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19

2015. 8. 19. 14:03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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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배낭을 매고 다쳐있는 이 꼬맹이를 발견했고, 그래서 병원에 옮겨줬고, 깨었을 때 이 상태였다고. 옆에서 차이나는 계속 누구야? 저 아저씨? 하고 말하면서 내 팔을 꽈악 붙잡았다. 더 이 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꼬맹이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면서 그럼 가보겠다고 말했다. 꼬맹이는 나에게 어딜 가냐면서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자꾸 억지를 쓰고, 나는 이 꼬맹이에게 여기가 너의 집이라고 한참 설득했다. 집이라는 말에 그럼 아빠와 오빠는 어디 있냐면서 울 듯한 얼굴로 자꾸 물었고,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일단 여기서 얌전히 있으면 찾아올 거라고 둘러댔다. 나가려는 나를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면서 내일도 올 거냐면서 징징거리는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어린애면서 힘은 여전히 너무 쎄서 알겠다고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겨우 이 꼬맹이를 떼어내고 문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런 내 뒷모습에 대고 형씨가 말했다.

  

“...고마워”

  

그 말에 뒤돌아보니 형씨가 약간은 미안한 기색으로 나에게 말했다. 또 시작이시네, 저 안쓰러운 척 하는 표정.

  

“너를 약간은 오해한 것도 있어. 그 점에선 미안해..”

  

나는 형씨의 말에 한참 쳐다보다가 대답 없이 밖으로 나섰다. 고맙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어서 약간 당황한 것도 있다. 오해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에 대해 안심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둔영으로 돌아갔다.

  

둔영에 돌아간 나는 요즘 히지카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그의 부하였으니까 쥐 죽은 듯이 그의 말에 잘 따랐다. 음.. 잘 따랐다기 보다는 대화자체를 거의 안하고 있었으니 뭐.. 그가 나와 둘이 있는 상황을 거의 두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대원들과 같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를 우연히 만나면 서둘러서 자리를 피하기 일 수였고, 심지어 간단한 결제를 받을 때도 혼자 찾아가면 다른 애들이랑 같이 오라면서 차갑게 말하면서 문 앞에서 나를 내치는 경우도 많았다. 문 앞에서 한참 그를 쳐다봐도 그런 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제 할 일을 했다. 나는 그런 그가 원망스럽기도 하면서 그와 비등하게 형씨도 미웠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 날도 나는 혼자 있는 히지카타에겐 다가가지 못하고 야마자키와 그냥 간단한 이야기 정도를 하면서 히지카타가 정해준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야마자키가 부장님 요즘 연애하신다는 소문이 많아요- 라는 소리를 하길래 나는 모르겠다며 그냥 무시하는 척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들켰나?’ 하고 움찔 하고 놀라야 할 대상은 본래 나여야 할 텐데, 이런 소식을 듣고 배알이 꼴려서 분해하고 있는 게 나라니.. 말도 안 돼.

  

일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데 문 앞에서 담배 따위를 피우고 있던 그가 조용히 지나쳐 가는 나를 보고 말했다.

  

“카구라 도와줬다며?”

  

그가 나에게 따로 일이 아닌 이야기로 말을 걸어오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잘했어”

  

그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홀연히 자리를 옮겼다. 그가 피우던 씁쓸한 담배 향 만이 그 자리에 남아서 나를 휘감아왔다. 원래라면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더 자상하게 말했을 거다. 이렇게 무뚝뚝하게 한마디 툭 던지고 나에게서 등을 보이는 게 아니라..

  

  

  

  

  

  

  

  

  

-

다음날은 둔영으로 이 꼬맹이가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찾아왔나 놀라서 이 꼬맹이를 한참 쳐다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어떤 대원 하나가 하는 말이 내 인상착의를 이야기 하면서 찾는다고 하면서 만나기로 했다며 데려다 달라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이 꼬맹이는 우리와 친해서 다른 대원들도 얼굴은 알고 있었기에 별 의심없이 데리고 온 모양이다. 그러면서 ‘근데 이 꼬맹이가 왜 대장 이름을 모르죠?’ 하고 물었다.

