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긴] 꼬리표 26

2015. 8. 19. 22:11

*히지긴/히지오키 주의*​

-

다음 날, 다시 여관에 찾아갔을 때에는 그 날 새벽에 이 곳에서 차이나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든 일들이 거짓인 양 흔적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나와 차이나가 여기에 들어오기 전의 모습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어느 다른 평범한 여관과 다르지 않게 창문 틈의 쏟아지는 햇빛을 받고 있었을 뿐이다.










-이 틀 정도가 지났다. 히지카타는 길지 않은 간단한 입원을 한 상태였고, 이유를 모르는 곤도씨나 다른 대원들은 무슨 일이냐면서 물어도 히지카타는 여전히 나에게 책임을 묻거나 하고 싶지 않았는지, 아니면 쪽팔려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의 병실을 자주 찾았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무섭게 뻔뻔하네. 하긴, 이런 면이 너답긴 해"

그가 나를 알아줘서 좋았다. 나는 웃으면서 아프지 마세요 라고 중얼거렸다.


카부키쵸의 거리에서 차이나라는 존재는 지워졌다. 나는 차이나가 누구와 어디로 갔는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의 입장에선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의 행방불명이었다.

히지카타의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형씨를 만났다. 나를 발견하고는 실성한 사람처럼 나를 붙잡고, 퀭한 얼굴에 숨까지 한 번에 몰아내쉬면서 말했다.

"카...카구라..가..카구라가 없어졌어.. 아..아무리 찾아도.. 없어. 어디에도 없어.."

재밌었다. 질식할 것처럼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는 것도, 퀭한 얼굴에 달린 눈에 핏발까지 세우고는 한껏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는게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그런 형씨를 눈을 빛내면서 쳐다보았다.

"호..혹시...혹시 못 봤어? 아니면 연락이라도.. 연락..... 없었어?.."

"만나지 말라면서요?"

나도 모르게 약간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의 말에 형씨는 갑자기 정신이 약간은 들었는지 잠깐 멍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도, 그런 형씨가 재미있어서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형씨를 올려다보았다.

"부...부탁이야.. 찾아줘, 너..경찰이잖아"

"만나지 말라면서요"

"...나...나..카구라랑 만나서 할...이야기가 많은데... 제발... 아. 그래. 그러면 혹시 연락이라도 ..혹시 닿는다면 꼭... 말좀..."

나는 그 순간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필요할 땐 찾아와서 부탁을 했다가, 내가 뭔가 수상쩍게 생각되면 단물 빠진 껌 마냥 내뱉어놓고는, 다시 내가 필요했는지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또 다시 부탁을 하고 있는 그가 너무나 교활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내 얼굴에 여유로운 빛,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헛웃음, 그리고 내 눈앞에서 흥분하는 형씨가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비취는 웃음에 화가 났는지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가! 뭐가 재밌어! 나는 지금 너에게 부탁을 하고 있잖아! 나...나는 지금 정말로 돌아버리겠단 말이야!"

"지금 화내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형씨는 다시 애써서 화를 가라앉히며 나에게 애써 화를 누르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부탁..할게.. 나에게는.. 연락같은 걸 하지 않을 것 같아... 기억도 없고.. 전처럼 과격한 모습도 없는데.. 혹시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이야.. 나에게 오지 않아도 좋으니까. 제멋대로 다 해도 상관없으니까 잘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정도만.."

나는 싸늘한 얼굴을 하고 형씨를 쳐다봤다.

"헤어진거죠?"

"...응?"

"히지카타랑. 헤어진거죠?"

"..."

내 말에 형씨는 놀란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헤어진거죠? 다시 만날 일, 없는 거죠? 왜 대답이 없어요?"

"....으..응?....."

"찾아볼게요 카구라. 연락 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나의 질문에 형씨는 다소 기가 죽은 듯이 시선을 돌렸다. 나의 질문에 바로 응! 헤어졌어! 라고 속 시원하게 말해주었으면 더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울하게, 슬프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말아달라는 듯이 가슴 아픈 표정을 지어줘서 기뻤다. 물론 카구라를 찾아보겠다는 말은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다. 문득, 가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으나, 그런 나의 의심을 풀어주기라도 하듯이, 그 다음날에 차이나에게서 편지가 왔다. 다행히도 그 편지는 다른 사람들의 손을 통하지 않고, 내가 바로 받았다.

