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20

2015. 8. 19. 14:05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우와아 벌써 20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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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기에 딱히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우선 꼬맹이를 항상 만나는 것 외에는. 꼬맹이는 찾아온 나에게 항상 있었던 일을 보고하듯 말 했는데, 내가 형씨와 안경에게 잘해주라고 해서 노력은 하는 듯 했는데 그게 쉽진 않았는지 항상 형씨와 안경이야기를 하면서 투덜거렸다.

  

“그 아저씨는 나한테 잘해주는데 뭔가.. 나도 모르게 좀 어색해서 그런지.. 살갑게 못하겠다 해.. 내일은 같이 장보러 가자고 하던데 같이 가줘야겠지?”

  

아직 어색한 형씨와의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잘 대해 주라고는 말했지만 차이나가 아직 어색해하고 무서워하고 있어서 좋았다. 꼬맹이는 나에게 더 노력하겠다면서 잘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웃으면서 부담가지지 말고 천천히 해- 라고 나 답지 않게 자상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 꼬맹이는 그런 자상한 말투를 할 때의 나를 특히나 더 좋아했다.

  

카구라에게 별 거 없이 간단히 형씨와 안경에게 잘 대해주라는 이야기정도 툭 던져 줬을 뿐인데, 형씨가 히지카타에게 차이나가 꽤나 노력하는게 보인다면서 히지카타에게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형씨가 꽤나 기뻐하는 것을 보고 짜증나고 재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

  

히지카타는 나에게 약속 했던 데로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면서 날 불렀다. 좋았지만 마냥 좋기만 하진 않았다. 치사한 히지카타가 나의 마음을 가지고 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는 착한 경찰이지만 나의 것을 빼앗는 저런 사람을 도와줄 정도로 등골을 빼다 바치는 실없는 착한 사람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자”

  

히지카타는 아무렇지 않게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형씨와 나를 다른 이름으로 양 쪽 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의 현재 마음 같은 건 제 멋대로 결정하고는.. 괜찮아요 히지카타씨 결국은 나에게 올 거니까요.. 죽을 만큼 힘들지만 나는 기다림을 아는 착한 아이예요. 그의 손길 하나에 설레서 그의 얼굴 조차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곤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별 말이 없자 그냥 평소에 먹던 곳에 가자고 말하면서 내 의사를 물었다. 나는 히지카타와 함께라면 어느 곳이던지 상관없어서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도 자주 갔었던 덮밥 따위를 파는 집에 나란히 앉아선, 히지카타는 평소에 내가 먹는걸 알고 있으니 알아서 주문을 했다. 왜 이렇게 조용하냐며 나에게 웃으면서 물었다.

  

“원래도 이랬거든?”

  

퉁명스럽게 말하곤 젓가락을 들었다.

  

“네가 순순하게 내 말을 들어줄 줄은 몰랐어”

  

치사해. 너는

  

“긴토키가 고맙다고 전해달래. 뭐 당장은 조금 힘들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이야기 해달라고 하더라고”

  

긴토키, 긴토키.. 듣기 싫어.

  

“카구라가 널 잘 따른다는 것은 좀 의외긴 하지만, 니가 도와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역시 나는 네가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를 달래고 있다. 나는 젓가락질을 하다 말고 그를 쳐다보았다.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라고 말해주다니. 너도 조금은 인식하고 있구나. 히지카타. 서서히 나의 기다림의 결실이 맺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다시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붙잡으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 히지카타씨 조금만, 조금만 더 기억을 해봐요. 분명 왜 자신이 형씨 같은 사람 옆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다 기억해 내는 그때는 내 앞에 와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던 나를 있는 힘껏 꽉 안아주지 않고는 못 배길 걸요? 그땐 나를 기절하기 직전까지 안아줘야 해요.

  

히지카타는 나와 식사를 마치곤 먼저 들어가라고 말하고는 나를 홀로 남겨두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가 저렇게 웃으면서 달려가는 곳의 끝에 있어야할 사람은 분명 나. 였는데 말야.. 형씨를 만나러 가는 거겠지. 나는 왜 그런 형씨를 도와주고 있는 것일까.. 달려가는 그를 잡지도 못하고.

