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융해점 2

2015. 9. 8. 22:51

 

 

 

 

 

 

 

 

 

 

 

 

 

 

나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혹시나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타인 앞에서 강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자존심은 강했지만, 막상 내 자신이 나를 봤을 때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본 나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항상 약했고, 항상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을 감출 수 있었던 것은 곤도씨라는 버팀목이 있었다는 것과, 신센구미 안에서 나에게 쏠리는 관심, 그리고 다행히도 나에게 있었던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히지카타를 항상 싫어했던 이유도 이 것에 비롯 된 것이었다. 그는 나의 낮은 자존감을 약간은 알고 있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감추려 하는 나는 그가 그런 나를 들여다보려 다가올수록 나를 방어하는 자존심으로 튕겨내는 것이다.


나는 그 악당의 방안에서 우두커니 정신을 놓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좋던 싫던 수동적으로 변해 버려서 그 녀석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 녀석을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악당 녀석이 지금은 나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은 알았다. 지금 이런 상태의 나는 죽여도 재미없다고 생각한 것 일까?한 쪽발이 묶여서 이 녀석이 어딜 나가면 주인이 오길 기다리는 것 마냥 하릴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나는 이 녀석에게 사육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 수치스러움에 치를 떨면서도 이 감정 또한 그 녀석이 눈치채버린다면 스스로 죽어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째서 나를 제 옆에 두려 하는 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붕대를 감아줬던 그 순간 빼고는 딱히 아무 일도 없었고, 아예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발목에 닿은 쇠사슬의 감촉이 얼음창 마냥 차갑다.

근처로 오는 발소리만 들려도 나는 왠지 모를 기대감을 품으면서 소리가 나는 쪽을 홱 돌아보았다. 그냥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존재의 유무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무서우면서도, 이 녀석이 와주길 기다렸다. 돌이켜보면 난 항상 내 주위에 누군가가 있었다. 어릴 땐 누나가, 그 이후엔 곤도씨와 히지카타가, 아니면 대원들이 항상 옆에 있었다. 그러고 보면 히지카타는 날 혼자 두지 않으려 꽤나 많은 노력을 해준 것 같다. 그것 또한, 나의 낮은 자존감을 알아보고 한 행동이라는 것이 재수 없어. 돌아가면 죽여버릴 거야.

그리고 왠지 모를 그 기다림에 지쳐 벽에 기대어 잠깐 잠이 들었을 때, 나의 머리카락을 쓰윽 쓸어내리는 느낌에 살며시 눈을 떴다. 그 악당 녀석이 내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씨발 왜 자는 사람 옆에서 이러고 있어?

“뭐야?

“자고 있길래”

뭐야...


이 악당은 가끔 이상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하루는 잠을 자다가 악몽이라도 꾼 것인지 벌떡 일어나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충분히 잠에서 깼을 정도로 요란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허겁지겁 일어나서는 다른 손으로 제 팔에 직접 상처를 내는 것이다. 헉헉대는 숨소리와 더불어 단도를 휘두르는 소리, 그리고 바닥에 가볍게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가 한동안 조용한 새벽을 울렸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숨을 죽이고 잠에 든 척을 했다. 이 악당은 그렇게 자해를 끝내고 나서는 비틀거리면서 다시 침대에 쓰러져 털썩 누워선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한참을 뒤척였다. 저렇게 자해를 하고 있을 때 저 녀석의 표정은 어떨까? 저 때도 웃는 얼굴을 하고 있을까?





* * *





“생각보다 얌전하네”

이 녀석이 밥을 가져다 주면서 말했다.

“...조용히 기회를 엿보는 거지”

그 틈에 그의 팔뚝에 매어있는 붕대를 힐끗 쳐다보고는 물었다.

“거긴 왜 그런거야?”

그가 내 물음에 붕대감은 부분을 다른 손으로 만지작 거리다가, 묻는 말엔 대답하지 않고 내게 물었다.

