음에 봐"

 

"... 뭐야. 화난거?"

 

내 퉁명스러운 말을 듣고 그가 말했다.

 

"미안 카구라가 자꾸 산책가자고 졸라대서 말이야. 바쁘다는데도 작정하고  붙잡아서 어쩔수가 없었어, 그니까..."

 

"그래서?"

 

순간 나도 모르게 약간은 큰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른한 표정 가운데에 약간의 놀란 기색이 보이는 그 녀석을 보고 다시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아...,"

 

내가 지금 화가 났다기 보다는 지금 짜증스러운 내 감정의 분출이었는데 그 이유도 뭐 다른 것도 없이 그냥 기다림의 연속에서 오는 투정이었다. 내가 이런 투정을 부리는 사람도 이 녀석 하나 뿐이었는데, 가끔 그는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은 내가 자신에게는 그런다는걸 조금은 서운해 하는것 같았지만, 원래 우린 그런사이였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내가 화를 낸 이유가 말하기엔 어이없는 말이라서 적당히 다른 말로 둘러댔다. 그런 내 속 마음을 알았는지, 긴토키가 나를 약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말했다.

 

"너는 ....나 만나러 올때, 그 녀석이 가지 말라고 하면, 넌 나에게 안올거잖아."

 

 

그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긴토키도 나에게 약간은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 이 녀석의 말엔 전혀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말에 무어라고 답을 하지 못하자, 그가 그런 나를 보곤 한마디 더 했다.

 

"봐, 넌 빈말로라도 아니라고 대답도 못하는 등신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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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05

2015. 8. 18. 22:10

 

 

 

 

 

 

 

 

-

다음날 나는 정말이지 최악중의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아침부터 히지카타는 나를 깨우곤 도데체 몇시에 들어왔냐, 부터 시작해서 핸드폰은 왜 안 받냐, 핸드폰은 부서졌다고 대답하니까 도데체 뭘 하고 다니면 핸드폰을 부숴 먹냐며 이해가 안 간다며 화를 냈다. 그리고 제복을 입었을 때 겉옷이 없다고 말하자 겉옷은 또 어디에 팔아 먹었냐며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나 어제 일 열심히 했는데”

 

한참 잔소리를 듣다가 내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뭐래?”

 

“진짜야. 그니까 다른 일은 좀 넘어가면 안됩니까?”

 

“조용히 해 너, 잘한 거 하나도 없어. 근처라고 바로 온다고 해놓곤 연락도 끊기고 말이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무슨 일이라니?”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내가 기집애도 아니고, 뭘 또 찾아다니기까지.

 

“왜요? 어디가서 죽기라도 했을까봐?”

 

“그래 이 새끼야”

 

“내가 당신 죽이기 전에 죽을 것 같습니까?”

 

내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하자 히지카타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러게, 나도 깜빡했다 이 자식아”

 

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삐졌나보네 저 새끼. 나는 그런 그의 태도가 매번 너무 재밌었다. 쫓아가서 그러게 내가 같이 가자고 했잖아- 하고 말하자 조용히 하라며 투덜 투덜거리는 이 녀석이 너무 웃겨서 계속 따라가면서 놀려댔다.

 

 

그 날은 순찰이 오후여서 집무실에서 피곤함에 찌들어 낮잠을 자는데 원래는 조용해야 할 둔영이 갑자기 급 시끄러워지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이 사디스트! 어딨냐 해!”

 

...?뭐야 이 목소리 설마...? 내가 안대를 벗고 밖을 쳐다보자마자 놀랐다. 그 꼬맹이가 난리를 치고 있고, 몇몇 대원들이 그 꼬맹이를 말리고 있었다. 둔영 안에 들어오는 거야 뭐, 형씨와 함께 종종 우리 일을 도와줬으니까 얼굴도 알고 하니 그냥 통과 시켜준 모양이긴 한데 도데체 여기서 무얼 하는지.

 

“저.. 저기요.. 진정하시고 혹시 오키타 대장을 찾으시는 겁니까?”

