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꼬리표 完

[히지오키긴] 꼬리표 04

2015. 8. 18. 22:08

-

나는 그날은 급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뭐, 나쁘지 않게 곧 잘 먹었는데, 급식을 나눠주시는 아주머니들이 나를 엄청나게 예뻐했다.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오면 나한테 더 먹으라고 더 많이 주기도 하고 맨날 고생이 많다는 둥, 형(...)들이 괴롭히진 않냐고 묻곤 했다. 그런 관심이 나쁘진 않았지만 왜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지 조금 의아했었는데 나중에 히지카타가 듣고 와선 알려준 이야기로는 그 아주머니들은 내가 대장급인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뻔히 옷이 다른데 왜 몰랐을까 싶은데 나이가 어려서 아예 상상 자체를 못한 듯하다. 그리곤 히지카타에게 형이 옆에서 잘 챙겨줘, 어린애가 대장이면 얼마나 힘들겠어.. 라고 하셨다고...그래서 ‘형’들이 괴롭히진 않냐고 물어본거였다. 형은 무슨, 괴롭힘을 당하긴 무슨. 내가 괴롭히고 다니는데. 그 얘기를 해주면서 히지카타는 한참을 웃더니 그 이후에 한동안 ‘소고, 형이랑 맛있는거 먹으러 갈래?’ 라거나, 내가 대들면 ‘소고, 형한테 그러면 못 쓴다’ 라고 말하곤 했다. 존나 재수 없었다. 나이 많은 게 자랑인줄 아나..

  

급식을 먹기 싫다고 하면 나가서 라면을 사먹곤 했는데, 그 날은 그것조차 먹기가 싫었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그런가.. 히지카타가 내 어깨에 손을 턱 얹으면서 밥 먹으러 가자며 잡아 끌었다. 나는 먹기 싫다며 도리질을 하면서도 그에게 끌려가다시피 식당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나는 고집을 부리면서 밥을 받지 않고 그냥 이 녀석 옆에 앉아 있다가 이 녀석 먹는 것 중에 한 개씩만 먹고 싶은걸 손가락을 가리켰다. 내가 가리키면 이 녀석은 먹고 싶으면 받아서 먹어!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젓가락으로 내가 가리킨 것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 모습을 앞에서 보던 야마자키가 그거 안하면 안됩니까? 누가 보면 애인인줄 알겠네요. 라고 한소리 하길래 내 앞에 있던 물컵의 물을 그 녀석 머리에 다 부어줬다.

  

  

사실 자꾸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을 해서 그런지, 자꾸 이 새끼가 더 의식되는 것 같다. 혼자 고민을 하다가 내 고민을 가장 잘 들어주는 형씨를 밖으로 따로 불러냈다. 형씨네 집엔 차이나도, 안경도 있어서 일적인 이야기 외에 다른 이야기를 털어 놓을만한 공간은 아니였다. 형씨는 평소처럼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나왔다. 겉모습과 지금 현재 그의 행동만 본다면 절대로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형씨를 제법 믿고 있고, 나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니까.

  

“왜 밖에서 보재? 나 돈 없다? 파르페 니가 사는거다?”

  

언제는 형씨가 산 적 있나.. 나는 알겠다고 말하곤 주문을 하고, 이 말을 어떻게 꺼내야 좋을지 몰라서 의도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형씨,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렛 좀 받으셨어요? 차이나가 형씨 것도 사는 것 같던데”

  

“아아- 줬지. 근데 줬다가 갑자기 자기가 먹겠다며 빼앗아 가더라. 넌?”

  

“저야, 뭐... 아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점프 신작 보셨어요?”

  

나는 발렌타인 데이에 그 녀석에게 받은 과자가 생각나서 후다닥 말을 돌렸다.

  

“응, 봤지. 근데 거기 여주인공이 별로 안 예뻐서 좀 별로야, 근데 뭐 여주인공 말고 다른 예쁜애가 등장하지 않을까?”

  

아. 그랬었나? 사실 제목 말고는 기억이 안난다.

빙빙 돌려서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할 때. 형씨가 말했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이런 이야기 하자고 여기까지 부른 건 아닐 거 아냐?”

  

음... 분명 아니긴 한데..... 역시 형씨는 눈치가 빠르다니까

  

“아.. 그렇죠..? 분명히 그건 아니긴 한데..”

  

내가 어디부터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 거리자 형씨가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 있구나?”

  

“...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가 정답 비슷한 말을 꺼내어 나는 말하기가 한결 쉬웠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건 아니고.. 그냥 좀 신경.. 쓰인다고 해야 하나, 좀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고 해야 하나....오해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서요”

  

뭔가 말해놓고도 내 자신이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형씨가 웃기다는 듯이 킥킥 웃더니 말했다.

  

“니가 그런 걸로 고민 할때도 있냐? 이러니까 진짜 꼬맹이 같다야”

  

꼬맹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잘난 어른이면 꼬맹이한테 얻어먹는 짓은 작작하시던가.

내가 형씨를 흘겨보자 형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 정도 되는 애가 다른 사람 때문에 고민까지 하고 있는 거면, 너도 마음이 있는거 아냐?”

  

...?응? 아, 그런가,,, 나는 형씨의 말에 대답은 하지 못하고 애꿎은 주스의 빨대를 만지작 거렸다.

  

“그치? 생각해봐, 사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라고 느꼈을 때 그것에 대한 반응은 두가지야, 하나, 나도 같이 그 사람이 좋아진다. 둘, 그 사람이 미친 듯이 싫어진다. 아아- 하나더 추가해야겠다. 신경은 쓰이나 받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아예 끊고 싶지도 않다. 이정도?”

  

설렁설렁 귀찮은 듯이 대답해주면서도 형씨는 말을 잘해서인지 뭔가 신뢰가 갔다. 내가 대답 대신 살짝 웃어보이자 형씨가 장난스레, 웃지마 이 녀석아. 하고는 파르페를 마저 먹었다. 원래라면 누구냐고 물었을 형씨인데 그 날은 이상하게 묻지 않았다. 보통 이런 이야기를 해온다면 누구라도 예뻐? 어때? 정도의 질문이라던가, 어디서 만났어? 어떻게 알게 됐어? 등등의 질문은 필수로 하게 되는 법인데.. 뭐, 나로써는 그가 묻지 않아 준 점이 고마웠다. 만약 물었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한참 고민했어야 했을 테니까.

  

나는 형씨에게 고민을 털어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땐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생각을 마저 정리하고 싶어서, 사실 그 새끼가 나에게 입 밖으로 말을 꺼낸 건 아니라서 아직도 조금 햇갈리긴 했지만 형씨가 마지막 쯤에 해준 말이 나를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무슨 생각인지 그런 걸 100% 장담한다며 대답해 줄 위인이 어딨어? 독심술사도 아니고. 니가 느끼기에 어? 조금 이상한데? 하면 그건 진짜 이상한거야, 예를 들어서 그냥 밤에 뭐해? 라고 연락이 왔다고 치자, 정말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얘가 심심해서 연락을 했나보다 라고 느낄거야 근데 뭔가가 있으면 감이 딱 온다니까? 으이그 니가 어려서 모르는거야. 남이 봤을 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니가 이상하다고 느끼면 그게 맞을 확률이 거의 90%야. 남의 조언보다, 너의 감을 믿으라고>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그의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했다. 왜, 바람 폈을 때 걸리는 경우도 다 그런거 아냐. 그날따라 나의 감이 좀 이상해서 쫓아가봤더니 다른 여자 혹은 남자를 만나고 있더라 이런거.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걸 느끼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 부대의 자기여자 놔두고 잘만 바람 피는 애들 있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면 ‘감’이라는 것도 하늘이 선택해 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인연이니까 그런 걸 알려 주는 게 아닐까?

  

  


  

  


  

  

 

 

 

  

-

나는 나름의 90%의 확신을 가지고 히지카타를 관찰했다. 그 전처럼 혹시나 이 녀석이 연애를 하나? 해서 쫓아다니면서 이 녀석을 지켜보는 건 그만두었고, 그냥 같이 있을 때의 행동만 관찰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확신했다.

사실 내가 오랫동안 봐 왔던, 심지어 남자인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이상하게 전에 둔영에서 쫓겨났던 히키코모리(사실 그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여도 정신병자새끼였지만)와는 정 반대의 감정이었다. 형씨가 일러줬던 첫 번째의 경우처럼 나도 점점 그 녀석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혹여나, 그 감정을 괜시리 들킬까봐 심하게 지랄도 하고 여전히 죽여버리겠다고 장난도 치곤 했지만 여전히 그는 나를 받아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 누나 같기도 하고, 곤도씨 같기도 하고... 역시 이 새끼가 내 소중한 걸 모드 빼앗아 가버렸지만 나는 그런 이 녀석이 나의 소중한 것들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그래도 조금은 그의 행동 하나에 확신했다가, 또 그의 행동 하나에 저 새끼는 역시 개새끼야. 하고 생각했다가 오락가락했다.

  

  

  

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물론 열 받을때도 있었지만.

그날은 내가 히지카타에게 순찰을 같이 가자고 했더니 그가 약간 기겁을 하면서 짜여진 사람이랑 가! 왜 자꾸 나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려고 그래? 하고 말했다.

  

새끼. 속으론 같이 가고 싶으면서. 나는 그런 그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알겠다고 하곤 짜여진 대원과 함께 순찰을 갔다.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가 담배를 피우면서 뒤를 돌아본 나를 보고 손을 살짝 흔들었다. 내가 더 조르길 기대했냐 새끼야, 나는 너 따위에 절대 휘둘리지 않는다고.

  

  

  

  

  

  

  

  

 

  

-

기분이 유난히 좋아서 꽤 일을 성실하게 했다. 낮잠도 안 잤고, 보통 누군가가 나에게 길 따위를 물어보면 정색을 하고 내가 너한테 길 따위 알려주는 사람인 줄 알아? 하고 말하기가 일쑤였는데, 그날은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같이 간 대원은 그런 나를 보고 덜덜 떨면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전-혀 없다고 하는데도 나에게 대장.. 곧 죽는거예요? 그럼 1번대 대장은 제가.. 따위의 개소리를 해서 폭력을 휘두른건 넘어가도록 하자.