“사람을 언제 처음으로 죽여봤어?”

음... 그걸 어떻게 기억해

“기억안나”

“그럼 처음에 죽이고 어땠어?”

“...시시했어. 기왕 죽일거면 너같이 몹쓸 악당을 잡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닮았네 나랑. 너 같은 애를 만나서 난 정말로 기뻐”

여전히 웃고 있는 그의 눈, 그리고 지난 밤의 자해에 의해 감겨 있는 붕대. 헉헉대던 숨소리. 그리고 웃으면서 나간 그는 무엇이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밖에선 요란한 소리와 질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또 다시 사람을 죽인 것이다. 살인 장면을 보는 것도 아니고, 소리만 듣는 것은 무엇보다도 싫었다.

또 한번의 살인이 일어나면서 나는 공포의 한가운데에 다시 놓이면서 그 공포를 이기려했는지 아니면 나도 그와 내가 미세하게 닮았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서히, 아니 갑작스럽게 그를 사랑해버렸다.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 머릿속에 우연히 떠오른 단어가 그것이었다. 그렇다고 애가 닳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이 녀석을 사랑해야 내가 살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참 말이 없다가, 그가 말했다.

“나랑 나갈래?”

“어딜 나가?”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인질이 나가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거고, 저도 여기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그가 이상해서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랐다.

“여기. 곧 폭팔할거야”

그의 말에 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뭐?”

“그니까 나랑 나가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참 쳐다보자 그가 담요를 가져와서 덮어주었다.

“춥지?”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근데 이 녀석이 준 담요가 따뜻하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지금 이 녀석은 이상하게 마치 얼굴도 모르는 나의 부모 같은 존재와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완전히 믿진 않았지만, 현 상황에 이런 친절이 조금은 나를 녹였다. 나는 어느새 나를 다치게 한 것도, 나를 구속해놓은 것도 눈앞의 이 몹쓸 악당의 짓이라는 것을 다 잊은 것이다. 몇 일이라는 시간과 더불어 난 이미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버렸는지도. 그리고 이 녀석이 이렇게 친절한 면도 있구나..하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 * *






그가 나를 풀어주었다.

나는 놀라서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가자”

“어딜?”

“나가자고 했었잖아”

“..내가 이대로 도망가면 어쩌려고?”

“뭘 어쩌긴? 쫓아야지”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나는 도망가야겠다고 마음속으론 희미하게 생각했다.

“뛰어. 진짜 폭팔할거야”

그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뛰어가는 이 악당에게 손목이 잡혀서 같이 달려가면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누구?”

“같이 잡아둔 인질이라던가, 너 같이 있었던 부하들도 있었잖..”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가 막 빠져나온 그 공간에 대형 폭팔과 함께 나에게도 뜨거운 공기가 훅 불어왔다. 밖엔 전에 있다고 들은 부대들도 없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그 큰 대형 건물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새빨간 혀를 가진 그 불꽃이 커다란 형태로 미친듯이 춤을추는 형태로 삼키고 있었다.

“몰라. 너랑 나밖에 없었어”

이 녀석은 역시나 최고의 악당이었다. 이 녀석에게 인질극은 처음부터 그냥 재미삼아 벌인것이 틀림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딘지 모를 이곳에서 나는 그와 둘이 그 거대한 불꽃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가 저가 하고 있던 잿빛 망토를 나에게 머리까지 뒤집어서 둘러주었다.

“이렇게 큰 불꽃 본 적있어?”

“...”

“난 몇 번 봤어. 가끔 이렇게 큰 게 보고 싶어. 작은 거 재미없잖아. 난 이렇게 화끈한게 좋아”

그리곤 발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고, 나는 걸음을 한 걸음씩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거야?”

“...응? 아. 걷기 귀찮으니까 차를 타자”

“차가 있어?”