  

그렇게 히지카타를 멍한 표정으로 보내고 나서 마음이 엉망진창 된 나는 그 허탈함에 그 무엇이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은 모두 다 옆에 누군가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 저기 지나가는 저 꼬맹이도 집에 가면 부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저기 있는 저 아저씨도 누군가를 위해서 저렇게 바쁘게 달려가고 있겠지. 저 직장인도 저렇게 전화 통화를 하며, 길가에서도 일을 하면서까지 돈을 버는 이유가 있을 거야. 저기 저 노숙자도 누군가는 자신을 걱정해 주고 있을 것이고..... 나는 하나뿐인 나의 가족이자 연인인 그가 나를 잠시 잊고 있다는 사실과 혼자 되어버린 이 현실에 자꾸만 마음이 가라앉아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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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꼬맹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실 어떻게 이용할지 목적도 없는 내가 이 꼬맹이를 의무적으로 만나면서 형씨를 기억하게 도와주고 싶지도 않아서. 사실 그 꼬맹이의 일이야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기에 나로써는 히지카타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하는 숙제 같은 것에 불과했다.(약간 있었던 죄책감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사라졌다.)

 

순찰을 하고 돌아왔을 때, 대원들이 나에게 그 꼬맹이가 찾아왔다고 말해줬다. 마냥 기다리다가 내가 돌아오지 않아서 시무룩하게 그냥 돌아갔다고 하면서 또 다시 무슨 사이냐며 장난을 쳐댔다. 편지를 줬다면서 전해 받은 건, 그냥 스프링 연습장 종이를 찢어서 네모나게 접은 종이였는데, 성의가 없다 못해 정말 차이나가 어린애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더욱 와 닿았다. 방으로 돌아가서 펴보니 애 같은 삐뚤삐뚤하고 네모난 글씨로,

  

[왜 오늘은 안 오냐 해? 맨날 나 만나러 오겠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으면서! 나 할 말도 엄청 많은데! 어제 그 같이 사는 은색머리 아저씨랑 장보러 갔다가 이상한 집을 발견했다해! 아마 거기 우리 오빠가 있는 것 같다 해. 음.. 그게 아니라면 틀림없이 내가 갔던 적이 있는 곳이다 해. 왜냐하면 창문에 노란색으로 별이 그려있었다 해. 근데, 가리키면서 저기 갔던 적이 있는 것 다고 말하니까 은색머리 아저씨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해. 그 표정이 좀 무서웠다해..]

 

이 꼬맹이가 말하는 그 곳은 나의 공간이었다.

  

  

그 쪽지를 읽자마자 이 꼬맹이에게 달려갔다. 사실 그 공간을 알아도 딱히 상관없긴 했지만, 혹시나 이 꼬맹이가 기억을 찾을까봐 걱정했다. 차이나가 형씨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런 차이나를 보면서 슬픈 표정을 짓는 형씨를 보면서 너도 한번 느껴봐- 라는 비웃는 심리로 차이나에게 그의 앞에선 좀 더 친절하게 대했던 것도 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뭔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것 같은 불길한 생각도 함께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꼬맹이가 쓴 마지막 말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표정이 무서웠다’라는 말이 약간은 신경에 거슬렸던 것 같다. 히지카타에게 들었을 텐데, 그 곳을 나에게 주었다고.. 그리고 나는 또 다시 그가 나를 의심해 올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달려가서 도착한 해결사 사무실. 막상 앞에 와서 벨을 누르려 하는 찰나, 여기엔 차이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그때 뒤에서 어? 왔다 해! 하고 발랄하게 외치는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본 쪽엔 차이나와 옆엔 형씨도 함께 있었고, 나는 차이나보다는 형씨의 안색을 먼저 살폈다. 형씨는 연기를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그저 힘없이 왔냐? 하고 묻고는 나에게 쪼르르 달려온 카구라를 한번 보고는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말하곤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에겐 딱히 눈길조차 주지 않는 걸 보니, 그렇게 내가 의심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불안해 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그가 나를 의심할까봐 불안했다기보다는 그저 막연히 나도 모르는 무언가에 한없이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차이나가 나와 있다가 사고를 당해서? 차이나가 오빠에게 당한 사진을 봐서? 차이나의 오빠가 쓴 편지를 읽어서? 차이나가 나를 좋아하는 이 상황을 약간은 이용해야 겠다 라고 마음먹어서? 음.. 글쎄 모르겠다.

  

  

  

  

  

  

  

  

  

  

-

차이나는 나를 끌고 가서 삐진 듯 입을 삐죽거리면서 고개를 홱 돌리곤 말했다.

  

“나쁘다해! 약속도 안지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으면서!”

 

“...왔잖아. 지금”

  

“원랜 더 일찍오지 않냐 해!”