  

해가 얼굴을 감추어 거리가 어둑어둑 해졌을 때, 마지막으로 거리 순찰을 하고 들어 가려고 사람들이 잘 지나지 않는 골목을 지나가는데 어두운 골목안에서 부시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인가? 나는 어둠안에 있는 것을 살짝 보았는데 검은색 쓰레기더미만 있을 뿐이었다. 그냥 지나가려는 찰나, 그 검은 쓰레기 봉투 사이에서 어떤 그림자가 서서히 일어나더니, 사람의 형태가 되었다. 나는 그 그림자에게 다가가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어두워서 잘 안보였다가 어둠에 적응이 된 눈에 그 그림자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그림자를 보곤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도..도와... 주..”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 꼬맹이는 울고 있었다. 옷도 엉망이었고, 맞았는지 뺨이나 다른 곳도 상처가 많았고, 이 꼬맹이는 눈 앞의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듯 했다.

  

“어이, 차이나..”

  

내가 나도 모르게 이 꼬맹이를 작게 불렀다. 나는 그녀를 인정.. 이라고 말하긴 싫다만, 인정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당해서 울고 있는 것 자체가 생소한 광경이라서 멍하니 서 있었다. 오늘 이 순간은 이 꼬맹이가 내 앞에서 힘없는 에도의 시민이었다.

나는 조금 놀란 것 뿐이었고, 어쨌든 내가 도와줘야할 시민이었으니까 게다가 오늘 일은 꼭 기억해두고 나중에 두고두고 괴롭혀야겠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꼬맹이에게 다시 다가가서 물었다.

  

“차이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어깨를 붙잡고 정신차리라는 듯이 강하게 말하자 그녀가 그제야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한번 더욱 소리내어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당황해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이 꼬맹이의 옷이 많이 찢겨져 필사적으로 제 옷을 잡고 있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고 내가 약간은 민망한 감도 있어서 나는 겉옷을 벗어서 내밀었다. 우느라 정신이 없는 그녀를 보고 내가 인심 쓰듯 옷을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그녀는 울던 얼굴로 조금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내 팔을 잡곤 말했다.

  

“저.. 나.. 나좀 도와줘라 해”

  

잡은 손이 다쳐서인지 약간 떨리는 걸 보고 말하라고 했다.

  

“어.. 어떤 놈들이 내.. 내 가방을 빼앗아갔다 해.. 그.. 그거 꼭 .. 꼭 찾아야 된다 해..”

  

가방? 거기에 뭐가 들었다고 이 지경으로 울어? 사실 의아했지만 대충 인상착의나 몇 명인지를 침착하게 묻고 가려다가. 그런 으슥한데 있지 말고 나와 있어 차이나. 하고 외치곤 그 놈들을 찾기 위해 달려갔다.

  

  

이 새끼들이 멍청한 건지.. 내가 차이나가 말한 그 무리를 찾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엄청 튀는 옷차림의 녀석이 있었고, 보통 그런 무리들이 자주 출몰하는 장소에 떡하니 있었기 때문이다. 이 꼬맹이가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당할 정도의 녀석들이라 나도 조금은 작정하고 들어갔는데, 그 녀석들은 완전 형편없는 실력으로 픽픽 쓰러져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여러 가지 물건들 가운데서 그 꼬맹이의 것으로 보이는 갈색 작은 가방을 발견했고, 그것을 들고 다시 돌아와 앉아서 울고 있는 그 꼬맹이의 앞에 툭 던져놓았다. 차이나는 그 가방을 확인하곤 소중한 것인 양 그것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곤 한참 있다가 고... 고마워.. 하고 작게 말했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어색하기도하고.. 사실 나는 울고 있는 사람을 위로할 줄도 몰라서 이내 머쓱해져선 그 꼬맹이에게 말했다.

  

“형씨한테 데리러 오라고 연락할게”

  

“시.. 싫어! 긴짱한테 연락하지마라 해”

  

....?

  

“그럼 데려다줄게 일어나”

  

오늘 나는 정말 친절한 경찰이었다.

  

“싫어.. 안갈래...”

  

이 꼬맹이가 너무 서롭게 울어서 나는 갈 생각도 못하고 그냥 옆에 서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옆에 털썩 앉아서 그칠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꼬맹이들은 울 때 더 극성 맞아진다니까?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거의 20분 가까이가 지났다. 지치지도 않냐 넌?

  

“야, 차이나 이제 그만 울고 가자. 너 지치지도 않냐?”

  

내가 약간 지겹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고,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슬슬 들어가봐야 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나는 일어서서 다시 한번 데려다 줄테니까 가자고 말했다. 이 꼬맹이는 또 대답이 없다. 나도 조금 짜증이 나서 몰라, 너 맘대로 해 나 간다. 하고 뒤돌아 서자 그녀가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래, 일어나 데려다줄게”

  

이 말만 세 번째다.

  

“아.. 안갈래..”

  

“어쩌라고 그럼, 난 간다?”

  

“나도 같이가”

  

“어딜?”

  

“오.. 오늘은 집 들어가기 싫다 해..”

  

“그래서 우리 둔영에 따라 오겠다고?”

  

어이가 없어서 내가 묻자 여전히 훌쩍거리던 이 꼬맹이가 계속 울어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아니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뭔가 내가 울린 상황인 것 같이 보여지고 있어서 나는 다시 약간은 다그치듯이 물었다.

  

“어쩔거야? 난 가야 돼. 형씨한테 가”

  

이 꼬맹이는 아직도 내 옷자락을 꽉 잡은 채 놓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혹시 옷이 저렇게 망가져서 들어가기가 싫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도 그렇고.. 사실 이해는 안갔지만 걱정을 끼칠까봐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얼마전에 히지카타가 나에게 준 작은 집을 떠올리곤 말했다.

  

“옷이랑 상처 때문에 그러면.. 잠깐.. 들렸다 가던가”

  

차이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눈물을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나는 이 꼬맹이를 데리고 가면서도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맞는 행동인지 수도 없이 고민했다. 이 꼬맹이는 계속 내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

히지카타와 함께 와서 청소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이후에 이 곳에 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내가 들어오라고 말하자 차이나가 우물쭈물 하다가 들어왔다. 자꾸 신경이 쓰이는지 내 겉옷을 걸치고도 제 옷의 찢어진 쪽을 한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짐이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간략하게 걸칠 옷 정도는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녀석의 짐을 뒤지면서 꼬맹이한테 한쪽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보통 때라면 온갖 난리를 치며 소란을 떨어야할 꼬맹이가 얌전히 있으니 다른 사람처럼 생소했다. 짐을 뒤지다가 우선 상처라도 치료하라고 해야겠다 싶어 구급상자를 꼬맹이 앞에 놓았다.

  

“자, 많진 않은데 간단한 약은 여기에 있어. 너 입을 만한 거 있나 볼테니까 기다려”

  

“... 여긴 뭐냐 해?”

  

“뭐긴 뭐야, 집이잖아”

  

“좋다..”

  

드디어 울음을 멈춘 그 꼬맹이가 주위를 쓰윽 둘러보더니 말했다. 한참 뒤지다가 그냥 흰색 T셔츠를 발견했는데, 히지카타의 것인지 꽤 컸다.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차이나에게 툭 던지면서 입으라고 했다. 조금은 정신을 차렸는지 약간은 평소 때처럼 돌아와서 나에게 보면 죽는다! 같은 소리까지 했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저기 화장실 가서 갈아입으라고 말했다.

볼 것도 없는 게 어디서..

  

  

  

차이나가 입고 나왔을 때 그 옷의 주인이 히지카타여서 인지 거의 옷에 감싸져 있는 것 마냥 컸다. 반팔인데도 거의 팔뚝까지 내려올 정도였다. 쭈뼛쭈뼛 나오는 그 꼬맹이를 보고 가까이 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상처를 치료하라고 구급상자를 줬는데도 상자에 손도 안댄 것 때문에 나는 빨리 치료하고 보낼 생각이었다. 시간도 늦었고, 나도 들어가 봐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내 손짓에 차이나가 순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는데 옷이 커서 나는 장난스레 말했다.

  

“유령같다. 너”

  

“이.. 이렇게 예쁜 유령 봤냐 해”

  

... 장난하나

  

“이렇게 다친 유령은 확실히 못 봤지. 빨리와 대충 치료하고 가”

  

구급상자에도 최소한의 약품밖엔 없어서 그냥 소독하고 거즈정도 붙여주는 것 외엔 없었다. 다리도 다쳤는지 살짝 절뚝거리는게 보이고 손도 다쳤는지 약간 불편해 했는데 그런 건 내가 뭘 할 수도 없으니 가장 크게 보이는 얼굴 쪽 상처 쪽이라도 치료해주려고 했다. 차이나는 내 앞에 앉더니 내가 소독 솜을 상처에 대려고 가까이 가자 시선을 아래로 확 내리 깔면서 약간은 긴장하는 듯 했다. 상처 치료 한 두번 하나.

  

  

대충 치료를 마치고 돌아가자고 말했다. 차이나는 가만히 앉아서 잠시 생각하더니 하는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안갈래”

  

“응?”

  

“나 여기서 자고 갈거다 해”

  

“.....”

  

나는 이런 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여서 당황했다. 둔영에서 나는 일단 제일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다들 내 고집, 내 승질을 받아주는 사람만 있기에 내 앞에서 나에게 이런 식의 투정과 제 멋대로 하려는 사람은 차이나가 처음이었다.

  

“장난하냐? 빨리 가”

  

“싫어”

  

차이나가 자신의 의지를 꺾을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줄 요량이었는지 침대에 털썩 누웠다.

  

“너 진짜 죽을래? 빨리 나가”

  

“.. 너무한다 해. 나 환자인데 그리고 밖에도 어둡구..”

  

환자... 라..

  

“그래 니 맘대로 해. 난 가야되니까 나갈 때 문 잠그고 밖에 화분 아래에 열쇠 놓고가”

  

열쇠를 탁자에 놓으면서 말했다. 내가 나가려고 뒤돌자 차이나가 다시 내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나.. 혼자 있으면 잠을 못잔다 해.. 나 잘 때 까지만 있어주면 안되냐 해?”

  

하다하다 못해서 이제 잘 때 까지 기다리라고?

  

“미쳤냐 내가”

  

 

-Rrrr

  

뒤에 더 말을 하려 하는 순간 히지카타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왜 안와]

  

“이제 가려고요”

  

[.. 그래 어딘데?]

