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꼬리표 完

[히지오키긴] 꼬리표 20

2015. 8. 19. 14:05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우와아 벌써 20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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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기에 딱히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우선 꼬맹이를 항상 만나는 것 외에는. 꼬맹이는 찾아온 나에게 항상 있었던 일을 보고하듯 말 했는데, 내가 형씨와 안경에게 잘해주라고 해서 노력은 하는 듯 했는데 그게 쉽진 않았는지 항상 형씨와 안경이야기를 하면서 투덜거렸다.

  

“그 아저씨는 나한테 잘해주는데 뭔가.. 나도 모르게 좀 어색해서 그런지.. 살갑게 못하겠다 해.. 내일은 같이 장보러 가자고 하던데 같이 가줘야겠지?”

  

아직 어색한 형씨와의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잘 대해 주라고는 말했지만 차이나가 아직 어색해하고 무서워하고 있어서 좋았다. 꼬맹이는 나에게 더 노력하겠다면서 잘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웃으면서 부담가지지 말고 천천히 해- 라고 나 답지 않게 자상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 꼬맹이는 그런 자상한 말투를 할 때의 나를 특히나 더 좋아했다.

  

카구라에게 별 거 없이 간단히 형씨와 안경에게 잘 대해주라는 이야기정도 툭 던져 줬을 뿐인데, 형씨가 히지카타에게 차이나가 꽤나 노력하는게 보인다면서 히지카타에게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형씨가 꽤나 기뻐하는 것을 보고 짜증나고 재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

  

히지카타는 나에게 약속 했던 데로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면서 날 불렀다. 좋았지만 마냥 좋기만 하진 않았다. 치사한 히지카타가 나의 마음을 가지고 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는 착한 경찰이지만 나의 것을 빼앗는 저런 사람을 도와줄 정도로 등골을 빼다 바치는 실없는 착한 사람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자”

  

히지카타는 아무렇지 않게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형씨와 나를 다른 이름으로 양 쪽 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의 현재 마음 같은 건 제 멋대로 결정하고는.. 괜찮아요 히지카타씨 결국은 나에게 올 거니까요.. 죽을 만큼 힘들지만 나는 기다림을 아는 착한 아이예요. 그의 손길 하나에 설레서 그의 얼굴 조차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곤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별 말이 없자 그냥 평소에 먹던 곳에 가자고 말하면서 내 의사를 물었다. 나는 히지카타와 함께라면 어느 곳이던지 상관없어서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도 자주 갔었던 덮밥 따위를 파는 집에 나란히 앉아선, 히지카타는 평소에 내가 먹는걸 알고 있으니 알아서 주문을 했다. 왜 이렇게 조용하냐며 나에게 웃으면서 물었다.

  

“원래도 이랬거든?”

  

퉁명스럽게 말하곤 젓가락을 들었다.

  

“네가 순순하게 내 말을 들어줄 줄은 몰랐어”

  

치사해. 너는

  

“긴토키가 고맙다고 전해달래. 뭐 당장은 조금 힘들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이야기 해달라고 하더라고”

  

긴토키, 긴토키.. 듣기 싫어.

  

“카구라가 널 잘 따른다는 것은 좀 의외긴 하지만, 니가 도와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역시 나는 네가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를 달래고 있다. 나는 젓가락질을 하다 말고 그를 쳐다보았다.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라고 말해주다니. 너도 조금은 인식하고 있구나. 히지카타. 서서히 나의 기다림의 결실이 맺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다시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붙잡으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 히지카타씨 조금만, 조금만 더 기억을 해봐요. 분명 왜 자신이 형씨 같은 사람 옆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다 기억해 내는 그때는 내 앞에 와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던 나를 있는 힘껏 꽉 안아주지 않고는 못 배길 걸요? 그땐 나를 기절하기 직전까지 안아줘야 해요.

  

히지카타는 나와 식사를 마치곤 먼저 들어가라고 말하고는 나를 홀로 남겨두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가 저렇게 웃으면서 달려가는 곳의 끝에 있어야할 사람은 분명 나. 였는데 말야.. 형씨를 만나러 가는 거겠지. 나는 왜 그런 형씨를 도와주고 있는 것일까.. 달려가는 그를 잡지도 못하고.

  

그렇게 히지카타를 멍한 표정으로 보내고 나서 마음이 엉망진창 된 나는 그 허탈함에 그 무엇이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은 모두 다 옆에 누군가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 저기 지나가는 저 꼬맹이도 집에 가면 부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저기 있는 저 아저씨도 누군가를 위해서 저렇게 바쁘게 달려가고 있겠지. 저 직장인도 저렇게 전화 통화를 하며, 길가에서도 일을 하면서까지 돈을 버는 이유가 있을 거야. 저기 저 노숙자도 누군가는 자신을 걱정해 주고 있을 것이고..... 나는 하나뿐인 나의 가족이자 연인인 그가 나를 잠시 잊고 있다는 사실과 혼자 되어버린 이 현실에 자꾸만 마음이 가라앉아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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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꼬맹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실 어떻게 이용할지 목적도 없는 내가 이 꼬맹이를 의무적으로 만나면서 형씨를 기억하게 도와주고 싶지도 않아서. 사실 그 꼬맹이의 일이야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기에 나로써는 히지카타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하는 숙제 같은 것에 불과했다.(약간 있었던 죄책감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사라졌다.)

 

순찰을 하고 돌아왔을 때, 대원들이 나에게 그 꼬맹이가 찾아왔다고 말해줬다. 마냥 기다리다가 내가 돌아오지 않아서 시무룩하게 그냥 돌아갔다고 하면서 또 다시 무슨 사이냐며 장난을 쳐댔다. 편지를 줬다면서 전해 받은 건, 그냥 스프링 연습장 종이를 찢어서 네모나게 접은 종이였는데, 성의가 없다 못해 정말 차이나가 어린애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더욱 와 닿았다. 방으로 돌아가서 펴보니 애 같은 삐뚤삐뚤하고 네모난 글씨로,

  

[왜 오늘은 안 오냐 해? 맨날 나 만나러 오겠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으면서! 나 할 말도 엄청 많은데! 어제 그 같이 사는 은색머리 아저씨랑 장보러 갔다가 이상한 집을 발견했다해! 아마 거기 우리 오빠가 있는 것 같다 해. 음.. 그게 아니라면 틀림없이 내가 갔던 적이 있는 곳이다 해. 왜냐하면 창문에 노란색으로 별이 그려있었다 해. 근데, 가리키면서 저기 갔던 적이 있는 것 다고 말하니까 은색머리 아저씨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해. 그 표정이 좀 무서웠다해..]

 

이 꼬맹이가 말하는 그 곳은 나의 공간이었다.

  

  

그 쪽지를 읽자마자 이 꼬맹이에게 달려갔다. 사실 그 공간을 알아도 딱히 상관없긴 했지만, 혹시나 이 꼬맹이가 기억을 찾을까봐 걱정했다. 차이나가 형씨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런 차이나를 보면서 슬픈 표정을 짓는 형씨를 보면서 너도 한번 느껴봐- 라는 비웃는 심리로 차이나에게 그의 앞에선 좀 더 친절하게 대했던 것도 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뭔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것 같은 불길한 생각도 함께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꼬맹이가 쓴 마지막 말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표정이 무서웠다’라는 말이 약간은 신경에 거슬렸던 것 같다. 히지카타에게 들었을 텐데, 그 곳을 나에게 주었다고.. 그리고 나는 또 다시 그가 나를 의심해 올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달려가서 도착한 해결사 사무실. 막상 앞에 와서 벨을 누르려 하는 찰나, 여기엔 차이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그때 뒤에서 어? 왔다 해! 하고 발랄하게 외치는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본 쪽엔 차이나와 옆엔 형씨도 함께 있었고, 나는 차이나보다는 형씨의 안색을 먼저 살폈다. 형씨는 연기를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그저 힘없이 왔냐? 하고 묻고는 나에게 쪼르르 달려온 카구라를 한번 보고는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말하곤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에겐 딱히 눈길조차 주지 않는 걸 보니, 그렇게 내가 의심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불안해 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그가 나를 의심할까봐 불안했다기보다는 그저 막연히 나도 모르는 무언가에 한없이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차이나가 나와 있다가 사고를 당해서? 차이나가 오빠에게 당한 사진을 봐서? 차이나의 오빠가 쓴 편지를 읽어서? 차이나가 나를 좋아하는 이 상황을 약간은 이용해야 겠다 라고 마음먹어서? 음.. 글쎄 모르겠다.

  

  

  

  

  

  

  

  

  

  

-

차이나는 나를 끌고 가서 삐진 듯 입을 삐죽거리면서 고개를 홱 돌리곤 말했다.

  

“나쁘다해! 약속도 안지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으면서!”

 

“...왔잖아. 지금”

  

“원랜 더 일찍오지 않냐 해!”

  

삐진 듯 내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툴툴거리면서 이야기 하다가. 내가 마지못해 미안하다면서 앞으론 일찍 오겠다고 말하자 그제야 돌아서서 내 얼굴을 보면서 한 번 더 그러면 정말로 화를 낼거라고 말했다. 그리곤 이내 화가 풀렸는지 쫑알거리면서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단순해서 다행이야.

  

“나는 밤에 하늘을 보는 게 정말 좋다해! 내가 싫어하는 햇님도 없고, 별이 반짝반짝해서 너무너무 예뻐! 근데, 밤이라고 맨날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건 아니더라 해.. 아빠랑 오빠랑 같이 살땐 창문에서 줄곧 별을 보곤 했는데, 그때 별이 없는 하늘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엄청 실망했다 해.. 내가 슬퍼하고 있으니까 우리 오빠가 와서 유리창에 노란색으로 별을 하나 그려줬다 해, 그걸 보고 사실 이건 반짝반짝 하지 않다면서 투정을 부렸었는데, 좀 지나고 나니까 오빠한테 미안해서.. 나도 창문에 잔-뜩 그려서 오빠한테 보여줬다해! 그러니까 오빠가 웃으면서 카구라, 예쁘다. 근데 너무 많지 않아? 이러면 진짜 별을 보지 못할 수도 있잖아. 하고 웃으면서 말해줘서 너무 기뻤다 해. 우리 오빠가 예쁘다고 해줘서 더!”

  

그래서 창문에 그렸었구나.

  

“별 보는 거 좋아해?”

  

꼬맹이가 나에게 말했다.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나는 다음에 경찰오빠랑 별을 같이 보고 싶다해!”

  

“별 같은 소리..”

  

“근데, 혹시, 히지카타가 누군지 아냐 해?”

  

이 꼬맹이의 입에서 히지카타의 이름이 나온 것은 너무나 어색하고도 어울리지 않았다. 둘이 마주칠 일도 별로 없고,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어서. 아. 뭐 이름이야 형씨 때문에 들었을 수도 있겠다. 짜증나.

  

“왜?”

  

“음.. 아냐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다 해”

  

말을 하지 않는 이 꼬맹이가 조금 의아했지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센구미 부장이잖아. 히지카타”

  

나의 말에 이 꼬맹이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그럼 경찰이야? 오빠도 그 사람 알아? 하고 물었다.

  

“응, 경찰이고. 당연히 알지”

  

  

  

  

이 꼬맹이가 기억을 잃은 후론 내 공간에 찾아가는 일이 부쩍 잦았다. 가서 딱히 무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가서 멍하니 있거나, 나답지 않게 청소 따윌 했다. 그 날도 헤어진 이후 나의 공간에 가서는 괜시리 꼬맹이가 그려놓은 유리창의 별을 다시 확인했다. 이제 와서 지우기도 뭐해서 없애지도 못한 채(이미 형씨도 함께 봤기 때문에 지우는 것이 더 수상해 보일거라 생각했다.) 그저 한번 쳐다보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어둡지 않아서 불을 켜지 않고 있다가, 너무 어두워 불을 키려 현관 쪽으로 다가갔을 때, 밖에서 서성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히지카타인가? 나는 문을 열어주려 문 손 잡이에 손을 살짝 댔다가, 히지카타라면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왔을 텐데, 서성이는게 이상해서 문에 달려 있는 현관렌즈로 밖을 슬쩍 내다보았다. (이런 행동은 태어나서 처음 해본다.) 밖에서 서성이는 건 다름 아닌 형씨였다. 왜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앞에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가, 초조한 듯 왔다갔다 했다가를 한참 반복하더니 형씨와 나 사이에 있는 아무 말도 없고 죄도 없는 문을 한없이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자리를 떴다. 불을 켰다면 문을 두드렸을지도? 왜 왔는지는 모르지만.. 카구라가 여기를 알고 있다고 해서 찾아 온 것 같다. 왜 그렇게 애처롭게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는 형씨의 그런 괴로워하는 모습과 초조해하는 모습을 봐서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형씨는 내가 안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는 생각 못하겠지. 그런 형씨를 지켜보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재밌고 흥미로워서 키득키득 대고 있는데 말이예요. 또 와요. 내가 안에서 지켜볼 때..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불안하고, 불행한 얼굴로.. 그럼 나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더 재미있게 지켜봐줄게요.

  

  

  

  

  

  

  

  

  

-

그렇게 몇일이 지났다. 몇 일 동안에도 형씨는 어김없이 내 공간의 문 앞을 서성였고, 내가 안에 있을 때만 해도 여러 번이었으니, 내가 없을 때에도 분명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그저 그런 형씨를 몰래 관찰하는 게 재미있었는데, 이게 여러 차례 반복이 되다보니 의문이 거대하게 커져갔고, 이내 나도 내 문 앞을 서성이는 형씨가 섬뜩하고 무서워졌다. 내가 이 공간의 주인인 걸 알면서 왜 이러는 거지? 가끔 마주칠 일 많잖아? 할 말이 있으면 그냥 말을 하라고.

  

그 날 만난 카구라는 말했다.

  

“같이 사는 그 아저씨 말야, 요즘 이상하다 해”

  

차이나가 이상하다고 말하면서 약간 걱정하는 기색을 보여서 혹시나 이 꼬맹이가 기억이 조금이라도 돌아 왔을까봐 조마조마 했다.

  

“뭐가?”

  

“음.. 뭐라고 해야 하지.. 나를 쳐다볼 때 눈빛이.. 음... 너무.. 뭐라고 해야하나.. 울 것처럼 표정을 지으면서, 카구라... 어떡하냐? 응? 어쩌면 좋냐.... 이런다 해. 나는 그 아저씨가 왜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해. 뭘까?”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야. 내가 잠깐 생각에 잠겨있자 차이나가 나를 장난 끼 있는 표정으로 보더니 말했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같이 밥 먹자해! 그 아저씨랑 둘이 먹으면 아직도 조금 어색하니까!”

  

평소라면 싫다고 단호하게 딱 잘라 말하며 거절했겠지만, 그 날은 이 꼬맹이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 좋다고 말하자 당연히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지 꼬맹이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정말이지? 진짜지? 하고 재차 물었다. 나는 차이나가 좋아하는 자상한 말투로 응, 정말이야 하고 대답했다.

  

내 눈앞에서 보고 싶었다. 차이나가 말하는 형씨의 표정을. 그리고 현관렌즈로만 지켜보던 그의 표정을 한층 더 가까이에서, 더 선명하게. 그리고 어째서 내 공간 앞을 서성이는지도 듣고 싶었다.

  

  

  

  

돌아올 차이나를 기다리면서 음식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차이나와 함께 해결사 사무실에 갔을 때 형씨는 국자를 들고 앞치마를 두른 채 문을 열어주었다. 물론 차이나와 함께 온 나를 보곤 약간 놀라했지만, 이내 들어오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런 말을 웃으면서 이곳에서 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형씨와 나는 내가 딸기케이크를 사왔던 그 날 이후로 서로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버렸으니까.

  

“아저씨. 오늘은 경찰 오빠도 같이 먹고 싶어서 데리고 왔다 해. 상관없지?”

  

“어어..그래 어서 앉아”

  

차이나의 이야기를 들어서 인지 정말 형씨가 차이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전엔 좀 더 활달하게 대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차이나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색해하고 무서워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특유의 활달한 성격으로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깐족대면서 노력 했을 텐데, 지금 이런 의기소침한 태도는 약간 이해가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차이나는 나에게 아저씨가 생각보다 요리 되게 잘하지? 하고 말하며 나에게 동의를 구해왔고, 사실 형씨와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는 것도 싫었지만 웃으면서 자상하게 “응 맛있다” 하고 대답했다. 형씨는 자꾸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이 나를 빤히 쳐다봤는데 나는 그게 궁금하면서도 그가 더 애타도록 그 때마다 차이나에게 억지로 할 말이 없는데도 쓸데없는 말을 걸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이만 돌아가 보겠다고 일어서자, 나와 함께 차이나와 형씨가 동시에 일어섰다. 차이나는 더 있다가 가라면 안 되냐고 징징댔고, 이 꼬맹이의 이런 패턴에 약간은 익숙해진 나는 내일도 올 테니 얌전히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뒤따라 나온 것은 차이나가 아닌 형씨였다.

  

“안 어울리게 배웅이라도 해주는 겁니까 지금?”

  

“뭐.. 그렇다고 해두지”

  

형씨는 뭔가 조금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뭔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뜬금없이 미안하지만 물어볼게 있어서”

  

뭘까? 사실 궁금했었으니 나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이런 말을 너에게 한다는 것이 사실 좀.. 그렇긴 한데 너.. 히지카타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고 했지?”

  

뭐야? 나에게 히지카타를 물어보는거야? 둘이 싸웠나? 지금 그런 사소한 연애 상담을 나에게 하는 거야? 내가 히지카타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면서? 병신인가?

  

“다름이 아니고.. 히지카타가 전에 혼자 잠깐 있었던 집 말이야..너도 알지?”

  

나의 공간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현관렌즈로 키득키득 대면서 지켜보았던 ‘내 공간의 문 앞을 서성이던’ 그의 표정이 생각나서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억누르며 그를 쳐다보았다.

  

“누구한테 팔았는지 알아? 혹시? 이런 질문 바보 같은 거 아는데.. 그냥 혹시나..”

  

팔아? 나에게 준 것을 모르나?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히지카타는 나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나보다.

  

“글쎄요. 내가 뭐 부동산 업자도 아니고, 그런 세세한 것까지 어떻게 다 알아요?”

  

왜 히지카타는 나에게 주었다고 하지 않았을까? 아 아니지, 나는 그가 말하지 않은 이유를 안다. 형씨와의 관계를 끊어내기 위한 시작점이었을 거야. 그 공간의 차단의 의미는. 그리고 마침 혼자의 공간을 원하는, 사랑하는 나에게 내준거야. 그것이 그와의 육체적 관계를 끊어냄과 동시에 나에게 주는 사랑의 시작이었다고 히지카타는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그 과정에.. 생각지도 못한 이변으로 인해서 그의 옆에 있게 되어버린 불쌍한 히지카타...

  

“..그렇지? 미안. 이렇게 쓸데없는 거 물어봐서.. 그리고 고마워”

  

“뭐가요?”

  

“카구라 많이 챙겨주는 것 같아서. 나도 노력하고는 있는데.. 지금 머릿속이 복잡해서..”

  

“딱히 챙겨주는 건 아닙니다.”

  

나는 그 말을 하곤 그냥 돌아갔다.

  

형씨. 지금 나에게 고마워하는 그 마음. 잘 기억해 두세요.

  

  

  

  

  

  

  

  

  

-

히지카타는 얼마 전에 출장을 갔다. 곤도씨에게 나도 히지카타와 함께 가고 싶다고 졸라댔고, 곤도씨도 그런 내가 간절해보였는지 최대한 힘써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부탁하는 상대가 지금이 아닌 전의 히지카타였다면, 나는 아예 난리를 치면서 지랄을 하고, 그런 나를 보면서 그는 어떻게든 들어주려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에게 꼼짝 못하는 발밑에 엎드린 존재였고 무엇보다 곤도씨 였으니까 나는 그냥 조용히 아쉬움을 참고 수긍했다. 내일인가.. 돌아온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초조하고 너무 보고 싶어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 그에 더해서 형씨의 이상한 행동이 그를 더 기다리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형씨가 히지카타와 관련된 일을 나에게 물었다는 것에 의해서 나는 혹시라도 그가 제 정신으로 돌아온 건가 하는 기대감이 컸다. 그리고 나는 그걸 견디지 못하고 저녁쯔음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히지카타는 왠지 모르게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고 나는 내 전화를 기다린건가 하는 기대감에 들떠서 장난식으로 "왜 이렇게 바로 받아요? 무섭게?" 하고 농담식으로 던졌다. 그리곤 칭찬을 바라면서 그 날 하루를 보고했다. 보고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차이나랑 만났어. 정도의 말을 하고 나머진 둔영이나 곤도씨 이야기, 그리고 내 이야기를 했다. 그는 딱히 별 말은 없이 그냥 무뚝뚝하게 그래, 그래, 정도의 대답만을 간단히 했다. 목소리가 약간은 피곤하게 들린다. 그러다가 내가 순간 생각나서 말했다.