  

삐진 듯 내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툴툴거리면서 이야기 하다가. 내가 마지못해 미안하다면서 앞으론 일찍 오겠다고 말하자 그제야 돌아서서 내 얼굴을 보면서 한 번 더 그러면 정말로 화를 낼거라고 말했다. 그리곤 이내 화가 풀렸는지 쫑알거리면서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단순해서 다행이야.

  

“나는 밤에 하늘을 보는 게 정말 좋다해! 내가 싫어하는 햇님도 없고, 별이 반짝반짝해서 너무너무 예뻐! 근데, 밤이라고 맨날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건 아니더라 해.. 아빠랑 오빠랑 같이 살땐 창문에서 줄곧 별을 보곤 했는데, 그때 별이 없는 하늘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엄청 실망했다 해.. 내가 슬퍼하고 있으니까 우리 오빠가 와서 유리창에 노란색으로 별을 하나 그려줬다 해, 그걸 보고 사실 이건 반짝반짝 하지 않다면서 투정을 부렸었는데, 좀 지나고 나니까 오빠한테 미안해서.. 나도 창문에 잔-뜩 그려서 오빠한테 보여줬다해! 그러니까 오빠가 웃으면서 카구라, 예쁘다. 근데 너무 많지 않아? 이러면 진짜 별을 보지 못할 수도 있잖아. 하고 웃으면서 말해줘서 너무 기뻤다 해. 우리 오빠가 예쁘다고 해줘서 더!”

  

그래서 창문에 그렸었구나.

  

“별 보는 거 좋아해?”

  

꼬맹이가 나에게 말했다.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나는 다음에 경찰오빠랑 별을 같이 보고 싶다해!”

  

“별 같은 소리..”

  

“근데, 혹시, 히지카타가 누군지 아냐 해?”

  

이 꼬맹이의 입에서 히지카타의 이름이 나온 것은 너무나 어색하고도 어울리지 않았다. 둘이 마주칠 일도 별로 없고,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어서. 아. 뭐 이름이야 형씨 때문에 들었을 수도 있겠다. 짜증나.

  

“왜?”

  

“음.. 아냐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다 해”

  

말을 하지 않는 이 꼬맹이가 조금 의아했지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센구미 부장이잖아. 히지카타”

  

나의 말에 이 꼬맹이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그럼 경찰이야? 오빠도 그 사람 알아? 하고 물었다.

  

“응, 경찰이고. 당연히 알지”

  

  

  

  

이 꼬맹이가 기억을 잃은 후론 내 공간에 찾아가는 일이 부쩍 잦았다. 가서 딱히 무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가서 멍하니 있거나, 나답지 않게 청소 따윌 했다. 그 날도 헤어진 이후 나의 공간에 가서는 괜시리 꼬맹이가 그려놓은 유리창의 별을 다시 확인했다. 이제 와서 지우기도 뭐해서 없애지도 못한 채(이미 형씨도 함께 봤기 때문에 지우는 것이 더 수상해 보일거라 생각했다.) 그저 한번 쳐다보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어둡지 않아서 불을 켜지 않고 있다가, 너무 어두워 불을 키려 현관 쪽으로 다가갔을 때, 밖에서 서성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히지카타인가? 나는 문을 열어주려 문 손 잡이에 손을 살짝 댔다가, 히지카타라면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왔을 텐데, 서성이는게 이상해서 문에 달려 있는 현관렌즈로 밖을 슬쩍 내다보았다. (이런 행동은 태어나서 처음 해본다.) 밖에서 서성이는 건 다름 아닌 형씨였다. 왜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앞에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가, 초조한 듯 왔다갔다 했다가를 한참 반복하더니 형씨와 나 사이에 있는 아무 말도 없고 죄도 없는 문을 한없이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자리를 떴다. 불을 켰다면 문을 두드렸을지도? 왜 왔는지는 모르지만.. 카구라가 여기를 알고 있다고 해서 찾아 온 것 같다. 왜 그렇게 애처롭게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는 형씨의 그런 괴로워하는 모습과 초조해하는 모습을 봐서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형씨는 내가 안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는 생각 못하겠지. 그런 형씨를 지켜보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재밌고 흥미로워서 키득키득 대고 있는데 말이예요. 또 와요. 내가 안에서 지켜볼 때..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불안하고, 불행한 얼굴로.. 그럼 나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더 재미있게 지켜봐줄게요.