  

“근처예요 암튼 이제 가...”

  

전화를 마저 하기도 전에 차이나가 내 핸드폰을 빼앗아서는 반절로 쪼개버렸다. 다쳤어도 핸드폰 하나 박살내는 것 쯤은 간단한 모양이다.

  

“...뭐야?”

  

“가지마라 해. 나 무섭단 말이야”

  

나는 니가 더 무서워. 핸드폰이 부서진 것에 대해서 화를 내기도 전에 이 꼬맹이가 계속 조르는 것도 그렇고, 이 꼬맹이의 칭얼거리는 걸 들어주는 것도 지쳐서 나는 그냥 일단 알겠다고 했다. 알겠으니까 빨리 자라고 반쯤 포기한 듯이 말했다.

  

“손”

  

“응?”

  

“손!”

  

꼬맹이가 나에게 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뭐 어쩌라고”

  

“손 잡아달라는 거잖아”

  

내가 그 손을 한참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자 차이나가 억지로 내 손을 과격하게 잡더니 작게 뭐라고 중얼거리고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침대에서 차이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채 누워 있고, 나는 그 꼬맹이에 의해서 손이 잡혀 침대 아래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손을 빼내려 하자 이불안에 있는 꼬맹이가 '아직 안잔다!' 하고 중얼거려서 깜짝 놀랐다. 대체 언제 잘건데.

  

아. 그러고 보니 히지카타한텐 곧 간다고 하곤 이러고 있네. 폰도 부서졌고, 그 새끼 걱정 할 텐데.. 아. 아니지 걱정 좀 시켜도 되지 뭐. 그 새끼가 내 생각을 계속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재미있으면서 이내 약간은 들떴다.

  

오늘 피곤한지 자꾸 졸려서 나도 침대에 머리를 잠깐만 기대고 있어야지 하고는 그대로 곤히 잠들어 버렸다. 눈을 떴을 때 밖은 새파랗게 빛다는 새벽이었고, 시간은 세시 가량이였다. 아직도 이 꼬맹이가 잡고 있는 손을 깨지 않게 조심스레 뺐는데, 스르르 빠지는걸 보니 자고 있는 듯 했다. 속으론 안심하면서 문을 최대한 조용히 닫고 나왔는데, 깨면 또 다시 난리를 칠 것 같아서 무서웠다.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그 날따라 뭔가 이상이 있는지 행동이 이상했다. 아니 근데, 내 집인데 내가 왜 이렇게 도망치듯 나와야 되는거야? 약간 쌀쌀한 새벽 공기를 받으니 피곤 한 것도 두배 세배로 늘어나는 듯 해서 짜증스러웠다. 게다가 핸드폰도 망가졌고.. 춥다 했더니 아까 그 꼬맹이한테 준 겉옷도 깜빡하고 놓고 왔다. 또 받으려면 어디서 잃어버렸냐며 잔소리 듣는데.

  

  

  

 

 

 

 

 

 

 

 

 

'은혼 > 꼬리표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지오키긴] 꼬리표 06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5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3  (0) 2015.08.17
[히지오키긴] 꼬리표 02  (0) 2015.08.17
[히지오키긴] 꼬리표 01  (0) 2015.08.17

[히지오키긴] 꼬리표 03

2015. 8. 17. 23:41

 

 

 

-

히지카타와 형씨와 있을 때 나는 항상 형씨의 편에 섰다. 형씨와 같은 편을 먹고 같이 히지카타를 놀리거나 괴롭히고, 형씨에게 화내는 히지카타에게 그러지 말라고 대놓고 형씨를 감싸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히지카타는 나에게 왜 그렇게 그 녀석을 잘 따르는 거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그때 나의 대답은 ‘형씨를 잘 따른다는 것 보다, 히지카타씨가 싫은 게 아닐까요?’ 하고 웃었다. 내가 형씨의 편에 서서 이야기하고, 형씨를 더 챙기는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나오는 특유의 재밌는 표정이 보고 싶어서 계속 했던 것 같다. 형씨를 만나고부터 나의 그런 행동은 계속 되었던 것 같다. 누나가 에도에 와서 친한 친구로 형씨를 소개 했을 때도 그렇다. 그 때 당시는 이 녀석에게 약간의 오해.. 라고 해야 하나, 여튼 그래서 이 녀석을 끔찍이 싫어 할 때였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고, 친구라고 해봤자 히지카타와 둔영에 있는 사람들 뿐이였으니까. 누나에게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서 형씨를 소개한 것이 원인은 맞지만 형씨가 고작 파르페 3개에 그렇게 열심히 놀아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뭐 내가 처음으로 맘을 터 놓은 사람이기도 하고 아, 사실 지금 생각해도 그 부분은 정말 생각하기 싫은 부분이다. 다시 생각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었다. 그냥 맘에 안 드는 녀석인 채로 있는게... 좋아요.. 라니 씨발. 뭐 어쨌든, 히지카타와 오해가 풀리고 시간이 한참 흘렀을 때 히지카타가 흘리듯이 툭, 미츠바에게 해결사 녀석은 왜 소개시켜줬어? 하고 물었었다. 나는 그의 말에 형씨랑 나, 친구니까! 하고 대답했는데, 이 녀석은 뭔가 잠시 생각하는 듯, 나를 잠시 물끄러니 쳐다보고는 알겠다고 말하곤 돌아섰다. 뭔가 해서 뒤따라가며 왜? 왜? 하고 얄밉게 캐묻자 그 새끼가 귀찮다는 듯이 ‘이 녀석아, 그냥 물어봤어 그냥! 니가 그 새끼랑 그렇게 친했었나 하고 궁금해서! 됐냐!’ 하고 말하곤 뭔가 쑥쓰러운 듯이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이 자식의 그런 행동이 나는 너무 재밌었다.

 

 

형씨랑 한참 놀다가 둔영에 돌아가니 10시? 쯤. 앞에서 이 녀석이 나를 기다린 듯이 앞에 서 있는거다. 사실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거고, 그냥 담배나 피려 서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를 보고 장난식으로 말했다.

 

“우와, 기다린 겁니까 히지카타씨?”

 

“기다렸겠냐, 이 자식아, 잠깐 바람쐬러 나왔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있는 이 녀석의 태도가 너무 웃겨서 웃어버렸다.

 

“아~ 그러시구나, 바람 잘 쐬고 들어오세요”

 

비아낭대는 말투로 말하곤 둔영으로 들어가려 할 때 그가 나의 팔을 붙잡았다. 뭔가 하는 생각에 그를 쳐다보았다.

 

“재밌었냐?”

 

뭐야? 시시하게.

 

“응 재밌었죠”

 

나의 대답에 이 녀석이 약간 우물쭈물 무슨 말을 하려다 말다 하더니 팔을 놓고는 말했다.

 

“아.. 아니.. 아. 아니다”

 

이 새끼 뭐야? 피던 담배를 툭 바닥에 던지고 먼저 들어가려는 그 녀석을 보고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그 녀석의 뒷 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고 있자 이 녀석이 뒤를 홱 돌아보며 소리쳤다.

 

“뭘 멍하니 서 있어? 안 들어올 거야?”

 

왜 승질이야. 나는 황급히 이 녀석의 뒤를 따랐다.

 

“야.”

 

한발치 정도 앞서서 걷던 녀석이 말했다.

 

“뭐”

 

“나는 가끔 니가 어이없다.”

 

“나? 내가 뭘”

 

“해결사 녀석보다 내가 훨씬 잘해주잖아?”

 

...? 이건 또 뭔소리래.

 

“근데 왜.. 아. 아니다, 아니야. 내가 무슨 소릴 하고 있냐 지금”

 

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응?”

 

“아무것도 아니라고 새끼야, 가서 자!”

 

그는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제 방 쪽으로 걸어갔다. 실컷 호기심 유발해놓고 가는 저 꼴 좀봐. 아 진짜 맘에 안 든다니까

 

근데 이상하게 그 날 이 새끼가 뒤에 하려 했던 말이 무엇일까 계속 맴돌았다. 다른 때라면 이 녀석이 만약 이런 애매한 말을 해서 조금 궁금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해결사 녀석보다 내가 훨씬 잘해주잖아? 근데 왜.. 해결사 녀석보다 내가 훨씬 잘해주잖아? 근데 왜...

도데체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

그날따라 대원들이 다들 부산하게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뭔 날인가? 달력을 봐도 그냥 평범한 검은색 글씨의 평일일 뿐인데? 내가 이상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자 야마자키가 한마디 했다.

 

“대장,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요”

 

야마자키가 머리를 열심히 손질하면서 말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는 줄 알고 있나 본데, 그거 쪼금 만진다고 달라지는 줄 알어?”

 

내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한마디 했더니 야마자키를 포함한 다른 대원들 모두 거의 울상을 지으면서 나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며 시위했다. 오늘이 뭔 날인데 이길래..

 

“대장, 오늘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라고요!”

 

아- 그렇구나, 근데 그게 도데체 뭔 상관인지. 줄 사람이라면 거지꼴을 하고 있어도 줄거다 이 자식들아. 현란히 꾸미기 바쁜 대원들을 완전히 한심하게 한번 쳐다봐주곤 밖으로 나갔다. 나가서 마주친 곤도씨도 미치게 촌스러운 머리와 옷차림으로 나 어때? 하고 물어보는 걸 정색하면서 토할 것 같다고 대답해줬다.

 

 

그날 순찰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새삼 커플들 천국이였다. 거리에 모든 남녀가 팔짱을 끼곤, 초콜렛을 하나씩 끼고 돌아다니는거. 원래 이렇게 커플이 많았나? 커플도 많겠다, 뭐 좀 재밌는 구경거리 없으려나 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걷는데, 맛있다고 소문난 과자점안에서 우리 제복을 입은 어떤 얼간이가 무언가를 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에휴, 저 멍청한 새끼. 니가 왜 사냐? 발렌타인 데이는 니가 뜯어내야지 새끼야. 꼭 저렇게 남자새끼가 여자한테 꽉 잡혀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려는 한심한 놈들이 있다니까. 지나치려다가 뭔가 익숙한 뒷모습에 잠깐 서서 관찰했는데, 계산 후 약간 측면의 모습을 봤을 때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말도 안돼. 히지카타였다. 오호, 잡았다 이 자식아. 평소에 이런 걸 먹지도 않는 녀석이 이런 데에서 과자를 사고 있다는 건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계속해서 뒤를 밟으려 했지만, 그 때 갑자기 곤도씨에게 전화가 오는 바람에 이 자식을 아쉽게 놓쳐버렸다.

