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회의였다. 아무렇지 않게 회의를 가야겠다 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회의 당일 아침 그는 도무지 그의 얼굴을 볼 용기가 서지 않았다. 갈까 말까 하고 고민하는 와중에 회의를 가는 지 옆방에서 나오는 야마자키의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야마자키와는 다른 그의 발소리. 항상 이 문을 열고 깨워주곤 했는데. 그때의 너는 정말로 니가 맞아? 내가 정신병이라도 앓고 있는 거야? 차라리 그러길 바랐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당분간은 회의를 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의를 가지 않다보니 히지카타를 마주칠 일은 없었다. 다른 대원들도 회의에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이 없는걸 보니 히지카타가 알아서 둘러대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후로도 이 좁은 둔영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히지카타 역시 그를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찾아와서 무어라고 변명이라도 해주길 기다렸다. 자신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그래서 자신을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주길 바랐다. 화가 나고 역겨웠지만 좋아했으니까 오랜 세월 함께 했으니까. 한 구석으로 그를 믿고 있는 마음이 은근히 컸던 모양이다. 도데체 나에게 했던 행동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리고 했던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용서 할 수 없지만 용서하고 싶었다.

  

.....그야.. 내가 너한테 미쳐버렸으니까

  

왜 니가.. 니가 자꾸 나를 괴롭혀.. 내버려두지.. 왜 나를 자꾸... 힘들게 해..


  

  

  

  

긴토키와 소고는 그 날 이후로 전 보다 사이가 좋아졌다. 소고는 그의 앞에서 항상 철이 없었고 그런 점은 긴토키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친구였다. 둘의 사이를 가장 정확히 정의한다면 ‘친구’였다. 친구 같은 연인.

  

소고에게 ‘편하다’ 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쪽은 히지카타였겠지만 긴토키에게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라면 히지카타보다는 긴토키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 맞겠다.

  

  

한편 긴토키는 고민이 많았다. 소고가 히지카타를 부정해주어 기뻤던 것도 잠시,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TV를 보다 떠올랐다. 왜? 라는 것을 물었어야 했었다는 걸, 아 이런 멍청한 새끼. 생각을 아예 못하고 지나가버렸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겠지만 이미 그는 생각해버렸고, 궁금해하고 있었고 어느새 상상하고 있었다. 혹시나 마음을 말했다가 거절 당했던걸까?

  

애석하게도 그때 그 순간에 모든 것을 끝내고 오지 못했다. 한참 궁금해 하던 그는 이내 그것을 억지로라도 잊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은 채로 옆에 있는 것이 싫다고 말했던 것은 이용당하고 싶지 않은 그의 마지막 오기였다. 하지만 그 말에 그는 천연덕스럽게, 혹은 천진난만하면서도 영악하게 대답했었다.

  

에이, 둘 다 스파크 튀게 좋아서 사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모르시는구나?

  

전에 형씨가 말했듯이 어차피 안 되는 사람인데 기운 빼서 뭐해요?

  

  

맞는 말이였고, 시작이 반 이라는 말도 있다는 생각을 해다. 좋은 시간을 보냈을 때도 있었고, 불안할 때는 셀 수도 없이 많이 있었고, 싸우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런 그 녀석이 자신을 떠날 의지는 없어 보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랬다. 그 녀석 말대로 어차피 이루어지지 못할 상대의 녀석에게 질투라니, 스스로를 안심해 안심해 하고 토닥이며 잊기로 했다.

  

혹시나 그가 만약에 또 다시 그 녀석을 두고 고민해 온다면, 한번쯤 눈치재지 못하게 그 녀석과 그 녀석의 누나에 대해 다시금 상기 시켜주면 되는 문제였다. 그 녀석과 그 녀석의 누나와 함께 식당에 갔었을 때 보았던 그 녀석의 모습이라면 결코 히지카타에게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란 무섭도록 떨어지지 않는 것이기에 긴토키는 자신의 본성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새 그 본성에 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니까 혹시라도 그 새끼 생각하지마- 나를 이용하거나 나를 버릴 생각도 하지마- 나는 너를 시체로라도 옆에 두고 싶을 정도란 말이야.

