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융해점 1

2015. 9. 5. 08:38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몸이 묶인 것인지, 아니면 다친 상처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몸에 끈적하게 흐르는 피에 옷이 달라붙는 느낌 또한 불쾌하다. 기억이 나는 부분은 그 녀석과 싸우고 나서 널부러져 있는 나를 그 녀석이 다시 찾아온 것. 쓰러져있는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서 저와 눈을 마주치게 하고는 말했다.

"찾았다. 레어몹"

레어몹이라니.

동등하게 싸웠고, 이 녀석 역시 나와 비슷한 중상을 입었을 터인데 역시 전투민족인 야토족은 인간과 다르다 이건가? 다치긴 했지만 멀쩡하게, 심지어 처음 만났을 때처럼 특유의 오싹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날 휘어잡고 있었다.나는 이미 상처를 크게 입어서 그런 이 녀석에게 그 어떤 움직임도 취하지 못하고 눈앞에 이 몹쓸 악당 녀석의 비열한 눈웃음을 마지막으로 기억을 잃었다.

입에 뭐가 물려있는지 입 주위가 얼얼했는데, 다른 곳이 너무 아프고 답답해서 그런 사소한 것들은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로 온몸이 젓은 솜 마냥 무거웠다.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훅 들어오는 강력한 빛 때문에 나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따가운 눈을 잔뜩 찡그렸다. 내 얼굴 바짝 앞에 다가와 있는 건 다름 아닌 내가 정신을 잃기 전 가장 마지막에 봤던 그 괴물 녀석.

 

"..."

 

"어때? 좀 낫지?"

 

너무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켰는데 그 전에 다쳤던 상처들이 온몸을 찌르르 울려서 다시 중심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내가 쓰러진 건 상처 때문만은 아니다. 온 몸이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옆엔 몇몇 사람들이 나와 함께 묶여 있었다.

 

"넌 레어몹 이니까 상처도 치료해준거야."

 

뭐지.

 

"너 인질이야"

 

인질?

 

그 안은 이 녀석들의 기지인 듯한 공간이였고, 내 옆에 몇몇의 다른 인질들은 덜덜 떨고 있었다. 그야 이 녀석들 야토족이라서 꽤나 험악하게 생겼고, 생김새를 둘째치더라도 야토족의 특성인 우산만 봐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하긴 저 녀석 빼고 그 옆에 있는 녀석들은 죄다 그 힘을 과시하는 듯 험악하게 생긴데다 눈빛까지 사납다.

 

나는 말을 할 여력도 없어서 깨어난 이후로 하루정도 벙어리 마냥 입을 다문채로 있었다. 우선 나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추욱 늘어진 채 한쪽 벽에 찌그러져 있는 것 외엔 아무런 움직임도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악당 녀석이 치료를 해줬다고는 하나, 전문적인 치료도 아니었으니.

 

다음날 그가 웃으며 우리 무리에 앞에서 말했다.

 

"우린 너흴 해칠 생각은 없어. 그냥 단지 우리는 저쪽이 우리가 가는 걸 방해하니까 잠시 붙들어 놓는 것 뿐이야. 죽이지 않을게"

 

하지만 인질에게 납치범 혹은 가해자가 나는 널 죽이지 않아. 라는 말을 실실 쪼개면서 말한다고 상상해보라. 어떤 바보라고 하더라도 그 말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할 정신이 아니어서 아무 생각을 못했지만, 다른 이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타인에게 들릴 정도로 떨었다. 나는 그런 인질들 사이에서 그때는 다른 고통에 의해서 두려움을 크게 깨닫지 못해서 덤덤하게 그런 그 녀석을 쳐다보다가 다시금 몰려오는 피로감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직후, 어떤 몹쓸 용기를 가지고 있는 왠 사람이 일어나 모두를 놓아주라면서 소리쳤다. 저런 경우는 곧 죽을거야 하고 생각하자마자 그 괜한 용기를 가진 그 남자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웃는 얼굴을 한 그 악당의 손에 머리통이 찢겨 죽었다. 사방으로 튄 피, 그리고 바닥을 굴러다니는 두 눈알, 널 부러진 사지.. 그는 손에 묻은 피를 보고 다시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아, 죽여버렸네. 죽이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다른 인질들과 나는 그 광경에 찍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을 죽였다. 나도 저 녀석과 나름 호각으로 싸웠다지만 조금 더 싸웠다면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지금 몸도 온전치 못한 상태의 나는 그 녀석의 식탁 위에 하얀 배를 드러낸 채 차가운 접시에 올려져 있는 연한 생선과도 같아서 그저 조용히 닥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 무섭지는 않다고 항상 말해왔지만 막상 다가온 공포에 나도 모르게 생존의 본능이 조용히 눈을 뜨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존심 상하지만 난 지금 저 녀석에게 잔뜩 움츠러들었다. 답지 않게 구차한 변명을 붙이자면, 저 녀석은 야토족이고, 나는 그냥 조금 뛰어난 인간에 불과하다는 열등한 조건을 붙여볼 수도 있다.