 

 

아쉬움을 삼키며 차로 돌아왔을 때 먼저 와 있던 다른 대원들은 술이나 마시자며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로 슬퍼하고 있었다. 초콜릿 좀 못 받았다고 세상이 무너지나.

 

“대장은 초콜렛 받았습니까?”

 

“초콜렛? 나 그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에이- 못 받았으니까 괜히 그러는거죠?”

 

이 자식이, 나 진짜 그런거 아니거든?

 

“초콜렛 그 까짓거 받으면 받지 뭐, 내가 니들이랑 똑같은 줄 알아?”

 

나는 약간의 승부욕에 말했다. 물론 나는 다른 암퇘지들에게도 초콜렛 쯤이야 마음만 먹는다면 뜯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넘쳤다. 하지만 그건 귀찮기도 하고, 꺅꺅대는 소리 듣기 싫어서 주위의 여자 성별을 가진,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차이나를 찾아갔다. 운 좋게 형씨네 집 근처 편의점에서 바로 만났는데, 나는 만나자마자 손을 내밀고 말했다.

 

“내 놔”

 

“뭘 내 놓으라는거냐 해, 이 자식아”

 

“초콜렛, 오늘 발렌타인 데이잖아”

 

꼬맹이가 계산하려고 집어들은 것을 보니 초콜렛이 몇 개 있는걸 보아 형씨랑 안경에게 주려고 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중에 하나를 집어 들고는 달라고 말했다.

 

“내가 미쳤냐 해! 너 같은 새끼를 사주게? 내놔! 그리고 그건 신파치 줄 거란 말이야!”

 

“그래? 그럼-”

 

내가 다른 걸 고를 생각으로 편의점의 초콜렛 코너에 갔는데 이 꼬맹이가 나를 붙잡고 편의점 밖으로 억지로 나를 잡아 끌었다. 그리곤 말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라 해”

 

“왜?”

 

“거참 말 많네 이자식이! 그냥 잠깐만 기다리라면 좀 기다려라 해!”

 

뭔가 필사적으로 외치는 이 꼬맹이의 말에 나는 조금은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고, 편의점 앞에서 지루해서 애꿎은 바닥만 툭툭 차고 있을 때 멀리서 꼬맹이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걸 발견했다. 내 앞에서 한참 숨을 몰아쉬다가 투명한 비닐..? 포장지? 에 쌓여 있는 어두운 초콜렛 색의 운석(...)을 보고 물었다.

 

“이거 뭐야? 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 꼬맹이가 나를 주먹으로 때렸고, 나는 영문도 모른 체 얻어맞고는 꼬맹이에게 소리쳤다.

 

“왜 때려! 그냥 물어본거잖아!”

 

“돌 아니다 해! 초콜렛...이다 해”

 

아. 이거 초콜렛이라고? 내가 달라고 해서 일부러 이런 거 가져다 주는거 봐라, 그냥 형씨꺼 살 때 하나 사주지. 나는 이런 해괴하게 생긴게 초콜렛인지 돌인지 못 믿겠다고 말하며 차이나에게 먼저 한 입 먹어보라고 내밀었고, 차이나에게 또 한번 얻어맞았다.

 

뭐, 어쨌든 나는 대원들에게 이 꼬맹이가 준 초콜렛을 약간은 기세등등하게 보여줬고, 대원들도 나와 같은 반응으로 이걸 보자마자 이거... 돌 아닙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아냐, 이거 초콜렛이야 원래 이렇게 못 생긴게 더 맛있는건데 니네 모르는구나? 하고 한입 물었다. 사실 한입 물었을 때 약간은 불안했다. 근데 어찌됐든 초콜렛은 맞더라. 뭐.. 어차피 초콜렛 녹여서 만드는데 맛이 없을 리는 없겠고, 뭐. 맛은 있었다.

 

 

 

일이 끝나고 둔영에 돌아와서 티비나 보면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히지카타가 문을 열고는 안을 빼꼼 내다본다. 아까 제과점에서의 이 녀석이 생각나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말을 하려는 찰나 그 녀석이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 발렌타인 데이라고 다들 난리치던데, 넌 생각보다 조용하다?”

 

흐음.. 역시 이상하단 말이야. 이 녀석이 이런 걸 알고 있을 리도 없거니와, 내가 평소에 이런 날 난리를 친 적도 없고(가끔 대원들 장단에 맞춰서 장난을 칠 땐 있었지만),나에게 이런 말을 하지도 않을거니까.

 

“녀석들이야 원래 그런 거에 쉽게 난리치는 녀석들이니까. 그러는 히지카타씨는 좀 받았습니까?”

 

인기가 좋아서 항상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장사꾼들의 상술으로 만들어 낸 모든 날마다 선물을 가득 가득 받는 녀석인데.. 그런 니가 선물까지 챙기게 만드는 그 년, 누구냐고. 내가 약간 수상한 듯이 흘겨보자 이 새끼가 내 표정을 보고 웃기다는 듯 웃더니 내 쪽으로 무얼 휙 던졌다.

 

“자, 너 먹어. 어차피 오늘 아무것도 못 받았을 거잖아”

 

내가 받아든 것을 확인해보니, 내가 아까 그를 목격했던 그 과자점 특유의 고급스러운 깨끗한 흰색 포장을 보고 나는 고개를 들어 그 녀석을 약간 놀란 표정으로 다시 쳐다보았다. 야.. 너.. 나 나 사주려고 간 거였어? 이런 과자 나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줄거면 그냥 가게에서 아무거나 사줄 것이지 뭐 이런 곳에서..

 

“너 단거 안 좋아하는 거 아는데 이런 날은 이런 거 먹으라고 있는 날이니까”

 

이상해, 지금 저 말도 이상해. 그 녀석은 그 말을 던지곤 바로 가버렸고, 남아있는 나는 뻥져서 그 포장된 과자 따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이 과자점의 포장은 약간 과대포장을 하는 감이 없지 않았다. 여기가 워낙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걸 봤으니까 한눈에 과자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도 처음에 봤을 때는 무슨 쥬얼리샾 포장인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고급지게 포장을 했다. 마치 과자 따위는 아닌 엄청난 것이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그래서인지 나는 그 날 그 포장을 풀지 않았다. 그냥 아직은 뜯지 않은 체 가지런한 그 모습 그대로인체로 보고 싶었다.

 

침구에 누워서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의미부여.. 라고 하면 의미부여가 맞겠지만 사실 간간히 이상한 그 녀석의 태도가 조금은 생소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탁자에 올려놓은 하얗게 빛나는 그 한낱 과자일 뿐인 그 것에 그 과대 포장처럼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여 심취했는지도. 아니 근데 이게 정말 그냥 나의 오해인가? 계속 맴도는 생각이 정신이 없어서 복잡했다. 그 녀석에 대해선 잘 알고 있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의 일에 대해선 알 수 없어졌다.

 

 

 

 

 

 

 

 

 

  

-

둔영엔 여러 종류의 녀석들이 있었다. 사람이 많다보니 여러 타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가장 관심 많은 가십거리인 연애로만 녀석들을 분류해 보면, 완전 순진해빠져서 여자들과 손을 잡긴 커녕, 눈도 못 마주치는 타입. 이런 녀석들에겐 섹드립 치면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지는걸 보면 웃기다. 반면 완전 바람둥이여서 여자가 끊임없이 바뀌는 타입. 이 경우는 이야기를 듣기가 재밌어서 가끔 마주치면 이번엔 어떤 여자야? 하고 묻는 게 인사였다. 그러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이번 여자는 너무 순진해서 싫다는 둥, 이번 여자는 너무 능수능란해서 잡아먹힐 것 같다는 둥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면 별의 별 여자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타입은 겉으론 아무런 문제도 없고, 순진하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바람둥이인 합성형이 있었다. 이 타입은 내가 궁금해서 물었었다. 들키면 어떡하냐고. 그러자 그들은 순진한 겉모습 탓인지 들켜본 적이 많지 않다고 했다. 이 타입들의 애인이라는 작자들은 그들이 혹시나 바람 같은 걸 피울거라 감히 생각도 못하는 것이다. 뭐, 나는 나의 일이 아니니까 흥미롭게 들었다.

 

그러다 하루는 1번대 대원들과 술을 마시던 중, 합성형 타입 중의 한명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충실하게 제 애인을 사랑해요, 근데 섹스는 다른 여자랑 합니다.”

 

“왜?”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 쪽이 아직 싫다고 해서요. 지켜주고는 싶은데.. 음.. 사실 말이죠 저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요, 근데 도저히 못 참겠어서”

 

그의 말에 나를 포함한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소리내서 웃었다. 개새끼라고 욕하는 녀석도 있고, 도데체 그런 파트너는 어떻게 구하냐며 웃는 녀석도 있었다. 나는 딱히 할 말은 없고 그냥 웃겨서 웃다가 한마디 했다.

 

“들키면 재밌겠다. 둔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날이면 들켰다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

 

“걱정 마시죠 대장, 이런 것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너무 꾸준하면 들킬 염려가 높으니까 자주 바꾸고 있어요”

 

“이야, 겉으론 안 그래 보이는데 생각보다 잘 하나보다?”

 

“겉보기와는 다른 갭모에라고 하죠 이런거?”

 

갭모에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다들 웃으면서 술을 한 잔씩 홀짝일 때 평소에 말도 없고 조금 음침한 (그런데 키도, 몸집은 꽤나 컸다) 히키코모리라는 별명을 가진 어떤 대원이 구석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난.. 남자랑...해요”

 

뭐....뭐라고?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웃음을 멈췄고 순간 그 자리는 정적과 침묵이 흐르면서 그 새끼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를 포함한 둔영 모두가 잠시 후 그 녀석에게서 더더욱 떨어지려 후다닥 떨어졌고 나는 그 와중에 궁금해서 물었다.

 

“좋냐?”

