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꿰뚫는 듯한 고통에 그는 걸음을 멈춘 채로 머리를 감싸고 한참을 벽에 기대어 섰다.

 

그는 얼마 전 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을 앓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에도 가봤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자꾸 알 수 없는 검사를 하고, 머리가 아픈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쓸데없이 많은 것을 물어보고는 이렇게 답했다.

 

“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네요. 스트레스성 두통입니다. 신센구미에 1번대 대장이라고 했죠? 어린 나이라 그런지 업무에 의한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은데 뭐든지 훌훌 털어버리고 고민 같은 것은 빨리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의사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진료실을 나왔다. 오늘로써 병원만 8번째였다. 모두가 원인을 모르겠다, 스트레스성이다 이딴 말만 해대서 일부러 큰 병원, 유명한 병원을 찾아갔지만 모두 똑같이 이 말을 반복할 뿐이다. 사실 자신이 들어도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일에 의한 스트레스라니,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닌데. 의사들이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적당하게 때우는 말이 스트레스성이라는데, 그 말이 딱인 것 같았다.

 

둔영에 돌아오자마자 돌아온 그를 보고 히지카타는 달려가서 물었다.

 

“뭐래?”

 

“스트레스성 이래요. 히지카타씨. 역시 니가 나한테 너무 많은 일을 시키니까..”

 

“니가 스트레스성?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새끼야. 니가 그러면 나는 이미 업무과로로 죽고도 남았지”

 

“근데 왜 안 죽냐”

 

쳇 하고 짧은 소리를 냈다. 히지카타는 입을 삐죽 내미는 그를 보곤 병원 결과와 상관없다는 듯이 그의 손목을 잡아 이끌고는 책상 앞에 앉혔다. 그리고 서류를 가지고 와서는 틀린 부분이라면서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진짜 가차없네. 사람이 아프다는데”

 

“어차피 작은 걸로 맨날 그러는거 다 알아 임마”

 

오키타는 히지카타가 내려놓은 서류에 고개를 처박고는 그대로 엎드렸다. 가차 없는 새끼. 나 나름 환자라고-

 

“일어나, 설명 해줄게”

 

“...좀 있다가 할게요”

 

“또 머리 아파서 그래?”

 

“..아니 그냥 귀찮아서”

 

“그럼 일어나봐 알려줄 거 있어서 그래”

 

“고칠 거 써 놨을 거 아냐, 그냥 좀 가요”

 

“일어나보라고 하잖아”

 

히지카타의 말에 오키타는 신경질 적으로 고개를 홱 들고선 그를 쳐다보았다.

 

“여기..”

 

히지카타가 종이에 써 있는 글자를 가리켰다. 오키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선 히지카타가 가리킨 종이로 시선을 잠시 내려서 보고는, 그 글씨를 보자마자 얼어버렸다.

 

[나 너 좋아해]

 

...?

오키타는 그 글자를 읽고 완전히 당황한 표정으로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그 글귀만 봤을 때는 낙서 인줄 알았다. 의미를 묻으려 그를 다시 쳐다보자 히지카타는 오키타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다가, 황급히 서두르면서 서류를 챙기면서 말했다.

 

“여.. 역시 너 아프니까 일은 내일 해”

 

“뭐... 뭐야?”

 