  

“형씨는 히지카타씨가 나에게 그 공간을 준 것은 모르고 있더라고요”

  

[...]

  

“얼마 전에 만났거든요”

  

[만났어? 긴토키를 만났어? 잘 있어?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 그녀석...]

  

뭐야,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해? 왜 나와 이야기 할 때보다 더 강하게, 더 안절부절 못하면서 물어요 왜.

  

“....딱히 별 건 없어보여요”

  

[..그래..? 그래.. 그러면 됐어]

  

한숨을 푹 내쉬는 그가 싫었다. 내 이야기엔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그가 형씨의 이야기 소재거리에 열기를 띄어서 화가 치밀었다.

  

“언제와?”

  

[오늘]

  

“내일 온다면서요?”

  

[하루 앞 당겼어. 여튼 얼른 자라 늦었다]

  

급한지 그가 그 말을 툭 던지고는 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마음에 지금 나는 그냥 걸림돌이었다. 띄엄띄엄 울어대는 신호음을 한참 듣다가 나도 전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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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19

2015. 8. 19. 14:03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배낭을 매고 다쳐있는 이 꼬맹이를 발견했고, 그래서 병원에 옮겨줬고, 깨었을 때 이 상태였다고. 옆에서 차이나는 계속 누구야? 저 아저씨? 하고 말하면서 내 팔을 꽈악 붙잡았다. 더 이 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꼬맹이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면서 그럼 가보겠다고 말했다. 꼬맹이는 나에게 어딜 가냐면서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자꾸 억지를 쓰고, 나는 이 꼬맹이에게 여기가 너의 집이라고 한참 설득했다. 집이라는 말에 그럼 아빠와 오빠는 어디 있냐면서 울 듯한 얼굴로 자꾸 물었고,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일단 여기서 얌전히 있으면 찾아올 거라고 둘러댔다. 나가려는 나를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면서 내일도 올 거냐면서 징징거리는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어린애면서 힘은 여전히 너무 쎄서 알겠다고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겨우 이 꼬맹이를 떼어내고 문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런 내 뒷모습에 대고 형씨가 말했다.

  

“...고마워”

  

그 말에 뒤돌아보니 형씨가 약간은 미안한 기색으로 나에게 말했다. 또 시작이시네, 저 안쓰러운 척 하는 표정.

  

“너를 약간은 오해한 것도 있어. 그 점에선 미안해..”

  

나는 형씨의 말에 한참 쳐다보다가 대답 없이 밖으로 나섰다. 고맙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어서 약간 당황한 것도 있다. 오해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에 대해 안심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둔영으로 돌아갔다.

  

둔영에 돌아간 나는 요즘 히지카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그의 부하였으니까 쥐 죽은 듯이 그의 말에 잘 따랐다. 음.. 잘 따랐다기 보다는 대화자체를 거의 안하고 있었으니 뭐.. 그가 나와 둘이 있는 상황을 거의 두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대원들과 같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를 우연히 만나면 서둘러서 자리를 피하기 일 수였고, 심지어 간단한 결제를 받을 때도 혼자 찾아가면 다른 애들이랑 같이 오라면서 차갑게 말하면서 문 앞에서 나를 내치는 경우도 많았다. 문 앞에서 한참 그를 쳐다봐도 그런 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제 할 일을 했다. 나는 그런 그가 원망스럽기도 하면서 그와 비등하게 형씨도 미웠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 날도 나는 혼자 있는 히지카타에겐 다가가지 못하고 야마자키와 그냥 간단한 이야기 정도를 하면서 히지카타가 정해준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야마자키가 부장님 요즘 연애하신다는 소문이 많아요- 라는 소리를 하길래 나는 모르겠다며 그냥 무시하는 척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들켰나?’ 하고 움찔 하고 놀라야 할 대상은 본래 나여야 할 텐데, 이런 소식을 듣고 배알이 꼴려서 분해하고 있는 게 나라니.. 말도 안 돼.

  

일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데 문 앞에서 담배 따위를 피우고 있던 그가 조용히 지나쳐 가는 나를 보고 말했다.

  

“카구라 도와줬다며?”

  

그가 나에게 따로 일이 아닌 이야기로 말을 걸어오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잘했어”

  

그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홀연히 자리를 옮겼다. 그가 피우던 씁쓸한 담배 향 만이 그 자리에 남아서 나를 휘감아왔다. 원래라면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더 자상하게 말했을 거다. 이렇게 무뚝뚝하게 한마디 툭 던지고 나에게서 등을 보이는 게 아니라..

  

  

  

  

  

  

  

  

  

-

다음날은 둔영으로 이 꼬맹이가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찾아왔나 놀라서 이 꼬맹이를 한참 쳐다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어떤 대원 하나가 하는 말이 내 인상착의를 이야기 하면서 찾는다고 하면서 만나기로 했다며 데려다 달라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이 꼬맹이는 우리와 친해서 다른 대원들도 얼굴은 알고 있었기에 별 의심없이 데리고 온 모양이다. 그러면서 ‘근데 이 꼬맹이가 왜 대장 이름을 모르죠?’ 하고 물었다.

  

이 꼬맹이는 나를 발견하곤 뛰어와선 와락 안겼다. 너무 당황해서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아! 찾았다! 오늘 나 만나러 온다면서 왜 안 오냐 해!”

  

전에도 둔영에서 오해하는 일이 많기도 했고 대원들의 놀림이 귀찮았던 나는 우선 둔영에서 차이나를 데리고 나왔다. 공원 벤치로 데리고 가자 꼬맹이가 앉더니 제 옆자리를 툭툭 치면서 옆에 앉으라고 말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옆에 앉자 차이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나에게 전부다 털어 놓았다.

  

“어제 그 같이 산다는 아저씨가 나에게 카구라- 나 기억 안나니? 이러면서 자꾸 말 거는데 귀찮다 해! 나 정말 그 건달 같은 사람이랑 같이 있었던 거 맞냐 해? 심지어 조금 있으니까 안경 쓴 이상한 사람도 와서는 날 보고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무섭다 해.. 게다가 내 방이라는 곳은 벽장이고.. 다 싫다 해... 거기 있으면 정말 아빠랑 오빠가 오는 건 맞냐 해?”

  

“음.. 원래 너 알던 사람들이야. 근데. 네 기억으론 나도 처음 보는 사람이잖아. 근데 난 왜 이렇게 믿는데?”

  

“이거!”

  

이 꼬맹이는 가방에서 무언 갈 꺼내서 보니 전에 내가 줬던 제복 겉옷이었다.

  

“내 방이라는 곳에서 이거 찾았다 해, 이거 보고 알았다 해! 경찰 오빠는 정말 나랑 친했구나. 하고!”

  

저 옷을 보고 나와의 사이를 다시금 알았던 것도 있겠지만, 새끼 오리였나.. 알에서 깨자마자 처음으로 본 상대를 부모로 인식한다는 말도 있듯이, 이 꼬맹이도 의사와 간호사를 제외하고 처음 본 상대가 나였기 때문에 더 나를 믿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에 어땠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형씨와 신파치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형씨와 신파치보다도 나를 더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은 의아했다.

  

“너희 집에 같이 있는 은색머리 형씨랑 그 안경이랑 너. 이렇게 해결사라는 일을 하고 있었어”

  

“내가?”

  

“응”

  

“나는 어땠냐 해?”

  

“뭐가 어땠냐는 거야?”

  

“남자친구는 없었냐 해? 나 좋다는 사람은 없었냐 해?”

  

약간은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내가 알기론 없었지만.. 또 모르지. 나도 너에 대해선 디테일한 부분까지 자세히는 몰라. 그런 건 너와 함께 살고 있는 형씨에게 물어보는 게 더 빠를거야”

  

일 하러 가봐야 한다고 자리에서 뜨려고 하자, 이 꼬맹이가 이번엔 병원에 같이 가달라며 졸랐다. 나에게 병원에서 보호자였지 않냐며 자긴 병원이 무섭다면서 한참 나에게 졸라 대길래 어쩔 수 없이 (사실 그냥 뿌리칠 수도 있었지만, 나와 함께 있다가 그랬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 때문에 강하게 뿌리치진 못했다.) 동행했다.

  

의사는 이 꼬맹이를 다시 한번 진찰하고는 보호자의 신분인 나에게 말했다.

  

“혹시 기억을 찾을 만한, 좀 기억에 강하게 인식됐을 법한 그런 건 없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 그 충격에 기억을 되찾기도 할 텐데..”

  

  

검사 후, 이 꼬맹이를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나는 나의 공간에 들렸다. 한쪽에 놓여있는 차이나가 오빠에게 받았다는 가방과 그가 쓴 편지를 보고 한참 생각했다. 이것을 보여줘야 하나.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내가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온다면 무어라고 답해야 할지를 생각하자 딱히 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제의 가방은 그대로 들고 가서 다 태워버렸다. 가방과 함께 필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진이 차례로 타면서 까맣게 찌그러지면서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충격적이라서 이것을 보여주면 사실 기억을 되찾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충격적인 것을 내가 건네주는 것도 기분 나쁠 뿐 아니라 나는 착한 경찰이니까 이런 것은 보여주지 않는 것이 옳다고 혼자 제 멋대로 생각했다. 꼬맹이의 오빠라는 사람의 편지에서도 쓰여 있듯, 이 사진을 보낸 이유는 협박도 아니고, 다만 차이나에게 자신의 죄를 씻으려, 믿음을 얻으려 보낸 것이기에. 옆에 함께 있었던 편지는 태우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공감하고 있기에 그렇기도 하고, 그가 너무 열심히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편지 역시 꼬맹이에게 보여줄 생각은 없다.

  

  

  

  

  

  

  

  

  

-

나는 그날 둔영에 돌아와서 히지카타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는 것이 나에게 그런 용기를 가지게 만들었다. 늦은 시각 그의 방 문을 조용히 열었을 때, 나를 보고 지을 그의 표정이 두려워서 약간은 떨었다. 나에게 차갑게 대할까봐. 그리고 마른 침을 조용히 삼켰을 때 그가 그런 나를 보곤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기뻤다. 나를 내칠 것 같던 니가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해줘서. 책을 보는 그의 책상 앞에 앉아서 그를 쳐다보자 그가 읽던 책을 덮곤 오랜만에 내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생각은 좀 정리했어?”

  

“...무슨 생각?”

  

“요즘은 좀 정신 차리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안심이야”

  

“...”

  

“나도 너와 이런 식으로 지내기 싫어. 그냥 이전처럼 니가 나에게 장난치고, 나도 그런 너에게 화도 내면서 편하게 지내고 싶어. 내 말 잘 듣는 너, 어색해. 그냥 내 말에 대들면서 일도 제대로 안하는 니가 훨씬 편하고 좋아. 난”

  

나의 그런 뾰족한 부분이 훨씬 편하고 좋다고 해줘서 좋았다. 역시 히지카타는 나를 감싸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그는 지금 말을 틀리게 하고 있다. 정신을 차린 건 내가 아니고 이 녀석이었다. 그래도 나에게 오랜만에 이렇게 부드럽게 이야기를 해줘서 나는 눈물이 나올 만큼 벅찼다. 드디어 그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기다림의 결과가 나온 것 같은 그런 기분에 긴장이 다 풀려서 하아- 하고 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내가 좋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그런 거... ”

  

응..?

  

“그런 말.. 우리 사이에 어울리지 않아.”

  

나는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물론, 나도 네가 좋아. 너는 내 가족이잖아. 미츠바가 나에게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해. 때론 골치 아프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이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네가 좋아”

  

그래요. 나도, 나도 네가 좋아요. 히지카타씨. 내가 좋으면 좋은 거지, 우리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말은 무슨 소리에요?

  

“당연히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그런 사실은 변하지 않아. 하지만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고 이해해주라. 너는 가족이고, 그 녀석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야. 나는 둘 다 너무 소중해서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 생각해보니 내 옆에 항상 너만 있었으니까 네가 그런 서열 때문에 느끼는 불만의 감정을 사랑이라는 감정과 혼동했다고 생각해”

  

내가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그의 앞에 앉아서 그를 쳐다보고 있자 그가 다시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지?”

  

아니. 모르겠어.

  

“지금 네가 어려서 그래. 곧 나에게서 이런 감정을 착각해서 말했다는 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창피해 할 날이 올걸? 그땐 내가 기억해놨다가 엄청 놀릴거다”

  

이 녀석은 나를 보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왔지만 무엇이 웃겨서 웃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표정이 굳어서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히지카타가 그런 나의 머리를 전처럼 자상하게 쓰다듬으면서, 작게, 그래도 당연히 너는 나에게 첫 번째니까 안심해. 라고 말했다.

  

아직도 그는 나만을 사랑하는 히지카타가 아니었다. 당연히 그에게 내가 첫 번째 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나는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아. 첫 번째라는 자리는 유일하고 하나밖에 없는 자리이기에. 히지카타의 첫 번째 라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제 정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가 그런 사실에 대해선 잊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선 안심했다. 하지만 기다림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과, 약간의 기대에 찼다가 찾아온 실망감에 더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려고 티비를 틀고 멍하니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만담을 들어보기도 했으나 전혀 풀어지지 않았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잠도 오지 않는 이 상황이 괴로워서 뒤척거리고 있을 때 낮에 나의 공간에서 챙겨온 차이나의 오빠라는 사람이 쓴 편지가 생각나서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내가 너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 나와 마찬가지로 너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너에게 불길하고 싫은 존재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둘 중 어느 경우라도, 나는 너에게 떨어질 수 없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꼬리표이자, 그 뒷면엔 사랑이라고 쓰여 있는 꼬리표야. 아무리 떨어트리려고 발버둥 쳐도 떨어지지 않을 거야. 그것은 변하지 않아.]

  

그와 나는 닮았지만 다르다. 나는 히지카타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

  

[너의 말대로 나는 미쳤던 거야.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너를 내 앞으로 인도했던 그 사진을 한 장 한 장 바라보면서 나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어. 나의 이런 수단으로는 너의 미소는 커녕 너를 내 앞으로 절대로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거야. 이미 늦어버린 그 순간에.. 너도 알다시피 사람을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에겐 어려웠어. 사랑하는 너에게도 어떻게 해야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니가 내 마음을 알아줄지 표현할 방법을 몰랐어. 사실 지금도 잘 몰라.]

  

응. 나는 이 녀석이 저지른 것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거야. 살짝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나 역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이 녀석이 행한 일을 기록해 놓은 이 편지로 인해서 그런 짓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서 나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배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히지카타의 앞에서 히지카타가 헛소리를 지껄일 때, 대들면서 전처럼 내 감정을 호소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서 전과 같이 멀어질까봐.. 히지카타. 나에게 결국은 돌아올 거잖아. 그럼 빨리 오면 안 돼? 이렇게 나를 기다리게 만들어야 해?

  

  

  

  

  

  

  

  

  

-

히지카타는 내가 대답하지 않은 의미를 모두다 수긍의 의미로 생각했나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이후로 그는 나를 깨우러 왔다. 이미 깨서 눈을 뜨고 있던 나는 그가 오랜만에 나를 깨우러 왔다는 점에 놀라서 누워서 그를 한참 바라봤다. 그는 깬 나를 보고는 일찍 일어났네? 하고는 문을 탁 소리 나게 닫고 나갔다. 아- 좀 더 잘걸. 하필 오늘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나갔을 때, 히지카타는 나를 불렀다. 나는 그가 나를 쳐다볼 때, 나를 부를 때 너무 설레서 항상 기대감에 들떴다.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카구라가 너를 많이 의지하고 있나봐, 그래서 그러는데 긴토키 좀 도와주면 안될까?”

  

뭐야, 고작 불러내서 하는 말이 형씨를 도와주라고?

  

“...싫어요”

  

“이 녀석아. 좀 도와줘. 아직도 기억도 못하고 약간 무서워 하나봐. 카구라는 자꾸 널 찾는다잖아. 니가 가서 말이라도 긴토키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 좀 해주라. 응? 한번만 부탁 좀 할게”

  

형씨를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싫어서 그런 부탁을 하는 히지카타의 눈을 피하곤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도와주면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싫어. 싫어. 다 싫어. 다 싫어! 너 지금 부탁하는 것도 형씨라서 나한테 부탁하는 거잖아. 그 새끼 위해서 하는 부탁이잖아!

마음속으론 그렇게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이런 그의 간절한 부탁과 그와 둘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진짜 맛있는 거 사줄게”

  

히지카타는 고맙다면서 내 머리칼을 잔뜩 헝클곤 일을 하러 천천히 걸어갔다. 나에게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이용하는 것은 치사한 짓이라고 했던 사람은 저 녀석이다. 그리고 지금 의도치 않게 가장 치사한 새끼는 저 녀석이다. 지금 나는 너의 마음 앞에서 약자이기에 들어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용하는 치사한 새끼.

  

  

그가 말한 장소에 나가보니 형씨가 차이나를 데리고 나와 있다. 얼굴도 보기 싫어 형씨를 보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을 거다. 차이나는 나를 보고 전처럼 무섭고 당황스럽게 뛰어와선 자기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면서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 모르지만 자꾸 얼른 가자고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되는 건가 싶어 뒤에 있는 형씨를 한번 쳐다봤다. 형씨는 그냥 별 말없이 나와 그런 차이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은.. 뭐라고 해야하나.. 약간 슬펐다. 하긴, 원래의 차이나라면 이런 나보다는 형씨를 더 의지했을 텐데 지금의 상황은 좀 이상해졌으니.

  

여튼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으니 내가 카페나 가자고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기에. 꼬맹이는 그런 내 말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거냐면서 엄청 신나했다. 내 앞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나, 나랑 같이 사는 그 은색머리 건달 싫다해! 돈도 없고... 맨날 이상한 것만 먹고 말야. 경찰 오빠처럼 맛있는 걸 사주지도 않는다 해! 자꾸 조금 슬픈 표정으로 날 보는 것도 기분 나쁘다해!”

  

..뭔가 말이 슬픈데?

  

“안경도 말이야. 자꾸 나 가르치려 든다해! 기분 나쁘게”

  

잠자코 듣다가, 이 꼬맹이의 친오빠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살짝 물었다.

  

“아- 우리 오빠? 왜 궁금한 거냐 해? 음.. 엄청 잘 챙겨주고.. 나랑 가끔 싸울 때도 있지만.. 뭐.. 가끔은 엄청 멋있다 해! 오빠 앞에선 그런 말 한 적 한 번도 없지만..”

  

“그게 다야?”

  

“그럼 뭐가 더 필요하냐 해?”

  

“아냐, 그냥 궁금해서. 음.. 그리고 너랑 같이 사는 형씨랑 안경한테.. 잘... 해줘.”

  

잘 대해주라는 말이 하기 싫어서 부드럽게 나가질 않았다.

  

“그럼 맨날 올 거야?”

  

“응?”

  

“맨날 온다고 약속하면 그렇게 한다 해!”

  

“나랑 그게 뭔 상관이야?”

  

“나.. 오빠가 맨날 왔으면 좋겠다 해. 맨날 만나고 싶다 해”

  

“...?”

  

“나 오빠 완전 완전 좋아! 하늘만큼 땅만큼! 경찰오빠를 보면 우리 오빠가 약간 보인다해, 우리 오빠랑 닮은 것 같아서 더 좋다 해!”

  

내 앞에서 꼬맹이는 밝게 웃으면서 나에게 수줍게 말했다. 나는 그런 꼬맹이를 잠깐 보고 생각에 잠겼다가, 형씨가 약간은 슬프게 나와 꼬맹이를 쳐다보던 것을 생각했다. 형씨에게 있어서 이 꼬맹이는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저 아닌 나를 더 의지하고 있다는 것에서 슬퍼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래?”