  

  

  

  

  

  

  

  

  

-

그렇게 몇일이 지났다. 몇 일 동안에도 형씨는 어김없이 내 공간의 문 앞을 서성였고, 내가 안에 있을 때만 해도 여러 번이었으니, 내가 없을 때에도 분명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그저 그런 형씨를 몰래 관찰하는 게 재미있었는데, 이게 여러 차례 반복이 되다보니 의문이 거대하게 커져갔고, 이내 나도 내 문 앞을 서성이는 형씨가 섬뜩하고 무서워졌다. 내가 이 공간의 주인인 걸 알면서 왜 이러는 거지? 가끔 마주칠 일 많잖아? 할 말이 있으면 그냥 말을 하라고.

  

그 날 만난 카구라는 말했다.

  

“같이 사는 그 아저씨 말야, 요즘 이상하다 해”

  

차이나가 이상하다고 말하면서 약간 걱정하는 기색을 보여서 혹시나 이 꼬맹이가 기억이 조금이라도 돌아 왔을까봐 조마조마 했다.

  

“뭐가?”

  

“음.. 뭐라고 해야 하지.. 나를 쳐다볼 때 눈빛이.. 음... 너무.. 뭐라고 해야하나.. 울 것처럼 표정을 지으면서, 카구라... 어떡하냐? 응? 어쩌면 좋냐.... 이런다 해. 나는 그 아저씨가 왜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해. 뭘까?”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야. 내가 잠깐 생각에 잠겨있자 차이나가 나를 장난 끼 있는 표정으로 보더니 말했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같이 밥 먹자해! 그 아저씨랑 둘이 먹으면 아직도 조금 어색하니까!”

  

평소라면 싫다고 단호하게 딱 잘라 말하며 거절했겠지만, 그 날은 이 꼬맹이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 좋다고 말하자 당연히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지 꼬맹이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정말이지? 진짜지? 하고 재차 물었다. 나는 차이나가 좋아하는 자상한 말투로 응, 정말이야 하고 대답했다.

  

내 눈앞에서 보고 싶었다. 차이나가 말하는 형씨의 표정을. 그리고 현관렌즈로만 지켜보던 그의 표정을 한층 더 가까이에서, 더 선명하게. 그리고 어째서 내 공간 앞을 서성이는지도 듣고 싶었다.

  

  

  

  

돌아올 차이나를 기다리면서 음식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차이나와 함께 해결사 사무실에 갔을 때 형씨는 국자를 들고 앞치마를 두른 채 문을 열어주었다. 물론 차이나와 함께 온 나를 보곤 약간 놀라했지만, 이내 들어오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런 말을 웃으면서 이곳에서 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형씨와 나는 내가 딸기케이크를 사왔던 그 날 이후로 서로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버렸으니까.

  

“아저씨. 오늘은 경찰 오빠도 같이 먹고 싶어서 데리고 왔다 해. 상관없지?”

  

“어어..그래 어서 앉아”

  

차이나의 이야기를 들어서 인지 정말 형씨가 차이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전엔 좀 더 활달하게 대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차이나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색해하고 무서워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특유의 활달한 성격으로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깐족대면서 노력 했을 텐데, 지금 이런 의기소침한 태도는 약간 이해가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차이나는 나에게 아저씨가 생각보다 요리 되게 잘하지? 하고 말하며 나에게 동의를 구해왔고, 사실 형씨와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는 것도 싫었지만 웃으면서 자상하게 “응 맛있다” 하고 대답했다. 형씨는 자꾸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이 나를 빤히 쳐다봤는데 나는 그게 궁금하면서도 그가 더 애타도록 그 때마다 차이나에게 억지로 할 말이 없는데도 쓸데없는 말을 걸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이만 돌아가 보겠다고 일어서자, 나와 함께 차이나와 형씨가 동시에 일어섰다. 차이나는 더 있다가 가라면 안 되냐고 징징댔고, 이 꼬맹이의 이런 패턴에 약간은 익숙해진 나는 내일도 올 테니 얌전히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뒤따라 나온 것은 차이나가 아닌 형씨였다.

  

“안 어울리게 배웅이라도 해주는 겁니까 지금?”

  

“뭐.. 그렇다고 해두지”

  

형씨는 뭔가 조금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뭔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뜬금없이 미안하지만 물어볼게 있어서”

  

뭘까? 사실 궁금했었으니 나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이런 말을 너에게 한다는 것이 사실 좀.. 그렇긴 한데 너.. 히지카타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고 했지?”

  

뭐야? 나에게 히지카타를 물어보는거야? 둘이 싸웠나? 지금 그런 사소한 연애 상담을 나에게 하는 거야? 내가 히지카타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면서? 병신인가?