그리곤 그의 반응에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글귀였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서류에 낙서처럼 써 있던 그가 가리킨 문구를 보고는 넋이 나가서 아무런 말도 잊지 못했다. 히지카타는 서둘러서 그 서류 뭉치를 집어 들곤 도망치듯이 뛰어 나가버렸다. 좋아한다고 써 있었던 거야 지금? 항상 히지카타를 어떻게 괴롭힐지 고민하는 그에게 히지카타의 이 것은 분명히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찬스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과 히지카타는 이런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말도 안 된다고 다시금 생각하면서, 저 새끼 진심인가? 하는 생각에 이상하게 사로잡혀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딱히 그 이후로 히지카타는 별로 특별한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키타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었다. 자신를 떠보는 건지, 진심인지, 아니면 엿먹이려고 하는 건지 그는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신센구미 안에서의 히지카타를 한참이나 눈을 부릅뜨고 관찰하다가 시선이 마주치면 서둘러서 홱 피하곤 했다. 이상하게 맨날 마주치던 눈인데 뭔가 마주보기가 두려웠다. 그러면 히지카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소고,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봐’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곤 했다. 그러면 괜히 본인만 혼자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잊어버리려 도리질을 치며 히지카타와 무리지어 있는 쪽으로 달려가서 본인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곤 했다. 그런 행동이 더 혼란스러웠다. 좋아한다고 제 할말만 툭 던져놓고 가면 어쩌라는 거야. 저 새낀 항상 그런식이였다. 그의 이런 우유부단한 행동이 왜인지 모르게 자꾸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왜 인지 모르게 자신이 마음속에 히지카타를 너무도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미치도록 자존심 상하면서도 수동적으로 그가 어떤 행동이라도 취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차마 먼저 다가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서 너, 나 좋다며? 라고 묻기도 너무 구차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땡땡이를 칠 때 늘 찾아가는 공원의 벤치는 나무의 그늘이 적당히 그물쳐 딱 좋은 장소였다. 나뭇잎 틈틈으로 보이는 하늘이 눈이 크게 부시지 않아서 적당하기 때문이다. 그는 종종 그 곳에 앉아서 틈을 내서 땡땡이를 치면서 쭈쭈바 따위를 쪽쪽 빨면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유난히 복잡한 생각들을 잊으려 멍한 눈으로 앉아 있었다. 돌이켜보면 곤도씨도 곤도씨지만, 제 옆에서 항상 붙어 있었던 것은 히지카타였고, 자신의 어떤 말에 잽싸게 반응해주는 것도 히지카타였다. 곤도가 신파치의 누이를 따라다니면서 애정을 구걸하는 모습을 봤을땐 별 생각이 없었지만, 전에 마츠다이라 선생의 딸인 쿠리코의 연애를 훼방놓기 위해 히지카타가 그녀에게 잘해주는 모습을 지켜볼때는 이상하게 기분이 언짢았던 것도 기억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런데서 땡땡이냐?”

 

언제 왔는지 모르게 히지카타가 다가왔다.

 

“흥, 땡땡이 아니고 잠깐 쉬는 거거든?”

 

그가 볼멘소리로 히지카타에게 투덜투덜 거리면서 말했다.

 

“일 완전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이야기 한다 너?”

 

히지카타는 오키타의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오키타는 히지카타가 앉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일을 하러 갈 거라고 말하면서 그를 잔뜩 노려보았다.

 

“소고”

 

그런 오키타의 손목을 잽싸게 잡아채면서 히지카타가 말했다.

 

“생각.. 해봤어?”

 

“뭘?”

 

“아니.. 그.. 내가.. 전에...”

 

히지카타는 답지 않게 우물쭈물 댔고, 오키타는 순간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그가 지금껏 기다렸던, 장난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휙 넘기듯이 말한 그 고백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어...어..어어?”

 

자신도 완전히 당황해버렸고 얼굴이 훅 달아오르는 느낌에 고개를 푹 숙였다. 혹시나 달아오른 얼굴을 눈치채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그니까... 네 생각을...묻고 싶.....”

 

“.........씨발 이 병신새끼 진짜!”

 

오키타는 당황하면 더 욕이 먼저 튀어나올 때가 많았다. 사실 누구나 그렇듯이 사람이 욕을 할 때는 화가 나서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보다는 화가 났는데 할 말이 없거나, 당황하거나, 답답할 때가 많다. 오키타는 지금 당황하고 답답해서 욕을 뱉어내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그의 욕에 당황해서 약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을 할 거면 바로 하던가. 진짜 재수없게. 넌 진짜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는 새끼야!”

 

“.. 역시 내가 싫..”

 

“당연히 싫지! 완전 병신새끼 아니야 이거! 완전 싫어! 세상에서 제일 싫어! 너 같은 새끼 진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진짜!”

 

오키타는 씩씩대면서 화를 냈다. 히지카타는 그런 오키타의 격한 반응에 약간은 놀라하면서도 실망한 기색을 보이면서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손은 왜 놔?”