 

고열에 시달려 벽에 기대어 있는 나를 어떤 야토족 두 명이 험악하게 다가와서는 나를 억지로 잡아 일으켰다. 갑자기 일어서서인지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몰려오는 현기증에 휘청하고 넘어질 뻔했다. 다소 신경질 적인 힘으로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이 야토족 두 명이 무서워졌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그 녀석에게 데려가는 걸까? 그렇게 날 죽이고 싶어 하는 녀석인데 가면 분명히 나를 죽이겠지? 응. 나를 죽일 꺼야. 고열과 공포에 의해서 다행히 그렇게 많이 두렵진 않았다. 적어도 마지막에 건방진 표정 한번 정도는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또 다시 잠깐 정신을 잃었는지 눈을 떴을 땐 나는 왠 침대에 있었다. 위로 보이는 하얀 천장과 나로부터 연결되어 있는 투명한 줄들이 얼핏 보여서 인질로 잡힌 것은 꿈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어서 잠깐은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곧바로 들어온 그 녀석에 의해서 허무하게 깨져버렸다.

   

“오! 정신이 들어?”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는 내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완벽하진 않아서 완치는 못하겠지만 이 정도로 감사하라고. 근데 인간들은 되게 약하다”

   

나는 이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그냥 이 녀석의 웃는 얼굴을 쳐다보는 것 자체가 나는 너무 소름 돋는 일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무기력한 나를 느끼는 것이 처음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다.

   

   

   

* * *

 

   

 

모든 움직임을 제한 받았다. 밥은 줬는데, 그 녀석이 내 앞에 앉거나. 나에게 직접 밥을 가져다주면 한 술도 뜨지 않았다.

   

“왜 안먹어?”

   

“....뭘 넣었는지 알 수 없잖아. 그런 건 먹지 않아”

   

“하하 사무라이는 역시 대단하네”

   

그 녀석은 다시 웃는 얼굴로 말하고는 나에게 준 밥을 기세 좋게 한 숟갈 먹고는 말했다.

   

“자. 봐 괜찮잖아”

   

“....”

   

“먹어. 레어몹이 죽으면 나도 슬프다고”

   

그냥 괜시리 그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아서 먹지 않았다.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내 얼굴 가까이 바짝 다가와서는 말했다.

   

“죽고 싶어? 먹어”

   

이 녀석의 반 협박에 나는 두려움에 손을 미세하게 떨면서. 그리고 그것을 감추려고 애써 노력하면서, 자존심이 상해서 속으로는 욕을 지껄이면서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어때? 맛있지?”

   

다시금 웃음을 지으면서 그가 물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오는 게 싫다. 필요 이상으로 경계를 해야 했으니까. 이 녀석이 갑자기 돌변해서 내 목숨을 쥐어 뜯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었으니까.

   

다른 인질들은 어느샌가 저희들끼리 적응을 해서 꽤나 잘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 무리들엔 끼지 못하고 (그 악당녀석이 자꾸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기 때문에) 항상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아 다친 쇄골 쪽에 자극이 가지 않게 가만히 숨을 몰아쉬면서 사색에 잠겼다. 히지카타와 곤도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형씨는? 나를 찾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왜 이렇게 질질 끌어 히지카타. 얼른 내 앞에 나타나란 말이야.

   

“카무이”

   

“응?”

   

“내 이름 카무이라고”

 

“아, 그래”

   

“넌?”

   

나는 대답하길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오키타”

   

의아했다. 죽일 놈에게 이름까지 알려주는 친절함이라니.

   

“바보 동생이랑 알고 있지?”

   

차이나를 떠올리고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뭐가?”

   

“그 녀석 어떻게 지내?”

   

“...잘은 몰라도 그 쪽이랑은 반대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

   

“맞아. 걔랑 나 안 닮긴 했어”

   

그는 다시 웃어보였다.

   

인질극 같은 건 이 녀석과 어울리지 않아서 물었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냐고.

 

"그냥"

 

그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미친놈

 

"장난이고, 보다시피 우리 몇 명 없잖아. 안전히 돌아가고 싶어서 한 수 접는 거지 나도 너랑 싸워서 꽤나 다쳤다고 경찰."

 

웃으면서 오른손에 감은 붕대를 장난스럽게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아, 어깨 쪽도 다쳤었지? 하곤 웃는다. 너 새낀 웃으면서 다쳤다고 말할 정도지만 난 죽기 직전이라고 이 괴물 새끼야.