  

“다름이 아니고.. 히지카타가 전에 혼자 잠깐 있었던 집 말이야..너도 알지?”

  

나의 공간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현관렌즈로 키득키득 대면서 지켜보았던 ‘내 공간의 문 앞을 서성이던’ 그의 표정이 생각나서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억누르며 그를 쳐다보았다.

  

“누구한테 팔았는지 알아? 혹시? 이런 질문 바보 같은 거 아는데.. 그냥 혹시나..”

  

팔아? 나에게 준 것을 모르나?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히지카타는 나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나보다.

  

“글쎄요. 내가 뭐 부동산 업자도 아니고, 그런 세세한 것까지 어떻게 다 알아요?”

  

왜 히지카타는 나에게 주었다고 하지 않았을까? 아 아니지, 나는 그가 말하지 않은 이유를 안다. 형씨와의 관계를 끊어내기 위한 시작점이었을 거야. 그 공간의 차단의 의미는. 그리고 마침 혼자의 공간을 원하는, 사랑하는 나에게 내준거야. 그것이 그와의 육체적 관계를 끊어냄과 동시에 나에게 주는 사랑의 시작이었다고 히지카타는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그 과정에.. 생각지도 못한 이변으로 인해서 그의 옆에 있게 되어버린 불쌍한 히지카타...

  

“..그렇지? 미안. 이렇게 쓸데없는 거 물어봐서.. 그리고 고마워”

  

“뭐가요?”

  

“카구라 많이 챙겨주는 것 같아서. 나도 노력하고는 있는데.. 지금 머릿속이 복잡해서..”

  

“딱히 챙겨주는 건 아닙니다.”

  

나는 그 말을 하곤 그냥 돌아갔다.

  

형씨. 지금 나에게 고마워하는 그 마음. 잘 기억해 두세요.

  

  

  

  

  

  

  

  

  

-

히지카타는 얼마 전에 출장을 갔다. 곤도씨에게 나도 히지카타와 함께 가고 싶다고 졸라댔고, 곤도씨도 그런 내가 간절해보였는지 최대한 힘써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부탁하는 상대가 지금이 아닌 전의 히지카타였다면, 나는 아예 난리를 치면서 지랄을 하고, 그런 나를 보면서 그는 어떻게든 들어주려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에게 꼼짝 못하는 발밑에 엎드린 존재였고 무엇보다 곤도씨 였으니까 나는 그냥 조용히 아쉬움을 참고 수긍했다. 내일인가.. 돌아온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초조하고 너무 보고 싶어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 그에 더해서 형씨의 이상한 행동이 그를 더 기다리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형씨가 히지카타와 관련된 일을 나에게 물었다는 것에 의해서 나는 혹시라도 그가 제 정신으로 돌아온 건가 하는 기대감이 컸다. 그리고 나는 그걸 견디지 못하고 저녁쯔음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히지카타는 왠지 모르게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고 나는 내 전화를 기다린건가 하는 기대감에 들떠서 장난식으로 "왜 이렇게 바로 받아요? 무섭게?" 하고 농담식으로 던졌다. 그리곤 칭찬을 바라면서 그 날 하루를 보고했다. 보고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차이나랑 만났어. 정도의 말을 하고 나머진 둔영이나 곤도씨 이야기, 그리고 내 이야기를 했다. 그는 딱히 별 말은 없이 그냥 무뚝뚝하게 그래, 그래, 정도의 대답만을 간단히 했다. 목소리가 약간은 피곤하게 들린다. 그러다가 내가 순간 생각나서 말했다.

  

“형씨는 히지카타씨가 나에게 그 공간을 준 것은 모르고 있더라고요”

  

[...]

  

“얼마 전에 만났거든요”

  

[만났어? 긴토키를 만났어? 잘 있어?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 그녀석...]

  

뭐야,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해? 왜 나와 이야기 할 때보다 더 강하게, 더 안절부절 못하면서 물어요 왜.

  

“....딱히 별 건 없어보여요”

  

[..그래..? 그래.. 그러면 됐어]

  

한숨을 푹 내쉬는 그가 싫었다. 내 이야기엔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그가 형씨의 이야기 소재거리에 열기를 띄어서 화가 치밀었다.

  

“언제와?”

  

[오늘]

  

“내일 온다면서요?”

  

[하루 앞 당겼어. 여튼 얼른 자라 늦었다]

  

급한지 그가 그 말을 툭 던지고는 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마음에 지금 나는 그냥 걸림돌이었다. 띄엄띄엄 울어대는 신호음을 한참 듣다가 나도 전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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