 

내 질문에 그 히지코모리는 약간 기분 나쁘게 피식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음.. 뭐랄까.. 여자는 조금만 강하게 하면 픽픽 쓰러지는데, 남자는 그렇지 않아서 좋아요”

 

.....................와.....진심으로 개 또라이같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라면 이 새끼는 진심으로 또라이인 거다.

 

“구.. 궁금하다 그래서 그 상대는 어떻게 생겼어?”

 

다른 대원이 물었고 다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러나 약간은 두려운 눈빛으로 그 녀석을 쳐다보았다.

 

“음.. 애인은 아니고..그냥 섹파예요. 아. 이런말 해도 되나?”

 

그 대원이 잠시 생각하더니 나를 약간은 지긋이, 술이 들어가서인지 약간은 기분 나쁘게 끈적이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대장하고 닮았어요. 제 섹파”

 

이 히키코모리 새끼는 그 말을 하고는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

 

다시 한번 정적. 그리고 다른 대원들이 나를 힐끗 힐끗 쳐다보았다. 잠깐만. 씨발 지금 뭐라고? 날 닮아? 저 히키코모리 새끼가 술 처먹고 돌았나. 지금 감히 누구한테 뭐라고? 섹...섹파? 나랑 닮았다고? 섹파? 저 새끼 씨발 나 생각하면서 딸치는거 아냐? 게다가 앞에서 한말, 남자는 여자처럼 쉽게 쓰러지지 않아서 좋아요.. 라는 말이 생각나 다시금 나를 분노에 치를 떨게 만들었다. 화가 치밀어 오름과 동시에 수치심. 그리고 너무 소름이 돋아서 진짜 오랜만에 둔영에서 대원을 존나. 진심으로, 이성을 잃고 존나 팼다. 옆에서 다른 대원들이 놀라서 말리려들었지만 이들도 강하게 말리진 않았다. 얘네가 생각해도 맞을 짓을 했다고 생각했겠지. 씨발 이런게 성추행 당했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겠구나. 좆같았다.

 

우리 부대에 그런.. 존나 소름끼치는 새끼가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 진짜 너무나 소름끼쳐서 나는 다음날 히지카타에게 그 새끼를 다른 부대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갑자기 왜? 이유도 없이. 뭐야 싸웠어?”

 

“...네 싸웠어요”

 

“뭐 땜에 싸웠는데? 일개 대원이랑 부딪칠 일이 뭐가 있어?”

 

“....아 그냥 좀.. 해줘요 쫌.”

 

나는 진심으로 최대한 간곡하게 부탁했다. 이유는 말하기 싫었다. 누가 말하고 싶겠냐.

 

“왜 무슨 일인데 말해봐”

 

그가 앞에 있던 차를 한입 마시면서 말했다.

 

“말을 해야 이유를 대면서 보낼 거 아녀”

 

나는 이 녀석의 말에 한참 생각하다가.. 한숨을 한번 쉬곤 일부러 당당하게. 나는 전혀 수치심 따위 느끼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말했다.

 

“아.. 뭐, 별건 아닌데, 그 새끼 게이인가봐. 일단 그게 젤 큰 이유고.. 아, 게이인건 아무래도 좋다 그래, 근데 그 새끼 섹파가 나랑 닮았다잖아. 존나 소름끼치게. 그런 새끼를 어떻게 우리 부대에...”

 

“뭐? 그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어? 니 승질에?”

 

나는 이 새끼가 내 말을 듣고 웃을 거라 생각하고 속으로 욕을 지껄이고 있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아니.. 뭐.. 당연히 그 자리에서 죽도록 패줬지”

 

“그 새끼 어딨어?”

 

.....? 아 물론 나도 화나는 상황이긴한데,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흥분해 할 줄은 몰랐다. 열 받은 히지카타는 밖으로 뛰쳐나가서 그 새끼를 찾아 댔고, 나는 이 녀석의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그런 그 녀석이 뛰쳐나간 쪽을 보곤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새끼는 신센구미에서 내쳐졌다.

 

히지카타는 그런 싸이코 패스 같은 새끼는 데리고 있으면 큰일 난다고 했고, 그 히지키코모리는 힘도 없는 갓 입대한 쫄개에 지나지 않기에 사실 나로써는 계속 데리고 있었어도 기분만 조금 심하게 많이 나쁠 뿐 그 외에 신경 쓸 건 없었지만, 히지카타의 조금은 과할지도 모르는 태도에 놀랐다. 음.. 히지카타가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면 난 정말 그 자리에서 자지러지게 웃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잘라낸 뒷말, 그리고 그 새끼가 사준 과한 포장의 과자, 그리고 오늘 일도 그렇고.. 계속해서 나를 뒤흔들게 만들었다. 야, 히지카타, 너 혹시.. 에이 아니겠지...? 아, 근데.. 좀....

 

 

 

 

 

 

'은혼 > 꼬리표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지오키긴] 꼬리표 06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5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4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2  (0) 2015.08.17
[히지오키긴] 꼬리표 01  (0) 2015.08.17

[히지오키긴] 꼬리표 02

2015. 8. 17. 23:27

 

 

 

 

 

-

“히지카타씨, 핸드폰 줘봐요”

 

“..핸드폰? 왜”

 

그가 건네주려다 잠깐 멈칫하고는 말했다.

달라면 내놓을 것이지 말이 많아

 

“아니 뭐 좀.. 하려고”

 

“..연락 올 데 있어서 안돼”

 

“누군데?”

 

“있어. 넌 말해도 몰라”

 

나는 정말 단순하게 폰에 있는 미니게임 따위를 할 생각이었다. 대원들 말로, 이 새끼 폰 기종에 기본으로 들어있는 게임이 재밌다길래. 근데 지금 이 새끼의 태도가 이상했다. 다른 때라면 그냥 내 쪽으로 폰을 냅다 던져줬을 녀석인데 감추는 것이 이상해 나는 이 새끼가 이상하다는 걸 다시금 인지했다. 그리고 이 사건 뿐만이 아니라,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가끔 저녁에 몰래 나가기도 하고, 새벽에 들어오는 일이 종종 있다는 걸 바로 기억해냈다. 내가 저녁에 너무 잠이 안와서 이 녀석이 자면 가서 깨워서 놀아달라고 할 요량으로 밤에 찾아 갔었다. 그때 그는 아무 이유 없이 방을 비웠다. 그때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었는데, 최근 야간 경비들 말로는 최근에도 종종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말이야. 내가 모르는 네 녀석 주변의 인물이 누가 있어? 저 새끼 연애하나? 불현 듯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었다.

 

“너 연애하냐?”

 

대놓고 물어봤다.

 

“아니”

 

대답이 짧았다. 놀란다거나, 왜 그런 걸 묻냐며 묻지도 않고 아니라고 했지만 뭔가 이 녀석의 대답이 부족해서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왜, 아니라서 아니라고 하는데 뭐가 맘에 안 들어?”

 

“탐정의 추리가 틀렸으니 실망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아직 불만족했다는 듯이 투덜거리며 말했고, 이 녀석은 그냥 그런 나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 자리에서 더 캐 묻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용의주도하니까 증거를 확실히 잡으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순찰을 돌 때 나는 일부러 만만한 야마자키와 순찰을 가겠다고 했고, 히지카타는 그날 비번이었다.

 

“대장, 가시죠”

 

야마자키가 운전석에 타려할 때 나는 급하게 운전은 내가 하겠다며 그를 운전석에서 잡아 끌었다. 그리고 히지카타가 자리를 뜨는걸 보고 급해진 나는 야마자키를 그대로 버리고, 차를 끌곤 그가 향한 방향으로 서둘러 쫓았다. 하루 종일 그의 뒤를 밟았는데, 저 새끼가 내가 뒤 쫓고 있다는 걸 아는 것인지, 만나는 사람도 없고, 그냥 혼자 돌아다니다가 서점에 들러 책을 보거나, 밥을 먹었는데 밥을 먹을 땐 우연히 형씨를 만나서 둘이 평소와 다름없이 왜 이런 곳에서 만나냐며 티격태격 싸웠다. 그리고 안경과 우연히 지나가다 만나 인사를 하고, 갑자기 전화를 받길래 누굴까 하고 바짝 귀 기울여 보니 곤도씨였다. 이런 짓을 하는 내가 한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평범해서 김이 빠졌다. 그리고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론 안심했다.

 

 

 

 

 

 

 

 

 

 

-

넓은 둔영에 있는게 가끔은 싫었다. 이런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은 형씨네 집을 자주 드나들며 차츰 생각했는데, 형씨네 집은 작고 뭔가 결집된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 곳엔 혼자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단체, 집단 생활을 하는 나에게 있어 약간의 동경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해결사 형씨네의 배경에 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고, 절대 사절이다.

 

가끔 놀러가서 형씨랑 안경, 차이나가 티격태격 하는걸 보면 신센구미 와는 분위기가 달라서인지 사뭇 신기했다. 우리는 큰 조직이니까. 뭐, 한 마디로 그냥 나는 이 아담한 공간이 부러운거다.

 

최근엔 형씨가 집에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실망했다. 하는 일도 없는 날백수가 왜 이렇게 바빠? 가면 항상 차이나가 또 왔냐고 소리치고, 옆에서 안경은 오키타씨 들어오세요. 라며 소리치는 차이나를 말렸다. 형씨를 만나지 못해도, 나의 목적은 땡땡이 치는 거였으니까 그냥 차이나와 안경과 셋이서 하찮은 놀이를 하곤 했는데, 끝은 항상 나와 차이나의 주먹싸움으로 번져 처음에는 말리던 안경도 이젠 그냥 헤드셋을 끼곤 츠우의 노래따윌 들으며 모르는 척 회피했다.

 

하루는 벽장이 훤히 열려 있는데 베게와 이불이 그 안에서 마치 누가 자다 일어난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어 그 안을 힐끗 보며 물었다.

 

“이건 뭐냐?”

 

“이 자식아! 숙녀 방을 함부로 보는 녀석이 어딨냐, 해!”

 

“여기? 여기가?”

 

두더지 새끼도 아니고 벽장 안이 방이라고?

 

“부럽지?”

 

차이나가 완전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미쳤다고 이런 걸 부러워 하겠냐?”

 

“어이, 꼬맹아. 니 녀석이 있는 곳은 너무 시끄러워, 사람이 때로는 혼자 사색에 잠길 시간도 있어야지 말이야.”

