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24

2015. 8. 19. 22:08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곤도씨가 나를 살짝 불러냈다. 술이라도 먹자고 하려나 해서 갔을 때 곤도씨가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소고, 히지카타 녀석 오늘은 완전히 최악이다. 오늘은 괜히 찾지 말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라”

 

“그 새끼가 지랄 하는게 하루 이틀 입니까? 왜 이렇게 오늘따라 호들갑이에요?”

 


“아.. 뭐.. 그거야 그렇..긴한데 그냥 오늘은 좀..”

 

곤도씨는 끝을 흘기면서 어물쩡하게 말했다. 사실 그냥 돌아가려 했지만 곤도씨가 이렇게 나를 말려오니까 더 그가 보고 싶었다. 원래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어지니까. 나는 히지카타가 기뻐할 때도 좋고, 슬퍼할 때도 좋고 나에게 화를 낼 때의 모습도 좋다. 진심으로 히지카타 네가 너무너무 좋다. 위로는 되지 않을 지라도, 옆에서 너의 화나는 일이 무엇인지, 너의 고민이 무엇인지 들어주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해결은 해주지 못할 지라도.

나는 너를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난 녀석이라서 네가 괴로워할 때도 장난을 치고 싶어서 안달나 할 거야. 그러면 나의 장난에 너는 고민하던 것을 잠깐 잊고 피식 하고 잠깐만이라도 웃어주면 된다. 나는 그 작은 사소한 것이 미치도록 좋은 사람이다.

 


나의 공간을 그렇게 의심가득한 눈으로 뒤집어서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안심했을까? 약간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곤도씨의 말을 무시하고, 히지카타의 방 앞으로 다가갔을 때,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그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흐느끼는 소리였다. 너무 어색하고도 당황해서 나는 문을 열려던 손을 잠시 멈추고 그의 방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문 틈으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과 함께 새어나오는 울음소리가 나를 그 자리에 마비시켰다. 이 녀석이 울고 있다니. 곤도씨가 나에게 가만히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한 것은 이 모습을 먼저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가 우는 이유를 짐작한다. 나에게 미안해서 울고 있는 거지? 너? 의심했던 너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런 거지? 나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거지? 그렇지? 응?

 


 

한참을 흐느끼던 그가 갑자기 말을 했다. 전화통화를 하는 듯 했다.

 

“...그니까... 나는... 아니라고 하잖아......”

 

“그니까... 나는...”

 


“아.. 아니.. 왜.. 왜 그게 헤어진다는 이유가 되는지...”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마.....”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어떻게 살...아”

 

히지카타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 형씨였다.

 

 

이 둘이 헤어졌다.

 

 

 

 

 

 

 

 

 

 


 

 

 

 

-

드디어! 헤어졌구나! 이거 봐. 그런 육체적으로 맺어진 관계, 그런 더러운 것이 사랑일 리가 있어? 짐승들만도 못한 쓰레기 같은 관계라고. 지금 히지카타가 우는 것은 일시적이다. 사람이 정신이 돌아 올 때는 그렇게 잠깐의 충격을 겪기 마련이니까. 눈물의 원인이 내가 아닌 형씨 때문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상관없다. 이 둘이 어찌되었든 갈라졌으니까! 나는 꽤나 단순했다. 그래서 히지카타와 형씨가 헤어졌으니, 히지카타는 당연히 나에게 올 거라고 기뻐했다. 곧 그는 연결되어있는 실을 타고서 한 걸음 한 걸음 자신도 모르게 걸어와서 내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히지카타- 사랑해. 얼른 나에게 다가와. 그리고 나를 안아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나의 온 몸을 촉촉한 상태로 적셔줘.

 

 

 

 

 

 

그래, 분명히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날 그는 심하게 앓았다. 내가 직접 그의 상태를 본 것은 아니고, 야마자키가 발견해서 그 날 아침회의는 취소됐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도 일시적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한 것이 아픈 듯한 느낌까지 함께 받았다.