[잘 지내냐 해? 인사도 하지 못하고 가서.. 정말 너무나 아쉽다해. 어떻게 알았는지 오빠가 찾아왔어. 나는 너무 반가워서 보자마자 바로 오빠에게 달려가서 안겼는데 오빠는 약간 그런 나의 행동을 어색하게 여기더라해.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사를 하고 가자고 했는데.. 시간이 없다고 잡아 끌어서 어쩔 수 없었다해. 오빠랑 가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서운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하지만 그래도 우리 오빠를 만나서 다행이기도하고, 좋기도 했다해.

몇 일 됐는데, 아직 아빠는 못 만났다해. 오빠 말로는 아빠는 지금 여행 중이시래. 그래서 우선은 둘이 있는 거라고 말했는데 집이 정말 커! 전에 있던 그 아저씨네 집하고는 다르게 말이야! 다음에 꼭 놀러와! 내가 초대할게! 내가 우리 오빠에게, 알게 모르게 네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해. 근데 이상하게 오빠가 궁금해서 묻는 내 이야기 속 사람의 인상착의는 같이 사는 아저씨였다해. 그래서 내가 그 아저씨는 그냥 오빠가 잠시 나를 맡긴 곳의 아저씨잖아! 라고 말했더니 약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는 그냥 웃어보였다해. 그래서 내가 기억이 멀쩡하지 않아서 잘은 모른다. 라고 말했더니. 잠시 나를 보더니 불안했겠구나. 하고 그냥 머리를 쓰다듬어줬어. 우리 오빠는 정말 자상해. 그 아저씨에게도 사실 사과의 한마디는꼭 하고 싶었는데. 이름도 주소도 연락처도 하나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 없다해. 그니까 오빠가 전해줘.너무 보고 싶어. 정말이야.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 싶어. 내가 나중에 크면 다시 지구에 갈게! 그러면 나랑. 결혼하자. 나는 오빠의 가장 예쁜 신부가 되고 싶다해!]


결혼이라는 글자에서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황당해서. 다른 뒷 장엔 그 전해달라는 편지인지 반절로 접힌 편지지 겉에 아저씨에게 라고 쓰여 있었다.


[아저씨. 지금까지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다해. 여러가지로 내가 짜증내고, 말도 막 한 부분은 많지만.. 나는 이상하게 아저씨가 편했다해. 그래서 자꾸만 화를 내게 되고, 심하게 했던 것 같다해. 나는 오빠랑 드디어 떠나게 됐어. 인사도 못하고 가서 진심으로 서운하다해.. 내가 기억을 못한다면서 안쓰럽게 쳐다보는 그 눈이 가끔 생각날 것 같아. 건강하게 잘 지내라해! 나 같은 어린이처럼 딸기우유 같은 거 먹지 말고!]

나는 그 편지를 읽은 그 즉시 찢어서 태워버렸다. 아 다행이야 정말로. 무사히 돌아갔구나 차이나. 그 곳의 생활에 익숙해지면, 이 곳의 생활 같은 건 생각도 안나는 법이야. 사람은 잊을 수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해.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많은 기억도 없는 우리를 그렇게 깊이 생각하진 못할거니까.잘 가 차이나. 나 역시 네가 조금은 보고 싶을거야.

-

히지카타는 퇴원을 했고, 몸이 아프거나 하진 않았지만 얼굴엔 항상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찾아가서 그 그림자를 걷어주려 일을 하는 그의 뒤에 다가가서 넓은 등에 얼굴을 묻고 가슴팍을 끌어안고 한참을 있었다. 그도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무엇을 하든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런 그에게 심술이 나서, 유카타가 살짝 내려가 드러난 어깨에 입술을 대자 그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데체 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하나도 알 수가 없어"

나? 내가 뭘? 난 나의 생각을 남김없이 다 표현했잖아. 좋아서 좋다고 했고, 화가 나서 때렸어. 그리고 미안해서..걱정되서 병문안을 갔어. 거기에서도 너는 그런 나의 행동이 '나답다'고 말했고.

"짜증나려고 하니까 돌아가"

"왜?"

"내가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내 표정을 보고 내 생각을 읽은 그가 말했다.

