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21

2015. 8. 19. 14:06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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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돌아오겠다고 말한 그는 돌아올 시간이 충분한 시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 형씨를 찾아갔나? 원래라면 그렇게 까진 행동을 취하지 않았지만, 그날은 뭔가 확인하고 싶어서 늦은 저녁 몸을 일으켜 형씨의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옅은 밤 안개가 옅게 깔려 그 날의 밤은 몽환적이었다. 밤에 우는 이름 새들의 소리마저 그 밤을 메아리쳐서 약간 으슥했다. 그가 보고 싶었지만, 형씨와 있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서, 가면서도 제발 히지카타가 그 곳에 있지 않길 바랐다. 늦은 시각이어서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에 있다면 쉽게 그를 발견 했을 텐데 거리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서 형씨의 집안에도 불이 꺼져 있어서 약간은 안심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바로 옆 좁은 골목에서 작게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전에 골목에서 히지카타와 형씨의 그런 충격적인 모습을 본 나는 그 이후로 골목 쪽을 서둘러 보는 것을 두려워해서 그 안은 확인하지 않은 채, 바짝 기대어 대화소리를 엿들었다.

 


“... 그니까.. 이야기를 해봐..”

“...”

“왜 연락은 안 해? 왜 피해? 응?”

그 친숙한 목소리. 우울하게도 히지카타였다. 약간은 나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형씨를 달래고 있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그 안을 쳐다보지 못했고 도저히 그 자리에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고개를 가슴팍에 파묻듯이 푹 숙였다.

“이유를 말해야 내가 알 거 아냐, 너 얼마 전에 소고 녀석 만났다며?”

“...”

“자꾸 이렇게 말 안할래?”

“.....나에게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 너”

“그런 거 없어”

 


“그럼 너 전에 혼자 살았던 그 집에 지금 누가 살고 있어?”

“...거긴 왜?..”

“카구라가....카구라가 거길 알고 있데. 그 곳 너랑 나 둘만 아는 곳 아니야?”

형씨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은색머리 아저씨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해. 그 표정이 좀 무서웠다해..]

꼬맹이가 나에게 또박또박 글씨를 써서 줬던 내용의 마지막 부분이 생각났다. 나는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슬쩍 그 둘이 대화하는 곳을 훔쳐보았다. 형씨는 화가 난 듯 했고, 히지카타는 그런 형씨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태도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차이나는 나와 그 곳에서 만났던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형씨는 몰랐던 거다. 그 공간을 차이나도 함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 잠깐 생각이 좀 필요해”

형씨가 약간 단호하게 말했다.

“..카구라가 알고 있다는 게 무슨 상관이야?”

“그 집안 유리창에 낙서를 해놨어. 그럼 그 안에 들어갔다는 거잖아”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아. 됐다. 나 지금 생각할게 좀 있어. 그니까 오늘은 우선 돌아가”

형씨는 약간 화가 난 듯, 그리고 힘이 빠진 듯 말했다.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했고, 히지카타는 이유를 말하라고 화를 냈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흐르다가 형씨가 망설이다가 말했다.

“.....카구라의 주머니에서 무슨 사진이 떨어졌어. 근데 그게.....말 할 수 없는 내용이야.”

......나는 그 사진이 무슨 사진인지 바로 알았다. 그리고 순간 온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내가 분명 다 태워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꼬맹이는 급한 나머지 내가 봤던 그 한 장을 주머니에 우겨넣었나보다. 근데..그 이야기가 왜 나와?

“뭐라는 거야? 똑바로 이야기해! 사진이 뭐가 어쨌다는 건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성이 있는 건데?”

형씨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한참 한숨을 쉬다가, 머리를 감싸다가 끝내 말했다.

“.........하... 씨발!..... 손발이 다 묶여져선 울고 있는 사진이었다고!”

“....뭐?”

 


“이상해! 다 이상해! 카구라가 그런 곳을 알고 있었다면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어! 기억을 잃은 것과 이 모든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아! 그 집. 지금 누가 있어?”

 


형씨의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다시 불안했다. 이상하지만 그럴듯한 조합으로 형씨는 상상하고 있었다. 그 집에서 카구라가 그 집 주인에게 그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나보다. 약간의 불안함과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속이 쓰릴 정도였다.

“.....”

“왜 대답을 안 해? 거기 누가 있냐고 묻잖아 이 자식아!”

형씨는 히지카타의 멱살을 움켜쥐면서 소리 질렀고, 히지카타는 그런 형씨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거다. 내가 오해 받을까봐.

“언제, 누구한테 팔았는지.. 그래 누구인지까지는 모를 수 있지. 인상착의라도 말해”

“....”

“나한테 숨기는 거 없다며?”