 

한껏 깔보는 표정. 약올릴 때 종종 지어보이는 그런 표정이다.

누가 누구더러 꼬맹이래? 이 자식이. 내가 너보다 4살이나 많거든?

 

근데 차이나의 말이 맞긴 했다.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였다고. 둔영은 항상 소음이 많았고, 비번이여서 딱히 갈 곳 없어도 결국은 그 안에 있어야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뭐 그런 것이 아예 싫은 것은 아니다. 다 같이 모여서 술 마시거나, 놀면 재미있긴 하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형씨의 집을 보고 그리워하는 건, 부슈에서 누나와 살 때를 그리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땐 누나와 나 둘이 살았고, 집에 찾아오는 건, 히지카타와 곤도씨 뿐 이였으니까.

 

 

그날 돌아가자마자 히지카타를 찾았다. 나는 신센구미 내에서 잠복을 위해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세한 수량은 나도 잘 알진 못하지만 분명히 쓸데없이 놔두는 것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히지카타에게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이런 부탁을 하면 이 새끼가 거절을 할지, 들어줄지 견적이 대충 나오는데 이번은 사실 전자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한번 고집을 부리면 이 녀석은 거의 들어주니까. 그리고 맨날 땡땡이 치긴 하지만, 나도 이 녀석 말을 은근히 잘 듣는 편이다. 화장실 청소 같은 거 정말 끔찍이 싫어하는데 우리 부대에 화장실 청소 배정 했을 때도 암말 안하고 따랐잖아?

 

 

“히지카타씨, 저 부탁있어요”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나오자 히지카타가 뭔가 수상쩍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뭔데”

 

“들어줄거예요?”

 

“아니”

 

이 새끼가..

 

“나. 잠복근무할 때 쓰는 집 하나 주면 안돼요? 그래봤자 원룸 크기잖아?”

 

최대한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는 말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나의 말에 히지카타가 담배를 물고 한참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응 안돼”

 

“왜! 어차피 그냥 쓸데 없이 있는 것도 많이 있을 거 아냐!”

 

“그런 터무니 없는 부탁을 하러 온 거냐 너 지금?”

 

“응”

 

“안돼.”

 

사실 예상은 하고 왔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나는 기분이 좋진 않았다. 물론 이 새끼도 그걸 마음대로는 할 수 없다는 것 쯤은 알지만, 그래도 자기 위치면 그런 것 쯤은 좀 노력해 줄 수도 있으면서! 나쁜 새끼. 역시 저 새끼는 마음에 안 든다니까.

 

그 이후로 나는 몇 일간 다시 졸라 보기도하고 화 내보기도하고 별짓을 다하다가, 이 새끼한테 어떻게 하면 내가 화가 났다는 걸 더욱 극대화해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 같이 순찰 당번이 왠말이야. 같이 순찰을 갈 때 일부러 완전 딱딱하게 말했다.

 

“부장님 타시죠”

 

그리고 흘깃 이 녀석을 봤는데 별로 신경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열이 뻗쳤다. 씨발 신경을 쓰라고! 나 지금 화났다고! 하루 종일 이 새끼가 하는 말에 네, 네 이 한마디 대답만 하는 건 정말 곤욕이였다. 욕이라도 지껄이고 싶은데 그러면 사실 내가 좀 덜 화나 보일까봐 애써 자제했다. 그런데 히지카타 이 개새끼는 아무 반응 없이 일 이야기만 하는거다. 죽여버릴까.

 

일이 끝나고 홱 돌아서서 가는데 히지카타가 날 불렀다.


“소고.”

 

그럼 그렇지, 날 풀어주려고 하는구나. 이제 알았냐? 나는 약간 기대에 부풀어 그 새끼를 돌아보았다.

 

“이거 두고 갔어”

 

이 새끼가 내민 건 스케줄 표였다. 당황하고 열 받은 내 표정이 관리가 안 되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히지카타가 날 보곤 피식 웃었다. 웃어? 이 새끼야 웃어?

 

“따라와 애써 연기하지 말고”

 

내가 일부러 연출하고 있던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아 짜증나. 쪽팔려.

 

히지카타는 나를 불러놓고 물었다. 왜 그런 부탁을 하는지. 이 새끼도 아무래도 내가 졸랐던 부분을 조금은 신경 썼던 모양이다.

 

“여긴 소음이 너무 많아”

 

내가 말했다. 그가 약간은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를 잠시 쳐다 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대원 녀석들은 쉬는 기간엔 여기가 아닌 다른 갈 곳이 있잖아. 근데 난 없어”

 

누나가 살아 있었을 땐 누나를 만나러 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뭐..

 

“...”

 

“나도 때로는 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때도 있다고”

 

내가 약간은 시무룩하게 말하자 히지카타는 전혀 생각 못했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 앞에 무얼 던졌다. 내 바로 앞에 떨어진 그것은 열쇠였다.

 

“전에 내가 있었던 곳인데, 난 이제 갈 일이 없어”

 

전? 아하.. 이 녀석 전에 여기에서 쫓겨날 뻔한 일이 있었지.

 

“뭐, 내가 쓰던 집이라 싫을 수도 있지만, 그런 점은 감안하고 그냥 써, 난 절대 안 찾아갈 테니까”

 

“와도 상관없어”

 

나는 한껏 들뜬 말투로 말하곤 그가 던진 열쇠를 집어 들었다. 와도 상관없다는 나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 녀석은 와줬으면 했다.

 

다음날, 히지카타는 그 집에 같이 찾아가 주었는데, 나에게 몇 번이나, 혹시 이 곳에서 허튼 짓을 한다면 죽을 줄 알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허튼짓이 뭘 말하는 거냐며 내가 장난스레 물었지만 그는 구체적으론 말하지 않았다. 크진 않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작은 집이었다. 아직 그 녀석의 짐이 여기저기 많이 남아있었지만 난 그런 편이 오히려 좋았다. 친근해서. 그리고 쉴 때 한번 씩만 찾아갈 생각이였고 많이 찾아갈 생각은 없었기에 그 공간이 있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크게 신경 쓰진 않았는데 (원래 엄청나게 가지고 싶었던 것이 수중에 들어오면 생각보다 좋지 않은것처럼) 나보다도 오히려 그 녀석이 더 난리를 치면서 잔소리를 해댔다.

아니.. 저기 히지카타, 나 둔영에서 나가는 거 아니라고.

 

 


 

 

 

 

 

 


-

히지카타의 뒤를 밟고도 성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난 그래도 여전히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가 연애는 하지 않더라도 그의 상황에 무언가 바뀐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나에게 전에 비해 조금은 소홀하게 구는 그 녀석의 태도가 거슬렸다. 그냥 나 혼자 거슬렸을 뿐, 다른 이의 눈에는 별 차이도 없어 보일거다. 여전히 그 녀석은 아침에 나를 깨워주고, 밥 먹었냐며 묻고, 비번 일 때는 오늘 뭐 할거냐고 물어봤다. 음.. 따져보니까 사실 변한 건 없었다.

 

여유롭게 순찰을 돌고 있는데 무심코 쳐다본 2층짜리 카페의 창가에서 형씨와 히지카타가 둘이 앉아있는걸 발견했다. 맨날 싸우고 서로 죽도록 싫어한다고 하지만 친한 건 틀림없다. 둘은 서로를 정말 끔찍이 싫어했고, 그 둘의 싸움을 구경하는게 나에겐 큰 여흥이었다. 그래서 한번은 둘을 수갑으로 연결시켜놓은 적이 있었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둘을 지켜보면서 히지카타에게 무전을 하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그 이후에 히지카타에게 불려서 시말서는 물론이고, 크게 혼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 근데 진짜 웃긴 건 본인이 써오라고 한 시말서도 이 녀석이 써줬다는거. 시말서를 쓰는데 옆에서 맞춤법이 틀렸다고 잔소리, 글씨를 못 알아보겠다고 잔소리, 어법이 틀렸다고 계속 짚어주다가 이내 펜을 빼앗아서는 본인이 써주었다. 난 그런 히지카타의 옆에서 아이고 잘한다 우리 부장님- 하고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 줬고 열 받은 그 새끼한테 쫓겨서 한참을 도망다녔다.

 

내가 한참 그 둘을 쳐다보고 있자. 바쁘게 그 녀석과 이야기 하던 형씨가 나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마침 나도 목이 말라서 음료수나 한잔 얻어먹을 생각으로 카페에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형씨가 활달하게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이 쪽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히지카타는 턱을 괸채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자자 앉아”

 

형씨가 옆으로 자리를 조금 비켜주며 제 옆자리를 툭툭쳤다. 나는 그런 형씨의 옆에 아무 고민 없이 앉았다.

 

“둘이 사이 안 좋다 안 좋다 하더니 둘이 왜 카페에 다정히 앉아 계시는 겁니까?”

 

“다정하게 있긴, 우연히 만났어”

 

형씨는 웃으면서 초코 파르페를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우연히도 참 자주 만나시네”

 

내가 어이없이 피식 웃었다. 히지카타의 뒤를 밟다가 생각한건데 정말이지 이 둘은 우연히 정말 많이 만난다는 거다.

 

“그러게 말이야, 쟤가 나 쫓아다니는 것 같어. 역시 신센구미는 스토커 집단아니냐?”

 

형씨는 내 쪽에 귓속말을 하는듯한 동작을 취하면서 얘기했지만 히지카타가 다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다 들린다. 내가 네 놈을 왜 쫓아다녀?”

 

둘은 또 티격태격 하며 말다툼을 시작했고, 나는 그런 둘을 지켜보다가 음료를 주문했다.

 

“형씨. 요즘 쟤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아- 연애라도 하나 싶어서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어떤 년인지는 몰라도 진짜 잘 숨더라고요. 기가 막히게”

 

“아, 글쎄 내가 아니랬잖아 이 녀석아”

 

내가 장난스레 말하자 히지카타가 어이없다는 듯이 덧붙였다.

 

“신센구미 진짜 스토커 집단 맞네 맞아. 아 근데 오오구시군 연애해?”

 

“아니라고 방금 말한거 못 들었냐 이 자식아”

 

“어이 오키타군, 혹시 근처 인물 아닐까? 그 누구냐.. 쿠리코였나. 전에 얘 좋다고 쫓아다니던 애 있잖아”

 

응? 쿠리코? 누구지? 아아 마츠다이라 선생님네 딸?