 


의무실에 가서 히지카타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아프니 당연히 의무실에 들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들 말로는 야마자키에게 들어서 직접 찾아갔어도 이딴 건 필요 없다면서 그냥 조금 자면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가서 증상을 좀 봐줄 수 있냐고 물었다. 글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히지카타가 열이 있는 것 같으니 우선 약을 좀 전해주라면서 작은 약병도 함께 내밀었다. 그리곤 더불어 그 의무병은 나에게 말했다. “오키타 대장 말이라면 부장도 못이기는 척 하면서 들을거예요. 두 분 맨날 티격태격해도 정말 사이 좋으시잖아요?” 나는 그 말에 괜시리 우쭐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약간 들뜬 말투를 애써 감추면서 그딴 소리 말고 어서 내놓으라면서 약병을 낚아 챘다.

 

 

 

 


히지카타의 방에 갔을 때, 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답지 않게 어지럽게 널려있는 물건들을 보고, 그가 정말 아픈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열이 있는지 약간 숨소리가 거칠어서 나는 그의 이마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평소 온도보다 약간 높아서 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아프구나 너. 그가 아파서, 그런 그와 함께 나도 함께 아팠다. 내가 이마에 손을 얹은 것을 느꼈는지, 그가 내 손목을 살며시 잡았다.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그가 내 손목을 따스하게 잡아서 설레이면서 놀랐다.

 

“...안갈거지..?”

 

“...”

 

​“..가지마..”

 

당연하지. 내가 너의 옆이 아니면 어디에 있어.

 


그가 그렇게 이야기해줘서 좋았다. 가지 말라고 해줘서 좋았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 네가.. 와줘서 정말.. 기뻐.. 내가 아파서 니가 왔다면.. 항상.. 이런 상태였으면 좋겠다.”

 

난 항상 네 옆에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알았다. 그가 지금 대화하고 있는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그는 착각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야 히지카타, 형씨가 아니라고”

 

내 말에 히지카타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나를 놀란 눈으로 보다가 직후 잡은 손을 놓았다.

 

“아..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미안”


그 말을 남기고는 뒤척이며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나에게 등을 보였다.

 

“.. 왜 왔어?”

 

“아프다 길래. 약 주려고 왔어”

 

“두고 가”

 

내 눈도 마주보지 않고 말하는 그가 야속해서 한참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왜 헤어진 형씨에게는 그렇게 상냥하게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나에게는 냉정하게 두고 가라면서 매몰차게 말하는지..

 

“약 먹는 모습.. 보고 갈거야”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너를 위해주고 있는 나를 보고 조금이라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해서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이런 말, 내가 너한테 할 수 있을 것 같아? 원래의 나라면 먹고 죽어- 라거나, 빨리 죽어 정도의 말이 어울리잖아.

 

 

 

 

나는 그의 바로 옆에 앉아있지만, 그와의 거리는 좀처럼 가깝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있었으나, 좀처럼 닿지 않았다. 돌아가라고 그는 재차 말했지만 나는 그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아무런 존재도 되지 않고, 그에게 어떠한 위로조차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계속 느끼게 만들어서 그 순간은 멍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옆에 있지도 않은 형씨를 그리워 하는 이 새끼가 너무 답답해서 순간 욱하는 감정을 느꼈다. 헤어졌잖아. 니네 끝났다면서. 근데 왜.. 히지카타, 형씨는 말야 그 정도밖엔 안됐던 거야. 그냥 잠깐 너와 즐겼던 사이였을 뿐이야. 너희 둘이 헤어지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너와 형씨가 왜 헤어졌는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작은 바람 같은 사고에도 휩쓸릴 정도로 가벼웠던 거야. 하지만 나는 네 옆에서 영원할 거라니까? 그니까... 나를...지금 당장 나를 사랑해줘....... 내가 한참을 말없이 옆에 앉아있자 그가 다시 말했다.

"두고 가라고 했잖아."

내가 형씨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를 떠나지 못하는 히지카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재 그가 형씨를 원하고 있기에 형씨가 부러웠다. 그래서 그만큼 미웠다. 어째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나를 두고 어째서 형씨를 기다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왜 형씨에게.. 나에게 그 곳을 줬다고 말하지 않았어?"

 


"..."

"...너, 잠깐 햇갈린거야."

"..."

"그래서 말도 못하잖아. 형씨가 화를 내건 어쩌건, 너를 의심하든 어쩌든 내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는 거잖아"

"...가라고 했잖아. 가"

"그래서, 뭘 좀 찾았어? 나 의심해서 그 곳 뒤졌던 거 아니야?"