히지카타는 그 순간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형씨가 그의 모습에 더 이상한 상상을 해버렸는지 멱살을 잡고는 거세게 흔들면서 왜 아무 말이 없냐면서 언성을 높혔다. 지켜보지 않아도 형씨가 외치는 소리만으로 충분히 그가 흥분했고,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항상 게으름에 가득 찬 동태 눈깔을 하고 있는 그가 그 순간은 광기어린 눈동자를 하고 있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히지카타는 말없이 그의 흥분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나에게 줬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나 나를 놓을 수 없는 아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겠지. 나는 약간은 불안하면서도 이내 불안하지 않았다. 왜나하면 나에겐 내가 아니라는 증거도 이미 있었고, 히지카타가 날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나의 오빠라는 사람이 낱낱이 제 죄를 기록한 편지. 버리지 않은 것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히지카타에게 윽박지르는 그의 광기와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다시 둔영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뭐랄까.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즐거웠다. 기뻤다. 그가 나를 지키려든다는 점이.. 역시, 성욕으로 묶어놓은 그런 가볍고 더러운 사랑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형씨를 자상한 말투로 달래면서,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말하면서 화를 냈더라도 그는 나를 결코 놓진 못했다. 그와 연결되어있는 새끼손가락에 묶인 운명의 실이 서서히 그를 잡아당기고 있다. 새끼손가락이 저릿할 정도로. 둔영에 돌아온 나는 괜시리 들떠서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형씨가 나에게 주었던 고통들이 바닷물처럼 천천히, 서서히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운명이라는 존재에게 감사하다고 온 마음을 다해서 기도했다.

 

 

 

 

 

 

 

 

 

 

 

 

 

 

-
다음날 회의에서 본 히지카타는 굉장히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잠도 거의 못 잔 듯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괜시리 푹푹 한숨을 내쉬어댔다. 대원들은 잔뜩 저기압인 상태의 히지카타를 보고 다들 서로 눈치만 보면서 긴장한 말투로 히지카타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달래주고 싶기도 하고, 어제의 일이 생각나서 칭찬해주고 싶기도 해서 그런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나와 눈을 맞추더니 이내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 모습도 귀여워서 작게 킥킥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히지카타는 나를 보며 화난 듯이 표정을 굳히고 경멸에 가까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갑자기 회의실의 공간은 공기가 더욱 더 힘을 받은 듯 무거워졌고, 나는 그런 상황에도 그에게 쫄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현재 나는 그에게 패배자의 입장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유효했기에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뭐가 그렇게 좋아?”

히지카타가 화가 난 표정으로 물었다. 목소리도 다른 때에 나를 혼낼 때와는 다르게 한결 차갑고 무거웠다. 다른 대원들이 긴장해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안다. 저런 표정의 히지카타는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동시에 나에겐 그렇게 심하게는 안한다는 것. 긴장 풀어 새끼들아.

“딱히 좋진 않아요”

나는 최대한 진중하게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표정이 그렇진 않았나보다.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내 앞에 내던졌다. 이런 행동을 나에게 한 적은 처음이었지만, 요즘 미친 히지카타는 종종 나에게 해온 적 없는 일을 여러 번 해왔기 때문에 사실 약간은 화도 났지만 자비롭게 그를 이해했다. 여러 장의 종이들이 팔랑팔랑 내 앞에서 춤을 추며 떨어지는 모습. 오히려 나는 축하하는 종이 꽃가루를 조금 크게 자른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터무니 없는 생각했다. 그리곤 내 앞에 널부러진 서류를 한 장 한 장 주워서 히지카타에게 얌전히 포개어 가져다 주었다.

“부장님, 서류 흘리셨는데요?”

아직도 화가 덜 풀린 표정이었지만, 나의 이런 행동엔 약간 놀란 것 같았다. 내가 내민 서류를 확 낚아채고는 말했다.

“따라와”

그 날 회의는 그렇게 내가 이 녀석에게 끌려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뒤따라가는 이 녀석의 뒤통수부터 느껴진다. ‘나 존나 화났어’ 라고. 왜 화가 났는지 난 알 수 없었다. 그를 뒤따라가자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문 닫아 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순순히 문을 닫았다. 닫자마자 이 녀석이 내 멱살을 쥐어 올리며 벽에 거칠게 몰아붙였다. 갑작스러운 이 녀석의 태도가 당황스러워서 눈을 깜빡거리면서 쳐다봤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너?”

“...뭘...”

“너, 내가 준 곳에서 무슨 짓 하고 다녀?”

“...”

나는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그가 나를 아껴서 나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히지카타는 나를 믿고 있지 않았다. 내가 의심받을까봐 형씨에게 감추었다기 보다는 그때 당시 잔뜩 흥분한 형씨에게 그 어떤 말을 한다하더라도 그를 진정 시킬 수 없기에 우선 그를 진정시키려 한 것, 그리고 나를 떠올리고 확신과 함께 확인이 필요 하다고 생각 했나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힘없이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말했다.