  

“난 착한 아이니까 경찰 아저씨가 하는 말 잘 들을 거야!”

  

이 꼬맹이가 나에게 말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니까 맨날 보러 와주라. 나 착한 아이잖아”

  

딱히 나는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나 역시 의도치 않게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치사한 사람이 되려 하고 있었다. 차이나가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이가 아니기도 하고, 나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말을 잘 듣겠다’ 같은 이런 터무니없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했다고 하더라도 진심이 아니고 잠깐 그냥 하는 소리였겠지.) 하지만 지금 아이가 되어버린 이 꼬맹이는 또 다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말을 잘 듣겠다면서 순순하게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나는 이 꼬맹이를 이용할 생각이 없었지만..

  

“자 약속!”

  

이 꼬맹이가 새끼 손가락을 내 앞에 내밀며 말했다. 나는 이 꼬맹이의 장단에 약간은 놀아나 줄 생각에 같이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곤 웃으면서 알겠다고 말했다. 나의 대답에 이 꼬맹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곧 나와 시선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진 채로 우물쭈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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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18

2015. 8. 19. 14:02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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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나였다가, 내가 아니었다가를 반복했어. 내가 아닌 은발의 사무라이 옆에 있겠다는 너를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미웠다가, 하지만 미치도록 내 옆에서 웃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욱 커서 다시금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고, 거절하는 너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반복한 것 같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항하지 않고, 너의 의지조차 굽히지 않는 네가 너무 화가 났어. 이렇게 나에게 맞으면서도, 그렇게 아파하면서도 그 녀석 옆이 좋다는 네가 이해되지 않았어.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맞은 날은 병원에 가서 스스로 진찰을 받고, 조금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돌아가지 않고 밖에서 방황하다가 그 은발의 사무라이에겐 깡통차기 따위를 하며 아이들과 장난을 치다 다쳤다고 말하며 그를 안심시키려는 너를 보면서 어릴 적의 네가 다시 떠올랐어. 아이들과 놀다가 넘어져서 오곤 하면 내가 종종 치료해주곤 했는데.. 생각나니?


네가 정말로 나에게 멀어지는 느낌이 다가올수록 나는 조급해졌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잡아야 했거든. 돌이켜보면 그런 조급함이 내가 너에게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 원인인 것 같아. 이 부분에 대해선 너에게 그 어떤 말도..., 미안하단 말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잘못했지만, 사죄의 의미로 너에게 쓰는 편지이니까 쓰는 나도, 읽는 너도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다 적을게. 이때 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달라고 비는 속죄의 의미라고 생각해줬으면 하는 나의 작은 소망이야.


다시는 찾아가지 않을 테니 마지막으로 한번만 나를 찾아와 달라고 너에게 말했어. 마지막이라는 말에 너는 순순히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서는 아무 의심 없이, 앉아있는 내 앞에 와서는 오빠.. 하고 작게 불렀어. 마지막이라고 한 말에 약간 니가 흔들렸다고 생각해. 내가 다시 너를 설득할 말을 생각 하려 할 때 니가 했던 말이 거대한 창이 되어 내 가슴에 꽂히는 듯 했어. 그때의 대화가 아직도 기억이 나.


오빠, 같이 가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지금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오빠가 아니라.. 그 녀석이야.
왜?... 왜 그 사람이야? 너의 가족은 나잖아.
피로 이어지지 않아도 가족보다 진한 유대가 있어. 그게 그 녀석이야.


그 말을 하고 충격 받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오빠가 마지막이라고 말해서 조금은.. 아쉬워’ 아쉽다고 말 한 것은 나를 위로하려 한 말이라는 것 쯤은 알았어. ‘그래도 먼 훗날엔 웃으면서 봤으면서 봤으면 좋겠어.’ 하고 나가려는 너를 보고 만약 이대로 헤어지면 겨우 찾은 너를 찾으려 또 다시 먹먹한 가슴을 붙잡고 몇 년을 헤메일 것 같아서 너의 가늘은 손목을 붙잡고 가지 말아 달라고 나도 모르게 흐느꼈어. 그러면 니가 나를 조금은 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나봐. 그리고 너는 나의 기대에 맞게 나의 모습을 보고 망설였고 그런 너를 와락 껴안았을 때 네가 내 품 안에 가득 들어와서 좋았어. 그리고 너에게 마지막이라는 빌미로 너를 이 곳에 끌여들였지만 너와 마지막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한참을 너를 품에 안고 있었어. 나와 떨어지려는 너의 행동이 싫어서 그런 너의 행동에 저항하듯이 더 힘주어 끌어안았다가 입술에 입을 맞추려 할 때, 네가 나를 힘껏 뿌리쳤었지. 오빠는 미친 거야! 라고 말을 할 때. 나는 수긍했어. 응. 맞아. 그 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 방안에서 나가려는 너를 거칠게 붙잡고 다시 한번 너의 하얀 몸에, 부드러운 얼굴에 주먹을 내려쳤지. 그리고 나에게서 도망치려는 너를 가장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는 수단, 누구에게나 있어 치명적이어서 옴짝달싹 못할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어. 그리고 곧 바로 생각해내 버렸어. 그리고 그대로 나는 실행했어. 이미 나에게 맞아서 힘없이 쓰러져 있는 너의 머리채를 붙잡고, 강제로 나와 눈을 맞추게 한 다음 다시 물었어. 실은 나도 약간은 망설였거든. 하지만 너의 대답은 한결 같더라.

오빠가 아니라.. 긴짱이야... 내가 지금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은..

그 말에 이성을 잃은 나는 그대로 너의 손 발을 묶어 놓고 걸치고 있던 옷을 찢어버렸어. 소리를 낼 힘도 없었는지 너는 그저 그 맑은 파란 눈에서 아름다운 투명한 보석 같은 눈물을 톡톡 떨어트리면서 나에게 오빠.. 이러지마. 하고 힘겹게 말하는데 나는 그때 그런 너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들리지 않았어. 옷을 거의 다 찢었을 때 보이는 너의 하얀 속살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거든. 근데 난 너의 그런 몸에 손을 대거나 하진 않았어. 너무 아름다운 것일수록 손을 대기가 힘든 법이야. 너에게 폭력을 가한 나의 말에 모순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너의 몸에 폭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손을 대진 않았던 이유는 아름다워서 라는 이유가 맞아.내 눈에만 담기가 아까워서 카메라로 그 장면을 한 장 한 장 기록했어.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그 결과물은 내 눈에 담은 것보다 못해서 실망한 것은 사실이야. 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기록하지 못했어. 전혀!


그 일이 있고 이후에 내가 찾아가면 너는 나를 전혀 피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찾아오기도 했어. 그래서 좋았어. 하지만 나에게 찾아오는 너의 표정은... 뭐랄까.. 증오에 가득 차 있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네가 나를 찾아와 주는 게 좋았어. 그렇게라도 네가 내 앞에 나타나 준 다는 것이 설레었거든. 너는 내 앞에서 몹시 불안해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그 사진을 내 놓으라고 소리 질렀어. 그 사진으로 도데체 무엇을 할 생각이냐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지.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를 찾아가지 않아도 네가 나를 찾아 온다는 것이 행복했던 나는 너의 웃음은 볼 수 없었지만 다른 형태로라도 네가 나를 찾는 게 기뻤어. 심지어 나 때문에 죽어버리고 싶다. 라고 말해줘서 좋았어. 그 은발의 사무라이가 죽으면 함께 죽겠다는 네가. 나 때문에 죽고 싶다고 해줬다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이 나를 전율하게 만들었어. 너의 머릿속이 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는 것이 행복해서.. 사실 나는 너의 아름다움을 찍은 사진을 어떠한 용도로도 쓸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너는 내가 그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내거나 보여주려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내가 미쳤어? 사랑하는 너의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비록 다 담아내진 못했지만) 담은 사진을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렇게 한참을 그 사진으로 인해서 너는 내 앞에 나타나서는 그 사진을 돌려달라고 빌다가, 가끔은 폭력적으로 변해서 나에게 덤비다가 하는 것을 반복했어. 그런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어. 그래서 일부러 너에게 그 사진을 한 장씩 보여주면서 일부러 더 자극하기도 했어.


그러던 어느날, 네가 지쳤는지 내 앞에 나타나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어떻게 할까? 내가 어떻게 해야겠어? 오빠와 함께 가는 것 빼고 다른 원하는 것을 말해’ 라고 했어. 일단 너를 쥐고 있는 것은 나였으니까 같이 가자고 급히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말했지. 와서 내게 키스해. 내 말에 한참 망설이길래 내가 ‘그 은발의 사무라이에게 이 사진을 보낼까?’ 하고 장난스럽게 말하자 그딴 짓을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 지르면서, 텅빈 눈에 분노를 가득 채우고, 또 다시 투명한 보석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의 입에 입을 맞추었어. 내 입에 너의 부드러운 입술이 맞닿을 때, 그리고 내가 너의 어깨를 붙잡고 너의 입안을 헤집을 때.. 나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누군가를 보고 싶다 라는 감정과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너라는 존재가 나에게 가득 스며들었거든. 그리고 그 순간 다시 깨달았지. 너와 나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내가 너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 나와 마찬가지로 너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너에게 불길하고 싫은 존재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둘 중 어느 경우라도, 나는 너에게 떨어질 수 없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꼬리표이자, 그 뒷면엔 사랑이라고 쓰여 있는 꼬리표야. 아무리 떨어트리려고 발버둥 쳐도 떨어지지 않을 거야. 그것은 변하지 않아.


그리고 내가 약간의 심경의 변화를 겪은 건. 니가 나에게 와서 강경하게 태도를 취했을 때였어. 찾아와서 내 앞에 섰을 때는 평소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였는데 내가 어느 때와 같이 너의 손목을 잡았을 때 나의 손을 힘껏 뿌리치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고 침착하고도 냉정하게 말했어. 내가 사진으로 협박을 했는데도 좋을 대로 하라면서 그대로 나가버렸지. 니가 나를 상대로 벌인 도박이었을 거야. 넌 성공했고 나는 내가 너에게 한 협박처럼 너의 사진을 이용할 생각은 없었기에 나를 찾아오지 않겠다는 너를 처음엔 마냥 기다리다가, 이내 너를 찾아갈 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나는 너의 집 주변에서 기척을 숨기고 지켜보다 기억해냈어. 어느 순간 잊고 있었던 너의 미소를. 은발의 사무라이와, 안경과 함께 웃으면서 행복해 하는 너의 잊고 있던 너의 미소를 다시 보고는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었어. ‘죄책감’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걸 알지만 그 미소를 두 눈으로 보는 것이 괴로웠어. 뭔가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은 강렬한 뜨거움을 느꼈거든. 그래서 나는 숨어서 너를 지켜보기만 했어. 그리고 돌아와 누워서 멀건 천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너의 말대로 나는 미쳤던 거야.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너를 내 앞으로 인도했던 그 사진을 한 장 한 장 바라보면서 나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어. 나의 이런 수단으로는 너의 미소는 커녕 너를 내 앞으로 절대로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거야. 이미 늦어버린 그 순간에.. 너도 알다시피 사람을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에겐 어려웠어. 사랑하는 너에게도 어떻게 해야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니가 내 마음을 알아줄지 표현할 방법을 몰랐어. 사실 지금도 잘 몰라. 그리고 그 문제의 사진을 그대로 버릴까도 했지만 이미 이 사진을 가지고 수 없이 협박을 해왔던 내가 이 사진을 버렸다고 말해도 네가 쉽게 믿을 것 같지 않아서.. 너에게 보내기로 결심했어. 가방에 들어있는 것이 모든 것이야. 필름이며 사진이며 모든 것을 다 넣었어. 나는 더 이상 너에게 이 따위 것으로 협박하지 않을게. 그 동안 너를 괴롭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나는 너에게서 떠나진 않을 거야. 아니 떠나지 못할 거야. 그렇다고 찾아가지도 않을 거야. 그냥 네가 나에게 돌아올 것을 알기에. 내 죄의 무게를 짊어지고 네가 나를 용서하고, 나의 얼굴을 보고 웃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 너의 꼬리표인 나는 너를 영원히 떠나지 못할 테니까. 너도 나를 결코 떼어낼 수 없을 거야. 그것이 너와 나의 운명이라고 나는 믿어.











-
편지와 별개로 마지막 장에는 그의 이름과 그의 주소와 그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편지를 접어서 다시 본래대로 편지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얼굴도 모르는 차이나의 오빠라는 사람에게 강한 유대를 느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나갈수록, 나와 너무 닮았다고 느꼈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느끼는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이 그가 그의 여동생인 차이나에게 느끼는 감정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내가 형씨에게 느끼는 감정조차도 비슷해서 놀랐다.

차이나가 그때 나에게 구해졌던 그 때, 차이나는 찾아온 이 오빠라는 사람에게 심한 말을 했고, 모든 것을 뉘우치고 카구라에게 용서를 빌으려고 찾아왔던 이 오빠라는 사람은 그 화를 참지 못하고 평소 그랬던 것과 같이 폭력을 행사했던 것 같다. 나는 이 편지를 작성한 그가 너무 안쓰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나와 동질감을 느껴서 더욱 그랬을지도. 꼬리표라.. 이 녀석이 써 놓은 이 단어를 보면서 나도 히지카타에게 꼬리표 같은 존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의,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그리고 동료라는 이름까지 함께 첨가 되어있는 꼬리표겠지. 그렇기에 훨씬 더 깊고도 복잡 미묘한거야. 너와 나는.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이며, 사랑하는 사람이고 동료이기에 구분해야 할지 구분하지 않아야 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 찾아오면서, 너는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 너무나 복잡해져서 나에게로 오는 도중에 미쳐버린거예요. 히지카타씨. 그래서 형씨에게 잠시 도피해 있는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떨어지지 않으니까 꼬리표는.












-
날이 밝고 나서 아침 일찍은 아니고 느즈막한 오전 쯔음에 병원을 다시 찾았다. 잠깐 보고 나도 둔영에 돌아가봐야 하기에 제복을 입고 간 나를 보고 간호사는 경찰이였냐며 사복을 입고 있을 때는 전혀 모르겠다며 필요 없는 이야기를 잠시 늘어놓았다. 병실을 일러주는 것을 보아하니 큰 이상은 없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알려준 병실로 향했다.


‘207호’

문을 벌컥 열자 병원 밥을 와구와구 먹고 있는 이 꼬맹이를 보고 잠시나마 걱정했던 내가 한심해서 쳇 하고 투덜거리곤 물었다.


“괜찮냐? 먹는 걸 보니 괜찮나보네”

그리곤 그 침대 옆 의자에 앉아서 퇴원을 언제 할지 물었다. 이 꼬맹이는 열심히 밥을 오물거리면서 먹다가 옆에 앉은 나를 생소하게 쳐다보더니 밥을 먹던 숟가락을 놓고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뭐야?”

“....”

“뭐냐 어색하게? 먹던 거 마저 먹어. 언제 퇴원할거냐고 묻잖아”

“...아.. 나한테 물어보는거냐 해..?”

“그럼?”

“..아.. 아저씨. 우리 아빠랑 오빠는 어디에 있냐 해? 난 잘 모른다 해”

...아저씨? 장난하나 이런 농담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너무 연기를 잘해서. 아저씨라니

“야, 장난하냐? 빨리 처먹어 가자”

“....무...무섭게 왜 그러냐 해..”

“니가 나를 무서워 할 녀석이냐?”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다시 이야기 하고 농담 삼아서 진짜로 죽고 싶지 않으면 이런 농담은 그만두라고 말했다. 그러자 차이나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하는 말.

“...아저씨. 자꾸 저한테 그러면 우리 아빠랑 오빠한테 이를 거예요. 우리 아빠랑 오빠 되게 무서워요”

이 꼬맹이가 내가 알던 꼬맹이가 아닌 것처럼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는 나를 쳐다보는 게 황당해서 뭐라고 답을 해야 할 지도 찾지 못한 채 한참 쳐다보고 있는데, 담당의사가 나를 따로 불렀다. 그 의사는 방으로 불러선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일부의 기억이 사라진 듯 합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현재는 어릴 때의 기억만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안심하던 나는 다시금 약간의 불안함 휩싸였다. 어떻게 하지? 이 꼬맹이가 나와 있다가 이렇게 다쳤다는 데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짓눌러서, 그리고 그 책임이 나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올까봐, 형씨가 나를 의심하면서 나에게 죄를 씌워서 그에 의해 히지카타가 나를 미워할까봐 나는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어느 곳에도 연락을 취하지 못하고 그냥 이 꼬맹이에게 다시 찾아갔다. 의사의 말로는 검사는 계속 하겠지만 그저 스스로 찾는 수 밖엔 없다고 했다. 찾아줄 수 있는 방법은 병원에선 딱히 없다며 퇴원은 해도 좋고, 검사 차원으로 병원에 데리고 오라고 했다.


“가자”

“...오빠가 모르는 아저씨는 따라가지 말라고 했다 해” 
 
“아저씨 같은 소리 집어쳐라.. 나 너랑 4살 차이밖에 안나거든?”

“4살?”

이 꼬맹이는 아이처럼 손으로 하나하나 세어보더니,

“어? 우리 오빠랑 동갑이다 해! 그럼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

이 꼬맹이는 지금 어린애인 듯하다.

“경찰오빠면 착한사람인거 맞냐 해?”

.........소름이 돋았다. 오빠 같은 소리하네. 나는 다시 침착하게 생각을 다잡고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이 꼬맹이를 데리고 왔지만 그 전에 같이 있었던 적이 없고, 그저 지나가다가 다친 이 꼬맹이를 보고 병원에 데려다준 사람이다. 무서워 할 필요 없다. 무서워 할 필요 없다... 나는 그녀가 처음에 매고 왔던 배낭을 그녀에게 건냈다.

“응 착한 사람이지. 그리고 너 나랑 친한 사이야. 니가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아. 아빠랑 오빠는 지금 없어.”

“.....나.. 나랑 친했다고?”

“응 니가 기억을 못해서 이 경찰아저씨는 슬프다야”

내가 팔짱을 끼고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이 꼬맹이가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냐! 나 아저씨..아니 오빠 좋아요! 경찰이면 엄청 훌륭한 사람 맞죠? 엄청 착한 사람 맞죠?”

“뭐... 그렇지”

훌륭한...? 경찰이라는 직업이 아이들에겐 이렇게 선량한 이미지로 다가간다는 것이 조금은 좋게 작용한 것 같다. 직업의 힘을 빌어서 우선 퇴원시키는 것은 성공시켰는데 이 꼬맹이가 나에게 딱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형씨에게 데려다 줘야 해서 해결사 사무실에 가는데 이 꼬맹이가 자꾸 어딜 가냐고 물었다.

“너희 집으로 가잖아”

“우리 집? 경찰오빠는 우리 집도 아냐 해?”

“...오빠라고 하지마. 차라리 그냥 아저씨라고 해라”

“왜! 우리 오빠랑 동갑인데!”

행동조차 영락없는 어린애처럼 고개를 홱 돌리곤 화난 척을 하더니 이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야?”

“손!”

“...?”

“우리 오빠는 맨날 내가 손 잡아준단 말이야”

[어렸을 때의 네가 생각나. 어려서 항상 나의 손을 꼭 붙잡고 다녔었는데..]

나는 그런 이 꼬맹이의 말과 손을 무시하곤 먼저 앞서서 걸어갔다. 이 꼬맹이는 거의 울먹거리면서 왜 먼저 가냐 해! 하면서 날 바짝 쫓아왔다.




형씨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 꼬맹이는 내 뒤에 숨어서 형씨를 쳐다봤고, 갑작스럽기도 하고 찾아올 거라고 생각도 못한, 반갑지 않은 손님인 나를 보고 형씨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뒤에 숨어있는 카구라를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다시금 나를 쳐다보았다. 형씨는 이 꼬맹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 챈거다.



해결사 사무실의 쇼파에 앉았을 때 이 꼬맹이는 내 옆에 바짝 앉아서는 저 사람 누구냐 해? 하고 작게 물었다. 그 말에 나는 아마 너랑 같이 사는 사람이야- 라고 답하자 이 꼬맹이는 형씨를 무서워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뭐냐 이 시츄에이션?”

