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우리츠] 햄스터 04

2017. 7. 1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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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엄마와 아빠의 끝이 이렇다고는 하지만 모든 사랑의 끝이 이렇게 더럽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만 보아도 평생을 사랑하는 둘의 이야기를 그려놓은 이야기들이 흔하지 않은가? 서로를 끝끝내 잊지 못하는 진실한 사랑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기적처럼 만나고,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은 사랑을 보여주며 정말이지..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어요...! 하고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을 보면 아.. 정말로 세상에 사랑이라는 것은 있구나..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그런 영화를 보고있자니 뜬금없이 의문이 생겼다. 엄마와 아버지는 왜 저런 진실한 사랑을 품은 사람과 결혼하지 못했는가? 어째서 저런 영화같은 사랑을 하지 못했는가?


세리자와는 아버지의 곁에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이고 지금 현재로는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니 세리자와는 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리자와에게 아버지는 왜 엄마를 떠나게 내버려 두었는지, 세계정복을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이유 말고 조금 더 제대로 된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런 이상한 이유로도 헤어지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나로써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말 이유였다면 아버지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묻는다면 세리자와는 분명 또다시 과도한 충성심을 불태우며 그 여자가 사장님의 커다란 뜻을 모르는 거야!라고 발끈하며 지루한 설교를 늘어놓을 것이 뻔하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질문을 돌려서 물었다.


"세리자와는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있어?"

"응? 갑자기 그런 이야기는 왜?"

"갑자기 궁금해져서. 왜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이상할 정도로 깊은 사랑이 정말 있을까.. 하는 그런.."

"당연하지!"

"아.. 그래?"


너무 묻자마자 강력하게 대답하는 세리자와의 태도에 되려 당황해버렸다.


"원래 그렇잖아.. 내가 정말 죽을 정도로 힘든 때라던가.. 그럴때에 나를 변화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은 정말이지 평생을 가도 잊을 수 없게 되잖아... 물론 꼭 그런 특별한 이유가 아니어도 빠져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야.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기도 하니까. 뭐든지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 아.. 그렇구나"

"응 당연하지!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계산해야 해 쇼우군.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침착해야 한다? 무엇을 주더라도 다 주면 안 돼. 항상 계산해야 해. 그렇지 못하다면 그 순간 돌아설 거야. 절대로 상대방에게 커다란 믿음은 가지지 않는 게 좋아. 그 사람을 지나치게 믿어버린 다음의 이야기는 별로 아름답지 않아. 그 사람이 떠나는 일 밖엔 남지 않거든"

".... 음.. 일단 난 줄 것도 없는데?"


아버지는 돈이 많을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관심 밖인 나는 남들보다 조금 많은 용돈 외엔 별로 가진 게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엄마가 버려둔 고양이, 어항 속을 돌아다니는 햄스터... 외에 또 있나?


"무언가를 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중점은 아니지만.... 뭐, 일단 뭐든 그렇거든. 다 주면 안 돼. 상대도 나에게 다 준 것 같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


항상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는 세리자와의 단호한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조금은 우물쭈물하다가 물었다.


".... 엄마도 그랬을까?"


내 질문에 표정이 굳는 세리자와를 보며 실수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이었기 때문에 눈치를 살피며 다시 말을 했다.


"..그러니까, 큰 뜻은 없.."

"....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세리자와는 내가 입 밖으로 꺼낸 엄마라는 단어가 싫었는지 자리를 벌떡 일어나서는 화난 듯이 문을 콰앙 닫고는 자리를 떠났다. 세리자와는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이상하고 알 수 없는 말만을 혼자서 말했다. 조금 더 캐묻고 싶기도 했지만 이미 감정이 상해 나가버린 그를 붙잡을 수는 없었고,(사실은 붙잡고 싶지 않았고) 더 이야기해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리자와의 대화 후에 리츠에 대해 생각하다가, 리츠를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는 병동에 견학 차원의 의미로 데려가 주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그렇게 거대하지 않다. 단순하게 리츠가 옥상에서 되려 나의 짐을 덜어주며 잡아주었던 손이 너무 따뜻했기 때문이다. 다시 그 손을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각이 자꾸 나를 웃게 만들었다는 것도 큰 이유 중에 하나다. 리츠라면 그런 병동을 보고 나를 더욱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얼마나 이런 거지 같은 아버지 밑에서 고민하고 있는지, 이런 상황을 이겨낼 가장 좋은 명답을 찾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츠같이 완벽한 사람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날 확률이 얼마나 되며, 그런 사람이 나와 이렇게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를 지금의 리츠를 좋아하는 만큼 좋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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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이것에 대해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린 서로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연결해놓았다고 생각한다.