"나는 네가 무서워"

전에도 나에게 몇번 무섭다는 말을 해 왔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넌 결국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잖아. 마음대로 해"

"히지카타"

"그렇잖아. 너, 내 의사 따위가 중요해?"

...당연하지. 너의 생각을 난 확신하고 있어. 그래서...

"넌 내가 긴토키랑 헤어지길 바랬잖아? 뭐.. 그래, 너 때문이라고 탓을 하거나 하진 않아. 나와 그 녀석 둘의 문제니까. 어찌되었든, 헤어졌잖아. 너 원하는 대로 다 됐잖아?"

그래,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됐어.

"나 정말 끝난 것도 맞아. 그렇다고 다시 찾아간다거나, 그런 바보 같은 짓도 안 할거야. 됐지?"

난 그의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말투, 표정과 상관없이 그 말의 내용에 의해서 순간 기쁨에 가득 찼다. 그럼.. 다시.. 나를...

"그렇다고 너를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지도 않아. 아, 이런 말 듣기 싫어하던가? 됐다. 내 의사가 뭐가 필요해.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잖아."

...왜 자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때려서 화가 났을까? 그래서 자꾸 저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에게 시선을 거두는 히지카타를 다시금 뒤에서 꼬옥 껴안으면서 말했다.

"왜... 자꾸 그렇게.. 이야기해... 화났어? 내가.... 때려서? 미안해. 잘못했어..... 아니면, 너도 나를 때려! 나도 너처럼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맞아줄게.. 가만히 있을게! 진짜야!"그는 자신을 안고 있던 내 손을 거칠게 풀어내면서 말했다.

“손대지마”











-

카부키쵸 쪽을 순찰하다가 안경 녀석을 만났다. 오랜만이라서 인사를 해오는 이 녀석도 전처럼 밝진 않았다. 힘 없이 인사를 한 후,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오키타씨, 안녕하세요, 혹시.. 카구라 소식은 아직...이죠?"

"응. 뭐.."

"하.. 진짜 사람 미치게 하네요 정말.. 오키타씨도 수고가 많아요.. 그리고 오키타씨도 충분히 힘들겠어요. 카구라랑 꽤 친했었잖아요?"형씨는 이 녀석에겐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보다. 나는 그냥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긴상은 거의 죽어가요 아주.. 밥도 거의 안 먹고.. 그 좋아하는 딸기우유며, 군것질 거리도 모두 끊은 채로 하루 종일 돌아다녀요. 정말 어찌나 바보 같은지 제가 항상 적당히 하라고 말려도 소용이 없어요. 자다가도 수도 없이 깨더라고요... 카구라가 썼던 그 벽장 안을 울면서 한참동안 멍하니 쳐다보기도 하고.. 물론 나도 슬프긴한데 긴상이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제가 이성적으로 변한다니까요... 계속 기억도 없는 애가 어디 이상한 데에 끌려간 건 아닐지 맨날 납치나 이런 범죄뉴스라도 뜨면 당장 달려가기도 하고.. 정말이지.."

형씨 많이 아프시구나. 나도 그랬는데. 나도 그렇게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서 죽고 싶고, 맨날 뒤를 밟으면서 어둠 속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그랬어요. 진심으로 죽는게 낫겠다고 생각 할 정도였다니까요? 차라리 죽고 싶죠? 알아요. 근데 막상 죽지도 못 하겠죠?그거, 무슨 심정인지 잘 알죠. 그럼.


"근데, 어제 히지카타씨가 왔더라구요"

나는 별 감흥없이, 아니 재미있는 루머라도 듣는 듯이 안경 녀석의 이야기를 가볍게 듣다가, 안경 녀석의 그 말에 급하게 쳐다보았다.

"히지카타가?"

"네, 그러면서 자신도 찾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마라. 뭐 이런 비슷한 말하면서 이것저것 사들고 왔더라고요. 약이며 뭐며, 히지카타씨에게 그런 자상한 면이 있을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근데 히지카타씨를 보고 긴상이 주저 앉아서 오열하는거 있죠? 히지카타씨가 둘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 나가달라고 그래서 저는 나왔지만.. 정말 놀랐어요. 맨날 티격태격하면서 싸워대도 둘은 역시 사이가 좋나봐요."