형씨는 약간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지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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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17

2015. 8. 19. 13:55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나, 너랑 놀아주러 왔다 해. 고맙지? 너 친구 없잖아”

 

차이나는 뒤에 배낭 같은 것을 매고 와서는 젖은 우산을 신발장 옆에 세워두고, 배낭을 내려놓더니 침대에 누워있는 내 앞에 바짝 다가왔다. 누워있는 침대 앞 바닥에 앉아선 나와 시선을 맞추곤 이어서 말했다.

 

“왜 대답 안하냐 해”

 

“.. 너 같은 친구는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

 

“거짓말! 지금 완전 감동해서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거 다 안다해, 이 자식아! 나처럼 예쁘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왔는데 안 기쁠 남자가 어딨냐 해!”

 

“두고 간 가방은 저기 구석에 있어. 가지고 꺼져”

 

“..나 긴짱한테 3일 동안 여행간다고 하고 왔다 해”

 

“좋겠네”

 

“너랑 놀꺼다 해”

 

피곤해. 뻔뻔스럽게도 내 앞에서 절대 나갈 생각이 없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선 특유의 고집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이러는거 형씨가 알아?”

 

“.....당연히 모른다 해. 알면 네 녀석 긴짱한테 죽을꺼다 해”

 

“내가 왜 죽어?”

 

“이렇게 예쁜 여자애랑 그냥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 긴짱은”

 

미친.

 

“그.. 그러는 넌 이러는거 마요라 녀석이 알고 있냐 해?”

 

“내가 뭘 어쩌고 있는데?”

 

“나랑 이렇게 은밀하게 만나는 거”

 

“말은 바로 해라. 은밀하게 만나는 게 아니라 니가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거잖아”

 

내 말에 이 꼬맹이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우다가 자기도 누워서 자고 싶다면서 내 옆에 털썩 누웠다. 아무렇게나 팔을 뻗어서 내 얼굴을 툭 치고는 아이고- 미안 하고 말하며 옆으로 누워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는 말.

 

“뽀뽀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해”

 

...

나는 내 옆에 있는 만화책으로 이 꼬맹이의 얼굴을 툭 내려치며 말했다.

 

“완전 암퇘지네 이거”

 

내 행동에 차이나는 나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네 녀석은 나한테 고마워 해야된다해! 긴짱이 하는 말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워 해야 한다고 했다해!”

 

“아- 그렇구나”

 

“그래 이 녀석아! 내가 얼마나.. 너.. 조... 좋아하는데..”

 

꼬맹이가 당당하게 말할 땐 언제고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홱 몸을 돌렸다. 뭐냐 새삼스럽게.

 

 

 

 

 

 

 

 

 

-

꼬맹이는 자는지 쌕쌕 소리를 내면서 이불을 뒤집어 쓴 그대로 얌전히 있었고, 나는 계획대로 누워서 쌓아놓은 만화책을 봤다. 옆에 누워있는 꼬맹이가 조용히 있어서 그런지 나도 순간 이 꼬맹이의 존재를 잊고 한참 만화책을 보다가 티비를 보다가 하면서 아무 의미 없는 휴일의 시간을 때우고 있다가 시간을 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여전히 비는 시원하면서도 새차게 내리붓고 있었다.

 

“야. 일어나”

 

나는 이불을 확 걷어내면서 꼬맹이를 깨웠다.

 

“으음... 뭐냐 해..”

 

“집에 가. 늦었어”

 

눈을 비비고 그 자리에 앉아서 나를 한참 보더니 다시 말했다.

 

“여행 간다고 말하고 나왔다 해, 지금 가면 긴짱이 놀랄꺼다 해”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나랑 관계없잖아. 나가”

 

나는 구석에 있는 이 꼬맹이가 놓고 간 가방을 들고 와서 그녀에게 그대로 던졌다. 그 가방을 받아든 그녀는 잠시 들고 있더니 다시 그대로 나에게 던졌다.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 하냐 해?”

 

“그럼 뭐라고 해?”

 

“좀 좋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않냐 해!”

 

“...그렇게 이야기 하는 법 몰라. 나가”

 

나의 말에 그녀는 더 화가 치밀었는지 침대에서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와서는 멱살을 잡곤 재수 없다고 했다. 그걸 이제 안 것 마냥 이야기 하는 이 꼬맹이가 이상했다. 내 성격 뻔히 알면서 새삼스럽게. 화가 났는지 배낭을 매고 우산을 들곤 문을 부서질 듯이 세게 닫고 나갔는데 또 전에 그 가방을 두고 간 것을 보고 이번엔 가져가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가방을 들고 바로 그녀의 뒤를 쫓으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이 꼬맹이는 그저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나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인지는 나로써는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이 꼬맹이에게 그 가방을 내밀었다.

 

“이거 놓고 갔어”

 

나의 그런 말과 태도에 더 화가 났는지 그녀는 그 가방을 받고는 신경질스럽게 바닥으로 내던졌다.

 

“너.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새끼다 해”

 

응 맞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그럼 웃으면서 다정한 행동이라도 해줘야 한단 말이야?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지. 난 히지카타가 말한 것 같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 칠 정도로 내 마음을 속이면서 치사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간사한 사람은 아니니까.

 

바닥에 내던진 그 가방을 그대로 두고 가려길래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거 오빠한테 받았다면서. 그럼 귀중한 거 아니야? 가져가 그리고 다시 오지마”

 

그렇게 말하곤 바로 그 가방을 주워들었는데, 가방이 열려 그 안의 내용물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딱히 별 것은 아니었다. 사진 같아 보이는 것들이 뭉치에서 여러 장 떨어져 하얀 뒷 면을 보이며 떨어졌다. 별 생각 없이 다시 담으려 그 떨어진 것들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녀도 이 가방 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기 때문에 떨어진 것들을 보고 약간 움찔 하면서 같이 줍기 위해 내 앞에 바짝 다가왔다. 보지도 않고 주워서 넣다가 나도 모르게 뒤집어진 사진 한 장을 뒤집어 본 순간. 그 자리에서 돌이 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그 사진이 담고 있는 내용은 내 눈 앞에 있는 이 꼬맹이의 사진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뽀얀 몸을 보이며 거칠게 폭력을 당했는지 상처도 여러 곳 있었고, 얼굴엔 눈물까지 흘리면서 발가벗겨진 채 손 발이 묶여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이 찍힌 곳은 평범한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다다미방이었고. 주변 배경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바닥만 보이는 구도였다. 충격적인 내용의 사진이 나의 시선을 못 박아 고정시켜 놓은 듯 나는 멍하니 그 사진을 바라보았고 이 꼬맹이도 그 사진의 내용을 보았는지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보......보지마!”

 

그녀는 내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거칠게 빼앗아 들고는 나를 거칠게 밀었다. 나는 충격에 그저 멍하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녀가 밀어낸 체로 넘어져 멍했다.

 

“..씨....씨발.. 이런 씨발 미친새끼... 이런 개새끼..”

 

이 꼬맹이도 당황하고 이성을 잃어보였고 욕을 중얼거리면서 거칠게 가방안에서 흘러나온 것들을 떨리는 손으로 아무렇게나 집어서 담았다. 진정되지 않아서 가방에 담은 것들이 삐져 나왔다가 다시 그것들을 거칠게 주워서 넣었다가 하는 행동이 무언가에 홀려 몹시 불안정해보였다.

 

“너......봤어?!”

 

나에게 말하는 이 꼬맹이의 눈이 제 정상이 아니어서 섬뜩했다. 다시 나에게 봤냐며 거칠게 물어왔고 나는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씨... 씨발...죽여 버릴 거야! 이런... 이런 미친 새끼”

 

그 말을 남기고 멍하니 있는 나를 뒤로 하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한참 나는 무슨 상황인지 생각할 수도 없이 사고가 멈추어 있다가 이내 이 꼬맹이가 무슨 사고라도 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그녀를 뒤 쫓았다.

 

비는 여전히 거칠고 흉악하게 쏟아졌고 내가 이 꼬맹이를 찾은 곳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사람이 없는 도로에서였다. 한 가운데에 쓰러져 빗물과 함께 붉은 피가 튀어 오르며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엔 문제의 가방이 함께 비를 맞으면서 놓여있었다. 자동차 사고가 난 듯 하다.

 

 

 

 

 

 

 

 

 

-

그녀를 들쳐 업고 근처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야토족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흥건하게 젖어 있는 피를 보니 이런 나도 지레 겁을 먹었는지 무서웠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유대가 있는 사람의 죽음 앞에선 당연히 무서운 법이다. 무서웠다. 병원에 데려다 놓고 로비에 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어 멍하니 있다가 형씨에게 연락을 취해햐 하나 하고 한참 고민했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화면에 띄워놓은 형씨의 번호를 보고 통화 버튼을 계속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연락을 취하진 못했다. 우선 형씨와 나의 사이가 현재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의도와 다르게 혹시나 내가 이 꼬맹이를 이렇게 만들어 놨다고 의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선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앉아있다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깜빡 잠이 들고 말았는데 간호사가 의자에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고는 말했다.

 

“카구라씨 보호자 되시죠? 수술 성공적으로 끝났고. 마취 때문에 잠들어 있어요. 여기에서 이렇게 자지 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세요”

 

그 말에 완전히 안심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병원을 나왔다. 다행이다. 나의 공간에 돌아왔을 때 문 앞에 떨어져 있는 흰 봉투를 발견하고 무엇 인지 모르지만 주워 들곤 들어왔다. 그 꼬맹이의 문제의 가방은 다시 내가 가지고 돌아와 한 쪽 구석에 던져놓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이제야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는지 이것저것 생각이 들었다. 그 꼬맹이의 오빠라는 사람은 도데체 어떤 사람이길래 동생의 그런 사진을 찍어두고 직접 전해주기까지 했을까. 야토족이 폭력적인 종족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런 식의 방법을 쓴다는 것이 이상했다. 나에게는 누나라는 존재가 너무 소중했었는데 그 녀석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가족이라는 것에 대한 애정은 없는 것일까?

 

아까 문 앞에 떨어져 있던 봉투를 보고 무엇인지 앞 뒷 면을 살폈다. 뒷 면에 [카구라에게]라고 써 있는 것을 보니 문제의 그 가방에서 떨어진 편지인 듯 했다. 꽤나 많은 것이 들어 있는 듯 두툼해서 앞 뒷 면을 계속 살피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봉투안에 들어 있는 종이를 꺼내들었다. 원래 이런 것을 궁금해 하지도 않고 관심 가지지도 않지만, 이 꼬맹이가 말한 오빠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남의 편지를 함부로 읽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 종이를 펼쳤다. 얼핏 훑어본 그 종이엔 글씨가 여러 장으로 빼곡 하게 쓰여 있었다. 정성스럽게 썼는지 글씨를 못 쓰는 사람이 글씨를 잘 쓰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여 첫 장부터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

사랑하는 카구라에게

 

안녕 카구라. 오빠야.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말로는 나의 생각을 얌전히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항상 찾아가도 나를 보는 너의 표정이 좋지 않고 나의 무슨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서.. 난 항상 슬펐어. 그러다 보니 이성을 잃고 너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 같아. 사과할게. 나의 본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도 항상 후회했어. 너를 만나고 이런 식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내가 싫어서 나의 피를 원망한 적도 있어. 이런 말 어울리지 않지? 하지만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어렸을 때의 네가 생각나. 어려서 항상 나의 손을 꼭 붙잡고 다녔었는데.. 어머니가 살아 계실때만 해도 나도 이렇지 않았어. 그립다. 그 때의 순간이 말이야. 그땐 너도 나에게 환하게 웃어줬었는데 말이야. 오빠- 오빠 하고 나를 부르는 네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난 어렸을 때부터 네가 너무 좋았어. 다시마초절임을 오물오물 씹어 먹는 그 입술, 나를 쳐다보는 파란 눈동자 그리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좋았거든. 평생을 너와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와 싸웠던 나도 홧김에 집을 나가고 나서 한참 바깥을 겉돌면서 주로 사람들과 싸우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어. 시비를 걸어오는 깡패들. 조금 강해보이는 사람이라면 내가 시비를 걸기도 하면서 내 안의 화를 표출하면서.. 사람도 많이 죽였어. 웃고 있는 내가 만만히 보이는지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도 많았거든. 주로 덩치 큰 남자들. 나에게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사람들이 그렇게 시비를 걸어오면 웃기기도 했어. 아마 너도 옆에서 봤다면 웃었을 거야. 그 때 너를 데리고 갔다면 좋았을 걸.. 그렇게 무의미하게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가 몇 달이 지나고야 문득 정신이 들었어. 네가 너무 보고 싶었거든. 걱정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그렇게 강력하게 보고 싶다 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어. 너는 항상 옆에 있었기에 더 그랬겠지? 누군가와 싸워서 이기고 싶다. 어서 싸우고 싶다 라는 마음보다 더 강력하게, 이유 없이 니가 보고 싶어서 의아했지만 나는 곧 바로 집으로 돌아갔어. 근데 그때 이미 너는 없더라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좌절했는지 몰라. 너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찾아다녔는데 어디에도 없더라. 찾아다니다가 또 사람들과 싸우고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화가 나기도 했어 도데체 어딜 갔길래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만난다면 먼저 화부터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내 눈앞에 나타나 달라고 기도했다가를 반복하면서 처음엔 보고싶다라는 감정에 이기지 못해서 힘들었어. 그러다가 시간이 점차 지남에 따라서 나도 무뎌지더라고. 가끔 생각나면 어디에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있다면 보고 싶다. 하고 생각하면서 먹먹해지기도 했지. 그땐 그것도 그냥 잠깐 생각났을 때의 아련함이었지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어. 거의 난 포기하고 있었거든.

 

다른 사람들과 싸우면서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서 우연히 지구라는 별에 가게 됐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것은 너와 내가 다시 만날 운명이 나를 이끌었다고 생각해. 사실 난 그때 지구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사무라이 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그 곳에 가면 더 강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니 가자면서 날 설득해 대길래 마지못해 수긍했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날 설득해준 그 사람들이 참 고마워. 뭐.. 지금은 이미 내가 다 죽여버렸지만.

 

지구에서 널 우연히 만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했어. 생각치도 못했거든. 어릴 때와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은 너의 모습을 보고 정말 맞나. 카구라가 맞나 계속 쳐다봤어.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어. 너에게 말을 걸으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려는데 네가 어떤 사람을 향해서 이름을 부르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달려가는 모습을 봤어. 은색 곱슬머리의 동태눈깔을 한 사람이었어. 옆에서 안경을 쓴 이상한 녀석과 셋이서 웃으면서 무언가를 사서 돌아가는 너의 모습을 보고 그 순간은 이상하게 너에게 다가가지 못했지만 너의 소재지를 파악해 놓고 니가 혼자 있는 순간을 계속 기다렸어. 그 순간이 많지 않았고 혼자 서성이는 날이 많아서 지켜보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네가 혼자 나왔을 때 나는 너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어. 벅찬 가슴을 누르지 못하고 다가갔을 때 너는 이상하게 나를 보고 놀라하면서 약간은 무서운 표정을 드러냈지. 나는 네가 왜 나에게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어. 나에게 왜 찾아왔냐고 물었을 때 나의 심정이 어땠는지 알겠니? 너는 나에게 자신을 두고 간 가족이라며 냉랭하게 말했어. 나도 나의 잘못을 알기에 별 다른 말을 하진 못했어. 얼마나 혼자 힘들었는지 생각은 해 봤냐며 화를 내는데 난 화를 내는 너도 좋았어. 함께 돌아가자고 말을 하면 네가 굉장히 행복해 할 줄 알았어. 근데 그 말을 했을 때 너의 반응이 난 지금이 행복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를 방치하고 내버려 둔 사람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해서 놀랐어. 하지만 나는 너도 나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그래서 그 기다림과 보고싶다는 감정의 끝에 화를 내는구나 하고 생각해서 그런 투정을 받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 난 어쨌든 너의 오빠니까.

 

그 이후로 나는 너를 몇 번 더 찾았어. 그런 투정쯤은 받아 줄 수 있었기에 상관 없었어. 싫다는 너를 달래고 다음에 또 찾아오겠다. 이런 식의 대화를 하고 돌아가는데 나에게는 미소조차 보이지 않고, 그저 냉랭하게 말하는 네가 같이 사는 은발의 사무라이에게는 웃으면서 안기고, 이름을 부르면서 말하고, 귀찮아 하는 그에게 산책을 하러 가자는 둥, 뭐 갈비를 먹으러 가자는 둥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워 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그 날 질투심에 가슴이 너무 답답했어. 그 화를 풀기 위해서 그 날은 이유 없이 닥치는 대로, 강하건 약하건 사람을 다 죽여버렸던 것 같아. 그런 대량학살 후. 그래도 그 화가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기분만 더러웠어. 내가 죽인 사람들은 의미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겠지. 근본적인 문제인 그 녀석을 죽여야했어. 그 은발의 사무라이 말이야. 강한 사람의 냄새를 맡는 나는 그에게도 강한 사람의 냄새를 느꼈어.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감에 행복하기까지 했지. 강한 사람과 싸운다는 흥분감과 그에게서 빼앗긴 너를 되찾는 다는 것까지. 행복했어.

 

그래서 그 날은 웃으면서 네가 그 녀석과 살고 있는 해결사 사무실로 당당히 찾아갔어. 문을 열어준 것은 너였는데 문을 열어주는 모습이 어릴 적에 내가 돌아오면 오빠 왔어? 하고 웃으면서 문을 열어주던 네가 생각나서 씁쓸하더라.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나의 팔을 붙잡고 따라오라면서 나를 끌고 골목으로 데려갔어. 손을 잡아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나에게 따지듯이 왜 찾아 왔냐 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냈지. 그 날 사무실엔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며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을 했는데 그 표정도 예뻐서 좋았어. 다시 한번 같이 가자고 말했는데 너는 조금의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단호하게 싫어! 하고 말했어. 나에게는 상냥하지 않은 너의 모습에 순간 나는 화가 나서 너에게 그 은발의 사무라이를 죽여버리겠다고 거칠게 말했어. 그러자 네가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긴짱을 죽이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거다! 죽일 수 있다면 죽여봐라! 그 사람이 죽는다면 나도 같이 죽을거다! 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진심으로 들려서 할 말이 없더라. 그딴 녀석이 뭐라고 죽인다면 같이 죽겠다고까지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한참 너를 쳐다봤어. 그날 너와 헤어져서 한참 생각했지. 니가 그렇게 날 협박해오니까 난 그를 죽일 순 없었어. 카구라, 너는 왜 가족인 내가 아닌 그를 선택한거야? 태어날 때부터 함께해온 내가 아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를 더 생각하는 거야? 어째서? 나의 이런 마음을 짓밟으면서까지 그를 택한 거야? 우린 진한 피로 이어져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할 가족이야. 그 어떤 인연도 우리보다 진하지 않을 거야. 가족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있어? 누구보다 친근하고 사랑해야 할 사이야. 너를 버리고 간 나에 대한 분노에 나에게 조금 심하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땐.

 

돌이켜보면 그러면서 너에게 이상한 집착이 생겼던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여 버리는 나인데,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은발의 사무라이를 죽일 수도 없는 상황이 닥치니 나는 그 갈증을 어떻게 해소해야할지 몰랐어. 그 이후로도 항상 너를 찾아갔고 끈덕지게 너에게 같이 가자고 말한 것 같아. 다정하게 말해보기도 하고, 화를 내면서 말해보기도 하고, 약간의 협박어조로 말해보기도 하고... 어떤 것도 너의 강경한 태도를 풀지 못했고 나는 나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너에게 말했지. 기억하지?

 

카구라 제발.. 나랑 같이 가자. 내가 잘할게. 미안해 앞으로는 너를 절대로 혼자 두지 않을게. 제발.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말했어. 그런 나를 보고 너도 놀랐는지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면서 전처럼 곧 바로 단호하게 싫다고 말은 하지 않고 대답이 없이 나를 쳐다보았던 것이 생각나. 이때.. 나는 드디어 니가 나의 마음을, 나의 진심을 알아줬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한참의 침묵 후에 너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어. 미안해 오빠. 난 오빠와 가지 않아. 지금이 행복해. 라고.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너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에게 거절의 말을 들었다는 것이 나에겐 커다란 상처가 되었어. 그리고 그 날 너에게 처음으로 폭력을 행사한 것 같아. 아팠지? 미안해. 근데.. 나도 너만큼 아팠어.