 

“응?”

 

“이런 이야기를 할 거면 빨리 하란 말이야! 자꾸 사람 속 터지게 새..생각할 시간.. 주지 말고.. 그렇다고 그 이후에 뭐 달라지는 행동도 없고.. 뭔가 얼마나.. 내가 새.. 생각했...는데...”

 

오키타의 말에 히지카타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오키타는 그대로 그냥 일하러 갈 거라면서 씩씩대면서 뛰어갔다. 히지카타는 그런 그의 뒷 모습을 보고 그 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멍하니 있었고, 오키타도 그 날은 이상하게 다른 대원들을 괴롭히지 않고 그냥 조용하게 있었다. 대원들이 부장님이 오라고 하시는데요 라고 말하면 멍하니 앉아 있다가 과민반응을 보이면서 응? 나? 나? 하고 외치자 다른 대원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뭐 잘못하셨어요? 대장님 말고 야마자키요. 이러면서 무슨 사고를 쳤냐고 묻기도 했다.

 

 

 

둘 다 서툴러서인지 시작은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오키타는 처음 겪는 이런 간지러움과 익숙한 히지카타에게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어색함이 싫으면서도 싫지 않았다. 본래 옆에 있던 친근한 것이 갑작스럽게 어색해졌다는 이질감에 오키타는 한 동안은 히지카타를 둔영에서 피했다. 그 어색함이 미치도록 싫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한 지붕에 같이 있는 사이라서 마주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대원들이 모르게 하려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려 하면 히지카타는 그런 그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 투덜대면서 손을 살짝 뿌리치면서 만지지 말라고 화를 내면서도 심장이 콩닥콩닥뛰었다.

 

히지카타는 그런 그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서 그가 혼자 있을 법한 곳을 찾아가서 말을 걸곤 했다. 사실 본인도 어색해서 한참 근처에서 빙빙 돌다가 심호흡정도를 한번 하고는 찾아가서 말을 걸었다.

 

“괜찮아?”

 

갑작스레 다가온 히지카타 때문에 오키타는 눈에 보일 정도로 화들짝 놀랐다.

 

“깜짝이야.. 뭐가?”

 

“머리 아픈거, 이제 괜찮냐고”

 

“다 히지카타씨 때문이니까 이제 히지카타씨가 내가 할 일까지 다 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땅바닥을 쳐다보면서 애꿎은 땅바닥을 발끝으로 툭툭 찼다. 히지카타는 이런 오키타의 행동이 사귀자는 말을 하고 난 다음에 오는 간지러운 어색함 이라는 것을 알아서 머리칼을 잔뜩 헝클었다. 오키타는 다시 화악 얼굴이 붉어지면서 주위를 살폈다.

 

“왜?”

 

“누... 누가 보면 어떡해”

 

“너 되게 신경 쓰는구나 이 정도가 뭐 어때서”

 

사실 그렇게 신경을 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자꾸만 몰려오는 어색함이 앞서서 한 행동이었다. 히지카타는 그런 오키타가 마냥 귀엽게만 보여서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 * *

 

 

 

 

히지카타에게 오키타는 문제 덩어리에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삼는 귀찮은 자식일 뿐이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문제 덩어리. 항상 싸우고, 대들고, 정말이지 답이 없는 자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 그를 뒤쫓는 자신의 행동이 제 자신도 피곤했다. 그리고 그가 어느 날부터 가끔 두통에 시달린다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오키타를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대원이 아프다고 해도 걱정을 했을테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과하게 챙겨주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병원에 갈 필요는 없을 거라는 그를 거의 반 협박에 명령 어조로 병원에 갔다 오라면서 강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직접 끌고 가기도 했다. 한 병원을 믿지 못해서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들은 답은 모두 똑같은 대답이어서 그나마 안심했다. 선천적으로 조금씩 두통을 앓는 사람이 있다면서 그런 것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스트레스도 주의 하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상당히 예민한 녀석이니 알게 모르게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꽤나 받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큰 병이 아니었다는 데에 안심하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피곤한지 운전석에서 얌전히 잠든 녀석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어렸을 때부터 지내왔던 시간이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랐다. 제 누나나, 곤도씨 때문에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모습,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하면서 왜 자신도 그땐 그런 이 녀석을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어린아이의 입장에서는 항상 자신만을 봐와주는 사람의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빼앗긴다는 것은 꽤나 충격이었을 텐데.