"..."

"봐,..나 아니라니까. "

"..."

"히지카타, 너 변했어"

내 말에 히지카타는 몸을 일으키고선 거칠게 나를 돌아보았다. 아파서 그런지 얼굴이 좋진 않았지만 그런 모습으로도 나는 충분히 그에게 취했다.

"너.. 닥치고 가라는 말 안 들려?"

"좋아해"

"꺼지라고!"

"히지카타. 나 네가 너무 좋아"

"..."

 


"나는 네가.."

내 말이 끝나기 전에 그가 나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표정은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이런 모습으로도 충분히, 충분히 너에게 취했다. 내가 약간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그는 내 표정을 보고는 이내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리곤 말했다.

"..그만해"

"헤어진거잖아?"

이 말을 했을때 히지카타의 표정이 내 표정만큼 슬프게 일그러졌다.

"왜 헤어졌는지 생각해봐. 너랑 형씨는 그 만큼이야. 거기까지라고"

"..."

"왜? 뭐.. 형씨랑 그까짓 형편없는 사랑 비스무레 잠깐 했다고 치자. 그딴거.. 영원할 줄 알았나봐?"

씨발 존나 순수하네.

"..어제 방 앞에서 통화내용 들어보니까 아주 가관이더라. "

아무 말도 없이 내 어깨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어서 가슴이 아팠다.

"..너라는 새끼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이 보여"

물론 진심은 아니다. 나에겐 넌 아직도 태양, 혹은 달과 같은 고유명사로써 나에게 존재하는 단 하나의 존재였으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크게 빛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이때 나는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다른 무엇도 생각나지 않은 상태로 그냥 한없이 슬펐다. 히지카타가 슬퍼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나도 함께 슬펐다. 그가 울어서 나도 울 것 같았다. 그가 힘들어해서 나도 힘들고...

 

 

 

 

 

 

 

 

-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히지카타는 좀처럼 낫지 않았다. 아마 내가 가져다 준 약도 입에 대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둔영 안은 겉으로는 다들 걱정하는 척 했지만, 약간은 암묵적으로 축제 분위기였다. 나만 빼고. 내가 즐거워하지 않자 다른 대원 모두가 왜 기뻐하지 않냐고 물었다. 제일 좋아해야 할 사람이 대장 아닙니까? 하고 묻는 대원도 있고, 사실 내가 히지카타를 그렇게 만든 흑막이 아니냐며 물었다. 나는 그 말에 장단을 맞춰주려 "응 사실 내가 몇 일 전부터 귀신을 불러냈거든" 하고 대충 대꾸했다. 그를 괴롭히려는 이런 나의 행동이 다른 대원들의 눈엔 너무나 당연해서. 나는 사실 그의 옆에 딱 달라붙어서 하루 종일 그를 치료해주고 싶었다. 내가 치료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못 한다면 그냥 옆에 앉아서 그냥 그를 지켜보고 싶었다. 한참을 나답지 않게 머리를 굴렸다. 그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혹여나 들킬까봐 찔렸는지 다른 대원들이 나를 의심하면 어쩌지? 하고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던 거다. 그리곤 나는 끝내 그를 치료해주겠다 이런 낯간지러운 말은 끝까지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평소처럼 일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 날은 무슨 마약범을 붙잡으러 간다며 다들 열을 올렸다. 물론 나는 내 마음이 히지카타의 옆자리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없이 다른 번대 대장들이 하는 걸 나와 상관없는 일을 보는 듯이 멍하니 서 있었다. 다른 번대 대원들이 잡았다면서 신나하는 것도 전혀 공감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있는데, 대원하나가 물었다.

 


"빼앗은 마약들은 어디에 둘까요? 무기창고에 둘까요?"

"그럼, 니가 하기라도 하려고?"