 

저항 하지 않는 너를 한참 때리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버렸나 해서 너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는데 상처투성이인 네가 나에게 힘없이 이제 화가 풀렸으면 다시는 나에게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해서 순간 더 화가 치밀었어. 내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은 그런 말이 아니란 말이야...

​-

카무카구 다이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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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16

2015. 8. 19. 13:54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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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는 나를 다른 대원들보다 더 냉랭하게 대했다. 그런 그의 태도가 화가 났지만 현 상황에서 화를 낼 수 없어서 그저 조용히 그의 말에 따르면서 죽은 듯이 조용히 지냈다. 우리 사이에 낀 형씨라는 존재가 나와 그의 사이에 다른 차원을 열어준 듯 그와 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그와 평생 이렇게 지내게 되는 건 아닐까, 다시는 나를 사랑하는 히지카타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다시 조바심이 들었다가, 진정하라고 나 혼자 위로했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살인자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었고 나는 항상 내가 쌓아올린 시체의 산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이 이상 큰 죄를 지을 수 없을 만큼,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큰 죄를 짓고 있어서 나에겐 한 둘쯤 더 베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히지카타는 나에게 항상 ‘우리의 힘은 정의를 위한 것이다’라고 가르쳤었는데 나는 히지카타를 무작정 따라가기만 했을 뿐, 그가 말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정의를 알려주던 네가 사라져버린 지금 나는 내가 짓밟고 서 있는 이 시체의 산이 녹아내려 늪이 된 듯이 나를 서서히 집어 삼키며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 ‘정의’라는 게 뭐야? 어떤 것을 보고 바르다고 말하는 거야? 그 기준이 되는 것은 뭐야? 내가 빼앗긴 것을 되찾는 것도 정의라고 부를 수 있는 거 아니야?

 

누구든 우스겟 소리로 아- 죽여버리고 싶다. 라고 말하는 경우는 많지만, 나는 그것을 말 뿐이 아니라 실현 시킬 수 있기에 형씨의 집을 부쩍 자주 찾아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형씨를 죽이고 싶은 마음에 사전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냥 들어가서 죽이는 것이 어울리는 내가 사전조사를 시작했다는 것부터 나는 형씨를 이길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은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형씨가 집에 없을 때도 있고, 있을 때도 있었는데 빈틈투성이인 그를 보고 나는 오히려 더 무서웠다. 형씨는 저렇게 허술해 보여도 귀신같이 잘 알고 있는, 내가 인정한 얼마 안 되는 사람 중의 한명이기 때문이다. 혼자 그렇게 형씨의 집 근처를 돌면서, 멀리서 망원경으로 형씨를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불현 듯 든 생각은 나를 더욱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만약 반반의 확률로 형씨를 죽이는 것에 성공한다면 히지카타가 나에게 돌아올까? 만약에 돌아오지 않으면..? 미쳐버린 그 상태에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형씨를 그에게서 떨어트려 놓는 것은 성공하겠지만 미쳐버린 히지카타가 나를 지금보다 더 미워해버리면 어쩌지? 정말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그것은 모르는 일이었다. 망원경으로 지켜본 형씨는 여전히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쇼파에 누워있었다. 형씨는 정말 대단해요. 히지카타를 미치게 만들고, 그래서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완벽하게 덫까지 설치해놓고... 역시 내가 인정한 사람이야. 그 정도 되니까 나의 것을 빼앗을 수도 있었겠지요.

 

나는 그런 그에게 느끼는 패배감에 그 이후론 그를 살해하기로 한 마음은 모두 접었다. 나는 그를 죽일 수 없는 위치였다. 죽이고 싶다는 살의는 어느 때보다 강했지만 그는 죽여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

히지카타에게 저항 할 수 없는 나는 한참 고민했다. 그를 너무나 원하고 있지만 내가 말을 걸어올 때 그의 얼굴에 비취는 그의 냉랭한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 그가 나에게 오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고민 끝에 홀연히 둔영에서 잠시 사라지기로 했다. 내가 있을 곳은 히지카타 너만이 알고 있는 곳이잖아. 자. 나를 찾으러 와주세요. 그러나 어느새 나의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네가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미쳐버린 그가 그의 본성마저 잡아 먹었을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아- 나조차도 너를 의심하고 있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극한 상황에서 너는 나를 택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나는 잘 알아.

 

 

나의 공간에 들어온 나는 침대에 털썩 누워서 멍하니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수갑이 툭 하고 아래로 떨어졌고, 나는 그것을 주울 생각도 없이 힘없이 축 늘어져 누워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형씨도 여기에 왔었겠구나. 내가 모르는 시간을 히지카타와 여기에서 보냈겠구나. 이 공간 마저도 나와 그가 둘만이 공유하고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가 둔영에서 홀연히 사라진지 이틀째. 몇 명에게 연락이 왔지만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꺼놓지도 않았다. 내가 기다리는 그에게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깐 갈등을 겪은 건 곤도씨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였다. 곤도씨가 걱정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 잠깐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 받을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아직 내가 기다리는 그가 나를 찾지 않았기에 그대로 울리는 핸드폰을 옆으로 치워두었다. 하루 종일 울려대는 핸드폰 진동소리 때문에 나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통화 목록엔 야마자키 야마자키 곤도씨 곤도씨 1번대 애들, 그리고 다시 야마자키, 곤도씨.... 다시 1번대 애들, 곤도씨, 야마자키.. 어쭈. 수 많은 통화목록에 니가 없다고? 나는 팔짱을 끼고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히지카타에게 문자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자를 하는 중에도 자꾸 전화가 와서 끊어지길 기다리기를 반복해야 해서 짜증스러웠다. 전화 좀 그만해. 니네 전화 기다리는 거 아니란 말이야.

 

[히지카타]

 

이렇게 쓰고 그 후에 뭐라고 써야할지 약간 망설였다.

 

[히지카타 보고싶어]

 

전송-

 

내가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전화가 울렸다. 히지카타였다. 아- 다행이다. 너 역시 날 걱정하고 있었구나. 근데 왜 날 찾아오지 않아.. 여기 있을 거라는 거, 너라면 예상 하면서. 황급히 받아든 전화에서 그는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에서, 나를 찾았다는 사실에서, 나는 그 순간이 괜시리 너무 감동해서 숨이 막힌 듯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얼굴은 보고 있지 않지만 형씨가 다른 차원에 데려다 놓은 그와 드디어 연결된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었다.

 

[뭐야..]

 

“...”

 

[뭐해 너]

 

“...”

 

[장난하지 말고 돌아와 다들 걱정하잖아]

 

“...”

 

[듣고 있어?]

 

“응..”

응 듣고 있어.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잘 있으면 됐다. 빨리 와 끊는다]

 

끊지마!

 

“히.. 히지카타”

 

[뭐]

 

“..보고 싶어”

 

[..끊는다]

 

“와주면 안돼? 너 나 어디에 있는지 알잖아. 나 여기에 있어”

 

[헛소리 하지 말고 돌아와]

 

“나.. 나 다쳤어.. 너무 아파... 못 움직이겠어.. 진짜야”

 

진짜로 나 너무 아파..

 

[... 다쳤다고? 애들 보낼게]

 

“싫어 보내지마”

 

[아프다며]

 

“싫어, 여기에 니가 아닌 다른 사람들 오게 하지마! 싫어!”

 

[...]

 

“너 안오면 여기서 죽어버릴거야”

 

극단적으로 다급하게 뱉었고 협박조로 말했지만 실은 그도 알았을거다. 내가 극적으로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는 걸. 실제로 죽으려는 사람은 이렇게 대놓고 ‘죽을거야’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평소처럼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다가 혼자 다짐하고 조용히 유서 같은걸 남기고 죽는 법이다. 그 전에 약간의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죽겠다고 협박 어조로 말하는 사람의 경우, 내가 지금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죽을 생각은 없고 니가 나를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위로를 바라는 사람의 경우다. 내가 지금 그랬다. 히지카타, 니가 나에게 와서 나를 잡아주었으면, 나에게 이전과 같이 따스하게 대해주었으면 하는 강한 소망이 그에게 향했다.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다급하게 끊고 전원을 꺼버렸다. 이제 그는 나에게 올거다. 10분? 15분? 혹시나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다시 생각을 다잡았다. 소고 너 왜 그래. 그가 미쳤다고 해서 이런 너를 내버려 둘 정도는 아니잖아. 응 맞아. 올 거야. 이런 뻔하고 가벼운 협박에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를 항상 무서워하는 너니까. 지금 이렇게 냉랭하게 나를 대하는 너는 처음이지만, 그래도 나를 내버려두지 못할 걸? 네가 없는 나는 내가 아니듯, 내가 없는 너도 네가 아니니까.

 

정확히 18분하고 21초. 문이 달칵 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그가 왔음을 확인하고 황급히 몸을 일으키고 그를 바라보았다. 봐- 역시 너는 나와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니까. 그는 내 앞에 다가와서는 멀쩡한 나를 보곤 약간의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가자”

 

냉정한 말투에도 침착한 목소리가 너무 좋아.

 

“...조금만 있다가 가요”

 

“바빠. 어리광 받아줄 시간 없어”

 

“...형씨는 여기 몇 번 왔어?”

 

내 물음에 그는 약간은 놀란 듯 나를 쳐다보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자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대답 없는 그의 얼굴을 보다가 내가 다시 말했다.

 

“형씨와는 자주 만나잖아요? 나랑 잠깐.. 이 공간에 잠깐 있는 것도 안돼요?”

 

“..바빠”

 

여전히 딱딱한 말투. 뒤를 돌아선 그의 뒷 모습.

사람은 평생 연극을 하면서 살아갈 수 없듯이 본성을 누르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히지카타씨. 나도. 너도.

 

나는 주머니에 있던 전기 충격기를 쓰윽 꺼냈다. 그리고 뒤에서 내가 그렇게 노릴거라 생각 못하고 있는 그에게 가져다대어 그대로 기절시켜 쓰러트렸다. 계획엔 없었지만 챙겨두길 잘했다. 요즘 고분고분한 내가 당신을 이렇게 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죠? 그러니까 내가 잠깐만 있다가 가자고 말했잖아요. 내 말을 들어줬으면 좋았을 걸.. 바닥에 떨어져 있는 차가운 촉감의 수갑을 가지고 그의 두 손을 묶고, 그가 가져다 놓은 창고에 있는 밧줄로 움직이지 못하게 그를 묶어 놓고 그의 앞에 가만히 앉아서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가 나의 곁에서 있다는 게 나를 사뭇 설레게 해서 들뜬 표정으로 너의 앞에 앉아있었다. 오랜만이예요. 히지카타씨. 우리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거. 일어나요. 너무 오래 나를 기다리게 하지마세요. 일어났을 땐 미쳐버린 당신이 아니라, 본래의 히지카타로 깨어나기를.. 그래서 잠시 잊고 있던 나에 대한 감정을 다시 기억해 내기를.. 그래서 그 팔로 다시 나를 안아주세요. 그 입술로 나에게 키스해주세요. 그 눈으로 나만 바라봐주세요. 당신의 귀는 내 목소리만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시 나에게 소고- 하고 다정하게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맨날 나만 쫓아왔으면 좋겠어요. 내가 무엇을 하던 전처럼 귀찮게 잔소리를 하면서 날 걱정해주세요.

 

 

 

 

 

 

 

 

 

-

아! 일어났다. 머리가 아픈지 미간을 좁히는 그를 보고 나는 눈을 빛내면서 그런 그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나를 알아볼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주었다. 정신이 들어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에 내가 비춰서 좋았다. 그의 눈 안에 영원히 박제되고 싶다. 저 앞에 앉아서 자신을 보는 나를 한번 보고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확인하고는 나에게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장난이야? 빨리 풀어”

 

“히지카타씨.. 나를 알아보겠어요?”

 

“왠 헛소리야? 풀어 이거”

 

...말투가 여전히 냉랭한 걸 보아하니, 여전히 전과 다름없는 차가운 시선을 보아하니, 내 기대와는 다르게 그는 여전히 미쳐있었고 나는 그런 그가 원망스러우면서도 나는 아무런 힘이 없어 그 무기력함에 힘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눈가가 촉촉해 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리고 점점 내 눈앞의 히지카타가 흐리게 보이는 걸 느끼면서 이내 참을 수 없어서 큰 소리로 그의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목을 놓아 거의 절규에 가깝게 소리를 내지르면서 울음을 터트린 적은 처음이다. 왜! 왜 돌아오지 않는 거야 왜! 왜 눈 앞에 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해요! 왜! 나에게 그렇게 냉랭하게 말하는 사람 아니잖아. 나를 따뜻하게 쳐다보아야 할 눈으로 왜 나를 냉랭하게 봐요 왜!

 

“...”

 

그런 나의 울음에 그가 놀랐는지 잠자코 나를 쳐다보았다. 눈에 차오른 눈물 때문에 나는 그의 표정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는 미쳐버렸기에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흐윽.. 히지카타... 히지카타...... 흑.. 왜애.. 왜... 왜!”

 

“...”

 

“왜 자꾸 그런 눈으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야 왜! 흑.. 싫어요... 그런 눈빛 싫어요..”

 

“..소고..”

 

“... 흑...싫어요.. 나는 이런 히지카타는 몰라..흐윽..”

 

내가 그의 앞에 엎드려 한참을 소리내어 울자 그가 나에게 말했다.

 

“...그만하라니까... 나는 너를....”

 

그의 입에서 또 다시 나를 부정하려는 말을 하려해 나는 서둘러 그의 말을 잘랐다.

 

“또 내가 착각이라고 말하려는 거지?”

 

“...”

 

“그래.. 착각.... 히지카타씨. 나에게 착각을 하고 있다고 했죠?”

 

“...”

 

“... 그래요... 내가 착각을 했다고 쳐요. 근데... 그래서요? 내가 착각을 했다면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게 너 아니야?”

 

“...”

 

“응? 너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내가 백번 너를 속이면 거짓인 줄 알면서도 나의 장난에 속아주고, 안 되는 것을 내가 졸라대면 들어주고, 정말로 안 되는 것인데도 내가 너무 너무 원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니면 그것에 합당한 다른 것을 들어주면서 까지 나를 달래는 사람이었어요! 그게 너란 사람이란 말이야.. 기억해봐 히지카타!”

 

“...”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가 슬펐다. 잠시라도 니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텀이 생긴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쳐다보면서 나에 의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그의 체취에 슬픔과 함께 섞여 취했다. 히지카타씨.. 나 아파요.. 아파요.... 너무 아파요...

 

 

 

 

 

 

 

 

 

 

-

눈을 떠보니 히지카타는 내가 묶어 놓은 밧줄과 수갑을 풀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를 이런 허술한 것 따위로 붙잡아 놓을 수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기에 별로 놀라진 않았다. 다만, 그에게 기대어 있던 내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니 그가 나를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나의 공간에서 있었던 그 일 이후에 그와 나의 사이는 약간 이상해졌다. 그는 전처럼 나에게 냉정하진 않았으나 나를 미세하게 피했고, 나는 그런 그의 행동을 보고 나 역시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를 지켜보았다. 약간의 권태라고 해야 하나... 그가 나를 피하는 행동을 보고 약간의 염증을 느껴 그를 더 이상 귀찮게 쫓거나, 전처럼 끈덕지게 달라붙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기다림이라는 것에 대한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노력해서 되지 않을 일이라면 조금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하나로 이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운명의 실이 있어서 아무리 다른 외적인 무언가가 끊어내려 해도 끊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물론 잠깐의 권태를 느꼈다고 내가 히지카타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평범한 오랜 연인들이 잠시 느끼는 잠시의 무덤덤한 시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미쳐버린 그의 행동에 약간은 지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왜 내가 그렇다고 느꼈냐하면, 다른 때에는 관심이 식어가고 있던 그가 형씨와 함께 있는 것을 가끔 보기라도 하면 그 날은 히지카타가 원망스럽고 다시 한번 형씨를 죽여버리고 싶은 분노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잘 참아 넘겼다. 참았다기보다는 내가 그런 형씨를 죽일 수 없는 위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긴 것이다.

 

 

하필이면 날도 흐리고 추적추적 비까지 오는 날 비번이라서 무얼 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나는 그냥 내 공간에서 조용히 만화책이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곤도씨가 같이 게임을 하자고 나를 불렀지만 나는 거절했다. 옆에선 히지카타가 곁눈질로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나도 그런 그를 살짝 쳐다볼 뿐, 딱히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히지카타와 있었던 날이 이 공간에 왔던 마지막이었다. 새삼 이 공간에서 그의 앞에서 소리 내어서 울었던 일, 그리고 그에게 구걸하듯이 말했던 일이 생각나서 오늘의 날씨와 같이 나의 마음도 물을 먹은 솜 마냥 무거워졌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서 배게를 끌어안고 창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내가 나올 땐 우산 쓰기도 애매하게 비가 내리더니 지금은 빗줄기가 굵어져 쏴아- 쏴아 하고 빗소리만으로도 시끄럽게 비가 많이 내린다. 짜증나 그냥 다 짜증나.

 

그리고 갑자기 문고리가 비틀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조용히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열렸다. 어..? 히지카타? 기대도 하고 있지 않던 순간에 그가 나를 찾아와서 나는 심장이 내려 앉듯이 놀라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문이 열리는 곳을 두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어..? 불이 켜져 있어서 혹시나 했더니 진짜 있었다 해!”

 

....아 씨발 뭐야...... 장난하나 진짜

 

나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은 히지카타가 아닌 차이나였다. 이 꼬맹이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이 공간을 아는 사람이 나와 히지카타, 형씨, 그리고 차이나 까지 4명이나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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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15

2015. 8. 19. 13:50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형씨는 히지카타가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게 너무 많다고 했다. 내가 부리는 고집, 응석을 모두 받아 주기만 해서 자신의 일이 아니면 관심도 없고, 남을 이해할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쨌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나와 그의 관계를 감히 제 3자인 형씨가 평가 한다는 것이 나는 기분좋지 않았다.

  

‘모두다 네 뜻대로 되는 게 아니야. 강요해서 되지 않는 것도 있다고’

 

왜 ‘강요’라는 말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강요라니. 내가 언제 강요를 했다고. 형씨야 말로 나에게서 그 녀석을 억지로 잡아 뜯으려 하면서 그 녀석에게 사랑을 강요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나에게서 소중한 그 녀석을 빼앗아 가려하잖아요.

  

  

돌아온 나는 형씨와의 대화를 잊으려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TV에서 방영하는 예능프로그램 따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TV안에선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하하호호 깔깔대면서 웃어대기도 하고, 채널을 돌리면 서로가 사랑을 고백하면서 울고 불고 난리를 치기도 하고 범죄자가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것을 고발하기도 하고.. 뉴스에선 우리 신센구미에 대한 내용. 자세히 들어 보니 얼마 전에 내가 사고 친 이야기가 나온다. 어투를 보니(당연히) 좋은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아- 히지카타 녀석 또 머리 아프겠네.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 히지카타가 내 방 문을 벌컥 열고는 나를 불렀다. 집무실로 따라오라고 말하곤 먼저 나갔다.

  

그 녀석을 뒤따라간 나는 그가 나를 불러주었다는 자체가 좋으면서도, 형씨의 말에 그에게도 약간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 내가, 니가 사랑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네가 자신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둥, 소중한 사람이라는 둥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나는 약간 입을 삐쭉 거리면서 그의 앞에 다가갔다.

  

“왜요?”

 

“왜라니 이 녀석아. 거기 좀 앉아봐.”

 

나는 그의 말에 착실하게 그가 가리킨 곳에 얌전히 앉았다. 그는 나에게 어느 때와 같이 잔소리를 잔뜩 늘어 놓았는데, 원래 그의 잔소리를 무서워하지 않는 나여서 그냥 눈을 깜빡 거리면서 한참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평소라면 틱틱대면서 말대꾸라도 해야 할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김이 빠졌는지 잔소리를 멈추곤 물었다.

  

“왜 아무 말도 안하냐 오늘은?”

 

“...그냥 히지카타씨가 무슨 말을 하나 듣고 있어요”

 

“다행이네 듣고는 있어서”

 

“응”

 

“뭐.. 너도 여러 가지 일이 있겠지만, 혼날 건 혼나야 되니까. 이 자식아”

 

음. 알고 있구나. 응 나 지금 화났어. 풀어줘.