 

“그 새끼 말고 사디스트가 또 어딨어? 빨리 끌고 오라 해!”

 

옷차림이나 상태를 보아하니 집에는 갔다 온 모양인데 나한테 무슨 볼 일이 더 남았는지. 저 꼬맹이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둔영의 대원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 꼬맹이 앞에 나갔다.

 

“뭐야. 너 여기서 뭐해?”

 

“이 자식!”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내 멱살을 잡아 쥐는데 이런 일은 익숙해서 화가 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 자식아! 어떻게 아침에 그냥 갈 수가 있냐 해!”

 

“뭐라는거야? 니가 잠들 때 까지 있어 달라고 했잖아?”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같이 있던 사람이 없는 게 얼마나 서로운 줄 아냐 해?”

 

“그런 걸 내가 왜 알아야 되는데?”

 

“이 나쁜 자식아!”

 

그녀는 나에게 평소와 같이 때리려 들고 나도 평소처럼 피하곤 했는데 문득 주위의 이상함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니 전에 그녀를 말리던 대원들과 둔영에 있던 다른 모든 대원들이 나와 이 꼬맹이를 완전 놀란 표정으로 지켜 보는거다.

 

“대.. 대장..? 해결사 형씨네 꼬마랑 그런 ... 사이..? 였습니까..?”

 

옆에서 야마자키가 완전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고 모든 대원들이 어쩐지... 맨날 티격태격하는 것부터 알아봤다며 수근거렸다. 나는 이 들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몰라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대원들을 쳐다봤고, 내 멱살을 잡고 있던 그 꼬맹이도 약간은 당황했는지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는 곧 우리의 대화 내용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말했다.

 

“미친, 그런 거 아니야”

 

이미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대원들은 하나 둘 씩 자리를 떴다. 아. 망했다. 이건 소문을 좋아하는 대원들의 입장에선 사실이건 아니건 신나게 다 얘기하고 다닐거고, (사실 나도 이런 걸 하나 물면 앞장서서 퍼트리는 사람 중 한명이긴 하다.) 다 괜찮다 치더라도 혹여나 히지카타의 귀에 들어갈까봐, 그리고 그 녀석이 믿을까봐 조금은 조마조마 했다.

 

내가 후다닥 그 꼬맹이를 붙잡고 둔영 밖으로 끌고 나오자 차이나는 조금은 머쓱해 하면서 말했다.

 

“... 근데 나 진짜 좀 무섭기도 하고 좀 허전하기도 하고.. 그래서 좀 슬펐다 해”

 

“다 알겠으니까 얼른 가”

 

“아.. 그리고 니 녀석 옷... 우리 집에 있는데..”

 

“돌려줄 필요 없어. 버리던지 가지던지 맘 대로해”

 

나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나의 그런 말의 의도를 잘못 알았는지 이 꼬맹이는 환히 웃으면서 정말 그래도 되냐며 물었다. 좋아할 일인가? 설마 그거 입고 다니려고?

 

 

 

 

 

 

 

 

 


 


-

그날 저녁에 히지카타는 술을 먹고 왔다. 소문을 들었나? 나에겐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별 말도 안했다. 사실 오늘 아침에 마주친 거 외에 저녁엔 잠깐 마주친 게 다였으니 물어볼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오히려 이 새끼가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나도 그냥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차라리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이 새끼가 물어보지도 않으니까 왠지 내가 초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 태도에 나도 느꼈다. 아.. 나 역시 이 녀석에게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그래도, 그래도! 소문을 들어서 혹시나 믿을까봐 나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주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그 녀석에게 가서 이야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참 혼자 고민하다가, 서성이다가 그 녀석 방으로 찾아갔다.

