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23

2015. 8. 19. 22:07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매우 이른 아침에 둔영으로 돌아왔다. 그때에도 희미하게 불이 켜져있는 히지카타의 방을 보고, 이 녀석은 돌아와서도 형씨와의 대화 내용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오늘 또 나에게 화를 내러 오겠지? 히지카타는 지금 나와 형씨 사이에서의 선택지에 섰다. 한 명을 선택하는 순간 한 명은 잃게 될 거다. 나를 선택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난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전의 상황이라면 그가 나를 선택할 것 이라는 것은 절대적이어서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나를 선택해달라고 구걸해야했다. 나는 너를 떠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히지카타는 내 예상과 다르게 나를 부르거나, 찾아와서 화를 내거나 캐묻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그 답지 않게 술에 잔뜩 취해서 비틀비틀 거리며 둔영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런 히지카타를 본 다른 대원들이 부축해주려 다가가자 내버려 두라면서 거칠게 화를 내며 뿌리쳤다. 어쩔 줄 몰라하는 다른 대원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다가가서 대원들에겐 돌아가라고 이른 후, 그의 앞에 섰다. 으, 술 냄새. 이 녀석이 이렇게 ‘술’이라는 것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서 그 답지 않은 추태를 부리며 내 앞에 있는 것은 처음이다. 내가 다가가서 그의 팔을 내 어깨에 얹었다. 이상하게 순순했다.

 

“....미츠바..”

 

진짜로 취했나보다. 나를 누나로 착각해서 보다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누나로 착각을 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냥 그가 내 부축에 순순히 응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했으니까.

 

“...어떡하지.. 나..”

 

중얼거리는 이 녀석의 목소리. 언제 들어도 섹시해서 이 자식을 쫓아다니는 여자들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누나가 이 녀석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가... 내가 소고 녀석을... 그렇게 만든 거... 겠지?..”

 

응. 히지카타는 다행히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눈물을 보였던 꼬맹이는 그 다음날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그런 점을 의식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는 은근히 그 꼬맹이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또 형씨가 어딘 갈 데리고 갔을까? 내가 직접 해결사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는 안경 녀석만이 홀로 그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이 녀석에겐 흥미가 없어서 그냥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곤 그냥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꼬맹이들이 노는 놀이터의 그네에 멍하니 앉아있는 차이나를 발견해서 옆에 비어있는 그네에 나도 앉았다.

 

“뭐해?”

 

내가 묻자 꼬맹이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보다가, 이내 더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날 형씨와 히지카타의 대화를 어디까지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울고 있었던 모습과 지금의 태도에서 혹시나 기억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약간 나를 두근두근하게 만들었다.

 

“아니........그냥.... 기분이... 안 좋다해...”

 

“그래?”

 

내 말에 다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고, 가볍게 그네를 조금 여운있게 흔들어 대던 꼬맹이가 입을 열었다.

 

“계속.. 생각했는데.. 히지카타라는 녀석이랑 나랑 같이 사는 아저씨랑 서로 좋아하는 사이냐해?... 둘 다 남자 아니냐해? 이상하다 해.... 싫다해..”

 

남자와 남자가 서로 좋아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거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히지카타와 형씨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냐고 묻는 질문에는 긍정하고 싶지 않아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나.. 나에 대한 이야기는 뭐냐 해?”

 

다행히 기억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해.. 히지카타라는 사람.. 나랑 잘 아는 사람이었냐해?”

 

다시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에게 물어서 나는 아직 확실하게 말을 하지 못하겠다고 대답하고 알아보겠다고 했다. (왜 이렇게 애매하게 대답했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덧붙여서 말했다.

 

“난 네 편이잖아”

 

 

당연히 그 날 꼬맹이의 상태는 평소보다 심하게 불안정해보여서 나는 차이나를 보다 상냥하게 달랬다. 그리고 나의 달램에 차이나는 조금은 안심했는지 울려던 얼굴을 하다가 이내 약간은 안정된 표정을 지었다.