“응 저기에 가면”

그는 도로변 쪽을 가리켰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곳은 아니여서 나는 이 곳이 어딘지 몰랐다. 도로변에 차가 있다니. 그런곳에 주차를 하나 하고 생각을 잠시 했을 때 그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하나 붙잡고는 그 운전자에게 말했다. 태워달라고 하려나보다 하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 운전자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타”

그는 그 운전자의 시체를 끌어내리고 나에게 타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어서 한참 쳐다보던 나는 그의 말대로 얌전히 그 차에 탔다.

“병원갈까?”

그가 거칠게 운전을 하면서 말했다.

“병원은 왜?”

“너 아프잖아”

“...됐어 그나저나 앞에 사람.....”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와 더불어 유리창 위로 사람의 형체가 훅 하고 굴러갔다.

“응? 뭐가?”

그는 별 감정 없는 얼굴로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정말이지 개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거친 운전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목적지까지 가기까지 치고 지나간 사람과 공공물은 너무 많았다. 지나간 뒤를 보면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이 꿈틀거리고 있어서 마치 좀비같다는 생각을 했다. 뒤에서 경찰차가 뒤쫓으면 의기양양하게 잠시 차를 세우고 마치 축제에 온 사람 마냥 그 무리에 뛰어 들어가 모두 정리하고 돌아왔다. 나는 그런 그를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그 녀석은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에 너무도 당당해서) 다시 한번 그가 무서웠지만 한편으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참 저렇게 생각 없이 살아서 좋겠다, 저렇게 아무도 말리지 못할 힘과 더불어 아무렇지 않은 양심을 가져서 참 좋겠네.

그는 정말로 병원에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의 강압에 의해서 병원에 들어갔다. 주문을 받는 접수원에게 접수를 하려 하자 그가 툭 끼어들어서 말했다.

“바빠 우리, 제일 먼저 해줘”

“아 지금 기다리고 계시는 손님이..”

“바쁘다고 말하고 있잖아”

그가 그 간호사에게 우산 총구를 겨누면서 말했다. 덜덜 떠는 간호사가 안내해준 의사에게도 총을 겨누면서

“얼른 치료해”

라고 말하면서 덜덜 떠는 의사 옆에서 씨익 웃고 있었다.

“신고 할거야”

내가 윗옷을 벗고, 상처를 살피는 의사를 힐끗 보면서 그에게 말했다.

“뭘?”

“이렇게 총을 가지고 일반인을 협박하면 당연히 신고를 하겠지 경찰에”

“근데?”

의사가 덜덜 떨면서 나에게 이미 상처가 있던지 꽤나 지나서 흉터가 질 거라고 말했다. 나는 상관없다고 말하곤, 완치는 바라지 않으니 우선 응급처치라도 해달라고 말했다.

“근데 라는 말이 나와? 우린 지금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읏.. 많은... 짓을 했는지 생각을 해보라고 멍청아”

의사가 소독약을 상처에 가져다 대서 느껴지는 통증에 나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나한테 멍청아 라고 불러주기도 하는구나. 맨날 악당이라고만 부르는줄 알았더니”

그는 내가 앞전에 한 말엔 절대로 관심없어 보였다.

“그러고보니 우리 공범이네?”

그는 여전히 눈웃음을 지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리곤 그는 밖으로 훌쩍 나가더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몇몇 여자들의 짧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까 우리의 접수를 받으면서 우릴 안내해주었던 간호사를 죽인 모양이었다. 그리곤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를 죽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신고해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귀찮으니까 그러지마"

저딴 소리가 통할리가 있어? 하고 생각했지만, 나의 치료가 끝나고 나서도 안전하게, 유유히 우리는 그 곳을 탈출했다. 걸어 나오는 우리를 바라보는 병원 사람들의 공포 어린 시선들이 생각난다. 경찰으로써 사람들을 구해줬을때 받는 눈빛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시선은 사람을 조금은 우쭐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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