  

이 꼬맹이는 나를 발견하곤 뛰어와선 와락 안겼다. 너무 당황해서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아! 찾았다! 오늘 나 만나러 온다면서 왜 안 오냐 해!”

  

전에도 둔영에서 오해하는 일이 많기도 했고 대원들의 놀림이 귀찮았던 나는 우선 둔영에서 차이나를 데리고 나왔다. 공원 벤치로 데리고 가자 꼬맹이가 앉더니 제 옆자리를 툭툭 치면서 옆에 앉으라고 말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옆에 앉자 차이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나에게 전부다 털어 놓았다.

  

“어제 그 같이 산다는 아저씨가 나에게 카구라- 나 기억 안나니? 이러면서 자꾸 말 거는데 귀찮다 해! 나 정말 그 건달 같은 사람이랑 같이 있었던 거 맞냐 해? 심지어 조금 있으니까 안경 쓴 이상한 사람도 와서는 날 보고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무섭다 해.. 게다가 내 방이라는 곳은 벽장이고.. 다 싫다 해... 거기 있으면 정말 아빠랑 오빠가 오는 건 맞냐 해?”

  

“음.. 원래 너 알던 사람들이야. 근데. 네 기억으론 나도 처음 보는 사람이잖아. 근데 난 왜 이렇게 믿는데?”

  

“이거!”

  

이 꼬맹이는 가방에서 무언 갈 꺼내서 보니 전에 내가 줬던 제복 겉옷이었다.

  

“내 방이라는 곳에서 이거 찾았다 해, 이거 보고 알았다 해! 경찰 오빠는 정말 나랑 친했구나. 하고!”

  

저 옷을 보고 나와의 사이를 다시금 알았던 것도 있겠지만, 새끼 오리였나.. 알에서 깨자마자 처음으로 본 상대를 부모로 인식한다는 말도 있듯이, 이 꼬맹이도 의사와 간호사를 제외하고 처음 본 상대가 나였기 때문에 더 나를 믿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에 어땠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형씨와 신파치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형씨와 신파치보다도 나를 더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은 의아했다.

  

“너희 집에 같이 있는 은색머리 형씨랑 그 안경이랑 너. 이렇게 해결사라는 일을 하고 있었어”

  

“내가?”

  

“응”

  

“나는 어땠냐 해?”

  

“뭐가 어땠냐는 거야?”

  

“남자친구는 없었냐 해? 나 좋다는 사람은 없었냐 해?”

  

약간은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내가 알기론 없었지만.. 또 모르지. 나도 너에 대해선 디테일한 부분까지 자세히는 몰라. 그런 건 너와 함께 살고 있는 형씨에게 물어보는 게 더 빠를거야”

  

일 하러 가봐야 한다고 자리에서 뜨려고 하자, 이 꼬맹이가 이번엔 병원에 같이 가달라며 졸랐다. 나에게 병원에서 보호자였지 않냐며 자긴 병원이 무섭다면서 한참 나에게 졸라 대길래 어쩔 수 없이 (사실 그냥 뿌리칠 수도 있었지만, 나와 함께 있다가 그랬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 때문에 강하게 뿌리치진 못했다.) 동행했다.

  

의사는 이 꼬맹이를 다시 한번 진찰하고는 보호자의 신분인 나에게 말했다.

  

“혹시 기억을 찾을 만한, 좀 기억에 강하게 인식됐을 법한 그런 건 없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 그 충격에 기억을 되찾기도 할 텐데..”