  

내가 나를 풀어달라는 식으로 입을 다시 한번 삐죽 내밀자 그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는 이내 웃으면서 뭘 잘했다고 입을 삐죽거려? 하고는 이마를 툭 하고 쳤다. 내가 잘 한건 없지만, 너도 잘한 거 없는데 뭐.. 나는 이마를 한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그를 지그시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이내 참을 수 없어서 내 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참지 못한 것부터가 이미 내가 히지카타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넘치게 내가 그를 좋아했음을 인정하며 히지카타에게 명백히 졌고, 형씨에게 참을 수 없는 불안함과 나도 모르게 열등감을 느끼면서 형씨에게도 졌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형씨를 만났어”

 

“..그래?”

 

“응”

 

“...”

 

“형씨가 이상한 이야기를 해”

 

“무슨?”

 

“너와 사랑하는 사이라잖아. 니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하잖아.”

 

“....소고”

 

“응. 그리고 자신이 너의 뭐라도 된다는 듯이 이야기 하잖아. 너에 대해서 잘 안다는 듯이 으스대잖아.”

 

“...소고”

 

“응”

 

“내가.. 말.. 했잖아”

 

“무슨 말”

 

히지카타는 별로 놀라지 않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긴토키와 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했잖아”

 

“그거, 거짓말이잖아. 내가 그딴 말을 믿을 것 같아?”

 

“...소고”

 

“응. 히지카타. 나에게 자꾸 거짓말 하지마. 진짜로 화나려고 해”

 

나는 그에게 바짝 다가가서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는 그런 나의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여전히 매력적인 청회색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히지카타. 나를 사랑하잖아”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그의 대답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를 와락 껴안았다. 나를.. 나를 사랑하잖아요. 형씨 같은 사람과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나를 사랑하잖아요. 빨리 그렇다고,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 히지카타.

  

“.....뭐?”

 

그가 자신의 품에 파묻힌 나를 밀쳐내면서 놀란 듯이 말했다. 아- 들켰다고 생각 하는거야? 귀엽긴. 그렇게 다 보이게 행동하는데 어떻게 몰라.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가 이상하게 당황한 듯이 시선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기고는 다시 말했다.

  

“....내가.. 너를... 착각하게 만든 거야?”

 

착각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가 내 어깨를 잡고는 나와 시선을 맞추곤 말했다.

  

“계속 말하고 있잖아. 나 긴토키를 사랑한다니까?”

 

그가 약간은 어이없다는 듯이, 내 말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봐? 자꾸 형씨를 두고 사랑이라고 말하지 말라니까?

  

“... 형씨를 사랑한다고 한번만 더 말하면... 나 정말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히지카타.. 너.. 진짜로 미쳐버렸구나. 그가 안쓰럽게 느껴짐과 동시에 화가 났다. 왜 형씨 같은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너의 연인인 내가 바로 눈 앞에 있는데 이런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미쳤어 지금. 내가 어떻게 하면 그를 다시 돌려 놓을 수 있을까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그가 다시 말했다.

  

“긴토키 말이 맞았네.. 안 믿었는데.. 너 혹시.. 나.. 정말로 좋아하는거야?”

 

“좋아한다니, 그런 가벼운 말로 표현 될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너를 사랑...”

 

“그만.”

 

그가 단호하게 내 말을 잘라내면서 말했다.

  

“나는 너를 단 한번도 그런 눈으로 본 적 없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어.”

 

또, 또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 단 한번도..? 앞으로도..?

  

“....”

 

“못 들은 걸로 할게. 쉬어”

 

그가 나를 그대로 지나쳐서 집무실을 나가려 하자 나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를 돌아보는 그를 보고 내가 말했다.

  

“히지카타. 뭐야. 너 왜 그래?”

 

“너는 왜 그러는데? 너 지금 이상해”

 

“이상한건 내가 아니라 너야!”

 

목소리를 높였다. 너야! 이상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너라고!

  

“너는 내 가족이잖아. 니가 나를 그 이상으로 볼 거라고 생각해 본 적 단 한번도 없어. 나 역시 널 그렇게 본 적도, 볼 생각도 없고”

 

그는 나에게 그 말을 남기고 내가 붙잡은 손을 가볍게 내치고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래. 나는 그의 말대로 그의 가족이다. 그도 나의 가족이다. 그래서 평생 나의 곁에서 내 편이 되어 준다고 했으면서.

  

히지카타.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기억력이 좋아.

  

  

  

  

  

  

  

  

  

-

그래봤자 히지카타는 나를 뿌리칠 수 없다는 걸 안다. 저렇게 말하면서 나를 밀어내려 해봤자 나를 사랑하니까. 늘 나의 편에 서주겠다고 말했으니까. 분명 늘 그랬듯이 내가 화내면서 투정하면, 약간 나 답지 않게 졸라대면 다시 나에게 예전처럼. 내 모든 것을 들어주는 히지카타로써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를 사랑한다고 말 해줄 거야.

  

다음날 회의가 끝나고 나는 히지카타에게 화난 척 행동을 했다. 내가 그에게 화가 났다는 건 진실이지만, 약간은 오버해서 행동 했다고 표현 하는게 맞겠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다가가서 화난 표정으로 히지카타. 죽어버려 라고 말하자 그가 약간은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평소와 다름없이 네 녀석보다 1분 1초라도 오래살거야 라고 말했다. 평소와 같아서 조금은 안심했다.

  

명단을 확인하니 나와 이름 모르는 다른 대원이 연결이 되어있어, 그에게 찾아가 말했다.

  

“오늘 같이 순찰가는 대원이 맘에 안 들어”

 

“왜”

 

“너랑 갈래”

 

“그런 투정 부리러 왔으면 돌아가”

 

투정..? 돌아가...?

  

“바꿔줘”

 

그가 나의 단호한 말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너를 다른 대원들에 비해서 확실히 무르게 대한 건 사실이야. 그래서 오해가 있었다면 이제부터 똑같이 대할 거야. 돌아가”

 

히지카타가 나에게 이렇게 냉정하게 말 한 적은 처음이었다. 내 부탁을 거절할 때도 간혹 있었지만 이런 식의 단호한 어투는 쓴 적이 없다. 약간 나를 달래는 식으로 말하면서 나를 위로하면 나는 한참을 싫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결국 그의 말에 인심 쓴다는 듯이 내 고집을 약간 꺾곤 했는데 지금 이런 그의 행동은 나에게 하는 행동으로써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내가 그의 말에 당황해서 한참 아무 말 못하고 멍하니 서있자 그가 집무실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그대로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니가 지금 감히 나를 지나쳐? 나를 놔두고 그냥 나가?

나는 그를 쫓아서 그의 앞을 가로 막고 말했다.

  

“어디가?”

 

“...일하잖아 안보여?”

 

“나랑 말하고 있잖아!”

 

“할 말 더 있었어? 몰랐네. 그럼 해”

 

내가 올려다 본 그의 표정이 너무나 차가워서 슬펐다. 아닌데.. 니가 나에게 이런 표정을 지으면서 그런 차가운 말을 뱉는 사람이 아닌데...

  

“히지카타. 나는... 너랑...”

 

“히지카타가 아니지. 부장님이라고 불러. 건방지게 반말하지마. 존댓말 써”

 

........

  

“할 말 정리 안됐으면 정리하고 찾아와서 말해 지금 바쁘니까”

 

또 다시 나를 지나쳐서 지나가는 그가 낯설어서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의 그는 내가 아는 히지카타가 아니다. 진심으로 그는 미쳐버렸다.

그 날은 그의 행동에 나도 화가 나서, 이전이라면 일을 하는 척을 하면서 농땡이를 쳤다면 그 날은 그냥 아예 일을 하러 가지 않았다. 그럼 나를 찾아와 줄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그가 나를 찾을 수 있을 법한 곳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내 핸드폰엔 같이 가기로 한 이름 모를 대원만 몇 번 전화가 왔을 뿐, 내가 기다리는 히지카타에게는 연락 한번 오지 않았다. 내가 땡땡이 치고 있을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하게 나를 찾아내는 녀석인데 이렇게 나에게 무관심하다고? 나는 불안하다 못해 그 불안에 공포심을 느낄 정도로 섬뜩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있는 둔영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그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맸다. 문이 열리지 않는 곳은 신경질적으로 문을 부숴버렸고,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 급하게, 그를 찾아내지 못하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서 미친 듯이 찾았다. 난리를 치는 원인이 저라는 걸 알았는지 히지카타가 집무실에서 나와 팔짱을 끼곤 한 쪽 입꼬리엔 여전히 매력적으로 담배를 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뭐하냐 너. 일도 안하고”

 

담배 연기를 한번 길게 내 뿜으면서 그가 말했다.

  

“...너를 찾고 있잖아”

 

그는 여전히 나를 감정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서 힘없이 그를 올려다 보았다. 나에게는 자존심이라는게 어쩌면 현재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 만큼 히지카타가 나를 떠나는 것도 무서웠나보다. 그래. 히지카타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알고, 네가 미친것도 알지만 미쳐버린 너도 내가 사랑하는 히지카타의 일부라서 나는 그런 너도 사랑하기에, 나를 떠나려는 실수를 범하려는 너를 나는 무조건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존심 같은 거. 어떻게 지키는지 왜 자존심이 나에게 중요한지 그 순간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히지카타.. 나.. 이제..말 잘 들을게”

 

“...”

 

“이제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일도 열심히 하고.. 너한테 이상한 억지도 안 쓸게. 투정도 안 부릴게. 회의도 지각 안하고 착실하게 참석할게. 늦잠도 안자고.. 아, 그렇지. 반말도 안 쓸게요. 히지카타씨. 아니, 부장님. 이제 예의 갖춰서...행동할게요”

 

“...뭐야”

 

“그러니까.. 나를.... 계속 사랑해주세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런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나를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 그런 말.. 하지 말아주세요..”

 

거의 영혼이 빠진 듯, 더 이상 말을 꺼내면 다시 한번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듯이 아슬아슬한 상태로 그의 앞에서 말했다. 나는 나의 진심을 그에게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에게 갈구했다. 거의 땅바닥에 엎드려 비는 것과 다름없는 나의 행동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내 앞에 다가와서 가늘게 떠는 내 어깨에 제 손을 얹고는 말했다.

  

“소고.. 너 정말 왜 그러냐..”

 

...당연히 너를 사랑하니까. 내 전부를 다 내려놓아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너를 사랑하니까. 히지카타는 내 어깨에 괴로운 듯이 머리를 기대곤 왜 그래 진짜.. 너 왜 그래...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

행동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그의 말에 복종했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것이라서 그의 말을 무조건 따랐다. 회의에도 일찍 참석했고,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하고 그가 짜준 스케쥴 대로 행동했다. 가끔 불만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에게 나는 패배를 인정했기 때문에 그런 그의 앞에서 나는 아무런 힘도 없이 그가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그렇게 했다. 그가 강압적으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 혼자서 그의 말에 잘 따르는 것이다. 가끔 히지카타는 그런 내가 어색했는지 너 이러는거 어색하니까 그냥 평소대로 해 라고 건조하게 말하곤 했는데, 나는 그냥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니에요- 라고 말했다.

 

틈틈이 그의 뒤를 밟기도 했다. 그는 그런 나의 행동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쫓아갔을 때 그는 형씨를 만나서 요즘은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 그 미소를 지으면서 화기애애 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그런 미소는 본래 나의 것이었다. 형씨의 위치는 본래 나의 위치였다. 그런 그 둘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내 세상에 있어야 할 그가 다른 세상으로 빼앗겨버린, 떠나버린 느낌이었다. 참을 수 없는 화를 간신히 참아가면서 너무 아파 심장을 쥐어 뜯어버리고 싶어서 가슴을 움켜쥐고 소리 없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부장님하고 무슨 일 있습니까?”

 

야마자키가 하루는 나에게 물었다.

  

“응? 아니 뭐..”

 

“근데 왜 이렇게 요즘 고분고분하세요? 게다가 부장님도 요즘 대장한테 엄격한 것 같고. 좀 이상하네요”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야마자키가 그렇게 물어서 놀랐다.

  

“뭘 몰라요? 요즘 대장 진짜 어색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원래 부장님한테 대들고 맨날 괴롭히는 캐릭터 아니예요? 그런거 보면서 사실 우리도 좀 재밌었는데 요즘 너무 고분고분해서 이상하단 말이예요”

 

“내가 니들 재밌게 해줘야 된다 이거야? 이 새끼가”

 

“그런 건.. 아니고요”

 

야마자키가 내 표정을 살피면서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모두들 알 정도로 내가 그에게 복종하고 있구나. 하지만 나는 이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가 잠시의 방황을 하고 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올 거니까. 그리고 자신의 만행을 뒤돌아보면서, 나에게 사죄하면서 다시 평생의 사랑을 맹세할 거야. 형씨와 다르게 나와 히지카타에겐 주어진 시간이 많기에 나는 다시 한번 조급해 지려는 나를 달래면서 괜찮아. 괜찮아 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그 날 허전함이 너무나 사무쳐서 야마자키에게 술을 마시자고 했다. 야마자키는 그런 나를 수상하게 쳐다보면서 대장 많이 먹으면 나도 많이 마실거니까 적당히 마셔요! 라고 말했다.

  

그 날은 나는 적당히 취했는데 야마자키는 혼자 기분이 좋았는지 어쨌는지 들이 붓더니 혼자 쓰러져버렸다. 귀찮은 자식. 이 새끼를 데려다 던져 놓고 내 방으로 향하는 길에 불이 켜져 있는 히지카타의 방을 보곤 약간의 술김에 그의 방 문을 열고 안을 빼꼼히 쳐다보았다. 책을 보던 그가 나를 보더니 한숨을 한번 쉬곤 아무 말 없이 다시 시선을 책으로 옮겼다. 들어오라고도 안하냐 나쁜 새끼야. 나는 막무가내로 들어가서 책을 읽는 그의 앞에 털썩 앉았다.

  

“술 마셨냐? 술 마셨으면 가서 자”

 

“많이 안마셨어. 취하지도 않았고”

 

“술 먹었다고 다시 반말이냐?”

 

웃음기 없이 나에게 건조하게, 심지어 시선도 주지 않고 말하는 그가 얄미워서 대답 없이 한참 그의 앞에 앉아있었다.

  

“가서 자”

 

말 없이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그가 꺼낸 말이었다.

  

“히지카타..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근데.. 힘들어”

 

내 말에 그제야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왜..... 왜 요즘은 날 피해? 난 니가 시키는데로 모든 걸 다 하려고 노력하는데. 날 쳐다보지도 않잖아 너”

 

그는 계속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원래는 나를 보고 웃어 주는게 너잖아. 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나에게 주던 관심을 줘..? 싫어. 너의 관심은 애초에 나에게만 향하고 있던 거잖아. 나를 사랑하고 있었잖아”

 

“..”

 

“나를.. 사랑해줘.. 지금 당장이 아니여도 좋아. 우리에겐 시간이 많으니까. 근데 나를 안심시켜주기라도 하면 안될까?.. 네가 시키는데로 다 하고 있잖아. 앞으로도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소고..”

 

그가 다시 나를 쳐다보곤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 한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 이렇게 날 힘들게 만들어..”

 

내가 널 힘들게 만든다고? 네 녀석이 날 힘들게 만들잖아.

  

“계속 말해도 못 알아듣겠어? 너, 내 말을 듣고는 있어? 내가 한 말을 도데체 뭘로 듣는거야?”

 

그가 약간은 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몇 번을 말해야 돼? 아니라고 하잖아! 제발... 그만 좀 하자. 니가 자꾸 이상하게 너 혼자만의 착각으로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니라고 하잖아! 응? 아니라고 하잖아!”

 

....

  

“다시 말할게. 나는 너를 그런 상대로 본 적 죽어도 없어. 단 한번도 없어. 앞으로도 그럴 일 없어. 넌 나에게 가족이지, 그 이상으로 다른 감정으로 널 바라본 적 없어. 오히려 당황스럽다. 네가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

  

“알아 들었어? 이제? 그럼 나가”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말도 안돼. 나의 착각이었다고?

  

“왜 멍하니 앉아있어?”

 

히지카타가 나의 팔을 잡고는 억지로 일으키더니 방 밖으로 나를 거칠게 끌어냈다. 충격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 휘청거리는 나를 보고도 그는 별로 상관없다는 듯이 방에서 나를 끌어내어 내치고는 말했다.

  

“내일 회의 늦지마”

 

  

그의 방 문 앞에 주저 앉은 나를 보고 그가 내뱉은 한마디.

너무 차가워서 그 순간 충격에 비틀거리는 나를 다시 한번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런 나를 무관심하게 내려다보고는 그대로 문을 세차게 닫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다시 누나의 장례식날 마지막에서 느낀 그 처참함과 참담함, 그리고 이 세상에 나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이 엄습해 몸을 떨었다. 내가 현재 있는 이 곳은 다시 미지의 밀실이 되어 소리를 쳐도 아무도 듣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악마나 괴물 같이 무서운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아무것도 없이 혼자 존재 한다는 사실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방으로 돌아 왔을 때 내 눈에 띈 것은 전에 히지카타가 줬던 고급스러운 포장의 쿠키. 포장채로 놔두고 먹지도 않았던 것이어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포장을 조심스럽게 뜯어서 포장되어 있는 상자를 열고 안에 재포장되어있는 쿠키 봉지를 꺼냈을 때 내 앞에 종이 쪼가리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쪽지? 나는 그 종이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히지카타씨. 항상 지켜보고있어요. 매번 찾아가는데도 절 기억 못하시는 것 같아요. 저 진심으로 히지카타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서 쓴 듯한 여자 글씨. 게다가 히지카타에게 고백하는 내용.

  

뭐야... 이거..

  

  

  

  

  

  

  

  

  

-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꿈에서도 나는 미지의 밀실에서 쓰러져서 홀로 멍하니 주저 앉아있다. 그 고요한 공허함이 스며드는 것이 너무 끔찍해 몸서리 쳤다. 그리고 꿈에서 인지 현실에서 인지 모르는 곳에서 힘겹게 눈을 가늘게 떴을 때 환영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히지카타가 내 옆에 앉아있었다. 내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내 식은땀을 제 손으로 닦아주면서 조용히 말했다.

  

“...나도 너에게 이렇게 심하게 하고 싶지 않아.. 이러지 말자..”

 

눈을 똑바로 뜨면 도망가 버릴 것 같아 무서워 그대로 눈을 감았다. 히지카타.. 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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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14

2015. 8. 19. 13:50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히지카타씨 오늘은 어디로 가요?”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히지카타가 방에서 나오자마자 웃으면서 그를 맞이했다. 나를 보고 흠칫 놀라는 그를 보고 난 여전히 생글생글 웃었다.

  

“어... 너 오늘.. 야마자키랑....”

 

“싫어. 히지카타씨랑 갈래요”

 

히지카타는 나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못 이기는 척 당번을 바꾸어주었다. 나는 차에 타서 이동하면서 오늘 점심은 연어덮밥이 먹고 싶다며 자주 가는데 말고 다른 데에 가보자고 졸랐다. 히지카타는 그날따라 굉장히 나를 어색하게 여기는 듯한 눈치였는데, 그것은 어제 저녁 나에게 했던 말에 대한 죄책감에 의한 것일 것이다.

  

“나. 오늘 점심에 약속이..”

 

“누구랑?”

 

“....아... 아니다, 너랑 먹지 뭐”

 

그의 대답에 만족한 나는 밝게 웃어보였다. 나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장난도 치고, 히지카타를 속이기도 하고, 대놓고 일하기 싫다고 투정도 잔뜩 부렸는데 다른 날 같으면 화를 내고 혼내야할 녀석이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나의 어설픈 농담과 장난에 약간은 어색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저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와 같이 히지카타씨 곧 죽는거 아닙니까? 하고 말하며 웃었는데 그 말에도 별 말없이 그냥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을 때, 히지카타는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길래 내가 입맛이 없어? 하고 상냥하게 물었다. 그는 그런 건 아니라고 대답하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나의 말에 억지로 먹듯이 몇 술 뜨던 그가 잠깐 망설이더니 말했다.

  

“....소고,... 어제...”

 

“응”

 

“...어제 했던 말.. 기억나지..?”