  

  

  

 

 

  

  

  

히지카타 역시 그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는 그날 회의 시간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야마자키에게 오늘 회의는 생략하는 것으로 하자고 연락을 취했다. 나중에 야마자키에게 우연히 들은 바로는 그 녀석 빼고는 모든 대원이 모두 나와 있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제 입을 틀어막더니 오키타 대장에겐 제가 말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약간은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마라 나도 말하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가서 네 녀석 이야기든 뭐든.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미안하다, 잘못했다 라는 말은 꺼낼 수는 없었다. 고작 그 한마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고, 그 모든 상황이 너무 싫어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동시에 몰려오는 그럼 신센구미는? 항상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럼 곤도씨는? 나를 믿고 내가 보좌해야 할 사람인데, 그럼 그 녀석은? 등등을 시작으로 이틀 후에 양이지사 놈들의 아지트라고 확정된 곳으로 가서 놈들을 검거해야하는데, 그럼 그건 어쩌지? 라던가 몇 일후에 처리해야할 사소한 일들이 차례차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그는 알았다. 지금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신센구미와 일, 직책이었다. 죽는 것을 두려워 한 적은 크게 없었지만, 지금 그는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의지가 굳건하지 않음과 동시에 비도덕적인 그의 또 하나의 내면이 자꾸만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그 녀석과 다시 마주쳐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 하루종일 꽉차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얼어붙을 듯이 냉소적인 새벽이였다. 쓸쓸한 새벽하늘을 문득 바라보며 지금 자려나, 그 녀석도 원채 잠을 잘 못 이루던데. 하고 생각하다가 상상했던 그 녀석의 안대 쓴 모습과, 얼마 전 그를 탐하려 했던, 그리고 아직도 그의 손과 입술과 그와 맞닿았던 모든 곳이 생생히 기억하는 그의 체온이 생각나 후끈 뜨거워졌다.

  

 

 

 

꿈에 녀석이 나왔다. 그는 꿈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꿈이라 그런지 그 녀석에게 사과할 용기가 생겼고, 곧 다가가 그 녀석의 앞에서 무릎을 꿇곤 잘못했다고 말했다. 진실로 너에게 잠시 내가.. 내가 미쳤었나봐.. 말하는 와중에 눈에선 뜨거운 액체가 주륵 하고 흘러내렸다. 그리곤 곧 그 눈물이 멈출 생각도 없이 얼굴선을 쉼 없이 타고 내려왔다. 잘못했어. 미얀해 정말로 내가 미쳤었나봐, 아니. 미쳤어. 뭐라고 말해야.. 진심이 전해질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난 정말로..

  

히지카타씨?

  

그 녀석은 샤워 직후였는지 샤워가운에 수건을 들곤 그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이였다. 그리곤 울고 있는 그를 보고는 아 뭐야, 쪽팔리게 지금 우는 겁니까? 귀신 부장님께서? 하곤 우습다는 듯이 킥킥 웃었다. 나를.. 용서해주는거야? 하고 묻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뭘 용서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더니 아- 설마 ‘그 일’ 때문에? 하고 다시 작게 웃었다. 그리곤 쇼파에 풀썩 앉더니 다리를 무릎 꿇은 그의 앞에 두곤 거만한 표정으로 앉아선 이렇게 말했다.

  

히지카타씨. 나랑 하고 싶은 거 아니였어요? 나는 발이 성감대예요, 내 발에 키스하고 구걸해봐요 해달라고.

  

우습다는 듯이 내려다보면서 킥킥 웃는 모양새가 놀리는 것이 확실했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빌다가도 그런 그의 모습에 홀린 듯이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 그의 발에 키스하고 있었다. 내면에 크게 잡힌 자신의 욕망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역시 히지카타씨는 그런 모습이 어울려요. 맨날 듣는 얘기잖아요? 막부의 ‘개’라고. 발에 하는 키스는 복종을 의미한다더라고요. 나한테 복종하는 거죠?