별이 총총 떠있는 밤이다. 우리는 리츠의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서 잠깐 만났다. 나는 사가지고 온 음료수를 건네주었고 리츠는 고맙다며 받아들었다. 그네에 앉아서 함께 간단한 음료를 마시면서 사소한 이야기를 했다. 이상하게 꿈을 꾸고 있는 듯이 몽롱해서 서늘한 밤공기가 너무 달콤하게 느껴졌다.



뭐 했어?

음.. 형도 나가고 해서 그냥 집에서 집안일도 도와드리고.. 책도 보고..

와 재미없어

참나, 그러는 넌 뭘 했는데??

나는 집에서 고양이랑 같이 마하 파이터 후토시4를 봤어! 다시 봐도 정말 명작이야!

으 재미없어

아냐! 완전 감동적이야! 다음에 나랑 같이 보자!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내가 다 준비를 해 놓을게!

집? 아 그래.. 뭐 다음에

그때 고양이도 보여줄게!

그래

리츠 넌 뭘 좋아해?

응? 내가 고양이를 안 좋아하는 것 같이 말했나? 아냐, 나 고양이 좋아해!

그래? 나는 네가 좋아


내 말에 리츠는 잠시 조금 놀란 듯이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선 작게 말했다.


뭘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거든?

나는 다른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할 자신이 없어.

아.. 그만해

왜? 나는 지금 내 심정을 말하고 싶은데....


내 말에 리츠는 대답 없이 귀까지 빨개져서는 바닥만 쳐다보았다.


나는.. 너와 이렇게 학교가 아닌 집 앞의 놀이터에서 잠깐이라도 만날 수 있는 사이라는 게 너무 좋아.

...

나에게 이런 행운이 또다시 찾아올까?

...

리츠는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나도 널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 하고 말했다.


뽀뽀해주면 안 돼?

아.. 안돼

왜?!

집 근처잖아. 혹시 누군가 지나가기라도 하다가 보면 어쩌려고...

그럴 일 없을 것 같은데.. 아무도 없잖아

어쨌든 안돼!

음.. 그럼 손잡고 조금 걷자! 그건 괜찮지?


또다시 리츠가 안된다고 말할 것 같아서 바로 일어서서는 리츠의 손을 잡고 잡아끌었다. 리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반대쪽을 필사적으로 바라보았다. 잡고 있는 손이 긴장 탓에 옅은 땀이 살짝 베는 것도 같아서 괜히 나조차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저.. 리츠

..응

내일도 만날까?

... 내일?"

응. 오늘은 너희 집 근처에서 만났으니까 내일은 우리 집 근처로 와

너희 집?

우리 아버지의 연구소. 가고 싶어 했잖아.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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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는 다음날 저녁 내가 본 모습 중에 가장 상기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정말 행복해했다. 리츠가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아.. 아니지 리츠가 자신의 형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 오늘이 처음이다. 항상 침착한 리츠가 나의 손을 덥석 먼저 잡고서, 스즈키 스즈키! 지금 가면 혹시 다른 직원분들도 계실까? 그럼 어떻게 하지? 나 인사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해?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마 없을 거야. 시간도 늦었고.."

"아.. 그런가? 어쩔 수 없네.. 가서 구경하고 다음에는 너희 아버지도 뵙고 싶어"

"응?"

"너희 아버지 말이야!"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대단한 사람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세리자와 밖엔 없었다. 세리자와의 광적인 반응은 좋아하지 않지만 리츠가 우리 아버지를 이렇게 대단한 것처럼 언급해주는 게 굉장히 신기하기도 하고 항상 멀게만 느껴지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나에게 조금은 큰 존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 그래 뭐..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 넌 정말 좋겠다. 이렇게 굉장한 아버지도 계시고 말이야"

"그 정도는 아닌데.."

"멋있잖아!"


그런가? 나는 멋쩍은 듯 웃었다. 이렇게 기대에 차있는 리츠를 보니 약간의 불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왜 리츠를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을 했을까? 정말 리츠는 이곳을 보고도 놀라지 않을까? 이것을 본 리츠가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만의 가장 큰 착각이었으면 어쩌나. 리츠의 손을 잡고서, 그 거대한 하얀 건물 가까이에 와서야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건물에 붙어있는 거무스름한 창문이 어쩐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음.. 근데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들어가?"