 

 

 

 

 

 

 

 

 

-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을 깜빡 했는지, 혹은 진짜 히지카타가 나와 순찰을 가려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 순찰 명단엔 나의 이름과 히지카타의 이름이 한칸에 나란히 있었다. 좋았지만 지금의 상태에서 그와 좁은 차 안에서 둘이 있다는 것은 약간 무섭기도 했다. 그가 어떤 말을 해올지 한 마디 한 마디가 두려웠다. 히지카타는 먼저 조수석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태도를 보아하니 그가 나와 함께 가려고 한 것 같다. 내가 운전석에 앉자 그가 말했다.

 

“... 어떻게 해야 되냐. 내가”

 

나는 그의 말에 그를 한번 쳐다보고 말 없이 시동을 걸었다.

 

“..넌 정말....”

 

“나 아니야!”

 

내가 그의 말을 자르곤 말했다.

 

“나 아니야! 나 그런 적 없어!”

 

“...”

 

“해결사네 차이나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거잖아! 나 아니라고! 난 아무것도 몰라! 너랑 형씨의 대화를 엿들었어! 그래서 아무 말 안했던 거야!”

 

내가 절규하듯이 말했다. 거칠게, 그리고 홧김에 운전을 하고 있었지만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히지카타도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렇게나 길이 보이는 데로 운전하고 있었다.

 

“...그럼 카구라가 그 집은 어떻게 알아?”

 

“몰라! 나도 모른다고!”

 

내가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말하고 있는 것도 맞지만, 그의 의심하는 말투에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그대로 같이 동반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대로 아무대나 거칠게 한참을 달리다보면 가파른 절벽 같은 곳이라도 나올 것이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으니 상관없었다. 바다에 떨어져서 고통스럽게 물에 잠겨 물고기의 밥이 되더라도, 사람의 인적이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에 정체불명의 시체가 되어서 까마귀 밥이 되도록 버려지더라도 말이야. 혼자 죽는 것은 사절이다. 전엔 차라리 그가 나를 죽여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누나는 천국에 있을 테니 지옥으로 간 나 혼자만 다른 세계에서 고통스럽게 내가 죽여왔던 시체들의 늪에 파묻혀서 다른 사람과 행복한 그를 지켜본 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미치게 우울한 일이다.


 

나의 말을 들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엔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고 나는 계속해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야! 난 몰라! 몰라! 그러자 히지카타는 말없이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 누나가 이런 너를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내가 뭐! 난 떳떳해!”

 

내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자 히지카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디인지 모를 느낌의 이상한 길을 운전하는 나는 그의 의심 가득한 표정이 싫어서 완전히 거칠게 차를 세웠다. 조금 더 빨리 달리고 있었다면 차가 뒤집혔을지도 모른다. 급정거로 인해서 나와 히지카타는 앞 유리에 이마를 부딪힐 뻔했다. 멈춘 차안에서 다시 나를 쳐다보는 히지카타의 눈동자가 아직도 의심이 가득해서 순간 파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버렸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눈동자에 내가 투명하게 비치는 건 정말 황홀했으니까. 나는 히지카타에게 말했다.

 

“..누나가.. 나를 의심하는 너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지 생각해봐. 너야말로!”

 

나의 누나가 나에게 있어서 기준이자 날 흔드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누나 이야기를 꺼낸 것 같은데, 누나는 나 뿐만 아니라 이 녀석에게도 약점이 된다는 것을 안다. 내 말에 그는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지만, 그가 여전히, 아직도, 여전히, 여전히 나를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말야.. 니가 지금 내 앞에서 우리 누나 이야기를 꺼내는 거야? 뻔뻔한 새끼”

 

내가 그를 천천히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말없이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럼. 피해야지. 그렇고 말고.

 

그날 나와 히지카타는 그 이상의 대화도 없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길을 마냥 떠돌았다. 무슨 풍경이 차창 밖을 지나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속 안이 까만 긴 터널을 지나간 듯 하기도하고, 숲을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도시를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무전에서 자꾸 소음과 함께 무어라고 소리가 들렸는데 나도, 히지카타도 그것에 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히지카타는 제 쪽에 있는 창문을 고개를 돌린 채 바라보고 있고, 나는 운전을 하고 있으니까 앞 유리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잡고 있을 뿐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감각적으로 둔영에 돌아오긴 했다.