  

한 팔로 턱을 괴곤 내려다보며 씨익 웃는 모습이 히지카타에겐 이성적인 다른 생각 따윈 들지 못하게 하는 충분한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 꿈안에 영원히 갇히고 싶었다. 그 누구의 간섭도,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도덕적일 필요도 없고, 죄책감에서도 해방된 채 단 둘이. 그 세상에 존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 녀석은 회의를 몇 일간 나오지 않았고, 히지카타는 그 점을 속으론 약간은 안심하면서도 자꾸 신경 쓰였다. 다른 대원들은 히지카타에게 왜 오키타 대장은 안나오냐며 물어왔지만 히지카타는 그냥 대충 무시하곤 회의를 설렁설렁 진행했다. 그리곤 회의내용은 전해주라고 일렀다.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틀어지는 그 녀석과의 관계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츠바의 존재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혹은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혹은 그녀가 이 녀석의 누나가 아니였다면, 그녀가 착하고 순수한 여자가 아니였다면, 그녀가 날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그 녀석에게 이런 어긋난 마음이 생겼을까? 그 전에 이 사회의 ‘부장’이라는 존재의 책임감에 짓눌려 있지 않았다면 이런 더러운 욕망이 생겼을까? 생각해도 소용없는 엎질러진 물이였다. 항상 옆을 맴돌던 그 녀석이 갑자기 사라진 듯한 느낌에 히지카타는 말할 수 없는 고독감이 밀려왔다.

  

  

그 날은 유난히 피곤했고, 히지카타는 여러 가지 신경 쓸 일이 많아 일을 마치는 게 좀 늦었다. 들어가서 마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으로 들어가려 다가가는데 어두운 방 앞에서 서성이는 누군가를 발견하곤 뭐야? 하는 생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서성이는 누군가가 누구인지 확인하곤 그 자리에 발이 파 묻힌 듯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 역시 놀랐는지 흠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어?”

  

“...아..”

  

무어라고 말을 더 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입이 얼어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해 잘못했어..

미안해 잘못했어..

  

  

그리고 히지카타와 소고는 그의 방 안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바라보는 그 녀석의 눈빛이 너무 따갑고 무서워 눈을 계속 마주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잠시 마주쳤다가 아래를 봤다가를 반복했다. 소고도 생각을 정리하는지 별 말 없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생각을.. 해봤어.”

  

“...”

  

“난 너처럼 똑똑하지 않아서 니가 한 말의 의미를 찾을수가 없어”

  

“...”

  

“내가 먼저 너한테 이야기 하러 왔다는게 미치게 자존심 상하긴한데, 아 내가 답답해서 자존심 챙기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아서.”

  

“...”

  

“자, 나를 납득시켜봐”

  

소고는 그 순간은 솔직한 이야기를 하러 왔다. 수 많은 고민을 했고, 기다렸고, 혼자 생각을 하다가 그것으로는 결론을 맺을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되던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나는..”

  

히지카타는 죄를 지은 범죄자 마냥 그의 앞에 고개를 숙인 채 그 이상 말을 잊지 못하는 자신의 행동이 갑자기 우습고 황당했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내가 너의 눈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만큼? 말했잖아, 난 노력했고, 그걸 자극한 네 녀석의 잘못도 있어. 그의 안에서 자꾸만 나오는 다른 인격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차마 입 밖에는 내지 못한 채 하고 싶은 말들이 안에서만 한참 맴돌고 있을 때 눈앞에 있는 그가 한숨과, 약간의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됐다. 나도 더 이상 이런식으로 네 녀석 앞에 앉아 있기 힘들어”

  

너만 힘들어? 나도, 나도 힘들어 나도, 너는 왜 항상 네 녀석 입장만 생각해? 그 말 역시 입 밖으론 나가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너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거든”

  

소고는 방을 나오며 굉장히 화가 났다. 기껏 자존심까지 굽히고 찾아간 것의 결과가 이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한켠에선 아니야 지금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본인이 너무 짜증스러웠다.

  

일어서서 돌아 나가는 그의 뒷 모습 중 가장 눈에 띄는 하얗게 빛나는 발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한손으로 턱을 괴곤 피식 웃던 거만한 모습까지 꿈에서 보았던 환상과 현실이 살짝 접점이 되어 히지카타의 눈 앞에 잠깐 비추었다.