 

“음.. 그랬다간 바로 사격당해서 죽을텐데. 히지카타씨 각오는 되어 있는 겁니까?”

 

“원래 사랑이란 아슬아슬한게 더 좋지 않겠냐? 부모님의 반대가 함께 하다니, 뭔가 운명의 장난 같기도 하고 드라마의 주인공 같기도 하고 말이야. 로미오와 줄리엣 같이.. 아아 줄리엣.. 당신은 어째서 줄리엣인가요”

 

형씨의 로미오 연기에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히지카타는 그런 우리를 보고 개소리 좀 그만하라며 우리 둘의 말에 한마디 했다.

 

“아니면 혹시 안경네 누나? 상사가 찍은 여자를 가로채고 있는 거 아닙니까 히지카타씨?”

 

“오오 하극상? 개 꼴릿하다야 그치 오키타군?”

 

형씨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나에게 말하고 나도 그 상황이 웃겨서 그렇다고 맞장구 치면서 웃었다. 그 외에도 우리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여자들을 총 동원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안경 쓴 여닌자와 경찰, 뭔가 멋있지 않냐? 뭔가 슈퍼히어로의 연애이야기 같기도 하잖아. 뒷 세계 요시와라를 지키는 유녀와 반듯한 부장님, 뭔가 자극적이잖아. 좀 섹시 할 거 같기도 하고 그치? 등등 조합을 짜다가 내가 말했다.

 

“혹시 모르죠, 형씨네 집에 있는 차이나일지도”

 

쭉 장난을 받아쳐주던 형씨가 갑자기 약간은 고민하다가

 

“오키타군, 카구라는 건들지마 걘 어리잖아”

 

...뭐야? 지금까지 다른 여자들로 잘 해놓고

 

“왜요 난 이 둘 조합도 개 꼴리는데. 그러다가 걸려서 은팔찌 한번 채우는 것도 좋은데요? 그거 체포하는 사람은 나였으면 좋겠다.”

 

“재밌냐? 작작해라 너희들”

 

히지카타가 질렸다는 듯이 말했고, 나랑 형씨는 눈 앞의 이 녀석의 반응이 재밌어서 다시 한바탕 웃었다.

 

그렇게 한참 엉뚱한 이야기를 하다 내가 갑자기 생각나서 물었다.

 

“근데 요즘 왜 집에 잘 없어요? 이상하게 내가 갈 때마다 없어”

 

“아- 바빠서, 아하하”

 

“그럼 오늘은 나랑 게임하러가요”

 

“야, 너 일안해?”

 

히지카타가 갑자기 나와 형씨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 많이 했는데 뭐, 히지카타, 넌 오지마 나 형씨랑 놀 거야”

 

내가 장난스레 히지카타에게 말했다.

 

“음.. 그.. 그럴까?”

 

형씨는 웃어보이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맞장구 쳐주며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말 한데로 히지카타에게 넌 오지마, 나 오키타군이랑 놀 거야 라고 날 흉내내어 말했다. 그때 히지카타의 얼빠진 표정이란...

 

 

 

 

 

 

 

 

 

 

 

'은혼 > 꼬리표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지오키긴] 꼬리표 06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5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4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3  (0) 2015.08.17
[히지오키긴] 꼬리표 01  (0) 2015.08.17

[히지오키긴] 꼬리표 01

2015. 8. 17. 23:10

 

 

 

 

 

 

 

 

 

 


 

 

-

그날은 누나의 장례식 마지막 날이였다.

 

 

장례식의 첫날은 누나가 정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실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눈물은커녕, 다른 대원들과 이야기도 그럭저럭 잘했다. 밥도 먹고, 괜찮냐고 물어오는 대원들에게도 괜찮다며 덤덤히 이야기했다. 그렇게 시끌시끌하다가 순간 생각 없이 멍해지는 순간은 있었지만, 그냥 크게 아프다거나 그런 것을 느끼진 못했다. 그냥... 그랬다.

 

곤도씨가 가만히 어깨에 손을 얹으며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라고 슬픈 표정으로 말했고, 나는 그냥 그러겠지요. 라고 건조한 대답을 했다. 곤도씨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내 옆에서 연신 눈물을 훔쳤는데, 우리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누나가 곤도씨의 애인쯤 되는 줄 알았을거다. 가늘게 피어오르는 향연기와, 누나와 닮은 하얀 빛깔의 국화꽃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데도 나는 이상하게 그 상황을 뼈저리게 느끼진 못했는지 무덤덤했다. 그렇게 장례식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함께 자리를 지켜주던 다른 대원들은 모두 자신이 있어야 자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나는 내 곁에 온전한 나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나 홀로 남겨진 듯 한 기분이 나를 엄습했다.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걷고 있지만 지탱할 바닥이 없고, 소리를 쳐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미지의 밀실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향 냄새가 진동하고, 옆 건물의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기분 좋지 않은 그 병원의 의자에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놓여져 있었다. 이제야 누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괴로움에 절여져 그저 미지의 밀실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때 내 얼굴에 차가운 알루미늄 캔 같은 것이 닿았다 떨어졌는데 그걸 느꼈음에도 나는 놀란다거나 그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쳐다보지 않았다.

 

“마셔,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특유의 낮은 목소리가 그가 누구인지를 단번에 알려주었다. 그는 내 옆에 털썩 앉더니 캔 뚜껑을 손수 따서 다시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받을 수 없었다. 손이, 팔이 움직이지 않았고, 사실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반응하지 않는 나를 보고 그는 그 음료를 옆에 가만히 내려놓고는 말했다.

 

“다 돌아갔어, ..우리도.. 가자”

 

그래.. 돌아가자. 나는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우선 그 말을 해야 할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온몸에 힘도 없었다. 사실 이 새끼 앞에서 내가 힘들어 하는 모습 같은 거 보이기 싫었지만 그땐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고, 나는 내가 아니였다. 내가 대꾸도 없이 그냥 한참을 고개를 푹 숙인 채 벽에 기대어 앉아있자, 히지카타도 그런 나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잠자코 침묵을 지켜주었다. 그 점은 약간 고마웠다. 그러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나의 머리에 손을 얹더니 자신의 가슴 팍 쪽으로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땐 내가 내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대로 힘없이 그 녀석의 가슴팍에 안겼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안겨 있었다. 이 녀석의 품에서 나는 누나가 안아주던 어릴 때를 잠시나마 떠올려버렸고, 조금은 울컥했다.

 

“걱정.. 걱정하지마”

 

이 녀석이 조용히 말했다. 걱정은 무슨..

 

“내가.. 내가 너의 가족 역할까지 다 도맡아줄게. 내가..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분명히 다시 말하지만, 나는, 분명히, 그땐 오키타 소고이면서, 오키타 소고가 아니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그의 말에 안심했는지, 아니면 이 녀석의 목소리 역시 가늘게 떨리고 있어서 함께 그 슬픔에 젖었는지, 실감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실감하면서 감정이 터져버렸는지, 무엇이 슬펐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품에 안긴 형태로 소리를 내어서 눈물까지 왈칵 쏟아내면서 아무도 없는 어두운, 그래서 더 쓸쓸한 병원에서 한참을 울어버렸다. 그는 그런 나의 등을 큰 손으로 가만히 토닥여 주었는데 그때 쓸어준 그 손길이 조금은 감동적이였다. 그때만큼은 모든 걸 쏟아 부은 듯이 울었던 것 같다. 어떻게 둔영에 돌아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는 건 히지카타가 운전을 했고 나는 그의 옆 조수석에 앉자마자 스르르 잠들었던 기억, 그리고 깨어보니 아침이었다.

 

그 다음날 나는 여전히 우울했지만, 그래도 그 전날처럼 정신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내 그 전날 자존심 상하게 그 녀석의 품에 안겨서, 소리까지 내면서 울었다는게 정말 죽을 만큼 자존심상해서 그 녀석을 피해 다녔다. 왠지 그 얘기를 다시 꺼내며 비아낭 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씨발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치곤 놀라서 후다닥 숨는 나를 보고도 나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웃지도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그냥 제 갈 길을 갔다. 다행이었다. 그 녀석은 덤덤했지만 나는 미친 듯이 쪽팔렸는지 그를 마주친 것만으로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낄 정도로 부끄러웠다.

 

이 녀석이 한 말이 가슴 속 깊이 잔상으로 맺혀버렸는지 자꾸 떠올랐고, 난 그런 그가 고마웠다.

 

 

 

 

 

 


 

 

 

 

 

-

“이 녀석아, 일하다 말고 또 낮잠이냐? 엉?”

아.. 또 왔네.. 이 녀석은 맨날 나만 감시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어떻게 이렇게 먼 구역에 있는데도 땡땡이 치는 날 깨우러 온단 말이야? 나는 안대를 머리 위로 올리곤 자다 깬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고, 역시나 나는 이 녀석에게 한참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 지겨워 진짜.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히지카타가 나에게는 엄청나게 무르다는 것을. 그렇다고 그가 나에게 눈에 띄게 잘해준다거나, 설설 긴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대원들과 다른 대장급들을 보면 느낄 수 있었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난 조금은 덜 혼났고, 항상 그 녀석에게 장난을 일삼는 나의 행동은 다른 대원들과 대장들에게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였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런 것은 나의 뛰어난 실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히지카타는 나에게 이겨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 있었구나. 전에 누나 일로 다투었을 때 정도? 난 실력적으로도 출중했고 신센구미 내의 천재로 통하는 뛰어난 검술가니까. 그래서 이 새끼도 나에게 심하게는 못할지도. 나는 나의 실력에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자만이 있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 이후론 히지카타에게 잔소리를 듣는 일이 많았다. 뭐라더라.. 신센구미에 없을지 몰라도 바깥엔 너 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많을거야 이 꼬맹아 라고 했었나? 겉으로는 히지카타에게 빈정대며 그럼 그런 녀석을 내 앞에 데리고 와보시던가~ 라고 말했지만 난 그가 원하는 데로 연습을 게을리 하진 않았다. 그 녀석의 말을 듣고 쫄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 녀석이 내가 연습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이 녀석과 나의 유대는 그런 것이었다. 서로 죽어라 히지카타 이 녀석아, 너나 죽어 이 애새끼야. 라고 욕하면서 부딪쳐도 나도 그가 원하는 걸 조금은 알고 행동했고, 이 녀석은 내가 자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아니, 훨씬 더 나를 위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잔소리를 듣고 있을 때 지나가던 형씨가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또 놀고 있냐 이 세금 도둑들아”