 

“그럼, 술 먹은 것도 아니고 멀쩡한 상태였는데”

 

나는 그의 말에 웃어보였다. 전날 저녁 진실로 힘들게 어느 때보다 긴긴 밤을 보냈지만, 이 녀석 역시 나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알기에 네가 마음에 없는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 행동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내 말을 들은 그는 그냥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죄책감에 의한 복잡한 표정의 그를 보고 나는 말했다.

  

“뭐야. 왜 그래? 난 히지카타씨에게 그 정도를 가지고 실망하지 않는다니까요?”

 

다시 떠올려도 전날의 대화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지만 애써 잊으려 했다. 그런 대화 따위 의미 없었다. 이 녀석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진실하나. 그것만 있으면 무엇이 어떻게 되던 상관없었다. 히지카타가 형씨와 사랑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뱉었지만 그의 진심은 나를 향하고 있으니까. 나에게는 보인다. 그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있는 운명의 실이. 그렇기에 나는 조급할 필요도 없고, 서두를 필요도 없다. 내가 이 녀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듯, 이 녀석도 내가 없으면 히지카타가 아니다. 봐. 그 증거로 히지카타 네 얼굴이 괴롭다는 듯이 힘겨워 하고 있잖아. 나에게 나 좀 구해줘. 라고 말하듯이 애처로운 빛깔로 빛나고 있잖아.

  

  

  

  

  

“나. 가봐야해”

 

순찰이 끝날 무렵 그가 나에게 말했다.

  

“어딜?”

 

“...알잖아”

 

“몰라. 어디 가는데?”

 

나는 그가 어딜 가려는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긴토키...에게 가야해”

 

“긴토키?”

 

순간 그 이름이 누굴 가리키는지 잠시 생각했다. 형씨였다. 네 녀석이 언제부터 형씨를 이름으로 불렀어?

  

“왜? 왜 가는데?”

 

“어제 다 얘기했잖아”

 

“근데?”

 

“그래서 가봐야 해”

 

조급해하지마. 조급해하지마 하고 속으로 아무리 주문을 외워도 나의 소유욕과 독점욕은 좀처럼 다스려지지 않았다. 약자처럼 말이야. 싸움에서 지는 약한 녀석들의 몇 가지 공통점 중 하나는 조급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강한 사람들, 항상 이기는 나 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침착하고 숨을 끊어 놓기 직전까지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그것이 이기는 사람이다. 히지카타는 나에게 그런 말을 몇 번 해줬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넌 싸움을 앞에 두곤 항상 침착해서 가끔 나는 너를 보고 그런 것을 배우려해. 라고 말했었다. 그런 내가 패배자처럼 조급하려 하다니. 꼴사납게 말이야.

  

“...안가면 안돼?”

 

“안돼..”

 

그가 오늘 처음으로 약간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 머리를 살짝 헝클어 놓으며 이어서 말했다.

  

“다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그래도 이렇게나 이해하려고 노력해줘서 너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몰라. 나는 네가 나를 피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그의 말에 천천히 시선을 그의 눈동자로 옮겼다. 따스했다. 다녀올게, 둔영에서 얌전히 있어. 사고치지 말고. 그는 웃으면서 그렇게 홀연히 나에게서 서서히 멀어졌다. 왜 더 강하게 잡지 못했을까. 나는 둔영에 텅 비어버린채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서는 시트자락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그를 기다렸다. 내 눈앞에서 사랑하는 나의 연인과 그를 나에게서 빼앗으려는 형씨가 골목에서 봤던 그 장면을 재현하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선명하게 재생되고 있다. 퇴폐스러운 새빨간 혓바닥으로 그의 목덜미를 낼름거리면서, 더러운 긴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하나하나 벌레가 기어 오르듯이 쓸어내리면서, 마치 뱀처럼 그의 몸을 감싸안아서 금방이라도 죄어 죽여 버릴 수 있을 만큼 소름끼치고 위협적으로 그를 감아 올리는 그 모습. 씨발 그 더러운 손 치워! 나의 연인에게서. 멋대로 내 것에 손대지마!

  

내가, 이 내가, 양보할 줄도 모르고 고집 쎈 내가, 나의 것을 남과 공유한다고? 난 한번도 나의 것을 누군가와 공유해본적도 없고, 남의 것을 빼앗았으면 빼앗았지, 빼앗겨 본 적은 없다. 처음으로 겪는 이런 분노에 나는 진심으로 한 때는 친구였던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죽인다면 결코 편하게 죽이지 않을 거야. 내 것에 손을 댄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도록. 손가락 발가락 마디마디를 무딘 가위로 천천히 자르면서. 무뎌서 잘라지지 않는다며 거칠게 가위질을 해대면서, 혹시나 기절하면 찬물을 끼얹으면서 잠들지 못하도록 정신을 깨우면서, 혹시나 혀를 물면 안 되니까 입에 제갈도 물려놓고, 피를 많이 흘려서 죽으면 곤란하니 가끔은 붕대로 자른 손가락 마디마디, 발가락 마디마디를 백의 천사처럼 상냥하고 자상하게 치료도 해주면서, 그 공간에서 역겹게 진동하는 피 비릿내가 익숙해질 정도로. 가끔 더 극한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 형씨, 사람의 눈이 두개골의 반절이라는데 궁금하지 않아요? 하고 물으면서 그의 눈에 경계에 집게를 서서히 눌러 넣으면서. 덜덜 떠는 그의 공포가 정점에 다다른때면 에이- 장난이예요- 라고 웃으면서 왜 쫄아요? 하고 상냥하게 말해주고 싶다. 죽이는 건 최대한 늦추면서 왜 이러냐고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은 채 스스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때까지.

  

누나, 어떻게 하지 나? 누나도 잘 알고 있는 나의 절친한 친구였던 형씨가 나의 히지카타를 자꾸 나에게서 빼앗으려고 해.. 물론 히지카타는 나를 떠나지 않겠지만.. 근데.. 나 약간은 불안한가봐.. 내가 채워줄 수 없는 걸 형씨가 채워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아니 이미 미쳐버렸는지도...

 

안 돼. 친구를 죽인다거나 하는 그런 못된 말, 하는 거 아니야.

  

응.. 죄송해요 나도 모르게 이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너의 그런 모습을 토시로씨가 알면 좋아할까? 사랑하는 니가 너 자신의 친구였던 사람에게 칼을 들이대고 괴로워할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진 않을거야.

  

내가 괴로워 할 거라고?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누구나 상처를 주면, 준 만큼 괴로워하게 되어있어.

  

누나가 내 옆에 나란히 누워서 마지막 날처럼 나의 뺨을 가만히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 순간은 조급해하고, 불안해 하고 있던 나 자신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반성했다.

  

왜.. 내 옆에 없어요 계속 있어주지.. 그럼 나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내 자신이 무서울 정도로 불안하고 조급해하지 않았을 텐데..

  

  

  

  

  

  

  

  

  

-

불현 듯 나는 벌떡 일어났다. 연보랏빛으로 빛나고 있는 새벽이다. 밖에선 조용히 울고 있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이슬이 내렸는지 촉촉하게 젖은 습기 냄새가 새벽이라는 시간을 알려주었다. 방금 전까지 누나가 옆에 있는 듯 했는데 꿈이었던 모양이다. 다시 한번 누나가 내 옆에서 나를 조용하게 다그쳐주었으면, 내 옆에서 전처럼 내 뺨을 가만히, 따스하게 쓸어내리면서 그러면 안 돼 하고 따스하게 말해주었으면. 새삼스럽게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이, 내가 세상에 혼자 있다는 것 같은 느낌이 다시 한번 사무쳐서 뒤척거려도 잠이 오지 않았다. 히지카타.. 들어 왔으려나. 그가 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내 그걸 참아낼 수 없었다. 불안정한 상태의 나는 지금 당장 너에게 달려가야 했다. 조용히 밖을 나와서 그의 방 쪽으로 천천히 걷는데 삐걱 거리는 마루의 나무마찰 소리가 새삼 크게 들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 삐걱- 하고 조용한 새벽을 흠집내고 있다. 그의 방앞에 다다라서 문을 살짝 열었을 때 이미 돌아와서 곤히 잠든 그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잠들어 있는 그의 품 속으로 와락 파고 들었다. 나 때문에 잠에서 깬 그가 눈을 비비며 나를 보고는 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왜 그래? 하고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팔로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가슴에 파고 들고 싶어 얼굴을 부벼댔다. 잠시 동안의 그의 부재 탓인지, 그의 존재가 텅 비어버린 내 안에 다시 꽉 차 올랐다는 그 기쁨과 안정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형씨를 만나고 왔다는 것에 대한 질투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다. 이 녀석 앞에서 죽어도 눈물 같은 건 다시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 날은 내가 누나의 장례식장에서 울었던 것 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품에서 조용히 흐느껴 울었다. 그는 왜 그러느냐고 묻지 않고 그냥 가만히 가만히 떨리는 내 어깨와 등을 가만히 다독여주었다.

  

“히지카타..”

 

“응”

 

“히지카타...히지카타...”

 

“응..”

 

“히지카타...”

 

“응..”

 

“...나.. 혼자 두지마..”

 

“..”

 

“...흐윽..나 너무 불안하단 말이야... 미칠 것 같단 말이야... 흑..”

 

나의 울음에 묻혀서 발음이 너무 흐려서 그가 나의 말 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울먹거리고 있어서 제대로 듣지 못했을지도. 그는 말 없이 나를 자상하게 다독여 주고는 늦었으니 자자고 말했다. 꽉 붙들은 나의 팔을 떼려고 나의 팔을 잡았으나 나는 그런 그의 행동에 반항하듯이 더욱 꽉 그를 껴안았다.

  

“침구 꺼내야 되잖아”

 

나는 그의 말에 싫다는 의사표현으로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안아줘.. 히지카타”

 

오늘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그에게, 나를 사랑하는 그에게 나를 다 내어주고 싶었다. 나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겨주는 너라면, 나와 평생을 함께할 너라면 상관없어. 마음대로 해도 좋아. 그의 가슴팍에 파붇고 있던 얼굴을 들어 그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보자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내 눈에 고인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내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하고 말했다.

  

“어째 점점 더 어린애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아니지, 넌 어릴 때도 이런 모습은 보인 적 없었는데..”

 

나의 앞 머리카락을 옆으로 살짝 쓸어넘기면서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살짝 닿은 그의 손끝이 따스해서 좋다.

  

“자자. 늦었어”

 

그가 다시 말했다. 나는 꽉 끌어안고 있던 팔을 그제야 서서히 풀었다. 마주 보고 앉은 그가 너무 좋아서 그의 입술에 당장이라도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가 침구에 눕자 나는 그의 옆에 누워서 다시 그의 품속에 기어들어가 그의 어깨 쯔음에 머리를 기대고 다시 얼굴을 부벼댔다.

  

“... 힘들구나..너”

 

“....”

 

“..나 때문이지?..”

 

나는 말없이 이 녀석의 어깨를 작게 깨물었다. 나를 안아달라니까..

  

“..미안해”

 

뭐가, 뭐가 미안한데. 나도 네가 나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하지만 조금은 거칠게 사랑해줘도 상관없어 너라면.

  

혼자 있을 땐 시계바늘이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던 이 밤이, 너와 함께라면 너무 빨리 가버려서 아쉬워. 내가 괜찮다는데도 이 녀석이 나 자신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더 소중히 여겨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좋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런 네 행동 얄미워. 답답해. 내 손에 닿은 이 녀석의 심장소리가 두근- 두근-하고 작게 뛰는 것이 기분 좋았다. 이런 소리였구나. 네가 나와 있을 때.

  

“너, 자꾸 이렇게 이상하게 행동하면 내가 너를 어린애라고 생각 하지 않을 수 없어.”

 

  

칫, 그래서 안아주지 못하겠다 이거야? 보통은 어릴수록 좋아하던데. 하여간 꼰대새끼. 하지만, 그래서 내가 너를 더 사랑하는 거야. 사랑해 히지카타 너의 이런 모습까지 전부 다 포함해서. 나는 다시금 그의 품 안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싶어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의 살 냄새가, 그의 숨소리가 안정제 마냥 나를 따스하게 잠들게 만들었다.

  

  

  

  

  

  

  

  

  

-

나는 꿈속에서 누나가 내게 했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내가 형씨를 완벽하게 이길 확률도 반반이거니와, 내가 그런 행동을 취한다면 분명 히지카타도 곤란하게 생각 할 것이다. 그는 내가 착하고 정의로운 경찰이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적을 사랑하라, 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을 싫어한다면 그를 너의 편으로 만들어라. 물론 나에겐 절대적으로 불가한 이야기지만 이번 만큼은 약간은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유명한(히지카타가 나에게 쿠키를 사다주었던) 제과점에 들어가서 형씨가 좋아할 만한 딸기 케이크를 골랐다.

  

“신센구미에서는 이 케이크가 유행인가보네요?”

 

주인이 나에게 살갑게 말했다.

  

“글쎄요”

 

“전에 히지카타씨도 이 케익을 사가시던데. 그 때가 발렌타인데이여서 우리 직원 중 짝사랑하고 있던 점원 한명이 히지카타씨에게 애인이 생긴 것 같다며 엄청 힘들어 했었거든요”

 

착각하긴, 히지카타가 여기서 산건 이 케익이 아니고 쿠키였어요 아줌마.

  

“어때요? 친하니까 아시죠? 혹시나 히지카타씨가 애인하고 헤어진다면...”

 

“헤어질 일 없어요”

 

나는 주인이 포장해준 과자 포장지를 웃으며 받아들곤 말했다.

  

“히지카타가 미치게 사랑하고 있거든요”

 

자신의 애인인 나를.

  

  

  

그 날은 특별히 타바스코 토핑도 추가하지 않은 채로 그것을 들고 형씨의 집을 찾았다. 초인종도 누르지 못하고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는데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면서 여전히 동태 눈 깔을 한 형씨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말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셔”

 

나는 그런 형씨를 보고 그냥 웃으면서 케익 상자를 들어보였다.

  

“오늘은 타바스코 안 넣은 거예요”

 

“음.. 그게 더 무서운데?”

 

형씨는 출출해서 편의점에 가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다며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신파치는 오늘 오지 않는 날이고, 카구라는 깡통차기 하러 갔다고 말하며 쇼파에 앉았다.

  

“저한테 화나셨죠? 죄송해요 그땐”

 

나는 다시 웃어보였다.

  

“대신 이거 사왔으니까 풀어요”

 

진심이 아니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의 난 너무 가증스러웠다. 내 눈앞에 있는 형씨 만큼이나.

  

“오- 나 이거 제일 좋아하는데. 어떻게 알았어?”

 

“그냥 형씨가 딸기우유 먹는 거 몇 번보고 산거예요”

 

“난 또”

 

형씨가 케익을 한입 떠서 입에 넣고는 말을 이었다.

  

“히지카타가 말한 줄 알았어”

 

“착각도 가지가지하시네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내가 우스워?

  

“진짜 사과하려고 이런 거 까지 사서 일부러 왔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야”

 

너도 먹어, 하고 포크를 내 앞에 내미는 형씨. 아아- 정말이지 가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단 말이야. 형씨도 내가 싫죠? 지금 내가 가증스럽죠? 케익을 한 입 입에 떠 넣었다. 우웩, 토할 것 같아.

  

“뭐. 크게 다른 건 없고. 정말 사과 하러 온 거예요”

 

나는 포크를 옆에 얌전히 내려놓고 여전히 웃는 얼굴을 보였다.

  

“카구라 가지고 그딴 소리 한 건 재수 없지만, 생각해보니 넌 원래 그런 녀석이었어. 히지카타도 니가 큰 뜻은 없었을 거라고 하더라 뭐.. 어쨌든, 나도 미안했어”

 

히지카타 이야기 자꾸 하지마.

  

“.. 그리고 히지카타에게 들었는데. 우리 사이 알았다며?”

 

그의 말에 나는 웃음기를 거두고 그를 쳐다보았다.

  

“니가 무슨 심정으로 나를 볼지도 대충 알 것 같아. 네 누나에게 소개까지 시켰던 내가 히지카타와 그런 사이라는게 좋은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거.. 나도 알아. 나도 갑작스럽게.. 그 녀석을 사랑하게 됐어.. 내가 먼저 널 찾았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그딴 소리 들으려고 여기 온 거, 아닌데요”

 

형씨는 나의 말에 작게 미안. 하고 말하고는 별 말 없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진심인지 연기인지 모르게 나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면서 약간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거 진짜 가증스럽다니까... 어울리지도 않게 미안한 척, 나를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 하지 말란 말이야.

  

“형씨.”

 

“응”

 

“히지카타에 대해서 잘 알아요?”

 

내가 나의 증오심을 간신히 누르고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나의 질문에 형씨는 그냥 별 표정없이 날 쳐다보았다.

  

“나는 히지카타를 오랜시간 옆에서 봤잖아요 그래서 이 녀석이랑 나는 서로 모르는 게 없어요”

 

“그래”

 

“그 녀석이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알아요?”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음.. 그 녀석이 좋아하는 색도 있었나?”

 

“응. 있어요. 술은 몇 살 때 처음 마셨는 줄 알아요? 술버릇이 몇 개인지, 또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요?

  

“...”

 

“가장 아꼈던 물건이 무엇이었는 줄은 알아요? 그걸 언제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어땠는지, 가족은 몇 명이었는지, 글씨체는 어떤지 알아요? 급하게 쓸 때와 또박또박 쓸 때 어떻게 다른지 알아요? 언제부터 책을 읽고 공부했는지 알아요? 처음 읽은 책이 무엇 이었는지 알아요? 그걸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요? 담배는 언제부터 폈는지 알아요? 왜 피우게 되었는지 알아요? 원래 커피 같은 거 굉장히 싫어했던 건 알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아요?”

 

내 수 많은 질문. 사실 더 물어볼 수도 있었으나 바로 떠오르는 게 없어 이만큼만 물었다. 나의 일방적인 질문 공격이 끝나고 나를 쳐다보는 형씨의 눈빛이 약간은 바뀌어 있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모르죠? 아무것도. 그 녀석의 모든 걸 알고 있는 내가 부럽죠?

  

“아..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형씨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아들인줄 알았더니 아들이 아니었네”

 

“아들?”

 

“본처인 줄 아는 시누이정도 되려나..”

 

이내 우습다는 듯이 소리내서 웃었다. 웃겨? 그의 여유있는 웃음에 나는 다시 확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오키타군, 당연히 니가 나보다 잘 알겠지. 오랜 세월 함께 했으니까. 그래, 사실이야. 니가 방금 질문한 것에 대해서 난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나는 그의 답은 예상했으나. 형씨가 그에 대해서 나보다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딱히 화가 난다거나 하지 않고, 쉽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네 말대로 하나도 몰라. 근데? 그래서?”

 

“...”

 

“반대로 말해볼까?”

 

“...?”

 

“아- 이런 이야기 하면 히지카타에게 잔소리 들을 텐데”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어서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꼬맹아. 너 그 녀석 성감대가 어디인 줄 알아?”

 

........... 씨발. 다시 형씨는 내가 가장 증오하는 그 때, 그 골목길에서 봤던 외설스러운 형태의 인간으로 내 앞에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무슨 말을 했을 때 가장 흥분하는 줄 알아? 격정에 다다랐을 때 어떤 소리를 내는 줄 알아? 참나- 표정봐봐. 섹드립은 잘치면서 이런 이야기엔 왜이렇게 질색해? 아이고- 미안 너무 어른들의 이야기지? 그만 할게”

 

형씨는 내 표정을 살피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웃음을 보고 나는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표정에 그대로 드러낸 내 자신이 수치스러워 난도질 하고 싶었다.

  

“오키타. 너와 내가 알고 있는 히지카타가 다르듯이, 너와 나를 향한 이 녀석의 감정도 달라. 누나에게서 내가 그를 빼앗았다고 생각해서 내가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그냥 조금은 이해해주라. 우리 서로 진짜 많이 사랑하고 있어”

 

사랑..? 우리..? 너랑 히지카타..? 미친. 히지카타와 엮어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나 하나야!

  

나는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내 눈앞에 있는 은빛 포크를 집어 들고 나도 모르게 그를 찌르려 달라 들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공격은 그가 내 손목을 가볍게 저지해서 끝났다. 형씨의 여유로운 표정을 본 순간 나는.. 알았다. 졌다. 난 이미 조급하고, 너무나 불안해 하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그 녀석의 모습이라니.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오키타. 포크는 음식을 먹는데 쓰는 물건이지 이렇게 사람을 공격하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야.”