  

  

  

  

  

  

  

  

마음이 썩 좋은 것은 아니였지만, 긴토키는 항상 옆에서 웃게 해주는 제주가 있어서 그와 있을때는 그렇게 많이 심각하다거나 생각에 잠긴다거나 하지 않았다. 물론 상대적인 것이라, 긴토키 입장에선 약간은 기분 좋아 보이지 않는 그가 계속 신경쓰였다. 그래도 긴토키에게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그가 먼저 자신을 부르는 일도 많았고, 조금은 마음을 열어간다고 느꼈기에 약간은 안심하자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그날은 신파치도 츠우 콘서트가 있다며 다음날 저녁쯤이나 오겠다고 했다. 긴토키는 그 사실을 생각하곤 소고와 평소와 다름없이 소소한 것들을 보고, 간단한 먹거리를 즐기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두워지자 이만 가보겠다고 일어서는 그에게 긴토키는 말했다.

  

“어어, 잠깐만 오키타, 신파치가”

  

“안경이요?”

  

“응, 신파치가 내일 저녁쯤 온데”

  

“아, 또 츠우 콘서트 갔나보네요”

  

“응. 그래서 말인데 .. 오랜만에 우리집에서 자고가라, 응?”

  

“안돼요 혼나”

  

말하곤 걸음을 옮기려는데 긴토키가 잠시 그를 쳐다보다 물었다.

  

“.. 히지카타에게?”

  

소고는 그가 말하는 이름에 아.. 그 녀석은 이제 나를 혼내지도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전이라면 조금은 기뻤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느끼는 이 씁쓸한 감정에 우울해졌다. 그리곤 긴토키에게 말했다.

  

“아,.. 생각해보니 상관없을 것도 같아요 가요.”

  

긴토키는 그의 대답이 기뻤다. 같이 자자 라는 뜻의 말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듯이, 긴토키 역시 여러 가지 생각이 있지만 가장 큰 생각은 그를 옆에 오래 두고 싶었다. 끌어 안고 잠들어 보고 싶고, 깨울 땐 모닝 키스 같은 걸로 깨워 보고 싶기도 하고.. 전에 함께 있었을 때야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니까. 물론 이 상황이 다 만들어 지게 된다면 조금 더 욕심내서 이상의 스킨십도 생각하고 있었다.

  

  

“손”

  

긴토키는 손을 달라고 제 손을 내밀었다. 그는 말없이 그의 손에 제 손을 포게었다.

  

약간 앞서서가는 긴토키를 소고는 힐끗 쳐다보았다. 원래도 손이야 잡았던 적은 많았지만, 그 날의 느낌은 그에게 약간 어색하면서 달랐다. 그가 조금은 간지러웠다고 해야하나..

  

  

  

"이거 생각나?“

  

집에 도착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긴토키가 생각났는지 후다닥 무언갈 꺼내왔다.

  

“뭐예요?”

  

긴토키가 꺼내온 것은 노란색 피카츄 인형이였다.

  

“신파치가 하도 잔소리해서.. 원랜 밖에도 놨었는데 다 안으로 넣어뒀어”

  

“그니까 그게 뭔데요?”

  

“피카츄잖아. 몰라?”

  

“뭐야, 그거야 알죠. 난 또 뭐라고”

  

“야야 , 이거 니가 사격해서 따준 인형이잖아. 생각 안나?”

  

긴토키의 말에 그는 전에 함께 갔었던 축제를 떠올렸다. 아- 그때가진 아무 문제 없는 사이였는데 말이지, 아니 오히려 그 새끼가 하는 짓이 너무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 때 까지는 그 여자를 죽일 생각도 없었고, 그 상황에서 그 여자에게 느끼는 자신의 월등한 우월감에 젖어 행복했었다. 히지카타의 말대로 그 여자를 죽인 자신의 행동이 불씨가 되었다면, 그 전에 그 새끼가 그 여자를 사귄다거나 하는 행동 같은 것으로 그 새끼야 말로 자극하면 안되는 것이였다. 뭐 이제와서 생각해도 소용없는 짓이지만.. 작은 한숨을 쉬곤 이내 아. 그랬구나 하곤 짧게 대답했다.