나는 관리되지 않은 표정을 감추려 고개를 푹 숙인채 바빠서 이만 가봐야 겠다고 했다. 안경은 바쁜데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미안하다면서 나에게 다음에 또 보자면서 이내 한숨을 푹 쉬고는 인사를 하고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 참, 형씨가 그렇게 걱정이 되서 직접 찾아가기까지? 생각보다 형씨의 저주가 강했나보다. 나에겐 한없이 냉정한 그가 형씨 앞에서, 헤어진 형씨 앞에서, 자신을 믿지 못하는 형씨 앞에서 그런 자상한 사람으로 변할 줄은 몰랐다. 몇 걸음 걷다가 나는 허탈함과 동시에 실망감에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근처의 벤치에 잠깐 앉아서 왔다 갔다 하는 정신을 붙잡으려 했다. 나한테 좋을대로 하라면서. 끝났다면서! 다시 찾아가지 않겠다면서! 또, 또야! 또 나한테 거짓말 하고 있잖아 너. 왜 인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와서 실성한 놈처럼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웃어댔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절망감과 동시에 무엇이 그를 자꾸만 형씨에게 가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불현 듯, 혹시 지금까지 정말로..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개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런 한심한 생각을 잠시나마 품었다는 사실에 나를 자책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히지카타는 저가 형씨를 찾아갔다는 사실과, 카구라를 몰래 찾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카구라를 찾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숨기려 했다. 그 꼴이 우습고, 소유욕이 누구보다도 큰 나는 그 것을 못 본채 해 줄 정도로 인자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애쓰지마”

“뭘?”

“형씨 때문에 카구라 찾고 있잖아. 그만하라고”

나는 상냥하게 미소까지 띄우면서 말했다. 그러나 나의 말에 히지카타는 의아한 표정과 함께 약간은 질렸다는 표정까지 지으면서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서 물었다.

“왜?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

나는 계속 미소를 띄우면서 다정하게 이야기 했다. 히지카타는 그 자리에서 잠시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내 어깨를 화난 듯이 밀치고는 지나쳐 갔다.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소리를 높여 이야기 했다.

“내 마음대로 하라며! 하지만 나는 너에게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말한 적 없어!”










-
히지카타가 나를 무기창고로 불러냈다. 나를 불러냈다는 것 만으로도 들뜬 나는 그가 말한 무기창고 앞에 약속시간보다 5분이나 먼저 일찍가서 서성였다. 무기창고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 그 곳에 마음대로 출입이 가능한 사람은 곤도씨와 히지카타씨 단 두 명, 그리고 나머지는 승인이 없다면 절대로 출입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히지카타와 종종 들어간 적이 있지만, 나도 멋대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들어간 것도 단순히 무얼 찾으러 가는 것이었는데, 그 때는 굉장히 귀찮아하면서 왜 하필 나를 데리고 왔냐면서 하루 종일 투덜투덜거렸다. 그 땐 내 옆에 그가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내가 그렇게 투덜투덜거리거나 싫다는 듯이 말해도 그가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볼 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조금 더 잘해주는 건데 말이야.


시간이 지나고 익숙한 담배 향과 함께 그가 내 앞에 와서 섰다. 그의 표정은 어떤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고,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일찍왔네 ’혹은 ‘왠일이야 먼저 와서 기다리고’ 같은 흔한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눈짓으로 따라오라는 신호만 보내왔을 뿐이다. 나는 그의 뒤를 순순히 따랐다. 무기창고는 지하에 있어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곳은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어둡다. 싸구려 주황색 등이 큰 공간에 드문드문 몇 개 정도 매달려 있을 뿐이고, 여기저기 쌓여 있는 바주카포, 남은 제복들, 총, 굴러다니는 탄알, 전쟁이 일어난다면 쓸 모포가 많이 쌓여있다. 그리고 곳곳엔 양이지사 놈들에게 빼앗은 잡다한 무기들, 그리고 마약광에게 빼앗은 마약, 훈련용 죽도 등등이 쌓여 있었다. 그 곳은 아무리 청소를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 이상한 곳이다. 물론 청소를 할 때는 출입이야 허락 되지만, 히지카타나 곤도씨가 필히 같이 있어야 되는 그런 엄격한 곳이었다. 우리 1번대가 그 곳을 청소할 때도 항상 제대로 하지 않는 나 였기에 감시하는 히지카타와 장난을 치곤 했다. 좋은 무기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에게 달라면서 졸라대면 그런게 가능할 것 같냐고 화를 내면서도 몰래 나에게 빼주곤 했다.


