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복잡한 상황 때문인지 그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옴과 동시에 술이 고팠다. 마침 그녀와의 약속도 있었던 터라 어차피 술은 마시게 되겠지만 그녀와 둘이 마신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부담스럽게 작용해 그는 애꿎은 야마자키에게 같이 술이나 마시러 가자며 잡아끌었다. 야마자키는 그런 히지카타에게 왜 자기를 데리고 가냐며 수상하다며 투덜투덜 거렸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히지카타를 발견하고 빙긋 웃는 그녀가 야마자키를 보곤 약간은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이내 활짝 웃으며 둘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그가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를 보고 놀란 것은 야마자키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 자기가 있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그녀와 히지카타를 번갈아 보며 히지카타에게 속삭이듯 저.. 이 자리에 제가 있어도 됩니까? 하고 물었고, 히지카타는 말없이 그를 잡아끌었다.


야마자키와 유우는 간단한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는 말없이 술만 들이켰다.


 

 

“부장님,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니 별로”


 

 

 

그는 짧게 대답했다. 그가 긴토키와 소고의 모습을 보고 놀란 건 사실이지만 그는 그 모습을 보고 그냥 뒤돌아섰다. 그래서 내가 뭘 어쩔건데?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었고, 그것에 대해서 캐묻지도, 아는 척 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때 그는 야마자키에게 자신의 지갑을 주면서 천천히 먹고 계산하고 오라고 말했다. 유우가 함께 일어섰지만 히지카타는 일이 있어서 그러니 먼저 가보겠다고 말했다. 자리에선 아무렇지 않았지만 밖의 공기를 한숨 마시자 순간 머리가 울리는게 술을 꽤나 마셨나보다. 그는 충동적으로 강가에 가고 싶어졌다. 강가의 축축한 풀냄새와 귓가를 간질이는 듯 잔잔히 울리는 풀벌레 소리가 부슈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강가에 앉아서 작은 돌 따위를 괜히 화풀이 하듯 하나씩 던지다 췻김에 나온 용기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뭐해”


[뭐하긴, 술 마셨습니까? 술 처먹었으면 곱게 와서 자라]


“안 취했어. 할 일없으면 잠깐 올래?”


[...어딘데]


왠일로 순순히 물어오는 그의 말에 그는 기분이 좋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왠일로 그는 투덜거린다거나, 귀찮아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았다.


“누구랑 마셨어?”

“야마자키랑”


“야마자키는 어딨는데?”


“몰라-”


“같이 마셨으면 챙겨야지 내가 나오게 만들어? 건방진 새끼”


“...왠일로 순순히 나왔어?”


히지카타는 투덜거리는 그에게 물었다. 그 녀석의 적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살짝 움찔하더니 답답해서 라고 대답했다. 기대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긴토키와의 그 모습을 보니 약간은 뭔가가 더 확실하게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면서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자꾸 앞을 서성거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 나는..”


“응”


“....나는....”


눈앞의 네가 다른 사람이였으면 이 상황에서 말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아냐....”


그런 그를 보고 소고는 그가 몹시 취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소고.. 나는....”


“그래 너는”


“....아냐..”


“...”


“...아... 나는....”


“...”


“....아니다...”


술에 덜 취했는지 아니면 취해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꾸만 목구멍에 무언가가 턱 걸려 그 말을 꺼낼수가 없어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자꾸만 겹치어 보이는 그와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아냐... 나는 자격이 없어 자격이..”


“뭐라는거야 자꾸”


“...넌 내가 싫지?”


“...당연한 소리를”


“...내가 누군가의 옆에서 행복해지는게 보기 싫다고 했었던가?”


“...”


그의 말에 소고는 별 말 없이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 때 말이 조금 심했나? 취해서 저런말도 하고


“...그럼.. 네 옆에서 평생 불행하게 있을까?”


“뭐?”


“니가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할게”


그래 소고, 난 선택 같은 걸 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아니야


“자꾸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가자 너 취했어”


그는 정말로 황당했는지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소고는 그의 정신 나간 듯한 소리를 듣고 일어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히지카타, 너 내가 그런 말했다고 답지 않게 삐진거냐 설마?”


소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그보다 더 심한말을 얼마나 더 해왔는데 고작 그런걸로?


“히지카타 너 자꾸 나한테 당하고만 있다는 듯이 말하지마 너도 나 열받게 하잖아?”


그는 불만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니가 자꾸 그러니까 사람들이 내가 일방적으로 나만 잘못했다는식으로 말하는데 나 그거 억울해 그는 마저 덫붙여 말했다.