"내 지문이 등록되어 있으니 상관없어"


지문을 찍으니 삑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서 <스즈키 쇼우>라는 이름과 함께 어서 오십시오 하는 기계음이 들리며 문이 열렸다. 역시나 그곳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을 켤까 하고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 불을 켤 수 있는지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정체 모를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파란 빛만이 우리의 시야를 도와주고 있었다.


"스즈키, 괜찮아. 혹시 몰라서 내가 손전등도 가지고 왔어. 그냥 올라가자"


리츠는 설렘에 가득 찬 모습으로 손전등을 꺼내어 스위치를 올렸다.


"뭔가 탐험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뭔가 재밌어. 어릴 때 형이랑 같이 어두운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런 식으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거든. 형도 나도 어렸을 때 니까 둘 다 엄청 울면서 돌아다녔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어. 형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거든. 그러면서 본인도 울면서 나에게 울지 말라고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말하는 거야. 다행히 바로 부모님을 만났지만.. 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귀여워.. 그치?"

".. 기억력이 좋네"

"응! 나 일기 쓰는 것도 좋아해서 가끔 읽어보거든. 형이랑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 일기장에 적혀있어"

"그 일기장에 내 이야기도 있어?"


내가 묻자 리츠는 아무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발견하고서 아! 여기에 있네, 엘리베이터. 이거 타고 올라가자! 하고는 나에게 손짓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나는 계속 머뭇거렸다. 정말 데리고 가도 될까 고민이 되었기 때문에 층을 누르는 것을 자꾸만 고민했다. 리츠는 손전등으로 번호판을 비추어 보더니, 8층 옆에 <초능력 개발실>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을 보고는 고민 없이 8층의 버튼을 눌렀다.


올라가는 화살표를 바라보면서 내 옆에 기대에 찬 리츠에게 말했다.


"저기... 리츠."

"응?"

".. 네가 상상하는 것만큼 멋있는 곳이.. 아닐지도 몰라.."

"하하,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이곳에 데리고 오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해"

"..."


리츠는 내가 이해가지 않는 듯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놀랄지도 몰라"

"..."

"아니.. 아마 정말 놀랄 거야. 하지만 그만큼 내가 널 믿고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줬으면...."


말이 끝나기 전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리츠는 내가 하는 말을 들으려 나를 보다가,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의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전등으로 그곳을 비춰본 순간.. 그곳에 보인 유리관에 고문의 흔적이 보이는, 피를 뒤집어쓴 어떤 남자의 형상이 손전등의 빛을 받고서 환하게 보였다. 하얗게 뒤집어 까인 눈, 머리에 쓴 이상한 황동 빛의 헬멧, 그리고 희미해진 심박수를 힘겹게 체크하는 기계, 그 옆에 보이는 날 선 고문 도구들.. 리츠는 보자마자 손전등을 떨어트렸다. 굴러다니는 손전등의 빛을 받은 바닥에는 시체인지 뭔지 모르는 동물과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핏자국이 흥건한 바닥이 환한 빛을 받아서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리츠는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로 하얗게 질려서는 손으로 입을 막고선 엘리베이터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아무 말없이 조용히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 내가 왜 고민을 했는지 알겠지...?"

"... 아... 아... 아니 이게.... 뭐..... 뭐... 야....?"

"이래서 보여줄 수가 없었어.. 하지만 너는 분명히 모든 걸 알고도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리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도망치듯이 그 건물을 뛰어나가려 했다. 나는 리츠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들고 말했다.


"... 진정해 리츠, 무섭지? 미안해. 천천히 가자. 같이 가면 되잖아"

"이.... 이거 놔!!!"


리츠는 내가 잡은 팔을 거세게 뿌리치면서 말했다.


"... 나.. 나... 집에 갈래"

"같이 자고 가자. 근처에 내가 아는 삼촌의 집이 있어. 오늘 아무도 없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야. 시간도 너무 늦었고..."

"아냐 됐어. 갈게"




리츠는 급히 그 어두운 골목에서 가로등을 가로질러서는 달려가다가 마침 비어있던 택시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택시를 타고서 사라져버렸다. 리츠가 많이 놀랐나 보다.