“별 건 아니고..그냥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너무 험악한 곳에서 하는 거 아니예요? 혹시 협박하려는 건가?”

나는 킥킥거리면서 쾌활하게 웃었다. 히지카타는 전혀 웃지 않았다. 간만에 온 무기창고여서 나는 괜히 쌓여 있는 물건들을 구경했다. 쓸만한 것이 있다면 가져갈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소고”

그가 구경하는 나를 낮게 불렀다.

“응 말해”

나는 돌아보지 않고, 계속 구경하던 것을 구경했다. 양이지사들은 꽤나 신기한 물건을 잘 만든단 말이야.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는 그의 말에 그제야 뒤를 돌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어떻게 해야 날 내버려 두겠어?”


나는 바라는 게 없었다. ‘날 내버려 두겠어?’ 라고 말 한 것에 대한 의미도 알 수가 없었다.

“히지카타씨, 나는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그냥..”

내가 약간은 웃으면서 말하자 그는 나에게 말했다.

“니가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많은 생각을 해봐도, 난 전혀 모르겠어. 그래서 묻는 거야. 너를 의심한 것은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리고.. 그리고.. 나는 아직 긴토키를... 긴토키가 없으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힘들어”

.....

“그래서.. 그래서.. 이제 그만 나를 놔주면 안 될까? 지금 긴토키가 힘들어 해..내가 있어줘야 할 것 같아. 그래서.. 그래서 그래.. 니가 시키는건 다 할게. 무릎이라도 꿇으라고 하면 무릎이라도 꿇을게”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내 앞에 망설임 없이 털썩 무릎을 꿇으면서 나에게 계속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너를 결코 서운하게 하지 않을게. 그냥 .. 우리 사이 내버려 두면 안될까?”

니가 지금 내 앞에서.. 망설임 없이.. 그것도 형씨 때문에 무릎을 꿇는다고?

“그래.. 니가 나에게 뭘 특별히 한 것은 아니야. 그래. 근데.. 니가 하는 작은 사소한 행동들이 나에겐 엄청난 압박이야. 너도 알다시피 넌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존재야”

“일어서”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니까.. 그건 내가 항상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일어서”

“응? 소고. 내가 너에게 부탁 같은 거 한 적 별로 없잖아. 이번은 제발..”

“일어서라고 하잖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양이지사에게서 빼앗은 물건중 하나를 집어 들고 홧김에 그에게 집어 던졌다. 맞추려고 던진 것은 아니었기에 그냥 그의 옆에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고, 나는 그의 행동과 말에 의한 분노에 씩씩댔다. 히지카타는 별 말없이 그런 나를 약간은 동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나를 어떤 눈빛으로 보던 상관없지만, 지금 그가 나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언제부턴가 형씨에게 느끼는 열등감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새끼야 말 안 들려? 일어서라고”

나는 히지카타에게 다가가서 멱살을 움켜쥐고 말했다. 히지카타는 여전히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볼 뿐이고, 형씨 따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내가 너무 싫어서 나는 근처의 아무 무기나 집어 들고는 이 이상으로 형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죽어버리겠다고 했다. 이번에 죽겠다고 한 것은 진심이었다. 내가 내 화를 못이겨서. 히지카타는 그제야 일어서서는 죽어버리겠다고 난리치는 내 앞에와서 섰다. 나는 그 순간이 왜인지 슬퍼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는 주먹으로 내 얼굴을 한 대 때렸는데, 그 어느 때보다 아팠다. 얼굴이 홱 돌아갔고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입안에 가득번지는 피비릿내가 그 때처럼 씁쓸하고 아팠던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나에게 다가와선 나를 와락 껴안았다.

“소고, 그런 말, 장난으로라도 하지마. 계속 말하고 있잖아. 나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 알잖아.”

그런데 왜! 왜 자꾸 나를 슬프게 만들어... 나밖에 없다면서 왜 자꾸 형씨에게 신경 쓰는 건데.. 왜 내가 형씨 따위 사람에게.. 열등감 느끼게 만들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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