 

“야. 자냐?”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는데 이 녀석은 이미 자고 있었다. 술을 꽤나 마셨는지 내가 온 지도 모르고 곤히 자고 있었다. 혹시.. 나 때문에 술 마신건가? 그렇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역시 계속 내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나는 자고 있는 그 녀석 옆에 바짝 다가가서 그냥 빤히 지켜보았다. 새삼스레 잘생기긴 잘생겼다. 한 때는 이 새끼가 남자답게 생긴 걸 약간은 부러워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부러워한다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는 이 녀석이 싫은 것도 있고, 내 것을 빼앗아 간다는 약간의 열등감이 주를 이루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한참 그를 쳐다보다가 조심스레 그의 입술에 살짝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혹시나 깰까봐 무섭기도 하고 두근거려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는데 마치 다른 사람 눈을 피해 무언 갈 몰래 훔치는 것처럼 떨렸다.

 

살짝 닿은 입술이 좋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가벼운 입맞춤에 의해서 느껴지는 그 감정은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돌아가려고 일어서려는데 자고 있던 그가 내 뒷덜미를 잡아채서는 제 쪽으로 확 끌어 당겼다. 나는 중심을 잃고 그가 끌어당기는 쪽으로 넘어졌는데 그가 나를 뒤쪽에서 꼬옥 껴안아서 그의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따듯했다.

 

“... 어디가”

 

...깨어있었나..? 귀에 대고 작게 말하는 걸 듣고 그에게 입을 맞춘 것을 알고 있나 하는 생각에 당황함과 내 마음을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지금 내 꼴을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분명히 추하게 얼굴이 빨개져 있을 거야.

 

사실 뿌리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조금은 더 있고 싶어서 잠자코 있었다. 그때 이 녀석이 내 귓불을 살며시 깨물었다. 도톰한 입술의 형태와 온기가 한번에 느껴지는게 이상하기도하고 약간.. 좋... 좋기도 하지만 하지 말라는 식으로 확 처내려는 찰나, 내 유카타의 벌어진 틈으로 손을 쓰윽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내 맨살에 닿은 이 녀석의 손이 스르르 지나서 가슴에.. 아니 유두를 살짝 손가락 끝으로 지분대는데 순간 움찔하고 소름끼치게 놀라서 이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쳤다. 그게 아주 싫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단순히 놀랐다. 이 녀석이 이런 행동을 취할 줄은 전혀 예상 못했으니까. 내가 몸부림치자 그가 다시 나를 꽈악 껴안더니 귀에 대고 말했다.

 

“... 알았어. 장난이야. 나 내일 일찍 일어나야 돼”

 

나는 일찍 안 일어나냐 이 새끼야. 그 말을 한 이후 그는 잠들었는지 쌕쌕 숨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토할 것 같이 심장이 너무 뛰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한참을 뜬 눈으로 이 녀석에게 안겨 있다가 이 녀석이 날 안은 손이 느슨해졌을 때 무렵, 조심히 빠져나와서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고 방에 들어와서 나는 그제야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잠도 안 오고 속이 울렁 울렁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 때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 녀석의 마음을 확신했다.

 

 

 

 

 

 

나를 미치게 피곤하게 만드는 일 투성이라서 나는 지칠대로 지쳤다. 그 날도 한숨도 못잤고, 나를 깨우러 온 히지카타를 보고 아침부터 나는 죄라도 지은 마냥 그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이 새끼는 기억을 못하는 건지, 다 기억을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나와는 다르게 그냥 덤덤했는데 나는 그런 그 새끼를 보는 것 자체로 속이 바짝바짝 탔다. 그래서 인지 나는 더욱더 이 새끼의 관심을 갈구 했다. 나의 그런 마음을 이 녀석이 알고 있는지 내가 한 발짝 다가가면, 나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는 듯 했다. 이 새끼가 지금 나를 상대로 감히 밀땅 같은 걸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건방지다고 생각해서 괜히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지랄을 떨고, 괜시리 찾아가서 괴롭히는 등 평소보다 더 심하게 이 새끼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혔다. 그랬더니 이 새끼가 너 요즘 왜 이렇게 더 심해졌냐? 하고 한마디 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챙겨주고, 내가 무얼 사오라고 하거나, 무얼 해달라고 장난스레 명령하면 화내면서도 다 들어주었다.