 

"사실 너와 같이 잡아 놓은 인질들 다 필요없어. 경찰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것이 더 자극적일테니까. 그러니까 안심해. 넌 절대로 내가 죽게 하지 않아. 지금은"

 

그러더니 아무렇게나 털썩 앉아서는 아아 아부토는 연락도 안 되고 진짜 뭐하자는 거야 라고 중얼거리면서 투덜거렸다. 말은 저렇게 죽게 하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어쨌든 날 이용하는 거고, 이용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난 이 녀석에 의해서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아서 감동한다거나, 안심하진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어떻게 여길 나가야하나 정도를 고민하고 있었고 이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잔뜩 경계태새를 취했다.

 

같이 생활하던 인질 두 명이 또 죽었다. 난 별로 말을 섞지 않았으니까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밖에서 대치하고 있는 군인인지 경찰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집단이 조금 더 강압적으로 나오려고 하자 제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 죽였다고 했다. 그 결과, 인질을 죽여버린 그 잔혹함 앞에서 대치하던 그 집단도 우선은 조용히 물러섰다. 그들도 잡은 인질을 정말로 죽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 결과 함께 있는 이 안의 분위기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이 공포감에 잔뜩 얼어붙어버렸고, 다들 새하얗게 질렸다.

 

그 두 사람의 피를 뒤집어 쓴 채로 나에게 다가와서는 아- 또 죽여 버렸어 하고 중얼거리고 말없이 내 옆에 한참 앉아 있었다. 묶여진 데다 지금 상태로는 이 녀석에게 이길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나를 감싸고, 더불어 이 녀석에게 풍기는 비릿한 피냄새가 새삼 역겨웠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무서웠다. 이 녀석이 무섭고, 자꾸 이 녀석들을 자극해서 우리를 공포감으로 괴롭히는 저 집단들도 짜증났다. 히지카타 뭐하냐, 얼른 오지 않고.. 너 나 이렇게 죽일거야?

 

"너, 나한테 허락받고 움직여"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그 녀석이 나를 홱 돌아보면서 말했다.

 

"..움직인 적 없는데?"

 

"그니까 앞으로 무얼 하던 나에게 다 허락받으라고."

 

이미 움직이지도 못하게 묶어놨고, 난 상처 때문에라도 혼자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에게 이러는 이유를 나는 찾지 못했다. 이 녀석도 내가 두려운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 녀석은 그럴 리가 없다. 이미 충분히 강하고, 이런 상처투성이의 무기력한 나에게 괜히 이러는 이유가 뭐야?

 

"나랑 같이 있자"

 

내 의사 따위는 소용없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고, 그냥 이 녀석이 같이 있자 라고 말하면 같이 있어야 하는 그런 입장이었다. 물론 난 끔찍하게 싫었다.

 

 

 

 

 

다른 인질들은 저희끼리 한 공간에서 있다면, 난 따로 분리되어 이 녀석의 공간에서 던져졌다. 끌려갈 때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런 나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끌려가는 대상이 자신이 아님에 감사하는 안도가 함께 보였다.

 

데려다 놓은 새끼가 어찌나 거칠게 나를 쓰러트려 놨는지 상처가 벌어져 짧은 신음만을 뱉어냈다. 내동댕이쳐진 나를 보고 그 녀석은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와서는 상처가 벌어져 하얀 붕대 위로 붉은 피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쇄골 쭉 보더니 말했다.

 

"피..."

 

그리고는 묶었던 나를 풀어주고는 붕대를 갈아주겠다고 했다. 그의 그 말이 의아하고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한참 그에게 불신의 시선만을 보냈다.

 

"왜? 붕대 다시 감아준다니까?"

 

계속해서 쳐다보는 나의 웃옷을 잡고는 천천히 벗기려해서 나는 뭐하는 짓이냐면서 다른 한 손으로 급하게 잡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이상한 친절은 나에게 두려움과 더불어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아니 이것은 오히려 친절이 아니라 더욱 나를 협박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가 내 상처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식은땀이 흘렀다. 내 쓸데없는 자존심은 이 녀석이 내가 저를 두려워 한다는 것을 알까봐 마른침을 삼켰다.

 

"뭐 이렇게 쑥쓰러워하고 그래?"

 

그 말에 약간 머쓱한 나는 다시 다가와서 내 옷에 손을 대는 그 녀석을 내버려 두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계속 조마조마 했던 것은 사실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이 녀석은 정말 순순히 붕대만 감아주었다. 의외의 행동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이 녀석을 쳐다보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다시 웃는 얼굴로 쳐다보는 이 녀석.

 

우리 둘은 한참 서로를 응시했다. 나는 의심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리고 이 녀석은.. 뭐랄까. 전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

카무오키 한번 꼭 써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57권인가 58권에서

카무이가 오키타 찾으면서 레어몹 드립치면서 찾는거 보고 거하게 치여서ㅠㅠ

오키른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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