 

 

 

“뭐? 지금도 내가 히지카타씨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냐고요? 미친”

 

셋이서 술을 마시던 중. 곤도가 갑작스레 자리를 비우면서 뜻하지 않게 둘이 술을 마시게 되었을 때, 아직도 자신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안주를 뒤적거리던 오키타는 완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착각도 자유지. 그건 그냥 어릴 때 이야기라고요. 지금도 물론 히지카타씨가 싫다는 것은 변함없지만 지금 곤도씨는 너보다 나를 훨씬 더 좋아하거든?”

 

완전히 유치한 대답에 히지카타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약간 취해서 살짝 풀린 눈으로 웃는 그를 빤히 쳐다보던 오키타가 다시 말했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나를 보고 있다는 게 더 짜증나. 씨발새끼야. 너는 항상 너 새끼가 존나 잘났다고 생각하지?”

 

“누가 그렇데?”

 

“아, 그렇게 잘나신 분이 왜 아직까지 연애도 안하고 이러고 살고 계실까? 응?”

 

“관심 없다니까”

 

“그것도 너 잘났다 이거잖아. 이 여자 저 여자 다 나와는 수준이 안 맞아 뭐 이런 거잖아. 역시 진짜 싫어.”

 

오키타는 술을 다시 한 모금 들이키고는 풀린 혀로 하 싫어. 진짜 싫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꼭 너같은 놈들이 제일 오래살더라 하고 풀린 눈으로 쳐다보면서 연거푸 술을 홀짝 홀짝 들이켰다. 오키타는 술을 마시면 취할 때 까지 먹는 편이었다. 취한것 같다면서 말려도 연거푸 술을 들이키는 주변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피곤하게 하는 그런 타입. 그런 그를 알아서 히지카타는 조금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늦은 시간에서야 그만 돌아가자면서 일어섰을 때 오키타는 꽤 취했는지 약간 비틀 비틀 거리며 걷다가 히지카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

 

“취했어?”

 

그 말에 오키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취했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어하면서도 걷기가 힘에 부쳐서 자신의 손목을 꼬옥 잡는 그 적당한 온기가 좋았다. 사랑은 특별한 장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서 온다. 뜬금없이 그냥 뭘 먹을까? 하고 물어보는 그 순간에도, 그냥 신발 끈은 고쳐 묶는 일상적인 순간에도.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장면은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장면이겠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사소한 찰나를 보고 그 사람을 다르게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기에 특별한 것이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그때 자신이 오키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버렸다. 그가 잡은 손을 가볍게 풀었다. 자신을 살짝 올려다 보는 오키타를 한번 보고는 약간 비틀거리는 그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으면서 가자- 하고 작게 말하곤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놓으라고 화를 내야 할 녀석인데 그 날 따라 고분고분하게 기대어 걸었다. 오키타는 지탱이 잘 되지 않았는지 히지카타의 허리 부근의 웃옷 제복을 어린애마냥 주먹으로 콱 움켜 잡았고, 그 감촉에 히지카타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의 어깨 부근을 다시금 꼬옥 끌어 안았다.

 

 

 

 

* * *

 

 

 

 

"타카스기"

 

"응"

 

"....니가 에도에 있다는 소문 쫙 퍼졌어"

 

"근데?"

 

"알아두라고"

 

"뭐야, 걱정하는 거야? 나를?"

 

타카스기는 들고 있던 곰방대를 한입 깊이 빨아들였다.

 

"그냥.. 알아두라고"

 

긴토키는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

 

"일하러"

 

"일을 하긴 하는 구나"

 

"얹혀 사는 주제에 그런 식으로 말하긴"

 

긴토키의 말에 타카스기는 눈꼬리를 살짝 휘면서 웃어보였다.