  

  

검사 후, 이 꼬맹이를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나는 나의 공간에 들렸다. 한쪽에 놓여있는 차이나가 오빠에게 받았다는 가방과 그가 쓴 편지를 보고 한참 생각했다. 이것을 보여줘야 하나.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내가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온다면 무어라고 답해야 할지를 생각하자 딱히 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제의 가방은 그대로 들고 가서 다 태워버렸다. 가방과 함께 필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진이 차례로 타면서 까맣게 찌그러지면서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충격적이라서 이것을 보여주면 사실 기억을 되찾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충격적인 것을 내가 건네주는 것도 기분 나쁠 뿐 아니라 나는 착한 경찰이니까 이런 것은 보여주지 않는 것이 옳다고 혼자 제 멋대로 생각했다. 꼬맹이의 오빠라는 사람의 편지에서도 쓰여 있듯, 이 사진을 보낸 이유는 협박도 아니고, 다만 차이나에게 자신의 죄를 씻으려, 믿음을 얻으려 보낸 것이기에. 옆에 함께 있었던 편지는 태우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공감하고 있기에 그렇기도 하고, 그가 너무 열심히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편지 역시 꼬맹이에게 보여줄 생각은 없다.

  

  

  

  

  

  

  

  

  

-

나는 그날 둔영에 돌아와서 히지카타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는 것이 나에게 그런 용기를 가지게 만들었다. 늦은 시각 그의 방 문을 조용히 열었을 때, 나를 보고 지을 그의 표정이 두려워서 약간은 떨었다. 나에게 차갑게 대할까봐. 그리고 마른 침을 조용히 삼켰을 때 그가 그런 나를 보곤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기뻤다. 나를 내칠 것 같던 니가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해줘서. 책을 보는 그의 책상 앞에 앉아서 그를 쳐다보자 그가 읽던 책을 덮곤 오랜만에 내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생각은 좀 정리했어?”

  

“...무슨 생각?”

  

“요즘은 좀 정신 차리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안심이야”

  

“...”

  

“나도 너와 이런 식으로 지내기 싫어. 그냥 이전처럼 니가 나에게 장난치고, 나도 그런 너에게 화도 내면서 편하게 지내고 싶어. 내 말 잘 듣는 너, 어색해. 그냥 내 말에 대들면서 일도 제대로 안하는 니가 훨씬 편하고 좋아. 난”

  

나의 그런 뾰족한 부분이 훨씬 편하고 좋다고 해줘서 좋았다. 역시 히지카타는 나를 감싸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그는 지금 말을 틀리게 하고 있다. 정신을 차린 건 내가 아니고 이 녀석이었다. 그래도 나에게 오랜만에 이렇게 부드럽게 이야기를 해줘서 나는 눈물이 나올 만큼 벅찼다. 드디어 그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기다림의 결과가 나온 것 같은 그런 기분에 긴장이 다 풀려서 하아- 하고 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내가 좋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그런 거... ”

  

응..?

  

“그런 말.. 우리 사이에 어울리지 않아.”

  

나는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물론, 나도 네가 좋아. 너는 내 가족이잖아. 미츠바가 나에게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해. 때론 골치 아프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이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네가 좋아”

  

그래요. 나도, 나도 네가 좋아요. 히지카타씨. 내가 좋으면 좋은 거지, 우리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말은 무슨 소리에요?

  

“당연히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그런 사실은 변하지 않아. 하지만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고 이해해주라. 너는 가족이고, 그 녀석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야. 나는 둘 다 너무 소중해서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 생각해보니 내 옆에 항상 너만 있었으니까 네가 그런 서열 때문에 느끼는 불만의 감정을 사랑이라는 감정과 혼동했다고 생각해”

  

내가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그의 앞에 앉아서 그를 쳐다보고 있자 그가 다시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지?”

  

아니. 모르겠어.

  

“지금 네가 어려서 그래. 곧 나에게서 이런 감정을 착각해서 말했다는 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창피해 할 날이 올걸? 그땐 내가 기억해놨다가 엄청 놀릴거다”

  

이 녀석은 나를 보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왔지만 무엇이 웃겨서 웃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표정이 굳어서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히지카타가 그런 나의 머리를 전처럼 자상하게 쓰다듬으면서, 작게, 그래도 당연히 너는 나에게 첫 번째니까 안심해. 라고 말했다.