 

 

 

 

 

 

 

 

 

 

-

[오키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근데 앞으론 카구라를 이 이상으로 흔들지마. 너라는 존재가 계속 옆에서 맴돌고 있어서 나에게 마음을 주려 하지 않는 것 같아. 부탁해놓고 이렇게 말하는것도 어이없는 일이긴하지만..이제 더이상 찾아오지 말아줬으면 해]

 

[너 우리 카구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음.. 사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너의 태도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어. 니가 이렇게 상냥하게 카구라를 대하는 것이 이상해.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의 이유도 사실 이게 가장 확실한 이유야]

 

[부탁할게]

 

 

형씨에게 온 문자. 장난하시나. 내가 당신이 부탁하면 들어줘야 하는 그런 만만한 사람인가? 내가 형씨에게 히지카타에 대해서 지금의 형씨와 같은 태도를 보였을 때 형씨는 어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길. 형씨는 여전히 이기적이예요. 너무나.

 

 

 

 

 

 

 

 

 

-

형씨가 내 공간에 지속적으로 찾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나는 그 곳엔 가고 싶어도 갈 수는 없었다. 그 곳에 내가 딱히 꼭 가야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가지도 않았지만.

 

그리고 그 날은 그 근처를 지나가는데 내 공간에 불이 켜져 있는 거다. 난 찾아간 적이 없는데.. 그리고 그 근처에 세워져 있는 신센구미 전용 차량을 보고 나서야 그 안에 있는 사람이 히지카타라는 걸 알았다. 그는 나를 의심하다 못해 내가 있는 그 공간을 조사라도 해 볼 요량인 듯 했다. 누가 경찰 아니랄까봐.. 뒤져봐라. 난 당당하니까. 그리고 설마 그런 곳에 증거를 버젓히 남겨두는 그런 머리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어쨌든 나의 고백에도 나를 믿지 못하고 이 곳 까지 나 몰래 뒤져야하는 그의 행동은 나를 다시 한번 미치게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나는 그만큼 신뢰받고 있지 못했던 거다. 그리고 나는 차이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음에도 없는 차이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이유는 그냥 우울해서. 나에게로만 향하는 그 순수하고도 절대적인 마음을 받으면서 조금은 위로받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히지카타의 행동에 의해서 나는 외로웠으니까..

 

“여기로 와주면 안돼? 지금 바로”

 

나의 말에 차이나는 근처라고 답하면서 바로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소를 다시금 확인하면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알겠다고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전화를 했고 불러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차이나가 아닌 저 공간을 뒤지고 있는, 나를 의심하고 있는 히지카타 였기에 이 꼬맹이가 나에게 와서 온갖 새하얀 순수한 말들로 나를 쓰다듬어도 위로되지 않을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위로받고 싶었다.

 

나의 공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걸어서 온다면 꽤나 멀다.) 거리에서 멍하니 벤치에 앉아있는데 달려오는 차이나가 보인다. 내가 저를 불러줬다는 기대감에 벅찬 표정을 지으면서 달려오는 차이나를 보면서 내가 지독하게도 치사한 새끼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죄책감도 전혀 느끼지 않고 오히려 이 꼬맹이의 지금 상태를 꽤나 좋아하고 있었다. 차이나의 상태가 목각인형 같았기 때문이다. 히지카타와 내가 이어져 있는 운명의 실과는 달리, 나와 꼬맹이 사이의 실은 내 의지로 쉽게 꼬맹이를 조종할 수도 있고, 끊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놓는다고 이 꼬맹이는 죽는다거나 하진 않을 거다. 이 꼬맹이에겐 다른 꼬리표가 붙어 있으니까. 아, 그리고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런 상태는 차이나에게 있어서도 다행인지도 모른다. 남이 아닌 가장 신뢰하는 가족에게 이런 일을 당한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상처이니까. 다시 가족을 그리워하는 상태가 된 거잖아.

난 착한 경찰이야.