나의 시큰둥한 목소리에 나에게 물었던 대원이 크게 웃으면서, 이거 진짜 효과 죽인데요! 깰땐 좀 머리 아프다고 하지만 완전히 자신이 보고싶은 장면만 보인데요! 라고 말하면서 장난스럽게 한봉지 가져갈까?하고 장난을쳤다.보고 싶은 장면만 보인다니. 그럼 내 눈앞엔 나를 사랑해서 견디지 못하는, 히지카타만 보이겠구나. 그런 환각만 보인다면 지금 당장 마약에 쩔은 약쟁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사실 마약에 쩌들은 약쟁이들은 굉장히 안쓰러운 사람들이다. 보고 싶은 것을 실현할 수 없어서 마약으로 인한 환각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니까.

 

 

 

 

 

 

나를 정말로 화나게 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히지카타가 몸이 성하지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담배를 피운다는 것과, 여전히 새벽에 나돌아다닌다는 점이었다. 확증은 없었지만 왜 인지 모를 나의 심증이 자꾸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헤어진다는 전화를 한 이후에 아팠기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저녁에 그의 신발 아래에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모래 몇 알, 머리카락 한 올을 두어 표시를 해두었다. 혹시나 그가 나간다면 이것을 밟고 갈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이렇게 해두면 다음 날 확인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아침에 확인한 그 결과, 역시나 나의 심증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딜 가는지는 알고 있다. 형씨를 만나러 가는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진심으로 아니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를 것이다. 그 날도 새벽에 담배를 물고, 성하지 않은 몸을 이끌면서 나서는 그의 뒤를 숨죽인 채 밟으면서 익숙한 거리로 향하는 그가 미웠다. 해결사 사무실. 그 앞에서 그는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귀에 가져다 대고, 다른 한손으로는 익숙하게 담배를 피웠다. 그렇게 몇 시간, 그의 발 밑에 엉망으로 떨궈져 있는 수 많은 담배꽁초가 그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계속되는 한숨과, 그리고 잘 보이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눈물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담배를 피워대는 시간만큼 나는 그를 어둠속에서 지켜보면서, 혹시나 흐느끼는 소리가 세어나갈까 무서워 내 입을 틀어막고 한참을 울었다. 혹시나 그가 형씨에게 마음이 빼앗겨 정말로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이미 헤어지자고 형씨는 말했지만 그냥 잠깐 싸운 것일 뿐이고, 다시 이 둘이 웃으며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수 만 가지의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서 울고 있는 나를 더더욱 시커멓고 차가운 낭떠러지에 몰아넣을 뿐이다. 다행히도 형씨는 히지카타의 전화도 받지 않고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는 그의 뒷 모습이 쓸쓸하다 못해 그자리에 주저앉을 것 처럼 위태로워 보여서 부축해주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그가 지금 바라는 사람이 내가 아닌 걸 내가 잘 알고 있어서. 내가 간다고 한들 이런 나에게 위로받지 못할 걸 아니까. 그리고 그런 그의 행동에 상처받을 내 마음의 고통이 무서워서. 그걸 직접 느끼기엔 내가 너무 괴로웠다. 그가 돌아간 후에도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내 슬픈 감정을 눈물을 통해 쏟아내기라도 하듯이 한참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 보다 더 오래 그 어둠 속에 머물렀다.

 

 


 

 

 

 

 

 

 

 

 


-

차이나는 내가 만나지 않겠다고 한 이후로, 몇 번 나를 찾아오긴 했었다. 하지만 나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바로 그 다음날에 나를 찾아왔을 때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갔다. 기억을 잃기 전의 차이나였다면, 이런 나를 냅다 쫓아와선 뒤통수라도 갈겼을 텐데, 지금 차이나는 나에게 그렇게 저돌적이고 공격적이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서, 차이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두 번째 찾아왔을 때는 내 표정에 단호함이 보였는지,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도 못했다. 그리고 두어 번 정도를 더 찾아왔는데 그 때마다 딱히 무엇을 하지는 못하고 그냥 나를 먼 발치에서 쳐다보기만 했다. 물론, 나는 차이나를 돌아보지 않아서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얼마나 있었는지 그런 것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는 몇 일 동안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때, 히지카타에게 모든 신경이 쏠려있어서 차이나에 대해서 전혀 생각 못하고 있다가, 비가 오는 어느 날, 보라색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다른 어떤 사람을 보고 그 때야 생각해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차이나는 찾아오지도 않네. 하고. 아쉽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조금 더 격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순순해서 지루했다. 차라리 기억을 잃기 전의 차이나 쪽이 그런 면에선 재미가 좋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거리에서 우연히 차이나를 만났다. 지나치려 하는데 차이나가 내 팔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해”

 

차이나가 나를 약간은 울먹이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나. 그 아저씨한테 가지 않을거다 해. 그 집에 다시는 안갈거야. 그 아저씨랑 엄청 싸웠다해. 그니까.. 이제 다 상관없다해..이제 나랑 다시.. 만나줄.. 거지?”