 

아- 역시 아무리 감추려 해도 너에게 나는 첫 번째였다.

 

그리고 나는 나답지 않게 그 녀석을 이해하려했다. 둔영에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미 나에게 다른 사람 보다 큰 관심을 쏟아주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만 대놓고 관심을 쏟긴 힘들 수도 있겠다. 하고. 나는 그래서 나답지 않게 일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 그러자 히지카타가 왠일이냐며 칭찬을 해주고, 기분이 좋았는지 맛있는 것도 사준다고 했다. 근데 뭐.. 이건 내가 사달라고 해도 사주는 거라서 큰 의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나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게 기뻤다. 그런데, 이게 또 몇 번이 반복되자 또 그런 관심이 확 식어가는게 보여서 화가 났다. 그리고 그날은 오랜만에 사고를 쳤다. 당연히 히지카타에게 불려갔고, 그가 나를 앉혀 놓고 몇 일 좀 잠잠하더니 오늘은 왜 또 이러냐며 화를 냈다. 좋았다. 그리고 나는 이 녀석의 마음을 다시 알았다. 이 녀석도 나의 이런, 관심 받길 바라는 행동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구나. 그가 나에게 화를 낼 때, 내가 그 말을 들으면서 생글생글 웃자 그가 나를 멈칫 보더니 말했다.

 

“미쳤냐? 지금 너 혼나고 있는거야”

 

“응 알아요”

 

“근데 웃어?”

 

“웃으면 안돼?”

 

내 말에 히지카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난다.”

 

이 녀석은 벌써 화가 다 풀렸다. 역시 너는 나에게 꼼짝 못하는 사람이었다.

 

“잘못했어. 이제 안 그럴게.”

 

“말은..”

 

나를 보곤 휙 나가려고 하길래 나는 뒤쫓아 가면서 말했다.

 

“히지카타씨, 나 가고 싶은데 있어요”

 

“근데”

 

“같이가자”

 

“...어딘데?”

 

“있어. 오늘 가자, 밤에 가야된 단 말이야”

 

“오늘? 안돼 나 오늘은 좀..”

 

“싫어 난 오늘 가고 싶어”

 

사실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이 새끼도 오늘 밤엔 일도 없으면서 괜히 안 된데. 나는 이 녀석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싫고, 오늘 마음먹은 건 오늘 하고 싶은 나라서 고집을 부렸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고집을 꺾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이 녀석은 나에게 결국 져 준다는 것을. 결국 알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역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부슈였다. 그 곳에서 전에 어릴 때 누나랑 같이 야경을 봤던 곳이 있었는데 누나는 나에게 이렇게 예쁜 장소는 가장 소중한 사람과 보고 싶어진다고 말했었다. 어릴 때 나는 누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 와서는 그 말이 이해되었다. 그런 말이 있잖아. ‘혼자보기 아깝다.’ 그런 혼자 보기 아까운 장소에, 그 시간 같은 것을 본다는 것은 뭐라고 해야 하나.. 같은 기억을 함께 공유 한다는 것에 의한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부슈는 운전하고 가기에 꽤나 멀어서 기차를 타고 가자고 했고, 둘이 기차를 타는 건 처음이었다. 항상 곤도씨나, 다른 대원들이 항상 있었으니까.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갈 때 그가 나에게 물었다.

 

“곤도씨도 같이 가자고 하지 그랬어?”

 

떠보는 건가?

 

“곤도씨는 안경네 누나 쫓아다니고 있을 거 아냐”

 

“하긴, 뭐.”

 

서로 말 없이 창밖만 쳐다보고 있을 때 그가 다시 물었다.

 

“근데 갑자기 부슈는 왜?”