“... 너.. 씨발..너 최악이야”

최악?

“그런 짓까지 벌이는 녀석이라고는 생각 안했어”

그런 짓?

“...”

“봐, 너 내가 무슨 일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잖아. 그니까 더 물어보지도 않잖아. 캐묻지도 않잖아!”

그래. 알고 있어. 너랑 형씨 이야기 다 들었으니까. 나의 덤덤한 표정과 대답하지 않는 태도가 그의 생각에 확신을 주었나보다.

내가 여전히 입을 다물고 말없이 충격 탓에 말간 눈동자로 그저 화를 내는 이 녀석을 멍하니 올려다보자 그가 내 어깨를 거칠게 흔들면서 진짜야? 말해! 말을 해! 하고 소리 지르면서 거칠게 흔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 뿐만 아니라, 너를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범죄라면서 나에게 소리 질렀다. 히지카타... 아무리 땡땡이 치고 다니고 일도 제대로 안하고 다닌다고 치더라도 나도 경찰인데, 설마 그런 걸 모르겠어?

 


형씨가 이 녀석에게 했던 행동과 비슷한 행동이었다. 잔뜩 화가 나서 소리 지르는 꼴이. 변명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의심을 해왔다면 주저하지 않고 해명 했을 거다. 오해가 있다 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미쳐버린 니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잠시 내 곁을 떠난 것도 모자라서 나를 의심하고, 당연히 나라면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는 확신까지 가지고서 나를 몰아붙이면서.. ‘최악’이라고?

 


흥분한 그가 진정되었는지 잠시 말을 아꼈다. 그리고 한참 말이 없는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니라고 믿고 싶어”

믿고 싶어? 그 말조차 지금 너는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거야. 이미 네 머릿속에 내가 그런 짓을 하고도 남는 다는 확신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야. 나는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차이나의 오빠라는 사람의 편지를 통해서 실패사례를 간접적으로 경험했기에 어느 때보다 착실하게 기다렸고, 히지카타의 눈치를 보면서 최선을 다해서, 나의 모습을 바꾸면서까지 그에게 맞추어 왔다고 생각한다. 히지카타가 아마 나의 입장이 되었다면 나는 그를 무슨 일이 있어도 믿었을 거야! 절대로 이렇게 의심하고, 혼자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만약에 네가 나를 속여서 내가 속았다고 하더라도, 너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너의 곁을 끝까지 지켰을 거야. 네가 무고한 사람을 죽였더라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너를 믿었을 거야. 네가 세상을 등지는 일이 있더라도 그 옆에 나도 함께 할 거야. 설령 네가 너와 나에게 소중한 곤도씨를 해친다 하더라도 나는 이해할거야. 너에게 말 못할 사정이 생겼구나. 하면서.

 


“양심이 있다면, 이제 카구라 만나지마”

 


..... 나라면.... 끝..까지..너를.... 믿을....거야

“내가 잘못 생각했어. 너를”

 

 

 

 

 

 

 

 

 

 

 

 


-
나의 순수한 마음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한 불신이었다. 그런 그의 배신은 전보다 더 나를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돌발행동은 하지 않았다. 나답지 않게 소심했다. 그 다음날에 히지카타는 회의를 빠져도 나를 찾지 않았고, 일을 하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았다. 대형 사고라도 하나 일으킬까 했다가, 왠지 그래도 그가 나를 혼내거나, 따로 부르지 않는다면 더 우울해 질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대원들 말에 의하면 내 이야기를 하자 그냥 완전히 무시하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러워했다. 어떻게 했길래 회의를 빠져도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 말을 하지 않냐면서 자기들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이 상황이 하나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의 그는 나를 쫓아와야 하는데, 쫓아오긴 커녕 아예 관심을 끊어버렸다는 점이 나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 날은 이 녀석의 말대로 차이나를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차이나도 나를 전처럼 찾아오거나 하지 않았다. 그 점은 무척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척 예민해져 있던 터라, 그날 꼬맹이를 만났다면 쌓아온 신뢰를 한번에 잃었을 수도.

 

 

 

반쯤 정신을 놓은 채로 마치 몽유병환자처럼 멍하니 걸어다니다가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물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먼 발치에 서서 그를 쳐다보자 그도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이내 나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쳐다보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내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말했다.

 


“....널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 중이야”

 


긴 한숨과 함께 품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그 날 따라 슬프다. 날 어떻게. 어떻게 할 건데.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주겠다고 했으면서. 그렇게 말은 해도. 결국은 날 믿을....거지?