 

차이나를 쳐다보니, 전에 여행 간다면서 나를 찾아왔을 때와 비슷한 가방을 메고서, 짐을 싸서는 나왔다고 말했다. 갑자기 머리가 더 아파지는 기분이다. 나는 이렇게 짐을 싸서 나오는 것 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냥 형씨가 아끼는 만큼 좀 더 대들거나, 상처를 주는 것 까지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강하게 집을 나오는 선택을 할 줄이야.

 

“너. 그럼 갈 곳은 있어?”

 

차이나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면서 없다고 말했다. 이건.. 아니니까 나는 차이나를 달래서 다시 형씨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싫어도 거기에 있어야 오빠랑 아빠가 올거 아냐.. 정도의 적당한 말을 둘러대려 했다.

 

꼬맹이는 목이 마르다면서 나한테 음료수를 사달라고 꽤나 당당하게 요구했다. 나는 그런 차이나의 말에 순순히 알겠다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간 카페에서 차이나는 주문한 음료가 나오기도 전에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맞다! 그거 아냐해?”

 

“뭘?”

 

“아저씨랑 싸우기 전에 우연히 아저씨랑 그 안경이랑 이야기 하는 거 들었는데, 그 별 그려져있던 집 있잖아. 거기에 그 히지카타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해. 그리고 그 날 아저씨 엄청 충격 받은 표정으로 집에 왔다 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의 시체였다해 시체. 원래 눈도 동태눈깔이어서는.”

 

히지카타가 내 공간을 찾아간 날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왜 만나지 못하게 말을 했냐고 물어보니까 지금은 그딴 거 신경 쓸 틈이 없다면서 나한테 화내는 거 있지? 지금 엄청 상태 안 좋다고 그러면서. 누구는 좋은 줄 안다해!..”

 

꼬맹이는 짜증난다는 식의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약간은 그런 행동에 후회가 있는 듯 하기도 했다. 눈빛이 약간 흔들렸거든.

 

차이나는 계속 말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히지카타라는 사람이랑 헤어진 것 같다해. 맨날 그 녀석이 집 앞에 새벽에 찾아오는 것 같다해. 그리고 그 아저씨도 그 새벽에 거실에 앉아서 계속 술만 퍼마시더라해. 전화 계속 울려서 내가 시끄럽다고 소리 질러도 그냥 힘없이 미안. 이러기만 하더라. 지겹게 말야. 새벽내내 진동소리 듣고 있다고 생각해봐라해. 그거 완전히 신경 쓰이는 소리다해! 그리고.. 내가 못 찾아왔던 날..은 그날은 완전히 대판 싸웠다해.. 사실 내가 찾아가고 있다는거 들켰서 나한테 뭐, 만나지 말라고 하면서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나도 지친다, 이런 말 하는데 왜 자꾸 자기 생각만 하냐해? 나도 지친다해! 그러다가.. 이번엔 내가 좀 심하게 말한 것 같긴 한데.. 완전 귀찮다고, 왜 이런 곳에 오빠와 아빠가 나를 맡겼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서 화를 냈다해. 돈도 없고, 거기에다 동성애자라는 것도 더럽다고 말해버렸다해.. 오히려 화도 안내고.. 표정이 엄청 안 좋았는데.. 다시 마주칠 자신이 없어서 나왔다해. 이제...다시는 안갈거야.”

 

나는 다른 말은 잘 모르겠고, 형씨와 히지카타가 헤어졌고, 형씨도 굉장히 힘들어 한다는 것, 그리고 차이나와 형씨가 싸웠다는 것 정도만 확실하게  들었다.

 

“아.. 오빠랑 아빠는 언제 오는 거냐해..”

 

차이나가 지친 듯이 카페의 책상에 철푸덕 엎드려서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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