“난 적어도 너처럼 그렇게 오래가진 않아. 난 쿨하거든. 봐, 나 지금도 너한테 화난 거 다 잊고 왔잖아”


사실 아직 풀리진 않았지만 그가 불러낸 사실이 좋았다. 전화를 받으면서 살짝은 취한 목소리로 자신을 불러내는게 반가웠다. 술 취하고 생각나는 사람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뭐 믿을 만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아 그렇지 너 그랬었지”


“물론, 쫌팽이 같은 누구랑은 달라서 말이지”


“....그렇게 잘 잊어버릴거면 키스한번 더 할래?”


히지카타가 그의 얼굴 앞에 불쑥 다가왔다. 소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을 치곤 그런 자신의 행동이 미치게 자존심 상했다. 뭔가 엄청나게 신경쓰고 있었던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듯해 치욕스럽기까지 했다. 더불어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눈 앞에 있는 애증에 가득찬 이 녀석이 가증스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이 새끼가.. 너 미쳤냐?”


그는 때리려고 주먹을 들었다가 됐다 하고는 그대로 신경질적으로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걸음 가다가 화가 덜 풀렸는지 멈추곤 뒤돌아서 히지카타에게 소리쳤다.


“재밌냐? 병신새끼야”


자신의 표정을 거울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세상에서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증오심에 가득찬 듯한 표정일 것이다.


히지카타는 그런 그를 보고 다리가 땅에 붙은 것 마냥 꿈쩍도 하지 못했다. 나 정말 취했구나 이런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서성이던 감정이 긴토키와의 행각에 대한 질투심을 표출한 것일까? 또 다시 그 녀석을 화나게 만들어 버렸다.


그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그는 다시금 털썩 주저앉았다. 아.. 오늘도 날씨가 흐렸었나.. 오늘도 별이 하나도 없네


 

 

 

 

 

 

 

 


 

 

 

 


팽팽하게 잡아당긴 줄의 긴장감이랄까 조금만 뾰족한 것을 가져다 대면 탄력있게 끊어질 것 같이 그의 상태는 아슬아슬했다.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위치의 그와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은 그 내적의 두 명의 본인이 자꾸만 갈등을 빚고 있어 그는 그 스트레스에 괴로웠다. 술을 먹고 그 녀석에게 연락을 취한 것부터 자신이 철저히 감추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 것에 대한 괴로움이 커 그는 업무 중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제 그렇게 화를 내고 나간 그 녀석은 아침에 자신을 마주치자마자 ‘병신새끼’ 라고 아침인사를 대신하곤 가버렸다. 그래도 그런 욕을 지껄여준다는 것은 그가 지난밤의 일을 잊었다거나,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교대로 나간 순찰에선 또 다시 어김없이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히지카타를 보곤 웃으면서 왜 먼저 가셨어요 아쉬웠는데- 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왜 이렇게 맨날 쫓아다녀? 이렇게 자주 만나는거 진짜 이상하잖아”


히지카타는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곤 물었다.


“....”


그녀는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놀란 기색 없이 그를 덤덤히 쳐다보았다.


“모르셔서 물어보시는건 아니시죠?”


“...뭐?”


“당연하잖아요 이러는 이유. 저 부장님 아직도 좋아해요”


놀라진 않았지만 사실 큰 관심 없었기에 그는 그런 그녀를 무관심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부장님은 모르시겠지만, 이런거 세 번씩이나 말하는거.. 진짜 쉬운거 아니예요”


그렇겠지 누구는 한번도 말 못하고 있는데. 새삼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뻔히 자신의 대답을 알고 있을터인데


“...관심... 없으시다는거 알지만... 그래도 한번은....제가 한말을 신경이라도 써주세요”


그녀는 그에게 인사하곤 뒤돌아섰다. 대답을 알고 있는 눈치였고, 그걸 모르는 것이 말이 안될 정도로 그가 행동해 왔기에 그는 마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마저 피웠다.

 

 

 


삐뚫어진 욕망이 점점 커져가서인지 그는 꿈속에서 몇 번이나 그와 입술을 맞대고 그를 탐하는 꿈을 여러번 꾸었다. 그리고 종종 그가 미츠바로 변하기도하고, 꿈에 그녀가 나왔다고 생각하면 그녀가 그로 변하기도 했다.


미츠바와 닮았지만 전혀 다른 성격. 미츠바로 말하자면 자신이 손대면 더러워질까봐 무섭고 부담스러운 새하얗고 약한 카라꽃 같다고 하자면, 그는 손을 대어도 더럽힐 걱정은 해도 되지 않는 밟아도 죽을 걱정 없는, 그러기에 더 꺾고 싶은 구석에 피는 생명력 질긴 한입이라도 베어문다면 독이 가득 퍼질것 같은 독초 같은 그런 존재였다. 그런 외적 모습이 카라꽃과 닮았다고 생각한다면, 심지어 사랑했던 사람이였다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자신의 안에서 작게 비겁한 위로를 하고 있었다.