 

“가보면 알아”

 

내가 작게 킥킥 웃었다. 그러자 히지카타는 왜 자꾸 웃냐고 물으면서 내 머리를 큰 손으로 헝클어 놓았다. 늘상 있던 일인데 나는 새삼 그의 이런 행동 하나가 설레서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어디 가려는지 말도 안해주고, 어디야? 가고 싶다는 데가?”

 

전에 살던 쪽은 아닌지라 내가 이쪽이라며 기억을 더듬으면서 안내했다. 부슈 한 구석에는 판자촌 비스므레 한 것이 있었는데 사이사이로 비치는 가로등과 집안 등, 그리고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까지 한 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누나는 그때 나를 데리고 와서는 웃으며 말했다.

 

‘소중한 사람과 꼭 보고 싶었어. 소고 어때? 예쁘지?’

사실, 너무 어릴 때 봐서 그때 봤던 풍경이 어떤 광경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누나가 굉장히 좋아했다는 기억 밖엔.

 

너무 오랜만이라 어느쪽인지 햇갈려서 이정표 앞에서 잠깐 고민하고 있자 히지카타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이 쪽 아냐?”

 

아. 그랬던 것 같다. 와 봤나? 어느새 내가 이 녀석의 뒤를 따라가고 있어서 내가 의아한 듯 물었다.

 

“여기 알아?”

 

“아니, 그냥 이쪽일 것 같아서”

 

 

 

 

 

 

도착하니 세월 때문에 약간은 변했지만 그래도 여전했다. 맞아,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히지카타 어때? 좋지?”

 

내가 약간은 상기되어서 말했다.

 

“응. 근데 이거 보자고 오자고 한거야? 요즘 너 답지 않게 꽤나 감성적이다?”

 

“나이를 먹어서”

 

내가 장난스레 말했다.

 

 

갑자기 히지카타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잠깐 핸드폰을 주시하더니 받아 들었다. 간단하게 뭐 들을 것도 없는 간단한 통화를 하고 끊었다.

 

“누구?”

 

“곤도씨, 어디냐길래”

 

같이 오자고 할 걸 그랬나. 괜히 미안해지네

 

“여기 와 있다고 말 했어?”

 

“아니 안했어”

 

그가 짧게 대답했다. 나는 다행이다고 생각하곤 마저 눈 앞의 야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여기에 있으니까 기분이.. 뭐라고 해야하나, 마냥 신나지는 않았다. 누나랑 어렸을 때 왔던 곳이라 그런가. 그때 누나가 이걸 보고 돌아가는 길에 말했었다. ‘다음에는 밤에 오징어잡이 배를 보러 가자. 사람들 말로 집어등불빛이 정말 예쁘데’ 그러고 보니 결국은 보지 못했지만, 누나는 정말로 보고 싶어 했었다. 맨날 지도나, 책자를 놓고 찾곤 했는데, 그때 어디 지명을 이야기 했었는데,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만 돌아가자, 기차 끊기겠다.”

 

녀석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한참 눈 앞의 야경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말했다.

 

“히지카타, 다음에 오징어잡이배.. 보러갈래?”

 

한참 뜸을 들이다가 그가 대답했다.

 

“....그래, 가자”

 

 

 

 

 

 

돌아오는 기차에서 한참 자다가 비몽사몽이 돼서, 기차에서 비틀비틀 내렸다. 역시 갈 때는 좋은데 기차에서 자다 깨서 내리는 건 질색이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밤의 찬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둔영에 다다라서, 각자의 방에 들어가려 할 때, 히지카타가 방에 들어가려는 나의 한쪽 어깨를 잡고는 물었다.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

나는 그 순간 비몽사몽 했던 정신이 확 날아가곤 맨 정신으로 돌아왔다. 무슨 말을 하라는거야? 그리고 나는 곧 얼마 전에 이 녀석 방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그의 시선을 피하곤 말했다.

 

“어.. 없는데”

 

“....그래?”