 

<백수> 라는 말이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 마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를 보자 히지카타는 네 놈 같은 백수한테 그런 말 들을 이유 없다고 소리치며 그가 화를 내는 대상이 나에게서 자연스레 형씨에게 넘어갔다. 나는 귀찮았는데 잘됐다고 생각하며 둘이 싸우는 모습이 재밌어서 그런 모습을 구경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해결사 형씨는 나랑 죽이 잘 맞았다. 성향이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형씨는 나에게 있어서 친구였다. 그래서 누나가 살아있을 때도 소개한 적이 있었고, 그런 내가 남에게 마음 터놓고 처음으로 이야기 한 것도 형씨였다. 나는 그를 좋아했다. 형씨는 히지카타와는 반대로 나에게 무른 사람은 아니였다. 오히려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쪽이었고, 히지카타에게는 통하지만 형씨에겐 통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난 히지카타에겐 없는 그런 다이나믹한 모습에 형씨를 재밌어 하는 듯 하다. 그래서 종종 일을 부탁하기도 하고, 같이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하며 노는 일도 많았다. 그거 까진 좋은데... 갈 때마다 있는 차이나 계집애는 정말이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

히지카타와 나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피곤 할 때가 가끔 있었다. 히지카타는 어떻게 느낄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나는 그 점이 가끔 피곤하게 다가올 때가 많았다. 가끔 하찮은 감기 따위에 걸릴 때가 있는데 앓아누울 정도로 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한 기침 감기나 혹은 날씨가 건조해서 생기는 약한 목감기가 있을 때도 히지카타는 그런 나의 상태를 나보다도 먼저 알아 차리는 경우가 잦았다. 난 그냥 좀 있으면 낫지 뭐, 하고 별 생각 없이 하루 이틀 생활하고 있으면 내 방 문을 열고 약 봉투를 휙 던지고 가는데 나는 그의 그런 행동이 진실로 너무 싫어서 그대로 그걸 주워 들고 가선 싸우곤 했다. 나는 이딴 거 안 먹어도 금방 낫는다고! 라고 소리치며 화를 냈고, 그 녀석은 그런 나를 보면서 금방 나을 거 더 빨리 낫게 약 먹어. 라고 침착하게 말하는데 난 그 녀석의 그런 태도가 나를 약한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 더 화를 냈다. 웃긴 건, 난 그렇게 싸우고 와서는 그 녀석이 준 약을 착실하게 먹었다. 내가 그럴 줄 알고 그 녀석은 항상 그렇게 행동 하는 거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 녀석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내가 느꼈다. 뭐라고 콕 집어서 말하기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냥 자꾸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 녀석을 한참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뭘 봐?”

 

“음.. 뭐지, 요즘 히지카타씨 조금 이상해요”

 

“뭐가?”

 

그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날 쳐다보며 물었다.

 

“아..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뭔가 좀 이상한데..”

 

내가 바짝 다가가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자 이 녀석이 내 얼굴을 밀어내면서,

 

“오늘은 탐정놀이냐? 하여간 애새끼는 놀아주기 힘들다니까”

 

하곤 그대로 가버렸다. 애새끼 아니라니까 이 녀석아.

 

그리고 곧 나는 그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이 녀석이 요즘 나에게 하는 태도가 전과는 미세하게 다르다는 것. 사실 남들이 보면 뭐가 달라졌냐며 의아하게 묻겠지만 그건 남이 봤을 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 조차도 그 녀석에게 느끼는 위화감이 무엇인지 한참 고민했고, 뭐가 달라졌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게 아니었으니까.

 

그 이후로 그 녀석이 말하는 소위 ‘탐정놀이’를 하며 그 녀석이 모르게(하지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녀석을 맴돌며 그 녀석을 관찰했다. 하지만 딱히 별 건 없었다. 일부러 이 녀석의 옆에 붙어서 관찰하려고 순찰도 같이 나가겠다고 졸라서 같이 갔는데 그럼에도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서서히 시간을 두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형씨, 나 왔어요”

 

문을 두어번 두드리고 말하자 갑자기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벌컥 열렸고, 차이나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뛰어나왔다.

 

“이 자식아! 니가 여길 왜 와!!”

 

아이고야.. 또 나왔다. 재수없는 꼬맹이. 나는 이 꼬맹이를 노려봤고, 차이나도 나에게 지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형씨는? 안에 없어?”

 

“좀 있다가 온다고 했다, 해. 얼른 꺼져 이 악마야!”

 

“악마라니? 니가 지금 더 심하게 하고 있잖아 이 녀석아”

 

이 꼬맹이를 무시하고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겠다는 듯이 쇼파에 털썩 앉자 나를 쪼르르 쫓아와서는 누가 들어와도 좋다고 했냐며 다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이고 귀 아퍼, 형씨는 이렇게 맨날 허구한 날 소리나 질러대는 이런 애랑 어떻게 사나 몰라.

 

“야, 시끄러워 가서 물이나 한잔 가져와”

 

“내가 미쳤냐, 해? 네 녀석이 직접 떠다 마시던가!”

 

차이나가 부엌에 위치한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야 저기 있다고? 언젠 나가라더니.

내가 냉장고 문을 열자 옆에서 차이나가 물 컵을 가지고 와선 식탁에 놓아주었다. 그런 이 꼬맹이와 물 컵을 번갈아 보다가 수상쩍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물을 따라 마시면서도 나는 뭔가 수상해서 자꾸만 옆의 차이나를 힐끗힐끗 보았는데, 별 일은 없었다. 차이나의 이런 점은 가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히지카타와 나, 그리고 형씨와 차이나 이렇게 넷이 마주치면 히지카타는 형씨와, 나는 이 차이나랑 부딪치는 구도가 많았는데 뭔 여자애가 힘이 어찌나 쎈지, 나와 호각으로 맞서는 걸 보고 놀랐다. 형씨 말로는 야토족이라고 했었나.

 

나는 이 차이나가 맘에 들지 않았다. 일단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이 아니고 설렁설렁 장난으로 싸운다 하더라도, 여자인데다가 나보다 어린 이 꼬맹이가 나와 호각으로 맞받아치는 것 자체가 싫었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재미는 있었다. 이 꼬맹이도 형씨와 닮은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물을 마시고 컵을 내려놓자 이 꼬맹이가 나에게 내가 먹다 남은 물을 나에게 냅다 부었다. 나는 옷이 축축하게 젖은 느낌이 불쾌했다.

 

“이 자식아, 아깝게 물을 왜 남겨? 긴쨩이 물 한 방울도 남기는 건 죄라고 했다. 해!”

 

아, 정말이지 날 열 받게 하는 재주가 뛰어난 꼬맹이였다. 나와 차이나는 서로를 한참 노려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엎치락 뒷치락 했다. 서로 때리고 맞고를 반복하다가, 차이나가 내 위에 올라타서 주먹으로 때리려 할 때, 문 소리마저 게으르게 열리며 형씨가 돌아왔다. 그리곤 우릴 보고 물었다.

 

“뭐하냐 니네?”

 

“긴쨩!, 저.. 저 녀석이 날 때린다 해, 긴쨩이 좀 혼내주라”

 

차이나가 형씨에게 달려가 답지 않게 뒤에 숨어선 말했다. 어이, 지금 내 위에 올라타서 주먹을 휘두르던 애는 누구냐 엉?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고, 형씨는 그런 나와 차이나를 보곤 별 관심 없다는 듯 형식적으로 차이나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

 

“아, 오키타군, 오늘은 내가 좀 피곤하니까 다음에 와라. 너 어차피 놀러 온거지?”

 

“형씨, 여기까지 왔는데 이러깁니까? 뭘 했다고 피곤해요”

 

“야 임마,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게 있거든? 돌아가 얼른, 아님 혼자 놀다가던가 난 잘거니까”

 

하암- 하고 늘어지는 하품을 한뒤 형씨는 방으로 들어 가버렸다. 돌아가면 또 일 시킬건데.. 나는 바로 돌아가기 싫어서 한참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옆에 있는 차이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게임할래?”

 

차이나가 은근히 하고 싶었는지 약간 눈을 빛내다가 이내 돌변해서는 아.. 아니 딱히 하고싶... 진 않지만 니가 정 원하면 뭐.. 하고 뒷로 갈수록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츤데레냐? 어울리지 않게, 그런 것도 너 같은 애가 하면 꼴불견이다 그거.

 

게임은 팀이 되어서 퀘스트 같은걸 깨는 게임이였는데 나와 형씨의 취향대로 꽤나 잔인한 게임이였다. 처음 하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잘해서 놀랐다. 나와 차이나는 차레 차례 적을 무찔렀고 웃기게도 ‘우리’가 되어 그 게임을 하는 동안은 동료의식이 싹텄다.

 

“저 새끼 때문에 나 죽을 뻔 했어 죽여줘”

 

“저 자식! 죽여버리겠다 해, 감히 우리 팀을!”

 

우린 그때 나와 형씨와 몇 번을 해도 못 깼던 그 퀘스트를 완료 했고,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동시에 기겁을 하며 떨어졌다. 내가 미쳤나. 이 게임의 퀘스트 하나 깬 걸 가지고 저런 것하고 껴안다니.

 

“어.. 깨..깼네.. 시..신기하다”

 

차이나는 우물쭈물 말했다.

 

“그러네. 너 생각보다 완전 잘한다”

 

내가 말하자 차이나는 나의 칭찬에 약간은 어색했는지 얼른 꺼져! 다시는 오지마! 하고 평소처럼 소리를 지르고는 그 뒤에 작게 또 오던가.. 하고 중얼거렸다.

 

외계에서 와서 이 쪽 말을 잘 모르는 건가? 오지 말라 해놓고 오라는 건 뭔 말이야?

 

 


 

 

 

 

 

 

 

 

 

 

 

 

'은혼 > 꼬리표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지오키긴] 꼬리표 06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5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4  (0) 2015.08.18
[히지오키긴] 꼬리표 03  (0) 2015.08.17
[히지오키긴] 꼬리표 02  (0) 2015.08.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