 


나는 여전히 말 없이 그의 옆에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숙이고 한참 서 있었다. 먼저 내 곁을 뜬 건 히지카타였다.

 

 

 

 

 

 

 

 

 

 

 

“미안하다 해!”

다음날 차이나가 나를 찾아와선 두 손을 모으고 외친 첫 마디였다.

“혹시.. 나 기다렸냐 해? 같이 있는 그 아저씨가 갑자기 어딜 가자고 해서.. 핸드폰도 빼앗겨버렸다 해! 돌려 달라고 해도 안주더라해.. 그래서 어젠 연락도 못했다해. 혹시 나 기다려서 화난거냐 해?”

내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차이나가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그런 거 아냐”

 


“오늘은 내가 아이스크림 사준다해!”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어 손바닥에 올려놓곤 한참 세어보다가, 몇 백원이 모자란다면서 보태주면 안되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다. 히지카타가 나에게 만나지 말라고 해서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난 그런 짓을 한 적이 없고, 양심이 아프지도 않으니까. 그냥 이 꼬맹이가 항상 귀찮았던 나의 평범한 행동이다. 차이나는 그런 내 앞에 쪼르르 달려와서 내 앞을 막곤 말했다.

 


“왜 이러냐해! 진짜 화 난거냐 해?”

“아니라고”

“이상하다해! 같이 사는 그 아저씨도 그렇고.. 왜 다들 기분이 안 좋냐해..”

나만 이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형씨도 그때 이 녀석과 싸워서 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기분 좋진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나보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만약 이렇게 구석에 몰린 상황에서 형씨가 웃으면서 지낸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정말 미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히지카타라는 사람은 도데체 뭐냐 해? 왜 맨날 그 아저씨가 그 녀석한테 전화만 오면 예민하게 화가 나 있는지 모르겠다 해. 그러다가 내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면 애써 웃어주는 것도.. 뭔가 안쓰럽고...그리고.. 혹시 기억 나는 게 있으면 바로 이야기 하라고 슬프게 말한다 해”

정말 말을 했을까? 기억이 났을까? 나는 마음을 바꿔서 주머니에 있던 몇 백원을 이 꼬맹이에게 내밀었다.

“...?”

뭔가 해서 쳐다보는 이 꼬맹이에게 말했다.

“몇 백원 모자란다며? 니가 사는거니까 난 너 모자란 만큼만 줄거야”

잠깐 울적하게 이야기 하던 차이나는 내 손에 놓인 동전을 들고는 오렌지맛하고 포도맛 중에 무슨 맛을 먹을 거냐고 물으면서 활달하게 웃었다. 자기가 사온다고 말했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같이 가자고 했다. 자기가 사가지고 왔는데 내가 기다리지 않고 사라질 것 같다면서 내 팔을 잡아 끌었다.

난 포도맛, 이 꼬맹이는 오렌지맛을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쪽쪽 빨아먹었다. 내가 지금 이런 뭣 같은 상황에, 시덥지 않은 이런 쭈쭈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 꼬맹이와 앉아 있는 이유는 그냥 이 꼬맹이에게서 말을 듣고, 형씨의 상황을 듣고 싶어서였다. 형씨가 히지카타와 싸운 것은 다행이다. 근데 뭐.. 나도 히지카타와 좋은 상황은 아니었기에 형씨보다 내가 우월한 것도 없었고, 오히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히지카타에 한정해서 형씨보다 한 단계 아래였기 때문에 그냥 덤덤하게 들었다.

 


 


“뭐가 생각나면 형씨보다 나한테 먼저 이야기해”

“응? 응응!”

꼬맹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궁금하면 우선 나에게 먼저 물어봐”

“응응!”

“무슨 일 있으면 나에게 말해”

“응응!”

이 꼬맹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진짜 그 아저씨 나 되게 좋아하나봐. 가끔 우리 아빠 같을 때도 있어”

“너무 정 주지마. 그래도 남이잖아”

차이나는 그런 내 웃음을 좋아했으니까 나는 다정하게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내 말에 차이나는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나의 상황이 좋은 상황이었다면 더 신나게, 더 신랄하게 머리를 쥐어짜내서 형씨에게 어떻게 할지 계획을 짰을텐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남을 괴롭히는 것 보다 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였다. 정리.. 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그냥 안타깝지만 히지카타를 지켜보는 것 밖엔 없었다. 아직도 난 어려서인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내가 변명하지 않아도 히지카타라면 무조건적으로 날 믿어줄거라고 생각하고 그러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가 만약에 날 끝까지 버린다면 난 죽어버릴거야. 그 녀석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가장 각인되도록. 본체에서 떨어질리 없는 꼬리표가.. 불운하게도 떨어진다면 꼬리표에게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어떻겠어요? 죽은 것이나 다름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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