 

“..응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아냐, 그럼 됐어. 자라”

 

.........이 새끼 지금 내가 말하길 기다리는 거야? 아닌가, 이 새끼도 지금 나 떠보는건가? 나는 너무 뻥져서 이 녀석이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말을.. 했어야 했나.. 아니, 야 이 새끼야 니가 말해야지. 왜 내가 말하길 기다려.

알잖아, 내 자존심에 이런 걸 먼저 말 할 사람으로 보여?

 

 

 

 

 

 

 

 

 

 

-

“가방.. 놓고 왔다 해”

 

또 다시 둔영에 찾아와서 하는 소리가 이거다.

 

“다 좋은데 둔영엔 작작와라?”

 

그 이후로 이 꼬맹이와 나의 대화 때문에 대원들의 오해를 사고 있었다.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걸 보고는 지나가던 대원들이 다 한번 씩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런 눈빛들이 신경쓰이다 못해 부담스러워서 나는 차이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가져다줄게. 그거 바로 필요한거야?”

 

“그건 아닌데..”

 

“그럼 담에 받아. 나도 거기 자주 가진 않아서”

 

“뭐.. 알겠다 해”

 

이 꼬맹이를 뒤로하고 다시 돌아가려는데 이 꼬맹이가 외쳤다.

 

“너.. 너! 왜 요즘 안오냐 해?”

 

...어딜 안오냐고 물어보는거야. 내가 뒤를 쳐다보자 차이나가 다시 외쳤다.

 

“왜 놀러 안오냐 해, 우리 사귀는거 아니냐 해?”

 

.....

 

“긴짱이 그러는데 같이 자면 사귀는 게 틀림없다고 했다 해”

 

“... 형씨한테 그렇게 말했어?”

 

아 혈압 올라. 이 꼬맹이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말했다.

 

“드라마 보는데 긴짱이 그랬다 해. 우리도 그런거 아니야?”

 

“어 아니야”

 

내가 정색하면서 말하자 차이나가 머리를 두어 번 긁적이더니,

 

“..음.. 이미 긴짱한테 사귀는 사이라고 말했다 해”

 

“너 나 좋아하냐?”

 

이 꼬맹이 말을 듣다 듣다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니가 날 좋아하는 거 아니냐 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짜증나게 하냐.

 

“너, 심심하구나 가서 잠이나 자라”

 

그 전엔 다른 일 때문에, 이 이후엔 이 꼬맹이가 자꾸 귀찮게 하길래 형씨의 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랬는데 이 꼬맹이는 허구한 날 둔영을 찾아오거나 순찰중인 나를 찾아내서 쫓아와서는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한번은 또 다시 가방을 핑계로 둔영에 찾아온 꼬맹이와 티격 태격 하고 있을 때 히지카타가 나와 꼬맹이를 곁눈질로 한번 쳐다보고는 말없이 지나갔다. 나는 그런 그가 여전히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소리 없이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꼬맹이에게 다시는 둔영엔 오지 말라고 다시 한번 강하게 말했고, 이 꼬맹이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내가 이 꼬맹이를 도와주고, 이 꼬맹이를 나의 공간으로 데려간 것은 크나큰 실수라고 생각되었다.

 

 

 

 

 

 

 

 

 

 

-

순찰을 하는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야마자키와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고, 가기전에 히지카타가 어디에 있나 찾았는데 어딜 나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눈으로 찾고 있을 때 야마자키가 가자고 이끌어서 순찰을 떠났다.

 

“대장, 해결사 형씨네 꼬마랑은 잘 되갑니까?”

 

하도 놀려대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이젠 화도 안난다.

 

“아니라고 그런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뭐 다 연애도 하고 그런거죠 전 오히려 대장이 부럽...”

 

야마자키가 소리내어 웃는게 나는 순간 욱해서 한마디만 더 하면 죽이겠다고 말했다. 야마자키는 은근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물어보지도 못하나..”

 

내가 야마자키를 쳐다보자 그가 내 시선을 보고는 고개를 확 돌리더니 죄송합니다! 하고는 운전을 시작했다.