  

“너랑 피카츄랑 닮았어. 노란것도 그렇고 전기 뿜어 내면서 승질내는것도, 아- 근데 귀엽긴 피카츄가 조금 더 귀엽다는거?”

  

그리곤 우스웠는지 긴토키는 그의 옆에서 소리내어 웃었다.

  

“피카츄 약해서 싫은데, 이왕 포켓몬으로 말해 줄 거면 저딴 애 말고 최강 포켓몬이 좋아요, 전설의 포켓몬이라거나”

  

“어이 들었냐 피카츄 널 무시하잖아 너의 힘을 보여줘!”

  

“나 졸려요 잘 거야”

  

시덥잖은 장난을 치려는 긴토키 앞을 지나가며 그가 말했다.

  

“응? 잘 거야?”

  

긴토키는 잠시 가만히 서 있더니 그를 쫓아가 들고 있던 인형의 입 부근을 그의 입에 갖다 대었다. 소고는 그의 어이없는 행동에 뭐하는 짓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긴토키는 말했다.

  

“너는 뽀뽀해도 별 말 없구나, 난 가벼운 뽀뽀라도 하기 전에 얼마나 눈치를 살펴야 되는지..”

  

긴토키는 인형을 끌어안고 장난식으로 초라함을 어필하며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는지 소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하던가..”

  

“응?”

  

“키스 하고 싶으면 하던가”

  

자신이 약간 말하고도 쪽팔린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얼얼했다. 그의 모습을 보곤 긴토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가 입술을 맞대었다. 소고에게 그 날은 그냥 뭔가 조금 이상했다. 긴토키와의 키스가 히지카타와의 키스가 얼핏얼핏 겹쳐졌지만, 그만큼 간절하다거나 계속 기억날 만큼 머릿속에 남을 정도는 아니였다. 하지만 싫지 않았고, 그가 입안을 헤집어 올 때 그는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을 사르르 감았다.

  

한참을 키스하다 입술을 떼었을 때 긴토키가 목 언저리로 입술을 옮겼다. 그가 어깨 부근을 살짝 잡았을 때 그는 집무실에서의 히지카타가 생각이 나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히지카타가 무섭다기보다는 집무실에서의 히지카타가 아닌 히지카타가 그저 소름이 끼쳤다. 오랜 시간 믿고 지낸 것에 대한 배신감이 제일 컸을 것이고, 자신이 억지로, 억지로 그런 일을 당했다는 수치심에서 오는 감정이였다.

  

“그만, 싫어요”

  

소고는 긴토키를 밀어냈다. 긴토키는 이건 자신이 부리는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거부 의사를 밝히자 일단 멈추었다.

  

“왜?”

  

왜. 그 말도 자꾸 히지카타가 그 때 당시 했던 말과 겹치어 그는 잠시 느껴지는 현기증에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선택을 다시 한번 후회했다. 히지카타와 닮아서 긴토키를 옆에 두려 했지만, 지금은 그에 따른 결과가 약간은 어긋나고 있었다.

  

“아...아니, 나, 나 둔영으로 갈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하는 그를 보고 긴토키는 허겁지겁 팔을 잡았다.

  

“아.. 미얀. 안그럴게. 가지마”

  

긴토키는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안그럴게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긴토키에게 다행히도 소고는 문 앞에서 멈추었다. 그저 아직 어려서 이런 것에 거부반응이야 충분히 보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기준이란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 이후엔 약간 넋 나간듯해서 그냥 바로 잠에 들 요량으로 그를 데리고와 옆에 눕혔다. 옆에 누워 왠일로 곧 바로 잠드는 그 녀석이 신기해 긴토키는 머리를 한번 쓸어 넘겨주었다. 정말로 싫었는지 식은땀이 범벅된 그를 보고 긴토키는 약간은 서운했지만 크게 신경 쓸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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