  

아직도 그는 나만을 사랑하는 히지카타가 아니었다. 당연히 그에게 내가 첫 번째 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나는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아. 첫 번째라는 자리는 유일하고 하나밖에 없는 자리이기에. 히지카타의 첫 번째 라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제 정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가 그런 사실에 대해선 잊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선 안심했다. 하지만 기다림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과, 약간의 기대에 찼다가 찾아온 실망감에 더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려고 티비를 틀고 멍하니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만담을 들어보기도 했으나 전혀 풀어지지 않았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잠도 오지 않는 이 상황이 괴로워서 뒤척거리고 있을 때 낮에 나의 공간에서 챙겨온 차이나의 오빠라는 사람이 쓴 편지가 생각나서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내가 너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 나와 마찬가지로 너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너에게 불길하고 싫은 존재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둘 중 어느 경우라도, 나는 너에게 떨어질 수 없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꼬리표이자, 그 뒷면엔 사랑이라고 쓰여 있는 꼬리표야. 아무리 떨어트리려고 발버둥 쳐도 떨어지지 않을 거야. 그것은 변하지 않아.]

  

그와 나는 닮았지만 다르다. 나는 히지카타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

  

[너의 말대로 나는 미쳤던 거야.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너를 내 앞으로 인도했던 그 사진을 한 장 한 장 바라보면서 나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어. 나의 이런 수단으로는 너의 미소는 커녕 너를 내 앞으로 절대로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거야. 이미 늦어버린 그 순간에.. 너도 알다시피 사람을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에겐 어려웠어. 사랑하는 너에게도 어떻게 해야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니가 내 마음을 알아줄지 표현할 방법을 몰랐어. 사실 지금도 잘 몰라.]

  

응. 나는 이 녀석이 저지른 것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거야. 살짝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나 역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이 녀석이 행한 일을 기록해 놓은 이 편지로 인해서 그런 짓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서 나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배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히지카타의 앞에서 히지카타가 헛소리를 지껄일 때, 대들면서 전처럼 내 감정을 호소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서 전과 같이 멀어질까봐.. 히지카타. 나에게 결국은 돌아올 거잖아. 그럼 빨리 오면 안 돼? 이렇게 나를 기다리게 만들어야 해?

  

  

  

  

  

  

  

  

  

-

히지카타는 내가 대답하지 않은 의미를 모두다 수긍의 의미로 생각했나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이후로 그는 나를 깨우러 왔다. 이미 깨서 눈을 뜨고 있던 나는 그가 오랜만에 나를 깨우러 왔다는 점에 놀라서 누워서 그를 한참 바라봤다. 그는 깬 나를 보고는 일찍 일어났네? 하고는 문을 탁 소리 나게 닫고 나갔다. 아- 좀 더 잘걸. 하필 오늘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나갔을 때, 히지카타는 나를 불렀다. 나는 그가 나를 쳐다볼 때, 나를 부를 때 너무 설레서 항상 기대감에 들떴다.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카구라가 너를 많이 의지하고 있나봐, 그래서 그러는데 긴토키 좀 도와주면 안될까?”

  

뭐야, 고작 불러내서 하는 말이 형씨를 도와주라고?

  

“...싫어요”

  

“이 녀석아. 좀 도와줘. 아직도 기억도 못하고 약간 무서워 하나봐. 카구라는 자꾸 널 찾는다잖아. 니가 가서 말이라도 긴토키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 좀 해주라. 응? 한번만 부탁 좀 할게”

  

형씨를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싫어서 그런 부탁을 하는 히지카타의 눈을 피하곤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도와주면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싫어. 싫어. 다 싫어. 다 싫어! 너 지금 부탁하는 것도 형씨라서 나한테 부탁하는 거잖아. 그 새끼 위해서 하는 부탁이잖아!

마음속으론 그렇게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이런 그의 간절한 부탁과 그와 둘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진짜 맛있는 거 사줄게”

  

히지카타는 고맙다면서 내 머리칼을 잔뜩 헝클곤 일을 하러 천천히 걸어갔다. 나에게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이용하는 것은 치사한 짓이라고 했던 사람은 저 녀석이다. 그리고 지금 의도치 않게 가장 치사한 새끼는 저 녀석이다. 지금 나는 너의 마음 앞에서 약자이기에 들어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용하는 치사한 새끼.