 

 

 

 

 

대충 일을 마치고, 그 꼬맹이가 놓고 왔다며 가져다달라는 가방이 생각나서 야마자키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말했다. 빨리 줘 버리는게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 해결사네 꼬마 만나려고 그러십니까?”

 

저 새끼가 끝까지..

 

“장난입니다.”

 

야마자키는 차를 타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저 새끼 둔영 돌아가면 죽여버릴까.

 

마침 내 공간은 여기서 그렇게 멀진 않았는데, 골목길로 가면 더 가까웠다. 더럽고 파이프가 여기저기 설치 되어있어서 복잡하고, 좁고, 가끔 덩치만 큰 조폭들이 담배 따위를 피우고 있어서 기분 나쁘고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으슥한 느낌이 싫어서 골목길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가끔 멀리 돌아가기 싫을 땐 이용했다. 특히나 이 곳은 유난히 골목이 미로처럼 뒤엉켜 있고, 많았다. 그래서 왠 만큼 길을 잘 알지 않는 이상은 햇갈리기가 일수였다.

 

히지카타는 우리에게 항상 혼자 어두운 골목 같은 어두운 곳은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다. 원한을 품고 있는 양이지사들이 출몰하기 쉬운 그런 곳에 괜히 혼자 돌아다니다가 당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강하니까- 그 말을 무시하곤 종종 혼자 돌아다녔다.

 

그 날도 그렇게 그 녀석 말을 무시한 채 좁은 골목을 타고 걷는데 멀리 몇 갈래 갈라진 골목에서 흰 옷자락이 쓰윽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뭐지? 나는 약간의 호기심에 무심코 그 쪽을 빼꼼 들여다 보았다. 형씨였다. 특유의 문양이 그려진 옷과 하얀 털 뭉치 같은 머리카락이 그가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해서 보니 그의 앞엔 히지카타가 있었다. 둘이 또 싸우나?

그 둘에게 다가가려 한 발짝 내딛으려는 순간 형씨가 히지카타에게 입술을 들이밀고 키스를 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더 이상 다가가진 못하고 약간 숨은 형태로 그 둘을 쳐다보았는데 그런 형씨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거겠지? 형씨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거지. 혹시 히지카타를 열받게 하려고 저러나? 그러나 히지카타 역시 저항하지 않고, 둘이서 부드럽게 껴안은 채로 서로의 입술을 입술로, 혀로 할짝이는 것까지 확인했다. 한참 멍하니 그 둘을 지켜보는데 히지카타가 형씨의 윗옷을 반쯤 벗겨 내는 것을 보고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까 나는 그래도 그 둘의 행각을 계속 지켜보았는데, 형씨가 웃으면서 이 새끼의 옷 단추를 하나하나 푸르는 것을 보고, 히지카타가 형씨의 목에 얼굴을 묻고 형씨의 바짓단에 손을 대는 것을 보고 나는 그대로 뒷걸음 쳤다. 또박또박 걷는 것도 아니고, 나답지 않게 발이 바닥에서 다 떨어지지도 않은 채.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겨우겨우 몇 걸음 움직여 벽에 기대었을 때, 기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르륵 주저앉아버렸다.

 

아니야! 내가 잘못 본거야.

 

“히지... 카타.. 하아... 흐읏”

 

형씨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긴토키...”

 

히지카타의 목소리도 들린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멀리 있어서 미세하게 들리는 이들의 신음 섞인 목소리와, 살이 쳐대는 소리에 몸서리치게 괴로워서 귀를 틀어막았다가, 애써 몸을 일으켜 무언가에 쫓기듯이 허겁지겁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행위가 극도의 혐오감을 넘어서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오싹하고 역겨웠다. 눈 앞이 캄캄한게 하나도 보이지 않고, 역겨움에 벽에 기대선 한참 헛구역질을 해댔다.

 

아니야, 내가 지금 이상한 환영을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생생하게 역겨움과 헛구역질에 의한 괴로움이 느껴지는게, 왜 이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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