 

형씨는 내 손에서 포크를 빼앗아서 내가 사온 딸기 케익의 윗부분에 있는 딸기를 보란 듯이 콕 찍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내 눈앞에 있는 딸기케익을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그걸로도 화를 삭히지 못해서 씩씩 대고 있다가 말했다.

  

“형씨.. 히지카타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예요”

 

“알아”

 

“알면서 왜..”

 

“너에게만 소중한 게 아니야”

 

“...뭐라고요?”

 

“나에게도 소중하다고.”

 

역겨워. 그런 더러운 관계를 두고 ‘소중’이라는 단어를 남발하지 마.

  

“네 누나 때문에 그런 것 만은 아닌가보네.”

 

형씨는 여전히 나와는 반대로 여유있게, 어째서 인지 승자의 여유를 부리면서 심지어 약간 우습다는 듯이, 그리고 나를 비웃는 듯이 말했다.

  

“에휴 히지카타 녀석, 역시 잘못 가르쳤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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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오키긴] 꼬리표 13

2015. 8. 19. 13:49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당연하겠지만 내가 형씨의 집에 이전처럼 놀러가는 일은 없었다. 거의 교류를 끊었다고 해야하나. 가끔 지나다가 만나면 나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고, 형씨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했지만 나의 단호한 태도에 약간 머뭇거리고는 그대로 지나치는 나를 잡지 않았다. 신파치는 만나면 인사정도는 간단히 하고 지나가는 사이였고, 차이나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해 놓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나를 만나면 전처럼 장난을 걸었다. 나도 형씨에게 적의가 있었을 뿐, 이 둘에게는 아무 감정 없었기 때문에 다름없이 지냈다.

  

“긴짱이랑 싸웠냐 해?”

  

밖에서 땡땡이 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차이나가 나에게 물었다.

  

“싸우긴, 그런거 아니거든?”

  

싸웠다고 포현 하기는 싫었다. 나에게 있어서 싸움이라는 표현은 애정이 약간 담겨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히지카타와 항상 싸웠듯이, 나에게 싸움이란 일종의 애정표현 중 하나였다. 난 형씨와 싸운게 아니라 화가 난 거다. 내가 일방적으로.

  

“긴짱이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 보더라 해, 너랑 친하냐 부터 시작해서 무슨 사이냐 등등”

  

딴에 걱정됐나보네.

  

“그래서 그냥 재수 없는 자식이다 라고 했다 해, 긴짱이 조심하라는데 뭘 조심하라는지 모르겠다해”

  

꼬맹이가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지 팔짱을 끼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막상 그 당일은 이 꼬맹이가 한 말들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밝게 웃고 있는 이 꼬맹이를 보면 약간은 가슴 한쪽 구석이 먹먹했다. 이유를 알지 못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날’이 꼬맹이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니고 이 꼬맹이가 털어놓은 오빠라는 사람이야기 때문이다. 누나라는 존재가 나에게 나 자신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말 할 만큼 전부였던 나로써는 그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족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이 꼬맹이 역시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약간은 놀라웠다. 그녀의 하는 말을 들어 보아선 이 꼬맹이는 그렇게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여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긴쨩은 네 녀석 이야기를 하면서 엄청나게 복잡한 얼굴을 하더라해. 네 녀석 때문에 마요라하고도 연락하는 것 같던데 싸웠으면 빨랑 화해해라 이 녀석아”

  

“히지카타랑 연락?”

  

나는 다른 소리는 잘 모르겠고, 히지카타 이야기를 듣고 카구라를 보며 말했다.

  

“응, 잘은 못 들었고 오키타가 그랬다고! 니 놈 옆에 딱 붙어다니는 그 자식!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있던데 그럼 마요라 아니냐해?”

  

“흐음”

  

“긴짱이 너보다 몇 살이 많은데 먼저 다가가겠냐해, 철은 없지만 그래도 네 녀석보다 10살이 많다해, 니가 먼저..”

  

“잔소리 하지마. 히지카타한테도 실컷 듣고 있으니까”

  

나는 차이나의 잔소리에 귀찮다는 듯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형씨는 역시나 욕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차이나는 차이나대로, 그리고 히지카타는 히지카타대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싶어 하는 듯 발버둥 치고 있는 듯하다. 누가 됐건, 욕심이 많아서 무언가를 다 챙기려 하던 어쩌건 나와는 다른 일이니 신경 쓰지 않겠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내 것에 손을 대려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리고 나의 것에 손을 대려고 했을 때 독점욕과 소유욕이 정점을 향해 한없이 치솟는다는 것을 그때 더 확실하게 알았다.

  

차이나가 알려준 ‘히지카타와 형씨가 전화 통화를 했다’ 라는 한마디로 나는 질투가 치솟아서 머리가 띠잉 울리면서 아프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하고, 전쟁터 한가운데에 서있는 듯 한 흥분감에 전율했다.

  

옛말에도 있듯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는 두 마리 전부다 놓치는 법인데 왜 그걸 모르실까.

  

  

  

  

  

  

  

  

  

-

나는 히지카타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형씨라는 존재가 자꾸 나를 구석까지 몰아붙이는 듯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불안하지 않는다고 자꾸 되뇌였지만 사실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는데 늦은 시각 조용한 둔영에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히지카타를 떠올렸다. 밤늦게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던 그가 생각나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역시 히지카타였다. 갑작스레 뛰쳐 나온 나를 보고 놀란 듯이 나를 보고는 왜 안자고 있었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물었다.

  

“어디가?”

  

“..아. 담배피러”

  

“이 저녁에 담배피러 밖에 나간다고?”

  

“그냥 바람 쐬러 나왔어. 잠도 안오고 해서. 왜 그래? 자다 깼으면 어서 자.”

  

...거짓말

  

“나도 갈래”

  

나는 나와서 신발을 대충 신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담배 냄새 싫어하면서 굳이 왜 따라와?”

  

“그냥. 같이 갈래”

  

그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고 나는 바짝 뒤쫓았다.

  

손. 잡고 싶었는데 잡기가 망설여졌다. 어릴 때 곤도씨 와는 손을 많이 잡았던 것 같은데 이 녀석과는 잡아본 기억이 없다. 하긴, 그때는 내가 이 녀석을 싫어하고 있던 때라 가까이 오는것도 굉장히 질색하면서 싫어했었다. 내 몸에 손을 대는 것도 싫어서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난리 난리를 치면서 욕을 지껄이곤 했는데, 사실 남자들끼리 손을 잡는다는 것도 완전히 낯간지럽고 이상한 것도 사실이긴 하다. 이 녀석은 말없이 담배를 피우며 걷고 있다. 내가 손을 잡고 싶어서 망설이다 손가락이 살짝 부딪쳤을 때 그가 내 손목을 턱 쥐었다. 내가 놀라서 쳐다보니 그가 말했다.

  

“앞에서 걸어. 연기 싫어하잖아”

  

"응? 어어..“

  

그가 잡은 손목이 데인 듯이 뜨거웠다. 진짜 담배 피러 나온 건가.. 나는 뒤에 서서 걷는 그를 돌아보자 그가 약간 퉁명스럽게 왜. 하고 말했다. 나는 그의 표정이 웃겨서 작게 웃었다.

  

“잠깐 앉았다가 가자”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기분 좋게 부는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고 갔다. 적당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 녀석이 옆에 있어서 더 좋았다.

  

“카구라는?”

  

히지카타가 차이나 이야기를 꺼내서 의외였다. 아. 그러고 보니 형씨가 전화 했었다고 했지? 아마도 내가 차이나 이야기를 하면서 막 뱉은 이야기를 말 했을 것이다.

  

“차이나가 왜?”

  

“아니 잘 지내나 해서”

  

“그 꼬맹이가 못 지낼 일이 뭐가 있어? 그리고 왜 나한테 물어?”

  

“니가 친하잖아”

  

“친한가?”

  

내가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해결사 녀석이 그렇게 이야기 하길래”

  

나만큼이나 이 녀석도 마음이 미묘한 것 같았다. 형씨와 전화를 했다면 나에게 굳이 차이나의 안부 정도를 물을 이유가 없는데.. 나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 녀석은. 내가 차이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관계인지.

  

“나. 그 꼬맹이에게 아무런 감정 없어”

  

묻지도 않은 말에 나는 약간 변명하듯이 말했다.

  

“나랑 차이나랑 절대 아무사이 아니야! 그냥 차이나가.. 아니. 아무튼 그런 거 아니야”

  

차이나가 일방적으로 나를 좋아하는 거야! 라고 말하려다가 왜인지 모르게 이 꼬맹이의 마음을 본인이 아닌 내 입으로 멋대로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하지 않았다.

  

내 말에 히지카타는 잠깐 나를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근데 너 답지 않게 왜 이렇게 강하게 말해?”

  

“아니, 다들 오해하니까... 좀 귀찮기도 하고..”

  

“니가 그렇게 말 안해도 대충 알고 있었어”

  

그리고 잠시 텀을 두고 다시 말을 이었다.

  

“소고.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건 치사한 짓이야. 니가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냥 알아두라고”

  

나는 잘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그럴 생각도 없고.. 형씨에게 한 말은 그냥 형씨의 화를 돋구기 위해서 한 말일 뿐이란 말이야.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나에게 ‘니가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며 나에 대한 믿음을 드려내 주어서 좋았다.

  

  

  

  

  

  

  

  

  

-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같이 순찰을 나가다가 내가 갑자기 생각나서 물었다.

  

“차이나랑 내가 정말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했어?”

  

“뭐.. 그렇지. 그 꼬맹이가 자주 찾아오기도 하고, 그런 소문도 있고 해서”

“근데 왜 아니라고 생각했어?”

  

“아무리 봐도 니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런게 보였어?”

  

“보이지. 정말 좋아한다면 저렇게 행동할 것 같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역시 너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았을 거다. 내 마음이 향하고 있는건 자기 자신이라는 걸.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런 식’의 이야기는 안할 거라는 것도”

  

형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말하는 듯 했다. 나는 이 녀석의 말에 말없이 그저 씨익 웃었다.

  

  

나는 계속해서 이 녀석을 옆에 두고 싶어서 고집을 피웠다. 어딜 간다고 해도 난 항상 같이 가자고 졸라댔고, 이 녀석이 안 된다고 해도 난 원래 이 녀석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항상 쫓아갔다. 비번에도 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쉬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히지카타는 진심으로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왜 이러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히지카타씨랑 있고 싶어서요 라고 장난스럽게 말했고, 히지카타는 닥치고 비번이니 쉬라며 피곤하지 않냐고 말했다. 아- 역시 날 걱정 하는 건 이 녀석 뿐이다. 1분 1초라도 함께 하고 싶어하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말이야. 이 녀석이 비번 일때는 내가 일을 땡땡이 치곤 그를 찾았다. 나를 본 히지카타는 왜 땡땡이 치냐며 화를 내면서도 밥 먹었냐고 물으면서 밥을 사주기도 하고, 음료를 사주기도 했는데 이 녀석의 행동을 보면서 역시 이 녀석도 나의 이런 행동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았다. 둘이 지나가다가 우연히 형씨를 만난 적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다소 유치한 행동이었지만 히지카타를 잡아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히지카타는 갑자기 왜 이러냐고 물으면서 나에게 끌려갔고 그러면 형씨는 뒤에서 그 특유의 동태눈깔로 그냥 나와 그를 멍하니 쳐다보곤 했는데, 형씨의 그 표정은 나에게 느끼는 패배감과 열등감이 잔뜩 서려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그날 너무 행복했다. 혼자 보는 게 너무 아까울 정도로,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을 정도로 통쾌해서 사진으로 찍어두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히지카타가 형씨와 연락을 한다는 것도 싫어서 하루는 핸드폰을 이유 없이 빼앗아서 부숴버렸다. 히지카타는 또 시작이다 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면서 한숨을 한번 쉬곤 새로 사러 간다고 말해서 내가 말했다.

  

“그냥 핸드폰 없으면 안돼?”

  

“...그건 무슨 소리냐?”

  

“어차피 연락하는 사람은 둔영의 사람밖에 없잖아요. 필요 없잖아 그냥 만들지마”

  

“그 둔영 사람들이 하루에도 나한테 수백 번씩 전화를 해대거든?”

  

“그럼 나한테 하라고해. 내가 바꿔줄게 나랑 계속 있으면 되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릴하고 있어 이자식이”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면서 말하곤 핸드폰을 사러 간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도 같이 가자며 그를 쫓았다.

  

  

  

  

  

  

  

  

  

  

-

형씨와 연락을 하는게 싫어서 핸드폰을 부숴버릴 정도 였으니 내 안의 소유욕과 독점욕이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차오르다가 이내 나도 느낄 정도로 커졌다. 혹시나 내가 잠들었을 때 밖에 나갈까봐 나는 경비병들에게도 항상 말했다. 히지카타가 혹시나 나가면 나에게 즉시 알려달라고. 경비병들이 이유를 물으면 나의 대답은 하나였다. 그냥, 장난치고 싶어서.

그 이후론 나간적은 없는지 내가 경비병들의 부름을 받을 일은 없었다. 그와 함께 한 방에서 그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은 나를 건들고 싶어 하지 않아하는 그의 마음에 내가 자극하는 셈이 된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진 않았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나도 그의 생각을 소중하게 여겨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안다면 이 녀석은 분명히 이렇게 어른스럽게 생각하는 나를 철이 들었다며 칭찬해 줄 거다.

  

  

  

  

그리고 몇 일 후,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마쳤을 때 그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소고, 자?”

  

“아니 들어와”

  

그는 내 말에 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왔다.

  

“자려고 했구나.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그가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약간은 머뭇머뭇 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녀석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면서도 이내 약간 기대했다. 다음날 아침에 해도 좋을 이야기를, 이렇게 머뭇거리면서 직접 찾아와서 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일까.

  

“자려고 했으면 그냥 자. 늦었는데”

  

“아냐! 괜찮아”

  

나는 돌아가려는 그를 붙잡았다. 그는 내 말에 자꾸 머뭇거리다가 이내 문을 닫고 들어와서 내 침구 옆에 앉았다. 난 여전히 침구에 앉아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고 계속 애꿎은 다다미 바닥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할 얘기가 있다며? 해봐”

  

나는 가만히 웃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에 이렇게 머뭇거릴까 웃기기도 하고 속으로 혹시 지금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 하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 앞에서 자꾸만 고민하는 히지카타 앞에서 나도 함께 떨었다.

  

“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왜 뭔데-”

  

“....니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계속 망설였어. 근데 요즘 너의 행동을 보니까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더 이상 미루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소고, 나 너를 좋아하나봐. 나도 모르게 니가 좋아졌어. 그가 꺼낼 말이라고 생각했다.

  

“너도 대충.. 눈치 챘겠지만.. 나..”

  

너를 좋아해. 너를 사랑해.

  

“....해결사 녀석과 사귀고 있어”

  

약간의 뜸을 들이다가 그가 말했다.

.....응? 해결...사?..... 형씨? 사귀고 있다고? 너무나 터무니 없는 말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소리내서 웃자 그가 나에게 한참 있다가 말했다.

  

“니가.. 어떻게 생각할지 잘 알아”

  

“히지카타, 너 무슨..”

  

“...긴토키에게도 들었어. 긴토키도 얘기하더라 니가 알고 있는 것 같다면서. 니가 좀 이상하다고”

  

“...”

  

“무서웠어 니가. 어떤 눈으로 날 볼지.. 네 누나 일도 있고... 그래서.. 사실 죽어도 감추려고 했어. 절대로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거짓말”

  

무슨 이유인 지는 잘 모르지만 이 녀석은 지금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요즘 들어 나에게 종종 거짓말을 해왔고, 지금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 녀석의 마음을 모를 리 없지만 이 순간은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형씨에게 무언가 잡힌게 있나? 왜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거짓말 아니야”

  

“요즘 나에게 종종 거짓말을 하잖아 너.”

  

“그래, 많은 거짓말을 했어. 그리고 더 이상 거짓말.. 하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 거짓말이잖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또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

거짓말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녀석은 지금 나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다.

  

“히지카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나. 긴토키를 사랑해”

  

....거짓....말....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거짓말이 꽤나 충격이었는지 그의 말과 동시에 나와 내 주변 모든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긴토키도.. 나도.. 우리, 서로를 사랑하고 있어.”

  

“..”

  

“네 누나 일도 있고.. 그래서 니가 어떻게 볼지 정말 두려웠어. 이대로 니가 날 영영보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난 너와 아예 틀어지는 관계가 되는 건 끔찍하게 두려웠나봐. 그래서 자꾸 미루게 됐어. 무조건 미룬다고 해결 되는 게 아닌데... 전부다 이해해달라고는 하지 않을게.”

  

“...”

  

“..얼마 전에.. 나에게 쉽게 실망하지 않는다고 말해줘서 고마웠어. 니가 나에게 그렇게 따스한 말을 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그렇게 말했어도 이 일로 나에게 크게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이라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싫다. 왜 내가.. 니가 사랑하는 내가, 너의 입에서 다른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들어야해? 그리고 우리 누나 이야기는 또 뭐야 그게 나랑 지금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형씨와 서로 사랑하고 있다니.. 너.. 미친거야..

  

“미친....”

  

내가 한참을 입을 열지 못하다가 탄식하듯 내 뱉은 한마디였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할거라고.. 생각했어.. 어떤 욕이라도 그냥 들을게”

  

“...히지카타, 너.... 미친거야”

  

“...응.. 알아.”

  

나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못했고, 그 역시 여전히 애꿎은 다다미 바닥만을 바라보면서 침묵을 지켰다.

  

“미안... 괜히 저녁에 찾아와서.. 몰라도 좋았을 이야기를 나 편하자고 털어놓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몰랐다는 눈치인데.. 괜히.... 우린 네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우리? 내가 아닌 니가 다른 사람과 함께 ‘우리’ 라고 칭하는 건 싫어.

  

“이만.. 갈게. 잘자”

  

그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그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잔뜩 헝클어 놓고 돌아갔다. 나는 그가 돌아간 뒤에도 한참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히지카타는 미쳤다. 형씨가 무어라고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는 분명히 미쳐버렸다. 형씨가 그에게 들이댄 성욕이라는 무기가 그렇게 강력한 것이었을까? 지금 히지카타는 얼마나 괴로울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거짓을 말하는 그 심정.. 나만큼 그도 괴로울 거야.

  

‘나 긴토키를 사랑해, 긴토키와 서로 사랑하고 있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지금 까지 다쳤던 그 어떤 때보다 더 아팠다. 칼로 몸을 관통당해도 이 것 보다는 덜 아플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치료해 줄 무언가가 없어서 더 아팠다. 그 입에선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 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야 왜. 그런 거 싫어. 싫어. 물론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안다. 알아도.. 알아도 그런 건 싫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나는 너를 믿어.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서로 사랑한다는 그런 말은 너무 아파.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마. 아프단 말이야. 나..아픈거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거 잘 알면서..

  

눈이 잠시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배갯잇을 적셨다. 누나가 죽었을 때 말고는 눈물이라곤 흘려본 적이라곤 없는 내가, 그 싫어하던 히지카타 때문에 눈물을 흘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혹시나 흐느끼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봐, 떨리는 입으로 입술을 꽉 물었다. 씨발 짜증나! 형씨는 뭔데 왜 갑자기 우리 사이에 껴서, 우리 사이에 껴서... 나와 이 녀석의 사이를 억지로 잡아 뜯어놓으려 해요. 긴 세월을 함께 해온 우리를, 왜 갑자기 나타나서.. 왜..왜...

  

그 날 꿈에서 히지카타는 나에게 한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며 괴로워했다. 무엇이 그렇게 괴롭냐고 물어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히지카타가 히지카타였다가, 내가 얼굴도 잘 기억나지 못하는 나의 부모님의 형태였다가, 곤도씨였다가, 우리 누나였다가 자꾸 모습을 바꾸었다. 히지카타라고 생각하고 보면 누나였다가, 누나 인가 해서 보면 히지카타였다가, 다시 곤도씨였다가, 낯선 우리 부모님이였다가 여러 가지의 형태로 바뀌어 오싹하기까지 했지만 한없이 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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