 

 

내 공간을 헤집으면서 내 마음까지 같이 헤집어 대는 히지카타. 그리고 그런 그가 믿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에 서서이 지쳐가는 나. 그 어두운 통로에서 난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서 있었고, 내 눈에 보이는 희미한 내 그림자만 어디서 오는지 모를 빛에 의해서 작아졌다가 길어졌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뭐하냐 해! 넋이 나가선”

 

어느새 내 앞에서 선 차이나가 내 얼굴을 양 손으로 움켜쥐었다.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하곤 옆에 앉으라고 말했다. 차이나와 있을 때 좋은 점은 내가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차이나가 알아서 이야기를 쫑알쫑알 해댄다는 거다. 물론 싫을 점으로 작용되는 때가 많지만 이런 날은 그냥 옆에서 이렇게 무슨 말이던지 말을 걸어주는 편이 좋다. 물론 귀 기울여서 듣고 있진 않기 때문에 무어라고 말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듣고 있냐 해!”

 

“응? 어어..”

 

자기 말에 제대로 집중도 안할 거면서 왜 불렀냐면서 투덜거리는 꼬맹이를 잠시 쳐다보다가 말했다.

 

“나랑 떠날래?”

 

나도 모르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바로 응! 이라고 답할 줄 알았는데, 차이나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말했다.

 


“음.. 가고 싶...긴한데.. 어디로 갈거냐해? 언제?”

 

쳇, 마음에 안 들어.

 

“가기 싫구나?”

 

“아냐! 가고 싶다해! 근데...”

 

“근데?”

 

“오빠랑 아빠가...”

 

꼬맹이 답게 온다는 가족들을 떠올리고는 우물쭈물하면서 당황해했다.

 

“됐어. 너랑 안가”

 

내가 약간의 한숨과 함께 말하자 꼬맹이가 말했다.

 

“나랑 떠날 생각도 없었으면서!”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그냥 여기서 함께 있는 게 좋다해. 지금 이대로가 나는 좋다해”

 

이대로? 장난하나. 이대로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아마 나는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심장에 사상충이라도 생긴 듯 심장이 뛰어서 하루 종일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지 못한 채 진짜로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너무 답답해서 남을 베던 칼로 나를 도려내면서 내 피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자해를 즐기는 우울증 환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대로면, 히지카타는 정신병자가 되어버린 나를 여전히 쳐다보지도 않겠지. 아니면 그런 한심한 나를 보면서 또 다시 ‘누나가 네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을 하겠냐’고 한심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고는, 나를 외면하고서 꼴사납게 당당한 저는 형씨에게 맨날 찾아가고 있겠지? 존나 개 같은 상황이잖아 이거. 씨발 다 죽어버려.

 

 

차이나는 나에게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는다면서 자꾸 나를 위로해주려 했다. 사실 이런 것을 바라고 부른 것은 맞지만 소용없었다. 한참 옆에서 쫑알쫑알 시끄럽던 꼬맹이는 같이 사는 아저씨가 일찍 오라고 했다면서 투덜거리며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제 나, 너 안 만날거야”

 

“..응? 왜?”

 

“그러니까 너도 나 찾아오지마”

 

“왜..?”

 

“너랑 같이 사는 그 아저씨가 만나지 말래”

 

내가 말하자 차이나는 완전히 놀란 얼굴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형씨의 말에 따라주기로 했다. 나의 방식으로.

 

“시...싫다해! 그 아저씨가 뭔데 상관이냐 해! 그런 아저씨 말 같은거 완전히 무시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런 말 하지마라 해.. 오빠랑..아빠도 없고... 그럼 난 혼자잖아.. 싫다 해..”

 

울먹울먹 거리는 차이나를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그 아저씨가 만나지 말라는 데엔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널 위해서 하는 말이겠지 그니까 말 잘 들어. 너 착한 아이잖아”

 

으 역겨워. 내가 이런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다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하지만 이럴 땐 좋은 사람인척 하는 게 나를 포장하기에 제일 좋다.

 

 

이런 꼬맹이들은 감정이 항상 폭팔해서 잠깐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에도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법이다. 자연스럽게도 아닌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과, 심지어 나를 의지하고 있기에 상냥하게 말했다. 나는 이 꼬맹이가 나의 말에 울먹거릴 것도 알고, 그렇다고 나를 이대로 순순히 만나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럴 땐 분노의 방향이 원인제공자에게 향할 것이기에. 차이나, 나를 좋아한다고? 그러면 보여줘봐.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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