...물론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럴만하지. 그 어떤 누구라도 이런 장면을 갑자기 보게 된다면 놀랄 것이고.......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리츠에게 전화를 했다. 몇 번을 해도 리츠는 계속해서 통화 중이었다. 15분쯤 후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길했지만 괜찮다고 혼자서 위로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리츠의 집 앞으로 찾아가려 했다가,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왠지 이대로 집 앞으로 가도 리츠는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직감이 들었다. 세리자와를 부를까 잠시 고민하다가 또 이곳에 내가 왔다는 걸 알면 또다시 차기 사장이 될 준비가 되었다며 난리를 칠 것을 생각하고서, 한숨을 쉬며 택시를 잡아서 탔다. 택시에서도 계속해서 전화를 했다. 핸드폰을 든 손에는 왜인지 땀이 흥건했다. 리츠가 전화를 받는다면 바로 차를 돌려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제발 전화를 받아달라는 간절한 생각을 하다가, 뜬금없이 리츠는 지금 샤워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택시의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택시의 라디오에서는 데미안 라이스의 My Favourite Faded Fantasy라는 노래가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는 예전에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종종 틀어두었던 노래였던 것 같다. 이 노래는 가사가 정말 좋다. 다 좋지만 오늘따라 가장 구슬프게 들리는 마지막 구절, 

I’ve never loved loved loved like you. 

I’ve never loved.. 

I’ve never loved.. 

I’ve never loved..  

[누군가를 당신만큼 사랑한 적이 없다]




택시는 목적지를 변경할 일이 없었다. 우리 집 앞으로 올 때까지 리츠는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곳에 내가 오늘 올 일은 없었을 텐데. 

내가 늦게 들어와도 단 한 번도 나와보지 않던 아버지는 오늘따라 내 발소리에 밖으로 나와서는, 약간 풀이 죽어서 들어오는 내 앞에 저벅저벅 다가왔다. 나는 자동으로 시선을 피한다.


"이상한 일이구나. 이 시간에 그곳엔 왜 간 거냐"

"... 그냥..."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구나"

".. 그건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지만... 그냥.. 조금 놀랐어.."

"그게 끝이냐?"


아버지는 실망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내 안에서 맴도는 말을 오늘은 꼭 묻고 싶었다. 살살 눈치를 살피다가 충동적으로 말을 꺼냈다. 충동적이라고는 하나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 엄마는...."

"네 엄마?"

"아버지를 사랑했어?"

"... 갑자기 그런 걸 왜"

"그냥 궁금해서. 엄마도 이런 아버지의 모든 모습을 보고서 나간 거잖아"

"물론 사랑했지. 우리 서로 정말 미친 듯이 사랑했다"

"..."

"그래서 아직도 너를 보면 네 엄마가 생각나는구나"


아버지는 처음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뺨을 가볍게 쓸어내려 주었다. 아버지의 손은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굉장히 싫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싫지 않았다. 단지 아버지와 내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어색해서 빤히 눈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기만 했다. 아버지는 내 턱을 부드럽게 잡고 입술을 부드럽게 가져다 대었다. 그 행위 자체로 나는 리츠밖엔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상한 기분이었다. 턱에 까칠한 수염이 리츠와는 다르게 거칠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향수 냄새가 조금 더 강하게 나를 감싸 안는 느낌이라는 것. 물컹한 혀에서는 리츠와는 다른 옅은 담배 냄새가 나는 것.. 리츠와의 입맞춤에서는 리츠의 머리카락이 내 이마를 살짝 간지럽혔었는데.. 


아버지와의 알 수 없는 입맞춤에 멍하니 뜨고 있는 눈, 그 눈의 시야에서 우리 집에 있는지도 몰랐던 세리자와가 벽 틈에서 나와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세리자와의 표정엔 너무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 이상할 정도였다. 정말로 이상했다. 손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사주었던 검은 우산을 부러질 정도로 꽉 붙들고서 시체처럼 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리자와를 보고서도 이 행위를 멈춰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분명히 엄마와 아버지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분이 너무 더럽다. 이상하게 너무 더럽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누워서 한참을 뒹굴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통화 목록에는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는 리츠의 이름만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찍혀있다. 시간도 보지 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받지 않았다. 아버지와 엄마가 서로 사랑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 갈등하게 만들고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휘잉 하고 내 뺨을 스친다.

급하게 커다란 어항을 열고서 햄스터를 급하게 한 마리 꺼내었다. 안녕? 나는 한마디 하고는 그대로 밖으로 던졌다. 내 손에 남아있던 온기가 곧바로 식어버린다. 깜깜한 밤이기에 어디로 떨어졌는지, 살았는지, 혹시나 아래의 나무에라도 걸렸는지 전혀 모른다. 서둘러 창문을 탁 소리 나게 닫고서 다시 돌아누웠다. 고양이는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서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뺨을 한번 쓸어내려 주고, 고양이의 입술에 쪽 하고 한번 뽀뽀를 해주었다. 귀엽다. 이쁘다. 햄스터 한 마리를 입에 물려주고는 거실로 나가게 했다. 내 방에서 햄스터가 찍찍대며 소리 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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