 

"얌전히 있어"

 

긴토키는 무언가 짜증난다는 듯이 수건을 잡아채어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저렇게 차갑게 뒤돌아서도 다시 와서는 날 찾을거면서. 타카스기는 그가 누워있던 온기가 남은 이불을 확 끌어 안았다.

그가 들어간 샤워실에서는 쏴아아 하고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관계를 할때 긴토키는 좀처럼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사랑해 라던가, 좋아해 라던가 하는 보통 연인들이 하는 그런 자상한 한마디도 없다. 관계를 원할 때는 그냥 와서 이렇게 한마디 했다.

 

'이리와'

 

그렇다고 해서 타카스기는 그 한마디가 싫지 않다. 뭔가 진짜로 원하는 것 같잖아. 물론 순순히 가지는 않는다. 몇 번은 순순히 갈 때도 있지만, 원하는 쪽이 와. 라고 다소 비웃는 듯이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묘한 표정으로 표정을 일그러트리면서 다가와 머릿채를 거칠게 휘어잡으면서 말했다.

 

'좋네'

 

그러면 타카스기는 그런 긴토키를 보면서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것이다. 그 웃음이 짜증난다는 듯이 긴토키는 그를 거칠게 잡아챘다. 허겁지겁 옷을 벗기고, 그의 속살이 하얗게 빛을 발하면 성급하게 그의 맨살에 입술을 맞대며 온기를 확인했다.

 

긴토키는 타카스기의 입이 자신의 것을 가득 물고 새빨간 혀로 겉을 조심스럽게 애무 할 때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낄 정도로 좋아했다. 그리고 일부러 타카스기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따뜻한 입안에 더 깊숙히 집어넣으려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할때 타카스기의 힘겨워하는 표정을 즐겼다. 보통의 사랑하는 관계라면 (남자와 남자끼리 이런 관계를 맺는것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보겠지만) 왜 사랑함이 느껴지지 않는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텐데, 그렇다고 타카스기가 그런 그를 싫어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즐겼고, 일부러 긴토키를 자극해 더욱 자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면 한껏 미쳐버리겠다는 표정을 짓고 웃음 짓던 긴토키는 표정이 싹 굳히고는 말했다.

 

‘재밌냐?’

 

저도 재밌어 죽을것 같으면서. 그 물음은 긴토키 제 자신에게도 하는 질문임을 타카스기는 알았다. 그 물음에 타카스기가 다시 야릇한 웃음을 보이면 확 뿌리치고는 그에게서 등을 돌리곤 했다. 아, 항상 이런 건 아니다. 오늘은 그 모습이 더 꼴렸는지 화가 난 듯 거칠게 끌어 안았다. 낡은 침대의 삐걱거리는 마찰음과 환희와 약간의 고통어린 교성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흐읏... 더 해줘 더.'

 

'미친새끼'

 

타카스기의 말에 긴토키는 욕설을 나직하게 뱉으며 더욱 거칠게 그를 안았다. 분명 남들이 봤을 때는 정상적이지 않은 이상한 관계였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런 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어찌됐든 그 둘은 즐기고 있었으며, 이 둘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비밀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수건으로 거칠게 닦아내며 나온 긴토키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로 담배를 피우는 타카스기를 나무랐다.

 

"집 안에서 담배피우지마."

 

"밖엔 나가기 귀찮아"

 

타카스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다시 입에 가져갔다. 긴토키는 한참 그런 그를 노려보다가 그냥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즈라가 너 물어보더라"

 

긴토키가 천장에 흩날려 나부끼는 뿌연 연기를 보다가 말했다.

 

"근데?"

 

"잘 지내냐고"

 

"그래서?"

 

"난 그냥 잘 모르겠다고 했어"

 

"응"

 

"나갔다 올게 조용히 있어"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귀찮은 새끼. 타카스기의 행동이 긴토키는 싫다. 둘이 알고 지낸 세월이야 길다지만 타카스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등을 다 안다는 듯, 하지만 입 밖으로는 절대 꺼내지 않으면서 행동했다. 그것이 더 기분 나빴다.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 새끼. 괴롭혀도 괴롭혀도 오히려 그런 것을 즐기는 듯한 태도 또한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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