그런 꿈을 반복해 꾸고 나서 그는 자신의 비도덕적인 면모가 점점 자신을 침식해간다는 것을 느끼며 두려웠다. 그것을 두려워한 결정적인 이유는 늘 깨우던 그 녀석을 깨우러 그의 채취가 가득한 그의 방에 들어갈 때부터 머리가 울릴정도로 미치게 설레인다는 점, 그리고 항상 봐왔던 우스꽝스러운 안대를 쓰고 자는 그 녀석을 보곤 자신이 항상 깨우러 오는 규칙적인 시간이 아니라 (이를테면 새벽이라던가) 뜬금없는 시각에 기척없이 찾아가선, 완력으로는 자신이 그 녀석보다는 앞서기에 실제로 탐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버렸다. 안대를 쓰고 있기에 앞을 보지 못할 것이고, 조심한다면 자신을 숨길수도 있지 않을까, 일명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느 미친 잔혹한 강간범 같은 생각을 신센구미 부장인 그 자신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이대로는 진심으로 범죄자가 되어버릴 것 같아 정신없이 이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다행이였다. 이런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성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자신이 멀쩡하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렇다고 그가 그 녀석을 아끼지 않는다거나 그런 삐뚫어진 욕망만을 품은 것은 아니였다. 누구보다도 그를 생각했고, 누구보다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의 인격 안에 일어나는 해석이 미묘하게 엊갈려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배덕감과 그것을 이기지 못하는 죄책감과 금욕적인 자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 위치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자신의 옆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문제였다. 술집여자가 풍기는 향수가 싫어 술집여자와는 함께 있기도 싫었다면 그게 아닌 그냥 다른 평범한 ‘여자’를 두고 많은 문제 중 한 가지 정도를 해결하면 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마침 떠오르는 한 명이 있었다.

 

 

 

 

 

 

 

“어서오세요! 어..?”


그의 걸음이 다다른 곳은 그녀가 일하고 있다는 케이크 가게였다. 많은 남자들이 이상형으로 뽑는 케이크집에서 일하는 여자. 사실 자신은 그런 얼빠진 남자들에 해당하는 사람은 아니였지만,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로 조건은 충분했다. 케익 같은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그 였기에 그녀는 케익 가게에 찾아온 그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피했다. 그는 아기자기하게 잔뜩 토핑되어 있는 케익들을 한번 쓰윽 둘러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맛있어?”


“..아..음.. 부장님은 단거 별로 안좋아하시니 이걸로..”


“아니 그냥 여기서 제일 인기있는거 추천해줘”


“선물이신가요? 그럼 이거랑.. 이거..”


그녀는 조심스레 조각케익 몇 개를 추천했다. 그는 그녀가 추천한 두세개 조각의 케익을 다 달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그녀는 깨끗해 보이는 흰 상자에 조심스레 포장을 하곤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잠시 받아들더니 다시 눈앞의 그녀에게 내밀었다.


“...?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너 먹어, 너 주려고 샀어”


“저... 저요?”


“응”


그는 자신이 내민 상자를 들고 놀란 표정의 그녀를 등 뒤로 하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가자 그녀가 바로 뒤따라 쫓아 나왔다.


“저....저기 부장님! 이거... 뭐..뭐예요? 무...무슨 의미예요?”


그녀가 당혹스러움과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아니 감출 생각도 없는지 말을 똑바로 잊질 못했다. 그는 뒤따라온 그녀를 별 감흥 없이 쳐다보며 말했다.


“나 역시 너를 좋아해 내 옆에 있어줘”


책을 읽는 듯이 말했다. 이 말이 이렇게 쉽게도 뱉을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그는 그날 알았다.

그녀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바로 눈치를 챘을 수도 있을 정도의 무미건조함이였지만 이미 그녀는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었고, 그의 표정, 말투 이런 것 쯤은 보이지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연한 분홍빛으로 번져가며 그 얼굴을 가리려 손으로 얼굴 반을 가리었다. 그녀는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는지 그를 와락 껴안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그는 애써 웃어보였다. 그녀는 믿기지 않았는지 저 아무 때나 연락해도 되요? 저 찾아가도 되요? 하고 물어보며 다른 여자랑 있으면 저 화내도 되요? 라고 물었다. 여자? 여자는 신경 안써도 돼 그는 말했다. 그의 말에 그녀는 화사하게 웃었다.


그래 여자는 신경 안써도 돼. 여자는


그리고 그는 한편으론 지금 자신의 행동을 조금은 후회하고 있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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