  

  

그가 말한 장소에 나가보니 형씨가 차이나를 데리고 나와 있다. 얼굴도 보기 싫어 형씨를 보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을 거다. 차이나는 나를 보고 전처럼 무섭고 당황스럽게 뛰어와선 자기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면서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 모르지만 자꾸 얼른 가자고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되는 건가 싶어 뒤에 있는 형씨를 한번 쳐다봤다. 형씨는 그냥 별 말없이 나와 그런 차이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은.. 뭐라고 해야하나.. 약간 슬펐다. 하긴, 원래의 차이나라면 이런 나보다는 형씨를 더 의지했을 텐데 지금의 상황은 좀 이상해졌으니.

  

여튼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으니 내가 카페나 가자고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기에. 꼬맹이는 그런 내 말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거냐면서 엄청 신나했다. 내 앞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나, 나랑 같이 사는 그 은색머리 건달 싫다해! 돈도 없고... 맨날 이상한 것만 먹고 말야. 경찰 오빠처럼 맛있는 걸 사주지도 않는다 해! 자꾸 조금 슬픈 표정으로 날 보는 것도 기분 나쁘다해!”

  

..뭔가 말이 슬픈데?

  

“안경도 말이야. 자꾸 나 가르치려 든다해! 기분 나쁘게”

  

잠자코 듣다가, 이 꼬맹이의 친오빠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살짝 물었다.

  

“아- 우리 오빠? 왜 궁금한 거냐 해? 음.. 엄청 잘 챙겨주고.. 나랑 가끔 싸울 때도 있지만.. 뭐.. 가끔은 엄청 멋있다 해! 오빠 앞에선 그런 말 한 적 한 번도 없지만..”

  

“그게 다야?”

  

“그럼 뭐가 더 필요하냐 해?”

  

“아냐, 그냥 궁금해서. 음.. 그리고 너랑 같이 사는 형씨랑 안경한테.. 잘... 해줘.”

  

잘 대해주라는 말이 하기 싫어서 부드럽게 나가질 않았다.

  

“그럼 맨날 올 거야?”

  

“응?”

  

“맨날 온다고 약속하면 그렇게 한다 해!”

  

“나랑 그게 뭔 상관이야?”

  

“나.. 오빠가 맨날 왔으면 좋겠다 해. 맨날 만나고 싶다 해”

  

“...?”

  

“나 오빠 완전 완전 좋아! 하늘만큼 땅만큼! 경찰오빠를 보면 우리 오빠가 약간 보인다해, 우리 오빠랑 닮은 것 같아서 더 좋다 해!”

  

내 앞에서 꼬맹이는 밝게 웃으면서 나에게 수줍게 말했다. 나는 그런 꼬맹이를 잠깐 보고 생각에 잠겼다가, 형씨가 약간은 슬프게 나와 꼬맹이를 쳐다보던 것을 생각했다. 형씨에게 있어서 이 꼬맹이는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저 아닌 나를 더 의지하고 있다는 것에서 슬퍼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래?”

  

“난 착한 아이니까 경찰 아저씨가 하는 말 잘 들을 거야!”

  

이 꼬맹이가 나에게 말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니까 맨날 보러 와주라. 나 착한 아이잖아”

  

딱히 나는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나 역시 의도치 않게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치사한 사람이 되려 하고 있었다. 차이나가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이가 아니기도 하고, 나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말을 잘 듣겠다’ 같은 이런 터무니없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했다고 하더라도 진심이 아니고 잠깐 그냥 하는 소리였겠지.) 하지만 지금 아이가 되어버린 이 꼬맹이는 또 다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말을 잘 듣겠다면서 순순하게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나는 이 꼬맹이를 이용할 생각이 없었지만..

  

“자 약속!”

  

이 꼬맹이가 새끼 손가락을 내 앞에 내밀며 말했다. 나는 이 꼬맹이의 장단에 약간은 놀아나 줄 생각에 같이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곤 웃으면서 알겠다고 말했다. 나의 대답에 이 꼬맹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곧 나와 시선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진 채로 우물쭈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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